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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한독도시교류포럼] “기억문화는 다양한 목소리를 나누는 민주주의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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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한독도시교류포럼] “기억문화는 다양한 목소리를 나누는 민주주의의 과정”

익명 (미확인) | 화, 2017/03/28- 14:20

희망제작소는 안산시,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과 함께 ‘기억의 조건 : 한국과 독일의 사례로 보는 기억문화의 역할과 과제’라는 주제로 2017년 3월 23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포럼을 열었습니다. 4‧16 세월호 참사,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사회의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며, 기억문화가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현장의 생생한 후기를 전합니다.


2017년 3월 23일, 차가운 물 속에 천 일 넘게 잠겨있던 세월호가 떠올랐습니다. 전 국민의 시선이 긁히고 찢긴 세월호에 쏠렸던 그날, 희망제작소는 안산에서 이런 아픔을 어떻게 기억하고 보존해야 할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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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기억문화, 그 험난한 과정

미하엘 파락(Michael Parak, 반망각-민주주의진흥재단 사무총장)과 팀 레너(Tim Renner, 前 베를린 시 문화부 장관)에게 독일의 기억문화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독일은 과거 나치의 만행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으며, 학교에서도 이에 대해 배우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민족 말살이라는 범죄 행위의 가해자들이 나의 가족과 이웃으로 살고 있는 상황에서,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에 대해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고 합니다. 시간이 흘러 세상을 떠나는 희생자가 많아지면서, 지난 일이니 덮어두자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기억하자고 꾸준히 말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작은 목소리가 현재 독일의 모범적 기억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올바른 기억문화 정착을 위해 ‘기억 간 경쟁’은 피해야

혹시 우리는 지난 일을 기억할 때, 서로 비교하며 그 무게를 따지려 하지 않았나요? 어느 사건의 희생자가 더 많았는지, 어느 사건의 결과가 더 처참했는지 말입니다. 미하엘 파락 사무총장은 기억 간의 경쟁이 다른 하나를 미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치에 비해 독일 공산독재가 ‘그나마 덜 했다’는 것처럼 말이죠. 비록 그 피해의 규모가 비교적 작았다거나, 기간이 짧았다거나,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하나에 모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경쟁하지 않는 것, 이를 통해 우리는 각 사건의 진실을 올바르게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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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에 대한 기억에서 희생자에 대한 기억으로

나치정권의 범죄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처음 주목 받았던 사람들은 부정의에 저항한 영웅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행정은 폭력의 공간을 보존하는 것에 집중했었죠. 하지만 1999년 연방의회에서 ‘기억의 대상은 희생자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습니다. 이를 통해 유가족이 희생자를 추모할 수 있고, 가해자는 죄를 고백할 수 있으며, 시민은 과거 잘못된 선택의 결과를 배울 수 있는 장소를 조성했습니다. 그것이 현재 베를린 시 한복판에 위치한 회색빛의 추모공원입니다. 팀 레너 전 장관이 공유한 베를린 추모공원 사례는 희생자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한국의 아픈 역사, 그것의 올바른 기억

우리도 아픈 역사가 참 많습니다. 가깝게는 국가의 무능한 대응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생긴 4·16세월호 참사부터, 일방적 정리해고와 폭력 진압에 현재까지도 고통 받는 쌍용차 노동자들, 군사독재 정권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무고한 시민의 희생이 발생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 말입니다. 복잡한 정치적 역사 속에서 권위주의적 정부는 자본과 권력의 힘을 키우기 위해 힘없는 시민의 희생을 발판 삼았습니다. 하지만 그 희생은 억압받고, 때로는 조롱당하며 왜곡된 채로 잊히곤 합니다. 잊힌 기억은 비슷한 희생을 낳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연사들이 공유한 아픈 과거의 진실을 기억하고 같은 희생을 막기 위해, 우리도 올바른 기억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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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위한 우리의 역할

미하엘 파락 사무총장은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찬성과 반대 의견은 모두 기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토론을 통해 원하는 결과의 근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견을 종합해 올바른 결과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기억문화는 다양한 목소리를 나누는 민주주의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발제에 이어 많은 질문이 나왔습니다. 독일에서 지난 역사를 다시 기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수십 년이 지난 이후에 등장할 수 있었던 계기나 도심 한복판에 추모 공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있었던 시민의 반응 등을 묻고 답하며, 기억문화에서 ‘시민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많은 의견을 어떻게 종합하여 합의점을 찾아낼 것인지에 대한 질의응답도 있었는데요. 기억문화에서 행정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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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점차 흐려집니다. 사라지고 왜곡되기 전에 우리는 기록해야 합니다. 독일 연사들은 기록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참여’와 ‘토론’이라고 말합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하여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정치적 이해관계로 한쪽의 의견이 묵살당하지 않아야 기억을 올바르게 기록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함께 답을 찾아 가는 것, 그것이 사회갈등을 줄이고 더 나은 미래로 다가갈 수 있는 정도(正道)가 될 것입니다.

