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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도 ‘대학’을 꿈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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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도 ‘대학’을 꿈꾸는가

익명 (미확인) | 화, 2016/08/23- 15:48

얼마 전, 이대에서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 문제로 학생들과 학교 간에 충돌이 있었다. 교육부의 평생교육 대학 설립 사업에 참여하려던 이대는 고졸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뷰티 웰니스’ 교육과정을 제안해 승인을 얻은 상태였다. 

 2016년 8월, 이대의 ‘미래라이프’ 대학

학생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학교가 돈에 눈이 멀어 학위 장사를 하는 것은 이대가 지켜온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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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교수들>은 기업화된 미국 대학의 현실과 추락한 대학교수들의 모습을 생생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미국 대학의 모습이지만, 한국 대학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미 평생교육원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새로 성인교육 단과대학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으며, 사업비 30억이 온전히 해당 사업과 교육 여건 개선에 쓰이리라는 것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 사업이 결과적으로 재학생들의 학업환경을 악화시킬 것이며, 대학교육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것으로 비판했다. 

졸업생과 동문회까지 가세하여 시위자의 수는 나날이 늘어났고, 1600여 명의 경찰 투입이라는 학교 측의 초강수에도 이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학교는 백기를 들었고, 사업은 백지화됐다.

당장은 학생들의 승리였다. 그러나 이대를 비롯한 대학의 앞날은 그리 순탄치 않아 보인다. 이번 사태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오늘날 한국의 대학들은 대체 어떤 피난길로 내몰리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 가장 먼저 챙겨야 하고, 절대 빠뜨릴 수 없는 마지막 봇짐은 무엇일까.

기업화된 대학,  위태로운 교수들

<최후의 교수들>은 신자유주의 시대 대학이 마주한 현실을 교수들이 처한 상황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 저자 프랭크 도너휴는 오하이오 주립대 영문학과 정교수이다. 이 책에서 그는 나날이 심화되는 미국 대학의 기업화와 시장화, 그에 따른 인문학 교수들의 지위 하락을 살펴보고 있다.

도너휴에 의하면, 지금의 대학은 정규직 교수의 종말,  곧 ‘최후의 교수’의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대학 교수는 종신 재직권(tenure)을 통한 신분적 안정을 기반으로, 자유로운 연구 활동을 보장받았다.

원래 대학은 중세의 길드(guild)를 배경으로 했는데, 경제적 사회적 제도적 독립을 통해 학문과 교육의 자율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교수의 신분 보장 또한 이에서 비롯됐다. 대학의 독립과 자율성은 곧 학문과 교육의 주체인 교수의 독립과 자율성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서보명, <대학의 몰락>, 동연,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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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대학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자치공동체의 모습으로 존속했다. 이는 대학의 독립성과 자율성의 기반이 됐다. 종신교수직도 학문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그러나 도너휴는 이러한 대학과 교수의 독립적, 자율적 지위는 나날이 와해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회복되기 어려울 거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이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대학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대학의 기업화, 시장화가 본격화되면서  대학은 연구와 교육이라는 본연의 기능과 역할보다는 취업과 지표에 주력해야 하는 영리 목적 기관이 되었다. 테일러주의(Taylorism)의 논리에 따라 대학의 생산성에 대한 행정과 관리가 강화됐고, 대학의 본령이었던 학문탐구와 인문교양 교육은 계량화된 연구실적과 취업률, 직업교육 강화에 밀려났다.

교수들의 지위 역시 급락했다. 교수직의 상당수가 비정규직화됐으며, 지금까지 교수직의 필요조건으로 여겨진 종직 재직권 또한 의문시됐다. 대학은 이제 더 이상 상아탑이나 교학상장의 공동체일 필요가 없으며, 교수들은 보고서와 취업률에 쫓겨야 하는 관리감독의 대상이 되었다.

위기의 학문, 인문학

이 과정에서 가장 타격을 입는 것이 인문학 전공자들이다. 기업화, 시장화된 대학에서는 생산성이 절대적 가치가 된다. 돈이 되지 않는 인문학과 그 전공자들은 가장 먼저, 가장 신속히 사라져야 할 폐기물이 된다. 

