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온콘] “50년 운동의 원동력은 ‘거룩한 분노’”

지역

[온콘] “50년 운동의 원동력은 ‘거룩한 분노’”

익명 (미확인) | 월, 2015/06/01- 10:59

[여성연합 '온콘' 2014 기획 시리즈_생각을 바꾼 그녀들 세상을 바꾼 그녀들_시즌2] 한국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



“50년 운동의 원동력은 ‘거룩한 분노’”


1996년 남편과 민중교회 통해 이주노동자 운동 시작
한국의 이주여성 인권운동 개척자로 제도화 기틀 마련
“집착하지 않고 내가 시대적 사명을 다했는가 질문해야”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염 대표는 자신의 정체성을 '종교여성운동가'라며 '다시 태어나도 또 여성운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이 땅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이 누구인가?”


자그마치 50년. 반세기 동안 삶의 모퉁이 모퉁이에서 그는 질문했다. “오늘날 이 땅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이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 발걸음의 이정표가 됐고, 길이 됐고, 역사가 됐다. 20여년 전에 남편과 함께 서울 창신동에서 민중교회를 섬기기 시작했을 때도 그는 같은 질문을 했고, 그 답은 ‘이주노동자’였다. 그렇게 이주노동자 운동에 뛰어든 한국염(68)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이후 ‘이주여성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한국의 이주여성 인권운동을 이끌어 왔다.
“1996년에 성남에 있는 양말 공장에서 일하다 도망쳐 나온 중국 한족 출신 이주노동자 8명을 만난 것이 시작이었지. 임금체불과 성추행을 겪다 도망 나온 노동자 8명 중에 7명이 여성이었어요. 그렇게 남편이 사역하던 청암교회에서 서울이주노동자센터를 만들었고, 나는 낮에는 여신학자협의회에서 일하고 밤에는 이주여성노동자들 상담을 했지요.”
한 대표는 “이주노동자 운동에 투신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민주화 운동을 하던 이들이라 소위 민주화 개념은 있었으나 젠더의식은 굉장히 약했다”며 여성을 위한 시설과 인력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가장 절박했던 것은 이주여성노동자들을 위한 쉼터였다. 당시 이주여성노동자를 위한 쉼터가 전무한 상태인데다 기존의 쉼터들도 열악한 처지라 남성들이 입소하면 여성들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여신학자협의회에서 일하고 있던 한 대표는 독일의 세계기독위원회에 편지를 써 이주여성노동자 쉼터 마련을 위한 기금 3천만 원을 요청했고, 2년만에야 돈이 도착했다. 하지만 2년 동안 건물 한 층을 임대할 수 있는 전세금은 3천만 원에서 5천만 원으로 훌쩍 올라버려 모자란 돈 2천만 원은 따로 모금을 해야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1년 ‘외국인여성노동자의 집’이라고 이름붙인 쉼터를 마련했고, 그렇게 이주여성을 위한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 쉼터를 마련할 때 외국인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하니 아무도 집을 안 발려 주는 거에요. 부동산에서는 ‘그러지 말고 그냥 집을 하나 사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순전히 배짱으로 건물을 매입하고 돈을 모아 해마다 한 층씩 전세 들어 있는 사람들을 내보냈죠. 건물 한 채를 온전히 마련하는데 7년 쯤 걸린 것 같아요.”
15년 전 이주여성노동자를 대상으로 시작한 쉼터는 2003년 ‘이주여성인권센터’로 이름을 바꾸고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한 활동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게 된다.
“쉼터에서 다양한 이주여성을 만났어요. 결혼이주여성과 성매매로 유입된 여성도 만나게 됐어요. 실제로 만나보니 성매매로 유입된 이주여성들의 인권문제가 가장 심각했는데 그들을 위해서는 이미 활동하고 있는 두레방이나 새움터같은 전문가들이 있었어요. 결혼이주여성들을 만나면서는 이들이 24시간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이주여성노동자들은 퇴근하면 그래도 사생활이 있는데 폭력 피해를 당하는 결혼이주여성들은 그럴 수도 없는 거에요. 그들의 상황이 너무 참혹해서 활동의 중심을 결혼이주여성으로 옮기고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염 대표는 여성운동 후배들에게 '마음을 비우고 사는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민중과 더불어 살기 위해 학위 포기


