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모인 광장의 시민들이 이제는 박근혜의 퇴진과 처벌을 넘어서서 사회경제적 사안에 대해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주요 사안 중의 하나가 재벌에 관한 것이다.
실상 재벌이 문제라는 이야기는 필자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이었던 1970년대부터 귀에 익숙한 주제이다. 그 당시에는 삼성은 이병철, 현대는 정주영, 금성(현재 LG의 전신)은 구자경, 대한항공은 조중훈 등 창업 1세대가 주로 활동하던 시기였다.
핵심적 주제는 국민경제에 대한 독과점보다는 부정부패의 원천인 정경유착과 군사정권의 하수인으로서 특혜를 받는 재벌에 대한 비판이 주로 다루어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정권은 바뀌어도 재벌은 영원
시민혁명을 무산시키고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이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군림하면서 해외로부터는 굴욕적인 경협차관을 도입하고 국내적으로는 강제저축으로 초기의 원시적 산업자본(seed capital)을 축적하여, 정권에 고분하고 정치자금줄의 역할을 담당할 기업인들에게 몰아주면서 개발독재의 시대가 한국사회에 뿌리를 내렸다.
때마침 문호를 활짝 개방한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기반으로 임가공을 통한 수출이 무서운 속도로 확장일로에 있었고, 이를 계기로 하여 거대자본을 필요로 하는 기간산업과 중공업에 대한 투자가 일정 시차를 두고 왕성하게 이루지고 있던 시절로 기억된다.
이후 40-50년이 흘러 한국경제 규모는 아시아의 변방의 가난한 나라에서 제조업 규모로 세계 10위권을 형성하면서 OECD의 주요 국가로서 성장하였고, 정권은 박정희에서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그리고 박근혜 등 7명의 대통령이 헌법 규정에 따라 이루어진 선거에 의해 바뀌었다.
그러나 재벌기업의 경우에는 창업자 사후 후손들인 2.5 세대들은 경영능력에 대한 검증의 절차도 없이 세습적으로 대를 이어 한국경제의 주역으로 등장하였다. 고등학교 동창회를 가면 흔히 듣는 ‘국적은 바뀔 수 있어도 학적은 영원하다’이라는 슬로건처럼 ‘정권의 주역은 바뀌어도 재벌의 승계는 영원하다’는 씁쓸한 연상이 자연스레 떠오르게 한다.
국가권력 위의 재벌
세습적인 재벌권력은 과거의 단순한 정경유착과 정책적 특혜집단이라는 지위를 넘어서 이제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임기제한의 정치권력을 능가한다.
정상적인 시장의 기능을 무력화하고 국민경제 전반을 지배하는 독과점적 위치를 강화하면서 산업경제 분야의 신규 진입을 통제하는 소위 문지방권력 (gate-keeper)과 선사후민(先私後民, 見利私益)의 부패한 관료들을 뒤에서 수족처럼 조정하는 배후통치세력(shadow rule-setter)으로 입지를 완벽하게 구축하였다.
통계상으로 보면 상장된 10대 재벌의 평가액이 주식총액의 절반을 넘어섰고, 합산된 매출액 역시 GDP 총액의 60-70% 수준을 넘나든다. 물론 매출액 자체가 국민경제의 차지하는 비중을 그대로 반영하지는 않는다 해도 직,간접적으로 미치는 10대 재벌들의 영향은 이제 한 나라의 사회경제를 좌지우지할 만큼 지나치게 팽창하여 왔다.
핀란드의 국가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였던 노키아 실패 사례를 깊이 연구한 박상인 서울대 교수가 절박감에서 ‘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 길’이라는 저서를 써야 할 만큼 이제 재벌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박 교수에 의하면 전자산업을 중심으로 한 삼성그룹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 노키아가 전성기에 핀란드 경제에 미쳤던 영향보다도 더욱 크다고 한다. 참고로 핀란드는 노키아가 몰락한 2013년 이후 2016년 현재까지 3년이 넘도록 마이너스 성장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때마침 최근 재벌들의 심각한 폐해가 잇따르고 있다. 해운업의 경우 족벌 경영의 문제점을 고발이나 하려는 듯이 해운산업의 특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가문의 며느리들이 기업의 총수로 앉아 있으면서 급변하는 국제 해운업의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고 과거형 대마불사 방식으로 경영해오다가 급기야 파산의 지경에 이르러 관련 업계와 노동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입혔다.
또 박근혜 개인과 주변에 있는 사인들의 이익을 챙겨주기 위하여 재벌들의 임의단체인 전경련이 수백억에 달하는 자금을 회원사들에게 할당하여 추렴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우처럼 족벌가문의 경영권에 대한 유지와 승계를 위하여 황당무계한 박근혜 정권과 결탁하여 협작스런 방법으로 계열기업 간에 불합리한 합병을 승인하도록 대주주격인 국민연금에게 강요함으로써 국민들의 노후재원에 커다란 손실을 끼치고 연기금운용에 심각한 불신을 초래하는 대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더하여 특검이 암시하였듯이 삼성그룹과 박근혜정권 간에 주고받은 수많은 뒷거래는 일반적 상식을 넘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반드시 형사적 처벌이 따라야만 한다.
재벌체제의 공과, 동시에 평가해야
구미의 경험에서 보면, 사회에 영향을 줄 만한 대규모 기업집단과 상장된 기업들은 대체로 3세대로 넘어오면서 가문경영에서 전문경영인 체계로 전환되었다 한다.
나라마다 산업의 역사와 실제 사정에 편차가 있기에 단순화하고 일반화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제는 한국사회도 대기업 재벌집단이 보여온 가족중심의 족벌경영체제에서 경영성과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는 전문경영인 시대 또는 국민주권적 통제가 가능한 지배시스템으로 이행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이 주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재벌들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문제가 거대하고 복잡한 만큼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대응하거나, 과거에만 너무 집착한 분석에 의존하거나, 혹은 단죄라는 재판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지난 산업화 과정에서 이룩한 일정한 성취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현재 국민경제의 장애물로 나타나고 있는 심각한 폐해에 더하여 한국을 둘러싸고 새롭게 진행되는 국제정치질서와 경제지리적 조건, 그리고 국내적으로 형성되고 있는 정치사회적 요구와 더불어 기업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조직 관행과 문화, 기업의 미래를 책임질 전문경영인 집단의 형성여부와 역량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제3차 산업시대가 지나가고 새로운 기술시대가 도래하는 산업적 변천과정 역시 주요하게 고려돼야 한다.
수 백년간 산업화 경험을 축적한 선진국 거대기업에 맞서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강국으로 우뚝 서는데 재벌들의 대규모 조직 역량이 크게 기여한 바를 분명하게 인정해야 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가전, SK통신과 에너지, 포스코 철강 등 간판 기업군들이 이룬 금자탑은 제 3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만큼 자랑스럽고 훌륭한 성취임에 틀림없다. 절대로 과소평가할 수 없는 한국 현대사의 주요한 업적이다.
재벌체제를 통하여 세계적 기업군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다양한 요인들과 단계적 과정 그리고 대내적인 조건이 서로 결합된 것으로, 그 요인들과 과정, 조건을 면밀하고 객관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는 작업 또한 역사적 평가 못지않게 중요하다.
반면에 재벌체제는 군사권력과 결탁하여 비정상적 특혜를 통해 국민들이 피땀을 흘린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성장하였다. 온갖 비리와 불법으로 한국사회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역량과 자원을 집중하여 만들어 낸 군사동원체제의 결과물이다. 이에 따라 오늘날 이중적 다층적 단절과 극심한 양극화라는 격차를 구조화한 주요 원인이다.
안타깝게도 87년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탄생한 민간정부마저 대외적으로는 신자유주의의 흐름에 타협하고 내부적으로는 재벌들의 기득권을 묵인하고 방조하면서, 사회경제 성과의 대부분을 1.0%도 안되는 극소수의 재벌가문들이 독점하는 오늘의 현실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따라 ‘홍익인간’이라는 위대한 건국설화를 지닌 한국이라는 나라가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천형같은 빈곤과 상습적인 불안이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헬조선’으로 변질되었다.
재벌 지배구조 개선
마침 대규모 재벌들이 끼친 국민경제적 비중과 폐해가 한국과 비슷했던 이스라엘이 재벌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낸 경험이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교훈적 사례가 되었다. 필자는 자연스레 이를 깊이 연구한 박상인 교수의 저작과 논문을 참조하여 글을 이어가고자 한다.
