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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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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

익명 (미확인) | 목, 2015/06/25- 18:11

오픈넷이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특허법 개정안(원혜영 의원대표발의안)에 대한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 PDF로 보기: 특허법 개정안(원혜영 의원대표발의안)에 대한 의견서_오픈넷

* 관련 성명서: 특허 허브 전략 국가론은 폐기해야 -기술지식의 사회적 이용을 위한 정책이 필요한 때

 

특허법 개정안(원혜영 의원대표발의안)에 대한 의견서

 

원혜영 의원이 2015. 2. 13. 대표발의한 특허법 일부 개정법률안(의안번호: 13980, 이하 “개정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의견을 개진합니다.

 

1. 특허 허브 국가론의 문제점

1-1. 특허 허브 국가론의 내용

개정안은 특허 허브 국가론을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특허 허브 국가론은 한 마디로 말해 전 세계 특허 소송을 우리나라에 유치해 보자는 것입니다. 즉, 특허 허브 국가론의 ‘허브’는 특허 허브 또는 기술혁신의 허브가 아니라 특허 소송 또는 특허 분쟁의 허브를 말합니다. 특허 허브 국가론에 따르면 전 세계 특허 분쟁은 시장 규모가 연간 200조원에 달하고, 관련 분야 파급효과까지 고려하면 500조원에 달하는 블루오션이라고 합니다.

특허 허브 국가론이 제시하는 미래 전략의 핵심은 이를 추진하는 ‘대한민국 세계 특허 허브국가 추진위원회’의 공동대표인 원혜영 의원과 정갑윤 국회부의장의 언론 인터뷰에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 “이 시장[특허 소송 시장]은 제조업처럼 설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전문 인력만 있으면 되는 블루오션이다 … 한국이 특허 허브국가로 발전하면 200조원의 10분의 1만 유치해도 20조원이다. 이보다 좋은 창조경제 아이템이 어디에 있나”(원혜영 의원, 전자신문 2015. 1. 22. 인터뷰)
  • “특허분쟁 시장의 10%만 우리가 가져와도 한해 50조원을 벌 수 있다”(정갑윤 국회부의장, 주간조선 2015. 3. 2.자 인터뷰)

특허 소송 허브 국가가 되려면 외국 기업들이 특허 소송을 국내에서 제기하도록 유인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특허 허브 국가론은 크게 3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 소송에게 이긴 경우 거액의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둘째, 입증책임 등 법률상의 부담을 줄여 소송을 제기하기 편하게 하며, 셋째, 시간 낭비 없이 신속한 판결이 내려지도록 하자고 합니다.

1-2. 특허 허브 국가론은 국가의 전략이 될 수 없습니다.

특허 허브 국가론에서 내세우는 시장 규모 200조원은 근거가 없습니다. 관련 분야 파급 효과까지 고려할 때 500조원에 달한다는 것도 지나치게 부풀린 수치입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국제무역통계 2014(Interantional Trade Statistics 2014)1)만 보더라도, 전 세계 지재권 무역2)의 수출 규모 전체가 2012년에 2,950억 달러, 2013년에 3,100억 달러로 약 300조원 규모입니다. 따라서 지재권 무역에 비해 그 규모가 훨씬 적은 특허 분쟁 시장이 관련 분야까지 포함하더라도 500조원에 달한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따라서 이 수치들은 국가 정책의 기초로 삼을 수 없습니다.

설령 시장 규모가 200조원이라 하더라도 이 돈은 모두 특허권자가 침해자로부터 받아가는 손해배상액과 소송을 수행하는 변호사 보수입니다. 이 돈이 어떻게 국가가 전략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특허 소송에서는 외국 기업이 국내 기업을 상대로 승소할 가능성이 더 높고, 그 피해는 국내 기업과 최종적으로는 소비자인 일반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므로, 특허 분쟁 시장은 우리에게 ‘블루오션’이 아니라 ‘잿빛 피바다’가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처럼 특허 허브 국가론은 학문적·이론적 근거가 취약하여 미래전략이란 이름으로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 입니다. 특허 소송을 국내에 유치하여 가장 이득을 보는 집단은 변호사들입니다. ‘세기의 특허 전쟁’으로 불리는 삼성전자와 애플 간의 특허 분쟁에서 최후 승자는 변호사란 분석3)은 특허 허브 국가론이 실제로는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간파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합니다(애플과 삼성이 특허 분쟁에 지출한 소송비용이 2013년 말에만 1,000억이 넘었다고 합니다).

1-3. 기술무역수지 적자폭만 키울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기술 무역 수지 만성 적자국4)입니다. 아래 그림과 표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나라는 기술무역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WTO의 국제무역통계 2014(Interantional Trade Statistics 2014)5)에서도 우리나라의 지재권 무역(royaltie and license fee) 수지는 수출 2012년 38억 달러, 2013년 41억 달러, 수입 2012년 85억 달러, 2013년 96억 달러로, 적자 규모가 2012년에는 47억 달러, 2013년에는 55억 달러 즉, 매년 약 5조원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기술무역 통계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술무역 적자 규모는 2010년까지 계속 증가하여 그 규모가 약 7조원까지 되었다가 2011년부터 조금씩 개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무역 수지가 크게 호전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2013년 우리나라의 기술무역 총 규모는 188억 달러로 전년 대비 15.4% 증가하였는데, 기술수출의 증가는 기계, 섬유 분야가 주도한 반면, 기술도입의 증가는 국내 주력산업인 전기전자, 정보통신 분야에서 해외 기술 활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무역현황

[출처: 미래창조과학부 「기술무역 통계조사」(각 년도)

http://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335]

기술무역현황2

우리나라의 기술무역 적자는 대부분 미국, 일본, 독일 등과의 무역에서 발생합니다. 이들은 우리와 달리 기술무역 흑자국입니다.

기술무역수지
이처럼 국내 기업은 외국 기업으로부터 받는 특허 로열티보다 외국 기업에게 지불하는 특허 로열티가 2배 이상 많습니다. 따라서 특허 허브 국가론의 주장처럼 특허 침해 배상액을 늘리면, 기술무역 수지 적자폭만 커질 뿐입니다.

