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연중공모] 2016년 건강지원사업 ‘엄마에게 희망을’-일반진료분야

지역

[연중공모] 2016년 건강지원사업 ‘엄마에게 희망을’-일반진료분야

익명 (미확인) | 일, 2016/11/13- 13:47

 

한국여성재단에서는 질병으로 인해 경제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 한부모 여성가장 및 그 자녀(결혼이주여성 포함), 공익단체 여성활동가의 건강한 삶 회복을 위해 의료비를 지원하는 『2016년 건강지원사업 <엄마에게 희망을> 일반진료분야』 을 연중 실시합니다. 2007년부터 시작한 건강지원사업 <엄마에게 희망을>은 지난 9년간 총 462명을 지원하며 여성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였습니다. 본 사업을 통하여 더 많은 여성에게 “희망”을 드릴 수 있기를 바라며,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1. 사업개요

1) 사업추진기간 : 2016년 1월 ~ 2016년 12월 (매월 20일까지 접수) ※ 본 사업은 수시지원사업으로 지원금 소진 시 2016년 12월 이내에 종료될 수 있습니다.

2) 지원 대상 및 내용

지원대상 자격 지원내용  지원한도액 
여성가장 및 그 자녀

(결혼이주여성 포함)

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조건부 수급자 및 차상위에 해당하는 여성가장 및 그 자녀

‘①번’ 조건을 충족하며 ‘현재 경제활동(일상생활)을 하고 있으나 질환으로 인해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료 후 안정적인 경제활동(일상생활)이 가능한 경우

※여성가장 자녀의 경우 ①번 조건을 충족하며 현재 경제활동 중인 여성가장의 미성년(만 19세 미만)자녀로써 일회성 지원(6개월이내 치료)로 회복 가능한 경우만 해당됨

① 질병의 치료, 수술, 입원비 (6개월 이내 치료로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는 질환)

※ 정신과 질환 지원 불가

사례당

최대

3,000,000만원 이내

 여성활동가 ① 공익단체 여성활동가로

② ‘①번’ 조건을 충족하며 경제적 어려움(최저생계비 200% 이하)으로 치료 진행이 불가한 경우

③ 이 밖에 건강지원소위원회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여성활동가 본인만 지원 가능

 

① 질병의 치료, 수술, 입원비 (6개월 이내 치료로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는 질환)

※ 정신과 질환 지원 불가

※ 단, 긴급 질병 발생 시, 신청기간과 무관하게 신청 가능 (긴급 질병과 관련하여 신청에 필요한 절차 및 관련 사항가 있을 시, 사무국 문의 요청)   

 

3) 사업진행과정

① 지원절차

 ※ 유의사항

 – 개인(지원자) : 개인 직접 신청은 불가함. 추천단체(시설)을 통해 신청

 – 추천단체(시설)

 * 신청 가능

 : 지역사회 여성지원사업 및 복지활동을 수행하는 단체 및 시설로 지원금의 집행관리 및 사례관리가 가능한 곳

 : 여성단체 및 시민사회단체, 자활훈련기관, 사회복지관련기관 등에서만 추천 가능

* 신청 불가능 : 국가관련시설(시군구 사회복지과), 의료기관(의료시설 의료사회복지부서)일경우 신청 불가능

개인

추천단체와 상담

추천단체

서류 준비 및 신청, 치료 종료 후 결과보고

한국여성재단

지원여부 알림, 지원금 지급 및 사례관리

지원여부 알림, 지원금 지급

 

② 지원사업 추진도

서류접수

서류심사

선정발표

치료및 사례관리

결과보고

의료비지원

매월

20일  접수마감

매월

20일~28일

익월

초순경

지원선정일로부터 6개월 이내

치료계획에 따른치료 진행

치료 종료 후 15일 이내

결과보고서제출

결과보고서 및 증빙서류 검토 후,

추천단체측으로 의료비지원

③ 선정결과는 한국여성재단 홈페이리 공지 및 선정사례 해당 추천단체 개별 연락

※ 사업 선정 발표 일시는 해당 월 일정에 따라 약간의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4) 지원 사업 특이사항

① 신청금액은 조정될 수 있습니다.

② 아래에 해당하는 분들은 신청이 불가합니다.

– (치과진료분야에 한함) 2년 이내 여성재단 건강지원사업 <치과진료분야>를 통해 지원받은 경우

– (일반진료분야에 한함) 1년 이내 여성재단 건강지원사업 <일반진료분야>를 통해 지원받은 경우

– 한국여성재단 유사사업을 통해 지원받은 경우

– 전체 치료비용에 있어 동일한 질환으로 타 기관(정부 포함)의 지원을 받은 경우

③ 지원 선정일로부터 타당한 이유 없이 3개월 이내에 치료를 시작하지 않는 경우 선정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④ 질병에 대한 치료가 시작되기 전 대상자가 제출한 진단서를 기분으로 심사가 진행됨에 따라,치료가 완료된 사항에 대한 지원은 불가능하며 향후(선정 이후) 예정된 치료에 대한 사항만 지원이 가능합니다.

⑤ 치료비 지급 방식은 결과보고서 제출 후 추천단체에 지급되는 ‘후지급’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⑥ 제출된 서류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2. 사업신청방법

1) 제출 방법 우편접수(매월 20일 우편 도착분에 한하여 해당 월 서류 심사)

① 접수시간 : 2016년 1월 ~ 2016년 12월 / 매월 20일 (연중 수시 접수)

2) 제출 서류 ※ 접수 서류가 모두 구비되어야만 심사대상이 되오니, 아래 서류(① ~ ⑦)를 모두 제출해주십시오.

① 공문

② 추천단체(시설)의 신청서 (※ 관련 (서식1) 참조)

③ 의료기관의 진단서 또는 치료계획서

(※ 진단명, 치료기간, 치료방법, 비용이 명확히 제시된 서류로 발급받으시길 바랍니다

 ※ 진단에 필요한 검사비, 진단비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④ 가족관계증명서 또는 한부모가족증명서 (※ 한부모가족증명서는 해당자에 한해 제출)

⑤ 건강보험료 납입 증명서 또는 수급자증명서

⑥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 및 활용 동의서 (※ 관련 (서식4) 참조)

⑦ 단체 소개서 및 관련 증빙서류 :  단체소개서 (※ 관련 (서식3) 참조), 비영리단체등록증 또는 신고증

3) 접수처 및 문의 : ① 우편접수 : (04001)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 5길 13 한국여성재단빌딩 5층 지원사업팀(민보경 앞)

② 문의 : 한국여성재단 지원사업팀 민보경대리(Tel. 02-336-6385)

[첨부파일]
(공모문)2016_엄마에게희망을_일반진료분야

(서식1,3) 2016_건강지원사업_엄마에게희망을_일반진료분야_(여성가장및자녀)

(서식1,3) 2016_건강지원사업_엄마에게희망을_일반진료분야_(여성활동가)

(서식4) 개인정보수집및이용_동의서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 아래는 2019년 1월 1일 ~ 31일까지의 기부자 명단입니다.

(주)덕수엔지니어링 (주)민들레누비

Aileen Park(박아일린)

강경림 강경아 강경희 강귀섭 강남식 강덕순 강명숙 강명진 강민아 강범희 강병원 강보승 강석기 강세원 강순애 강순원 강순자 강승희 강신해 강영아
강원두 강원화 강은나 강은숙 강인순 강재진 강점숙 강제훈 강종남 강종완 강주란 강지연 강지원 강태리 강현선 강현옥 강혜규 강혜선 강혜숙 강혜정
강호간 고경표 고명화 고명희 고영주 고영진 고윤섭 고은정 고재순 고제헌 고주형 고지원 고현실 고희경 공옥분 공태숙 곽숙희 곽영선 곽용규 곽은숙
곽지혜 곽현미 곽혜경 곽홍곤 곽효정 구민수 구상권 구옥순 구인선 구자민 구재웅 구춘자 구현주 구희 국미애 국영자 권경아 권광자 권금주 권다희
권명희 권상진 권순선 권순희 권애원 권양희 권영빈 권영선 권예온 권은숙 권은혜 권인숙 권주미 권진희 권창호 권춘심 권태영 권태완 권태정 권태혁
권현지 권혜영 길준상 김가은 김갑순 김건식 김건우 김경덕 김경란 김경미 김경석 김경섭 김경숙 김경순 김경심 김경애 김경임 김경자 김경진 김경혜
김경희 김공태 김광미 김광민 김광수 김광하 김군태 김규태 김근아 김금례 김기선 김길전 김나리 김나영 김남주 김남호 김남희 김대규 김대승 김덕선
김덕일 김도수 김도현 김도협 김동선 김동식 김동호 김동휘 김둘순 김득현 김리아 김만한 김명동 김명선 김명숙 김명일 김명임 김명진 김명해 김명화
김명희 김무진 김문수 김미경 김미령 김미숙 김미순 김미애 김미영 김미자 김미주 김미향 김미희 김민경 김민영 김민주 김병관 김병두 김병수 김병준
김보라 김복열 김복자 김봉겸 김봉일 김분기 김상본 김상욱 김상표 김상환 김상훈 김상희 김생기 김서영 김서현 김선갑 김선미 김선복 김선식 김선혜
김선희 김성규 김성근 김성분 김성숙 김성원 김성월 김성태 김성환 김세라 김세화 김소영 김소현/김경태 김솔희 김수경 김수민 김수연 김수영 김수자
김수정 김수진 김수현 김숙경 김숙성 김숙연 김숙주 김숙희 김순근 김순기 김순덕 김순연 김순열 김순영 김순자 김순정 김시온 김시진 김아라 김아리
김애숙 김애정 김양희 김언정 김엘리 김연미 김연화 김연희 김영국 김영남 김영래 김영롱 김영미 김영복 김영선 김영신 김영옥 김영은 김영자 김영재
김영주 김영지 김영채 김영철 김영화 김영희 김오목 김옥은 김용 김용관 김용덕 김우술 김우향 김운주 김원재 김원지 김유미 김유진 김윤경 김윤수
김윤주 김윤지 김윤철 김윤희 김은경 김은미 김은숙 김은순 김은실 김은아 김은영 김은정 김은주 김은진 김은희 김의향 김이경 김이슬 김익자 김인수
김인숙 김인순 김인영 김인자 김자현 김잔디 김장림 김재광 김재구 김재삼 김재선 김재연 김재천 김재춘 김재헌 김정규 김정대 김정란 김정미 김정선
김정수 김정숙 김정순 김정아 김정원 김정은 김정일 김정임 김정자 김정현 김정혜 김정화 김정희 김종덕 김종순 김종주 김종회 김주면 김주연 김주환
김준승 김준희 김지란 김지선 김지영 김지행 김지현 김지혜 김진경 김진근 김진미 김진성 김진아 김진옥 김진용 김진욱 김진일 김진태 김진희 김차순
김창근 김창연 김창재 김철순 김철홍 김춘지 김춘희 김충일 김치범 김태석 김태연 김태옥 김태진 김태훈 김하영 김한성 김한수 김행옥 김행인 김향미
김현미 김현수 김현숙 김현정 김현주 김현지 김현진 김현채 김형기 김형성 김혜경 김혜련 김혜리 김혜숙 김혜연 김혜영 김혜옥 김혜은 김혜전 김혜정
김혜진 김홍자 김효선 김효준 김효진 김희경 김희연 김희정 김희진