– 글 : 이다현 | 지역정책팀 연구원 · [email protected]
– 사진 : 최정상 사진작가

☞ 2017 한독도시교류포럼 기억의 조건 독일 연사 발제 전문 보기
– 미하엘 파락(Michael Parak, 반망각-민주주의진흥재단 사무총장) – 기억문화에서 시민의 역할 (전문 보기)
– 팀 레너(Tim Renner, 前 베를린 시 문화부 장관) – 기억문화에서 도시의 역할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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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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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요청] 쌍용차 해고노동자 11년 만에 출근 기자회견

1월 7일(화) 08:00 쌍용자동차 정문(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 마지막 남은 쌍용차 해고노동자 46명(3월 복직예정 해고자 자녀 포함 47명)이 11년 만에 그리운 공장으로 돌아갑니다. 2009년 6월8일 해고일로부터 만 10년 7개월만입니다. 모든 조합원이 복직한 후 마지막에 복직하겠다고 약속한 김득중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장을 포함해 46명은 이날 공장 앞에서 앞서 복직한 동료와 시민사회단체의 축하를 받으며 공장으로 들어갑니다. 애초 1월6일 출근할 예정이었으나 회사가 1월6일까지 휴무하고 7일부터 가동됨에 따라 1월7일 출근합니다.

  • 2018년 9월21일 노노사정(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쌍용차 회사, 쌍용차노조, 경사노위) 합의에 따라 2019년 12월31일자로 부서배치를 받았어야 할 쌍용차 마지막 해고노동자 46명은 1월6일까지도 부서배치를 통보받지 못했습니다. 쌍용차 회사와 기업노조가 마지막 해고자 46명에 대해 일방적으로 무기한 휴직을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회사와 기업노조가 노노사정 4자 합의를 파기할 수 없으며, 이는 법적으로 무효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해고노동자 46명은 9.21 합의서에 따라 공장으로 출근하기로 하였습니다.

  • 마지막 해고노동자 46명은 공장으로 출근해 부서 및 업무배치를 요구할 것입니다. 오전 9시부터 생산관리회의실에서 진행될 예정인 시무식에도 참가할 예정입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은 노노사정 4자 합의일 뿐만 아니라, 연이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죽음에 비통해하며 해고자 문제 해결을 간절히 바랐던 시민사회와 국민들의 열망이 담긴 사회적 합의였습니다. 쌍용차 회사가 노노사정 합의서에 따라 적법하게 진행되는 출근을 막거나 위력행사를 해서 발생하는 불상사에 대한 모든 법적 책임은 온전히 회사가 져야 할 것입니다.

  • 마지막 해고자 46명은 1월7일부터 다른 동료들처럼 매일 회사로 출근합니다. 만약 회사가 국민적 합의서를 이행하지 않고, 46명에게 업무배치를 하지 않는다면,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휴직 구제신청, 법원에 임금차액 지급 가처분신청 등 모든 법적 절차를 밟아나갈 것입니다.

  • 쌍용차 해고자 복직을 위해 함께 연대하고, 해고자 복직 합의를 제 일처럼 기뻐했고, 쌍용차 구매운동을 벌였던 시민사회단체는, 2018년 9월 21일 합의에 따라 현장으로 들어가는 해고자들에게 축하의 꽃다발을 전합니다. 만약 해고자 복직 합의가 지켜지지 않고 부서배치가 즉각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쌍용차 해고자들의 억울한 죽음이 멈추기를 기대했던 국민적 열망을 담아 노노사정이 서명한 합의서를 폐기시키고, 대한민국 국민을 배신하는 기업을 국민이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시민사회단체는 1월14일(화) 긴급 대표자회의와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을 함께 기뻐했던 분들의 관심과 취재를 부탁드립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11년 만에 출근 기자회견>

 

(1) 일시 : 2020년 1월7일(화) 오전 8시

(2) 장소 : 쌍용자동차 정문(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3) 순서 : 사회단체 축하 인사 / 평택지역단체 축하 인사 / 복직자 축하 인사 / 당사자 발언 / 꽃다발 전달 / 이후 계획 발표 등  

■ 주최 :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쌍용자동차 범국민대책위원회

■ 문의 :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010-7244-5116),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010-9077-6299)

월, 2020/01/06-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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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601/677/001/f1418... style="width:410px;height:513px;" />

쌍용차 사회적 합의 이행을 위한 1인 시위 돌입 기자회견

“전원복직 약속, 쌍용차와 정부가 답하라!” 

일시·장소 : 2020.2.3.(월) 오전 11:00, 청와대 분수대 앞

  1. ‘2018.9.21.노노사정(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쌍용차 회사, 쌍용차노조, 경사노위) 합의’(이하 사회적합의)에 따라 2019년 12월31일자로 부서배치를 받았어야 할 46명의 쌍용차 노동자들이 부서배치를 받지 못한 지 오늘로 한 달째입니다. 쌍용자동차 희생자추모 및 해고자복직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쌍용차범대위)는 지난 1월 21일 시민사회대표자 기자회견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파기한 쌍용자동차에 사과와 책임을 묻고, ▲설전까지 부서배치를 완료해 사회적 합의를 즉각 이행할 것을 촉구하며, 시민 2492명의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2.  국민과의 약속인 사회적 합의를 회사가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에 대해 엄중 책임을 묻고 있음에도, 쌍용차와 지주회사인 마힌드라는 합의 이행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부서배치를 기다리는 46명은 사회적합의에 따라 공장으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쌍용차는 출근한 노동자들의 첫 임금마저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으며, 작업복-사원증 미지급 등 부당노동행위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3. 쌍용차와 마힌드라는 일방적 합의 파기로 고통받는 46명의 노동자들의 부서배치를 빌미삼아 재차 정부와 산업은행에 ‘지원방안’을 요구하는 뻔뻔한 작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채 ‘지원’만을 요구하는 외투자본 마힌드라의 행태는 국민에 대한 기만행위입니다.

