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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수의견’ 시사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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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수의견’ 시사회 후기

익명 (미확인) | 금, 2015/06/26- 10:58

소수의견 감상

법무법인 양재 안희철

 

“소수의견을 판결로 이끌어내기 위한 실질적 조건은 세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지요. 국민의 법감정에 기반한 강력한 여론의 지지, 유능한 변호사, 그리고 시대의 변화. 우리는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은 갖췄죠. 시대가 바뀐 거예요. 이제 소수의견이 자기 자리를 찾을 때가 된 겁니다.”

 

 

영화 소수의견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제는 정말 우리 사회에 소수의견이 자기 자리를 찾을 때가 된 것일까.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지 1년조차 되지 않은 새끼 변호사지만, 형사사건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면 벌써부터 무죄주장을 해도 되는 것일까, 끝까지 싸우는 것보다는 정상참작을 바라는 것이 현 한국사회에서는 피고인을 더 잘 변호해주는 것이 아니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만큼 현실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100원 국가배상청구소송을 내용으로 하는 소수의견은 법조인에게는 법조인이 되고자 했던 당시의 초심을, 그리고 많은 국민들에게는 국가란 무엇인지 나는 국민으로서 보호받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사실 영화 제목만 들으면 왜 제목이 소수의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면 이내 제목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출근길 화요일 오전 지하철 안을 살펴보니, 수많은 소시민들이 웃음기도 별로 없이 핸드폰이나 책을 보며 혹은 피곤에 잠을 청하며 출근을 하고 있다. 분명 이들이 국가를 구성하는 다수이지만, 소시민들의 의견은 소수의견이 되고만 세상. 그게 우리들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아닌지 그들의 모습을 보며 생각하게 된다. 이 영화는 그런 한국의 모습을 아주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고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소수의견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시사회 때 김성제 감독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가 용산참사를 그대로 그린 영화는 아니라고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를 통해 용산참사, 나아가 이 시대 국가의 모습과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깊게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다만, 영화 속에서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국민을 사지로 이끄는 국가권력의 모습이 메르스 사태와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준 무능한 정부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느꼈던 씁쓸하고 무거웠던 기분은 비단 나 혼자 느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요란하지는 않지만 그 무엇보다 분명하게, 소수의견이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는 변화의 흐름이 지금 이 순간에도 생겨나고 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소설 원작의 구절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치고 싶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수의견이 자기 자리를 찾을 때. 달이 해가 되는 때. 늙은 나무의 그늘로부터 새싹이 돋아나는 때. 나는 가슴 한구석을 저리게 찔러대는 그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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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위원회 활동소식

1. ‘성매매위헌제청’ 워크숍 개최

 여성인권위는 지난 9월 월례회에서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오정진 교수님을 모시고 성매매위헌제청과 관련하여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자리를 가졌습니다. 오 교수님은 여성주의의 대표적인 상징이자 디딤돌이었던 ‘성적 자기결정권’이 최근에 성매매를 옹호하는 근거로 주장되는 원인이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그간의 이해와 작동이 다분히 사사화(私事化)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현재 법적 권리로서 논의되는 ‘성적자기결정권’은 단순한 교환체계를 넘어서는 특이성으로서의 섹슈얼리티와 친밀성을 담아내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성매매특별법 제정 때부터 반성매매 활동에 함께해온 여성인권위에게 이번 워크숍은 그간의 관련 활동을 진단하고 ‘성적 자기결정권’ 재구성을 위한 열띤 토론과 깊은 고민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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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성성소수자궐기대회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 공동주최

 최근 여성가족부의 보수화된 성평등 행정에 항의하고 우리사회 성평등의 확장을 요구하는 문화제로 기획된 여성성소수자궐기대회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 궐기대회가 2015. 10. 10. 오후 6시 대한문 앞에서 열렸으며, 여성인권위는 민변 소수자위와 위 대회에 한국여성단체연합, 행동하는 성소수자연대 등과 공동주최로 함께하였습니다. 그 전에는 2015. 10. 7. 오전 9시 20분 광화문 정보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성소수자-여성단체와의 면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여성가족부를 규탄한다’는 기자회견을 공동주최하였고, 여성인권위 조숙현 위원장이 발언하기도 하였습니다.