45여년 전 한국에서 여자는 목사가 될 수 없던 시절 한국염 대표는 ‘여자 목사’가 되고자 신학대학교에 입학했다. 성직자의 길을 택한 데는 어린 시절 죽을 고비를 넘나들었던 개인적 체험도 한 몫을 했다. 한국전쟁 이후 스칸디나비아 반도 3국이 운영하던 지금의 국립중앙의료원의 전신이었던 병원에서 한 대표처럼 위독한 환자가 들어와 살아나간 게 처음이었단다. 주변 사람들 모두 죽는다고 했던 13살짜리 소녀는 그렇게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그 경험은 그를 자연스레 신학교로 이끌었다.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에 한국에 여자 목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신학교에 갔어요. 그 때만 해도 나는 여자들이 똑똑하지 못해서 목사가 되지 못했다고 생각했지, 제도 때문인 걸 몰랐어요. 그런데 입학하고 보니 여자는 목사가 못된다는 거야. 학교를 그만둬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던 중에 우리 학교에 여자 교수가 있는 걸 보고는 ‘목사가 못되면 교수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남았죠.”
1969년 한신대학교에 입학한 한 대표는 대학시절 기장여신도회에서 여성목사 안수를 위해 교단과 싸운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 자진해서 찾아다녔다. 해당 교단에서 여성목사 안수제는 1975년 세계여성의 해를 한 해 앞둔 1974년 통과됐다. 한국염 대표의 여성운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한 대표는 대학원 졸업 후 기독교 잡지에서 기자로 활동하다 여신도회 전국연합회에서 기독교 여성운동을 시작했다. 기독교신문 기자였던 남편 최의팔 목사는 주요 일간지에서 싣지 않았던 ‘인혁당 사건’을 신문에 실었다가 안기부에 의해 해고를 당했다. 그 후 한 대표 부부는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건너갔고, 여성신학으로 박사학위를 준비하던 한 대표는 체류 3년 만에 학위를 포기하고 귀국했다.
“독일 가기 전 민중신학을 하시던 교수님들의 삶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그분들을 존경하지만, 교수라는 위치 때문에 민중처럼 살지는 못하시더라고요. 민중 지향성을 갖고는 있지만 민중과 더불어 사는 삶은 안되는 거에요. 내가 공부를 더 해야하나 고민할 때 그 생각이 나면서 나도 교수가 되면 그렇게 살게 될 것 같아 학위를 접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50년 운동을 돌아볼 때 가장 잘 한 일 중의 하나가 학위를 포기한 것이에요. 기득권 자리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었어요.”


독일에서 돌아온 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운동에도 결합한 한국염 대표는 수 년 째 정대협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1차 아시아연대회의의 실무책임자이기도 했던 그는 1996년부터 실행위원을 시작하는 등 20여년 간 정대협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정대협 운동은 성, 계급, 인종 문제가 다 녹아들어 있는 거에요. 당시 한국에서 힘없는 사람들이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갔거든. 거기에 계급 문제가 있고, 일본 제국에 의해 희생당한 것이니 제국주의 문제가 있고, 여성이 겪는 성폭력 문제이면서 민족과 인종 갈등까지도 포함된 문제이지요.”
한 대표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미군 위안부’나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게 성폭행 당한 베트남 피해 여성들에 대해서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일본처럼 국가가 모집을 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군이 베트남 피점령지 여성에 가한 폭력에 대해서는 당연히 사죄를 해야지요. 정대협 운동이 자국의 여성에만 국한하지 않고 전시 하 체제 여성 문제로 끌어안고 가는 것에 대해 의미부여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 민족이기 때문에 한국인에만 집착한다면 그것이 진짜 민족주의에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3월 8일 세계여성의날 기념 제31회 한국여성대회 '퍼플워킹'에 이주여성들과 함께 참여한 한국염 대표. 앞줄 소녀상 왼쪽 의자에 앉아있는 한 대표.>

