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법정시한인 6월 29일을 넘긴, 7월인 지금까지도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동결을 주장했던 경영계는 제9차 전원회의에서 30원 인상을 제시했습니다. 30원이라니요. 3,000원도 아닌, 하다못해 300원도 아닌 30원이라니.
7월 6일 제10차 전원회의에서는 "방학에 한두 달 일하는 학생들은 생계가 목적이 아니다. 핸드폰을 바꾸거나 여행을 가고 싶어서 일을 하는 것이다. 부가적 용돈벌이 초단기간 노동자에게까지 최저임금이 똑같이 적용되니 유연하게 결정하기 어렵다. 획일적인 전국단일 최저임금이 문제다." 라고 한 경영계 위원이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방학에 일하는 학생들이 정말 생계목적이 없는걸까요? 방학때 일해서 다음학기 등록금을 마련하려는 학생이 대다수일것 같은데... 그리고 핸드폰을 바꾸거나 여행을 가고 싶어서 일을 하면 안되는건가요? 이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무조건 5,580원이라는 최저시급을 받아야하는걸까요?
고등학생, 대학생, 취업을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일을 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최저시급에 얽매여,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임금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최저시급을 단순히 아르바이트에만 한정시키고, 이를 자영업자들의 어려움과 연결시켜 최저임금 인상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경영계의 태도에 화가 납니다.
경영계는 7월 7일 제11차 전원회의에서는 1차 수정안(30원 인상)에서 35원 인상한 5,645원을 제시했습니다. 그 이후 회의에서는 5,715원을 제시하였습니다.
노동계는 10,000원->8,400원->8,200원->8,100원을 제시하였고 공익위원측이 심의촉진 구간으로 5,940원(6.5%) ~ 6,120원(9.7%) 을 발표하여 2016년 적용 최저임금 심의는 이 구간안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치열한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밖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을 외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이어졌습니다.
7월 6일, 점심시간인 12시부터 1시 사이에 보신각에서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촉구 문화제가 진행되었습니다.
최저임금에 대한 발언과 공연, 서명, 참여 프로그램, 퍼포먼스 등으로 구성되어 길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관심과 공감을 촉구했습니다.
현재 30원 인상을 제시한 경영계에게 30원은 편의점에서 비닐봉투 한장을 살 수 있는 돈이라며 현재 대중교통 요금도 몇백원이 오르는데 최저임금 30원 인상은 말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한 참가자도 있었습니다.
30원, 하루 8시간을 일하면 240원을 더 받는건데 이걸로 대체 뭘하라는걸까요?
한쪽에서는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면 하고 싶은걸 적었는데 부모님과의 여행, 공연 보기, 친구 밥 사기, 자랑하기, 맛있는것 먹기, 저축, 여자친구와 결혼, 연애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청년들이 최저임금을 받고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꿈을 꿀 수 있고, 저축을 통해 미래를 꿈꿀 수 있어야만 대한민국의 미래도 밝지 않을까요?
현재 최저시급을 받고 있는 청년, 비정규직, 그 외에 많은 사람들이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꿈꿀 수 있을, 정말 현실적인 최저시급이 정해질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7년 적용 최저임금이 “시급 6,470원”으로 결정되었다. 인상폭은 500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7.3%의 인상률은 “공익위원”이 제시한 심의구간의 중간 수준이며 지난해의 인상률을 하회한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과 노동자와 시민의 요구와 공감대에 반하는 유감스러운 결정이다. 재벌대기업의 협소한 이해관계를 대변한 최저임금위원회의 사용자위원과 3.7 ~ 13.4%의 심의구간을 제안하며 “공익”이란 이름을 무색하게 만든 공익위원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영세중소상공인을 내세워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한 사용자단체와 사용자위원의 뻔뻔함은 개탄스럽다. ‘2017년 적용 최저임금 결정에 대한 경영계 입장’(이하 경영계 입장, http://goo.gl/GGgqLj)은 이번 결정으로 인해 “30인 미만 사업장이 매년 2조 5천억원을 추가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금번 최저임금 결정이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인해 가뜩이나 어려운 영세․중소기업의 부담을 한층 더 가중시킨다는 점을 분명히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영계는 2015년의 하도급, 유통, 가맹분야 등에서 중소기업이 겪은 불공정 거래에 대한 조치 건수가 전년도에 비해 높은 비율로 증가했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http://goo.gl/fjj4uk)에 대한 입장을 먼저 내놓아야 할 것이다. 