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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두근두근 인권약속프로젝트 첫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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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두근두근 인권약속프로젝트 첫 날!

익명 (미확인) | 월, 2016/09/26- 17:43

20160922_인권약속프로젝트 (6)

 

지난 목요일(9/22) 청년참여연대 인권약속프로젝트가 첫 발을 떼었습니다. 인권약속프로젝트는 우리 청년참여연대를 더욱 인권감수성 넘치는 공동체로 만들어가기 위해 회원들이 함께 모여 우리가 함께 지켜야할 '인권약속'을 만들어나가는 2달 간의 프로젝트입니다. 보편적인 인권 문제보다는 실제 우리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차별발언이나 행동들을 찾아내고 서로 조심하자는 취지에서 이러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게 되었는데요, 9월 22일부터 10월 27일까지 매주 목요일 저녁 함께 모여 젠더, 장애 등 인권과 관련한 강좌도 듣고 토론도 하며 회원 모두가 공감하는 인권 약속을 만들기 위한 모임을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청년참여연대 회원 모두의 폭넓은 이해와 공감을 위해 오프라인 모임에서 나왔던 이야기들을 온라인을 통해 충분히 공유하여 의견을 모으고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후기 꼭! 읽어주시고 의견도 많이 부탁드려요 :)

 

 

인권약속 첫 날에는 7주간 함께 할 멤버들끼리 함께 인권약속프로젝트에 함께 하며 기대하는 것과 자기소개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권보다 이익이 우선되는 요즘 세상에서 인권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었다는 분, SNS를 통해 차별적인 발언들을 최근에 많이 듣게 되어서 상당히 화가 나 있었는데 이 곳에 와서 생각이 비슷한 분들을 만나게 되어 안심이 된다는 분, 정말 분들이 인권약속프로젝트 오리엔테이션에 함께 해주셨어요.

 

 

20160922_인권약속프로젝트 (1)     20160922_인권약속프로젝트 (8)  

 

본격적으로 인권약속프로젝트에 들어가기 전에 서로가 가진 생각의 차이를 확인해보고자 스펙트럼 토론을 통해 쟁점이 되는 몇 가지 사안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여러가지 사정상 인권약속오프라인 모임에 오시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참여할 예정이거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위해 나온 이야기들을 조금 들려드릴게요!

 

상황1.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마을에 CCTV를 설치한다.
- CCTV가 예방보다는 사후 수사를 위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없는 것보다 낫다.
- 범죄는 CCTV 사각지대에서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
- CCTV가 범죄를 예방하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지만 취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 취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기엔 부작용도 많다. 범죄예방 외의 용도로도 충분히 쓰일 수 있다.

 

상황2. 프랑스에서 여성인권을 위해 무슬림들의 히잡 착용을 금지한다.
- 무슬림들에게 히잡 착용은 인권의 문제를 넘어 문화적 다양성의 문제다.
- 무슬림 여성들은 히잡 착용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착용을 금지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다.
- 본인들이 원해서 히잡을 착용하는 것이라면 인권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잘 모르겠다.
- 너무 어려운 문제다ㅠㅠ

 

상황3. 반복적 성범죄자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 공유한다.
- '반복적' 성범죄자에게 개인정보 공유는 절대 과하지 않다. 주변 사람들이 조심할 수 있도록 알려야 한다.
- 범죄자 본인보다는 함께 사는 가족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낙인찍기가 되지는 않을까.
- 성범죄자 개인정보 공유가 최선의 수단은 아니겠지만 보조적 수단으로 충분히 고려할만 한다.
- 개인정보공유는 근본적인 예방책은 아니다. 그에 비해 부작용이 크다.
- 더욱 적극적인 국가의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 왜 국가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조심해야 하는 노력을 개인들에게만 전가하는가.