“앞으로도 이주여성인권센터가 내딛는 걸음이 곧 길이 되길”


한국염 대표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함께 활동한 지 15년, 정부가 이주여성을 위한 지원사업을 시작한 지 10년이 흘렀다. 한국사회에서 이주여성들의 인권문제가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지만 지난 10년간 가정폭력방지법 개정, 이주여성 쉼터 마련, 콜센터 개설 등 이주여성의 인권을 위한 제도화 작업은 계속 진행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한 대표의 활동이 큰 부분을 차지했음은 물론이다.  
“어쨌든 제도는 좀 나아졌지요. 초창기에는 결혼이주여성들을 전업주부로 상정하고 입국시키기 때문에 이혼하면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법무부에 체류법 변경을 요구해서 일반인은 5년이 지나야 영주권이나 국적을 신청할 수 있는데 결혼이주여성은 2년 만에 신청할 수 있게 바뀌었어요. 이혼 시 혼인 파탄의 책임이 당사자에게 있지 않다는 것이 입증되면 체류할 수 있게 됐죠. 또 초창기에는 결혼이주여성들이 취업을 못했어요. 친정집에 돈 보내는 문제로 남편과 갈등이 생기고 여성들의 자존심이 다치니까 일자리를 줘서 여성들이 떳떳하게 자기가 번 돈을 고향에 보내게 하자고 설득했죠. 그렇게 결혼이주여성들의 취업권이 열리게 됐습니다. 누군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내딛은 걸음이 곧 길이 됐다’고 얘기를 하는데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정체성을 ‘종교여성운동가’라고 말하는 한국염 대표는 “다시 태어나도 또 여성운동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평생 낮은 곳에서 힘들지 않으셨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는 “나 이름 많아. 명예도 있고. 상도 여러개 탔어”라며 소리내어 웃었다.
“그렇게 힘들다는 생각없이 살았어. 사람들이 나보고 어떻게 생활했냐고 물어보는데 하루 세끼 밥 먹고 살았어요. 결국 집착을 안하면 쉬운 것 같아요. 우리 센터도 돈이 없어 언제까지 버티겠나 생각하다가도 이거 오래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내 욕심이다, 시대적 사명을 다하면 접는 거지 뭐. 문제는 내가 시대적 사명을 다했느냐 하는 질문이에요.”  


글/사진 : 김수희 여성연합 활동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주여성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서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민간단체로

외국인이주여성의 인권보호와 권익신장,
모성보호와 육아지원을 통한 이주여성과 자녀들의 생명존중,
성인지적 관점에서 이주여성을 위한 교육과 문화활동을 통한 한국사회의 적응지원,
국경을 넘는 연대를 통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듦으로서
평등하고 평화로운 지구촌 사회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댓글 쓰기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성평등포럼 후기]
과학의 발전과 여성의 몸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매년 대학의 새 학기 등록 시기 쯤 되면 어김없이 9시 뉴스에 여대생들이 목돈 마련을 위해 불법이지만 난자를 팔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됩니다. 또한 인터넷으로 원하는 특성을 갖는 난자와 정자를 구매하고 이를 수정시킨 뒤 비용절감을 위해 수정된 배아를 냉동시켜 제3세계의 대리모에게 보내 출산하는, 아기를 인터넷으로 주문 생산할 수 있다는 '구글 베이비(Google baby)', 이런 서비스를 대행해주는 회사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로 유투브에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황우석 사건을 통해 생명과 관련된 과학이 우상화되거나 객관성을 상실할 때 일으키는 문제점을 경험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2016년 첫 포럼인 제5차 성평등포럼에서는 '과학의 발전과 여성의 몸'이라는 주제로 연세대 생화학과 송기원 교수님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송교수님은 생명과학이 발전되고 사회가 변화되어야 하는 속도에 비해서 일반인들이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사회시스템이 변해야 하는데 변하지 못하는데 필요성을 느껴서 과학자이지만, 외부 강의를 시작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강의의 시작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질문들에 대한 답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면서 생명의 정보인 DNA의 중요성과 관련 과학기술에 대해 설명하셨습니다.
인간유전체는 약 2만 여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개인 인간유전체를 분석하여 인간의 권리를 얼마나 침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미국은 개인보험으로 보험에서의 차별을 둘 수 있고, 취업에서의 차별을 둘 수도 있어 사회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가건강보험개념으로 미국과는 다르나, 그에 맞는 담론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 휴먼게놈프로젝트가 시작한 시점과 같이 법적 제도가 생겼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미흡한 상황입니다.