경영계 입장에 따르면, 오히려 이번 결정으로 인해 시장에서 매년 2조 5천억 원 규모의 추가 소비가 가능해졌다고도 볼 수 있다. 재벌대기업이 영세중소상공인의 정당한 몫을 빼앗지만 않는다면 이번 결정으로 발생한 추가 소비는 영세중소상공인의 소득을 증가시킬 것이다. 사용자단체와 사용자위원은 외면했지만, 이러한 이유로 인해 전 세계의 수많은 나라에서 정부가 주도해서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수 백만 명의 노동자가 6,470원의 시급으로 삶을 이어가야만 한다. 최저임금에 연동되어 있는 실업급여의 수준도 함께 정체되었다. 일하는, 그리고 일자리에서 쫓겨난 노동자의 절박한 삶은 또 다시 외면당했다. 재벌대기업의 이해관계만이 편협하게 대변하면서 노동하는 시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생계와 삶의 안정을 훼손해버린 사용자위원과 공익위원의 2017년 최저임금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끝으로, 영세중소상공인의 열악한 상황은 자신의 비용을 전가할 뿐, 정당한 몫을 보장하지 않는 재벌대기업의 행태에 기인한 것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하고자 한다.
제주 4.3사건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이 가능할까?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로 사람이 죽었고, 이에 대해 사과와 책임 요구를 묵살! 3월 10일 경찰, 법원, 행정 조직 등 도민의 95%가 참여한 총파업 이때부터 레드아일랜드 '빨갱이섬'으로 낙인찍혀 대대적인 구금 검거 작전이 일어난다.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350명의 무장봉기! 5.10단독선거. 단독정부 반대! 통일정부 수립촉구!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탄압 중지! 무장대는 이렇게 주장하며 경찰지서, 우익단체 요인들의 집을 습격하며 봉기를 시작했다. 5월10일 단독선거! 제주도의 세개 선거구 가운데 두개 선거구에서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무효처리되면서, 남한에서 제주도가 유일하게 5.10선거를 거부한 지역이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이승만 대통령은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제주 사태를 인식하고 '해안선으로부터 5㎞이상 들어간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배로 간주해총살하겠다'는 포고문 발표, 그 후 포고령은 소개령으로 이어졌다. 11월 게엄령을 선포하면서 중산간마을에 이른바 '초토화작전'을 벌인다. 1948년 11월 중순부터 약 4개월 동안, 중산간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집단 학살했다. 해안마을 주민들은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1949년 한라산 더 깊은 곳으로 피신해있던 주민들에게 사면정책을 발표해 산을 내려오게했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예비검속"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되었다. 1954년 한라산 금족(禁足)지역이 전면 개방되면서 무장대와 토벌대사이의 무장충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사건이 마감되었다...
4.3사건으로 희생된 사람은 13,000~30,000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경우도 허다하고, 죽음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것도 여전하다. 왜 이렇게 많은 희생이 있었을까...? 누가 죽었을까..? 어디에서 죽었지...? 왜 죽어야 했을까..? 4.3은 왜 그토록 오랜시간 잠들어있었을까..? 제주는 이 모진 세월을 어떻게 버티고, 견디고 있었을까...?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였던 제주. 제대로 울지도 못했던 제주. 어딜가더라도 붉은피로 물들었던 고통스러운 제주 제주가 기억하고 있는 4.3의 현장. 우리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가로세로 500m 크기의 선흘리 낙선동 성터.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폐허가 된 마을을 복원하면서 쌓은 성으로 주민들과 무장대간의 연계를 차단하고 주민들을 효율적으로 감시. 통제하기 위한 전략촌이다. 이미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기에 성을 쌓고, 보초를 서는것은 노약자와 여성들의 몫이 되었다. 낙선동성에서 천여명의 사람들이 집단생활을 했다고 한다. 좁은 곳에 수많은 사람을 수용하니 짐승우리같은 곳에서 비참한 생활을 이어갔다. 수많은 성터는 모두 허물어지고, 이곳은 최근에 복원되었다. 초소도, 통시(화장실)도, 함바집도 깨끗하게 단장했다. 그래서 살만한 곳인가? 고통스러웠던 현장이 새돌로 다시 만들어져 말끔해졌다. 그래도 아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을이 초토화되자 일부 주민들은 해안마을로 피난했지만, 기르던 가축과 수확한 곡식을 두고갈 수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임시 피난처를 찾았다. '며칠만 숨어 있으면 사태가 끝나겠지'하는 생각으로 찾아든 곳이 숲이 우거진 천연동굴이었다. 선흘곶 지역의 반못굴(도틀굴), 주변의 목시물굴, 다랑쉬굴 등등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토벌대를 피해 조마조마 숨죽이며 지내던 동굴들이 여기저기 그대로다.
