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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책임자 김기춘의 승승장구 40년과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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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책임자 김기춘의 승승장구 40년과 그 후

익명 (미확인) | 월, 2017/02/06- 17:15

※ 이 글은 최승호 피디의 영화 <자백>과 <그것이 알고 싶다> 1060회 ‘비선의 그림자, 김기춘’의 내용을 참고해 작성하였습니다.


김기춘의 미디어 데뷔, ‘학원침투 북괴간첩단 사건’
기자회견하는 30대 김기춘

기자회견하는 30대 김기춘

1975년 11월 22일, 당시 중앙정보부 대공 수사국장 김기춘이 ‘학원침투 북괴간첩단 사건’을 발표했다. 김기춘은 기자들 앞에서 “북괴의 지령에 따라 모국 유학생을 가장하여 국내에 잠입”한 21명의 ‘간첩’ 명단을 공개했고, 이 ‘간첩’들은 사형 등 중형을 선고받아 장기간 복역하고 일본으로 추방당했다. 당시 재일교포 유학생이 200~300명인 것을 감안하면, 이들 중 10%가 ‘간첩’으로 구속된 것이다.

당시 30대였던 김기춘은 중앙정보부 대공 수사국장으로 사건의 책임자였으며, ‘간첩’들의 자백을 받아내고 ‘북괴를 소탕’한 공로를 인정받아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승승장구_김기춘

김기춘이 ‘간첩’들의 자백을 받아내는데 탁월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간첩을 알아보는 매의 눈? 아니면 누구든 간첩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

간첩을 잡는 특별한 기술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자신의 두뇌”라고.

두뇌대장 김기춘

두뇌대장 김기춘

“간첩은 머리, 두뇌로 잡는 것이지
몽둥이로 잡는 것이 아니다”

1973년에 무려 법무부 ‘인권옹호과’ 과장이기도 했던 그는 당당하게 자신의 ‘두뇌’로 간첩을 잡았다고 했다.
그의 수사에는 인권 침해도 없었고, 과거사 진상규명의 대상도 아니라고. 자신이 고문을 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당당한 김기춘

당당한 김기춘



고문 피해자들, 40년만에 감옥에서 나오다

2008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을 ‘고문에 의한 조작사건’이라고 발표했다. 이어 2012년 6월, 사건의 피해자들이 재심을 청구했고, 무죄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영화

영화 <자백>

당연히 무죄인데 이 소리를 들을 때까지 40년이 걸렸습니다.

-이철, 학원침투 북괴간첩단 사건 고문 피해자

법원은 피해자들을 ‘간첩’으로 볼만한 증거가 없다고 했다.

당시 대부분의 증거는 ‘자백’ 밖에 없었는데 이 자백은 구타, 가혹행위 등 고문에 의해 받아낸 것이라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기밀 누설”이라는 혐의조차 “현 시국에 대해 대화를 나눈 것에 불과”하며 “이미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공지의 사실에 불과”하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간첩이라는 시선 속에서 40년 동안을 “창살 없는 감옥”에서 생활해야 했던 피해자들.
40년이 넘어 진실은 밝혀졌지만, 중앙정보부가 파괴한 한 사람과 그 가족의 인생은 어떤 방법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


한국은 나쁜 나라
피해자 이철

피해자 이철

팬티까지 발가벗기고 무조건 패기 시작했습니다. 성기까지 붙잡고 꼼짝 못하게 하고 담배불로 지지려했습니다. 내가 보는 앞에서 내 여자를 겁탈하는 것을 보고싶냐. 장모까지 하려고 한다. 그래서 사정을 했습니다. 모든 말을 들을테니까 그렇게 하지 마시오.

-이철, 간첩 조작 사건 고문 피해자

무죄판결을 받은 이철씨의 아버지는 이철씨가 구속된 날 쓰러서 53살의 나이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3년 뒤 세상을 떠났다. 약혼녀도 간첩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조국에 기대를 가지고 왔다가 인생이 망가진 채 일본으로 돌아간 사람이 많다.
일본으로 가자마자 죽거나 정신병원에 간 사람도 있다.

수사관들이 멋대로 쓰고 마지막에 강제로 지장을 찍게 했어. 안 찍겠다고 하면 때려 죽인다고 하면서 얼굴을 때리고 내 손을 갖다가 멋대로 찍어버렸어. 한국인은 목적을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어.