     

  4. 더 이상 마힌드라와 쌍용차의 기만행위를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정부는 외투자본의 횡포에 대해 감시하고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정부는 사회적합의의 주체로서 노동자・시민과 함께 쌍용차와 마힌드라가 합의를 이행하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시민사회는 사회적 합의 파기와 외투자본의 횡포에 책임을 묻도록 정부가 역할을 다 할 것을 요구하고자 합니다. 이에 아래와 같이 기자회견과 청와대 앞 투쟁을 진행합니다. 

<쌍용차 사회적합의 이행을 위한 1인 시위 돌입 기자회견>

“전원복직 약속, 쌍용차와 정부가 답하라!”

  • 일시 장소 : 2020.2.3.(월) 오전 11:00, 청와대 분수대 앞

  • 세부사항
    • 각계발언 : 인권, 여성, 노동, 법률, 시민사회, 종교 참여

    • 외투자본의 횡포 : 오민규(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 연구위원)

    • 당사자 발언

    • 요구안 및 1인시위 등 투쟁계획 발표


  • 공동주최 : 쌍용자동차 범국민대책위원회,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 문의 :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010-7244-5116),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010-9077-6299)

 

 

월, 2020/02/03-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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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해고자 복직, 쌍용차 문제 해결 위한 첫걸음

국가 손해배상 소송 철회·쌍용차 판결에 대한 사법농단 거래 의혹 진상규명 등

남은 과제 조속히 해결해야

 

지난 2/24 쌍용자동차가 마지막 해고노동자 46명을 오는 5월에 복직시키겠다는 발표를 하였고,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 등 해고노동자들은 2/25 복직 의사를 밝혔다. 참여연대 노동사회의원회는 해고노동자들이 복직의사를 밝히며 지적했다시피 쌍용차 사측의 해고노동자 복직 발표는 노·노·사·정 합의의 한 주체인 해고노동자를 배제한 일방적인 결정이었다는 점, 합의 파기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이 없다는 점 등에서 한계가 있으나, 쌍용차 해고노동자 당사자들과 노동·시민사회가 노력한 결실이기에 의미 또한 적지 않다고 본다. 참여연대는 앞으로도 해고노동자 복직 약속이 온전히 이행되는지, 더하여 쌍용차 문제의 온전한 해결을 위해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국가 손해배상 소송 취하와 쌍용차 판결에 대한 사법농단 의혹이 철저히 진상 규명되는지 등을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쌍용차 사측은 그간 해고노동자의 복직 약속을 수차례 번복해왔다. 쌍용차 사측은 해고노동자들을 전원 복직시키기로 한 2015년 노사합의, 2018년 노·노·사·정(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쌍용자동차 기업노조, 쌍용자동차 사측,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합의를 파기한 바 있다. 또다시 복직 약속이 파기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쌍용차 사측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더 이상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를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더하여 쌍용차 문제가 온전히 해결되려면 해고노동자들의 복직과 함께, 국가(경찰)  손해배상 소송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어야 한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대규모 정리해고에 맞서 2009년 진행했던 파업에 대한 수십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소송으로 2019년 초에 복직한 노동자들의 월급이 가압류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법원에 계류 중인 손해배상청구소송사건에 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12.17. 과도한 손해배상책임으로 노동자의 노동3권 행사가 위축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을 대법원에 냈고, 이달 초 더불어민주당·정의당 의원 79명 또한 대법원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한 바 있다. 경찰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침해하고, 생존권을 위협해 온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즉시 취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쌍용차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대상이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2018년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에서 양승태 대법원이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 해결 등 현안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설치를 맞바꾸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자 처벌이 따라야 한다. 10년을  넘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고통을 끌낼 수 있도록 쌍용차 문제의 남은 과제들도 지체  없이 해결되어야 한다.

 

논평[https://docs.google.com/document/d/1WPbUFr3xkmky5GJn21krcj_F0Pw6jjgk-mWW... rel="nofollow">원문보기/다운로드]

수, 2020/02/26-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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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 세계사를 배우던 때를 잠시 떠올려보자. 독일의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총리가 폴란드를 찾아 나치정권 희생자를 위해 무릎을 꿇고 추모하는 사진이 떠오른다. 독일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과 그 주변에서 함께 환호하고 있는 동독인과 서독인이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이처럼 독일 민주주의 역사를 기록하고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한 독일의 기억문화에 관해 논하고자 한다.

독일 기억문화의 특징

먼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독일 기억문화의 특징과 그것이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 가져다주는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이에 대한 답변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첫째, 독일 기억문화의 핵심주제는 홀로코스트와 나치 시대이다. 그중에서도 당시 독재정권 아래에서 자행된 여러 비민주주의적, 반인권적 사례와 각종 정치적 사건과 이해관계를 둘러싼 논의가 핵심요소에 해당한다.

둘째, 기억문화를 주제로 광범위한 현재 진행형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기억문화 발전을 위한 토론이 과거 그리고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독일에서는 국공립 기념재단과 학교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와 각 정당 산하 정치재단 등에서 기억문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운영하고 있다. 기억문화라는 주제가 공영방송의 시사토론 프로그램 주제로 선정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셋째,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 간 소통이 선행된다는 점이다. 지역주민, 학생, 노동조합, 학자,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은,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의견을 공유하며 어떻게 하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세대를 위한 기억문화를 형성해나갈 수 있는지 함께 토의•고민하고 있다. 또한 이것이 기억문화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사회 전반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특히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러한 사업 진행을 위해 재정적 지원뿐만 아니라 콘텐츠 관련 상담과 조언도 아끼지 않고 있다.

