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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하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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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하야하라!

익명 (미확인) | 화, 2016/11/01- 14:37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국가 권력을 사유화한 최악의 사건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내각, 행정부와 사법부의 엘리트 관료 집단, 재벌 등이 하나가 되어 부정의한 방법으로 국가 권력을 사유화했다.

박근혜 정권의 독선과 불통 정치는 결국 ‘국가 권력의 사유화’와 ‘1인과의 소통’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최순실 1인을 단죄하는 것은 이 게이트의 본말을 전도하는 것이다. 최순실의 전횡과 월권을 허락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고, 그는 국민이 부여한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헌법을 위반했다. 대한민국 헌법을 위반한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대한민국의 대통령일 수 없다.

황교안 총리를 포함한 박근혜 정부의 내각, 행정부, 사법부의 엘리트 관료 집단 또한 박근혜 정권의 권력 사유화에 조직적으로 관여하고 동참하였다. 행정부와 사법부를 오가면서 부패한 권력을 향유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국민 위에 군림하였다.

민의를 대표해야 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국정조사 자체를 보이콧하면서 의회민주주의를 짓밟았다. 국회의원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하고, 민의를 저버리면서 부패한 박근혜 정권 구하기에 나섰던 그들이 이제는 거국내각을 얘기한다.

부패한 정권을 창출하고, 그것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그들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은 없다. 게다가 거대 재벌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수십억 씩 자본금을 대주면서 노동자, 중소기업, 영세한 자영업자들을 약탈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최순실을 단죄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부패한 박근혜 정권을 창출하고, 유지시켰던 한국 사회의 보수 기득권 세력의 권력 카르텔을 끊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오늘과 같은 이 참담한 역사는 되풀이될 것이다.

우리의 분노는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연루된 행정부와 사법부의 엘리트 관료집단, 거기에 자금을 대준 재벌, 더 나아가 의회 민주주의를 짓밟았던 국회를 향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주범인 대통령 본인이,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부패 권력에 복무한 박근혜 정부 내각, 사법 당국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거나 조사를 수행할 수 없고, 제 역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국회에 이 모든 것을 맡길 수 없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수치스러운 오늘의 역사를 바로 잡고, 지금의 국가 위기 사태를 수습하고, 이와 같은 참담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시민사회가 주체가 되어 한국 사회의 새로운 전환을 이끌어야 할 때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정치 제도의 개혁을 위해 각계각층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에 대통령의 독선정치와 불통정치가 가능한 것은 대통령에 권력이 집중된 한국의 정치제도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시민사회가 주축이 되어 대한민국의 정치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지혜를 모을 수 있는 공론장을 제안한다. 

 2016년 11월 1일

다른백년 젊은연구자 모임 일동
 
김종권 김종철 김지애 이권능 이기찬 이인규 이현옥
유철규 장세호 정완규 정재원 정초원 진정란 한인임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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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자문 국민개헌특별위원회의 개헌초안이 지난 13일 발표된 뒤 정치권을 중심으로 열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개헌안의 주요 내용은 대통령 4년 중임제, 대통령 결선투표제, 대선과 지방선거 시기 일치와 총선 시기의 2년 교차 등이고, 보도자료의 내용 첫 번째 제안은 선거제도 비례성 강화이다. 이외에 기본권 강화, 직접 민주주의 요소 강화, 자치분권 강화, 대통령 권한 분산, 국회 권한(법률안, 예산안 심사권) 강화를 위한 제안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앞의 권력구조 관련 개헌안의 예상되는 효과에 대해 간단히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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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 산하 국민헌법자문특위 정해구 위원장이 개헌 자문안 초안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대통령 선거의 결선투표제 도입,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제 확대는 다당제 경향을 강화시킨다. 현재도 그렇지만 어느 한 정당이 국회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대선과 총선 시점 2년 교차는 총선을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강화시킨다. 이것은 정부여당에게 불리한 총선결과를 초래하여, 상시적 여소야대 국회의 분점정부 가능성을 높인다. 다당제와 상시적 여소야대 국회에서 대통령은 국회의 동의를 얻기 위해 타당의 협조가 절실해지며, 안정적인 협조를 위해 연립정부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반면 대통령 4년 중임제는 집권1기 동안 대통령의 집권당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조건이다. 대통령이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있기 때문에 집권당은 대통령 중심으로 응집성을 유지하기 쉽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선거를 치루는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의 동반 당선 가능성도 대통령의 권력 안정성에 도움이 되는 요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요인이 대선 결선투표제나 비례대표제 강화 효과를 상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집권당내 차기 대권 후보자들은 당내 경선 승리가 힘들 때 탈당해도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선거나 국회심의 과정에서 3, 4위 정당(후보)의 영향력이 강화된다. 연립정부 구성이나 국회협조를 위해 장관직, 일부지역 공천, 정책 혹은 특정 지역 예산지원 등이 거래될 수 있다. 연립정부 하에서 정당간 협상은 국회뿐 아니라, 행정부 내에서도 전개된다. 정책조정은 행정부처 간에도 필요하지만, 단일 정부에서 대통령은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런데 연립정부 내부의 조율이 되지 않는 경우 대통령은 연립정부 파트너 정당 대표에게 양보를 하든가, 아니면 레임덕을 감수해야 한다.

연립정부 구성 파트너는 선거결과에 기초하여 대통령과 정당 지도부 간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정치 지도자들은 후보단일화나 연립정부 구성 협상을 통해 유권자들로부터 자율성이 커진다고 볼 수 있다. 유권자들은 이러한 정치적 조건을 이해할 필요가 있고, 정치인들의 자율성이 커지는 만큼 이들의 책임성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집권당뿐 아니라 연립정부 참여 정당 그리고 야당 등 주요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성 제고를 위한 대안이 필요하다.

현재의 정부개헌안은 국민들의 대통령제 선호와 진보진영의 비례대표제 선호를 조합한 것으로 보이며, 예상되는 효과는 미국보다 브라질의 권력구조에 가까울 가능성이 크다. 권력구조 측면에서 미국이 브라질보다 우월하다고 단정지을 필요는 없지만, 예상되는 효과를 고려할 때 브라질이 겪는 정치적 문제점과 미국 사례의 장점을 좀더 고려할 필요는 있다. 미국은 의회의 심의기능이 강한 사례라면, 브라질은 의회의 심의기능이 취약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브라질의 경우 행정부의 입법권이 강하고, 의회는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입법교착이 정쟁의 수단보다 숙의의 계기로 활용될 수 있어야

또한 미국 정치에서 우리가 참조할 필요가 있는 것은 대통령 권력보다 연방의회의 심의과정이다. 미국도 최근 정치적 양극화와 입법교착상태가 심화되었지만, 연방의회는 한국 국회에 비해 숙의에 충실하다. 대통령제에서 입법교착상태는 딜레마이지만, 다른 한편 이것은 야당이 입법부를 통해 정부를 견제하는 방법이자, 국민들의 입법심의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제고시키는 계기이기도 하다. 입법교착이 정쟁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보다 숙의의 계기로 활용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이 필요하다.

정부개헌안 보완을 위해 제안하고자 하는 것이 국회의원 임기 2년제이다. 4년에 비해 2년 주기 총선은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의 통제와 유권자에 대한 정치인의 책임성을 제고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방법이다. 또한 2년 임기는 총선을 한번은 대선과 비슷한 시기, 다른 한번은 대통령 중간평가의 시점에서 실시하게 되어, 상시적 여소야대 분점정부의 입법교착상태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회 임기 2년은 여소야대 하에서 정당간 합의가 중단되는 경우,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입법교착상태를 돌파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두는 의미를 지닌다.

현재의 개헌 논의는 대통령의 권한 측면으로 편향되어 있다. 이 글에서 다루기는 힘들지만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론은 제도적 권한과 이를 벗어난 권력행사를 구분하지 않은 채 그 대안을 개헌으로 연결시킨 것이다. 대통령의 무절제하고 무책임한 권한행사는 제도적 요인보다 안보와 성장 위기라는 과거 담론이 국회와 언론의 견제와 비판 기능을 마비시킬 때 강화된다. 역으로 국회와 시민사회에서 숙의가 존중되고 언론이 이를 뒷받침할 때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행사는 통제되고, 국회 신뢰가 제고되어 한국 민주주의 질적 수준이 진전될 수 있을 것이다.

 

 

 

수, 2018/03/2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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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슈들 거의 전부가 한국의 주요 언론으로부터 완전히 외면되거나 피상적이고 하찮게 다루어진다. 이러한 경향은 지난 10년간 점차 심해져서, 이제는 사람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한 지경이 되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현재 한국은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이웃과 지역, 국가와 세계에 관하여 믿음직한 관련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해 버리는 어마어마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외국과 국제금융 그리고 보이지 않는 힘이 어떻게 한국을 조종하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없다면 작금의 위협에 어떻게 대응해야만 하는지도 결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는 안보 위기이다. 저널리즘의 붕괴는 민주적 절차의 붕괴를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 정책에 관하여 믿을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없고, 정치인의 됨됨이나 개인적 스캔들에 대한 선정적 기사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강요된다면, 국민은 의미 있는 투표를 할 수 없다. 주변 사람들과 정책에 관해 신중하게 논의하고 가장 중요한 이슈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시간을 들이는 대신, 한때 시민이었던 사람들을 부추겨 선거 직전에 길거리 댄스나 지켜보며 자기만족을 앞세우게 만들고 일시적 기분과 충동에 휘둘리도록 하는 상황에서, 선거는 요식 행위로 전락한다.

현재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이슈들을 들여다보자.

  1. 한국에서 그리고 세계적으로, 극소수 부유층에 유례없이 집중된 부(富).
  2. 급격한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감당하기 힘든 위협. 이는 지금부터 향후 20년간 철저한 과학적 조사를 통해 기록될 것인데, 눈앞에 닥친 결과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반 건조 기후 상황의 증가. 이는 향후 10년간 계속 악화될 극심한 물 부족과 함께 오는데, 남한도 그렇지만 북한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을 것이다.

해수면의 상승 및 해수 온난화에 따른 해양생물의 황폐화.

기온 상승이 가져올 새로운 질병, 농업 생산성의 감퇴, 수입 농산물 가격의 상승.

석탄 발전의 증가에 따른 질병의 급격한 확산. 공해 산업의 자체 규제로 정부와 국민은 공장이 어떤 공해 물질이 내보내는지 모르는 상황의 발생.

  1. 점증하는 미국의 군사화.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에서 러시아 혹은 중국과 전쟁을 벌이려는 충동의 증가. 미국 외교의 소멸 그리고 기존의 이상주의 외교가 국제협력에 기여했던 바의 종언.
  2. 동중국해에서의 충격적인 기름 유출. 한국 연안의 물고기 오염과 제주도 및 여타 지역에서 예견되는 피해.
  3. 지역 경제, 특히 소도시 경제의 붕괴. 가족경영 사업체, 특히 식료품점과 레스토랑의 전국적인 폐업.
  4. 스마트폰, 자동차, 철강, 그리고 선박 등 수익성 좋은 시장의 임박한 붕괴. (그리고 이를 대체할 만한 시장의 부재) 이들은 지난 수십 년간 한국 경제 성장의 엔진으로 여겨졌다.
  5. 모든 혜택이 부여되는 장기 고용의 종료. 한국 청년층의 미래는 위험하고 불확실하며, 일부는 빚더미에 올라앉아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핵심 이슈에 관한 언급을 한국 신문이나 텔레비전 방송에서 찾으려면 자세히 살펴봐야만 한다. 모든 신문의 1면을 매일 장식해야 할 이들 이슈 중 일부가 일회성 기사로 가끔 실리기도 하지만, 문제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현재 무엇이 연관되었는지, 문제 해결을 위해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탐사보도는 거의 없다. 사실상 대부분의 기자들은 당장의 소비를 위한 피상적 일회성 기사를 써내야만 하는 압박에 처한 나머지 진정한 저널리즘에 빠져들 여력이 없다.

미디어오늘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들은 한국의 주요 언론들에서 얼마나 제대로 다뤄지고 있을까. 한국의 전국 단위 종합일간지 신년호의 1면 하단 광고는 10여년째 삼성전자의 차지다(사진:미디어오늘).

 

무엇보다 저널리즘이란 비즈니스가 아니며 저널리즘의 목적이 돈벌이가 아님을 반드시 인식해야만 한다. 언론은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만 하며 국민으로 하여금 사회와의 지적인 그리고 윤리적인 접촉면을 넓히도록 장려해야만 한다. 음식이나 섹스에 관련된 사람들의 원초적 본성에 호소하여 국민을 바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자면 저널리즘과 미디어는 판매를 위한 상품이 아니라 윤리, 예술과 문학 표현, 그리고 지역과 국가 및 전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당대의 중요한 이슈로 국민을 이끄는 교육의 한 형태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언론 보도를 소비하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이슈에 관하여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지, 사람들을 보다 사려 깊게 사고하고 사회적 의무감을 가질 수 있도록 장려할 수 있는지가 본질이다.

모두가 눈 감고 있는 명백한 진실을 먼저 대면해야만 한다. 미디어의 광고 의존이다. 광고는 필연적으로 저널리즘을 왜곡한다. 진실과 윤리적 책임의 추구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광고주의 경제적 이익에 보도를 종속시키기 때문이다. 이것의 뻔한 결과는 끊임없이 사회를 행복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심각한 문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심각한 위기들은, 보도 과정에서, 자연의 어쩔 수 없는 변덕으로 치부된다. 위기의 역사적, 문화적 원인을 한걸음 물러서서 천착하지 못 하도록 하고, 위기를 시스템의 문제이자 경제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로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신문과 잡지, 특히 텔레비전의 모든 뉴스는, 사회나 국가에 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자기만족과 이기적 행동 속에 자신의 욕망을 소비하고 충족하는 사람들의 이미지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에, 광고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광고가 저널리즘이 아니기는 하지만, 광고는 독자들에게 보도와 비슷하거나 오리려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광고에 들어간 그래픽은 보도에서 사용되는 그래픽에 비해 훨씬 질이 높으며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으려는 목적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광고 이미지와 한국 사회의 현실 사이에는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다. 희생과 절제 그리고 겸손의 가치에 대한 언급, 자신에 대한 광적인 숭배를 넘어서는 이상의 추구에 관한 언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최근 광고는 더욱 좋지 않은 방향으로 뚜렷하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오로지 호화로운 집에 사는 부자들의 이미지만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광고에 숨은 전제는, 타인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부자가 되어야 하고 자기만족을 추구해야 하며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광고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과 노동계층이 겪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음은 물론이다. 한국 사회의 엄청난 부의 양극화란, 값비싼 커피숍들 사이를 아무런 목적의식도 없이 떠도는 사람들을 더욱 부러워하고 추앙해야 할 또 다른 이유일 뿐이라는 것이 숨은 전제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슬픈 일이지만,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저널리즘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췄다. 문자해독이 가능한 사람들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대학교육 이상을 이수한 비율 역시 높다.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도 많다. 한국 기자들의 수준도 대단히 높다. 많은 기자들이 여러 언어를 구사한다. 한국의 대학에는 해외 유수 대학에서 석사 이상의 학위를 취득하고, 중요한 주제를 심도 있게 분석하고 이를 일반 시민에게 설명하는 훈련을 받은 교수와 강사가 많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지식인 사이에는 그들의 전문지식을 동료 시민을 도와야 할 책무가 아니라 계급적 지위의 원천으로 바라보는 문화 전통이 있다. 이러한 관습은 긴 역사를 지닌다.

그러나 구조적 이슈가 훨씬 중요하다. 대규모 중앙지와 지방 신문사에서는 고등교육을 받은 수천 명의 기자들이 일하는데, 이들은 정부 관료나 기업이 내놓는 발표를 취재하며 하루를 보내고 신문사로 돌아와서는 거의 똑같은 내용의 기사를 찍어낸다. 고등교육을 받은 기자들이,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기르고 몇 주 혹은 몇 달이 소요되는 탐사보도에 매진하여 의미 있는 분석과 보다 나은 정책을 위한 실질적인 제안을 내놓기보다, 다람쥐 쳇바퀴에 갇혀 기사 작성에 급급한 현실이다.

