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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함께 살기 위해 투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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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함께 살기 위해 투쟁한다"

익명 (미확인) | 목, 2016/11/10- 21:09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기획은 불평등, 노동 탄압, 특권 세습, 권력 독점, 법치 실종, 부정부패, 대의제 한계 등 ‘민주공화국’의 부재와 위기를 7회에 걸쳐 진단합니다. 웹·모바일 특집페이지에 지면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싣습니다. 경향신문 취재팀이 지난 8~9월 만난 노동자, 장애인, 활동가, 지식인 등 100여명의 육성을 르포와 인터뷰로 올립니다. 특집 페이지는 시대를 진단하는 아카이브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매일 오전 8시 서울 관악구 한남운수 대학동차고지 입구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비롯한 각종 민중가요가 울려퍼진다. 노래가 나오는 스피커 옆에는 한남운수 버스정비 해고노동자 이병삼씨(46)가 동료 3명과 함께 ‘한남운수 대표이사는 부당해고 부당징계 즉각 철회하라’ ‘한남운수 박복규, 박진성 대표이사님! 시민안전, 정비사 임금 쪽 빨아 드시어 부자되셨습니다’ 등의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입구 앞에서 501번 버스를 기다리는 출근길 시민들은 익숙한 광경이라는 듯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

 

차고지 앞 횡단보도 가운데 위치한 한남교에는 이씨가 묵고 있는 검은색 천막농성장이 있다. 농성장 입구에는 파란색 냉장고 한 대가 있다. 물이 들어있지 않은 물통 3병은 갈색 장판 위에 어지러이 놓여있다. ‘해고는 사회적 살인! 한남운수 대표이사는 부당해고 즉각 철회하라’고 적힌 현수막이 농성장 벽면에 걸려있다. 한남교는 차고지로 복귀하는 버스들이 좌회전하는 곳이다. 좌회전하는 버스 앞머리가 농성장 벽면에 닿을듯 말듯하다. 그만큼 농성장은 위태로이 자리하고 있다.


 2010년 10월 한남운수에서 해고당한 이씨는 2011년 2월 차고지 앞에서 피켓 시위를 시작한 이후, 2014년 10월30일부터 한남교 위에 농성장을 꾸리고 부당해고 반대 및 복직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투쟁 6년차, 천막농성 2년차에 접어든 장기농성 해고노동자이다.

 

 

■ 폭염·소음·돈…농성장에서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다 

지난 8월 농성장을 찾았을 때 최고기온이 35도에 달할 정도로 폭염이 절정이었다. 이씨는 찌는듯한 더위를 견디기 힘들다면서 건강 악화를 우려했다. “해고 당한 직후에는 정신과 상담을 받고, 약을 먹어야만 잠들 정도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야외 투쟁과 천막농성을 하면서부터 유독 두통이 심해졌죠. 편두통이 악화될 때는 벽에 머리를 막을 정도로 고통이 심했습니다. 위와 장도 안좋아지면서 설사를 반복하고, 그러다보니 음식을 못먹어 70㎏였던 몸무게가 50여㎏까지 내려갔어요”라며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토로했다. 

천막농성장에 머물다보면 소음문제가 가장 크다고 한다. “천막농성장이 횡단보도 다리 가운데, 도림천 위에 있어요. 24시간 소음에 시달려요. 농성장에 있으면 천막 농성장 옆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발소리가 바로 들려요. 무엇보다도 차 소음이 심각하죠. 이 주변이 신림동 고시촌 번화가라 하루종일 차들이 많이 다녀요. 좌회전하는 버스 소리도 엄청납니다. 사람들이 농성장에 한 번 와서 자면 버스 소음 때문에 다시는 안 오려고 할 정도에요.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는거죠. 특히 좌회전하는 버스들이 갑자기 천막으로 돌진하거나, 겨울에 차들이 미끄러져 천막을 덮칠까봐 두렵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있다는 생각으로 항상 위험을 감수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농성장 유지 비용도 만만치 않다. “천막농성이 2년째에 접어들면서 유지비가 만만찮게 나옵니다. 농성장 유지 비용, 먹는 비용 하나하나가 다 돈이죠. 아침에 차고지 앞에서 함께 피켓 농성하시는 분들 밥 한끼 대접하는 비용도 크게 다가와요. 전기 같은 경우는 한남교 건너에 있는 ‘그날이 오면’ 서점에서 전기를 빌려주어 사용하고 있는데, 한 번도 돈을 드린 적이 없어요. 죄송한 마음 뿐이죠”라고 말했다. 

수입이 없어진 이씨에게 먹고사는 문제는 곧 ‘생존의 문제’로 다가왔다. “수입이 없다는 점이 가장 힘들죠. 돈이 없으니 예전에 살던 1억3천만원짜리 집을 급매로 헐값에 넘겼어요. 기존에 있던 빚도 갚기 힘들어 택시 운전하는 지인에게 급히 천 만원을 빌리기도 했구요. 지금은 가족들과 함께 방 두 개 있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원짜리 집에 살고 있어요. 겨우 은행대출 받아도 집세로 나가는 마당에 우리 가족들 생활은 계속 어려워지고 있죠. 올해 초부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지회에서 투쟁기금으로 매달 100만원씩 들어와서 그나마 낫지만 쉽지 않습니다”라며 한숨 지었다.

 

 

 

 

■ 정비직 노동자의 위태로운 삶…“시민 안전도 위협받는다” 

이씨는 정비직 노동자로 한평생 살아온 삶을 이야기했다. “1986년에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버스회사에 입사했어요. 당시 임금이 굉장히 낮았는데, ‘이 일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얼차려 받아가며 힘들게 정비일을 배웠습니다. 당시 3D 직종 중 하나인 정비일을 하던 ‘공돌이’였죠. 어디가서 정비일 한다고 떳떳하게 내세우지도 못하고, 새까매진 손을 숨기고 다니느라 바빴죠. 일이 힘들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정비 업무에 자부심을 느끼며 열심히 살아왔습니다”라며 자신의 삶을 회고했다. 

