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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2015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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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2015년 5월호

익명 (미확인) | 일, 2015/05/10- 13:23

편집인의 글

 

장지연 l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

 

노동시장의 불평등, 나아가서 양극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퍼진 지는 오래되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는 비교적 높은 임금과 고용안정성을 누리는데 비하여, 비정규직 노동자와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는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에서 동떨어진 인식은 아니다. 사실상 이러한 문제의식은 애초에 진보진영에서 제기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노사정위원회의 ‘노동시장 구조개선 특별위원회’의 논의 경과를 바라보면서 노동계는 한 목소리로 비판적 의견을 내놓는 것일까?

 

노사정위원회는 2014년 9월 ‘노동시장 구조개선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소할 방도를 강구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같은 해 12월 29일에는 정부가 소위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이 특위에 제출하고 검토를 요청함으로써 이 논의를 주도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3월말까지 논의를 마무리하고 사회적 대타협을 도출해달라고 시한을 못박아 요청하기도 하였다. 적어도 표면적으로 이 특위는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완화할 방법을 찾겠다는 자리였다. 그러다가 지난 4월 9일 노동계(엄밀하게는 한국노총)의 결렬 선언으로 이 특위의 역할은 사실상 종결되었다. 이 특위에서 어떤 내용이 논의되었으며, 왜 성과 없이 종결되었는지, 그리고 그 사회적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것은 올바른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방향을 숙고하는 것과도 같다.

 

이 특위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논의하기에 적합한, 올바른 틀이 아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그리고 중소기업 경영자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논의구조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에서 설사 어떤 타협안이 발표되었다고 한들, 이것을 두고 사회적 대타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심스러우며, 이해당사자들의 저항 없이 사회적으로 수용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논의구조의 밖에서 성명서나 시위를 통해서 ‘그것이 진정 우리들을 위한 방안이 될 수 없다’고 외쳤다. 정말 아이러니컬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왜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거부할까? 사실상 정부가 주도하여 설정한 논의 의제와 내용은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개선하여 이중구조를 해소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규직의 해고 규제완화와 비정규직 규모 확대를 통한 하향평준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것이 노동계 전반의 공통된 인식이다. 노동시장이 이중구조화되어 있어서 문제라고 하면, 비정규직의 근로조건과 고용안정성 향상을 도모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정해진 파이를 놓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어떻게 나누어 가질 것인지를 묻는 것은 애초에 교묘하게 현실을 호도하는 잘못된 질문방식이다. 기업이 이윤으로 가져가는 몫에 비해서 전체 노동자가 임금으로 가져가는 몫의 비율이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는 왜 하지 않나? 질문이 잘못되면 답이 안 나온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영세기업 노동자 간에 격차만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더 큰 문제는 좋은 일자리, 즉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어서 이제는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참에 정규직 일자리는 싹 다 없애버리자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나? 사람이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면 차마 할 수 없는 얘기를 한거다. 이번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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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구조개선’=‘해고는 더 쉽게, 임금은 더 낮게, 비정규직은 더 많이 양산하는 노동자 하향평준화 정책

이창근 l 민주노총 정책실장

 

들어가며: 애초에 불순한 목적으로 시작된 논의, 합의 결렬은 사필귀정.

 

지난 4월 9일,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관한 사회적 대타협을 추진해 온 노사정위원회 논의가 결렬되었다. 노사정위원회 논의는 애초에 불순한 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합의 결렬은 사필귀정이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노동시장 구조개선)의 본질은 한국 경제의 저성장·불황 국면을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통해 극복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는 작년 말 발표한 “2015년 경제정책방향(안)”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는 노동부문 개혁을 핵심 과제로 제시하면서, 세부내용으로는 ‘임금·근로시간·근로계약 유연성 제고와 파견·기간제 사용규제 합리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노동정책이 경제정책의 하위 범주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재벌 배불리기를 위해 해고는 더 쉽게 하고, 임금은 깎고, 비정규직은 더 늘리는 방향으로 노동시장 하향평준화 정책의 추진 의지를 분명히 표현한 것이다. 이미 정해 놓은 길에 정치적 명분을 덧칠하기 위해 노사정위원회를 앞세운 것이 지난 노사정위원회 논의라고 할 수 있다.

 

‘더 쉬운 해고·더 낮은 임금·더 많은 비정규직’=‘노동시장구조개선

 

박근혜 정부는 12월 22일 “2015년 경제정책 방향”발표, 12월 23일 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원칙과 방향’ 기본 합의문 채택, 12월 29일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발표 등 소위 말하는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추진해 왔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선’은 해고는 더 쉽게, 임금은 더 낮게, 비정규직은 더 많이 양산하는 ‘노동시장 구조개악’ 대책에 다름 아니다. 아래에서는 몇 가지 핵심적인 ‘노동시장 구조개악’ 대책을 살펴보도록 한다.

 

더 쉬운 해고 : ‘저성과자 해고제도 도입

정부는 “일반적인 고용해지 기준 및 절차에 관한 가이드라인 마련”하겠다고 한다. 표현은 그럴 듯하지만, 이는 노동자를 강제로 전직시키고 무리한 업무를 부과해 강제로 퇴직시키는 ‘학대 해고’를 합법화하자는 것이다. “공정한 절차와 관련 내부규정”을 운영하겠다는 것은 통상해고 기준을 정부가 마련하여 사업장에 배포하여, 사용자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노동자를 ‘합법적’으로 퇴출시킬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평가’라는 것의 실체를 보면, 노동자의 업무가 계량적으로 측정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결국 평가기준은 주관적 요소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이는 직원들을 항시적으로 감시하고 회사의 영향력 하에 두는 체계를 공고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몇 가지 절차나 개선 기회를 제공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전혀 아니다. 따라서 저성과자 개별해고 요건 완화 가이드라인은 ‘경영상 사유로 인한 정리해고’를 우회하여, 사측이 자의적으로 퇴출 규모와 대상을 미리 정해 놓고 다양한 압력을 행사해 그만 두게 하는 불법행위를 정당화시켜주는 대책이다.