안덕면 동광리 주민들이 은신 생활을 했던 큰넓궤. 이곳은 영화 '지슬'의 촬영지로도 잘 알려졌다. 낮은 자세로 기어서 입구를 들어가면 갑자기 넓고 높은 공간이 나온다. 서서 다닐 수 있을 정도! 청년들은 물론, 노인에서 아이들까지 토벌대를 피해 이곳에서 숨어살아야했다.
토벌대의 습격에 대비해 망을 보기도 하고 식량이나 물을 나르기도 했다. 아직도 동굴에는 항아리 파편 등 당시 생활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짧게는 5일에서 길게는 50일이 넘도록 동굴생활을 했다고한다. 굴이 발각되면 한라산 더 깊은 곳으로 도망을 가기도 했지만, 대부분 총살당하거나 무자비한 고문을 받았다. 큰넓궤에서 생포된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정방폭포에서 대부분 학살되었다. 길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숲풀을 헤치며, 겨우 도착해야 만날 수 있는 곳.
그 당시는 아마도 더 찾기가 어려웠을 그런 곳에 위치해있다. 혼자 오면 과연 찾아갈 수 있을까? 큰넓궤, 도엣궤가 있는 땅은 이제 사유지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살았던 동굴. 우리는 그 동굴을 온전하게 지켜낼 수 있을까? 이런 역사의 현장이 방치된채 있는 것이 지금의 4.3의 현실인것인가?
순이삼춘의 무대가 된 북촌리 마을. 북촌초등학교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살인. 집단학살. 이곳은 한때 무남촌이라 불릴 정도로 '무장대가 될지도 모를 남자들'이 모조리 희생된 곳이다. 평생 순이삼촌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오누이를 잃었던 옴팡밭의 기억. 지금 그 옴팡밭에는 [순이삼촌] 문학비가 세워져있다. 붉은 피로 상장되는 송이 위에 눕혀져 있는 비석들은 당시 쓰러져간 희생자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밤에는 무장대가 출몰하고, 낮에는 순경이 출몰하여 “폭도에 쫓기고 군경에 쫓겨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조천읍 북촌리, 학살과 강요된 침묵, 그리고 울음마저도 죄가 되던 암울한 시대 4.3의 참혹함과 고통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순이삼촌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중산간마을 초토화작전으로,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고 마을은 불타고 모든것이 사라졌다. 동광리에서 가장 큰 마을에 속하는 무동이왓마을도 잃어버린 마을이다. 모든것들이 사라져서, 마을 자체가 무너져서, 잃어버린 마을이 되었다. 무동이왓 주민들은 토벌대를 피해서 큰넓궤로 피신했다. 제주 곳곳에 300여개 정도 '잃어버린 마을'이 남아있다고 한다. 사람의 온기는 사라졌지만 방으로, 부엌으로 사용되었던 흔적에 돌탑이 쌓여있다. 마을이 있던 흔적을 알려주는 대나무와 연자방아터, 학살터.. 땅은 그대로인데, 이곳에는 더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다. 4.3의 아픔이 그대로 담겨있어 살 수 없는 땅이라서 그런 것인가...
