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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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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복지부

익명 (미확인) | 일, 2015/07/12- 13:44

[칼럼]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복지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영국의 작가 찰스 도지슨이 1865년 발간한 책이다. 적어도 174개의 언어로 번역되었을 뿐 아니라 셀 수없이 많은 연극, 영화, 만화 등으로 재탄생하여 전 세계 어린이들과 어른들에게 친숙한 동화이다. 이 소설 12장엔 하트왕이 앨리스를 재판정에 세워놓고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재판을 진행하면서 그 경과가 여의치 않자 점점 몸이 커지고 있는 앨리스를 겨냥하여 “규칙 42. 누구든 키가 1마일이 넘는 사람은 법정을 떠나야 해!”라고 소리친다. 우스꽝스런 장면으로 우리 뇌리에 남지만, 그 책의 원제목처럼 ‘이상한 나라에서 겪는 체험’의 전형이다.

우리 주변에 그리 이상한 일이 어디 한 두가지이랴만, 오늘은 복지부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참으로 우스꽝스런 일을 짚어볼까 한다. 

 

보수정부 8년차에 들어선 지금, 민주정부 10년간 초기 복지국가의 틀을 놓으려는 다양한 ‘대못질’은 아련한 추억으로 존재감도 사라져간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이고 자살률은 세계 최고이며, 노동시간 역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이며 의료, 노후소득, 고용의 사각지대가 광범위하게 널려있어도 ‘무위(無爲)’라는 노자의 철학을 고수할 뿐이다. 경제가 살아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철 지난 보수의 주술에 기대어.

 

이런 상황에서 중앙정부가 하지 않는 ‘무위’의 영역을 지방정부가 해보겠다고 나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중증장애인의 활동보조 시간을 24시간까지 확대하려는 지자체의 시도를 비롯하여, 장애수당의 추가 지급, 65세 어르신의 버스비 지원, 장수수당 도입, 6세 미만 아동의 의료비 지원, 공공산후조리원 설치 등등 지자체가 행하려는 그 가상한 노력을 보건복지부가 나서서 가로막는 기막힌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경상남도의 진주의료원 폐쇄 때는 발동시키지 않던 협의 및 조정 권한을 지금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

 

작년 한해 심의 대상인 81개 사업 중 원안 그대로 시행이 허락된 것은 33건뿐이었다. 보건복지부 장관과 협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21건은 권고 또는 추가 협의 대상이 되었고, 불복하여 복지부에 사무국을 두고 국무총리가 위원장으로 있는 사회보장위원회의 조정 대상이 되었다가 끝내 19건은 불허되었다. 기존 사업과 중복된다거나 다른 지자체와의 형평에 어긋나서, 타당성이 떨어져서, 선심성이라서, 나아가 재정지속가능성이 없어서… 등이 불허의 이유였다.

 

제도는 있으나 그 보장 수준이 낮은 현실에서 기존 사업과 중복된다는 불허 사유는 맹랑하다. 지자체 간의 형평성이 문제가 된다면 중앙정부의 제도로 끌어올려서 전국사업화하면 된다. 타당성과 선심성 유무의 판단은 궁극적으로 주민의 몫이고 선거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 염려 붙들어 매어도 된다. 지방 재정이 염려된다면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재원 조달의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만 그만두면 될 일이다.

 

지방정부의 자주 예산으로 행하는 사업에 대해 중앙정부의 허락을 구해야 하는 것 자체가 지방자치를 못 박은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지방정부의 다양한 복지서비스 제도의 도입과 실행이 선진복지국가로 가는 핵심임도 명백한 사실이다. 중앙정부가 의지 없으니 지방정부도 하지 말라는 심산인지 모르나 정말 이상한 복지부가 아닐 수 없다.

이 사단의 단초는 2012년 당시 박근혜 의원이 한국형 복지국가를 위해 야심 차게 발의하여 통과시킨 사회보장기본법의 제26조이다. 결국 2014년 활동보조인이 없는 사이 호흡기가 떨어져 끝내 유명을 달리한 근육장애인 고 오지석씨의 죽음이 그 법 조항이 만들어낸 현실이다.