2004년 서울시가 버스준공영제를 실시하면서 정비사로서의 삶이 위협받기 시작했다. “버스준공영제 전에는 버스 사업주들이 개인 대 개인으로 경쟁하는 상황이었어요. 정비사들이 버스를 잘 고쳐야 사고 없이 운행할 수 있기에 회사에서 정비사들을 우대하는 면이 있었죠. 하지만 버스준공영제 이후 시에서 버스회사에 고정적으로 돈을 지급하면서 회사는 ‘버스가 굴러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정비업을 소홀히 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버스회사들은 직원 100명 당 정비사 15명만 있으면 된다는 규정을 악용해 그 이상되는 정비인원들을 해고하기 시작했어요. 남은 사람들은 기술을 가진 전문 정비사가 아닌, 단순 수리사로 취급 받았어요. 언제 해고될지 모르니 정비사들끼리 경쟁하면서 인간적 유대도 없어지고… 우리들끼리 ‘준공영제는 지옥이다’라는 말을 많이 하죠”라고 말했다.

이씨는 버스준공영제로 인해 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버스에 문제가 생기고 사후에 고치는 것은 수리에 불과합니다. 정비사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예방정비에요.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리 문제를 파악하고,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비하는 것이죠. 하지만 버스준공영제 이후 정비사 인원이 줄고 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예방정비가 힘들어졌어요. 이렇게 되니 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안전이 더욱 위험해진거죠”라고 설명했다.

한남운수의 최대 채권자였던 박복규씨가 부도 위기에 처한 한남운수를 2009년 인수하면서 정비사들의 처지는 더욱 위태로워졌다. 정비직원들의 임금 15%를 삭감하고, 버스 운전 가능한 대형면허를 가진 정비사 6명을 운전기사로 전환했다. “정비사들은 차고지에 주차된 버스를 차고지 내 정비공간으로 이동시키려는 목적으로 대형면허를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노선을 따라 버스를 운행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죠. 하지만 회사는 일방적으로 정비사들을 운전직으로 발령냈습니다. 견습기간도 주지 않고 운전일을 시키니 사고가 많이 났죠. 정비사들은 운전이 적성에 맞지 않으니 당연히 운전직으로의 전환에 반대했죠. 같은해 10월 다시 일부 정비직을 운전직으로 발령낸다는 소문이 돌면서, 정비직 전원이 대형면허를 반납하기로 했어요. 회사 측에서는 제가 이런 움직임을 다 주도했다며 계속 괴롭히다가 2010년 5월에 정직 3개월을 통보했어요. 저는 정직 기간의 마지막 달에 대형면허를 반납했고, 결국 회사는 같은해 10월에 운전직으로의 발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저를 해고시켰습니다”라고 말했다. 

 

 

■ 마지막으로 선택한 천막농성…“여기서 물러날 수 없다” 

해고당한 후 억울함에 술로 나날을 보내던 이씨는 이렇게 지내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으로 피켓시위를 시작했다. “피켓을 직접 만들어 2011년 2월부터 회사 앞에서 2시간씩 혼자 피켓시위를 했어요. 회사 관리자들이 나와서 ‘그래서 밥은 먹고 살겠냐’는 등 비아냥대기 일쑤였어요. 지나가던 시민들이 ‘고생한다’며 여름에는 음료수, 겨울에는 핫팩을 건내주곤 했지만, 당시 민주노총 같은 상급 노동조합에 속해있지 않았기에 관심 갖고 찾아주는 사람들은 없었죠. 그러다가 2012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버스지부 아래 정비지회를 결성하면서 동력을 얻어 사람들이 피켓시위 현장에 많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시민단체, 진보정당 등에서 저의 부당해고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었죠.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서울시 행정감사 때 관련 문제를 제기하면서 관련 자료도 공개되고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동력삼아 곧 해결될거라 생각했던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씨는 아침마다 차고지 입구에서 피켓 선전전을 하고 서울시청 앞에서 시위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시민들에게 부당해고 문제를 알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천막농성을 결심한 이유다. “정비사들끼리 모여 협의한 끝에 회사 밖에 있는 시민들에게도 이 문제를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문제는 한 개인의 해고를 떠나 버스준공영제와 관련한 사회적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이죠. 천막농성은 이러한 문제를 시민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기회라고 봤습니다. 한남운수 차고지 앞 한남교는 사람들이 많이 다닙니다. 그 곳에 천막농성장을 차리면 시민들에게 알리는 효과가 클거라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그러면서 “천막농성은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었어요. 재산도 다 날리고 오갈데도 없는 상황에서 ‘마지막 투쟁’이라 생각해 필사적이었어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저는 ‘목숨을 건’ 선택이었습니다. 작년 10월 경찰과 관악구청 공무원들이 찾아와 천막을 철거하려고 했어요. 워낙 절박했기에 제가 목에 밧줄을 묶고 한남교 아래 도림천으로 뛰어내리려고 했어요. 결국 노조원들과 지역주민들, 인근 서울대생들이 도와줘 농성장 철거는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 구청이 농성장을 철거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천막농성이 지역민들과 버스 이용자들의 공감대를 얻고 있기에 쉽게 철거하지 못하는거라 생각합니다”라며 천막농성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수백번 농성을 그만두려고 생각했다는 이씨는 여기서 물러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농성을 그만둔다고 해도 딱히 살아갈 방법이 없어요. 다른 버스회사에 재취업하려고 해도 이미 ‘블랙리스트’로 찍혀 있어서 어느 회사에서도 저를 고용하지 않을거에요. 다른 회사에서는 제가 나쁜짓 해서 해고됐다고 보기 때문에 저를 환영하며 받아주지 않겠죠. 쉽지 않아요. 생명줄이 끊겨 버린겁니다. 그리고 내일이면 나이 50인데 아무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일을 배우고 적응하는게 쉽지 않다고 봐요. 결국 앞으로 일할 수 없는 환경이 되었기에 이 투쟁을 더더욱 그만둘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어 포기하지 않았다” 