무등이왓에서 가까운 곳에 지슬밭을 지나가다보면 헛묘가 나온다. 헛묘는 가짜묘다. 봉분은 그대로인데, 그 안에 시신이 없다. 정방폭포에서 사살된 사람들. 시신 수습을 하지 못해서, 그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칠성판위에 입던 옷을 넣어서 묘를 세웠다고 한다. 봉분은 7기인데, 9분이 모셔져 있다고 하니 합장묘인 것도 있다. 시신을 못찾아 행방불명된 억울한 죽음. 유가족들의 피맺은 한이 만들어낸 헛묘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보도연맹원을 체포 구금했다. 제주에서도 4.3때 체포된 사람들, 이른바'불순분자'를 검속한 후 섯알오름에서 집단학살한 사건이 발생한다. 계엄군에 의해 아무런 법적 절차도 없이 한밤중에 무참히 총살. 이름모를 산야에 암매장되거나 깊은 바다에 수정되었다. 섯알오름은 유일하게 남은 학살터이다. 섯알오름은 일본군이 1944년 말부터 대정읍 ‘알뜨르’ 지역을 군사요새화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폭탄 창고 터였다. 주변에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시설, 송악산 해안동굴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 패망후 미군에 의해 오름이 폭파되면서, 절반이 함몰되어 큰 구덩이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구덩이에서 집단학살이 벌어진다.
전쟁이 끝나고도 유족들이 유골을 수습하지 못하다 7년이 지난 1957년에야 현장을 찾았는데 서로 엉킨 유골을 구분할 수 없어서 함께 모아 묘를 만들어 그 억울한 죽음을 추모할 수 있도록 만든 곳이 백조일손지묘이다. "조상이 다른 132명이 죽어, 뼈가 엉퀴어 하나되었다 "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을 구분할 수 없어 합동제사를 지내기 위한 유족들의 마음이었다. 5.16쿠데타 당시에는, 빨갱이를 처단한다는 이유로 묘비가 훼손되기도 했다.
제주4.3사건으로 붉은색이 덧씌워진 제주도민들은 사건 이후에도 냉전과 정치공작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한다. 각종 조작간첩사건이 만들어지고, 연좌제로 인해 고통이 되물림되었다. 군사독재시절 은폐, 왜곡... 강요된 침묵 속에서 4.3의 진실은 드러낼 수 없었다.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통해 조금씩 4.3이 세상과 만나게 되었고 민주화이후 숨죽여온 유가족들의 절규가 알려지면서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국가기념일이 되었다.
그래서, 잃어버린 마을이 돌아오고, 억울한 죽음이 위로가 되었을까? 아직도 여전히 4.3은 진행중이라고 한다. '레드컴플렉스'에 시달려온 고통의 시간. 아직도 입밖으로 꺼내는 것이 두려워 4.3의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사람들. 미신고되거나 이름대신 유해번호로 남아있는 미확인 희생자들 국가 예산이 중단되어 유해발굴을 하지 못하는 현장들... 국가가 민간인을 무참하게 학살한 4.3의 진실은 아직도 밝혀지고 있는 중이었다.
감요된 침묵의 시대, 울음도 토해내지 못했던 시대. 군경 토벌대에 학살당한 사람, 무장대에 학살당한 사람.... 제주는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과 그들의 유가족들이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날의 기억을 지우고 못하고 있다.
우리는, 제주4.3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 것인가? 도대체 왜 이 비극적인 사건에 4.3이라는 무장봉기 날자를 붙이게 되었을까? 그 날짜에 가려진, 긴긴 고통의 시간들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이 아픔의 치유와 해결을 오로지 제주의 몫으로 남겨둬서는 안될 것이다. 비참한 4.3의 역사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본다. 그동안 너무 외롭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다. 아름다운 제주 곳곳에 남아있는 4.3의 흔적 제주의 속살을 제대로 보지않고, 제주가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방문했던 4.3유적터에서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다. 사람이 찾지 않는 곳은 곧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4.3의 흔적이 지워지게 해서는 안되겠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더 자주, 앞으로도 계속 그곳에 가야겠다. 사람들과 함께!
우리는 역사의 '진실'을 찾는 것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고, 더이상 국가폭력으로 비참하게, 억울한 죽음이 생기지 않도록 4.3의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려고 한다.
폭도, 산사람들, 무장대, 빨갱이라 불렸을 그들을 제대로 알아주기까지. 제주4.3의 제대로된 이름을 찾는날까지!! 우리들의 여행은 계속 될 것이다.
11월 12일 박근혜퇴진! 백만촛불이 타올랐던 광장에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은 함덕해수욕장에서 우리들만의 '함성'으로 달랬습니다.
