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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칼럼] 존중과 우애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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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칼럼] 존중과 우애에 관하여 

익명 (미확인) | 금, 2016/09/02- 13:21

존중과 우애에 관하여

주은선 l 경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가끔씩이나마 리우 올림픽 중계나 기사들을 보면 저도 모르게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낯선 종목들에서도, 또 한국선수가 출전하지 않는 종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세계적인 선수들의  기량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선수들의 태도이다. 워낙 하나하나 어려운 종목들이고 대단한 명예가 걸린만큼 긴장을 유발하는 장이기 때문인지 실수도 흔하게 볼 수 있으며, 불운의 장면들도 행운의 장면들만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런 장면들에서 선수들이 특히 실수, 불운, 패배를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는지를 관찰하면, 많은 경우 악재를 돌파하기 위한 상당한 의지와 침착함, 그리고 의연함을 발견하게 된다. 중간에 넘어진 선수가 다시 일어나 장거리 달리기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고, 더욱 흔히는 실수 직후 바로 자신의 경기에 끝까지 임하여 평범한 순위에 머문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올림픽 3연패를 꿈꾸던 선수가 4위에 머물렀지만 금메달을 딴 팀후배를 따뜻하게 축하해주는 장면이나, 마지막 연장전에서 불과 1점 차 패배를 당한 후에도 상대방의 선전에 박수를 보내는 장면 역시 기억에 남는다. 개인의 긍지와 자존심은 성과가 아닌 태도를 통해서도 표현된다. 또한 남한과 북한의 체조선수들이 보인 친밀함뿐만 아니라 국적, 종교, 인종 차이와 무관하게 서로에 대한 존중과 격려의 모습은 가슴을 따뜻하게 만든다.

 

이는 많은 선수들이 상황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인간으로서 자존심과 긍지를 지키는 것, 그리고 우애에 상당한 가치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아하기까지 한 이러한 태도들을 계속 지켜보다 보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이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같은 인간으로서 꽤 괜찮은 존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조차 든다. 타인의 긍지와 명예를 개의치 않는 공격과 혐오 발언들이 난무하던 우리 사회가 잠시 단절의 시간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일단은 필자에게는 다행이다. 게다가 우리 인간이 자존심과 명예, 다양한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우애를 추구하는 보편성을 가진 존재임을 다시금 기억하게 된다. 돈과 도박, 국가주의 등 많은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은 자긍심과 우애라는 보편적 가치를 상기시키는 계기였다.

 

그런데 요즈음에 보인 우리 정부의 태도는 인간의 자긍심과 명예에 대한 태도라는 면에서 올림픽이 보여 준 아름다움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피해를 입은 자가 그 이유와 진실을 명명백백히 알게 되고, 정당한 사과를 받는 것은 개인적, 역사적 치유의 과정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일본 정부와의 합의, 특히 배상금이 아닌 위로금 지급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보다는 정부 입장에서 일단 사안을 종결하는 데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희생당한 개인들이 진짜 사과를 받고 용서를 베풀며 인간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거해 버린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와의 협상을 미루며 책임을 피해왔던 것을 고려하더라도 피해 당사자에 대한 사과가 먼저 이뤄졌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세월호 특위 활동을 서둘러 마무리지어버린 정부 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정당한 근거 없이 서둘러 마무리지어버린 것 역시 진실과 책임의 명확화를 통한 치유와 회복을 막아버린다는 점에서, 또한 결국 부실한 보상으로 사안을 종결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유족 개인들의 명예나 자긍심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드 배치 결정에서도, 백남기 농민 사건 이후의 태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정부가 이렇게 개인의 자존심과 명예에 무심한 것은 국가는 개인이란 존재 위에 군림한다는 오래된 착각 때문인 것인지...