 

하트왕의 난폭한 재판 과정에서 공포를 느낀 앨리스는 화들짝 잠에서 깨어 언니의 무릎 위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 법의 덫에 걸려 꼼짝없이 손발이 묶인 지자체는 어디서 희망의 빛줄기를 찾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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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수 꽃동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 본 칼럼은 한국일보에 2015년 7월 12일에 기고된 글입니다. (클릭! 원문보러가기)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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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 매니페스토로 되살리자

허훈 대진대 행정학과 교수

 

1. 지방선거 지방선거답게 치르자

이번 6ㆍ13지방선거는 지난 해 촛블 집회의 영향이 클 것으로 예측된다. 대통령 탄핵을 성공시킨 유권자들의 정치의식 변화가 지방선거에서도 적극적으로 투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은 국정농단을 스스로의 힘으로 끝내면서 정치의식이 갑절은 더 성장하였다. 이제는 신장된 정치능력을 바탕으로 하여 이번 지방선거를 지방선거답게 치러내었으면 한다. 지방선거답다는 말은 이렇다. 선거구마다 자치의식이 신장되고, 지역의제를 가지고 고민하여 투표하고, 지역연고에 안주한 거대정당의 표밭 기능만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 결과 지방선거에서의 중앙예속의 지방정치를 변화시키도록 지방선거를 하자는 의미이다. 그 결과 지방자치가 발전하고 지방분권이 신장되어야지, 위로부터 헌법만 바뀐다고 지방분권국가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의 지방선거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면, 이번 선거에서 지방자치와 지역발전을 위해서 꼭 해내야 할 것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지방자치를 주민의 손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더 이상 중앙정당과 그 정당의 하수인들에게 농락당하는 지방선거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공천단계부터 주민들의 의사가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둘째는 정치의 지역주의를 벗어던지는 일이다. 지연, 학연 등에 얽매이는 선거를 되풀이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셋째는 자치와 지역발전의제를 가지고 경쟁할 수 있도록 후보자들을 독려해야 한다. 권력자와 사진을 찍은 것이, 정당의 실력자와 아는 것이 배경인 후보를 찍어서 지방자치가 발전할 수는 없기에 말이다.

 

2. 매니페스토 선거의 필요성

지방선거를 지방에 돌려주기 위해서는 철지난 유행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매니페스토 선거는 여전히 답이 될 수 있다. 매니페스토는 후보자가 참공약을 내걸게 하고 이것을 평가하여 가장 좋은 공약을 내건 사람을 뽑는 것이 기본개념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뽑거나 시장을 뽑거나 이는 결국 다수 인간과 선출된 한 인간 간의 계약에 의존하는데, 결국 공약이 계약서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좋은 공약을 만들려다 보면, 지역의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수밖에 없고, 참공약을 만들다 보면 지역의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을지 공부가 된다.

그러므로 좋은 공약을 보고 표를 주는 것이 그나마 현시점에서 민주주의를 성공시키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다. 인간을 보고 뽑으면 지역의 제왕이 되는 것을 보게 되거나, 사익추구를 하는 사람이거나, 정책적으로 무능한 사람을 뽑을 확률이 높다. 사실 권력을 준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장남감을 주는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이는 선출직 공직자 역시 누구나처럼 유혹에 노출될 수 있으며, 이럴 경우 보통의 시민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결과를 부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일만이 아니라,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상 참으로 많은 유사한 경험을 했다. 이는 선택된 소수에게 다수의 운명을 맡긴다는 그 자체의 위험성 때문이다. 토크빌은 “민주주의가 경험하는 어려움은 매우 사소한 것들에서 관찰된다. 칭찬에 둘러싸인 사람들은 자신을 통제하는 것을 무척 어려워했다”(Tocqueville, 2003:262)라고 말한다. 그 결과 선출직 공직자들이 직과 이로부터 부여된 권력을 이용하여 전횡을 일삼으로 뇌물을 수수하거나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 같은 스캔들적 상황도 발생한다. 결국 선출직도 인간이기 때문에 처음에 국가-시민을 봉사하겠다는 약속이 점점 옅어지고, 차츰 독재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것은 그동안 여러 학자들이 민주주의, 특히 대의민주주의가 독재화할 가능성을 경고한 이유이기도 하다.