2013년 4월 이스라엘 국회에서 통과된 재벌 개혁 법안은 상장기업의 피라미드식 지배 구조를 2단계까지만 허용하는 것이었다. (이미지 출처: KBS)
‘헬조선’ 배경의 주범이 된 재벌체제의 고질적이고 무책임한 가문중심의 족벌경영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이를 받쳐주는 금산겸업 체제부터 무력화시켜야 한다.
재벌들이 소유하고 있는 일체의 금융집단 지분을 현재 시점에서 소유권과 배당권은 인정하되, 의결권과 경영권은 전적으로 무효화하여야 하며, 일정기간의 유예를 거쳐 재벌집단의 금융지분을 모두 매각하도록 유도하고 강제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재벌들의 큰 장점이었던 신속하고 과감한 투자 결정의 경험을 가급적 살리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하되, 반드시 합리적이고 투명하고 적법한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결과에 대해서는 결정권자가 반드시 책임지는 경영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순환과 상호출자 방식으로 소수의 지분으로 계열사 전체를 전횡적으로 지배하는 현재의 관행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재벌을 일정기간 안에 지주회사 형식으로 전환하도록 강제하여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재벌 가문은 지주회사의 대주주로 지분만큼 경영에 관여하도록 허용하되, 지주회사와 자회사 간의 출자규정을 2단계까지는 지분참여의무 비율 50% 이상으로 정하고, 3단계부터는 100% 지분만을 허용하여서, 순환과 상호출자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해야 한다.
계열사 간 내부거래는 타사 간 거래보다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이를 불이행할 때는 거래이익을 능가하는 처벌적 벌금과 불이익을 강화해야 한다. 또 위반 행위가 반복될 경우에는 강제 매각을 명령할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 국민 대다수가 소유하는 국민연기금의 현재 자산규모가 400조를 넘어서 향후 20년간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므로, 연기금 자산을 활용해 재벌에 대한 국민주권적 통제를 실현할 수 있도록 관련 법규를 재정비해야 한다.
앞으로 국민연기금의 지위와 역할이 막대하고 중요하기에 이사장과 이사 선임의 방식을 현재처럼 해당 장관 또는 대통령이 지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회가 직접 선임하거나, 또는 필히 청문회를 통해 승인하는 과정으로 바꾸어 나가야만 국민주권적 통제가 가능해 질 것이다.
연기금을 통한 재벌 통제 고려해 볼만
한편에서는 이를 ‘연기금 사회주의’라고 우려하지만, 이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 한국적 상황에서는 연기금을 통해 재벌의 지배구조에 개입하고 경영성과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충분한 재무적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매우 귀한 축복과 소중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
물론 시장경제 하에서 재벌 설립자들이 기여한 창업정신과 경영 헌신 노력 역시 적정하게 인정해야 하나, 이에 대한 지분 인정과 평가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비리와 부정으로 점철한 역사적 배경, 국민 모두가 합심하여 이룬 교육과 문화적 기반, 사회전체가 치룬 희생과 땀의 대가 등을 함께 균형적으로 고려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현재의 창업가문 후손들이 소유한 재벌의 지분과 영향은 지나치게 과다하며, 그동안 상속 과정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졌던 편법과 비리 역시 참조해야 한다.
또한 국민의 노후대책인 연기금의 수익성은 결국 그 나라의 경제운용 성과와 연동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연기금이 국민 대다수의 이해를 대변해서 국민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요 재벌의 경영성과에 개입하여 함께 공유해야 한다.
또는 최소한 문제가 되는 10대 주요 재벌 기업의 경영진 선정과 경영 평가에 대해 연기금이 대주주로서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한국 산업사의 정상화’라는 맥락에서도 매우 정당하고 마땅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오너출신이 아니라 고용된 경영진의 지위에 대해 회의를 표하나, 외환위기와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지 한 세대가 지난 오늘, 한국사회도 서구식 글로벌 스탠다드에 대한 경험을 충분히 겪었고 질높은 전문경영 역량이 충분히 확보되었다고 판단한다.
그래도 혹시 필요하다면 마땅히 외국의 스타 경영인을 영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검증되지 않은 가문출신 경영진들의 자질과 능력을 문제 삼아야 옳은 일이다.
연기금을 통한 개입 뿐 아니라 시장을 통한 평가, 소액 주주운동을 통한 견제, 사외이사제의 취지에 맞는 운용, 그리고 시민사회의 공론화 등을 통해 전문경영인 제도에 대한 다양한 평가와 견제 그리고 적극적 지원이 가능하리라 본다.
지속가능한 성장 고민해야 할 때
일반적으로 기업전략을 수립할 때, 수익성, 성장, 지속가능 이라는 3대 요소를 균형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이 그간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성장의 개념이 심각한 도전과 비판을 받게 되었다. 금융시스템 자체가 근본적으로 불신을 당하고, 지구 자원과 에너지의 한계로 인하여 성장 중심의 경제운용에 빨간불이 켜졌다. 온난화 등 기후변화와 환경조건이 인류의 지속적인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따라서 기업의 경영전략에서 성장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전략적 목표는 마땅히 재검토 되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이제는 ‘지속가능’이라는 조건에 일차적 방점을 두고 수익성과 성장도 지속가능조건을 창출하는 전제와 여건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역성장이 오히려 지속가능한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할 수도 있다는 점까지 인정해야 한다.
기업경영인의 가장 주요한 역할은 미래에 다가올 파산의 위험을 미리 예견하고 대비하는 것이어야 한다.
국제적 대외환경이 격변하고 새로운 기술혁신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독과점의 특혜에 익숙하고 공룡의 몸집을 지닌 거대한 규모의 재벌기업구조로는 이에 적응하기에 명백한 어려움과 한계가 존재한다.
필자가 앞선 칼럼에서 여러 번 강조하였듯이, 상황 대처에 둔한 근육질적인 제조중심의 산업구조와 군대식 명령적 수직 결정구조를 혁파해야 한다. 또 상황에 기민하게 응동할 수 있는 연성적 산업을 육성하고 목표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수평적 자율조직으로 기업의 구조와 문화를 재편성해야 하는 것은 재벌의 문제를 떠나 한국경제 미래의 사활적 과제이다.
수평적 분권적 기업조직 문화 정착돼야
경영의 성과와 과정에 대해서 전적인 책임을 지는 전문경영인 체제의 도입과 더불어 기업 내부의 조직 관행과 문화에도 대변혁이 필요하다.
개발독재의 쌍생아처럼 과거 군대식 명령하달과 일방적 평가방식이 횡행하는 그간의 관행에서 탈피하여, 현대경영의 구루로 평가되는 피터 드러커의 가르침대로 기업전략에 의해 설정된 목표관리에 기업의 모든 종업원들이 민주적이고 자발적이며 창의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과 스위스의 조직문화를 오랫동안 깊이 연구해온 최동석 경영학박사는 여러 권의 저서를 통하여 기업조직에도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수평적 자율적 조직)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종업원은 단순한 경영 자원이 아니라, 영혼을 지니고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존재이다’라고 선언한다.
기업 활동에 참여하는 종업원들이 명령과 강요에 의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성과 창의성을 통해 자기실현의 의미를 발견할 때 기업 역시 탁월한 성과를 통해 발전과 지속을 이룰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가오는 미래시대를 대비하는 매우 적절한 경영조직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단시간 안에 기업의 조직관행과 문화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이다. 이 문제에 대해 깊이 들어가려면 ‘기업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할 것이고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몇 권의 책을 써도 부족할 것이다.
다만 기업조직에 법인격을 부여한 것은 응당한 사회적 역할을 인정하고 기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기업은 수익을 내고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기본적 역할에 더하여 자신이 속해 있는 국가가 정한 법규와 원칙을 따라야 하고 사회적 규범에 응해야 하며 가능한 범위에서 지역사회에 적정한 공헌과 합당한 기여를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기업의 관행보다 우선하는 국가와 사회의 법규와 규범을 위반하거나 무시할 경우에는 내부 종업원은 이를 시정하도록 요구해야 할 도덕적 근거를 가지며, 시정되지 않을 때는 외부에 고발하고 알려야 할 의무를 지닌다.
내부고발의 유인체제 만들어야
한국적 기업 문화에서 내부고발행위(whistle blower)를 마치 배신자로 경멸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매우 좁은 단견이다.
