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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는 다른 삶, 사회적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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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는 다른 삶, 사회적 경제

익명 (미확인) | 화, 2017/01/17- 11:25

시장과 사회적 경제라는 제목을 정해 놓고는 한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칼럼이라는 제약된 공간에 다루기에 주제가 너무 큰 탓도 있지만, 양자 간의 성격과 역할을 어떻게 설정하는 할 지 한동안 망설였다. 단순하게 현재의 시장기능이 갖는 비인간적인 탐욕을 비판하고 대안으로 사회적 경제를 설정하고 소개하는 수준에서 글은 쓴다면 쉽게 해결될 일이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과연 사회적 경제가 문제투성이지만 인간의 삶에 풍요를 가져온 시장경제를 대체할 수 있는 주류적 대안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본제적 시장경제의 폐해를 보안하는 장식물 수준으로 머물 것인지, 양자가 병립하면서 각자의 영역을 유지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상호작용을 하는 것인지, 대립적으로 충돌하면서 역사의 사건을 통하여 결국 한축이 실질적으로 소멸해갈 것인지 등 쉽지 않은 의문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결국 필자 스스로 구한 타협은 ‘인간이 왜 사냐’는 질문에 대답이 없듯이, 본 주제 역시 결국은 ‘인간에 대한 탐구’이고 따라서 산술문제처럼 명쾌한 정답이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편하게 글을 시작해 본다.

시장의 발전과 자본주의

일단 시장경제는 개인을 생존본능적 탐욕과 편함을 추구하는 존재로 파악하고 개인적 욕망이 시장을 움직이는 기본 동력으로 파악한다. 반면 사회적 경제는 인간과 인간사이의 협동과 가치를 중심으로 활동 영역을 설정한다. 따라서 인간의 외양적 존재양식으로 개인과 사회, 그리고 내면적 형질로서 탐욕적 이기심과 협동적 이타주의라는 상반된 주제를 함께 마주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시장이 본격적으로 인류사회에 도입된 시대는 중국의 송대(宋代)라고 알려져 있다. 중국미술사의 3대 보물로 알려져 있는 청명상하도(淸明上下圖)는 송대를 묘사한 그림으로 길이가 50미터가 넘는 비단폭에 당시의 화려한 도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는 대로변에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고 곳곳에 다양한 물산을 만들고 판매하는 모습을 정밀하고 화려하게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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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상하도의 일부.

이후 중국사회는 시장이라는 놀라운 기제를 통하여 서구의 산업혁명이 본격화되기 직전인 청의 건륭제 시대까지 인류사에서 물산이 가장 풍요로운 사회를 형성해 왔다. 이러한 역사적 유전인자가 굴욕적인 근대 역사를 극복하고 굴기하는 현대의 중국에서 재현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필자의 앞선 칼럼 ‘한국, 자유주의 결핍인가, 과잉인가’에서도 언급했듯이, 중세 말 자유도시의 출현과 함께 태동한 상업주의 기반 위에 증기기관의 발명 등 과학기술과 결합한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생산의 역사는 그간 완만한 산술적 속도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기 시작하였다.

수렵에서 농업의 시대로부터 정착된 수 만년의 긴 세월 동안 생산력이 두 배 정도 증가하는데 천년이라는 기간이 필요하던 시대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18세기 이후에는 같은 생산력의 증가를 수 십년 단위로 이루어내는 시대로 급작스레 진입하게 된다.

이러한 기하급수적 생산력 증대를 가져온 삼백 여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인류사회는 생물적 존속에 필요한 식량과 의복을 포함한 기초재의 해결을 넘어서서 대중적으로 풍요를 즐길 수 있는 대량생산과 유통이 가능한 경제력과 기반시설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왕성한 생산확장과 경제활동에는 역시 시장이라는 기제가 중심적으로 작동하여 왔다. 전통적으로 자신이 만들어낸 물건 또는 역할을 생활에 필요한 타인의 물건과 역할로 교환하고 매매하던 시장이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성격과 기능이 변하기 시작한다.

C-M-C’ (C:물건, M:화폐)로 표현할 수 있는 물물중심의 거래방식이 상업주의 시대에는 화폐가 중심매체가 되어 M-C-M’ 로 대체되고, 다시 산업혁명을 거치는 동안 M-P(N,L,T,,…)-C-M’ (P:생산과정, N:자연-토지와 원료, L:노동, T:기술,….)으로 바뀌어 가면서 M’ -M = ∆M, 즉 자본의 자기증식이 시장의 주요한 목적으로 변질되었다.

18세기이후 합리적 이성과 과학주의가 사구사회에 전면적으로 등장하면서 상기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려는 학문적 노력이 다양한 시각에서 이루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또한 실천적 노력의 과정이다. 문제는 이를 자신의 탐욕을 실현하는데 악용한 지배집단의 이데올로기 작동방식이었다.

경제학의 탄생…인간행위에 대한 수리적 도식화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건 푸줏간 주인, 술도가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생각 덕분이다”라는 이야기로 잘 알려진 아담 스미스(1723-1790)만큼 우리에게 잘못 소개된 인물도 드물다.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그동안 윤리학에 속하여 있던 경제라는 영역을 별도로 분리하여 독립된 학문으로 개척한 아담 스미스는 단순히 분업론만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노동가치설, 자본축척론, 특혜와 독점에 대한 비판 등을 주창하였다.

또 주연구 분야인 윤리학 분야의 저작 ‘도덕감성론’을 통하여 인간사회의 도덕과 정의, 질서 등 광범한 주제를 다루었다. 또한 그 역시 가난한 이웃을 위해 평생 동안 상당한 기부를 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수공업적 가내공업에서 공장제 대량생산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었고, 다수의 가내수공업적 공급체계라는 조건 속에서 이상적인 분업과 시장적 균형이론이 실제적으로 잘 적용되었으며, 우리에게 잘못 알려진 가공의 ‘스미스’와는 반대로 그는 미래로 다가오는 공장제적 대량생산이 가져올 독점적 특혜를 예측하며 매우 걱정을 했다고 한다.

시장에 대한 가장 심각한 왜곡은 자연과학의 성과로부터 시작되었다. 뉴턴의 역학을 중심으로 현상세계에 대한 물리학적 설명이 가능해지고, 이를 뒷받침하는 대수학적 이론이 발달하면서 시장과 경제현상 역시 물리학과 대수학적 방식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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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학파의 주요 인물들 (이미지 출처: https://www.progress.org/articles/austrian-economics-explained)

스미스 등에 의해 주창된 고전적 정치경제학에 알프레드 마샬이 시장균형이론을 보태었고, 뒤를 이어 오스트리아의 한계효용학파들은 마침내 ‘개별적 인간=이기적 존재=한계효용 곡선점’ 이라는 대수학적 정의를 도입한다.

이로써 규정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로서 살아있는 인간 개인들이 대수학의 공식을 그대로 복사한 경제학의 논리를 위하여 ‘경제적 동물’라는 상수조건으로 규정당하고, 수학공식과 같은 죽은 사물처럼 취급된다.

약육강식 정당화한 사회진화론

아담 스미스만큼 잘못 와전된 또 다른 인물이 찰스 다윈(1809-1882)이다. 위대한 그의 진화론은 생명과 자연생태계를 상호관계와 작용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실천적 방법론이고, 완성된 이론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화두(話頭)였다.

그의 자연(환경)선택론은 여전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대상이 생물계의 개체에서 군락으로, 그리고 인간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역사로 영역을 확장되고 있는 주제이다.