 

처음엔 다들 어려워했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기도 하고 나름의 논리를 만들어가며 생각을 모아나갈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사람들이 모였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구체적인 쟁점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생각지 못한 차이들도 있었고요. 인권약속을 만들기 전에 우리가 가진 생각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20160922_인권약속프로젝트 (9)  20160922_인권약속프로젝트 (10)  

 

 

다음으로는 인권약속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진행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9월 22일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4주의 특강이 이어지고 10월 27일(목)에는 강연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인권약속 초안을 만드는 워크숍이 진행됩니다. 인권약속 워크숍에는 앞선 5번의 오리엔테이션과 강연 중 2번 이상 참석하셨던 청년참여연대 회원만이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바쁘시더라도 오프라인 특강엔 꼭 2번 이상 오시거나 인터넷 후기를 통해 진행상황을 보고 이메일([email protected])이나 전화(02-723-4251)로 의견을 주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20160922_인권약속프로젝트 (2)  20160922_인권약속프로젝트 (3)

20160922_인권약속프로젝트 (4)  20160922_인권약속프로젝트 (5)

 

오리엔테이션을 마치며 6주 후 만들어질 인권약속 초안에 이 문구는 꼭 들어갔으면 하는 이야기들을 함께 적어보았습니다.

 

불편한 건 불편하다 말하자
개인을 성별, 겉모습, 직업 등으로 판단하지 말자
눈 앞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침묵'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하자
종교의 다양성, 욕할 때도 언어선택 신중하게
내가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공감, 이해, 인정하기
회복적 정의를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를 아우르기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모든 사람의 다양성을 존중한다
타인을 함부로 대상화하지 않는다
평등, 사랑, 청년

 

오리엔테이션에 나온 이야기들만 묶어도 훌륭한 인권약속이 될 것 같죠? 과연 6주 후에 만들어질 인권약속과 어떻게 같고 또 다를까요 :)

 

돌아오는 목요일(9/29)엔 인권정책연구소 김형완 소장님과 함께 '인권약속에 앞서 필요한 것들'을 주제로 '인권'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세히 공부해볼 계획이에요~ 미리 읽어올 자료도 있으니 이 날 함께 하실 분은 꼭! 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그럼 목요일에 뵐게요 :)

 

9/29(목) 오후 7시 30분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인권약속프로젝트 특강① 인권약속에 앞서 필요한 것들 :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

>>참가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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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육군 장성, '또' 여군 성추행 - 육군참모총장, 가해자 보직해임 하지 않아 재식구 감싸기 육군 장성이 또 부하 여군을 성추행했습니다. 육군 인사사령관 김문곤(계급 소장 ★★)은 지난 21일, 관사에서 외부인사 초청 행사 후 행사를 도왔던 피해 여군을 강제로 추행한 혐의입니다. 피해자는 22일에 가해자를 신고했으나 가해자는 여전히 인사사령관 보직을 유지하며 직무만 정지된 상태입니다. 72사단장이 상습적으로 여군을 성추행했으나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이 가해자를 보직해임도 하지 않은 채 수사를 하다 군인권센터의 지적을 받은 뒤에야 보직해임한지 보름만에 또 사건이 터졌습니다. 육군은 이번에도 가해자를 현직에 두고 피해자를 두려움 속에 방치했습니다. 고위급 장성들의 성폭력 사건이 자꾸 반복되는 이유는 사건이 벌어져도 처리하는 방식에 학습이 없기 때문입니다. 김문곤 인사사령관에 대한 즉각 보직해임하고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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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8/07/2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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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한국 탈핵운동을 이끌어 온 동국대 의대 김익중 교수가 밝히는 탈원전에 관한 오해와 진실은? 일청을 권합니다! 탈핵에 대한 완벽한 정리!


2017.8.1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한국 탈핵운동을 이끌어 온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가 밝히는 탈원전에 ...

화, 2017/08/0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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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민중의 소리



진실을 마주할 때에만 아픔을 멈출 수 있습니다.

-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고 박모 경위의 명복을 빕니다.

