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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의 단언컨대]반기문에게 정계은퇴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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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의 단언컨대]반기문에게 정계은퇴를 권한다

익명 (미확인) | 화, 2017/01/31- 14:07
이대근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입력 : 2017.01.28 10:15:00수정 : 2017.01.31 13:25:03

[이대근의 단언컨대]반기문에게 정계은퇴를 권한다

<반기문에게 정계은퇴를 권한다>

■ 반기문 정치란

초단타 매매

대선을 위해 뛰고 있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게 정치, 혹은 선거란 4개월 정도 고생해서 운 좋으면 5년짜리 대통령할 기회를 잡고 아니면 그만인, 손해 볼게 없는 손쉬운 투자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효율성 높은, 경제적인 정치다. 그러나 이 나라 전체로 봐서는 이건 정치라기보다 초단타 매매의 투기이자 도박이다.

자기 목소리, 자기 언어가 없는 반기문

반기문이 매일 무언가를 말하지만 반기문의 목소리로 들리지는 않는다. 그는 누군가로부터 배운 것을, 누군가 조언한 내용을 그대로 말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건 누구 보다 말하는 그가 잘 알겠지만 듣는 이들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대타협이니 대통합이니 하며 내면화 되지 않은 언어들을 기계처럼 말하는 것으로는 울림과 감동을 줄 수 없다. 그가 동원하는 정치언어들은 오랫동안 정치권에 유통되던 상투어들이다. 그러므로 그런 언어를 반복하는 것으로는 정치적 설득이 충분할 리 없다. 그의 삶과 철학, 정치적 전망을 자기 언어로 표현해야 하고, 그래야 귀에 들어오는 법이다. 그게 없는, 그저 듣기 좋은 말들의 반복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가령 정치교체라는 주장이 그렇다. 이 말 속에 자신의 비전이 담겼다면 그토록 진부한 구호로 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진정 정치교체를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인상을 주는 것은 그 말을 외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을 넘어 그 말을 실천할 자신만의 비전과 의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는 정치교체든 무엇이든 뭔가를 바꿀 것 같은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자신과 같이 주어진 역할만 해왔던 외교관 후배들, 실패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과거 실세들을 끌어 모아 정치를 교체하겠다는 것은 정말 실없는 소리다. 정치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실패한 정권의 사람을, 교체당해야 할 사람들을 내세우는 모험은 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는 그게 모험인지도 모르는 것 같다. 눈치 빠르다는 그도 정치교체라는 개념이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내포하는지 모를 만큼 정치감각도 결여되어 있다.

정치 9단 흉내 내는 정치 초보

정치를 처음 하는 그로서는 감당할 수도 없고 해서는 안 될 일이 분명한데도 정치 9단이나 할 일을 하고 있다. 정치를 한다면서 앞장서는 일이 누구를 만나서 합치고 누구와 엮고 묶는 일이다. 정치 숙련도가 높은 정치인들도 하기 어려운 일을 초보 정치인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는 서로 지향점이 다른 여러 개의 정당과 대선 주자들을 묶어서 하나의 세력으로 통일할 역랑도, 그들을 이끌어갈 지도력도, 그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념을 대표할 능력도 없다. 그런데도 이제 배워가며 정치를 하는 처지라면서 기성 정치인도 하기 어려운 일에 매달리고 있다. 국가 지도자가 되어 무엇을 할지는 보이지 않고 정치공학부터 하고 있는 그에게 새로운 정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낯선 곳에서의 정치

그는 지하철 승차권 발매 실수를 두고 기자에게 해명하기를 당신들도 파리에 갔다면 그런 일이 없겠느냐고 했다. 그에게 서울은 파리처럼 낯선 곳이다. 서울 생활은 곧 파리 생활인 것이다. 10년 동안 계속 했어도 쉽지 않은 게 정치다. 그런데 10년 동안 한국 밖에, 평생 정치 밖에 있던 그가 갑자기 한국에서 정치를, 그것도 아무런 준비 없이 최고 지도자가 되겠다면 당연히 서투를 수밖에 없다. 그의 말을 십분 이해한다. 그는 정치에 서투른 사람이다.

그는 한국 시민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 몸으로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청년 문제를 언급하면서 취업이 안 되면 자원봉사라도 하라는 엉뚱한 말을 해놓고도 그 발언의 문제가 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계속 “국민의견을 종합해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물어”를 되풀이한다. 그런데 시민들은 더 이상 정치지도자가 물어봐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전문가의 의견을 원치도 않는다. 시민들은 말할 만큼 했고 행동할 만큼 했다. 시민들이 바라는 것은 반기문이 시민의 뜻을 어떻게 대변할 건지, 무엇을 먼저 바꿀지 우선순위를 매길 것을 원한다.

그는 이념적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립은커녕 국민적 합의, 통합이라고 할 만큼 시민들의 의사가 이렇게 결집된 적이 없다. 박근혜 게이트로 구체제를 청산해야 한다는 합의를 이루어냈는데 이념 대립을 주요 의제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는 아직 어느 나라에 도착했는지 모르는 것 같다.

그는 “패권과 편가르기의 정치에서 분권과 협치의 좋은 정치로 가야 한다”면서 하루 빨리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가 말하는 패권은 문재인 세력, 박근혜 세력을 말하는 것 같은데 박근혜 세력은 소멸중이니 남은 것은 이른바 친문패권이다. 그걸 타파하려면 당내 민주주의나 당내 경쟁체제의 구축, 패권적 행태의 해소등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해결책으로 개헌을 제시했다. 진단과 처방이 맞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다. 아마 대통령권력의 분권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특정 당내 권력 구조가 개헌과 무슨 상관인지 설명 좀 해줬으면 좋겠다.

승차권 발매는 금방 배울 수 있지만, 정치는 국가통치는 단기 학습이 어려운 분야다. 이걸 누구 보다 그가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정치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싶을 뿐이다. 대통령 자리를 위해 4개월만 참고 지내보자는 심산일 것이다. 왜 그는 낯선 곳에 가서 그 시민을 대변하겠다는 무모한 시도를 하고 있는가?

오락가락 정치

반기문은 평생 권력자로부터 자리를 추구해왔다. 그건 자신만의 가치나 원칙을 갖고 있다면 결코 할 수 없고, 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차관, 다시 외교안보수석, 장관, 유엔사무총장의 엄청난 관운을 자랑했던 그가 이제 대통령직을 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대통령은 자신의 경력을 한 단계씩 쌓아 올라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하나의 목표일뿐이다. 그래서 그에겐 왜가 아닌 자리가 우선이다.

그가 짧은 기간에 오락가락한 것도 그 자리를 차지하는 방법을 찾느라 그런 것이다. 자신의 신념과 철학이 있다면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노선이 뭐냐고 묻자 그새 그는 진보에서 보수를 왔다 갔다 했고, 여당도 하고 야당도 할 사람인 것처럼 처신했다. 새누리당과는 거리를 두면서도 새누리당 의원과 만나서 도움을 청했다. 대선 전 개헌은 어렵다고 했다가 대선 전 개헌해야 한다고 바꿨다. 그는 의견이 없는 사람 같다.

