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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지리산 청춘들의 ‘작은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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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지리산 청춘들의 ‘작은자유’

익명 (미확인) | 화, 2015/07/21- 13:00

그동안 ‘뭐라도 하는 청년들’에서는 지금 자기 자리에서 변화를 만들고 있는 청년들의 활동을 소개했습니다. 지금도 ‘가만히 있으라’에 맞서 뭐라도 하기 위해 좌충우돌하고 있을 청년들에게 뜨거운 응원과 연대의 마음을 보내며 마지막 이야기를 전합니다.


뭐라도 하는 청년들(5)
지리산 청춘들의 ‘작은자유’

지리산이 품은 남원시 산내면에는 귀농귀촌인이 많다. 전체 가구의 1/4 가량이 귀농귀촌 가구다. 90년대 말, 실상사에서 열었던 귀농학교를 통해서 많은 30~40대 젊은이들이 아이들과 함께 귀촌했고 이제 그 아이들이 성장하여 스무살 무렵이 되었다.

귀촌을 선택한 것은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을 따라 내려와 지리산에서 자란 청춘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이곳에서 재미있게 살 수 있을지 스스로 탐색할 기회가 필요했다. 도시가 궁금하기도 했고, 시골이 심심하기도 했다. 이곳 산내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수 있을지도 막막했다.

각자 고민과 탐색 기간을 가진 귀농귀촌인 2세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산내에서 살아보기를 선택한 이내와 탁구가 ‘어느 마을에 누가 사는데 그 애도 외롭다더라’는 정보가 입수되면 전화를 돌렸다. 이렇게 지리산에서 즐겁게 살아보기로 한 청춘들의 열 명이 모여 ‘작은자유’가 탄생했다.

이들은 마을에서 자립하면서 살아가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로 했다. 멤버 중 여섯 명이 모여 <살래청춘식당 마지(이하 ‘마지’)>라는 커뮤니티 밥집을 만들기로 했다. 이들은 마을에서 내놓은 작은 식당을 인수해 마을에서 십시일반 도움을 받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공사비용을 모았다. 밥집 오픈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희망제작소(이하 ‘희망’) : 커뮤니티 밥집은 지금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요? 준비과정에서 즐거웠던 에피소드가 있으면 들려주세요.

쏘야 : 커뮤니티 밥집은 ‘음식을 매개로 마을, 청년, 세상과 소통하는 공간’이고요. 저희가 ‘살래청춘식당 마지’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우리 공간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을 환대하며 맞이하고 싶은 바람을 담았어요. 또 우리가 지리산 작은마을 산내에서 즐겁고 지속가능하게 잘 살아보기 위한 첫 번째 프로젝트라는 뜻에서 ‘맏이’라는 의미도 담았고요. 단순히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 이 공간을 매개로 다양한 만남들, 교류들, 작당들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식당 오픈을 위한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어요.

느꽁 : 기억에 남는 일은 프로젝트 마지 워크캠프를 한 거예요. 공간 재구성을 위한 공사를 도우며 지리산 청년들의 싱그러운 기운을 함께 나눌 워크캠퍼를 모집했었는데요, 그 공고를 보고 정말로 새로운 분들이 오셔서 일을 도와주시고, 같이 이야기 나누고, 마지와 작은 자유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신 게 기억에 남아요!

탁구 : 제일 먼저 했던 공사가 기억에 남아요. 이전 식당이 우리 콘셉트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좌식으로 되어 있는 콘크리트 부분을 깨어내야 했었는데 그날이 처음으로 우리가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힘들었지만 다 같이 하니까 할 만했어요.

봉자 :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목수이신 아버지와 같이 처음 화장실 루바(벽체용 목재)를 쳤을 때와 타카를 처음 쏜 날 엄청 재미있었어요. 주변에서 잘한다고 하니까 기분도 좋고요. 다음 날인가 아버지 없이 탁구와 방에 루바를 치면서 진짜 잘하는 것 같았는데, 본드를 안 발라서 나중에 다 떴던 게 기억에 남네요.

벼리 : 힘든 건 너무 많아서 하나 고를 수가 없어요. 같이 메뉴개발팀 하고 있는 느꽁이랑 관계 풀어나가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나와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과 같은 일을 해야 하니깐, 부딪힐 수밖에 없는 거예요. 오해가 생기면 바로 해소가 되지 않아서 쌓이기도 했는데, 한 번씩 댐을 터뜨리듯 얘기를 해야 하는 상황도 있어요. 흘려보낼 때는 재미있고, 다시 쌓을 때는 힘들고 그래요.

이내 : 다 재미있어서 딱히 하나를 말하기 힘든 것 같아요. 모든 과정이 슬프고 흥미롭고 재미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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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 밥집은 언제 오픈하나요? 밥집을 열게 되면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 같아요?