그러나 동시대의 스펜서 등 일군의 학자들이 진화론을 ‘적자생존’과 ‘약육강식’ 같이 저급하고 잘못된 이론으로 축소 해석하면서, 자본제 생성시기에 맞불려 살인적 노동자 수탈구조를 정당화하는데 악용되었다.

성장기에 있는 유소년들을 하루 18시간 이상 장기간 노동시키는 것도 약육강식의 논리로 정당화되었고, 뼈골이 빠지도록 일을 해도 가난을 못 벗어나는 것은 적자생존이라는 설명을 통하여 전적으로 자신이 못난 탓으로 돌려졌다. 19세기 초반에 입법화된 영국의 신빈민구제법은 이러한 논리위에서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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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왼쪽)과 허버스 스펜서. 스펜서는 찰스의 진화론은 인간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면서 인간사회 내의 약육강식을 정당화했다.

‘경제적 동물’과 ‘약육강식’이라는 단순한 규정과 천박한 이론이 자본증식의 탐욕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등장해 시장과 결합되면서, 과학기술과 산업혁명으로 찬란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던 인류의 역사가 오늘날까지 끝없는 수탈과 처참한 전쟁과 고통스런 빈곤 그리고 인간소외로 점철되는 역설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자본의 탐욕과 이를 정당화한 논리가 실제적으로 작동하는 시장이라는 기제가 함께 맞불려, 칼 폴라니가 표현했듯이, 악마의 맷돌로 변질되면서 지속적으로 우리 삶의 현실을 지배하게 된다.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구호는 실상 잘못된 현실을 은폐하고 기존의 기득권 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강력한 지배의 이데올로기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시장은 기본적으로 중립적이고 도구적 기제일 뿐이다. 문제는 사악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괴물 같은 논리와 제도로서의 체제인 것이다.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노력들

이러한 수탈적 자본제적 시장논리를 극복하자고 실천해 온 역사의 과정을 크게 세가지로 분류해 본다.

첫째는 마르크스를 중심으로 한 과학적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방식,

둘째로는 사적 소유와 시장의 기능을 인정한 바탕위에서 정치적 합의와 제도개선에 방점을 둔 사회민주주의 방식,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중심으로 한 인문적 사회주의 흐름, 그리고 여기에 기초하여 발전해온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운동을 열거해 볼 수 있다.

사회주의 방식은 20세기를 경과하면서 소비에트가 해체되는 등 명백하게 실패하였다. 현존하는 북한은 더 이상 사회주의가 아니라 세습된 전제적 병영체제이다. 중국은 계획적 사회주의의 한계를 명백히 인정하고 자본제로 방향을 전환하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인민집중적 권력의 통제를 받는 이중적 시장경제체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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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사회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맑스, 엥겔스, 레닌

쿠바는 위의 세가지 방식이 혼재된 이행과정 또는 방향을 모색중인 국가이다. 사회주의 실패의 주요 원인은 개별적 인간에 대한 이해접근 다시 말하면 고전적 자유주의를 제대로 수용하여 소화해 내지 못한 탓이다.

두 번째의 사민주의 방식은 19세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1-2차 세계대전이후, 반성과 성찰을 통해 ‘존엄과 정의와 연대’를 철학적 토대로 삼고 유럽대륙을 중심으로 강고히 뿌리를 내렸다. 신격화된 시장의 허구적 논리를 폭로하고 정치적 합의의 과정을 거쳐 시장을 본래의 기능적 수단으로 되돌려 합리적으로 규제하고 관리하며 인간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정책적 노력을 지속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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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사민주의의 선구자인 베른슈타인. 그는 무장폭력없이, 정치적 수단을 통해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인류의 미래를 향한 좌표로 평가받던 사민주의는 최근에 영국에서 노동당이 실패하고, 연이어 프랑스 사회당이 고전하며, 북유럽에서조차 진보세력이 우익세력에 밀려나는 현실에서 보듯이, 매우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것은 분명하다.

위기의 원인이 아직 분명하지 않으나, 유럽통합과정에 나타나는 후유증, 중국의 부상과 난민유입 등 세계적 흐름이라는 외적인 조건의 충격,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투항적 절충, 그리고 대의 민주주의가 갖는 취약점 노출과 함께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가 겹친 것으로 판단한다.

특히 트럼프 등장으로 새로운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날 ‘미국우선’의 국수적 시장만능주의에 대응한 유럽사회의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유럽에서 사민주의가 부활을 간절히 여망한다.

수탈적 자본제를 비판하는 또 다른 흐름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인간해방 또는 인본주의이라는 관점에서 형성되어왔다.

생시몽, 푸리에 등 중심이 되여 경제논리보다는 인간이라는 주제를 핵심적 관점으로 삼고 자유와 해방을 중심 주제로 사회를 해석하려는 일단의 그룹이 형성되었고, 이러한 맥을 이어 영국의 사업가 로버트 오웬은 자신이 책임지고 운영하던 방적사업체를 통하여 ‘뉴라나크’에서 인본주의적 산업실험을 이십여 년 간 진행한다.

그러나 밀어 닥친 방적산업의 불황과 주주간의 불화로 영국에서의 실험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하모니’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재개하였지만 오래지 않아 실패로 끝난다. 오웬은 죽기 전에 ‘다만 자신이 세상에 너무 일찍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남겼다고 한다.

‘사회적 경제’의 출현

상기의 인본적이고 진보적인 사상운동이 한때 공상적이라고 조롱을 받고, 특히 오웬의 헌신적이고 실천적 실험이 좌절한 과정과 배경을 살펴보는 것은 현재 시점에도 우리에게 매우 유용한 연구주제가 될 것이다. 이들 일단의 노력은 당시에는 일시적으로 실패하였으나 20세기 이후 복지국가의 출현과 기본소득논쟁 그리고 협동조합 등, 현대적 경제사상과 사회적 경제의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왼쪽부터 생시몽, 푸리에, 오엔. 이들의 비전은 맑스로부터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비난받았다.

사회적 경제는 공공적 영역과 시장적 영역을 벗어난 제3의 섹타에 속한다. 기본적으로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어 자발적 결사형태로 진행되고 발전되어 온 영역이다.

물론 사회적 경제라는 용어와는 무관하게 인류의 역사를 통하여 개개인과 한정된 조직들이 스스로 자조하고 공제하기 위하여 다양한 형태의 모임과 결사가 형성되어 왔다. 한국사회에서는 계와 향약이라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나타났고 유럽에서도 수공업자 중심의 길드나 이해를 공유하는 공동체 등 형태로 발전되어 왔으나, 사회의 주류적 형태로 발전하기 전까지는 이를 사회적 경제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전통적으로 경제보다는 인간과 사회를 강조해 왔던 프랑스에서 1840대에 사회적 경제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같은 시기에 영국의 로치데일 공장노동자들이 공동적으로 구매와 소비를 시작한 것으로 협동조합역사가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사회적 경제의 흐름이 형성되는 것은 제1-2차 세계대전과정에서 국가체계의 전반적 기능이 약화되면서 시민사회 스스로 자조하는 다양한 활동들이 주로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발전하고, 1970대 이후 ‘에너지위기’ 이후 서구의 경제와 복지체계가 위기를 맞이하면서 무력해지는 공공 시스템을 대신하려는 대안적 조직들이 시민사회 속에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였다.