한일간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사무총장 때는 환영해놓고 이제와서는 환영했던 것이 아니라고 한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럼, 그래서 합의를 부정하겠다는 것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성소수자는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해놓고는 그렇다고 지지한다는 건 아니라고도 했다. 그의 말은 이렇게 듣거나 말거나다.

이쯤해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누구인가? 시간이 갈수록 그가 누구인지 분명히 드러나는 게 아니라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그런 사람인가 하면 저런 사람 같고 저런 사람인가 하면 이런 사람 같아 보인다.

박근혜를 떨치지 못하는 반기문

그는 유엔 사무총장이었으면서도 박근혜 대통령 주변을 맴 돌았다. 그가 박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베이징의 망루에 함께 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시대착오적인 새마을 운동의 확산에도 앞장섰다. 뉴욕 맨해튼까지 새마을 운동이 번지고 있다며 자랑스러워했던 그다. 그러다 박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을 받으니 거리를 두는 듯 하다 국내에 돌아와서는 다시 박대통령과 통화를 하고 “(탄핵에) 잘 대처하기 바란다”는 말을 했다. 박대통령 탄핵에 관한 의견을 요청받았을 때는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그는 시민을 대변할 뜻이 없어 보인다.

☞ ‘이대근의 단언컨대’ 팟캐스트 듣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2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이준헌 기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2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이준헌 기자

■ 반기문, 그건 아니다

정치는 쇼핑이 아니다- 쇼핑 목록에 오른 정당과 노선

현대 민주주의는 정당정치이다. 경쟁하는 주체도 정당이고 경쟁의 결과 집권하는 것도 정당이다. 그러므로 정치인은 정당 속에서 성장하고 그 정당의 노선 및 정책을 대변하며 그런 것들과 일체감을 가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 지도자는 곧 정당의 지도자이도 하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정치 지도자가 국가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예측하고, 시민들도 선택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도 바로 이 정당정치로 인해 가능한 것이다. 선거가 코앞에 다가오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정당에 관한 그의 생각은 종잡을 수 없다. 처음엔 정당이 무슨 소용이냐고 하더니 돈이 없어 정당에 가입해야겠다며 정당을 무슨 돈 지갑인양 여겼다. 그는 정당에 가입할지 독자적으로 할지 정해진 바도 없다고 한다. 그러더니 다시 “원칙적으로 말하면 당이 문제가 아니라…”며 당은 사소한 문제인 것처럼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추구하는 당의 정체성을 드디어 제시했는데 이렇다. “제가 추진하고자 하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 민족의 대통합을 통해 한국을 위기에서 구하겠다, 국격을 높이겠다는데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과) 어떤 정치결사체든지 같이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도대체 그는 어떤 당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모든 정당이 정의, 공정, 통합을 추구한다고 하지 불의, 불공정, 분열을 추구한다고 할까? 이게 기준이라면 현재 원내 진출한 5개 정당이 모두 해당된다. 그는 정당이 뭔지를 모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어쨌든 정치를 시작한지 며칠 되지 않은 반기문은 지금 정당 가운데 어느 것을 고를지 고민하고 있다. 원내 진출 정당은 5개가 있다. 그가 민주당, 정의당으로 가지 않는다면 새누리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가운데 골라야 한다. 물론 세 당과 민주당내 일부세력을 포함해 하나로 묶는 제3지대를 구축한다는 구상도 있으므로 선택지는 최대 네 개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정당의 색깔차이가 별로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당간 경계는 있고 경계가 있으니 어느 수준이든 차이가 있다. 사실 그동안 이런 차이로도 경쟁하고 선택받아온 것이 한국 정치였다. 아무리 작은 차이라도 어느 정당 소속인가에 따라 정체성이 다르고 지지세력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반기문에게는 이런 경계조차 없다. 쇼핑센터에서라면 물건 살 돈만 있으면 아무거나 골라 살 수 있다. 잘못 샀다는 생각이 들면 나중에 환불할 수도 있다. 이처럼 그는 여러 정당과 세력이 자기 앞에서 선택받기를 기다리는 진열 상품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사실 어느 측면에서 반기문과 관계 맺기를 바라는 정당과 정치인들이 펼치는 요즘 풍경은 쇼핑센터와 다를 바 없다. 반기문 역시 20%라는 정치자본으로 아무 거나 골라잡을 수 있을 것처럼 이쪽저쪽 가리지 않고 진열대 앞에서 이 것 저것 집었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지나가는 쇼핑객들은 주변에 늘어서서 그가 무엇을 고를지 지켜보고 있다. 이게 요즘 그가 하는 정치하는 방식이다.

반기문도 모르는 반기문

정당 선택 뿐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도 마음대로 골라서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진보도 보수도 아니라고 했다가, 진보적 보수라며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물건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주변에서 그게 아니라고 했는지 바구니에 담았던 그것을 다시 꺼내놓고는 역시 보수라며 딴 것을 집었다. 그게 최종 선택일지는 지켜보는 사람은 물론 자신도 모를 것이다.

반기문의 거꾸로 정치

정치하려면 비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것에 맞는 정책을 내놓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정책을 실현할 정당이 있어야 한다. 정당이 있어야 당의 정책을 실현할 후보도 낼 수 있다. 그런데 반기문 정치에서는 이 모든 것이 거꾸로다. 먼저 출마하기로 한다. 왜 출마하는지 아직 알 수 없다. 그 다음 어느 당으로 나오면 좋을지 이리 저리 찔러 본다. 아마도 그가 당을 선택하고 나서야 당이 만들어준 정책을 내세우게 될 것이다. 이런 식이면 선거는 평가하고 판단하는 과정이 아니라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시간으로 대체된다. 마지막 단계에 가서야 선택 가능한 것들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 때도 내놓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정치에서 선거는 정당이 각자 공직후보를 내고 상호 경쟁하는 게 아니라 후보 따로, 정당 따로 가다가 일정 시점에 적당히 끼워 맞추는 레고블록 쌓기가 되기 쉽다. 짝을 바꾸면 전혀 다른 모형이 만들어지며 다 맞추었다 해도 다시 조금만 바꿔도 전혀 새로운 모습이 되기 때문에 고정된 형태가 없다. 그래서 최종 작품이라는 것이 없을 수도 있다. 그가 집권한다 해도 뭘 할지 모르는 상태는 그 자신이나 지켜보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에게 기대한다는 것은 그저 행운을 바란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나쁜 놈들, 좋은 놈들

반기문은 위안부 합의에 관한 입장이 변하지 않았느냐고 집요하게 묻는 기자들에게 나쁜 놈들이라고 했다. 사실 기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나쁜 놈들임에 틀림없다. 기자가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은 누군가의 의혹과 비리를 추적하고 보도하는 일이다. 미담 기사를 쓰지 않는 한 취재 대상에게 좋은 놈인 경우가 드물다. 기자들 뿐 아니다. 정치 자체가 나쁜 놈들이 하는 일이다. 정치인들을 서로 경쟁하고 그 때문에 정치생명을 걸고 싸우기도 한다. 정당간에는 물론 당내에서도 치열하게 대립하고 갈등하는 일이 다반사다. 사실 그러라고 정치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치어리더들에 둘러 싸여 정치할 생각이었다면 정치 그만 둬야 한다. 그 곳은 좋은 놈들이 별로 없는 동네기 때문이다.

