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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발전소가 이사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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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발전소가 이사를 했습니다

익명 (미확인) | 금, 2015/07/17- 10:00

2015년 7월 16일 정치발전소가 이사를 했습니다. 서울혁신파크로 이사하는 날이었죠.

이른 아침부터 후마니타스 책다방에 모여 짐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사를 도와주러 많은 분들이 오셨어요. 덕분에 생각보다 손쉽게 이삿짐을 싸고 나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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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등의 짐은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책이 어마어마 했어요. 차 두대를 꽉 채우고도 한대가 더 나왔었죠. 말다방에 있던 책을 모두 싸들고 나왔습니다. 선발대가 먼저 출발해서 1차로 짐을 내리고 트럭에 책상, 의자, 남은 짐들을 모두 싣고 한번 더 짐을 날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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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막 나르고 새로운 사무실 공간에 올려두고 났더니 많이 어수선 하더라고요. 사진에 보이는 책의 양이 어마어마하죠?? 운 좋게 책장을 몇개 얻을 수 있어서 그나마 정리를 간단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짐을 올려두고 나서 바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이사하는 날 점심은 역시 짜장면이죠! (아 사진 찍어뒀어야 했는데…) 다들 힘쓰고 나서 배가 고파 허겁지겁 폭풍흡입 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몇명은 청량리 쪽으로 냉장고를 얻기위해 움직이고 남은 사람들은 사무실을 간단하게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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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선 실행위원의 집에서 기증받은 냉장고 입니다. 집에서 쓰던 냉장고를 교체하면서 이전 냉장고를 기증받았는데, 여전히 쌩쌩하게 돌아가는 좋은 냉장고였습니다. 감사히 받아와서 한쪽에 잘 놓아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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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 폭풍같은 하루를 보내고 나서 간단하게 정리된 사무실을 돌아보니 많이 뿌듯하더라구요. 아직 사무공간이 만들어지는 과도기적 시점이라서 냉난방시설도 없고 인터넷도 안되고 책상도 부족한 사무실이지만, 앞으로 하나하나 채워가면서 일하기 좋은 사무실, 찾아와서 편하게 이야기나누기 좋은 사무실을 만들어가야겠어요.

사무실이 좋아지는만큼 우리의 사회와 정치도 좋아지길 기대해봅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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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책읽기_불평등편>

다시 시작되는 책읽기 모임. 이번에는 ‘불평등’입니다. 부담은 덜고, 책은 좀더 알차게 읽기 위하여 월1회, 5회씩 상하반기로 나누어 진행합니다. 일년이면 총 10권의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정치적 책읽기 모임은 분야를 정해 함께 책을 읽는 모임입니다. 책을 읽고 오시면 좋지만, 다 읽지 못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반드시 출석하겠다는 의지만 있으시면 됩니다.

다만, 이 모임은 세미나가 아니라 강독 모임입니다. 해설 없이 책의 주요 부분을 함께 읽는 방식으로 진행되니 착오없으시기 바랍니다. 집단적 책읽기의 묵직한 즐거움을 느껴보
세요.

진행 : 박선민 사회정책연구센터장
기간 : 2016년 2월~6월 매달 셋째주 토요일 오전 10시~ 12시 (월 1회/총5회)
장소 : 미디어까페 후(홍대입구역 2번출구)
참가비 : 5만 원(책은 개별 구매)
참가신청 : http://goo.gl/forms/lR0tJGvvKz
회비납부 : 농협 036-12-101163 박선민/ (입금순 마감)
*장소 관계 상 인원 제한이 있습니다.
문의 : [email protected]

1차(2월20일) 불평등한국, 복지국가를 꿈꾸다 (이정우,이창곤/후마니타스)
2차(3월19일) 불평등의 대가 (조지프 스티글리츠/열린책들)
3차(4월16일)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지그문트 바우만/동녘)
4차(5월21일) 거대한 역설-왜 개발할수록 불평등해지는가 (필립 맥마이클/교양인)
5차(6월18일) 불평등의 킬링필드 (예란 테르보른/문예춘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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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6/02/09-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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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오히려 상대를 공격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최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 대립한 여야의 모습. 동아일보DB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경험이 반복돼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 있다. 공항에서 출입국 절차를 밟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죽음이라고 하는, 누군가와의 갑작스러운 이별도 그렇다.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사실 하나는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것임에도, 대개의 인간은 천년만년 죽지 않을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다가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비로소 자신의 슬픈 운명을 자각할 때가 많다. 실존에 대한 깊은 인식이 죽음과의 대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얄궂다.

