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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모범회원 인터뷰 4탄, 전주지부 박재홍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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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모범회원 인터뷰 4탄, 전주지부 박재홍 변호사.

익명 (미확인) | 화, 2015/07/28- 14:10

모범회원 인터뷰, 그 마지막은 전주전북지부 박재홍 변호사입니다. 시간과 거리의 한계상 수차례의 전화와 메일이 오고 간 서면+전화 인터뷰가 되었는데요. 몇 번의 전화통화만으로도 어찌나 즐겁던지 한 번 꼭 시간을 내어 전주에 가서 막걸리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멋진 회원이 많은 민변, 역시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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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먼저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재홍 안녕하세요, 민변 전북지부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재홍 변호사라고 합니다. 변시1회이구요, 5살 1살 두 아들의 아빠이자 남편으로 육아에 힘쓰고 있습니다.

 

김지미 이번 총회에서 모범회원상을 수상하셨는데 소감을 다시 한번 들어볼까요?

 

박재홍 아직 제가 받기에는 너무나도 큰 상인데,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실 지부 회원들은 총회에 참석하면 소수이기도 하고 대다수 활동은 본부와 서울에서 이루어지기에, 총회는 우리의 축제라는 인식이 약했거든요. 그런데 지부 회원에게 상을 주시니까 지부 회원들에게 많은 격려가 될 것 같습니다. 훌륭하신 선배님들이 받던 상을 막상 제가 받고 나니,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고, 매일 출근하면서 책장에 모셔둔 상패를 보면서 ‘내가 이 상을 받은 거 맞지?’라고 되묻곤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내아이 둘을 양육하느라(아내는 저 포함 아들 셋이라고 가끔 농담을 하지만) 고생하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김지미 매일 출근길에 되새길 만큼 민변 모범회원상이 변호사님께 큰 의미인가요?

 

박재홍 변호사가 되기 전에 바라 본 민변은 저에게 굉장히 큰 존재였거든요. 그리고 해마다 모범회원상 수상하시는 선배님들을 보면서, 와 정말 존경스럽다란 생각이 절로 들었는데, 그런 상을 제가 받게 되니 실감이 나질 않지요. 그래서 그런 큰 상을 일단 받기는 받았으니, 이제부터라도 그에 걸맞는 변호사가 되어야겠다라고 다짐하고 있어요(웃음).

 

김지미 이번 모범회원상은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했는데 박변호사님이 수상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박재홍 얼굴 때문이 아닐까요?(웃음) 농담이구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제가 상을 주신 분께 여쭙고 싶은데요, 아무래도 지부에서 고생하고 있는 사무국장들의 어려움을 헤아려, 그 대표 격으로 저에게 상을 주신 것 맞죠? 석명을 구하고 싶은 마음입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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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작년 가을에 전주지부를 방문했을 때만 해도 전주 지부는 회원 수도 적고 솔직히 말씀드려 그다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인상은 못 받았는데 그 이후에 회원 수도 많이 늘고 뉴스레터 지부 활동 소식을 보면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이러한 동력이 어디서 나왔다고 보시나요?

 

박재홍 작년에 가시적으로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지 못하다고 느끼셨다면 사무국장으로서 소임을 다 하지 못한 제 불찰입니다(긁적 긁적). 저희 지부는 2000년 초경 전봉호, 안호영, 박민수, 황규표 변호사님을 주축으로 지부에서 자생적으로 창립되었습니다. 회원 수가 많지는 않지만, 선배 변호사님들 한 분 한 분이 전라북도 곳곳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계시거든요.

작년 봄부터 지부장이신 장석재 변호사님과 한 뜻으로 회원 확대 사업을 우선으로 우리 지역 로스쿨 학생들과의 교류를 확대하자는데 마음을 모았습니다.

이후에 후배 변호사님들이 대거 회원으로 가입하셨고, 전북대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생들과 간담회, 봄산행 등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여, 얼마 전에는 ‘민변전북지부 회원들과 법학전문대학원생들의 인권감수성 향상을 위한 워크숍’이란 거창한(?) 표제로 선후배님들과 함께 1박 2일간 동고동락했습니다. 참, 제가 워크숍 간 동안 시커먼 두 아들 덕에 고생한 아내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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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인 활동에 대한 동력은 아무래도 지부장님의 강한 의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부장님께서 저희 젊은 변호사들에게 자주 하시는 말씀이 “우리 장년층 변호사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민변과 소통하고 있거나 요청이 들어오는 단체에 젊은 변호사님들을 적극적으로 연결해 줄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 지역 민변 변호사 수가 적어서 지역에 있는 각종 시민단체나 노동조합의 일들이 일부 변호사들에게 집중되면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에 버거웠지만, 이제 후배 변호사님들이 많이 들어오셔서 시민 단체들과 적극적으로 호흡하면서 우리 지부 변호사님들의 역할이 더욱 커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와 동시에 젊은 변호사님들이 이 지역에서 자리를 잘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이런 지부장님의 의지 덕분에 지역 사회에서 저희 지부에 거는 기대가 더 커지고 있고, 저희 지부도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년 세월호 사건 이후에 있었던 범시민단체 릴레이 단식농성에 참여했었는데, 한 활동가 한 분이 ‘이제는 민변이 선봉에 서시네요!’라는 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향후 지부장님과 함께 현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저희 지부가 되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신용비어천가인데요~(웃음) 솔직히 지부장님보다는 실무를 하는 나의 역할이 지대했다..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시지는 않는지요?

 

박재홍 그건 아닌 것 같구요(웃음), 이미 선배들이 형성해 놓은 토대 위에 지부장님이 방향을 잘 잡으셨고, 무엇보다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지미 그렇게 말씀하시면 민변이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분께 상을 드린 것처럼 되잖아요(웃음). 이 참에 자랑을 좀 해 주세요. 제가 이만큼 했습니다. 지난 1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이런 거요

 

박재홍 전주지역에는 버스파업이 큰 문제인데요, 2012년도에 전주지역 시내버스 회사들이 약 3개월 정도 직장폐쇄를 하였는데 이 직장폐쇄가 위법하다는 이유로 저희 법인 선배이자 민변 선배이신 안호영 변호사님과 임금 청구 소송을 수행하였고, 얼마 전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하여, 버스 노동자분들의 생계와 전주지역 버스 문제 해결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도에 우리 지역 진보 교육감이신 김승환 교육감님이 직무 유기로 형사재판을 받으셨는데, 민변 회원들이 힘을 모아 대법원까지 무죄 판결을 이끌어 내었고, 우리 힘으로 진보교육감을 지켜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통일교사로 알려진 김형근 선생님이 인터넷 게시판에 북한 관련 기사를 스크랩하고, 하드디스크에 북한 신년사 등을 소지, 거주지에 이적표현물을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에서 김희수 변호사님, 안호영 변호사님, 이민호 변호사님, 김현승 변호사님과 함께 변론을 준비했었는데, 디지털증거에 대해 공부도 하고, 공동변론을 위해 중간에서 여러 가지로 바빴었거든요, 수사기록이 2박스 정도 되었던 걸로 기억나는데, 최종 정리는 제 몫이라…그런데 결론이 만족스럽지 못하여 아쉬웠습니다. 지금 항소심 재판 중인데, 선생께서 그 사이에 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중병에 걸리셔서 죄스러운 마음이 큽니다. 선생께서 비슷한 사건으로 집행유예 기간이셨고, 유사 사건 경험을 토대로 나름 최대한 조심하신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이분께서 스크랩하여 올리신 글이나 하드디스크나 주거지에 보관하고 있었던 자료가 우리 사회의 근간을 위협할 정도인지 납득이 가지 않았고,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남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해당 사건의 변호인의 한 사람으로서 개탄스럽습니다.

