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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386] 2017년 '촛불'은 MB때 '촛불'을 복기해야 한다: '시민정치'와 '의회정치'의 아름다운 만남을 위하여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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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386] 2017년 '촛불'은 MB때 '촛불'을 복기해야 한다: '시민정치'와 '의회정치'의 아름다운 만남을 위하여 上

익명 (미확인) | 목, 2017/01/05- 17:17

2017년 '촛불'은 MB때 '촛불'을 복기해야 한다

'시민정치'와 '의회정치'의 아름다운 만남을 위하여 上

 

장은주 영산대학교 교수

 

시민혁명의 영구 혁명화

 

희망찬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 가을까지만 해도 우리는 이 나라가 온갖 정치적 추행과 부패로 인해 끝없이 나락으로만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 와중에 지난 겨울 위대한 촛불 혁명이 시작되었다.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선 시민들이 참담했던 절망의 끝에서 그 정치적 악행의 주범인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역사적 성취를 이뤄낸 지금, 이제는 오히려 나라를 완전히 새롭게 바꿀 수 있게 되었다는 희망이 온 나라를 감싸고 있다.

 

단순히 그 과정에 참여한 시민들의 수가 많아서만은 아니다. 앞으로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어서만도 아니다. 헌법재판소의 국회 결의안 인용부터 완전히 확실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과열된 대권 경쟁이 지난 87년처럼 '죽 쒀서 개 주는' 결과를 낳지 말라는 보장도 전혀 없다. 그러나 우리의 희망은 분명한 근거를 가진다. 그것은 바로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공화국에 대한 수많은 시민들의 합일된 의지와 그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을 갖고 있다는 믿음일 것이다. 다름 아니라 광장의 요구에 응답하는 제도권 정치라는 놀라운 수단 말이다.

 

어느 언론은 이를 두고 시민들이 '한 손에는 촛불, 한 손에는 정치'를 들었다고 표현했다. 또 어떤 이는 광장과 정치가 만났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촛불이 정치 혐오를 넘어서 드디어 정치를 도구로 삼았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미 촛불을 드는 행위 자체가 정치이며, 광장에는 광장 나름의 정치 문법이 작동하고 있는 바, 나는 이를 시민 정치와 의회 정치의 만남이라고 표현하련다. 어쨌거나 작년 말 우리는 바로 그런 만남이라는 스스로 만들어낸 민주주의의 진면목을 너무도 생생하게 확인했고, 그것만으로도 우리 시민들은 전 세계에 다른 유례가 없을 역사적 성취를 이루어내었다고 해야 한다. 이렇게 우리의 힘으로 민주주의가 생생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 희망의 근거다.

 

물론 앞으로 넘어야 할 난관은 차고 넘친다. 박근혜 탄핵이라는 목적을 위해 하나로 뭉치기는 했지만, 그 수많은 촛불 시민들은 여러 현안들에 대해 다양한 이견을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 당장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었으면 하는지, 개헌을 해야 하는지, 한다면 대선 전에 해야 하는지, 어떤 권력구조를 택해야 하는지 등의 문제들부터 서로 다른 생각의 날선 결들이 부딪히고 있다. 정계 개편을 통한 정권 재창출이라는 기득권 세력의 수동 혁명의 시도도 전혀 포기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촛불 혁명은 계속되어야 한다. 단순히 대통령 한 명을 권좌에서 쫓아내는 데서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적폐들을 제거하고,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을 만들어 사회 전체의 근본적 변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민주공화국이라고는 하지만 툭하면 시민들의 기본권이 침해당하는가 하면, 정경유착이 자행되어도 또 극심한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속절없이 진행되어도 최소한의 정치적 개입조차 봉쇄당하는 사이비 민주주의 체제가 이 땅에서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민주공화국이라는 이름에 전혀 걸맞지 않은 우리의 '앙시앙 레짐'은 철저히 혁파되어야 하고,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을 세우려는 시민들의 열망은 어떤 경우에도 실현되어야 한다. 이것은 현실적 가능성이기 이전에 너무도 절박한 역사적 당위다. 그리고 적어도 이 경우 '해야만 하는 것은 곧 할 수 있는 것이다.'(칸트)

