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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동 걸린 내부고발자 퇴출 시도(강을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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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동 걸린 내부고발자 퇴출 시도(강을영 변호사)

익명 (미확인) | 화, 2015/05/26- 11:59

제동 걸린 내부고발자 퇴출 시도

 

강을영 변호사

강을영 l 변호사 · 공인노무사

 

내부고발자 퇴출 프로그램에 강한 제동이 걸렸다. 겉으로 징계사유가 있더라도 공익신고를 이유로 불이익을 준 것이라면 해고는 부당하다는 것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제주 7대 자연경관 전화투표를 둘러싸고 벌어진 KT와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간 사건에서 공익신고자 보호에 의미 있는 판결을 내 주목받고 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은 공익신고자가 불이익을 받게 되면 그 불이익은 공익신고를 이유로 한 것으로 추정한다. 추정의 효과는 회사로 하여금 정당한 징계라는 점에 대해 무거운 입증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만큼 공익신고자 보호는 힘을 갖게 된다.

KT 소속 직원 이해관씨는 KT가 제주 7대 자연경관 지정에 대한 전화투표 이벤트에서 소비자들에게 국제전화가 아님에도 국제전화라고 속여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를 했다. KT는 이씨를 왕복 5시간이 걸리는 지사로 전보발령했을 뿐 아니라 장기간 무단결근을 이유로 해고했다. 이에 권익위는 KT에 해고를 취소하고 원직에 복귀시키도록 공익신고자 보호조치 결정을 했다.그렇다면 회사 내 조직적인 문제는 모두 공익 침해행위에 해당해 신고가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이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경, 소비자의 이익, 공정한 경쟁이라는 5가지 사유에 한정하기 때문이다. 공익신고자로서 권익위에 보호 요청을 하려는 사람은 공익신고자보호법상 요건이 되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익신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시점은 언제로 봐야 할까? 공익신고를 할 당시를 기준으로 한다. 공익신고가 이루어지면 통상 공익 침해행위가 공정거래법 등에 위반되는지 살펴 고발 조치하거나 수사 의뢰하는 일이 발생한다. 법률 위반 여부는 해당 법률의 구성요건에 따라 엄격히 그리고 사후적으로 판단된다.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는 더 엄하게 볼 것이다. 따라서 사후적으로 해당 법률에 위반됐는지 여부만을 놓고 공익신고에 해당하는지를 보게 된다면 그 범위는 매우 좁아질 수 있다.

KT는 권익위가 보호조치 결정을 할 시점에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무혐의 결정이 내려진 점을 들어 공익신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공익 침해행위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경우나 최종적으로 법원 등에서 공익 침해행위로 확인된 행위만 공익신고 대상으로 본다면, 조사권한이나 법률의 해석권한이 없는 권익위에 지나친 부담을 지우게 된다고 보았다. 공익신고자 역시 공익신고에 큰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결국 공익신고는 위축되고 공익신고 범위는 좁아질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은 의미가 있다. 

왜 공익신고자 보호를 얘기하는가? 공익신고는 보통의 용기로는 할 수 없는 어려운 영역에 있다. 공익 침해행위에 대해 침묵하는 다수의 문제점은 요즘 특히 빈발하는 안전사고에서 아프게 확인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도 사고 이전에 안전 등 운항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제보한 사람이 있었지만 인사문제만 다루고, 나머지는 덮어 결국 뒤에 큰 사고로 이어졌다. 기관의 관리감독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조직 내부의 문제는 공익신고를 통해 감지할 수 있다. 반면 회사의 보복조치는 집요할 뿐 아니라 겉으로는 그럴 듯한 징계 사유도 갖추곤 한다. 공익신고를 이유로 직장을 잃고 가정이 파탄난다면 의로운 일을 한 사람의 개인적인 희생을 눈감아 버린 것이 된다. 용기를 의미 있게 해주는 제도적 뒷받침과 법원의 해석이 더욱 절실한 이유이다.

 

 

* 이 글은 2015년 5월 26일자 <경향신문> 29면 오피니언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기사원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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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인이든, 탈북인이든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 – 시민연구자 김명애 님

북한에 관심이 많아 탈북청소년의 한국 적응을 돕고자 꾸준히 만나왔다. 이번 연구를 진행하려고 만난 탈북 청소년 중 한 명은 3년 전에 수줍게 인사만 나누던 학생이었다. 당시 나와 이야기를 나눌 때 눈도 전혀 못 마주치고, 핏기없는 낯빛에 머리가 아프다며 힘들어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만나니 까르르 웃어댈 정도로 어찌나 밝아졌는지, 너무나 달라진 모습에 믿기지 않아 어리둥절했다.

