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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언론-정치의 ‘내부자’,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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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언론-정치의 ‘내부자’,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익명 (미확인) | 수, 2017/04/05- 13:58

“공자도 오십이 되어서야 지천명(知天命), 그 뜻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공자가 그 뜻을 실천한 것은 그로부터도 18년이 지난 나이 68세 때입니다.”

지난해 2월 홍석현 중앙일보·JTBC 전 회장이 포스텍 명예공학박사 수락연설에서 한 말이다.

그는 68살이 되는 올해 3월18일 돌연 회장직을 내놓았다. 1994년 중앙일보 사장으로 취임한 뒤 23년 동안 중앙일보와 계열사를 이끌어온 그의 갑작스러운 사퇴는 대선을 앞둔 정국과 맞물리며 ‘여의도’와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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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최근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대선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껏 자본-언론-정치의 내부자로 살아온 그가 스스로 대통령 권력까지 손에 쥐겠다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그가 일찍부터 ‘정치’에 대한 열망을 보여왔기에 ‘대선 출마’와 ‘킹메이커’라는 꼬리표가 자동으로 따라붙는 상황이다. 그는 현재 대선 출마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회장직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중앙선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내 인생을 이해해야 된다. 내가 나라 걱정을 하게 된 건 오래됐다”고 말했다.

대선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는 숨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의 날개짓이 ‘장미대선’에서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을까.

신문업계의 ‘계몽군주’

홍진기 중앙일보 전 회장의 장남으로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난 홍 전 회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스탠퍼드대학(원)에서 산업공학, 경제학을 전공했다. 유학 뒤 1977년부터 1983년까지는 월드뱅크 이코노미스트로 일했다.

눈에 띄는 것은 귀국 뒤 한국에서 첫걸음을 공직으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1983~1985년 사이 전두환 정부에서 강경식 재무장관 비서관, 강경식 대통령 비서실장 (특별) 보좌관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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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의 부친 홍진기 전 내무부장관은 4. 19 혁명 당시,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해 계엄령을 선포하도록 했다. 이 일로 그는 구속돼 1961년 12월 혁명재판소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왼쪽 사진 첫번째 인물). 그러나 그는 1963년 8월, 박정희로부터 특별사면을 받는데, 여기에 이병철 전 삼성회장의 역할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그는 이병철과 손잡고 1965년 중앙일보를 창간한다. 창간 당시 윤전기를 살펴보는 이병철 회장(오른쪽 사진, 오른쪽 두번째)과 그것을 지켜보는 홍진기 전 장관(왼쪽 두 번째).

비서관, 특별 보좌관이라는 직책 자체가 아버지 홍진기 당시 중앙일보 회장의 후광 없이는 맡을 수 없는 자리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때부터 홍 전 회장의 정치적 열망이 시작됐다는 시각도 있다.

짧은 청와대 생활 뒤 그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2년간 생활했지만, 결국 아버지를 따라 기업인과 언론사 사주의 길을 걷게 된다. 1986년 아버지 작고 뒤 삼성코닝 상무로 기업에 발을 들인 그는 1994년 중앙일보 사장에 오르며 최근까지 중앙일보 회장 겸 발행인 등을 맡아 왔다.

그는 언론사 최고경영자(CEO)로서 일간지 혁신을 이끌어 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사장 취임 뒤 한국 일간지 가운데 처음으로 일반/경제/스포츠 등 섹션을 분리한 신문을 발행하고, 가로쓰기를 도입했다. <중앙선데이> 일요신문을 창간하고, 한국 일간지 최초로 판형을 베를리너판으로 변경하는 등 언론의 혁신을 이끌어 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리더십에 ‘계몽군주’라는 비판과 찬사가 엇갈렸다. 이에 그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아시아 지역 출신 최초로 세계신문인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삼성X파일’로 주미대사 중도하차

그는 2005년 2월 노무현 정부에서 주미대사로 임명되며 본격적으로 ‘오래된 꿈’인 정계 진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해 7월 터진 ‘삼성 X 파일 사건’때문에 대사직에서 물러났다. 삼성 X파일은 당시 이학수 삼성구조조정 본부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 사이의 대화를 담은 녹취록이 공개되며 세상에 드러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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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삼성X파일’ 사건에 관련돼 검찰에 출두한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이 일로 그는 주미대사에서 중도 하차해야 했고, 아시아 몫으로 예정됐던 UN사무총장 자리는 반기문에게 돌아갔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삼성이 1997년 이회창 대선 후보와 검찰에 돈을 뿌렸다는 등의 대화 내용이 드러나며 삼성의 비자금이 불법 정치자금에 쓰였다는 의혹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검찰 조사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았지만 삼성 X파일은 ‘정치인 홍석현’의 꿈에 제동을 걸었다. 당시 유엔 사무총장직에 거론되던 그는 이 사건으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당선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정치권은 당시 그가 주미대사 자리를 디딤돌 삼아 유엔 사무총장 당선, 대권 도전의 ‘큰 그림’을 그렸다고 보고 있다.

삼성 X파일 사건에서 보듯이 삼성그룹은 그의 ‘자산’인 동시에 ‘그늘’이기도 하다. 홍 전 회장의 누나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이다. 중앙일보는 과거 대주주였던 이 회장에게서 처남인 홍 전 회장에게 넘어갔다.

재벌이 정치권력까지?…곱지 않은 시선

역설적인 사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까지 가는 과정에서 JTBC ‘최순실 태블릿PC’보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홍 전 회장은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 부회장의 구속은) 피가 통한 조카인데 당연히 가슴이 아프다”고 했지만, 탄핵정국에서 손석희 앵커와 JTBC가 보여준 영향력은 그의 인지도를 다시 높인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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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홍석현과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정운찬 전 총장의 회동이 알려지면서 구설이 끊이질 않고 있다. 각자 대권꿈을 꾼다는 점이 이들 3인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이들의 연대가 이번 대선에 별다른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지난해부터 그는 꾸준히 자신의 ‘대망’을 드러내왔다. 홍 전 회장은 지난해 경희대에서 강연한 내용을 묶은 <꿈꾸는 젊은이, 매력국가의 길>과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는 에세이 두권의 책을 냈다.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은 지난해 자신의 저서를 통해 ‘홍석현 대망론’을 언급하며 부채질을 했다. 또 그가 회장직을 내놓기 전 중앙일보는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코리아’를 기획하기도 했다.

그는 <중앙선데이>에 “촛불이 내세운 강력한 메시지가 ‘이게 나라냐’였다면 ‘이게 나라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지 않나. 내가 책임감을 느낀 거다.(중략) 촛불혁명이 명예혁명이 되려면 탄핵 이후 새로운 나라가 태어나야 한다. 시스템적으로도 그렇고, 관행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그렇다. 평소 나라 걱정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까 대선 출마설까지 나온 게 아닐까”고 말했다. 모두 지금의 행보와 궤를 같이 한다.

홍 전 회장이 이사로 참여하는 민간 싱크탱크 ‘여시재’까지 그의 대망론과 연관돼 주목받고 있다.

여시재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이사장을,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총괄부원장을 맡고 있는데 참여인사들 대부분 홍 전 회장과 친분이 있는 인물들이다. 물론 여시재는 이러한 시선에 선을 긋고 있다.

이러다보니 홍 전 회장을 둘러싼 ‘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회장직 사퇴 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 정운찬 전 국무총리, 김종인 민주당 전 비대위 대표를 잇달아 만나자 “’반문재인 연대’를 구축하는 것 아니냐”부터 참여정부 출신 이광재 전 지사를 연결고리로 ‘문재인-홍석현 연대설’까지, 극과 극의 관측이 나오고 있다.