 

임금과 고용조건을 규율하는 취업규칙 변경을 사용자 마음대로 할 수 있게

정부는 취업규칙 변경 ‘기준’과 ‘절차’를 명확화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현행 근로기준법이 정하고 있는 노동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 시, 과반수 노동조합의 동의 혹은 과반수 노동자들의 집단적 동의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의도이다. 이는 취업규칙에 저성과자 퇴출제도 등 해고를 쉽게 하는 조항을 사용자 마음대로 수월하게 도입하고, 나아가 직무·성과급 중심의 임금체계와 임금피크제 등 정부의 정책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려는 속셈이다. 또한 정부는 법원 판례의 소수 견해인“사회통념상 합리성 요건”을 일반화시키려는 의도도 숨기지 않고 있다. 즉, 법원 해석상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불이익 변경은 과반수 노조 또는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지 않더라도 변경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노동부가 가이드라인이나 매뉴얼 등을 통해, 호봉제를 폐지하고 직무·성과급을 도입하며, 임금피크제를 실시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는 사항이므로 과반수 노조 또는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으로 사업장을 지도하겠다는 의도이다. 이렇게 되면, 사용자들은 노동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조차도 과반수 노동조합 혹은 과반수 노동자들의 집단적 동의 없이도 일방적으로 처리할 것이다. 이러한 행정지침 혹은 가이드라인의 제정은 종국에는 법정에서 법원의 해석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어서 더욱 심각하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을 완화하는 것은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무노조·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치명적이다. 이들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대해 집단적 목소리를 내는 게 어렵고, 심지어 백지날인을 강요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취업규칙은 노사교섭을 통해 결정되는 단체협약과 달리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제정하거나 개정한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10%대임을 감안하면, 노동자 열 명 중 아홉 명은 단체협약을 적용받지 못하고, 취업규칙만 적용받고 있다.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시 사용자가 배제된 상태에서 집단적인 동의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대다수 무노조·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의 노동조건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다. 일반 민사계약도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정할 수 없는데, 하물며 지배·종속관계에 있는 근로계약의 내용을 사용자가 사실상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개정하자는 주장은 일반상식에도 반한다.

 

고령노동자 임금 삭감: 임금피크제 도입

통계청 경제활동조사 부가조사(2014.8)에 따르면, 50∼59세 노동자는 371만이고, 60세 이상 노동자는 172만 6천 명임. 55세 이상 고령노동자는 328만 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17.4%에 달한다. 60세 이상 노동자 중 약 70%는 비정규직이며,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는 비율도 45%대에서 50% 초반이다. 고령노동자 2명 중 1명은 최저임금 또는 그 이하를 받고 있을 정도로 고령노동자의 임금수준은 대단히 열악하다. 정년 60세 연장을 대가로 고령 노동자들에게 임금피크제를 적용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고령노동자들을 저임금 불안정노동의 수렁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시장의 불안정성과 임금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임금피크제’는 가장 많은 가처분소득이 필요한 50대 노동자들에게 임금삭감을 강요하여, 생활적인 곤란함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한국 노동자들에게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조기퇴직하는 연령인 50대 초반은 자녀의 대학교육, 의료비, 노후준비 등으로 생활비가 가장 많이 드는 시기임에도, 공적인 노후소득보장 체제는 열악하기 그지없다. 2014년 5월 기준으로, 55세∼79세 인구 1,137만 8천 명 중 공적연금과 개인연금을 모두 포함한 연금수령자는 519만 8천 명으로 46% 수준에 불과하다. 이중 월 평균 10만원 미만 수령자는 110만 5천 명으로 21%에 달하며, 평균 수령액도 월 42만원에 불과하다.

 

직무·성과급제 도입은 장기근속자 임금삭감

“직무·성과급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은 연공급을 마치 ‘절대 악’인 것처럼 호도하여, 장기근속 노동자들의 연공성을 약화시켜 사실상 임금을 삭감시키려는 의도이며, 기업성과에 노동자 임금을 연동시켜 노동자들의 생활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대책이다. 연공급 체계가 절대적으로 올바른 임금 체계라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정부와 자본이 주장하는 것처럼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초래하는 적폐’ 또한 아니다. 연공급은 노동자들의 생애주기에 맞춰 생계비 지출이 가장 높은 시기에 가장 많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설계된 제도이며, 이는 노동자 생활 안정에 상당부분 기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승진 제도를 통해 직무·성과를 판단하는 요소도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는 임금체계라는 점에서, 정부와 자본의 일방적인 연공급 체계에 대한 공격은 합리적 근거가 없다. 현재‘임금체계’ 개편의 초점은 연공성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장기근속 노동자의 임금삭감에 맞춰져 있다. 성과급은 기업의 자의적인 임금 하향조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대신, 노동자들의 생활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

 

더 많은 비정규직 양산 – 비정규직 종합대책

정부는 35세 이상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내놨다. 사용기간 2년을 4년으로 연장하자는 주장은 기간제법 입법 취지, 즉 사용기간 2년이 넘는 업무는 상시·지속업무로 보고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취지조차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사용기간을 4년으로 늘리면 정규직 채용 여지를 더욱 줄어들 것이다. 4년 쓰고 해고한 뒤 다시 새로운 인력 충원해서 4년을 쓰면 되기 때문에, 오히려 정규직 일자리를 줄여서 계약직으로 충원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정부는 파견노동도 더욱 확대하고자 한다. 현행 파견법은 파견 허용 업종을 32개 업종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55세 이상 고령노동자와 고소득전문직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모든 업종으로의 파견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추가로 “인력난이 심한 업종”을 대상으로 한 파견 확대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부가조사에 따르면, 55세 이상 고령자는 328만 명으로 전체 노동자 17.4%이고, 관리전문직은 452만 명으로 24.1%에 달한다. 정부안(案)대로 55세 이상 고령자와 관리직·전문직에게 파견노동을 전면 허용하면, 중복을 제외하더라도 약 741만 명(39.5%), 전체 노동자 10명 중 4명을 새롭게 파견노동 대상에 추가하겠다는 것이다(김유선, 2015.1). 고소득전문직의 경우 표준직업분류표 상 대분류 1(관리직)과 대분류 2(전문직)에 대해 모두 파견을 허용하겠다는 계획도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2개의 업종에 추가로 허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래 32개의 파견 허용 업종은 대분류가 아니라 세세분류 또는 중분류의 업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분류 1, 2에 포함된 세세분류 업종은 무려 400여 개에 이르며, 판사,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감정평가사 등의 업종도 있지만,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초·중·고등학교 교사, 유치원 교사, 보험 및 금융 관리자, 자동차 부품 등 기술 영업원, 기자 등도 포함돼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고소득 전문직에 대해 추가로 파견이 허용될 경우 기존 2년으로 제한되어 있던 사용기간의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에 대해서는 평생 파견이 허용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불법을 합법으로: 노동시간 단축이 아닌 연장