“무엇이 널 이렇게 웃게끔 했니?” 어쩌면 내가 하려는 연구인 탈북청소년의 한국사회 적응에 미치는 긍정요소에 대한 직접적인 답이 될 수 있는 질문을 조심스럽게 던져봤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전문상담사에게 여러 번 상담을 받았는데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난 누구? 여긴 어디?” 아마 누구나 이런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복잡한 상황에 놓인 적이 한 번쯤은 있었을 것 같다. 이 친구도 목숨을 걸고 탈북을 시도해 어렵사리 한국에 왔지만, 모두가 바쁘게 살아가는 현 사회에서 북한에서 힘들게 왔다고 해서 특별히 따뜻한 눈빛이나 손길을 내미는 것 같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인이라고 하기에 뭔가 이상하고, 그렇다고 북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더욱 겁나는 상황에서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고민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찾게 된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점차 알면서 한국에서의 생활이 점차 편안해졌다고 한다.

자아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누군지를 알지 못하면 북한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아~ 이게 나지. 맞아! 이 모습이 나야.”라고 하면서 심리적, 사회적 안정을 찾게 된다.

흔히 사춘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부르지 않는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자신을 바라보며 어린이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어중간한 신체적 변화와 함께 남성과 여성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정체성을 혼란을 느꼈는지 되짚어 보면 그때의 심적 고통이 떠오를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싶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고려해 나를 포장하기보다는 상황 그대로의 나를 있는 그대로 오롯이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사회라는 곳에 적응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 또 주위에 자신을 돕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들에게 얼마나 큰 소속감과 안정감을 주는지 알 수 있었다.

언제든지 기댈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고 감사하는 탈북청소년을 바라보는 내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음을 느꼈다. 앞서 말했던 그 친구는 한국에서든 북한에서든 바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친구의 말에 함께 바다 여행을 떠나자고 약속했다. 기대감이 가득 찬 눈빛과 너무 행복한 모습에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탈북청소년의 한국 문화 적응을 위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간호의 긍정적 요인을 연구하면서 어찌 보면 한국, 북한 나눌 것 없이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긍정 요인을 연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쓴 현실 앞에서 탈북청소년에 관한 연구를 발판으로 아파하는 한국의 청소년과 나아가 전 세계 청소년에게 가장 필요한 긍정 요인을 찾아주고 싶다. 그들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서 나아갈 수 있는 요인을 알아가는 연구로 점차 확장되길 기대한다.

[칼럼] 남한 사회에 적응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야 – 시민연구자 백성희 님

청소년 시기는 자아 정체감을 형성하고 성인기를 준비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탈북한 청소년은 북한에서 태어나 북한의 교육을 받다가 중국 등 제3국을 거쳐 또 다른 적응 시기를 보낸 후 남한으로 들어온다.

남한 사회라는 세 번째 다른 세상에 놓이며 자신의 역할에 많은 혼돈을 겪는다. 기본적인 지지체계인 가족은 해체되거나 상실된 상태이다. 지지체계의 상실과 함께 남한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연결된 교육을 받지 못해 학력이 결손 난 상황에 놓인다.

하나원을 통한 교육 이후에는 학교에 다니지만,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교사나 친구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해 중도 탈락률이 일반 중고등학교와 비교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청소년 시기는 곁으로 보이는 자신의 신체상이 매우 중요하다. 남한으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청소년은 외모와 말투가 확연히 다름으로 드러나지 않은 낙인을 경험한다. 여러 과정을 거쳤기에 또래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도 흔하다.

북한에서 왔다고 특별하게 인식되면서 겪는 불편함도 있다. 많은 탈북청소년이 일상생활에서 겉으로는 남한 사회에 적응을 잘하는가 싶어도 우울과 불안과 같은 내면화된 정서 반응을 보인다. 남한 사람에 의해 드러난 낙인과 스스로 지닌 숨겨진 낙인으로 낮은 자존감, 수치심을 겪는다.

탈북청소년이 남한 사회에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을 이루는 긍정적인 요인이 무엇일까. 많은 연구에서 사회적 지지수준이 높을수록 심리·사회적인 적응과 일상생활의 적응수준이 높은 결과를 보였다. 지지체계를 만들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남한 사람들이 모르고 있어서 갖는 편견을 극복할 수 있었다.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과 사회에서 제공된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남한으로 오기까지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이후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잠재적인 심리적 문제들은 공식적인 지지체계보다는 비공식적인 소집단에 참여하고, 여기에서 상호작용하면서 정보를 나누기도 하고, 정서적인 문제를 스스로 극복하기도 하는 경우를 봤다.