홍 전 회장이 새 정권의 총리나, 차기를 노린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분명한 건 홍 전 회장의 걸음이 빨라질수록, 그를 향해 제기된 오래된 질문은 끈질기게 발목을 잡을 것이다.

È«¼®Çö Áß¾ÓÀϺ¸ »çÀåÀÌ º¸±¤±×·ì Å»¼¼»ç°Ç¿¡ ´ëÇÑ °ËÂûÁ¶»ç¸¦ ¹Þ±â À§ÇØ 30ÀÏ ¿ÀÀü ´ë°Ë¿¡ ÃâµÎÇϰí ÀÖ´Ù. ÇѰܷ¹21 / 1999.9.30
1999년 9월 30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보광그룹 탈세사건으로 서초동 대검찰청에 출두하던 순간, 기다리고 있던 중앙일보 기자들이 “홍 사장님, 힘내세요”라고 소리쳤다. 한국 언론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순간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그가 1999년 보광그룹 탈세 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으러 나갈 때 중앙일보 기자 수십명이 “사장님 힘내세요”라고 한 일화는 아직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삼성 X파일 사건 역시 그의 오점이다. 자본-언론-정치 권력의 ‘내부자’로서 살아온 그가 과연 국정 운영의 중요한 역할을 맡아 우리 사회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냐는 질문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제대로 빠져나오지 못한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이 질문은 앞으로도 계속 유효할 것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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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대부분 주요 언론들이 미국중간선거를 보도하면서 민주당이 하원을 되찾고, 공화당이 상원의 다수석을 선방하였다고 헤드라인을 뽑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의 승리자들은, 기득권에 안주하면서 무기력해진 민주당의 구당권파가 하원을 장악한 것을 뛰어 넘어서, 수많은 화제거리를 만들어 내며 하원의원에 당선된 다양한 인종의 여성들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여성 후보자들의 괄목할 만한 진출이다. 잠정적 결과에 따라 최소한 108명의 여성들이 의회에 선출되거나 재선출되었다. 올해 재선에 대상이 아닌 10명의 여성 상원의원을 포함해 총 118명의 여성들이 내년 1월에 하원 혹은 상원에서 일할 예정이며, 이는 현재 107명의 여성보다 많은 숫자이다. 아래의 기사는 연방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유색 여성들의 투쟁 스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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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주의 연방하원의원으로 당선된 민주당 소속 Ilhan Omar의 연설장면

민주당은 하원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되찾았고, 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민주당의 내부는 미국을 갈라놓은 격차를 좁히기 위해 특히 최선을 다할 여성 지도자들이 새로운 핵심을 형성하게 될 것입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부유한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로 부족한 것은 자원의 부족이 아니라 정치적 용기와 도덕적 상상력의 결여입니다.”
—Rep. Alexandria Ocasio-Cortez (민주당, 뉴욕시)

여기 프로필에 나와 있는 여섯 명의 승리를 거둔 후보자들은 많은 방면에서 주목할만합니다. 선구자의 역할을 하면서 다양한 인종의 여성들은 종종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끄집어내 유권자들의 마음을 빼앗고 설득해 자기편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들 각지는 불평등을 뒤집는 것에 중점을 두면서 대담한 사회경제적 정의와 이에 관련된 아젠다를 제출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뉴멕시코 1지구의 Deb Haaland(뎁 할랜드)는 최초로 의회에 진출한 두 명의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 중 한 명이 될 것입니다(캔자스 대표로 당선된 Sharice Davids과 더불어). Haaland는 라구나 푸에블로 인디언 부족의 구성원이자 뉴멕시코주 민주당원이기 이전에 원주민의 수장이었습니다.

Haaland는 선거 캠페인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에서 그녀가 본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서는 직설적으로 말했습니다. “미국은 파산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사회기반시설을 통해 부자가 된 억만장자들과 대기업들에 의해 약탈당했고, 그들은 노동자들이 비용을 더 부담하기를 요구합니다. 이제 더 이상은 안됩니다!”

억만장자들과 기업들이 사회에 공정한 기여를 하도록 하기 위해, Haaland는 트럼프 공화당 세금 개혁 폐지를 큰 소리로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개인 소득세와 법인이윤세가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녀는 또한 금융 시장 거래시 적정한 세금부과와 보다 강력한 유산(상속)세의 도입을 촉구합니다. Haaland는 또한 워싱턴에서 트럼프의 혐오스러운 이민 정책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정부의 이주민 가족들의 격리에 대해, Haaland는 자신의 가족 경험을 끄집어냈습니다. 그녀가 8살이었을 때 그녀의 할머니는 부족을 동화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인 인디언기숙학교에 강제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일한 오마르는 미네소타주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어 의회를 떠나는 키노 엘리슨의 후임으로, 현재 공석인 미네소타 5선거구에서 당선되어 의회에 진출하는 최초의 소말리아계 여성이 됩니다. 선거캠페인 내내, 불평등이란 단어가 오마르의 메시지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녀는 “우리 나라의 가장 부유한 사람들은 사람들이 계속 빈곤한 상태에 놓이게 하는 시스템을 통해 부를 축적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오마르의 경제적 정의에 대한 공약은 모든 의원후보들 중에서 가장 야심차고 상세한 공약들 중 하나였습니다. 예를 들어, 소득수준이 최하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그녀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누구에게나 시간당 15달러의 시급의 정규직 자리를 제공하는 연방(정부) 직업 보장 프로그램을 요구합니다.

최상층으로의 소득과 부가 집중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녀의 정책은 월스트리트 투기에 대한 세금 부과, 유산세(상속세)를 강화, 금융의 공정성을 위한 대형 은행 해체,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소득세 인상 등 다양합니다. 오마르는 또한 모든 사람들에 대한 메디케어(노인의료보험제도) 및 부채 없는 대학교에 대해서 지지했습니다.

이전에 난민이었던 그녀는 워싱턴에서 이민자의 권리와 경제적 정의에 대해 강력하게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슬람 공포증을 비난하기 위해 그녀는 미니애폴리스에서 아랍어 인사인 ” as-salam alai”로 승리연설을 시작했습니다.

Rashida Tlaib(라시다 틀레입)는 John Conyers가 오랫동안 차지해왔던 미시간 주 13선거구에 당선됨으로써 Omar와 더불어 의회에 입성하는 최초의 두 명의 무슬림 여성들 중 한 명이 됩니다. Tlaib는 주 입법자 및 변호사로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열성적으로 활동해 왔습니다. 선거 시작까지 단 1개월을 앞둔 상태에서, 그녀는 임금인상 및 노동조합 권리를 찾기 위한 ‘시급 15달러’ 투쟁 중 디트로이트 맥도날드 앞 거리를 막는 시위로 체포되었습니다. 여기 리스트에 있는 몇몇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Tlaib의 최우선 경제 과제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메디케어 서비스 제공, 부채 없는 대학교 실현, 부유층과 기업들에 대해 공정하게 세금 부과 등이 있습니다. 그녀는 이미 억만장자에 맞서서 이긴 적이 있습니다. 미시건주 고위 공무원들이 코크 형제가 소유한 공장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에 대한 주민들의 우려를 묵살하자, Tlaib는 코크 형제의 사유지에 무단 침입해 직접 관련 샘플을 수집했습니다. 그녀의 대담한 행동은 마침내 코크 형제로 하여금 디트로이트 강가에 있는 오염물질들을 제거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따르도록 만들었습니다.