또한 원고인 특허권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하여 입증책임을 완화하고 피고에게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면 무분별한 특허 분쟁만 늘어나고,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서 폐해를 지적하는 ‘특허 괴물(patent troll)’에게 이제 국내를 무대로 활동하라고 멍석을 깔아주는 꼴이 될 것입니다.

1-4. 근거 없는 오해들

특허 분쟁 허브 전략이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은 싱가포르를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2013년에 ‘IP 허브 기본 계획(IP Hub Master Plan)’을 채택하였지만, 그 후 특허 분쟁이 싱가포르 법정에서 많이 발생하였다거나, 분쟁 증가로 싱가포르가 어떤 혜택을 보았다는 통계는 없습니다. 여전히 싱가포르는 대표적인 지재권 무역 적자국으로 남아 있습니다(2012년 수출 20억 달러, 수입 199억 달러, 2013년 수출 20억 달러, 수입 202억 달러).

또한 특허 분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고 배상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특허권자가 우리나라에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전망도 현실성이 없습니다. 특허 허브 국가 전략론은 인천공항 사례를 들고 있으나, 인천공항이 아무리 서비스를 강화해도 목적지나 경유지가 우리나라가 아닌 비행기는 인천공항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 진출하지 않은 기업이나 관련 시장 규모가 작은 경우에는 승소가능성만을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특허 소송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허권은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국가별로 별개의 권리가 발생하고 침해 소송과 같은 권리 행사는 어차피 개별 국가에서 해야 합니다. 인터넷 도메인 이름 분쟁과 같이 판정 결과가 국경과 무관하게 모든 나라에 미친다면 모를까 개별 국가별로 권리 행사를 해야 하는 특허 분쟁을 우리나라에 유치하겠다는 발상은 상식에도 반합니다.

그리고 우리 법원이 특허 침해 사건에서 손해액을 낮게 인정한다는 것도 근거 없는 오해입니다. 설령 손해액을 낮게 인정하더라도 이는 실제 손해가 적기 때문이지 법원이 특허권을 경시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특허 허브 국가론이 근거로 삼는 낮은 손해액과 달리,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선고한 특허침해 사건에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 22건을 분석한 결과 손해액은 평균 10억원에 달하며 인용율도 60%나 됩니다.

 

2. 기술지식의 사회적 이용을 위한 정책을 고민해야 합니다.

특허법은 특허권 보호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법이 아닙니다. 사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연구 개발의 성과, 즉 기술지식을 어떻게 하면 사회전체로 흘러넘치게 할 것인지가 특허법 또는 특허 정책의 핵심입니다.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들의 기술성과를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내버려두면 사회적으로 필요한 수준으로 기술지식이 생산되지 않는 일종의 시장실패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정한 기간 동안 기술지식의 생산자에게 특허권이란 인위적 독점권을 부여합니다. 이런 점에서 특허 제도는 기술지식의 과소 생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의 시장개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특허제도에서 특허권의 보호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필요한 수준으로 기술지식이 생산되도록 하려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수단을 쓰는 궁극적인 이유는 기술지식의 사회적 활용에 있습니다. 특허권자가 기술지식의 독점이윤을 독차지하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아무런 혜택이 없다면 국가가 개입하여 특허권을 보장해줄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특허 정책에서는 기술지식의 과소 생산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필요한 수준 이하로 기술지식이 이용되는 과소 소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이는 단순한 산업정책이나 기술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국제법상 의무이기도 합니다. 사회권 규약 제15조와 세계인권선언 제27조는 “과학의 진보와 응용의 혜택을 향유할 권리”를 체약국이 보장할 기본적 인권의 하나로 천명하고 있습니다. 기술지식의 진보로부터 혜택을 볼 보편적 인권은 특허권을 강화하고 우리나라를 특허 분쟁의 전쟁터로 만든다고 보장되지 않습니다. 기술지식의 사회적 이용을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특허권 보호와의 적절한 균형을 도모할 때 비로소 보장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특허 허브 국가론은 이에 정면으로 역행하여 우리나라를 인권 후진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허 제도의 기본 취지와 인권법적 함의에 비추어보면, 특허 허브 국가론은 특허권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켜 특허권자에게 지나치게 유리한 제도 변경만 모색할 뿐 기술지식의 사회적 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려도 하지 않은, 정책으로서는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3. 조문별 의견

3-1. 통상적으로 받을 수 있는 보상금

개정안은 특허출원이 공개된 경우 특허권자가 침해자로부터 받을 수 있는 보상금(안 제65조)과 특허권자가 침해자로부터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금 추정 규정(안 제128조 제4항)을 개정하여, “특허발명의 실시에 대하여 통상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에서 “통상적으로”란 용어를 삭제하려는 것입니다.

이는 특허권자가 받을 수 있는 배상액을 높이겠다는 취지인데, 이렇게 되면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국내 기업들이 외국 기업에게 지불해야 할 특허 로열티만 늘어나 기술무역 적자폭 확대로 이어질 것입니다.

3-2. 고의·중과실 유무의 고려

개정안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침해자에게는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때 그 사실을 고려하도록 한 규정을 삭제하려고 합니다(안 제128조 제5항). 이는 특허권의 성질을 고려할 때 매우 위험한 제안입니다.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특허권 침해는 타인의 특허 기술을 모방했을 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타인의 특허 기술을 모방하지 않고 스스로 개발한 기술이라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특허 기술과 동일하거나 균등(equivalent)한 경우에는 특허권 침해가 됩니다. 저작권 침해의 경우에는 타인의 저작물을 모방해야 저작권 침해가 되는 것과 다른 점입니다. 이런 이유로 특허권은 절대적 독점권이라 부르며, 완전한 승자독식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특허 분쟁이 모방자가 아닌 독자 개발자를 상대로 제기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특허 소송 사례를 보면 특허 기술을 모방하지 않았는데도 특허 소송에 휘말린 경우가 90%를 넘습니다.6) 따라서 특허 기술을 모방하지 않은 선의의 경쟁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개정안은 선의의 경쟁자를 보호할 최소한의 장치마저 없애려고 합니다. 개정안과 같이 특허법이 바뀌면, 독자적으로 개발한 선의의 경쟁자가 특허 소송에 엮여 모방자와 똑같은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되는데, 이는 정의의 관념에도 반할 뿐만 아니라, 선의의 경쟁자의 기술을 사장시켜 사회적으로도 손실이며, 특허권자에게 지나친 독점 이윤을 몰아주는 부당한 결과가 됩니다.