그만큼 소집단이 활성화되고 지지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청소년 시기에 맞는 교육, 각각의 상황에 맞는 맞춤 교육을 하면서 한국사회의 심리·사회·문화적 적응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새터민은 우리 사회의 편견으로 인해 신분이 노출되었을 때 받게 되는 불이익에 대한 우려로 대부분 자신을 숨긴다. 그러나 이번 연구를 하면서 모든 편견에 맞서서 곳곳에서 사회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 새터민을 만났다.

청소년기에 탈북해 남한 사회의 여러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성인에 이른 한 새터민은 남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자신이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한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직접 경험하고, 극복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정서적인 지지체계를 형성할 수 있으리라 본다.

탈북청소년에게 남한에 와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했을 때 자유를 얻은 것이라고 했다. 꿈에 부풀어 바다에 가고 싶다고도 했다. 남한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곳이라는 마음이 들어서 좋았다고 한다.

‘자유’라는 단어를 다시 떠올렸다. 스스로 옭아매거나 다른 사람에 의해 구분될 때 자신이 자신의 자유를 빼앗아 버릴 수 있다. 지키고자 하는 자유가 단단히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누구이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발견하는 청소년기에 남한 사회에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적응에 성공해 안정을 찾길 바란다.

[칼럼] 탈북인 그들이 가진 고유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는 것 – 시민연구자 정란 님

이번 연구를 진행하며 공동체 의식에 관해 생각했다. 공동체란 소속감과 안정을 대표하는 사회적 구성에 기본 관념이다. 이와 관련해 인간의 기본욕구 중 소속과 안정의 욕구에 대한 결핍은 상위욕구를 향하는 열정마저 사그라지게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제3국을 통해 남한으로 넘어오려는 욕구는 생존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들이 남한에 정착하는 데 필요한 두 번째 욕구는 소속과 안정감이다. 그렇기에 하나원에서 사회화를 위한 교화 교육을 받고,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 때 얼마나 큰 벅참과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을지 탈북청소년과의 대화에서 알 수 있었다.

간접적으로 겪은 경험담으로는 그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글로 옮겨쓸 수 없을 듯하다. 그간 탈북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은 청소년기 탈북민과 교류하면서 나에게도 그들을 향한 선입견이 있었음을 깨닫게 했다.

또 그들은 유학생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깝고도 먼 북한 땅에서 다른 문화와 교육을 받았기에 사상과 가치관이 우리와는 완전히 다를 것 같았는데 실제 만난 탈북청소년은 새로운 문화를 동경하고 또 받아들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한국문화에 하루빨리 적응하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 헤매는 여느 유학생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어쭙잖은 나의 섣부른 통찰력과 무분별한 조언은 그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행에 신중함을 기하고, 젊은 연구자의 장점으로 실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과 관련해 정보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나의 자만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난 왜 그들이 우물 안 개구리와 같다는 여기며 정보를 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느꼈을까. 정작 우물 속에 있던 사람은 연구자 나 자신이었음을 알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탈북청소년은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확고한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과 만난 모임에서, 그리고 나눈 대화에서 자아 성찰을 하며 발전을 꾀했고, 그들에게 소속의 안정감을 주려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고 접근하기로 했다.

탈북청소년이기에 최신 추세에 민감하고 빠르게 흡수할 수 있을 거라고 본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처지를 바꿔 생각하면 나 역시 외국에 나가서 그곳의 경향과 유행을 따라가기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강점을 찾아주는 것으로 방향성을 잡았다.

빨갛게 머리를 물들인 남자 탈북청소년은 탈북한 지 갓 1년이 지났을 때였다. 북한식 말투와 억양이 강해 나서서 말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듯 보였다. 그래서 그가 관심을 가질만한 정보를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대화의 폭을 넓혀나가다 보니 교우관계에 문제가 있어 한국에 온 이후 학교를 여러 번 옮길 수밖에 없던 사연을 자연스럽게 털어놓았다.