또 다른 문제로 생식기술의 발달과 생식권이라는 주제로 과학의 발전이 여성의 몸에 어떤 침해를 가하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먼저 배아줄기세포, 성체줄기세포 등을 통한 인간의 탄생에 관한 논의들이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 난자를 채취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문제가 있는건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하셨습니다. 한국은 아무 기준도 없는 상태에서 난자 기증 운동을 벌였고 과학을 경제성장에 도구로 여기고, 여성이 도구화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상황입니다.


또한 현재 지구의 약 3백만명의 시험관 아기가 있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시험관 아기는 10%대로 그 비율이 높다고 합니다. 유전체 해독기술과 생식기술이 합쳐져 시험관 아기에서 더 나아가 맞춤아기 시대로 변하고 있습니다. 지금 갖고 있는 유전정보를 가지고 원하는 아기로 만들어 인도나 네팔같은 나라에 대리모를 통해 아기를 낳아서 배달해주고 있는데, 이는 제3세계에서 여성의 인권이 침해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대리모가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서 하는 경우에 일자리(job)으로 인식해야한다는 견해와 그것은 성적자기결정권, 인권을 침해한다는 견해가 있다고 합니다. 여성의 인권이 중요한 만큼 생식권도 중요한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해 포럼 참석자들과 열띤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강연을 통해 난자, 배아, 대리모 등 여성의 몸(임신.출산)과 긴밀하게 관련된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것이 여성에게 던지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과학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여성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바라봐야하는지, 어떤 제도적 논의와 담론을 형성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포럼 참석자들과 질의 시간을 가진 후 2016년 첫 포럼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2016년 3월 따뜻한 봄날, 6차 포럼에서 만나길 바랍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댓글 쓰기

화, 2016/02/02- 16:55
285
0

여성운동의 성장 및 확산을 위한 지원사업Ⅰ
신생여성단체 지원 –

 

1. 사업명
– 신생여상단체 지원

 

2. 신청사업내용

– 여성운동의 성장 및 확산을 위한 신생여성단체 지원
– 시업 추진기간(1년)이내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주제의 신규 사업

□ 신생여성단체 목적사업비 지원
: 여성운동의 성장 및 확산을 위한 자유주제 사업
: 여성주의에 기초한 창의적인 사업
: 단체 기반 조성을 위한 단체 고유목적 사업

□ 신생여성단체 운영비 지원
: 단체 운영비 지원
: 단체 인건비 지원

 

3. 지원대상

– 비영리 신생여성단체

※ 신생여성단체란?
– 단체의 설립목적 및 정관상 주요사업에 성평등 사회 실현을 포함하고 있는 여성단체
– 설립한지 3년 이내, 1명 이상의 상근자를 둔 여성단체
※ 미등록 여성단체(시설)도 신청 가능
단, 미등록 단체(시설)의 경우 2년 이상의 사업실적과 전담인력이 확보 必