■ 반기문이 어지럽히는 한국 정치

대선이 반기문 일자리 찾기인가?

반기문은 곧 대선을 치르게 될 텐데도 정치하려는 이유를 납득시키지 못했다. 왜 정치하는지, 왜 선거에서 참여하는지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것으로 미루어 오직 대통령 자리 하나 바라보고 출마하려는 것으로 비친다. 그렇다면 그에게 대선은 일자리 찾는 과정에 불과하다.

반기문의 실패가 위험하다

반기문의 실패는 반기문 개인의 실패를 넘는 문제다. 반기문은 자기 실패가 확인될 때 까지 여러 정당과 정치인, 대선 주자들이 탈당하고 정당을 깨고 합치며 이합집산하는 정치적 퇴행을 할 것이다. 한 때 멀쩡했던 정치 지도자들이 그를 따르거나 그와 손을 잡거나 그와 도모를 하려다 낭패를 보면서 신뢰를 잃어 갈 것이다. 특히 갈데없는 대선 주자들, 거처할 마땅한 곳이 없고 자기 정체성을 찾지 못한 정치인들이 개헌을 내세우며 하나의 정당을 만들거나, 연대하자는 정치공학이 난무할 것이다. 그가 실패할 때까지의 과정은 한국 정치가 망가지는 시간이 될 것이다.

반기문의 성공도 위험하다

만일 반기문이 대선에 승리해 대통령이 됐다고 해보자. 승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문재인에 맞서는 반문 연대를 구축해 선전했다고 해보자. 앞으로 너도 나도 그의 성공 모델을 따라할 것이다. 우선 정당 규율이 무너질 것이다. 당내 지위가 불리하면 탈당해 이리저리 떠돌 것이기 때문이다. 정당은 선거 때 잠시 빌려다 쓰는 도구로 전락해 아무도 정당을 건강하게 키울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정치는 정당을 강화하고 당원 및 시민과 소통하며 정책을 만들고 정당간 경쟁하고 갈등하며 조정하는 일을 포기한 채 정치 밖 인기인을 찾아 떠도는 부초와 같은 정치판으로 변질될 것이다. 당원과 지지자를 모으고 시민의 욕구를 파악하고 시민을 대표할 지도자를 육성하는 과정을 포기할 것이다. 국가를 경영할 능력을 연마하고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밖에서 홀로 명성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일을 하다 유명세를 얻으면 대통령 선거에 나가겠다고 할 것이다. 다른 직업적 경력을 통해 명성을 얻고 그걸 바로 통치권을 차지할 수 있는 자격증으로 여길 것이다. 정치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공적 열정을 위해 모인 결사체가 아니라, 이미 개인적으로 이룬 성취를 더욱 빛내는 발판으로 이용될 것이다. 그리고 정당은 파괴될 것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2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정지윤기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2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정지윤기자

■ 설날이 끝나면 반기문이 해야 할 것

반기문이 귀국 후 부지런히 돌아다닌 덕에 정치활동 며칠 되지도 않은 지금 그의 실체를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미 보여줄 것을 다 보여줬다. 할 말도 다 했다. 어디에서 연설하든 다 그 말이 그 말이다. 더 할 것도 없고, 더 기대할 것도 없다. 그가 뭔가 더 한다고 해본들 요 며칠간 하던 것들의 반복이 될 것이다. 그는 무엇이 되려는지, 그가 무얼 하려는지 알 수 없다. 시민들만 모르는 게 아니라 그 자신도 모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그를 선택할 수 있겠으며, 그를 따를 수 있겠는가?

미국 칼럼니스트 톰 플레이트가 2013년 반기문과 대담을 하고 쓴 책 ‘반기문과의 대화’에 이런 내용이 있다. 플레이트가 묻는다. “누군가 제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유엔 사무총장의 임기를 마치고 나면 반기문이 한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거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아니다. 반기문은 이제 쉴 거다’라고요.” 반기문의 답변이다. “맞습니다! 저를 아시네요! 교수님 말이 맞습니다! 저는 저의 자질을 잘 압니다. 저는 타고난 외교관입니다. 정치요? 국내 정치에 전념할 분들은 저 말고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반기문, 정계은퇴를 심각히 고민해주기 바란다.

이대근 논설위원

이대근 논설위원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1281015001&code=910100#csidx580f9c12eda2686a3cfdbaed450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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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외교안보 위기를 문재인 대통령이 잘 헤쳐 나갔으면 하는 기대가 높았던 7월11일. 문 대통령이 말했다. “우리가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것”이 있다고. 그건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의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있지 않고,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는 사실이다.” 놀라운 고백이었다. 취임 두 달 만의 무력감 토로라니.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음을 강조하려는 과장법이려니 했다. 난제에 직면한 지도자가 한 번쯤 할 수 있는 푸념일 거라고 넘겼다.

[이대근 칼럼]문재인의 힘

두 달이 흘렀다. 한반도 문제가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되고 그에 비례해 한국은 더욱 존재감을 잃어갔다. 트럼프 추종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펴졌다. 놀랍게도 정부는 이번에도 부인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의원은 모욕을 참고 가랑이 밑을 긴 한신을 문 대통령과 동일시했다. 며칠 뒤인 9월22일 문 대통령이 김 의원 발언을 뒷받침했다. “지금처럼 잔뜩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는 섣불리 다른 해법을 모색하기도 어렵죠. 압박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트럼프 추종은 이제 가설이 아닌, 입증된 사실로 확정됐다.

이때만 해도 기대감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정부가 한신처럼 반전의 기회를 노리며 뭔가 도모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국은 충분히 그럴 역량을 갖고 있다. 한국은 인구, 산업능력, 군사력과 같은 하드 파워로 보나 기업혁신, 문화, 정부, 교육과 같은 소프트 파워로 보나 명실상부한 중견국이다. OECD 가입국이자 여러 국가의 역할 모델이기도 하다. 주변 강국으로 인해 중견국에 걸맞은 역할을 다 하지는 못하지만, 한 세대 전, 한 세기 전과 같이 주변국의 요구를 무조건 따라야 했던 약소국은 더 이상 아니다. 영화 <남한산성>이 굴욕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약소국의 처지를 새삼 부각하지만 381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취임 5개월째인 10월10일 문 대통령은 자신을 둘러싼 의구심과 미련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안보 위기에 대해 우리 주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합니다.” 세 번째다. 우리는 그가 세 번이나 무기력증을 호소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더 이상 푸념도 과장도 아니다. 역전의 순간을 위해 일부러 힘을 감추려는 전략도 아니다. 그의 정직한 안보인식이자 정부 능력에 대한 자가 진단의 결과다. 또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곧 다른 경로가 열리지 않을까 하고 가슴 한쪽에 품고 있는 낙관론을 접으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무기력증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최후의 생존게임을 하고 있다. 자원을 최대로 동원해야 하고 무얼 하든 결사적이어야 한다. 남한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미국은 이번 기회에 북한의 무릎을 꿇리려 한다. 게다가 남의 말 잘 안 듣는 트럼프가 대통령이다. 하지만 이런 북·미 대결 상태도 한국이 손 놓고 물러선 상황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그 반대다. 한국이 더 많은 힘을 쏟고, 다른 방법을 찾고, 비상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내놓은 해결책은 이런 것이다. ‘긴장이 완화되고 북한이 도발을 스스로 중단하면 그때 근본적 해법을 모색한다.’ 그렇게 기다리면 위기는 누가 해소하나? 문 대통령도, 트럼프도 아니라면, 김정은밖에 없다.