이씨는 함께 투쟁하는 동료들이 없었으면 진작에 농성을 포기했을거라 말한다. “혼자였으면 일찍이 무릎꿇었겠죠. 억울한 마음에 스스로 목숨을 끊던가 누군가를 해코지 하지 않았을까요. 동지들이 옆에서 저의 억울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어요. ‘너 진짜 힘들겠다’ ‘울화통 터지겠다’며 제 처지에 공감해주는 동료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큰 힘이 된거죠. 그러면서 일주일 혹은 한 달에 한 번 농성장에 찾아오는 동료들을 보며 투쟁의 힘을 얻습니다. ‘좋은일 한다. 아무나 하는일 아니다’면서 생계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의 관심도 고마울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함께하는 동지들이 생기면서 이씨는 ‘연대’의 가치를 깨닫게 됐다. 처음에는 투쟁하는 모습이 궁금해 다른 농성장들을 찾았지만, 연대하면서 점점 투쟁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됐다고 말한다. “정직 당했을 때 시간 여유가 생기면서 여러 투쟁 현장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먼저 가까이 있는 쌍용자동차 노조 투쟁과 기륭전자 투쟁 현장을 방문했어요. 가서 그들이 왜 싸우는지 지켜봤습니다. 2011년 김진숙 민주노총 위원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35m 높이의 크레인 위에서 투쟁할 때에는 희망버스를 타고 무작정 부산으로 향했어요. 그 곳에서 ‘여성분도 저렇게 열심히 투쟁하고 있는데, 술만 먹으며 세월을 보내서는 안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용기를 갖고 피켓시위를 시작하게 된거죠”라고 말했다. 

농성이 장기화되면서, 이씨의 농성장에도 연대 투쟁을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지지를 외치며 연대방문한 사람들이 100명이 넘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정말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마음이 들었어요. 비록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이후에도 사태가 극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방문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 달 간 뿌듯한 마음이 들었어요. ‘연대의 힘’을 느낀 이후로는 몸이 고단해도 다른 농성장에 더 많이 방문하려고 했어요. 농성하는 사람들이 저처럼 연대를 통해 힘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죠. 여러 곳에서 함께 연대하면서 많은 분들을 알게 됐어요. 새로운 친구, 누나, 형님을 만나며 동지라는 ‘자산’을 쌓게 되었습니다”라며 웃음지었다.

■ 노동자가 종북 빨갱이?…“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모두가 함께 잘 사는 공동체”

이씨에게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노동법과 헌법의 노동3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1998년 IMF 위기 이후 노동법이 개악되면서 노동자들의 삶이 어려워졌어요. 이명박, 박근혜 정권 들어오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습니다. 근본적으로 노동 현장에 노동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용자 측에서는 노동조합과 합의해 만든 단체협약마저도 지키지 않아요. 이미 노동환경이 최악인데 더 악화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에 노동3권이 어딨습니까. 말로만 노동3권이죠”라며 열악한 노동 현실에 분노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을 이른바 ‘종북 빨갱이’로 낙인찍고, 파업 등 노동자의 기본권을 부정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해 “어이없다”고 말했다. “저도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어봤어요. 어느 날은 술에 만취한 사람이 농성장에 찾아와 ‘이런 빨갱이 새끼들’ ‘니들은 북한으로 가서 살아야 돼’라며 행패를 부렸어요. 저 북한 안좋아해요.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는 말들은 이제 신경쓰지도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원리에 따라 행동합니다. 한 사람의 노동자인 동시에 집안의 가장으로서 민주적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해 제대로 배웁니다. 노동자들이 이야기 하는 것은 결국 ‘공동체’에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잘 살자는거죠. 우리 버스 정비사들은 버스를 정비해서 시민들을 안전하게 모시고, 다른 부문 사람들은 나름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같이 살자는거에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 “국민을 우습게 보는 대한민국, 진정한 국가가 아니다” 

이씨는 부당해고를 당한 뒤 투쟁하면서 국가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굉장히 일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노동부는 노동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근로 감독관은 사업주들의 잘못을 제대로 관리하고 감독한다고 믿었죠. 하지만 노동부에 근로환경의 부당함을 호소해도 근로감독관이 현장에 잘 방문하지도 않아요. 언제 한번 잠깐 방문한 적이 있는데, 방문한 이후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어요. 근로감독관은 회사 측에 근로환경 개선을 ‘요청’할 뿐, 강제로 해라 마라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말합니다. 결국 회사 측의 의지에 달렸다면서… 화가 나서 노동부 지청에 항의 방문도 했죠. 하지만 바뀐건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노동자들을 위한다고 만들어놓은 장치가 작동하지 않은거죠. 국가를 못 믿게 됐어요. 그리고 법치국가라고 해서 최소한 법을 중시할거라 생각했는데, 어딜가나 ‘법의 저울’이 평평하지 않다는걸 느꼈어요. 경찰, 검찰, 법원 어디에서도 제 목소리를 들어주질 않아요. ‘나 같은 사람들은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구나’라는 불편한 진실만 깨달은거죠”라고 말했다.

그는 목소리 높여 대한민국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국가가 하는 일에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아요. 국가가 국민을 위해 일하지 않는데 어떤 국민이 국가를 믿고 따를수 있겠어요. 헌법 제1조에 보면 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돼있는데, 국가는 국민을 너무 우습게 보고 있어요. 지금 대한민국은 진정한 국가가 아닙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씨가 생각하는 민주공화국은 모두가 배불리 먹으며 함께 살아가는 나라이다. 그가 보기에 힘들고 불공평한 삶이 만연해 있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여동생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여동생 자녀 중에 미숙아로 태어난 딸아이가 있어요. 팔, 다리, 치아 등 많은 부위에 건강상 문제를 안고 태어나 지금도 앞가림을 못합니다. 여동생 부부가 열심히 일하며 죽어라 돈을 벌지만 그 아이 병원비조차 마련하지 못해요. 늘어나는건 빚 뿐이죠. 제 여동생은 왜 저렇게 경제적으로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하나 생각이 듭니다. 공평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여동생 가족이 어느 정도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끔 국가에서 도와줘야 하는데 그런 것도 마땅치 않아요. 진료 받으러 큰 병원에 한 번 가면 기본적으로 몇 십만원이 나가는데, 국가는 20-30만원 정도만 보조해줄 뿐이에요. 이러니 제대로 된 삶을 살기 힘들죠”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관료들과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를 꼽았다.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은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들 이외의 것들에 욕심을 부리면서 계속 비리를 저지르고 부패하게 됩니다. 가지면 가질 수록 더 가지려 하고, 부를 계속 쌓아가려는 것이죠. 예전에 방송에서 보니 우리나라 부패 수준이 심각한 정도이더라고요. 부정부패가 빨리 해소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 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국민 위에 군림하려 들지 말고, 욕심을 버린 후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 위에 사람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사람은 높고 낮음이 없다는 뜻이죠.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은 국민을 아래에 두고 지배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이 공무원과 정치인들의 역할이에요. 무엇을 가졌는지에 따라 국민을 차별하지 말고, 모두 똑같이 귀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인식이 정착될 때, 대한민국이 비로소 모두가 공평하게 먹고 사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이 되리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출처 : 경향신문  박광연 기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1091040001&code=9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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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가 공공부문 좋은 일자리와 최저임금 1만원 쟁취에 앞장설 것을 결의하며 6월 30일 총파업에 나선다. 서경지부, 의료연대본부, 교육공무직본부 등 비정규단위는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 해 쟁의권을 확보하고 실제 파업에 돌입한다. 공공운수노조는 지난 27일 광화문 1번가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총파업을 선포했다.