-김승효, 고문 피해자

김승효씨는 아직 재심 신청을 하지 않았다. “지옥 같은 세월”을 떠올리는 것조차 힘들며 한국에 가는 것조차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당시 고문으로 인한 자백 후 정신이상증세를 보인 그는 치료받지 못한 채 7년을 감옥에 보냈고, 출소한 후에도 일본에 돌아가 수십 년을 정신병원에 드나들며 지금까지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고문피해자, 김승효

고문피해자, 김승효

암흑의 세월을, 지옥 같은 세월을 잊어버리고 싶단 말이야. 가슴이 아파서 죽을 지경이야. 왜냐하면 무죄로 못됐으니까 죽을 지경이야. 죽고 싶단 말이야. 나는 무죄야.


수사관들은 마치 먹이를 앞에 둔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저에게 굴었습니다. 잠을 안 재운 채, 협박하고 구타하며, 제 몸과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습니다.

-김명수, 재심 청구소송 모두발언 중

“제 사건일지를 가지고 김기춘씨가 청와대에 들어갔다가 온 후, 수사관들은 저를 서울구치소가 아니라 지하 고문실로 데려갔습니다. 3주 동안 그곳에서 취조를 받았습니다. 개돼지 취급을 받으며 강도 높은 취조를 받았어요. 20일 동안 밤잠을 자지 못하게 했어요. 온갖 고문과 언어폭력으로 몸과 정신이 완전히 망가지고 탈진한 상태였어요. 지하실에서 나올 때는, 저는 간첩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 나이 스물여섯이었습니다.

-김명수, 재심 청구소송 모두발언 중

졸지에 간첩 가족이 된 저의 부모형제들은 일가친척, 친지, 교회, 사회공동체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채, 절망과 좌절 속에서 공포의 순간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처럼 고문은 무고한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뿐만 아니라, 그 가족의 한 평생을 송두리째 빼앗는 잔인하고 도구이다.


고문 피해자 있지만, 책임자는 없는 한국

“인권침해해서 간첩 잡았으면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다”고 했던 사건의 책임자는 피해자들의 잇다른 무죄판결 속에서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부활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처벌은 커녕 사과도 없었다. 재심 판결 전까지 당당하게 설교했던 그는 무죄판결이 잇다르자 “자기와 관계 없는” “기억에 없는 일”이라고 했다. 심지어 자신의 친필사인까지도.

2004년 한치 앞을 모르는 김기춘

2004년, 한치 앞을 모르는 김기춘

무죄판결 나기 전의 당당한 모습

무죄 판결 후 모든 기억을 잃은 김기춘

무죄 판결 후 모든 기억을 잃은 김기춘

무죄판견 이후 돌연 기억상실 모드

정신적 육체적 각종 후유증과 싸우며 40년을 창살 없는 감옥에서 생활해야 했던 고문 피해자.
40년 내내 한결같이, “공직자”의 자리에서 내려온 적 없는 사건 책임자.

국가권력이 특정집단에 의해 사유화될 경우, 국민들의 삶이 얼마나 파괴되고 불행하게 될 수 있는가를 제 사건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남겨주기도 했어요.

존경하는 재판관님,
저 개인 한 사람의 희생으로 족합니다. 앞으로 우리 역사에 더 이상 간첩조작사건과 같은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고, 더 이상 저와 같이 희생당하는 주권자 국민이 나오지 않도록 사법정의(司法正義)가 살아있는 사회를 만들어주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김명수, 고문 피해자 재심 모두 발언 중

“자기가 인권침해를 했으면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다”는 김기춘은 지금 구치소에 있다. 고문 혐의가 아니라 블랙리스트 개입으로.

김기춘의 운명은?

김기춘의 운명은?

김기춘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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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J 활동가는 자신의 레즈비언 파트너와 SOGI 아카데미 교육과정에서 만났다.

이번 발렌타인 데이에도 전세계 수백만 명이 그들의 사랑을 기념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국가와 사회에서 당신의 사랑을 동등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아시아 각국의 LGBTI 활동가 다섯명이 이번 2월 14일을 어떻게 보낼지와 함께, LGBTI에 대한 모든 차별을 중단시키기 위해 각자가 바라는 점을 전해 왔습니다.

J는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를 알기도 전부터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제 27세인 그녀는 절친한 친구들에게만 커밍아웃을 했을 뿐, 가족들에게는 전혀 알리지 않았다. 가족이나 지인이 알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비영리단체에서 근무하는 J는 2년 전 SOGI(Sexual Orientation and Gender Identity) 아카데미의 단기 교육과정에 참여했다가 지금의 파트너를 만났다. J는 파트너와 함께 보낼 발렌타인데이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언제부터 자신의 성적 지향성을 깨닫게 되었나요?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건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지만,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누구에게도 차마 알릴 수 없었어요. 대학 생활은 정말 우울하고 외로웠죠.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그 이후로 커밍아웃을 하고, 내 정체성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어요.