나성주 나영이 나윤경 나지연 나진희 남경희 남기용 남명순 남미정 남영주 남인순 노무현 노선숙 노옥련 노은숙 노은실 노은하 노의정 노재희 노정섭
노정아 노현준 노형수 노혜진

도이현 동고은 두석호

류경연 류복연 류시현 류영선 류유선 류인숙 류인혜 류정희 류춘희

마경희 마선자 마정윤 맹지열 맹혜정 명진숙 명희진 모지은 모혜자 모희현 문경숙 문경술 문경환 문경희 문금주 문병윤 문보경 문새미 문선유 문성원
문숙남 문시윤(문의성) 문영임 문영호 문유경 문은영 문인선 문재웅 문재호 문정곤 문정례 문진석 문희영 미르치과병원 민가영 민옥기 민형태

박가현 박갑순 박경림 박경미 박경수 박경순 박경희 박광온 박규리 박규태 박근영 박기남 박기순 박기용 박대근 박동렬 박동숙 박동언 박득숙 박래철
박명선 박명수 박명숙 박명자 박명주 박미령 박미연 박미화 박민숙 박민정 박민혁 박민희 박병호 박삼숙 박상현 박상희 박서연 박석자 박선영 박성분
박성택 박성희 박세경 박세영 박소연 박소진 박수미 박수진 박숙미 박숙예 박숙희 박순규 박순옥 박승일 박신연숙 박신영 박애경 박언주 박연라
박영민 박영삼 박영숙 박영주 박영준 박영희 박옥필 박용분 박용선 박용호 박우영 박은위 박은정 박은희 박의자 박이례 박익수 박재길 박재석 박재욱
박정곤 박정례 박정숙 박정자 박정혜 박정희 박종남 박종배 박종순 박주연 박주현 박준용 박지수 박지연 박지영 박지우 박지원 박지현 박지효 박진
박진아 박진영 박진우 박진원 박진향 박찬민 박찬범 박찬주 박채복 박채용 박충순 박현 박현미 박현순 박현신 박현자 박현정 박형주 박혜경 박혜란
박혜숙 박혜진 박효숙 박희옥 반정애 방윤혁 배기옥 배선희 배성신 배영숙 배은주 배종학 배주원 배진숙 배철용 배한영 백경자 백경흔 백명임 백선숙
백숙희 백순화 백승희 백연아 백영경 백진영 백형철 백화선 변성윤 변영선 변영우 변영희 변융태 변형석 복진수

서경석 서경옥 서경희 서대수 서동규 서동진 서민정 서수남 서숙 서승복 서승환 서영미 서영순 서영애 서영철 서우찬 서점순 서정섭 서정숙 서정호
서정화 서조아 서지현 서지희 서현숙 서혜정 서희숙 서희주 석나리 석미화 석영미 석영애 석영천 석용원 선수연 선은주 선재희 선진국 설영수 성경남
성기확 성명중 성수현 성형주 소옥녀 손만순 손병준 손순연 손압구 손영숙 손은경 손재광 손진화 손현숙 송기욱 송기원 송다영 송명순 송미령 송미영
송민경 송민수 송상희 송승원 송영숙 송영순 송영호 송예숙 송은영 송은우 송인범 송인자 송점심 송정미 송정민 송정애 송주연 송준용 송준호 송진호
송한현 송현주 송혜영 순수정 신경아 신동석 신동원 신동철 신미순 신민자 신봉균 신봉남 신상철 신세린 신소영 신영미 신예서 신유선 신윤관 신은섭
신은숙 신인철 신종은 신지영 신지원 신진남 신진영 신찬호 신창재 신현옥 신현정 신호성 신희숙 심경자 심복길 심숙경 심영희 심재춘 심정희 심진선
심창학 심현숙 심형은 심혜경

안경모 안기선 안덕남 안도연 안미영 안미화 안민석 안상진 안선영 안선주 안성민 안성회 안세전 안세준 안수란 안순화 안승용 안승욱 안은성 안인애
안인영 안재철 안종희 안지현 안필락 안현미 안현희 양미초 양민석 양서량 양서영 양세경 양수옥 양은오 양이숙 양재섭 양종화 양태경 양현식 양현정
양후전 양희연 양희영 양희은 엄규숙 엄미영 엄서영 엄선예 엄태호 여미숙 여선숙 여성문화이론연구소(사) 여진경 여혜숙 연미자 연세미치과(이미금)
연은희 염미화 예은숙 오가영 오경숙 오경철 오금식 오동석 오명순 오명옥 오비로 오선령 오세홍 오수정 오숙환 오승윤 오양희 오영미 오영수 오영실
오옥자 오윤겸 오정순 오정용 오춘희 오혜린 옥근남 옥지영 옥천수 우미숙 우복남 우상숙 울산여성의전화 원경숙 원용걸 원희룡 위소희 유경모
유경미 유경화 유경희 유나연 유무선 유민숙 유보람 유선기 유선희 유성엽 유소빈 유숙영 유숙자 유승완 유영미 유영실 유용재 유은자 유재경 유정미
유정신 유정원 유정희 유주영 유지영 유지은 유해미 유현정 유화열 유환구 유희숙 유희정 육성희 육희선 윤경숙 윤경화 윤계원 윤말이 윤미리 윤미재
윤비연 윤선정 윤성희 윤숙 윤영경 윤영란 윤영배 윤영일 윤옥경 윤유정 윤은영 윤은정 윤인숙 윤자영 윤정림 윤정자 윤정희 윤종철 윤하연 윤현숙
윤형석 윤혜영 윤흥준 음종성 이가영 이가윤 이강수 이건정 이경숙 이경순 이경신 이경애 이경준 이경진 이경희 이계경 이공례 이관호 이광미 이광민
이광우 이광호 이국화 이권명희 이귀우 이규선 이근재 이근정 이근주 이근현 이금복 이금순 이금임 이기연 이남희 이덕남 이덕종 이덕혜 이도형
이동선 이동신 이동훈 이동희 이라영 이명선 이명화 이문숙 이미경 이미란 이미숙 이미영 이미향 이민경 이범기 이보민 이복순 이봉찬 이상덕 이상민
이상엽 이상우 이상운 이상익 이상태 이서연 이서은 이선례 이선미 이선민 이선영 이선옥 이선용 이선이 이성광 이성우 이성원 이성은 이성일 이성자
이성헌 이성호 이소희 이송희 이수련 이수미 이수연 이수옥 이수이 이수정 이수진 이수행 이수현 이수희 이숙인 이숙진 이숙향 이순미 이순오 이순자
이순헌 이순희 이승수 이쌍선 이애란 이애리 이양주 이언주 이연옥 이연이 이연정 이연제 이연지 이영고 이영기 이영미 이영수 이영순 이영심 이영우
이영임 이영자 이영희 이옥경 이옥의 이옥자 이완정 이용갑 이용선 이용성 이용일 이용정 이용주 이원식 이유경 이유림 이유진 이윤경 이윤성 이윤숙
이윤재옥 이은 이은애 이은영 이은우 이은정 이은주 이은행 이은희 이응수 이의녀 이이섭 이인숙 이인순 이인우 이인자 이인재 이인화 이자영 이재숙
이재순 이재원 이재인 이재한 이점무 이정숙 이정아 이정옥 이정원 이정자 이정철 이정현 이제구 이종순 이종용 이종윤 이종흥 이주연 이주영 이주홍
이주희 이지수 이지숙 이지영 이지원 이지현 이지훈 이진경 이진서 이진숙 이진아 이진우 이창균 이창형 이채원 이철수 이철순 이춘아 이치우 이택준
이택호 이파라 이필영 이하린 이한돌 이한용 이현숙 이현순 이현옥 이현재 이현정 이혜숙 이혜영 이혜희 이호경 이호선 이홍재 이회영 이효대 이효숙
이효진 이흥재 이희석 이희선 이희예 이희원 이희정 인재근 임경수 임경숙 임경옥 임경자 임기수 임덕희 임성원 임성택 임수호 임순남 임순영 임순예
임연옥 임영미 임영주 임유원 임은주 임인숙 임정규 임정기 임준섭 임진식 임춘근 임현주 임형근 임호근