지난 수십 년간 온갖 비리와 불법으로 물들은 재벌들의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변에 대한 불이익과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내부적 고발을 실천하는 행위는 사회발전에 크게 헌신하고 기여하는 것으로 적극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당연히 내부 고발인의 지위와 안전을 국가에서 법적으로 철저히 보호하고 경제적으로 충분히 보상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링컨법이라고 불리는 부정청구법(false claims act)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만하다. 조직 내에 누구라도 부정행위를 인지하였을 경우 국가를 대신하여 부정행위에 대하여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승소할 경우 해당 금액의 최고 30%까지 보상받는다고 한다. 내부고발에 따른 위험과 불이익을 충분히 감수할 만한 유인책이다.
정경유착의 고리로써 재벌기업 모두가 예외 없이 참여한 건설업이 과거 정경유착의 자금을 만들어 내는 통로이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우선 건설업이 가지는 업종 특유의 현장회계 특성상 검은 돈을 조성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고 보인다. 더구나 해외 건설의 경우에는 외화가득의 변형된 수출행위로 평가되면서 과다한 정책금융적 혜택과 수주 비리에 대한 면책을 받아왔다고 볼 수 있다.
국내 건설의 경우에도 주택건설사업을 할 경우 외국에서는 실례를 찾기 어려운 ‘선분양방식’을 허용하여 땅을 짚고 헤엄치며 황금알을 만지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해 지면서 금융기관을 경유한 정경유착과 비리부패의 관례가 뿌리 깊게 형성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정경유착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건설 분야에 대해 면밀한 검토와 현명한 대책이 필요하다.
재벌-중소기업 간 협력적 산업구조
매년 50-60조에 달하는 재벌들의 R&D 연구활동비 지출의 일부를 개별 재벌기업 단위로 추진하는 것과 별도로, 목적과 주제에 따라서 몸집이 가벼운 전문적인 중소기업과 연합하여 분업형, 합자형, 기여배분형 등 다양한 협력체계를 검토해야 한다.
대규모의 국책 전략과제인 경우 정부 연구기관, 대학 그리고 전문업체 등이 함께 참여하는 협동형 CJV(common joint venture)을 고려해야 한다.
이 문제에 전착해 온 전병유 한신대 교수는 최근 발표를 통해 전문적 중소기업은 인적 재정적 자원이 빈약하고 경영적 경험이 부족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 전문기업의 신속한 혁신능력에 재벌기업이 제공할 수 있는 재무적 인적 자원을 보태 새로운 합자방식의 혁신기업을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
이처럼 기존과는 다른 규칙에 의거한 기업 가버넌스와 새로운 거래모델을 창출하여 미래의 기술시대에 대비하자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단순히 재벌기업과 전문 중소기업의 협력을 넘어서 활용가능한 모든 자산을 매개로 참여자 간에 협력적 수평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자산의 공유방식으로 혁신적 산업 클러스터를 형성하여 참여하는 주체들 간의 협력과 신뢰를 고양하고 조건적 상호성과 이타적 징벌방식을 도입하는 등 산업영역의 새로운 민주제적 실험을 제안한다.
위의 제안에 보태여 필자는 그간 재벌체제에만 의존해 왔던 현재의 수직적이며 근육질적인 단일 산업구조(single dependent pillar system)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유연하며 협력적인 산업구조( multi-supportive pillars system)로의 전환이 매우 절실하다고 주장하고 싶다.
사회적 영향이 지대한 재벌 기업의 역할과 활동범위는 단순히 기업조직내로 한정할 수 없다. 함께하는 협력업체들 역시 기업의 동동한 참여자로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하며, 시장과 고객과 사회와 환경을 함께 고려하는 이해관계자들의 참여자본주의적 시각이 요구된다.
과거 방식으로 협력업체를 쥐어짜서 이중적 차별적 임금구조를 조장해서는 안 되며, 납품업체들이 개발한 혁신적 창의적 기술을 갑의 입장에서 갈취하고 도용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혹독한 처벌과 제재가 필요하다.
정부관련 부처들은 협력업체와는 정당하고 공정한 방식으로 거래관계가 이루어지도록 감독하고, 일정한 수준의 성과공유제 도입도 제도적으로 고려해 볼만 한다.
거래 계약의 자동연장 조항을 강화하고, 계약을 부당하게 파기할 때는 하청권 등을 도입하여 거래협력 업체의 법적 지위를 강화해서 사전에 조정과 협의가 가능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부득이하게 해약을 인정해야할 때는 선행투자와 사업정리에 따르는 손실을 적정하게 보상하도록 규정해야 한다.
재벌 기업 단위의 경영참여는 회의적
일반기업과는 달리 재벌노조의 경영참여 부분은 재고가 필요하다. 재벌이라는 기득권 집단과 협력적 공범이 된 재벌노조가 국민경제와 사회에 순기능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자신들의 이해를 희생하고 양보를 할 수 있을지는 판단이 어렵다.
이미 한국 재벌기업과 공기업의 임금수준은 노동시간과 무관하게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에 달하여 국제경쟁력의 장애로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재벌기업 내의 높은 임금구조는 결국 사내 일거리가 저임을 찾아 과다하게 외주와 하청으로 이동하게 하고 이중적 다층적 임금의 차별구조를 만들어 낸 주요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저임에 의존한 외주와 하청의 관행은 결국 장기적으로 한국산업의 경쟁력을 전반적으로 고갈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필자는 산별노조가 아닌 기업별 노조를 중심으로 형성된 현재의 입지조건에서 기업 단위의 노조가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는 폐단이 극심한 산업간, 기업간, 직종간 격차와 단절을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다만 노조간부가 사외이사진의 하나로 참여하여 경영정보를 공유하는 수준은 매우 추천할 만하다. 재벌 기업의 민주적 책임경영 여부는 개별 조직의 단세포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국민경제 전반적 필요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내부에서는 실행단위의 조직 관행과 문화가 DAO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외적으로는 가난한 서민을 대변하는 진보적인 정당이 주요한 정치세력으로 자리를 잡아 법적인 강제가 이루어 질 때만이 가능하다고 판단한다.
재벌개혁, 차기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다뤄야
한국의 재벌체제는 군사정권의 개발독재 방식으로 지난 50-60여 년간 한국의 가용가능한 모든 자원을 독점하고 노동과 사회 제 세력을 억압하는 가운데 온갖 정책적 지원과 특혜를 받아 가면서 세계적 기업군으로 성장하였다. 그사이 한국인 개인별 PPP수준이 선진국에 접근한 점에 대해서는 재벌기업들의 역할이 지대하였다고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87년 민주화 운동의 성과로 군사정권에서 민주정권으로 이행하면서 군사정권의 재벌기업에 대한 개입과 통제가 사라지고 때마침 불어 닥친 IMF 사태이후 한국사회에 뿌리를 내린 신자유주의적 흐름에 맞추어 월가의 금융자본과 결합하면서 그동안의 독과점적인 지위를 더욱 강화하고 산업적 질서를 교란하며 시장을 무력화시키는(gate-keeper) 한편 막강한 재력과 조직기반으로 행정과 정치조직을 뒤에서 조정하는 배후세력으로 군림하게(shadow rule-setter) 이르렀다.
지난해 12월, 최순실 국정조사 특위에서 재벌 회장들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
이러한 결과로 이중적 다층적 격리와 차별적 구조가 심화되어 청년실업이 40%선에 이를 만큼 수평적, 수직적 이동성이 지극히 제한되었으며, 양극화의 폐해가 OECD국가들 중에 가장 극심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는 한국사회를 하나의 국민적 정체(政體) 단위로 유지하고 지속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졌다.
동시에 외부적으로는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세계적 흐름으로 저성장 또는 탈성장이 구조화하였고, 기후변화와 함께 지구적 자원과 에너지의 한계가 지속가능한 조건을 위협하고 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등장이 상징하듯이 국수적 보호무역이 급격히 확산될 조짐이 나타나고, 기존의 산업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새로운 기술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격변하는 국제적 환경변화와 국내의 극심한 양극화 조건으로 인해 더 이상 지금과 같은 족벌경영 방식의 재벌체제를 묵인하고 유지할 수 없게 됐다.
문제는 오랫동안 재벌체제에 전적으로 의존해 온 한국경제의 현실적 조건에서 개혁 프로그램을 실행하다 혹시 발생할 수 있는 단기적 혼란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는 결국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정치권력이 의지를 갖고 수행해야할 시대적 과제이기도 하다.