1990대에 들어서면서 시장만능주의가 약탈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이에 저항하는 여러 형태의 양심적인 기업들의 활동이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

나라마다 편차를 보이고 있지만 2010년 기준으로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사회적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5-11% 수준이며 고용효과는 10-20% 수준을 상회하는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

여기에서 사회적 경제의 정의를 다시 살펴볼 필요성이 발생한다. 예컨대 제1 섹타인 공공의 영역을 대신하거나 공공기관에서 위탁 받아 움직이는 영역을 과연 순수하게 사회적 경제의 영역으로 보아야 하는 지 따져보아야 할 지점이다. 공공의 역할을 성과와 효율성 중심으로 평가하려는 복지서비스전달, 교육, 보건과 환경 등이 주요 영역이다.

또한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적 기업의 주요 목표가, 사회적 기능과 역할이라는 외피를 쓴 채, 구성원의 창의성과 적극성을 유도하여 본질적으로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 핵심 주제라면 이는 제2 섹타의 연장내지는 보완일 뿐이다.

잘못된 기존 질서와 악마의 맷돌에 대항하여 ‘자본이 아닌 인간을 중심으로 하고 사회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사회적 경제의 본질이자 목표라고 한다면, 위에 언급한 영역의 활동, 즉 제1 및 제2 섹타와 연관된 또는 혼재된 조직을 사회적 경제의 범주로 분류하고 포함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공적 영역과 시장적 기능이 없이 사회적 경제가 홀로 존속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오히려 이들 영역과 함께 맞물려 움직여 가며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실제적이며 효과적인 일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현재적 조건과 기능 그리고 미래적 지향과 가치가 타협적으로 충돌하게 된다.

한국의 사회적 경제 현황

한국적 현실로 돌아온다. 사회적 경제가 주요한 이슈로 등장한 것은 1997년 IMF 충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일자리를 잃으면서 실업대책과 극복의 방안으로 사회적 기업의 등장과 자활대책의 방식으로 사회적 경제라는 이슈가 전면으로 등장했을 때다. 

물론 이전에도 매우 중요하고 유의미한 활동들이 내재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예컨대 원주를 중심으로 한 한살림운동, 안산의료조합 등 여러 형태로 협동조합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러한 활동의 준거에는 무엇보다 고달픈 삶의 대안적 해결이라는 현실적 필요를 품고 있었으며, 추가로 시민사회자본의 형성과 공제적 상호부조 그리고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실험이라는 성격이 혼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IMF라는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으로 큰 흐름을 형성하게 된 한국에서의 사회적 경제활동은 이후 전개과정에서 출발점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하게 된다. 즉,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가치를 표방하기 보다는 당장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한 궁여지책의 일자리로서 역할이 압도적으로 주류를 이루고 생존수준의 저임구조가 형성되었다. 여기에서 시민자본의 형성과 풀뿌리 민주주의는 이름뿐인 구호로 퇴색할 위험을 항상 지니게 된다.

다행스럽게 국민의 정부를 통해 사회안전망이 체계적으로 구축되고 2007년에 사회적 기업 지원법, 2012년 협동조합 기본법이 시행되면서 제도적 지원속에 사회적 경제의 양적인 성장이 괄목하게 이루어 졌다.

2016년 기준으로 인증된 사회적 기업이 2000개 수준에 육박하며 고용효과도 만여 명에 이른 것으로 발표되었다. 협동조합의 실태는 등록제이여서 정확히 내용파악이 어려우나 등록된 숫자로만 만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기준을 적용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종합적 통계수치로 보면 사회적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부가가치기준으로 0.9%, 고용효과 면에서 4-6%으로 보도되고 있다. 과장된 느낌이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에 마을기업과 자활조직 등은 모두 포함된 것으로 보이나, 기존의 농수축산 협동조합과 새마을 금고 등을 포함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필자는 후자 부분을 사회적 경제 영역에 포함시켜서는 아니 된다고 단호하게 주장하고 싶다.

사회적 경제에 대한 오해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써 사회적 경제에 관하여 선진적인 유럽사회의 기준을 열거해 본다.

  • 1) 개인과 사회적 가치의 우선 원칙,
  • 2) 민주적 통제 여부,
  • 3) 실현된 이익(손실)의 공유화,
  • 4) 연대와 책임의 원칙,
  • 5) 지속적 조건여부,
  • 6) 자발성과 개방성,
  • 7) 국가/정부로부터 독립성.

이러한 기준으로 본다면 당연히 정부정책전달 수단으로 자율성과 투명성을 철저히 결여한 각종 조합과 조직들, 사채 집단을 공인해준 새마을금고, 껍데기만 이름뿐인 협동조합들과 사회기업 등은 사회적 경제영역으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 물론 기존의 관행을 버리고 위에 제시한 기준에 합당하게 새로운 출발이 가능하다면, 기준을 충족한 재출범이후 다시 검토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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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jcse.kr/economy/mind.sky?code=mind)

한걸음 더 나가서 보자면, 위에 언급한 기준에 합당하지 못한 사이비 조직과 단체들을 사회적 경제의 영역으로 분류한다는 것은 공공과 시장 그리고 사회적 영역 모두에게 심각한 해악적 폐해를 끼치는 일이다. 앞으로 만들어질 사회적 경제 기본법의 입법과정에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이제는 정치인들의 생색과 치적을 위한 행정적 전시효과를 생각하여 양적 내용과 부풀린 수치만 내세워 일을 추진해서는 안된다.

기후와 토양이 알맞으면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는 것처럼, 제대로 된 제도라는 환경과 조건이 주어지면 사회적 경제활동이 자연스레 뿌리를 내릴 것이다. 농사를 짓는 심정으로 희망이 없는 쭉정이는 버리고, 추진 과정에서 좀비같은 존재를 가려내고, 제대로 된 싹을 키워가는 질적인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지원해야 하는 단계에 진입해 있다고 판단한다.

되풀이 하자면, 현재 시점에서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해야 할 일은 머리수로 채워진 행정적 포장이 아니라, 양질의 사회적 경제의 조직들을 발굴해서 키워나가고, 어렵게 출범한 조직들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도록 주변의 환경과 조건을 마련해 주는 일이다.

이들에게 일정기간 직접적 지원과 혜택을 제공하며, 검증된 조직에게는 할당된 공공구매에 참여자격을 부여하고, 다양한 간접지원( 제도, 환경조성, 교육, 컨설팅 등)을 제공하고, 이들 간에 서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물론 가장 희망적인 것은 스스로 성장하여 가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긴요한 것은 사회적 경제영역에 돈줄 즉 금융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일 것이다. 미소금융의 예처럼 기존의 금융기관에 일정부분의 할당을 의무화하여 사회적 경제영역에 지원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도 방안이다.

정부투자 또는 공공기금을 기반으로 한 사회투자기금의 대폭 확충, 민간참여를 통한 다양한 시민자본의 형성, 지역내 재투자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금융, 성과측정을 전제로 한 공공투자계약(SIB), 클라우드 펀드조직의 활성화 등 서구의 경험에 기초한 다양한 방식을 깊게 연구해야 한다.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제안

수익이라는 성과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시장기제에는 1주1표라는 주주(자본)중심적 운용방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가치와 역할을 중시하는 제도에는 1인1표라는 인간중심적 협동조합 방식이 매우 소중하고 효과적이다.