※ 지원제외 단체
– 시민사회단체
– 종합사회복지관 및 단종사회복지관
– 사회복지법인 및 사회복지법인 산하 기관 및 시설
– 학술연구를 주 목적으로 하는 기관
– 대학 내 부설기관
– 정당 및 정당부설기관
– 친목성격 및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4. 신청규모
– 신청사업 당 최대 500만원 이하 지원

 

5. 신청사업 형태

구분

세부내용

신규사업 ․ 본 사업 추진기간(1년)이내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주제의 신규 사업
연속사업 ․ 기지원된 ‘신생단체 지원사업’의 연속 사업
※ 3년 연속(동일) 사업 신청 가능

 

5. 신청 시 유의사항

① 지원 제외 대상 사업
– 지원사업과 관련,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 및 타 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사업
– 수익을 목적으로 하거나 특정 이해집단(정당, 친목단체 등)에 이용될 수 있는 사업
– 연구를 주 목적으로 하는 사업
– 사업프로그램 없이 인건비 또는 운영비만을 요청하는 사업
– 홍보성 사업 또는 단체 기념행사, 후원사업
– 참여대상이 불분명한 사업
– 사업의 일부 또는 전부를 외부에 양도 또는 하도급 하는 사업

② 사업신청의 제한
2014~20163년 연속 성평등사회조성사업(자유공모, 기획공모, 여성과 아동 폭력, 신생단체지원 포함)으로 지원 받은 단체는 신청 불가
※ 2015년~2016년 2년 연속 동일한 사업내용으로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 받은 사업의 경우 2017년도 공모사업에 신청 가능합니다.
– 단체별 신청 사업은 1개로 제한하며, 타 주제의 사업과 중복신청 불가
– 연대사업의 경우, 대표단체 외에 연대단체의 경우 1개 사업에 한하여 단독으로 사업 신청 가능
– 지부를 가진 전국규모의 단체의 경우, 중앙 및 지부를 포함하여 최대 3개 사업까지만 신청 가능
(※ 중앙 단체 및 지부 간 확인 必)
– 운영주체가 동일한 단체의 경우, 해당 단체의 부설기관(센터, 상담소 등)을 포함하여 1개 사업에 한하여 신청 가능

③ 예산 편성
– 사업비의 자부담 의무비율은 없음. 단, 자부담 계획이 있는 단체는 사업비 항목에만 자부담 내역 기재
지원사업비 기준을 초과할 경우 서류심사에서 탈락
– 관리운영비 중 운영비(비품구입비, 수용비 및 수수료 등)의 경우 신청 지원금의 10% 범위 내에서, 인건비의 경우(해당 사업 전담인력에 한하여) 신청지원금의 20% 범위 내에서 예산 편성 가능
단,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단체 운영 기본경비(인건비, 임대료, 경상운영비 등) 전체 또는 일부를 지원받지 않는 단체만 신청 가능
※ 신청지원금은 심사과정에서 조정될 수 있습니다.

7. 신청방법

① 접수기간 : 2016년 10월 19일(수) ~ 11월 30일(수)
※ 11월 30일(수), 오후 6시 도착분에 한함
※ 퀵서비스 이용 접수, 직접 방문 접수도 가능

② 접수방법 : 온라인(온라인신청 및 이메일 서류 제출)과 우편 모두 접수
※ 하나만 제출했을 경우 접수 불가능

③ 접수처 : (04001)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5길 13(서교동)
한국여성재단빌딩 5층 지원사업팀 김수현 앞