아, 제가 잠시 흥분을 했네요.

생각해 보니 바쁘게 산 것 같긴 한데 사무국장 일은 티가 잘 나지 않는 것 같아요. 지부 사무국장으로서 매월 간담회를 준비하는데, 모임 일정을 팩스로 보내고, 단체문자 보내고, 미회신 회원들에게 전화 돌리고 그러지요. 일정 끝나면 장부에 영수증 정리하고, 회의 내용 정리 하구요. 한 가지 제가 총무를 맡으면서 잘 한 것은 지부 통장을 다시 개설하면서 전용 카드를 만들었는데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고 있습니다(웃음).

 

김지미 전주 지부가 최근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활동은 어떤 것인가요?

 

박재홍 작년 한 해 동안 지부 회원들을 모집하고 로스쿨 학생들과 교류하는데 중점을 두었다면 올해는 시민사회 단체들과의 소통에 중점을 두고 ‘1시민단체 1변호사’라는 구호 아래 젊은 변호사들이 전라북도 곳곳의 시민 사회단체들과 호흡하고 교류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 주세요

 

박재홍 민주노총 전북본부에 저와 저희 지부 이동현 변호사님이 매주 상담을 나가고 있고, 작년 초부터 전주 여성의 전화 부설 가정폭력상담소에 저희 지부 회원 4명이 출장 상담을 나가고 있습니다. 현장에 가서 상담을 하다 보니 만족도가 높고, 청년 변호사들의 활동 반경도 넓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여, 올해 초부터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에 2명, 전북환경운동연합에 2명, 전주 공무원노조에 2명, 남원․순창․장수 공무원노조에 각 1명, 전북 교원노조에 1명을 각 고문 내지 전담 변호사로 활동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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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박변호사님은 이 중에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박재홍 요즘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한 시민 추진위원’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평화의 소녀상’이라고 들어보셨죠? 일본군 위안부 대사관 앞에 세웠던.. 그 소녀상을 전국적으로 설립하는 운동이 지역별로 있는 걸로 알고 있고, 전주에서도 이 운동이 전개되어 다음 달이면 시민들의 이름으로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게 됩니다.

학부 시절 모의재판위원회라는 학회에서 활동을 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소재로 하여 모의법정을 열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할머니들을 초청해서 모의법정을 열었었는데, 그 때 저랑 동기 한 명이 일본군 측 변호사단 역할을 했었는데, 할머님들이 저희 연기를 보시고 방청석에서 고성으로 화를 내시며 울부짖으셨던 것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만 해도 할머님들 6-70대로 정정하셨는데, 많이 돌아가시고 남은 분들도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조속히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길 바랍니다.

제가 집행위로 활동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시민 법정을 제안하기도 했는데, 우선은 제막식을 하고 예산이 남을 경우 추진해 보기로 했습니다. 학부시절 모의 법정을 끌어주셨던 김창록 교수님으로부터 여러 가지 자료도 받았고, 예산도 많이 남을 것 같은데, 내년 즈음으로 하여 전북 지역 시민 단체, 학생들과 함께 고민해서 시민 법정을 한 번 세워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법학전문대학원 2학년 때, 동기들은 검찰이나 법원에 실무교육 받으러 바빴었는데, 저는 성당에서 중고등부 교리교사 회장을 하면서 학생들 캠프를 준비했었습니다. 교회나 성당 다니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여름에는 학생들을 위한 캠프를 준비하는데 여간 바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여건이 좋지 않은 학생들에게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커서 시작했었는데, 그런 활동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요.

 ‘전라북도 학생인권 조례’는 서울, 광주, 경기에 비해 나름 진일보한 조례로 제정되었는데, 이 조례에 근거한 ‘학생인권심의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교육 문제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지미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방송 출연도 활발히 하신다던데요?

 

박재홍 아… 올해 초부터 KBS1(전주)에서 ‘경제가마솥’이라는 프로그램에 격주로 패널 활동을 하고 있어요. 올해가 양의 해잖아요? 1월 2일에 전북KBS ‘아침마당’에 양띠 특집으로 출연한 것을 계기로 나가게 되었고, 저는 주로 이슈와 관련된 법률적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딱딱한 법률 이야기나 경제 이야기를 일반 시민들이 지루하지 않게 전달하려고 제 나름대로는 개그도 하면서 노력하고 있는데 쉽지 않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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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 보니 전북아침마당 5월 가정의 달 특집으로 저희 회사 여직원들과 노래자랑에 나간 적이 있는데, 시청자들을 웃기고픈 마음에 대머리 가발을 쓰고 유치한 춤을 추기도 했네요. 부끄럽습니다(웃음). 혹시 찾아서 사진으로 올리진 말아 주세요(두손 모으고 불쌍한 표정으로).

 

김지미 박변호사님은 어떤 계기로 변호사가 되셨나요?

 

박재홍 제가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전자공학을 전공했었어요. 노래를 좋아해서 민중가요 노래패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자연스레 학생회 활동도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부조리가 많다는 것을 하나씩 알게 되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지극히 1차원적인 생각이지만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막연히 학교를 그만두고 법대에 다시 입학을 했습니다.

법대 들어갈 당시부터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고, 사람을 쫓아 학회 활동하고 집회 참여도 하다 보니 당시에는 사법시험을 볼 엄두는 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전주에 살게 된 계기이기도 한데, 대학 때 지금 있는 곳에 교류학생으로 와서 2년 동안 음주, 가무, 사람 ‘3독’(불가에서는 탐, 진, 치라던데…)에 빠져 잘 놀았습니다. 그렇다고 음주가무만 한 것은 아니고요, 교환학생은 듣고 싶은 과목을 우선적으로 수강신청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는데, 그 때 단과대 별로 제가 듣고 싶었던 다양한 과목을 들으면서 지적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하고 20대 후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나는 왜 태어났나?’‘뭐하고 살아야 되나?’라는 화두를 안고 유럽으로 한 6개월 정도 어학 연수 겸 방랑 생활을 했습니다. 6개월 간 먹고, 자고, 걸어 다니면서, 살아 있다는 존재 자체로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복잡한 고민들을 떨쳐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법학전문대학원이 생긴다는 발표가 있었고, ‘아 이건 내가 변호사가 되라는 계시다’라고 생각하면서 변호사가 되기 위해 2009년도에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요약하자면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변호사가 된 것은 아닌 것 같고요, 지금생각해 보면 1차원적인 생각이지만 막연히 사람을 도와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법대에 진학하게 되었고 운이 좋게도 서른 즈음에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을 해서 변호사가 된 것 같습니다.

 

김지미 변호사가 되고 나서 민변에 가입하게 된 계기는요?

 

박재홍 민변에 가입하게 된 것은 법학전문대학원 2학년 시절에 민변에서 실무 수습을 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당시 김선수 변호사님이 담당 변호사님이셨는데, 복잡하고 다양한 사건을 처리하시면서도 늘 평정심을 잃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배려해 주시는 모습을 보고 그 모습이 멋져 보여, 수습이 끝날 즈음 김선수 변호사님께 추천사를 써 달라고 부탁을 드렸지요.

학부 시절 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하던 한 선배가 술자리에서‘나중에 변호사가 되거든 꼭 민변에 가입해라, 만약 가입 안하면 나한테 주먹으로 맞을 각오해라.’라고 말했고, 저는 꼭 그러리라 다짐을 했었는데, 지금 민변 변호사로 나름 열심히 활동하고 있으니, 그 선배와의 약속은 지킨 것 같습니다.