멤버들 : 원래는 7월 중에 오픈할 예정이었는데요. 공사도 웬만하면 저희가 다 하고 있고, 메뉴 개발이나 공간 운영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다 처음이라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리고 있어요. 예를 들면, 홀 바닥에 에폭시를 발랐는데 모두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처음 발랐던 색깔이 너무 연해서 ‘시골분들은 신발에 흙을 묻히고 들어오시는데 색이 너무 연한 건 아닌 것 같다’고 의견이 모아져서 다시 진한 색을 주문해서 바르고 말리고 있어요. 이 과정을 5일씩 반복해야 해서, 바닥 완성 후에 진행될 과정들이 밀리고 있죠. 좀 답답하고 속상할 때도 있는데 그래도 이 과정들을 통해서 배워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오픈은 빠르면 7월 말, 8월 초 안에는 하고 싶어요. ‘마지’의 공간 재구성을 위해 정성을 모아주신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면서 준비하는 우리들이 소진되지 않으며 즐겁게 준비하고 싶어요.

마지를 열게 되면, 다양한 일들이 일어날 것 같아요. 일단 저희가 지향하는 건, 마을과 청년, 세상에 열려 있는 마지에요. 마지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고, 만나고, 교류하고, 사부작사부작 새로운 상상들을 현실로 만들어가면 좋겠어요. 구체적으로 이곳을 기반으로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소개할께요.

첫째는, ‘청년기금’인데요. 사실 각자 배우고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데 그걸 산내 안에서만 충족하기는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산내의 청년들이 배움과 성장의 기회를 가지는데 필요한 교육의 기회를 갖고 싶을 때 청년기금을 통해 지원하고 싶어요. 이 청년기금은 마지의 수익금으로 적립하고자 해요.

둘째는 ‘청년 맞이 프로그램’이에요. 자신의 일을 스스로 개척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청년들을 지리산으로 초대해 교류하면서, 산내에 있는 청년뿐만 아니라 미래의 청년이 될 청소년들도 자신의 미래를 모색하는데 힘이 되면 좋겠어요.

세 번째는 ‘마을 맞이 프로그램’이에요. 산내에는 마을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는 여러 소모임이 있는데 여기에 밥을 나눌 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서 그들의 지혜를 청년들과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해요.

희망 : 멤버들은 어떤 재주가 있고, 각자 관심사나 고민은 무엇인가요?

탁구 : 탁구를 잘해요. 제빵왕 하탁구! 한때 마을 제빵 작업장에서 일하면서 제빵왕을 꿈꿨는데 작은자유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서 지금은 ‘어떻게 하면 산내에서 재미있게 놀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관심사가 되었어요.

멤버들 : 탁구는 작은자유에서 ‘회장님’ 역할을 맡고 있어요. 처음 작은자유를 만드는데 이내와 함께 큰 기여를 했고, 대외적으로 발표할 일이 있을 때 파견이 되는 등 작은자유를 대표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탁구는 다른 사람과 원만하게 잘 어울리고, 다른 사람에게 비어 있는 부분들을 잘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벼리, 느꽁을 이어 제3의 셰프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느꽁 : 저는 ‘달디 달다’라는 뜻에서 단달디 느꽁입니다.

멤버들 : 재주하면 느꽁이죠. 일단 음식부터 악기 다루기, 농사, 등등 못 하는 게 없고요. 우는 사람을 잘 안아줘요. 사랑이 많아요. 핀잔주기는 덤이구요. 느꽁에겐 철학과 가치가 중요한데 그것들이 본인에게 납득되는 과정이 중요해요. 이번에 메뉴개발팀으로 마지와 함께 하면서 본인이 힘들었던 지점도 그런 거 일거에요.

봉자는 일을 잘해요. 나이에 맞지 않은 진중함. 격이 있어요. 뭐든 빠르게 배우고 남들보다 잘해요. 워크캠프에 참여자에게 작별 선물로 노트북 책상을 뚝딱 만들어 주었어요. 대박! 봉자는 몰입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힘들지라도 몰입하기로 마음을 먹으면 결과물은 훌륭한 것 같아요. 봉자에겐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봉자 : 뭐 하고 살지가 가장 큰 관심사이자 고민이죠. 잘 알고 잘할 줄 아는 나의 분야가 있으면 좋겠고, 일 외에 여가를 즐기면서 사는 삶이면 좋겠고, 여행하는 삶이었으면 좋겠어요.

멤버들 : 벼리는 일머리가 짱이에요. 손이 커요. (무서운) 엄마 같아요. 맛있는 걸 해서 나눠먹는 거, 그게 큰 재주인 것 같아요.

벼리 : 일을 잘 벌려요. 뒷수습이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지만 많이 벌리니깐 그중에 걸려서 되는 비율이 높은 것 같아요. 시작할 땐 에너지가 늘 많아요. 끝까지 있지는 않아요. 요새 가장 큰 관심사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이에요. 나라는 사람, 내가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어디서부터 왔을까 하는 고민, 생각 하나 행동 하나도 뭔가 학습되었거나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 고여서 나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어 실수를 하거나 어떤 행동이 올라올 때에는 이게 어디에서 왔을까 고민하게 돼요. 어떻게 하면 잘 풀 수 있을까, 이게 화두죠.