Ayanna Pressley(아얀나 프레슬리)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 제 7선거구 연방 하원의원선거에서 당선됨으로써 매사추세츠 주를 대표하는 첫 흑인 여성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봄에 민주당 의원인 Mike Capuano를 꺾어 이변을 일으켰습니다. 이전에 보스턴 시의회에서 일해온 Ayanna Pressley는 워싱턴에서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적 평등, 부유층과의 임금 격차, 구조적 인종차별 및 총기 폭력”이라고 말했습니다. Pressley는 대중 교통 및 기타 공공 인프라구조의 개선의 강화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공평과세를 포함한 상세한 경제 정책 의제를 내세웠습니다. 월스트리트 개혁 측면에서, 그녀는 미국인 근로자들의 은퇴와 저축을 위태롭게 만드는 부정과 과실에 연루된 은행 임원에 대한 더욱 강력한 법적 처벌뿐만 아니라 상업 은행 서비스와 투자 은행을 서로 분리시키기 위한 새로운 글래스 스티걸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선거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그녀는 지리학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부유한 지역 및 가난한 지역의 사람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92세에서 60세 미만임을 지적하면서 그녀가 살고 있는 보스턴에서의 불평등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Pressley는 “이러한 종류의 차이들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체계적인 인종 차별주의를 강화시켜왔고, 소득 불평등을 증가시켜왔으며, 부유층을 유리하게 해왔던 수 십 년 동안의 정책의 산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Veronica Escobar(베로니카 에스코바르)는 Beto O’Rourke가 상원의원에 출마함으로써 공석이 된 텍사스 16 선거구에서 68%의 표를 얻어 당선되었습니다. 그녀는 휴스턴 출신의 Sylvia Garcia와 더불어 텍사스 주에서 두 명의 최초의 라틴계 하원들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이전 엘패소 카운티 판사였던 Escobar는 그녀의 고향인 미국-멕시코 국경 지역에서의 이민자 권리와 경제적 정의를 위한 투쟁에 온 힘을 쏟아왔습니다. “나는 매일 소득 불평등이 미치는 영향을 봐왔으며, 노동자 가족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을 보호하고, 제가 대변하는 가정들을 지원하는 세금개혁을 위해 싸우면서 우리의 망가진 경제체재를 바로잡기 위해서 싸울 것입니다 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Escobar가 선거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내세웠던 제안들 중 하나는 사회보장부담금의 상한선을 폐지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부유층 또한 해당 프로그램에 같은 비율로 지불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Alexandria-Ocasio Cortez(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는 지난 6월의 당내 예비선거에서 민주당 거물급인 10선의 백인 현역의원 조 크롤리를 제친 뒤, 78%의 투표를 얻어 뉴욕 14선거구에서 당선되어 새로운 하원의원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29살로서 역대 하원의원들 중 가장 어린 여성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선거까지 수개월 동안, Ocasio-Cortez는 다른 후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메디케어 서비스 제공, 부채 없는 대학교 실현, 기업 및 엄청난 부유층에 대한 세금 부과 인상등과 같은 대담하고 진보적인 제안사항들을 대세에 편입시키기 위해서 그녀의 정치적 스타 파워를 기꺼이 빌려줬습니다.

Ocasio-Cortez는 또한 화석 연료에서 100%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탄소세를 촉구했습니다. 그녀는 “현재 미국 경제는 이윤이 기후 변화를 야기시키는 대기업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선거캠페인을 진행하는 중에 말했습니다. “그런 방식은 소수의 부자들에게는 이득을 주지만, 우리 지역민들뿐만 아니라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주민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칩니다”라고 외칩니다.

Ocasio-Cortez는 화요일 밤 그녀의 수락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부유한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 부족한 것은 자원의 부족이 아니라 정치적 용기와 도덕적 상상력의 결여입니다.”

 

Sarah Anderson

Institute for Policy Studies에서 글로벌경제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으며,

Inequality.org의 공동편집자이다.

목, 2018/11/1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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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천하

이병한 선생님, 새해 벽두에 보내주신 개벽소식 잘 받아보았습니다. 마침 새해 첫 출근길이었습니다. 천지가 잠자고 있을 때 서울에서 보낸 편지를 천지가 깨어날 무렵에 열차 안에서 읽을 수 있다니, 새삼 물질개벽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첫날 일과를 마치고 대학 근처의 심야카페에 와서 답장을 쓰고 있습니다. 곧 자정이 되려 합니다.

편지를 일독하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논어』에 나오는 “후생가외”라는 말의 의미였습니다. 대개는 후학의 <실력>의 출중함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인데,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실력>보다도 <힘>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은 세대의 기상이 넘쳐 기성세대가 두려움을 느낄 정도라는 것이죠.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프레시안》에 쓰신 글의 부제가 “유학국가에서 동학국가로”여서 깜짝 놀랐는데, 이번에는 “개벽국가의 탄생”이라는 표현에 거듭 놀랐습니다.

제가 아무리 개벽파를 자칭한다고 해도 “동학국가”나 “개벽국가”와 같은 대담한 표현은 감히 쓰지 못합니다. 지식이나 지혜는 배울 수 있을지 몰라도 기개나 기운은 압도당하는 것이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정보가 공유되는 세상에서는 “역발산(力拔山) 기개세(氣蓋世)”와 같은 패기가 정말 중요하겠다 싶습니다. 지난 겨울에 소개해주신 하자센터의 ‘공공하는 청년들’에게서도 같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트럼프가 한반도의 대통령인양 나대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거리로 뛰쳐나와 남북평화를 노래하기 시작했더니 거짓말처럼 남북대화가 시작됐다는 그 용감한 십대들 말입니다. 평화의 뒤에는 용기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이런 패기는 젊은 세대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 있었던 원광대학교 시무식에서도 박맹수 신임총장께서 “개벽대학”이라는 표현을 쓰시더군요. 신임 이사장님도 신년사에서 같은 표현을 쓰셨고요. “원광대학이 다시 개벽하여 개벽대학으로 만들자”는 취지였습니다. 이 기세에도 제가 압도당했습니다. 두 분 다 저보다는 한 세대 위의 분들입니다. 이번에는 “선생가외”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원불교 이념으로 “개벽의 일꾼”을 길러내자고 개교한 원광대학교가 왜 그동안 “개벽대학”이라는 슬로건을 내놓지 못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혹시 뭔가에 억눌려 주저주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개화(서학)나 척사(유학)에 억눌려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원광대학교의 모습이 그동안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첫 번째 화두로 제기하신 중국의 ‘다시 천하’ 이야기,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제가 모르는 중국의 근황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득 “천하위공(天下爲公)”을 “천하이공(天下二公)”으로 바꿔야 하는 시점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이 스스로를 ‘공’(보편)이라고 자처하던 시대에서 미국이라는 새로운 ‘공’이 등장하게 되었으니까요. 고공(古公)과 신공(新公)의 상박(相搏)이라고나 할까요? 아마도 이 이공(二公) 사이에서, ‘척사’와 ‘개화’ 사이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서, 김태창선생님 식으로 말하면 ‘공공’을 열기 위해서, ‘개벽’을 들고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식의 근대의 시작이었고, 그래서 “한국 근대의 탄생”은 “한국 개벽의 탄생”으로 바꿔 말할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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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시 근대