장경숙 장경월 장근창 장길웅 장동애 장명련 장병완 장봉근 장석만 장소연 장소원 장수옥 장수홍 장숙영 장순연 장승현 장애희 장연숙 장연진 장영미
장영석 장영아 장영임 장욱형 장원호 장유경 장윤선 장윤성 장이정수 장인선 장인정 장재철 장정숙 장정아 장정인 장정희 장주연 장지영 장철경
장해경 장혁재 장현진 장혜영 장희숙 장희연 전대근 전무영 전민경 전부숙 전성휘 전순천 전영미 전영애 전예진 전우용 전윤미 전은규 전은서 전지애
전진숙 전진영 전현주 전혜경 전혜림 정강자 정경옥 정경희 정구선 정근하 정길석 정길심 정도균 정동영 정동황 정란희 정미모 정미영 정미자 정미화
정민수 정복주 정상철 정선아 정선영 정성녕 정성화 정세은 정소영 정수진 정아현 정영숙 정영오 정영지 정영희 정용주 정원영 정원윤 정유연 정유진
정윤경 정윤헌 정윤희 정은경 정은선 정은자 정은주 정이기 정인선 정인하 정인화 정재실 정재형 정재호 정재홍 정점순 정정수 정정숙 정정옥 정주리
정지용 정지윤 정지훈 정진옥 정창근 정창남 정하선 정현 정현미 정현석 정현아 정혜경 정혜민 정혜상 정혜진 정효지 제명신 조경미 조권중 조규원
조기한 조동찬 조동환 조명숙 조미 조미래 조미영 조배숙 조배원 조상래 조선혜 조성덕 조성민 조성인 조성희 조수용 조아라 조연숙 조연희 조영란
조영한 조옥라 조용남 조윤세 조윤진 조인자 조임중 조정숙 조정연 조정하 조정희 조주은 조준경 조지혜 조진경 조진희 조천기 조춘이 조항례 조혁종
조형 조혜련 조혜리 조혜정 조호석 조호정 조화자 조흥식 주경은 주선숙 주영 주해숙 주해은 주혜명 지상구 지숙자 진소미 진태환

차승현 차연희 차재명 차주영 차철용 차효원 채수경 채승권 채연진 채연화 채용석 채은경 채지연 채현자 천소연 천정배 천정윤 천희란 최경수 최경숙
최경순 최경애 최경일 최경환 최광식 최권호 최길용 최덕희 최동길 최명진 최문영 최미애 최민호 최보솜 최새은 최선아 최선열 최선화 최성남 최성철
최수경 최수원 최수정 최수진 최수현 최순금 최순복 최순옥 최순임 최시현 최양호 최영욱 최영준 최옥숙 최운정 최원석 최원일 최유경 최유진 최윤미
최윤희 최은경 최은순 최은정 최은주 최은희 최인이 최인혁 최인형 최재숙 최정규 최정수 최정윤 최정인 최지선 최진희 최태진 최행자 최현호 최형숙
최호식 최화숙 최화연 최환호 최효정 최효진 최희경 추교훈 추연식 추혜선

커뮤니티컨설팅꾸림

탁성희

편민자 표근혜/표일용 피선희

하경란 하미선 하순원 하영선 하윤숙 하자운 하태성 하향자 한국자가이완협회 한명희 한미옥 한미정 한민숙 한송이 한영애 한영자 한옥연 한용호
한일순 한정연 한정욱 한정의 한진희 한창호 한태희 한혜경 한혜린 함영진 허목화 허미영 허선 허선이 허소연 허소정 허수연 허신학 허윤정 허윤희
허은실 허해영 현준식 호성투어 홍기태 홍미리 홍미선 홍미정 홍미희 홍상욱 홍석보 홍순명 홍순웅 홍영희 홍예서 홍예영 홍예진 홍용희 홍은숙
홍은희 홍인숙 홍정아 홍진선 홍춘택 홍현옥 홍현희 홍혜정 황경연 황경주 황나래 황미영 황병덕 황서영 황성철 황은주 황은진 황인섭 황정혜 황주연
황주홍 황준협 황진택 황훈영 희망웅상

금, 2019/02/08- 11:07
54
0

※ 아래는 2019년 2월 1일 ~ 28일까지의 기부자 명단입니다.

(주)덕수엔지니어링 (주)민들레누비

Aileen Park(박아일린)

강경림 강경아 강경희 강귀섭 강남식 강덕순 강명숙 강명진 강민아 강범희 강병원 강보승 강석기 강순애 강순원 강순자 강승희 강신해 강영아 강원두
강원화 강은나 강은숙 강인순 강재진 강점숙 강제훈 강종남 강종완 강주란 강지연 강지원 강태리 강현선 강현옥 강혜규 강혜선 강혜숙 강혜정 강호간
강희숙 고경표 고명화 고명희 고영주 고영진 고윤섭 고은정 고재순 고제헌 고주형 고지원 고현실 고희경 공옥분 공태숙 곽숙희 곽영선 곽용규 곽은숙
곽지혜 곽현미 곽혜경 곽효정 곽희환 구민수 구상권 구옥순 구인선 구자민 구재웅 구춘자 구현주 국미애 국영자 권경아 권광자 권금주 권다희 권명희
권상진 권순선 권순옥 권순희 권애원 권양희 권영빈 권영선 권예온 권은숙 권은혜 권인숙 권주미 권진희 권창호 권태영 권태완 권태정 권태혁 권현지
권혜영 길준상 김가은 김갑순 김건식 김건우 김경덕 김경란 김경미 김경석 김경숙 김경순 김경심 김경애 김경임 김경자 김경진 김경혜 김경희 김공태
김광미 김광수 김광하 김군태 김규태 김근아 김금례 김기선 김길전 김나리 김나영 김남주 김남호 김남희 김대규 김대승 김덕선 김덕일 김도수 김도현
김도협 김독자 김동선 김동식 김동호 김동휘 김둘순 김득현 김리아 김만한 김명동 김명선 김명숙 김명일 김명임 김명진 김명해 김명화 김명희 김무진
김문수 김미경 김미령 김미숙 김미순 김미애 김미영 김미자 김미주 김미향 김미희 김민경 김민성 김민영 김민주 김병관 김병두 김병수 김병준 김보라
김복열 김복자 김봉겸 김봉일 김분기 김상본 김상욱 김상표 김상환 김상훈 김상희 김생기 김서영 김서현 김선갑 김선미 김선복 김선식 김선혜 김선희
김성규 김성근 김성분 김성숙 김성원 김성월 김성태 김성환 김세화 김소영 김소현/김경태 김솔희 김수경 김수민 김수빈 김수연 김수영 김수자 김수정
김수진 김수현 김숙경 김숙성 김숙연 김숙주 김숙희 김순기 김순덕 김순연 김순열 김순영 김순자 김순정 김시온 김시진 김신자 김아라 김아리 김애숙
김애정 김양희 김언정 김엘리 김연례 김연미 김연화 김연희 김영국 김영남 김영래 김영롱 김영미 김영복 김영선 김영신 김영옥 김영자 김영재 김영주
김영지 김영채 김영철 김영화 김영희 김오목 김옥은 김용 김용강 김용남 김용덕 김우술 김우향 김운주 김원재 김원지 김유미 김유진 김윤경 김윤모
김윤수 김윤주 김윤지 김윤철 김윤희 김은경 김은미 김은숙 김은순 김은실 김은아 김은영 김은정 김은주 김은진 김은희 김의향 김이경 김이레 김이슬
김인수 김인숙 김인순 김인영 김인자 김자현 김잔디 김장림 김재광 김재구 김재삼 김재선 김재연 김재천 김재춘 김재헌 김정기 김정대 김정란 김정선
김정수 김정숙 김정순 김정아 김정원 김정은 김정일 김정자 김정현 김정혜 김정화 김정희 김종덕 김종순 김종회 김주연 김주환 김준승 김준희 김지란
김지선 김지연 김지영 김지행 김지현 김지혜 김진경 김진근 김진미 김진성 김진수 김진아 김진옥 김진용 김진욱 김진일 김진태 김진희 김차순 김창근
김창연 김창재 김철순 김철홍 김춘지 김춘희 김충일 김치범 김태석 김태연 김태옥 김태진 김태환 김태훈 김하영 김한성 김한수 김행옥 김행인 김향미
김현미 김현빈 김현수 김현숙 김현정 김현주 김현지 김현진 김현채 김형기 김형성 김혜경 김혜련 김혜리 김혜숙 김혜연 김혜영 김혜옥 김혜은 김혜전
김혜정 김혜진 김홍자 김효선 김효준 김효진 김희경 김희연 김희정 김희진