현행 근로기준법은 40시간의 법정노동시간 외 연장노동 한도를 12시간으로 제한(제53조 ①항)하고 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행정해석을 통해 ‘휴일근로는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1주 최장 68시간에 달하는 탈법적인 장시간 노동을 허용(40+12+16)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상 1주 12시간의 연장노동 한도에 휴일노동이 포함된다는 점은 이미 법원이 판례로 확인한 사실이며, 이제 대법원의 최종 판결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휴일노동을 연장노동에 포함하는 것은 잘못된 정부 행정해석을 바로잡고 입법취지와 판례에 부합하도록 애초의 문구를 명문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부, 사용자단체, 심지어 전문가그룹 조차 휴일노동을 연장근로에 포함할 경우 법과 현실이 괴리되는 상황이 발생하므로, 이를 해소하기 위해 영구적 혹은 한시적으로 주 8시간까지 추가 특별연장노동을 허용하자고 주장한다. 이는 탈법적 장시간 노동을 유지하려는 재계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여 현행법과 판례를 대폭 개악하려는 것이다. 추가 특별연장노동은 ‘노사합의’를 조건으로 허용하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는 정부 주장도 현실을 도외시한 주장이다. 현재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률이 11%에 불과하고, 특히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중소영세사업장에서는 노동조합이 거의 조직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노사합의’라는 단서 조항의 실효성은 기대하기 힘들다.

 

또한 시행시기를 유예하고, 노동시간단축을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은 탈법 또는 불법의 범위에 있던 초과노동을 이참에 ‘합법’으로 둔갑시켜 세계 최장 수준의 살인적 장시간 노동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통상임금 범위 축소’

정부, 사용자단체, 노동시장구조개혁 특위 전문가 그룹은 ‘통상임금’ 정의 규정을 법률에 명확히 정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 내용에 ‘고정성’ 요건(재직자 요건, 최소근무일수 요건 등)까지 포함시켜 통상임금 범위를 축소시키고자 한다. 또한 통상임금에서 제외되는 금품 범위는 시행령에서 규정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시행령을 입안하는 주체가 정부이며, 그동안 정부가 보여준 통상임금 관련 편파적인 입장을 고려하면, 정부가 그동안 고수해 온 노동자에게 불리한 기존 행정해석이 시행령에 그대로 포함될 여지가 크다. 노동부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에도, 정기상여금을 퇴직자에 대한 일할규정 여부, 재직자 요건 규정 여부에 따라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는 지침을 발행하여 현장의 갈등을 악화시킨 바 있다. 한편, 2014년 국회 환노위 노사정소위 지원단이 언급한 개방조항(노사합의로 통상임금 산입범위 결정 허용)이 올해 노동시장구조개선특위 전문가그룹 공익안(案)에서 다시 제안되었다. 하지만 이는 노조 조직률이 11%에 불과하고, 사용자들의 해태에 의해 산별교섭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적절한 방안이 아니다. 노동조합이 없는 대다수 사업장에서 사용자의 노동조건 불이익 변경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현장 상황을 감안하면, 통상임금 범위와 기준을 명확하고 단순하게 정의하여 근기법에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체 임금 중 기본급 비중을 낮추고 기타 수당이나 상여금·성과급 비중을 높이는 왜곡된 방식으로 소정근로 시간당 임금과 초과근로에 대한 할증 임금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함으로써 장시간 노동을 부추겨온 것이 현재 통상임금 문제의 본질이다. 따라서 각종 수당과 상여금을 기본급화하여 왜곡된 임금구성을 바로잡고 소정근로 시간당 임금보다 헐값으로 취급된 초과근로에 대한 할증임금을 제대로 받음으로써 장시간 노동 관행을 철폐하는 것이 통상임금 문제의 본질적 해법이다. 통상임금 정상화는 초과노동에 대한 할증임금을 높임으로써 그간 값싼 할증임금을 지급하면서 신규고용 대신 장시간 노동을 선택해 온 자본의 위법하고 탈법적인 관행을 바꿔나간다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

 

노사정위원회 전문가그룹 의견안(案) 비판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의도는 노사정위원회에 지난 2월 27일과 3월 6일에 각각 보고된 전문가 1그룹(통상임금·노동시간·정년연장/임금피크제)과 2그룹(노동시장 이중구조·사회안전망) 의견안(案)에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전문가 1그룹(통상임금/노동시간/정년연장)은 ‘통상임금’과 관련하여, ▽ 정의 규정에 정기성·일률성에 고정성 요건(재직자 요건)까지 포함시켜 통상임금 범위를 축소하고, ▽ 제외금품을 시행령에 열거할 수 있도록 하여 정부의 사용자 편향적 기존 행정해석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주고, ▽ 노사합의로 통상임금 범위 결정할 수 있는 개방조항 도입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대다수 사업장에서 사용자가 사실상 일방적으로 통상임금 범위 결정할 수 있게 보장하고 있다. ‘임금피크제와 임금체계 개편’ 관련해서는 ▽ 연공급 해체·성과 중심 임금체계로의 개편, 임금피크제 도입 등 장기근속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을 삭감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 제대로 된 임금체계가 필요한 대다수 저임금·비정규노동자들을 위한 대책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노동시간’ 관련해서도 ▽ 현행 1주 최장 52시간(40시간 + 12시간) 노동체제를 1주 60시간 체제로 확대하는 노동시간 연장을 제안하고 있고 ▽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재량근로 대상 업무 확대 등 노동시간 유연화 제도를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전문가 2그룹(노동시장구조개선/사회안전망) 의견도 외형상으로는 추상적인 문구로 속내를 감추고 있지만, 실내용은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의도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 기간제 사용기간 제한 예외 확대·파견 규제 완화·사내하도급 법안 제정 등 박근혜 정부의‘비정규직 양산 정책’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기간제 사용기간 2년 제한을 ‘고용불안의 요인’으로 지목하면서, ‘정부안(案)과 같이 35세 이상 근로자가 계속 근무를 희망하는 경우에 한하여’ 기간제한 예외 사유로 인정하는 방안 등을 모색해야 한다며, 정부안을 지지하고 있다. ▽ 파견규제 완화·사내하도급 합법화에 관련해서도, ‘도급’보다는 ‘파견’이 상대적으로 근로조건과 고용안정을 규율할 수 있다는 해괴한 논리로, ‘파견규제의 점진적 완화’를 향후 개선 방향으로 선언했다. 또한 청소·용역·시설관리 등에 대해서는 노무도급이란 이름으로 파견을 합법화시켜주자는 주장을 담고 있으며, 동시에 대표적인 재벌특혜 법안으로 비판받았던,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법’의 제정도 주장하고 있다. ▽‘취업규칙 변경절차 요건 변경’과 관련해서, 전문가 그룹은 ‘정년연장에 따른 근로조건 조정의 합리적 적용을 위하여 취업규칙 변경의 적절한 해법을 모색’한다고 명시하면서, 향후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 도입 등은 마치 불이익변경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또한 취업규칙 개악에 대한 노동자 동의권과 관련해서도 ‘근로자 대표 관련 규정’ 개정, 즉‘근로자대표 또는 종업원대표제도의 도입’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는 취업규칙 변경에 관한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의도이다.