사실 제가 ‘한국의 근대’라는 진부한 주제를 다시 꺼낼 수 있기까지에는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의 ‘인도-아프리카 연구’와 선생님의 『유라시아 견문』이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동학에서 원불교에 이르는 개벽종교만으로는 “개벽이 근대”이고, 그 근대는 “영성적 근대”였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아프리카가 그랬고, 인도가 그랬고, 이란이 그랬고, 러시아가 그랬고, 지금도 그렇게 “성속합작”을 하고 있다는 전문가와 견문가의 ‘증언’을 듣고 나서야 확신이 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선생님께서 작년 5월 1일에 원광대학교에서 발표하신 <나와 동북아시아/유라시아 연구>의 충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치 『장자』에 나오는 우물 안 개구리가 동해의 자라에게 바다이야기를 처음 듣고 어안이 벙벙해졌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동안 동아시아 전통과 서구 근대에 갇혀 있던 자신의 좁은 시야를 뼈저리게 반성하게 해준 자리였습니다. 30여 년 전에 서울에서 김용옥 선생님의 동양학 저서를 처음 접했을 때, 그리고 15년 전에 일본에서 Brook Ziporyn 교수의 노장 해석을 처음 접했을 때 이후로 받은 세 번째 지적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작년에 꼽은 최고의 글은 당연히 선생님의 견문록입니다. 특히 《프레시안》에 실린 두아라 교수와의 인터뷰, 1979년의 이슬람혁명 이야기, 그리고 《한울안신문》에 실린 인터뷰가 압권이었습니다. 세상이 ‘다시 개벽’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칭 ‘개벽파’라면서 원광대에 나타나셨을 때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습니다. 이제서야 비로소 우리의 치우친 근대사를 다시 쓸 수 있는 고수가 나타났구나 하는 희망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도 한국의 젊은이들 중에는 과거의 제가 그랬던처럼, 개화와 척사 사이에서, 서학과 유학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적어도 다음 세대에게만큼은 제가 걸었던 것과 같은 정신적 방황의 길을 반복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앞 세대를 원망하면서 살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디 잊혀진 ‘개벽사’를 복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돕겠습니다.

 

3. 부채와 치유

몇 년 전에 우연히 서울의 홍은동에 있는 대종교 총본사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총본사라고는 하지만 굽이굽이 비탈길을 올라가서 산꼭대기에 허름한 건물이 두어 채 있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더 놀란 것은 창고에 방치된 채 쌓여 있는 방대한 대종교 경전과 문헌들이었습니다. 그 귀중한 문서들이 전혀 관리되지 않은 채, 방 한 곳에 랩으로 쌓여 있었습니다. 도서목록도 없었고 자료정리도 전혀 안 되어 있었습니다. 자료실이나 박물관 같은 것은 엄두도 못내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럴 인력이나 재정도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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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중추였음에도 방치되어 있는 대종교 문헌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장서각이나 안동에 있는 국학진흥원에 비교하면 너무나도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유학 연구에는 나라에서 방대한 재정을 쏟아 부으면서 정작 항일독립투쟁을 가장 치열하게 전개했다고 하는 대종교에 대해서는 왜 저렇게 냉정하고 무심하나 싶었습니다. 신종교라는 편견이 있어서일까요? 이렇다 할 가문이 없어서일까요?

저는 비록 종교는 없지만 그냥 한국의 소중한 사상자원으로 느껴졌습니다. 가문을 떠나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주벌판의 혹한의 전장에서, 혹독한 감옥에서, 수련을 해가면서 써내려간 경전과 문헌들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대 규장각, 고전번역원, 안동의 국학진흥원… 온통 조선시대 유학을 연구하는 기관들뿐입니다. 이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한국학의 편중과 독식을 뼈저리게 절감하게 해준 사건이었습니다. 유학이 싫어서가 아니라 불균형은 불건강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오구라 기조 교수가 한국인들은 ‘우리’ 아니면 ‘남’이라고 했는데, 유학은 ‘우리’지만 대종교는 ‘남’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대종교는 비록 ‘개벽’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을지 몰라도 ‘개천(開天)’을 말했습니다. “새로운 하늘을 연다”는 개천은 “새로운 세상을 열자”는 개벽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종교도 큰 틀에서는 개벽종교이자 개벽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개벽이 ‘부채’로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전공에 상관없이 이 땅에서 인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통과의례처럼 연구해야 할 숙제 같은 느낌입니다.

개벽을 모르고서 한국의 근대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최근에 창작과 비평사에서 나온 『문명의 대전환을 공부하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근대성에 관해 토론한 책이었는데, 어느 선생님께서 “개벽파는 척사파의 일종이 아닌가요?”라는 발언을 하시더군요. 불과 몇 년 전의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개벽사상을 모르고서 한국의 근대를 논한다는 것은 계몽주의를 모르고서 서구의 근대를 논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한국의 근대에 관한 모든 논의는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모래성을 쌓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개벽의 역사는 어두운 과거, 패배한 역사라서 보기가 싫다고도 하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피해가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면서 개벽사를 읽어내려 가다 보면 거기에도 밝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부채’이자 동시에 ‘치유’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지적하신대로 중국의 지식인들이 천하를 고수하고, 일본의 위정자들이 개화에 기댈 때, 한국의 민중들은 개벽을 창안했기 때문입니다.

 

4. 개벽의 힘

지난 연말에 일본의 동북대학에서 ‘토착적 근대’를 주제로 한일공동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발표자로 참석하신 동경대학교의 이타가키 유조 명예교수께서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동학의 보편성을 설명하는 일이다”는 총평을 하셨습니다. 주최측인 동북대학의 가타오카 류 교수는 학술대회 후기에서 “한국의 동학이나 촛불혁명과 비견할만한 일본사상의 지하수맥을 발견하는 작업을 한국과의 공동연구의 형태로 지속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근대성을 주제로 몇 년 동안 지속적인 학술교류를 한 끝에 마침내 양국 연구자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졌음을 느꼈습니다. 비록 소수의 인원이었지만 해원상생의 가능성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이 “개벽의 힘”입니다.

일본 동북대학에서 열린 학술대회

학술대회가 끝나고 우리는 일본적 개벽의 흔적을 찾기 위해 하치노헤에 있는 안도 쇼에키 자료관을 방문했습니다. 18세기에 동북지방에서 활약한 안도 쇼에키는 극심한 기근에 3천여명의 농민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당시의 사무라이 지배층을 “성인의 이름을 빌려 무위도식하는 도둑놈들”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성인 중심의 지배질서를 정면으로 비판한 동아시아 최초의 사상가였습니다. 동학식으로 말하면 향벽설위에서 향아설위로의 전환을 시도했다고나 할 까요? 비록 동학처럼 세력화가 되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메이지시대에 농민들과 함께 공해반대 운동을 벌인 다나카 쇼조의 유적지를 찾아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지적하신대로 개벽의 가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서구 근대의 중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최근에 일본에서 활동하는 어느 중국인 연구자가 한국에 와서 “전 세계에서 서구 근대의 독을 가장 많이 먹은 나라는 한중일 삼국이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정곡을 찌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정작 중독이 된 당사자들은 이 말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아프리카 케냐의 작가 구기와 지 옹오는 “정신의 탈식민지화”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 디톡스 작업이야말로 개벽학에서 말하는 정신개벽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이 아직도 개벽이 여전히 진행중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으로 첫 번째 답신을 마치고자 합니다. 좋은 대화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금, 2019/01/1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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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UN내 인도주의 원조조정국 북한 담당관이 3월 06일자로 북한실태의 긴박함을 호소하는 성명서를 아래처럼 발표하였습니다. 아직도 UN이 요청한 지원할당금의 이행을 유보하고 있는.문재인 정부와 동포인 북한에 대한 일체의 인도적 지원행위를 취하지 않고 있는 대한적십자에게 일대의 각성과 결행을 요구하면서 시의적인 것을 감안하여 원문을 그대로 게재합니다.”


The Humanitarian Country Team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 is today releasing the 2019 Needs and Priorities Plan which calls for US$120 million to urgently provide life-saving aid to 3.8 million people in need of humanitarian assistance.