변호사 합격여부가 발표되기 전 2달 정도 지역에 있는 비정규직센터에서 근무를 하다가, 우리 지역에 민변 선배이신 안호영 변호사님과 함께 지금 근무하고 있는 법무법인 백제에서 수습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었구요, 자연스레 민변 사건도 많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한 때는 시민단체에서 상근으로 일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물론 받아 주실지는 여쭤봐야겠지만요, 지부 민변 사무국장으로 시민 사회 단체의 다양한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접하면서 변호사로서의 역량이 일천하다는 것을 깨닫고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열심히 배우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부산 출신인데, 사무실 이름은 ‘백제’라서 가끔 “신라 사람이 백제에 와서 일도 하고 백제 처녀 만나서 아들 둘 낳아 잘 키우고 있으니, 우리 사무실과 제 가정이야 말로 동서 화합의 모범이다”라고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김지미 부산 출신이신데 어떻게 해서 전주에 터를 잡게 되셨나요?

 

박재홍 대학시절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전주에 왔다가, 성당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성당오빠나 교회오빠가 무섭다지요?) 처음엔 와이프가 프로포즈를 받아줄 때까지 전주에 있겠노라고 다짐했다가 결혼하고 아이들도 낳고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지금은 전주가 제2의 고향이 되었고 아이들은 백제 사람이 되었네요(웃음).

 

김지미 민변 활동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요?

 

박재홍 2012년도 말에 전주교도소에 수감 중이신 이병진 씨 관련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병진 씨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복역 중이신데, ‘작은책’이라는 잡지에 방북 경험 및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수필 형식으로 기고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 중 북한에 도착한 이후 북한의 실상을 묘사한 내용이 있어 전주교도소가 기고문을 발송 불허했고, 이에 대해 취소소송을 제기하여 1년 6개월에 걸쳐 대법원의 최종적인 승소 판결이 확정되고 난 후 전주교도소가 기고문이 담긴 편지들을 발송한 사건입니다.

그 기간 동안 이병진 씨로부터 편지를 많이 받았는데, 마지막 대법원 판결문을 보내드리고 나서 받은 편지에 ‘…형사재판에서 억눌리고 답답했던 마음을 풀어버리게 되어 홀가분하고,…제가 가장 어렵고 힘들었을 때 도움의 손을 내어 준 변호사님은 제 인생에서 소중한 분입니다. 변호사님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라고 써 주셨습니다. 제가 민변 변호사로 역할을 다하고 있을지 의문이 날 때마다 이 편지를 읽으면서 위안을 받곤 합니다.

 

김지미 그럼 지부 회원의 입장에서 이런 점은 개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점도 있을까요?

 

박재홍 특별한 것은 없고요, 지금처럼 지부와 소통하면서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지미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박재홍 개인적으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육아에 좀 더 신경쓰고 싶어요. 지금 5살 1살인데, 정서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고 하더라구요. 요즘 첫째가 투정부리는 것이 늘어서 걱정이되기도 해서 다니던 운동도 포기하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회사 끝나면 일찍 들어가 아이들과 놀아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노후 준비는 ‘아내’라는 말이 있던데, 요즘 노후 준비 확실히 하고 있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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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 차원에서는 올해 대구지부가 대구 송전탑 TF팀으로 모범 지부상을 수상하셨는데 전북지역도 군산 송전탑 문제가 현재 이슈가 되고 있거든요, 저희도 ‘군산 송전탑 TF팀’을 꾸려 내년에는 모범 지부 수상에 욕심을 내 보려고요(웃음).

더불어, 지부에서도 자체적으로 성명도 발표하고 현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입니다. 회원 수도 늘어났고, 워크숍도 하고 시민단체 연계 사업을 하면서 현장의 다양한 이야기도 듣고 있으니, 이제 앞으로 나아가야할 때라고나 할까요? 전북 지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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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공주>의 이수진 감독님과의 만남

- 이정선 회원

 

 영화 <한공주>는 2004년 경남 밀양에서 발생한 당시 14세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당시 위 사실을 접하고 미성년 아이들의 잔인함에 분노가 치밀기도, 두렵기도 하였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 생생하여 이를 토대로 한 영화라는 소개만으로 도 선뜻 이 영화을 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우려했던 대로 저는 영화를 보고 난 이후 느껴지는 죄책감과 가슴 저릿한 묵직함으로 한동안 힘들었고, 이러한 느낌이 채 가시기 전에 민변에서 주최한 이 영화의 감독님이신 이수진 감독님과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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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수진 감독님을 뵙기 전까지는 죄송스럽게도 당연히 여성 감독님이실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민변 대회의실에 등장하신 이수진 감독님께서는 멋진 훈남 감독님이셨습니다.^^ 2013년 최고의 화제가 되었던 영화인 만큼 많은 변호사님들과 참석자분들의 영화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고, 감독님께서는 이번 모임이 영화 <한공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마지막 자리라며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공주>는 영화 주인공 이름이자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천우희 배우가 연기한 한공주는 마치 그 순간, 그 시간에 제가 그 상황에 있었던 것처럼 죄책감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있는 공주를 못 본 척하며 자신의 아들(동윤)만 데리고 나오는 동윤 아버지의 모습에서, 왜 내 아들의 탄원서는 써 주지 않느냐며 공주가 꼬셔서 내 아들 인생을 망쳤다고 악다구니 쓰는 가해자 어머니의 모습에서, 웃는 얼굴로 가장 잔인하게 공주에게 탄원서를 받아가던 동윤 아버지의 이기적인 모습에서 소름끼치는 분노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그랬던 적은 없었는지 반성과 두려움, 죄책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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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무엇보다 기존 성폭행을 모티브로 한 영화들과는 달리 성폭행 피해자의 2차 피해상황을 한층 깊이있는 시선으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전 잘못이 없는데요’라는 영화 포스터 문구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공주가 가해자들을 피해 전학을 오는 것으로 시작하여 영화 내내 2차 피해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건 당시보다 사건 이후에 미성년자인 공주가 얼마나 힘들게 그 시간을 혼자 견디는 지를 보여줍니다. 돈 몇 푼에 딸에게 탄원서작성을 종용하는 아버지나 자신의 삶에 흠이 생길까 딸의 상처를 들여다 볼 마음조차 없는 어머니를 둔 공주는 결국 고스란히 혼자 그 아픔을 짊어집니다. <한공주>는 가족도, 법도, 사회도 지켜주지 못한, 아니 지켜주지 않고 외면한 공주의 상황이 너무 아프고 안타까운데, 이런 감정이 영화를 통해 너무 잘 전달되어 오히려 더 아픈 영화입니다.

 

영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만큼이나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에 대해 이수진 감독님이 왜 그렇게 연출하셨는지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공주가 왜 수영을 배우는지, 공주는 왜 후드티를 입었는지, 산부인과에서 공주는 왜 아무런 말없이 불편한 상황을 넘겼는지 등등. 감독님께서는 성심성의껏 답변을 해 주셨고, 결국 예상했던 시간을 훌쩍 넘겨 아쉽게 자리를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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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으며 감독님께 이 영화를 대체 몇 번이나 보셨는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후유증이 큰 영화를 볼때마다 갖게 되는 순수한 호기심인데, 저는 과연 이런 영화를 만드시는 감독님들은 대체 몇 번이나 이런 고통을 감수하실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이수진 감독님께는 ‘셀 수 없이’ 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마주하기 힘든 현실을 수 없이 마주하며 만들어 주신 영화 <한공주>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은 이런 저런 핑계로 외면했던 많은 순간들을 반성하며, 실제로나 영화속에서나 법과 사회가, 우리가 외면한 공주에게 이제라도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2004년이 아닌 2015년 현재에도 ‘우리’는 공주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계속 노력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말입니다. 그때가 되면 <한공주>가 아닌 <공주>라고 조금 더 당당하게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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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5/07/1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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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광주전남지부입니다. 최근까지 우리 지부 사무처와 각 단이 주도하여 진행한 사업과 활동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1. 사무처

 

가. 지부 임시총회 – 신입회원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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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에는 우리 지부 임시총회가 4월과 6월 두 번 있었습니다. 신입회원 가입 승인을 위해서인데요. 4월에는 장효인 변호사 (변시 4회) 가, 그리고 6월에는 이광원 변호사 (변시 5회) 가 가입 승인을 받아 우리 지부 회원의 수는 48명으로 늘었습니다. 가입을 축하드리며, 활발한 활동을 기대합니다.