한국의 LGBTI 활동가, J

커밍아웃할 당시 친구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제가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친구들도 모두 알고 있어요. 성소수자 친구들은 대부분 제 파트너를 만나 봤지만, 이성애자 친구들과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그 친구들도 별로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파트너와 항상 손을 잡거나, 서로 볼을 맞대거나 끌어안으면서 애정을 표현해요. 저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그래서 남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관심이 없어요. 그런데 한번은 전철을 기다리면서 파트너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우리를 보고 “너희 레즈비언이냐”고 소리를 지르더군요. 그건 별로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었어요.

이성애자 커플과 비교했을 때, 한국에서 성소수자 커플이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한국 같은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우리 같은 사이는 연인으로 인정받지 못해요. 예를 들어,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시더라도 제 파트너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제가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한국에서 이성 커플은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고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어요. 때로는 일상 생활 속에서 우연히 만남이 시작되기도 하죠. 하지만 성소수자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면 특별한 ‘게이더(gaydar)’가 있어야 해요. 더욱 공을 들여야 하죠. 예를 들면 만남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거나, 퀴어 행사에 참석하거나, 퀴어인 친구들에게 다른 퀴어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는 식이에요. 이성애자에 비해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상대적으로 더 적은 것 같아요.

발렌타인 데이가 기대되겠어요.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면요?

저는 발렌타인 데이가 좋아요. 초콜릿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발렌타인 데이에는 갖가지 다양한 초콜릿이 나오니까 그게 참 좋아요.

작년 발렌타인 데이는 지금 파트너와 처음 보내는 발렌타인 데이라서 아주 특별했어요. 맛있는 초콜릿을 서로 주고 받았죠. 초콜릿을 받았을 때 파트너의 표정, 그리고 그 초콜릿의 맛과 풍미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그 때만 떠올리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져요.”

올해는 어떻게 보낼 생각이신가요? 선물은 준비했나요?

준비한 선물은 있지만, 비밀이에요! (지금 이 대답의 작성을 도와주고 있거든요!)

한국 사회와 정부의 LGBTI 대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국 사회와 정부는 우리의 존재를 지우려 하는 것 같아요. 매체에서는 두 남성이나 여성간의 사랑 또는 애정을 표현할 때 “브로맨스”나 “걸크러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죠. “게이”나 “레즈비언”의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아요. 동성 결혼이나 시민 결합 제도가 없기 때문에, LGBTI 커플은 오랫동안 같이 살았더라도 정부로부터 아무런 혜택이나 보호를 받을 수 없어요.

성 지향성이나 젠더 정체성에 상관 없이 모든 커플이 더욱 평등한 대우를 받기 위해 어떤 변화가 이루어지길 바라시나요?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이런 문화를 조성하려면 학교와 가정에서 퀴어 친화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해요. 이런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하죠. 또 동성 결혼도 합법화해야 해요.

월, 2018/02/26-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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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카 쇼지Hiroka Shoji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담당 조사관

아름다운 섬 제주도는 매년 관광객 수백만 명이 찾는 한국의 인기 관광지다. 올해 이 제주도를 찾은 방문객 중에는 어린이를 비롯한 예멘 난민 수백 명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예멘인들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이 섬을 찾은 이유는 여느 관광객들과는 다르다. 아름다운 풍경이 아닌, 피난처를 찾아서 온 것이다.

이들의 고향은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예멘에서는 지금까지 16,000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죽거나 다쳤고, 200만 명이 피난을 떠나야 했으며, 어린이 340만 명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 예멘 전체 인구의 75%에 해당하는 2,220만 명은 생존을 위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상태다.

예멘 난민에 대한 주요 통계

 

죽거나 다친 민간인 수
피난을 떠난 사람들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
16,000명 이상
200만 명
340만 명

예멘 난민에 대한 주요 통계

죽거나 다친 민간인 수
최소16,000만 명
피난을 떠난 사람들
200만 명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
340만 명

 

2018년 1월부터 5월 사이, 약 550명 정도의 예멘인이 말레이시아를 통해 제주도에 도착했다. 난민을 법적으로 규제하지 않는 한국과 달리, 말레이시아의 난민 신청자들은 구금, 기소되거나 채찍질형에 처해질 수도 있으며 그로 인해 강제 송환될 수도 있다. 예멘인들은 30일간 무비자 입국을 이용해 한국에 들어와 임시 비자를 발급받아 난민 신청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예멘인들은 한국에 도착한 뒤로 친절보다는 대부분 적대적인 시선을 받아왔다. 2018년 7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예멘 난민들이 한국의 경제적 안정성을 이용하려는 “가짜 난민”이라고 주장하며, 난민 신청을 거부해 달라는 청원에 714,000명 이상이 서명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한 청원이었다.