나성주 나영이 나윤경 나지연 나진희 남경희 남기용 남명순 남미정 남영주 남인순 남정민 노무현 노선숙 노옥련 노은숙 노은실 노은하 노의정 노재희
노정섭 노정아 노현준 노형수 노혜련 노혜진

도이현 동고은 두석호

란지에 류경연 류복연 류시현 류영선 류유선 류인숙 류인혜 류정희 류춘희

마경희 마선자 마정윤 맹지열 맹혜정 명진숙 명희진 모지은 모혜자 모희현 문경숙 문경술 문경환 문경희 문금주 문난하 문병윤 문보경 문새미 문선유
문성원 문숙남 문시윤(문의성) 문영임 문영호 문유경 문은영 문인선 문재웅 문재호 문정곤 문정례 문진석 문희영 민옥기 민형태

박가현 박갑순 박경림 박경미 박경수 박경순 박경희 박광온 박규리 박규태 박근영 박기남 박기순 박기용 박기조 박대근 박동렬 박동숙 박동언 박득숙
박명선 박명수 박명숙 박명자 박명주 박미령 박미연 박미화 박민숙 박민정 박민혁 박민희 박병호 박사용 박삼숙 박상현 박상희 박서연 박석자 박선영
박성택 박성희 박세경 박세영 박소연 박소진 박수미 박수진 박숙미 박숙예 박숙희 박순옥 박승일 박승진 박신연숙 박신영 박애경 박언주 박연라
박영민 박영삼 박영숙 박영주 박영준 박영희 박옥필 박용분 박용선 박용호 박우영 박은위 박은정 박은희 박의자 박이례 박익수 박재길 박재석 박재욱
박정곤 박정례 박정숙 박정자 박정혜 박정희 박종남 박종배 박종순 박주연 박주현 박준용 박지수 박지연 박지영 박지우 박지원 박지효 박진 박진아
박진영 박진우 박진원 박진향 박찬민 박찬범 박찬주 박채복 박채용 박충순 박현 박현미 박현순 박현신 박현자 박현정 박형주 박혜경 박혜란 박혜숙
박혜진 박효숙 박흥희 박희옥 박희진 반정애 방윤혁 배기옥 배선희 배성신 배영숙 배은주 배종학 배주원 배진숙 배철용 배한영 백경자 백경흔 백명임
백선숙 백숙희 백순화 백승희 백연아 백진영 백형철 백화선 변성윤 변영선 변영우 변영희 변융태 변형석 복진수 봉담고등학교동아리’클로젯’

서경옥 서경희 서대수 서동규 서동진 서민정 서수남 서숙 서승복 서승환 서영미 서영순 서영애 서영철 서우찬 서점순 서정섭 서정숙 서정호 서정화
서조아 서지현 서지희 서현숙 서혜정 서희숙 서희자 서희주 석나리 석미화 석영미 석영애 석영천 석용원 선은주 선재희 선진국 설영수 성경남 성경애
성기확 성명중 성수현 성형주 소옥녀 손만순 손병준 손순연 손압구 손영숙 손재광 손진화 손현숙 송기욱 송기원 송다영 송명순 송미령 송미영 송민경
송민수 송상희 송승원 송영숙 송영순 송영호 송예숙 송은영 송은우 송인범 송인자 송점심 송정미 송정민 송정애 송주연 송준용 송한현 송현주 송혜영
순수정 신경아 신동석 신동원 신동철 신명순 신민자 신봉균 신봉남 신봉철 신상철 신소영 신영미 신예서 신윤관 신은섭 신은숙 신인철 신종은 신지영
신지원 신진남 신진영 신찬호 신현옥 신현정 신호성 신희숙 심경자 심복길 심숙경 심영희 심재춘 심정희 심창학 심현숙 심혜경

안경모 안덕남 안미영 안미화 안민석 안상진 안선영 안선주 안성민 안성회 안수란 안순화 안승용 안승욱 안은성 안인애 안인영 안재철 안종희 안지현
안지환 안필락 안현미 안현희 양미초 양민석 양서량 양서영 양세경 양수옥 양은오 양이숙 양인승 양재섭 양종화 양진숙 양태경 양현식 양현정 양후전
양희연 양희영 양희은 엄규숙 엄기성 엄미영 엄서영 엄선예 엄태호 여미숙 여선숙 여성문화이론연구소(사) 여진경 여혜숙 연미자 연성치과의원
연은희 염미화 예은숙 오가영 오경숙 오경철 오금식 오동석 오렌지라이프생명보험 주식회사 오명순 오명옥 오세홍 오수정 오숙환 오양희 오영미
오영수 오영실 오윤겸 오정순 오정용 오정호 오지섭 오춘희 오혜린 옥근남 옥지영 옥천수 우미숙 우복남 우상숙 울산여성의전화 원경숙 원용걸
원희룡 위소희 유경미 유경화 유경희 유나연 유무선 유민숙 유보람 유선기 유선희 유성엽 유소빈 유숙영 유숙자 유승완 유영미 유영실 유용재 유은자
유재경 유정미 유정신 유정원 유정희 유주영 유중혁 유지영 유지은 유해미 유현정 유혜정 유화열 유환구 유희숙 유희정 육희선 윤경숙 윤경화 윤계원
윤말이 윤미리 윤미재 윤비연 윤선정 윤성희 윤숙 윤영경 윤영란 윤영배 윤영일 윤옥경 윤유정 윤은영 윤은정 윤인숙 윤자영 윤정림 윤정자 윤정희
윤종철 윤하연 윤현숙 윤형석 윤혜영 윤흥준 음종성 이가영 이가윤 이강수 이건정 이경숙 이경순 이경신 이경애 이경준 이경진 이경희 이계경 이공례
이관호 이광미 이광우 이광호 이국화 이권명희 이귀우 이근재 이근정 이근주 이근현 이금복 이금순 이금임 이기연 이나경 이남희 이덕남 이덕종
이덕혜 이도형 이동선 이동신 이동훈 이동희 이라영 이명선 이명화 이문숙 이미경 이미란 이미숙 이미영 이미향 이민경 이범기 이보민 이복순 이봉찬
이상덕 이상민 이상엽 이상우 이상운 이상은 이상익 이상태 이서연 이서은 이선례 이선미 이선민 이선영 이선옥 이선용 이선이 이성광 이성우 이성원
이성은 이성일 이성자 이성헌 이성호 이소희 이송희 이수경 이수련 이수미 이수연 이수옥 이수이 이수정 이수진 이수행 이수현 이수희 이숙인 이숙진
이숙향 이순미 이순오 이순자 이순헌 이순희 이승수 이쌍선 이애란 이애리 이양주 이언주 이연옥 이연이 이연정 이연제 이연지 이영고 이영기 이영미
이영수 이영순 이영심 이영우 이영임 이영자 이영주 이영희 이옥경 이옥의 이옥자 이완정 이용갑 이용선 이용성 이용일 이용정 이용주 이원식 이유경
이유림 이유진 이윤경 이윤성 이윤재옥 이은 이은애 이은영 이은우 이은정 이은주 이은행 이은희 이응수 이의녀 이이섭 이인숙 이인순 이인우 이인자
이인재 이인화 이자영 이재숙 이재순 이재원 이재인 이재한 이점무 이정구 이정숙 이정아 이정옥 이정원 이정자 이정철 이정현 이제구 이종순 이종용
이종윤 이종흥 이주연 이주영 이주홍 이주희 이지수 이지숙 이지영 이지원 이지현 이지훈 이진경 이진서 이진숙 이진아 이진우 이창균 이채원 이철수
이철순 이춘아 이치우 이택준 이택호 이필영 이하린 이한돌 이한용 이현선 이현숙 이현순 이현옥 이현재 이현정 이혜숙 이혜영 이혜희 이호경 이호선
이홍재 이회영 이효대 이효숙 이흥재 이희석 이희선 이희예 이희원 이희정 인재근 임경수 임경숙 임경옥 임경자 임기수 임덕희 임성원 임성택 임수호
임순남 임순영 임순예 임연옥 임영미 임영주 임유원 임은주 임인숙 임정규 임정기 임준섭 임진식 임채홍 임현주 임형근 임혜자 임호근

