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노동법률단체][성명] 검·경은 금속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무자비한 테러를 자행한 ‘노조파괴용병’들을 신속히 체포하고, 이를 사주한 갑을오토텍 대표이사 박효상을 구속하라.

지역

[노동법률단체][성명] 검·경은 금속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무자비한 테러를 자행한 ‘노조파괴용병’들을 신속히 체포하고, 이를 사주한 갑을오토텍 대표이사 박효상을 구속하라.

익명 (미확인) | 월, 2015/06/22- 10:56

[노동법률단체][성명]
검·경은 금속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무자비한 테러를 자행한 ‘노조파괴용병’들을 신속히 체포하고, 이를 사주한 갑을오토텍 대표이사 박효상을 구속하라.

1. 갑을오토텍은 복수노조 제도를 악용하여 2014. 12. 29. 전직 비리 경찰, 특전사 등 60여명을 ‘노조파괴용병’으로 고용하고 2015. 3. 12. 기업노조를 설립, 이들을 가입시킨 후 이들로 하여금 금속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폭행, 명예훼손, 모욕 등을 하도록 끊임없이 사주하였다. 이는 지난 4월에 진행된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과 검찰수사결과, 언론보도 등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난 사실이다.

2. 금속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폭력 등 범죄행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던 ‘노조파괴용병’들은 급기야 2015. 6. 17. 오후 3시 5분 경 정당한 쟁의행위를 진행하고 있던 금속노조 조합원들에 대하여 공업용 선풍기 등으로 집단적인 테러를 가해 헌법이 보장한 단체행동권을 무참히 짓밟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는 회사가 현장선전물 철거 공문을 보낸 직후에 발생한 일이고, 근무시간 중에 일어난 일로 회사의 지시 및 공조, 허락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금속노조 조합원 26명이 다쳐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뇌출혈, 왼쪽 눈 주변 함몰 등 심각한 상해를 입은 조합원들도 속출하였다.

3. 폭력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이 ‘노조파괴용병’들은 금속노조의 신고로 현장에 들어온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금속노조의 집기를 부수고 또다시 조합원들에게 폭력을 가하여 3~4명이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경찰은 현장에서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고도 이들의 만행을 수수방관하였다.

4. 경찰은 회사 정문 옆 기업노조 사무실로 꽁무니를 뺀 ‘노조파괴용병’들에 대해 현행범 체포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는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하였다. 경찰은 금속노조 조합원들에게 ‘노조파괴용병’들을 체포하겠다는 거짓 약속을 하면서 회사 안에 경찰병력을 들여놓고, 적반하장 격으로 회사가 요구한 시설보호요청을 빌미로 금속노조 조합원 및 가족들을 해산하고 연행하겠다고 협박하였던 것이다.

5. 회사는 정당한 쟁의행위를 방해하기 위해 ‘노조파괴용병’들을 사주하여 금속노조의 쟁의행위 관련 선전물을 훼손하도록 하고 쟁의행위 중인 지회 조합원들을 집단적으로 폭행하여 중상해에 이르게 하였으므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81조 제4호의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와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집단·흉기등상해) 교사 내지 방조의 범죄를 명백히 저질렀다.

6. 이렇게 회사의 신종노조파괴전략에 대한 수많은 증거가 나오고, ‘노조파괴용병’들이 마음껏 활개치며 잔인한 폭력으로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짓밟으면서 현장을 피로 물들이는 동안, 경찰, 검찰은 이들에 대한 현행범 체포, 책임자 구속 수사 등 지극히 상식적인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

7. 검·경은 당장 금속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연행 및 해산 협박을 중단하고 폭력을 자행한 노조파괴용병들을 신속히 체포해야 한다. 신종노조파괴전략을 실행한 것도 모자라 폭력을 사주하여 금속노조의 쟁의행위를 짓밟는 갑을오토텍 대표이사 박효상을 구속하고, 엄정하고도 철저한 수사를 진행하여야 할 것이다.

2015. 6. 19.(금)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법률원(공공운수노조/금속노조/총연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임길진 환경상 시상식 및 환경연합 23주년 창립기념식

2016 환경운동연합 홈 커밍데이

따뜻한 봄날, 회화나무 아래서, 젊은 날, 열정의 시절, 추억을 부르는 ...

