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부터 봄까지 이어진 촛불, 촛불의 시작은 아마도 세월호참사였을겁니다. 5월, 세월호가 올라온 목포 답사를 시작으로 전우용 선생님과 "광장 민주주의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권력을 사유화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전국에서 타올랐던 탄핵촛불! 그 촛불의 연대와 힘으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촛불대선"을 치뤘습니다.
다수의 시민들이 외쳤던 "이게 나라냐?" 이 물음에 고민하면서, 2017년, 우리들은 광장에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꿈꿨습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에서부터, 3.1운동과 해방후 어떤 나라를 만들것인가에 대한 고뇌, 4.19혁명과 5월광주에서 6월항쟁까지... "시민"의 힘이 광장으로 쏟아져 분출되었고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광장민주주의"는 우리사회 진보적 변화를 만들어온 커다란 흐름입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국가권력의 시대에서 "시민권력"의 시대로! 시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열린 광장에 무엇을 채울 것인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이루었고, 2017년 촛불(혁명, 항쟁, 시위, 운동)을 통해 정권교체를 했습니다.
30년이 흐른 2017년, 대통령이 6월항쟁 기념식에 참석했습니다. 6월항쟁의 정신 속에 문재인 정부가 있다는 것을 천명하며 유가족들과 손잡고 "광야에서"를 제창하고 ‘더 넓고, 더 깊고, 더 단단한 민주주의’를 만들어 갈 것을 약속했습니다. 민주주의가 구체적인 삶의 변화로 이어질때, 6월 정신은 온전하다고 했습니다.
다른어느때보다 감동적인 것은 지난 겨울 촛불을 들었기 때문일까요? 어른아이 할 것없이 많은 분들이 손을 잡고 울면서 불렀던 광야에서가 절절합니다.
6월항쟁의 상징적인 청년 박종철과 이한열.. 그리고 이름불려지지 않는 수많은 종철이, 한열이들 6월의 거리를 달렸던 그들을 만났습니다.
시청광장에서는 '철이 친구들'이 박종철 열사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남영동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고 쓰러진 박종철 부실한 수사와 조작된 기록, 그리고 밝혀지는 죽음의 진실 1987년의 박종철이 2017년의 우리들에게 어떤 말을 건냈을까요..?
서울광장 주변으로 6월항쟁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1987년 5.18 7주기 추도식이 열린 명동성당. 그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항쟁 기간 중 농성이 시작되며 시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끊임없이 모여들던 곳입니다.
그 아래쪽 향린교회. 1987년 5월27일 각 분야에서 민주화운동을 이끌던 대표자 200여명이 모여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를 결성된 곳입니다.
그리고 이곳 성공회대성당! 국본지도부는 1987년 6월10일 성당에 들어와 종을 치며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 개최를 선언했습니다. 이곳에는 "유월민주항쟁진원지"라는 비석이 남아있는 이유입니다. 해마다 6월이 되면, 6월항쟁의 시작을 알렸던 타종을 재현하며 그날을 기억합니다.
시청을 벗어나, 이한열을 만나러 신촌으로 왔습니다. 그가 다녔던 연세대학교, 그곳에서 멀지 않은 작은 골목에 "이한열 기념관"이 있습니다.
1987년 6월9일 연세대 앞에서 시위하다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고 쓰러진 이한열 그의 나이 21살. 대학교2학년 이었습니다. 병원으로 이동중에도... "내일 시청에 가야하는데....." 이 말을 남기고 잠들었습니다.
이한열을 비롯한 청년들의 희생과 죽음으로 결국 군부는 항복하며 6.29선언을 통해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이한열의 쓰러진 모습과 그에게 날아오는 불붙은 화염병 그가 입고 있었던 티셔츠, 청바지.. 운동화.. 책들... 어느 전경의 일기까지 당시를 기억하는 것들이 소박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한열의 모습은 그대로인데... 벌써 30년이 지났네요. 우리는 얼만큼, 어떻게 변했을까요..?