멤버들 : 이내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감사를 잘해요. 센스가 있어요. 본인의 생각과 가치관이 뚜렷해요. 판단 기준이 되는 거. 본인 안에서 판단하는 기준이 확고해요.

이내 : 지금 우리가 공동체로서 같이 일을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과 만났을 때 일어나는 일을 보면서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라는 걸 생각하게 돼요. 현재 관심분야는… ‘마지’입니다. 마지를 하면서 너무 인테리어에 초점을 두고 일을 하고 있어서 그 후에 할 일에 대한 고민이 거의 없는 것 같아서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멤버들 : 쏘야는요…. 우주 감성! 그리고 끊임없이 일 생각을 해요. 일에 대한 중요성을 잘 염두에 두고 챙기죠.

쏘야 : 우리가 어떻게 산내에서 재밌게 지속가능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이게 최대 화두이자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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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 작은자유가 그동안 해온 것들 중에 가장 의미 있는 건 무엇일까요? 함께 추구하는 가치가 있나요?

이내 : 만난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만났으니깐 여기까지 왔고요.

봉자 : 작년 11월에 완주에서 했던 청년귀촌캠프에 갔던 게 의미 있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아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청년들이 있구나’ 알게 되었고, ‘우리도 이 사람들처럼 여러 가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계속 서로 도움을 받고 의지하고 있고요.

느꽁 : 작년 12월 산내에서 했던 시골살이 네트워크 파티요. 산내에 다른 청년들을 초대해서 우리가 준비한 프로그램으로 시간을 보냈었고, 같이 ‘지속가능한 시골살이’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죠. 그리고 정말로 우리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때 많이 인식했던 것 같아요. 이후 활동에 큰 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벼리 : 작년 말에 가졌던 연말 발표회기 좋았어요. 6월부터 시작한 작은자유 반년의 역사도 공유하고,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는 사회적경제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청년들을 만난 이야기도 마을 분들과 공유했죠.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것들을 돌아보는 자리였기도 했고, 동시에 마을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였기 때문에 더 감동스러웠어요.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싶고, 기특하다고 엉덩이 두드려 주고 싶고, 그런 느낌 있잖아요. 서로가 정말 만났다는 느낌. 마을과도 교류하고요.

멤버들 : 그래서 정리하면, 작은자유가 함께 추구하는 가치는 ‘만남’인 것 같아요.

희망 : 작은자유의 활동은 마을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 있나요?

벼리 : 작은자유에게 마을은 ‘울타리’ 같은 느낌이에요. 그 안에서 보호받고 있는 느낌을 많이 받고, 아늑한 느낌,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고민이 생길 때 털어놓을 수 있고, 조언 받을 수 있고, 어려운 고민거리를 주시기도 하지만 안정된 느낌도 있고요.

쏘야 : ‘우리가 망하게 내버려두진 않을 거야!’라고 든든하게 믿을 수 있는 관계라고 할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관계인 것 같아요.

이내 : 산내가 가진 특수성이라든가 거기에서 오는 특혜도 있는데, 어쨌든 간에 시골 마을이고, 저같은 경우에는 도시에서 살다 와서 적응하지 못한 점과 거기서 부딪히는 점들이 있어요. 그러면서도 좋죠. 사람들과 인사하면서 산다는 거. 초등학생 친구들이 “안녕하세요!”인사하며 지나가고 서로 안부 자연스레 묻고 그런 것들이 좋아요.

벼리 : 길에 10분만 서 있으면 아는 차 10대는 지나갈 거예요. 그냥 길 가다가도 저 차 누구네 집 찬데 하면서 인사를 하게 돼요.

느꽁 : 마을을 통해서 작은자유가 청년모임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요. 우리 나이 때 또래 친구와 모이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받고 있죠. 이런 나이대가 시골에서 어떤 의미인가 생각하기도 해요.

희망 : 작은자유와 관련된 이런저런 자유로운 생각들은요?

느꽁 : 물놀이 갔다가 돌아오는 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걸어가시는 것을 보고 이내가 “작은자유 미래가 이럴 거야”라고 말했죠. “너희 할머니가 말이야…” 이렇게 손녀 손자들에게 이야기 해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벼리 : 그날이 올까?

느꽁 : 그건 모르지만, 어쨌든 그걸 보고 작은자유의 미래를 생각했다는 게 신기해요.

이내 : 재미있지 않아?

벼리 : 본인의 자식들이 서로 친구가 되거나… 싸우는 거 아니에요?

이내 : 딱 지금처럼만 계속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처럼만 역동적이고 지금 정도만 싸우고 지금이 딱 좋을 것 같아. 서로에게 애정이 있는 듯 없는 듯. 적당한 관계요.