대의민주주의에 발생할 수 있는 인간의 오류를 막기 위해서 도입할 수 있는 것의 하나가 매니페스토(참공약으로 번역된다)이다. 매니페스토의 어원은 ‘증거’ 또는 ‘증거물’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마니페스투(manifestus)에 왔는데, ‘과거 행적을 설명하고, 미래 행동의 동기를 밝히는 공적인 선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선거에서 매니페스토가 사용된 것은 1834년 영국 보수당 당수인 로버트 필에 의해서였다. 그는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공약은 결국 실패하기 마련이라면서 구체화된 공약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1997년에는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매니페스토 10대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집권에 성공한 것이 불을 붙였다. 블레어는 대처정부 이후의 20년 보수당 정권을 구체적이고 명확한 공약(매니페스토)을 내놓고 이를 이행하여 영국을 유럽의 맹주로 다시 세워놓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시민단체에 의해 2006년 5월 31일의 지방선거를 계기로 도입되었다. 당시에 후보자에 의한 뻥 공약과 중앙당이 내려 보내는 소위 허수아비 공약이 판을 쳤었다. 이를 막고자 하여 도입하여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으나, 최근에는 지방선거가 집권당의 중간평가라거나, 지역연고의 정당에 대한 몰표현상 이 여전해 그 효과가 반감되는 안타까운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가 지방선거답게 치루기 위해서 매니페스토 선거를 다시 강조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이다.

 

3. 각 지역의 매니페스토가 지역도 발전시킨다

매니페스토에 의한 공약을 요구하는 것은 후보자들에게 뜬구름 잡는 식이 아니라 실현가능한 공약을 내놓으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실현가능하다는 말은, 공약을 내놓을 때 구체적인 내용과 실현수단, 그리고 달성목표를 제시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제시된 매니페스토 공약은 투표시에도 참고가 되지만, 당선되고 나서는 마치 계약서 같은 역할을 하게 되어 임기말기에는 그 이행 정도를 보고 다음 선거에 참고할 수도 있다. 계약에 명시된 것을 지키지 않은 권력자를 다시 뽑지 않게 되는 것이다. 선출직 후보자들의 일탈을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점이 많다고 해서 매니페스토 선거가 자동으로 전개되지는 않는다. 그동안 광역선거에서도 쉽지 않았던 것이니 기초선거에서도 쉽게 되지 않는다. 매니페스토 선거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의 시민들을 위한 매니페스토 교육이 실시되어야 하고, 둘째 시민단체 등이 중심이 되어 시민공약검증단을 결성하고, 셋째 후보자들에게 매니페스토 공약을 제시하게 하며, 넷째 이를 평가해서 주민들에게 알려서 지방선거에 반영하게 하는 절차와 구조를 잘 만들어내야 한다. 각 지역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곳은 적지 않을 것이다.