④ 제출서류

구분

세부내용

온라인
접수
※ 온라인신청서 작성 및 이메일 접수를 모두 접수해야 합니다.
① 온라인신청서 작성 : 온라인신청 Click
② 이메일 서류 제출
– 제출서류 : 지원신청서(한글파일)
※ 첨부파일명 : 2017_(지원분야)_단체명.hwp
※ 지원신청서 이외의 서류는 우편접수 시에만 제출
– 제출처 : 지원사업팀 김수현([email protected])
우편
접수
① 지원신청서 제출 공문 1부
② 지원신청서(소정양식) 4부
③ 법인설립허가증 또는 비영리민간단체등록증 사본 1부
※ 미등록단체의 경우 대표자 주민등록등본(주민번호 뒷자리 삭제) 사본 1부
※ 한국여성재단 파트너단체의 경우 대표자명의 변경 등 변경사항이 있는
단체만 등록증 제출
④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동의서(소정양식) 1부

 

7. 문의

한국여성재단 지원사업팀 김수현 과장
TEL.02-336-6385 / E-mail. [email protected]

 

[첨부]
0. (공모안내문)2017_성평등사회조성사업_final
3. (서식)2017_신생여성단체지원_지원신청서

수, 2016/10/19- 00:51
268
0

[3.8 여성대회 후기] 퍼레이드 참가기

“오늘의 날씨가 우리들의 현실을 대변합니다.”



다문화 아이들의 성평등도 보장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여성으로서 스스로 권익을 회복시키기 위해

사용자 삽입 이미지
<행진에 참가한 다문화 커뮤니티 활동가들>


2016년 3월 5일,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제32회 한국여성대회가 열렸다. 두 번째 순서로 퍼레이드가 이어졌고 퍼레이드는 우천 속에서 진행되었다. 그날 폭우가 내린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주저하지 않고 거리로 나섰다. 선두에 있던 이들은 “오늘의 날씨가 우리들의 현실을 대변한다”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우비 한 장을 걸친 차림으로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서울시청에서 평화비 소녀상까지 행진하는 걸음들에 비 내리는 날씨의 울적함은 보이지 않았다.
퍼레이드 대열에는 외국에서 온 이들도 있었다. 퍼레이드를 준비하는 표정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소개를 부탁하자 ‘다문화커뮤니티’에서 온 그들은 두 명이 필리핀 출신, 한 명이 미국 출신이라 했다. 다문화커뮤니티에 대해 “각자의 나라에서 성평등을 이루고자 왔다. 다문화 아이들의 성평등을 보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독특한 분장을 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은 피켓을 들고 행진에 임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성환경연대의 경진주, 이아름 활동가>


종로 한 가운데에서 퍼레이드가 한창 열기를 더해가던 중 눈길을 사로잡는 문구의 피켓이 보였다.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피켓의 주인은 ‘여성환경연대’ 소속 회원들이었다. 문구의 의미를 묻자 “여성의 외모에 대한 강요는 단순한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을 넘어 소비를 강요하고 환경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해여성회, 맨 오른쪽 노순덕 이사>


평화비소녀상에 도착했을 때 즈음 이번에는 멀리 김해에서 온 이들이 보였다. 김해여성회의 노순덕 이사는 “여성회의 이사가 되고 나서 처음 맡는 행사이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여성이 여성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참가했다”고 이번 여성대회에 참가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덧붙여 앞으로 여성회의 이사로서 임하는 각오에 대해 “여성으로서 스스로 권익을 회복시키기 위해 오늘 여성대회와 같은 행사, 언론 등에 다방면으로 참가하겠다”고 말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평화비 소녀상>


오후 4시경 평화비소녀상에 도착한 그들은 소녀상과 함께 비를 맞으며 퍼레이드를 정리했다. 약 1000명의 참가자가 모인 이번 한국여성대회에서의 퍼레이드는 그 어느 때보다 열정도 의미도 컸다. 시민들은 우산을 쓰기는커녕 건물 안에서 나올 생각조차 안하는 그 때에, 그들은 어깨가 젖는 줄도 모르고 희망의 씨앗을 심었다. 다문화아이들의 성평등, 외모에 대한 편견과 이로 인한 과소비 강요, 성평등 국회, 데이트폭력 처벌 강화 등 그동안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현실의 문제들을 외치며 희망의 시작점이 된 것이다. 3월 5일, 그들은 모였고 행동했다. 제32회 한국여성대회는 끝났지만 그 날의 열기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글, 사진 : 안지용(32회 한국여성대회 온라인 기자단)