장경숙 장경월 장근창 장길웅 장동애 장명련 장병완 장봉근 장소연 장소원 장수옥 장수홍 장숙영 장순연 장승현 장애희 장연숙 장연진 장영미 장영석
장영아 장영임 장욱형 장원호 장유경 장윤선 장윤성 장이정수 장인선 장인정 장재철 장정숙 장정아 장정인 장정희 장주연 장지영 장철경 장해경
장혁재 장현진 장혜영 장희숙 장희연 전대근 전무영 전민경 전부숙 전성휘 전순천 전영미 전영애 전예진 전우용 전윤미 전은규 전은서 전지애 전진숙
전진영 전현주 전혜경 전혜림 정강자 정경옥 정경희 정구선 정근하 정길석 정길심 정도균 정동영 정동황 정란희 정미경 정미모 정미영 정미자 정미화
정민배 정민수 정복주 정상철 정선아 정선영 정성녕 정성화 정세은 정소영 정수진 정신희 정아현 정영숙 정영오 정영지 정영희 정용주 정원영 정원윤
정유연 정유진 정윤경 정윤석 정윤지 정윤헌 정윤희 정은경 정은선 정은자 정은주 정은화 정이기 정인선 정인하 정인화 정재실 정재현 정재호 정점순
정정수 정정숙 정정옥 정주리 정지용 정지윤 정지훈 정창근 정창남 정창수 정청자 정하선 정현 정현미 정현석 정현아 정혜경 정혜민 정혜상 정혜진
정효지 정희원 제명신 조경미 조권중 조규원 조기한 조동찬 조동환 조명숙 조미 조미래 조미영 조배숙 조배원 조병준 조보견 조복희 조상래 조선혜
조성덕 조성민 조성희 조아라 조연숙 조연희 조영란 조영한 조옥라 조완기 조용남 조윤세 조윤진 조인자 조임중 조정숙 조정하 조정희 조주은 조준경
조지혜 조진경 조진희 조천기 조춘이 조항례 조혁종 조형 조혜련 조혜정 조호석 조호정 조화자 조흥식 주경은 주선숙 주영 주해숙 주해은 주혜명
지상구 지숙자 진소미 진태환

차승현 차연희 차재명 차주영 차지원 차철용 차효원 채수경 채승권 채연진 채연화 채용석 채은경 채지연 천소연 천정배 천정윤 천희란 최경수 최경숙
최경순 최경애 최경일 최경환 최광식 최권호 최덕희 최동길 최명진 최문영 최미애 최민호 최병옥 최보솜 최새은 최석준 최선열 최선화 최성남 최성철
최송실 최수경 최수원 최수정 최수진 최수현 최순금 최순복 최순옥 최순임 최시현 최양호 최영욱 최영준 최옥숙 최운정 최원일 최유경 최유진 최윤미
최윤희 최은경 최은순 최은정 최은주 최은희 최인이 최인혁 최인형 최재숙 최정규 최정수 최정윤 최정인 최지선 최진희 최태진 최행자 최현주 최현호
최형숙 최호식 최화숙 최화연 최환호 최효정 최효진 최희경 추교훈 추연식 추혜선

커뮤니티컨설팅꾸림

탁성희

편민자 표근혜/표일용 피선희

하경란 하미선 하민정 하순원 하영선 하윤숙 하자운 하태성 하향자 한국자가이완협회 한명희 한문철 한미옥 한미정 한민숙 한송이 한수영 한숙자
한영애 한영자 한옥연 한용호 한일순 한정연 한정욱 한정의 한진희 한창호 한태희 한혜경 한혜린 함영진 해맑은치과 해피빈 허목화 허미영 허선
허선이 허소연 허소정 허윤정 허윤희 허은실 허해영 허혜진 현준식 호성투어 홍기태 홍미리 홍미선 홍미정 홍미희 홍상욱 홍석보 홍순명 홍순웅
홍영애 홍영희 홍예서 홍예영 홍예진 홍용희 홍은숙 홍은희 홍인숙 홍정아 홍진선 홍춘택 홍현옥 홍혜정 황경연 황경주 황나래 황미영 황병덕 황서영
황석민 황성철 황은주 황은진 황인섭 황인희 황정혜 황주연 황주홍 황주희 황준협 황진택 황훈영 희망웅상

금, 2019/03/08- 18:27
52
0

 

 

❍ 공연명: 그날

❍ 공연일시: 2019년 4월 12일(금) 오후 8시

❍ 공연장소: 국립국악원 예악당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364 국립국악원)

❍ 관람연령: 8세 이상 (취학아동 이상)

❍ 신청기한: 4월 4일(목) 오후 5시까지

❍ 후원: 국립국악원

❍ 공연 상세 설명: http://www.gugak.go.kr/site/program/performance/detail?menuid=001001001&performance_id=12992

※ 문화나눔은 개인정보보호 규정에 따라 신청시 개인정보 제공 동의가 필요합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하시면 됩니다. 문화나눔 선정 대상자 분들께는 별도로 문자 안내를 드릴 예정입니다.

☞ 신청하기

금, 2019/03/29- 11:09
11
0

건강지원사업 엄마에게희망을


2016년 건강지원사업 <엄마에게 희망을>

일반진료분야 – 6월 선정 결과 안내

2016년 6월 건강지원사업<엄마에게 희망을> 일반진료분야 선정결과를 아래와 같이 알려드립니다.

■ 여성가장 및 자녀 (총 2건 중 2건 선정)

no 추천기관 선정자 선정결과
1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임O서 전액지원
 2 포항시건강가정지원센터 김O민 전액지원

■ 여성활동가 (총 2건 중 2건 선정)

no 추천기관 선정자 선정결과
1 장애인문화예술판 임O영 전액지원
 2 드림캠프 박O옥 전액지원

지원이 결정된 분께는 추천단체를 통하여 개별적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정된 단체는 아래의 내용을 참고해주시기바랍니다.

선정 후 6개월 이내 치료를 종료합니다.

치료 종료 후 15일 이내 아래와 같이 서류를 제출합니다.

 

[제출서류]

  1. 공문
  2. 결과보고서(단체 측 결과보고서, 대상자 결과보고서 각 1부)
  3. 해당 영수증 원본(원본대조필 날인)
  4. (단체)통장사본
  5. (단체)사업자등록증 사본

지원금은 후지급입니다.(추천단체 or 대상자 선결제 후 해당 영수증 원본 제출 / 재단 증빙서류 확인 후, 추천단체로 해당 지원금을 보내드립니다.)

진료 중 병원 및 진료계획을 변경하게 될 경우 반드시 사전에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제출 방법]

*우편제출

(04001)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길 13(서교동), 한국여성재단빌딩 5층

한국여성재단 지원사업팀 민보경담당자

*결과보고서 다운받기

*문의사항 : 한국여성재단 지원사업팀 민보경대리 (02-336-6385 / [email protected])

 

수, 2016/06/29- 09:00
155
0
“저는 한국에 오면 하늘의 풍선처럼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와보니 천장에 막혀 날아가지 못하는 풍선 같아요.” 결혼이주여성 P씨의 이야기입니다. 연 평균 8% 증가, 전체 국민의 3.9% 차지! 이주민들은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닙니다.
20161103_cardNews1 20161103_cardNews2 20161103_cardNews3 20161103_cardNews4 20161103_cardNews5 20161103_cardNews6 20161103_cardNews7 20161103_cardNews8 20161103_cardNews9 20161103_cardNews10
월, 2016/11/07- 13:05
444
0

저마다 고향과 나름의 이유를 가진 이주민들이 우리 곁에서 살고 있습니다. 단일한 배경과 같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끼리 사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른바 우리는 문화 다양성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 다양함이 서로 어울려 조화롭게 돌아가는 사회를 ‘다문화 사회’라고 합니다. 다문화는 단일한 문화를 내세우는 것에 대치되는 상태 혹은 그 태도입니다.

1990년대 말, 국제결혼과 외국인 근로자의 이주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한국 역시 문화 다양성의 사회로 진입했습니다. <재한외국인처우개선법>, <다문화가족지원법> 등의 법률이 만들어지고,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설립 등 각종 정책이 쏟아졌습니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다문화정책은 이제 10년이 되어갑니다. 희망제작소는 새로운 시민으로 우리 곁에 찾아온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려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다문화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구의 일환으로 지난 10월 말 두 이주여성을 만났습니다.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번역사로 일하고 있는 이주여성 나랑체첵(몽골어 통번역, 6년째 근무) 씨와 주영애(중국어 통번역, 3년째 근무) 씨입니다. 나랑체첵 씨는 2004년에, 주영애 씨는 1997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우리도 한국인이에요

사람들은 두 사람을 한국인으로 대하고 있을까? ‘혹시’하고 물은 대답은 ‘역시나’였다.

“말을 안 하면 잘 몰라요. 입을 열면 외국인이냐고 묻죠.” (나랑체첵)

유창한 한국어 실력으로 인사를 하던 주영애씨는 외국인이냐는 질문이 난감하다고 했다.

“저는 이미 귀화해서 한국인인데, 중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다들 외국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는 사람은 나쁜 뜻이라고 생각 안 하지만, 듣는 입장에선 상처가 되더라고요.” (주영애)

두 사람은, 요즘 많이 회자하는 다문화 가정, 다문화 아동, 다문화인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많은 듯했다.