 

 

- 교육공무직본부

 

교육공무직 본부는 근속수당 인상과 차별 해소, 처우개선, 고용안정을 중심으로 한 주요 파업 요구를 밝히며 광역시도교육청 17개 와 교육부(국립)산하 조직을 포함 조합원 약 3만명의 대오가 파업에 돌입한다.

 

 

교육공무직본부는 16일 서울지부 학비연대의 ‘비정규직 처우개선 총파업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20일 경기지부 25개 교육지원청 동시다발 집회, 29일 서울,경남,광주등 일부지역 파업 등을 진행했다. 6월 30일 12시 서울역 광장에서 전국조합원 총상경 파업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이후 광화문광장까지 행진해 민주노총 본대회에 결합한다. 이후 7월 7일 제주지부 파업과 7월 중하순 2차 파업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 의료연대본부

 

의료연대본부는 병원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생활임금 1만원을 주요요구로 서울대병원 민들레분회, 경북대병원 민들레분회, 울산대병원 민들레분회 등 총 500 여명의 조합원이 파업에 돌입한다.

 

 

의료연대본부는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비정규직 없는 안전한 병원 만들기를 선포했다. 이를 위해 병원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결의했다. 같은 날 서울대병원의 원하청 공동 투쟁결의대회를 시작으로 20일 울산대병원의 집중집회, 경북대병원의 투쟁승리 집중집회를 순차적으로 진행했다. 또, 최저임금 1만원, 6.30총파업, 안전한 병원 만들기 등의 내용으로 전 사업장에서 시민선전전을 진행해 왔다. 오는 30일 오전 12시에 서울대병원 시계탑 앞에서 ‘병원비정규직 정규직화 지금당장! 최저임금 1만원 지금당장! 투쟁승리를 위한 파업 출정식을 진행 한 후 6.30 총파업에 나선다.

 

 

-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또한 시금1만원 쟁취를 중요요구로 내걸고 서울지역 대학 16개 사업장(용역업체 25개)의 약 1,400명 조합원(미화, 경비, 시설, 주차 직종)이 업종을 넘어 파업에 돌입한다.

 

 

서경지부는 지난 16일 이화여대에서 전조합원 결의대회를 가졌고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파업 돌입을 선포한 후 분회별 원청 대응 투쟁을 벌였다. 이어, 26일부터 총파업 전날인 오늘까지 진행 된 ‘현장 투쟁 주간’에 각 분회들은 매일 선전전과 약식집회, 피켓팅, 학내 행진 등을 진행 해왔다. 투쟁 주간에 이화여대분회는 반빈곤연대활동 대학생실천단과 간담회를, 연세대분회는 만원공동행동과 함께 선전전을 하는 등 지부 조합원의 투쟁에 학생과 시민단체가 연대해왔다. 총파업 당일인 30일 오후 1시에는 16개 사업장 모두 각 현장에서 파업출정식을 가지고 파업에 돌입한다.

 

한편, 파업 100일을 넘긴 공항항만운송본부유센지부도 6.30 총파업에 결합한다. 쟁의권을 확보하지 못한 단위들은 근무시간 중 조합활동이나 휴가, 비번 등으로 총파업에 적극 동참한다.


목, 2017/06/2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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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공공운수노조와 강원영동지역노조 동양시멘트지부가 6일 오전 10시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위장도급 판정을 받은 KNL물류와 동양시멘트의 원직복직 이행을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성남지청은 지난 2014611, 빙그레의 자회사인 KNL물류 주식회사(이하 ‘KNL 물류’)와 그 하청업체(이천물류) 소속 노동자들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한다고 판정했다. 또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은 지난 223일 동양시멘트 주식회사(이하 동양시멘트’)와 하청업체(두성기업 및 동일주식회사) 소속 노동자들이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에 있다고 판정했다. 고용노동부가 불공정한 하청과 재하청에 대해 위장도급판정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판정 이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박해철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고용노동부의 위장도급 판정 후 사용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사측의 불법행위로 해고자가 6개월이 넘게 거리를 헤매고 있는데도 고용노동부가 아무런 후속조치 취하지 않는 것에 책임을 물으려 이 자리에 왔다고 취지를 밝혔다.

 

김경래 강원영동지역노조 동양시멘트지부 부지부장은 오늘이 해고 500일이다. 8개월간의 불법파견 투쟁으로 고용노동부의 위장도급 판정을 받아냈다. 하지만 판정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인 1시간 만에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101명이 해고된 것이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도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법의 판결까지 무시하는 사측에 맞서서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연 전국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KNL물류지부장은 “88년 빙그레 입사했지만, 99IMF때 물류 부문만 아웃소싱되면서 KNL물류 직원이 되었다. 또다시 소사장제로 일방 변경해 10년간 운영됐다. 소득은 크게 줄었지만 가족을 생각해 버텼다, 하지만 “2014년 완전 도급제를 도입한다고 했다. 우리는 도급사장은 못한다고 반대했다. 그리고 325일 해고를 당했다. 지난 6개월간 진짜 사장이 누군지 가리는 법적 투쟁이 있었고 KNL물류로 원직 복직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사측은 고용노동부가 불법이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며 분노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더 큰 문제는 노동부라며, “노동부 스스로가 위장도급의 판정을 내렸으나, 판정의 내용을 이행하는 실질적인 권리 구제와 관련하여서는 아예 뒷짐을 지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려놓고도 그 실직적인 이행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노동부가 분명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투쟁 할 것이다. 가해자에게 처벌이나 이행강제 규정하나 없는 노동법, 인권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법제도 개선의 책임 또한 강력하게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목, 2015/08/0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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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영 화물연대 카캐리어분회장 “자기 결정권 없는 무늬만 사장, 화주가 정규직 고용해야”

 

 

화물연대(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총파업엔 항상 ‘불법’ 딱지가 붙는다. 이번 10월 총파업에도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업무방해 등 명백한 범죄행위”라고 정부에 엄정한 대응을 촉구했다. 이에 화답하듯 정부는 이렇다 할 폭력행위가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파업 첫 날부터 3일 동안 50명이 넘는 화물연대 조합원을 체포·연행했고 일부에겐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 물류 육로 운송을 책임지는 화물노동자에게 파업은 트럭을 세워 물류 이동을 멈추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선 이 자체가 ‘범죄행위’가 되고 있다.