 

노사정위원회 합의 결렬 이후, 드러나고 있는 진실.

 

노사정위원회 합의가 결렬된 이후, 박근혜 정부의 움직임을 보면 노사정위원회 논의의 애초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잘 드러난다.

 

첫 번째로, 지난 4.14 노동부는 100인 이상 사업장 단체협약 시정지도계획을 발표했는데, 핵심 시정지도 대상은 ‘인사·경영권 관련 노동조합 동의(협의) 조항’이다. 노동부가 문제시 삼고 있는 소위 ‘인사·경영권 관련 사항’은 ‘전직, 전근, 배치전환, 정리해고, 합병양도 시 노조 동의를 얻도록 한 조항’ 등인데, 이러한 조항들은 사실상 현장 노동자들의 생명줄과도 같은 고용보장 및 노동조건과 직결된 사항들이다. 이러한 사항들은 노사교섭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체결된 단체협약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노동부가 나서서 이를 손보겠다는 것은 사용자에게 더 쉬운 해고 권한을 부여하여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현장에서부터 강행하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지난 4.17 이기권 노동부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노사정위원회 합의 결렬의 핵심적인 사항이었던 ‘취업규칙 변경 기준과 절차 가이드라인’은 5월쯤에 내놓고, ‘저성과 해고제도 도입을 위한 근로계약 해지 기준’은 6∼7월쯤에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정부주도의 노동시장구조개악 플랜B를 보다 분명한 형태로 공식화한 것이다. 정부와 사용자는 내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60세 정년연장이 적용되기 때문에, ‘임금피크제’와 ‘임금체계 개편’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이 관건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즉, 올해 상반기 임단협에서 장기근속자 임금삭감을 위한 임금체계개편과 임금피크제가 단협에 명시되지 않으면 엄청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조기에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위한 정부의 플랜B는 이미 가동되고 있다. 그 핵심은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을 ‘정규직 과보호’로 지목하고, 이를 해체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체결한 단체협약을 개악하라는 시정지도를 계획하고, 취업규칙을 쉽게 변경할 수 있도록 기준과 절차를 완화하고, ‘저성과’ 해고제도 도입을 위해 ‘근로계약 해지 기준·절차 명확화’ 지침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노사정위원회 합의결렬 이후, 정부의 행보는 애초 노사정위원회 논의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문제, 해법은 복잡하지 않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확산되고 있는 비정규직 규모를 줄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시·지속 업무의 정규직 고용 원칙과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을 법제화해야 한다. 또한 상시·지속업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또한 정규직·비정규직 차별문제의 근본 해법은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진짜 사장’과 교섭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데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토대로 한 한국노동사회연구소(김유선, 2014)의 분석에 따르면, 2014년 8월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는 852만 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45.4%에 달한다. 여기에 정부 통계에서 과소 집계되어 있는 △외주하청 등 간접고용 △특수고용 등을 고려하면, 실제 비정규직 규모는 50%를 크게 상회할 것으로 판단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상시적인 고용불안’, ‘노동기본권 박탈’, ‘임금과 노동조건의 차별’이라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초단기계약이 비일비재하고, 하청업체 변경과정에서 해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노조가입을 이유로 해고되거나, 하청업체가 폐업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비정규직 조직률은 2.1%에 불과해, 비정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스스로 방어하기 위한 단결권 행사조차 현실에서는 녹녹치 않음을 보여준다. 또한 2000년 이후, 지난 14년 동안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73만원에서 2014년 8월 기준으로 145만원으로 거의 두 배로 악화되었고, 비정규직의 평균 근속년수는 2.39년으로 정규직(8.28년)에 비해 턱없이 짧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현행 비정규직법과 노동관계법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비정규직 권리보장과 정규직 전환, 차별철폐를 위한 노동관계법의 전면 재개정이 필요하다. 직접 정규직 고용 원칙 확립, 원청 사업주 사용자 책임 확대,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 차별시정제도 전면적 개선, 특수고용노동자 노동 3권 보장, 인력공급사업과 도급의 구별기준 확립, 파견법 폐지 등 노동관계법을 전면 재개정해야 한다.

 

특히, 노조법 2조의 개정이 중요하다. 제2조 1항의 ‘근로자’ 개념을 확장하면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노동 3권을 보장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제 2조 2항의 ‘사용자’ 개념을 확장하면, 근로계약 체결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비정규직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원청과의 교섭이 가능해진다.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근로조건에 대한 지배력 또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청이 하청노동자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이미 대법원 판례로 확정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부당노동행위 책임을 진다면 당연히 교섭상대방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이며,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노조법 2조를 개정하는 것이 절실하다.

 

현재 청년실업 문제의 원인은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열정 페이 등으로 상징되는 저임금 나쁜 일자리로는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더구나 현재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고용의 사다리’가 끊어져 있어, ‘저임금 덫’에 빠지면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 노동시간 단축 ∇ 재벌들의 사내유보금 활용 ∇ 통상임금 정상화를 통한 장시간 노동 조장하는 경제적 유인 제거 등이 필수적이다. 특히, 노동시간 단축 정책의 일자리 창출 능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동부가 지난 4월 13일에 발표한 ‘고용창출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되는 정부 정책 23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고용영향평가 결과’에 따르면, 장시간 노동 개선 사업이 규제개선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 현행 불법적인 주당 68시간 체제를 주당 52시간으로 단축해도 시행 첫해 1만 85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누적으로는 14만~15만 개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것으로 추산됐다. 노동시간 단축은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핵심 문제인 장시간노동체제를 극복하면서도 청년실업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해법은 멀리 있지 않다.