댓글 쓰기

월, 2016/03/21- 16:39
254
0
[정책수련회 & 3차 이사회 · 전국사무국장연석회의]

제주의 밤은 뜨거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름의 끝자락, 제주의 밤은 뜨거웠습니다.
눈물이 날만큼 아름다운 제주 함덕 바다는

전국에서 모인 여성운동가들의 열정으로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지난 8월 26일부터 27일까지 제주시 조천읍 함덕 대명리조트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 2015년 정책수련회와 3차 이사회, 전국사무국장연석회의가 열렸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주에서도 보기 드물게 청명한 날씨 덕분에
함덕 해변은 그야말로 그림같은 풍경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그 풍경에 취해 당장에라도 바다에 뛰어들고 싶었지만
우리는 공.부.를 해야했습니다.
주제는 <자본주의의 '재생산적 전환'과 여성 노동>
김현미 연세대 교수님과 함께하는 정책토의에 이어
'노동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그룹별 토론과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주의 쫀득한 흑돼지 요리로 저녁식사를 한 뒤
3차 이사회와 전국사무국장연석회의가 이어졌습니다.

드디어 뒤풀이 시간.
파도마저 잠잠한 밤바다에서
제주여민회와 제주여성인권연대에서 준비해주신 한치회와 더불어 이야기꽃을 피웠드랬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둘째날 아침에는 특별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제주에 머물고 계신 이이효재 선생님께서 직접 후배들을 만나러 오셨습니다.
생명과 평화에 대한 귀한 말씀을 나눠주신 이이효재 선생님과
멋있게 기념촬영도 했습니다.
"선생님~ 건강하세요~"


이후 제주여민회 선생님들의 인솔 하에
근처 서우봉을 지나 4.3기념관까지 트래킹을 시작했습니다.
서우봉에 올라 바라보는 눈부신 바다와 하늘,
인적 하나 없는 조용한 들길 모두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또, 4.3기념관에서 듣는 가슴 저린 역사에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아쉽지만 우리는 또 다음을 기약해야겠죠?
제주에서의 이번 수련회는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댓글 쓰기

화, 2015/09/01- 14:50
244
0

[성평등포럼 후기]

‘성매매특별법’ 위헌제청 논쟁과 여성운동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성운동과 관련 이슈에 대해 논의하고 활동의 대안을 모색해보는 자리인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평등포럼'이 6월 11일 오후 6시30분 여성미래센터 지하교육장에서 열렸습니다.

‘여성혐오와 안티페미니즘’ 제목 하에 열린 첫번째 포럼 당일인 4월 9일은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하 성매매특별법)의 위헌여부를 가리는 공개변론이 있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2012년 7월 13만원을 받고 성매매를 하다 적발된 여성이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고 이에 따라 성매매특별법의 위헌 여부를 다투게 되었습니다. 현재 성매매특별법은 성구매자뿐 아니라 ‘자발적’ 성판매자도 처벌 대상이 됩니다. 참고로 처벌받지 않는 성판매자의 상황은 위계위력 등으로 성매매를 강요당했거나 보호 감독하는 타인으로부터 마약 중독되어 성매매 했거나 청소년이나 심신미약자가 알선유인 된 경우, 인신매매된 경우입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평등연구소 박진경 소장님의 사회로 참가해주신 스물일곱 분들의 간단한 소개와 인사를 나누고, 차혜령(공익인권법재단공감/민변여성인권위원회) 변호사와 정미례(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동대표의 발제를 들었습니다.

먼저 차혜령 변호사는 위헌소송의 공개변론에서 나왔던 쟁점을 설명하며 발제를 시작했습니다.