 

 

나. 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가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과의 만남 (2016.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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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과 우리 지부 회원들과의 만남 행사가 2016. 4. 20. (수) 진행되었습니다. 김종률 사무처장은 본인이 쓴 곡들을 정리해 출시한 ‘님을 위한 행진곡’ 앨범을 참석한 지부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 드리기도 했습니다.

 

다. 5·18 민중항쟁 36주년 기념 망월동 합동참배 (2016.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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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중항쟁 36주년을 맞아 망월동 합동참배를 망월동 제3묘원 (구묘역)에서 진행하였습니다. 구묘역은 항쟁 당시 사망한 사람들이 최초로 안장되었던 상징적 장소라는 점, 비록 신묘역으로 이장되었으나 가묘가 된 광주 희생자들의 묘역도 그들을 기리기 위해 아직 관리되고 있는 점, 5·18 이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산화하신 민족민주열사들이 안장된 장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 날 참배는 5·18 희생자들과 민족민주열사들에 대한 묵념과 함께 참배한 회원들이 5월 정신을 다시금 되새기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참배 이후에는 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 언론인 故 위르겐 힌츠페터의 유품이 안치된 비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라. 5·18 민중항쟁 36주년 맞이 지부 공부모임 (2016.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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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5·18은 지금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너무 일상화되거나 박제화되어 어쩌면 너무 멀리 잊혀진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성에서 다시금 5·18을 이해해보는 의미로 지부에서는 5·18 민중항쟁 36주년 맞이 공부모임을 진행하였습니다. 먼저 “5·16부터 서울의 봄까지 배경”에 대해 우리 지부 정다은 변호사가 발제를, “5·18 직전 ‘서울의 봄’의 정치적 배경”에 대해 김정희 변호사가 발제를, “5·17부터 항쟁기간 전투와 해방구 기간”에 대해 정채웅 변호사가 발제를, “5·18의 현대적 의미”에 대해 박상희 간사가 발제를 진행하고 이후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무엇보다 항쟁 당시 고3이었던 정채웅 변호사의 생생한 설명은 공부모임의 의미를 더해 주었습니다.

2. 공익소송기획단

가. 농업법 연구회 – “뭣이 중헌디? 농업법 연구회가 중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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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리적으로 광주, 전남지역은 농어촌 지역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농민인구가 적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 지역에 산재한 폭넓은 농업의 법적인 문제 – 예컨대 생산에서부터 식품가공, 재해, 농약 피해, FTA 분쟁, 농산물 유통 분쟁, 농가부채 문제 등 – 이 존재하지만, 이 분야를 표방하고 활동하는 변호사 그룹이 없으며 농업법을 전공하는 학자도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전문성을 갖추고 이를 표방하며 새로운 시장개척 및 공익에도 이바지하기 위해 우리 지부에서 ‘농업법 연구회’를 조직하였습니다. 현재까지 농업법 연구회에 함께하는 지부 회원은 총 9명입니다.

 

2) 농업법 연구회는 총 3차례 모임을 진행하였습니다. 세 차례 모임에서는 먼저 농업법 연구회의 목표와 방향을 정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엇보다 민변 활동의 취지와 그 맥을 같이 해야 하고,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공부와 연구에 중심을 두며, 지속가능한 농촌에 대한 고민을 토대로 농민들이 현실적으로 처한 문제에 대한 송무에 기본 방향을 두었습니다. 이에 따라 먼저 ‘한국농업법의 과제’ 라는 논문을 읽고 기초적인 스터디를 진행한 후 최근 지역 또는 전국적인 농업 관련 이슈에 대해 브리핑하고, 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특히 오는 7. 22. (금) 에는 본부 송기호 변호사님을 초청하여, 『“맛있는 식품법 혁명” 의 저자 송기호 변호사와 함께하는 농업법 이야기』 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나. 주요 공익소송사건

 

1) 한전 직접활선공법 관련 공익소송

 직접활선공법은 ‘살아있는 전선(活線)’을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직접 만지면서 작업하는 노후전선 교체 기술 가운데 하나로 2001년 한전이 도입하였습니다. 작업 노동자들은 절연고무장갑만 끼고 작업을 진행하는데 이 활선은 무려 22,900v의 고압전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2014년 한전의 발표에 따르면 문제가 되는 직접활선공법으로 인한 사망자는 13명이나, 건설노조 측의 발표에 따르면 사망자는 대략 5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부상자 역시 2014년 공식 보고된 수가 140명이나 그 이상이 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노동자들이 입은 부상의 정도 또한 심하여 부상 입은 노동자 대다수가 심각한 화상 및 팔, 다리 절단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지난해부터는 이 공법으로 인한 백혈병 발병 문제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6. 10. 한전에서는 보도자료를 통해 직접활선공법을 폐기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비용절감을 위하여 노동자들의 목숨이 담보되는 전형적인 산업재해 사건이며, 피해 규모에 비추어 보아도 대단히 심각한 사안에 해당되기에 우리 지부에서는 이에 대하여 지역 건설노조, 학계 등과 연대하여 공동으로 대응하기로 하였습니다. 이후 진행되는 소식은 계속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 남영전구 수은유출 관련 피해 근로자 공익소송

 전구 및 램프제조를 업으로 하는 (주) 남영전구가 형광등 등에 들어가는 수은 사용이 2020년부터 금지됨에 따라 2015. 3. 부터 생산라인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20여 명의 노동자가 수은 유출로 인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후 이들은 병명도 모르는 채 병원을 전전했고, 2015. 10. 경에야 수은중독 사실이 밝혀져 산재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첫째, 피해자들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를 2015. 10. 이후부터 받았고, 그 전 6개월 동안의 치료비는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둘째, 피해자 20명 가운데 9명은 수은중독 후유증으로 인해 현재 일을 하지 못할 정도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후유장애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현재 소변이나 혈액 속의 수은 잔류량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고, 다른 산재처럼 후유장애가 유형화되지 않았으며, 기존의 의학적인 산재 신청방법으로는 후유장애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근로복지공단의 입장입니다.

하여 우리 지부에서는 광주지역 피해자 6명을 대리하여 관련 사건에 대한 공익소송팀을 꾸려 이에 대응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다. 각종 성명 발표

 1) 한국전력공사는 중대재해를 야기하는 직접활선공법을 즉각 폐기하라 (2016. 6. 15.)

앞서 적은 한전의 직접활선공법 문제 관련해 우리 지부와 본부 노동위원회가 공동으로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2) 광주광역시의회의 성소수자 차별 선동 토론회 철회 촉구 공동성명 (2016. 6. 26.)

광주광역시의회의 성소수자 차별 선동 토론회 철회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에 함께 연명하였습니다.

