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그 날 (171)
촛불집회에서 노태맹 시인은 시, “이곳이 민주주의다”를 낭송했고, 김수상 시인은 시, “이곳은 평화를 촬영하는 드라마 세트장이다”를 낭송했다. 그 사이 김병호 화가와 김건예 화가는 그림을 그렸다.
여기는 평화나비광장
평화 드라마를 찍는 세트장이다
오늘은 171회째(12월 30일 기준), 평화 드라마는 계속되고 있다
이 생방송 드라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속 된다
모두가 연속극의 주인공이고
모두가 연속극의 스텝들이다
드라마 총감독 김충환 위원장님, 이강태 신부님, 김성혜 교무님, 이종희 위원장님
촛불 연출 노성화 단장님
고난의 상황을 순식간에 평화의 상황으로 만들어버리는
촛불 상황실의 박수규 실장님
촛불 촬영 이분들이 없었더라면
쓰레기 언론들의 더러운 글과 말을 어찌 바로 잡았을까
<뉴스민>의 천용길 편집장님, 김규현 기자님
박중엽 기자님 이상원 기자님 정용태 기자님
<오마이뉴스>와 <팩트TV> 기자님
촛불 영상에는 깜찍한 토끼로 더 잘 알려진
깜토 류동인 님, 그리고 김광식 님
촛불 기획에는 발이 말보다 빠른 박철주 님
김제동보다 더 유명한 성주의 영웅 촛불 엠씨 이재동 님
촛불 마당쇠(변강쇠) 이강태 님 도완영 님 방민주(빵민주) 님
이국민 님 이민수 님 조성용 님 김상화 님 한호옥 님
촛불 차봉사 성주성당 천주교평화위원회 회원님들, 그리고 신부님과 수녀님들
사무여한(死無餘恨)의 마음으로
매일저녁 원불교 교무님들이 올리는 장엄한 평화의 기도소리
촛불 봉사 이혜경 님 금은점 님 김경숙 님 심복남 님
조유련 님 김미영 님 배미영 님 배정하 님 석명희 님 서미란 님
우봉진 님 김효남 님 유영대 님 성주제일교회 남여집사님들
촛불 소식지 편집팀 이형희 님 여정희 님 조은학 님
촛불 소식지 배달꾼 김경수 님 나순석 님 김미정 님 최은희 님 최용철 님 황재화 님
촛불 미술팀 서화담 님 김현선 님 배현리 님 김미남 님 류영희 님 이현정 님
성주의 대표카피라이터 서미란 님
평화를 사랑하는 예술단 이미애 님 이미란 님 최종희 님
박경미 님 염채언 님 김기태 님 한규비 님 박아진 님
박세림 님 박연주 님 김후남 님
노래하는 예그린 전영미 님 천남수 님
빈 플라스틱 병으로 지지 않을 평화의 꽃을 만드는
꽃자리의 김순란 님 박신자 님 고해자 님
아, 그리고 평화의 나비 떼들을 세계로 날려 보낸
실리안 파랑나비공방의 파랑나비팀들
엄마 따라 쫄래쫄래 평화나비광장에 찾아와
재잘재잘 고운 목소리를 내어준 별고을의 어린이 천사들
김송현 김송우 박아연 한다빈 석정담과 석정우
이린 이재서 김솔 김찬 김민
촛불의 명가수 진금염 님 황성재 님
표고농사 지으시는 지역단장 김형계 님
색소폰 명연주로 촛불의 심금을 울리는 김윤성 지역단장님
산처럼 미더운 법무팀장 배현무 님
여성1만인 서명운동의 주역인 윤금순 님
촛불 100일의 무릎담요의 주역인 사드밴드 펀딩팀의
윤병철 님 이현민 님
촛불의 아름다운 얼굴들을 한 장 한 장 사진에 새기는 남진수 님
목요일의 사나이로 촛불을 울리고 웃기는 함철호 선생님
주옥같은 말씀으로 생생한 가르침을 주시는
월요일의 사나이 배윤호 선생님
금요일에 고정출연하는 지혜로운 월항 소녀 이수미 님
막걸리 한 사발이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시는
사드철회투쟁의 선봉대, 성주농민회원님들
소성리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며
광화문 100만 촛불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
임순분 소성리 부녀회장님의
떡국 맛과 팥죽 맛을 우리는 잊지 못하네
별고을의 러블리 평화 여전사 손소희 님
노래도 미모도 투쟁만큼 멋진 배은하 투쟁위 1기 대변인
배포 크신 성주의 대표요리사 배숙희 님
촛불 최강 리액션의 에너자이저 김남연 님
부부궁합의 끝판왕
성주의 최고 부부 춤꾼 조선동 님 김정복 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평화의 북으로 천지(天地)를 두드리는
북치는 소년소녀 김삼곤 님 송대근 님 허기택 님 박노육 님 박영순 님
촛불 개근상 최영철 님을 비롯한 별고을의 할매들
그리고 여기에 이름이 없어서 별처럼 빛나는 더욱 아름다운 사람들