후보자들의 옥석을 가려야 하는 유권자들로서는 후보자들이 내건 공약이 참 공약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힘을 길러가야 하는 것이다. 참공약은 구체적이고(smart), 그 실현여부가 측정가능하며(measurable), (예산 등의 측면에서) 달성할 수 있어야 하며(achievable), 정책내용이 타당해야 하며(relevant), 달성에 걸리는 시간계획(timed)이 포함됨을 의미한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A라는 시장후보가 갑시의 발전을 위해 국가산업단지를 유치한다고 했다 하자. 지역경제가 미약한 갑시로는 참 솔깃한 공약이다. 헌데 유치하고자 하는 산업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 예산을 어떻게 얻을 것인지, 시장임기 내에 할 수 있는 것인지, 언제까지 이를 유치할 것인지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면 이것은 헛공약이다. 말만 번드르르하지 실현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시장이 되고 싶은 꿈만을 가진 사람은 헛공약도 서슴지 않는다. 이것을 가려내는 것이 시민의 능력이다. 유능한 시민은 구체성이 있는 참공약을 내걸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시장을 뽑는다. 무능한 시민은 시장이 되겠다는 권력욕만 있고 시장이 된 후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도통 모르겠는 사람을 뽑는다. 대개 이런 사람은 나하고 친하다고 해서 공약을 살피지 않고 무조건 표를 주는 경향이 있다. 결국 시민의 수준이 시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짧은 지방자치 역사상 이번 6.13지방선거의 의미는 자못 크다. 그동안 선거만 있었지, 정책은 없었다는 지방선거이다. 선거를 통해 주민의 의사가 결집되기 보다는 중앙정치엘리트의 하수인을 뽑아주는 통로로 이용되었다는 지방선거이다. 이번 6.13지방선거에서는 각 자치구역마다 유권자들이 공약을 잘 보고 평가하는 능력을 키워서 지역도 살리고 지방자치를 지방자치답게 할 수 있는 인재를 찾아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화, 2018/03/0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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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입법권 확대를 위한 헌법개정 방안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I. 현행 헌법상 지방입법권의 문제점

현행 헌법은 지방자치발전의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된다. 헌법 제117조를 비롯하여 제37조 제2항, 제59조, 제13조 등이 지방의 손발을 묶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이 아래로부터 창조적인 혁신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도록 헌법이 가로막고 있다. 지방정부는 지역발전을 위해 나서고 싶어도 손발이 묶여서 활동을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중앙정부가 대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앙정부는 과부하로 인하여 기능이 마비되어 제대로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는 지방의 살림살이까지 세세하게 챙기고 간섭하다보니 막상 전국적인 큰 과제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앙이 법령을 통해 전국적으로 지방에 하달한 획일화된 정책은 지방 실정에 맞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거나 지역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앙정부는 과부하로 기능장애에 시달리고, 지방정부는 수족이 묶여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1. 지방은 중앙정부가 시키는 것만 하라고 지방의 손발을 묶고 있는 헌법

헌법은 법률의 위임이 없으면 주민을 권리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자치입법을 할 수 없도록 하여 지방의 자치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헌법 제37조 제2항이나 헌법 제59조 등 여러 조항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에 법률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른바 법률유보의 원칙). 예컨대,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 ”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헌법학자들은 절대다수가 여기서 “법률로써”라고 함은 국회가 법률의 형식으로 제정한 형식적인 의미의 법률에 근거해서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법률에 근거가 없는 한, 즉, 법률에 의해서 위임을 받지 않는 한 조례로는 주민의 권리제한이나 의무부과에 관한 것을 규정할 수 없다고 해석된다.

이는 민법에서 정신적 제약이 있어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 대해서 행위능력을 제한하여 후견인의 동의 없이는 활동할 수 없도록 한 제한능력자제도와 유사하다. 헌법은 국회가 제정한 법률의 위임이 없으면 지방자치단체가 활동할 수 없도록 하여 지방의 행위능력을 제한하고 있다. 즉, 헌법은 지방자치단체를 행위능력이 제한되는 제한능력자로 취급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방에서는 주민에게 지원 등 수혜적인 조례만 제정할 수 있어 지방재정난을 가중시킨다. 뿐만 아니라 주민이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당연히 해야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조례로 의무를 부과하거나 금지를 할 수가 없게 된다. 주민은 이득이 없으면 당연한 의무도 이행하지 않게 되어 결국 주민의 도덕성을 타락시킨다.