명명백백하게 재벌의 향방은 창업가문의 소유문제를 떠나서 한국사회의 미래를 좌우하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가문 중심의 족벌경영을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
우선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금산겸업을 해체하여야 하며, 재벌의 지배구조를 지주회사 중심으로 재편하여 순환과 상호출자를 금지하고 계열사 간의 부당한 내부거래를 철저히 감시하여 필요에 따라서는 매각처분을 강제하고, 대주주인 연기금을 통하여 반드시 역량을 갖춘 전문경영인 체제로 안착시켜야 한다.
재벌의 금력을 이용하여 정치권과 행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철저히 차단하고, 격변하는 외부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재벌의 개별적 이해를 뛰어넘는 다양한 협업과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재벌에 대한 단일적 의존구조에서 벗어나 연성적이고 다양하며 혁신적이고 전문화된 산업구조로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이를 위하여 정부, 재벌, 대학들이 함께 협력하여 전문기업들과 혁신 벤처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자산공유적 플랫홈을 구상해야 한다.
사람이 자산이고 지식이 미래 산업인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관행과 문화가 변해야 한다. 명령과 강요 대신 자발적 참여와 창의적 업무수행을 통하여 재벌조직 전체가 개방적 수평적 자율적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재벌 단위들과 사업을 함께하는 협력업체와는 성과와 어려움을 공유하는 이해관계자 참여방식을 통하여 차별과 격차의 벽을 극복하고, 전반적인 경제운용의 성과를 정부가 매개하여 전 국민이 공정하게 함께 누릴 수 있는 법적 제도적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재벌체제가 이룩한 산업경제의 성과와 폐해는 현재 한국사회의 토대이자 조건이다. 이를 섣불리 해체하거나 개혁한다고 교각살우의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된다.
재벌의 장점은 장점대로 살려가면서 폐단을 척결하고, 지배구조를 혁파하여 폐쇄적 경영에서 국민적 통제가 가능한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장 질서를 회복해 가면서 미래를 위한 다양한 경제적 산업적 정책을 준비하고 실행하여 나가야 한다.
지난달 26일, 앞으로 5년 동안 홍콩 특별행정구를 이끌 제5대 행정장관 선거는 예상대로 싱겁게 끝났다.
중국의 적극 지지를 등에 업은 친중파 캐리 람(林鄭月娥·59) 전 홍콩 정무사장이 선거인단의 유효 투표수 1163표 중 777표를 얻어 당선됐다. 여성으로는 최초다.
지난달 26일, 캐리 람(林鄭月娥) 후보가 홍콩특별행정구 제5대 행정장관으로 당선된후 기자회견을 가졌다.
2014년 우산혁명 이후 홍콩의 자주화 목소리 커져
완전 보통 직선제 행정장관 선거를 요구하며 타올랐던 2014년 우산혁명의 열기를 떠올리면 다소 허망한 결과다. 직선제로 뽑더라도 입맛에 맞는 2~3명의 후보 중에서 고르게 하겠다는 중국의 조치에 맞서 홍콩 시민들은 뜨겁게 일어났었다.
‘무늬만 직선제’ 제안은 결국 입법회에서 무산됐지만 크게 보면 대세는 막지 못한 셈이다.
오히려 중국의 무늬만 직선제 제안이라도 받아들이는 게 나았을까? 역사적 후퇴는 아니었을까? 답은 홍콩 시민들이 쥐고 있을 것이다.
우산혁명을 강경 진압한 공로로 행정장관이 된 것이나 다름없는 캐리 람의 향후 행보도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간신히 절반을 넘긴 689표를 얻어 당선됐던 전임자 렁춘잉(梁振英) 행정장관은 임기 내내 ‘689’라고 조롱당했다. 캐리 람의 득표는 그보단 많았지만 홍콩 700만 민심을 대변하기는 턱없이 부족한 수다. 그 역시 앞으로 ‘777’로 조롱을 받으며 끝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홍콩의 미래가 분기점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홍콩 시민과 학생들이 중국의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에 반대하며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발생했는데, 당시 시위참가자들이 최루탄을 피하기 위해 우산을 많이 썼기 때문에 “우산 혁명(Umbrella Revolution)”으로 불린다.
우산혁명에 이어 지난 입법회 선거에서 홍콩의 자주를 주장하는 우산혁명의 주역들이 대거 의회 입성에 성공했다. (☞ 홍콩의 ‘젊은 그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20년째, ‘일국양제’의 성공적 정착이라는 중국의 자화자찬과는 달리 홍콩 젊은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으로 매김하고 있다.
마거릿 대처에 빗대 ‘철의 여인’이라고 불렸던 람 당선자가 여전히 강경책으로 홍콩을 휘어잡을 수 있을까?
‘1등 소녀’ → ‘운동권학생’ → ‘철의 여인’
람 당선자는 1957년 중국 저장성 저우산시 출신의 저소득층 부모 아래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부모는 교육 수준이 낮았고 집안 형편은 가난했다. 다른 가족과 조그만 아파트를 나눠 써야 할 정도였다.
책상이 없어 침대에 앉아 숙제를 해야 할 정도였지만 그는 초중등 교육을 받았던 13년 내내 반에서 거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유일하게 1등을 놓쳤을 때가 있었는데 “왜 내가 1등이 아닐까”라며 울었다고 한다.
캐리 람의 어린시절(왼쪽)과 젊은 시절의 모습 (사진출처: South China Morning Post)
홍콩대에 입학해 사회복지를 전공으로 택했던 그는 학생운동에 몸담기도 한다.
저소득층 지원과 좌파 학생 퇴학 철회를 요구하는 학생회 시위 등에 적극 참여했다. 여기서 훗날 범민주파 입법의원이 되는 이들과도 알고 지내게 된다.
사회를 좀 더 이해하고 학생운동에 깊게 참여하기 위해서 람은 전공까지 사회학으로 바꾸고 사회과학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한다.
람은 1980년 대학 졸업 뒤 홍콩 행정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다양한 부서를 거친다.
홍콩 정부가 심각한 재정 적자에 시달리던 2000년에 사회복지국장으로 임명돼 사회보장 제도 긴축에 나서기도 한다. 복지 수혜자를 홍콩 거주 8년 이상인 자로 제한하는 정책을 펴서 새로운 이민자들을 배제시킨 것이다.
람은 2007년 도널드 창 행정장관에 의해 개발국장에 임명된다. 그는 취임 첫날부터 퀸즈 피어와 스타 페리 부두 철거 문제를 만지기 시작한다. 특히 퀸즈 피어는 역대 영국 총독들이 부임할 때 늘 입항했던 곳이며 영국 식민 통치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시민들의 추억이 어린 공간이었다.
홍콩 정부는 노후화된 이곳을 철거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환경보호와 문화보존의 입장에서 반대하는 시민운동가들도 많았다.
그러나 람은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주지 말라”며 철거를 강행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거친 싸움꾼(tough fighter)’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편으로는 신계 지역의 불법 주택건축을 단속해 시민의 호응을 얻기도 한다.
2012년 취임한 렁충잉 행정장관(왼쪽). 그는 케리 람을 서열 2위인 정무사장에 임명했다.
2012년 취임한 렁춘잉 행정장관은 람을 국무총리격인 정무사장에 앉힌다.
그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가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를 ‘무늬만 직선제’로 바꾸기로 결정하자 선거제도 개정을 총괄한다.
이로 인해 우산혁명이 촉발되지만 람은 학생 지도자들과 공개토론까지 벌이며 강경한 태도를 고수한다. 직선제 요구가 홍콩 기본법과 전인대 상무위의 결정 틀을 벗어난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대학 시절 어려운 상황에 있던 야마테이 지역 보트피플들에게 관심을 가져 학생운동을 했다는 람에게서는 한국 운동권 출신 보수 정치인들의 모습이 투영되기도 한다.
내가 해봤더니 안 된다, 이미 가능성이 없는 얘기다 라는 태도로 우산혁명의 젊은이들을 설득하려는 모습에서 그렇다.
람은 기어이 선거안 철회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79일 만에 시위대를 강제해산 시킨다. 체포자는 1000여명에 달했다.
람에게는 ‘철의 여인’ ‘홍콩판 마거릿 대처’라는 별명이 붙었다. 중국 수뇌부의 마음에 쏙 들었음은 물론이다. 반대로 한때 받았던 시민들의 높은 지지도는 급락했다.