 

그러기 위해서는 촛불 혁명은 말하자면 영구 혁명이 되어야 한다. 물론 앞으로도 시민들이 기약도 없이 주말마다 광장으로 나설 수 있어야 한다는 투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것은 촛불이 이제 일상화되고, 조직화되며, 제도화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도 촛불이 무정형의 얼굴 없는 익명의 대중들의 목소리로만 남지 않게끔 그것에 일정한 체계를 부여해서 의회의 정치를 좀 더 잘 시민 권력의 도구로 만들어야 하며, 또 그러한 시민적 주권성이 좀 더 확실하게 법적, 제도적 기반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시민 정치와 의회 정치의 아름다운 만남이 새로운 형태로 지속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들은 시민들대로 또 정당들은 정당들대로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자기 점검과 혁신이 필요할 것 같다. 우선 이에 대해 짧게 몇 마디 해 두려 한다.

 

 

 

'반(反)-정치의 정치'를 넘어

 

나로서는 그동안 우리 역사에서 광장에 나왔던 시민들이 자주 일정한 정치 혐오의 경향을 보여 왔다는 일각의 주장에 쉽게 동의하지 못한다. 지난 2008년의 광우병 반대 촛불집회가 그 열정과 강도와 지속성에 비해 아주 미미한 성과만 거뒀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당시의 촛불이 오로지 반정치적 지향만을 드러냈기에 그랬다고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촛불 운동은 기성의 정당이나 조직 운동의 틀을 벗어나는 새로운 정치 공간의 확장을 보여주었다고 해야 한다. 당시의 여권이 연이은 대선과 총선에서 압승했다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정치 지형과 별다른 정치적 계기가 없었던 탓이었지, 촛불이 정치와의 결합 자체를 아예 거부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 과정에서 불붙었던 시민 정치의 새로운 지향을 담아낼 제도권 정치의 틀과 내용이 마련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때의 시민 정치는 말하자면 반-정치의 정치였다. 낡은 이념과 지역구도 따위에 안주하는 제도권 정치에 대한 명백한 혐오와 거부의 태도를 보였지만, 시민들의 일상적 삶과 대중들의 평범한 집단적 상식과 이성에 기초한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었다. 그때 촛불은 수구 기득권 세력에게 무력하게 정권과 의회 권력 모두를 내주긴 했어도 그들이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를 했고, 야당들에게는 시민의 힘을 믿고 제대로 된 견제를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물론 시민 정치는 그 엄청난 촛불대집회들을 통해서도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고, MB 정권의 악정을 제대로 막아내지도 못했다. 나아가 그 정권을 선거에서 정치적으로 징치하지도 못했고 결국 박근혜라는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지도 못했다.

 

확실히 얼마간의 패착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당시의 촛불은 자기 조직화에 실패했다. 기성 정당이나 그동안의 조직 운동에 대한 반감이 컸던 탓이라고 이야기되지만, 새로운 가치관과 삶의 양식을 가진 촛불 대중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을 반-정치라는 틀 안에 다소 소극적으로 가두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그 틀을 넘어서려는 시도가 없었다고는 보지 않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시도는 결국 제도권 정치 안으로 일방적으로 흡수되어 버린 것 같다. MB 정권 말기 '민주통합당'의 탄생 과정이나 이른바 '안철수 현상'은 그 명백한 증거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이런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가령, 벌써부터 조짐이 보이지만, 우리 촛불 시민들이 특정 후보에 대한 맹목적 팬덤을 형성한 채 자신과는 다른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비난하고 혐오하는 대열에 설 때, 그 잘못은 반복되고 있다. 촛불이 특정 후보의 캠프로 들어가 소멸되거나 시민 정치가 특정 후보를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반대가 맞다. 어떤 경우에도 촛불의 주권성과 주도성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후보들이 촛불의 열망에 반응하게 하고 그 정치적 도구가 되게끔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결선투표를 매개로 하든 어떤 식으로든 연합정치의 틀을 만들어 가능하다면 차기 정부를 야권 전체의 공동 정부로 만들고 그 정부가 촛불 혁명을 완수하도록 해야 한다. 혁명이 지금 기로에 서 있다.(다음 편에 계속)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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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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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송년회는 작년에 이어 중구 북앤커피에서 있었습니다.