“다문화라는 것은 여러 문화가 어우러진다는 아름다운 의미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못 사는 국가의 여자들이 한국에 와서 결혼 못 하는 남자들과 결혼하는 것’이라고 인식되는 것 같아요. 끌어안아야 하는 짐, 부담처럼 보이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저는 20년 가까이 한국에 살고 있고, 또 한국인으로 살고 싶은데 말이에요.” (주영애)

주영애 씨와 나랑체첵 씨는 그동안 진행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지금은 그곳의 직원이 되어 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다문화사업에 대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생긴 지 10년이 되었거든요. 저는 센터가 처음 생길 때부터 이용해왔어요. 센터는, 열악한 환경에서 코리안드림을 위해 한국에 온 사람들을 끌어안기 위해, 그리고 그들을 한국 사람답게 만들기 위한 곳이라고 봐요. 그런데 자국민도 잘 챙기지 못하면서 왜 외국인에게 예산 낭비하냐고, 역차별 아니냐고, 한국인들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데 왜 이주여성 일자리만 지원하냐며 반대의견이 나올 때는 너무 속상합니다.” (주영애)

▲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홈페이지(namyangjusi.liveinkorea.kr)

▲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홈페이지(http://namyangjusi.liveinkorea.kr)


눈치, 성과 압박, 해고의 두려움… 한국의 사회생활

구제대상으로 들어와서 한국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당당한 사회일원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안 보는 것 같다며 주영애씨는 토로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게 되면서 왜 외국인에게까지 일자리 주냐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했는데요.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각각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외국인 직원은 1~2명이지만, 한국인 직원은 더 많다고요. 즉, 우리 같은 사람들 일자리가 한 개 생기면, 한국인들 일자리도 덩달아 더 많이 늘어나는 게 아닌가’라고요.” (주영애)

곱지 않은 시선에다 엄청난 경쟁률까지 뚫고 하게 된 통번역사 일이 할 만한지 물었다. 녹록지 않다는 표정이 두 사람의 얼굴을 스쳤다.

“통번역사 제도는 2009년부터 시작됐어요. 현재 전국에 300여 명의 (이주여성)통번역사가 있는데, 근무 기간이 짧아요. 우선 한국인들 속에서 적응하기가 어려워요. 행정업무 처리하기도 어렵고, 통번역 외에 센터의 다른 사업도 해야 하고요.” (나랑체첵)

‘일자리는 좋은데, 사회생활 자체가 어렵다’고 나랑체첵씨는 표현했다. 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했다.

“우리는 눈치 없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주영애)

“그건 저도 인정해요.(웃음)” (나랑체첵)

한국의 사회생활에서 규정이나 매뉴얼보다 중요하다는 ‘눈치껏 잘하기’. 이들에게는 생소하고 어려운 문화인 것이다.

“직장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느껴요. 중국이나 몽골은 수평관계인데, 한국은 수직관계인 거 같습니다. 눈치로 배워야 하는 게 많아요. 이런 부분은 아직도 어렵죠.” (주영애)

“저는 행정적인 부분이 제일 어렵고 힘들었어요. 뭐 하나 하려면 기획서, 보고서 등 써야 할 게 엄청 많아서 처음엔 엄청 어려웠어요. 물론 하면서 엄청 성장했지만요.(웃음)” (나랑체첵)

눈치로 시작된 이야기는 일자리 처우 개선까지 이어졌다. 6년째인데 막내처럼 일해서 답답한 점, 최저임금이 안돼서 8시간에서 7시간 근무로 바뀌었지만 업무량은 여전하다는 점, 그런데도 성과는 전년 대비 늘 좋아야 한다는 점, 평가를 통해 하위 10%는 재계약에서 탈락하기 때문에 압박도 많다는 점 등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꿈에 그리던 ‘사무직’이고, ‘배울 수도 있는’ 일인데 유지하기 어려운 게 안타깝다고 두 사람은 말한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주영애 씨는 출근하는 데만 2시간 남짓 걸린다. 무려 4시간 가까이 걸리는 시간을 감수하며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한국 오고 20년 동안 안 해본 일 없을 정도로 고생했다며 눈시울을 붉히더니 대답했다.

“전문직을 선호해서 이곳으로 왔어요. 단순히 경제적인 것만 고려했다면 안 왔을 거예요. 지금까지 일한 곳 중 여기 급여가 제일 적으니까요. 그간 한국 생활을 하며 어려움을 겪은 한 사람으로, 다른 다문화가족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주영애)

“한국 처음 왔을 때 남편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남편은 좋은 사람 찾아가라고 했지만, 나는 젊었으니 닥치는 대로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느냐 말하고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하지만 어려운 건 어려운 거더라고요. 그러다 통번역사 기회가 와서 정말 기뻤어요.” (나랑체첵)

nyj_jye nyj_narang

 

다문화 선배로 이끌고 다독여주기

한국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지만 자신들은 그 단계를 넘어 여기까지 왔으니,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갈 이주여성을 돕는 일을 하고 싶고 또 잘할 수 있다고 했다.

“결혼이민자들의 입장을 잘 알고 있고, 시행착오도 먼저 겪었으니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크죠. 또 그들 입장에서도 우리가 다가가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요? 제 도움을 받은 사람이 고마워하거나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저 자신이 쓸모있는 사람으로 느껴져요. 그게 가장 큰 보람이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죠.” (나랑체첵)

“저는 (통번역사 일을 한 지) 만 3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그동안의 저 자신을 평가하자면, 놀랄 만큼 많은 성장을 했다는 거예요. 가장 값진 건 한국에서 직장다운 직장을 처음 가지게 된 거죠. 이전에 15년 일했던 것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주영애)

nyj_damunhwa

▲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다문화가정 서포터’ 회의 모습. 서포터들은 이주여성들이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돕는다.

두 사람은,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한국에 잘 정착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들의 이야기가 다른 이주민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제가 느끼는 보람은, 고통의 시기를 겪고 있는 이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앞에서 줄을 끌어주는 것 같은 느낌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 사람들에게 제가 교훈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어떻게 하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영애)

경기도의 경우, 이주여성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이용률은 18% 정도다. 두 사람은 숨어있다시피 하는 여성들을 발굴해서 연결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은행, 버스 이용 등의 생활 지원을 하고요.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어요. 제일 중요한 건 잘 안아주고 다독여주는 것인데, 제가 결혼이민 선배다 보니 정보도 많이 주려 하고 잘 이해해주니 많이들 따라오시더라고요.” (나랑체첵)

“작년부터 검정고시반을 맡아서 하고 있어요. 15명이 참여해서 11명이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졸업장을 수여했는데요. 다들 마치 대학 학사학위를 받는 것처럼 기뻐하시더라고요. 덩달아 저도 뿌듯했죠.” (주영애)

nyj_01

▲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검정고시반’ 주말 스터디


실질적으로 무언가 할 수 있도록

결혼이주여성들이 목말라 하는 정보 대부분은 취업과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취업도 중요하지만 언어나 한국의 문화를 먼저 익히는 게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에 관해 물었다.

“물론 언어도 중요하죠. 하지만 오셔서 맞벌이해야 하는 분들도 있어요. 빨리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겠죠. 그분에게 중요한 것은 언어보다 돈인 거죠. 이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그 사람의 사정이고 상황이라고 생각했으면 해요. 그리고 돈을 벌다 보면 한국어가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에 결국 언어를 배우러 오게 돼요. 이 지역만 해도 (이주여성의) 50% 이상이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해요.” (나랑체첵)

그렇다고 돈을 달라거나 특별한 것을 지원해달라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무언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이주여성의 가정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데에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주여성이 일자리 찾기는 어렵고, 그렇게 되면 남편이 혼자 돈을 벌어야 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혼자 돈 벌고, 거기에 아이까지 있으면 힘들어요. 가정에 불화가 생길 가능성도 크고요. 이주여성들은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한국 사회에서 일어설 기회가 없어지는 거죠.” (나랑체첵)

“아이가 있는 분들은 긴 시간 일하지 못합니다. 시간 짧은 것, 아르바이트 같은 것을 하고자 해요. 그래서 시간을 탄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봐요.” (주영애)

높은 취업 욕구보다 준비와 노력이 부족한 이주여성들도 물론 있다. 두 사람은, 당장은 아니어도 장기적으로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꾸준한 취업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결혼이민자분들이 아예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에요. 결혼이주여성이 도망가는 사례 등은 좋지 않은 여론을 만들고 큰 화젯거리가 돼요. 하지만 잘하고 계신 분들도 많아요. 저는 모든 게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몇 년이 지나면 적응하고 한국 사람이 되잖아요. 가끔 다문화정책이 잘 되고 있나 의문이 들 때가 있는데요. 숫자와 실적에만 매몰되기 때문이죠. 실제 도움이 되지 않는 사업을 한다거나, 매번 오는 사람들만 지원받을 때도 그렇죠. 많은 사람이 동등하게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해요.” (나랑체첵)

다문화 체감도 높이고 다름 인정하는 태도 필요해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다문화에 대한 인식은 이중적이다. 인터넷에 난무하는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댓글들이 보여주는 한 면과 공식적으로 나타나는 대체로 신중하고 호의적인 인식조사 결과가 또 다른 한 면이다. 2015년 서울서베이를 보면, 자녀의 외국인과 결혼, 외국인 친구, 외국인 이웃 등에 대한 태도는 종합적으로 60%가 호의적이었고, 결혼이민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해소에는 50.9%가 긍정적이었고, 일자리를 뺏긴다는 우려는 40.5%였다. 여기에 대해 주영애 씨와 나랑체첵 씨는 여전히 낮은 다문화 체감도를 높이고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은 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다름을 인정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결혼이민자들이 이렇다저렇다 이야기하지 말고, 그 상태 그대로 다름을 인정해주고, 다르면 이상하게 취급하는 시선만 아니었으면 해요. 그리고 잘 적응해서 성공하고, 잘 살아가는 본보기라고나 할까, 이런 사례를 자주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주영애)

“저도 예전에는 외국인인 걸 숨기고 싶을 정도로 조용히 지낸 적이 있어요. 시선 자체가 차가워서 자꾸 주눅이 들었어요. 물론 지금은 숨기지 않고 말하죠. 이건 제가 지금 당당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갑자기 당당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나랑체첵)

주영애 씨는 공교육에 진입하지 못하는 중도입국자녀가 너무 많다며, 이들을 잘 끌어안고 한국문화에 잘 융화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회와 역할을 주고 함께 성장할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옆집에 베트남 사람이 와서 살지만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다문화가 무슨 상관이냐고 하지만 학교와 직장을 살펴보면 다문화가족 출신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출산시대라고 하는데, 다문화가족은 다둥이인 경우가 많아요. 여기에 중도입국자녀들도 있는데, 이 아이들이 적응 못 하는 경우가 수두룩해요. 사람들이 체감을 못 하는 게 이런 것들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중도입국자녀가 한국사회에 문젯거리로 전락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나만 안전하면 된다고 하지만, 안전지대가 없어질 수도 있어요. 이들이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 않게 하려면 지금 잘 해야 합니다.” (주영애)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배척의 시선만을 느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제도와 지원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있지만, 무엇보다 따뜻했던 것은 처음 접했던 한국인들의 도움이었다.