3-3. 징벌적 배상액

특허권 침해자에게 징벌적 배상액을 인정하는 국가는 미국이 유일합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특허권 침해자를 형사 처벌하지 않기 때문에 징벌적 손해액이 어느 정도 근거가 있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 특허법은 특허권 침해자를 징역 7년 이하에 처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형벌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특허법 제225조). 그리고 양벌규정까지 두어 법인의 대표자에게 3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제230조). 또한 특허권을 침해한 물건뿐만 아니라 침해에 사용된 물건까지 몰수하여 폐기할 수 있습니다(제231조).

따라서 개정안과 같이 미국식 징벌적 배상액 제도를 그대로 모방하자는 제안은 기초적인 비교법적 검토만 해보더라도 타당하지 않습니다.

징벌적 배상액은 미국이 대부분의 FTA 협상에서 제안하였다가 최종적으로는 철회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징벌적 배상액 요구에 대해, 실손해배상을 원칙으로 하는 우리 민법과 맞지 않는다는 등이 이유로 반대하였고, 최종 협정문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징벌적 배상 제도는 사회적 법익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 인정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허권 침해로 인한 피해는 특허권자 개인의 피해에 불과합니다. 이런 이유로 특허권 침해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가 제기되는 친고죄입니다. 상표권 침해와 저작권 침해의 경우에는 피해자의 고소 없어도 형사 절차가 진행되는 비친고죄인 것과 다른 점입니다. 따라서 특허권 침해에 대해 징벌적 배상 제도를 도입하자는 제안은 특허권의 성격에도 맞지 않고, 특허권자가 실제 손해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배상받도록 함으로써 특허권자에게 부당이득을 안겨주자는 부당한 제안입니다.

3-4. 실시행위 제시의무

개정안은 특허침해 소송에서 피고가 자신이 실시하고 있는 구체적인 행위를 제시하도록 의무화하려고 합니다(안 제126조의2). 이는 입증책임을 부당하게 피고에게 전가하는 것이고, 특허권자가 소송을 편하게 제기할 수 있도록 하여 무분별한 특허 소송을 부추길 위험이 있습니다.

또한 개정안대로 특허법이 개정되면 특허권자는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만으로 경쟁사가 어떤 기술을 실시하고 있는지 알아낼 수 있는 지위를 얻게 됩니다. 따라서 외국 기업들이 국내 경쟁사의 기술을 알아내기 위하여 이 제도를 활용할 것이고, 기술유출을 특허법이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3-5. 자료 제출 의무

개정안은 특허 침해 소송에서 피고로 하여금 침해의 입증에 필요한 자료와 손해액 산정에 필요한 자료의 제출을 의무화하려고 합니다(안 제132조 제1항). 그리고 피고가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경우에는 특허권자의 요증사실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하도록 합니다(안 제132조 제4항).

이는 입증책임을 피고에게 부당하게 전가하여 절차적 공정성을 훼손하는 대단히 잘못된 제안입니다.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는 피고의 불법행위 때문에 손해를 입었다는 점과 그 손해가 얼마나 되는지를 입증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러한 입증책임의 배분은 합리적 개인이라는 근대적 사상에 기초를 둔 것입니다. 소송에서 피고 역시 합리적 개인으로 취급받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는 원고 측에서 주장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져야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손해와 불법행위간의 인과관계 및 손해액을 피해자가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특허권 침해에 대해서만 유달리 피고를 합리적 개인으로 평가하고 원고가 부담할 입증책임을 뒤집어쓸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더구나 특허권 침해로 인한 피해는 오로지 특허권자 개인의 피해에 불과한데 다른 사인간의 분쟁과는 달리 특허권자에게만 특혜를 부여하려는 개정안은 형평성에도 반합니다.

더구나 “침해의 입증에 필요한 자료”는 특허 침해 소송에서 원고가 입증해야 할 가장 기초적인 사실인데, 이를 원고가 아닌 피고가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제출하지 않은 경우 특허권자의 주장을 사실이라고 인정하자는 제안은 실체적 진실을 가리기 위한 재판 절차의 기본을 훼손할 수 있습니다.

 

4. 결론

특허 허브 국가론은 우리 사회 전체의 이익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부 소수 집단의 배불리기 전략에 불과합니다. 국내에서 특허 분쟁이 늘어나고 소송 규모가 커지면 이익을 보는 집단의 편향적인 주장에 헌법 기관인 국회가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개정안과 같이 특허권자에게 온갖 특혜를 인정하면 우리나라가 특허 분쟁의 전쟁터가 되어 국내 기업의 피해만 늘어날 것이고, 기술지식의 사회적 이용이 저해되어 특허 정책의 실패를 불러올 것입니다. 따라서 개정안을 폐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5년 6월 25일

 

사단법인 오픈넷

정보공유연대 IPLeft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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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www.wto.org/english/res_e/statis_e/its2014_e/its14_toc_e.htm

2) WTO는 이를 “royalties and license fee”란 항목으로 집계하는데, 여기에는 특허 뿐만 아니라 저작물, 상표, 디자인, 프랜차이즈와 같은 무형자산에 대한 로열티 등이 포함됩니다(royalties and licence fees, covering payments and receipts for the use of intangible non-financial assets and proprietary rights, such as patents, copyrights, trademarks, industrial processes, and franchises)

3) 전자신문 2013. 12. 10.자 기사 http://www.etnews.com/201312100395

4) 기술무역이란 국가간 기술거래를 측정하는 지표로서, OECD TBP(Technology Balance of Payment) 지침서에서는 기술무역을 기술 및 기술서비스와 직접적으로 관된 국제적·상업적 거래로 정의하며, 기술은 매매 및 라이센싱, 기술서비스 제공 등을 통해 거래되며, 국가간 거래에서 기술도입과 기술수출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기술무역통계는 해당국의 기술 및 산업구조 변화를 측정하는 지표로도 활용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기술무역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2001년도 실적분부터 OECD TBP 지침서에 따른 기술무역통계를 매년 작성하여 발표하고 있다고 합니다. http://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335 참조.