교수들의 사정도 별반 낫지 않으며 이들의 상황 역시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하는 등 보통 사람들을 위한 어떠한 활동도 권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억제된다. 대학에서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글쓰기란 오로지 사회과학인용지표(SSCI)에 들어갈 수 있는 학술논문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사회과학인용지표에 등재된 논문을 읽어보는 일이 전혀 없으며, 만약 읽어보고자 할 경우에는 요금을 지불해야만 한다. 정부가 인용지표의 발간 비용을 세금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도 말이다. 교수들이 학술 잡지에 글을 쓰는 일은 당연한 의무이지만, 논문이 어떠한 실질적 중요성을 지니는지 혹은 교수가 일반 대중도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지에 관한 고려는 전혀 없이 그저 학문적 글쓰기가 요구된다.

농촌의 상황이 특히 열악하다. 농촌에서 지적 탐구의 장으로서 유일한 대학들이 빠른 속도로 폐교하고 있으며, 지역 이슈에 관하여 철저하게 탐사 보도하는 저널리즘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일부 유권자 그룹, 특히 노년층 유권자들 사이에서 보이는 이른바 보수화 경향은 이들이 의지하는 지독한 저질 언론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들 유권자가 본래 편향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언론보도에 관한 작금의 접근법 중에서 가장 비극적인 측면은 기술을 필수적인 해결책으로 받아들이려는 태도이다. 어떠한 과학적 증거도 없이, 보다 발전된 기술 형태로의 이행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것이 어떻게든 저널리즘을 본질적으로 개선할 것이라고 막연히 가정된다. 1950년대와 1960년대 한국의 잡지를 살펴보면,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자연 현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정부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관하여 오늘날의 저널리즘에서보다 훨씬 자세하게 묘사되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 잡지는 오로지 인쇄에 의한 것이며, 이후 우리는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기술 기반의 미디어는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 매달리며 따라서 피상적인 읽기를 권장한다. 뇌를 자극하여 신경화학물질 도파민을 방출시키기 위해 이미지를 사용하고, 이에 따라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행위 속에서 감각적 충만함을 만들어낸다. 이와 같은 행위의 반복은 습관화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독자를 설득해야 할 시민의 한 사람이 아니라 속임수로 유혹해야 할 소비자로 보는 숨은 전제로 인하여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스마트폰과 경박스런 소셜 미디어 사용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고, 이들 수단이 현재 우리 사회를 이해하고 개선하기 위한 건강한 활동에 주로 활용되도록 해야만 한다. 기술을 긍정적인 공동체 형성이라는 보다 커다란 프로젝트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 치즈 케이크 한 조각을 곁들인 카페 라테나 살찐 고양이 사진을 게시하는 대신 중요한 이슈에 관한 가치 있는 정보를 공유하는 데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생명력 있는 미디어를 창조하는 작업은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프로젝트이다. 미디어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관하여 사람들이 확고하게 이해하고, 어려운 이슈를 거부하고 회피하려는 오늘날의 문화를 넘어설 수 있어야만 이 프로젝트가 추진될 수 있다. 대부분의 시민이 미디어를 통해 우선적으로 정보를 취득한다면 이 과정은 어떤 의미에서도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것이다.

건강하고 유용한 저널리즘 창조로 향하는 첫 걸음은 지역 수준에서 시작되어야만 한다. 지역 주민에게 관련 뉴스를 제공하는 지역 신문을 만들어야 하며, 이는 모든 주민에게 개방되는 지역 수준의 세미나와 결합되어야 한다. 세미나에서는 지역과 국가 및 국제적으로 중요한 경제사회 이슈가 분석적으로 다루어져야만 한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논의에 사람들을 모으는 일이 뉴스를 다시 유의미하게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한 세대에 걸쳐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에 바탕을 두는 광고에 익숙해진 상황에서는, 집중하는 방법과 자신의 삶에서 저널리즘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시민들에게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가정해야만 한다. 이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그리고 신문 기사를 어떻게 읽고 공유할지에 관한 교육으로 가능하다.

자신이 보는 바를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지역의 현안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를 사회에 제시하는 글쓰기를 초등학교부터 가르쳐 시민을 기자로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 자신의 이웃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이를 기술하며 모든 시민의 편에 서서 활발하게 개선책을 제시하는 행위는 보다 커다란 저널리즘 공동체의 창조로 이어질 것이며, 이는 미래의 저널리즘을 지원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학교는 젊은이들에게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 사회, 문화적 변화를 스스로 배우도록 장려해야 한다. 주변 세계에 대한 탐사 보도와 사려 깊은 분석은 교육의 일부가 되어야 하며 교과서의 내용은 지역과 국가의 이슈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양질의 저널리즘으로 가는 열쇠는 선정주의와 흥미위주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세계에 관한 과학적 접근법을 채용하며 동료 학생들과 협력하여 분석에 나서는 일이다. 이것이 교육 시스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모든 중, 고등학교가 신문을 발행해야 하고, 신문기사 작성이 시험 성적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지역사회 수준에서 자기 각성과 적극적 행동의 새로운 문화가 장려되어야만 한다. 이는 저널리즘 르네상스를 뒷받침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습관의 변화가 하루아침에 일어날 수는 없다.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행기에 열리는 지역 수준의 세미나에는 시민들의 참여가 저조할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반드시 해내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정책과 분석에 시민들이 참여하는 유의미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면, 생각을 현실로 전환하는 일은 전적으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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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미디어오늘)

시민 저널리즘을 뒷받침할 지역사회 공동체는 현재 거의 전무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웃의 이름을 알지 못 하며, 당면한 사회, 경제, 문화의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이웃을 만나는 일도 거의 없다. 이들은 제3자가 생산하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소비자 심리에 사로잡혀 있다. 정보 생산자는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하여 분석하고 설명하며 철저하게 의문을 제기하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역 대학과 언론인, 지역 사업가와 정부 관료들에게 중요한 이슈에 관한 논의를 이끌도록 하여 지역 사회 주민들이 활발한 지적 공동체의 일원임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상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일단 시민들이 저널리즘을 생산하기 시작하기만 한다면, 글쓰기가 습관이 되고 (비판적 시각으로) 더 많은 정보를 찾아 나서게 될 것이다. 신문이 죽어가는 이유는 온라인 콘텐츠와의 경쟁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문의 비 참여적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신문의 콘텐츠가 일상의 삶에 유용하다고 생각할 때, 신문 보도가 그들이 살아가는 공동체의 활기 있는 일부라고 생각할 때 시민들은 그들의 지갑을 열 것이다. 스스로 제작한 책장이 돈을 주고 구입한 책장보다 더 소중하다. 저널리즘 역시 마찬가지이다.

광고 의존과 이윤 창출 저널리즘에서 벗어난 저널리즘 협동조합

한국은 광고 의존과 이윤 창출 저널리즘에서 벗어나 분석과 보도를 위한 협동조합 결성이라는 첫 걸음을 내딛을 수도 있다. 여전히 광고 수입에 중독되어 어려운 이슈를 정면으로 다루지 못 하는 가짜 진보 미디어가 존재한다. 회원으로 뒷받침되는 저널리즘 공동체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야 할 필요 없이 중요한 이슈를 다룰 수 있다.

보도를 통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협동조합의 회원이 되기 위하여 비용을 지불하고, 자신이 염려하는 이슈를 다루는 세미나에 종종 참석한다면, 시민들은 그런 협동조합을 지원하고자 하는 진정한 동기를 가지게 된다. 그런 조직이 이미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되는 진보적인 비정부단체 세 곳에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나의 경험으로 비추어 보자면 이 주장은 현실이 아니다. 한 달에 1만원을 지불하면 비정부단체의 회원이 되어 가끔 이메일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 단체가 개최하는 세미나의 주제를 제안할 수도 없고, 글을 기고하기도 쉽지 않으며, 단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회원의 의견을 물어오지도 않고, 정기적인 회의에 초청하여 이웃에서 벌어지는 이슈에 관해 논의해 줄 것을 요청하지도 않는다. 회원이 고객이라는 식의 태도는 반드시 중지되어야만 한다.

향후 수년 안에 깊은 경제적 난관에 빠지는 시기가 찾아올 것이고, 지역 수준의 협동조합으로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언론사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이른바 진보 미디어들은 그들의 존재가 가장 필요한 바로 그 순간에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나는 예견한다. 왜 그런가? 문제는 미디어의 소유권과 관계된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이 사적으로 소유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소유자가 개방적인 태도를 지녀야 한다. 시장의 힘에 대응해야만 하는 압박 때문에, 가장 비판적이고 좋은 의도를 지닌 언론이라도 선정적인 글쓰기라는 뻔한 처방에 빠져든다.

가끔 기부를 함으로써 대안 언론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일부 부자들의 시혜에 의존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 아니다. (점점 신문을 아예 읽지도 않는) 일반 근로자들이 거의 관심도 가지지 않는 이슈들, 진보적 태도를 지닌 엘리트의 관심사만 다루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소수가 아니라 모든 시민의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

생각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접근법은 새로운 미디어를 위한 미크로 주식 제도의 도입이다. 신문사의 소유권이 주식과 미크로 주식(주식을 쪼갠 일부)으로 나뉜다. 시민기자와 전문기자들은 기사를 쓸 때마다 기사에 대한 미크로 주식으로 보상받는다. 시간이 흘러 열 개나 스무 개 혹은 그 이상의 기사를 쓰면 그 회사의 상당한 지분을 갖게 되고, 기자들의 노력 덕분에 지분의 가치가 점차 증대된다. 신문사의 주식을 보유한 외부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자들은 신문사로부터 급여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신문사를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접근법을 통해 효율적이고도 독립적인 저널리즘을 한국에서 창출할 수 있다. 주요 신문사의 많은 언론인들이 이러한 접근법을 환영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유의미한 저널리즘의 발전에 핵심적인 정부의 역할

저명한 언론인 로버트 맥체스니(Robert McChesney)가 자신의 글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유의미한 저널리즘의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광고비용을 지불하는 기업의 요구에 부응하는 분위기 창출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일반 대중이 활용할 수 있는 객관적 저널리즘이 되도록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일정한 형태의 정부 지원이 있을 때뿐이다.

언론 협동조합을 통한 시민의 기부가 정부의 자금 지원과 결합해야, 시민이 언제나 충분한 정보를 제공 받아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중대한 이슈에 대하여 장기적으로 탐사보도를 펼치는 언론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금제공이 이루어질 수 있다. 정부 지원은 신문사들로 하여금 합리적 분업에 따른 전문성을 기를 수 있도록 한다. 똑같은 기자회견에 몰려가 신문에 동일한 기사를 써대는 우스꽝스런 모습을 끝낼 수 있는 것이다. 정부의 자금지원으로 기자들은 특정 분야에 집중하여 진상을 파헤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자금지원과 이로부터 발생할 정치인의 언론 통제를 심각하게 우려한다. 엄격하게 통제된 관제 언론을 통해 여론을 조작했던 권위주의 정권을 경험했던 한국의 역사에 비추어, 이러한 우려는 전적으로 이해할 만하다. 이 점에 관해서는 당연히 언제나 조심스러워야만 한다.

그러나 공교육과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정부의 자금지원은 이미 신뢰받고 있다. 이들 분야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원이 완벽하게 성공적이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교육을 과격하게 민영화한 결과 문맹률이 치솟고 다수의 근로계층 주거지역에서는 학교가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 하는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상황은 훨씬 낫다. 초등과 중등 및 고등교육기관을 통한 장기 교육으로 시민이 세계에 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정부는 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해야만 한다. 저널리즘은, 사회에서 단기적으로 혹은 장기적으로 벌어지는 상황 전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교육기관을 졸업한 사람들에게도, 과학적 방법론에 바탕을 두는 탐사보도를 통해 세심하게 생산된 정보를 제공한다.

교육과 언론은 민영화되거나 이윤을 목적으로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에 관하여 객관적이고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모든 사람들이 이런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공공 서비스로 운영되어야만 한다.

정부의 자금지원을 통해 저널리즘이 포괄적이고도 장기적으로 공공선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일련의 견제와 균형을 도입하는 일은 전적으로 가능하다. 이런 시도는 가장 중요한 목표, 즉 직면하고 있는 중대한 이슈에 대한 분별 있는 논의에 시민들을 참여시키는 목표를 달성할 것이다. 정부는 장기 보조금을 통해 탐사보도를 수행하는 기자들의 급여를 지원할 수도 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그랬던 것처럼, 기자들에 대한 보조금의 분배 역시 전문가로 이루어진 위원회에서 결정하면 된다. 어쩌면 시민 대표가 정기적으로 모여 이 문제를 결정할 수도 있겠다. 지원금의 규모는 작지 않고 장기적으로 제공되며 심사를 받아야 한다. 현안에 관하여 광범위한 조사를 수행하고,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요약 보고는 물론 심층 보고를 제공하는 시민기자들의 급여와 사무실 및 장비에 정부자금이 제공된다.

이러한 제도가 부패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 사이에 탐사보도에 대한 새로운 문화가 확산되고 전문기자들의 탐사보도를 통해 이 문화가 강화될 수 있다면, 유의미한 저널리즘에 효과적으로 다가설 수 있을 기회로서 충분하다.

오늘날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부터 깨달아야만 한다. 저널리즘의 본질 자체를 바꾸는 폭넓은 개혁 외에 달리 선택할 방안은 없다. 시민들이 공상소설 같은 뉴스만 접한 나머지, 한국이 중국과 미국의 전쟁에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과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및 대학에서의 강의는 시민기자들이 담당해야 할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다. 이는 기사작성만큼이나 중요하다. 시민회관 등의 장소에서 일반인들에게 경제와 문화, 기술과 사회 같은 복잡한 주제를 소개하는 일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극히 중요하다. 이는 또한 기자들이 주제와 청중 모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기자와 언론에 자금을 지원하는 일은 정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데 핵심일 수밖에 없다.

저널리즘과 글쓰기의 본질을 변화시키는 과정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피상적인 언론보도에 그리고 일반인은 전혀 참여할 수 없는 구조에 깊이 좌절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중대한 전환이 시작될 것이다. 심지어는 대안언론마저 전혀 투명하지 않고 접근불가인 경우도 있다. 탐사보도의 수행과 함께 현안에 관하여 시민교육을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꾸준하게 급여를 제공하는 강력한 미디어 플랫폼 몇 개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글쓰기와 읽기 및 토론에서 새롭고 진지한 문화를 창출할 수 있으며 이를 우리 사회 전체에 확산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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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랄 만한 객관성으로 잘 알려진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의 저널리즘 개혁에서 최고의 모델이라고 할 만하다.

정부의 자금지원을 통해 뛰어난 저널리즘을 구현했던 성공 사례가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BBC와 NHK가 좋은 사례이다. 한국의 경우, 정부가 운영하는 국민방송(KTV)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이 방송국이 중대한 주제에 관하여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기자와 학술인 및 시민기자에게 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겠다. 국민방송을 한국의 대표적 언론사로 만들 수도 있다. 이와 동시에 연합뉴스 및 여타 방송사의 콘텐츠 개발을 감독하는 전문가 및 시민 위원회를 도입하여,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의 실질적 중대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리랑TV의 사례가 가장 흥미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한국의 대표적 영어 방송인 아리랑TV는 일상 뉴스를 가볍게 소개하고 CNN이 그러는 것처럼 가벼운 뉴스거리를 압축적으로 송출하여 왔다. 그러나 알 자지라 TV, 러시아 투데이(RT), 혹은 BBC에서 볼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 있는 탐사보도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적절한 자금지원과 보다 높은 수준의 독립성이 보장된다면, 아리랑TV는 탐사보도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언론사가 될 수 있다.