일, 2015/05/1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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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장지연 l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근혜정부가 국정을 책임지고 운영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약 1년 정도가 남아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국민에게 한 약속을 이행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내년도 예산이 어떻게 편성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면,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의지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는지 여부를 짐작할 수 있다. 복지동향은 이번 호에서 2017년도 복지 분야 예산 내용을 분석하였다.

 

복지국가로 가는 길을 열겠다며 화려한 비전을 펼쳐보이던 때와는 달리, 대통령 5년 임기 마지막 해의 복지예산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절대 금액에서는 약간 늘었다고는 하나, 이것이 거의 모두 노인관련 예산에서 늘어난 것인데, 이는 노인의 수가 늘어났기 때문이지 노인 1인당 예산으로 계산하면 오히려 줄어든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얻게 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앞으로 급속히 인구고령화가 진행될 터이므로 정말 작심하고 복지예산을 늘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 경우처럼 2~3% 늘리는 것으로 체면치레를 하려한다면 이는 결국 복지의 축소일 뿐이다. 

 

기초보장제도는 보호의 대상을 늘리고 보장수준을 높이겠다고 개별급여를 도입했는데, 수급자 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니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중위소득 기준이 인상되었다면서 예상 수급자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하위 소득자가 줄어들고 중간 소득자가 늘어난다는 말이다. 즉, 오직 시장메커니즘 만으로도 양극화 현상이 완화되고 중산층이 증가한다는 뜻이다. 무슨 근거로 이런 예측을 하는 건지 궁금하다. 

 

의료시설이나 보육시설의 공공인프라를 확충하는 사업은 모두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다. 서비스 인프라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이 복지국가로 가는 기초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심히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장애인 관련 예산이 대부분 삭감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매우 안타깝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것. 이 가치에 동의한다고 말들은 하는데, 현실은 점점 이로부터 멀어지는 것인가? 우리는 살면서 아프거나, 몸이 불편하거나, 아직 어려서 돌봄이 필요한 경우를 반드시 겪게 되어있다. 돈이 있으면 좋은 보살핌을 구매하여 살고 돈이 없으면 내팽개쳐지는 세상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 지나치게 높은 이상인가?

 

시장은 점점 더 경쟁적인 환경으로 치닫는다. 일자리를 놓고, 이윤을 놓고, 성과를 놓고, 임금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세상이다. 이 흐름을 역전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지옥을 피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겠으나, 협동과 배려가 선(善)임을 외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핵심은 분배에 있다. 유사 이래 경험해보지 못한 최고의 생산성을 구가하면서도, 나누는 지혜가 없어서 지옥에 살 수는 없다. 기업은 최고의 인재를 데려다가 좋은 성과를 내라.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사회에 정당한 대가로 세금을 내고, 국가는 시장에 내다 팔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을 포함하여 모든 이들이 더불어 살아갈만한 환경을 만들어내라. 

화, 2016/11/0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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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금, 희망합니까?

“희망은 밝고 환한 양초 불빛처럼 우리 인생의 행로를 장식하고 용기를 준다. 밤의 어둠이 짙을수록 그 빛은 더욱 밝다.” _올리버 골드스미스

2016년 대한민국은 희망보다는 절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경제성장 동력이 멈췄고, 청년실업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양극화는 심화되어 ‘불평등’은 사회적 질환이 된지 오래다. 어쩌면 곪고 곪아 터지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우리는 ‘희망’보다는 ‘절망’을 이야기하기 쉽다.

‘시민희망지수’를 발표한다고 하니 ‘때’를 잘못 잡은 것 아니냐는 냉소적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이 그 때일 수도 있다. 곪고 곪아 터져버린 상처 부위와 통감을 문진하기 위해서는 ‘지금, 어떤지?’, ‘앞으로, 어떨 것 같은지?’ 시민에게 ‘희망’의 안녕을 물어야 한다.

“우리가 과연 ‘우리 안의 희망’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요소와 근거로 희망하는가?”, “한국은 왜 살기 어려운 나라인가?”, “희망을 갖기 위한 실천적 행동이 뒤따르고 있는가?”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희망제작소는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 여정은 꼬박 1년이 걸렸다. ‘희망’이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을 측정하고 그 지수를 개발한다는 것에 대한 혼란스러움으로 내부적 논의과정이 길어졌다. 게다가 선행연구가 거의 없다는 점도 이 연구의 어려움과 한계로 작용했다. 전문가들 또한 개념과 측정방법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 어려움과 한계를 극복하게 한 것은 ‘희망지수 시민자문단’들의 관심과 참여였다. 그리고 한 전문가의 “희망제작소라서 그런 연구가 가능하니 과감히 도전해보기를 추천한다. 희망제작소에서 물꼬를 터주면 이후 학문적 정교화 및 후속연구는 우리들이 해보겠다”는 격려와 응원의 이야기였다.

도저히 잡히지 않는 실체를 찾아 돈키호테의 희망처럼 호기롭게 연구를 시작했다. 이후 연구진은 애초의 ‘희망지수’ 개발에서 ‘시민희망지수’ 개발로 생각을 정리하는 ‘이름표’를 붙이면서 연구범위를 보다 명확히 할 수 있었다. 학문적 · 이론적 검토를 토대로 시민이 느끼고 말하는 우리시대 개인의 삶과 사회에 대한 희망인식을 알아보는 방향으로 연구의 방향을 잡았다. 측정방법 또한 계량가능한 것들의 폭압에서 자유로워져 복잡하지 않게 설계했다. 일단 이렇게 연구팀의 희망경로를 잡고 ‘시작’을 했다. 시민들과 함께 했고, 시민들이 자신의 삶과 우리 사회를 진단했다. 이후 과정도 시민참여 방식으로 과제들을 기획하고 실행해 갈 것이다. 다시 한 번 희망지수 시민자문단 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

희망제작소가 올해로 열 살이 되었다. 이 연구의 가장 든든한 지지는 시민과 함께하는 실천적 조직의 10년 역사와 활동결과를 통해 받았다. 창립 이래 줄곧 뜬구름을 잡아 땅위에 온갖 희망의 근거와 작동원리를 증명해온 ‘희망제작소’라는 “희망”을 만들어가는 시민들의 힘이다.