 

928일 새벽,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박모 경위가 자살했다.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재심이 열리면서 겪은 정신적 고통이 자살의 원인이었다고 한다. 박모 경위는 당시 수사팀 막내로서, 억울한 누명을 쓴 피해자 최모씨에 대하여 불법 감금 수사가 있었음을 825일 재심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했다. 가장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할 형사반장은 퇴직한 상태라 소환할 수 없고, 나머지 경찰들은 책임을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와중 박모 경위만 법정에 출석하여 가혹 행위 등에 대해서 일부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은 우리 사회 사법정의가 무엇인지 되묻는 사건이다. 16년 전 억울한 누명을 쓴 15살 소년이 경찰의 가혹행위로 인해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사건 발생 3년 후 진범이 잡혔지만 검찰-경찰은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진범을 풀어줬다. 제대로 자신을 변론할 수 없었던 소년만이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당시 진범을 풀어준 검사는 현재 대도시 강력부장 검사로 승진하고, 살인범을 조작한 경찰 수사 책임자는 정년퇴직해 평온히 살고 있다. 검찰-경찰로 이어지는 진실은폐의 고리 속에서 누군가는 안락한 삶을 누리고, 누군가는 10여년이 넘는 옥살이로 폐허가 되고, 누군가는 죄책감과 심리적 고통에 자살했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평온한 삶을 누리고 있고, 가장 약한 고리였던 수사팀의 막내와, 피해자 최모군만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정작 책임을 물어야 할 이들에 대해 책임을 묻지 못하는, 과연 이 나라의 사법정의가 존재하는가?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재심은 그래서 중요하다. 불법 감금 폭행 및 가혹수사로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이의 누명을 벗기는 것,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이 나라 사법 정의를 세우는 가장 소중한 일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쉽게 은폐되어버리고, 감춰져 버리는 진실을 수면위로 띄우고 세상이 정의와 마주하게 해야 한다. 약하기 때문에 피해자가 되고, 약하기 때문에 삶을 마감하게 되는 불온한 질주를 이제는 멈춰야 한다. 최군은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박모경위는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불행해져야 하는가? 더 이상의 희생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엄정한 재수사가 이루어져야 한. 진실을 마주할 때에만 아픔을 멈출 수 있다. 더 이상 최군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한국사회가 은폐된 사법폭력의 진실과 마주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와 공권력에 의해 온전한 삶을 누릴 권리를 빼앗긴 최군과 사회의 정의를 위해서 재수사를 촉구하며, 재심 사건에 대한 올바른 판결을 기대한다.

 

 

다산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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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6/09/2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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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내정자에게 보내는 공개질의서

 

7/22, 참여연대가 소속된 <국가인권위 위원장 인선절차 마련 및 투명성 확보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준) (약칭 <인권위원장대응연석회의>)는 대통령이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한 이성호 서울중앙지법원장에게 국제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공개적이고 참여적인 절차 부재 없이 국가인권위원장으로 내정된 것에 대한 입장을 묻는 공개질의서를 보냈습니다.

<인권위원장대응연석회의>는 이성호 내정자 측의 공개질의서에 대한 답변을 수령하는 대로,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계획이며, 투명한 인권위원 인선절차 마련을 위한 활동과 내정자에 대한 철저한 모니터링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질의서>

 

이성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내정자에게 보내는 공개질의서   

 

 

안녕하세요.

 

저희는 인권단체, 시민단체들로 이루어진 국가인권위 위원장 인선절차 및 투명성 확보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준)(약칭 ‘인권위원장 대응 연석회의’)입니다. 7월 20일 청와대가 이성호 서울중앙지법원장님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한 것에 대해 우리 시민사회는 매우 우려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권위원장 내정에 대해 국제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공개적이고 참여적인 절차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정자께서 인권과 관련해 어떤 일을 해왔는지도 청와대는 밝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내정자께 몇 가지 질의를 하려고 합니다. 