이를 통해 탈북청소년과 정감 어린 교감을 했고, 탈북청소년이 아닌 평범하게 청소년기를 겪고 있는 고등학생의 멘토가 되어 편안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대화를 통해 “우리”, “함께”라는 소속감을 심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친구는 같은 여성이라는 성별을 앞세워 진학과 결혼, 육아에 대해 소탈하게 이야기를 나눴고, 미래에 대한 생각과 가치관을 공유하며 연대감을 가질 수 있었다. 이외에 꿈과 관련해 현재의 불안함과 이를 해소하는 방법을 나눴고, 탈북이 약점이 아닌 강점이 될 수 있다며 힘을 북돋웠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거창하게 생각했던 연구과제는 생각 외로 단순한 문제로 다가왔다. 소속감과 안정은 협회나 단체를 통해서만 충족되는 게 아니라는 걸 새롭게 발견했다. 개인적으로 연구라는 거창한 단어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막연함이 있었다. 나의 관심과 호기심에서 시작된 문제점이지만 풀어내기엔 너무 큰 과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과제를 수행하면서 위대한 발명은 대부분 호기심이 계기가 되어 시작되었음을 다시 깨달았다. 그러한 호기심으로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무척 감사함을 느낀다. 연구주제가 포괄적이지만 대상자를 선정함에는 어려움이 큰 연구다.

탈북이라는 특성상 가명을 사용하는 사람도 많고, 특히 청소년기를 겪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 이번 연구로 즉각적인 변화를 도모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건 그들의 삶에 있어서 소속과 안정은 다음 욕구와 자아 성찰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 자부한다.

화, 2020/01/2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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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4일 오전 11시 16분 55초, 인천소방본부 119 상황실에 한 통의 신고 전화가 걸려옵니다. 화재가 발생한 곳은 인천 미추홀구의 한 다세대주택이었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은 안방에 쓰러진 형제를 발견했습니다. 10살 형은 침대 위에 엎드려 있었고, 8살 동생은 책상 아래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형이 마지막 순간까지 동생을 구하려고 책상 아래로 동생을 밀어 넣고 이불로 주변을 감싸 방어벽을 친 것 같습니다.”

– 소방대원 인터뷰 중 –

화재의 원인은 어린 형제가 부모 없는 집에서 라면을 끓이다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0살 형은 온몸의 40%에 3도 화상을, 8살 동생은 다리에 1도 화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화재 당시 연기를 많이 흡입한 형제는 자가 호흡이 힘들어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라면형제 사건으로 알려진 사건은 우리에게 안타까움을 안겨줌과 동시에, ‘부모가 방치하지 않았다면, 화재감지기가 있었다면, 비대면 수업을 하지 않았다면, 돌봄 사각지대가 없었다면,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많았다면’ 등 많은 아쉬움도 남겨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도의 허점과 행정의 공백을 탓하기 전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제 작은 정성을 나누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결심을 했습니다.

저에게는 7살 아이가 있습니다. 코로나19 경제대책의 일환으로 정부에서 특별돌봄지원금 20만 원을 지원합니다. 그 20만 원에 제 20만 원을 더해 40만 원을 후원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달부터 아동보호단체에 정기후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다음으로 ‘지금 이곳 희망제작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린이들이 다시는 이런 사고를 겪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제도와 정책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지 정책, 포용국가를 위한 사회 안전망 강화 등과 관련하여 시민과 전문가 의견을 모아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지금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어린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고민 끝에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기업에 주는 돈은 투자라고 생각하고, 사람에게 주는 돈은 비용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경제는 사람에 관한 것이며, 경제는 좋은 삶을 만들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한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공동체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고,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소속감을 높이기 위한 필요조건은 그 사회의 소득 불균형이 커지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을 중심으로 사람에게 투자하는 경제가 바로 ‘휴먼뉴딜’입니다. 휴먼뉴딜은 개개인의 역량-고용-복지의 통합을 통해 개개인의 위험을 줄이고 위기에 대한 회복력을 키우고, 개개인의 능력을 높여 우리 사회 전체의 혁신역량을 높이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휴먼뉴딜의 핵심 가치를 등한시하고, 노동의 관점, 일자리의 관점으로만 접근한다면 기회 평등을 보장함으로써 사회 이동성을 증가시키는 지속가능한 사회는 요원해집니다.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면서 부모로부터 아이가 방치될 경우 이웃이, 공동체가, 국가가 조금이라도 채워 줄 수 있다면 어떨까 고민해 봤습니다.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사람에 대한 투자, 사람 중심 경제는 개인뿐 아니라 각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고민해야 할 진정한 휴먼뉴딜이 아닐까요.

– 글: 김창민 대안연구센터 부센터장 [email protected]

목, 2020/09/2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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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연의 예산언박싱’은 나라살림연구소 신입연구원이 예산의 세계에 발을 들이며 겪은 경험, 예산에 대한 생각 등을 다루는 연재글입니다.