“제 아이 역시 중도입국자녀예요. 적응을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지금 같으면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을 이용했겠지만, 10년 전에는 그런 게 없었잖아요. 그러다 한국 아주머니와 대학생들이 외국인 근로자와 학생들에게 한국어 가르치는 행사가 있다고 해서 아들과 함께 갔어요. 열정적으로 가르쳐주는 걸 보고 ‘한국 사람들이 무조건 외국인을 싫어하는 게 아니구나’,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엄마 말은 안 듣던 아들이 그때 한국어 가르치던 누나 말은 잘 들어서, 지금도 연락을 하더라고요.” (주영애)

damunhwa

우리는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인터뷰가 희망제작소 뉴스레터에 실린다고 하자, 나랑체첵 씨는 어떤 사람들이 독자냐고 물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관심 가진 분들이라고 답하니,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고 했다.

“이주민들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눈치가 없어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한국 사람처럼 행동하길 바라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일률적인 행동을 기대하지는 않았으면 해요. 우리는 다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같아지려 해도 시간이 걸리지만, 같아지려 하는 게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이주민들의) 문화도 존중해주길 바라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런 한국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랑체첵)

이주민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늘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앞으로 살고 싶은 나라가 어떤 곳인지 먼저 물어야 한다. 이주민들이 한국에서 살면서 많은 시간 고민하는 것은, ‘한국인이냐, 아니냐’보다 ‘쓸모있는 사람이 되는 것, 성장하는 것, 보람을 느끼고 이 사회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혼란스러운 시절을 살아가는 여느 한국인의 모습,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뷰 진행 : 이은경 사회의제팀 팀장 · [email protected]
녹취 및 정리 : 이은경 사회의제팀 팀장 · [email protected]
녹취 및 정리 : 최은영 미디어홍보팀 연구원 · [email protected]

* 인터뷰 참여자의 요청으로 개인 사진은 게재하지 않습니다.

월, 2016/11/07- 17:24
707
0

저마다 고향과 나름의 이유를 가진 이주민들이 우리 곁에서 살고 있습니다. 단일한 배경과 같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끼리 사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른바 우리는 문화 다양성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 다양함이 서로 어울려 조화롭게 돌아가는 사회를 ‘다문화 사회’라고 합니다. 다문화는 단일한 문화를 내세우는 것에 대치되는 상태 혹은 그 태도입니다.

1990년대 말, 국제결혼과 외국인 근로자의 이주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한국 역시 문화 다양성의 사회로 진입했습니다. <재한외국인처우개선법>, <다문화가족지원법> 등의 법률이 만들어지고,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설립 등 각종 정책이 쏟아졌습니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다문화정책은 이제 10년이 되어갑니다. 희망제작소는 새로운 시민으로 우리 곁에 찾아온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려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다문화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구의 일환으로 지난 10월 말 두 이주여성을 만났습니다.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번역사로 일하고 있는 이주여성 나랑체첵(몽골어 통번역, 6년째 근무) 씨와 주영애(중국어 통번역, 3년째 근무) 씨입니다. 나랑체첵 씨는 2004년에, 주영애 씨는 1997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우리도 한국인이에요

사람들은 두 사람을 한국인으로 대하고 있을까? ‘혹시’하고 물은 대답은 ‘역시나’였다.

“말을 안 하면 잘 몰라요. 입을 열면 외국인이냐고 묻죠.” (나랑체첵)

유창한 한국어 실력으로 인사를 하던 주영애씨는 외국인이냐는 질문이 난감하다고 했다.

“저는 이미 귀화해서 한국인인데, 중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다들 외국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는 사람은 나쁜 뜻이라고 생각 안 하지만, 듣는 입장에선 상처가 되더라고요.” (주영애)

두 사람은, 요즘 많이 회자하는 다문화 가정, 다문화 아동, 다문화인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많은 듯했다.

“다문화라는 것은 여러 문화가 어우러진다는 아름다운 의미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못 사는 국가의 여자들이 한국에 와서 결혼 못 하는 남자들과 결혼하는 것’이라고 인식되는 것 같아요. 끌어안아야 하는 짐, 부담처럼 보이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저는 20년 가까이 한국에 살고 있고, 또 한국인으로 살고 싶은데 말이에요.” (주영애)

주영애 씨와 나랑체첵 씨는 그동안 진행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지금은 그곳의 직원이 되어 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다문화사업에 대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생긴 지 10년이 되었거든요. 저는 센터가 처음 생길 때부터 이용해왔어요. 센터는, 열악한 환경에서 코리안드림을 위해 한국에 온 사람들을 끌어안기 위해, 그리고 그들을 한국 사람답게 만들기 위한 곳이라고 봐요. 그런데 자국민도 잘 챙기지 못하면서 왜 외국인에게 예산 낭비하냐고, 역차별 아니냐고, 한국인들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데 왜 이주여성 일자리만 지원하냐며 반대의견이 나올 때는 너무 속상합니다.” (주영애)

▲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홈페이지(namyangjusi.liveinkorea.kr)

▲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홈페이지(http://namyangjusi.liveinkorea.kr)


눈치, 성과 압박, 해고의 두려움… 한국의 사회생활

구제대상으로 들어와서 한국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당당한 사회일원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안 보는 것 같다며 주영애씨는 토로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게 되면서 왜 외국인에게까지 일자리 주냐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했는데요.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각각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외국인 직원은 1~2명이지만, 한국인 직원은 더 많다고요. 즉, 우리 같은 사람들 일자리가 한 개 생기면, 한국인들 일자리도 덩달아 더 많이 늘어나는 게 아닌가’라고요.” (주영애)

곱지 않은 시선에다 엄청난 경쟁률까지 뚫고 하게 된 통번역사 일이 할 만한지 물었다. 녹록지 않다는 표정이 두 사람의 얼굴을 스쳤다.

“통번역사 제도는 2009년부터 시작됐어요. 현재 전국에 300여 명의 (이주여성)통번역사가 있는데, 근무 기간이 짧아요. 우선 한국인들 속에서 적응하기가 어려워요. 행정업무 처리하기도 어렵고, 통번역 외에 센터의 다른 사업도 해야 하고요.” (나랑체첵)

‘일자리는 좋은데, 사회생활 자체가 어렵다’고 나랑체첵씨는 표현했다. 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했다.

“우리는 눈치 없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주영애)

“그건 저도 인정해요.(웃음)” (나랑체첵)

한국의 사회생활에서 규정이나 매뉴얼보다 중요하다는 ‘눈치껏 잘하기’. 이들에게는 생소하고 어려운 문화인 것이다.

“직장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느껴요. 중국이나 몽골은 수평관계인데, 한국은 수직관계인 거 같습니다. 눈치로 배워야 하는 게 많아요. 이런 부분은 아직도 어렵죠.” (주영애)

“저는 행정적인 부분이 제일 어렵고 힘들었어요. 뭐 하나 하려면 기획서, 보고서 등 써야 할 게 엄청 많아서 처음엔 엄청 어려웠어요. 물론 하면서 엄청 성장했지만요.(웃음)” (나랑체첵)

눈치로 시작된 이야기는 일자리 처우 개선까지 이어졌다. 6년째인데 막내처럼 일해서 답답한 점, 최저임금이 안돼서 8시간에서 7시간 근무로 바뀌었지만 업무량은 여전하다는 점, 그런데도 성과는 전년 대비 늘 좋아야 한다는 점, 평가를 통해 하위 10%는 재계약에서 탈락하기 때문에 압박도 많다는 점 등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꿈에 그리던 ‘사무직’이고, ‘배울 수도 있는’ 일인데 유지하기 어려운 게 안타깝다고 두 사람은 말한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주영애 씨는 출근하는 데만 2시간 남짓 걸린다. 무려 4시간 가까이 걸리는 시간을 감수하며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한국 오고 20년 동안 안 해본 일 없을 정도로 고생했다며 눈시울을 붉히더니 대답했다.

