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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 서울시 27일부터 지하철 200원·버스 150원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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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 서울시 27일부터 지하철 200원·버스 150원 인상

익명 (미확인) | 화, 2015/06/23- 15:06

서울시가 대중교통 요금인상에 앞서 시민의견을 청취하지 않고 무리하게 강행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노동당 서울시당과 노동·시민단체는 이달 4일 서울시 주민참여 기본조례에 따라 서울시민 5천명의 서명을 받아 공청회를 요구한 바 있다.


김상철 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 5천명이 요구했음에도 공청회 없이 요금인상을 강행한 데 대해 공식 사과해야 한다”며 “이 같은 조치가 없다면 불복종운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매일노동뉴스, 연윤정, 2015-6-19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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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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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대한 범죄의 피의자이자 민심의 탄핵을 당한 대통령은 국정 관여를 통한 헌정 유린을 중단하고 물러나야 한다.”

지난 22일, 정부서울청사 국무회의실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목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박 시장은 서울시장의 국무회의 배석권을 행사해 이날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에 참석했다. 국회를 통과한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법’을 처리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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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22일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이 자리를 비운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무위원들을 질타했다. 사진은 국무회의에 참석한 모습.

박 시장은 “1960년 4ㆍ19 당시 경무대에서 허정 외무장관과 김정열 국방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하야를 건의했고, 그 다음날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했다”며 “국민에 대한 그런 책무감, 진정으로 대통령을 위한 그런 용기도 없느냐”고 국무위원들의 일괄 사퇴도 촉구했다.

박 시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무력감과 분노감으로 국무회의장을 박차고 나왔다”는 글을 남겼다. 그는 “역사는 국민이냐, 대통령이냐, 선택에서 누구의 편에 있었는지를 기억하고 기록할 것”이라며 “참으로 분노의 시간입니다”라고도 했다.

인권변호사로, 1세대 시민사회운동가로, 최초의 소셜디자이너로 우리 사회의 진보를 고민해 박 시장의 분노는 어느 때보다 뜨거워 보인다. 언제나 시민들 곁을 지켰고, 그들과 함께 시대적 흐름과 변화의 중심에서 섰던 박 시장은 그리고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죄수의 감형을 요구하던 검사 박원순, 인권변호사의 길로

박 시장은 1956년 경남 창녕의 한 평범한 농가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그 시절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 으레 그러했듯 이른바 ‘KㆍS(경기고-서울대) 라인’ 진입에 성공한다. 고입ㆍ대입에 한 차례씩 낙방해 재수 끝에 얻어낸 성과였고, 그는 “몸이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간신히 들어선 출세 코스는 그러나 철창으로 가는 길이 됐다. 박 시장은 법학과를 지망하며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한 지 3개월만인 1975년 5월 22일 교내시위에 참여했다 체포된다. 박 시장은 시위 단순가담자 77명 중 한 명으로 경찰에 연행됐고, 그걸로 끝이었다.

19세 미성년 소년수로 수감돼 4개월간 징역살이를 해야 했고, 어떤 의미에서 그보다 더 가혹한 서울대 제적이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겨울공화국’이라 불리던 그 해는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첫 해였고, 그날 시위는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헌법을 비판하는 모든 행위를 엄벌토록 하는 ‘긴급조치 9호’를 선포(5월 13일)한 이후 일어난 첫 번째 시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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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고 재학시절 박원순의 모습(왼쪽). 1982년 사법연수원 12기 수료식에서 당시 동기였던 문재인과 함께 서 있는 모습.

부모의 바람과 기대를 저버렸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지 못했던 소년수는 그러나 감옥 생활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힌다. 함께 수감된 죄수들과의 짧은 동거 생활을 통해 ‘죄’보다는 ‘죄를 짓게 하는 환경’을 함께 볼 수 있는 눈을 뜬다.