모쪼록 이 연구가 미흡하지만 ‘시민희망지수’의 원년을 알리는 물꼬로서 희망제작소의 의미있는 또 하나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후반부에 다다르자,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것과 ‘희망을 만든다’는 것이 결국 인간의 존엄성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사실을 인지하게 된 연구팀은 큰 축복을 얻었다. 희망을 부르면, 희망은 우리에게 온다. 희망은 결코 늦은 법이 없다.

화, 2016/11/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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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민족으로서 우리의 건국설화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여 매우 특별하다. 대부분 나라의 경우. 건국설화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배경으로 설정하거나 초인적인 영웅의 이야기로 출발하여 지배권력을 미화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하여, 우리 설화의 경우에는 태백을 거점으로 삼아 상제의 아들인 환웅이 보기에 아름다운 땅을 선택하여 나라를 세우면서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이의 근본으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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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 모셔져 있는, ‘환인, 환웅, 단군왕검’의 초상화

단군신화로 알려진 위의 이야기가 후대에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지어낸 것인지, 오랜 역사 속에 체화되고 전승되어온 이야기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한반도의 역사를 관통하는 문화적이며 정치적인 토대를 형성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인간의 언어로서 가장 감동적이며 성스러운 내용을 담아낸 성경의 주기도문과 같이,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해 나라를 세우며(이화세계) 널리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것으로 규범(홍익인간)을 삼는다는 것은 종교사적 견지에서는 황금률적인 표현이며 정치학적 의미에서도 제1의 공의적 원칙이다. 이번 글을 통하여 상기의 원칙들이 한국 역사에 투영된 기록을 찾아가며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가름해 보고자 한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무속적 신앙에 기초한 공동체적 모습으로 수렵사회를 반영한 제천행사가 부여 영고, 동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 등 형태로 행하여졌다고 전해지며, 농업이 번성하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단오와 추석과 같이 마을 사람 모두가 함께 음식과 가무를 즐기는 명절로 발전해 왔다고 한다.

이후 신라의 기록을 보면 불교가 전해지면서 지배계층인 화랑이 중심이 되여 향도(香徒)라는 조직이 만들어져 지배질서로서 종교적 규범을 강조하고 생활의 실천적 지침을 삼아 내려오다, 이후 일반백성에게까지 조직이 확산되면서 새로이 절을 짓거나 탑을 쌓거나 불공의 행사에 다중들이 함께 모여 공력을 제공하고 신앙적 공동체를 형성해 왔다.

고려 왕조로 들어서면서 종교적 배경과 행사를 위해서 조직되고 활동하였던 향도는 이제 향촌의생활 속에 자리를 잡으면서 香徒가 아닌 鄕徒가 되여 생활의 공간과 내용을 공유하면서 함께 노동하고 함께 즐기고 서로를 도와가는 양속으로 이동했다. 마을의 공동노역, 혼례, 장례, 마을 수호신 제사를 함께 치르면서 자연스레 상부상조적 조직으로 변모해 갔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한민족 역사를 줄곧 관통해온 두레라는 협동적 노동방식과 상부적 자조금융인 다양한 형식의 계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향촌의 통치 방식에서도 지방을 대표하는 인물을 내세워 왕권을 대신하여 중앙에서 향촌으로 파견된 관리 간에 협의 내지는 역할 분담을 이루면서, 읍사(邑司)가 중심이 되어 일종의 지역자치를 이루면서 내려온 셈이었다. 그러나 고려말 성리학이 도입되어 확산되면서 자치적 성격이 강했던 향도와 읍사는 양반 중심의 지배계층에 의해 유교의 가르침과 규범을 가르치는 향약(鄕約)으로 흡수되어 재구성된 것으로 보여진다. 향약은 사원과 함께 향촌에 뿌리를 내린 사림의 지위를 강화하면서 중앙정치의 훈구 세력에 맞서는 일종의 정치적 거점으로 변모한다.

왕권을 정점으로 하는 신분제적 관료체제인 고려와 조선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경제의 축을 이루는 농업 기반인 토지의 사용 및 소유의 형태와 조세정책의 변화에 따라 이해를 달리하는 지배권력간의 이권과 세력다툼, 그리고 권력의 틈새에서 민중들 스스로 자조하고 순응하며 때로는 협약하고 저항해온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경제의 기반과 운용의 결과물을 놓고 지배계급과 기층민중간에 전개되는 ‘정치동력학’적 궤적이다.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확고히 정립한 조선조 초기에는 주요 경제기반인 농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산업정책의 기본으로 정하고 소농의 농민을 중심으로 백성을 위한 민본(民本)의 왕도사상을 정치적 지향으로 삼아 왔다.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 조준 등이 비록 의도했던 균전제를 온전히 도입하지 못했으나 과전 및 직전법을 시행하여 고려 말 혼란하고 무질서했던 토지 소유관계와 조세체계를 바로 잡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왕족과 세도가들의 토지겸병 현상이 심화된다. 수조권을 기반한 토지지배구조가 약화되거나 붕괴되고 매득(買得), 장리(長利,) 개간(開墾) 등 통하여 토지의 사적 소유가 확대되면서 농지를 떠나는 유민(流民)들이 대거 발생하고, 일부 양반들이 사노(私奴) 또는 소작농으로 전락된다.

이에 지방에 기반을 둔 사림세력은 성리학의 창시자인 주희가 만든 주자증손여씨향약을 제도적 모범으로 삼고 사원과 유향소의 부활을 구실로 삼아, 탐욕스런 중앙의 왕족들과 세도가들을 견제하며 나라의 기반인 농촌사회가 무너져 가는 것을 방지하고 성리학을 정치사회적 규범으로 삼아 봉건적 질서를 유지하고자 목숨을 건 정치투쟁을 전개한다.

중종에서 시작하여 명종을 거쳐 임진왜란 전의 선조 대에 이르기 까지 백 년 가까운 세월 동안, 김안국이 경상도 관찰사 시절에 향약을 한글로 보급한 것을 시작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인물들인 조광조, 이퇴계 그리고 이율곡 등으로 이어지면서 사림파와 훈구파 간에 성리학의 해석을 겸한 권력투쟁과 향약논쟁의 역사가 펼쳐진다.