베이징의 ‘보이지 않는 손’
람은 2017년 임기가 끝나면 가족들과 영국의 시골마을로 돌아가 은퇴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의 남편은 1982년 케임브리지 대학 연수 시절 만난 수학자 시우포 람 베이징 수도사범대 교수다. 남편은 영국 국적이며 두 아들 역시 영국 국적으로 영국의 대학을 다녔다.
캐리 람이 지난 3월 홍콩 행정장관에 당선된 직후 남편(왼쪽 첫번째), 아들(오른쪽 첫번째)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럼운 2017년 1월 정무사장직을 사임하고 행정장관 선거 출마를 발표한다. 그녀의 남편은 평소 “홍콩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다면 아마도 나중에 인생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공직생활을 격려해 줬다고 한다.
선거 직전 여론조사에서는 친중파에 맞선 야권인 범민주파의 지지를 받았던 존 창(曾俊華) 전 재정사장(기획재정부 장관 격)이 52.8%로 1위를 기록했다. 람은 32.1%로 2위에 그쳤다.
그러나 실제 선거에서 존 창은 365표를 얻는 데 그쳤다. 람은 여론조사에서 1위를 하지 않고도 당선된 첫 행정장관이 됐다. 350만 유권자 중 25만 명 남짓이 1200명의 선거인단을 뽑아 행정장관을 선출하는 간선 중의 간선에서만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이미 중국은 홍콩 행정장관을 내정하다시피 했다. 장더장(張德江)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일찌감치 선거인단 주요 인사를 불러 “공산당이 미는 유일한 후보는 람”이라고 메시지를 전했다.
이번 행정장관 선거에는 모두 5명이 출마했다. 왼쪽부터 Woo Kwok-hing, Regina Ip, John Tsang, Carrie Lam and Leung Kwok Hung. 그러나 중국 본토는 노골적으로 케리 람을 지원했다.
렁춘인 현 행정장관이 예상을 깨고 연임을 전격 포기한 것도 람의 출마 발판을 마련해주려는 것이었다는 관측도 나왔다. 행정장관 선거가 열린 홍콩컨벤션센터 맞은편에서는 중국의 선거 개입을 반대하고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위대의 구호가 울려 퍼졌지만 그뿐이었다.
이미 렁춘잉 전임 장관 때부터 그랬지만 이제 시진핑 주석은 노골적으로 자리 배치조차 ‘상사–부하’ 관계임을 강조한다.
지난 11일 람 당선자와 만난 시 주석은 테이블 상석에 앉았고 측면에 앉은 람 당선자와 업무회의 방식으로 대화를 나눴다.
후진타오 주석 때는 렁춘잉 장관과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눴던 것을 생각하면 점점 작은 것 하나에서조차 ‘중국의 일부’임을 새겨 넣고 있는 셈이다.
일국양제의 ‘외줄타기’, 성공할까
람은 홍콩 반환 20주년 기념일인 오는 7월1일 행정장관에 취임한다.
람은 당선 후 “홍콩은 심각한 분열과 좌절감을 안고 있다”며 “나의 최우선 과제는 분열을 치유하고 좌절감을 극복하고, 우리 사회를 하나로 모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직선제를 향한 열망이 좌절된 데다 교육과 주택, 일자리 문제까지 누적된 홍콩에서 람이 어느 정도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에 대한 ‘불만’을 막는 방패막이 정도로 임기를 끝낼지도 모른다.
지난 4월 11일, 케리 람 홍콩 행정장관 당선자가 리커창 중국 총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 사진, 출처:South China Morning Post). 그러나 케리 람의 선출에 대해 우산혁명의 주역들은 불만이 많다. (오른쪽 사진, 출처:BBC)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렇게 보도했다. “캐리 람은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냉랭한 민심을 되돌리지 못한다면 홍콩의 골 깊은 반중 정서와 중국 정부의 압력 사이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서민들의 삶과 동떨어진 그의 모습에서 불안의 징후는 증폭된다.
올해 1월 람은 정무사장 사퇴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화장실 휴지가 떨어져서 택시를 타고 옛 관저로 가서 휴지를 몇 통을 가져왔다”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오랜 공직 생활을 마치고 민간인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는 취지로 한 발언이었으나 “휴지를 사 본 적도 없나” “왜 관저 휴지를 가져와야 하나”는 시민들의 비난에 직면했다.
최근에는 지하철 이용하는데 회전식 개찰구를 지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하다 수행원의 도움을 받고 간신히 통과하는 모습이 TV화면에 잡혀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람은 학창시절 가톨릭 계열 여학교에서 홍콩 사람들에게 봉사하겠다는 열망을 키웠고, 학생회장도 맡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람은 선생님에게 학생들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선생님은 그녀에게 말했다고 한다. “통제하지 말고, 일깨워라.(You don’t control, you inspire.)” 그 선생님의 말씀이 오늘날 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우연인지 필연인지 중국 귀속 후 역대 홍콩 행정장관들의 말로는 대부분 좋지 않았다. 중국 중앙정부의 통제와 홍콩 시민들의 독립 열망의 가운데서 외줄타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번 주, 대한민국의 정부는 중견국가(middle power)로서의 현실을 고려한 외교 정책을 수립하는 데에 일정한 진전을 보였다. 동아시아 지역의 ‘큰 게임’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동맹국인 미국과 현대적이면서 전향적이고 효율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평화실현 5원칙은 하나의 탁월한 출발이다. ‘제재와 압박(sanctions and pressure)’이라는 백악관의 환상과 그 네 번째 원칙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 모순을 조정해야 할 필요가 여전히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한반도 평화정착 ▲한반도 비핵화 ▲남북문제의 주도적 해결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북한 도발에 대한 단호한 대응 등 한반도 평화실현 5대 원칙을 천명했다.(사진: 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주 국회에서 명확하게 언급한 ‘3불(3 No)’ 원칙 또한 커다란 진전이다. 한국이 양보할 수 없는 독자적 이해관계가 당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이 언급이 6개월 전에 나왔을 수도 있겠지만, 수차례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재 시점도 전혀 늦지 않다. 시진핑의 불법적인 보복이 가져온 80억 달러의 손해에 대하여 모종의 보상을 요구하지 않은 점은 아쉽지만, 사드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은 여전히 사용할 수 있는 패를 쥐고 있다.
문 대통령, 한반도 평화실현 5대 원칙 고수할 수 있을까
그로부터 며칠 후 문 대통령은 강 장관의 언급을 옹호하고 재확인했다. 이를 두고, 외교적 해법이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으로부터의 후퇴라느니 중국에 대한 ‘한국의 굴종’이라고 떠드는 비판은 이미 예상된 일이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설을 통해 문 대통령이 ‘김정은의 비위를 맞추고 중국의 압력에 굴복하고 있어서 믿을만한 동맹이 아니’라는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는데, 이는 문 대통령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증거일 뿐이다.
북한을 둘러싼 문제와 한미 동맹에서, 한국 정부가 지금까지 발표한 원칙들을 고수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한국이 네 번째 평화원칙에 내재된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즉 압박과 제재를 어떻게 포용할 것인지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기본적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첫째, 더 많은 무력시위 혹은 국제적 고립과 경제 전쟁이 북한을 움직이는 데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은 허구이다. 20년 전 양국 간의 성공적 합의를 거부한 것은 평양이 아니라 워싱턴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북한은 서로에게 만족스럽고 신뢰할 만한 협상으로 복귀할 수 있음을 여전히 내비치고 있지만, 미국은 그런 의지를 전혀 보이고 있지 않다. 따라서 압박과 제재란, 어떤 국가의 불법적이고 국제적으로 위협이 되는 행위를 단순히 벌주려는 것이 아닌 이상, 잘못된 문제설정에서 나온 것이다.
둘째, 북한의 ‘위협’이란 적어도 지난 15년간 잘못된 단어 선택이며 또한 과장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미국 CIA와 다수의 전문가들이 지난 수년간 내놓은 보고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이 보여준 주요한 위협이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궁지에 몰리지 않는 한, 북한이 미국이나 여타 국가에 심각한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중국이나 러시아의 역량을 위협이라고 부르지 않듯이, 북한을 용납할 수 없는 국제적 위협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수년에 걸친 전문가들의 분석과 달리, 김정은을 손 쓸 수 없는 미치광이로 몰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미국의 주장이 허위라는 점을 반증한다.