일시 : 2016년 4월 1일(금)
임길진 환경상 시상식 18:00~18:30
환경연합 창립기념식 19:00~20:00
* 식사는 18:30부터

장소 : 환경연합 마당(우천시 까페 회화나무)
문의 : 환경연합 시민참여팀(02-735-7000)
* 조금 일찍 참석하시어 임길진 환경상 수상자에게 따뜻한 축하 보내주세요.

금, 2016/03/11- 18:28
253
0

16:33:22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사회적 참사법' 통과를 환영한다.

이제라도 가습기살균제 기업과 정부의 책임을 제대로 규명하고, 유사 사건 재발 방지 위해 최선을 다해주길 간절히 호소

여야협의로 수정된 조항들이 이후 진상규명의 발목을 잡을 우려 존재해 국민적 관심이 지속되어야 진실 밝힐 수 있어

16:33:22 ○ 오늘(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사회적 참사법)’이 통과됐다. 그 동안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을 위해 활동해온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과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는 사회적 참사법이 국회에서 제정된 것을 환영한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1319일 3년 7개월만이고,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지 6년 3개월 만이다. ○ 2017년 11월 17일 현재 정부에 신고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5,918명이고 이 중 21.6%인 1,278명은 사망했다. 지난해 20대 국회가 첫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진상 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활동을 수행한 바 있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피해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았고, 당시 정부와 여당의 방해와 비협조로 90일간의 국정조사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 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 오늘 국회가 통과시킨 ‘사회적 참사법’ 제정은 안전 사회 구축을 위한 기초적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첫걸음만을 뗐을 뿐 앞으로 풀어야 할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과제는 다음과 같다. ▲ 첫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모두 찾아내는 ‘피해자 찾기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 둘째, 제조·판매 기업의 책임을 밝히는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 ▲ 셋째, 지금까지 파악하고 있는 43개 제품, 998만개 판매량의 모든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성분, 독성, 판매량 등을 조사해야 한다. ▲ 넷째, 정부 책임을 낱낱이 밝히는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 ▲ 다섯째, 지금까지 나온 피해 대책의 문제점을 규명하고 올바른 대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 여섯째, 제2의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발생을 막기 위한 재발 방지 대책을 점검하고 획기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 우리는 오늘 제정된 사회적 참사법을 통해 상당 부분의 세월호와 가습기살균제 두 참사의 진상이 규명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여야 합의과정에서 중요한 법안 초안의 내용들이 변경되어 실질적인 진상규명을 이뤄내는 데 제한점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특히, 조사 대상과 내용을 제한 할 수 있는 특례조항문제, 특위구성의 문제, 특위 가동 기간의 축소, 특검 결정 기간의 연장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향후 지속적인 국민적 관심과 오늘 국회 표결에서 찬성한 여야의원 및 정부가 관심을 집중하고 지원해야 만이 법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는다면 제2의 세월호 참사, 제 2의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언제 또 재발할지 모른다. 이제라도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살균제 참사로 목숨을 잃고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과 가족들에게 이제는 국가가, 정부가, 국회가 여야 구분 없이 최선을 다해주길 간절히 호소한다.

2017년 11월 24일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문의 : 환경운동연합 정미란 팀장 010-9808-5654

# 2017년 11월 23일

IMG_2017-11-24 17:14:01 복사본

IMG_2017-11-24 17:13:37 복사본

IMG_2017-11-24 17:13:54 복사본

IMG_2017-11-24 17:13:47 복사본

IMG_2017-11-24 17:12:26 복사본

IMG_2017-11-24 17:10:14 복사본

IMG_2017-11-24 17:12:18 복사본

IMG_2017-11-24 17:12:13 복사본

IMG_2017-11-24 17:10:33 복사본

IMG_2017-11-24 17:10:18 복사본

IMG_2017-11-24 17:10:37 복사본

# 2017년 11월 24일

IMG_2017-11-24 17:08:21 복사본

IMG_2017-11-24 17:11:26 복사본

IMG_2017-11-24 17:11:49 복사본

IMG_2017-11-24 17:10:01 복사본

IMG_2017-11-24 17:11:39 복사본

IMG_2017-11-24 17:11:21 복사본

IMG_2017-11-24 17:11:44 복사본

IMG_2017-11-24 17:10:54 복사본

IMG_2017-11-24 17:08:38 복사본

IMG_2017-11-24 17:08:51 복사본

IMG_2017-11-24 17:09:38 복사본

금, 2017/11/24- 17:31
253
0

4월 총선에 나갈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선출이 끝났다. 관심을 모은 일반명부에서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단장(예비내각 국방부장관)이 1위를 차지해 비례 2번 후보가 됐다. 정의당은 투표는 1인 1표로 하지만 순위 배정시에는 여성, 일반 등 각 명부 내 득표순으로 배정한다.