 

인권위원장이라는 지위가 한국의 인권상황 증진을 위해 매우 중요하기에 공개적으로 질문합니다. 진지하고 성의 있게 답변해주시리라 믿습니다. 

 

1.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장을 어떤 공개적이고 참여적인 절차 없이, 국제인권기구의 권고를 무시하고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내정해온 관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가인권기구 간 국제조정위원회(ICC)에서 2008년부터 인권위원의 인선절차가 없음을 시정하라는 권고를 했습니다. 2014년 3월, 10월, 2015년 3월에는 공개적이고 참여적인 인선절차가 없음을 문제 삼으며 등급심사를 보류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올 3월 등급심사에서는 인권위원장 8월 교체를 언급하며 참여적이고 공개적인 인선절차를 강조했는데, 청와대가 이렇게 국제인권기구의 권고를 무시하고 이성호 후보자를 내정한 것입니다. 2008년부터 한국과 해외의 인권시민사회단체들도 공개적이고 참여적인 인선절차를 만들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으나 그동안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이번에도 또 그렇게 임명절차가 강행된 것입니다. 이에 대한 내정자의 의견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이번 청와대의 일방적인 인권위원장 내정으로 내년 ICC 등급심사에서 A등급에서 하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인권위원장 내정이 재차 강행된 것에 대해 저희들은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아울러 밝힙니다.

 

2. 국가인권위원회법 제5조 2항에는 “위원은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 중에서 다음 각 호의 사람을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은 내정자께서 어떤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청와대가 내정자를 인권위원장으로 추천했을 때 수락한 근거는 무엇입니까?

 

또한 내정자께서는 그동안 표현의 자유, 장애인권, 성소수자인권 등 소수자분야 인권옹호 등 여러 인권영역의 활동 경험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십시오. 

 

3. 내정자께서 오랜 법조 경력을 가지신 것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만, 법률전문가가 곧 인권전문가인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더구나 현직 법원장이 바로 독립기구의 장관급 공직에 취임하는 것은 인권위의 독립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권위원(장) 중 상당수가 법률가로 채워져 왔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것이 그 실증적인 증거입니다. 국제인권기구에서도 위원회의 다원성(diversity)를 강조하고 법률가가 과다대표되는 것을 경계해 왔습니다. ICC의 권고에서도 “국가인권기구의 지도부 및 직원 구성의 다양성은 국가인권기구가 속한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인권 문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대처 능력을 향상시키며 또한 모든 국민들의 국가인권기구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 시킬 수 있다고 한 바 있습니다. 현재 인권위원 11명 중 7명이 법조인 출신이며 법학자까지 포함하면 8명입니다. 실정법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법률가가 실정법을 넘어서는 인권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자리에 적합한지도 의문입니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어떤 입장이신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목, 2015/07/2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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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70년, 강제징용과 피폭의 땅에서 생각하는 전쟁 그리고 평화
[2015 서울KYC 동아시아 이해를 위한 일본 평화여행 in 큐슈]


지난 8월8일부터 11일까지 3박4일의 일정으로 서울KYC회원 20명과 함께
일본의 강제징용과 피폭의 장소인 후쿠오카, 나가사키, 기타큐슈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1945년 전쟁은 멈추었고, 식민지 해방을 맞이하였지만,
70년이 지난 2015년 일제강점기 당시의 상처와 고통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이런 상처와 고통을 어떻게 기억하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또 하나의 과제를 안고 온 여행이었습니다.
가장 뜨거웠던 일본을 뜨거운 가슴으로 만나고 온 기억을 사진을 통해 되짚어 봅니다.

여행첫날, 인천공항에 6시에 집결하여, 입국수속을 마치고, 8시 비행기를 탔습니다.
후쿠오카에 도착하여, 강제징용의 역사를 온몸으로 전하고있는 배동록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여행 내내 저희와 함께 해주신 재일조선인 2세 선생님이셨는데, 연세가 70대의 고령이었지만,
늘 뛰어 다니실 만큼 정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날이 너무 더워서 건강이 무척 걱정되었습니다.