셋째, 현재 한국은, 미국 정부가 당황스럽게도,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미국이 이를 거부한다는 사실 또한 언론인과 전문가 그리고 정책결정자들이 주목해야 할 무언가를 드러낸다. 기존의 성공적인 합의는 서로가 만족할 만한 상호이익에 바탕을 두었는데, 트럼프 정부에게는, 이전의 두 정부도 마찬가지지만, 이를 다시 창출할 로드맵 혹은 계획이 전혀 없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요건은, 언제나 그랬듯이, 경제와 안보를 기반으로 하는 플랜이다.
한국 주도로 관계국들 연합 이끌어내야
만일 한국 정부가 신뢰할 만한 플랜을 제출하고, UN을 비롯하여 의욕적이고도 강력한 지지자들을 규합할 수 있다면, 한국은 오랫동안 이루지 못했던 염원, 즉 관계국들의 연합(coalition)을 이끌어 문제를 해결한다는 염원을 실현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여기에 우호적인 중국의 힘과 이해관계가 필요하다. 중국의 힘과 이해관계가 우호적이지 않을 경우, 중국의 외교적, 경제적 힘이 중국과 한국 및 미국의 공동이익을 증진하는 데 성공적으로 사용될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의 이전 두 행정부 그리고 미국의 지난 세 행정부는 중국의 힘과 이해관계가 우호적이지 않아도 상관없을 것이라는 전술적 환상에 젖어 있었다.
한국 정부의 명확하고도 실질적인 새 외교정책을 추진하는 데에는 다른 장애물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방문은 한국 정부가 원칙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며, 불가피하지만 얼른 처리하고 잊어야 할 것으로 보아야 한다. 트럼프 방문 이후 한국이 취해야 할 선택은 더욱 명백하며 한국이 져야 할 책임은 보다 긴급하다. 취소되기는 했지만 비무장지대 방문의 깜짝쇼를 벌이고 북한에 ‘항복’을 요구하는 국회 연설을 하는 등 트럼프가 뻔한 수를 둔 반면, 문재인 정부는 올바른 입장을 취하면서 현명하고도 인상적으로 미국 대표를 맞이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한국 정부가 지난주 새로이 표명한 입장을 약화시키는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제는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운전석’에 제대로 앉아야 할 때다.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전국개인택시발전협의회 지지 선언식에서 택시 운전석에 탑승해 기사들과 함께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는 모습.( 사진: 뉴시스)
트럼프의 술수는 뻔해 보인다. “너희에게는 필요도 없겠지만, 미국 무기를 사들이는데 수십억 달러를 낭비해 주기만 한다면 너희 나라를 날려버리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거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새로운 것도 아니다. 한편 한국의 언론과 정책 전문가 상당수가, 일시적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라를 위한 염원을 포기한 듯이 보인다. 두 달 전만 해도 외교적 성과를 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정부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제 와서는 워싱턴의 무모한 아마추어들이 꾸며낸 가상의 전쟁을 회피했다는 사실에 그저 만족한 듯이 보인다.
한국 언론, 나라 위한 염원 포기한 듯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그러한 마피아 식 강탈의 수용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문 대통령에게는 해야 할 중대한 임무가 있으며 관련자들을 이끌어 합의에 도달하고자 하는 포부가 있다. 문 대통령이 이번 주 새롭게 시작할 것을 기대한다. 트럼프가 방문하는 동안, 청와대가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킨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가정하는 것은 전략적 실수가 될 것이다. 압박과 제재라는 환상을 추종한다면, 이제 새롭게 밝힌 명확한 원칙은 엉망이 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운전석’에 앉기를 두려워하거나 그럴 능력이 없을 경우, 누군가가 이미 뒷좌석을 차지하고 있으며 향후 4년간 트렁크에 구겨 넣어진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트럼프의 표현대로 하자면 ‘슬픈’ 일이다.
거대한 삼성, "그곳에서 누군가가 위험했고, 누군가가 죽었고, 누군가가 병에 걸렸다" 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우리 사회는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삼성 백혈병’으로 대표되는 직업병 싸움의 이야기입니다.
10년 전 삼성전자에서 일을 하던 황유미는 급성골수성백혈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속초상고를 다니던 그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삼성전자에 들어갑니다. 1년 반만에 얻은 병이었습니다. 그녀와 같은 일을 하던 이숙영씨도 같은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처음 그녀의 아버지가 "삼성이 딸을 죽였다!"고 문제제기를 했을 때, 아주 많은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언론에서 봤던 반도체 산업은 깨끗해보였고, 삼성 역시 전면 부인해 왔습니다.
한 개인이 대기업을 상대로 싸우는 일은, 생각만 해도 막막합니다. 그러나 "삼성 백혈병"의 소문은 수많은 피해자들을 세상에 드러나게 했습니다. 2017년 현재까지 삼성반도체/LCD공장에서의 직업병 피해제보만 230여명 입니다.
삼성을 상대로 시작한 싸움은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 다른 피해자를 만나고, 가족을 만나고, 시민들을 만나며 10년의 세월을 건넜습니다. 황유미의 아버님은 삼성전자 정문도 찾아가서 유인물도 뿌리고, 삼성전자 공장이 있는 수원에 가서도 행진도 하고 마이크도 잡았습니다. 언론에도 적극적으로 알리고, 기회가 있으면 외국에 나가서도 이 일을 알렸습니다. 이제 삼성전자 직업병 인정 투쟁은 아버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28일 오후 서울 논현동 건설회관 소회의실에서 고 황유미씨의 부친인 황상기씨를 포함한 반올림 관계자들과 이인용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사장을 중심으로 한 삼성전자측이 2차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민중의소리
하지만 지난 1월 14일, 삼성반도체 화성공장의 하청업체에서 또 한명의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79번째 죽음입니다. 10년을 위험하다고 경고했지만 여전히 위험합니다. 변화가 있다면, 하청 노동자의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위험성이 지적된 공정은 자동화 설비로 대체되고, 하청 노동자로 대체 되었습니다. 외주업체, 협력업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가졌지만, 그들은 그냥 삼성의 일을 합니다. 78번째 죽음도 하청 노동자였습니다. 위험의 피해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더니, 이제는 인건비도 절감하고 책임도 안지겠다는 꼼수 입니다.
삼성이 이 사회 곳곳에 만들어둔 신화는 우리의 눈을 가렸습니다. 최첨단 클린룸은 반도체를 보호했을 뿐 그 첨단기술에 사람에 대한 예의는 없었습니다. 우주복같이 생긴 새하얀 방진복은 사람을 보호하는 기능이 없습니다. 그저 사람 몸에서 각질이나 먼지가 떨어지지 않게 할 뿐입니다. 반도체가 만들어지는 클린룸에서는 수백 가지 화학물질을 쓰지만, 노동자는 스스로 어떤 약품을 쓰는지 몰랐습니다. 그렇게 벤젠에 노출되고, 전리방사선에도 노출되고, 아직까지도 무엇인지 모르는 약품이 노출되었습니다. 공장 안에 있던 수많은 여성들은 생리불순이나 피부병에 시달렸지만 직업병이라고 의심하긴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불임이나 몸에 독성을 가지고 살게 되신 분들도 있고, 암에 걸려 돌아가신 분도 있습니다.
삼성은 공장 담벼락을 넘어 하청에 재하청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작년, 20대 노동자 여러 명이 동시다발적으로 실명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들은 최저임금을 받던 파견노동자들이었고, 우리가 사용하는 그 휴대폰의 부품을 만들었습니다. 같은 기능을 하지만 실명 피해를 안줬을 에탄올 보다 메탄올이 3분의 1 가격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교과서에나 나오는 메탄올 중독은 상상도 못했다는 반응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는, 위험한 구조를 만든 삼성에게 제대로 책임도 묻지 못합니다. 방치한 정부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는 사이 많은 이들이 저임금 위험한 일자리로 내몰립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에게 430억대 뇌물공여 등의 혐의를 받고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조사를 받기 위해서 소환되고 있다.ⓒ정의철 기자
얼마 전에는 고황유미와 같은 해에 입사한 동갑내기의 백혈병 피해자의 근로복지공단 산재보험 심사 회의가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나서, 동료들로부터 자신으로 인해 작업환경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를 듣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는 백혈병을 겪고, 장을 잘라내어 장애를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지만, 이미 사망 했거나 현재 중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피해자들에 비하면, 매우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앞으로 보통의 삶을 살아가야 할 그에게, 삼성은 어떤 사죄를 해야 할까요?