향약의 내용을 살펴보면 중국 섬서성의 한 향촌에 국한되어 행하였던 여씨향약을 주자가 국가단위의 시행을 위하여 새로이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주나라의 제도를 따라 다음과 같이 주요 4개의 덕목으로 요약하였다.

덕업상권(德業相勸) : 좋은 일, 바른 일은 서로 권한다.

예속상교(禮俗相交) : 미풍양속으로 서로 교제하여 이를 널리 확산시킨다.

과실상규(過失相規) : 잘못한 일은 지적하고 비판하여 바로 잡는다.

환난상휼(患難相恤) : 개인 또는 향촌이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돕고 함께 극복해 나간다.

향촌에 거점을 두고 있던 조선조 사림의 양반들은 상기 향약의 내용과 제도를 무기로 삼아, 한편에서는 중앙정치의 세도가들의 탐욕과 패악을 견제하면서, 동시에 성리학적 윤리도덕을 기반으로 현존의 상하 신분관계를 분명히 하는 가운데 향촌의 공동체에 자발적 참여를 통한 자치기능을 부여하여 스스로 규계(規戒)하고 향촌을 유지 발전시키는 규칙을 세우며 고조선 이래 배달민족의 양속인 향음주례(鄕飮酒禮)의 전통을 지켜 나가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사림파들의 향약 실천에 대한 강력한 요구와 움직임에 대하여 중앙의 왕족과 세도가들은 다양한 이유를 들어 거부한다. 예건데 인물이 부족하다거나, 인심과 풍속이 투박하여 오히려 역작용의 폐해가 예상되며, 신분제의 붕괴가 염려되고, 왕권의 향촌을 다스리는 힘이 약화된다는 등 이유를 핑계로 삼아 몇 번의 사화를 통하여 사림파들을 숙청하고 제거하는 과정을 거친다.

권력의 다툼과 논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향약은 오래된 것으로 이를 실시된 곳마다 사람들이 서로 보살피고 돌아보며, 서로 돕고 질병에 함께 대응하며 구제하며, 자제로 하여금 유학의 가르침을 따라 효제의 뜻을 두텁게 하는 것을 가르치니, 삼대지치(三代之治)를 융성하게 하고 풍속을 아름답게 한다 – 化民成俗”라는 상소에 따라 중종 시절부터 적극적인 시행을 논의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매우 주목할 만한 인물이 조선중기 최고의 지성이자 실천적 행정가였던 이율곡 선생이다. 본인이 관직에 있을 당시 향약을 권하면서 파주향약의 서문을 직접 작성하였고 청주목사로 재직 시에는 서원향약을 만들어 시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선조가 향약을 전국적으로 시행하려 하자 오히려 시기가 너무 이르다(時期太旱)고 주장하며 시행을 보류하도록 간곡히 주청하여 계획을 중단시켰다. 더욱 기이한 것은 본인이 훗날 향촌에 머물면서 다시 완성도가 매우 높은 해주향약을 제정하여 보급하였다는 사실이다.

일견 서로 모순되고 상반된 이런 대목은 선조라는 못난 왕의 됨됨이를 살펴보면 이해가 가능할 듯하다. 사림들의 줄기찬 요구에 따라 신하들의 논의를 거쳐 향약의 전국적 실시를 결심할 단계에서 이율곡은, 선조가 민본의 왕도정치에는 별로 뜻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왕권 강화에만 마음이 머물러 있어, 이런 상태에서 향약을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향촌의 자치적 기능과 양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훼방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왕권과 중앙정치의 강화를 위한 하부 조직으로 전락할 것을 심히 염려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점은 필자가 제3 섹타경제론의 서론에서 제기한 지적과도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겨우 유아기 수준에 머물고 있는 현재단계의 사회적 경제영역은 당연히 지자체를 포함한 정부와 공공기관의 법제적 도움과 재정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揚水論), 제3 섹타가 추구하는 자발적 참여와 스스로 역동적이어야 할 네트워크 형성을 정치와 행정 권력이 저해하거나 왜곡시켜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되풀이 언급하지만, 제2 섹타와 더불어 세 분야 영역 모두 병렬적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율곡 선생이 보여준 천재적이면서도 백성을 진심으로 위하는 실천적 지식인의 전형적 모습을 다시 한번 반추해 볼 수 있다. 그는 단지 패자적 왕권과 세도가들의 영향을 차단한 것만이 아니라, 주자에 의해 체계화된 여씨향약을 당시 조선의 현실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하여 실천적인 내용을 담아내었다. 자발적 참여와 회원들간 원만한 합의를 유도하기 위하여 향약의 조직과 운영에 대한 세칙을 정치하게 기술하였고, 실천적이고 구속력 있는 모임이 되기 위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선악부(善惡賦)의 작성 요령과 규칙을 세밀히 규정하여 향촌내 세력가들이 행할 자의적인 패악을 엄하게 금하였으며, 향약의 기능을 사창(社倉)과 통합하는 사창계약속(社倉契約束)을 제창하여 현대적 의미에서 향촌단위의 사회안전망적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율곡 선생이 지향했던 향약 실천의 뜻을 다시 정리해보자면 단순히 기존의 지배 질서를 온전히 유지하고자 하는 것을 넘어서서, 위로부터의 통치가 아닌 백성들의 자발적 참여에 따른 자치를 이루고, 성리학적 규범 가치를 공유하면서 예(禮)를 통한 윤리적 절제로 향촌의 도덕적 질서를 유지하며, 향촌 단위로 상호부조를 통해 사회경제적 안전망 기능을 부여하고, 전체적인 강제보다는 개인과 공동체간의 관계성 회복에 초점을 두었다 할 것이다.

이는 필자의 앞선 칼럼 ‘인본적인 사회주의자’에서 소개한 19세기 초 프랑스 사상가 사를 푸리에의 기획과 일맥 상통하며 1990년대 노벨경제학을 수상한 인디애나 대학의 오스트롬 교수의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라는 저작에 담긴 구상과 비견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다시 한번 대학자의 경륜과 가르침에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하고 싶다. 안타까운 것은 필자가 역사 공부에 어둡고 한문이 서툴러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분야의 전문학자님들께서 좀더 구체적이고 풍부한 내용을 밝혀주시길 희망할 뿐이다.

아쉽게도 향촌 단위의 자치적 분권을 의도하였던 향약의 보급과 시행은 임진왜란 이후 기존 신분제의 급격한 붕괴, 다양한 원인으로 촉발된 농민층의 분화, 향시(鄕市)를 넘어선 격지 간 상업의 발달, 세도정치의 패악, 삼정의 문란 등으로 멈추어 서게 된다.