독일의 법 철학자 에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읽으면서 법률가가 되겠다는 꿈도 굳히게 된다. “법률의 목적은 평화이며, 거기에 도달하는 길은 투쟁이다”라는 책머리 글귀는 박 시장이 훗날 인권변호사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밑거름이 돼 줬다.

박 시장은 이듬해 예비고사를 다시 치르고 단국대 사학과로 진학한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중 응시했던 법원 사무관시험에 합격하면서 1978년 춘천지법 정선등기소장이 된다. 23세 나이에 누린 고위직 공무원의 삶은 휴식처럼 달콤했지만 그를 멈추게 하진 못했다.

박 시장은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2년 대구지검 검사로 임관한다. 사회를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바람이었지만, ‘죄를 짓게 하는 환경’을 보는 눈을 가진 그에게 검사의 법복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다.

번번이 피의자의 감형을 주장하는 박원순 검사에게 “또 관선 변론을 하러 왔냐”는 핀잔이 쏟아졌지만, 박 시장은 ‘사람을 잡아넣는 일’이 아닌 ‘구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을 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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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왼쪽). 1982년, 박원순은 대구지검 검사를 잠깐한 뒤 이듬해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변호사 시절의 모습 (오른쪽)

6개월 만에 사표를 낸 박 시장은 인권변호사의 길로 달려간다. 박 시장은 ‘희망을 심다’라는 저서에서 “검사를 오래 했으면 조직의 논리대로 가게 돼 있거든요. 때로는 청탁도 받게 되고, 인권 침해를 하게 됐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1년밖에 안 했으니까. 너무 다행스러운 일이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조영래 변호사와의 만남, 그리고 참여연대

박 시장의 인생을 바꾼 가장 중요한 인물은 인권변호사의 대명사로 불리는 조영래 변호사다. 박 시장은 인생의 선배였던 조 변호사에게서 ‘인권 수호라는 가치관’과 ‘사회적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힘’을 얻었다고 말한다.

인권변호의 역사를 정리한 자신의 저서 ‘역사가 이들을 무죄로 하리라’에서 자신의 멘토인 조 변호사를 “인권변호사의 전설”로 표현하기도 했다.

학생운동권의 ‘전설’이기도 했던 조 변호사는 1947년생으로 박 시장보다 아홉 살이 많지만, 박 시장과 사법연수원 12기 동기로 인연을 맺는다. 조 변호사가 사법연수원 연수 중이던 1971년 서울대생 내란음모죄로 구속되고, 1974년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로 또다시 숨어사는 신세가 되면서 뒤늦게 사법연수원에 들어온 덕분이다.

박 시장은 검사를 그만둔 뒤 1984년부터 조 변호사와 일하며 본격적으로 인권변호사로 활동한다. 두 사람이 처음 함께 맡은 변론은 ‘서울 망원동 수재(水災ㆍ물 난리)’와 관련한 주민들의 집단소송이다.

5년여 법정 싸움 끝에 당시 수해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였다는 것을 증명해 내며 승소를 이끌었다. 우리 사회를 한 발짝 진보하게 한 결정적 소송 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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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이 인권변호사의 길로 들어선데에는 전설적인 변호사인 조영래 변호사의 영향이 컸다. 사진은 1986년 발생한 부천 성고문사건의 피해자 권인숙씨와 담당변호사였던 조영래 변호사의 모습 (왼쪽).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과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 전두환 군사정권을 허무는 결정적 사건의 변호도 맡았다. 6월 민주항쟁 및 6·29선언의 발화점이 된 사건들이다.

대학생 1,525명이 연행되고 이중 1,288명을 구속돼 역대 가장 많은 인원이 구속된 공안사건으로 꼽히는 ‘10ㆍ28 건국대 사태’등의 공안 사건 변호도 두 사람이 함께 했다.

조 변호사와 함께 뜻있는 인권변호사들을 모아 만든‘정법회’는 1988년 창립한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모태가 됐다.