 

 

이유는 이들이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운송업체로부터 일거리를 받지만 고용계약이 아닌 위·수탁계약을 체결하는 ‘개인사업자’다. 화물노동자들의 말을 빌리면 화물트럭을 가진 사장이다. 이들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 3권이 보장되지 않을 뿐더러 산재보험 등 노동자로서 보장받아야 할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노조한다고 고생만 죽어라 하지만 사측과 합의볼 수 있는 게 없다.” 12년째 평택항 카캐리어(자동차 수송 화물차량) 노조위원장을 맡고 있는 시기영 평택항지회 카캐리어 노조(화물연대 서울경기지부 평택항지회 카캐리어분회) 분회장의 말이다. 시 분회장은 지난 12년은 노동기본권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달 30일 시 분회장을 만나 화물노동자의 열악한 노조 활동 실태를 들었다.


 

 

 

 

‘운송비 좀 올려달라’ 말하기 위해 노조가입

 

 

시 분회장은 1999년부터 기아자동차의 수출·내수 자동차를 운송하는 ㄷ업체에서 카캐리어 일을 시작했다. 1983년 군대 전역 후 잠깐 동안 ‘부산-서울’ 카고 트럭(5톤 이하 화물차)을 몰아본 경험이 있어 다시 시작한 일이었다. 화물시장은 그새 많이 달라져있었다. 1983년도엔 화물노동자가 운송비 책정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운송비가 적다 싶으면 ‘안 가겠다’고 해 더 받기도 하고, 받고 싶은 운송비를 말할 수 있던”구조였다.

 

 

1999년 들어 이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운송비가 미리 정해진 채로 ‘하달’돼 화물차주는 그 가격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운송업체에 매달 수수료를 내며 ‘화물 허가 번호판’을 위탁받아야만 화물차를 몰 수 있는 ‘지입제’도 새로웠다. 그는 일하는 내내 ‘왜 달라졌나’, ‘내가 일해서 받는 운송비는 누가 어떻게 올리나’란 의문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다단계 착취’의 원인으로 꼽히는 중간업체도 그 때 등장했다. 일대일 운송계약을 맺던 기아자동차와 ㄷ업체 사이에 ‘한국로지텍’(현 현대글로비스의 전신)이라는 중간 주선업체가 낀 것이다. 시 분회장은 “차주들에겐 수수료를 한 번 더 떼는 상황이 됐다. 한국로지텍이 수수료 10%를 더 뗀다고 했다”면서 “만약 100만 원을 벌면 10만 원을 떼는 것인데 펄쩍 뛸 일 아니었겠느냐”고 말했다. ㄷ업체 소속 화물노동자들은 회사 내 친목모임이었던 상조회를 중심으로 ‘데모’를 했지만 단체행동을 이유로 일부 노동자가 쫓겨나고 끝났다.

 

 

“화물연대 가입해서 운송비 올려달라고 합시다.” 2003년 초 상조회 회장이 ‘운송비를 올려보자’며 화물연대 가입을 제안했다. 시 분회장은 그때까지 화물연대라는 단체가 뭔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큰 관심이 없었으나 ‘가입하면 운송비를 올릴 수 있겠거니’ 생각하고 상조회 소속 동료 기사 40여 명과 함께 단체로 가입했다. 화물노동자 노조가 노동3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이 때문에 “고생만 죽도록 하고” 제대로 얻는 건 없을 거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쟁의권·협상권 없어… ‘깡다구’로 싸울 수밖에

 

 

시 분회장은 ‘깽판’이란 은어를 자주 사용했다. 화물노동자의 쟁의행위는 법률적 용어로 표현하기 힘들 뿐더러, 단체행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작정 회사와 담판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을 뜻했다. 그는 “12년 간 있었던 (노조탄압) 얘기 해 달라고 하면 2박3일 걸려도 다 말 못한다”면서 “다른 노조도 어려움이 있겠지만 여기도 사연이 많다. 법률적인 보장을 받는 데가 아니기 때문에 (문제해결이) 안되면 깽판치고 싸우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2003년 노조에 함께 가입한 동료 40여 명은 1년 후 3명으로 줄었다.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와 겁박 때문이었다. 2003년 5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친 화물연대의 파업에 참여했다는 것이 원인이었다.

 

 

2003년 5월 ‘14일 총파업’은 ‘물류대란’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대대적인 파업이었다. 당시 화물노동자들은 ‘생존권 사수’를 외치며 정부에게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당시 윤영삼 부경대 교수가 화물연대 조합원 931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주당 평균노동시간은 80시간이고 한 달 평균 15일을 차량에서 자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평균수입과 운송지출비용을 합친 월평균소득은 ‘-124만원(적자)’이고 평균 가계부채는 3500만원이었다. 1999년 정부가 대형화물차 제도를 면허제에서 등록제로 바꾸면서 18만 대였던 화물차가 34만여 대로 불어나 ‘밑바닥으로의 경쟁’이 심화된 탓이었다. 이들은 산재·고용보험 및 국민연금 혜택에서도 배제됐다.

 

 

파업 후 복귀한 조합원들에게 돌아온 것은 ‘경제난’이었다. 사측은 화물연대 소속 차주에게만 일감을 적게 줬다. 수출용 차 운송을 위해 평택항과 광명·화성공장을 오갈 경우, 이들은 평균 하루 3회, 많으면 6회까지 수송을 뛰었다. 시 분회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은 하루 1회씩 배차받았다. 1회 운송료 16만원, 20일 기준으로 계산하면 한 달 약 320만 원이 수입이다. 화물차 할부금, 기름값, 통행료, 수리비, 식비 및 각종 공과금 등을 고려하면 카캐리어 화물차주에겐 적자였다. 당시 시 분회장은 고등학생 아들과 중학생 딸이 있었다. 이렇게 10개월을 견뎠고 결국 3명이 남게 됐다.