진보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안보 전문가가 당선 유력권에 든 반면, 유일한 민주노총 지도자 출신 후보로 노동운동의 정치적/좌파적 대변을 우선과제로 내건 양경규 후보는 비례 경쟁명부 맨 마지막인 10번 후보가 됐다. 전체 득표는 5위이므로 정의당의 비례대표 경선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노동운동을 대표한 후보가 이렇게 홀대받은 것은 노동자 운동의 정치적 염원이 정의당 내에서 충분히 반영·대변되지 못하다는 뜻으로, 크게 아쉽다.

지난해 정의당이 크게 성장한 것은 노동자들의 저항 덕분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노동자 투쟁이 박근혜의 공세를 막는 데에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그런 투쟁의 좌파적 스피커 구실을 하겠다는 후보가 당선권에서 밀린 것이다.

일반명부에서 양경규 후보보다 앞선 후보들이 더 좌파적인 가치를 대변했거나 (꼭 노동운동 출신자가 아니더라도) 노동운동의 중요성을 부각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아쉽다.

김종대 후보의 “진짜 안보” 담론은 군 부패 문제를 건드린다는 점을 빼면, 군비 축소와 복지 증대를 추구해 온 진보의 가치와 적잖이 어긋난다. 특히, 전략적 야권연대를 통해 더민주당과 연립정부를 세우길 원하는 당 지도부의 희망에 부합한다.

비례 4번인 윤소하 후보에 대해서는 솔직히 우리가 잘 모른다. 그러나 노동자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은 점은 알 수 있다. 그리고 비례 6번이 된 조성주 후보는 대놓고 진보 정치의 우경화를 재촉해 왔고, 아래로부터의 운동과 거리를 두는 온건 개혁주의적 주장을 대변해 왔다.

정의당은 사회 변화의 진정한 동력인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을 계속 홀대해선 안 된다. 그런 기회주의로는 선거적 성공은 일시 거둘 수 있어도 경제·안보 위기의 시대에 개혁을 쟁취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2016년 3월 12일

김문성(〈노동자 연대〉신문편집팀을 대변하여)

토, 2016/03/12- 15:25
253
0
요약문: 
프라이버시 인터내셔널과 진보넷 등 함께 소송을 제기한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 단체들은 유럽인권재판소에 영국 정부의 대량 해킹의 정당성을 묻는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지난 2014년 7월 2일, 진보넷은 비영리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로서, 영국의 정보인권단체인 프라이버시 인터내셔널(Privacy International)과 협력하여, 영국의 신호정보기관인 GCHQ의 인터냇 대량 감시에 대해 영국 수사권 재판소(Investigatory Powers Tribunal, IPT)에 소송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발표일자: 
2016/08/10

나머지 보기

수, 2016/08/10- 10:39
252
0

여의도 개발을 위해 폭파되는 밤섬 ⓒ 영등포구 포토소셜역사관

[ 처음 만난 한강 이야기 3 ]

밤섬은 폭파되었습니다.

김준성  (물순환팀 인턴)