5) https://www.wto.org/english/res_e/statis_e/its2014_e/its14_toc_e.htm

6) Christopher A. Cotropia & Mark A. Lemley, ‘Copying in Patent Law’ (2008) <www.law.berkeley.edu/files/Lemley_Copying-in-Patent-Law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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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지난 12월 5일, 방송통신위원회는 「공정한 인터넷망 이용계약에 관한 가이드라인(안)」 공청회를 개최하여 해당 가이드라인을 공개하였다. 이 가이드라인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람, 즉 온라인상의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사람에게 그 콘텐츠에 다른 사람들이 쉽게 접속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의무까지 부과하는 것은 인터넷의 구동원리에 반하며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이 가이드라인은 단지 통신사의 협상력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제정되는 것일 뿐이며 공정하고 자유로운 인터넷 환경의 구축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가이드라인 제정에 반대한다. 또한, 방송통신위원회가 인터넷상생발전협의회와 같은 논의 테이블을 자신의 정책 추진을 합리화하는데 사용하는 것에 항의하여 ‘망이용계약 가이드라인’에 대한 논의를 할 것으로 보이는 마지막 회의인 오늘 12월 9일 회의에 불참할 것을 밝힌다. 

방통위는 망이용계약 가이드라인이 해외 콘텐츠제공자의 국내 망사업자에 대한 우월한 지위 그리고 해외 콘텐츠제공자와 국내 콘텐츠제공자 사이의 ‘역차별’을 각각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기본적으로 망중립성을 무시하고 ‘망이용대가’ 개념을 인정할 때만 성립한다. 인터넷에서는 정보를 전달해준 대가, 즉 정보전달료로서의 망이용대가는 존재할 수 없다. 모든 단말들이 다른 단말들이 수신, 발신하는 정보를 “도착지를 향해 옆으로 전달”하겠다는 상부상조의 약속, 즉 TCP/IP로 묶여 있는 결합체가 바로 인터넷이고, 모두가 서로의 정보를 전달해주고 있기 때문에 정보전달 자체에 대해서는 서로 무료인 것이 맞다. 모두가 각자의 이웃단말과의 접속료를 정산해줄 뿐이다. 

그러므로 해외 콘텐츠제공자가 국내 망사업자와 직접 접속하지 않는 한 국내 망사업자에게 접속료를 내지 않아 왔던 것은 당연하다. 나아가 국내 망사업자가 해외 콘텐츠 캐시서버와 직접 접속할 때도 접속료를 받지 않았던 것은 거래상 열등한 지위 때문이 아니라 국내 망사업자가 국내 이용자들에게 해외의 모든 콘텐츠들을 정상적인 속도로 접속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이를 위해 캐시서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우월적 지위라고 부른다면 해외의 군소콘텐츠제공자들도 모두 우월적 지위를 가졌다고 봐야할 것이다. 망사업자들은 ‘약자 코스프레’를 중단하고 이용자와의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이다.  또 해외 콘텐츠제공자가 국내 망사업자에게 내는 접속료는 국내 단말들과의 소통에 대한 대가이고 국내 콘텐츠제공자가 국내 망사업자에게 내는 접속료는 전 세계 단말과의 소통에 대한 대가이기 때문에 애초에 “역차별”이라는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다. 국내 콘텐츠제공자 역시 이 가이드라인에 반대하는 것은 역차별 해소라는 방통위의 주장이 근거가 없으며, 이 가이드라인이 오로지 통신사의 민원사항일 뿐임을 보여준다. 

인터넷에서 단말들은 월드와이드웹을 이용해 다른 단말들이 콘텐츠를 가져갈 수 있도록 제공하기도 하고 다른 단말들이 제공한 콘텐츠를 가져오기도 한다. 또는 이메일을 이용해 다른 단말들에게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보내기도 한다. 망사업자들은 단말들이 이렇게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물리적 연결을 설치해준 대가로 접속료를 받는다. 망사업자는 물리적 연결의 용량, 즉 속도에 비례해서 접속료를 받되 돈을 대가로 약속한 속도가 나올 수 있도록 스스로 상위계위 망사업자와의 접속용량을 확보할 계약상의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이용계약 가이드라인은 제11조에서 “콘텐츠제공사업자 등은 인터넷망 이용계약의 변경 또는 종료에 따른 이용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하여 ‘콘텐츠제공사업자’에게도 접속의 질에 대해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특히 제10조에서 망사업자들에게 부과한 의무와 똑같은 문구로 이루어진 것은 망사업자의 접속용량 확보 의무를 콘텐츠제공자에게 분산시키는 부당한 처사이다. 콘텐츠제공사업자가 이용자의 권리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별도로 논의될 이슈이지 망이용계약 가이드라인에 포함될 내용은 아니다. 

또 망이용계약 가이드라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특정 계약내용 만을 수용할 것을 강요하는 경우’, ‘상대방이 제시한 안에 대해 불합리한 사유를 들어 계약을 지연 거부하는 경우’ 등을 불공정행위의 유형으로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2016년부터 시행된 상호접속고시가 망사업자들 간에 발신자 종량제를 강요하여 결국 망사업자들이 콘텐츠제공자들에게도 누적통행량에 비례하여 접속료(usage based pricing)를 받도록 할 동기를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규범환경에서 망사업자가 자신의 발신자 종량제 정산비용 때문에 접속료를 인상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 콘텐츠제공자가 거부하는 행위가 불공정행위로 비쳐질 수 있다. 

페이스북 접속대란 사태가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KT는 발신자 종량제 정산비용 때문에 무료였던 페이스북 캐시서버에 대해 접속료 지급을 요구하였고, 페이스북은 이를 거부하고 원래의 접속경로를 복원하였다. 이 때문에 페이스북 접속속도가 느려진 것을 이유로 해서 방송통신위원회는 페이스북을 징계하였다. 콘텐츠제공자에게 접근속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세계 유일무이한 행위였고 법원에서도 취소되었다. 콘텐츠를 많이 발신하는 사람에게 발신량에 비례하여 돈을 받겠다는 것은 온라인 표현의 자유를 경제적으로 억압한다.  망이용계약 가이드라인은 결국 바로 그런 방송통신위원회의 무리수를 정당화하고 법제화하려는 시도이다. 