넷째, 기억문화를 만들기 위한 모든 과정이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요소인 다양성 존중과 사회적 협의를 기반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토론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는 독일에서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준비가 되어 있고,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등 사회적 합의 또는 협의를 토대로 기억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사회적 협의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찬성을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는 글 뒷부분에 있는 ‘독일을 위한 대안(Alternative für Deutschland)’ 관련 사례를 참고하길 바란다.

숨겨진 독일 기억문화 사례 찾기

앞부분에서 언급한 독일 기억문화의 특징을 뚜렷이 보여줌과 동시에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두 가지 기억문화 프로젝트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두 사례는 2017년 한독도시교류포럼에서도 소개될 예정이다.

사례 1 : 현장에서의 민주주의(Demokratie vor Ort)
반망각-민주주의진흥재단(Gegen Vergessen – Für Demokratie e.V.)은 민주주의와 관용을 위한 연맹(Bündnis für Demokratie und Toleranz)과 함께 ‘현장에서의 민주주의(Demokratie vor Ort)’라는 특별한 기억문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해당 프로젝트는 전국 또는 지역 단위로 일반 시민과 다양한 협회 및 시민단체의 자발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진행되며, 민주주의 역사와 민주주의 진흥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모든 주제를 포괄한다. 그 형태 또한 역할놀이, 발표 및 토론모임, 길거리 캠페인, 온라인 학습 등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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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보드게임을 이용해 민주주의 교육을 진행하는 모습(출처 : 반망각-민주주의진흥재단 홈페이지 – http://www.demokratie-vor-ort.de/projekte/projekte-detailseite/article/…)

사례 2 :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Topographie des Terrors)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은 베를린 시민들의 요구와 시 정부의 경청, 그리고 상호 간의 이해와 협력을 토대로 설립되어 운영 중인 베를린의 대표적 기억문화장소이다. 이곳은 나치 정권의 민주주의 탄압의 역사를 고스란히 기록•보존하고 있는 기록보관소이자, 박물관 그리고 과거사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특히 과거 잘못에 대한 뚜렷한 반성과 재발 방지를 위한 다양한 전시회 및 교육 프로그램이 학생과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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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독일 비밀국가경찰 특별 전시전 당시 체험학습 중인 학생들 (출처 :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 홈페이지 – http://www.topographie.de/de/fuehrungen/z/0)

오늘날 독일 기억문화의 쟁점

독일 기억문화에서는 상대적으로 ‘현재 생존 중인 홀로코스트와 나치 정권의 희생자들이 이 세상을 떠난다면 이런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토론이 간과되고 있다. 이외에도 독일이 식민지로 지배했던 몇몇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와 관련된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 또한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독일에서 기억문화는 일종의 위협을 받고 있다. 위협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에서 국정교과서 도입에 따라 갈등이 있었던 것처럼, 편향성에 따른 문제가 등장한 것이다. 반이민, 반유럽연합체제 등을 지향하는 극우주의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서 홀로코스트 관련 기념시설을 ‘독일 기억문화의 수치’라고 호칭하며, 지금이야말로 기존 독일 기억문화의 180도 다른 해석이 필요한 전환의 시기라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는 앞서 논한 독일 기억문화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갖는 의미와는 정반대되는 주장으로, 정치적 포퓰리즘의 위험성에 대해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글 : 사문걸(Sven Schwersensky) |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 한국사무소 소장
글 : 김태현 |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 한국사무소 프로젝트 매니저

목, 2017/03/0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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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민선6기 목민관클럽 제19차 정기포럼
시민의 기억이 지역을 만든다

■ 지음

목민관클럽팀

■ 소개

이 자료는 목민관클럽 제19차 정기포럼(2017년 3월 21~22일) 자료집이다.
자료집은 현장방문 참고자료와 워크숍 참고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포럼 주최 : 목민관클럽, 희망제작소, 안산시,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 목차

1. 기조발표
– 안산의 기억과 기록

2. 기조강연
– Erinnerungskultur von unten

3. 사례강연
– Gendenkkultur in Berlin am Beispiel der Stiftung Denkmal fur die ermordeten Juden Europas

4. 사례발표
– 시민의 기억이 지역의 역사입니다 / 서울 성북구
– 기억해야 할 아픈 역사, 한국전쟁 / 경기 오산시
– 독립과 민주를 기억하다 / 서울 서대문구
– 낮은 기억을 기록하다 / 경기 시흥시
– 주민 기억퍼즐과 소통하다 / 서울 은평구
– 근대문화유산 100년의 기억 창고, 양림마을 / 광주 남구
– 추억과 희망의 구로공단 여행 / 서울 구로구
– 1980년 5월 11일 정읍 갑오동학기념제와 김대중과의 역사적 의미 / 전북 정읍시
– 상흔 남은 그곳에 문화가 피어난다 / 서울 도봉구
– 기지시 줄다리기, 평화와 화합의 공동체 문화로 승화 / 충남 당진시
– 강동의 삶을 기억하다 / 서울 강동구
– 80년 5월의 기억, 시민군 윤상원 / 광주 광산구
– 아낌없이 주고 날아간 나비 / 서울 강서구