자국의 문화적 뿌리를 찾아 나서고 앞날을 밝혀줄 전통을 재발견하기만 한다면, 한국은 저널리즘에서 최고가 될 것이다. 한국의 저널리즘 개혁에서 최고의 모델은 아마도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왕조실록은 놀랄 만한 객관성으로 잘 알려져 있고, 기록과 편찬에 종사하는 사관들이 군주에게 그들의 가치를 끊임없이 입증할 필요 없이 급여를 받고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일련의 세심한 보호 장치 속에서 편찬되었다. 진실한 기록의 편찬을 담당했던 춘추관은 사료 편집에 관여하려는 왕이나 고위 관리의 시도에 저항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왕조실록을 한국 저널리즘의 생태적 기반으로 활용하고자 한다면, 조선의 진실한 역사 기록에 대한 근본적인 재조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래에 관한 영감을 탐색할 장소로서 한국의 과거를 돌아보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고무적일 수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언론조작에 앞서, 공공선을 위한 객관적 역사 서술의 어마어마한 전통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한국의 언론인들은 새로운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수, 2018/03/2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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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일년 내내 한반도 상황에 대한 필자의 화두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이었다. 북미 양국의 지도자간에 오고 가는 말폭탄의 수준이 최악의 상황에 이르러 전면적인 전쟁이 벌어질 일촉즉발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위의 단어, 즉 사태가 극점에 이르면 새로운 상황이 전개된다는 기대가 현실로 다가왔다. 2018년 새해 벽두부터 한반도 평화를 향해 전개되는 절묘하고 긴박한 상황에 대하여 노련한 사회 원로는 문대통령에게 ‘신이 역사 속을 지나는 순간, 그의 옷자락을 움켜잡아야 한다’고 충고하고, 매번 배움과 성찰의 글을 올려 주는 북한 전문가 인제대 김연철 교수는 ‘설레이는 희망과 예측할 수 없는 불안’이라는 표현으로 이중적 변주의 위험을 암시한다.

한편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철부지들의 조급함이 설치는 가운데, 배달민족의 소망인 한반도 비핵화(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 )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CVIG,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Guaranteee for Peace process))이 마치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듯 착각하는 글들이 난무한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지금은 날이 선 칼끝 위에서 춤을 추는 위험한 곡예를 진행하는 과정에 있다. 함석헌 선생님은 ‘뜻으로 읽는 한국역사’라는 저술 속에서 하늘이 기회를 내렸을 때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재앙이 뒤따른다는 말씀을 주셨다. 지금부터 정신을 다시 바짝 차려야 한다.

기본적으로 남과 북 사이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비록 쌍방의 체제와 권력을 강고히 하기 위해 악용되었던 1972년 7.4 공동성명에서 비롯하여 6,15 선언과 10.4 합의로 이루어지는 연장선상에서 공히 상대방의 주권을 인정하고 상호 불간섭과 공존공영하는 원칙을 수십 년 간 유지해 온 셈이다. 다만 지난 9년간 어리석고 사악한 이명박근혜의 반민족적 수구집단에 의해 남북간의 갈등이 조장되고 대화가 단절되고, 이전의 김대중 정부 시절에 애써 시작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의 협력사업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상황이 반전되고 새로운 계기가 주어지면 오히려 지난 9년간의 뼈아픈 경험이 밑거름이 되어 보다 확실한 신뢰관계 속에서 전면적인 협력의 확대를 기대해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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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연합뉴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일방적 요구 속에서 이루어진 유엔안보리의 제재 결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가능한 모든 인도적인 지원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유엔 제재의 근본 취지 역시 핵과 미사일 개발 그리고 전쟁물자에 전용될 수 있는 통상과 거래를 금지하고자 한 것일 뿐, 같은 유엔 내 인권 부처에서는 북한을 위해 1억불이상의 지원금을 모금하면서 인도적 조치는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 예컨대 유엔의 북한 인권보고서에 의하면 수백만의 북한동포가 각종 질병과 전염병으로 고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약품과 의료시설의 태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북한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천만 명 이상이 영양부족 상태에 있으며, 특히 십만 명에 가까운 어린이들이 굶주림에 아사 직전에 처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 이상 망설일 일이 아니다. 4월말 이루어질 남북 정상회담은 전세계인들을 향한 동아시아 역내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대한 확고부동한 선언이어야 하며, 회담 이후에는 즉각적으로 북한동포에 대한 인도적 지원 프로그램을 작동시켜야 한다. 더불어 유엔 제재의 취지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조업의 재개를 검토해야 한다.

한반도 위기해결과 평화정착을 가로막는 장애는 남북간 관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냉전적 상황 속에서 여전히 대한민국의 전시작전권을 쥐고 있는 미국 내부의 혼선과 갈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이 지점에 현실적인 어려움과 심각성이 있다. 미국인들보다 미국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중앙대 이혜정 교수는 3월21일자 프레시안 기고문 ‘(한미)동맹파의 대북정책은 실패했다’ 를 통해서 미국 내 복잡하게 얽힌 내막을 개략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필자는 아래의 글을 통해서 이를 보다 상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미국 주류사회의 흐름과 분위기이다.

‘미국의 주류사회는 한반도에서 이루지고 있는 평화의 흐름에 불안을 느낀다(Liberals, Conservatives Worry About Korean Peace Threat)’는 미국내 진보인사의 기고문이 상징하듯이, 대부분 미국인들에게는 북한은 인류사회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인권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국제법을 어기고 합의를 해놓고는 온갖 핑계를 대면서 비밀리에 핵과 미사일 개발을 진행하여 온 불량국가, 거짓말투성이의 상대로 인식하고 있다. 주류 언론들조차 지난 20여 년 동안 북미간에 진행되어 온 비핵 협상의 과정이 북한에 의해 농락을 당하고 핵개발에 필요한 시간벌기로 악용되어 온 것으로 보도하면서 북한을 결코 정상적인 국가간 일대일의 대화상대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연속적으로 밝히고 있다. 국무장관 출신이자 지난 대통령선거 경쟁상대였던 힐러러는 북미정상회담을 수용하는 트럼프의 외교적 미숙함을 비난하면서 경험과 전문성의 결여(lack of dossier & experts)를 지적하고 나섰다. 이러한 흐름은 미국의 정치상황이 11월 초 예정인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거나 또는 가까운 시일 내 트럼프가 탄핵을 당하는 모습으로 급반전하면, 미국 주류 정치인들이 트럼프에 의해 이루어진 북미정상회담의 주도적 성과를 손쉽게 무시하거나 부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차기 대선에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버니 샌더스를 중심으로 개혁파 정치인사들은 정상회담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를 첨언하면, 1994년 제네바협정 이래 북미간 비핵화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무시한 측은 북한이 아니라, 바로 미국 자신이었다. 이는 미국 내 양심적이며 소신이 있는 진보적 학자들과 합의과정에 실제 참여하였던 책임있는 인사들이 고백하고 인정하는 분명한 팩트이다. 협상과정에 임했던 미국의 입장은 한마디로 기만적이었으며 ‘수 년 내에 예상되는 북한붕괴론’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예상과는 다르게, 반드시 붕괴되었어야 하는 북한정권이 1995-1998년간에 있었던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고 최소 수십만 내지 최대 이백만 명이 굶어 죽는 고통과 희생 위에서 재기한 것이다.

두 번째는 미국 내 보수집단 입장이다.

공화당과 군산복합체 그리고 네오콘으로 대표되는 집단에게는 북한은 냉전구조의 마지막 연장으로서 상징 조작의 대상이다. 국방예산을 증액하고자 하는 구실과 근거로 북한은 언제나 호전적인 집단으로 미국을 위협하는 존재로 각색되어야 했고, 태평양 너머로 대 중국과 대 러시아의 봉쇄를 위한 외교적 군사적 전략의 핑계로 활용되어 왔다. 격대로 집권한 부시 부자 정권 기간 동안에는 북한은 자신들의 상상 속에 나오는 악의 제국, 악의 축으로 존재하여야만 했고, 이는 마치 전래의 신화처럼 보수 집단 내에 확고한 신념으로 굳혀져 왔다. 트럼프가 지난해에 발언한 ‘분노의 화염(fury & fire)’ ‘확실한 파괴(totally destroy)’ 그리고 최근에 검토되었다는 코피전략과 비핵국가에게도 선제적으로 사용하겠다는 Mini-Nuke 개념 뒤에는 항상 이들 호전적 집단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반증이며, 영어로 표시된 위의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여전히 유효한 옵션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언제라도 핑계와 기회가 주어지면 북한에게 군사적 공격을 감행할 집단들이다. 한반도의 전쟁 위험은 조석지변하는 트럼프의 변덕에 이들이 항시적인 변수로 작동할 것이라는 점에 있다.

더구나 최근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에서 급격히 퇴조하는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고자 그나마 우위를 점하고 있는 군사력을 기반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주적으로 명백히 명시하면서 신냉전체제의 도래를 암시했다. 한편에서는 외교적 통상적 분야에서 이미 이들과 전면적 상황으로 돌입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따라서 지난 시절 몇 년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유지를 위해 작동하였던 6자회의 구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보증할 수 있는 하나의 구도, 기존의 틀이 사라진 셈이다.

세 번째는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인사들의 면면이다.

최근 미국무장관의 교체, 그나마 트럼프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했던 매티스 국방장관의 발언권 후퇴, 테러범에 대한 잔인한 고문과 전쟁범죄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는 여성인사의 중앙정보국장 발탁, 맥마스터 안보보좌관을 극단적 호전주의자이며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주장하던 전 유엔대사 볼턴으로 교체하는 등 일련의 백악관 인사의 변동은 심상치 않은 기류를 반영한다. 한국정부와 언론들은 이러한 변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는 북미간 정상회담의 진행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애써 외면하지만, 속을 가늠할 수 없는 호전적 인물들의 가연성(可燃性)을 그저 눈가림으로 덮을 수는 없는 것이다. 준비작업 과정부터 잘 작동하고 있다는 서훈과 폼페이오 라인이 회담의 성공적 진전에 도움이 되리라는 안이한 기대는 오히려 상황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그르칠 수 있고, 만약의 악화되는 사태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할 수 있다.

트럼프 WH 주요인사변동표
트럼프 행정부의 인사 변동 상황. 예측 불가능성과 함께 강경파들이 늘고 있는 것이 북미회담의 장래를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이미 이란 핵합의를 무력화하고 파기하는 수순으로 들어간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미국의 한 칼럼니스트는 기고를 통해서 이러한 인사변동의 성격을 ‘시온주의자와 극우호전주의자로 채워진 완결적 구조(has closed the grip of WH inner group with Zionists & Neoconservatives)’ 라고 평했듯이, 더 이상 트럼프 주위에는 보수이나마 합리적인 논리와 판단을 구사할 수 있는 인사들이 모두 배제되었다는 뜻이다. 대체로 이들 인사들이 북미정상회담에서 취할 입장은, 자신들이 구상하는 시대역행적 패권의 전략구도에 북한이 투항해 들어오는 것을 요구하면서 당연히 그러한 방향으로 북한을 고강도로 압박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검토해야 하는 것은 북미정상 회담 이후에 전개되는 예상경로에 관한 것이다.

미국 국제전략 연구소의 한 전문가는 중앙일보 기고를 통해서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을 40%, 성사가 되더라도 합의에 이르지 못할 확률을 40%, 합의에 이르더라도 실행에 옮기지 못할 가능성이 18% 라는 매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혜정 교수도 정상회담의 결렬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이런 경우에도 전쟁을 회피하고 불편하지만 ‘핵억제의 평화정책’으로 회귀할 수 있음을 암시하였다.

소망하건대, 트럼프가 여하간의 여건과 상황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평화를 향한 프로세스에 합의를 한다면, 다음의 문제는 이러한 합의를 ‘행동 대 행동’의 원칙하에 실천으로 이행하는 일련의 과정을 확실하고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트럼프 대통령의 위치가 매우 불안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대선과정에서 벌어진 러시아 게이트와 폐북을 통한 데이터 누출, 전 중앙정보국장 해임과정의 적절성 여부, 특별검사인 뮬러 등과의 극한적 반목, 공화당내에서조차 누적되는 피로감, 백악관 내의 측근참모들 사이 그리고 가족들과 권력투쟁설에 더하여, 최근에 봇물 터지듯 등장한 여러 여성들과의 성스캔들 등 트럼프의 장래를 매우 불안하게 하는 요인들이 도처에 깔려 있으며, 설령 탄핵을 면한다 하더라도 향후 그의 주도하에 결정된 정책을 책임 있게 수행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제네바 합의가 이후 연방의회의 다수를 장악한 공화당 보수집단들에 의해 지연되고 무력화가 된 사례가 있듯이, 어렵게 합의에 이른 북미정상회담의 합의내용이 실행단계에 들어가기에는 많은 장애물들이 예상된다고 할 것이다.

아마도 이를 이미 염두에 두었다는 모양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 남북미 삼자 정상회담을 추가로 제안하였다. 합의된 내용의 실행을 분명히 강제하자는 뜻으로 읽힌다.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소의 서보혁 교수는 과거처럼 선언(announcement)과 합의(agreement) 만으로는 실행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국제법 수준의 조약(treaty) 또는 이에 준하는 강제적 조항을 반드시 얻어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위에도 언급하였듯이 6자회의 구조는 미중과 미러 간 점증하는 갈등으로 더 이상 기능을 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현재 정부가 움직이고 있듯이 한중, 한러, 한일 정상회담을 매개로 하여 북중, 북러, 북일 정상회담을 동시적으로 진행하면서, 각자의 회담에 한국이 참여하는 방식의 개별적 2자 또는 3자회담을 추진하는 것도 매우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에서 깊이 협의했음직한 주제로 평양에 신속하게 미국의 임시대사관을 개설하여 양국 관계정상화 과정에 비가역적인 속도를 보태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유럽연합도 비상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고, 유엔 역시 모든 역할과 지원을 다할 것을 공언하고 있는 현재, 유엔이 중심이 되어 가칭 세계(또는 한반도)특별평화위원회를 사무총장 직할로 편성하고 이의 위상과 기능을 안보리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것을 요청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별평화위원회의 구성에는 안보리를 입맛대로 좌지우지 하는 주요 패권 국가들인 미국,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일본을 배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현실적으로 타당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한반도 상황의 향후 전개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기대 또는 신뢰의 파트너가 될 수 없다. 다만 선제공격 등 예상되는 극단적 위험행위를 막아야 하는 관리의 대상일 뿐이다. 관점과 지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소비에트 붕괴 이후, 고난의 역사를 이겨낸 북한을 이제 대한민국은 당당한 형제적 주권국가로 포용하고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역사적 흐름 속에 민족적 사명과 동포애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미국 당국은 북한의 붕괴론을 포기하고 동시에 군사적 협박을 중단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는 한반도 분단의 원인과 북한 핵무장의 구실을 제공한 당사자로서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예의와 책무로 반드시 실행하여야 하는 사항이다. 한국의 시민사회와 재미교포들은 미국 내 진보세력과 시민사회와 함께 손잡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미국의 일차적 책임을 분명히 요구하는 국제적 여론 작업에 불을 힘껏 댕겨야 한다.

토, 2018/03/2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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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정부가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시한다고 하니까 비대언론과 자한당과 일부 학자 등이 ‘토지공개념이 사유재산제와 재산권의 근간을 흔든다’는 말들을 쏟아내는 모양이다. 무지의 소산이거나 악의적인 왜곡이다. 문제는 선량한 주권자들이 비대언론 등의 곡학아세에 현혹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토지공개념이 사유재산제를 부정하는 것도, 재산권의 근간을 흔드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강하게 있다.

먼저 우리는 대한민국 헌법에 담긴 사유재산권 보장, 재산권 행사의 사회적 구속성, 토지재산권의 특수성 등을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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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이 3월 20일 오전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 중 전문과 기본권 부분의 내용과 조문 배경 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대한민국 헌법은 사유재산제와 재산권을 보호,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해야, 토지재산권은 다른 재산권에 비해 공공복리 적합의무가 높아

대한민국 헌법은 제231항 1문에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고 명시해 사유재산제와 사유재산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리고 동조 동항 2문에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라고 하여 사유재산의 구체적 내용과 범위를 입법자인 국회에 위임하고 있다. 또한 헌법 제23조 제2항은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라고 하여, 법률로써 내용과 한계가 이미 확정된 구체적 재산권도 이를 행사함에 있어서는 공공복리에 적합하여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는데, 이를 재산권의 사회적 구속성이라 한다.