 

이러한 국가의 태도는 복지에 관해서도 여전하다. 개인의 자존심과 명예는 피해 배상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국가가 공공복지를 제공하는 과정에서도 지켜져야 한다. 특히 자본주의 시장에서 끊임없이 상품가치로 판단당하고 밀려나는 시민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존중과 타인들과의 우애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부정수급 단속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말하며, 새로 시작된 청년수당 수급자들의 취업준비 여부는 불확실하므로 이는 세금낭비라고 말한다. 마치 얼마나 이들의 취업노력을 잘 감시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인 것처럼. 정부에게 복지는 그저 돈의 문제이거나 정쟁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기획재정부가 제안하는 재정건전화법 역시 복지를 무엇보다도 돈의 문제로 바라보고 복지정책들의 발전을 제로섬 게임으로 만들려 한다는 점에서 이런 시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복지에 대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방향이다. 어떤 복지제도를 어떻게 설계하여 실시하느냐는 우리가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할 것이며, 우리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에 기초한 것이어야 한다. 기본소득론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이유는 방향, 즉 철학에 대한 갈망 때문일 것이다.

 

정부가 올림픽에서 끌어내는 교훈은 개인에게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공동체에 헌신하도록 요구하는 것인 것 같다. 광복절 경축사가 그렇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올림픽은 우리가 다시 타인에 대한 혐오보다는 우애를, 그리고 명예와 자긍심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으로서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갖는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사실 인간이 이기적이며 이익에 집착하는 존재인지, 명예와 우애를 추구하는 존재인지는 알 수 없다. 정해진 것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국가가 정치사회적 사안을 다루고 공공복지를 운영하는 기본 방침이 서로 감시하거나, 혐오하거나, 타인의 명예를 개의치 않는 행위를 하도록 하는 것은 아니었으면 한다. 복지에 관해서도, 추구하는 우리의 삶과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도 더 깊이있는 모색이 필요하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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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7/08/2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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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여덟 명의 여성에게 2018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이야기하고 싶은 여성 인물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우는’ 피스모모의 문아영님은 조선 최초의 경제학사 최영숙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최영숙은 스웨덴의 스톡홀름 대학 학사가 된 최초의 조선인입니다. 그녀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EBS의 역사채널 “콩나물 팔던 여인의 죽음”이라는 제목 때문에 우연히 방송을 보게 된 것이 1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알게 된 이후, “최영숙”이라는 세 글자는 제 가슴에 얹혔습니다.

최영숙은 1906년에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고 이화학당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에 1923년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난징 명덕(明德) 여학교와 회문여학교를 졸업했다고 합니다. 언어에 재능이 있어 짧은 시간안에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고 전해집니다. 중국유학을 마친 그녀는 1926년 스웨덴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스웨덴 유학을 결정했던 것은 스웨덴 출신 여성운동가이자 교육운동가인 엘렌 케이(Ellen Key·1849~1926)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애석하게도 엘렌 케이는 최영숙이 스웨덴에 도착하기 전 사망했다고 합니다. 최영숙이 너무 애석해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경기도 여주군 태생으로 방년 21세 된 최영숙 양은 지난 7월13일 밤 하얼빈에서 구아연락열차를 타고 멀리 스웨덴을 향하여 떠났다. 최영숙 양은 사회과학을 연구하려고 단신으로 만리타국으로 간다고 한다. 지난 9일 기선(汽船)을 타고 상하이를 떠나 다롄에 상륙했을 때, 최영숙 양은 일본경찰에게 잡혀 큰 고초를 겪었다 한다. 그는 후일 고국에 돌아와 몸과 마음을 오로지 고국에 바치기 위해 이 같은 고생을 무릅쓰고 공부하러 멀리 떠난다 한다. 그는 나이 어린 여자의 몸으로 일어와 중국어, 영어에 정통하고, 매사에 재주가 뛰어나다. 최근에는 사회주의 사상을 연구한다 하며, 이번에도 사회주의에 관한 서적을 많이 가지고 가다가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한다.”(‘동아일보’, 1926년 7월23일자)[1]

당시 그녀의 집안은 포목상으로 꽤 부유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였던 당시 조선에서 스웨덴 유학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최영숙은 스웨덴에서의 체류비용과 유학비용을 자기 힘으로 충당하며 학업을 이어가게 됩니다. 처음엔 자수를 놓는 부업을 하다가 스웨덴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면서 스웨덴 왕가의 아돌프 황태자와 함께 그의 도서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게 되었지요. 아돌프 황태자가 조선, 중국과 일본 등에서 수집해 온 자료들을 번역하는 작업을 최영숙이 담당했던 것인데요. 조선어, 중국어, 일본어, 한문에 능통하고 스웨덴어까지 구사하는 그녀는 아돌프 황태자가 가장 신뢰하는 연구원이었다고 합니다.