 

3. 법률구조단

 가. 소송자료 DB 구축, 법률구조 사업의 지원, 법률구조 당직제 진행

 법률구조단에서는 체계적이고 연속적인 법률구조사업을 위하여 우리 지부에서 진행했던 사건에 대한 소송자료 DB 구축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현재 진행중이거나 지부에 요청한 법률구조 사업에 대한 지원을 수행하고 평일 회원 2인이 순번제로 법률구조 당직제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 주요 법률구조 사건 경과

1) 故 진도경찰관 유족보상금 부지급처분취소소송 승소 (2014구합73098)

2014. 4. 16. 발생한 세월호 사고 관련 업무를 수행하던 전남 진도경찰서 경찰공무원 김** 가 세월호 사고 이후 계속된 업무상 과로와 사고 관련해 지속된 업무상 스트레스로 2014. 6. 26. 투신자살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후 망인의 아내인 원고가 공무원연금공단에 공무원연금법에 따른 유족보상금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망인의 사망이 공무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위 청구에 대해 부지급 결정 처분을 내려, 이에 대해 위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청구를 진행한 사안입니다. 법원은 망인이 수행한 공무와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여 2016. 6. 23.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습니다.

 

2) 도서지역 인권침해 피해자 법률지원

도서지역 인권침해 피해자 법률지원 관련하여 (1) 2016가단51086 (안**) 사건의 경우 2016. 5. 17. 원고에게 65,000,000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2) 2015가소73649 (나**) 사건의 경우 2016. 5. 9. 원고에게 15,000,000원을 지급하라는 법원의 강제조정결정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4. 회원사업단

가. 제29차 민변 정기총회 참석 (2016. 5. 28. ~ 29.)

 제29차 민변 정기총회에 우리 지부 회원 17명, 가족을 포함 총 36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우리 지부에서는 지부 공익소송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김정희 변호사가 모범회원을 수상하는 경사가 있었습니다.

 

나. 회원사업단 주최 제2차 선배변호사와의 대화 예정 (2016. 7. 15.)

 회원사업단에서 주최한 첫 선배변호사와의 대화 (이상갑 변호사) 이후 두 번째 선배변호사와의 대화를 2016. 7. 15. (금) 진행합니다. 초청 변호사로 우리 지부 제7대 지부장을 역임한 임선숙 변호사 (연수원 28기) 를 모시고 선·후배 변호사들이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다. 지부 여름 야유회 예정 (2016. 7. 23.)

 

우리 지부 여름 야유회가 2016. 7. 23. (토) 진행됩니다.

 

이상 광주전남지부 소식이었습니다.

금, 2016/07/0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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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차 정기총회 감사 인사말

 

- 회장 한택근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제28차 민변 정기총회가 2015.5.30.-31. 양일간에 걸쳐 경주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총회는 132명의 회원과 60여명의 가족들이 참석하여 역대 최다 참석자를 기록하며 성황리에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제28차 정기총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수 있도록 관심과 성원을 보내 주신 모든 회원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총회 식전 행사에서는 모임이 ‘회원 1,000명 시대’를 열게 된 것을 자축하고, 모임의 진로를 모색하는 진지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정기총회에서는 모임의 임원선출에 관한 회칙 규정을 정비하였고, 조직의 중·장기적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발전기금 사용 승인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저희 집행부는 안건을 통과시켜 주신 회원들의 뜻을 받들어 모임의 발전을 위해 배전을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나아가 이번 정기총회는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회원 분들의 뜨거운 열망과 헌신적 활동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참석한 모든 회원들이 일어나 ‘회원 천명 시대를 맞는 모임의 특별결의문’을 함께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민주사회를 향한 회원들의 결의를 서로가 확인할 수 있었던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회원 여러분,

 

우리 모임은 중대한 도전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모임의 지속가능성과 발전을 담보할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밖으로는 시대를 역행하는 권력기관에 맞서 사회적 약자와 서민의 인권을 보호할 책무를 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도전을 슬기롭게 풀어나갈 수 있는 희망을 정기총회에서 보여주신 회원 여러분의 열망과 결의에서 찾고자 합니다. 집행부와 사무처는 회원 여러분의 헌신과 지혜가 샘솟을 수 있도록 하는 마중물의 역할에 충실하겠습니다.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고, 정의가 넘실대는 ‘민주사회’로의 여정은 한시도 늦출 수가 없습니다. 민변의 자랑스러운 선배님, 동료 및 후배 회원 모두 깊은 동지애로 함께 걸어갑시다. 그 길에 함께하는 모든 회원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수, 2015/06/1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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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초청강연 후기

 

- 권오훈 회원

 

6월 25일 열린 민변 6월 월례회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초청강연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민변통일위원회에서 주최한 이번 강연에서는 6. 15. 선언 15주년을 맞이하여 남북 관계의 현황과 과제에 대한 통일 문제 전문가 정세현 전 장관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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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1993년 문민정부 당시 대통령비서실 통일비서관, 1998년 국민의 정부 당시 통일부 차관, 2002년 참여 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북한과의 장관급 회담 등 북한 문제에 관한 주요 실무를 직접 담당한 바 있습니다. 이번 강연에서는 장관급 회담 당시 남북 고위급 인사들의 발언 내용을 비롯하여 공동 선언에 대한 협상 과정 등 고위급 회담 당시의 뒷이야기들, 나아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 대한 향후 예측 등을 정세현 전 장관의 생생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3명의 대통령이 진행한 통일 정책을 모두 수행한 정세현 전 장관은 통일 정책에 있어서는 김영삼 대통령 당시의 정책이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당시의 정책이 큰 차이가 없으며, 바람직한 통일 정책은 결국 북한과의 평화적인 대화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강조 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통일 정책의 핵심은 모두 6. 15. 선언에 담겨 있으므로, 진보나 보수를 불문하고 6. 15. 선언의 이행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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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통일 정책은 단순히 한반도에 있는 남북한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 열강들의 치열한 정치, 외교적 대립 안에서 이해되고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은 현재 미국과 G2를 형성하려 하고 있으며, 군사, 경제적으로 중국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로도 외연을 넓히려 하기 때문에, 중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북한의 문제를 쉽사리 미국 및 일본 등에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따라서 남한도 중국, 미국 나아가 러시아, 일본 등 주변 강국들과의 외교적 조율을 통해 통일 정책을 수립해야 하며, 이러한 상황을 배제하다가는 통일 문제에서 주체성을 잃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벌써 6. 15. 선언 15주년을 맞이했지만 통일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한반도 정세는 남북한 통일을 제외하고 논할 수가 없는 만큼, 통일에 대한 한국 정부, 나아가 국내 전문가들의 주체적인 참여가 중요하다는 정세현 전 장관의 강연을 통해, 남북 문제에 대해 다시금 관심을 환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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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변 통일위원회에서는 남북법제팀, 국가보안법 연구모임 등 통일 관련 활동을 통해 북한 및 남한의 관련 제도를 이해하고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통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회원 분들의 많음 참여 부탁 드립니다.

금, 2015/07/1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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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자기 소개부터 시작할까요?

 

오윤식 저는 연수원 34기로 12년차 변호사로 법무법이 공간의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권리구제의 공간, 사회기여의 공간’이라는 법무법인 공간 명함을 파서 다니고 있는데요, 변호사로서 저의 지향점이 그 말에 녹아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변호사들이 권리구제를 통해서 사회기여를 해야 한다는. 그런 명함 파가가지고 다니니까 ‘사회기여’라는 말을 빼고 돈 많이 벌어라고 핀잔 주던 후배도 있었는데, 생활의 기반이 되는 물적 토대도 매우 중요하죠. 성현(聖賢)이신 맹자도 항산항심(恒産恒心)이라고 했으니까요. 그런 물적 토대가 튼실하지 못한 것이 좀 아쉽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변호사들이 추구해야 할 가치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신이 받은 재능을 공동체에 돌려줌으로써 사회기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늘 부족하지만, 이런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김지미 처음부터 이런 말씀 드리기가 좀 뭣하지만(웃음) 73년생이라고 하기엔 중후한 외양의 소유자시잖아요. 그런 말씀 많이 들으셨죠?