토지재산권도 분명 재산권의 일종이다. 하지만 토지재산권은 본질적 속성과 사회적 영향력 등의 측면에서 다른 재산권에 비해 무거운 사회적 구속을 받아왔다. 헌법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토지공개념은 토지재산권에 대해 가중된 사회적 구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대한민국 헌법은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내용과 한계를 정한 사유재산권을 보장하는데, 법률로 정해진 사유재산권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행사하는 건 용납되지 않고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행사되어야 한다. 재산권 중에서도 토지재산권은 재산권의 속성이나 재산권 행사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워낙 커 다른 재산권보다 훨씬 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행사되어야 한다’ 정도가 될 것이다.

사회적 구속성이 높은 토지재산권이라 해도 제한에는 엄격한 요건과 한계가 따라

이렇게 다른 재산권에 비해 사회적 구속성이 높은 토지재산권이라 해도 제한에는 엄격한 요건과 한계가 따른다. 대한민국 헌법 제37조 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토지재산권을 넣어 설명하면 대략 이렇게 될 것이다.

‘국가가 토지재산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국가안정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라는 단 세 가지 목적만을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여기에서 수단의 적정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구성요소로 하는 과잉금지원칙이 도출된다), 반드시 법률(즉 의회가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이라는 형식으로 제한할 수 있는데, 이런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다고 해도 토지재산권의 본질적인 내용(헌법재판소는 재산권의 경우 사유재산제도의 전면적인 부정, 재산권의 무상몰수,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박탈 등을 본질내용침해의 예로 들었다)을 침해한다면 허용될 수 없다’

즉 문재인 정부가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수준의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문화하더라도 입법기관인 국회가 법률의 형식으로 명문화된 토지공개념을 제도화하여야 하고, 그렇게 제도화된 토지공개념 관련 법률도 헌법재판소에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는데 이때 헌법재판소는 과잉금지원칙과 본질내용침해금지원칙 등을 기준으로 위헌성 여부를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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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이 토지공개념 법안을 지지한다는 기사를 1면 톱으로 올린 동아일보 1989년 9월 6일자 지면.

토지공개념 명문화는 고율의 보유세와 각종 개발이익환수장치 구축의 헌법적 근거 마련으로 이해해야

위에서 살핀 것처럼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토지공개념 명문화는 사유재산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도, 재산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과는 아예 관계가 없다. 다만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이 헌법에 명시되면 고율의 보유세 및 각종 개발이익환수장치의 헌법적 근거가 명확해지고, 이를 통해 토지불로소득 환수에 대한 입법자의 입법재량의 범위가 한결 확대될 가능성은 높다.  

또한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문재인 정부의 토지공개념안이 헌법에 명문화되면 기존 토지공개념 관련 각종 입법 가운데 유독 과세와 관련해 엄격하게 심사했던 헌법재판소의 관점과 태도도 전향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월, 2018/03/26-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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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과 두만강을 북쪽 경계로 삼고, 군사분계선 이북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이남에는 대한민국이 있는 반도의 이름은 무엇일까?

매우 간단하다. 영어로 Korean Peninsula [코리언 페닌술라], 프랑스어로 Péninsule de Corée [뻬냉쉴 드 꼬레], 에스파냐어로 Península de Corea [뻬닌술라 데 꼬레아], 로씨야어로 Корейский полуостров [까례이스끼 빨루오스뜨로프], 아랍어로 شبه جزيرة كوريا [쉽 자지라 쿠리야]라고 대답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한자문화권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반도의 두 이름: 한반도와 조선반도

반도는 이름이 둘이다. 남한에서는 한반도, 북조선에서는 조선반도라 부른다. 반도 밖으로 나가보면, 중국과 일본에서는 대부분 朝鮮半島라고 쓴다. 베트남에서는 Bán đảo Triều Tiên이라고 하는데,漢字로 옮기면 Bán đảo는 半島, Triều Tiên는 朝鮮이니 역시 朝鮮半島라고 부르는 셈이다. 이렇듯 반도 밖에서 조선이라고 많이들 부르는 이유는 그 이름이 500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쓰였기 때문일 것이다.

반도의 명칭 문제는 정통성과 직결된다. 남한과 북조선 모두 자신의 이름으로 반도 전체를 부름으로써 각자 정통성을 강조한다. 이는 자연스레 상호지칭과 이어진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니,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자기 입장에만 좋을대로 ‘북한’과 ‘남조선’으로 부른다. 물론 이런 이름은 저편을 반드시 지우고 자기 중심으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내포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을 보자. 제3조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면서 그다음 조항에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고 했다. 누가 봐도 모순이다. 진짜로 ‘한반도’ 전체가 대한민국 영토라면, 왜 굳이 통일을 해야겠는가? 이는 한국이 조선을 나라가 아니라 ‘대한민국 북반부를 점령한 반국가단체’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에는 영토를 명시해두지는 않았지만, 제9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북반부에서 인민정권을 강화하고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힘있게 벌려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라고 했다. 이 조항은 남반부, 곧 한국이 ‘미제와 괴뢰당국’이 지배하고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일부라는 전제 위에 성립한 것이다.

이는 남한과 북조선 모두 엄연한 주권국가이며, 그렇게 인정받고 있다는 현실과 아주 크게 괴리된다. 1991년 9월 18일에 쌍방이 국제연합에 동시가입했지 않은가? 뉴욕 국제연합본부에서는 두 나라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지 않은가?

유엔본부 앞에 게양된 태극기와 인공기(사진 출처: 경향신문)

 

기실, 한국과 조선 모두 아메리카와 소비에트가 마련한 구조 안에서 ‘만들어진 정통성’을 고수하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완전한 정통성을 온전한 것처럼 둔갑시킨 것이다. 갖은 고초를 겪으며 독립운동에 헌신한 지사와 열사가 과연 토막난 ‘조국’을 위해 싸웠을까? 물론 이승만이나 김일성이 독립운동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그것까지 부정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과 소련이 지지했기 때문에 집권할 수 있었다. 독립운동 이력은 그를 정당화하는 데 쓰였을 뿐이다. 그런 ‘정통성’은 전쟁과 대결을 통하여 합리화되었다. 상대편을 적대하고 이기적 통일을 지향함으로써, 이쪽의 ‘정통성’을 확인하고 정권을 존속한 것이다. 결국 한국과 조선 각자의 ‘정통성’은 오로지 분단체제에서만 있을 수 있다.

사정이 그렇다면 지금 반도는 차라리 ‘無統(무통)’이라고 해야겠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정통성에 매달릴 필요가 전혀 없다. 그 ‘정통성’의 한계가 나날이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방으로 수렴되는 통일은 지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일통(大一統)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할 뿐이며, 이룩한들 그 폐해는 심각할 것이다.

 

양국평화체제와 고려반도

현실부터 직시하자! 반도는 하나였기에 하나가 되어야하지만, 지금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서로를 국가로 승인하고, 상대방의 붕괴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확실하게 약속해야 한다. 그 행동으로서, 한국은 미국과 연합훈련을 축소해가고, 조선은 핵을 동결해가야 한다. 물론 이는 차근차근 진행해야지 서두르면 안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외교적 노력도 따라야 함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렇게 양국평화체제를 세운 뒤에 더 깊은 차원의 교류와 대화를 통해 국민국가라는 틀을 넘어서는 대일통을 이루어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새 정통, 새 중심을 세우고, 그 일환으로 남북을 아우르는 새 이름을 지어야겠다. 이에 나는 ‘고려’라는 이름을 제안한다. 한반도와 조선반도를 ‘고려반도’로, 한국인과 조선인을 ‘고려인’으로, 한국어와 조선어를 ‘고려어’라고 대체하는 것이 그 예시이다.

내가 고려를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은 그것이 그나마 중립적인 이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시대에 걸맞을 이름이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서방은 화석연료의 힘으로 잠깐 강해졌다. 방자해진 서방은 국가간체제를 강요하였고, 제멋대로 천하를 ‘나누고 지배’하여 어부지리를 취하였다. 반도의 분단도 그런 횡포였다. 그러한 전국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난세의 적폐를 청산할 때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전통이 근대화되고 교류와 융합이 넘실거린다. 동과 서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和平合作(화평합작)[1]、開放包容(개방포용)[2]、互學互鑑(호학호감)[3]、互利共嬴(호리공영)[4]의 ‘絲路精神(사로정신)’이 곧 시대정신이 될 것이다. 21세기는 독선과 아집 뿐인 헛된 세계화가 아니라 관용과 소통의 참된 세계화가 이루어질 시대이다.

그 점에서 13세기는 21세기가 갈 길을 닦았다고 할 수 있다. 몽골은 정복으로 거대한 제국을 세웠고, 종전까지 산발적이고 불안하던 비단길을 통합하고 안정하여, 세계화를 눈부시게 꽃피웠다. 바로 그때 고려가 있었다. 고려는 몽골 제국이 엮어낸 ‘비단길’이라는 그물의 가닥이 되었다. 무슬림 상인은 고려를 오고가며‘كوريا [쿠리야]’라고 불렀고, 그런 연유로 몽골어 Солонгос [설렁거스] 같은 경우를 빼면 많은 세계인이 우리를‘고려’에서 비롯한 이름으로 부른다. ‘고려’는 이러한 역사를 되살리며 인류(人流)와 문류(文流)、물류(物流) 등 온갖 교류를 크게 일으키기를 다짐하기에 더없이 좋은 이름이다.

고려라는 이름이 부디 대일통과 신시대를 향한 자그마한 발걸음이 되기를 소망한다.

[1] 평화롭게 합작함

[2] 서로에게 개방하고 서로를 포용함

[3] 서로 배우고 비춤

[4] 서로 이익을 누리며 함께 번영함

월, 2018/04/0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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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헌정체제가 수립된 후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사회에서 개헌 얘기가 나오지 않은 때는 단 한 해도 없었다. 그런데 최근의 개헌론은 시민사회의 호응이 상당해졌다는 점에서 그 성격이 과거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사실 시민사회에서 87년 민주주의 체제의 ‘실질적 의미’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시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 그것도 언제부턴가는 경제력 수준이 세계 10위권을 넘볼 정도라고 하는 제법 잘 사는 민주주의 국가의 대다수 시민이 왜 아직도 먹고사는 문제로 힘들어 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도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됐다. 수많은 시민이 양극화의 심화, 비정규직 노동자 및 영세 자영업자의 급증, 청년세대의 불안, 인간 소외 등의 이 심각한 사회 분열 양상을 대체 언제까지 두고만 볼 것이냐고 한탄했다. 2017년 촛불 광장에선 ‘이게 나라냐’는 외침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프레시안
사진 출처: 프레시안

 

한국의 현 사회경제 상황은 “집합적 결정은 다수 혹은 최대다수의 선호에 따른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즉 다수결의 원칙이 관철되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원칙이 (엇비슷하게나마) 지켜지고 있다면 어떻게 이 사회의 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이익이 소수에 불과한 강자들의 이익에 번번이 압도당하는 상황이, 그리하여 불공정과 불평등이 심화‧확대되는 상황이 이렇게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겠는가. 요컨대, 87년 민주주의 체제에선 다수결의 원칙이 너무도 심하게 무시되거나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교과서적 개념을 따르자면, 87년 체제는 제대로 된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라고 하기도 어렵다. 대의제 민주주의란 민주국가의 주인인 시민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대표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그들을 통하여 국가공동체를 간접 운영하는 민주주의 형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 다수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대표를 갖지 못하고 있다면, 즉 대표가 없는 상태로 ‘방치되어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상태에 있는 국가를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라고 인정하기는 곤란하다.

그런데 한국 시민의 대다수는 자신들의 선호와 이익을 대표하는 유능한 정치적 대리인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자, 소상공인, 청년 등의 예를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들 중 누가 자신들의 유력한 정치적 대리인을 갖고 있는가. 실상이 이러하니 사회 구성원의 다수 혹은 최대다수의 선호가 존중되길 바라는 건 애당초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정치적 대표성을 보장하는 개헌이 이뤄져야

대의제 민주주의의 핵심 소임은 일반시민들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정치적 대표성을 제대로 보장해줌으로써 그들이 사회경제적 강자에 맞설 수 있는 정치적 길항력을 갖추게 하는 데에 있다. 노동이 자본과, 중소상공인이 대기업과, 청년이 장년과,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과 적어도 정치의 장에서는 동등한 파트너십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자유와 평등을 수호할 수 있는 정책과 법, 제도 등은 적절하게 공급될 수 있다.

87년 체제의 수립 이후 만약 대의제 민주주의가 본령대로 작동하고, 따라서 정치가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시장에서의 길항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왔더라면, 한국의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수준은 지금쯤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런데 87년 체제는 약자들에게 정치적 대표성을 제대로 제공해주지 못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양극화의 고착은 그 결과일 뿐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국가 구성원의 대다수인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선호와 이익, 즉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는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를 갖추기만 한다면, 시대정신의 구현, 곧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은 지금부터 시작해도 충분히 달성 가능한 일이 된다. 단, 그러기 위해선, 헌정체제의 개혁 즉 개헌이 불가피하며, 그 핵심 목표는 정치적 대표성을 시민들에게 두루 보장하는 데 있어야 한다.

수, 2018/04/1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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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주택시장에 먹구름이 가득하다. 우울(?)한 소식들이 줄을 잇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9일 KB국민은행의 주간 주택시장동향 조사결과 이달 첫째 주(2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수우위지수는 94.8로 집계되었다. 이는 3개월 만에 기준점인 100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매수우위지수는 부동산중개업체 3,000여 곳을 대상으로 아파트 매도자와 매수자 가운데 어느 쪽이 많은지를 확인해 산출하는 지수로 기준점인 100을 웃돌면 매도자 우위의 시장을, 100을 밑돌면 매수자 우위의 시장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서울 지역 전세수급지수도 2일 111.3을 기록해 2009년 3월 23일(109.2) 이후 약 9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고 한다. (“집 살 사람이 없다”···서울 주택시장, ‘매수자 우위’로, http://land.naver.com/news/newsRead.nhn?source=aside&type=best&best_tp_cd=WW&prsco_id=011&arti_id=0003264798)

 

서울 아파트 시장이 매수자 우위 시장으로 접어든다는 신호는 서울 아파트 주간 매매가격 상승률이 11주 연속 감소하고 있다는 소식, 서초구와 성동구의 아파트 가격이 하락세로 전환됐다는 소식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거기다 서울에선 올해 3만4703가구가, 내년에 3만8503가구가 신규 입주를 할 예정인데 이는 2016년(2만5887가구)과 2017년(2만7077가구)을 크게 상회하는 물량이다.(“주택시장, 잔치는 끝났다”…대출규제·금리인상·입주증가 ‘3중고’, http://land.naver.com/news/newsRead.nhn?type=headline&bss_ymd=&prsco_id=366&arti_id=0000403367

서울경제
사진 출처: 서울경제

서울지역 아파트 가격이 2014년부터 올초까지 쉼 없이 올랐다는 점, 문재인 정부가 토지공개념 개헌을 추진할 정도로 부동산공화국과의 대결을 선언한 점, 문재인 정부가 설계한 양도세 중과·재건축시장 정상화·청약시장 정상화·과잉유동성의 부동산 시장으로의 진입 억제 등의 정책패키지가 서서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서울 주택시장의 안정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 궁금한 건 향후 서울 주택시장의 방향성이다. 즉 서울 주택시장이 횡보할 것인지, 아니면 하향 안정화될 것인지다. 내 생각에 돌발적 외부변수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서 당분간 서울 주택시장의 방항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요인은 보유세의 개편 폭이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위가 보유세 개편에 착수한다고 하는데 여기서 보유세를 어떻게 개편하느냐가 상당 기간 서울 주택시장의 방향성을 결정할 것이라는 말이다.