1931년 말, 최영숙은 5년간의 스웨덴 유학을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옵니다. 스웨덴에서 정착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귀국을 선택합니다.

어젯밤 침상 위에 누어 생각했다. 명년에 집에 가면 무엇을 먼저 할까. 부모님 노쇠(老衰)하고 형제들 약소하니 내 할 일 무엇보다 가정을 정돈할 것. 유일한 나의 오빠 완치될 그날까지 마음을 다 바쳐서 오빠 위해 희생할 것. 그 다음 민족 위해 일할 때에 공민학교 설립하고 노동계급 청년남녀 몸과 정신 수양하여 삶의 길을 찾게 하자.(‘청춘에 요절한 최영숙 애사’, ‘제일선’, 1932년 5월)[2]

그녀가 조선을 떠나있었던 동안 집안의 가세는 기울어 가족들 모두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그녀가 귀국하자 모두 이제 집안살림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부풀었습니다. 최영숙 역시도 무언가 사회와 가족에게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귀국 당시, 조선 최초의 여성 경제학사였던 최영숙은 언론에 대서특필되었고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대로서는 보기 힘든 여성 엘리트였으니까요.

“조선으로 돌아올 결심을 했을 때, 경제운동과 노동운동에 몸을 던져 살아 있는 과학인 경제학을 현실에서 실천해 보려했습니다. 공장 직공이 되어 그들과 같이 노동운동을 할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와 보니 형편이 어려워 당장에 취직이 걱정입니다. 스웨덴에 있을 때, 그 나라 신문에 투고하여 조선을 다소 소개도 해보았고, 동무 중에도 신문기자가 많았습니다. 신문기자 생활에 관심이 많습니다. 조선의 실정을 아는 데도 제일일까 합니다.”(조선일보, 1931년 12월22일자)[3]

하지만 1931년의 조선은 일제 식민지배와 세계 경제대공황의 여파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지요. 거기에 조선인이면서 ‘여성’인 최영숙은 훨씬 더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지요.

기자, 교사, 교수등 여러 일자리에 지원했지만 그녀는 일자리를 얻지 못합니다. 요즘 시쳇말로 ‘스펙’이라고 불리는 기준으로만 본다면 그녀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은 믿겨지지 않습니다. 중국어, 일본어, 영어, 스웨덴어에 독일어까지 5개국어를 구사했고 당시 드물었던 중국과 스웨덴 유학경험, 경제학 학사 학위가 있었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스웨덴 체류 당시 스웨덴에 대한 이야기들을 조선사회에 소개하는 글을 꾸준히 기고했었기에 언론계 인사들과의 인맥도 돈독했으며 스웨덴 아돌프 황태자(이후, 구스타프 6세로 즉위)와 스웨덴 유력인사들과의 네트워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최영숙은 서대문 근처에 작은 상점에서 콩나물과 배추 등 부식을 팔기 시작합니다. 당장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고 그녀를 바라보는 가족들을 위해 무어라도 해야만 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장사는 잘 되지 않았고 귀국 5개월이 되던 1932년 4월, 최영숙은 실신하여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당시 최영숙은 인도인 남성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는데 귀국 직후 직면하게 된 여러 상황이주는 스트레스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영양실조에 걸렸던 겁니다.

결국 그녀는 낙태 수술을 받았고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회복 불능 진단을 받고 자택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1932년 4월 23일,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녀의 죽음은 다시 한 번 세간에 회자되었다고 하는데 그녀의 생활고와 기가 막힌 상황에 대한 보도보다는 그녀의 태중에 있었던 아이에 대한 구설이 더 화제가 되었다고 하지요.

최영숙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이 지면을 통해 다 풀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저는 그녀의 삶이 너무 아프고 슬프면서도 1926년 여성 활동가 엘렌케이를 만나기 위해 배를 타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스웨덴을 향하던 그 순간의 최영숙을 생각하면 그 반짝이는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면서 마음이 두근두근합니다. 그녀에게 듣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이 안타깝고 그녀가 원했던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면 조선의 역사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상상해보기도 하고요.