 

 

“내가 한 거라고는 운송비 올리자고 사람들이랑 화물연대 한 것 밖에 없는데, 화물연대를 했다는 이유로 사람을 자르는 거다. 그 상태에서 그만 두는 것에 (스스로) 동의할 수 없었다.” 그는 10개월 동안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찾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도 다 찾아갔다. 노무상 불이익에 대해 형사적인 고소고발, 행정소송을 진행하면서 원청인 기아자동차 노조 등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사측의 탄압을 받던 세 사람이 다시 회사에 복귀하게 된 계기는 기아자동차 노조의 도움이었다. 시 분회장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기업 원청 노조가 거세게 압박해주면서 사측의 업무처리가 곤란해지는 부분이 있었고 그제야 사측이 우리와 합의를 끝냈다”고 말했다. 형사 고발, 행정 소송 등 ‘개인사업자’에게 당시 법 제도는 쓸모가 없었다.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구제를 요청하는 지방노동위원회는 찾아갈 수 없었다. 체불임금을 청구할 수 있는 다른 노동자와 다르게 이들은 그동안 불이익받았던 금액을 청구할 방법도 없었다. 법률적 구제 방안이나 제도적 보호망이 거의 전무했던 당시 상황을 되새기며 그는 “이게 시작이라는 걸 (사태가) 지나가면서 알았다”고 말했다.

 

 

시 분회장은 회사가 복귀한 3명을 쉽게 자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근로기준법, 노조법(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때문이 아니라 “건들면 피곤한 상황이 생기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시 분회장이 화물노동자의 쟁의행위를 ‘깽판’이라고 표현한 이유기도 하다. 그는 “그래도 비정규직은 노조활동을 하다가 회사와 다툼이 일어나면 소송까지 가고 몇 년이 걸려도 승소하게 되면 그동안의 불이익을 판결문을 통해서 보상받을 기회는 있다”면서 “우리들은 말 그대로 오기, 깡다구 같은 걸로 회사하고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 분회장은 이후 ‘글로비스’를 상대로 다섯 번 크게 싸웠다. 글로비스는 현대자동차그룹의 물류 계열사다. 글로비스 아래에 4개의 운송업체가 있고 시 분회장이 계약한 ㄷ업체는 이들 중 하나다.

 

 

2005년 즈음, 글로비스 아래의 운송업체 한 곳에서 ‘헐값 매각’을 위한 일감 줄이기 정황이 포착됐다. 글로비스가 ㅈ업체에게 일감을 주지 않아 화물차주들 매출이 200~300만원으로 떨어졌고 이 상태가 4~5개월이 지속됐다. 그는 “원청 임원으로 있던 사람이 퇴사하면서 운수업체를 ‘먹으려고’ ㅈ업체에 일을 안줬다”면서 “기사들은 죄가 없다. ‘왜 일을 안주냐’, ‘회사가 문제면 회사를 없애고 우리에겐 일을 줘야 할 게 아니냐’라 따지며 한 판 크게 싸운 적이 있다”고 말했다.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니요.” 5개월가량 적자를 견뎌 온 ㅈ업체 소속 차주 30여 명 전원이 ‘깽판 싸움’에 동참했다. 화물노동자들이 택한 수단은 불법행위 고발이었다. 당시 유동적으로 변하는 자동차 물량 소화를 위해 불법 증축된 카캐리어 화물차가 상당했다. ㅈ업체 조합원과 시 분회장이 경찰과 공무원을 평택항으로 직접 데리고 와 단속을 했던 것이다. 불법증축한 차는 평택항을 들어오기도 전에 도망치기 일쑤였고 매일 3000~4000대 하차해야 하는 운송 업무에 차질이 생겼다. 이 싸움을 20일 동안 지속했다.

 

 

‘휴지조각’ 합의서, 13년 동안 봐왔다.

 

 

시 분회장은 합의서의 구속력이 없는 문제가 가장 답답한 부분이라 말했다. 업체와 화물차주 간 합의는 노사 간 단체협약이 아니다. 단체협약은 위반 시 법원을 통해 강제이행을 청구할 수 있지만, 시 분회장에 따르면 화물노동자가 맺은 합의는 위반돼도 실효성 있는 법적 구제절차가 없다.

 

 

“가장 적나라했던 적은 2008년이었다. 유가가 천정부지로 올랐던 때 총파업을 했고 이 합의문에 1인당 5만원씩 카캐리어분회에 지급한다는 약속을 운송업체로부터 받아냈다.” 2008년 화물연대 총파업은 유가폭등으로 인한 생활고로 비조합원도 대거 참여해 참여율이 71.8%에 달했던 역사적인 파업이었다. 파업종료 후 업체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단체협약을 지키지 않을 시 노조는 형사고발, 쟁의 등에 나설 수 있지만 ‘특수고용직’ 화물노동자는 여의치 않다. 다시 싸울 수 있겠지만 큰 싸움을 두 번 연속하기도 물리적으로 어렵다. 그는 “합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적이 대부분”이라며 “죽어라 투쟁해 합의문 받아놔도 휴지조각이 되는 경험을 하니 고민만 남더라”고 토로했다.

 

 

이는 시 분회장이 몸담은 카캐리어 업종만이 아니라 화물노동자 전반의 문제다. 시 분회장은 이를 “힘으로 싸워서 지켜내던가 아니면 휴지조각을 남기던가”란 선택의 문제라 지적했다. 정부의 ‘무관심’은 지난 10년 간 언론을 통해 반복 지적돼 온 문제다. 2003년 최초의 물류대란으로 이룬 12개 조항 ‘5. 15 노정합의’ 현실화는 아직 요원하다. 지입제 폐지 논의 및 다단계 알선 근절,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보험 가입, 성실한 노동3권 보장문제 협의 등은 10년 넘게 되풀이 돼오고 있는 구호다.