 

오윤식 머리만 흰데..저는 제가 동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김지미 조금 더 지나서 이덕우 변호사님처럼 완전 백발이 되면 더 멋있으실 거 같아요.

 

오윤식 그럴 수도 있죠. 지금 이거는 아주 자연스럽게 된 상태니까.

 

김지미 몇 년 안에 더 멋있어진 오변호사님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이제 오변호사님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볼까요?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오셨네요.

 

오윤식 네. 고향은 전북 남원이고 지금도 부모님은 남원에 계세요. 고등학교는 유학을 간 거죠.

 

김지미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하셨는데 역시 법조인의 꿈을 가지고 진학을 하신 거겠죠?

 

오윤식 네. 어렸을 때 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김지미 어떤 면에서 판사가 멋있어 보였을까요?

 

오윤식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어떤 사안에 대해 판정을 해주는 것이 멋있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 장래희망을 판사로 쓴 기억이 있고, 국민학교 때는 미술시간에 그림으로 그린 적도 있어요.

 

김지미 그래서 연수원 34기로 합격을 하셨잖아요. 고향에 플랭카드 좀 붙었겠는데요(웃음)

 

오윤식 시골이라서 붙었어요. 잔치도 했습니다.(웃음)

 

김지미 보통 변호사가 된 첫 해에 민변에 가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변호사님은 그런 케이스는 아니죠? 언제 가입을 하셨나요?

 

오윤식 제 기억으로 2008년, 그때 정도에 입회를 했어요. 변호사 생활을 한 게 2005년부터인데 바로 입회한 건 아니고 촛불 집회가 한창일 때 입회를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제가 변호사를 안산에서 시작했어요. 그 다음에 고양시에서 하다가 서울로 들어왔거든요. 별 생각 없이 지내다가 촛불집회 보고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입회를 했습니다.

 

김지미 그럼 2008년 당시 민변 신입회원이셨는데 촛불집회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고, 2009년에 용산사건진상조사단 활동도 하셨고, 그것 때문에 모범회원상도 받으셨죠?

 

오윤식 그 때가 정권 교체된 직후라 여러 가지 일이 많았고 열심히 해야 될 시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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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모범회원상을 받으면 기분이 어떤가요?

 

오윤식 제가 입회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큰 상을 받아서 영광이었죠(웃음).

 

김지미 제가 오변호사님을 처음 뵌 것도 촛불 집회 한창일 때였던 걸로 기억해요.

 

오윤식 목동 쪽에서 봤잖아요. 그 때 집회 방송 차량을 김종웅 변호사랑 제가 인천에서부터 타고 왔어요. 근데 목동부터 제지를 당한 거죠. 방송 차량이 집회 현장으로 가지 못하게 경찰이 막은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도와달라고 지원요청을 했었는데 김변호사님이 가까이 있어서 왔던 것으로 기억이 나요. 경찰하고 한창 실랑이를 해서 결국 가져갔죠.

 

김지미 네. 집이 목동이어서 주말에 쉬고 있는데 갑자기 불려 나갔었죠.(웃음) 그 당시에 제가 오변호사님이 굉장히 지적이어서 멋있다고 사람들에게 말했었어요~모르셨죠?

 

오윤식 한때 지적으로 보였나보죠?(웃음).

 

김지미 보니까 언론에 기고도 많이 하시고, 글 쓰는 걸 잘 하시고,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오윤식 2008년, 2009년 그 즈음에는 프레시안이나 민중의 소리에 기고를 좀 했는데 요새는 많이 안하는 편이에요.

 

김지미 당시 기고하셨던 글들을 보면 ‘방패로 시위대를 공격하는 것은 위법이다.’, ‘권력검찰을 혁파해야 된다’, 미네르바 구속이나 신영철대법관 사퇴해야 되는 이유 등등 현안에 대해 법률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글들을 많이 쓰셨던 것 같아요.

 

오윤식 네. 검찰 권력을 혁파해야된다는 글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에 쓴 글이예요.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한때는 신영철 징계해야 한다 이런 주장도 하고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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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2009년에는 용산철거민사망사건진상조사단이 민변 안에 꾸려지게 되는데 당시 조사단장이 장주영변호사님이셨고, 오변호사님이 법률지원팀장을 하셨어요. 갓 입회한 신입회원이나 다름없는 입장에서 중책을 맡으셨는데, 이때 활동에 대해서 잠깐 소개를 해주세요.

 

오윤식 그때 용산 사건에서 발화가 어떻게 됐는지, 사망자들이 어떻게 돌아가시게 됐는지 주로 그 부분을 중점으로 원인 규명을 하려고 했고 보고서를 발간했어요.

 

김지미 그 당시 검찰이 수사기록을 끝까지 내놓지 않았잖아요. 진상조사를 한다고는 하지만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오윤식 유가족 인터뷰를 하고 그랬는데 사실 자료가 많지 않아서 어려움이 있었어요.

 

김지미 이외에도 언소주(언론소비자주권캠페인) 관련 소송도 하셨는데 이 사안도 촛불집회 와 연관이 있고 그러고보면 오변호사님은 민변 차원의 활동엔 적극적으로 결합하시는데 비해 의외로 위원회 활동은 잘 안하시는 거 같아요.

 

오윤식 노동위 소속이긴 한데 제가 촛불 때 즈음해서 민변 활동을 하다보니까 그런 사건 위주로 활동을 한 거죠

 

김지미 검찰혁파 얘기도 하셨고, 신영철대법관 얘기도 하시는 것 보니까 사법위원회가 제격일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이건 순전히 사심을 채우려는 의도로 질문 드리는 겁니다.(웃음)

 

오윤식 저도 그런 생각은 있습니다.

 

김지미 네. 매월 3번째 목요일 회의입니다(웃음).

 

오윤식 당장 하겠다는 말씀은 못 드리겠어요. 사실 언론위 활동을 해볼까 이런 생각이 있어요. 책 쓰는 것하고 연결이 돼서.

 

김지미 표현의 자유 쪽에 관심이 있으신 거죠?

 

오윤식 네. 선거법이 말과 글을 통제하는 시스템이거든요. 표현의 자유 측면 또는 국민의 선거의 자유, 선거 참여의 자유를제약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언론위 활동을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죠.

 

김지미 말이 나온 김에 최근에 ‘후보자와 정당을 위한 공직선거법 해설’이라는 책을 내셨어요. 책이 굉장히 두꺼워요. 천 페이지 가까이 되는데, 이걸 변호사님이 혼자서 쓰셨잖아요, 이게 몇 년 동안 작업을 하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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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식 몇 년은 아니고요, 재작년이죠. 2014년 11월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김지미 1년이 안 걸린 거네요.

 

오윤식 작년 10월 초반에 최종 탈고를 했어요. 그런데 선거법이 12월에 두 번인가 바뀌었어요. 그래서 고치고 해서 제가 최종 넘긴 것은 12월 20일 정도에 넘겼거든요. 그런 것까지 하면은 1년은 넘게 걸렸죠.