[caption id="attachment_179441" align="aligncenter" width="564"]여의도 개발을 위해 폭파되는 밤섬 ⓒ 영등포구 포토소셜역사관 여의도 개발을 위해 폭파되는 밤섬 ⓒ 영등포구 포토소셜역사관[/caption]   1968년 2월 10일, 한강의 밤섬은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되었습니다. 섬 한쪽에 솟았던 바위산은 산산이 부서져 여의도의 둘레 둑을 쌓는 데 쓰였습니다. 여의도가 개발되는 대신 밤섬은 한강 아래로 잠기고 말았죠. 이후 밤섬의 이야기는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하나는 고향 밤섬을 잃고 도시로 이주한 실향민들의 이야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연적으로 복원되어 한강 생명들의 쉼터가 된 람사르 습지 밤섬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두 이야기는 1998년 실향민들이 밤섬으로 귀향하는 행사가 열리면서 30년 만에 재회합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9442" align="aligncenter" width="700"]폭파되기 전의 밤섬ⓒ 영등포구 포토소셜역사관 폭파되기 전의 밤섬ⓒ 영등포구 포토소셜역사관[/caption] 밤섬은 본래 사람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조선업으로 유명한 곳이었죠. 한강을 오가는 목조선을 만들고 수리하는 뛰어난 기술자들이 있었습니다. 한강에 떠다녔던 배의 95%는 거진 밤섬에서 만들어진 거라고 합니다. 밤섬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밤섬에서 태어나 폭파되기 전까지 사셨던 유덕문 밤섬보존회 회장님을 만났습니다.

준성: 밤섬이 폭파될 당시에는 얼마나 많은 분들이 살고 계셨어요?

실향민: 원래는 한 150가구 정도였는데, 을축년 장마랑 6/25 동란으로 줄어서, 우리가 이주할 적에는 62가구 정도였지. 인원은 한 440명 정도였어. 지금은 그때 적 웃어른 양반들이 거의 다 돌아가셨다고 봐야 하고 어린 사람들이 지금 남아있지. 밤섬서 나올 적에 내가 스물아홉 정도였어.

준성: 어르신 어릴 때 밤섬 생활은 어땠나요?

실향민: 그때는 밤섬서부터 노량진 근처까지는 다 백사장이었단 말이야. 거기서 늘상 놀고 또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도 수영들은 다 했거든. 강 건너서 학교에 다니고 그랬지. 내가 서강 국민학교(현재 서강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오전 수업을 마치고는 학교서 뛰어 내려오면 한 오 분이면 될까? 강가에 도착했다고. 옷을 머리에 묶고는 헤엄쳐 섬에 들어가 밥 먹고, 다시 강 건너서 오후 수업 듣고 그랬지.

  [caption id="attachment_179443" align="aligncenter" width="700"]얼어 붙은 한강을 걸어서 건너는 사람들ⓒ 영등포구 포토소셜역사관 얼어 붙은 한강을 걸어서 건너는 사람들ⓒ 영등포구 포토소셜역사관[/caption]  

준성: 초등학생이 수영을 할 수 있는 한강이라니 상상이 안 가요.

실향민: 그때는 물도 깨끗했어. 배 타고 강 가운데서 물 떠먹고 또 밤섬 모래땅을 파 놓으면 거기 샘물이 스며서 나온다고. 그걸 마시고 그랬지. 그리고 늘배라고, 강화도 쪽에서 과일이랑 채소를 가득 싣고 배가 올라와. 이제 수영하면서 손들고 “수박 주세요~!”, “채미(참외) 주세요~!” 그러면 던져줬다고. 그걸 안고 헤엄쳐 나와서는 애들이랑 먹고 그런 생각이 아주 그립지.

준성: 밤섬 폭파되고 이주하실 때 많이 속상하셨겠어요…

실향민: 그때는 밤섬 사람들이 순진하다고 그럴까? 정부 시책이 그러니 따라갈 수밖에. 지금 같으면 머리띠도 두르고 으쌰으쌰하고 그랬겠지. 정부에서는 봉천동에 가서 살아라 그랬어. 근데 고향에서 가깝고 고향 터라도 보이는 곳으로 가겠다고 해서 와우산 꼭대기로 간 거야. 근데 나중에 그 일대가 아파트로 재개발이 된 거야. 거기에 못 들어가는 밤섬 사람들도 있으니 그렇게 또 흩어졌지.

  [caption id="attachment_179444" align="aligncenter" width="700"]밤섬 실향민들이 이주했던 와우산 자락ⓒ 영등포구 포토소셜역사관 밤섬 실향민들이 이주했던 와우산 자락ⓒ 영등포구 포토소셜역사관[/caption]   한편, 폭파되어 수면 아래로 잠겼던 밤섬은 1980년대 중반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회복했습니다. 지금은 원래 밤섬보다 더 커졌습니다. 강이 옮기는 모래와 펄이 밤섬에 쌓이고 떠내려온 씨앗들이 스스로 싹을 틔워 초목을 이뤘습니다. 되살아난 밤섬은 새들의 쉼터가 되었고 99년에는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2012년에는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9445" align="aligncenter" width="700"]자연적으로 되살아난 밤섬 ⓒ 뉴스토마토 자연적으로 되살아난 밤섬 ⓒ 뉴스토마토[/caption]

준성: 밤섬이 되살아난 걸 보시면 마음이 어떠세요?