민주주의도 그런 것 같다. 모든 것이 편안하고 익숙한 민주주의 체제란 없다. 민주주의를 최선의 정치체제로 여긴 철학자도 없다. 민주주의는 완전한 체제도, 완전해질 수 있는 체제도 아니다. 민주주의에 관한 명연설이 종종 장례 행사에서 행해진 사실을 의미 깊게 생각해 본다. 2500년 전 아테네 민주주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페리클레스의 장례 연설이 대표적인데, 많은 사람은 민주주의가 군사적으로도 강한 이유를 말하는 앞부분에 주목한다. 하지만 남겨진 가족들을 위로하는 연설 후반 또한 인상적이다. 특히 “슬픔이란 우리가 모르던 것을 탐낼 때가 아니라 익숙했던 것을 잃었을 때 느끼는 것”이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적 비애임을 말하는 부분이 그렇다. 그렇기에 페리클레스는 나이 든 시민(즉, 노인)을 향해 “슬픈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 스스로를 위안”하라고 말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30년째 중단 없이 민주주의를 하고 있고 여야가 10년을 주기로 정부 운영을 번갈아 맡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민주주의이고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앞에서 여전히 혼란스럽다. ‘시민 구성원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한 의견을 갖는 것’이 민주적 권리의 요체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개개인의 자유롭고 평등한 의견을 어떻게 나누고 모아야 전체를 위해 좀 더 합리적이고 유익한 결정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의견의 자유가 뜻하지 않은 갈등과 상처로 이어질 수 있다.

비민주주의 체제와는 달리 민주주의에서는 반대 의견을 갖는다고 처벌하지는 않으니 평화롭고 안전할 거라 생각한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민주주의는 말과 마음이 시끄러운 체제다.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최초의 저자’라 할 수 있는 알렉시 드 토크빌이 강조했듯,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공격하고자 하는 욕구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더 극렬하게 표출된다.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이 정치적 의견이 달라 서로 깊은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경험은 민주주의하에서 더 일상적이다.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에 대한 적대와 증오의 욕구가 민주주의에 내재된 사회적 병리현상임을 보여주는 사례는 끝도 없이 많다.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를 현실화해야 변화도 가능하다. 인사청문회를 두고 지금처럼 여야가 서로에게 완전한 기준을 요구하고 그 기준에서 상대의 불완전함을 공격하는 것으로 자신은 할 일을 다했다는 식이 되면 변화는 없다. 그보다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통치 엘리트의 도덕적 수준을 점차적으로 높일 수 있는 ‘경과 기준’을 두고, 여야가 의미 있는 합의점들을 누적해갔으면 한다.

이런 과정에서 정당 정치가 좋아져야 민주주의도 미래가 있다. 그래야 의견을 달리하는 시민 집단 사이에서 ‘정신적 내전’에 가까운 공격성도 줄일 수 있다. 민주주의란 누구도 무엇이 확고하게 옳은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전제 위에 서 있는 정치체제다. 옳음이 하나일 수 없다는 ‘건강한 회의주의’에 기초를 둔 다원주의 체제라 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서로 다른 시민의 의견을 나눠서 조직하는 정당들의 공적 토론이 ‘숙고된 결정’과 ‘합의된 변화’를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여야 모두 서로가 야당이고 여당이었을 때를 돌아보며, 스스로부터 공정해졌으면 한다. 야당은 야당으로서 잘해야 여당이 될 수 있다. 집권 여당은 자율적이고 창조적일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청와대만 바라보며 존재감과 역할을 잃어가는 일을 집권당 스스로 선택하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당정부’ ‘책임정부’를 약속했던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그에 충실하게 정국을 이끄는 일일 것이다. 집권당을 하위 파트너로 만드는 ‘청와대 정부’가 최선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0620/84962902/1#csidx6a76e9e53d38cb1b96e8579fe2e7bad

화, 2017/06/2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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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입력 2017-02-14 03:00:00 수정 2017-02-14 03:00:00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사석에서 정치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치 문제에 대해 읽고 쓰는 것이 직업인지라 사적 영역에서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쩌다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끝이 좋지 않아서다. 지지 정당이나 이념 성향이 같아도 지지하는 대선 후보가 다르면 더 그렇다.

정치를 특정인 중심의 사적 문제로 전환하는 데 있어 TV의 정치 프로그램이 발휘하는 위력도 커질 대로 커졌다. ‘정치의 사사화(私事化)’ 또는 ‘사적 영역으로의 정치의 쇄도’라고 부를 만한 이런 현상은 탄핵과 대선의 국면이 중첩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정작 정치의 역할이 중심이어야 할 공적 영역의 상황은 어떨까.