최영숙은 노동만으로도 풍족하게 살 수 있었고 여성들도 차별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스웨덴에서의 경험을 바탕삼아 여성과 노동자의 권리가 인정될 수 있는 조선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궁핍한 생활 가운데서도 낙원동 여자소비조합이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이야기가 들리자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빚을 내 조합을 인수하기도 했지요.

그녀가 세상을 떠난지 올해로 86년이 지나가는데요. 그녀의 꿈은 이루어졌을까요? OECD 조사에 따르면 2002년부터 남녀임금격차 분야에서 대한민국은 14년째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한 연구는 우리나라에서 남녀 임금격차를 발생시키는 요인들을 여러모로 분석해보았는데, 교육연수의 기회, 업종 차이, 근속연수 등의 요인의 영향보다도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남성이 임금 4% 정도를 더 받고, 여성은 58%를 덜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알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알 수 없는 이유”라는 베일로 가려진 진짜 이유는 사실 모두가 아는 그 이유입니다. 그냥 여성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여성’이라서, ‘여성’이기 때문에 임금을 덜 받게 되는 것이지요. 아니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고, 여성은 결혼하면 직장을 떠난다거나 여성이 남성보다 업무능력이 떨어진다거나 이런 저런 이유를 말하고 싶은 분들 계시겠지만 그런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니오. 그냥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이 선명하게 존재한다”고요.

“Girls can do anything!” 이런 당연한 말에 해명을 요구하는 이상한 세계에서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지만 그 이상하고 끔찍한 세상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여성들에 의해 무너져 내리고 있으니까요. 알 수 없는 이유라는 이름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해왔던 그 세계에 종언을 고하며 2018년 여성의 날, 최영숙을 기억합니다. Girls can do anything and be anything!

 

[1][2][3] 조선 최초 스웨덴 경제학사 최영숙 애사(哀史)

글. 문아영
그림. 구자선

목, 2018/03/0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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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선거 실시지역은 서울 노원구병, 서울 송파구을, 부산 해운대구을, 인천 남동구갑, 광주 서구갑, 울산 북구, 충북 제천시단양군, 충남 천안시갑, 충남 천안시병, 전남 영암군무안군신안군, 경북 김천시...
월, 2018/06/1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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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3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며 서울의 풍경은 참 많이 변했다. 이제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리고 지난 2014년 겨울 송파구의 어느 반지하 방에서 어렵게 생을 이어오던 세 모녀가...
수, 2017/08/0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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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크레인 안전사고’ 이대로 괜찮나?

– 경실련, 타워크레인 안전사고 원인진단 및 개선방안 제시 –

지난 3월 4일 국회에서 이용호 의원실이 주관한 토론회가 개최됐습니다. ‘타워크레인 안전사고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는 최영진 교수(중앙대)가 좌장을 맡았고, 유상덕 위원장(한국노총 한국타워크레인조종사노동조합)과 오희택 위원장(경실련 시민안전감시위원회)이 발제자로 참여했습니다. 이날 경실련이 발제한 자료를 정리해 발표합니다.

타워크레인 안전사고로 사망 사고가 급증하자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7년 11월 ‘타워크레인 사고 예방을 위한 정부합동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노후크레인 연식 제한 ▲등록 크레인 전수검사 및 등록관리 강화 ▲부품 인증제 도입을 통한 불량부품 사용 억제 등 3가지 방안을 내놨다. 지난 1월에는 안전대책의 결과로 2018년 타워크레인 사망사고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보도자료를 냈고, 문재인 대통령도 신년사를 통해 “타워크레인 사고 예방 노력으로 사망사고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발표 후 보름도 채 되지 않아 타워크레인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무인타워크레인의 자재 인양 과정에서 자재가 쏟아져 2명의 건설노동자가 사망했다. 이후에도 무인타워크레인으로 인한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계속 발생하는 실정이다. 건설노조가 파악한 올해 사고만 5건이다. 사고로 수명의 건설노동자가 죽거나 다쳤다. 정부가 타워크레인 안전사고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책 없이 보여주기식 대책만 반복한다면 안전사고와 인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문제1. 사망사고의 80% 차지하는 설치·해제·인상 작업에 대한 근본적인 안전대책 부재