경향적 금리인상 예정, 과다한 차입을 통한 주택 마련의 어려움, 양호한 주택 수급 균형, 양도세 강화 등의 요인은 투기적 가수요에 의한 주택 구입을 제약한다. 여기에 더해 보유세가 현실화 돼 주택 소유에 따른 기대수익률이 대거 줄어든다면 투기적 가수요는 심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다주택자들은 주택 매각의 유인이 강해지고, 무주택자들은 주택 매수 유인이 크지 않은 조건이 형성되면 주택시장은 하향 안정화 될 것이다. 관건은 재정개혁특위가 보유세를 어느 수준으로 그리고 얼마나 빨리 현실화하느냐다. 

만약 재정개혁특위가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없애고, 공시가격의 현실화율을 높이는 수준으로 보유세를 개편한다면 이는 시장이 예측하는 수준이라 시장에 미치는 효과는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고작 그 정도를 하기 위해서 재정개혁특위를 만든 건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재정개혁특위는 부동산공화국과 작별할 수 있는 실마리를 보유세를 통해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설사 한시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충격을 주더라도 말이다. 그게 재정개혁특위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소임이고 걸어가야 할 길이다.     

수, 2018/04/1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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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주류 언론도 남북대화가 그리고 이어서 기적적으로 이루어질 북미대화가 세상을 하루아침에 바꾸지는 않을 것이란 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트럼프 대통령에게 모세처럼 바다를 가르거나 예수처럼 죽은 사람을 일으켜 세울 능력은 없다.

그들은 강력하고도 상징적인 행위를 취할 수 있다. 이 행위의 전후로 정부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경제와 시민사회가 변화할 수 있다. 그러나 통합을 향한 준비와 그 실행을 지지하는 광범한 지지 그리고 이에 입각한 권한의 위임이 없을 경우, 무기력감이 희망과 진보의 불빛에 그림자를 드리울 위험이 존재한다.

나는 북한과의 교류를 논의하는 시민 모임에 단 한 차례도 초대받은 적이 없다. 사실 그런 시도가 있다는 말을 주변에서 들어본 적도 없다. 정치인들이 기적을 이뤄내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번 정상회담의 막후 전략이 점진적인 진보일 수는 없다. 최근 대결의 언사와 전쟁 준비는 일정 수준을 넘어선 것이었다. 이전의 남북 정상회담과 달리 이번에는 금강산 관광이나 이산가족 상봉에 집중할 여유가 없다.

북한의 일방적인 비핵화라는 실현 불가능한 요구를 정상회담에서 고집할 수도 없다. 광범하고 포괄적인 거래 없이 일방적인 비핵화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현 트럼프 정부는 이 같은 거래를 협상하거나 실행할 능력이 없다. 정부에서 전문가를 모두 내쫓았기 때문이다.

두 정상은 남북관계의 근본적인 전환과 이를 가능케 할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의 관계 변화를 상징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표명해야만 한다.

일본과 중국의 불화는 물론, 미국과 중국 및 미국과 러시아 간의 긴장은 이와 같은 대타협이 그저 몽상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반대의 주장도 가능하다.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에 맞닥뜨렸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다른 때 같았으면 별 관심도 없이 심드렁했을 관료와 정치인들이 평소에는 고려하지도 않았을 혁신적 행위를 취할 수밖에 없는 흔치 않은 순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의 핵심은 안보다. 이번에는 전쟁이나 충돌 혹은 갈등을 몇 주 혹은 몇 달 뒤로 미루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장기적인 안전 보장에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만 한다. 이러한 시도라야 “안보”라는 용어의 의미가 바뀌었음을 보여줄 수 있다. 얼음이 물로, 또는 물이 증기로 그 상태가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상태가 어떻게 바뀌든 여전히 동일한 물 분자인 것처럼, 안보의 본질 역시 불변이겠지만 어떤 모양을 취할지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안보의 의미에서부터 시작하자 

그렇다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보 이슈란 무엇인가? 언론이 압도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북한의 비핵화 그리고 향후 관계 정상화의 전제 조건으로서 북한의 조건 없는 비핵화이다.

그러나 잠시 솔직해지자. 트럼프 행정부는 김정은과 햄버거를 함께 먹자는 제안에서 선제적인 핵 타격 위협으로, 역사상 가장 엄격한 제재의 설파로, 그리고 북한과의 의미 있는 대화에 관한 어떠한 명확한 설명도 없이 트럼프와 김정은의 갑작스런 정상회담 합의로 오락가락해왔다.

진정한 안보를 향한 첫 걸음이란 이에 관한 진지한 논의의 시작이다. 특정 무기 시스템을 관철시키려는 특수 이해관계로부터 독립된, 투명한,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논의이다. 안보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관하여 우리 스스로가 솔직하게 대화한다면 의미 있는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 누군가가 위에서 좌지우지 않는 합의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안보 논의는 점점 더 현실로부터 멀어지는 중이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특히 그렇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이 지역의 여타 국가들이 함께 공유하는 안보에 관한 근심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확립하는 일이, 합의의 바탕을 마련하는데 훨씬 중요하다. 이는 향후의 진전을 위한 강력한 기반이 된다. 북한이 핵무기와 관련 기술을 포기해야 한다면서, 미국은 스스로 서명했던 핵확산방지조약을 어기면서 차세대 핵무기 시스템에 어마어마한 비용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일이 아니다. 북한에 대한 이러한 요구는 공통의 기반을 찾을 수 없게 하고 결국 실패하게 된다.

생태 시스템의 붕괴는 공동의 안보 우려 중 하나이다. 한반도에서 물은 희소하다. 작년 여름 물 부족이 위기 수준에 도달했고, 2018년의 높은 기온과 낮은 강수량을 고려한다면 올해에는 작년 수준의 재앙을 넘어설 전망이다.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사막이 서서히 확산하고 있으며, 다가오는 5년 간 식량 가격이 치솟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 문제가 북한과 공유하는 중대한 안보 이슈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안보의 정의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환경안보와 인간안보 및 경제안보를 강조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중대한 안보 우려를 묵살한다면 이는 회담의 목적 자체를 망각하는 것이다.

한겨레
사진 출처: 한겨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사용했던 “‘전략적 인내’의 종말”이란 용어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만 한다.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트럼프 주변의 강경론자들은 이 말이, 오로지 군사력이나 제재를 통한 심대한 타격에 의해서만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의미라고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전략적 인내’의 종말”이란 표현의 유일한 의미가 아니며 나아가 가장 주된 의미도 아니다.

‘전략적 인내’의 종말에 대한 보다 정확한 해석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도록 그저 내버려두고 점점 적대적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대비하여 방어계획을 준비하면 된다는 오바마 정부의 기본 가정이 미국에게 심각한 실수이며 그것이 군사행동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화로 대체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전략적 인내란 의미 있는 대화가 절대로 아니며, 남북한과 중국, 일본 및 러시아를 포함하는 동아시아의 안보질서를 위한 근본적 제안도 결코 아니다.

미국이 중동 전역에서 일으킨 인도적 위기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제재나 군사행동을 통한 대응이란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남한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담대하게 사고하여 진지한 시도를 해야만 한다. 모든 측면에서 동북아시아의 안보 규칙을 새로 쓰고, 사려 깊고 용감하며 현명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치 영국의 대헌장을 기초하는 것처럼, 위대한 역사적 순간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언론 플레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의 역사적 위기는 너무나도 심각해서 이같이 큰 그림을 그리는 접근법이 전혀 비현실적이지 않다. 어쩌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일지도 모른다.

반 지성주의

한반도 안보와 관련하여 가장 심각한 암적 존재는 부패한 언론을 통해 전파되는, 악의적 반 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이다. 주식시장이나 외국 투자은행으로부터 독립된, 신뢰할만한 정보제공처의 사멸로 한국인 다수가 미덥지 않은 정보에 노출되는 결과가 되었다. 협력과 상호부조를 통해 보통 사람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했던 지역 공동체가 시들면서 많은 한국인들은 깊은 고립감에 빠졌다.

연령대를 불문한 높은 자살률은 이런 상황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진지한 논의를 벌이기보다 비디오 게임이나 천박한 드라마에 빠져들려는 한국인이 대단히 많다는 점도 명백한 증거이다.

의미 있는 정책을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두려움 없는 진실의 추구가 끊임없는 소비로 대체되었다. 단시간의 전율을 위해 먹고 마시고 시청하는 당장의 만족을 “행복”의 정의로 떠받드는 문화가 조장하는 소비이다.

정치는 인기를 얻기 위한 쇼가 되었다. 정책의 세부사항이나 장기적 발전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고, 소셜 미디어에 방금 올라온 언급에만 모두가 열광한다. 선정주의가 동북아를 불안하게 만드는 사회, 환경, 경제 요인에 관한 세밀한 분석을 대신한다.

안보에 관한 논의가 이처럼 기괴하게 변형된 데에는 비디오 게임 문화의 확산이 영향을 미쳤다. 가차 없는 군사충돌을 미화하고, 총싸움이 오락거리일 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비디오 게임을 하면서 성인을 포함한 많은 한국인들이 시간을 보낸다. 게임문화는 기후변화와 인공지능에 의한 대규모 통합 그리고 국민국가의 와해에 직면하고 있는 오늘날의 복잡한 안보 상황을 설명할 수 없도록 만든다. 비디오 게임은 장기 전략이 아니라 분초를 다투는 빠른 대응이 안보의 핵심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이 북한의 핵무기보다 훨씬 위험하다.

산업공해와 환경파괴

언론이 과장하는 북한의 공격 가능성이 지극히 낮은데 반해, 기후변화와 산업공해의 위협은 100 퍼센트 확실하다. 언론은 지난 50년간의 기온 변화를 비교하는 일이 없다. 그런 비교가 있었다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을 수도 있다.

산업공해와 관련된 질병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매년 죽어가고 있는지도 우리는 모른다. 한국인 대부분은 지난 10년간 국내의 독성물질 배출이 얼마나 심각해졌는지 전혀 알지 못 한다. 분석은 고사하고, 언론은 미세먼지를 마치 눈이나 비처럼 피할 수 없는 무엇이라는 식으로 다룬다.

이투데이
사진 출처: 이투데이

정부의 핵심 기능 상실과 기업의 탈규제로 인해 한국의 공장들은 대기와 수질을 얼마나 오염시켰는지를 자발적으로 보고한다. 자발적 보고서가 변조되기도 하며 정부가 공해 유발 기업을 조사하거나 벌칙을 부과할 방법은 전혀 없다. 한국 정부는 시민을 중독 시키는 행위를 멈추라고 기업에 요구할 권한을 상실했다. 시민들에게 제공되는 것은 주요 병원의 화려한 암 센터이다. 이곳에서 희생자를 사랑하는 친지들은 치료를 위해 재산을 쏟아 붓지만 이들이 환경 정책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향후 30년 동안 기후변화가 한반도에 가져올 위협을 어떤 식으로든 객관적으로 평가해본다면, 그 위험성이 너무나 크고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이를 완화하는 데 소요될 비용이 어마어마하다는 점이 드러날 것이다.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재래식 무기 전반에 걸쳐 획기적으로 예산을 삭감하는 협약을 주변국들과 맺고, 100 퍼센트 재생 가능한 경제로 완전하게 이행하는 것이다.

환경의 관점에서 안보를 재규정하는 데 반대하는 부류와 단기적 이익 상실이 두려워 지속 가능한 경제 시스템에의 투자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미래 세대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사막의 확산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베이징을 향하고 있는 중국 북부의 사막은 평양으로 움직인 다음 서울에 닿을 것이다. 한반도에는 이미 반 건조 지역이 확산하는 중이다. 탱크나 미사일 방어시스템이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이를 저지할 수는 없으며, 우리는 결국 생존을 위한 싸움에 직면할 것이다.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아파트를 짓느라 없애버린 농토와 방치된 상태에서 빗물에 소실된 비옥한 토양이, “자유무역”을 통한 곡물과 채소의 수입으로 어떻게든 해결되리라는 것이 한국 기업가와 정부 관료의 상식이다. 슬픈 일이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추이는 이런 계획이 헛된 꿈임을 보여준다. 미국과 러시아, 호주, 아르헨티나 등 곡물과 채소를 수출하는 국가들은 점점 더 지독한 가뭄에 시달리게 되며, 어쩌면 동북아시아에 더 이상 식량을 공급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수입 농산물 가격이 치솟고 식량 자체가 금세기의 안보 이슈가 될 것이다. 중국은 자국의 어마어마한 부로 식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국은 궁지에 몰릴 수도 있다.

좋든 싫든 한국은 농업을 중시하는 경제로 회귀할 수밖에 없고 경솔한 택지개발로 소중한 토양을 잃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후회할 미래가 올 것이다. 석유를 기반으로 하는 비료와 농업이 환경에 치명적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백, 수천 년간 한반도에서 사람이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이제 농업에의 접근법은 유기농일 필요가 있다. 유기농이란 상위 중산층 시장을 상대로 값비싼 브랜드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

사막의 확산과 함께 해수면의 상승이 전 지구에서 진행 중이다. 부산이나 인천 같은 도시가 물에 잠기며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피해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식량공급의 위험과 해수면 상승에 대한 장기 계획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심지어 다수의 한국인은 해수면의 상승과 사막화가 중대한 위협이라는 점조차 이해하지 못 한다.

해수면의 상승 이외에도 또 다른 해양의 위협이 존재한다. 해양의 산성화와 함께 진행되는 해양 온도의 상승이다. 이는 매우 실질적인 위협으로, 향후 20년간 한국인들이 항상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어류의 상당수가 격감하거나 심지어 멸종할 것이다.

부의 불평등

한국에서 불평등의 심화는 사회를 갈가리 찢고 있으며, 이는 국내외에서 심각한 정치 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가족 자영업의 몰락, 청년 일자리의 질 저하, 투자은행을 비롯한 투기적 금융기관이 경제계획에서 발휘하는 권력의 증대는 이 사회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부의 집중과 공적 영역의 상실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인들은 언론에서 그리고 개인들 사이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자세히 알지 못 한다. 또한 한국의 문화 자체가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에 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충분한 부를 지니고 출발하여 좋은 학교를 나오지 못 할 경우, 자신에게 그저 주어지는 정보를 통해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심지어는 진보 단체들조차 상품 주도의 퇴폐 문화가 만드는 심각한 모순에 관하여 예리한 분석을 제공하지 않는다.

투자은행이나 통신사업자가 철저하게 규제되는 공적 독점이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사람들은 이 시절이 더 보수적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상식이었다.

석유에의 중독

한국 언론이나 싱크탱크에서 벌어지는 안보 논쟁의 대부분은 값비싼 탱크와 전투기, 잠수함 및 여타 무기 시스템이 한국을 방어하는 최선의 방법임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연료가 없다면 이들 값비싼 무기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나는 농담할 의도가 전혀 없다. 수입된 석유에의 철저한 의존은 그 자체로서 심각한 안보 위협이다. 많은 무기가 (태양이나 풍력이 아니라) 석유에 의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석유의 흐름이 교란될 경우 도시에 거주하는 많은 한국인이 생존할 수 없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전쟁이 발발하고 그 결과 한국으로 향하는 원유와 천연가스의 선적이 중지된다면 그 상황은 한국전쟁 당시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다. 대량 소비로 살아가는 오늘날의 삶을 고려하면 사람들이 수일 안에 아파트에서 얼어 죽고 몇 주가 지나지 않아 굶주리게 된다. 이제까지 소비적 삶을 살지 않았던 북한 사람들은 그들이 확실하게 우위에 있음을 곧 깨닫게 된다.

연합뉴스

남한은 안보를 계획하면서, 북쪽의 이웃이 보여주는 검소함과 소박함 및 효율을 들여다봐야 한다. 남한 사람들은 종종 한밤중에 위성에서 찍은 한반도 이미지를 들고서 의기양양해 한다. 어둠에 덮인 북한과 달리 남한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는 이미지를 두고 남한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그리고 북한이 얼마나 뒤쳐졌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남한이 불필요한 조명을 켠 채 어마어마한 낭비와 소비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국가 안보를 위한 법률로 불필요한 전력 사용이 엄격하게 규제해야만 하고 대규모 태양광 및 풍력 발전을 요구해야만 한다.