'성평등에서 성소수자 배제한 여가부 규탄한다!'

 

3. 2015년 정기국회 대응을 위한 여성인권분야 법률안 의견서

2015. 11. 중에 예정하고 있는 민변 법률안 의견서 발표를 앞두고, 여성인권위는 10월 월례회에서 여성인권분야 법률안에 관하여 각 팀별로 작성한 검토의견서 초안을 점검하고 여성인권위의 검토의견서를 논의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가족법 분야의 2개 법안(가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 및 군인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에 관하여는 ‘입법촉구’ 의견을, 빈곤과 여성노동 분야의 2개 법안인 ‘차별․성희롱 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과 감정노동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들에 관해서는 ‘입법촉구’, ‘보안 후 입법촉구’ 의견을 각 확정하였습니다. 그 외 법률안에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검토 중입니다.

4. 차기 월례회

 여성인권위 11월 월례회는 2015. 11. 19. 목요일 늦은 7시 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립니다. 송년회를 제외하면 올해의 마지막 월례회 자리인 만큼,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올 한해 여성인권위 활동을 짚어보고 의견 나누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재밌고 알차기로 유명한^^ 여성위 송년회는 12월 17일 저녁에 있을 예정이며, 언제든 열려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화, 2015/10/2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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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xe_content"><h1 style="text-align:justify;">'용산'이라는 미래</h1> <h2 style="text-align:justify;">비뚤어진 욕망을 주조한 세계가 만든 비극</h2> <p style="text-align:justify;"><br /><strong>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strong></p> <p style="text-align:justify;"> </p> <blockquote> <p style="text-align:justify;">"용산참사 현장을 왜 남일당이라고 불러요?"</p> </blockquote>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얼마 전 한 동생이 물었다. 그 건물 일 층에 남일당이라는 금은방이 있었거든. 그래서 남일당이야. 질문자는 한참 동안 대답을 믿지 않았다. 고작 그런 이유로 10년 동안 남일당이었다는 것은 조금 허망하다는 투였다. 원래 동네의 골목이란 그런 이름으로 불리기 일쑤다. 약국이 없는 사거리가 약국사거리거나 구청이 이전한 자리를 여전히 구청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골목이나 사람들이 사라진 동네는 예외다. 기억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허허벌판이 되었다가 거대한 건물이 올라가고 있는 한강로5가 동, 용산4구역에서 핏줄처럼 흐르던 골목의 흔적은 더이상 느낄 수 없다. 2009년 1월 20일, 망루가 불타던 그날로부터 10년이 흘렀다.</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strong>10년 동안 외쳐온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strong></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용산참사는 이주대책을 요구하던 용산4구역 철거민들의 망루 농성에 경찰특공대가 투입되고, 이 과정에서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 한 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용산참사 이후 화재의 원인과 사망, 진압과정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었으나 경찰은 수사기록 3천 쪽을 제출하지 않았고, 증거들은 사라지거나 훼손되었다. 철거민의 화염병이 화재를 일으켰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철거민들에 의해 난 불로 인해 경찰이 사망한 것으로 재판은 결론지어졌고, 철거민 5명의 죽음에 대한 진상은 다루지조차 못한 채 망루 안에 있던 철거민들은 중형을 선고받았다.</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지난 10년간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은 다양한 사실을 밝혀냈다. 망루 안에 위험물질이 있다는 사실을 지휘부가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작전을 수행하는 부대원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 당시 경찰 서울청장이었던 김석기는 무전기를 꺼놓았다며 책임을 회피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 등 경찰의 작전이 매우 성급하고 무리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이다.</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그러나 이러한 잘못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오사카 총영사와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거쳐 현재 새누리당 국회의원으로 승승장구한 김석기는 무리한 진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이버수사대 요원 900명을 동원해 경찰 진압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댓글 공작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지만, 공소시효가 만료했다. 