한국의 안보와 미래가 달린 일이다. 북한과 미국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면 한국은 왜 그렇게 하면 안되는가? 미국에선 요즘 대안 논의가 활발하다. 트럼프의 외교 멘토 키신저는 주한미군 철수 대가로 중국이 북한을 붕괴시키는 안을 백악관·국무부에 제시했다고 한다. 백악관 실세였던 스티브 배넌은 미군철수와 북핵동결 구상을 말한 적도 있다.

그런데 문정인 대통령 특보는 한·미연합훈련 축소 한마디 했다가 경고를 받았다. 주한미군 철수론은 말할 것도 없다. 그건 한국인이 말할 수 없는 말이다. 미국은 한국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상을 마음껏 논하는데 한국인은 그러면 안되는 이유를 누가 좀 설명해주면 좋겠다.

김정은도 세계를 흔들었다. ‘당당한 외교’를 하겠다던 문 대통령은 왜 흔들리고 있나? 문 대통령은 광야에 홀로 선 존재가 아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를 이끄는 강력한 통치자, 시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민주사회의 지도자다. 트럼프·김정은이 아니라 문 대통령을 믿고 싶다.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운명, 우리 손으로 개척할 수 있다. 문재인은 힘이 있다. 그 힘을 보고 싶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0172115025&code=990100#csidx60c975ee78b420e8a028e2384f106b3

목, 2017/10/1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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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성심병원 노조 설립 때 전율했죠" 첫돌 맞은 '직장갑질119'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
금, 2018/11/1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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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발표난 [전대미문 프로젝트]는 지원신청을 동영상으로 받았다지요.

[전대미문 프로젝트]에 지원하기 위해 만든 동영상입니다^^

앞으로 정치발전소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담겨있어요!

화, 2015/06/2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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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

서울혁신파크에서 진행하는 [전대미문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1000명의 혁신을 위한 사회활동가가 함께 모여 더 큰 변화를 만들어보자고 하는 프로젝트인데요, 정치발전소도 이 프로젝트에 신청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프로젝트 지원 합격자 발표가 났습니다!!
정치발전소도 합격했습니다!!!

1000명의 혁신가와 함께 좋은 정치에 대해 공부하고 좋은 변화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정치발전소가 되겠습니다^^

관련된 소식 또 전할께요~~

합격발표보러가기

화, 2015/06/23-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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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3 12.18.29

* 이번 후기는 모임에 참석하진 못했으나 항상 ‘정치적 책읽기 : 복지국가편’ 모임을 마음에 두고 사는 ‘이재철’님께서 책을 읽고 보내주신 ‘후기’입니다. 비록 사진에는 없지만 항상 마음으로 함께하고 다음 모임 참석을 약속한 ‘이재철’님이 함께 사진에 나오길 기다립니다^^

 

매번 송구합니다. 지난 토요일 모임도 참석을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변명보다는 모임 후기를 대체할 짧은 글을 마련했습니다. 부족한 글이나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6월13일의 모임입니다. 예정대로라면 <복지국가의 철학>(신정완, 인간과복지)를 읽으셨을 테지요. 모임원들께서는 즐거운 강독이 되셨는지요. 고백건대 저에게는 결코 술술 읽히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텍스트의 밀도는 높았고, 밑줄이 필요한 부분은 많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좋았습니다. 어떤 결여라는 게 있었는데 그게 충족되는 책이었으니까요.

“구직활동 중인데요” 다소 멋대가리 없게 자기소개를 하던 접니다. 불과 몇 주전까지는 고용절벽에 서 있었고요. 연이은 고배로 심신이 지쳐갈 즈음에는 비로소 ‘일자리 복지’라는 것을 운운하기 시작했습니다. “취업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나같은 사람들을 위한 사회안정망 도입이 시급하다,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늘리고 임금피크제를 확대적용하라”며 닭똥같은 눈물을 흘려왔습니다. 말 없이 제 소주잔을 채워주던 9급 공무원 친구가 묻더군요. “왜 그래야 되는데?” 닭똥칠에 꿀먹은 벙어리가 된 저는 이 책이, 그래서 좀 반가웠습니다.

공리주의, 권리자격론, 자유지상주의, 공동체주의… 짧은 독서력이나, 저는 이토록 친절하게 복지를 둘러싼 다양한 사상적 토대들을 설명해주는 책을 만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저같이 부족한 독자들을 풀리지 않는 거대한 수수께끼 속으로 떠밀어버리는, 말하자면 대단히 불친절한 책과도 같았다면, 이 <복지국가의 철학>은 흡사 무척이나 친절한 이웃사촌과도 같았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가 존 롤스의 정의론에 굳건한 신뢰를 실어주고 있어서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1부의 내용은 롤스의 정의론이 왜 복지국가의 철학적 기초가 되어야 하는지를 다른 사상들과 대조하며 역설하는데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가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데 어쩌면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인식의 토대가 바로 롤스의 정의론에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2부는 복지국가가 자본주의 시장경제 속에서 순기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는 성장과 분배를 설명할 때 으레 둥근 파이 한 판을 떠올리고, 특히 분배를 설명하면서 찢겨져 나가는 파이를 연상해왔는데요. 늘 옳은 연상이 아닐 수도 있음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복지국가를 통한 소득재분배는 사유재산제도의 작동에 부분적 변화를 야기한다. 부유층의 가처분소득은 줄고, 빈곤층의 가처분소득은 늘어 개인 간 사유재산의 규모격차를 줄이는 효과를 낳는다. 또 개인 간 소득 격차를 줄이고, 노동자의 처지가 개선되는 효과를 동반한다.” 분배적 정의가 올바르게 실현되는 시장경제 속에서 성장과 분배는 이분법적으로 단순 구분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파이를 대신할 비유를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이었습니다.)