대학들은 앞다퉈 인문학 관련 학과와 전공들은 축소, 폐지했고, 인문학 교수직과 정규직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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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인문학이 퇴출된다는 소식은 더 이상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은 뉴스이다. 인문학에 적대적인 환경에서 인문학은 항상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미지 출처: http://blog.besunny.com/?p=7353)

대학은 몇몇 저명한 인문학 교수들에게만 종신재직권을 허용했기 때문에 교수 사회 내 경쟁은 더욱 가열됐다. 얼마 안 되는 종신재직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학문적이건 대중적이건, 인지도를 높여야 했고, 이 때문에 가시적인 학문적 지표들, 곧 연구물의 수와 단행본의 출간 등에 매달리게 됐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대학 개혁은 연구환경의 근간이 되는 연구비 지원과 출판 및 도서관에 대한 재정 역시 축소시켰다. 이로 인해 교수들은 자비로라도 연구와 출판의 활로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최소 투자, 최대 효과’라는 냉혹한 생산성의 논리는 교수사회에도 예외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른바 ‘열정노동’ 혹은 ‘헝그리 정신’.

인문학 전공 대학원생들 역시 해가 갈수록 줄어들었다. 인문학 전공 박사들은 실업자와 동의어가 됐다. 졸업 후 첫 일자리가 ‘맥도널드’라는 우스개소리는 당사자들에게는 전혀 우습지 않다.

도너휴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대학이 사라진 미래에는 이들을 위한 일자리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나마 학문과 교육에 대한 열정이 높은 몇몇 소수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학자와 교육자로서의 정체성을 이어가려 하겠지만, 기약 없는 ‘고속도로 인생(우리 식 표현으로는 보따리 장수)’에서 하나, 둘씩 지친 탈락자만 늘어갈 뿐이다. 바야흐로 인문학 박사 학위는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처럼 무용하고 쓸쓸하다.

미국의 경우 인문학에 대한 적대와 공격은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20세기 초부터 카네기를 위시한 자본가들이 끊임없이 대학의 인문학적 지향을 비판하고 공격했다.  

카네기는 전통적인 대학교육을 받고 졸업한 사람들을 “다른 행성에나 어울릴 녀석” 이라고 폄하했다. 셰익스피어나 호머 따위를 연구하는 일은 시간을 허비하는 쓸모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대학 교수란 노동자이기를 거부하는, 고집 세고 교만한 자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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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의 모습. 카네기도 대학의 인문학자들을 쓸모없는 인간 취급을 했다. 그래서 그는 사재를 출연해 1905년 노동자계층 자녀들을 위한 직업훈련학교로 카네기공업학교(Carnegie Technical Schools)를 세웠다. 이 학교가 이후 멜론연구소와 통합해 종합대학인 카네기-멜론대학이 됐다. 자신이 세운 학교가 그토록 경멸했던 종합대학이 된 사실을 카네기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미 당대에 ‘대학 무용론’에서부터 ‘교양대학론’, ‘실용주의 대학론’에 이르기까지 대학의 기능과 위상에 대한 온갖 논쟁이 있었으며, 이 와중에 인문학은 언제나 그 ‘무용함의 유용함’을 알지 못하는 몰이해 속에서 외롭고 고독한 존재증명을 해야 했다. 

한국의 대학, 쿼바디스?

해방 후 한국엔 미국식 시스템이 자리를 잡았다. 교육제도와 대학 체제 역시 예외가 아닌데, 한국의 대학은 기본적으로는 미국의 ‘대중 대학 모델’에 기초하고 있다. 

즉 고등교육 재정의 상당부분을 국가가 담당하는 독일이나 프랑스 등 일부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미국 대학의 경우 그 태생적 논리가 수요자 중심에 기초하고 있으며, 재정 역시 학생들이나 기업 혹은 몇몇 거대 비영리 재단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국립대는 물론이고 대다수의 사립대학들은 재정의 상당 부분을 국고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는 대학의 공공성에 근거한 지원이라기 보다는 한국적 국가주의의 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미국 대학과의 차이는 미국 대학이 비영리 재단이나 기업 등 좀 더 직접적으로 자본의 영향을 받은데 비해, 한국 대학들은 교육부를 통해 간접적으로 자본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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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겪는 첫번째 사회경험은 ‘실업’이다. 대학이 졸업생의 취업을 고민하고, 진로를 도와주는 일은 불가피하다. 모두 학자가 될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대학은 본래의 대학에서 궤도를 이탈하게 된다.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신자유주의적 대학 개혁 역시 미국에  기원을 두고 있다. 예컨대 서울대가 연구중심 대학을 표방한 것이 1990년대 중반부터인데, 이는 정확히 미국식 모델을 모방한 것이다.  서울대가 학부를 축소하고 대학원 정원을 늘리면서 연구중심 대학을 표방하자 다른 대학들도 이를 따랐다. 이는 미국의 경우에서 발견되듯이, 대학들이 위계화, 서열화되어 있는 곳에서는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언젠가부터 중앙일보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대학 순위를 매기고 공개함으로써 고등교육 기관 평가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 역시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 대학에서 이뤄진 행태였다. 