■ 펴낸 날

2017.03.21

월, 2017/03/2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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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는 안산시,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과 함께 ‘기억의 조건 : 한국과 독일의 사례로 보는 기억문화의 역할과 과제’라는 주제로 2017년 3월 23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포럼을 열었습니다. 4‧16 세월호 참사,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사회의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며, 기억문화가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독일 초청연사인 미하일 파락(Michael Parak, ‘반망각-민주주의진흥재단’ 사무총장)의 발제문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앞에서 발표를 하게 돼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엊그제 21일에 이어 오늘 23일 안산을 두 번째 찾는데, 희생자 가족과 시민사회의 엄청난 조직력과 서로 돕는 모습에 대해 감탄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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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역사,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

저는 오늘 기억 속으로 작은 여행을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모두 역사를 80년 전 혹은 100년 전으로 돌려 보십시오. 여러분의 증조부 내지는 할아버지, 할머니 시대가 될 겁니다.

지난 80~100년을 되돌아봤을 때 여러분은 어떤 역사적 사건을 떠올리게 됩니까? TV를 켰을 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어떤 사건을 반복해서 이야기 하고 있나요? 이에 대한 답을 떠올려 본다면 제가 오늘 발표하는 ‘기억문화’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억문화는 아주 많은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 벌어진 역사적 사건 중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하고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역사는 독재처럼 부정적인 기억을 주기도 하는 반면, 새로운 힘을 주는 긍정적 역할도 합니다. 오늘 저는, 우리가 역사를 기억문화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시민단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는 기억문화를 아래로부터 어떻게 만들고 활용하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독일의 사례를 들어볼까요. 독일 사람들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떤 것을 기억하지 않는지 말입니다. 제가 있는 ‘반망각-민주주의진흥재단’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독일은 나치시대 ‘홀로코스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가 있었고, 공산주의 독재가 있었습니다. 또 독일 절반이 소련에 점령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용감한 시민이 1989년 ‘평화혁명’을 주도한 이후 동독과 서독이 통일됐습니다. 지난 100년의 역사 중 독일인이 자주 기억하는 사건입니다.

반면 상대적으로 공공의 주목을 덜 받는 사건도 있습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식민정치’가 대표적입니다. 식민지배국가로 독일은 다양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또 독일 첫 의회 설립시기도 관심에서 먼 사건입니다.

희생자 수 중심의 기억과 비교는 무의미

사람들 간에는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 한다’라는 기억 간 경쟁이 있습니다. 어디에 더 귀를 기울일 것인지 하는 문제 말입니다. 독일이 한국과 다른 점은 정치적 희생자가 좀 더 주목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독재시대에 엄청난 희생자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정치적 희생의 경우 서로 토론을 통해서 개선점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큰 자연재해도 있었지만, 관심을 끌진 않았습니다.

우리가 나치시대에 대해 말할 땐, 유태인을 빼놓지 않습니다. 철저한 민족말살 정책의 대상자였기 때문입니다. 무려 600만 명 이상이 희생됐고 그중에는 어린이 120만 명이 포함돼 있습니다. 숫자만 봐도 얼마나 큰 희생이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홀로코스트는 세계 유례없는 사건입니다. 이것은 산업적 학살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다른 역사적 사건을 홀로코스트와 비교하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희생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40년 공산독재를 겪었습니다. 희생자나 기간으로 보면 홀로코스트와 공산독재를 비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서로 타협점을 찾을 수는 있습니다.

희생자 규모에 초점을 맞춰 생각한다면 나치가 저지른 범죄가 중요할 겁니다. 하지만 공산정권의 부당행위의 심각성도 무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 가지 사건이 상대적으로 중요하다고 해서 다른 범죄의 잔혹성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역사적 범죄행위의 피해규모, 특히 희생자 숫자를 단순 비교하기보다 각각에 귀를 기울이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다른 희생자 그룹도 있습니다. ‘반공주의’에 대한 탄압이나 2차 세계대전 말기 소련 주둔군에 의해 자행된 독일 국민 학살 문제가 대표적인데, 아직까지 많은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독일에서 기억문화가 시작된 시기는 1990년대부터입니다. 당시 국가가 나서서 추모시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은 독일을 기억문화의 모범사례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독일이 나치 이후 공산정권 그리고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추모 및 기억문화를 준비해왔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독일이 반드시 모범적이라고 볼 수만은 없을 겁니다. 따라서 오늘 이 자리가 시민이 주도하는 한국의 기억문화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문화 형성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역할

‘기억 간 경쟁’에 관한 담론에 이어 이번엔 기억문화 형성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억에 대한 해석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 역사적 사건을 활용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개선하려 한다면 그것은 기억문화의 부정적 측면일 것입니다. 하지만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과거를 통해 개선점을 얻는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시가 하고 있는 기억문화 만들기가 그 예입니다.