서구사회는 시장실패 이후, 정부실패를 겪은 역사가 있습니다. 3부에서는 서구의 복지역사에서의 교훈점으로 ‘복지다원주의’를 언급합니다. 요컨대 정부가 복지를 전담하는 주체가 되면 부담이 가중될 수 있으니, 국가를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복지 서비스를 나누어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요. 저는 이 복지다원주의에 좀 매료됐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복지수요를 과연 정부만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염려되면서, 사회적경제영역에서 보충적 사회적안전망이 생겨날 필요에 대해서 생각을 이어가게 됐습니다. 만약 서구의 20세기 역사에서 시민단체나 협동조합이 와해되지 않고 사회적자본이 견고하게 축적되었다면 정부실패를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20세기 세계사가 바뀔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짧게나마 독서모임을 다녀가면서 ‘복지’와 ‘복지국가’를 접해오고 있습니다. 강독 후에는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말씀하시는 구체적인 복지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 있기도 하고요. 워낙에 제가 식견이 부족해서겠지요. 사실 막연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되지, 왜?’ 라는 질문이 해결이 안 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음 모임에서 조금은 더 이해를 할 수가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번 독서를 통해 조금은 더(여전히 자신 없지만) 공감대가 형성이 됐거든요. 다음 모임은 27일이지요? 다이어리에 시꺼멓게 칠해놨습니다. 책도 미리서 읽어놓을 생각입니다. 제 자리 빼지 마시고요, 곧 뵙도록 하겠습니다.

목, 2015/06/1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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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동 걸린 내부고발자 퇴출 시도

 

강을영 변호사

강을영 l 변호사 · 공인노무사

 

내부고발자 퇴출 프로그램에 강한 제동이 걸렸다. 겉으로 징계사유가 있더라도 공익신고를 이유로 불이익을 준 것이라면 해고는 부당하다는 것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제주 7대 자연경관 전화투표를 둘러싸고 벌어진 KT와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간 사건에서 공익신고자 보호에 의미 있는 판결을 내 주목받고 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은 공익신고자가 불이익을 받게 되면 그 불이익은 공익신고를 이유로 한 것으로 추정한다. 추정의 효과는 회사로 하여금 정당한 징계라는 점에 대해 무거운 입증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만큼 공익신고자 보호는 힘을 갖게 된다.

KT 소속 직원 이해관씨는 KT가 제주 7대 자연경관 지정에 대한 전화투표 이벤트에서 소비자들에게 국제전화가 아님에도 국제전화라고 속여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를 했다. KT는 이씨를 왕복 5시간이 걸리는 지사로 전보발령했을 뿐 아니라 장기간 무단결근을 이유로 해고했다. 이에 권익위는 KT에 해고를 취소하고 원직에 복귀시키도록 공익신고자 보호조치 결정을 했다.그렇다면 회사 내 조직적인 문제는 모두 공익 침해행위에 해당해 신고가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이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경, 소비자의 이익, 공정한 경쟁이라는 5가지 사유에 한정하기 때문이다. 공익신고자로서 권익위에 보호 요청을 하려는 사람은 공익신고자보호법상 요건이 되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익신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시점은 언제로 봐야 할까? 공익신고를 할 당시를 기준으로 한다. 공익신고가 이루어지면 통상 공익 침해행위가 공정거래법 등에 위반되는지 살펴 고발 조치하거나 수사 의뢰하는 일이 발생한다. 법률 위반 여부는 해당 법률의 구성요건에 따라 엄격히 그리고 사후적으로 판단된다.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는 더 엄하게 볼 것이다. 따라서 사후적으로 해당 법률에 위반됐는지 여부만을 놓고 공익신고에 해당하는지를 보게 된다면 그 범위는 매우 좁아질 수 있다.

KT는 권익위가 보호조치 결정을 할 시점에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무혐의 결정이 내려진 점을 들어 공익신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공익 침해행위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경우나 최종적으로 법원 등에서 공익 침해행위로 확인된 행위만 공익신고 대상으로 본다면, 조사권한이나 법률의 해석권한이 없는 권익위에 지나친 부담을 지우게 된다고 보았다. 공익신고자 역시 공익신고에 큰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결국 공익신고는 위축되고 공익신고 범위는 좁아질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은 의미가 있다. 

왜 공익신고자 보호를 얘기하는가? 공익신고는 보통의 용기로는 할 수 없는 어려운 영역에 있다. 공익 침해행위에 대해 침묵하는 다수의 문제점은 요즘 특히 빈발하는 안전사고에서 아프게 확인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도 사고 이전에 안전 등 운항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제보한 사람이 있었지만 인사문제만 다루고, 나머지는 덮어 결국 뒤에 큰 사고로 이어졌다. 기관의 관리감독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조직 내부의 문제는 공익신고를 통해 감지할 수 있다. 반면 회사의 보복조치는 집요할 뿐 아니라 겉으로는 그럴 듯한 징계 사유도 갖추곤 한다. 공익신고를 이유로 직장을 잃고 가정이 파탄난다면 의로운 일을 한 사람의 개인적인 희생을 눈감아 버린 것이 된다. 용기를 의미 있게 해주는 제도적 뒷받침과 법원의 해석이 더욱 절실한 이유이다.

 

 

* 이 글은 2015년 5월 26일자 <경향신문> 29면 오피니언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기사원문 바로가기>>

 

화, 2015/05/2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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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주 프로필 캐리커쳐