탁구 : 작은자유가 ‘내가 산내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할 수 있게 했으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산내라는 동네가 좋아서 왔지만, 지금 산내에 사는 이유에는 작은자유의 영향이 큰 거 같아요.

봉자 : 지금처럼 이렇게 좀 어떤 일에 집중해서 에너지를 쏟는 것도 좋은데, 그냥 산내가 작은자유가 삶의 일부가 되어서 일상이 되어서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벼리 : 크게 바라는 게 없어요. 현재 상태에 만족해요. 하면 할수록 재미난 게 많이 생기니까, 상상하는 것들을 하나씩 다 이뤄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할 때마다 재미있음과 힘듦이 동시에 오는데, 그래도 각자 머릿속에 구상하고 상상하는 것들을 함께 다 펼쳐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쏘야 : 각자 손 안의 작은자유를 지켜갈 수 있길 바라고 있어요.

글_ 우성희(시민사업그룹 연구원 / [email protected])

* 이 글은 서면인터뷰와 블로그 지리산이음의 기사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작은자유 페이스북 바로가기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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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진로교육이 이 시대 청소년 과제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획일적 학력경쟁에서 벗어나 개인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 계발을 지원하여 청소년 개개인의 행복을 실현하도록 지원함으로써, 학벌과 스펙보다 창의성과 인성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입시 위주의 과열된 경쟁, 시대를 쫓아가지 못하는 교육의 질에 대한 불만이 지속되면서, 진로교육 역시 또 다른 획일성과 성과주의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처럼 진로교육은 획일화, 경쟁, 실적화 되고 있다. 단순 일회성 체험교육과 대학, 전공, 직업 찾기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꿈이 없는 청소년을 문제가 있는 것처럼 취급하며, 대답을 강요한다. 청소년들이 스스로 갈등하고 번민하면서 성장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에게 ‘무엇이 되라’ 강요는 하지만, ‘어떻게 살까?’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주지 않는다. 일방적인 자유학기제 도입으로, 해당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 과제를 익히느라 더 바빠지고, 해당 학교와 진로체험센터는 실적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우리는 진로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다가올 고용 없는 성장과 고실업 시대, 인공지능의 진화, 직업의 변화 등에 관한 대비를 온전히 청소년들에게 부담 지우지 않는지 반성해봐야 한다. 청소년들에게 자유, 행복, 평화의 가치를 가르치기보다, 변화한 사회에 적응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진로교육은 직업의 나열일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진로교육의 중심에는 현재의 청소년이 있어야 하고, 이들의 자치활동이 보장되어야 한다. 스스로 정리하고 대안을 찾는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슬기로운 교사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가 하지 않은 일이 없다’라는 시 구절이 있다. 청소년들에게 자유와 행복, 평화롭게 살 권리 등의 근본적인 가치를 우선 가르쳐야 한다. 일과 삶을 연결하고,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고민하는 과정을 진로교육을 통해 구축해야 한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며 새로운 청소년 문화공간을 만들고, 청소년의 창의성과 인성을 성장시키는 체험프로그램과 캠프, 생명과 인권을 존중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확산하여 청소년 대안교육으로서 진로 교육과정을 이뤄야 한다.

그러나 사회의 주류 시각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더 강해지고 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업, 성공적인 삶에 대해 고정된 시각을 강요하고 있다. 진정한 청소년 진로교육은 이 벽을 허무는 작업부터 진행돼야 한다. 한 분야에 뛰어난 청소년이 성공하는 모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청소년이 지금 이 순간 행복하고, 미래를 가감 없이 고민하며, 아파하는 특권을 이해하고 기다리며, 누구나 자신의 삶을 최고로 존중하는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올해 희망제작소와 함께 청소년 창의적 진로체험 활동인 ‘내-일 상상 프로젝트’(이하 내일상상)를 진행하고 있다. 기획이 잘 된 프로그램이다. 활동가들의 고민 흔적이 묻어난다. 휴먼라이브러리에서 사람책으로 모신 분들의 삶 속에 감동과 가치가 있다. 프로젝트 곳곳에 청소년의 자치성을 보장하고 노동·상상의 지혜를 주기 위해 여러 장치가 숨겨져 있다.

참여 청소년들이 내일상상 안에서 자유롭게 고민하고 놀며 상상하기를 바란다. 주체적인 활동을 통해 청소년 스스로 평가하는 내일상상이 되기를 바란다. 함께하는 청소년 지도자들의 혼이 숨 쉬고, 참여 청소년들의 땀과 열정, 눈물과 노동, 상상의 지혜가 어우러지길 바란다. 이렇게 모인 것들이 청소년들의 삶 속에서 평생 머무는 내일상상이기를 바란다. 내일상상이 청소년들에게 문화감수성과 창의성을 키우는 대안 청소년 활동공간을 제공하길 바란다. 청소년 권리와 참여를 북돋우는 지역사회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평화로운 지구촌, 다문화 사회를 이끄는 지구시민리더십을 교육하길 바란다. 이를 통해 우리 청소년들이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고, 지역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바람이 과하다. 이에 내일상상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청소년이 어른이 되었을 때, 그들에게 평가를 요청하는 것이 맞겠다.