그 사이 사비를 털어 역사문제연구소를 창립(1986년)했고, 6월 항쟁의 산물인 ‘한겨레신문’ 창간에도 참여해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조 변호사가 1990년 12월 마흔넷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요절화면서 박 시장의 인생 항로에도 변곡점이 찾아온다. “외국으로 나가보라”는 조 변호사의 생전 권유로 영국 런던정경대(LSE)와 미국 하버드대 유학에 나선 박 시장은 귀국 후 ‘참여연대’를 창립(1994년)하며 시민사회운동이라는 새 길을 연다.

소셜디자이너 원순씨에서 서울시장으로

박 시장은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는 명제 아래 ‘참여민주주의 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참여연대) 창립을 주도한다.

대규모 군중 집회ㆍ시위가 주류였던 당시 ‘1인 시위’라는 새로운 시위문화를 만들어내며 시민 참여를 이끌어냈다. 재벌을 상대로 하는 ‘소액주주 권리 찾기 운동’(1998년)과 유권자 권리 찾기를 위한 ‘16대 총선 낙천ㆍ낙선 운동’(2000년) 등을 주도하며 박 시장은 시민사회운동의 대부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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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시절, 박원순(오른쪽)의 모습.

참여연대가 자리를 잡은 뒤에는 사무처장 자리에서 물러나 ‘소셜디자이너’라는 시민사회운동의 새 영역을 개척한다.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 가게’을 잇따라 설립했다. 시민들의 작은 아이디어로 사회개선 운동을 펼치는 ‘희망제작소’(2007년)는 시민사회운동을 질적으로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변신을 거듭하는 박 시장에게 ‘여러 문제 연구소장’이라는 새 별명도 생겼다.

박 시장은 2011년 10ㆍ26 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면서 다시 한번 변신한다. 박 시장은 새 정치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열망에 힘입어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장과 함께 단숨에 정치권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박 시장은 초ㆍ중학교 전체로 대상을 확대한 ‘친환경 무상급식’, 이명박 전 대통령의 ‘뉴타운 사업’의 대안 성격인 ‘마을공동체 만들기’, 기존의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회적 경제ㆍ공유 경제’ 등의 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재선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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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은 2014년 6.4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했다. 사진은 재선이 확정된 뒤 캠프에서 부인 강난희씨와 함께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

박 시장은 새로운 ‘박원순표 정책’으로 또 다른 도전에도 나섰다. 서울역 고가를 공원으로 만드는 ‘서울역 고가 7017 프로젝트’와 미취업 청년에게 사회참여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최장 6개월간 매달 활동비 50만원을 지원하는 ‘청년수당제(청년활동지원사업)’ 시행이다.

보수 진영에서는 당장 박 시장의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포퓰리즘식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고 비난한다. 박근혜 정부는 청년수당제를 직권으로 중단시키켰고, 서울시는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내년 청년수당 사업 예산도 올해보다 2배 늘어난 150억원으로 책정했다. 박 시장은 지난 10일, 2017년도 서울시 예산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청년수당은 청년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총체적이고 본질적인 사업”이라며 “결국은 중앙 정부가 마음을 바꿀 것”이라고 확신했다.

금, 2016/11/25-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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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강병원(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그린피스,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들은 오늘(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체 유해성과 해양생태계 파괴 위험이 있는 미세플라스틱의 전면 사용금지를 담은 ‘미세플라스틱 금지 3법’의 발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하 링크)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341564&ref=A

수, 2016/09/0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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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소파·프라이팬에도…곳곳에 발암물질

기사입력 2015-11-15 21:51 | 최종수정 2015-11-15 22:13

<앵커 멘트>평소 발암물질에 노출되지 않기위해 신경 많이 쓰실 텐데요.그런데 집에 있는 접시나 소파, 프라이팬에도 발암물질이 함유된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엄진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주부 김민선 씨는 지난 3월, 집안 내 독성물질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한 민간연구기관에 검사를 의뢰했습니다.