실향민: 밤섬 백사장 풍경은 진짜 아름다웠어. 모래알이 깨끗하고 희고 윤이 나고 그랬기 때문에. 지금도 밤섬 들어가서 살겠느냐 물으면, 한강물 먹고 호롱불로 살았어도 거기서 살고 싶은 마음이지. 그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고, 전부가 그래. 만나면 옛날 밤섬에 살았을 적 이야기들 하면 시간이 금방 가.

 준성: 그런데 밤섬이 폭파되고 30년 만에 밤섬 귀향 행사를 하셨잖아요. 게다가 지금은 밤섬에서 나오신 지 50년 가까이 됐는데, 어떻게 아직도 유대가 이어지는지 사실 궁금해요.

실향민: 그건 밤섬 부군당굿 역할이 커. 아무래도 밤섬은 강 옆이니까 홍수 나면 죽을 수도 있고 허니 무사안일을 비는 마을굿이 예전부터 있었다고. 그게 밤섬 부군당굿이야. 밤섬에 있을 적엔 오후부터 시작해서 밤새도록 다음 날 아침까지 마을 사람들 다 같이 했지. 그 부군신(神)을 모신 사당이 밤섬에 대대로 있었다고. 그게 우리 집 근처에 있었는데, 어릴 적엔 그 사당에 걸린 그림들이 참 무섭더라고.

준성: 지금도 부군당굿을 일 년에 두 번 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주하실 때 사당도 옮기신 거예요?

실향민: 그렇지. 밤섬서 나올 적에 사당 기둥이랑 무신도(무속 신앙에서 받드는 신을 모신 그림)를 갖고 오려고 했는데, 그때만 해도 우리가 문화재 이런 거에 생각이 깊지를 못했다고. 그래서 갖고 나올 때 간수를 잘 못해서 잃어버린 게 있어서 참 속상하지. 부군신 모신 사당은 여전히 처음 이주했던 와우산 자락에 있어. 거기서 지금도 굿을 해.

[caption id="attachment_179446" align="aligncenter" width="700"]밤섬보존회 회장님과 밤섬부군당 사당ⓒ김준성 밤섬보존회 회장님과 밤섬부군당 사당ⓒ김준성[/caption]

밤섬 사람들은 왜 살던 곳에서 나와야 했을까요?

1차 인터뷰를 마치고 보름 뒤에 회장님께 부탁을 드려 사당을 함께 찾았습니다. 와우산 가파른 언덕 중턱에 자리 잡은 사당은 비밀스러워 보입니다. 마을굿과 사당이라니 참 생소합니다. 사당 한쪽에서 어렵게 모은 고향 사진들을 보여 주시니 긴장이 풀립니다. 고향 집이 어디쯤이라고 사진을 짚으시는 걸 볼 때는 마음에 작게 동요가 입니다. 밤섬 사람들은 왜 살던 곳에서 나와야 했을까요? 한강 개발과 와우산 자락의 재개발로 마을은 자꾸 흩어져야 했습니다. 개발로 얻는 것은 쉽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기념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잃는 것은 어떻게 기억될 수 있을까요? 앞으로 또 한강이 개발된다면 누가 무엇을 상실할까요?

    photo_2017-01-18_15-02-34 후원_배너 [연결되는 글 읽기]  [ 처음 만난 한강 이야기 1 ] 영화 ‘댐 네이션 : 댐이 사라지면’을 보고

[ 처음 만난 한강 이야기 2 ] 한강에서 돌고래를 만날 수 있다면?

[ 처음 만난 한강 이야기 3 ] 밤섬은 폭파되었습니다.

[ 처음 만난 한강 이야기 4 ] 여러분의 강을 멈춘 것은 무엇일까요?

[ 처음 만난 한강 이야기 5 ] 여러분은 강을 좋아하시나요?

화, 2017/06/13- 11:56
25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