슬기로운 교사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가 하지 않은 일이 없다.
– ‘배움의 도’ 중에서

글 : 조정현 | 전주 YMCA 사무총장

월, 2016/07/0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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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새 이름, '78만 원 세대'

'불사' 품은 사회에서 청년임을 원망하다

 

민선영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어김없이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다. 늦은 감이 있지만 먼저 새해 인사부터 드리고 시작하려 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올 한해는 지난해보다 나은 한 해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을 모든 분들이 안녕하길 바란다.

 

2018년을 맞이해 청년은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올해부터 우리는 88만 원 세대가 아닌 78만 원 세대이다. 청년실업률은 2017년 12월 기준 9.9%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당연히 체감실업률은 이보다 2배는 높은 22.7%임을 잊지 말라. 아, 적어도 3년 동안은 취업 빙하기라는 것도. 이 어려운 시기에 첫 직장을 가졌다 해도 안심할 수 없다. 15개월 후면 자의 혹은 타의로 직장을 그만둘 테니까. 낮은 월급과 장시간 노동을 꾹 참고 일하더라도 20대 워킹푸어(working poor)를 위한 근로장려세제(EITC)는 없다. 이쯤 되면 청년을 위한 고용안전망이 대체 무엇이 있겠느냐 싶지만, 그저 당신이 요즘 세상에 태어난 청년임을 원망하라.

 

이뿐인가. 서울의 청년주거 빈곤율은 2015년 기준 37.2%이다. 10명 중 4명은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에 스스로 뛰어들어야 한다. 스펙을 위해 상경한 이들이 보증금 1000만 원과 월세 50만 원으로 구할 수 있는 공간은 집이라고 부르기에도 무색한 6평짜리 방이 전부다. 대학교 진학을 위해 서울로 상경하지만 서울 소재 대학 기숙사 수용률 평균은 16.1%에 불과하다. 이쯤 되면 청년을 위한 주거안전망이 대체 무엇이 있겠느냐 싶지만, 그저 당신이 요즘 세상에 태어난 청년임을 원망하라.

 

또 있다. 부채가 있는 가구의 비율은 줄어들었지만 30세 미만 가구주의 부채는 2017년 기준 평균 2385만 원으로 2016년의 평균 1681만 원보다 41.9% 증가했다. 30대 또한 16.1%가 늘었다. 높은 고등교육비가 문제라면 학자금 '대출'을 받으면 그만이고 높은 주거비가 문제라면 전세자금 '대출'을 받으면 그만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청년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대체 무엇이 있겠느냐 싶지만, 그저 당신이 요즘 세상에 태어난 청년임을 원망하라.

 

여기서 '요즘 세상에 태어난 청년임을 원망하라'는 문장 속 방점은 '청년'이 아니라 '요즘 세상'에 찍혀 있다. 이유는 하나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청년이 겪는 어려움 또한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청년이 다른 세대보다 유독 어려운 세대니까 청년임을 우울해하라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 진입하는 20대에 맞닥뜨려야 하는 것이 비정규직과 고시원, 발목 잡는 대출이라면 삶은 진즉에 망가져 30대로, 40대로, 그 다음 세대로 안정적인 이행을 거치기 어렵다.

 

청년은 그 전에 청소년이었다. 가정의 보살핌을 받던 청소년기를 지나 안정적인 취업과 독립 그리고 새 가정을 꾸릴 것을 요구받는 시기가 바로 청년기다. 학교에서 직장으로, 가족과 살던 집에서 나 홀로 사는 집으로, 원래의 가족에서 새로운 가족으로 옮겨갈 때 대면해야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다. 왜 전체의 부는 증가하는데 나의 부는 증가하지 않는가? 왜 내 월급이 오르는 속도보다 집값 오르는 속도가 더 빠른가? 왜 정부는 가계부채를 해결하겠다며 최선의 복지로 또다시 부채를 제시하는가?

 

그렇게 청년이 마주하는 문제는 근본적으로 청년이 어떤 사회에 마주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양극화된 일자리, 규제 없는 부동산 시장, 대출을 권하는 사회가 그러하다. 이는 '불사'의 시대로부터 생겨난다. 이제는 마다할 수도 사양할 수도 없는 '불공정', '불평등', '불통' 그리고 '불안'이라는 네 가지를 불사라고 지칭한다면 이 불사를 구조적으로 품은 사회가 양산해내는 어려움에 청년은 맨몸으로 노출되고 있는 중이다. 가장 무너지기 쉽지만, 다시 일어설 자력 또한 충분할 이때야말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 다각도로 마련되어 있어야 그다음의 삶을 조망하고 건설해볼 수 있지 않을까.