[지상강의 변화의 정치학] 24강. 에필로그

알린스키, 변화의 정치학

11. 에필로그

알린스키를 읽고 또 그를 이해하기 위해 다시 다양한 정치학자들의 책을 탐독하며 동료들 그리고 후배들, 무엇보다도 좋은 선배들, 선생님들과 토론했던 시간들은 사실 필자에게 위로의 시간이었다. 필자는 90년대 후반에 학생운동을 시작해서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청년노동운동, 정당, 국회, 지방행정, 시민단체 등을 정신없이 거쳐 왔다. 세상을 조금이나마 나아지도록 만드는 방법을 찾기 위해선 닥치는 대로 경험하고 뛰어들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오래 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늘 격정적으로 ‘희망’과 ‘변화의 가능성’을 강변했지만 정작 바꾸고 싶었던 사회의 현실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동료들과 후배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길을 지속하기보다는 현실의 생계와 고민을 택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이전에 ‘신념’과 ‘의지’에 가득차서 강변했던 그 모든 이야기들이 무색하고 창피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가차 없이 다가온다. 괴로운 순간이다. 그리고 거대한 벽과도 같은 현실에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이 모든 몸부림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여전히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고 세상이 나아지는 속도보다 나빠지는 속도가 더 빠른 것처럼 보이는데. 나에게 알린스키를 읽는 시간은 이런 고뇌에 대한 위로이자 한편 깊은 반성의 시간이었다. 알린스키가 날을 세워서 비판하고 질책했던 어리석고 조급한 운동가들의 모습은 바로 필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닌 보고 싶어 하는 환상에 근거해 세상을 해석하고 사람들에게 강변하던 모습, 상대의 경험에 근거한 의사소통 보다 차이를 강조하며 쉽게 편을 가르고 목소리만을 높이며 공격적 언어로 상대를 매도하려 했던 태도, 실제로는 하찮기 그지없는 세상의 비밀을 아는 것처럼 젠체하며 음산한 평론이나 하며 비아냥거리던 습관…세상이 부조리하고 불평등하다고 분노하면 할수록 스스로는 더 편협해지고 강퍅해지기만 했다. 분노는 대상을 찾지 못해 가까운 주변으로 향하고 섣부른 성공에 대한 기대만큼 실망은 크게 마련이어서 내면은 황폐해져만 갔다. 필자가 그 방황의 순간에 알린스키를 만난 것은 작은 ‘구원’과도 같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 문제는 늘 스스로에게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추억의 저편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나의 추억을 아름답게 미화하기 위해 미래의 희망을 거짓으로 색칠할 수는 없다. 이제는 오랫동안 필자를 옭아매던 강박들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확신하지는 못하더라도 조금 여유로워 졌다고는 느껴진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는 않지만 ‘반드시’ 변화할 수 있는 곳이다. 체제 안에서 일해 가는 것은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확실한 변화를 만드는 길이다. 차이를 긍정하는 법을 배웠고 차이에도 불구하고 갈등하고 설득하며 또 과감하게 타협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미래에 대한 무한한 낙관은 필요 없지만 또 크게 절망해야할 이유도 딱히 없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지혜에서 출발해서 딱 그만큼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여전히 많은 것을 다시 사랑할 수 있고 또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고 세상의 변화를 위해 일해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 이 글과 강의는 필자의 동년배 세대들에 대한 위로였으면 좋겠고 더 힘든 시기를 거칠지도 모르는 다음세대를 위해선 변화를 위한 작은 참고서 정도였으면 한다. 필자의 세대들 중에서 세상의 변화를 바랬던 많은 사람들은 뜻하지 않게 많은 상처를 받았던 경우가 많다. 선배세대들이 겪었던 믿었던 것들이 무너지는 절망보다 오히려 우리 세대가 믿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와중에 지푸라기처럼 환상을 부여잡고 왔던 것에 대한 후회가 더 클지도 모른다. 그 환상의 안개가 걷히고 나서 현실을 목도했을 때 안타깝게도 많은 동료들이 실제로 마음의 병을 앓아야 했다. 이제 그만 아파했으면 한다. 모든 아픔이 추억으로 풍화되지는 않겠지만 술자리의 가끔 내뱉는 넋두리 정도로 비켜두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후회라는 감정이 새로운 도전의 발목을 잡게 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우리세대가 했어야 하는 일보다 우리가 지금부터 다시 다음세대를 위해 시작해야 하는 일들을 더 많이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다음세대에게는 어차피 필자의 경험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극적인 경험들이 기다리고 있기에 이 강의의 이야기들을 결코 ‘지침’ 따위로 삼을 필요도 없고 그럴리도 없다고 생각한다. 막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책 한권을 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이제부터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야할 20대들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책 말미에 붙였더랬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20대라고 말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다시 책을 한권 썼을 때 말했다. ‘지금 당신들과 같이 걷고 있다고’. 이제 30대의 중간을 넘어 마무리해가고 있는 지금은 그냥 ‘다음세대를 믿는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다음세대를 믿지 않고서는 필자가 하려고 하는 현재의 어떤 시도도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더 굳건히 다음세대의 가능성에 믿음과 애정을 보내야 할 것이다. 이제 이 글을 마칠 때이다. 조금 감상적인 마무리였지만 그 나름대로 진심이었음을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알린스키의 말로 마무리하려 한다.

‘함께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들인 웃음, 아름다움, 사랑 그리고 창조의 기회를 일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딘가에서 생활인이 되어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을 옛 동료들에게. 그리고 희망의 다른 이름인 다음 세대에게 존경과 애정을 보내며.

 

[조성주 공동대표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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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5/06/1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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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포트레이트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

[정동칼럼] 텅 빈 민주주의

인간이 만든 정치체제 가운데 민주주의만 유일하게 ‘목적을 전제하지 않은 체제’로 불린다. 민주주의에서만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목적을 시민이 참여하는 공적 논의를 거쳐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민주주의란 시민 모두가 의견을 가질 권리를 향유하는 체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가장 날카롭게 비판하고 나선 사람은 플라톤이었다. 그는 시민 대중의 불안정한 의견에 의존한다는 이유에서 민주주의를 나쁜 체제로 보았다. 불안정한 의견이 아니라 확고한 진리 위에 체제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 그가 주창한 것은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철학자 왕’ 내지 교육받은 소수 엘리트에 의한 지배였다. 민주주의자라면 플라톤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제기한 문제, 즉 ‘시민의 자유로운 의견에 기초를 둔 공적 결정의 체계가 과연 잘 작동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적절한 답이 있어야 할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민주주의 이론가라고 불리는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민주주의의 본질이 실질적 내용에 있지 않음을 다시 강조했다. 민주주의냐 아니냐를 구분짓는 것은 공적 논의와 결정의 과정에 평등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절차적 조건이 어떠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조건에서 의견의 자유가 공익적 결정과 양립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려 한 것인데, 그는 그 핵심을 ‘사회적 힘의 균형’에서 찾았다. 시민은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집단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하며, 이들 시민집단 사이의 힘의 균형 위에서 민주정치가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건축물의 단단한 기반처럼 시민 개개인이 다양한 집단으로 결속되어 있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우듯 몇 개의 공적 의견이 형성되어 경합할 때 민주주의는 그 이상에 가깝게 실천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이론적 기초 위에서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경제적 불평등 효과를 제어하고 노사를 포함한 주요 생산자 집단들 사이의 힘의 균형을 다루는 민주주의론의 발전이 있었다. 시민의 의견을 사회적으로 조직하는 것의 한계를 넘어 정치적 조직화의 중요성이 강조되기도 했다. 요컨대 민주주의는 집단과 조직, 결사체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시민 참여와 의견 형성 과정으로 이해된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를 보면 국가와 개인 사이가 텅 빈 공간처럼 다가온다. 누가 그 공간을 채우는가. 언론과 행정이다. 지난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지만 이번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에서도, 국가와 개인 사이의 공허한 공간을 주도했던 권력은 이들이었다. 이들에 의해 사회적 의견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시민 개개인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황은 이번에도 반복되었다. 이들이 유능하고 책임감이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무능하고 무책임함에도 위기 때마다 이들의 존재가 더욱더 크게 부각될 수밖에 없는 것은, 시민 개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달리 의존할 수 있는 대안적 판단의 원천이 없기 때문이다. 혹은 대안적 정보와 의견을 공유할 다양한 중간집단에 결속되어 있는 시민의 규모가 형편없이 작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번엔 보건의료노조가 합리적 의견 형성에 일정한 역할을 했지만, 노조나 정당 등 자율적 결사체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의 수는 너무 적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민은 행정권력과 언론권력에 욕하면서도 매달릴 수밖에 없다.

사실이 더 많이 알려지고 투명하게 공개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옳고 정확한 사실은 어딘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은 특정의 인식 틀을 통해 사실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 해석되고 판단되는 사회적 과정이 어떠냐 하는 데 있다. 민주주의도 일종의 정보처리 체계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정보가 선별되고 교환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집단과 조직, 결사체들이 역할을 해야 하고, 시민 개개인 역시 이 과정에 결속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민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의견을 통해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공적 판단을 가질 수 있고, 또 그래야 언론과 행정의 기능에 수동적인 소비자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다. 중대한 사안일수록 더욱 그렇다.