무기 시스템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 가지의 중요한 변화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군사충돌의 본질이 바뀌고, 이에 따라 현재의 무기 시스템이 더 이상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 전투기와 항공모함, 탱크와 대포가 미래에는 더 이상 효과적인 무기가 아닐까? 마치 정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의문이 제기조차 되지 않는다는 점은 놀랍다.

기하급수적 속도의 기술 발전이 의미하는 바는 수만 명 이상의 사람을 살해할 수 있는 무기들이 빠르게 저렴해지고 따라서 작은 집단 또는 심지어 개인도 이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례를 찾기 힘든 위협에 대한 대응은 협력과 신뢰 그리고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미래의 충돌이 국민국가 사이에 일어날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국민국가들이 빠른 속도로 분해되는 중이다. 아직 권위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전 지구적 네트워크의 금융과 거버넌스에 통제된다. 새로운 무기의 기능 향상과 이를 통제해야 할 정부의 분해 현상이 결합하면서 다가오는 미래에 엄청난 위협이 될 것이다.

전통적인 군사력은 탱크와 전투기, 미사일, 전함, 항공모함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들은 극도로 비용이 많이 들며 새로운 무기에 취약하다.

드론과 로봇의 등장

드론과 로봇의 경우, 우리는 이 새로운 기술의 역사라는 측면에서는 석기 시대에 살고 있다. 다가올 10년 동안 이 기술이 우리가 사는 세계를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예상해야만 한다. 로봇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드론이 새로운 디스토피아로 우리를 이끌 것이다. 드론은 점점 소형화하며 치명적일 정도로 빨라지고 점점 더 스스로 움직인다. 기술과 트렌드는 이미 알려졌지만 이것이 궁극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여전히 분명치 않다.

차세대 드론을 상상해보자. 1만개 정도의 드론 떼가 형성되는데, 여기에는 강력한 폭발력을 지닌 미사일에서부터 표적의 중요한 부분에 도달하여 이를 언제라도 날려버릴 수 있도록 무장된 1센티미터 미만의 작은 드론이 포함된다. 이 드론 떼가 전투기를 가득 실은,  건조에 80억 달러가 소요되는 항공모함 안으로 침투할 수 있다. 몇 시간 안에 항공모함을 폐물로 만드는 것이다.

 

사진 출처: e경제뉴스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살인 기계로서의 로봇은 치명적 공격이 벌어지는 범위 안에서 인간의 조종 없이 작동한다. 이들이 얼마나 위험할지, 로봇 제작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금지하거나 제한할지는 아직 그 논의가 시작되지도 않은 중대한 문제이다. 살인 기계를 디자인하는 이들이 그들의 걸작에 아시모프의 로봇 윤리를 프로그램 할 것 같지는 않다.

점점 정교해지는 사이버 전쟁과 선전을 위한 뉴스 서비스

사이버 전쟁은 모든 원격 시스템 및 전자 시스템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해킹이 불가능한 전통적인 손 기술로 우리를 돌려놓을지도 모른다. 미래의 사이버 무기는 (핵무기를 포함하여) 적의 모든 무기를 장악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다. 적의 모든 무기가 네트워크에 접속되어 있다면 말이다.

현재 사이버 전쟁은 국민국가가 아니라 군대 내부의 일부 그룹이나 국가와 관련이 없는 여타 행위자들에 의해 활용되고 있다. 현재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바로 이 때문이며, 뜻을 함께 하는 그룹들의 복잡한 세계적 네트워크들 사이에 대규모 충돌이 발생할 위험이 제기된다. 동아시아 국가안보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국가 간의 갈등이란 전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3차원 인쇄 등 비 전통적인 수단을 통하여 대상을 변형하는 방법의 등장

3차원 인쇄는 매우 새로운 기술이기 때문에 군사력에 어떻게 적용될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 한다. 그러나 산업계에서는 3차원 인쇄가 이미 게임체인저로 인식된다. 인쇄기에 장비나 무기 혹은 기계의 디지털 정보를 간단하게 입력함으로써 사물을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제공한다.

3차원 인쇄는, 지난 20년 동안 공장에서 사용되어 온 컴퓨터 수치제어(CNC)와 밀링, 압출, 절단 기술의 연장이다. 3차원 프린터기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열가소성 수지의 작은 방울로 온갖 사물을 창조할 수 있다. 이 기술을 이용하여 추적 불가능한 총을 제작하는 패턴이 이미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 미래에는 3차원 인쇄기를 어딘가에 설치하고 인터넷을 통해 아무거나 만들 수 있다.

군비 경쟁이 진정한 위협이다

미국의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정책결정과정에서 정치가와 기업의 관심을 과학적 방법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지식인들과의 교류하지 않도록 만드는 군사적 낭비의 결정판은 미사일 방어이다.

1980년대 레이건 정부에서 미사일 방어가 도입되었을 당시, 이는 트로이의 목마로서 고안되었다. 약속한 바를 실행에 옮기지도 못할 가상의 시스템을 판매함으로써 몇몇 기업에게 커다란 이득을 줄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정책이었다.

좀 더 깊숙한 수준에서 보자면, 미사일 방어의 촉진은 미국 사회의 반지성적 흐름을 활용하기 위한 시도였다. 당시 군대와 외교가에는 핵무기의 위험스런 확산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협상을 통한 군비축소협정임을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제기한 지식인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옳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설득하는 데는 능숙하지 않았다. 이들은 안보 이슈를 이해하지 못 하는 “온건파” 혹은 “책상물림”으로 치부되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미국이 유럽에서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 감축을 위해 협상을 통해 조인했던, 강제력을 갖춘 조약이 미사일 확산에 대응하는 사실상의 유일한 방법이다.

1995년 북한과의 합의와 같은 국제협약이 긴장을 완화하고 안보를 증진하는 유일하고도 과학적인 방식이지만, 이러한 시도는 지식인들에게 과도한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진실로 무장하고 무기 시스템을 거부하는 집단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는 무기를 생산하는 기업가들이 두려워하는 바다.

미사일 방어와 여타 자동화 무기와 같이 비용이 과다 책정된 무기 시스템의 멋진 점이 바로 이것이다. 이들 시스템은 정책결정과정과 시스템 운영에서 전문가를 제거하고 이윤을 증대한다. 협상을 통해 무기제한협정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정보력을 갖춘 전문가보다 무기 생산 업자에게 더 짜증나는 사람이란 없다. 한때 미군 내에는 안보와 역사를 이해하고 새로운 무기의 실전배치 가능성을 평가하는 데 과학적 방법론을 활용할 줄 아는 외교와 기술 분야의 교육받은 전문가가 다수 존재했다. 오늘날의 장군과 대사들은 무기 시스템 판매를 자신의 주된 임무로 생각하며 퇴직 후 방위산업체를 상대로 두둑하게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컨설팅 사업을 기대할 뿐이다.

그러나 미사일 방어는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사드 및 이와 유사한 시스템은 날아오는 미사일 중 기껏해야 일부만을 떨어뜨릴 수 있을 뿐이다. 더욱이 미사일 방어시스템과 여타 무기 시스템은 미국 내에서 객관적인 제3자로부터 더 이상 검증되지 않기 때문에 그 신뢰성이 의심스럽다.

그런데 미사일 방어시스템이 날아오는 미사일을 저지하지 못할수도 있지만 군비경쟁을 촉발하는 데는 효과적이다.

사드 발사 방면. 조선일보
사드 발사 장면. 사진 출처: 조선일보

핵무기의 대량 확산은 진정으로 위험스러우며, 이는 핵전쟁의 가능성을 한층 높인다. 북한의 조그마한 핵 프로그램은 커다란 위협이 아니다. 심각한 위협은 다른 곳에 있다.

현재 일본과 남한은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았으며 배치하지도 않았다. 중국은 300개 미만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진정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중국은 단기간 안에 300개 미만에서 1만 개 이상으로 핵무기를 늘릴 수 있다.

이후는 연쇄반응일 뿐이다. 일본은 6천 개의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고, 남한도 뒤를 따른다. 그 다음은 어디인가? 대만? 베트남? 인도네시아? 만일 일본이나 남한이 핵무기 개발이라는 실수를 저지른다면, 이 지역 전체를 훨씬 불안하게 만들게 될 위험한 연쇄반응이 폭발한다.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전략을 고민할 때

다가오는 남북 정상회담을 둘러싼 대부분의 논의는 미국의 불가능한 요구를 어떻게든 북한이 받아들이도록 하고 어떻게든 대결을 몇 개월 후로 미루는 데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남한은 훨씬 큰 전략을 가져야만 하며 이번 정상회담은 그 전략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전략의 핵심은 안보에 관한 국내외 논의를 장악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는 무기생산업자의 관대함에 자신의 급여를 의존하는 워싱턴 D.C.의 이른바 전문가들로부터 한국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남북 정상회담은 위험스러운 미래를 대비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 안보에 관하여 다시 생각하고 시민의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 호소하는 기회로 활용되어야만 한다. 한국의 많은 정치가와 외교관들이 국내외에서 다른 행위자들을 설득하는 데, 한국만의 뚜렷한 시각을 명확하게 표현하기보다 다른 나라들을 만족시키는 데 온통 정신을 쏟는다는 점은 슬픈 일이다.

일본의 철학자 오규 소라이가 언젠가 내놓았던 관찰이 여기에 꼭 들어맞는다.

소라이가 이렇게 언급했다. “체스를 두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 방법은 체스의 규칙을 완벽하게 익혀서 어떤 상황에서도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체스를 두는 다른 하나의 방법은 체스를 두는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안보와 군사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할 때, 한국이 채용한 전략은 전자이다.

한국은 남들이 가르쳐 준 규칙을 마스터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며 항상 그 규칙을 지키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게임 규칙의 변경이 단지 유용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역사적 순간이 존재한다. 지금이 바로 그 시기이다.

목, 2018/04/12-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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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엔파견 평양주재관의 조사에 의거하여 2018년 3월에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 Office for the Coordination of Humanitarian Affairs)이 발표한  북한의 식량과 보건 및 의료 실태보고서를 번역, 게재합니다.  유엔에 긴급 사항으로 보고될 만큼 현재 북한의 상태는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이는  핵과 미사일 개발에 따른 안보리 제재가 강화되기 이전부터 장기간에 걸쳐 발생하고 누적 되어온 현실입니다. 정부 당국과 시민사회는 오는 4.27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전면적인 식량제공과 의료지원을 신속히 재개해야 한다는 것이 <다른백년>의 공식적인 입장입니다.  간절합니다. 인도주의적 지원은 핵과 미사일의 추가개발을 억제하기 위한 유엔안보리 결의와는 별개로 순수한 인류애 차원의 사안입니다. 핏줄과 역사와 언어를 공유한  같은 동포요, 배달민족으로서 북한에 대한 지원은 마땅한 역사적, 도덕적 책무입니다. 촛불 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일체의 주저함이 없이 인도적 지원을 결연히 결심하고 지체없이 시행해야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제체의 구축 그리고 공존공영의 협력으로 가는 첫걸음일 것입니다(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의 상세활동 내역은http://unocha.org/을 참고).

 

개황

정치적 긴장 , 북한 전역의 13십만여명이 지속적인 식량불안정과 영양부족에 시달리며 기본적인 서비스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반복되는 자연재해로, 중에서도 거의 매년 발생하는 홍수와 장기화된 가뭄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새로운  인도주의적 필요가 생겨났고, 사람들은 생존에 필수적인 식량, 건강, , 위생 등이 충족되지 않는 생활에 노출되어 있다.

 

만성적 식량불안정

북한에는 만성적 식량불안정, 유아기 영양실조, 영양불안이 만연하다. 전세계 기아를 측정하고 추적하는 2017 세계기아지수(GHI)에 따르면 북한은 28.2점을 기록, ‘심각’한 수준으로 분류된다. 북한 전체인구의 약 41인 1천3십여명이 영양부족 상태인 셈이다. 북한의 영양부족 비율이 높은 배경에는 여러 복잡한 이유가 뒤얽혀 있는데, 그 중 하나로 산이 많은 지형을 꼽을 수 있다. 북한 토지의 17퍼센트만이 농작물 경작에 적합하며, 그 마저도 전통적 영농방식에 의존하고 있고, 고품질 종자나 적절한 비료와 농기계 등 농업에의 투자가 부족한 상황이다. 게다가 기후변화로 북한은 가뭄과 홍수에 취약하게 되었고, 이는 농업생산의 감소로 이어지기 쉽다.

각 가정은 정부의 식량배급제(PDS) 외에 시장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다. 보통 열흘에 한번 열리는 농민시장(farmers’ market)이 다양한 식품과 생필품을 유통하는 채널이다. 시장에서는 물물교환은 물론 수많은 종류의 소규모 거래가 여성들을 통해 이뤄지고는 한다. 시장에서 각 가정의 텃밭이나 비탈밭에서 기른 채소, 옥수수, 감자, 심지어 작은 가축이 거래된다. 대부분의 식량은 약 3,900개의 협동농장과 100개의 국영농장에서 재배되고, 각 농장은 종자생산, 경작, 양계, 생선 또는 돼지사육 등 전문화된 특정 활동에 집중한다. 협동농장은 옥수수와 쌀, 더 많은 감자 등 주식의 자급자족을 보장할 책임이 있다. 협동농장의 구성원은 정부의 식량배급을 받을 자격은 없지만, 주요 채소와 옥수수, 일부 가축을 공급해 다양한 식품을 섭취할 수 있도록 돕는 텃밭 대지(약 97.2m2)를 이용할 수 있다. 도시지역에서는 아파트 근처의 토지에서 소그룹으로 경작을 하는 한편, 1990년대 중반 벌채 후 경작지로 이용되었던 ‘비탈밭’이 비공식적 농업생산을 위한 사용자그룹(Users’ Groups)으로 형성되고 있다. 2017년에는 건조한 날이 이어지며 조생작물의 수확이 감소했고, 주요 작물의 파종과 초기 성장이 저해되었다.

이에 북한 정부는 마을주민과 자원을 동원하여 관개를 시도함으로써 가뭄의 영향을 줄이고자 하였다. 인도주의 단체들 역시 영양실조의 예방과 치료부터 인명을 살리기 위한 건강 및 물, 공중위생, 개인위생 (WASH) 개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으로 그러한 정부의 대응을 지원하였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7년 북한의 총 식량생산(곡물류)는 2016년의 5.89 MT 대비 7.42퍼센트 감소한 5.45 MT에 그쳤다.

 

식량배급받는 북한 주민
식량을 배급받기 위해 서있는 북한 주민 [출처: MBC 뉴스]

 

북한 전역에 만연한 영양부족

임신 전 3개월부터 태아의 발달, 출생 후 만 2년이 끝나는 시점까지의 기간은 유아의 생존에 매우 중요하며, 장기적인 신체발달의 토대를 쌓는 기간이다. 여성의 임신 전과 임신 중, 모유수유 중의 영양 및 건강상태는 아기의 체중은 물론, 장래의 신체적, 인지적 발달 등 배아와 유아의 성장 및 발달에 큰 영향을 끼친다. 태아의 임신부터 아이가 두 돌이 될 때까지 어머니와 자녀에게 적절한 영양과 의료를 제공하면 유아사망의 위험을 줄이는 동시에 건강한 신체 및 두뇌성장, 두드러지는 교육성과 등 평생에 걸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역으로, 이 ‘1000일의 기회’를 최적미달의 영양상태로 보내게 될 경우 이것이 일생에 미치는 영향은 돌이킬 수 없다.