그런데 필자의 경험으로 기존의 금융시스템으로는 다수의 인원이 주인으로 존재하는 협동조합에 대해 일반적 대출방식의 지원이 불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스페인의 몬드라곤과 같은 거대한 협동조합은 자체 내에 금융기능을 보유하여 필요한 자회사에 적시적소에 지원할 수 있으나, 현시점의 한국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자본이 필요하다면 조합원 개개인의 출자지분을 증액하는 것이 원칙이나 현실적으로 한계가 분명하다. 이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기존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신용보증기금 등을 활용하였듯이, 협동조합의 활동과 사업전망을 평가하여 대신 보증해 줄 수 있는 가칭 ‘협동조합지원 보증기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정기간 동안 사회적 경제가 궤도에 올릴 때까지 과감한 지원에 따르는 손실을 효과적으로 감당해 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경험이 있는 많은 아이디어를 담아내야하는 영역이다.

일부에서는 정부 부처내에 ‘사회적경제부’ 신설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ICT 산업이 발달하려면 정보통신부를 없애야 하고, 교육이 제대로 되려면 교육부를 없애야 한다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회적 경제는 반드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스스로 연대하여 성장해 나가야 하는 주제이다. 행정적 요소가 제도와 환경조성을 넘어서서 너무 깊이 개입하면 오히려 화근으로 돌아온다. 지난 몇 년간 보여준 사회적 기업의 부실한 활동성과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최소 수준으로 국무총리 산하에 ‘사회적 경제 위원회‘를 두고 지원부처간의 갈등조정과 민간단체들과 협의를 위한 창구를 개설하는 것은 고려해 볼만 하다. 이 경우, 최종결정권을 지닌 위원장은 반드시 민간인이 맡아야 한다.

사회적 경제를 접근하는 데 가장 위험한 것은, 시장경제에서 ‘인간은 경제적 동물’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였듯이, ‘인간은 협동적이고 이타적 존재’라고 규정하는 역선택의 사고를 갖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의 연구 성과와 진보적 게임이론을 통하여 인간과 사회가 줄곧 이타적이고 도덕적 방향으로 진보해 왔다는 주장은 대단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필자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는 사회적 경제의 영역을 다시 수학과 도식으로 규정하는 환원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을 규정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로 바라보면서, 현재 인류가 획득한 이성과 지혜로 각 시대에 합당한 제도를 구축하고 점차적으로 자유의 조건을 확대하여 가는 일이다.

대안적 질서, 사회적 경제

여기서 우리는 2009년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서’리는 저서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엘리노어 오스트롬의 조언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공유지를 함께 사용하는 조직에서는 우선 공유지의 조건을 제대로 살펴야 하며 현실적인 활동의 범위와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하고, 이에 따라 정해진 역할과 임무를 확실히 합의해야 한다.

이견과 다툼이 있을 시 이를 해결할 중재적 기능이 있어야 하고, 활동의 성과를 공평하게 분배하면서, 정해진 원칙을 이행하는지 확인하는 감독기능과 원칙이행을 위반할 시 이를 점증적으로 처벌하는 기능이 있어야 하며, 토론과 합의를 통하여 조직을 개선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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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노 오스트롬은 경제학의 오랜 숙제였던 ‘공유지의 비극’을 자율적인 자치거버넌스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다양한 사례분석 등을 통해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이러한 성과로 정치학자로서는 이례적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제도를 주어진 조건에 알맞게 만들어 내고 합의된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을 협동적으로 만들어 간다는 것을 함의한다.

인간사회가 존엄과 자유를 향해 끊임없이 나갈 수 있도록 현재의 정치적 사회적 장치를 끊임없이 개선해 가고, 지난 수백 년간 잘못 적용된 시장기제의 운용방식을 인간을 위한 유용한 수단과 방식으로 재구성해 가는 과정 속에, 사회적 경제의 진행적 실험이 공공과 시장의 영역들과 맞불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진화하고 성장하여 가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비민주적인 정치 상황에서는 사회적 경제가 성장할 수 없고, 수탈적 시장경제가 왕성하게 작동하는 곳에서는 사회적 경제가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닫힌 공간이 아니라 열린 사회속에서, 이기적이지도 않고 이타적이지도 않은, 열정을 가진 평범한 개인들이 ‘사회적 경제’라는 영역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실현해가고 나름대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조성된다면, 제3 섹타로서 사회적 경제는 결함투성인 시장경제를 대체해 가거나 또는 시장경제의 개선을 압박하는 경쟁적 파트너로서 자리를 잡아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래의 일자리를 만드는데 사회적 경제는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로베르토 웅거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진화적 과정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살아가는 유한적 존재이다 (Human is a definite being for indefinite process & purpose)”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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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가 트럼프라는 ‘괴물깡패’가 야기하는 한미 현안과 북미간 극한대립, 그리고 평창 평화올림픽에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동안에, 중국에서는 시진핑 집권 2기 출범의 신호탄인 제19차 공산당 전당대회(CCP)에서 이루어진 합의를 실행하는 첫 작업으로 중앙정부의 국무원이 제1호 문건(No.1 Document)을 발표하였다. 제목은 ‘농촌재활력(Rural Revitalization)’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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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 총서기가 구이저우(貴州) 쭌이(遵义) 시찰에 나선 모습. (사진: 인민망 한국어판)

우선 제목 자체가 던지는 이미지로 강하게 다가오는 것이 중국사회가 가장 중시하는 현안을 제 1호 문건이라는 이름으로 담았으리라는 짐작이다. 물론 지난 10여 년간 중국 국무원이 감당해야 하는 가장 주요한 현안이 항상 농업과 농촌에 관련한 주제이었다고는 하지만, 이번에 발표한 제1호 문건이 제시하는 내용과 방향은 여러 면에서 기존의 발표와는 격을 크게 달리하는 느낌이다.

 

현대 중국의 4번째 거대한 실험의 시작 알리는 선언인가

 아직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 나오지 않았고 이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지만, 필자가 받는 느낌은 현대 중국에서 4번째로 시도되는 거대한 실험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 같은 것이었다. 설명을 보태자면, 모택동 시대에 이룬 정치군사적 ‘자력갱생’, 등소평에 의해 촉발된 산업경제적 ‘개혁개방’, 후진타오가 주도한 서부 대개발과 동북부의 공업화를 통한 지역격차해소 또는 ‘’조화사회’라는 기존의 변혁적 실험에 이어 시진핑의 정치적 구호인 ‘중국의 꿈(中國夢)’을 실현하기 위해 중국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농민과 농민공, 그리고 농촌중심의 지역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야심에 찬 구상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80억 인류 인구의 10%가 넘는 9억 중국 농민과 농민공, 그리고 농촌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거대한 실험을 선언한 셈이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농민 농촌 농업을 융합하는 삼농(三農)주의를 진작에 제창하여 중국농업의 큰 방향을 제시한 원태쥔(溫鐵軍 – 중국인민대학 농업학원장 역임) 교수의 이야기를 살펴보아야 한다 (녹색평론 2018, 1-2월호 참조). 그는 농업이라는 관점에서 세계를 1) 농민이 경제인구의 2-3%로 위축된 식민지 종주국(유럽), 2) 노예와 현지인 노동력의 수탈을 기반으로 규모의 기업농이 가능했던 식민지화 대륙(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아프리카의 절반), 3) 오랜 전승 속에 가족과 지역 공동체가 기반이 되었던 소농 중심의 원주민 대륙(동아시아)으로 나누어 구분하고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특히 서세동점의 근현대 과정에서 구미세력에게 능욕을 당하고 일본에게마저 청일전쟁에서 패배를 경험하여 실의에 빠졌던 중국사회가 거대한 농촌 인구와 지역사회 연합을 통하여 일본의 악랄한 침략을 버티었고, 농민을 기반한 기층 민중이 중심이 되어 중국 공산당의 승리(以農村包圍都市 전략)를 이끌어 내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도 계속되는 서구 패권적 자본주의의 다양한 경제적 침탈을 견디어 내면서, 마침내 내생적 자력의 기반과 고도의 경제성장의 성과를 이루어 냈다고 주장한다.