 

지난해 12월 27일, 이낙연 국무총리는 정부 대표로 150여 명의 지역 청년활동가들과 대면했다. 그리고 6가지 숫자만으로 청년의 현주소를 짚었다. '100, 64, 52, 35, 0, -(마이너스)'는 대기업 정규직 임금이 100일 때, 대기업 비정규직 임금은 64, 중소기업 정규직이 52, 중소기업 비정규직이 35, 이런 기회조차 없는 청년이 0이며, 빚진 청년은 마이너스(-)라고. 청년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 우리를 동료 시민으로 인정해달라는 자리에서 정부는 또 다시 청년을 미취업자로 규정짓고 경제성장의 동력이어야 할 그들에게 일자리를 주면 그만일 시혜 대상으로 낙인찍은 것이다.

 

청년 문제의 본질이 일자리의 문제로 규정지어진다면 올해 논의될 청년 문제의 핵심은 또다시 실업 정책과 창업 정책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더군다나 유일한 청년 정책인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이 2018년에 종료되기에 그간 청년을 미취업자로 규정지었던 담론이 재생산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는 이 불공정한 사회에 발을 딛고 있는 청년들의 삶이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 테이블에 어떤 청년을 앉힐지, 어디까지 내다보고 단기적 혹은 중장기적인 정책을 설계해야 할지를 나눌 수 없다. 수면 위로 떠 오른 지 10년은 더 지난 이 세대 문제를 해결할 가장 기본적인 방법조차 마련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청년의 현실을 바꿔보겠냐는 말이다.

 

이제는 청년이 한국 사회의 경제성장을 위한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무에서 벗어나 한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을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되어야 할 때다. 청년의 목소리가 담긴 그래서 청년의 살갗에 닿는 진짜 청년 정책이 2018년을 안녕히 보내게 할 수 있길 바란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연재합니다. 

 

화, 2018/01/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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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나 역시 김지영 씨와 마찬가지로 1980년대에 태어났다. 다른 게 있다면 그녀는 대도시, 나는 농어촌 소도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는 점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내 고향에는 그 흔한 슈퍼 하나 없었다. 대신 이장님이 가정집 한 편에 생필품을 대량으로 사두고 마을 사람들에게 되팔곤 했다. 버스는 하루에 5번 정해진 시각에만 오갔다. 혹여라도 늦잠자서 첫차를 놓치는 날에는 1시간을 걸어 등교해야 했다.

2018년 3월, 희망제작소는 평창동 시대를 마무리하고 성산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깁니다. 새 터전에서 희망제작소는 ‘모든 시민이 연구자인 시대’를 실현하려 합니다. 생활 현장을 실험실로 만들고, 그 현장에서 뿌리내리고 있는 시민이 연구자가 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수송동과 평창동에서 희망제작소는 여러 실험을 했고, 이를 통해 많은 시민을 만났습니다. 희망제작소는 우리 사회의 어떤 요구에서 탄생했을까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시민과 함께 어떤 변화를 만들었을까요? 밀레니얼 세대(millenials)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글은 총 다섯 번에 걸쳐 연재됩니다.

* 밀레니얼세대(millenials) :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생한 세대.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정보기술(IT)에 능통하며 대학 진학률이 높다는 특징을 가진다. 2007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해 고용 감소, 일자리 질 저하 등을 겪어 평균 소득이 낮으며 대학 학자금 부담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결혼을 미루고 내 집 마련에 적극적이지 않다. (출처 : 박문각 시사상식사전)

[기획연재] 밀레니얼세대 다이어리 : ① 내 고향은 ‘식민지’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나 역시 김지영 씨와 마찬가지로 1980년대에 태어났다. 다른 게 있다면 그녀는 대도시, 나는 농어촌 소도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는 점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내 고향에는 그 흔한 슈퍼 하나 없었다. 대신 이장님이 가정집 한 편에 생필품을 대량으로 사두고 마을 사람들에게 되팔곤 했다. 버스는 하루에 5번 정해진 시각에만 오갔다. 혹여라도 늦잠자서 첫차를 놓치는 날에는 1시간을 걸어 등교해야 했다.
차를 타고 50여 분 달려야 당도할 수 있는 ‘시내’라고 불리는 곳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그곳에는 작은 규모나마 병원과 슈퍼, 음식점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따라 장이라도 보러 가는 날에는 신세계를 경험한 것처럼 길거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실제 내용과 무관합니다)

▲ 나는 농어촌 소도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실제 내용과 무관합니다

불편은 당연한 것?