답사 첫번째 장소는 지쿠호 지역의 [무궁화당]
지쿠호 지역 탄광에서 강제징용으로 끌려와서 가혹한 노동에 목숨을 잃은 조선인들의 유골은 방치되었고,

방치된 무연고묘를 2000년 지쿠호지역의 재일동포와 뜻을 함께 하는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납골당입니다.
당시 이 납골당을 만들었던 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향에 못가는 안타까움을 [고향의 봄] 노래를 합창했습니다.  



두번째 장소는 덕향추모비!
1936년 아소탄광 화재로 25명의 조선인이 목숨을 잃었고,
이후 노동자들의 동요를 막기위해 추모비를 세웠으나, 관리하지 않아 쓰러져가는 추모비를
1997년 뜻있는 일본인들과 동포들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세워졌습니다.

아소탄광은 전 총리였던 아소다로 집안이 운영하는 탄광으로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했다", "위안부결의는 조작이다"라는
망언들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인적 드문, 주택가 공터에 자리잡은 덕향추모비
찾는 사람이 없는지,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외로운 추모비 앞에서 향도 피우고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도 한잔 올렸습니다.
지금이라도 편히 쉬셨으면 하는 마음...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강제징용의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도 해봅니다.  



세번째 장소는 보타야마를 지나, 타가와지역의 [한국인징용희생자위령비]로 갔습니다.
이곳은 미쓰이 타가와 탄광이 있던 곳으로 폐광한 후 석탄역사박물관을 만들었고,
가장 높은 곳에 한국인 강제징용자 위령비를 세웠습니다.
생전에 가장 낮은 곳에서 힘겹게 살았지만,
죽어서만은 가장 높은 곳에 영혼을 쉬도록 한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석탄역사박물관은, 조선인 강제징용, 강제노동의 역사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 높은 곳에 세워진, 위령비가 당시의 아픔을 말해주고 있을 뿐입니다.



지쿠호지역은, 탄광이 밀집되어 있던 곳으로 큐슈 강제징용 역사의 아픔을 잘 보여줍니다.
그중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휴가묘지에서 우리는 모두 할말을 잃었습니다.

보타이시(쓸모없는 돌)로 겨우 이곳이 묘지였다는 표식만 되어있는
조선인 무연고묘인 휴가묘지

집에서 기르던 개 고양이를 기억하는 묘비까지도 세우는 이곳에서!
조선인의 묘는 작은 돌들로 표시되어 단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곳을 아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그 위치가 전해져 오는 곳이었습니다.
묘역표시인지, 그냥 돌인지 구분하기도 힘든 휴가묘역에서
실수로 돌을 밟기라도 할까봐 조심조심 걸으며,
배동록 선생님께서는 강제노역의 상황을 [신세타령]이라는 곡조로 증언해주셨습니다.

강제노역의 처참함과 고달픔, 배고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신세타령은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들려줬습니다.
듣는것만으로도 아픔이 느껴지고,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새벽부터 시작한 첫날의 평화여행은 휴가묘지를 마지막으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던 그런 더운날,
저 한복을 입고 잊혀질지 모르는 역사를 얼마나 알리고 다니셨을까요?
낡아진 배동록 선생님의 한복 바짓단을 보니, 더워도 덥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여행 두번째날은 나가사키로 이동하였습니다.
1945년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8월 9일!
조선인위령제는 나가사키 평화공원 '조선인위령비'앞에서 7시30분에 있어서
그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습니다.