가구와 전자기기 등 107개 제품 가운데 접시와 소파, 피아노의자 등 60%에서 납 성분이, 30%에서 플라스틱의 일종인 PVC가, 20%에서 카드뮴이 검출됐습니다.

발암물질로 분류된 성분입니다.

<인터뷰> 김민선(주부/서울 송파구) : “유기농 같은 걸 먹고 있는데 설마 장판이? 설마 벽지가? 발암물질이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일상 생활 속 발암물질은 약 5백여 종.

아직 공식 규정되진 않았지만 새로 그 유해성이 확인되는 성분도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프라이팬이나 아웃도어 의류 등에 방수코팅제로 주로 쓰이는 과불화합물, 일명 PFOA라는 것입니다.

미국은 내년부터 과불화합물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녹취> 고금숙(여성환경연대 팀장) : “특히 조리도구를 다루는 비중이 큰 여성들에게는 또 영향이 많은데요. 몸에 한 번 들어오면 반감기가 5년 정도 됩니다. 오래 체내에 머무르는 거죠.”

생활 속 발암물질에 노출된다고 모두 암에 걸리는 건 아니지만, 노약자들은 피하는 편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합니다.

KBS 뉴스 엄진아입니다.

엄진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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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56&aid=0010248486&sid1=001&lfrom=kakao 
[저작권자ⓒ KBS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월, 2015/11/2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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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시민안전과 편의성보다는 민간사업자의 수익성이 우선돼선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상철 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은 "현재의 서울시 경전철 도입 계획은 교통계획이라기 보다는 숫제 경전철을 이용한 도시개발계획에 가깝다"며 "교통수단이라면, 그것도 대중교통수단이라면 일차적으로 얼마나 필요하고, 안전하고, 효과적일지를 따져야 하는데 앞 뒤가 뒤바뀐 상태"라고 지적했다.


아시아경제, 김봉수, 2015-7-10

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5071011083825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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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5/07/1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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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페미니즘으로 세상을 뒤집자 ①] ‘다른 목소리’ 내는 여성들이 여기 모인 까닭
9일 여성환경연대 주최 컨퍼런스
동 물보호·탈핵·농업 등 각 분야서
삶의 좌표 이동해 행복 찾은 여성들

▲ 9월 8일 서울 광화문 KT스퀘어에서 열린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세상을 뒤집는 다른 목소리’에서 강연자들이 청중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경쟁하는 사회에서 정반대의 삶을 통해 ‘혁명’이 가능하다는 여성들이 있다. 9월 8일 서울 광화문 KT스퀘어에서 열린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세상을 뒤집는 다른 목소리’에는 이런 ‘다른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여성환경연대 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250여명이 작은 홀을 가득 메웠다. 이날 무대에 오른 여성들은 자신들의 삶을 고백하며 “내 삶을 조금만 바꾸면 또 다른 행복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들은 에코페미니즘을 바탕으로 생명 위기의 시대에서 다시 인간과 자연의 삶을 회복하자고 권했다.
에코페미니즘은 여성이 남성에게 불평등을 당하는 등 모든 평등하지 않은 것들을 없애고 여성의 감수성으로 자연을 회복하자는 뜻으로 정의한다.

▲ 영화감독이자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를 이끄는 임순례 대표.   ©이정실 사진기자