기억문화는 어떤 가치를 갖게 될까요? 우리는 기억의 대상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협상과 토론이 필요하며, 다원화된 사고를 해야합니다. 정부는 박물관, 추모관 등 지원자의 역할을 할 뿐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주도적으로 나설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역사 해석은 갈등이자 다툼을 의미 합니다. 갈등의 끝에는 결국 사회적·정치적 협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협상 과정은 굉장히 깁니다. 더욱이 한 사람이 자기주장만 내세운다면 시간은 더 걸리게 마련입니다. 독일의 경우 이 토론에 50년 이상이 걸렸고, 최근에 와서야 기억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정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토론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야 말로 ‘살아 있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민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시민사회를 가리켜 ‘제3섹터’ 라고 합니다. 공공의 주제를 사회의제로 담론화 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시민사회와 공공부문은 서로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민사회에서 일하는 동시에 공공영역에 종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이 나쁜 게 아니라고 봅니다. 양쪽에 걸쳐 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제가 일하는 ‘반망각-민주주의진흥재단’을 소개하겠습니다. 독일에서 기억문화는 매우 중요하며, 이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모든 사회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한쪽으로 치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반망각-민주주의진흥재단’ 설립과 강제노역 피해 보상

우리 재단의 이상은 각 지역마다 존재하는 기억문화를 정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정치권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재단이 설립된 1993년은 평화혁명이 일어난 시기와 멀지 않습니다. 독일에 거주하는 외국인에 대한 공격이 빈번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사회에 차별과 반인류적 행동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견지했습니다.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공공을 위한 책임을 만드는 데 방점을 뒀습니다. 때문에 반유태주의 등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다룹니다.

재단 활동은 3가지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첫 번째, ‘정치·사회적 로비’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에 대한 자문을 합니다. 두 번째는 ‘지역활동’으로, 우리는 연간 약 500건의 지역행사를 직접 기획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전문정보 제공’입니다. 기억문화와 관련한 전문적인 내용을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합니다.

여기서 재단의 대표적인 활동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먼저 제2차 세계대전 때 있었던 강제노역에 대한 보상을 이끌어낸 성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시 약 1300만 명의 사람이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노역을 했습니다. 1950년대였으니 이후 40년 넘게 이들에 대한 보상논의가 없었습니다. 정치권과 피해를 알리고 경제계에 보상을 요구하기 위한 작업이 필요했지만, 당사자들의 나이가 많아 적극적으로 활동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에 재단은 당시 독일 내 강제노역이 있었다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독일 대표기업 지멘스를 사례로 들겠습니다. 지멘스는 창립 150주년을 앞둔 세계적 기업이었지만 그간 강제노역 사실을 철저히 감춰왔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미국에서 독일기업에 대한 집단소송이 벌어지는 등 많은 압력이 가해졌습니다. 시민사회는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경제계에 책임을 물었습니다. 그 결과 독일 경제계의 행동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보상 계획을 밝힌 곳이 폭스바겐입니다. 1998년에 보상 관련법이 생겼는데, 2차 세계대전 이후 60여 년이 지나 약 50억 유로가 마련된 것입니다. 이중 절반은 경제계, 나머지 절반은 공공에서 마련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2007년까지 170만 명의 강제노역 피해자들에게 보상이 이뤄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는 전문가에게 의견을 전달하고 정치권에 관련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넣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매개체 역할을 하며 협상을 잘 이뤄낸 것입니다. 특히 재단 회원들 중 정치가가 많았는데, 훌륭한 가교 역할을 해줬습니다.

‘과거를 그대로 내버려 두어선 안 된다’는 믿음

재단의 또 다른 주요 활동은 지역 별 기념관 건립 활동 입니다. 나치시절 독일 전역에 강제수용소가 있었습니다. 정치탄압은 물론 인종차별 등을 이유로 80만~100만 명 정도가 사망했습니다. 지역에서는 당시를 어떻게 기억할까요. 이중 독일 남쪽의 한 수용소를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그 지방에서는 강제노역을 통해 공군기지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601명이 강제 수용됐고 결국 이 가운데 186명이 희생됐습니다.

뒤늦은 추모사업은 쉽게 진전하지 못했습니다. 4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탓에 정책 결정권자가 대부분 바뀌었고,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과거는 과거로 내버려 두자’는 입장이 우세했습니다. 당시 나치에 복역했던 사람들은 물론 수용소에 갇혀 희생당한 사람들 역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시 시민사회를 비롯한 몇몇 소수만이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관련 자료를 보면 이들을 ‘아웃사이더’, ‘내부고발자’ 또는 ‘게임을 망치는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독일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기억문화의 선진국이 아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56년이 지났는데 긍정적 변화가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후 전환점을 맞습니다. 우리세대가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를 말하게 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재단과 같은 시민단체가 생겼고, 현·전직 정치인도 대거 참여하게 됩니다. 권위 있는 정치가들은 지난 2005년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생존자들을 처음으로 초청했습니다. 무려 56년이 지나서야 시청에서 전시회를 열고 기념비를 세우고 관련 문서를 보관하게 된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시민사회는 각 주체를 잇는 가교역할을 해야 합니다. 또 나치시대가 각 지역 역사에서 절대 잊힐 수 없다는 메시지도 던집니다.

마지막으로 시민사회 활동 중 추가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사람은 누구나 이름이 있다’라는 홀로코스트 관련 프로젝트입니다. 1951년 11월 9일 독일 뮌헨에서 희생자에 관한 첫 추모행사가 열린 후 40여 년이 지난 1988년, 1989년에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숫자가 아닌 실제 희생자의 이름을 시립기록보관소에서 전시하기로 한 것입니다. 희생자를 다시 한 번 기억하는 동시에 과거 역사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아래로부터의 기억’이 성공하려면

지금까지 언급한 사례를 살펴보면 우리는 ‘아래로부터의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지난 40~50년 간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않았을까요? 역사학자들은 수 년이 아닌 수 세대를 내다보며 사고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40~50년 뒤 어떤 사건이 중요해질지 알 수 없습니다. 때문에 일단 무엇이든 기록하고 보관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적으로 기억문화를 이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이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성공적인 기억문화가 된다’라는 식의 편향된 사고를 하거나 진영을 가르면 안 됩니다. 여당에 무조건 반대하거나 야당에 앞뒤 안 보고 찬성하기보다 초당적으로 활동하면서 우리의 기억을 일목요연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억문화를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실행방식도 다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지역에는 기념비를, 또 다른 지역은 추모행사를 벌이는 등 여러 가지 실행 아이디어를 마련해야 합니다.