황유미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되는 해에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었습니다. 매년 강남역 8번 출구, 삼성 본관 앞 에서 열리는 그녀와 그녀 동료 사망 노동자들의 추모제의 모습이 올 해는 다를 듯합니다. 가해 기업의 최고 책임자가, 구속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직업병 해결을 위한 노숙 농성은 계속되고 있고, 벌써 500일이 넘어섰습니다.
삼성이 언젠가 이 문제를 시인하고, 사과해야 한다면, 그 시기는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공정한 미래를 원하고 있습니다. 삼성의 부를 쌓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노동자들의 건강과 위험을 살피지 않는다면, 시민들과 삼성이 그 미래를 함께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병신년이 가고 정유년 새해가 왔습니다. 문득 국민가객 장사익님이 부른 노래 중에 선시(禪詩)에 우리가락을 입힌 ‘꿈’이라는 가사가 생각납니다. 대충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는 해, 오는 해, 구별할 것 없네. 겨울가고 봄이 오면 세월간 듯 하지만, 달라졌는가? 변해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사네”.
높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큰스님의 가르침이 담겨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진 속에 서로 얽혀 사는 중생인 우리는 해가 바뀌는 시간의 흐름 속에 간절한 바램과 못 이룬 아쉬움을 못내 떨쳐내지 못합니다.
‘피플 파워’ 보여준 2016년
2016년 한국 시민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연초부터 새누리당이 압도적으로 이기고 수구집단들이 장기적 집권체제를 위해 반동적 개헌을 추진할 것에 걱정했던 필자의 어리석음을 통쾌히 배반하고, 4.13 총선결과는 우리에게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일부에서는 413 총선의 결과에 대해 제 잘난 듯 당시 민주당 비대위원장이었던 김종인 박사의 일정한 역할을 이야기하고, 호남정서를 담아낸 안철수 의원의 정치 감각을 평가하기도 합니다만, 모두 개똥같은 잡소리입니다. 오롯이 100% 국민들의 손으로 이루어 낸 우리 모두의 승리인 것입니다.
뒤이어 형성된 여소야대의 정치지형은 기어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시민들의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이어져 왔고, 4.13 총선 승리의 배경과 성격을 확실하게 천명하였습니다.
준비한 예감처럼 작년 초에 가톨릭프레스와 가졌던 저의 인터뷰 내용을 조금은 길지만 다시 되풀이 해봅니다. 제목은 ‘한국사회의 대변혁은 가능하다’ 이였습니다.
“자연발생적인 폭발적 시민운동의 최고정점은 6.10민주항쟁이었다고 보여집니다. 그만한 힘은 다시 만들어내기 어려울 겁니다. 당시에 모두가 공감하는 대통령직선제라는 단일한 정치적 의제를 갖고 있었지만, 그 이후 우리의 상황은 정치적인 것에서 사회경제적 의제로 중심을 이동하게 됩니다.
각자 서있는 위치와 분야에 따라 이해와 관점이 복잡하고 흩어질 수밖에 없어요. 사회경제적 의제는 단일한 정치적 의제만큼 폭발적으로 묶어내기가 쉽지 않고, 87년 당시처럼 시민 역량들이 하나의 사건으로 결집되어 터져 나오는 것이 대단히 어렵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현재 시민단체나 운동은 내부에 지속가능한 역량들이 보충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적 폭발성은 다시 올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예컨대 저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몇 년 동안 공동대표로 있었습니다. 시민 개개인 삶의 고달픔과 불안에 대한 원인과 대안을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잘 정리해서 시민사회에 내던지니, 복지라는 주제가 휘발유에 불이 붙듯 확 폭발해서 올라왔어요.
이후에도 우리 삶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 휘발유를 부으면 폭발할 수 있는 가연성이 항시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 가다듬어서 정확한 방향으로 이끌어 내면 갑오동학농민군이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이후 해내지 못했던 한국사회의 대변혁, 대전환을 언젠가는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현재 감동으로 타오르고 있는 광장의 ‘촛불혁명’은 지난해에 품었던 저의 예감을 훨씬 뛰어 넘는 수준입니다.
동학농민혁명과 4.19 시민혁명과 1987년 민주항쟁의 맥을 이어가면서 스스로 진화하고 새로운 형태로 정형화해서 발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민운동 4.0’의 시대
저는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일어선 시민들의 모습을 ‘자각된 주권(Cognized Sovereignty)’ ‘시민운동 4.0’ 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일시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의 위치에서 누적되었던 판단들이 계기적인 현실상황을 인지하면서 분노와 각성으로 결집되어 형성된 것입니다. ‘이게 나라냐’로 상징되는 시민들의 요구와 갈증은 단순히 박근혜와 주변의 부역자들을 처벌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역사적인 새로운 질서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죠.
이에 반하여 직업적인 제도정치권 영역은 여전히 70여 년 전 해방정국 당시 미숙함과 반쪽자리 정부수립과정의 유치한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후하게 점수를 주어도 겨우 ‘제도정치1.5’ 수준으로 판단됩니다.
이러한 정치의 후진성의 배경에는 분단과 민족동란, 냉전체계와 군사쿠데타, 개발독재와 정경유착이라는 외적 조건의 탓도 큽니다만, 헌정사를 유린한 유력 정치인들의 정략적 탐욕에 더하여, 국민을 위한 정책을 중심으로 운영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해에 머무는 친목회 같은 현재 정당 수준에 기인합니다.
한마디로 선거철만 되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한국 정치에는 불행하게도 정당다운 유력정당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이 낙차를 따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법칙을 노자가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격찬하였듯이, 세계사적 수준에 이른 한국시민정치와 여전히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제도정치의 커다란 격차는 전자의 주도성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기 위한 시대적 과제에 대한 성찰적 토론과 합의, 이를 제도화하기 위한 다양한 입법적 절차, 이를 실천하기 위한 차기정부의 수립 등 모든 과정에 시민들의 직접적 주도적 참여가 불가피합니다. 이미 지역 단위의 민회 구성, 선거법과 헌법 개정을 위한 시민의회 등 다양한 제안과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개방적 국민경선’으로 대선에서 승리하자
몇 달 안에 치룰 것으로 예상되는 대선에서도 반드시 쟁취해야 할 민주개혁진영의 집권이라는 시대적 요청 역시 동일한 관점과 과정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잘난 개인 또는 친목회 수준의 일개 정파 수준에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시민참여라는 큰 흐름속에서 민주개혁진영의 광범한 연대와 시대적 과제에 대한 결기를 모아 축제적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후진적인 민주당만의 경선은 반드시 필패를 가져올 것입니다. 재탕방식의 후보단일화에도 국민들은 이제는 식상한 만큼 외면할 것입니다.
필자는 민주개혁진영이 대선승리라는 축제를 맞이하고, 새로운 질서의 구축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제대로 실천하기 위한 방안으로 ‘개방적 국민경선’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대선주자로 적격하고 유력한 후보군 3-5명을 국민여론에 근거하여 선출하고, 이들 간에 민주당 또는 국민의당이라는 협소한 한계를 넘어서서 완전한 국민참여 경선제를 실시하여 명실공히 민주개혁진영을 대표하는 대통령의 후보자를 지명하자는 것입니다.
선두를 차지한 정치인을 대선주자로 선출하는 것 뿐 만 아니라, 함께 참여한 유력한 정치인들이 차기 정부 내에서 주요한 책임총리와 장관직을 수행하도록 합의해 내는 것입니다. 당연히 정의당 등 진보세력도 사회분야의 장관으로 참여하는 연합정부를 구상해야 합니다.
차기정부가 실천해야할 중차대한 시대적 과제는 겨우 20% 수준의 지지를 받는 일개인과 정파로서는 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습니다. 예측하건대, 과거 방식으로 정당도 아닌 정당이라는 한계에 갇힌 채 단일화를 통하여 대통령이 되고 이를 둘러싼 좁은 인적 범위로 새로운 정부를 구성한다 한들, 일 년 안에 반드시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봉착할 것입니다.