또한 1만 년 간 소농 중심 농업문명의 긴 역사적 경험을 기반으로, 현재 6억의 농민인구에 더하여 도시를 떠돌지만 언제나 귀향할 수 있는 3억 명의 농민공을 합한 농촌 호적 인구가 중국 전인구의 70%를 점하면서 거대한 생산기반과 소비시장 그리고 미래지향적 잠재력을 제공한다고 판단한다. 이는 일본과 한국, 대만 등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산업적 기반을 구축하고 경제적으로 성공한 근거에는 경자유전의 농지개혁을 이루어 낸 배경이 있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중국 국무원이 현대화(modernization) 또는 산업화(industrialization) 대신에 농촌의 재활력(revitalization) 이라는 용어를 일부로 사용한 것에는 깊은 함의가 있다.

 

농촌 현대화, 산업화 대신 ‘재활력(revitalization)’이라고 한 이유는 

Revitalization은 캐나다의 시민운동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단어로서 농업을 다른 산업과 구별하여 접근할 것을 요구한다. 산업화가 가져온 온갖 부정적 결과와 기후환경의 위기에 직면하여 성찰적 반성을 통해 자연과 인간사회 간 대화와 조화, 환경적 친화라는 치유적인 생태적 전략을 요청하는 용어이다. 이는 사실 중국의 오랜 전통 속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정착농업이 시작된 지난 1만 년 동안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고 환경친화적 지속 가능한 유기농의 전승과 道法自然의 원칙을 설파한 노장사상의 연장 속에서 생태문명이라는 현대중국의 주요 슬로건과 쌍생아적인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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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를 찾기 위해 짐을 떠메고 도시로 찾아드는 농민공들. (사진: 서울신문)

좁은 시각에서 보면, 지난 해 말 북경에서 벌어졌던 일로, 수천 명의 농민공들이 불법 점거하여 거주하던 빈민촌에 발생하였던 화재사고를 빌미로 이들을 추운 거울에 대책도 없이 준비할 시간의 여유조차 주지 않고 막무가내로 북경의 외곽으로 추방한 사건에 대해 중국시민사회의 격렬한 비난과 항의가 제1 호 문건으로 농촌의 주제를 내놓은 배경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더 나가서는 경제가 6-7%의 고도성장을 이룩함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산업분야에서 더 이상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 대책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한국을 포함하여 선진적 경제의 수준에 이른 대부분 국가에서 앞으로 일어날 현상으로, 제 4차 산업혁명이 더욱 진전이 되면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산업현장의 작업에 로봇과 인공지능이 대거 도입이 되고 기존 개념의 일자리 부족이 심각한 문제가 되리라는 전망이다. 자연스레 이에 대한 대책으로 농촌지역의 활성화가 현실적 주제로 떠오른 셈이다.

마침 중국 공영방송인 CGTN이 소개한 여러 보도와 기사들을 통하여 ‘농촌활력화’라는 거대한 실험의 배경과 지향을 읽어 볼 수 있기에 내용의 일부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본다.

세계은행의 자료에 의하면, 중국의 저축률은 2016년 기준으로46%에 달하며, 이는 18% 수준인 미국과 27% 수준인 일본 등과 비교하여 대단히 높은 수준이지만, 문제는 이를 투자할 대상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조업이 공급과잉인 상태에서 더 이상 투자의 대상으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는 거대한 규모를 지닌 중국의 농촌이 당연히 잠재적인 투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중국은 이미 선진적 현대 기술의 적용에 있어서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최첨단을 형성하고 있다. 온라인상의 구매와 결제 방식은 이미 중국인민들의 일상생활에 중요한 영역을 이루고 있으며, 도시뿐만 아니라 농촌지역 역시 구매한 물품을 당일이 아닐지라도 수 일 내에 받아 볼 수 있는 네트워크 인프라가 형성되고 있다. 또한 현재의 농촌지역에서는 수많은 농민들이 단순히 구매 행위자일 뿐만 아니라 재화의 공급자로서 온라인 쇼핑의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있다. 20세기의 경제를 기계산업이 받쳐 주었다면, 21세기는 기술이 경제를 이끌어 가게 될 것이며, 중국은 이에 대한 만반의 준비가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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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캉 사회 건설에 걸림돌이 농촌과 서부 지역이라고 판단한 후진타오 지도부는 2006년부터 적용된 ‘제11차 5개년 계획’에 삼농(농업·농촌·농민) 문제 해결을 위한 ‘신농촌 건설’ 추진을 포함시켰다. 삼농 문제는 매년 1월 가장 먼저 제정해 시달하는 중요 정책문서인 ‘중앙 1호 문건’ 핵심 주제에 7년 연속 채택될 정도로 중국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사안이다. (자료 출처: 서울신문)

이런 환경과 조건에서 중국정부의 역할은 단순히 도로나 다리 또는 산업생산기지 등 기반시설의 확충이나 사업적 환경의 조성에서 끝나는 것 아니라, 재산 소유권의 재구성, 법치적 공의와 적의적인 적용, 생태적 환경 조성, 지역 친화적이며 분권적인 문화 형성 등 다양한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단순히 자본을 투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기술만 있다고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합의된 목표의 실현을 위한 역할과 정책적 과제를 수행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를 위한 제도적 실험은 이미 19차 공산당 전당대회가 있기 전에 시도되었다. 토지 임대에 대한 권한이 30년 이상으로 연장되었고, 시장의 힘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대규모의 농촌 개발사업에 대한 정부의 역할이 적극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중국은 지난 40년간 상해와 심천 등 연안의 도시들을 세계적 수준으로 개발하는 데 성공한 경험이 있다. 당연히 이러한 도시의 성공경험이 이제는 농촌지역으로 전면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위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정리해 보면 중국정부가 지향하는 ‘농촌재활력’ 사업은 다음의 4가지의 목표를 지향하는 것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시 주석이 제시하는 생태문명의 관점에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실현해나가는 실천을 통해 농촌지역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쾌적한 환경으로 복원하고 보존하는 것 (농촌).

둘째는 미국이 20세기 초에 모든 동원 가능한 물적 인적 자원을 농업에 집중시키면서 세계 최강의 국가로 발돋움하였듯이, 21세기에 성취한 현대 과학기술을 동원하여 인구의 절반이 종사하는 농업을 현대화하면서 높은 생산성을 추구하여 농촌에 거주하는 인민생활의 향상에 필요한 물적 기반을 확보하는 것 (농업).

셋째는 CGTN 보도기사에서 자세히 다루었듯이 단순한 교통과 물류 등 사회간접시설의 수준을 넘어서, 법치, 행정, 금융, 정보, 문화, 교육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기반의 제 조건을 갖추어 나가는 것 (농민).

최종적으로 농촌지역에 사는 농민의 생활수준이 도시의 임노동자의 수준과 동등하거나 이를 넘어서, 중국사회의 최대 현안이자 불안요소인 3억에 가까운 농민공에게 자신이 호적상 속해있는 농촌으로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라는 선물’을 마련하는 것 (현대적 이농촌포위도시 전략).