이렇게 수많은 스텝들과 주인공들이 있으니
우리는 은산(銀山)과 철벽(鐵壁)도 넘을 것이다
우리는 잘난 척하려고 무대에 오르는 것이 아니다
주인공이 되려고 무대에 오른 것이 아니다
불의와 부정을 고발하고 나보다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도 무대에 오른다
무대와 관객이 일심동체다
아! 하면 와! 하고 대답한다
우리는 이 겨울의 찬바람이 무섭지 않다
촬영장에는 평화난로와 비닐바람막이가 있고 따뜻한 차가 있다
전쟁을 부르는 무기인 사드는 나쁘다는 진실한 믿음이 있고
착한 인심이 있으니
성주가 쓰는 이 드라마는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누가 잔치는 끝났다고 하는가
성주의 싸움은 매일 매일이 잔치다
이곳 별고을에서 시를 낭송한 시인들이 한결같이
직관으로 예언했다
성주는 이미 이겼다
이 낙관과 이 낭만으로 이 평화의 항쟁을 끝까지 밀고나가자
성주 사람들 이마에서 푸른 물이 뚝뚝 듣는다
성주가 평화다!<시, “이곳은 평화를 촬영하는 드라마 세트장이다” 중에서>
촛불에 조금 일찍 갔는데 추워서 원불교 교무님 기도하는 뒷자리에서 반야심경을 따라 외웠다. 기도가 있고 노래가 있고 시가 있고 춤이 있고 연주가 있고 합창이 있고 오늘은 그림이 있었다. 평화나비광장은 평화를 촬영하는 세트장이 맞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화가와 시인이 어우러졌다. 김병호 화가와 김건예 화가는 이 추위에 곱은 손을 호호 불며 대작을 그렸다. 예술은 곱은 손에 불어주는 따뜻한 입김이다. 외투와 손에 물감이 다 묻었다. 무언가 울컥, 했다. 노태맹 시인은 감동의 시를 낭송했고, 나는 위대한 성주 촛불의 이름들을 호명했다. (이름이 하도 많아서 지루하셨을 텐데 참고 잘 들어주셨다) 노래까지 불렀으니 이만한 호사가 없다. 잊지 못할 송년의 밤이었다.<김수상 시인의 페이스북 글>
국방부와 롯데가 부지 감정평가를 완료했다.
2017년 그 날 (173)
아내 병문안을 다녀왔다. 촛불집회에서 “백옥주사니 태반주사니 해도 주사는 촛불주사가 최고다.”라고 발언했다.
싸움에서 이기면 화합의 시대가 열리고, 지면 굴욕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지금은 투쟁의 시대이다. 전열을 정비하고 있는가? 전선은 어디인가? 우연으로 이기는 법은 없다.
소성리 주민들이 달마산에서 산신제를 지냈다.
2017년 그 날 (174)
촛불집회에서, 젊었을 때 불렀던 ‘이별의 부산정거장’, ‘대지의 항구’를 재미있게 개사한 노래를 불렀다. 소성리 할머니들이 아주 좋아했다. 촛불이 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재미있고 즐거워야했다.
투쟁은 즐겁게! 투쟁은 신나게! 투쟁은 질기게! 투쟁은 건강하게! 촛불집회에서 자주 외치는 구호다. 사회자가 “투쟁은”하고 외치면 주민들이 뒤 구절을 외치는 방식이다. 김천에서는 이 구호를 “4게 구호”라고 불렀다.
드디어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느냐/늦추어 지느냐,
새해가 되었네요,
한국 정부는 어쩔 수 없는 한계로,
미국의 대북봉쇄와 남북대화 사이에서 동요할 수 밖에 없고,
남한 민중의 강력하면서도 현명한 대응으로,
올해 정세를 한반도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결정적인 해로,
울 모두 힘을 모아 나갑시다.
신년사 발표…"올림픽 성과적 개최 진심 바라" "북남관계 개선해 사변적인 해로 빛내야" :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1일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과적 개최를 기대하며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
한겨레신문 김일우 기자의 성주주민들의 가야산 해맞이 기사를 두고서 많은 말이 오가고 있다. 여기에는 사드가 배치된 지역인 달마산과 새해 주민들이 많이 올라오는 가야산을 가지고 어디를 취재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 지조차 언급되고 있다. 이는 사드반대투쟁을 바라보는 차이가 다시금 드러난 부분일 뿐이다.