Humanitarian operations in DPRK are a critical lifeline for millions of people who are in a protracted cycle of humanitarian need. Women, children, the elderly, and people with disabilities are particularly vulnerable and are prioritized in this plan. For example, in the nutrition sector, 90 per cent of assistance goes to children under five and women. In the health sector, 92 per cent of assistance is directed to children under five and women. Their plight must not be forgotten.

An estimated 11 million people in DPRK lack sufficient nutritious food, clean drinking water or access to basic services like health and sanitation. Widespread undernutrition threatens an entire generation of children, with one in five children stunted due to chronic undernutrition. Coupled with limited healthcare and a lack of access to safe water and sanitation and hygiene services, children are also at risk of dying from curable diseases.

Most concerning is that the overall food production in 2018 was more than 9 per cent lower than 2017 and wasthe lowest production in more than a decade. This has resulted in a significant food gap. Without adequatefunding for life-saving activities as outlined in the Needs and Priorities Plan, we open the door to a potential deterioration of the humanitarian situation in DPRK and to increased malnutrition and illness. If we are to address and mitigate the impact of food insecurity on the most vulnerable in the country, including women and children, the time to act is now.

Despite these alarming facts, humanitarian activities in DPRK are critically underfunded and the needs of millions of mostly women and children have not been met. Last year’s Needs and Priorities Plan was only funded at 24 per cent, making it one of the lowest funded humanitarian plans in the world. A number of agencies have already been forced to scale back their programmes. Without adequate funding this year, the only option left for some agencies will be to close projects that serve as a life-line for millions of people.

Although Security Council sanctions clearly exempt humanitarian activities, life-saving programmes continue to face serious challenges and delays. While unintended consequences of sanctions persist, these delays have a real and tangible impact on the aid that we are able to provide to people who desperately need it. We must collectively fulfil our commitment under the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to “leave no one behind.”

Last year, we were only able reach one third of the people to whom we planned to provide humanitarian assistance. An estimated 1.4 million people didn’t get food assistance. Just under 800,000 people were not able to access essential health services. An estimated 190,000 kindergarten children and 85,000 acutely malnourished children did not get the nutrition support they needed. Beyond the numbers, the human cost of our inability to respond is unmeasurable.

In spite of these challenges, and thanks to the generosity of donors, the UN and International Non-Governmental Organisations (INGOs) were able to reach two million people with humanitarian aid. I have never failed to be impressed by the commitment and work of the humanitarian organisations in the country.

I have seen the impact of their programmes on the lives of ordinary people who they have supported by providing nutritious food, ensuring children are vaccinated, treating malnutrition and diseases, providing access to clean water, and supporting farmers to grow food despite the risk of natural disasters. I have also seen progress being made on the ground. We have made great strides in improving access and monitoring for humanitarian agencies in DPRK through continued, principled, and robust engagement with the Government. Humanitarian agencies rigorously monitor their programmes throughout the country to ensure assistance is reaching the most vulnerable. In 2018, 1,855 project site visits were conducted during 854 monitoring days by UN agencies and INGOs, covering all 11 provinces in the country.

Since 2012, there has also been an improvement in the child nutrition situation with rates of chronic undernutrition amongst children under five dropping from 28 per cent to 19 per cent. Yet my concern, and that of the entire humanitarian community, is that while the impact of stunting is irreversible, these overall improvements are not.

I appeal to all our potential donors and stakeholders to rise above political and security considerations, and to not allow them to get in the way of providing life-saving aid to the men, women, and children who need it the most. We simply cannot leave them behind.

목, 2019/03/0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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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문재인 정부의 재정개혁 특위는 제 역할을 못한 듯 조용히 해산되었다.

이는 사회적 혁신과 가치를 표방하고 출범했던 현정부가 실제적인 개혁을 포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언술적으로는 생애를 통한 복지 등 포용정책을 확대하겠다고 하지만 현재의 재정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대저 역사의 변혁을 이루는 데는 조세정책이 성공의 여부를 가름하였다.

선택적 양수론揚水論을 정책적 수단으로 삼아 인간중심의 시민경제를 실현하려면 당연히 시민권력의 정부가 주도하는 변혁적 조세정책이 변화의 핵심적 근간을 이루어야 한다. 사회경제 운용의 기본적 원칙으로 자유와 시장을 기반으로 하되 물적 토대의 재구성을 통한 확대와 혁신, 지구 생태와 환경의 지속적 순환, 개인의 존엄과 사회의 상생적 가치를 융합해 내기 위해서는 조세 정책에 사회철학을 담아내는 큰 변화의 밑그림이 필요하다.

우선 국가운용에 필요한 재정적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는 평면적이고 일차적 측면에서의 조세역할은 진부한 고전적인 주제로, 약한 정부를 지지하는 신자유주의적 경향과 강한 정부를 요구하는 케인즈적 입장이 충돌하면서 지난 수십 년 간 서구 정치의 논쟁적 내용을 장식하였다.

산업화의 진행으로 전통적 가족체계가 붕괴하고 독점적 자본주의가 성립되면서 풍요를 제공해 주던 시장이 수탈적 성격으로 전화되면서, 인간으로서 삶에 필요한 자원을 친밀성에 기초한 개인적 관계에 의존할 수 없으며 변화무쌍한 기업의 입지와 탐욕으로 변질된 시장에도 기대할 수 없는 조건에서, 정부가 일차적인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현대국가 존립의 일차적 근거이다.

이에 모든 국민들에게 인간답게 살아갈 최소적 조건을 제공하지 못하는 정부를 주권자로서 시민들은 당연히 거부해야 하고, 정히 불가피하다면 전복시켜야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인류의 희망으로 떠 올랐던 재분배 기능중심의 사민주의가 20세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오히려 기득권 체계의 유지강화라는 측면에 급급해지면서 제도적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났다.

따라서 미래국가의 모습은 사회안전망과 순환적 재분배라는 기능뿐만 아니라, 물적 기반의 재구성을 통하여 혁신적 역동을 꾀하면서 인간적 가치와 존엄 그리고 사회적 상생과 자유 조건의 확대가 모두에게 일상적이며 지속적으로 작동하도록, 제도적 교량 역할로서 조세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집행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민의 정부는 현존의 극심한 불평등과 불균형의 양극화를 해결하는 단초로서 산업과 경제운용 성과를 기간적 개념으로 파악하는 집중集中과 세대간을 넘어서 형성되는 축적蓄積이라는 두 개의 핵심적 문제점을 동시적으로 해결하는 정책적 방도를 준비하고 실천해야 한다.

 

일차적으로 양극화의 주범인 집중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살펴본다

부의 집중에 대응한 조세의 기본 방향은 누진적 세율의 적용이다. 우선 현재의 시장적 조건은 20 세기의 20 : 80 수준의 빈부격차를 훌쩍 넘어서 1 : 99 또는 0.1 : 9.9 : 99의 양상으로 악화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소득과 재산의 5 분위 배수를 기준으로 하는 통계자료는 연속적 추이분석 이외에는 전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다.

최상위 부자 및 공생하는 집단의 분포는 10 분위 배수의 통계와 최상위 1%가 갖는 부의 집중도의 자료가 제공되어야 비로소 현실 상황을 보다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국민순소득 중에 자본과 자산에 대한 배분율이 35-40 % 수준을 넘어서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단순한 경제활동 소득의 분포를 넘어서 자산소득을 포함한 종합소득 분석의 통계를 도입해야만 유의미한 판단 자료를 얻을 수 있다.