타워크레인 안전사고의 80% 이상은 타워크레인 설치·해제 작업 중 발생한다. 정부 대책은 타워크레인 설치·해체기능사 자격증을 신설해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타워 설치‧해체 작업의 근본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타워크레인 설치 해체작업 종사자는 현재 650명 정도다. 종사자가 많을 때는 1,200명을 상회했지만, 고령화되고 일이 어렵고 힘들다 보니 수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별첨 참조). 종사자 대부분 고령으로 3년 이후에는 만60세 이상인 자가 종사자의 7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설치·해제 종사자는 줄고 있지만 타워크레인 수는 급격하게 늘었다. 2013년 타워크레인 벽체지지 고정이 도입되고, 주택 건설현장이 늘어나면서 대형 타워크레인 수요가 증가했다. 장비는 증가하고 노동자는 감소하니 날림 작업이 빈번히 발생하며 대형 안전사고로 이어졌다. 설치‧해체 종사는 모두 재하청 업체 소속이다. 원청인 건설사는 타워크레인 임대업체에서 타워를 임대하고 타워 임대업체는 팀으로 움직이는 설치‧해체 노동자에게 재하청을 준다. 설치‧해체팀은 전문업종 등록 없이 5~6명의 소규모 팀으로 활동한다. 전국에 약 130개 팀이 활동 중이다. 이런 팀은 일일 작업량에 따라 대금을 받기 때문에 시간 내에 많은 작업을 해야 유리하다. 업체 역시 공정에 맞춰 타워크레인 설치 및 해체가 진행돼야 공사기간 및 공사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빠른 작업을 요구한다. 이러한 현실 개선없이 자격시험만 강화해 안전사고를 줄인다는 정부의 정책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2. 값싼 수입 타워크레인에 대한 허술한 관리로 땜질식 처방하는 국토부

정부는 수입산 타워크레인으로 인한 안전사고가 급증하자 ‘제작사 인증서나 제작국 등록증’ 제출을 의무화했다. 2018년 8월 건설기계관리법 시행령 제3조를 개정하여 수입한 건설기계를 등록하려면 ▲수입면장 ▲건설기계제작증 ▲건설기계제원표가 필요하다. 시행령 개정 이전에는 수입면장만 있으면 수십 년 된 장비도 수입이 가능했다. 법 개정 이후에도 허점은 여전하다. 외국에서 20년간 사용하다 수입한 장비도 주소지조차 불분명한 인증기관이 만들어준 몇 가지 서류만 있으면 등록이 가능하게 했다. 건설기계 등록 업무는 각 시·군·구 일선 공무원이 담당한다. 하지만 일선 공무원들은 기계제원표를 검증할 능력이 떨어진다. 결국 제대로 된 검토 절차 없이, 구비 서류만 있으면 등록 승인되는 실정이다.

최근 급격히 증가한 소형타워크레인에 대한 관리는 더 허술하다. 14년 7월 건설기계관리법 시행령이 개정되며 소형타워트레인도 건설기계 등록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제원표 조차 없는 중국산 저가 제품이나 불법 개조 제품이 현장에 운영되고 있다. 정부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대한건설기계협회 산하기관인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에게 ‘3톤 미만 타워크레인 신규등록 지원방안’이란 공문을 만들어 전달했다. 타워크레인 검사기관에게 ‘제원표가 없는 타워크레인의 제원표를 만들어 주라는 것’이다. 제조일자도 기계제원표도 없는 불법 소형타워크레인 599대가 이렇게 등록됐다.