 

 

수열 화물연대본부 대협국장은 지난달 31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대형 운송사들이 회원사로 가입해 있는 컨테이너운송사업자협의회(CTCA)의 경우 협상으로 운송료를 인상해도 3개월 만에 제자리로 돌아올 때가 많다. 운송사들도 합의서나 이행각서를 쓸 때 화물연대가 직접 서명하는 것을 절대 반대한다”면서 “노동기본권이 없는 문제라 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정부, 운송사업자, 노동자 간 힘의 논리라 본다. 정부나 운송사업자가 화물노동자와의 약속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 지적했다.

 

 

합의서가 번복되는 것을 번번이 목격해왔고 법제도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는 시 분회장의 시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운송비 인상, 근로조건 개선 이것도 좋지만 노동 3권 획득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지 않느냐”면서 “그게 없는 투쟁은 어떤 합의를 해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사관계 분명하면 화물노동자도 정규직으로 뽑아라”

 

 

시 분회장은 ‘화물노동자의 정규직화’도 강조했다. 일부 업종의 경우 노사관계가 명확해 정규고용 노동자가 아닌 상황이 더 모순적이란 지적이다. 시 분회장이 속한 카캐리어 화물이나 택배 및 유통사 화물 업종 등이 대표적이다.

 

 

기아자동차 광명, 화성 공장의 경우 카캐리어 화물 운송에 종사하는 차주는 대략 200명이다. 이들이 적게는 30~40명, 많게는 60~70명으로 4개 운송업체에 소속돼 있다. 다양한 화주의 물건을 실을 수 있는 트럭과 다르게 이들의 화주는 기아자동차 한 곳이다. 시 분회장은 “차주가 일을 고를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 그 회사에 취직된 사람에게처럼 운송업체가 ‘내일 일 어디 가세요’라고 배차지시를 한다”면서 “그 일을 그대로 따른다. 거부하지도 않고 제재 때문에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징계나 교육 절차도 마련돼 있다. 그는 “시킨 대로 일을 하지 않을 경우 징계 절차가 나오게 된다. 작업복 착용, 복장 단정 등 기아자동차가 요구하는 ‘사업장 규칙’도 지켜야 한다”면서 “글로비스로부터 매달 1회씩 안전교육을 받고 3달에 한 번씩 글로비스 전체교육을 받는다. 화주사 직원과 싸우지 말라, 장갑은 깨끗한 것으로 써라, 슬리퍼 신고 일하지 말라 등의 내용”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 화물차는 구조상 기아자동차를 벗어나면 다른 업종에서 일을 할 수가 없다. 수틀리면 ‘다른 회사 갈 거야’라고 할 수 없는 업종”이라면서 “화물노동자는 글로비스의 계획 아래 운송사로부터 배차받는 월급쟁이와 같다. 명색이 사장이면 최소한 자기 결정권이 있어야지,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이마트 등 유통업체에 속한 화물노동자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사관계가 명확한 업종의 경우 정규직 고용 관계로 고용안정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화물연대의 노동기본권을 인정하는 법률을 제정할 때 시범케이스로 이런 사별 노조에 테스트하지 않겠느냐고 정부에 제안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법안 통과할까

 

 

지난달 18일 이정미 정의당 의원의 대표 발의로 노조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간접고용·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원청 사용자의 책임을 인정해 헌법상 노동3권을 보장하는 것이 골자다. 시 분회장의 바람이 담긴 법안이다.

 

 

수열 대협국장은 화물노동자를 포함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의 경우 이미 2006년 대법원이 기준을 마련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사용자의 업무내용을 지정하는가 ▲사용자에 의해 근무시간, 장소가 지정되고 이에 구속받는가 ▲사용자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는가 ▲노무공급의 성립과 종료에 주도권이 있느냐 등을 제시한 바 있다.

 

 

화물연대는 본부 차원에서는 ‘현실적인 실체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법적인 인정도 중요하지만 법적 분쟁이 주가 될 시 자칫 소모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수열 대협국장은 “법적 노조로 인정받으려면 신고필증을 받는 투쟁 등 법적 싸움이 필요하다. 고민이 많았으나 화물연대는 조직화를 많이 해서 현실적 실체로 인정받는 쪽으로 싸워왔다”며 “2003년, 2008년 총파업 등을 통해 실체를 보여 왔고 지부들은 현장에서 직접 투쟁하면서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화물연대에 속한 평택항 카캐리어 화물노동자는 여전히 비조합원과 비교해 3분의 2 수준의 수입을 올리는 등 일상적인 불이익을 받고 있다. 시 분회장은 “노조하기 정말 힘들다. 그럼에도 70명 정도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서 “나도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의리와 내가 하는 게 옳다는 믿음으로 (분회장을) 오래 하고 있다. 이걸 하지 않으면 회사에 끌려 다니고, 말 한마디 못하고 끝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출처 : 미디어오늘 손가영기자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3105&sc_code=&page=&total=

 


화, 2016/11/0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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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하철노조가 2015년 임단투에서 정부의 2차 정상화를 막아내며 승리를 거두었다. 부산지하철노조는 7월 14일 밤 사측과의 막판 교섭에서 임금피크제, 성과연봉제, 퇴출제를 막아내며 잠정합의했다. 임금은 2.8% 인상을 따냈다.

 

이번 합의는 7월 14일 정부의 지방공기업 임금피크제 지침이 나온 날, 이를 무력화한 합의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임금의 경우 부산지하철노조는 예산지침상 고임금군으로 분류되어 인상률 상한이 2.8%로 제한된 조건에서 최대치를 따낸 셈이다.

 

조합원들은 지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역대 최고의 90%의 찬성율로 통과시킨바 있다. 오는 7월 15일~17일까지 3일간 경고파업을 예고했고 7월 14일에는 전조합원이 모여 파업전야제를 진행했다.

 

이의용 부산지하철노조 위원장은 "정부의 가짜 정상화 2단계 싸움에서 조합원들의 힘으로 한 단계 고비를 넘었다. 2015년 임금단체협약을 진행하면서 사측의 임금동결, 통상임금관련 탄력근로제 도입, 2진아웃제, 임금피크제, 성과연봉제는 절대 받아 들일 수 없다고 결의하고 투쟁과 교섭에 임했다"고 밝혔다.