 

현대적 以農村包圍都市 전략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으나 국무원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개략 다음과 같이 기간을 3단계 (단기-중기-장기)로 나누어 기본적인 대강을 설정한다고 발표하였다.

우선 2020년까지 모두가 참여하는 제도적인 장치와 정치시스템을 구축하여 중국에서 단 한 명의 농민도 빈곤선 수준 이하에서 고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농촌지역에 생산력과 농산물 공급을 신속히 확장시킨다 (온포 溫飽).

By 2020, institutional framework and policy system should be basically established. By then, no one in China will be living under the existing poverty line, and rural productivity and agricultural supply will improve substantially.

2035년까지 농업과 농촌지역의 현대화를 통하여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룩하여야 한다. 모든 중국 인민들은 농촌에 거주하든, 도시에서 생활하든, 기본적인 공공재의 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어야 하며, 도농간의 융합이 진전되어야 한다 (소강 小康).

By 2035, “decisive” progress should be made with basic modernization of agriculture and rural areas. All Chinese, either in cities or rural areas, will have equal access to basic public services. Urban and rural integration will improve

2050년에는 농촌지역이 모든 영역에서 활력을 되찾아 경쟁력 있는 선진농업을 이루고, 거주하기에 생태적으로 아름다우며, 경제적 여유가 있는 생활을 즐긴다 (대동 大同).

By 2050, rural areas should see all-around vitalization featuring strong agriculture, a beautiful countryside and well-off farmers.

상기의 문건에 대한 중국방송의 보도내용과 해설기사를 살펴보면서 필자는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을 받았다. 아래로 몇 가지 소회를 적어본다.

중국과는 지리적 환경과 역사적 배경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한국사회는 과연 일반산업과 달리해야 하는 자연재적 농수임산업(農水林産業)에 대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태친화적이며 문명사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결단코 포기할 수 없는 식량수급의 안보전략,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천혜의 축복, 국토의 65%를 차지하는 산악지형 등을 감안하여, 단기적인 이해관계와 성급한 성과주의에 휘둘리지 말고 금수강산을 천년만년의 후손에게 넘겨줄 백년지계의 구상을 마련하는 데 중국의 ‘농촌재활력’ 계획을 반면지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백년지계 구상은 나올 수 없나

서구의 정당정치와 대의적 민주제가 한계를 드러내고 무능함과 더불어 편협한 민족주의와 천박한 포플리즘에 휘둘리는 현재의 세계적인 정치 지형과 흐름 속에서, 현대중국은 현능적 민주주의(merito-cracy)의 실현을 통하여 지난 40여 년간 놀라운 사회경제적 성과를 이루는 동시에 새로운 문명사적 비전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우리가 중국처럼 인민집중적 일당독재의 방식을 따라갈 수도 없고 도입해서도 안될 일이지만, 역사적 소명을 분명히 하면서 위민 위공(爲民爲公)의 자세로 철저히 헌신하는 중국의 지도자들이 지닌 자질과 덕성은 반드시 배워야 한다. 자연히 현재처럼 저질적이며 퇴행적이고 병리적 수준의 편아적 행태를 보이는 수구적 정치인들이 국회(國會)의 과반을 차지하는 한국의 정치제도와 현실을 질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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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공의 삶은 중국 경제 발전의 불균형을 나타냄과 동시에 사회 문제까지 야기시키고 있다.

선거법 개정이 시급한 이유이기도 하거니와, 근본적으로는 대의적 민주제를 뛰어 넘어 모든 시민들이 각성하고 학습하고 직접 참여하여 조직해 내 가는 고에너지의 직접민주주의의 도입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시민의회, 공론화 위원회, 지역대표성을 보완하는 직능직업 대표제의 도입 등 다양하게 21세기형 민회(民會)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미래의 정치는 절차적 과정으로서 민주제와 더불어 인민대중의 생활향상을 위한 민본적(民本的)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경제개발과 성장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물질적 진보는 반드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개별적 삶의 성취와 인간적 해방을 지향해야 한다 (로베르토 M 웅거의 ‘민주주의를 넘어’).

목, 2018/02/22-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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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송파구 씨젠 본사에서 만난 천종윤 대표는 진단시약 시장의 세계 제패가 머지않았다며 이 같이 밝혔다. 1시간 반 남짓 인터뷰 동안 천 대표에게 던진 질문은 매우 까다로운 편이었다. 연매출 800억원도 안 되는 회사...
목, 2017/05/1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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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이건희 회장 차명재산에 적법한 과세와 과징금을 부과하라

– 금융당국과 국세청에 대해 감사 및 검찰수사가 필요-

-삼성 이건희 회장 차명재산 처리수준에서 정부의 재벌개혁 의지가 드러날 것-

 

10월 30일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삼성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에 대한 적법한 과세가 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2008년 조준웅 특검이 밝혀낸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는 1199개였고, 재산은 4조 5천억원 규모였다. 하지만 정부가 손 놓고 있던 사이 이건희 회장은 차명계좌에 있는 돈의 대부분을 찾아갔고, 이 과정에서 세금을 내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은 과세뿐만 아니라, 과징금 부과 등의 조치가 가능했음에도 금융위는 그간 유권해석을 핑계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의원들의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어제(30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의 인출·해지·전환과정을 다시 점검하겠다고 하였다. 이어 한승희 국세청장도 과세를 적법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실련은 더 이상 정부가 재벌의 차명거래를 장려하는 잘못된 행정을 하지 않길 바라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첫째, 정부는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에 증여세와 과징금 부과를 해야한다. 금융실명제법에 따르면,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의 비실명자산에 대해서는 그 이자와 배당소득에 대해 90%의 세율로 소득세를 과세하도록 하고 있다. 아울러 금융실명제 실시 전의 비실명자산에 대해서는 이자와 배당소득에 대한 90%의 소득세 차등과세와 함께 금융실명제 실시일 당시 가액의 50%를 과징금으로 징수하도록 하고 있다. 상속·증여세법 제45조2(명의신탁재산의 증여의제)는 실제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른 경우에는 그 재산을 증여받은 것으로 보아 최고 50%의 증여세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배당소득이나 이자소득에 중과하는 것으로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 문제를 끝내려 한다면, 재벌의 적폐를 눈감아 주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부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과징금과 증여세를 부과해야 한다.

둘째, 검찰과 감사원은 금융당국과 국세청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하여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간 금융위와 국세청은 이건희 회장 차명재산의 실명전환 과정에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국감장에서 검찰 수사결과 등으로 차명계좌임이 확인되면, 금융실명제법 5조에서 말하는 비실명재산으로 보고, 이자 및 배당소득에 원천징수세율 90%를 적용하는 것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이는 금융당국과 국세청이 의지만 있었다면, 과세와 과징금 등의 조치가 충분했다는 의미이다.