진대현 대표님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참석 회원 소개로 이어졌습니다.

2부에서는 소책자 <알기 쉬운 인천의 하천>를 한 해간 만든 소감과 책소개를

김민채 활동가를 통해 이야기 들었습니다.

또, 저어새 둥지가족에 꾸준히 참석해 주신 김도영 가족과 서지은,서현서 가족에

우수가족상 수여식도 있었습니다.

마지막 3부로는 천일홍 미니 리스 만들기를 꽃마당에서 준비해 주셔서

꽃과 함께 연말 분위기를 흠뻑 즐겼습니다.

한해 마무리를 잘 할수 있도록 참여해주신 모든 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수, 2018/01/0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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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3_87청년16청년토크콘서트 (1)

1987년 당시 청년세대와 2016년 청년세대가 광장에서 만났습니다. 사진ㅣ청년참여연대 

 

 

청년참여연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졌던 지난 10월 말부터 여러 행동을 준비하고 진행해왔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는 청년, 시민들께 #한줄시국선언을 받고 광화문광장에서 분노의 책읽기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다른 청년단체들과 함께 김제동 광장콘서트를 준비하기도 했고 매주 집회에서 현장스텝을 하며 더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 모일 수 있도록 함께 했습니다. 민주시민교육을 연구하는 대학생 학회 <민주주의디자이너>와 함께 기획한 세대공감 거리시국 토크콘서트 <87청년과 16청년, 광장에서 만나다>는 이미 10월 말부터 고민해온 숙원사업이었습니다. 기획이 시국을 따라가지 못할만큼 상황이 매일매일 변하고 광장으로부터 다양한 논쟁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토크콘서트의 주제는 점점 풍부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을 함께 살아가는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12월 3일, 첫 만남이 청계광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12월에 접어들었는데도 광장엔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었습니다. 불과 일주일 전 이 시간에 눈바람이 몰아쳤던터라 쏟아지는 햇살이 너무나도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본격적인 토크콘서트를 앞두고 한신대 강남훈 교수님이 청년배당의 필요성에 대해 10분 특강을 진행해주셨습니다. 지금 청년들의 상황이 어떤지, 왜 청년배당이 필요한지, 역시 기본소득 정책의 대가답게 '저게 될까?' 싶은 이야기를 너무나도 현실성 있게 그리고 쉽게 잘 설명해주셨습니다.

 

오늘 첫 만남에는 강남훈 교수님 외에도 손호철 교수님, 이조은 청년참여연대 활동가, 이지수 민주주의디자이너 대표가 함께 했습니다. 구체적인 강연 내용은 아래 두 기사를 통해 들여다볼까요?

 

[한겨레] 촛불 광장서 만난 87청년·16청년

 

3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열린 ‘세대공감 거리시국 이야기마당’. ‘87청년·16청년 광장에서 만나다’라는 부제는 이 자리의 성격을 잘 보여줬다. 광장에 울려 퍼지는 “박근혜 즉각 퇴진” 구호 안에는 사실 많은 다양성과 차이가 존재한다. 세대 차도 그중 하나다. 87년 세대와 2016년 세대는 경험과 실존의 다름에서 오는 차이를 윤리의 문제로 서로 오인하기도 했다. 광장은 그들을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위치로 옮겨놓았다.