용산4구역의 개발 인허가는 이후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못했다는 것이 확인되어 승인 취소되었지만 이로 인해 주거와 생계를 빼앗긴 이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용산참사 10주기를 맞아 유가족과 피해생존 철거민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아직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이다.</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strong>삶과 존엄을 파괴하는 강제철거</strong></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정확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몇 가지 사실을 바르게 나열한다고 해서 진실이 드러나진 않는다. 용산참사의 진실은 우리가 본 불타는 망루에 담겨있다.</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2009년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전 국토를 공사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당시 새로운 금융기법이었던 프로젝트파이낸싱은 천문학적인 대출에 높은 이자를 지불하는 것이었으므로 빠른 개발만이 높은 이익을 보장했다. 빠른 개발은 철거민들의 빠른 퇴거를 요구하고, 이를 위해 동원되는 것은 강도 높은 폭력이다. 아직 살고 있는 주민들을 해코지하거나 장사하는 가게에 오물을 투척하거나, 빈집의 유리창과 문을 떼어내고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들은 모두 한국 사회 만연한 '철거'의 과정이다.</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용산4구역 철대위 위원장이었던 이충연은 망루에 오른 것은 '용역깡패들의 폭력을 피해 간 것'이라고 얘기한다. 더는 가족들이 당하는 고통과 모욕을 두고 볼 수 없었고, 조합은 단 한 차례의 협의 조차 하려하지 않았다. 용산구청을 비롯해 조율에 나서거나 돕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들은 망루로 향했다. 망루를 오른 사람들은 남일당, 그 골목을 채우고 있던 사람들이었다.</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지난 12월 3일에는 한강에서 마포 아현동 철거민 박준경 님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는 10년째 살던 집에서 7월과 9월, 두 차례 강제철거를 당해 쫓겨났고, 임시로 머무르던 주변 공가에서마저 11월 30일 퇴거당한 뒤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용산참사 이후 서울시의 경우 동절기 강제철거가 금지되었지만 12월 1일부터 동절기에 해당한다. 그 전에 퇴거를 완료하기 위해 철거지역은 전쟁터가 되고, 박준경님의 마지막 철거 역시 11월 30일이었다. 용산참사 이후 재개발지역 상가세입자의 문제가 수면위로 드러났지만 재건축 세입자에게는 이조차 해당하지 않기에 우장창창, 궁중족발 등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십 년 동안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용산참사 이후 개발지역 세입자의 문제는 사회적으로 드러났고, 경찰 진상조사위원회과 검찰의 과거사위원회를 만들어냈다. 비록 외압으로 인한 조사 부진과 한계를 갖고 있으나 유가족과 피해생존자, 이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 '용산참사 진상규명'의 초입에 섰다.</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용산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가깝게는 사망과 화재원인에 대한 규명과 진압 책임자의 처벌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어떠한 도시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열심히 돈 벌어 건물주에게 바쳐야 하는 세입자들이 언젠가 건물주가 되길 희망하는 이곳에서 우리는 새로운 사회를 꿈꾸어야 한다. 비뚤어진 욕망을 주조한 세계에 대한 몇 겹의 이해와 이를 개조하기 위한 노력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용산은 언제나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다.</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 </p> <blockquote> <p style="text-align:justify;">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a href="http://www.pressian.com/news/review_list_all.html?rvw_no=1661"&gt;클릭</a>)</p> <p style="text-align:justify;"> </p> <p style="text-align:justify;">*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p> </blockquote></div>
월, 2019/01/2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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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건물, 아는 글자