이제 정부는 공정과세를 실현하고, 재벌개혁의 의지를 보이기 위해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철저한 조사를 통해 이건희 회장 차명재산에 대한 적법한 과세 및 행정조치와 함께 책임자에 대한 문책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경실련은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가 없을 시 검찰 수사를 촉구하고, 국민의 요구를 모으는 시민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이번 이건희 회장 차명재산 문제는 재벌개혁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으로, 국민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삼성그룹 또한 과거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 사회환원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을 촉구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화, 2017/10/3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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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세 번째 방북이 마무리되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복잡한 문제가 있었지만 ‘진전’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고, 북의 외무성 대변인은 담화를 통해 ‘유감’을 표명하였다. 두 당사가가 협상이 끝난 후, 서로 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북의 ‘유감’ 표명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서로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고 협상을 지속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내용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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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국일보

그 유감의 핵심은 미국의 일방적인 ‘비핵화’ 요구만이 있었고, 그에 상응하는 종전선언, 나아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요구라고 비판하고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미국의 이런 태도를 ‘과거 이전 행정부들이 고집하다가 대화과정을 다 말아먹고 불신과 전쟁위험만을 증폭’시킨 것이라고 한 대목이다. 그리고는 자신들 스스로를 가리켜 ‘우리의 기대와 희망은 어리석다고 말할 정도로 순진한 것’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북이 이처럼 어쩌면 위태해보일 정도로 강력한 비판이 담긴 담화문을 공개한 이유는 무엇일까? 담화문에서는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감을 드러내고 있고, 미국과의 합의와 협상의 틀을 깨기보다는 미국이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다. 그런 점에서 이 담화문의 핵심은 바로 미국이 해야 할 일을 성실히 수행하라는 것이다. 즉, 관계 개선, 비핵화,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세 가지 약속에 상응하는 조치들을 단계적으로 잘 준비하고, 그것들을 잘 조율하여 단계적이고 동시적으로 진행하자는 것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돌아봐야 할 중요한 문제가 놓여있다. 우리는 현재의 북미 정상회담 이후의 국면을 일방적인 북의 비핵화 과정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미국 주류 언론와 정치권의 입장이 그러하고, 우리 내부의 언론 또한 그러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북의 비핵화가 북이 떠 안은 ‘숙제’라고 한다면 – 사실, 북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가 정확하다. 그리고 이는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 종전·평화 체제 구축의 문제 등은 주로 미국이 떠 안은 ‘숙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미국은 자신들이 해야 할 숙제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북의 담화문이 말하는 것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은 숙제를 하고 있는가?

북의 비핵화는 쉽고 단순한 과정이 아니다. 기술적으로도 그렇지만, 정치적으로는 더욱 그러하다. 그렇기에 한 세대가 넘는 동안 이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우리에게는 마치 ‘신화’와 같은 한 가지 고정관념을 가지게 되었고, 이제는 변치 않는 진리처럼 여기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북의 비핵화’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에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북에 있고, 문제의 해결 역시 북이 비핵화를 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본다면, 이 문제는 북-미간의 정치-군사적 대결·대립 구조가 중심에 놓여있고, 남북 관계, 미중 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음을 금방이라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북미 관계의 신뢰 구축과 관계 개선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외에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지난 한 세대 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모두 동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북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가 올바르다는 것도 확인하게 되었다. 모든 남북관계 합의문, 그리고 싱가포르 합의문 등이나 협상장에 있는 미국 관료들에게서 일관되게 나오는 발언은 바로 ‘한반도 비핵화’이다.

지난 싱가포르 회담은 바로 이러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큰 진전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것은 북미 양국의 최고지도자가 직접 만났다는 것 이외에도, 지금까지 서로를 갈라놓고 있던 불신의 구조를 제거하면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등의 문제를 풀어가기로 한 합의가 이전과는 달라진 점을 확연히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싱가포르 합의문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북과 미국이 동시에 풀어야 할 수 많은 숙제도 동시에 떠안게 되었다. 북은 당장 핵과 미사일 시험을 중단하고, 핵 시험장을 폐기하고, 나아가서는 미사일 엔진시험장을 폐기하겠다는 숙제를 안게 되었고, 미국은 이에 상응하여 한미 군사훈련의 중단을 밝혔다. 그런데 그 뿐이었다. 더 이상의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아직까지는 북에 대한 더 이상의 공격적인 발언이 나오지 않을 뿐이다. 이렇게 보면 북도 반미 집회의 중단, 반미 구호의 중단 등 미국에 대한 호의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더 많은 조치들이 서로 조율되어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언론이나 미국의 주류 언론은 북의 비핵화, 비핵화 시간표 등의 일방적인 요구를 내놓고, 그에 대한 북의 반응만을 떠들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는 ‘북의 비핵화’라는 고정관념의 틀 속에 갇혀 있는 것이고, 정치적으로는 ‘북의 악마화’라는 불신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주류 언론과 우리의 언론은 서로가 앞 다투어 낡은 틀의 보도에 매달리고 있다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정작 자신들이 해야 할 숙제는 하지 않고, 북에 대해서는 숙제를 강요하고 자신들의 눈에 미흡할 때에는 모든 책임을 북에만 돌리는 과거의 낡은 사고의 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북의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잘 보면 대단히 중요한 구절이 눈에 띈다. 그대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낡은 방식으로는 절대로 새것을 창조할 수 없으며 백전백패한 케케묵은 낡은 방식을 답습하면 또 실패밖에 차례질 것이 없다.
조미관계력사상 처음으로 되는 싱가포르수뇌회담에서 짧은 시간에 귀중한 합의가 이룩된 것도 바로 트럼프대통령 자신이 조미관계와 조선반도비핵화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나가자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북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드러낸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낡은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약속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묻고 있는 것이다.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마땅히 해야 할 해야 할 숙제는 하고 있는가?

 

  • 2018년 7월 8일 <통일뉴스> 칼럼에 게재된 글입니다. 
수, 2018/07/1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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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주: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보이고 있는 행태는 rules-based order in agreement 가 아니라 일방적인 power-based order 방식이다. 북한 문제의 최고 전문가 중 한 분인 미국 조지아 대학교 박한식  명예교수 역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미간 협상에서의 미국 일방주의에 심각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기사는 미국의 이란 핵 협상의 일방적 파기로 야기되는 복잡한 국제정세의 전개에 중요한 시각을 제공하여 준다. 남북미의 향후 행보에 매우 소중한 참조가 되길 바란다.


미국은 동맹국들 없이도 세계를 관리할 수 있을까?

핵에 대한 이란의 야심을 저지하기 위해 어렵사리 성사시킨 국제합의에서 발을 빼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결정이 제기하는 핵심 질문이다.

미국의 힘을 일방적으로 휘두르겠다는 아이디어는, 국가안보보좌관에 새로 임명된 존 볼턴의 오래된 생각이다. 2000년 볼턴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내가 지금 유엔 안보리를 다시 만든다면, 상임이사국을 단 하나만 두겠다. 세계 권력분포를 정확하게 반영하기 때문이다.” 지금 볼턴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국제협력을 무시하는 미국 대통령을 위해 일하고 있다.

이란 핵 합의로부터 탈퇴하는 과정에서, 트럼프는 프랑스와 독일 및 영국 지도자들이 몸소 전달한 호소를 거절했다. 이란 핵 합의에 관한 결정은 트럼프 행정부의 공격적 일방주의를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그리고 가장 심각한 사례일 뿐이다.

지난해 6월 트럼프는 또 하나의 중대한 국제협약으로부터 미국을 철수시켰다. 파리기후변화협약이다. 바로 그 다음 주, 미국은 이스라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는 상징적인 조치를 취했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 모두가 줄기차게 반대했던 행동이었다. 또한 트럼프는 국제무역 시스템을 공격하는 중이다.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 캐나다, 유럽연합 등 핵심 동맹국들에게도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한다.

이들 정책은 단순히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아니다. 점점 더 “미국 고립주의(America Alone)”로 보인다. 이란 핵 합의 서명국 모두가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을 반대했다(프랑스, 독일, 영국, 중국, 러시아, 유럽연합).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찬성했지만 말이다.