임순례 ‘인간 중심주의 너머에 있는 것들’
이날 처음 강단에 선 이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을 만든 영화감독이자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를 이끄는 임순례 대표다. 임 대표는 동물을 사랑하는 영화감독에서 동물보호운동에 앞장서는 활동가로 서기까지의 과정을 솔직히 고백했다.
“어린 시절 동네 개들이 사람 손에 죽어가는 모습을 저지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고, 그 일은 깊은 상처로 남았다. 강아지를 사랑했지만 영화감독을 하며 동물보호단체 대표를 병행한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2년간 대표직 수락을 주저하고 피해다녔다. 그러다가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서 ‘모든 깨달음이나 지혜는 실천으로 완성된다’는 설법을 듣고 마음을 굳혔다. 동물사랑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입장이 결국 구체적으로 ‘동물을 실제로 사랑하는 것’으로 연결될 때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임 대표는 “기득권이 득세하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일방적인 착취를 당하는 존재는 동물”이라면서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윤리적 소비를 해야 하는데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채식이다”라고 주장했다. 그 역시 14년째 채식을 해오고 있다.
그는 이어 “우리 조상들은 까치밥을 남겨놓고 미생물을 보호하려 뜨거운 물조차 수채 구멍에 함부로 붓지 않았던 생명 감수성이 있는 민족”이라면서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잃어버린 생명 감수성을 되찾아야 한다. 행복은 경제적으로 얼마나 잘사느냐가 아니라 생명, 자연에 대한 어떤 존경심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차이가 난다”고 강조했다.

▲ 차일드세이브의 최경숙 대표   ©이정실 사진기자

최경숙 ‘나는 포기하지 않는 엄마다’
두 번째로 강연한 사람은 차일드세이브의 최경숙 대표다. 차일드세이브는 2011년 일어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방사능의 위험성을 직접 알기 위해 ‘엄마들’이 만든 온라인 커뮤니티다. 2011년 11월 서울 노원구 월계동 주택가 한복판에서 비정상적으로 높은 방사선량이 검출해 안전하다고 믿었던 일상 속에서 방사능의 위험성을 밝혀냈다. 차일드세이브의 관심은 자연스레 탈핵 운동으로 이어졌고 현재 미세먼지, GMO(유전자변형작물), 화학물질에 이르기까지 안전을 위협하는 유해물질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자체적으로 위험성을 찾아내고 있다.
최 대표는 이렇듯 엄마들이 적극적으로 탈핵 운동을 펼치는 이유에 대해 “아이들에게 핵없는 안전한 세상을 물려주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엄마들은 좋은 것을 먹이고 가르치면 아이를 행복하게 기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엄마가 어떤 노력을 해도 아이가 안전할 수 없다는 처참한 현실 보여줬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포감은 엄마로서 엄청난 것이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최 대표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방사능 물질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안전한 사회를 위해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세 딸들 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 생생농업유통 대표이자 산나물 밥집 ‘소녀방앗간’의 이사인 김가영 대표.   ©이정실 사진기자

김가영 ‘세대와 지역을 연결하는 좀 덜 나쁜 유통업자 되는 법’
세 번째 강연자로 무대에 오른 이는 생생농업유통 대표이자 산나물 밥집 ‘소녀방앗간’의 이사인 김가영 대표다. 올해로 서른살인 그는 벌써 10년째 경북 청송과 서울을 오가며 서로가 ‘윈윈’하는 농산물 유통을 고민하고 있다. 그런 그의 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덜 나쁜 농업유통업자가 되는 것”이다.
“서울 애들은 참 세련되고 멋있다. 근데 밥은 쓰레기밥을 먹는다. 반면 시골 할머니들은 가난하고 못 배웠는데 밥은 잘 해먹는다. 그게 아이러니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서울에 밥집을 차리를 거였다. 할머니들이 따오는 산나물의 판로를 확보할 수 있고 서울 청년들에겐 건강한 밥을 먹일 수 있게 됐다. 소녀방앗간은 절대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할머니’와 ‘젊은’ ‘농촌’과 ‘도시’가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다.”
김 대표는 “페어(fair·공정)함이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라며 “앞으로 제가 더 많은 것(자본)을 갖게 되더라도 페어한 생각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페미니스트 CEO들이 많이 탄생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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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호 [사회] (2016-09-11)
이하나 기자 ([email protected])

http://www.womennews.co.kr/news/view.asp?num=97564

목, 2016/09/2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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