일본 남쪽의 가장 큰 항구도시 나가사키는
2차대전 당시 군수품, 선박, 무기등 전쟁물자를 생산하는 도시로, 두번째 피폭도시입니다.  
물론 이곳에는 많은 조선인들이 강제노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1차 피폭이 되었고,
피폭된 이후 이곳에서 사고처리까지 하게 되어 2차 피폭까지 입게되었습니다.
일본은 원자폭탄의 유일한 피폭국이 일본이라고 하지만,
그 당시 피폭된 많은 수의 조선인들도 있었습니다.
재일조선인 피폭자의 인권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그리고 피폭자들이
이른 시간부터 많이 모였습니다. 정작 한국인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계단 한켠에 자리잡고 반핵평화에 대한 기원
그리고 조선인 피폭자들을 추모하는 마음, 그들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손피켓에 담았습니다.



추모제 이후, 피폭도시 나가사키를 알기위한 필드워크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리구치 선생님과 함께 나가사키 평화공원, 폭심지와 주변, 우라카미 성당 등을 답사했습니다.
모리구치 선생님은 고등학교 교사출신으로 은퇴 후 일본의 전쟁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요구하는
일본시민모임에서 활동을 하고있는 자원활동가십니다.







원자폭탄이 떨어졌을때의 상황과 복구된 지금의 모습을 모리구치 선생님의 꼼꼼한 해설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나가사키 형무소가 있던 평화공원 주변을 돌아보며,
피폭당시 떨어져나간 우라카미 천주당의 석탑, 형무소의 돌담의 흔적, 반공호 등등
70년전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현장을 직접 둘어보았습니다.

자료가 가득 든 무거운 가방을 메고, 따가운 뙤약볓 속에서
나가사키의 고통과 아픔, 일본의 씻을 수 없는 전쟁의 책임을 이야기 하시는
리구치 선생님 앞에서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더욱이 70세가 넘으신 모리구치 선생님이 피폭자였다는 사실에 우리는 잠시 할말을 잃었습니다.
본인이 전쟁의 피해자이기때문에, 더욱 생생한 증언을 할 수 있고.
그렇기때문에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비판에 더욱 울림이 있었습니다.




다음 장소는 스미요시터널입니다.
아직도 터널 위로는 도로가 놓여있어 이곳에 이런 터널이 있었을까
상상하기 힘든 곳에 터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일본 비밀 터널공장으로 미쓰비시 병기 스미요시 터널공장이었습니다.
이곳 역시 조선인들의 강제 노역을 통해 침략전쟁의 병기를 만들던 곳입니다.
처음엔 시원한 바람이 나와서 좋아했는데, 이곳의 용도를 알고 나니 오히려 서늘해졌습니다.



나가사키를 둘러보며 느꼈던 것중 하나,
일본은 원폭도시를 통해 전쟁 피해자의 모습만 보여줍니다.
전쟁가해국으로써의 책임과 반성은 나가사키 역사관에서도,
또 평화의 공원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일본의 가해책임과 보상문제에 초점을 다룬 자료관이 있었습니다.
1995년 오카마사하루 목사의 뜻을 이어받아 만들어진
[오카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입니다.
뜻을 같이 하는 시민들에 의해 운영되는 이 기념관은
원폭의 참상을 초래한 원인이 극도의 잔학함을 만든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있다는 사실과
일본의 무책임한 태도를 알리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료관입니다.
이곳에서 강제징용당시의 탄광 갱도의 모형, 당시의 피해자들의 참상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빡빡한 일정이 모두 이렇게 진지했던것만은 아닙니다.

개항도시인 나가사키의 데지마지역에서 항구도 걸어보고,
약간의 여유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세번째 아침은 처음으로 호텔조식을 먹었습니다.
새벽비행기, 새벽출발 등으로 매번 간단하게 빵이나, 삼각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했는데,
모처럼 호텔조식을 먹어보았습니다. (물론 처음이자 마지막!)