정부가 정책추진의 명분으로 인터넷상생발전협의회에서의 논의를 거론하는 것도 문제다. 협의회 자체가 아무런 대표성도 없이 방통위가 자의적으로 구성한 것이기 때문에 마치 협의회 논의 결과가 사회적인 합의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특히 방통위는 인터넷상생발전협의회 1기의 권고에 따라 이번 가이드라인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방통위는 자신의 독단적인 결정을 민관학의 협의의 결과로 포장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2기 협의회의 마지막 회의에 불참함으로써 더 이상의 왜곡의 도구가 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다. 

통신사 외에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반대하는 이 가이드라인을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 

2019년 12월 9일

사단법인 오픈넷, 진보네트워크센터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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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자유롭고 공정한 인터넷 생태계 조성을 위한 ‘상호접속고시’ 개정방안 특별세미나 개최 (2019.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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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의 ‘규모화’, 망중립성 수호의 중요성 (한겨레 2019.01.17.)
‘망이용대가’는 없다 (한겨레 2018.11.19.)
이미 폐지된 한국의 망중립성 – 망사업자만을 위한 상호접속고시 (슬로우뉴스 2018.05.03.)
월, 2019/12/0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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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오픈넷은 12월 9일 이동통신 3사(SKT, KT, LGU+)를 자사 및 계열사 콘텐츠에 대해서만 배타적이고 차별적으로 소위 “제로레이팅”을 하는 행위에 대하여 그리고 유선인터넷사업자 3사(KT, SKT와 SK브로드밴드를 포함하는 ‘SK그룹’, LGU+)가 과도한 가격의 전용회선료와 상호접속료를 부과하는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행위로 신고했다.  

SKT, KT, LGU+등의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자사 또는 계열사의 콘텐츠에 대해서만 “제로레이팅”을 제공하여 자신들의 이동통신시장에서의 시장지배적지위를 온라인 콘텐츠 시장에 전이시켜 <11번가>와 같은 자사 또는 계열사 콘텐츠의 시장점유율을 높이면서 비계열사 콘텐츠 회사를 경쟁에서 부당하게 배제하여 왔다. 2018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통신시장 경쟁상황평가에 따르면 SKT, KT, LGU+는 2017년말 기준 각각 42.4%, 25.9%, 19.8%의 이동통신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고 총 88.1%의 합계점유율을 보이고 있어 각각 시장지배적사업자로 추정된다.

국내 이동통신 소비자 2명 중 1명은 다른 이통사에서 동영상 제로레이팅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이통사를 바꿀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4월 5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발간한 ‘2017년 통신시장 경쟁상황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타 통신사에서 동영상 데이터 무료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기존 콘텐츠를 전환할 의향이 있다고 밝힌 응답자가 59.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상거래의 경우도 36.4%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성향이 각 이동통신사의 시장지배력과 합쳐질 경우 콘텐츠시장에서의 경쟁에서 비계열사 콘텐츠사들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이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독점규제법”) 제3조의2(시장지배적지위의 남용금지)의 3호 ‘다른 사업자의 사업활동을 부당하게 방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또 KT, SK그룹(SK브로드밴드, SKT), LGU+는 유선인터넷시장에서 과도한 인터넷접속료, 더욱 정확히는 과도한 전용회선료와 과도한 상호접속료를 받고 있다. 기업들에게 제공되는 전용회선료는 매우 높다. KT는 1 Mbps 월 85만원, SK브로드밴드는 10 Mbps 월 363만원, LGU+는 10 Mbps 월 419만원으로 약관상 나타나고 있는데(권오상 외, 인터넷전용회선 및 IDC 요금에 대한 사후규제 방안 연구, (사)미래연구소 수행, 방송통신위원회 발주 연구보고서, 2018년 12월) AT&T가 100 Mbps 전용회선을 월 1,195불에 제공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높은 금액이다.

상호접속의 경우 중계접속료는 평균 미화 월 9.22달러/Mbps으로서 미국과 유럽의 각각 4.3배, 7.2배에 달한다(Telegeography 자료 2018년 6월 30일 기준). 아시아 내에서도 비교대상으로 볼 수 있는 싱가포르($1.79), 홍콩($1.83), 동경($2.24)에 비해서도 중간값을 비교해볼 경우 1.5배 내지 2배 이상 차이(서울 $3.77)가 난다(Telegeography 자료 2017년 Q2).

전용회선과 상호접속에 있어서 이와 같이 과도한 가격은 독점규제법 제3조의2(시장지배적지위의 남용금지)의 1호 ‘상품의 가격이나 용역의 대가를 부당하게 결정 유지 또는 변경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각국의 통신사 경쟁상황과 GDP대비 상호접속료 가격의 상관관계는 이미 잘 밝혀진 바 있다(2013년 United Nations Economic and Social Commission for Asia and the Pacific 보고서). 결국 우리나라의 높은 인터넷접속료는 우리나라의 시장독점 상황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위와 같은 독점가격은 중소콘텐츠제공자들에게 엄청난 부담이 되며 또 이들이 제공하는 플랫폼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고자 하는 시민들에게 큰 부담이 된다. 결국 인터넷을 통해 힘없는 개인들도 매스커뮤니케이션에 포용하고자 하는 인터넷이라는 기획이 훼손되어 망중립성이 보호하려는 가치도 손실된다. 오픈넷은 공정위에 이동통신사의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행위에 대해 철저히 조사할 것을 요구한다.

2019년 12월 10일

사단법인 오픈넷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email protected]

화, 2019/12/1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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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통신비밀보호법 대안(이하 “법사위 대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하지만 법사위 대안은 사단법인 오픈넷이 비판했던 정부 발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며,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아래 세 가지 흠결을 보완한 개정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과도하게 긴 통신제한조치 연장기간 단축

법사위 대안은 통신제한조치(감청)를 연장하는 경우 총 연장기간은 1년을 초과할 수 없고, 내란·외환의 죄 등의 일부 범죄에 대하여는 3년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했는데, 감청의 연장기간을 원칙적 1년, 예외적 3년으로 규정한 것은 근거가 불명확할 뿐만 아니라 과도하게 긴 기간이라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는 것이 인권위의 의견이다. 감청의 총 연장기간을 보다 짧은 기간으로 정하고 연장의 횟수도 제한할 필요가 있다.