 

김지미 이 책을 저술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오윤식 제가 2014년 지방선거 때 박원순시장님 캠프 법률팀에서 일을 했었죠. 선거자문을 주로 했어요. 캠프에 들어가서 선거운동을 하는데 문제가 많이 생길 수 있거든요. 그래서 그 때 서류로 써 놓은 것이 있었어요. 선거 끝나고 6월 말 정도에 생산한 문서를 보니까 300장정도 됐거든요. 그게 책에 반영은 많이 안 되었지만 이 책에 보면 선거운동 할 때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전팁이 들어가 있거든요. 그 부분은 참고가 많이 됐습니다.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죠. 처음엔 300쪽 되는 문서를 묵혀 놓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거를 활용해볼까 이런 생각도 있었는데, 조금 쓰다보니까 선거법이 워낙 조문이 많거든요. 그래서 쉽게 책 쓰는 거는 초중반에 쓰다가 포기하고 전문서적으로 나가게 된 거예요. 제가 사실은 처음에는 책 쓰는 기간을 3개월 정도 예상했었어요. 저도 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거에만 매달릴 수가 없어서 3개월 정도 예상을 했었는데, 쓰다보니까 엄청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시간이 늘어지면서 양이 많아지고 그리고 기록화 되는 거니까 신경 안 쓸 수가 없어요. 그리고 쓰다보면 욕심이 많이 생겨요. 그래서 수정도 하고 이것저것 논문도 많이 보고 독일 선거법 참고 하면서 그러다보니까 점점 늦어지다 10월 달에 탈고를 했죠.

 

김지미 말씀하신 것처럼 생업을 유지하면서 틈틈이 쓰신 거잖아요.

 

오윤식 대충 시간 계산을 해봤어요. 1주일에 토·일요일 쉬는 날 빼고 한 2-3일정도를 쓴 것 같아요. 사실은 힘들었어요. 일주일에 2-3일을 9시에 나와서 9시에 퇴근했거든요. 고시공부하듯이 책을 썼어요. 그래서 나중에 힘들다이런 생각 많이 했어요.

 

김지미 이 책 머리말에도 쓰셨지만 선거법이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에게도 어려운 정도로 많은 조문을 담고 있다. 이게 사실이거든요. 그렇다면 이 책의 장점을 한마디로 표현하신다면? 책에는 실전지침서와 이론서를 다 지향했다 이렇게 쓰셨는데, 내 책은 깊이 있는 이론도 담고 있으면서, 실전에도 강하다 이런 건가요?(웃음)

 

오윤식 실전팁, 그러니까 선거운동을 하면서 선거지침으로 삼을 만한 부분을 뽑아서 실전팁이라고 해서 30개 정도 들어가 있거든요. 그 부분을 따로 목차를 잡아 놓을까 이런 생각도 있었는데, 그걸 얘기하니까 누가 그것만 카피한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서 목차를 안 잡았어요. 그런 부분은 선거 관계자들, 후보나 선거운동원이나 이런 분들한테 실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선거법 전문서로는 가장 최근법에 맞는, 충실한 내용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아까 독일법 얘기 잠깐 하셨는데 저희 정치관계법TF 방에도 변호사님이 독일법 올리신 게 있었잖아요. 직접 번역을 하신 거죠?

 

오윤식 네. 제가 직접 했습니다.

 

김지미 독일어는 언제 또 공부를 하신 거예요?

 

오윤식 독일어는 사시 준비할 때부터 했고요, 잘하는 수준은 아니에요. 그런데 독일어 번역할 때 법조문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해야 하는데, 독일연방선거법은 2009년도에 중앙선관위에서 번역을 해놓은 것이 있어요. 그래서 많이 참고를 하기는 했는데, 번역이 잘못된 것이 더러 좀 있어요. 독일연방선거법 부속법령 중에 선거심사절차법이 있는데, 그건 번역본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다 번역을 한 건데, 그래서 번역노트도 100페이지가 넘게 있어요. 일일이 찾아가면서 했기 때문에 그것도 대단히 힘들게 했습니다.

 

김지미 사시의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공부했다고 해도 누구나 이렇게 번역을 할 수 있는 건 아닐 텐데요.

 

오윤식 제가 번역만 하는데 한 달 가까이 걸렸거든요. 독일에서만 쓰는 전문적 용어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독일법령용어집이 있고, 사전 같은 게 2권 있는데 그런 책도 많이 참고해가면서 한 거죠.

 

김지미 내가 직접 번역을 해보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대단한 것 같아요.

 

오윤식 독일 논문을 읽고 논문을 써봐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지금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그 전에 논문을 한 10편 정도 썼는데 그거는 독일 논문은 참고 못하고 법조문 정도는 참고 했는데, 저도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오고 그래서 해석을 하고 그러면서 시간이 걸려요.

 

김지미 논문을 많이 쓰셨네요. 보면 분야를 넘나들고 있어요. 공직선거법 관련된 것도 있지만, 노동법에 관련 된 것도 있고.

 

오윤식 지금 쓰고 있는 논문은 선거구획정에 관한 것이에요.

 

김지미 역시 지적이시군요. 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어요(웃음).

 

오윤식 지적인 것보다 제가 스스로 학자변호사를 지향하고 있어요. 꼭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아요. 변호사는 원래 사건을 많이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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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평생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 변호사다 라는 말이 있는데 관련해서 보면 변호사님이 민변에 발전전략TF에서도 정책연구소 얘기를 많이 하셨잖아요.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되는 건가요?

 

오윤식 그렇죠. 저는 우리가 법률가이기 때문에 법적 영역 또는 정책적 영역으로 사회에 기여를 해야 한다, 사회에 영향 미쳐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민변 기존의 활동 흐름을 보면 그게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TF할 때도 그런 얘기를 많이 했었는데, 민변 내부에 연구센터라든지 아니면 별도로 연구소를 차리게 되면 기존 위원회 중심의 활동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거든요. 그래서 공익변론센터가 우선 설립되게 된 걸로 이해를 하고 있는데 장기적으로는 연구소 형태의 정책연구소 이런 것을 만들어서 위상을 높여야 한다 이런 생각을 좀 하죠.

 

김지미 당장의 현안들이 너무 많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당장 성과가 없더라도 쭉 밀고 나가야 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러기에는 민변이 예산이나 인력이 부족한 게 사실이잖아요. 변호사님이 생각하기에 민변에서 이런 것들은 공부를 해봤으면 좋겠다 하는 주제나 분야가 있을까요?

 

오윤식 제 책과도 조금 관련이 되어 있는데, 제가 독일선거법보면서 깜짝 놀란 것이 독일에서는 선거운동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그래서 선거운동 자체를 규제를 안 하는 거예요. 선거 비용 자체도 규제를 안 해요. 선거비용은 금권선거 이런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규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는데 법에서 규제를 안 하고 정당간의 자율협약으로 규제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법에 없어요. 그런 것을 보면 아주 선진적인 선거법 모델이라고 할 수 있죠. 반면에 우리 선거법에는 선거운동에 관한 규제조항이 많아요. 우리 선거법은 일본 시스템이거든요. 이게 일제시대에 성립한 억압적인 선거법 체계거든요. 그게 1958년 정도에 참의원이 선거법 개정하면서 그런 시스템이 들어온 거예요. 그 전까지는 우리 법도 강하게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체계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선거법 자체가 일본 잔재인 측면이 있죠. 그런데 계속 가져가잖아요. 지금 정치권에서는 기득권을 지키는 차원에서 규제하는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선거법을 연구할 때 비교법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김지미 말씀하신 바에 의하면 우리가 선거운동이라든지 선거방법에 대해서 규제를 해 온 것이 50년, 60년 넘었단 말이죠. 그런데도 계속 선거비리, 금권·관권선거 그런 얘기가 나오잖아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규제를 하는데도 이런데, 규제를 풀면 돈 있는 사람, 힘 있는 사람이 결국 이기는 거 아니냐. 독일하고 비교를 해보면 독일은 규제를 하지 않음에도 선거과정에서의 부작용이랄까 그런 것들이 우리나라보다 덜하다면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온다고 보세요?