누진적 소득세율에 대해서는 우선 서구의 전후 골디락스 시대인 1946-1970대의 80-90% 고율 경험에 대한 연구가 전제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에 적용되고 있는 최고 소득세율은 과거 80년대 레이건 시대의 공급중심과 낙수효과의 이론을 제공했던 레퍼 교수의 주장(레퍼곡선 이론)에 따라 매우 낮은 40% 선에 머물고 있으나. 이제는 공급이 아니라 순환과 수요 중심으로 경제정책이 이동해야 하는 시점이며 더구나 낙수효과가 허구임이 드러난 현재에 이를 더 이상 고집해야 할 근거는 전혀 없다.

반대로 세계에서 가장 경쟁적인 사회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유럽의 경우에는 여전히 60% 이상을 적용하고 있으며, 불평등 연구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영국의 액킨슨 교수 역시 65%선이 불평등 완화의 최적 세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최근 미국 민주당의 민주사회주의그룹(DSA) 의원들이 주장하는 최고세율 70%에 대하여 뉴욕시립대 크루그만 교수는 확고한 지지를 표명하며 뉴욕타임즈 기고를 통해 세법 연구 대가들의 성과와 결론을 소개하면서 75%가 경제를 최적화하고 선순환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수치라고 밝히고 있다.

상기의 논쟁을 근거로 한국의 부의 편중이 세계 최악의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경제의 흐름과 운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기술적 범위에서 한국 소득세의 최고 누진 세율을 현재 40% 에서 70% 수준까지 상향 조정할 이유와 근거가 충분하다. 이에 더하여 한국경제의 고질적 적폐인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유세를 실제 거래가격 기준 삼아 누진적으로 1-2% 수준까지 올려야 한다. 이는 조세의 수입효과 이전에 상생하는 공동체적 규범과 원칙의 문제이다.

법인세의 경우, 소득세와 이중과세라는 논쟁점이 있고 이미 자본의 이동에 국적이 없어진 세계화의 시대에 진입하면서 단위국가라는 국경을 넘어서는 매우 조심스런 주제이며, 국제적 수준의 합의와 기준 설정이 절실하다. 유엔과 같이 국제조세 행정기구의 설립이 시급한 사안이기도 하다.

다만 자본 자유도가 싱가포르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높고 자본시장에서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량 상장기업들의 외국인 소유지분이 대단히 높은 한국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외국투자자에 대한 배당세율을 현재 5% 수준에서 가능하다면 10% 이상으로 높여야 하며, 외국인 지분이 집중된 우량 기업들에 대한 선제적인 과세를 위해서, 예건데 연간 세전 수익이 1조를 넘는 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추가적으로 과감히 높이는 방안도 연구해볼 만하다. 외국인 투자가 한국경제에 크게 기여하는 측면을 전적으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주식매매차익을 포함하여 발생한 자본 수익에 대해서는 당연히 합리적인 절차와 수준에서 적정한 과세를 하는 것이 국민경제적 주권의 입장에서도 옳다고 본다.

여기서 미래사회를 위하여 우리가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매우 중요한 영역이 있다. 인터넷 망을 공유기반으로 사용하는 거대 ICT기업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을 국제적으로 연대하여 연구해야 한다. 이러한 제안을 하는 배경으로 FAANG로 상징되는 ICT 기업중심으로 26명의 초거대 부자들이 인류의 절반에 해당하는 36억 명의 재산을 능가하는 현실을 이대로 지속적으로 허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마침 국내 재야 재정학자인 이동욱 선생이 정규직 일인당 세전 부가가치액 기준으로 강력한 누진세를 적용하자고 주창하고 나섰다. 그의 생각을 단순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강력한 누진적 법인세율을 정규직의 고용에 연동을 하면, 이윤이 많은 기업은 정규직 고용을 확대하여 보다 낮은 법인세율을 적용 받을 것인지, 아니면 정규직 고용을 확대하지 않고 높은 법인세율을 적용 받을 것인지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기업이 정규직의 고용을 확대하면 양질의 일자리가 증가하고, 노동소득이 증가하여 소득분배가 확대될 것이고, 기업이 정규직 고용을 확대하지 않는 경우에는 누진적 법인세가 증가할 것이므로 세수가 증가하고, 세수증가에 따른 세출증가를 통하여 소득분배를 확대하고 일자리를 더 만들 수가 있다. 법인세율을 정규직 1인당 평균부가가치(생산)를 기준으로 강력하게 누진화하면 좋은 일자리도 많이 생기고, 기업간 격차도 감소하고, 고용확대로 노동으로의 소득배분도 증가하고, 세수도 증가하여 소득분배는 획기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이동욱 선생의 정규직 고용과 연동한 누진적 법인세를 초과이윤을 실현하는 ICT 산업분야에 적용하자는 필자의 제안은 해당산업 분야가 인터넷 플랫홈을 무상으로 이용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이윤을 남기는 반면에 실제로 고용 기여의 효과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에 착목한 것이다.

예건데 해당 국가단위로 정규직 일인당 세전 수익이 1억을 넘는 경우 60%, 2억을 넘기는 경우 75%, 3억을 넘기는 경우 90%를 적용한다면, 그들이 이야기하고 주장하는 소위 공유경제가 단순히 플랫홈을 공동사용 하면서 형성된 편의성의 과잉 포장된 일면적 사고를 넘어서, 이에 발생하는 독점적인 초과수익을 강력한 조세정책을 통해 모두가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공공적 재원으로 환수하여야 비로소 참다운 공유재적 경제 질서가 실현될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이 때 발생하는 조세수입이 e-Flatform 공유재라는 기반에서 형성되는 것을 감안하여 모든 국민들의 기본소득 등 공공재적 재원으로 활용해 봄직하다. 인류 전체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마침 이 글을 통해서 이동욱 선생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추가적으로 세금공제 제도에 대하여 살펴보자면, 세액 공제 제도는 초기에 정부가 정책적으로 부실하고 사회적 기능이 미약하여 산업, 교육, 복지 문화 등 정책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좋은 취지로 도입되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정부의 제도와 정책들이 점차 완비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제 제도가 무절제하게 남발되고 과도하게 중첩되면서, 여기저기서 온갖 비리와 부패가 발생하고 보편적 원칙을 지켜야 할 세정 질서가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

이에 가급적 공제제도를 폐지하고 (모든 공제제도를 완벽하게 없애는 것이 최상이다), 법정 세율과 실제 부과되는 세액이 가능한 일치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이에 따라 추가 유입되는 재정의 여력을 각 부처별로 정책적 목표와 용처에 맞추어 산업과 과학기술, 복지와 노동, 교육과 문화 등 모든 영역에 구체적 사안과 실적에 따라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마땅하다.

상기에 언급한 내용들을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그래도 재원이 부족한 경우에는 필요한 만큼 소비세율을 높이는 등 과감한 조세개혁을 실시하여 조세를 포함한 국민부담율이 35% 수준에 이르러야 비로소 사회정책적으로 포용적 국가군에 진입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대를 넘어 형성되는 축적에 대한 대응으로 사회적 상속이라는 주제를 살펴본다

2018. 11월 국무총리 산하에서 주관한 사회적 상속에 관한 토론회가 있었다. 당시의 문제제기는 참신하였지만, 개념과 용어가 전적으로 잘못 설정되어 사회적 상속에 대해 오해와 혼선을 야기했다. 당시 내용을 유추하면 사회적 상속이라는 용어 대신에 사회적 기부라는 이름을 사용했어야 한다. 사회적 상속과 사회적 기부는 사람과 원숭이만큼이나 엄청난 질적인 차이를 가진다.

사회적 기부 또는 기부 자본주의는 기득권 또는 개인소유적 물적 기반과 자산의 상속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기존의 체제내적 개념에서 개인의 자비와 선의에 의해 일정 부분을 사회에 기부하도록 유도하여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체제가 양산해낸 불평등과 불균형에 대한 저항을 일부 완화하거나 현실모순에 대하여 부정적 판단을 둔감시키는 조치이다.