성주의 주민들이 찾아간 곳은 가야산이 아니다. 다만 새해에 많은 주민들이 몰려오는 곳이다. 예배 드릴 대상이 있는 곳이다. 성경에서 예배 드릴 곳으로 예수가 "그리심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다."라고 했던 의미이다. 예배드릴 대상, 물론 그 분들을 소성리의 주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그 분들을 대상화하는 것이다. 그 분들은 예배를 받을 이들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성주는 이미 파란나비 원정대를 만들어 대중(multitude)들이 모이는 곳으로 여행을 다녔다. 이 번에도 마찬가지이다. 소성리 달마산은 사드가 배치된 지역이고 서로를 바라보며 위로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생명을 확장시킬 수 있는 이들이 없는 곳이다. 그것은 의미와 언어들을 통해 의미화되며 상징화 된 질서가 존재하는 '상징계'일 뿐이다. 생명의 확장은 언어의 구조와 언어행위의 외부인 잔여영역으로 실재계를 통해서 가능해지는 것들이다.
우리와 연결되는 생명들, 타자들이 바로 그 실재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들은 성주의 주민들이고 새해에 가야산에 올라오는 사드투쟁의 외부인들 이다. 그리고 여전히 사드투쟁을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통해 새로운 확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이들이다.
현실에 대한 좌절의 모습에서 그것이 공격이건 아니면 존재의 확인이건 흔히 내부를 향하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헤겔은 인정투쟁이라는 것을 통해 이런 인간의 존재상태를 이야기한다. 좌절된 ‘자기의식’은 내부를 향하게 되며 차단된 ‘외적존재’, ‘외적현실’에 대해서는 포기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을 헤겔은 ‘금욕주의’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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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던져진 실존으로서 피투(被投)적 존재가 그 현실을 능동적으로 변화시키는 기투(企投)적 존재방식의 좌절을 통해 맞이하는 ‘금욕주의’, 그것은 내부를 향하지만 또렷한 ‘자기의식’을 형성하기에 주인의 의식처럼 보여 진다. 하지만 그것은 좌절, 외부세계에 대한 금욕, 외적 현실에 대한 부정, 회피와 포기를 통해 만들어진 인정이기에 사실은 노예의 인정일 뿐이다. 즉 주인에 의해 인정된 것이 아니라 노예적 의식에 의해 인정된 것일 뿐이기에 헤겔은 ‘소외’되었다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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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된 외부, 이로부터 생겨나는 불안, 흔히 이것을 물리칠 방법이 외부세계에 대한 무관심과 절제를 통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에 대한 인정, 즉 존재감의 근거가 내부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을 경계해야한다. 사드에 대해 점점 냉정해지는 외적인 세상과 단절하면서 내부에 대한 비난과 그 존재에 대한 공격을 통해 근거를 만들어내는 방식이야 말로 비참한 노예적 존재방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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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경우 외부로 표현되는 과격한 언사는 ‘금욕주의’와 쌍을 이룬다. 그런 언어적 표현들이야 말로 좌절된 현실로부터 회피하는 모습을 감추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언어의 투쟁들에 비해 현실의 투쟁은 어림없이 빈곤할 뿐이다. 현실의 투쟁이 충분하다면 언어가 격렬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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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을 통해 내부를 향하는 자기의식의 공격성은 파괴적이다. 내부의 적을 만들어내고 그것에 대한 공격을 통해 외부의 적을 대체하는 방식은 모두가 피해야할 것들이다. 내부의 적을 향한 증오와 분노를 통해 투쟁의 정당성에 대한 근거로 삼는 행위는 노예적 자기의식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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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지만 새해에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힘을 북돋아주고, 격려하고, 상대의 못남보다는 잘남을 칭송하고 오히려 그 잘남을 딛고 일어나는 스스로 더 잘나고 위대한 존재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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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의 확인은 외부의 대중(multude)들과 함께하는, 연기(緣起)되어 있는 존재의 확인을 의미한다. 지금과 같은 때 일수록 외부와의 연결을 더욱 강화하고 확대해야 한다. 그것이 고립을 막는 방법이며 자기를 확장하는 방식이다. 그것은 단순히 투쟁의 순수함과 강고함만을 고집해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강기’, ‘퇴조기’라고 부르는 언어적 표현에는 투쟁의 ‘숭고주의’가 이미 내포되어있다. 그 순수함과 순결함을 변절시켜야 하기에 퇴조 한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은 투쟁을 대중적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것은 투쟁의 순결함을 던져버리고 대중의 낮은 심연으로 내려앉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의 시기에 우리의 생명을 강화시키는 것이며 삶의 기쁨을 확장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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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은 퇴조하지 않으며 결코 소강상태를 맞이하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의 투쟁이 어느 바다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가가 있을 뿐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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