 

2. 지방은 중앙정부가 시키대로만 하라고 지방의 손발을 묶고 있는 헌법

지방자치단체는 자치입법권을 가지고 있지만 법령의 범위 내에서 인정된다. 지방자치단체가 처리하는 위임사무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자치사무에 대해서도 법령으로 상세한 지침을 정하고 있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에게 독자적인 지방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 자치사무도 그 지침이 중앙정부에 의해서 법령의 형식으로 이미 다 정해진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지방정부는 독자적인 정책구상에 의해서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자치주체가 아니라 사실상 중앙정부의 하급집행기관이 된다. 지방정부는 국가의 법령을 지방에서 베껴내는 복사기에 불과한 것이 된다. 중앙정부가 지역발전을 위한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법령으로 규정하기만 하면 지방은 법령이 요구하는 대로만 해야 한다. 법령이 지역실정에 맞지 않고, 지방에서 더 좋은 문제해결방안을 가지고 있어도 지방에서는 법령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여야 한다.

II. 지방입법권 확대를 위한 헌법개정 방안

1. 지방정부의 법률제정권 보장

현행 헌법 제37조 제2항이나 59조 제13조 등은 국민의 권리제한이나 조세부과, 형벌부과 등을 법률로써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률유보조항이다. 법률에 근거가 없으면 지방입법을 할 수 없도록 제한을 한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하면 지방정부는 법률로 ‘시키는 것만 해라’는 의미이다. 이로 인하여 지방정부는 어린이 놀이터에서 술을 마시거나 소란을 피우는 것도 법률에서 위임이 없으면 제한할 수 없도록 지방정부는 손발이 묶인다. 탄산음료가 청소년에게 유해하고 해도 이를 제한할 방법이 없게 된다.

지방정부가 자치의 주체라면 자치규범도 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지방의회는 국회와 마찬가지로 민주적인 정당성을 갖는 기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의회는 왜 법률을 제정할 수 없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세법률주의는 과세없는 대표없다는 뜻이지 반드시 중앙정부의 의회인 국회가 세금을 정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주민의 대표기관으로 민주적인 정당성을 가지는 지방의회가 지방의 세금을 정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지방세인 주민의 세금을 결정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주민의 대표기관은 지방의회이지 국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가 법률을 정할 수 있는 것은 헌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에서 지방의회도 법률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지방의회의 법률제정권을 배제해야할 논리적인 근거는 없으며 외국에서도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스위스에서는 칸톤정부가 법률제정권을 갖는 것은 헌법으로 직접 규정하고 있으며, 기초지방정부인 게마인데가 정한 규정(Reglement)도 법률로 보고 있다. 이에 게마인데도 다른 법률의 위임이 없어도 권리제한이나 의무부과를 부과하는 규정을 할 수가 있게 된다. 게마인데의 규정자체가 법률이기 때문이다.
헌법에 지방의회가 법률을 제정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지방의 손발을 묶고 있는 법률유보의 원칙이나 조세법률주의나 죄형법정주의로 인한 족쇄로부터 지방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지방정부가 법률제정권을 갖게 되는 경우에 지방정부는 비로소 지방정책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자치의 주체가 될 수 있고, 지방조직과 인력을 스스로 정할 수 있게 되고, 스스로 조세를 부과할 수 있는 과세권을 갖게 된다.

한 가지 더 근본적인 의문은 지방정부가 정하는 법률을 왜 조례라고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하다. 원래 조례는 경국대전이후 행정법을 통칭하는 의미로 사용하였지만 현재는 지방정부의 행정입법정도로 위상이 격하되어 사용되고 있다. 조례의 위상변화의 유래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된 것이 없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헌법은 지방정부의 입법형식을 규정한 것이 없다. 지방자치법에 의해 비로소 조례라는 명칭이 등장하고, 그 제정범위도 엄격하게 제한된다. 조례는 이미 위상이 매우 낮은 법형식이라고 인식되고 있으므로 지방입법권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의 입법형식도 헌법에서 법률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례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한 조새법률주의와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된다는 완고한 해석론에 지방의 손발은 다시 묶이게 된다. 법률유보에 의한 지방의 행위능력제한을 풀기 위해서는 지방의 입법형식을 법률로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취지에서 국회개헌특위 자문위원회 지방분권분과에서는 “지방정부는 그 관할구역에서 효력을 가지는 법률을 제정할 수 있다” 고 지방정부의 법률제정권을 헌법개정안으로 제안하고 있다.