“위헌법률 사건을 보기 전에 성매매를 둘러싸고 무엇이 문제이고 범죄인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성매수만이 범죄이다. 공개변론에서 부각된 쟁점 중 하나는 성매매의 해악에 관한 것이다. 강요나 약물 등에 의하지 않고 성매매가 이뤄진 경우 그것을 범죄로 처벌하기 위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성매매의 해악이 무엇인가. 성매매처벌규정 합헌을 주장하는 정부쪽 대리인은 주로 ‘성매매는 성풍속을 해하는 사회적 해악’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동시에 정부쪽은 ‘근본적으로 성매매라는 비인간적 사태를 막음으로써 인간의 존엄을 지킨다는 의미’, ‘성매매는 성매도인 자신에 대한 위해행위이므로 사회적 해악 명백히 존재하기 때문에 국가가 방임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도 ‘인간의 존엄’이나 ‘자신에 대한 위해의 직접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성판매자 개인에게 끼치는 해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 같은 부분은 현행 성매매처벌규정을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강요없는 성매매는 합법화되어야 한다는 쪽도 정부쪽도 동일하다. 성매매는 성매매로 인하여 특정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없는 범죄, 곧 피해자 없는 범죄라고 주장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어서 차혜령 변호사는 합의한 성매매라 할지라도 개인적 해악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개인적인 측면에서 해악이 정말 없을까? 성병 등의 질병적 위험에 노출되며 물리적 폭력이나 성폭력도 가능하다. 심리적인 면에서도 성매매 여성의 해리성 장애도 굉장히 높은 빈도로 나타난다고 한다. 무엇보다 인간 존엄성과 평등의 원칙을 깨고 있기 때문에 침해가 있는 것으로 본다.”

또한 발제의 마무리로 “성매매가 성판매 여성들과 사회에 미치는 해악과 그 실체를 더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밝혀내고 성매매의 실체를 더 드러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다음으로 이론적인 논쟁보다도 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해서 여성운동 차원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바람을 시작으로 정미례 공동대표의 발제가 이어졌습니다.

“성매매특별법 제 21조 1항은 성매매여성과 성매수남성을 구분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처벌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는 조항으로 만약 위헌이라는 선고가 나온다면, 성매매여성뿐 아니라 성매수남성에 대한 처벌 당위성이 없어진다. 결국 성매매에 대한 국가의 규제에 공백이 발생하게 된다. 반면 합헌이 유지된다면 성매매여성에 대한 처벌이 그대로 집행된다는 문제가 남게 된다는 점도 고민지점이다.”

무엇보다 성매매여성에 대한 낙인 또한 해결되어야 할 지점이라고 짚었습니다.

“성매매 문제는 이미 성별화 되었다. 성매매여성에 대한 낙인 문제 해결되어야 한다. 독일이나 호주의 경우 제도가 있더라도 사회 내부에서는 성매매여성에 대한 낙인이 심하다고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조사한 사회 내 낙인척도가 높은 그룹 중에 성매매여성이 제일 낮게 나타났다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리고 “성매매여성에 대해서 피해자화가 아니라 젠더 기반 한 폭력 관점에서 이 문제를 재구성했으면 좋겠다. 성매매 역시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처럼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봐야 한다.”며 보다 큰 틀에서 성매매문제를 접근해야 할 필요를 제기하며 발제를 마무리했습니다.

발제들에 이어 참가자들과 플로어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성적자기결정권과 노동권 등 기본권과 관련해서 성매매 문제를 논하기도 했고, 외국의 성매매 정책과 실제에 대해서도 짧은 토론시간이었지만 질문과 답을 자유로이 나누며 제2차 성평등포럼을 정리했습니다.

2015년 제3차 성평등포럼 일시는 8월 20일(목) 오후 6시30분
주제는 <여성정치세력화와 선거제도 개혁>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성평등포럼은 짝수 달 개최되며 회원제로 운영됩니다.
문의 :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평등연구소 [email protected] / 02-313-1632



댓글 쓰기

금, 2015/06/26- 16:36
22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