 

예산은 내 일상과 거리가 먼, 정부의 돈 그러니까 내 돈이 아닌 남의 돈이었다. 정부가 쓰는 돈이 내 삶에 들어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예산에 관심이 없었다. 예산서를 볼 줄도 몰랐고, 예산 관련 뉴스를 봐도 당최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냥 제자리걸음인 월급 명세서를 보면서 막연히 불안한 미래를 걱정했다.

  

예산을 알게 되면서, 그러니까 내 지갑에서 나간 세금이 예산으로 편성돼 다시 내 발앞까지 오게 되는 과정을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게 되면서 불안이 조금씩 사라졌다. 긴급재난지원금만 예산인 것은 아니었다. 예산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내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정부는 버스 운행에 돈을 엄청 쓴다던데 내가 타는 버스는 왜 꾸불꾸불 길을 돌아갈까?’, ‘보도블럭 바꾸는 대신 다른 일에 예산을 쓸 수는 없을까?’, ‘내가 바라는 정책은 하나같이 예산이 부족해서 못한다는데 사실일까?’

 

예산을 알면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있다. 예산을 알기 전과 후의 세상은 달라도 많이 달랐다. 나는 예산을 알아가는 일이 흥미롭고 또 보람이 느껴져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진로를 바꿨다. 그렇게 예산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예산의 세계에 발을 들인 자가 맨 처음 할 일은 무엇인가. 바로 예산서를 보는 일이다. 그런데 예산서를 찾는 일부터 난관이다.

 

우리 지역 예산서, 도대체 어디서 볼 수 있을까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예산서는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어릴 때 학교 운동장에서, 아파트 주차장에서, 골목길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것처럼 우리 지역 예산서 찾기가 무척 어려웠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서울시의 예산서와 결산서를 찾기 위해 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홈페이지 첫 화면 우측 하단 ‘자주 찾은 서비스’에 ‘서울재정포털’이 있다. 이럴수가! 여기에는 서울시가 작성한 예산서, 결산서 파일이 없다. 한참을 헤맨 끝에 다시 서울시청 홈페이지로 돌아와 검색창에 예산서를 검색했더니 연도별 예산서가 뜬다.

 


출처: 서울시 홈페이지 캡처


 

예산서와 결산서는 서울시 홈페이지-분야별정보-행정-자료실(https://news.seoul.go.kr/gov/archives/category/govdata_c1/budget_c1/data_budget_c1/data_document_budget-n2)에 있었다. 시작하자마자 포기할 뻔 했다. 예산서와 결산서의 접근성은 왜 이렇게 불편한지 모르겠다.

 

서울시가 ‘특별시’라서 숨바꼭질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면, 다른 지자체는 다를지도 모른다. 태어나고 자란 전남 순천시의 예산서와 결산서를 찾아보기로 했다. 순천시청 홈페이지 첫 화면에서 정보공개-재정정보(https://www.suncheon.go.kr/kr/open/0006/0014/0018/0001/)에 들어가 예산서와 결산서를 바로 볼 수 있다. 대개 시군구 홈페이지 구성은 비슷하므로,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면 재정정보에서 예산서와 결산서를 발견할 수 있다.

 

예산서, 결산서 외에 재정공시를 통해 재정운용 상태를 볼 수 있다. 재정공시는 주민들이 보다 쉽게 예산과 결산을 이해할 수 있도록 예산서와 결산서를 기준으로 요약 정리한 재정공개제도다. 서울시 재정공시는 서울시 홈페이지-분야별정보-행정-세금·재정-재정운영공시(https://news.seoul.go.kr/gov/archives/category/tax-news_c1/data_year_finance-n2)에서 찾을 수 있다.

 

 

출처: 지방재정365 캡처

 

 

이렇게 고생해서 예산서를 다운받았는데, 실은 예산서를 찾는 지름길이 따로 있었다.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지방재정365(https://lofin.mois.go.kr/portal/main.do)를 활용하는 것이다. 지방재정365 홈페이지-지방재정 전문통계-예산-우리 지자체 예산에 들어가면 보다 쉽게 자료를 찾을 수 있다. 이보다 더 쉬운 방법도 있다. 구글에서 ‘0000년 00시 예산서’를 검색하는 것이다.

세상에…

 

쉬운 길을 돌아가고, 시행착오는 겪는 일이야말로 초심자의 권리(?)다. 예산서를 찾아 온라인 공간을 헤맸을 뿐인데 10km 마라톤을 한 것처럼 피로가 몰려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사는 지자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예산서, 결산서, 재정공시를 찾고 다운받았다. 시작이 반이라고, 엄청난 일을 해냈다.