제대로 된 아침을 먹고 가야할 장소는 다카시마(高島) 입니다.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과 전쟁포로들이 목숨을 걸고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곳이고,
군수품 생산과 수송등으로 재벌이 된 미쓰비시중공업이 있는 곳입니다.
다카시마는 하시마와 함께 이번 '메이지근대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 곳곳에 [근대문화유산 세계문화유산등재]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번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중 일부는 강제징용의 현장임에도,
이런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공간이 어떻게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훼리를 타고 도착하여 기무라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어를 공부하셨다는 기무라 선생님은 한국어로 해설을 해주셨는데,
이분도 교사출신으로 모리구치 선생님과 같은 자원활동가이십니다.

우리가 갈 장소는 나가사키에서 강제노동으로 돌아가신 조선인 무연고 묘지인 공양탑입니다.
가는길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물을 만나고
그 바로 옆에 방치된 수직갱도도 눈에 보였습니다.
또 이제는 관광상품이 되버린 강제노역의 지옥섬 쿤칸지마(군함도, 하지마)도
멀찍이서 바라보았습니다. (한수산씨의 [까마귀]라는 소설에 보면 이 쿤칸지마가 무대입니다.)

군칸지마는 1년전에 예약을 해도 입도가 쉽지 않다는 관광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에겐 아픔의 공간인데, 일본인들에겐 근대유산(?)의 공간이 되버렸습니다.
각자의 기억이 이렇게 다를수가 있을까요?



조선인 위령비가 있는 공양탑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는 않았습니다.

숲속으로 들어가 낫으로 길을 만들어가며 찾아간 공양묘 주변은 한동안 인적이 없었던 것 처럼
주변에 풀들이 가득했었습니다.

각자 갖고 있는 장비들을 이용해서 주변 묘역을 정리하고,
각자 갖고 있던 음식들을 조금씩 내어서 제물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먼곳에서라도 편히 쉬시라며 모두가 한마음으로 제를 올렸습니다.
일본의 오봉이 얼마 안남은 날이라, 마치 조상님들께 차례를 지내듯
모두가 절을 하고, 이제라도 편히 쉴 수 있기를, 돌아가신 분들의 평안을 기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시작한 [고향의 봄] 노래는 그곳에 있는 모든이의 어깨를 들썩거릴만큼
눈물지게 했습니다.  



다카시마 공양묘를 나와 주변의 납골당과 다카시마 신사를 방문했습니다.

다카시마 신사의 위령비에는 어느순간 조선인의 이름이 빠졌다는 말씀을 들으니
죽어서도 차별받는게 너무 서러웠습니다.

다카시마를 나와 미쓰비시 조선소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이름없는 조선인들과 전쟁포로들이 목숨을 잃었을까요?
그리고 2차대전후 일본은 군수사업으로 재벌이 된 기업을 해체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미쓰비시는 주요산업을 갖고 있는 어마어마한 기업입니다.
조선소 앞의 아리랑 고개를 바라보면서 함께 해주셨던 기무라 선생님과 이별을 하였습니다.

어제의 모리구치선생님, 오카사마하루에서 만난 일본인들 그리고 기무라 선생님을 만나고 나니,
보통의 일본은 전쟁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었으나,
이번 여행에서 만난 일본인들을 통해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해준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한일관계를 평화적으로 풀어가는데는 이런 일본의 시민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시민들의 힘이 중요하다는것도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이렇게 3일째의 답사는 마무리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가자 교류회를 가졌습니다.
여행의 기억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가 더해져 진솔한 시간이었습니다.  
의외로 우리 가까이에 강제징용의 피해자들이 많았다는것과
이 아픔의 역사가 과거가 아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것을 다시 한번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또 각각 활동하는 공간은 다르더라도, 역사를 해설하는 자원활동가로써
한국에 돌아가서 이 아픈 역사를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고, 잊지 않도록 해야 겠다는 이야기 등등
일본 평화여행을 통해 마음은 분노와 안타까움, 고마움으로 요동쳤지만,
적어도 평화가 왜 필요한지는 몸으로 눈으로 가슴으로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8월 12일일 마지막날은 기타큐슈지역으로 갔습니다.