실시간 위치추적과 기지국 수사를 포함한 모든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 요건 강화

법사위 대안은 정부안과 마찬가지로 통신사실확인자료 중 ‘실시간 위치정보 추적자료’와  ‘기지국 수사’ 통신사실 확인자료에 대해서는 “다른 방법으로는 범죄의 실행을 저지하기 어렵거나 범인의 발견·확보 또는 증거의 수집·보전이 어려운 경우”에만 제공받을 수 있다고 하여 보충성의 요건을 추가하였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관련 결정을 반영한 것이다(헌재 2018.6.28. 2012헌마191·550, 2014헌마357(병합), 헌재 2018.6.28. 2012헌마538). 

헌법재판소는 현행법과 같이 ‘수사의 필요성’만을 이유로 국가기관이 위의 두 가지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1) 실시간 위치추적의 경우, 혐의가 있는 사람에 대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위치정보는 통신의 내용만큼이나 “사적 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고, (2) 기지국수사의 경우, 수사 편의를 위해 “범죄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들의 정보를 대량으로 제공받는 것”은 예외적으로 허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사위 대안의 내용은 헌법재판소 결정의 최소한의 요구만을 반영한 것이며 위 두 가지 통신사실 확인자료뿐만 아니라 모든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의 요건을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 일반적인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에 있어서도 미국의 기준(‘관련성을 보여주는 구체적이고 명시가능한 사실의 증명’)이나 독일의 기준(‘통신데이터의 수집이 사건의 죄질에 비추어 적절한 관련성이 있는 때에 한하여’)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수사의 필요성’은 터무니없이 낮은 요건이기 때문이다.

감청 통지 절차 개선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감청의 대상자에 대한 사후통지만 규정하고 있고 사전통지는 규정하고 있지 않아, 정보주체로서는 그 사실을 통보받기 전까지는 자신이 어떤 절차와 내용으로 감청당했는지 알 수 없는 구조이다. 사후통지의 경우에도 감청의 집행 종료일이 아닌 감청을 집행한 사건에 관한 처분을 한 날을 기준으로 통지를 하고 있으며, 또한 그 사유에 대해서는 통지하지 아니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정보주체는 수사기관으로부터 사후통지를 받더라도 자신이 어떠한 사유로 감청당했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또한 통지유예 제도에서 유예 기간을 한정하고 있지 않고 관할 지방검찰청 검사장 등 수사기관의 승인으로 유예를 할 수 있어 사실상 무기한 통지유예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법사위 대안은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 통지 절차만 개선할 뿐 감청 통지 절차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결국, 통신사실 확인자료에 대해서는 비교적 빨리 통지를 받게 되는 반면, 사생활의 비밀을 더욱 크게 침해하는 감청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의 처분이 내려질 때까지 피감시자는 자신이 감청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할 수 없다는 큰 모순이 존재한다. 감청에 대해서도 사후통지 기간을 ‘집행 종료한 날로부터 30일 이내’ 또는 가능하면 더 단기로 개선해야 한다. 또한 법사위 대안의 통지 조항에 의하면 여전히 수사기관의 승인으로 통지유예를 할 수 있게 되어 무기한 통지유예가 이루어질 수 있다. 통지유예에 대해서도 적정한 통지유예 기간을 정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법원의 허가를 받게 하며, 통지유예 결정 자체도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 

국회는 법사위 대안의 흠결을 보완하여 국민의 통신 비밀을 더욱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개정안을 조속히 마련하기 바란다.

2020년 1월 2일

사단법인 오픈넷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email protected]

[관련 글]
[논평] 정부는 헌재 결정 취지에 충실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새로 마련하라 (2019.05.09.)
[의견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정부안)에 대한 오픈넷 의견서 (2019.05.10.)
통보되지 않는 감청·메일수색 (한겨레 2009.07.10.)
목, 2020/01/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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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제출 의무는 예단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필수적이며 

이번 사건은 성격상 대중에게도 공개되어야 할 사안 

법무부는 지난 2020. 2. 4.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공소장 제출 요청에 대해 공소사실의 요지만 전달하고 공소장 원문 제출을 거부했다. 공소장 전문을 제출할 경우 사건 관계인의 사생활·명예 등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고,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무죄추정 원칙 등을 지킬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는 국회의 국정감시 기능과 국민의 알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결정으로 철회되어야 한다. 

공소장은 검찰의 공소권 행사를 의미하는 공공문서이자 그 근거를 설명하고 있는 공공정보로서의 성격도 가진다. 피고인의 공소사실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공소장 공개는 더 근본적으로는 국민과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검찰의 공소권 행사의 적정성을 평가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이는 공소장의 국회 제출 관행이 2005년 참여정부 때 검찰의 기소기밀주의를 견제하기 위한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법무부의 공소장 제출 거부는 이렇듯 국회에 국정감시 권한을 부여한 헌법에 위배된다. 뿐만 아니라 사법활동에 대해 국민의 알 권리를 행사해 줄 국회의 권한을 규정한 법률에도 정면으로 위반된다. 국회법 제128조에 따르면 국가 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명백한 사항에 해당하지 않는 한, 행정부는 국회의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 법무부가 근거로 든 ‘형사사건 공개 금지에 관한 규정’은 내부 사무처리 준칙에 불과하여 이를 이유로 한 거부는 상위법에 위반된다. 형사소송법 제47조는 “소송에 관한 서류는 공판의 개정 전에는 공익상 필요 기타 상당한 이유가 없으면 공개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지만, 이 조항의 입법취지는 ‘여론재판’의 우려 때문에 일반에게 공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으로서 국회에의 자료제출 거부를 정당화하는 근거조항이 될 수는 없다. 일부 학자들이 법무부를 옹호하는 근거로 삼고 있는 독일형법 353d조 역시 ‘여론재판’을 막기 위한 것으로서 일반에 대한 공개만을 범죄시하고 있을 뿐이다. ‘국회에 제출되면 일반에게 공개될 것 아니냐’는 주장은 법무부가 우선 국회법상의 의무를 이행한 후에 할 수 있는 말이며, 국회가 합법적으로 취득한 문서를 어느 시점과 기준에서 일반에게 공개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이다. 이번 사건의 공소장은 현 정부가 임명한 검사들이 청와대 간부들의 선거개입을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문서이자, 이들 확신의 근거가 되는 공소사실을 열거하고 있는 문서라는 점에서, 이는 국회 제출을 넘어 일반 대중의 정당한 알 권리의 대상으로 마땅히 공개되어야 하는 문서다. 이러한 중요한 문서를 국회에 제출하지 않는다는 결정은 오히려 민주주의 기능에 심대한 해악을 불러올 수 있는 결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편 최근 법무부가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 개정 등을 통해 형사사건 정보를 독점·통제하려는 방향도 언론의 자유와 알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위 훈령은 형사사건 공개의 금지를 원칙으로 천명하며 예외적 공개의 요건, 범위, 방식도 기존보다 엄격히 한정하고 있다. 특히 검사와 수사관에 대한 개별 접촉을 원천적으로 금지하였는데, 부당한 외압이나 내부적 문제도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은 검찰 등 중앙 권력의 정보 통제가 강화될수록 검찰 권력에 대한 언론·국민의 견제와 감시는 어려워지고 밀실수사나 독선적 공소권 행사 관행은 공고해질 위험이 높다.