 

2. 지방정부의 변형입법권 보장

지방의회가 법률을 제정하도록 한다면 국회가 제정한 법률과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가 문제된다. 규범충돌에 관한 문제이다. 현행 헌법은 무조건 국회의 법률과 중앙정부의 법령이 지방입법에 우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행헌법은 국가법령우월주의를 채택하고 있어서 정책의 전국적 획일화를 가져오고, 아래로부터 혁신이 불가능하게 만든다.

적지 않은 논자들이 자치입법권을 확대하기 위하여 현행 헌법 제117조 제1항의 “지방자치단체는 … 법령의 범위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를 “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내에서”로 개정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제안은 아무런 내용상의 개정이 없는 표현의 변경에 불과한 무의미한 내용이다. 푸른 색을 청색으로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 표현은 바뀌어도 국가법령 우선주의를 고착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지방자치를 통해서 실현하려는 지역특성에 다른 다양성의 보장과 아래로부터 혁신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가법령과 지방법령의 관계를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전국적으로 획일화된 국가법령이 지역실정에 맞지 않거나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보다 더 나은 입법을 할 수 있는 경우에 국가의 법령에도 불구하고 지방에서 달리 규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변형입법권, “불구하고”조항). 2006년에 제정된 제주특별법은 ‘00 법률 제00조에 불구하고 제주도에서는 조례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규정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또한 2006년 개정된 독일헌법 제72조는 자연보호, 사냥, 공간정서, 수리, 대학입학 등의 분야에서 주는 연방법과 다른 규정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국회개헌특위 지방분권분과에서는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중앙정부법률의 우선을 원칙으로 하되 다음과 같이 예외를 둘 것을 제안하고 있다. 법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조화시키는 제안이다.

“ 중앙정부의 법률은 지방정부의 법률보다 우선하는 효력을 가진다. 다만, 지방정부는 지역특성을 반영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행정관리, 지방세, 주민복리와 관련한 주택, 교육, 환경, 경찰, 소방 등에 대해서 중앙정부의 법률과 달리 정할 수 있다. ”

현행헌법은 법률제정권을 국회에 독점시키고 있다. 독점기업이 생산품의 품질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듯이 국회도 경쟁상대가 없어 입법의 품질개선을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로 인하여 국회가 만든 법률이 현실과 잘 맞지 않고, 어느 지방에도 적합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방마다 다양한 문제해결이 필요한 경우에는 지방법률로 국가법령과 달리 규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법률이나 명령의 다양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는 법률이나 명령 등을 규정함에 있어서 지방정부에 의해 다른 규율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보다 좋은 법률이나 명령을 제정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또한 지방정부도 국가의 법령에 반하는 입법을 하기 위해서는 주민을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지방정부와 중앙정부는 보다 나은 입법을 하기 위해 서로 경쟁을 하게 된다. 또한 지방정부상호간에도 보다 나은 입법을 통해서 주민과 기업을 유치하려는 경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치열한 입법경쟁을 통하여 입법의 품질을 향상할 수 있게 된다.

화, 2017/10/3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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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민 최후의 통제장치, 주민소환제도

권용범 춘천경실련 사무처장

 

‘지방자치제도’는 제자리걸음 중.

2018년 6월이면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24년이 지났지만, 시민에게서나 전문가에게서나 지방자치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극히 힘들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를 강화하는 개헌 논의까지 진행되고 있을 만큼 아직도 ‘분권’과 ‘자치’를 ‘꿈’꾸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지방자치제도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해온 핵심 원인에는 중앙에 편중된 ‘권한과 재정’ 문제가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 개선은 시급하고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지방자치제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이유가 ‘권한과 재정’ 문제 때문 만일까?