마찬가지로 무역과 기후변화에 관한 트럼프의 접근법 역시 주요 동맹국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미국의 일방주의는 중동 지역에 직접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여타의 더 광범한 지역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이란과의 비밀회담을 이끌었던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은, 이란이 미국의 탈퇴에 반드시 맞대응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장 위기를 촉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고도의 원심분리기술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식의 비교적 덜 도발적인 조치를 선택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비교적 조심스런 이란의 대응마저도,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을 요구하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및 이스라엘 사람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은 이란에 대한 압력 수위를 조금씩 높이는 수단이라고, 그래서 더 많은 양보를 강제하는 수단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볼턴과 같은 트럼프의 핵심 보좌관들은, 이란 정권을 교체하겠다는 궁극적인 목표 아래, 진정으로 전쟁을 원하고 있을 수도 있다. 2015년 이란에 관한 언론 기고문에서 볼턴은 “오로지 군사행동을 통해서만 ……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동에서의 새로운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았을지는 모르지만, 이란 핵 합의를 휴지조각으로 만든 트럼프의 결정은 서방의 동맹 내부에 심대한 균열을 가져왔다. 2003년 조지 W 부시의 이라크 침공 결정으로 미국은 프랑스 및 독일과 갈라섰다. 그러나 당시에는 영국과 스페인, 네덜란드와 폴란드 등 이라크 문제를 두고 여전히 부시 행정부를 지지하는 유럽 동맹국들이 존재했다. 그런데 이란과 관련해서는, 미국을 확실하게 지지하는 유럽 국가를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소리 없는 분노가 유럽에서 들려온다. 미국의 제재에 동참하지 않기만 한다면, 이란 핵 합의를 지속할 수 있지 않겠냐는 논의가 유럽에서 벌어져 왔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힘을 행사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이유 때문이다. 미국은 에어버스나 토탈 등의 기업들에게 미국과 이란 시장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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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국일보

미국의 경제 권력이란, 단순히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지 여부를 훨씬 넘어선다. 이란과 거래를 지속하는 유럽 기업가가 미국을 여행하다 체포되는 극단적인 경우도 가능하다. 이란과 거래하는 유럽 은행이 미국 금융시스템으로부터 퇴출되고 심지어는 기소되거나 엄청난 벌금을 얻어맞을 수도 있다. 리처드 그리넬 독일 주재 미국 대사는 지난 화요일 트위터를 통해 이렇게 경고했다. “이란과 거래하는 독일 기업들은 즉시 그 활동을 종료해야만 한다.”

이 모든 상황은 미국 달러가 전 세계의 기축통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전임 프랑스 대통령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이 “엄청난 특권”이라고 표현했던 달러의 역할 말이다. 미국이 적대 국가들은 물론 동맹국들을 강제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군사력에 버금가는 달러의 힘 때문이다.

미국의 제재가 지니는 파괴력과 미국 사법 시스템이 미치는 광범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최근의 사례가 있다. 미국은 최근, 푸틴 정부와 밀접한 러시아 과두세력의 일원 올레그 데리파스카에게 심각한 타격을 안겼다. 유럽 경제계와 금융권은 데리파스카가 대표로 있는 세계2위의 알루미늄 생산업체 루살과의 거래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위협 때문이다.

심지어는 세계축구협회 피파의 몇몇 임원들 역시 미국 달러가 지니는 국제적인 힘을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2015년 스위스에서 체포되었고 미국으로 인도되어 부패혐의로 재판을 받아야 했다. 미국 은행을 이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들의 법률적 약점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세계 금융시스템에서 미국이 행사하는 중심 역할 때문에, 누가 대통령이 되건 미국 행정부는 경제라는 대단히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쥐게 된다. 그러나 너무 자주 사용하면, 이 무기가 지니는 힘도 약화된다. 러시아와 중국은 모두 미국을 우회하는 대안 국제결제 시스템을 구축하여 달러 이외의 통화를 사용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제는 유럽 역시 이러한 노력에 매력을 느낀다. 특히 유로의 국제 역할을 제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말이다. 그러나 유로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새로운 통화이며, 중국의 위안화는 모든 통화와의 환전이 어렵고, 러시아 루블은 아직 도전장을 내밀 처지가 아니다. 더구나 미국 이외 지역에서 유로로 거래하는 기업들조차도 잠재적으로는 미국 시장에서의 퇴출이라는 위협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

세계 경제계가 달러 사용 중지를 선언하면서도 희희낙락하고 미국 시장을 외면할 수 있는 날은 아직 멀었다. 이러한 달러의 영향력 때문에,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일방주의를 휘두를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크다고 트럼프가 믿을 수도 있겠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미국의 이란 핵합의 파기 혹은 파리기후협정 탈퇴가 용인될 수 없다고 불만을 터뜨릴 수 있지만,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다.

결국 유럽의 동맹국들은 미국 달러에 의존해야 할 뿐만 아니라, 트럼프가 반복해서 상기시켰듯이 미국의 군사 보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유럽이 스스로의 방위를 위해 “보다 노력”해야 하고 유로의 통합력을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논의가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미국이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책무를 근본적으로 거부하고 있다고” 믿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유럽의 정치적, 실질적 통합이 어려운 현실을 감안한다면, 아직은 어떠한 시도도 점진적일 가능성이 크다.

아시아의 미국 동맹국들 역시 유사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탈퇴와 철강에 대한 관세 위협에 일본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의 회담을 계획하는 트럼프를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동경에게는 미국의 안전보장을 손쉽게 대체할 대안이 전혀 없다. 그렇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가 치러야 할 대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대가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미국 행정부는 러시아와 중국을 자국의 전략적 경쟁 상대라고 지목해 왔는데, 미국이 이들 국가와 비교하여 지니는 차별성은 동맹국들과의 네트워크에서 나온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대단히 중요한 자산을 제공한다. 해외 군사기지는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바탕이다. 동맹국들과의 정보 공유는 미국이 테러 위협을 봉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마음 맞는 파트너란 법과 무역의 표준을 확립하는 데 요긴하다. 무엇보다 이들 동맹국은 미국이 자국의 힘을 행사하려고 할 경우 정통성을 제공한다.

미국이 모든 도전에 군사력이나 경제제재로 맞설 수는 없는 일이다. 평상시에 미국은 “규칙에 입각한 국제질서”에 의존한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과 동맹국들이 구축한 법과 제도의 네트워크이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맞서, 미국은 국제법에 호소했고 유엔 등에서 여타 국가의 지지를 동원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규칙에 입각한 질서가 그 기능을 발휘하려면, 때로는 미국 역시 그 규칙에 제약받을 용의가 있음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세계무역기구의 달갑지 않은 결정을 받아들인다거나, 미국에게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이란 핵 합의 조항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와 볼턴 등의 보좌관들은 이러한 제약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것 같다. 규칙을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 대신 힘을 바탕으로 하는 질서로 이동하려는 시도이다. 미국이 규칙을 정하고 여타 국가들은 이에 따르도록 강제되는 질서다. 한동안은 이런 질서가 유지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중동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행동할 의지가 확고한지 시험하려는 경쟁자를 초대하는 일이기도 하다. 훨씬 더 위험한 세계로 이끄는 비결이 되겠다.

기드온 라흐만(Gideon Rachman), Finantial Times 정치분석가

토, 2018/06/0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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