 

그동안 우리가 알았던 경제는 반쪽짜리라고 한다. 예산을 아는 것은 그동안 경제에서 소외됐던 나머지 반쪽짜리 경제를 아는 것과 마찬가지다. 예산을 접하고 매일매일이 새롭게 느껴진다. 오늘 같은 날들이 켜켜이 쌓이면, 언젠가 예산이 내 발앞까지 올 거라고 상상해본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우리 동네 예산, 내 삶과 연결돼 있는 예산을 읽고 예산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그런 날.

 

 

 

 

용어 설명

예산
: 일정기간 동안의 재정수요와 이를 충당하는 재원을 추정하여 작성한 자치단체의 수입과 지출에 관한 계획 
결산: 예산과정의 마지막단계로 1회계연도의 세입세출예산의 집행실적을 확정된 계수로 표시하는 행위
재정공시: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지방재정법 60조에 따라 예산 또는 결산의 확정 또는 승인 후 2개원 이내에 예산서와 결산서를 기준으로 세입·세출예산의 운용상황 등을 공시하는 행위로, 주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재정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2006년 도입

출처: 지방재정365, 국가법령정보

화, 2020/12/0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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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이나 시청, 도청 등 지방정부의 활동과 정책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에게 가깝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정부의 대처로 공공기관의 정책과 조치가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일상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행정의 정책 결정 과정이 공론화를 통해 진행되면서 많은 이슈가 있었습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과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과정의 경우 정책 결정에 시민이 직접 참여한 사례로 언론을 통해 크게 조명받았던 일입니다. 우리 생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정책 방향에 시민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요?

행정에서도 절실한 시민참여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 국가, 정부의 역할에 대해 드러난 문제의식을 살펴보겠습니다. 오일쇼크와 재정위기 상황에 정부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관료제의 경직성과 비효율성을 지적하는 문제의식이 나타났습니다. 후에 ‘신공공관리론’으로 불린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 운동 하에 공공서비스에 시장경쟁구조가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시민은 과거 ‘수혜자’에서 ‘소비자’로 인식되기 시작한거죠.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정부 지출 삭감, 규제 완화, 공무원 인원 감축 등으로 지방정부의 운영과 기능이 취약해집니다. 이 과정에서 공공서비스의 민영화로 복지 사각지대 등 우수한 소비자가 아닌 시민은 소외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90년대 들어서는 시민의식이 고조되는 사회현상 속에서 정부와 민간(기업), 시민사회 간의 네트워크를 통한 새로운 거버넌스가 등장합니다. 고객 관점으로 치부되던 시민이 공공서비스 결정에 참여하고, 공공의 과제 해결에 시민참여가 중요해지는 계기가 발생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IMF로 인한 경제 위기 상황이 시민의 참여로 극복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시민의식 또한 지속해서 성장하면서 정부와 민간(기업), 시민사회가 협력하는 구조가 형성되었습니다. 최근에는 ‘환경파괴로 인한 기후위기’, ‘경제적 빈곤 및 삶의 질 저하’, ‘사회적 참사에 대한 국가 안전망 부재’ 등 정부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복잡한 사회문제가 발생하면서 시민참여를 바탕으로 한 협력적 거버넌스, 즉 ‘협치’를 통해 대응하는 방식이 자리잡게 된 것이죠.

협치? 거버넌스? 숙의로!

숙의의 사전적 의미
‘숙의(熟議, Deliberation)’
“깊이 생각하여 충분히 논의함”, 또는 “한 주제에 대한 충분하고 깊은 고민”, “어떤 사건을 깊이 있게 고민하는 정규적인 토론”

지역주민 간 또는 이익집단 간 갈등을 해결하거나, 경제위기 극복과 삶의 질 향상과 같은 경제적, 사회적 과제를 극복하는 등 여러 상황 속에서 시민참여 방법으로 숙의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숙의를 활용하는 목적으로는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 모든 사람들의 상호작용과 함께 합의까지 도달하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요. Ecran과 Dryzek의 숙의민주주의 연구에서는 합의까지 도달하지는 않더라도 동등한 권리를 갖고 참여하는 사람들 간의 상호 이해를 추구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즉, 숙의민주주의는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숙의 과정을 통해 시민 스스로 소통과 참여에 대한 학습과 의사결정의 합리성과 질을 높여 공동의 이익을 창조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됩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숙의는 시민의 권리와 책임에 바탕을 둔 논의를 촉진하여 정부와 소수의 전문가 위주가 아닌 시민의 주도로 시민주권의 시대를 열어가는데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시민주도가 강화되고, 시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며,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논의할 수 있도록 하는 숙의의 기능은 “시민의 직접적인 참여로 의사결정과정의 정당성을 찾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과거 권한을 가진 소수 정치인의 결정에 의하거나, 법적, 제도적 절차만으로는 더 이상 정책 결정의 정당성을 얻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숙의 방법을 소개합니다.