지금의 지방제치제도는 분명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분권과 자치’가 국가운영의 대세인 현실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적지 않은 지역주민들이 지방자치제도 자체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가 이것만이라 보기는 어렵다. 중요한 다른 이유는 바로 사람이다. 사람이 만들어낸 ‘불신’이 아직도 지방자치제도 자체의 필요성에 대한 논란을 불러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지방자치제도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제도 자체에 대한 지역주민의 신뢰가 필수적인데 제도의 필요성마저 의문을 갖게 만드는 상황이라면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시장님! 군수님! 의원님! 어디가십니까?

지방자치가 이루어져 온 지난 24년 동안 우리는 심심치 않게 이런 뉴스를 접해왔다. “○○시장(군수), ○○의원 구속” 강원지역 역시 전국의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비리혐의로 구속된 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상당수 배출해 왔다. 영동지역의 어느 시에서는 민선1기 시장부터 5기 시장까지 내리 구속되어 시장 직에서 물러난 사례까지 있다. 지역 분들께는 미안하지만, 가히 ‘지자체장 구속사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겠다. 시장. 도의원, 시의원에 그 가족, 친지까지 당장 인터넷 포털만 검색해도 구속된 지방정치인과 관련한 수없이 많은 기사를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의 문제는 지역주민에게 부끄러움과 분노의 감정을 일으키고, 이는 다시 지방자치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되며, 종국에는 지방자치에 대한 외면으로 나타나 성공적인 지방자치제도의 정착을 매우 어렵게 하는 것이라면 지나친 이야기일까?

누군가는 얘기할 수 있다. 이러한 범죄행위가 지방자치제도 때문에 발생하는 것도 아니요 법에 따라 처벌하면 그만인 문제이지, 지역주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방자치제도 자체를 불신해서도, 외면해서도 안 된다고. 하지만 이러한 ‘불신과 외면’ 역시 ‘권한과 재정’의 문제만큼 지방자치제도의 정착을 가로막는 심각한 원인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시민의 입장에서 지방자치제도의 ‘권한과 재정’ 문제는 상당한 공부와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부패와 비리로 인한 ‘불신과 외면’은 즉각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시민이 두렵지 않다.

자치단체장은 올림픽 같은 메가 이벤트나 대규모 건설 사업을 추진한다. 지자체는 장밋빛 청사진을 늘어놓고 지역 언론은 이를 확대 재생산하고 의회에서는 덮어놓고 동의를 한다. 제대로 된 검증도 없이 진행된 사업은 실패하고 지자체는 빚더미에 올라앉는다. 재정 상황이 열악해진 지자체는 지역주민을 위한 기존 사업들을 축소한다. 가장 먼저 힘없는 취약계층이, 지자체로부터 사업을 따내야 하는 영세 사업자들이 피해를 받는다. 하지만 종국에는 지역주민 모두가 그 피해를 나누어 받는다.

지역사회의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조례로 정한 규제들이 있다. 관련 업자들은 이러한 조례를 고치고자, 또는 유리한 조례를 만들고자 노력한다. 의회는 규제를 완화-폐기하거나 신설 한다는 조례를 입법 예고를 한다. 시청홈페이지에, 관보에 보이지 않게. 공청회 역시 관련자들을 위주로 한 요식행위로 진행한다. 민감한 내용의 표결은 비밀투표로 진행한다. 이는 주민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기도 하고 혈세 낭비로 이어지기도 한다. 결국 불특정 다수의 지역 주민이 개정된 조례로 인한 피해를 알게 모르게 감수하게 된다.

무리한 사업추진에 따른 혈세낭비나, 주민편익을 해치는 행위는 물론이고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추태 역시, 지자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원으로서 막중한 책임을 져야할 사안이다. 하지만 지역주민이 피해를 감수하는 동안 이들은 어떠한 책임을 져 왔는가?