고등학교 입학 후 얼마 되지 않았을 즈음 아버지가 암으로 쓰러지셨다.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씩 항암 치료를 위해 서울에 있는 병원을 찾았다. 치료가 끝난 후에도 추적 관찰을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했다. 병원에 가는 날에 아버지는 다른 일정을 일절 잡지 않았다. 이동에만 왕복 다섯 시간, 대기와 진료시간까지 합치면 일곱 시간이 넘게 걸리다 보니 하루를 꼬박 반납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호자 역할로 아버지 따라 병원에 가는 날에는 다른 약속을 잡을 수 없었다. 평생을 시골에서만 자라 처음으로 서울 땅을 밟게 됐지만, 그곳이 어떤 세계인지 살필 겨를 없이 병원만 찍고 집에 돌아가기 바빴다. 우리 부녀의 하루는 돌아볼 여유 없이 그 어느 때보다 잽싸게 지나갔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대도시로 ‘유학’을 가게 됐다. 고향에는 4년제는 물론 2, 3년제 대학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처음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 자취라는 것을 하게 됐다.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보다 생활비가 배로 들었다.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리겠다는 생각에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고달픈 생활이 이어졌지만 ‘유학’ 온 입장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실제 내용과 무관합니다)

▲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실제 내용과 무관합니다

아니, 당연하지 않았다

그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의심을 품게 된 것은 친구가 아프면서부터다.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병원에서 이상 징후 소견을 들은 친구는 그다음 날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했고 한 주 뒤부터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는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 후에는 영화 한 편을 보고 애인과 데이트도 했다. 밤늦은 시간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책을 읽는다고도 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하루를 꼬박 반납하면서 아버지와 서울 병원을 오갔을 때가 떠올랐다. 미묘한 이질감과 박탈감이 몰려왔다. 돌이켜보니 병원뿐만이 아니었다. 수능시험을 본 후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겠다고 서울에 갔던 때를 떠올렸다. 공연 관람비는 2만 원이었지만 왕복 교통비는 4만 원에 달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 하지만 서울에서는 왕복 2천 원이면 공연장과 집을 오갈 수 있다 했다. 내 고향에는 대학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서울에는 4년제만 해도 60여 개에 달한다.
아!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그렇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은 당연한 게 아니었고, 어쩔 수 없다고 여기던 것들은 그냥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교육, 의료, 문화, 일자리 등 내 삶의 궤적과 직결된 모든 것이 대도시, 특히 서울에 집중돼 있었다. 그렇다보니 지역에서 나고 자란 내 생활은 철저히 대도시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지방은 식민지다,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 서울러(서울사람)과 지방러(지방사람)의 차이 / 트위터 갈무리

▲ 서울러(서울사람)과 지방러(지방사람)의 차이 / 트위터 갈무리

식민지의 삶은 ‘여전히’ 유효

지금 내 일터는 서울에 있다. 생활터전 역시 서울이다. 부모님은 대도시에서 일하는 자식을 자랑스러워 하시지만, 화려한 싱글은 영화에서나 가능할 뿐 1인 가구의 삶이 녹록할 리 없다. 언제라도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가서도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아 망설이고 있다.
이제는 병원에 가기 위해 하루를 꼬박 쓰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왕복 3천 원의 교통비로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러 갈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이는 내가 과거에 경험했던 것들을 그대로 겪고 있을 것이다. 주체와 대상만 바뀔 뿐 현상은 그대로다. 근본적인 것이 바뀌지 않는 이상 식민지의 삶은 유효하다.
그간 지역 격차를 줄이기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역대 정권의 빠지지 않는 공약과 과제였다. 하지만 성과는 늘 미약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지방분권을 핵심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헌법 개정안에 이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대부분의 친구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이 사안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몇 년이 되었고,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8대 2라서 뜯어고쳐야 한다는 말은 나에게도 어려운 내용이다. 하지만 지방분권, 즉 분산이 필요하다는 것은 저런 설명 없이도 잘 알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겪어 온 지역 간 격차가 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신년사에서 '지방분권과 자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신년사에서 ‘지방분권과 자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서울’이 아니라 ‘지역’에 집중

민선 5기 이후,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분권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지역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곳이 지방정부이다보니, 현안에 따라 기민한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성과도 있었다. 포켓몬고 게임이 속초, 고성, 양양 등지에서만 가능하던 때에, 속초시는 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했고 해외에 ‘속초’라는 지역을 널리 알렸다. 전주시는 ‘한옥마을’이라는 자산을 근처 남부시장과 엮어 전통시장 살리기에 성공했다. 모두 ‘서울’이 아니라 ‘지역’에 집중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당장 많은 것을 바꾸거나 격차를 한순간에 줄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과 중앙에 몰려있는 것들을 분산하려 계속 노력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그 출발이 지방분권이 되길 바란다. 이번에는 부디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기를. 내 고향이 더는 식민지라는 단어와 엮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덧붙임.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나는 농어촌에서 나고 자란 것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곳에서 얻은 소중한 추억은 내 삶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되고 있다.

지역 간 격차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1960년대에 한국에서 미국 외교관으로 활동한 그레고리 헨더슨은 “파리가 곧 프랑스이듯이, 서울이 곧 한국이다”라며 모든 것이 중앙에 집중된 한국의 현실을 꼬집기도 했지요.