광범한 시민적 지지를 기반으로 민주개혁세력 인사들이 함께 연대하고 합의되어 구성된 차기정부의 출현만이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 낼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미망 속에서는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없다는 선승의 반어법적 가르침을 되새기어야 합니다. 물은 낙차를 따라 흐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듯이, 정치는 민의를 따라 흘러야 가야 합니다.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과 이혼 소송 중인 임우재 삼성전기 고문이 이혼 소송 과정에서, 최지성 전 삼성미래전략실장 등 삼성그룹의 임원들이 동원돼 자신에게 이혼을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임우재 고문은 특히 최지성 전 실장의 경우 자신을 불러 “옛날 부마들은 결혼에 실패하면 산속에 들어가 살았다”며 이혼을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임우재, 지난 13일 항소이유서 제출.. 최지성 증인 신청
임우재 삼성전기 고문이 지난 13일 서울고등법원 제3가사부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다. 이부진이 임우재를 상대로 낸 이혼 및 친권자 지정 등 소송의 1심 판결은 지난 7월 20일 나왔다. 당시 서울 가정법원 가사4부는 “두 사람은 이혼하고 이부진은 임우재에게 86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임우재는 이번에 제출한 항소이유서에서, 이대로 법원이 이혼을 인정한다면 이는 ‘유책배우자에 의한 축출이혼’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근거 가운데 하나로 최지성 전 삼성미래전략실장과 미래전략실 임원들이 이혼에 개입했다는 정황을 제시했하며 최지성 전 실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최지성, 임우재 불러 “옛날 부마는 결혼 실패하면 산속에서 혼자 살아”
임우재는 이부진의 이혼 요구가 전형적인 ‘축출이혼’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축출이혼이란 배우자 일방이 상대를 쫓아내기 위해 일부러 이혼 원인을 만든 후에 이혼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말한다. 축출이혼이 인정될 경우, 사회 경제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배우자를 이유없이 쫓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법원은 이혼의 책임이 있는 유책배우자가 제기한 축출 이혼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임우재는 그 근거로, “이부진이 자신의 요구와 지시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떠한 상의도 없이 임우재의 짐을 정리하여 일방적으로 쫓아내어 버렸다는 것”, 그리고 “이부진은 회장님의 딸로서 우월적인 지위에 있고 임우재는 경호원 출신으로서 거주지, 생활방식까지 이부진에 의해 통제되는 상황이었다”는 것 등을 들었다. 임우재는 또 ‘삼성 그룹의 최고 임원인 미래전략실장과 법무팀 고문 등이 동원돼 이혼을 압박했다는 것’을 축출이혼의 또 다른 근거로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임우재는 뉴스타파와 가진 인터뷰에서 2014년 2월 경 최지성 당시 삼성미래전략실이 자신을 사무실로 불러 면담을 가졌으며, 이 면담에서 이혼에 합의할 것을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임우재는 이 과정에서 최 전 실장이 자신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전했다.
이 발언은 삼성그룹의 최고위급 임원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왕’으로, 그 딸인 이부진을 ‘공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지성 실장이 언급한 ‘시어머니 약값’과 관련해 임우재는 “어머니가 고혈압 증상이 있어 한달에 2,30만 원의 약값이 들어간다”고 덧붙였다.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은 삼성그룹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지, 이건희 일가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삼성그룹을 위해 일하는 댓가로 받는 연봉은 천문학적 액수다. 지난 2013년 공개된 최 전 실장의 연봉은 39억 7천만 원이었다. 그러나 이 액수는 연봉이 아니라 사실상 2개월치 월급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그해 3월 15일 삼성전자의 등기이사에서 물러나면서 그 전에 받은 2개월치 급여만 공개했기 때문이다. 기간을 감안할 경우 그의 연봉은 백억 원을 크게 뛰어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억 원대의 연봉을 받는 임원이 업무시간에 회장 일가의 개인적인 가족사를 해결하기 위해 면담을 가진 것은 배임에 해당될 수도 있다고 임우재 씨는 주장했다. 이혼 압박에 동원된 것은 최지성 전 실장 뿐만이 아니다. 삼성그룹 법무팀의 이종왕 고문, 미래전략실의 안모 전무 역시 강요와 종용, 회유에 동원됐다고 한다.
삼성그룹의 최고 임원인 미래전략실 실장과 법무팀 고문, 피고의 동창까지 동원하여 전방위로 피고를 압박하고 이혼을 종용하다 보니 피고로서는 굴욕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특히나 아무런 상관없는 피고 가족들까지 모욕을 당하는 것은 참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진의와 달리 이혼 합의서에 서명을 해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임우재 측 항소이유서 중
미래전략실, 세습과정에서 재산 불어나기 전 이혼 종용?
주목해야할 것은 이부진 씨와 삼성그룹 임원들이 임우재 씨에게 이혼 합의를 종용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이부진 씨와 임우재 씨는 2007년부터 별거를 시작했는데, 7년 가까이 진전되지 않았던 이혼 논의가 2014년 2월에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삼성그룹의 세습을 위해 ‘설계’된 주요한 사건들의 일지는 다음과 같다.
이러한 ‘설계’의 목표는 한 가지였다. 이재용이 가지고 있던 주식 가치를 극대화해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있게 하는 것. 이 과정에서 이재용이 가지고 있던 주식 가치는 몇 배나 불어났다. 그리고 오빠 이재용과 똑같이 에버랜드와 삼성 SDS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이부진의 재산 역시 몇 배 불어났다.
예를 들어 현재 이부진이 갖고 있는 삼성물산 주식 천 45만 6천 450주는, 본래 에버랜드 주식 209,129주였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3천 8백억 원 어치 정도다. (에버랜드는 당시 비상장 주식으로 가치 평가가 어렵지만, 2011년 KCC가 에버랜드 주식을 사들일 때 가격인 182만 원을 적용했다.) 그런데 이 3천 8백억 원어치의 주식이 제일모직 패션 부문 인수와 액면분할, 삼성물산과의 합병(이 과정에서 삼성이 최순실, 박근혜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사실은 이미 드러난 바 있다.)을 거치면서 1조 4천억 원으로 불어났다. (2017년 9월 19일 종가 기준)
결국, 이혼 종용 시점을 보면, 이건희로부터 이재용으로의 세습 과정을 계획하고 있던 삼성 미래전략실이 이재용과 더불어 이부진의 재산이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임우재와의 이혼을 마무리하려고 했던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임우재 “재산 증식과정에 이부진 역할 있다.. 분할 청구 대상”
한편 1심 법원이 임우재 측에 86억 원의 재산 분할을 명령한 것과 관련해, 임우재 측은 재판부가 이부진이 보유한 주식은 제외하고 부동산과 현금만 분할 대상으로 봤으며, 그 비율도 85대 15여서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부진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도 재산 분할 대상으로 포함시킬 것과 분할 비율은 70대 30으로 조정할 것을 요구했다.
임우재 측의 주요 논거는, 재판부가 이부진의 ‘특유재산’이라고 본 주식을 특유재산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앞서 뉴스타파는 이부진이 재산 분할을 회피하기 위해 보유한 주식에 대해 편법 상속을 스스로 인정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관련기사:이부진, 재산 분할 피하려 ‘편법상속’ 스스로 인정). 그런데 임우재 측은 반대로, 이부진 씨가 보유한 주식은 전액 상속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이부진 씨가 재산 증식 과정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임우재 측은 그 근거로 재산이 증식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삼성 에버랜드와 제일모직의 합병,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삼성 SDS의 상장에 이부진이 주요 주주로서 의사결정에 참여했다는 점, 그리고 삼성 계열사의 임원 또는 사장으로서 삼성그룹의 경영에 참여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이와 함께 이부진이 보유한 주식 가운데 일부는 결혼 기간 중에 마련한 돈으로 매입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분할 대상 재산을 놓고, 상속을 받은 당사자는 ‘편법 상속이 맞다’고 주장하는 반면 그 배우자는 ‘편법 상속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임우재, “할아버지가 손자 만날 수도 없었다…친권 포기 못해”
이혼 소송의 마지막 쟁점은 이부진 – 임우재 사이에 낳은 자식에 대한 친권을 누가 갖는가다. 1심 재판부는 임우재의 공동 친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임우재로서는 아들에 대한 친권을 박탈당한 셈이다. 임우재 측은 “친권을 박탈해야 할 만큼 부부 일방이 자녀에 대해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닌 한 부부가 서로 불화로 인하여 이혼을 하게 되는 것을 연유로 부부 일방의 자녀에 대한 친권마저 박탈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임우재 측은 2007년 8월에 아들이 태어난 이래, 할머니인 자신의 어머니는 돌잔치 때 두 시간 가량을 제외하면 법원이 면접교섭을 허용한 2015년 3월까지 단 한 번도 손자를 만난 적이 없고, 자신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손자를 만난 적이 없다며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은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해왔다고 주장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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