87년, 6월항쟁을 통해 직선제를 이루고 대통령을 국민들이 뽑게되면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갖췄습니다. 하지만, 지난 30년동안 우리 삶은 양극화. 분열, 단절 속에서 제자리를 돌며 어려워졌습니다.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모습에 더이상 참지 못해, 6월항쟁 보다 더 많은 사람이 거리로 달려나왔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다시 민주주의! 여전히 "더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대입니다.
긴 역사 속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스스로 지키고 키워온 "우리의 것"입니다. 수많은 과거와 6월항쟁이 만들어낸 민주주의가 더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단단하게 지켜야 합니다.
이제 더이상은, 퇴보하거나 후퇴하지 않도록 뿌리를 튼튼하게 내려야 합니다. 그것이 지난 30년동안 몸소 체험하고 배웠던 경험이 아닐까요? "밥이 민주주의"이고, 우리 일상이, 내 삶이 민주주의와 더욱 밀착할때 6월항쟁은 우리 곁에서 살아숨쉬게 될겁니다. 어떤 민주주의를 만들어갈지, 기분좋은 상상을 해봅니다.
6월의 거리에서, 30년전 청년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기억하면서, 더불어 함께 좋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갖습니다.
상큼발랄한 청소년 소모임 녹색바람 8월 활동은 ‘반디논 모니터링’ 현장 탐방 교육으로 장소를 창녕우포늪으로 정하였습니다. 8월 28일(일) 새벽 6시에 인천 시청 앞을 출발해서 창녕으로 가는 중에 비가 내렸습니다. 오랜 가뭄과 무더위속에 오는 비가 가뭄을 해갈해 주고, 무더위를 식혀 주기를 바라며, 교통체증이 없이 4시간 만에 창녕우포늪에 도착했습니다.
왜가리 할아버지로 불리신다는 이인식 선생님께서 안내를 맡아 해 주기로 하고, 먼저 우포늪을 둘러보았습니다. 늪에는 수중 식물인 생이가래, 마름등이 많이 분포되어 있었으며, 자라풀이 하얀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우포늪은 멸종위기종인 가시연꽃이 유명한 곳인데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물이 유입이 되지 않아 가시연꽃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얘기에 안타까웠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견뎌온 가시연꽃이 4대강 사업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이 생태와 환경을 생각하지 않고 공사에만 치중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였습니다.
제1 조류전망대에 올라 우포늪의 역사와 배경에 대해 들었으며, 이 자연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수고하신 이인식 선생님의 노고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1년에 약 백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는 얘기에 멸종위기종인 저어새가 바로 우리 눈앞에서 번식을 하는 남동공단 유수지를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순천만 갯벌을 이용하여 많은 관광객을 모아 지역발전 수입창출을 하는 순천시, 우포늪을 지키고 보호하여 관광객유치를 하는 창녕군등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한 것으로 지역을 홍보하고 자연유산을 지키는 모습들이 많은 자연유산을 가진 인천에 사는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생이가래를 먹고 사는 쇠오리. 마름의 열매를 먹고사는 큰부리큰기러기, 물위에 떠있는 작은 조류등을 먹고사는 오리류등 대한 설명과 맹금류에 대한 설명도 해 주었습니다.
점심은 동네사람들이 지역발전을 위해 하는 식당에서 비빔밥과 논우렁이 무침으로 맛있게 식사를 하였습니다. 예전 창녕 사람들은 논우렁이를 잡아 자식들 공부를 시켰다는 얘기에 부모님들의 자식사랑에 대한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우포생태관으로 가서 멸종위기종인 따오기를 복원하는 것을 모니터를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두 마리 들여왔던 따오기가 근친상간으로 교배가 어려워 다시 두 마리 들여와서 지금은 약 170여마리기 되어 2017년에 우포늪에 방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목적을 위해 사라져버린 생물을 복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인식 선생님께서 마름을 직접 뽑으셔서 마름 열매가 어떤 것인지 보여 주었으며, 학생들 그 마름 열매를 직접 조금씩 맛보기도 하였습니다. 밤맛이 난다는 마름의 열매.
또한, 이인식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우포자연도서관에 들려 서로 돕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와서 자연봉사로 꾸미는 자연도서관을 둘러보면서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상향의 도서관을 만드는 꿈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며 우포 창녕탐방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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