반면에 사회적 상속은 개인의 일생 동안 이루는 성취를 시장경제의 원리에 의해서 유도하고 활성화시키는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이러한 성취의 누적이 인연을 통한 타인 또는 혈통을 통한 가족들에게 상속되는 것을 원칙적으로 배제하고 종신 과정에서 이를 사회적으로 환원하는 개념이다. 해당 사회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물적 기반과 잠재력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개인의 일생 동안 사적 소유라는 동기를 부여하고 시장경제의 활력기제로 활용하되, 사적 소유의 기간을 개인의 일생으로 한정하고 사후에는 해당 사회의 소유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부와는 차원을 크게 달리하는 것이다.

마치 성서의 유대사회에서 이야기 하듯이 50년이 지나면 대희년이라는 관행을 통해 개인적인 부채를 면제하면서 사회적 물적 기반의 조건을 모두에게 공정한 새로운 출발점으로 되돌리는 과정과 유사하며, 또한 조선 초기 실시했던 과전제처럼 당시의 물적 기반인 토지를 사대부가 관직에 있을 때 보수(녹봉)의 대가로 할당하여 수조권을 부여하되, 사후에는 다시 국가에서 환수하는 것과 같은 원리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사회적 상속이라는 사상의 역사적 흐름에는 유토피아를 그린 토마스 무어에서 출발하여, 자연에서 나오는 일체의 자원은 모든 사람들의 소유에 해당한다는 토마스 페인의 생각, 팔랑주라는 산업생산의 공동체적 원리를 통해 현대적 사회보장제와 기본소득 개념을 제시한 샤를 푸리에, 케인즈와 함께한 소그룹 연구모임 막내였던 제임즈 미드 교수의 사회배당과 노동지분 개념 및 이를 지지하며 재산소유적 민주주의를 주장한 존 롤즈를 거쳐, 현재 하버드 대학의 종신교수인 로베르토 웅거에 이르러 구체적이며 실천적인 형태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잠깐 로베르토 웅거 교수(1947생)를 소개하면, 브라질의 명문가 출신으로 하버드 법대에 진학에 29세에 종신 교수직을 획득한 전설적인 인물로 미국의 비판법학계를 이끄는 주역의 한 사람이다. 오바마의 지도 교수로 후보시절 자문역을 맡았으나, 이후 오바마의 행보에 실망하여 공개적으로 지지를 철회하기도 하였으며, 브리질 룰라 대통령 시절에 전략기획장관을 맡아 우리에게 잘 알려진 볼사-파밀리아(빈민가정 생계지원 제도) 정책을 기획하고 책임진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사유재산권이라는 법적 제도는 합리적 논리나 사회적 필요에 의해서 구성되었다기 보다는 역사적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 관계가 얽히고 정치척 투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우연히 형성된 측면이 강하다고 판단하면서, 사유재산권은 서로 다른 성격의 다기한 권리들이 우연히 묶여 만들어진 일종의 다발이라고 파악한다. 권리의 다발로서 사유재산권을 획득, 소유, 사용, 배제, 이전 및 상속 등으로 다시 세분하여 각각의 성격을 분리하여 해석하고자 한다.

본 글의 주제인 증여와 상속이라는 항목에 대해, 이는 기득권 체계를 강화시키면서 변화와 미래를 향한 전진에 저항하는 장애물로 파악하면서, 타인증여와 가족상속 자체를 기본적으로 부정한다. 웅거의 구상에 따르면, 증여와 상속 자산을 사회적으로 귀속시키면서 이를 통상적인 국가 재정에서 분리하여 향후 세대를 위한 ‘사회상속계좌’로 전환하며 이를 위하여 가칭 ‘중앙투자기금’이라는 이름 설립하여 국민연기금처럼 운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증여와 상속의 재산을 사회로 귀속시켜 형성된 ‘중앙투자기금’의 목적과 용도는 기득권 체계에 묶여 있는 물적 기반을 해방시켜 모든 시민들의 일상적 경제활동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지원하는 시민 모두의 자산으로 재구성하여 활용하자는 것이다. 이때 ‘중앙투자기금’을 거점으로 시민경제적 원칙에 따라 전문적으로 자금의 배분역할을 진행할 전문적인 자산운용회사라는 중간단계를 거쳐 현장에서 일상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행위주체들, 개인 단체 법인 조합 연구조직 등에게 재원을 투입함으로써, 산업과 경제 활동 영역 전체를 세대에 거쳐 점차적으로 혁신 과정을 통해 재구성하고 확장하여 나가는 것이 그의 전망이다.

현재 생존해 있는 웅거는 여전히 문제의 수많은 저작들을 현재까지 저술하고 있으며, 한국에는 건국대에서 법철학을 가르치는 이재승 교수가 ‘주체의 각성 The Self Awakened’ 과 ‘민주주의를 넘어 Democracy Realized’를 번역 소개하였고, 중국청화대 교수인 추이 츠이안이 웅거의 여러 저술을 재편집한 ‘정치 Politics –운명을 거스르는 이론’ 등이 소개되어 있다.

핵심은 증여와 상속에 대한 적용세율로 역시 위에서 언급한 서구의 골디락스 시대에 적용되었던 최고 세율 80-90% 수준에서 검토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당시의 세율의 수준은 부의 축적에 대한 기여도 평가를 통해 합리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비록 시장경제의 활력과 확장이라는 동기를 부여하기 위하여 개인이 자유롭게 부를 취득하고 점유하고 소비하는 것을 인정하되, 개인이 획득한 부의 배경에는 역사적 흐름과 문화적 환경적 사회적 정치적 조건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러한 조건적 배경의 공헌도가 80-90% 이라면 개인의 몫은 10-20%라는 논리적 개념이 확고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한국의 현재 증여상속 세제는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산층의 경우 자녀에게 상속재산을 내리 물려주는 과정에 전혀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다만 1% 이내의 부유한 계층에 한하여 현존의 세법에 더하여 예건데 100억 규모가 넘는 증여와 상속 재산에 한하여 80-90%의 추가적인 누진 과세만 보태면 된다.

또 하나 반드시 지적해야 하는 사항은 기업상속 공제제도의 허구적 논리이다. 대한항공 일가의 행태에서 보듯이 개인과 가문의 일방적이고 전횡적인 경영지배는 군사적 또는 개발독재 시대에나 가능하며 추격이 가능했던 구시대의 산업전략으로 유효했던 측면이 있으나, 지식과 혁신이 주도하는 사회에서는 오히려 큰 장애물이 된다. 미래에는 기업 종사자 모두의 자발적 참여와 적극적 협업과 창의적 사고를 필요로 하고 경영과 소유에 있어서도 집단적 성격을 요구할 것이다. 이는 경영학에서도 이미 입증된 사실로 명령적 수직적 구조에서 수평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율체계 DAO (Diversified Autonomous Organization)로 전환하는 것이 정답이다. .

따라서 기업상속을 위한 공제제도는 구시대적 사고이며 기존의 기득권 유지를 위하여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을 포기하자는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유념할 것!). 당연히 전면 폐지되는 것이 합당하다. 다만, 현금과 포트폴리오 형태로 존재하는 상속과 증여 자산은 곧바로 과세의 시행이 가능한 반면, 개인적 소유의 고정자산은 일시적 처분이 어렵다는 현실을 감안하여 당사자 선택에 따라 일정 법정이자를 적용하면서 20-30 년간의 분할적 상환방식이라는 기술적 유예조치의 도입이 필요할 것이다.