사정은 정반대다. 정치의 공적 기능은 발휘되지 못하고 있고, 그 기능을 더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만 높다. 사적 영역의 과도한 정치화와 공적 영역의 반(反)정치적 경향이 동전의 양면처럼 짝을 이루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민주정치의 이상에 반하는 면도 있다. 민주주의란, 일상의 시민적 삶을 분열시키는 사회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옮겨서 다루는 집합적 기예를 뜻한다. 그런 기능이 위축된 상태에서 사사화된 정치적 논란이 심화되면 공동체는 분열되고 시민들은 서로 깊은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

우연히 친박 집회가 열리는 서울의 시청역 앞을 지나가다 역 입구에 ‘군대여 일어나라’라고 적혀 있는 피켓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정치가 대통령 개인의 문제로 다뤄질 때 이런 무서운 말도 쉽게 하는구나 싶었다. 특정 후보 지지자들 사이의 비공식적 정치언어 역시 지나칠 때가 많다. 한 인터넷 토론방에서 ‘야당이 잘못한 건 개누리를 인간 취급한 거다. 인간이 아니라 박멸해야 할 벌레들이다’라는 글을 보며, 이렇게까지 심할 수 있구나 하는 걱정을 했다. 정치가 정당과 같은 공적 영역을 중심으로 활성화되었더라면 이런 일은 훨씬 줄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 선거가 후보의 사설 캠프에 의해 주도되는 것, 그 때문에 정당이라는 공적 기구가 공허해지는 것을 좋게 볼 수가 없다. 최근 한 후보의 캠프 사무실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 규모와 열기에 놀라면서도 이 또한 얼마나 큰 공적 낭비인가를 생각했다.

정치철학의 기본 개념 중에 ‘자연상태’라는 말이 있다. 이는 ‘공적 영역에서 정치의 기능이 부재한 상태’이자 ‘시민들의 일상 속에서 갈등과 차이, 이견이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17세기 잉글랜드의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그런 자연상태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서로서로를 공격하는 상황으로 묘사했다. 다른 철학자들 역시 안전한 자연상태는 가능하지 않다고 보았는데, 그렇기에 ‘코먼웰스(commonwealth)’라고 불리는 공적 영역을 불러들였고 이를 관리하는 정치의 역할을 중심으로 공동체의 안녕을 도모하려 했다. 이런 정치 비전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 있다면 단연 파시즘이다.

물론 사적 영역을 비정치화하는 것이 처방일 수는 없다. 공적 영역의 활성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적극적 열정을 가질수록 민주적 규범은 지켜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정치란 인간이 가진 싸움의 본능을 평화롭게 처리하는 기제를 가리킨다. 어느 사회든 생각을 달리하는 시민 집단은 하나 이상이며, 그들 사이에 의견은 다를 수밖에 없다. 생각을 하나로 만들려 하거나 설득이 아닌 강제의 논리가 두드러지면, 이견을 없애려는 욕구만 커진다. 상대를 모욕하기 위해 정형화된 부정적 이미지를 부여할 때도 많다. 그러면 사회는 양극화되고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지기 쉽다. 민주주의가 논쟁을 엔진으로 삼아 작동하는 체제라 해도, 논쟁이 전쟁처럼 될 수는 없다. 논쟁과 전쟁은 반딧불과 벼락만큼이나 다르다. 상대를 절멸시키려는 전쟁과 달리 논쟁은 이견과의 공존을 전제로 사회를 좀 더 넓게 통합하는 합리적 경쟁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간 야당이나 비판 세력을 ‘종북 좌파’로 공격하고, 하나의 국가관만을 교과서에 담아 가르치려 한 것 때문에 우리가 고통 받았고, 또 그런 식으로 사회를 적대와 대립으로 치닫게 한 것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과 같은 불행한 사태를 맞게 된 것을 생각한다면, 누구라도 같은 종류의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한다. 친박은 물론이고 그 거울 이미지 역시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0214/82851739/1#csidxcd4716f6a17a791a84372710e4c491a

화, 2017/02/1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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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9일, 청년허브에서 동아시아포럼 : “정당정치: 변화의 정치, 헬조선, 귀도, 같은 좌절, 다른 대안”이 진행되었습니다.

홍콩, 대만, 일본, 한국의 정당 및 시민단체의 청년 활동가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각 나라의 정치 상황과 그 속에서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청년들의 고민을 나눴습니다.

이날 행사에 참가했던 ‘어니언스’에서 발제자들이 나눴던 이야기를 기사로 정리해주었습니다.

발제자들이 가졌던 고민이 무엇인지, 어떤 이야기를 또 나눌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기사 보러 가기 : https://onience.com/2016/12/16/youthforum1/

월, 2016/12/1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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