87년 6월항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는 30년 전 그때를 궁금해했다. “유인물 인쇄해서 뿌리고 구호 외치면 3년 감옥 다녀와 정규직으로 취직하던 시절이었다.” 강남훈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독재 시절 우리는 대통령을 직접 뽑으면 뭐든 다 될 거라 생각했다.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할지 토론하거나 합의하지 못했다”며 “그 때문에 30년이 지나 이토록 참담한 헬조선을 맞은 것”이라고 짚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는 30년 전과 오늘을 ‘감옥+생존 안전성’ 대 ‘정치적 자유+경제 감옥(생존 불안)’으로 정리했다.


한때 ‘정치적 무관심’과 ‘수동성’으로 상징되던 젊은 세대는 지금 광장 정치의 대표주자다. 대학생인 이지수 민주주의디자이너 대표는 “그동안 광장에 나올 수 없었던 이유가 지금 광장에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스펙 경쟁과 아르바이트에 내몰려 ‘참여’ 여력이 없었으나,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삶이 바뀔 수 없는 체제라는 걸 알게 됐다는 것이다. 이조은 청년참여연대 활동가는 “청년들은 결코 비정치적이지 않다.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훈련해온 세대”라며 “공론장에서 대화와 설득을 하고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능력이 기성세대 눈에는 비정치적으로 보였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16세대는 6·10항쟁 때도 폭력-비폭력 논쟁이 있었는지 물었다. 손호철 교수는 “당시 정권 자체가 오직 물리력에 의해 유지됐기 때문에 이에 맞서 ‘다양한’ 저항방식이 있었고, 이런 방식이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받기도 했다”며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폭력이 아니지만, 돌을 하나 던져도 대중이 거부한다면 달리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이조은 활동가는 “고문받고 행방불명되던 때의 저항방식이 지금의 방식과 같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지금의 100만 집회에 소수자와 약자들이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은 평화가 보장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호응했다.


‘광장 이후’의 전망과 과제는 세대를 넘어서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됐다. 강남훈 교수는 “박근혜 퇴진을 넘어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요구가 광장 안에서 구체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며 “정치권에만 맡기면 안 된다. 이를 정치권에 강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지수 대표는 “광장에서 경험한 민주주의와 인권 감수성에 대한 경험이 일상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이를 위한 다양한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87년 6월 광장, 혁명의 장이었다” “오늘의 광장, 민주주의 학교 됐다"

 

‘6월 항쟁’의 주역 ‘87청년’이 2016년 청년에 응답해 광장으로 나왔다. 1987년과 2016년을 모두 겪은 그들은 광장을 ‘혁명의 장’이면서도 미완의 혁명이란 아쉬움의 대상으로 기억했다. 6월 항쟁이 직선제 개헌을 이끌었지만 이후 정치권의 분열로 항쟁의 의미가 퇴색됐기 때문이다. 반면 2016년 청년들에게 광장은 ‘민주주의의 학교’이며 ‘반폭력의 상징’이다. 29년의 세월만큼 광장과 집회에 대한 인상도 달라진 모습이었다. 

 

3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87청년과 16청년, 광장에서 만나다’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87청년으로 참여한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4·13 호헌조치가 촉발시킨 민심이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맞아 항쟁으로 폭발했다”고 29년 전 6월을 회상했다.  

 

손 교수는 국민이 퇴진을 요구하는데도 3차 담화에서 임기단축을 언급한 박근혜 대통령과 87년을 비교했다. 그는 “당시 국민의 요구를 ‘위로부터의 개혁’이 흡수한 결과 6·29선언이 나왔고 이후 야권이 분열했다”며 “(혁명 이후를) 정치집단에 맡겼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도 “당시에는 대통령을 내 손으로만 뽑는 나라가 되면 바랄 게 없겠다고 생각해 직선제 외에 다른 요구를 못했다”며 “이번 촛불혁명에는 대통령 퇴진 후 어떤 사회를 만들지 합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평화적인 집회 방식에 대한 논의도 나왔다. 손 교수는 “외국에 비해 비폭력적인 시위를 주로 해왔던 우리나라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이나 6월 항쟁처럼 폭력적 투쟁이 나타났던 건 정부의 위력을 제어해야 했기 때문”이라며 “정당화된 폭력이 되려면 다수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2016년 청년들은 비폭력 집회 기조를 유지하자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촛불이라는 방식 덕분에 여성, 장애인, 청소년이 모두 저항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조은 청년참여연대 활동가는 “물리적인 저항의 방식은 성인남성이 주가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대학생인 이지수 민주주의디자이너 대표도 “이번 시위에 아이와 함께 나온 가족이 정말 많았다”며 “광장이 민주주의의 학교가 된 셈”이라고 했다.