사회의 커다란 문제를 드러내는 사건·사고들은 보통 형사사건이며, 국민의 알 권리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예외적으로 순수한 사인으로서의 사생활이나 기밀로 유지할 필요성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투명하게 공개되어 사건의 실체나 검찰의 공권력 행사에 대하여 국민이 평가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간 수사·재판 전후를 불문하고 공개된 형사사건 정보를 바탕으로, 대중의 문제제기와 토론이 활성화되어 사건의 다양한 측면이 파악되거나 더 심층적인 수사와 엄단이 가능해진 사례들, 혹은 검찰의 인권침해적 수사나 무리한 법적용, 봐주기식 수사 등의 문제가 드러난 순기능적 사례가 매우 많다는 것을 상기하여야 한다.

법무부는 ‘공소장에 적힌 공소사실이 기정사실화되어 형사피고인의 명예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 공소장 공개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이는 공소장이 형사절차에서 공방의 주체 중 하나인 검사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는 점을 대중에게 강조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또한 부당한 여론몰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에 휩쓸리지 않고 무죄추정 원칙이나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재판을 담당하는 사법부의 몫인데, 이를 이유로 국민의 알 권리를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특히 이번에 문제된 사건은 전직 청와대 수석과 현직 울산시장 등 고위공직자 13명이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으로서 중요한 공적 사안이다. 그런데 이 사건마저 관련자의 명예와 권리 보장이 국민의 알 권리보다 우선시되는 것으로 판단한다면, 앞으로 모든 형사사건 정보가 비공개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법무부가 더 이상 국회나 국민의 감시와 견제를 받지 않겠다고 정치적으로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공소장의 공개를 결정함에 있어서 공소장의 공개가 초래하는 피고인 1인에 대한 예단의 위험만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 형사사건 정보나 재판의 공개는 단순히 형사피고인 개인이 부당한 재판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재판은 그 피고인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판례 및 사법관행의 성립에 영향을 주어 국민 모두에게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 법치주의 하에서 국민이 국가의 주인으로서 살아가려면 자신의 재판뿐만 아니라 타인들의 재판에 대해서도 알 권리가 있으며 공소장은 알 권리 행사에 있어서 핵심문서가 된다.  

‘공판이 시작되면 어차피 공소장이 어차피 공개될 것이니 이번 사안이 공소장 공개 시점에 대한 것이지 공개 여부에 대한 것이 아니므로 알 권리에 대한 침해가 심하지 않다’는 주장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형사든 민사든 재판기록을 일반적으로 공개하지 않아 공판 개시 이후에도 재판기록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피고인 측 뿐이다. ‘공판에서 검찰이 공소장을 읽지 않느냐’는 반론 역시 공소장을 그대로 읽지 않을 수도 있고 축약해서 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문서 원문을 보는 것과 낭독을 듣는 것은 차이가 있다.  

국민의 알 권리는 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공론장을 형성할 수 있는 토대다. 국가는 공공정보의 공개를 통해 투명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여 진정한 민주주의가 구현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법무부가 공소장 등 형사사건 정보에 대한 과도한 비공개 방침을 철회하고 비례 원칙에 맞는 형사정보 공개 방침을 수립하기를 바란다.

2020년 2월 18일

사단법인 오픈넷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email protected]

화, 2020/02/1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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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터진 대규모의 디지털 성폭력 사건은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유난히 관대했던 우리 사회가 치르는 아주 가슴 아픈 대가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이 대가는 우리 사회가 아니라 날이 갈수록 그 수법이 잔인해지는 성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왔던 여성들이 치르고 있다. 수법이 점점 잔인해지고 대범해지는 디지털 성폭력을 포함한 성폭력에 제동을 걸고 근절하기 위해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이나 규제가 성범죄를 해결하는 만능의 열쇠는 결코 될 수 없다.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도 우려된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지난 4월 6일 강력한 처벌을 위해서 성범죄와 음란물을 명백히 구분하는 법제 변경을 요구하는 한편 부작용을 막기 위해 플랫폼에 책임을 과도하게 지우는 규제에 반대하는 논평을 낸 바 있다. 이어 오픈넷은 디지털 성범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인식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1) 성범죄 촬영촬영물 소지죄에 대한 신중한 논의를 시작할 것과, (2) 이른 시기부터 포괄적인 성교육을 실시할 것을 제안한다. 

성인 대상 성범죄 촬영물 소지죄에 대한 신중한 논의 필요

지난 국회에서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발의되었던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개정안 중 일부는 성인(주로 여성이 그 대상이 될 것이다) 대상 불법 촬영물과 복제물 소지죄를 신설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일 것을 여성계에서 꾸준히 요구하였으나 우리 사회는 무심하게 대처해왔다. 성폭력 전반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무관심은 남성들이 강간문화로 연대한다는 표현까지 만들어냈으며, 가해자들이 더욱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끔 유도한 토대가 되었다.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성범죄를 어떻게든 빨리 위축시킬 필요가 있다. 성범죄 촬영물 소지죄의 도입은 현 상황을 진정시키는 방안이 될 수 있다. 