많은 북한 주민은 풍부한 단백질과 지방, 미량영양소의 섭취가 제한된 형편없는 식사를 하고 있다. 이는 신체 및 인지발달 문제 등 영양부족과 관련된 문제로 귀결된다. 5세 미만의 아동에게서 나타나는 영양부족(성장저하와 체력감소)의 직접적인 사유는 식량불안정, 부적절한 식사제공, 양질의 보건서비스 부재와 연결되어 있다. 2012년에 작성된 북한의 국가영양조사(National Nutrition Survey)에 따르면 5세 미만 아동의 만성 영양실조(성장저하)와 급성 영양실조(체력감소) 비율은 각각 27.9퍼센트와 4퍼센트였다. 이는 한해에 구조활동이 필요한 아동의 수가 각각 심각한 수준의 급성 영양실조(SAM)에 노출된60,000 명과 일반적 수준의 급성 영양실조(MAM)에 노출된 180,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북한 정부의 요청에 따라, 유니세프는 북한 보건성과 협력하여 2016-17년 급성 영양실조 관리프로그램(CMAM)의 범위를 확대했다. 동 기간동안 유니세프가 현장에서 관찰한 내용과 정부의 자료는 CMAM의 확대로 SAM에 걸린 아동의 치료수요가 증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동 뿐만 아니라 가임기 여성의 23.3퍼센트 역시 영양실조 상태이다. 미량영양소 중에서도 철분, 아연, 비타민 A, 요오드의 결핍이 가장 흔하다. 북한 보건성의 2014년 보고서는 임신부의 31.2퍼센트가 빈혈이고, 저체중 출생아의 비율이 5퍼센트임을 명시하고 있다. 영양부족현상은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지 못하는 것에 더해, 보건, 물, 공중위생 및 개인위생 서비스의 부족으로 인해 심화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아동 영양실조의 약 40~60퍼센트는 반복되는 설사와 기생충 감염, 비위생적인 생활환경 등에 의한 부적절한 식수와 보건위생 그리고 개인위생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기본 보건서비스의 이용

모든 북한 주민은 법으로 보편적 무상 의료 서비스를 보장받는다. 최근 몇 년간 산모사망율과 5세 미만 유아사망율, 영아사망율이 크게 주는 등 많은 공중보건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북한 내 많은 지역은 설비와 장비, 약물이부족하거나 양질의 보건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숙련된 의료인이 부재한 실정이다. 보건서비스 이용에 대한 도시와 농촌 지역 간의 격차도 여전해, 농촌지역의 5세 미만 아동 사망률이 도시지역보다 1.2배 높게 나타났다.

북한에서 보건서비스가 가장 필요한 취약계층은 5세 미만 아동, 임신부, 전염병환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다. 북한 산모사망율의 가장 흔한 원인은 분만 후 출혈로, 특히 집에서 출산한 여성이 위험에 처하기 쉽다.

2014년 발표된 경제∙사회∙인구∙보건 조사(SDHS)에 의하면, 모든 북한 여성의 9퍼센트 가량은 여전히 가정에서 출산하고, 산모 사망의 67퍼센트가 바로 가정 출산을 하는 여성에게서 발생했다. 전염성 및 비전염성 질병은 여전히 북한의 주요 보건 문제로 남아있다. 최근 결핵 유병률 조사 결과, 100,000명 중 641명이 결핵을 앓고 있으며, 이들은 재발과 약제 내성 결핵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말라리아는 감소 추세이나 계속해서 사례별 추적과 진단서비스를 강화하여 북한의 말라리아 퇴치를 지원해야 한다. 이러한 이슈들은 결국 1차 보건의료 단계에서의 보건서비스 강화와 암환자의 완화 및 치료의 필요로 귀결된다. 북한의 많은 보건 시설에는 전문 설비와 숙련된 의료인이 없어 장애인의 특정한 건강 관련 요구사항을 충족하지 못하고, 재활보조장치가 필요한 사람 중 오직 37.4퍼센트만이 그러한 장비를 사용할 수 있다. 4개의 도에서 실시된 2016-17 재활수요평가(Rehabilitation Needs Assessment)에 의하면, 북한에서는 (전염성 및 비전염성) 질병이 장애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43.3퍼센트). 대부분의 2차, 3차 보건의료기관은 급성 및 급성 후 의료재활서비스를 진단하고 제공할 인력과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아, 많은 경우 환자가 2차 합병증에 걸리거나, 영구적 장애를 입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장애가 있는 사람들 다수는 어떠한 보건서비스가 가능한지 조차 알지 못한다.

서울신문
북한내 대부분의 지방병원들은 의료기기나 설비가 부족하고 의사들이나 환자들 또한 제대로 된 의료 환경에서 종사하거나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환자가 링거병 대신 맥주병으로 수액을 투약하고 있다. [출처: 서울신문]

적절한 의료와 복합적으로 안전한 식수와 보건위생, 개인위생 서비스의 부족 등의 문제가 상존한다. 설사와 폐렴은 북한 5세 미만 아동 사망의 가장 주요한 두가지 원인으로 꼽힌다. 설사는 주로 안전한 식수의 부재와 좋지 못한 공중위생 및 개인위생 관행으로 인해 발생하고, 유아기 결핵과 영양실조를 부르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2013-2014 평가 결과, 전체 인구의 약 11퍼센트인 270만명이 상수도 사용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상수도의 절반은 불규칙한 전기공급과 유지보수 투자 부족으로 그 기능이 제한되어 있다. 북한의 대부분 지역에서 급수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그 결과 물의 질과 양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따라서 최소 1천3백7십만명이 항시 안전하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수자원을 누리지 못하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은 위생과 관련된 리스크와 많은 부분 연결되어 있어, 그 결과 전체 인구의 23퍼센트 가량이 기본적인 개인위생을 이용할 수 없다.

 

자연재해와 기후변화

북한을 강타한 자연재해는 기존의 취약성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인도적 지원기관 간 상임위원회(IASC)의 위기관리지수(INFORM) 산출 결과, 북한은 재해위험 부분에서 191개 국가 중 41위에 올랐다. 홍수와 가뭄이 정기적으로 북한을 강타하고, 때로는 홍수와 가뭄이 같은 해에 동시에 찾아오기도 한다. 약 620만명의 북한 주민이 2004년에서 2016년 사이에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한 천연자원의 황폐화가 농업생산에 영향을 주는 등의 더욱 가시적이고 심화된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십년간 가뭄이 점점 더 빈번히 발생하면서 농업생산과 식량안전을 장기적으로 저해하였다. 가뭄의 장기화는 주로 3월에서 6월 사이에 발생하는데 이 시기는 벼 모내기와 기타 작물 파종의 피크타임이기 때문에 전반적 농업생산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북한은 2017년 발생한 장기간의 가뭄 외에도 2014년과 2015년 본격적인 가뭄을 겪은 바 있다.

가뭄 외에도 최근 몇년간 호우의 빈도와 기간이 늘어나면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매해 반복적인 대형 홍수가 잇달았다. 2016년에는 함경북도를 강타한 대규모 홍수로 약 60만명이 피해를 입고, 7만명에 달하는 인구가 집을 잃었다. 이러한 홍수는 산사태를 동반해 농업생산에 광범위한 피해를 야기, 식량불안정을 가중시키고 새로운 인도주의적 도움의 필요를 촉발했다.

이러한 인도주의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단체들이 눈 앞의 과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마을 단위의 재해위험관리와 환경보호, 재해감소, 기후변화적응 등에 집중하며 주민의 재해 취약성을 줄이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인도주의 단체들의 전략적 목표 중 하나는 반복되는 재해, 특히 홍수와 가뭄 이후의 회복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점증하는 지정학적 긴장상황이 인도주의 활동에 미치는 영향

인도주의 활동에 가해지는 매우 중요한 제약은 국제적 정치환경, 특히 핵 문제를 둘러싼 긴장의 증대, 그리고 강화된 국제 및 양자 제재의 간접적 영향일 것이다. 이러한 환경은 인도주의 활동단체가 충분한 자금을 모집하고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어렵도록 만들었다.

원칙적으로 2006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18호에 의한 북한에 대한 제재조치와 후속 결의가 인도주의 활동 자체를 제한하거나 민간인을 위한 인도주의 활동의 역효과를 일으킬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나, 실제 인도주의 활동은 은행, 기업, 관료 등이 제재 위반을 우려하면서 크게 지연되고 지장을 겪는 일이 많다. 2013년 이후 은행업무에 자주 지장이 생기면서 인도주의 단체들도 북한으로 자금을 보내기 어려워졌다.

대북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이미지 출처: SBS 뉴스]

이러한 어려움이 장기화 됨에 따라 이들 단체들은 기타 활동은 취소 또는 연기한 채 오직 인명구조 활동만 실행하는 등 우선순위를 재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일부 단체는 일관된 안정성을 가진 자금조달 경로없이 장기적으로 활동을 지속할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

인도주의 물품을 전달하는 공급망이 와해된 결과 인도주의 활동도 심각하게 지연되고 있다.  이렇게 공급망이 와해된 것은 다수의 업체들이 금융 및 시장의 평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북한으로 인도주의물품을 조달하고 배송하기를 꺼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북한으로 가는 장비 또는 물품이 제재 대상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추가 요구사항 때문에 조달은 물론 통관수속에도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일도 잦다. 인도주의 단체들은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제 제재는 북한에 자금을 공급하는 원조국의 심리 변화에도 일조했다. 전반적인 지정학적 상황에 인도주의 단체가 직면한 어려움까지 더해져 원조국들의 태도와 원조금을 배분하는 결정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 결과 2012년 이후 원조국의 자금원조가 급격하게 감소했고, 2017년에는 필요 자금의 30퍼센트만이 지급되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 인도주의 단체들은 지난 몇 년간 가장 취약한 계층의 필요를 충족하는 등의 진전을 보였다. 점진적으로 북한 정부와 신뢰를 구축하고 인도주의 활동에 참여하도록 한 결과이다. 이런 접근방식을 통해 북한 전역에서 인도주의적 접촉을 계속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가가며, 국제사회에서 잊혀져 버린 북한 지역사회에서 인명구조활동을 펼 수 있었다. 그러나 자금 조달이 제한되다 보니 해당 단체들도 북한주민이 필요로 하는 바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고, 결과적으로 불충분한 성과를 내는데 그치고 있다. 충분한 자원이 없이는 이 단체들이 북한 내 가장 취약한 이들을 위해 성취하고자 하는 질적인 결과를 이룰 수 없다.

 

일, 2018/04/15-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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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3일, ‘1700만 촛불시민’이 2018년 유엔인권상 후보에 추천되었다. ‘1700만 촛불시민’이라는 불특정 다수의 시민이 후보로 추천된 것은 유엔인권상의 역사에서 아주 이례적이 일이다. 올 해 12월 10일에 개인 혹은 단체에게 주어지는 6개의 유엔인권상은 세계인권선언 70주년 기념식에서 수여된다.

세계인권선언

1948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이 공표되었고, 이 선언을 기념해서 이 날이 세계인권의 날이 되었다. 20년이 지난 1968년에 세계 인권에 기여한 개인과 단체에게 유엔인권상이 처음으로 수상되었다. 그리고 매 5년 마다 수여되는 이 인권상은 올해로 제10회를 맞는다. 그 동안 수상자들은 1998년 ‘전 세계 모든 인권운동가’에게 수여된 사례를 제외하면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주어졌다. 이런 점에서 ‘1700만 촛불시민’을 후보로 추천하는 것은 오히려 수상에서 불리할 수 있다. 어쩌면 ‘퇴진행동’이라는 단체나 당시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개인을 추천하는 것이 수상가능성을 더 높일 수도 있다. 그러나 촛불민주주의의 정신에 부합하는, 인권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은 역시 ‘1700만 촛불시민’이라는 조직화되지 않은, 자발적으로 참여한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이다.

지금까지 수상자들의 면면을 보면 마르틴 루터 킹, 넬슨 만델라, 지미 카터 등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이 많다. 아시아인도 있다. 2003년에 수상한 중국의 덩푸팡이다. 그는 덩샤오핑의 아들로 문화혁명 당시 추락하여 장애인이 되었지만, 장애인인권 신장을 위한 헌신적인 활동을 인정받아 유엔인권상을 수상했다. 단체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국제사면위원회, 국제적십자사 등이 있다. 1978년에 튀니지 여성동맹, 1998년에 수단여성연합 등은 아프리카 여성들의 인권신장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1993년에 유고 내전이 치열할 당시 종교나 인종에 관계없이 생명 보호에 헌신적이었던 사라예보 중앙병원 의료진도 수상자가 되었다. 2013년에 멕시코 대법원이 라틴 아메리카 인권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인권상을 수상하는 역설적인 일도 일어났다. 부패한 멕시코 행정부와 달리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킨 것이 인정된 결과였다. 유엔인권상의 많은 수상자들은 정치적 부패와 탄압의 열악한 조건 속에서 인권 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인권상을 수상하였다.

총 아홉차례에 걸쳐 개인 혹은 단체에 59개의 인권상을 수여할 때 그 근거는 명확히 1948년 세계인권선언과 1998년 세계인권규약에 두었다. 그렇다면 ‘1700만 촛불시민’은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아 인권상을 수상할만한 어떤 기여를 하였는가? 1700만 촛불시민이 활동한 분야는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 인권과 민주주의 분야이다. 촛불시민을 인권상 후보로 추천한 글에는 “평화로운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의 실천을 통해, 한국의 1700만 촛불시민들이 인권 분야에 두드러지고 집합적인 기여를 만들어 냈다. 평화, 자유, 정의의 가치를 신장하면서 2016년과 2017년에 23 차례에 걸쳐 모인 이들은 선출된 정부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침해하는 것에 맞서 이 두 가지 가치의 회복을 요구했다. 그들의 저항은 자발성과 비폭력이라는 뚜렷한 특징을 보이며, 이는 아시아와 그 밖의 지역에서 인권 운동의 모델이 되었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2016년 12월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뉴스1]

 

이러한 취지의 추천서를 국내에서는 4월 3일에 경희대 임채원 교수가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개인의 자격으로, 4월 5일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단체의 자격으로 각각 제출하였다. 한국에서 추천활동은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인권단체에서도 큰 관심과 호응을 불러왔다. 그 동안 공동의 협력을 통해 4월 5일에 아시아 인권단체로는 아시아 민주주의 네트워크(Asia Democracy Network)가, 아프리카 인권단체로는 ‘씨비쿠스(CIVICUS)’가 같은 취지로 추천서를 제출했다.

추천서에 제시된 1700만 촛불시민이 인권 분야에서 이룬 주요한 성취는 세계인권선언 제20조 1항 평화로운 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 실천과 제20조 제1항 직접 정부에 참여할 수 있는 시민적 참정권의 실천이었다. 이번 유엔인권상 추천서에는 “2016년 10월 29일부터 2017년 4월 29일까지 1700만 촛불시민은 대한민국 전역에서 위험에 처한 민주주의와 인권의 복원을 요구하며 자유롭고 평화적인 집회를 지속했다. 183일 동안 거의 매주 토요일 시민들은 서울 등 전국의 광장에 모여, 평화적인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였다. 이는 세계인권선언 제20조 제1항에 명시된 평화적인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의 실천에 해당한다. 그리고 촛불시민들은 이 나라의 정부에 직접적인 참여할 권리를 실행했다. 이는 세계인권선언 제21조 제1항에 명시된 정치적 참여 권리의 실천에 해당한다. 법적 절차에 따라 대한민국 대통령은 2017년 3월 10일에 탄핵되었고 이는 헌법재판소의 전원일치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촛불시민들의 성취는 그들 나라에서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요구와 법의 지배에 만족하는 데 머물러 있지 않았다. 모든 계층과 세대의 1700만 참여자들이 함께 이룬 집회는 보통의 시민들이 인권의 보호와 신장에 기여하는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비폭력적인 집합적 행동을 통해 저항은 촛불을 들고 개인적이고 평화적인 행동의 형태로 일어났다. 이처럼 촛불집회의 빛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곳에서 비추면서 아시아 등 세계의 풀뿌리 인권 행동주의에 모범사례가 되었다”고 그 의의를 제시하고 있다.

인권상 후보 추천에는 추가적인 서류로 지지 편지(a letter of support)를 제출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정세균 국회의장과 임채원 교수가 각각 지지 편지를 작성했다. 정세균 의장은 대통령 탄핵과정에서 광장에서 시민들에 의한 직접 민주주의와 국회에서 탄핵결정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민주주의 역사적 사례를 만들었다고 그 의의를 제시했다. 임채원의 지지 편지에는 촛불시민들이 이룬 신생민주주의의 성장과 성숙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아시아, 아프라카, 라틴 아메리카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세계인권선언이 공포된 1948년 같은 해에 한국은 일제 식민지배를 청산하고 미 군정을 넘어서 정부를 수립했다. 이 지지 편지는 1948년 세계인권선언은 신생민주주의의 인권 신장이라는 소망을 담아 제시된 20세기의 민주주의의 이정표였고, 촛불민주주의는 신생민주주의 중에서 서구 대의제 민주주의를 넘어선 21세기의 대안적 민주주의로 진화한 점을 역설했다.