 

사람의 문제, 허술하게 작동하는 제도의 문제이다.

지난겨울, 촛불혁명을 지나오면서 국가의 정상적인 감시와 견제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어떠한 상황이 발생하는 지를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국회가 감시와 견제의 제 역할을 못하고, 사법기관이 범죄에 눈감으며, 언론이 정론을 외면해 왔을 때, 우리는 국정농단 사태를 목도해야 했고, 춥고 긴 겨울 동안 촛불을 들어야 했다.

지방정부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방의회가 감시와 견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 시민사회가 무관심할 때, 지역 언론이 나태할 때, 부패와 비리의 범죄들이 싹을 틔우는 것이다. 결국 감시와 견제를 위한 법적, 사회적 제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정부차원이나 지자체차원의 부패와 비리의 범죄들이, 지역주민의 복리를 망각한 의사결정들이 자행되어 온 것이다.

화, 2018/01/0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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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한국일보 공동기획 19대 대선후보 정책평가> 외교안보분야 - 1

“위안부 재협상” 한목소리 한일관계 파열음 불가피

대선후보 모두 재협상 찬성, 한일관계 정면 충돌 예고
文 “합의내용 먼저 밝혀야”
安 “당사자의 합의가 중요”
劉 “10억엔 출연금도 반납”

정책 비교표

 

대선후보들은 2015년 12월 타결한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에 대해 한 목소리로 재협상을 주장했다. 하지만 위안부 합의를 원점으로 돌리기 위한 방법론은 제각각이었다. 더구나 체결한지 불과 5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에 대한 평가까지 엇갈리면서, 차기 정부 출범 이후 한일관계는 역사와 안보문제가 겹쳐 상당한 파열음이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일보와 참여연대가 공동 진행한 정책 평가 질의서에서 각 당 후보들은 ‘위안부 합의 무효화와 재협상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일제히 “찬성한다”고 밝혔다. 재협상을 위한 사전조치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한일간 합의 내용을 밝히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위안부 합의가 철저히 밀실에서 진행되면서 한일간 이면합의설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됐고, 서울행정법원은 1월 민변의 청구를 받아들여 “한일 정부간 협의 문서를 공개하라”고 판결했지만 외교부가 항소하면서 체결과정이 베일에 싸여 있는 상황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위안부 합의 무효화의 이유로 “피해 당사자들과의 합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맺은 ‘파트너십 공동선언’의 정신을 바탕으로 해결하자고 강조했다. 일본은 식민통치를 사죄하고 우리는 한일간 화해와 문화교류를 약속한 선언이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직접적인 사죄 표명을 하지 않았는데도 덜컥 합의를 발표한 데 대한 문제제기로 보인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한발 더 나아가 “일본이 재협상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기존 협상을 파기하겠다”며 사실상 조건 없는 합의 무효화를 주장했다. 또 일본이 화해치유재단에 출연한 10억엔은 즉시 반납하겠다고 강조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협상의 진상을 밝히는 국정조사를 실시할 것”이라며 “합의파기를 공식 선언하고 피해 당사자의 입장을 대리해 재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심 후보도 “일본에 10억엔을 반납하고 화해치유재단을 해체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1월 국방부가 속전속결로 체결한 한일 GSOMIA에 대해 문 후보는 “실제로 주고 받는 군사정보를 검토한 후에 협정 연장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GSOMIA는 1년 마다 갱신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심 후보도 협정 폐기를 주장했다. 반면 유 후보는 “협정을 유지해야 한다”며 다른 입장을 보였다. 안 후보는 “북한의 핵ㆍ미사일에 빈틈없이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며 GSOMIA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협정을 존속하거나 폐기할지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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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한국일보 공동기획 19대 대선후보 정책평가 시리즈 (외교안보분야)

1. “위안부 재협상” 한목소리 한일관계 파열음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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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7/04/1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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