국토부는 2018년 10월, 불법 개조‧연식 조작한 타워크레인 33건을 적발했다고 홍보했다. 국토부 스스로 불법 개조‧연식 조작 장비를 합법적으로 사용하도록 방치해놓고 안전사고 예방에 나서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땜질식 처방이다.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은 영리업체들의 협의체인 대한건설기계협회 산하 단체로 1997년 만들어졌다. 건설기계 안전검사 및 승인‧신고 업무를 대행하며 받는 수수료가 주 수입원이다. 2018년 1월 공공기관으로 승격 됐고, 국토부로부터 타워크레인 등 건설기계 검사 총괄 역할을 부여받아 건설기계 검사를 독점하고 있다.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은 퇴직공직자 취업제한대상이지만, 역시나 국토부 출신 퇴직 공무원들이 임원으로 다수 취업해 있다. 국토부가 타워크레인 안전사고와 별 관련 없는 검사 강화를 통해서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의 수익만 늘려줘 제 밥그릇 챙기기에 나선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문제3. 시민안전 위협하는 불법 개조 무인타워크레인에 대한 대책 전무

최근 3년 동안 소형무인타워가 급격히 늘어났다. 수입국가 현황을 보면 중국산 제품이 압도적으로 많다. 유인타워크레인으로 수입‧등록한 제품이 불법 개조를 거쳐 무인타워크레인으로 둔갑한 경우도 있다. 정부가 불법 개조 제품에 대한 검사를 강화한다고 했지만, 현장에서는 불법 개조한 무인타워가 버젓이 운행하고 있다. 최근 사고를 보면 마스터 기둥이 휘어진다든지, 지브가 꺽인다든지 하는 설비 결함이 다수 발생했다. 이는 저가 타워크레인 제품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인데, 중국산 수입 제품에서 발생하고 있다.

소형(무인)타워크레인 증가는 시민 안전 위협으로 이어진다. 기업이 무인타워크레인을 선호하는 이유는 타워조종사를 고용하지 않아도 되고, 3톤 미만의 무인타워크레인은 법률상 20시간 교육을 이수하면 누구나 면허를 취득해 운전할 수 있어 밤낮없이 가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형무인타워는 조종사가 없어 시야가 제한적이다. 자재 운반 시 사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무리한 인양 시 오는 반동을 운전사가 느낄 수 없기 때문에 타워 전도 가능성도 크다. 더군다나 무인타워를 쓰는 현장은 대부분 중소 규모의 현장으로 대형타워를 사용하는 현장에 비해 안전관리가 소홀하다. 특히 소형무인타워는 시가지 주변의 상가·업무 빌딩을 짓는 현장에서 주로 쓰이기 때문에 공사장 주변의 시민들이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경실련 주장. 연식 제한 폐지, 상시 검사 실시, 등록기준 강화, 불법개조 무인타워크레인 퇴출

타워크레인 연식 20년 제한은 폐지돼야 한다. 연식 제한에 걸리지 않는 타워는 20년간 사용 가능하다는 말이다. 정부가 수시 점검을 통해 연식이 짧은 타워라 하더라도 성능에 문제가 있으면 즉각 등록 말소시켜야 한다. 현행법률상 외국에서 수십 년간 운영된 타워도 새 타워로 둔갑해 등록이 가능하다. 건실기계제작증이나 건설기계제원표를 제출해야 하지만, 이러한 서류는 회사 주소지조차 불분명한 제작회사나 검증기관에서 얼마든지 발급 가능하다. 공인된 업체나 인증기관에서 발급받는 글로벌 인증서를 의무화해야 한다.

한국산업표준(KS) 규격에 맞지 않는 무인타워크레인 사용등록을 금지시켜야 한다. 2002년 국토부는 건설현장에 사용되는 타워크레인 KS규격을 국제규격에 맞게 지정했다. 크레인 제조업체의 경쟁력 제고와 품질향상이 이유였다. 이에 따라 타워크레인을 제작할 때는 KS인증제품을 사용해야 하고, KS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타워크레인 조종석은 KS규격에 따라 꼭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는 유인타워크레인을 무인타워크레인으로 개조한 제품이나 처음부터 조종석 없이 만들어진 크레인이 버젓이 운행되고 있다. 모두 KS규격에 맞지 않는 제품이지만 국토부가 등록 허가를 내줬기 때문에 합밥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타워크레인 안전 강화에 힘쓰겠다는 정부가, 스스로 만든 KS규격에도 맞지 않는 장비의 사용을 허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타워크레인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근본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보도자료_’타워크레인 안전사고’ 이대로 괜찮은가?

문의: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02-3673-2146)

월, 2019/03/1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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