“전문직을 선호해서 이곳으로 왔어요. 단순히 경제적인 것만 고려했다면 안 왔을 거예요. 지금까지 일한 곳 중 여기 급여가 제일 적으니까요. 그간 한국 생활을 하며 어려움을 겪은 한 사람으로, 다른 다문화가족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주영애)

“한국 처음 왔을 때 남편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남편은 좋은 사람 찾아가라고 했지만, 나는 젊었으니 닥치는 대로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느냐 말하고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하지만 어려운 건 어려운 거더라고요. 그러다 통번역사 기회가 와서 정말 기뻤어요.” (나랑체첵)

nyj_jye nyj_narang

 

다문화 선배로 이끌고 다독여주기

한국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지만 자신들은 그 단계를 넘어 여기까지 왔으니,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갈 이주여성을 돕는 일을 하고 싶고 또 잘할 수 있다고 했다.

“결혼이민자들의 입장을 잘 알고 있고, 시행착오도 먼저 겪었으니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크죠. 또 그들 입장에서도 우리가 다가가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요? 제 도움을 받은 사람이 고마워하거나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저 자신이 쓸모있는 사람으로 느껴져요. 그게 가장 큰 보람이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죠.” (나랑체첵)

“저는 (통번역사 일을 한 지) 만 3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그동안의 저 자신을 평가하자면, 놀랄 만큼 많은 성장을 했다는 거예요. 가장 값진 건 한국에서 직장다운 직장을 처음 가지게 된 거죠. 이전에 15년 일했던 것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주영애)

nyj_damunhwa

▲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다문화가족지원서포터즈’ 회의 모습. 서포터즈는, 이주여성들이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돕는다.

두 사람은,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한국에 잘 정착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들의 이야기가 다른 이주민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제가 느끼는 보람은, 고통의 시기를 겪고 있는 이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앞에서 줄을 끌어주는 것 같은 느낌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 사람들에게 제가 교훈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어떻게 하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영애)

이주여성을 끌어주고 도와주는 활동은 통번역사 일 말고도 이들이 담당하고 있는 다른 사업으로도 이어진다. 나랑체첵 씨는 남양주시 다문화가족지원서포터즈를 맡아서 해왔고 주영애 씨는 검정고시반을 맡고 있다.

“2012년쯤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이용률이 12% 정도였는데요. 이주민의 이용 참여를 높이기 위해 경기도에서 ‘다문화가족지원서포터즈’ 사업을 시작했어요. 서포터즈는 숨어있다시피 하는 이주여성을 연결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은행이나 버스 이용 등의 생활 지원을 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있어요. 제일 중요한 건 잘 안아주고 다독여주는 것인데, 제가 결혼이민 선배다 보니 정보도 많이 주려하고 잘 이해해주니 많이들 따라오시더라고요.” (나랑체첵)

“작년부터 검정고시반을 맡아서 하고 있어요. 15명이 참여해서 11명이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졸업장을 수여했는데요. 다들 마치 대학 학사학위를 받는 것처럼 기뻐하시더라고요. 덩달아 저도 뿌듯했죠.” (주영애)

nyj_01

▲ 남양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검정고시반’ 주말 스터디


실질적으로 무언가 할 수 있도록

결혼이주여성들이 목말라 하는 정보 대부분은 취업과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취업도 중요하지만 언어나 한국의 문화를 먼저 익히는 게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에 관해 물었다.

“물론 언어도 중요하죠. 하지만 오셔서 맞벌이해야 하는 분들도 있어요. 빨리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겠죠. 그분에게 중요한 것은 언어보다 돈인 거죠. 이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그 사람의 사정이고 상황이라고 생각했으면 해요. 그리고 돈을 벌다 보면 한국어가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에 결국 언어를 배우러 오게 돼요. 이 지역만 해도 (이주여성의) 50% 이상이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해요.” (나랑체첵)

그렇다고 돈을 달라거나 특별한 것을 지원해달라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무언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이주여성의 가정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데에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주여성이 일자리 찾기는 어렵고, 그렇게 되면 남편이 혼자 돈을 벌어야 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혼자 돈 벌고, 거기에 아이까지 있으면 힘들어요. 가정에 불화가 생길 가능성도 크고요. 이주여성들은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한국 사회에서 일어설 기회가 없어지는 거죠.” (나랑체첵)

“아이가 있는 분들은 긴 시간 일하지 못합니다. 시간 짧은 것, 아르바이트 같은 것을 하고자 해요. 그래서 시간을 탄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봐요.” (주영애)

높은 취업 욕구보다 준비와 노력이 부족한 이주여성들도 물론 있다. 두 사람은, 당장은 아니어도 장기적으로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꾸준한 취업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결혼이민자분들이 아예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에요. 결혼이주여성이 도망가는 사례 등은 좋지 않은 여론을 만들고 큰 화젯거리가 돼요. 하지만 잘하고 계신 분들도 많아요. 저는 모든 게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몇 년이 지나면 적응하고 한국 사람이 되잖아요. 가끔 다문화정책이 잘 되고 있나 의문이 들 때가 있는데요. 숫자와 실적에만 매몰되기 때문이죠. 실제 도움이 되지 않는 사업을 한다거나, 매번 오는 사람들만 지원받을 때도 그렇죠. 많은 사람이 동등하게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해요.” (나랑체첵)

다문화 체감도 높이고 다름 인정하는 태도 필요해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다문화에 대한 인식은 이중적이다. 인터넷에 난무하는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댓글들이 보여주는 한 면과 공식적으로 나타나는 대체로 신중하고 호의적인 인식조사 결과가 또 다른 한 면이다. 2015년 서울서베이를 보면, 자녀의 외국인과 결혼, 외국인 친구, 외국인 이웃 등에 대한 태도는 종합적으로 60%가 호의적이었고, 결혼이민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해소에는 50.9%가 긍정적이었고, 일자리를 뺏긴다는 우려는 40.5%였다. 여기에 대해 주영애 씨와 나랑체첵 씨는 여전히 낮은 다문화 체감도를 높이고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은 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다름을 인정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결혼이민자들이 이렇다저렇다 이야기하지 말고, 그 상태 그대로 다름을 인정해주고, 다르면 이상하게 취급하는 시선만 아니었으면 해요. 그리고 잘 적응해서 성공하고, 잘 살아가는 본보기라고나 할까, 이런 사례를 자주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주영애)

“저도 예전에는 외국인인 걸 숨기고 싶을 정도로 조용히 지낸 적이 있어요. 시선 자체가 차가워서 자꾸 주눅이 들었어요. 물론 지금은 숨기지 않고 말하죠. 이건 제가 지금 당당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갑자기 당당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나랑체첵)

주영애 씨는 공교육에 진입하지 못하는 중도입국자녀가 너무 많다며, 이들을 잘 끌어안고 한국문화에 잘 융화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회와 역할을 주고 함께 성장할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옆집에 베트남 사람이 와서 살지만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다문화가 무슨 상관이냐고 하지만 학교와 직장을 살펴보면 다문화가족 출신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출산시대라고 하는데, 다문화가족은 다둥이인 경우가 많아요. 여기에 중도입국자녀들도 있는데, 이 아이들이 적응 못 하는 경우가 수두룩해요. 사람들이 체감을 못 하는 게 이런 것들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중도입국자녀가 한국사회에 문젯거리로 전락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나만 안전하면 된다고 하지만, 안전지대가 없어질 수도 있어요. 이들이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 않게 하려면 지금 잘 해야 합니다.” (주영애)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배척의 시선만을 느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제도와 지원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있지만, 무엇보다 따뜻했던 것은 처음 접했던 한국인들의 도움이었다.

“제 아이 역시 중도입국자녀예요. 적응을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지금 같으면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을 이용했겠지만, 10년 전에는 그런 게 없었잖아요. 그러다 한국 아주머니와 대학생들이 외국인 근로자와 학생들에게 한국어 가르치는 행사가 있다고 해서 아들과 함께 갔어요. 열정적으로 가르쳐주는 걸 보고 ‘한국 사람들이 무조건 외국인을 싫어하는 게 아니구나’,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엄마 말은 안 듣던 아들이 그때 한국어 가르치던 누나 말은 잘 들어서, 지금도 연락을 하더라고요.” (주영애)

damunhwa


우리는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인터뷰가 희망제작소 뉴스레터에 실린다고 하자, 나랑체첵 씨는 어떤 사람들이 독자냐고 물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관심 가진 분들이라고 답하니,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고 했다.

“이주민들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눈치가 없어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한국 사람처럼 행동하길 바라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일률적인 행동을 기대하지는 않았으면 해요. 우리는 다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같아지려 해도 시간이 걸리지만, 같아지려 하는 게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이주민들의) 문화도 존중해주길 바라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런 한국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랑체첵)

이주민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늘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앞으로 살고 싶은 나라가 어떤 곳인지 먼저 물어야 한다. 이주민들이 한국에서 살면서 많은 시간 고민하는 것은, ‘한국인이냐, 아니냐’보다 ‘쓸모있는 사람이 되는 것, 성장하는 것, 보람을 느끼고 이 사회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혼란스러운 시절을 살아가는 여느 한국인의 모습,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뷰 진행 : 이은경 사회의제팀 팀장 · [email protected]
녹취 및 정리 : 이은경 사회의제팀 팀장 · [email protected]
녹취 및 정리 : 최은영 미디어홍보팀 연구원 · [email protected]

* 인터뷰 참여자의 요청으로 개인 사진은 게재하지 않습니다.

월, 2016/11/07- 17:24
36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