행정의 입장에서 시민의 직접적인 참여로 의사결정과정의 정당성을 찾아가는 과정인 숙의 방법에는 여러 유형이 있고 각 유형마다 나름의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습니다. 기본 구성은 ⓵기획·준비 단계(의제선정/학습, 숙의 유형 선택 및 과정 설계), ⓶진행 단계(참여자 모집 및 선정, 정보 공유 및 학습, 토의·토론), ⓷마무리 단계(결론 도출 및 공표, 피드백 & 모니터링)로 볼 수 있습니다.

행정이 숙의 방법을 활용하는 목적으로는 ▲특정 정책에 대한 문제해결, ▲정책구상, ▲비전 제시, ▲의제 선정, ▲사회적 논의, ▲우선순위 설정, ▲구체적 대안의 선택 등으로 나눌 수 있고, 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숙의 방법으로는 ⓵시민배심원제, ⓶합의회의, ⓷시나리오 워크숍, ⓸공론조사, ⓹타운홀 미팅 방법 등이 있습니다.

최근 희망제작소에서는 시민참여, 직접민주주의 실현을 고민하고 있는 춘천시와의 협업으로 숙의과정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앞으로 다섯 번의 연재를 통해 다양하게 정리된 주요 숙의 방법에 대한 설명과 사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숙의 방법은 시민배심원제로 음식물자원화시설 건립을 추진한 울산 북구의 사례입니다.

화, 2020/03/03-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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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운영에 시민이 주도하는 시대

2000년대에 들어 ‘삶의 질 저하’, ‘경제적 불평등’ 등의 복잡한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한 중앙과 지방정부 차원의 대처에서 시민의 참여가 바탕이 되는 협력적 거버넌스, ‘협치’가 확산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서울시는 ‘혁신과 협치’를 시정(市政)의 핵심가치로 설정하고, 주민참여예산제, 청년자치정부, 민주주의서울 등의 협치 정책을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협치 사례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의견이 정책이 되어 구체적으로 실행되는 단계까지 이어지지는 못한다는 한계가 지적되었습니다. 특히 공론장과 숙의 과정이 취약하여 실제로는 협치친화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에 서울시뿐만 아니라 춘천시, 광주광역시 등 여러 지방정부 단위에서 의제 발굴부터 실행, 평가에 이르는 전 단계에 시민주도의 설계를 강화하고, 시민이 참여하는 숙의를 늘리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협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민주도로 공공서비스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하는 노력이 필요해진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의 논의를 촉진하는 숙의

시민주도 과정에서 숙의는 매우 중요합니다. 숙의는 “사전적으로 깊이 생각하여 충분히 논의한다”는 뜻을 갖는데, 정부나 전문가 위주의 논의가 아닌, 시민의 권리와 책임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의 논의를 촉진한다는 점이 있습니다.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찾고, 지역에너지계획을 수립하며, 공공시설 운영을 개선하는 등 지역의 다양한 의사결정과정에서도 숙의가 대세입니다. 지방정부에서 진행한 숙의는 ‘시민배심원제’, ‘공론조사’, ‘타운홀미팅’ 등 다양한 숙의 유형만큼 사례 또한 다양합니다. 숙의가 지방정책 설계의 필수인 지금, 희망제작소는 춘천시의 정책을 집행하는 공무원을 위한 숙의매뉴얼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시민배심원제는 사법에서 사용되는 배심제도를 특정 정책과 의사결정에 활용한 대표적인 숙의 유형입니다. 일반적으로 배심원단은 12~24명의 무작위로 선발된 일반 시민들로 구성되며, 배심원단에게는 주최 측으로부터 해당 의제와 관련한 여러 관점의 정보가 제공(학습)됩니다. 특히, 관련 전문가들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얻으면서 의제에 대한 견해를 정립해 가는 것이 이 숙의 유형이 가지는 특징 중 하나입니다. 최종적으로 심의를 거친 결과를 보고서 형식으로 제시하거나 권고안을 제시하게 되며, 실행에 옮기거나 동의하지 않는 경우 합당한 이유를 설명하여 응답해야 합니다. 다른 의사결정 프로세스와 연결될 때, 구체적 조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유형입니다. 국내에서는 2004년 울산광역시 북구에서 시민배심원제를 도입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울산 북구, 음식물자원화시설 건립 과정, 시민배심원제