1901년 만들어진 야하타제철소, 뜨거운 용광로에 피땀을 흘렸을 조선인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의 큰 축으로 자리잡은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등등의  일본의 기업들 ..
그 누구도 당시 조선인의 노역에 대해선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최근 한국법원 판결에서 일본제철이 조선인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판결을 내리긴 했지만,
많은 일본기업은 65년 한일조약을 근거로 배상책임을 지려들지 않습니다.
65년 졸속으로 맺은 한일조약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강제징용으로 많은 조선인들이 머물렀던 이곳에 학교가 만들어졌습니다.
후꾸오카 조선학교, 언덕배기 질척한 곳을 직접 일구어 만들었던 '우리학교'입니다.
일본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비싼 학비를 내야 하는 현실이지만, '우리학교'이기에 모두 감내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관몬터널을 지나 혼슈에 있는 시모노세끼로 넘어갑니다.
복어그림이 크게 그려진 칸몬터널을 뚫을때 조선인들이 많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저 터널을 지나 일본에서 제일 먼저 조선학교가 만들어졌다는 시모노세끼 조선학교를 둘러보았습니다.
조선학교를 지나 만난 곳은 지금은 오오츠보라고 하는 똥굴마을입니다.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이곳에는 분뇨처리장, 화장터 등등 혐오시설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어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 모여살던 곳이었고, 그러다보니, 조선인들이 많이 모여살던 곳이었습니다.
곳곳에 조선식 문패라던가 당시의 배수시설의 흔적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40년째 이곳에 거주하신다는 엄선생님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마지막 장소인 시모노세끼 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은 대륙침략의 발판이었던 관부연락선이 닿는 곳으로
조선과 일본,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연결시키는 곳이었습니다.

이 항은 많은 군수물자도 실어날랐지만, 많은 조선인들도 이곳으로 실어날랐습니다.
시모노세끼는 관부연락선을 타고 제일먼저 도착하는 곳으로,
창고에 2~3일 감금되어 있다가 큐슈, 홋카이도 등으로 강제노동 현장으로 끌려가는 곳입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얼마나 배고팠을까요?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일본 강제징용이 시작되는 출발점에서 이 평화여행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시간은 흘렀고, 그 당시의 기억과 기록은 사라지고 있지만
우리들이 보고듣고느끼고 배웠던 것들은 다시 또렷해지고 있습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3박4일동안 함께 해주신 배동록 선생님과
오랜 작별 인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다시 관몬터널을 지나 후쿠오카 공항으로 갔습니다.

이제 서울로 갑니다. 내 소중한 가족있고, 내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서울로 갑니다.
가족을 만나러 갈 수 있음이 이리 큰 기쁨인줄 새삼 느낍니다.
그리고 지척에 가족을 두고도 못만났던 그때 그 사람들,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수 없었고, 죽으려 해도 죽음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
전쟁이 만들어낸 참혹한 현실이 70년 전 과거의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준 현실은 아직도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의 아베총리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더 많고 사과도 여러차례했으니
이젠 전쟁을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하면서도
유사시 전쟁도 할수 있는 법안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과거의 일본의 모습을 통해 일본의 잔혹함을 직접 당한 역사이기에
이런 일본의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이번 평화여행을 통해,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픈역사라도 기억하고 잊지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역사를 해설하는 자원활동가로서 이런 역할을 우리가 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최근 몇년간의 평화여행중 가장 힘든 여정이었지만, 가장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여행이었습니다.
이런 여행을 만들 수 있도록 일본현지에서 강사섭외, 사전답사 등등
큰 도움을 주신 김향월, 김붕앙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통역을 해주신 이기회 선생님도 고맙습니다.
 
그리고 배동록 선생님, 모리구치 선생님, 기무라 선생님!
서울KYC에서 평화여행 왔다며 많은 응원과 격려를 해주셨던 일본 현지의 동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 전합니다.



*사진제공 : 양승수, 신미정, 정연하, 이명난, 조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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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5/08/31-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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