시민사회는 기억문화를 만드는 데 동기를 부여하고 협상을 주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희망하는 결과만을 목표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시민사회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시민사회는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각자의 사명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 의문을 품어야 하며, 또 그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점도 명심해야 합니다. 기억문화는 앞으로 민주주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녹취 및 정리 : 김현수 | 사회의제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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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7/03/2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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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는 안산시,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과 함께 ‘기억의 조건 : 한국과 독일의 사례로 보는 기억문화의 역할과 과제’라는 주제로 2017년 3월 23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포럼을 열었습니다. 4‧16 세월호 참사,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사회의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며, 기억문화가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독일 초청연사인 팀 레너(Tim Renner, 前 베를린시 문화부 장관)의 발제문입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이 자리에서 발표를 하게 돼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베를린 뮐러 시장님께서도 여러분께 안부를 전해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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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베를린의 기억문화에 대해 설명하러 나왔습니다. 행사에 앞서 세월호 분향소와 기억교실 등을 방문하면서 현장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안산시장께서 유가족의 아픔을 내버려두지 않고 함께 나누려는 노력도 봤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저는 베를린 주정부 장관회의에 참석 중이었습니다. 사고 소식이 전해진 직후 회의가 잠시 중단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오늘 세월호 인양 소식이 들린 만큼 아마 베를린에서도 향후 진실규명 작업이 잘 이뤄지길 기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끔찍한 참사가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을 밝히고 이를 기억문화로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하는 고민입니다. 기억문화는 세월호 유가족처럼 슬픈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아픔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또 개인과 사회 모두가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는 행위도 포함 합니다. 상처와 아픔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이 같은 사고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독일 ‘기억문화’의 시작

한국은 독일의 기억문화 사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들었습니다. 그중 유럽 내 외국인 관광객 2위 도시인 베를린은 추모기념문화가 활성화 돼 있습니다. 저는 기억문화를 만드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여러분께 꼭 하고 싶습니다. 독일에서 나치 역사 청산이 이뤄진 초기에는 당시 영웅에 대한 기억이 주를 이뤘습니다. 희생자 추모관 설립 등으로 정부의 관점이 바뀐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작센하우소 수용소입니다. 나치정권에 저항하다 생을 마감한 희생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고 박물관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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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러 장소를 기념화 하는 과정이 순조로웠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치시절 체계적으로 진행된 ‘홀로코스트’의 잔혹성을 알리고 희생자를 위한 추모공간이 필요하다는 여론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이후 나치가 과거 인권 유린을 자행한 베를린장벽 근처 한 건물 부지에서 야외 전시도 열렸습니다. 또 독일에서 두 번째로 많은 유태인 이송 지역인 그리느발트라는 지역과, 안젤컴퍼넌트라는 곳이 1991년 이후 기념물로 지정됐습니다. 당시 연방정부도 이런 흐름에 발 맞춰 과거사 관련 주요 결정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1999년 독일 본 연방의회에서는 ‘연방공화국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나치 희생자를 기억하는 것’이라고 결의했습니다. 희생자 가족은 물론 사회 전체가 희생자를 기억할 장소를 제공하고, 미래 세대가 과거를 기억하고 배우는 장을 마련하며, 나아가 끔찍한 일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게 하자는 게 골자입니다. 또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때 새롭게 살 수 있다’는 메시지도 담았습니다. 연방의회의 적극적 움직임은 학살된 유럽 유태인을 위한 지원방안을 담은 ‘재단법’ 제정으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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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추모 공간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

베를린 시 설립 50주년인 2000년에는 과거 독일 비밀경찰 게슈타포가 유태인 학살을 저지른 곳에 기념물 건립 공사를 시작합니다. 바로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입니다. 당초 계획은 건물이 아닌 커다란 비석을 세우는 안이었으나, 이후 피터 아이제닝이라는 디자이너가 합류해 건물을 설계하면서 현 추모공원을 포함한 최종안을 확정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기실 겁니다. ‘희생자를 기리는 작업이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물음 말입니다. 저는 동서독 분단을 원인으로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독에서는 나치 희생자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많았습니다. 저 역시 학창시절 나치정권의 잘못과 희생자에 대한 보상 필요성을 많이 배웠습니다. 반면 동독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국가 차원의 추모 움직임이 더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된 건 1990년 통일 이후입니다. 반망각-민주주의진흥재단 같은 여러 재단도 이 시기에 탄생합니다.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 역시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통일 이후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기리는 재단 설립과 지원을 위한 ‘재단법’이 마련됐습니다. 이를 토대로 당시 연방 하원의원과 연방정부, 베를린 주정부가 참여한 재단이 탄생했는데, 여기서 박물관 건립을 추진합니다. 그리고 착공 5년 만인 2005년 3월, 베를린의 대표 기념물로 세상에 선을 보입니다.