반면에 사림의 양반이 주도하였던 향약 운동을 대신하여, 모내기를 도입한 이양법으로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왔던 일반 백성 중심의 집단협동적 노동방식인 두레와 상호부조적 금융시스템인 다양한 계의 모임이 활발히 되살아 나고, 외척과 부패한 관리 등 지배층의 탐욕과 패악에 대항한 산발적인 민란이 지속되면서 새로운 자각과 실천 운동들이 벌어지게 된다.

청제국을 파탄내는 서세동점 흐름과 한국땅에 상륙한 가톨릭과 개신교 등 기독교의 충격 속에 북학파를 시작으로 전개된 다양한 실사구시적 운동, 위로부터 자강을 시도한 개혁파의 시도, 일반 백성들의 근대적 각성을 촉발한 동학을 중심으로 사회변혁운동 등이 전개되었고, 불행하게도 이후 일제강점기, 해방과 분단 등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반쪽뿐인 현대 한국의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칼럼_181004(4)통일뉴스
사진: 통일뉴스

2018년 현재, 남한사회는 양가(兩價)적이며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견 일인당 GDP가 3만 불을 넘어서면서 수치상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였고, 국력에 있어서도 세계 11위권을 유지하면서 강력한 미들파워 국가로 부상하였다. 반면에 외부적 조건이 불리한 가운데 양극화가 극심하고 사회적 불안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소득의 불평등 상황이 미국과 함께 OECD국가 중 가장 열악하여 1%의 국민이 20% 정도의 소득을 점하고 있고, 자산소득은 더욱 극심하여 이의 정도를 알려주는 피케티지수(국민순자산/국민총생산)가 10에 근접하고 있으며 (역사적 경험으로 지수가 6을 넘어서면 전쟁을 부추긴다고 피케티는 설명하고 있다), 1%의 부자와 재벌기업들이 민간소유 토지의 50%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자본 시장의 경우는 심한 정도를 넘어서서 1%의 자본가가 90%의 배당소득을 차지하는 등 극한적인 실태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한국의 사회경제적 현실은, 마치 왕족 및 세도가와 이들의 하수인격인 권노(權奴)들이 불법적인 토지겸병의 탐욕으로 국가질서를 뒤흔들고 온갖 수단으로 백성들을 수탈하던 조선중기 이후의 패악스런 모습이 다시 부활한 듯, 더욱 뿌리를 깊이 내린 채 난공불락의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타결책으로 어리석게도 국민소득 4 만불의 수치적 성장론을 제시한다거나 소중한 그린벨트를 풀어서 주택 건설량을 늘려 투기를 막고 주거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상황을 더욱 나쁜 방향으로 악화시킬 뿐이다.

핵심은 소수를 위하는 양적 성장에서 전환하여 일반시민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민본중심의 사회경제적 운영의 철학과 방향 위에서, 저마다 생업에 전념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투기적 부동산 소유에 대해 실질적이며 현실적인 고통을 가하고 불로적 지대소득에 대한 확실한 누진과세를 적용하며, 경제적 성과를 국민 모두가 골고루 향유하는 배분과 순환의 원칙을 정립하는 것이다.

역사적 변혁기에 서있는 한국사회는 당면한 문제를 본질적으로 직시하고 접근해야 한다. 부패하고 탐욕스런 무리와 이를 부추기는 관행 및 제도에 대항하여, 향촌의 사림들이 시도하였던 향약의 시행과 더불어 백성들의 자조적인 운동이었던 두레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것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건국 신화로 전해지는 이화세계와 홍익인간의 역사문화적 DNA를 다시 발견하고, 이를 사회생물학적으로 우리 생활 속에 살아있는 유전적 밈(meme)으로 진화되도록 제도와 관행을 바꾸어 가야 한다.

목, 2018/10/0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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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장지연 |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불안정한 노동은 곧 불안정한 삶이다. 적어도 일정 기간 고용과 소득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될 때 미래에 대한 계획도 세우고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는 평범한 삶을 꿈꿔 볼 수가 있을 텐데 그럴 수가 없다. 중년의 불안정노동은 자녀에게 필요한 교육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 빈곤의 대물림이며, 자신의 노후 빈곤으로 이어진다. 

 

불안정한 노동은 또한 무한경쟁의 삶이다. 지금 나의 일자리가 언제 다른 사람의 일자리로 바뀔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좀 더 싼 임금으로 일할 수 있다며 고용주에게 읍소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우리 스스로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하고 있는 시장의 효율성이고 경쟁의 미덕이다. 문제는 이것이 ‘인간의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정신에는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이다. 결과는 ‘바닥을 향한 질주(race to the bottom)’이다. 노동과 자본의 관계는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 있기 때문에 균형을 조금이나마 맞춰보고자 근로기준법이 있고, 사회보험 가입의무 같은 제도가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힘을 합쳐 대응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 할 권리를 부여한다. 그런데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에게는 이 모든 것이 그림의 떡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나 최저임금 인상,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일자리 안정자금 같은 정책들이 불안정한 노동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불안정한 노동은 단순히 한시적 고용(temporary employment)의 문제가 아니다. 고용주가 노동자를 단기적으로 고용해서 발생하는 문제는 노동 전반을 불안정하게 하는 현상의 절반만 설명할 뿐이다. 고용주는 하청이나 특고(특수형태근로종사자) 노동자에 대해 ‘우리 회사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미국의 한 학자는 이것을 ‘노동자 털어내기’라고 부른다(데이비드 와일, 2016, 『균열일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식당의 배달노동자였던 사람이 지금은 스스로를 ‘개인사업자’라고 이해하고 있다. 아프거나 사고가 나면 일감과 함께 소득이 끊기는데, 이게 모두 내가 책임져야할 일이라고 한다.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으로 화두가 되고 이에 대응하여 ‘기간제법’이 제정된 시기가 2007년이니, 겨우 10년 만에 불안정 노동의 문제는 기간제 노동 뿐 아니라 간접고용, 특고, 위장자영의 문제로 오히려 확산되는 양상이다. 한두 가지 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 되겠다. 하지만 불안정 노동자의 증가가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상황인 것은 아니다. 이번 호 기획기사들이 뜻을 모으고 지혜를 모으는 중요한 한 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목, 2018/03/0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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