2018년 유엔인권상 후보들의 추천이 마감된 직후 이제 유엔인권이사회를 중심으로 심사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진다. 이제까지 전례에 따르면 유엔총회의장이 위원장이 되어, 인권이사회의장, 경제사회이사회의장, 여성지위위원회의장 그리고 인권이사회 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5명의 특별위원회가 구성된다. 이 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9월에 인권상 수상자가 선정된다. 이 수상자들은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70주년 기념식에서 인권상을 수여받는다. 올해도 예전과 같이 6개 정도의 인권상이 분야별로 개인과 단체에 수여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18년에 1700만 촛불시민이 유엔인권상을 받는다면 세계 인권과 민주주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중대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신생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뤄진 지난 70여년 동안 수많은 시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진전은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유엔인권상이 지난 50년 동안 수상자를 선정하고, 그 대부분의 수상자들이 열악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하거나 이를 도와온 활동가라는 점은 그 동안 인권 신장이 지지부진했다는 반증이다. 그런 점에서 1700만 촛불시민은 세계 인권과 민주주의 역사에서 지대한 기여를 했고 앞으로 신생민주주의의 인권과 평화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최근 서구 국가에서도 미국 트럼프, 러시아 푸틴 그리고 유럽에서 극우정당의 활동 등은 세계 인권과 민주주의에 심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1700만 촛불시민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활동은 앞으로 신생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서구식 대의제 민주주의에도 대안적 인권과 민주주의 모델이 될 수 있다. 매년 1월에 스위스 다보스에서 경제아젠다를 중심으로 세계경제포럼이 열리고 있다. 세계 인권과 민주주의 단체들이 신생민주주의에서 비경제적 아젠다인 인권,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를 주제로 광화문 광장에서 대안적인 다보스 포럼을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만일 2018년 말 1700만 촛불시민이 유엔인권상을 수상한다면 세계 인권과 신생민주주의를 위한 공론장이 활성화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화, 2018/04/17-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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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들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확연히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그러자 정부가 온갖 규제를 하는 데다 금리도 인상되는 마당에 보유세까지 강화되면 부동산 시장이 경착륙할 수 있다는 경고가 경제지들을 비롯한 미디어에서 나오고 있다. 하긴 부동산 시장이 안정을 찾아가는 마당에 굳이 보유세까지 강화해야 하는지에 관해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보유세를 부동산 가격을 조절하는 수단으로만 이해하는 단견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다. 보유세는 부동산 가격을 조절하는 수단으로만 취급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세금이다. 재정개혁특위가 보유세 개편을 논의하는 지금, 왜 시장상황과 무관하게 보유세 강화를 추진해야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유세

왜 보유세 강화인가

첫째, 보유세 강화는 조세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긴절하다. 먼저 보유세가 가장 우수한 세금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흔히 좋은 세금과 나쁜 세금을 가르는 기준으로 네 가지를 든다. 당해 세금이 경제를 위축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중립성의 원칙, 조세 징수에 따르는 행정 및 사회적 비용이 적어야 한다는 경제성의 원칙, 세원 및 조세 징수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는 확실성의 원칙, 국가나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이 많을수록 그에 상응하는 부담을 지게 해야 한다는 공평성의 원칙이 그것이다. 이를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좋은 세금일수록 생산과 소비를 위축시키지 않고, 세금을 거두는 데 비용이 적게 들며, 탈루나 은폐가 어렵고, 사회로부터 누리는 편익에 상응하는 부담을 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학자들은 보유세(그 중에서도 토지에 부과하는)가 위의 네 가지 원칙을 모두 가장 높게 충족시키는 세금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GDP 대비 보유세 비율은 2015년 기준으로 0.8%에 불과한데,  OECD 평균은 1.2%다. 실효세율도 우리나라는 0.1%로 독일 및 노르웨이와 더불어 OECD에서 가장 낮다. 최소한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GDP 대비 보유세 비율을 OECD평균으로는 올릴 필요가 있다.   

둘째, 보유세 강화는 소득 불평등 해소를 위해 긴절하다. 아래 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대한민국은 매년 국민총생산의 30%를 웃도는 천문학적 규모의 부동산 소득이 발생하는 부동산 공화국이다. 이렇게 매년 천문학적으로 발생하는 부동산 소득(부동산 소득은 그 속성상 공공이 만든 것이고, 부동산 소득을 독식하는 소유주는 ‘불로소득’을 얻는 것이다)이 극소수의 지주들(가액기준으로 2014년 현재 개인 토지 소유자 중 상위 10%가  전체 개인 소유지의 64.7%, 법인 토지 소유자 중 상위 1%가 전체 법인 소유지의 75.2%를 소유) 의 주머니에 고스란히 들어가고 있다.

부동산소득(실현 자본이득 + 임대소득) 추산

단위 : 조원, %

연도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실현 자본이득

275.5

291.9

297.5

299.1

300.3

285.0

263.9

240.3

227.0

임대소득

167.9

178.6

189.0

201.9

214.6

221.9

230.4

242.4

255.1

합계

443.4

470.5

486.4

501.1

514.9

507.0

494.3

482.7

482.1

합계/GDP

42.5

42.6

42.2

39.6

38.6

36.8

34.6

32.5

30.8

부동산 소유 불평등 및 부동산 소유 불평등에서 기인하는 소득 불평등을 그대로 둔 채 대한민국이 공정사회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시장에 충격을 적게 주면서 부동산 소유의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이 바로 보유세 강화다. 로드맵을 정해 보유세를 대거 강화해 나간다면 투기목적으로 부동산을 소유한 자들이 보유한 부동산 중 상당수를 시장에 내놓을 것이고, 투기목적의 부동산 취득을 억제하는 건 물론이고, 이는 곧 부동산 소유의 평등도 제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셋째, 보유세 강화는 토건국가와의 작별을 위해 긴절하다.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은 박정희 이래 토건국가의 길을 쉼 없이 뛰어왔다. 그 결과 지금의 대한민국은 선진국 가운데 부동산 자산이 국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국가이자, 전 시민이 부동산의 인질이 된 국가가 됐다. 토건관련 산업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기형적으로 크고, 가계자산의 8할이 부동산일 정도로 부동산에 나라 전체가 목을 매는 형국이 된 것이다. 이런 산업구조와 부의 구성을 방치한 채 4차 산업혁명으로 상징되는 과학기술혁명에 대한민국이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건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것만큼이나 난망하다. 토건 경기에 일희일비하는 나라가, 창의나 기업가 정신 보단 부동산 불로소득 추구에 골몰하는 개인과 기업들이 가득한 나라가 4차 산업혁명의 파도를 잘 타고 넘어간다는 걸 기대하는 건 어리석다는 말이다. 토건국가 모델과 작별하지 않고 대한민국이 지속가능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리고 토건국가 모델과 작별하기 위한 단초는 보유세 강화다. 보유세의 강화는 부동산 불로소득의 사유화를 더 이상 허용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합의이기 때문이다. 토건국가 모델은 부동산 불로소득의 사유화라는 마약이 온존하기에 가능한 모델이다.

재정개혁특위

 

위에서 살핀 것처럼 보유세 강화는 단순히 하나의 세금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다. 보유세 강화는 조세의 페러다임을 바꾸는 것이고,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이며, 토건국가와의 작별을 의미한다. 물론 보유세 과세 대상이나 방법, 타이밍 등에 대해서는 다양하고도 정교한 논의가 필요하다. 최근 구성된 재정개혁특위가 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수, 2018/04/18-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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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국가의 정책결정과정에 사회경제적 약자와 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시민이 ‘누구나 동등하고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정치를 ‘포용의 정치’ (politics of inclusion)라고 부른다. 이는 강자와 다수자가 약자와 소수자를 배제하고 정치를 독과점하는 소위 ‘배제의 정치'(politics of exclusion) 혹은 승자 독식 정치와 대립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정당정치 활성화가 관건

이 포용의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면, 그리하여 경제 정책이나 사회 정책 결정 과정에 항상 약자의 정치적 대표자가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면, 약자가 선호하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강화 정책 등이 채택될 가능성은 마땅히 높아지게 마련이다. 포용의 정치가 경제의 민주화 수준을 높여 (노동자나 중소상공인 같은 경제적 약자를 중시하는) ’포용 경제‘를 견인하고, 복지국가 발전 수준을 높여 (장애인, 다문화인, 청년 같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포용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그래서 정확한 주장인 것이다. 요컨대, 사회경제적 약자를 포함한 모든 시민에게 정치적 대표성을 두루 보장해주는 것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수준을 높이는 방안이며, 그것이 바로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의 확립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용의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선, 즉 약자의 정치적 대표성을 제대로 보장해주기 위해서는 87년 헌정체제의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할 것인가? 개헌의 핵심 목표가 무엇이어야 할지를 명확히 짚어주고 있는 질문이다.

답은 간단하다. 헌법의 관련 조항들을 모두 손질하여 현대적 정당체계가 들어서고 정당정치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적 대표성을 보장하는 현실 주체는 결국 정당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중소상공인, 청년, 서민 등의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정치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여러 유력 정당들이 의회 및 정부에 상시적으로 포진해 있어야 경제민주화가 진전되고 복지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87년 헌정체제에서는 호남이나 영남과 같은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거대 정당 중심으로 정당정치가 이루어져 왔다. 정당의 구심점은 이념이나 가치 혹은 정책 기조라기보다는 특정 지역민 즉 호남인이나 영남인 등의 기대와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역 명망가가 제공해왔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러한 전근대적인 지역 및 인물 중심 정당체계는 (전국에 산재해있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정치적 대표성을 제대로 보장해주지 못한다. 당의 주 기반이 사회경제적 계급, 계층, 부문 등이 아니라 단순히 특정 지역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유력한 ‘호남당’과 ‘영남당’은 있으되, 유력한 ‘노동자당’이나 ‘중소상공인당’ 혹은 ‘청년당’은 없다는 것이다.

현 시기 한국의 사회경제 상황에서 정치적 대표성 보장이 가장 시급하고 절실하게 요청되는 세 집단은 누가 보아도 비정규직 노동자, 소상공인, 청년이다. 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어려움과 수많은 문제를 보건대, 정치적 해법 말고는 달리 취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현 정당체계 내에는 이들을 대표하는 유력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지금의 헌정체제 아래에서는 앞으로도 그런 정당은 등장하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한국일보
이미지 출처: 한국일보

선거제도와 권력구조를 바꿔야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표하는 유력 정당이 여럿 생기고 그들이 또한 의회 및 정부에 항상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와 절차를 갖춰야 한다. 이는 무엇보다 선거제도와 권력구조를 고쳐야 가능한 일이다. 구체적으로 헌법의 어느 부분을 어떻게 손질해야 이 일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글에서 하나씩 다루어가기로 한다.

금, 2018/04/20-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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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정부와 러시아가 하는 말은 잊으라.

기자가 서구(Western) 언론인 최초로 화학무기 피해자들이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시리아 듀마(Douma)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을 만나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전해왔다.  

로버트 피스크(Robert Fisk)는 30년 가까이 영국의 인디펜던트(Independent)지에 기고하며 많은 언론상을 거머쥔 언론인으로, 그는 약 1분 가량 이어지는 아래의 음성파일에서 비디오 속 호흡이 곤란한 피해자의 모습은 실제 상황이 맞지만 화학무기공격과는 무관하다고 말한다.

음성파일 자막은 이와 같다.

방금 듀마에 다녀왔습니다. 아이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있고,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물을 끼얹는 영상이 촬영된 병원을 찾았는데요.

이 병원의 의사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마침 영어를 잘 하더군요. 이 의사가 말하길, 그 비디오 자체는 사실이지만 비디오 속 아이들이 가스 중독으로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사는 터널 먼지 때문에 저산소증(산소부족) 왔다는 겁니다. 듀마 지역의 사람들은 일년내내 집을 내버려두고 그 아래에서, 그러니까 터널과 지하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마침 그날 밤 시리아군대와 러시아공군의 공격이 있었고, 그 결과 거리가 먼지와 잔해로 뒤덮였다고 합니다. 숨쉬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았지요.

이 의사가 말하길, 아이들이 병원에 도착하는 순간 누군가가 “가스”라고 외쳤고, 그 말에 다들 패닉 상태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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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설명.

최신 업데이트: 피스크 기자는 오늘 인디펜던트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다.  (전문)

냄새 나고 망가진 마을, 부서진 아파트 단지로 가득한 듀마 그리고 그 마을의 한 병원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지하 병원에서 찍힌 영상은 지난 주 서구의 3대 강대국이 시리아를 폭격하도록 한 빌미가 되었다. 나는 이 병원을 찾아 해당 영상 속 푸른 가운을 입은 의사를 만날 수 있었는데, 그는 전세계를 놀라게 한 일명 ‘가스’ 비디오는 수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진실이라고 밝혔다

***

그는 올해 58세인 시리아인 의사, 아심 라하이바니(Assim Rahaibani) 박사이다. 그런데 그는 매우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영상 환자들은 가스가 아닌 산소부족의 피해자라는 것이다. 쓰레기 더미 속 터널과 지하에서 사는 데다가, 밤사이 바람과 포격으로 먼지폭풍이 일어나 산소가 부족해진 것이라 한다.

라하이바니 박사가 이런 결론을 내리기까지 화학공격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는 유창한 영어로 듀마의 자이시 엘 이슬람(Jaish el-Islam, 이슬람군대라는 뜻)의 요원을 두번이나 “테러리스트”라고 칭했는데, 이는 시리아 정권이 적국을 부르는 말이기도 하고 시리아 전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쓰는 말이기도 하다.

***

다른 듀마 주민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폐허가 된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가스 이야기를전혀 믿지 않았다는 이들이 많았고, 대개 그런 소문은 무장 이슬람단체가 퍼뜨린다고 했다. 이들이 말하는 단체들은 포화 속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집 또는 죄수들이 곡괭이로 벽을 뚫어 마을보다 3층 정도 아래에 만든 지하도로와 연결된 넓은 터널 등에서 살며 목숨을 부지했다.

***

어제는 군인이나 경찰, 경호원 없이, 시리아에서 나의 친구가 되어주고 있는 카메라와 노트 한권만 들고 발길 닿는 대로 혼자 마을을 돌아다녔다.

***

라하이바니 박사가 있는 곳까지 금방이었다. 이 반(半)지하 도시의 독특한 지형 상 “Point 200”이라고 불린다는 이 지하병원에는 출입구에서부터 아래쪽으로 이어진 복도를 따라 침상 몇 개가 놓여있었고, 한 여자아이가 간호사들이 눈 위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울고 있었다.

 “그날밤 저는 이 병원에서 300 미터 떨어진 저희 집에서 가족들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든 의사들이 알아요. (정부군에 의한) 포격이 많았고, 밤이면 항상 전투기가 듀마 상공을 다녀요. 그런데 그날 밤에는 바람과 엄청난 먼지구름이 지하와 사람들이 사는 곳까지 몰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저산소증, 산소부족으로 병원에 오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현관에 있던 시리아민방위대 (White Helmet) 요원이 ‘가스다!’라고 외쳤고, 다들 어쩔 줄 모르다가 서로 물을 끼얹어 주기 시작했어요. , 비디오는 여기서 찍은 맞아요, 진짜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가스중독이 아니라 저산소증입니다.”

이 기사의 원 출처는 워싱턴 블로그입니다.

글쓴이: 로버트 피스크(Robert Fisk) 그리고 워싱턴 블로그(Washington’s Blog)

2018년 4월 16일, 글로벌 리서치(Global Research)

워싱턴 블로그(Washington’s Blog)

 

금, 2018/04/20-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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