청와대 웹사이트 캡쳐

한국은 난민 신청자들이 흔히 찾을 만한 곳은 아니다. 한국은 난민협약에 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난민 지위를 인정하거나 인도적 차원에서 체류를 허가하여 매년 받아들이는 난민 신청자의 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국의 난민 인권단체인 난민인권센터(NANCEN)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약 1만 건에 이르는 난민 신청 중 한국 정부가 받아들인 건수는 그 중 1.5%에 불과했다. 그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예멘인 550명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이처럼 난민 수용에 익숙하지 않은 점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2018년 7월 4일, 예멘인 비호 신청자 모하메드 살렘 두하이쉬.

난민들이 고향을 떠나게 만든 예멘에서의 위협은 현실적이며,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수백만 명의 예멘 민간인들이 ‘철저히 인간이 초래한 재앙‘ 속에 휘말린 채 갇혀 있으며, 그 재앙은 만연히 이루어지는 인권침해와 국제인권 및 인도법을 위반하는 행위로 더욱 악화되고 있다. 분쟁의 당사자들은 구호품 조달을 빈번히 제한하며, 학교와 병원 등의 민간 시설을 계속해서 공격하거나 파괴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군은 민간인과 민간 시설에 무차별적으로 과도한 공습을 수십 건 감행했고, 이로 인해 주택과 학교, 시장, 예식장, 병원, 모스크가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공격의 대부분은 국제법상 전쟁범죄에 해당된다.

엄청난 반대 여론에 대한 답으로,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예멘 난민들의 망명 신청 심사 기간을 단축시키고 9월 말까지 1차 심사를 완료할 예정이라고 8월 1일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을 통해 밝혔다. 또한 제주도민들의 안전을 위해 난민을 더욱 철저히 관리하고 통제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2018년 7월 30일 서울에서 열린 반난민 집회

난민 신청을 신속히 처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절차는 반드시 공정해야 하며, 신청자 개개인은 법적 대리인의 도움을 받아 심사 결과에 항소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정부는 각각의 난민 신청건을 필요한 만큼 충분히 검토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여론의 압력을 이유로 심사 절차를 성급히 처리해서는 안 된다.

피난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시민권이 없는 사람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인류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한국의 지도자들과 국민들은 앞으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기를 원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더욱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저마다 맡은 역할이 있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이들에게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장소를 제공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 예멘 난민들의 망명 신청을 거부해 달라는 국민 청원에 답변을 해야 한다. 2017년 대선 후보였을 당시, 문 대통령은 난민협약을 이행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호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제는 리더십을 발휘해, 망명 신청 절차를 공정하고 신속하게 처리하고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들에게 보호를 제공함으로써 그 약속을 지킬 때다.

 

 

금, 2018/08/2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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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4일, 미국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의 마조리 스톤맨 더글라스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학교 총기 참사는 대규모의 희생자가 발생한 일련의 총기 폭력 사건들 중 가장 최근의 사건이다. 단 몇 분 만에 17명의 교사와 학생이 과거 이 학교에 다니던 퇴학생에 의해 살해되었다. 총기 폭력은 전 세계에서 매일 일어나는 비극이다. 때로는 인종, 성별, 계층에 따라 불균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총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지역 사회 전체 총기폭력의 가장 주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정부는 폭력을 멈추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상식적인 총기 개혁을 실시해야 한다.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총기 폭력으로 목숨을 잃는가?

피해자와 가해자의 다수는 젊은 남성들이 차지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특히 가까운 파트너에 의한 총기폭력의 위험에 처해있고, 성폭력 역시 총기에 의해 조장될 수 있다.

매일 총기 폭력으로 사망하는 사람 수
500명 이상
전 세계 총기폭력을 수반한 살인 비율
44%
2012년과 2016년 사이 총기 사망자
104만 명

 

총기폭력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매일 2000명이 총격에 의해 부상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세계적으로 최소 2백만 명이 총기로 인한 부상을 입은 채 살아가고 있다.
수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총기 폭력으로 인한 심리적 영향이나 총기폭력의 위협에 시달린다. 이는 개인과 가족에게뿐만 아니라 더 넓은 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총기폭력이 왜 인권 문제인가?

총기폭력은 세계적인 인권 문제이다.

총기폭력은 가장 근본적인 인권인 생명권의 침해할 수 있다. 국가는 예측 가능하거나 실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사람들을 총기 폭력으로부터 보호할 의무가 있다.