 

이번 시위에서 불거진 ‘약자 혐오 논란’도 고민 대상이었다. 노교수들은 1987년 당시 ‘반독재’라는 큰 흐름에 매몰돼 인권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손 교수는 “그때만 해도 정치적 억압 문제가 중요해 일상적 민주주의는 다 눌려버렸다”며 “페미니즘, 장애인 문제 등이 모두 묻혔는데 그런 문제가 이제라도 폭발한 것은 다행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2016 촛불 이후 대한민국의 과제로 일상적 민주주의를 꼽았다. 이조은 활동가는 “큰 정치적 민주주의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직장, 가정처럼 작은 공동체 내의 민주주의는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손 교수도 “시민이 광장에 나온 힘을 주체화하지 못한다면 일회성으로 끝날 뿐”이라고 덧붙였다. 

 

20161203_87청년16청년토크콘서트 (3)

 


다음 주에는 [우리가 원하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주제로 서울대 우희종 최갑수 교수님, 민주주의디자이너의 장윤정, 청년참여연대 민선영 님과 함께 두 번째 만남을 갖습니다. 12월 9일에 탄핵안 표결을 한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광장에서 만나게 될까요? 이번 주엔 꼭 만나요!

화, 2016/12/0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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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경제정의실천시민상 시상식

◎ 경제정의실천시민상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989년 11월 창립 이후 지금까지 우리사회의 경제정의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신 개인이나 단체를 선정하여 ‘경제정의를 실천한 시민상’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상을 통해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시는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가 양심이 존중받고, 용기 있는 행동이 격려받을 수 있는 사회로 거듭날 수 있도록 기여하고자 합니다.

◎ 2017년 경제정의실천시민상 수상자
촛불시민 : 2016년~2017년 정의, 평화, 연대를 기치로 광장에 모여 촛불을 밝히며 절제와 품격있는 민주주의의 새 장을 엶
김의겸 前한겨레신문 기자 : 최순실 보도를 통해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실체를 세상에 공개하여 국정을 바로 세우는 초석을 마련함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밝히고 피해자들의 구제운동을 진행함

 

◎ 역대 수상자
1990년 이문옥(감사관, 감사원 비리 폭로)
1991년 제주도 탑동도민회(공유수면매립지 개발이익을 도민에게 환원)
1992년 한겨례신문사, 겨레사랑-북녘동포돕기 범국민운동,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민족애 고취와 북한동포 살리기의 헌
신적 수행)
1993년 박종규(기업인, 바른경제동인회 설립 및 활동)
1994년 정농회(유기농업 실천, 환경보호, 소비자 건강)
1995년 김성훈(중앙대 교수,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대응)
1996년 5.18 학살자처벌특별법제정 범국민비상대책협의회(특별법 제정)
박계동(전 국회의원, 전직대통령 비자금 조성 폭로)
1998년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2000년 고양시 러브호텔 및 유흥업소난립저지 공동대책위
미군기지 군무원(주한미군의 독극물 한강 방류 고발)
2002년 김근태(국회의원, 정치자금 수수 양심고백)
2006년 천안시(천안시 아파트 분양가 상한선 시책)
2009년 이용석(연세대 교수, 신도시 건설업체 선정 심사위원 로비 폭로)
2013년 뉴스타파(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사회지도층의 역외탈세 보도)
권은희(서울 송파경찰서, 국정원 선거개입 수사 축소 압력 공개)
2016년 JTBC 보도국 사회2부 (국정개입의 결정적 증거 보도 및 세월호참사 후속 보도를 통한 지속적인 진실규명)

월, 2017/11/2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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