현행법상 성범죄 촬영물의 소지는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의 소지만 처벌하는데, 그 이유는 아동의 성행위 촬영은 그 아동에게 항구적인 정신적 피해를 남기며 그 촬영물에 대한 소지 욕구가 촬영행위를 촉발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성범죄도 다르지 않다.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성과 청소년과 아동의 섹슈얼리티는 남성들의 그것과 달리 취약해 보호가 필요한 대상으로 간주한다. 강간 장면의 촬영 또는 n번방과 같은 강요와 협박에 의한 성행위 장면 촬영 역시 피사체인 여성에게 비슷한 피해를 발생시키고 소지와 촬영 사이에 비슷한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성범죄 촬영물 소지죄 도입을 우리 사회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섣부르게 소지죄를 도입해서는 안 된다. 구체적인 도입 방식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우선 성폭력처벌법상 불법 촬영물 소지죄가 도입된다면  한국은 성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성범죄 장면을 촬영한 영상물을 소지한 것만으로도 처벌받는 첫 국가가 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심지어 실제 살인행위나 강간행위를 촬영한 영상물인 소위 스너프 필름에 대해서도, 살인행위나 강간행위 등 실제로 이루어진 범죄행위는 처벌되지만 영상을 소지했다고 처벌받는 소지죄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소지죄가 남용되어 왔던 과거 역시 소지죄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이유이다. 또한 우리나라 현행법상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결과물을 의미하는 불법 촬영물의 개념이 촬영과 배포의 전후 정황을 모르고 범하게 되는 소지행위에 적용될 경우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연출된 영상과 진짜 범죄영상을 구분하지 못할 가능성에도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성행위와 촬영이 모두 합의 하에 이루어진 후 유출만 의사에 반하게 된 경우에도 소지죄가 적용되어야 하는지도 세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따라서 소지의 처벌은 촬영된 행위가 범죄행위인 경우로 한정되어야 함은 물론 그 사정을 소지자가 알고 있는 경우로 한정되어야 한다. 또 고발 및 수사목적의 소지는 일반인에 대해서도 허용되어야 한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촬영물 소지죄의 형량은 아동 성착취물 소지죄보다 높아서도 안 된다. 

성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성교육의 지향점과 교육안 재설계해야

성폭력과 같은 범죄를 강력한 처벌과 규제 만능주의로 억누르면 짧은 시간 안에 눈에 띄는 결과를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과 규제가 성폭력 범죄를 없애지는 못한다. 모욕죄로 성희롱을 고소하고 처벌할 수 있으나 모욕죄의 존치로 성희롱을 뿌리뽑지는 못하듯이 말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섹슈얼리티의 취약성이 오히려 비례해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처벌과 규제는 사회적 약자들의 섹슈얼리티가 취약하다는 것을 인정할 뿐 왜 취약할 수밖에 없는지, 섹슈얼리티의 취약성과 이를 이용한 낙인찍기와 혐오 조장이 왜 남성들의 경우에는 해당되기 어려운지, 이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안이 무엇인지, 이러한 영상물을 생산하고 공유하는 행위가 왜 범죄인지, 피해자의 위치에 결박당한 사회적 약자가 위치에서 빠져나오는 방법 등은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성범죄 촬영물”과 “야동”을 혼동하는 일부 남성들의 그릇된 인식과 피해자들이 성적 낙인이 두려워 피해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이번 사건의 피해규모를 키운 요인이었다.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책이 처벌보다 시급하다. 형식상으로만 존재하고 거의 실시되지 않고 있는 초중고등학교 성교육을 의무교육으로 실시하고 성교육의 지향점과 교육안을 재설계해야 한다. 

유네스코는 2017년 성교육을 생물학적 특징이나 생식기와 연관된 개념으로 한정하지 않고 인간의 생애에서 성과 관련된 모든 경험을 포괄하는 교육이라는 의미에서 포괄적 성교육이라 규정하고 <성교육 국제 실무 안내서> 개정판을 출간했다. 전 세계의 청소년들이 후천면역결핍증과 성병, 예상치 못한 임신, 젠더 기반 폭력, 젠더 불평등이 만연한 곳에서 안전하게, 자신의 삶을 충족시킬 수 있는 생산적인 성관계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포괄적인 성교육의 핵심 역할로 설정하였고, 청소년이 향후 타인과 원만하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위한 지식, 기술, 태도, 가치를 갖추도록 하는 데 포괄적 성교육의 목표를 두었다. 또한 다섯 살 때부터 성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는 성에 관한 이야기로 넘쳐나지만 정작 성을 매개로 한 건강하고 안전하고 즐거운 관계 맺기의 방법과 이를 위해 필요한 정보, 그 정보에 접근하고 취득할 수 있는 경로에 관한 논의는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다. 성에 관한 논의의 초점이 성관계와 사회 구성원 재생산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성은 성교를 포함한 성행위, 성별, 성역할 등 성에 관한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이므로 생물학적 조건에서부터 경제적, 사회적 조건 등에까지 영향을 광범위하게 미치는 요인이다. 성에 관한 협소한 초점은 사회적 구성원들이 성에 관한 전반적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한다. 이와 같은 지점을 고려해 재설계한 내용으로 이른 나이부터 의무적으로 성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강간 장면이나 성을 매개로 사회적 약자를 겁박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은 “야동”이 아니라 그 배포나 소지가 범죄일 정도로 위험한 물건이라는 인식을 만들어야 한다. 자신의 신체 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로 범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여성과 아동청소년들이 사회적 낙인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회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변화는 현장의 교사들이 성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전환을 전제로 한 성교육의 필요성과 적극적인 교육 실행에 공감하고 실천해야 가능하다. 여성주의에 공감하는 개개인들의 실천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들의 인식변화

법적 처벌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들의 인식변화이다. 강한 처벌은 인식변화를 앞당기는 촉진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단기간 동안은 강한 처벌로 다스리되 처벌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성범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성범죄 촬영물이 범죄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성교육을 생물학적 특징이나 생식기와 연관된 것이 아닌 성에 관한 전반적인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모든 경험을 포괄하는 교육으로 재정의하고 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사회구성원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20년 4월 16일

사단법인 오픈넷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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