기업상속의 공제라는 제도의 핑계 거리인 경영권의 지속성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해당 기업에 대해서는 해당 부처나 기관 또는 합의된 시민기구에서 기준과 상황에 맞게 직접 개입하고 지원하는 것이 정답이다.

결론이다. 원칙적으로 사회적 상속으로 형성된 재원은 주로 기존의 물적 기반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하여 모든 시민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산업적 생산기반의 지속 혁신 확장이라는 영역에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활용되어야 하는 반면에, 전통적인 조세개혁을 통하여 확보한 재정은 국가 운용의 필요 경비와 사민주의적 관점에 기반한 사회안전망과 복지재원에 주로 사용해야 한다.

전통적 조세의 개혁을 통한 재정을 형성하든, 사회적 상속제를 통해 재원을 확보하든, 인류가 현단계까지 형성해온 물적 기반과 조건을, 신자유주의에 의해 반인륜적으로 작동하는 기득권적 구질서로부터 탈구시켜,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사회적 공동선과 자유 조건의 영역적 확대를 재구성하여야 하며 지속적인 확장을 위해 혁신 기제가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다음 장에서는 사회적 혁신 기제에 대해서 살펴 보고자 한다.

 

추신: 본 글이 완성된 즈음해서 마침 다른백년 이사인 서강대 김종철교수가 번뜩이는 통찰력을 담아내어 ‘금융과 회사의 본질’이라는 저서를 발간했는데, 내용 중 필자와는 다른 시각과 접근을 통해 개별화된 ‘사회적 상속’을 제안하고 있다. 향후 논쟁과 상합을 통하여 보다 발전된 내용물을 기대하여 본다.

목, 2019/03/1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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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파트 매매가와 전세가는 폭락 중인가?

단도직입으로 묻자. 서울 아파트의 매매가는 폭락하고 있는가? 통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아래는 한국감정원이 발표하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가운데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를 토대로 만든 표와 그래프다.

이 표와 그래프를 보면 13년 8월부터 19년 1월까지의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는 13년 8월 85.1로 2010년 이후 최저점을 찍은 후 횡보하다 박근혜 정부가 재건축 아파트 관련 시장정상화 조치들을 무력화하고 LTV 및 DTI를 완화를 본격화하기 시작한 14년 가을부터 상승추세로 돌아선 후 상승기조를 계속 유지했다.

한편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는 96.8이었는데 17년 11월에 이 지수의 기준점을 돌파한 후 18년 11월에 109.1로 최고점을 찍었다. 그리고 9.13대책 등의 여파로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는 19년 1월에 108.5로 극히 미미하게 하락했다.

정리하자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는 13년 8월 85.1로 저점을 찍은 후 줄기차게 올라 18년 11월 109.1로 정점을 찍었고 지금 고작 0.6퍼센트 포인트 하락한 108.5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를 기준으로 볼 때 지난 5년간의 상승폭에 비해 지난 2개월의 하락폭은 하락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그럼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의 추세는 어떨까? 아래는 한국감정원이 발표하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가운데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지수를 토대로 만든 표다.

위의 표를 보면 2017년 11월 100을 돌파했던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지수가 18년 2월 100.7을 거쳐 18년 6월 99.5로 약간 떨어졌다 9.13대책 이후인 18년 10월 100.4로 오히려 반등한 것을 알 수 있다. 역전세난 운운하는 미디어들의 호들갑과는 달리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지수는 19년 1월 현재 99.7에 머문다. 18년 2월의 정점인 100.7과 비교할 때 고작 1퍼센트 포인트 하락한데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주효했는가?

위의 통계가 잘 보여주는 것처럼 서울 아파트는 매매가와 전세가 모두 상승을 멈추고 하락세에 돌입한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작년 여름과 가을, 서울을 온통 불태웠던 투기열풍이 가라앉고 시장이 소강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서울 아파트 시장이 하락세에 접어든 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때문인가?

여기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2014년 가을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상승한 배경과 원인을 알아야 한다. 2010년 이후 꼼짝도 하지 않던 서울 아파트 시장이 움직이기 시작한 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투기심리를 부추기기 위해 올인한 덕분이다. 먼저 이명박 정부가 보유세 및 양도세 등의 불로소득환수장치를 무력화시켰다. 뒤이어 박근혜 정부가 재건축 관련 시장정상화조치를 형해화시키고, 그래도 시장이 움직이지 않자 LTV 및 DTI를 풀었다. 그런 정책들이 누적적으로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 2014년 가을 무렵부터였다. 투기라는 괴물은 우리에서 풀려나면 잡기가 매우 어렵다. 2014년 가을 이후 우리에서 탈출한 투기라는 이름의 괴물은 계속 기승을 부렸다. 문재인 정부 들어 보유세 등이 강화될 거라는 시장의 예측이 빗나가자 투기심리가 더욱 창궐하여 2018년 여름 같은 대폭등 랠리가 일어난 것이다.

공급이 부족해 서울 아파트 가격이 폭등한다는 주장은 객관적 근거 없는 곡학아세다. 공급이 부족해 서울 아파트 가격이 뛴다면 2010년 이후부터 2014년 가을까지 사실상 거래절벽 상태이던 서울 아파트 시장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한 2018년 11월 이후 하락세로 접어든 서울 아파트 시장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2010년부터 2014년 사이에는 서울에 아파트가 남아돌았나? 작년 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됐던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세가 하락세로 반전된 게 공급 때문인가? 그렇다면 작년 11월 이후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서울에 갑자기 아파트 수십만호가 들어서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런 상식에 비추어 봐도 공급부족론은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을 합리화해주는 사후적 견강부회에 불과하다.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의 원인이 전적으로 투기적 가수요에 의한 것이라면 해법은 명확하다. 보유세를 높여 기대수익률을 낮추고, 대출을 조여 레버리지를 없애는 것이 그것이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대책은 9.13대책이 극명히 보여주듯 금융규제가 중심이다. 매우 미약하긴 하지만 공시가격 인상, 세율 인상 등을 통해 보유세도 높이고 있긴 하다. 결론적으로 말해 서울 아파트 시장이 2018년 11월을 정점으로 꺾인데에는, 비록 늦긴 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강한 금융규제 + 약한 보유세 강화’조합이 주효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공정할 것이다. 거기에 더해 5년간의 대세상승 랠리로 서울 아파트 가격이 이미 오를 만큼 오른 측면도 크다.

 

문재인 정부, 무엇을 할 것인가?

서울 아파트 시장을 진정시킴으로써 문재인 정부는 발등에 붙은 불을 끈 상황이다. 그렇다고 만족하거나 안심할 처지는 결코 아니다. 앞으로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과 관련해 해야 할 과제들이 무언지를 살펴보자.

우선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을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쓰려는 유혹을 멀리해야 한다. 최근의 예타면제 논란이 보여주듯 문재인 정부도 과거 정부들처럼 토건에 의존한 경기부양책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지표에 매몰된 나머지 겨우 안정을 찾은 부동산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으려고 시도한다면 그 결과는 재앙으로 귀결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과 관련된 정책기조를 투기에 친화적인 방식으로 퇴행시켜서는 절대 안 된다.

다음으로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 할 보유세 강화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참여정부가 2005년 5·4대책을 통해 2017년까지 보유세 실효세율 1%달성을 천명한 것과 같은 수준의 담대한 보유세 개혁 로드맵을 문재인 정부가 설계해 발표한다면 만악의 근원 부동산 문제 해결의 영구적 실마리가 형성됨은 물론이고 공정경제와 공평과세의 기틀이 마련될 것이다. 부동산 가격의 하향안정화는 덤이다. 모쪼록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공화국 혁파의 첩경인 보유세 강화 로드맵을 마련하길 간절히 바란다.

수, 2019/02/2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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