 

오윤식 우리의 정치문화나 국민의 의식 수준의 차이,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김지미 오히려 시민들 사이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진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런 문화가 덜 발달됐다라고 보시는 건가요?

 

오윤식 네, 그렇게 볼 수도 있어요. 그래서 학자들 중에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많아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 60년 동안 우리가 억압적으로 포괄적으로 강하게 규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비리, 부정선거 이런 게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것은 규제하는 시스템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국민의 자율에 맡기는 시스템 도입을 할 필요가 있다. 저도 그런 생각에 공감을 하는 거지요. 우리 선거법이 강하게 규제를 하는 건 관권선거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3·15부정선거라든지 최근 2012년 대선도 광범위한 부정 관권선거 의혹이 있는데, 그런 것은 규제 안 할 수가 없죠. 저도 전면적으로 선거법 규제를 풀자 그렇게 주장하는 건 아니에요. 공무원의 선거관여 이런 것은 현행 수준 아니면 거기보다 강하게 할 수도 있겠죠. 다만 일반 국민들의, 유권자들의 선거운동의 자유라든지국민의 선거 참여의 자유를 너무 강하게 규제를 하는 게 문제라는 거예요. 선거가 어떻게 보면 국민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과정인데 국민들을 구경꾼으로 전락시키는 측면이 있죠.

 

김지미 기존의 규제를 계속 이어가고자 하는 건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세력에 더 유리한 것은 사실인 것 같아요. 앞으로 총선·대선을 앞두고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가 더 위축될 것이다 라는 우려가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같은 연장선상에서 언론위 활동을 하고 싶다 라고 말씀을 하시는 거죠?

 

오윤식 그런 측면도 있죠. 3월 정도 즈음에 선거 분위기가 조성되면 표현의 자유라든지 국민의 선거운동 확대라든지 그런 측면에서 민변이 역할을 일정부분 해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 그때 제가 역할을 좀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김지미 총선이 끝났다고 해서 그런 사건이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어느 정도 마무리 되면 사법위 오시는 걸로(웃음). 변호사님 책상에도 이게 있지만, 따로 물어보려고 했던 것이 이 사건인데요, 종교인 소득세 납부자료 정보공개청구소송에서 일부 승소를 하셨고 이 사건을 맡으셨는데 이게 보니까 원래는 한겨레 21이 국세청에 성직자의 소득세 납부 현황 등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는데, 비공개 결정이 났고 이 기사를 보고 변호사님이 먼저 한겨레 21에 연락을 하신 거죠?

 

오윤식 네. 고나무 기자인데 기사를 읽고 나서 “제가 공감을 해서 무보수 대리를 해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먼저 연락을 했어요. 개인적으로 같은 국민이기 때문에 종교인도 과세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국가 운영의 근본이되는 것이 세금이거든요. 종교인들이 하늘나라에서 봉사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 내에서 봉사하기 때문에 당연하게 세금을 내야 한다. 이런 생각이 강하게 있었어요. 그래서 기사보고 제가 메일을 보냈죠. 제가 1심 중간부터 같이 했는데 2심에서 이겼어요. 그런데 대법원에서는 공개거부처분이 옳다고 해서 졌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져서 아쉬운 측면이 있죠.

 

김지미 성격이 보기보다 적극적이신 거 같아요. 최근에는 민중총궐기 대응 변호인단에 참여를 하고 계시잖아요. 저희가 당시 살수차 영상에 대해서 증거보전신청을 해서 그건 홍성지원에서 기일을 진행했었고 내일 다른 살수차 영상에 대한 증거보전 관련해서 광주를 가시죠?

 

오윤식 백남기 선생님은 분명한 국가폭력의 피해자이시죠, 국가 공권력의 발동, 특히 형사 사법절차에서는 염결성이라고 하잖아요. 적법절차를 준수하면서 공권력이 발동되어야 하는데 그런 걸 준수하지 않는 공권력은 사실은 흉기와 같다고 생각을 해요. 백남기 선생님 같은 케이스가 그런 사례잖아요. 기본적으로 이건 아니다 싶어서 참여를 하게 됐죠.

 

김지미 내일 검증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잠깐 소개를 해주세요.

 

오윤식 홍성지원에서는 충남청 소속 살수차에 달린 영상에 대해서 어떻게 물포를 쏘고 백남기 선생님이 그때 당시에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떻게 피해를 입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검증을 했어요. 이번에 광주지법에서 하는 검증은 백남기 선생님을 피격한 살수차 말고 다른 살수차에 대한 것인데 당시 조준 살수를 했는지, 고의성이 있었는지를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김지미 민변의 열혈 회원으로서 앞으로 민변이 나아갈 방향, 민변의 발전을 위해서 평소에 생각하신 바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오윤식 초반에 말씀드린 부분이기도 한데, 민변이 장기적으로 연구소를 설립해서 정책 역량·연구역량을 강화해야 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대의원회 자료집을 보니까 공익변론센터에서 위원회에서 포섭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연구에 대한 지원 같은 내용이 있던데 그런 계획이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김지미 기승전 정책연구소네요(웃음). 정책연구소 필요하죠. 예를 들면 저희가 정치관계법 TF를 만들기는 했지만 평소에 이런 분야에 대한 연구가 되어 있으면 정치관계법 개혁 논의가 있을 때 민변이 선도적으로 연구 성과물도 내놓고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전문가 단체로서의 성격을 확실히 하려면 그런 쪽에 역량이 좀 투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있어요.

 

오윤식 제가 책 쓰면서도 느낀 건데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어떤 것도 바뀌지 않는다. 사회적·정치적·경제적 미완의 불완전한 개혁에 머무를 것이다. 우리가 법률가인데 가끔 잊어버리는 측면이 있다고 보는 게 정치하는 사람들이민주주의 구현 수단인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고, 그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통해서 법을 만들어 내잖아요. 정치인들이 국민의 선택을 받아서 국회에 들어가서 법을 만들면 그 법에 우리 사회의국민·모든 기관이 지배를 받는 거잖아요. 그래서 민주주의하고 법치주의가 결합이 될 수밖에 없고 저는 그걸 ‘민주법치주의’ 이렇게 표현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 회원이 정치권에 적극 나가서 세력을 형성해서 법을 통해서 사회에 기여를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편이죠. 그래서 입후보 하신 분들이 제 책을 보시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웃음)

 

김지미 정말 좋은 말이네요. 올바른 정치개혁 없이는 어떤 사회개혁의 성취도, 어떤 경제개혁의 완성도 어렵고, 가능하더라도 불완전한 미완의 개혁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올바른 정치개혁이 가장 중요하다.

 

오윤식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독일의 사민당 정도의 정치세력을 만들어서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려고 했다고 생각하는데 잘 안됐었죠. 그런 것이 좀 아쉽다고 생각하고요, 앞으로 정치혁명, 민주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갈 정치세력 형성의 중요하다. 그 세력 형성에 민변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저도 미약하게라도 그런 역할에 기여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김지미 혁명이나 개혁 이런 말로 회원 인터뷰를 끝맺기는 처음인 것 같아요. 변호사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민변 회원으로서 시대적인 소명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 오변호사님을 자주 뵐 것 같다는 예감도 들구요.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월, 2016/03/1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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