11월 초지만 대만은 따뜻했다. 그러나 회색 일색의 건물에서 초겨울 느낌이 났다. 하지만 여행 둘째 날의 비는 장맛비같은 비. 확실히 이국의 날씨였다. 같은 아시아권이라 그런지 차창 밖의 풍경을 보고 잠시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스치는 건물 모양과 간판에서 한국이 아님을 곧 깨달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중국어를 거의 모르는 내가 글씨를 읽을 수 있었으니… 알고 보니 대만은 아직 간체자가 아니라 번체자를 써서였다. 일본의 한자가 동글동글 귀여운 느낌이라면, 대만의 한자는 우리 서예법의 정서체처럼 참으로 시원시원하고 멋졌다. 도포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랄까… 섬이지만 대륙의 풍모가 느껴졌다.

 

민변다운 여행

첫째 날과 셋째 날은 가장 ‘민변다운’ 여행이었다. 원래 의도했던 통일기행 혹은 인권답사였기 때문.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셋째 날 오전의 신베이시에 있는 ‘징메이 국가인권박물관’이다. 1968년부터 1992년까지 군사 법정으로 사용된 곳으로 대만 정부의 백색테러를 증명하는 공간이다. 우리의 공안정치와 비슷한 대만의 백색테러는 국민당 정권이 반체제 인사들을 숙청·박해한 것을 통칭하는 것. 약 14만 여명이 군사법원에 기소됐고 3천∼8천여 명이 처형되었다고 한다. 나뿐만 아니라 통일위 변호사님들 모두 놀란 것은 군사 법정 법대에 심판관(판사)과 나란히 군사검찰관(검사) 자리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능히 당시의 엄혹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군사법정

이어 타이페이 시내에 있는 ‘2·28 국가기념관’에 갔다. 2·28사건은 1947년 일제가 물러난 뒤 대만을 접수한 국민당 군대가 차별대우에 반발한 대만 원주민들의 시위와 파업을 유혈 진압한 사건이다. 약 3만 명이 실종,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의 제주 4·3항쟁, 광주 5·18항쟁을 안 떠올릴 수 없었다. 39년 계엄시기 동안 2·28사건은 대만 사회에서 금기대상이었으나, 1987년 계엄이 해제된 이후 비로소 진상규명이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옆의 ‘국사관’(국가역사관에 해당)에서 총통(대통령)선거에 관한 전시를 보면서 대만 현대정치의 단편을 엿볼 수 있었다. 국사관 마지막에는 특이하게 대만 총통이 외국으로부터 받은 선물전시실이 있었는데, 그 외국들이 라틴아메리카,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가 많았다. 알고 보니 이들은 20여명의 샤오펑유들(小朋友, 작은 친구들). 1971년 중국이 유엔에서 대표권을 얻고 대만이 퇴출되면서 다른 나라들이 단교할 때 지금까지 대만과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이었던 것.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대만의 현재와 이를 극복하려는 대만의 눈물겨운 노력의 산물이 바로 이 전시실이었던 것이다.

통일기행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양안(兩岸)관계’의 일면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첫째 날 대만정치대학교 채종민 교수의 강의, 셋째 날 주립희 교수와의 뒷풀이 자리에서였다. 현재 양안관계를 단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일개중국 각중각표(一個中國 各中各表)’. 이것은 국민당 마잉주 집권 이후 1992 컨센서스, ‘하나의 중국과 각기 다른 표현’을 의미하는데, 본토는 중화인민공화국이, 대만은 중화민국이 각기 다른 중국을 표상한다는 것이다. 양안관계에서의 통일담론은 남북한의 통일담론과는 사뭇 달랐다. 대만에서는 통일 찬성 입장이 오랜 집권당이었던 ‘국민당’이고 대만 독립 입장은 ‘민진당’이라는 것. 자신을 대외적으로는 Chinese(중국인)라고 소개한다는 채종민 교수와 Tiwanese(대만인)의 정체성을 내세우는 주립희 교수의 대비가 이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셋째 날 오후 타이페이 율사공회(약칭 ‘북률’, 우리로 치면 서울지방변호사회) 사무실에서 통일기행단장 서중희 변호사님과 북률의 헌법위, 인권위 변호사님들이 각기 자신들의 과거사 청산 소송 경위를 발표하면서 양국의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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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관광코스