2005년부터 음식물쓰레기를 직매립하는 것이 금지되는 상황에서 울산 북구청은 지렁이사육퇴비방식으로 운영되는 음식물자원화시설을 중산동에 건립하기로 합니다. 그러나 이미 음식물자원화 시설 철회 입장을 밝힌 적이 있어, 결정이 번복된 것이었고, 주민과 북구청, 시공사 간의 갈등이 법적인 문제로까지 이어지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중산동 주민들은 등교거부운동을 벌이며 북구청에 항의했으나, 이로 인해 주민반대운동은 님비로 규정되어, 주민들에게 불리한 여론이 형성되었습니다. 주민들의 반대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북구청장은 공사를 잠정 중단하고, 합의를 위해 ‘시민배심원제’를 주민 측에 제안합니다.

중산동 지역 주민들이 구성한 비상대책위원회는 시민배심원제가 아닌 당사자 주민을 중심으로 주민투표를 진행할 것을 요구했으나, 주민에게 불리한 여론과 비대위 내부 논란 끝에 시민배심원제를 수용하게 됩니다.

시민배심원제를 위해 먼저 북구청과 주민대표 양측에서 1명씩의 간사를 포함한 실무지원팀을 구성하고, 울산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 39명, 성직자 6명으로 총 45명의 시민배심원이 구성됩니다.

시민배심원단의 활동은 세 가지 과정으로 나뉩니다. 첫째는 ‘운영과정’으로 배심원단 운영과 일정, 의사결정 방식 등을 논의하는 과정입니다. 둘째는 ‘숙의(심의)과정’으로 쟁점별 진위 파악을 위한 양측진술, 공청회, 견학, 쟁점토론을 진행합니다. 셋째는 ‘조정과정’으로 갈등이 첨예한 사항인 만큼 돌발상황으로 인한 양측의 갈등을 중재하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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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김소연(2006)

최종결정은 투표로 진행되었습니다. 투표 결과 성원 41명 중 ‘건설’은 31표, ‘건설중단’은 9표를 받아, ‘음식물자원화 시설을 건립하라’는 시민배심원단의 최종 권고안이 나오게 됩니다.

[관련기사] 배심원단, “음식물자원화시설 건립하라”, 포커스 데일리. 2004.

시민배심원제 활동에 대한 상반된 평가

울산 북구에서 진행한 시민배심원 사례는 이해관계자에 따라 매우 상반된 평가가 존재합니다. 먼저 정부와 언론, 시민단체는 시민배심원제를 주민과 함께하는 새로운 거버넌스를 구축한 지방자치 혁신의 우수사례로 평가합니다. 시민배심원제 이후 실제로 주민 구속, 등교거부, 공사장 점거 등 첨예한 갈등이 멈췄고, 시민배심원이 도출한 결과를 주민과 행정 모두가 수용하였기 때문에 언론과 시민단체에서는 북구의 시민배심원제를 갈등해결과 님비극복의 사례로 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음식물자원화 시설로 인해 생활에 큰 변화가 예상되는 중산동 주민의 평가는 엇갈립니다. 주민반대운동이 너무 쉽게 님비로 규정돼 버리는 불리한 상황 속에서 북구청의 배심원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고, 주민 지도부가 구속되어 시민배심원제에 대한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시민배심원제를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실제로 주민 측의 경우 변호사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모금을 해야 했고, 지도부의 구속으로 주민의 의견을 수렴해 자료를 준비할 여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편 울산 북구 시민배심원제를 숙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제기됩니다. 먼저 시민배심원제가 민관의 갈등이 막바지에 몰린 상황에서 도입됐기 때문에 ‘시민배심원제’라는 숙의 모델이 당사자 간의 자유로운 상황 속에서 합의될 수 없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시민배심원들이 숙의과정 내내 결정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린 점에서 이번 사례가 여러 가능성을 열어둔 논의라기보다는 갈등 수습에 주안점을 둔 과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공공갈등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주민과의 갈등 해결을 유도하기 위해 숙의 모델을 도입한 취지였으나, 숙의가 너무 뒤늦게 적용되거나, 당사자들의 준비 과정이 충분치 않음으로 인한 한계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시민의 입장에서 숙의가 공권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인식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숙의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숙의 활용을 위한 동기부여가 중요할 것입니다. 숙의 과정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경험이 사회적으로 축척되어 지방자치에서도 시민주도의 정책결정이 선한 영향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 글: 이규홍 대안연구센터 연구원 | [email protected]

수, 2020/03/04-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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