총기폭력은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 다른 인권에 영향을 미치고, 개인 안전에 대한 권리를 부정한다. 이런 두려움은 결국 표현의 자유와 평화적 집회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다. 지속적인 총기폭력으로 인해 지역사회가 엉망이 된다면, 보건 및 교육과 같은 기본적인 서비스 또한 어려워질 수 있다.

 

총기폭력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총기폭력은 총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규제가 약하며 총기 폭력 방지를 위한 법 집행이 미약한 아메리카 대륙에서 특히 만연하다.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부정부패와 조직 범죄, 그리고 작동하지 않는 형사 사법 제도가 총기 폭력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총기 폭력으로 목숨을 잃는가?

피해자와 가해자의 다수는 젊은 남성들이 차지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특히 가까운 파트너에 의한 총기폭력의 위험에 처해있고, 성폭력 역시 총기에 의해 조장될 수 있다.

[총기 살인의 비율]
브라질
72%
엘살바도르
91.1%
온두라스
58.9%

보다 부유한 소위 ‘선진국’ 중에서 미국의 총기폭력은 특히 예외적이다. 총기에 대한 높은 접근성과 느슨한 규제가 미국에서 매년 30000명의 성인과 어린이가 총기에 의해 사망하도록 이끌었다. 유색 인종 커뮤니티는 불균형적으로 총기 폭력의 영향을 받는다. 흑인인 미국인이 총기 살인의 피해자가 될 확률이 백인인 미국인보다 10배 더 높다.

 

매년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총기들이 만들어지는가?

매년 8백만 자루의 소형 무기와 150억 발의 탄약이 생산되고 있다.
소형 무기 거래의 규모는 연간 약 85억 달러에 이른다.

 

총기폭력에 관해 국제앰네스티는 어떤 일을 하는가?

국제앰네스티는 총기 사용 및 소유 규제에 대한 캠페인을 벌이고, 심각한 수준의 총기 폭력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있는 지역에서 증거 기반의 폭력 감소 프로그램을 지원하면서 국내 총기 개혁과 총기폭력 예방에 집중해왔다. 또한 총기가 심각한 인권침해에 이용될 수 있는 위기지역으로의 총기 수출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여러 다른 단체들과 함께 무기거래조약(Arms Trade Treaty )에 대해 성공적으로 캠페인을 펼쳤고, 이는 2014년에 국제법으로 정식 발효되었다.

국제앰네스티는 무기거래조약의 국제적인 준수를 위해 캠페인을 계속할 것이며, 무기거래조약은 전 세계의 갈등상황 속에서 폭력과 잔학행위, 국가 탄압에 불을 지피는 무기의 흐름을 막아낼 것이다.

 

총기개혁이 효과적인가?

그렇다. 거의 모든 주에서 총기의 획득과 소유를 특정한 형태로 규제하고 있다. 이는 대부분 사용자들에게 면허증을 발급하고 총기를 등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총기 개혁은 총기류에 대한 접근과 총기 규제에 있어 엄격한 통제가 이루어지는 세계 일부 지역에서 효과적이다. 많은 서유럽 국가들과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아시아 일부 국가들에서 그러하다. 예를 들어 일본과 한국, 그리고 싱가포르에서는 총기 폭력의 비율이 극히 낮다.

 

총기폭력을 중단시키고 줄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부는 생명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총기폭력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가집니다. 우리는 총기개혁을 요구함으로써 정부에 이를 상기시켜야 합니다.

책임자들에게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할 의무를 상기시켜줌으로써, 여러분은 총기 소유와 사용 규제에 대한 정부의 열악한 규제가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총기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더불어, 심각한 총기폭력을 겪고 있는 지역사회에 대한 효과적인 개입이 있어야만 우리는 두려움 없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지난 3월 24일, 미국 전역의 학생과 청년,
그리고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총기 폭력의 영향을 받는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행진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과 함께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에 함께하세요.

지금, 참여하세요!

화, 2018/03/2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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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여성 운전권을 외쳐 체포된 여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지금, 참여하세요!

목, 2018/06/07-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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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문: 
네티즌 입 막는 방심위의 사이버명예훼손심의규정 개정시도, 막아야 합니다. 네티즌 선언에 함께 해 주십시오.

 

사이버 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에 반대하는 네티즌 선언

 

네티즌 입 막는 방심위의 사이버명예훼손심의규정 개정시도, 막아야 합니다. 네티즌 선언에 함께 해 주십시오.

발표일자: 
2015/08/19
방심위 심의규정 개정 반대 네티즌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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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5/08/1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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