사회적 힘의 균형을 말하기 이전에 국가와 개인 사이가 텅 비어 있는 것 같은 지금의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 한, 우리의 민주주의가 행정권력과 언론권력에 휘둘리는 상황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민주주의에서 시민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욕할 자유뿐이다. 이래저래 시민은 더 사나워지고 사회는 더 분열되는 일만 많아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2015-06-08일자 경향신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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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5/06/08-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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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30.토.

국가는 잘 사는데 왜 국민은 못 사는가
-도널드 발렛, 제임스 스틸 공저 / 이찬 역

중산층과 생산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은 부상하는 중국과 인도의 값싼 노동력이 아니라 미국 내의 중산층을 파괴하는 정책들이자 그 정책을 만들기 위해 말그대로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로비하는 다국적 기업들과 초극소수의 부자들이라는 것을 강력히 어필하는 책이다. 보수적 싱크탱크와 재단들이 부상한 시기와 중산층이 침체된 시기가 정확히 일치한다는 소름돋는 이야기, 이른바 혁신 사업들로 불리는 사업들이 기존의 일자리들과 고용방식을 마치 구시대의 유물이자 망하는 지름길인 것처럼 갈아엎고 없애왔지만 사실은 그 결과 더 많은 서민들의 숨통을 조여 더 소수의 손에 부가 집중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생생히 들려주고 있다. 앞에서 강연을 듣는 듯, 이야기를 듣는 듯 친근하고 위트있는 문체로 써내려간 이 책은, 사례들을 하나하나 읽다보니 어느덧 예정된 12시를 조금 넘겨 강독을 끝낼 수 있었다. 미국에서 십여년간 거주하다 오신 분이 계셔서 토론은 자연스레 미국의 실상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수많은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이 책을 똑같이 대한민국 버전으로 써도 되겠다. (맞아맞아)

이게 실제로 미국에서 맞는 이야기인가?

큰 틀에서 맞는 이야기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이후 401(K)제도는 일종의 저축처럼 임금에서 돈을 넣고, 사측에서도 매칭펀드 식으로 넣어주는 방식. 그래서 한 달에 50~100만원 정도가 나오긴 한다. 그리고 은퇴 후 노후엔 시니어 아파트라는 곳이 있다. 여기 렌트는 80~100만불 정도 되는데, 1/3만 내면 나머지는 정부에서 지원해준다. 식료품은 푸드스탬프 제도로 해결 가능. 그렇다면 의식주 중 식,주는 이런 방식으로 해결하고 한달에 20만원 정도의 용돈으로 턱없이 부족하긴 하지만 생활은 가능하다.

(이부분에서 나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한국에서 중산층이 무너졌다는 것은 노후에 정말로 생계가 막막한 수준의 붕괴인데, 미국의 중산층이 다 무너졌대서 엄청 심각하게 이 책을 다 읽고났더니 그래도 미국은 망한게 의식주 중 식,주는 이정도로 보장된 수준이라니!(그렇다고 문제의 경중이 더하고 덜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님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우리나라 중산층들은 진짜 어느 정도로 망한 것인가 하는 절망감이 들었다. 복지병 논쟁을 들을 때마다 하는 생각이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복지의 ‘복’자도 꺼내지 않은 상태인데 지금 우리가 있는 선이나 비교선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미국은 연방이 사회보장에서 큰 영향력이 없지 않나?
미국에는 카운티(county)가 존재한다. 카운티에 여러 city들이 존재.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 주는 50여개의 카운티가 존재하고 지역의 카운티들이 지역의 문제를 해결한다. 그래서 예컨대 오바마케어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연방이 연방의 몫인 안보, 외교 등을 나쁘게 하는 건 가능한데 교육, 복지 등을 좋게 하는 건 힘든 것 같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나라는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면 보다 더 쉽게, 더 많이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좀 더 크다고 본다.

모든 사람이 정치에 목숨 걸지 않아도 되는 문화기도 하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이 일상적으로 정치에 참여, 노출 되어있다.

독서 모임 후, 함께 밥을 먹으며 이번 모임은 책과 실제 삶의 경험이 잘 어우러진 ‘반반치킨’ 같은 강의라는 평을 주셨다. 전날의 엄청난 삼겹살 파티 불금에 이어 독서모임 후 같이 점심 먹으면서 해장까지 함께한 것을 보면 금-토 환상의 콜라보레이션, ‘반반무많이’와 같은 날이 아니었나 평해본다.

수, 2015/06/0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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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발전소 페이스북 페이지 <좋아요> 6,000을 만들어주세요”

#. 소박한 것에 집착한다
정치발전소 페이지에 들어온다. 그새 <좋아요> 두 개가 늘었다. 좋다.

#. 방법을 찾아야 한다
“좋은 정치, 좋은 정당, 좋은 정치가, 좋은 보좌관, 좋은 시민을 양성하는 유쾌한 정치실험 공동체, 시민 정치교육의 장” 정치발전소를 설명하는 한줄 문구다. 하지만 “어떻게? 어디서부터? 누구와 함께?” 이 비전을 이루고 싶다면, 우리는 방법을, 길을 찾아야 한다.

#. 구현력
요 몇 주, 아침에 눈을 뜨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말이다. 머리 속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컴퓨터에 옮겨 담는데 수 시간이 든다. 그 글을 강좌로, 프로젝트로 실체화하는데 다시 수 시간이 든다. 마음과 머리, 머리와 컴퓨터, 컴퓨터와 현실 속에 간격을 좁히고 싶다. 하지만 급하게 좁히고 싶지 않다. 잘 좁히고 싶다. 서두름에서 늘 실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조급하지 않되, 치열함을 놓치지 않는 것. 여기에 개인과 조직 차원에서의 실력이 필요하다. 이 실력을 키워내는 것, 우리의 과제이다.

#. 사람들이 웃는다
강의를 연다. 사람들이 웃는다. 어떤 이는 위로를 받는다. 어떤 이는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겠다 한다. 누구는 정치적 언어를 얻는다. 누구는 친구를 만난다. 누구는 선생을 만난다. 누구는 함께 할 팀을 만난다. 사람들이 모인다. 모여서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한 장을 만들어낸다. <청사과: 청소년 정치 책읽기 모임>, <정치 팟캐스트: 서복경의 정치생태보고서>, <좋은 정치기사 모니터링팀>, 이외에도 수강생들 간에 다양한 모임이 만들어진다. 함께 공부한다는 것이 힘이 있음을 본다.

#. 다시 소박한 것에 집착한다
정치발전소 강좌와 활동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방법이 미약하다. 페이스북 페이지와 회원과 기 수강생들에게 메일을 보내는 것 외엔 아직 뾰족한 수가 없다. 더 많이 알리고 싶고, 더 많은 이들에게 찾아가고 싶다. 하지만 그 시작이 우리와 얼굴과 얼굴을 마주했던 이들의 추천이 되길 바란다. 이유는 느리게 가더라도, 오래 가는 만남, 오래가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만남이었으면 좋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원들에게 드리고픈 부탁이 하나 있다. 지인들에게 정치발전소 페이스북 페이지 <좋아요> 누르기를 추천해주시라(https://www.facebook.com/politeia.kr). 정치발전소 회원이 되어달라 권해주시면 이보다 기쁠 수가 없겠다(http://bit.ly/join_powerplant). 6월 3일, 현재 정치발전소 페이스북 페이지 <좋아요>는 3,043개이다. 다음 뉴스레터가 발행될 7월엔 <좋아요> 6,000개가 되어있으면 좋겠다.