지난 6월 23일, 전주를 다시 찾았습니다. 5월 지역으로 가는 감사의 식탁 전주 모임에 참여하셨던 후원회원님들과 지역의 청년들이 후속모임을 하기로 약속한 날이기 때문이지요. 오늘 모임은 김경희 관장님의 초대를 받아 전주 책마루어린이도서관(이하 책마루)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저녁, 후원회원님들과 책마루에 관심 있는 전주 청년들도 함께 해 더 반가웠습니다. 한 달 만에 다시 모인 분들과 인사도 나누고 김밥과 과일을 나누어 먹으며 관장님의 소개로 책마루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구석구석 지역주민의 손길이
책마루에는 구석구석 지역주민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만든 ‘사람들이 만화책을 읽을 때는 조용!’이라는 재미있는 문구가 적힌 팻말부터, 책 속의 주인공을 모빌로 만든 조형물까지… 이곳은 단순히 아이들이 책만 읽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한 곳에 모여 놀이와 배움이 어우러지는 곳이었습니다. 7만7천여 명(누적)의 이용자가 모두 책마루의 후원자이자 자원활동가라는 소개에서 이곳이 지역주민의 손으로 만들어졌고,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친구에게 추천하는 책을 따로 전시해놓은 것을 보며, 도서관 운영에 직접 참여하고 만들어가는 주인의식이 자연스레 학습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도서관은 조용히 공부하는 곳’이라는 말보다 더 깊은 가르침이지요.
책마루에는 아이와 어른이 함께 활동하는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수요똑똑똑, 책꾸러미나르기, 방과후교사, 책읽어주기 등… 소통, 나눔, 북돋음, 키움, 기다림을 바탕으로 한 운영정신이 잘 반영된 활동이었습니다. 책마루 활동가이신 공세영 후원회원님께서 ‘모치모치나무’라는 동화책을 읽어주셨는데요. 너나 할 것 없이 낭독 선생님이 읽어주시는 동화책 내용에 푹 빠졌답니다.
함께 만드는 따뜻한 도서관
책마루에서 운영 중인 졸음쉼터(활동가, 지역사람들의 쉼터)와 한솥밥(지역민들과 동짓날 팥죽 나누는 행사)과 같은 프로그램은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도서관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었습니다. ‘함께 누리고, 함께 만들어 가는, 따뜻한 도서관’이 책마루가 나아갈 길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후원회원님들과 전주 청년들도 후원과 활동 참여로 책마루의 앞길에 마음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희망제작소 덕분에 청년들에게 책마루를 소개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지역분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자주 있으면 좋겠습니다.” – 김경희 책마루어린이도서관 관장
“전주에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어요. 책마루어린이도서관 너무 좋아요!” - 전주 청년
“지역의 청년들과 만나고 함께 모이는 후원회원행사에 다른 후원회원들도 많이 참여하면 좋겠어요.” - 전주 후원회원
다음 만남도 기대합니다
5월 지역으로 가는 감사의 식탁은, 이렇게 지역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졌습니다. 지역의 청년들도 함께해 더 의미 있는 자리가 되었지요. 이번 만남을 기억하며, 7월 17일(금) 부산에서 진행될 지역으로 가는 감사의 식탁도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지난 1월 "헬조선? 포기할래? 바꿔볼래!"라는 주제로 시작한 체인지리더 6기. 경제, 정치, 대학, 주거 등 우리 사회의 청년 문제를 알아보는 일곱 번에 걸친 기본교육을 거친 후 50여일 동안 "청년이 투표하는 이유"라는 이름으로 4월 총선을 앞두고 청년 정책을 이야기하고 일상의 변화를 위해 투표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3개월 활동이 끝나고, 총선 직후인 4월 16일 드디어 체인지리더 6기 활동 수료식이 있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청년들의 투표를 독려하기 위한 활동을 한 만큼 수료식 장소에 오자마자 총선 결과에 대해 이야기가 벌어졌습니다.
체인지리더가 청년 세대에 이번 총선이 가지는 의미를 우선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는 지금까지 투표를 한다고 해서 뭐가 바뀔 수 있을지 의심했던 청년들이 무언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고무된 것이 상당히 의미 있는 성과라는 점 때문입니다. 또한 그동안 우리나라 선거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던 지역주의가 흔들린 것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평가였습니다. 물론, 지역구에서 지지하던 후보가 당선되지 않아 변화가 쉽게 오지는 않는다고 느낀 친구도 있긴 했지만요.