베를린을 방문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박물관이 자리한 추모공원에는 수많은 회색 잿빛의 비석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습니다. ‘유대인 학살 추모비’로, 나치시절 화형 당했던 유태인들을 기리기 위해 회색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사방을 채운 이 비석들은 서로 높이가 달라 위에서 보면 마치 물결 치는 모습으로 웅장하면서도 고요한 느낌입니다. 슈레더 전 총리는 이곳을 ‘즐겨 찾고 싶은 곳’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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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공원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비석들 너머로 유리돔이 보입니다. 바로 연방하원 건물입니다. 왼쪽엔 브란덴부르크 문이, 앞쪽에는 나치 지도부가 사용한 건물이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아파트와 일반 주택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상생활 한가운데 추모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박물관을 관리하는 재단 대표는 ‘이곳이 생명과 미래를 상징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규정상 비석 위에 누구도 올라갈 수 없지만, 보시다시피 어린이들과 일부 성인들이 뛰어다녀도 엄격하게 제재하지 않습니다. 또 개폐장 시간이 따로 없어 누구나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습니다. 연간 이곳을 찾는 방문객은 350만 명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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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곳곳에 새겨진 기억의 노력

또 베를린 시는 이 공원 지하에 ‘홀로코스트 정보센터’를 마련해 추모의 감정을 좀 더 깊이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실제 계단을 내려가면 나치시절 벌어진 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돼 있습니다. 공원을 찾는 이들 중 20% 정도가 정보센터에 들른다고 합니다.

지하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곳이 ‘서막’이라는 이름의 방입니다. 이곳에서는 6개의 대형 얼굴형상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나치에 의해 희생된 600만 명의 유태인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차원의 공간’에서는 희생자들이 쓴 각종 메모와 일기 등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유태인이 처한 비극을 당사자의 입장에서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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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가족의 공간’은 전체 희생자 600만 명 중 열다섯 가족의 이야기를 선별해 소개합니다. 나치 정권이 들어서기 전의 모습과 박해 뒤의 비교를 통해 공동체가 어떻게 해체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름의 공간’에 가면 희생자들의 이름이 프로젝터를 통해 노출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그들 한 명 한 명의 운명을 알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름과 프로필을 기억하는 행위는 큰 상징성을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등록인원 기준으로 희생자들의 이름이 모두 보이려면 6년 7개월 하고도 27일이 걸린다고 합니다. 물론 명단은 계속해서 업데이트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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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의 공간’에서는 독일 뿐 아니라 유태인 집단 학살이 유럽의 어느 곳에서 벌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어 ‘기념관 포털’에서는 유럽 내 400여 개에 달하는 추모관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각각의 위치를 안내합니다. 이와 함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말하기’라는 이름의 비디오 아카이브 서비스를 통해 희생자의 증언이 담긴 70시간 분량의 영상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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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 집시, 장애인… 남겨진 희생자들

언론을 적극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독일의 유명 진행자가 희생자 가족 또는 생존자와 인터뷰 하는 ‘역사 증인과의 대화’ 토크쇼가 그것입니다. 나치의 만행과 역사 청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자는 취지였습니다. 또 각종 출판물 발간 및 특별전시를 통해 피해자들의 기억을 알리는 작업은 물론 다른 나라와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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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문화를 다루다 보면 유태인 이외에도 다양한 그룹의 희생자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재단은 학살된 동성애자를 위한 기념물(2008년)과 집시 희생자를 위한 추모관(2012년)을 만들었고, 2014년에는 안락사가 자행된 장애인 피해자를 위한 추모시설을 세웠습니다. 이밖에 나치시절 희생된 러시아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한 각종 전시와 행사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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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문화의 기반 ‘재단법’

지금부터는 앞서 언급한 ‘재단법’에 대해 간략히 소개드리겠습니다. 독일에는 ‘시민 이니셔티브’가 있습니다. 시민들이 필요성에 공감하면 재단법에 근거해 재단을 만들 수 있는데, 이후 연방정부로부터 받은 재정을 바탕으로 기념물이나 박물관 등을 건립하게 됩니다. 시민의 후원금도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 사례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베를린 장벽을 유지·보수하는데 시 예산이 부족한 적이 있었습니다. 정부는 예산을 더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이때 시민단체들이 나섰고 결국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데 성공했습니다.

재단법 주요내용

1) 이 법의 발효시점부터 독일연방공화국이 비독립재단인 ‘학살된 유럽 유대인 추모재단’을 위해 마련한 동산 및 부동산 재산이 이 재단의 소유로 넘어간다.

2) 재단은 과업 수행을 위해 매년 연방으로부터 지원금을 받는다.

3) 재단은 제3자로부터 기부금을 받을 수 있다.

4) 재단 자금은 오직 재단의 목적에 부합하는 곳에만 쓸 수 있다.

5) 재단은 오직 독일 조세기본법상 ‘조세감면 목적’ 조항에 상응하는 공익 목적만을 수행한다. 그 누구도 재단의 목적과 무관한 지출 또는 과도한 급여를 통해 금전적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재단은 다양한 층위로 구성됩니다. 재단운영위원회의 경우 연방정부, 의회, 추모물이 설치되는 주정부가 관여합니다. 자문위원회는 기억에 관한 아이디어를 낸 당사자와 희생자 단체, 학계, 기념관 관장들이 참여합니다. 이들은 다각도로 재단운영에 참여하며 분쟁이 발생하면 해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상으로 발표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긴 시간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녹취 및 정리 : 김현수 | 사회의제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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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7/03/2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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