좋은 정치 생태계, 좋은 시민 정치교육의 장을 만들어가는데, 여러분 모두의 도움이 필요하다.

김경미 정치발전소 기획실장

원기옥

토, 2015/05/3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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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2부] ‘우리언론 혁신보고서’ (게스트: 한겨레 이재훈 기자, the 300 김태은 기자)

# ‘알기 쉽게 기사쓰기’ 어떻게 할 것인가??
# ‘Digital First’??
# 왜 우리 언론은 스트레이트 위주인가??
# 언론사가 너무 많다??
# 온라인 기사 컨텐츠 날치기, 언론사-포털 간 왜곡된 관계의 시작??

때로 ‘사양산업’으로 까지 불리는 언론 업계, 그 미래는?
현직기자 두 분의 생생한 목소리로 전달합니다!

* 팟빵 듣기: http://www.podbbang.com/ch/9418
* iTunes 듣기: https://itunes.apple.com/…/seoboggyeong-ui-jeo…/id992321920…

* ‘정치생태보고서’를 응원해주시는 4가지 방법!
(1) 별점 주기! (2) ‘좋아요!’ 꾸욱 (3) 내친김에 구독까지? (4) 정치발전소 회원가입! (http://bit.ly/join_powerplant)

수, 2015/05/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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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캠프-Recovered

정치발전소에서 ‘노잼? 꿀잼! 청소년정치캠프’ 를 준비합니다.

부모가 자녀가 함께 참여하여 정치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고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8월 8일(토) 서울혁신파크 내 창문카페에서 진행됩니다.

참가신청 : http://bit.ly/잼잼캠프_1

금, 2015/07/10-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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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포트레이트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

[정동칼럼] 하나의 꿈, 하나의 팀

지난해 말, 강의를 위해 정의당 당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전과는 뭔가 다른 기분이 들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몇몇 당직자들을 마주쳤다. 그때마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눈인사를 받았다. 당연한 것일 수 있는데, 새로웠다. 강의 중간과 끝난 뒤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당사 안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밝았다.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현하고 나누는 것 같았다. 덩달아 기분이 좋았지만, 그래도 뭔가 이상하긴 했다.

잘 알다시피, 2008년에 이어 2012년에도 진보정당의 분열이 있었다. 엄청난 상처를 동반한 분열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 진보파들 사이에는 ‘엇갈리는 시선’이 생겼다. 같은 생각을 하는 같은 정파인지 여부에 따라 눈길을 주고 안 주고가 확실하게 구분되었다는 말이다. 얼굴을 마주 보고 웃는 사이와 그렇지 않은 사이가 구분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같은 당사,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는 당직자들 안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정파에 따라 식사도 따로 하고 담배도 따로 피웠다. 그런 그들 사이에 다른 누가 끼기라도 하면, 부자유스러운 표정이 서로를 감쌌다.

벌써 2년이 흘렀다. 당시 진보정의당 내에서 ‘참여계’ 출신 천호선 당 대표가 취임했을 때까지만 해도, 필자는 내심 비관적이었다. 당명을 정의당으로 바꾸고 당의 상징색을 노란색으로 바꾼 것도 맘에 안 들었다. 솔직히 잘 안 될 것 같았다. 그 뒤 강의나 토론을 위해 가끔 당사를 들렀지만, 그때에도 별로 달라진 느낌을 받지 못했다. 다소 냉정한 외부 관찰자로서 정의당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데, 지난해 말부터는 뭔가 달라진 느낌을 받게 된 것이다. 그 뒤 사람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서 알게 된 것은, 확실히 정파를 가로질러 눈길이 막힘 없이 교환된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마주 보고 웃었다. 정파의 구분조차 의미 없는 일인 것 같았다. 누가 이들을 서로 웃게 했을까.

인간이란 같은 조직 안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독한 존재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간이 흐르면서 옛 상처가 아무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제도의 변화도 있었다. 정파 안배를 고려했던 공동대표와 최고위원회 제도가 폐지되고 당 대표 중심 체제로 바뀌었다. 분명 이런 제도 변화 역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적어도 이 점에서는 무책임한 집단지도체제의 폐해를 경험하고 있는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참고할 만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진리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시간의 미덕’이나, 개개인의 행위를 규율하는 ‘제도 효과’만으로 설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이란 시간과 제도의 인과율에 지배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흐르는 시간 속에 새로운 기억을 일궈가는 일은 사람들의 노력 없이 불가능하다.

제도의 객관적 효과를 실질화하는 것 역시 인간의 수고에 달린 문제다. 무엇보다도 당직자들의 노력이 있었을 테지만, 필자가 만난 당직자들이 하나같이 꼽는 변화의 중심에는 천호선 대표가 있었다. 그는 참여계 출신이지만 모두에게 공정했고 인간적이었다고, 당직자들은 말한다. 전국의 당원 모임을 다니면서 그는 늘 “하나의 비전, 하나의 팀”이라는 목표 의식을 힘주어 강조했다고 한다. 그 말이 현실과 무관한 구호가 아니라 적어도 당 안에서는 어느 정도 현실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이제 필자는 가진다. ‘정당 간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그 전에 하나의 꿈을 갖는 하나의 팀으로서 제대로 된 정당 만들기가 선행돼야 한다’는 정당이론의 고전적 요청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최근 정의당 당 대표 선거가 여론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참여계를 대표하는 노항래도 있고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라이벌로 주목받았던 노회찬과 심상정도 있다. 2세대 진보정치를 대표하겠다는 조성주도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금의 경쟁에서 정파 차이로 인한 상처나 분열을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말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이런 변화의 보이지 않는 이면에는, 지난 2년간 정의당이 쌓아올린 무형의 자산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정당이란 공동의 정견을 가진 시민들의 연합체이자 하나의 팀’이어야 한다는 비전은 분명해졌다.

‘오래 걸렸지만 오래 갈’ 진보정당의 전통 하나를, 이제 임기를 마칠 천호선 대표가 세웠다. 이로써 한국 민주정치 발전에 의미 있는 기여를 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좋은 평가에 인색할 이유가 없음을 지금 정의당 선거가 보여주고 있다.

2015-06-06일자 경향신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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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5/07/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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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특강_변화의정치학

체제안에서 일해가며 세상의 실질적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강좌입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변화의 정치학’

일시 : 2015년 7월 23일(목) 오후 7:30
장소 : 정치발전소(불광역 2번출구 서울혁신파크 내)
참가비 : 정치발전소 회원 무료(비회원 5000원)
참가신청 : http://bit.ly/7월특강_변화의정치학 (원활한 행사준비를 위해 참가신청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화, 2015/07/1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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