또한 이번 총선과 청년에 관해서는 정확한 자료가 나온 뒤에 청년 세대 투표율에 대해서, 그리고 총선 이후 청년 세대를 바라보는 여러 시선에 대해서는 더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선거 결과에 대한 아쉬움도 오고 갔습니다. 여당이 과반 의석에 실패한 이유를 공천 파동으로 인한 내부 지지자들의 결속 실패로 보았는데요,
'이번 총선은 차악을 뽑은 결과였다'라는 한 체인지리더의 말처럼 어떤 정당, 후보자를 뽑았다고 해도 좋아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싫은 것을 피하기 위해 반대급부로 선택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청년 정책과 청년 정치인은 분리해서 봐야 하기는 하지만 청년 후보자들이 대체로 이번에 국회 입성을 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고 결국 정책은 없는, 마치 예능 같은 선거여서 실망스러웠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청년들이 정치 과정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직접 정치에 참여하고, 청년 정책을 이야기할 때 주제를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덧붙여 이번 총선에서 진보정당들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해서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걸 느꼈다는 아쉬움을 담은 의견도 있었습니다.
아쉬움도 많은 결과였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일들입니다. 선거 결과에서 변화가 정책적인 변화와 사회적인 변화로 이어져야 할 것이고, 내년으로 다가온 대선 또한 청년 세대가 마주할 중요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총선 결과 이야기에 이어서는 체인지리더 활동 소감도 나누고 이후 활동도 공유했습니다. 사회 변화나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 활동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는 체인지리더 6기! 체인지리더 6기 활동은 끝나지만 계속해서 청년 정책을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 대안을 만들어나갈 예정입니다.
수료식을 마친 체인지리더는 근처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된 세월호 2주기 추모 문화제에 함께했습니다. 우리가 정치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을 겪지 않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청년 정책을 논의하다보면 결국 우리가 원하는 사회의 모습을 그려보게 됩니다. 어느 한 세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가능한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체인지리더는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어쩌면 막연한 변화들을 구체적인 대안으로, 정책 요구로 만들어나가려 합니다. 체인지리더 활동 소식 꾸준히 전해드리겠습니다.
지난 겨울, 광화문광장에 뜨겁게 타올랐던 "촛불" 더 나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민의'가 정치를 통해 구현되지 못하고 광장에서 터졌습니다.
지난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사람이 주인인 세상!!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큰 물길을 만들어 온 것은 언제나 백성.국민.시민들이었습니다. 폭압에 굴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광장"에 모여서 외쳤던 함성은 미완의 혁명일지라도, 폭발적인 힘을 일으켜 시대정신이 되어 역사의 변화를 만들어왔습니다.
87년 6월항쟁 30주년을 맞이하여 "광장민주주의"의 역사를 돌아보고 더 나은 민주주의, 오늘의 시대정신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1) 모집 마감 : 5월 18일(목) 오후 6시 2) 모집 대상 : 근현대사에 관심있고, 배우고 싶은 회원, 시민, 대학생 누구나 3) 모집 인원 : 30명 4) 참가비 -전체 참가비 14만원 / 서울KYC 회원 20% 할인 112천원 -대학(원)생, 취준생, 열정페이 노동자 20% 할인 112천원
6) 신청 절차 및 완료 -신청을 해주신 후 아래 계좌로 참가비를 입금하시면 됩니다. 참가비 입금계좌 : 신한은행/ 100-024-876626/ 서울KYC -접수 후 24시간 이내(주말 제외) 사무국에서 접수 확인 문자를 드립니다. -서울KYC홈페이지(www.seoulkyc.or.kr)를 이용해 회원가입 후 신청서를 보내시면 ‘회원 할인’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단, 회비납부방법은 CMS자동이체를 선택하셔야 합니다.
7) 개별 답사 신청 -개별 답사신청은 해당 강좌 시작 2주 전 홈페이지를 통해 적정인원을 선착순 접수합니다. -개별 답사 참가 시 *목포/정읍/천안/광주 참가비 35천원/ 서울 참가비 1만원 *실내강의 부분 참가 1만원 *회원의 소개로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우, 회원 참가비 적용이 가능합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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