둘째 날은 일명 ‘예스진지’(예류지, 스펀, 진과스, 지우펀)라는 한국인들이 잘 간다는 관광코스에 갔다. 예류지에서는 바람에 풍화된 바위의 모습을, 스펀에서는 드라마에서만 봤던 풍등을, 진과스에서는 바윗돌만한 황금덩어리를, 지우펀에서는 장맛비 속에도 관광하러 온 정말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진과스(金瓜石)는 금광을 캐던 탄광으로 황금과 대비되는 그 시절 광부들의 중노동을 떠올려 보았고, 진과스에서 지우펀(九分)과 스펀(十分)까지 금을 실었던 협궤가 있어 옛 정취를 느껴보았다. 딘타이펑 본점이 있는 융캉제의 화려함과 대만 야시장 특유의 서민적인 분위기도 조금씩 맛보았다. 무엇보다 그 유명한 취두부! 양승봉 변호사님의 선도투쟁(?) 아래 다들 도전해 성공했지만, 나는 끝내 삼키지 못했다.

셋째 날 도조라는 술집에서는 북소리 공연에 전율이 일었고, 지한파 주립희 교수와의 대화도 즐거웠으나, 무엇보다 오랜만에 술집에서 다 같이 노래를 불렀던 것이 참 좋았다. ‘님을 위한 행진곡’과 김정호의 ‘하얀나비’. 다행히 옆 테이블의 박수까지 받은 것으로 보아 민폐는 아니었다…

마지막 날은 통일기행의 대미를 장식한 ‘대만고궁박물관’ 방문. 베이징 고궁박물관에는 박물이 없고, 타이베이 고궁박물관에는 고궁이 없다는 말처럼 자금성이 아닌 현대식 건물에 중국의 진귀한 보물들이 정말 많았다. 취옥백채와 육형석은 역시나 인상깊었으나, 개인적으로는 많은 전시물을 정성스럽게 찍으시던 천낙붕 변호사님이 더 인상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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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둘째 날 기행단만의 술자리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서울과 달리 늦게까지 여는 술집을 찾을 수 없어 힘들게 찾아낸 술집은 생각보다 좋았다. 도무지 무슨 음식인지 알 수 없는 메뉴판을 갑골문자 해석하듯 해석하여 주문한 술안주는 생각보다 맛있었고, 마침 술집 주인이 한국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 우리들 이야기 사이사이에 끼여 잠시나마 술로 대동단결하였다.

무엇보다 기행 중간의 개인적인 소감과 통일위에 대한 고민 등을 나누며 우리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았다. 민변 회원으로서의 적극적인 활동과 소통에 대한 고민은 내가 속한 노동위 뿐 아니라 통일위도 다르지 않았다. 채희준 위원장님의 고민도 술자리에서 조금은 나누어졌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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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듬 안주 같았던 대만통일기행

내게 있어 이번 대만통일기행은 민변다운 여행과 관광, 친교를 두루 경험할 수 있었던 모듬 안주같은 여행이었다. 무엇보다 통일위 회원이 아닌데 용기를 내어 신청한 나를 따뜻하게 환대해주신 통일위 변호사님들을 알게 되어 기뻤다.

여행 전 대만에 관한 책을 사놓고서도 공부한다는 느낌이 들어 읽지 않았는데, 돌아오는 비행기와 공항버스에서는 어찌나 재밌던지… 나라도 사람도 직접 겪고 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 더 알고 싶어진다.

백두산이 될지 아일랜드가 될지 모르는 내년 통일기행도 새로운 호기심 가득안고 떠나고 싶다.

화, 2017/11/28-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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