희망제작소는 2006년 창립 이래, 지역 문제에 꾸준히 천착해 왔습니다. 지역은 우리 삶의 자양분이고 국가의 중심이며, 지역이 살아야 모두가 행복해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에 지역과 중앙의 균등한 발전을 도모하고 지방자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활동을 꾸준히 진행했습니다.

* 대표 활동
– 목민관클럽 : 지방자치 혁신을 고민하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연구모임입니다. 정기포럼과 소식지 발간 등으로 서로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으며, 희망제작소가 사무국을 맡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기)
– 협치 아카데미 : 지역의 정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데 주민과 행정이 함께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협치 아카데미와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이를 통해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도모했습니다. (사례 보기)
– 지방분권 매니페스토 운동 :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지방분권을 위한 7대 과제 실천서약(매니페스토) 운동을 펼쳤습니다. 약 120여 명의 여야 후보가 서명하였습니다. (자세히 보기)
– 주민참여예산교육 : 2011년 지방재정법 개정으로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의무화되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주민이 더욱 쉽게 제도를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매해 각 지역 특성에 맞춘 주민참여예산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례 보기)
– 지역리더교육 : 통·반장, 자치위원 등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주민을 지원했습니다.
– 목민관학교 : 지역을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교육감과 교육의원 출마 희망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아카데미입니다. 2008년부터 총 7기에 걸쳐 프로그램을 운영하였고, 약 170여 명의 역량 있는 지역사회리더를 발굴, 양성하였습니다. (사례 보기)

*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 설정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현실에 기초하여 창조되었음을 밝힙니다.

– 글 : 최은영 | 커뮤니케이션센터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월, 2018/01/15-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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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희망제작소가 새 정부 국정과제의 방향을 각 지역 시민사회와 공유하고 시민사회 발전의 밑거름이 될 소중한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를 본격적으로 이어갑니다.

시민사회활성화 전국네트워크와 희망제작소는 ‘문재인정부 국정과제 방향과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전국 간담회’를 8월 22일(화) 강원, 23일(수) 충북, 24일(목) 대전, 29일(화) 충남, 30일(수) 부산에서 각각 개최했습니다.

총 10회에 걸쳐 열리는 전국 간담회는 9월 5일 광주, 6일 전주에서 연이어 개최됩니다. 서울, 경기 등 수도권 일정은 추후 공지를 통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새 정부 100대 국정과제를 지역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그에 따른 시민사회의 역할을 모색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향후 희망제작소는 지역 시민사회와 함께 하는 시민주도형 혁신과제도 발굴할 계획입니다.

시민사회의 현안과 과제는 무엇인지, 그 속에서 희망제작소의 역할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자 하는 시민과 후원회원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와 관심을 기대합니다.

국정과제간담회_광주

 

목, 2017/08/3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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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의 명복을 빌며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정부는 진심 어린 사과,

책임규명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합니다

 

백남기 농민이 끝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작년 11월 농민대회에 참가했다가 집회현장에서 쓰러진 지 317일만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안타까운 일을 당한 유족들께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책임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합니다.

우리가 모두 목격했으며 알고 있는 것처럼 경찰 방호벽 앞에 서 있던 그는 일흔에 가까운 노인이었고 맨손뿐이었습니다. 그가 공권력을 향해 외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쌀 한 가마(80kg) 21만 원 보장을 이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경찰은 고인을 향해 정조준하여 살수차를 발사하였고, 그가 쓰러진 뒤에도 공격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백남기 농민이 고향인 전남 보성에서 멀리 서울까지 올라와 도로에서 외친 것은 대단한 특권과 이익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농민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달라는 절박한 호소였습니다. 난데없는 요구가 아니라 대통령 스스로 선거를 앞두고 국민에게 했던 약속을 이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농업은 농민들의 생업일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쌀값 보장 공약이 등장한 것도 그러한 사회적 공감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러나 쌀값 보장을 위한 노력은 진척되지 않았고 오히려 관세화를 통한 쌀 시장 개방과 쌀값 폭락이 이어졌습니다. 백남기 농민이 맨손으로 경찰 방호벽 앞에 나서서 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입니다.

정부와 경찰은 백남기 농민이 사경을 생사를 넘나드는 동안, 유족들이 애끓는 심정으로 해를 넘기며 병상을 지켰지만 이제까지 진정 어린 사과와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않았습니다. 집회 시위의 과정의 진압 장비 사용과 공권력 행사는 정해진 규정과 절차에 따라 행해져야 합니다. 이제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보면 경찰은 이를 준수하지 않았으며 이에 대한 책임도 묻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무고한 피해자가 또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절차와 규정을 무시한 채 공권력을 남용하고,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있는 정부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또한, 백남기 농민이 거리에 나서서 절박하게 외치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절멸의 위기로 내몰린 우리 농업의 현실이 있다는 점을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다시 한 번 정부가 유족을 향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책임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제시할 것을 요구합니다. 백남기 농민이 염원하던 대로 농민이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는 현실을 향해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나아가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2016년 9월 26일

한살림연합

 

월, 2016/09/2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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