 

이어 "공공운수노조, 그리고 공공기관 사업본부와 함께 올해초 부터 진행해 온 간부 교육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 자본과의 전선에서 한곳의 국지전에서 조그만 승리를 거뒀다. 2015년 정부의 성과주의 정책을 막아내고 안전과 생명이 우선시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계속해서 열심히 하겠다."고 전했다. 


목, 2015/07/16-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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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석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지부장)

 

"사회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필수적인 노동들을 해온 소중한 동지들과 총파업을 힘차게 성사시킵시다"

 

서경지부는 민주노총 사회적 총파업 계획에 맞춰 파업 준비에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 지부는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 캠페인, 홍익대 집단해고 투쟁 등 사회적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제기하는 투쟁을 해왔습니다. 이를 통해 조직이 강해진 것은 물론 양적으로도 크게 확대되는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올해도 역시 우리 사업장의 울타리를 넘어, 미조직 노동자의 권리와 한국 사회 대개혁을 위해 사회적 총파업에 같이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보수 정당 대통령 후보들조차 입에 올리는 최저임금 1만원! 누가 가장 먼저 주장했습니까? 바로 민주노총입니다. 우리가 미조직노동자들과 함께 싸울 때 정권과 자본이 더욱 두려워 하는 것은 물론, 우리 조직의 강화와 확대도 효과적으로 달성될 것입니다.

교육공무직본부, 의료연대본부 민들레분회 동지들도 사회적 총파업을 함께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파업에 돌입하는 동지들은 사회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필수적인 노동들을 해온 소중한 동지들이지만 정권과 자본은 저임금과 고용불안만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6.30 사회적 총파업 힘차게 성사시키고, 이런 저임금과 고용불안 이제는 끝장냅시다! 대통령을 끌어내렸던 힘으로 사회도 한번 뒤엎어봅시다! 함께 싸우고 함께 승리합시다! 투쟁!!

 

 

(이연순 의료연대서울지역지부 서울대병원 민들레분회장)

 

"하청 비정규직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6.30 사회적 총파업에 힘있게 결합합니다"

 

병원 업무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고, 병원의 정상적인 업무 수행을 위해 휴식 없는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병원 청소노동자들은 병원과 하청업체에 의해 쓰다 버리는 기계 소모품으로 전락했습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에, 건강하게 일할 권리마저 부정되어 최소한의 감염 예방조차 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한 10년, 아니 그 이상을 일해도 업체가 바뀔 때마다 고용불안에 시달립니다. 이제 서울대병원 민들레분회는 전체 조합원들의 함성을 하나로 모아 하청 비정규직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6.30 사회적 총파업에 힘있게 결합합니다. 지금당장 최저임금 1만원! 지금당장 정규직화! 깃발을 높이 들고 파업의 현장으로 달려 나갈 것입니다.

함께 파업 투쟁을 결의하고 준비하는 서경지부와 교육공무직 동지들! 6월 30일 광화문에서 만납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하나된 외침을 만들어 봅시다. 서경지부 동지들과 교육공무직 동지들이 있기에 저희 민들레분회는 어느 때보다 든든하게 파업의 현장으로 달려갈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선도적인 투쟁으로 지금당장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철폐!를 앞당겨옵시다! 우리의 투쟁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동지들과 함께 반드시 승리하는 투쟁 만들어 가겠습니다. (이연순 의료연대서울지역지부 서울대병원 민들레분회장)

 

 

(안명자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본부장)

 

"학교비정규직을 교육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우리도 교육의 주체임을 당당히 선언하고자 합니다."

 

저희 전국교육공무직본부도 630 사회적 총파업에 참여합니다. 사회적 약자로 학교에서 유령처럼 살아가던 우리는 노동조합을 통해 학교에 유령이 아닌 사람이 있음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학교는 교육을 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학교는 땀흘려 세상을 만드는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권리를 교육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회적 총파업으로 세상에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1만원을 외치려 합니다. 학교의 각 현장에서 맡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학교비정규직을 교육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우리도 교육의 주체임을 당당히 선언하고자 합니다.

서경지부, 서울대병원 민들레분회 조합원 동지들도 6.30 사회적 총파업 참여를 결의하셨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늘 투쟁의 현장에 연대로 빛을 내시는 것을 잘 압니다. 함께 같은 길을 가는 동지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즐겁습니다. “함께 가자 동지여! 맞은 손 꼭 잡고” 이 가사처럼 하나보다 둘이, 둘보다 셋이 힘이 되고 투쟁의 결과를 바꿉니다. 민주노총 아래 공공운수노조 아래 함께 가는 동지들 늘 투쟁의 현장에서 서로 손잡고 힘차게 연대정신으로 투쟁합시다. 투쟁!

 

(조상수 전국공공운수노조 위원장)

 

 

"최저임금 1만원 인상과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6.30 총파업에 함께 나섭시다."

 

 

개혁은 기다리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참여해서 만드는 것입니다. 약속은 기다린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확인해야 이행됩니다.

우리의 투쟁은 조급한 게 아닙니다. 새 정부가 국민의 삶을 바꾸는데 최저임금 1만원 인상과 비정규직 정규직화만큼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할 사항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투쟁은 잘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개혁을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과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약속을 제대로 조기에 이행하는 것이 사회적 요구임을 분명히 하여 재벌과 관료, 보수정치권과 언론의 기득권 저항을 무력화시키는 것입니다

박근혜를 퇴진시킨 저력으로 새 정부에서 한국사회를 확 바꾸고 우리와 국민의 삶을 바꾸는 투쟁에 나선 서경지부, 의료연대본부 민들레분회, 교육공무직본부 동지들이 진정 자랑스럽습니다. (조상수 전국공공운수노조 위원장)

 

 

“노동존중 세상으로 한걸음 더”

 

민주노총이 최저임금1만원, 간접고용-특수고용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대전환을 요구하며 지난 27일부터 광화문 열린시민마당에서 집중농성에 돌입했다. 매일 1인시위 및 시민선전전, 주체별-의제별 집중투쟁 등이 진행되며, 농성 마지막날인 6월 14일에는 전국 단위사업장 대표자 결의대회를 개최한다.

 

한편, 오는 6월 8일 목요일 오후 6시 30분, 광화문 열린시민 마당에서 공공운수노조 투쟁문화제 '지금 당장! 노동자와 함께' 가 열린다.


수, 2017/05/3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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