이 모든 변화의 배후에는 물론 교육부가 있다. 교육부는 대학에 대한 통제와 재정 지원을 빌미로 대학을 예속시켰다. 예컨대 1980년대 대학진학률이 80퍼센트에 이르렀던 배경에는 당시 전두환 정권 교육부의 너그러운 졸업정원제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학을 졸업한 뒤  첫번째 사회경험이 ‘실업’이고, 조만간 학령인구도  40만명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예전처럼 교육부의 후원 아래 맘 편히 ‘학생 장사’만 하기에는 생존이 위태로운 지경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가 이번에 내든 카드는 ‘대학 구조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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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학은 교육부의 손아귀에 있다. 최근에는 구조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돈을 풀어 대학을 길들이고 있다. 생존이 급급한 대학으로서는 그 돈에 연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얻는 생존은 대학의 본질을 크게 훼손한 뒤에 얻은 성과에 불과하다. (이미지 출처: http://kkh1119.tistory.com/242)

최근의 BK(Brain Korea) 21, SSK(Social Science Korea), 프라임 사업(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 등은 모두 대학의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정책들이다. 이들 정책의 명분은 화려하지만, 실상은 알량한 푼돈을 쥐고, 대학들을 줄 세우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냉혹한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의 논리 앞에서 대학들은 다시 눈 먼 좀비처럼 교육부 앞에 도열한다. 앞서의 이대 사태는 이러한 맥락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어떻게 밥만 먹고 사나

그 결과 책에서 언급된 미국 대학과 교수 사회의 변화는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발견된다. 이미 몇몇 대학들은 실질적으로 기업의 경영통제를 받고 있고, 인문학 관련 학과의 통폐합이나 대학 구조조정이 일상사가 되고 있다. 

대학의 강단은 스스로를 ‘일용잡직’이라고 자조하는 비정규직 강사들로 채워진지 오래이며, 인문학 박사들은 보따리 장수가 되어 오늘도 이 학교 저 학교을 헤맨다. 1-2년의 단기 계약과 저임금, 모욕적 처우 속에서 그저 지식노동자로 하루하루를 살 뿐이다. 

정규직 교수들의 사정 역시 편치 않다. 교수의 능력이 펀드나 사업따기로 평가되고, 수시로 재임용 탈락의 위협을 받는다. 논문이 아니라 보고서를 쓰느라 밤을 새고, 어떻게 하면 평가지표를 맞출까 전전긍긍한다. 학과의 생존이 자신의 생존이며, 취업률은 생존을 담보하는 유일한 필살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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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졸업생의 취업률, 인문학, 사회와 격리된 학문탐구…지금 한국의 대학은 존립의 이유를 찾기 위해 방황 중인 것처럼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대학의 본분이라는 것이다. (사진 출처: http://sgsg.hankyung.com/apps.frm/news.view?nkey=2014092900443000051&c1…)

이런 대학에서 무슨 학문을 하며, 무슨 교육이 있겠는가. 백년을 내다보는 연구, 미래인재를 키우는 교육은 공허한 빈말일 뿐이다. 

혹자는 대학 밖은 더 치열하다며 ‘우는 소리 그만 하라’고 힐난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말은 대학을 대학으로 만들었던 근본을 버리라는 말과 같다. 그걸 버리면 대학은 더 이상 대학이 아니다. 

대학은 원래 사람과 삶, 공동체에 대해 질문하고, 고민하는 곳이다.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곳이 대학이다. 문제는 사람은 밥만 먹고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해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매우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우리 자신에게 끊임없이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묻는다.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이 맞는지, 그 길의 끝에서 행여 낭떠러지를 만나는 것은 아닌지 묻는 것이 인문학이다.  

인문학만으로는 살 수 없지만, 또한 인문학없이도 살 수 없다. 정말 우리는 인문학 없이 살기를 원하는가. 

한국의 대학에게 묻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대학 스스로 자신의 운명이나 처지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 대학이 스스로의 사명과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는지 의심스럽다.

대다수의 대학들은 기업화와 시장화에 저항하기는커녕 문제의식조차 없어 보인다. 인구는 줄어가고 평균 수명이 길어져 가는 상황에서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대학의 사정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어차피 고령화 사회에 필요한 기성세대의 재교육은 대학의 역할이고, 또 대학 자체의 개방과 유연화 역시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그렇더라도 대학이 대학 아닌 것으로 변질되면서까지 살아남는다면, 그때의 대학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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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와 교육은 대학의 양대 기둥이다. 인문학도 그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차분히 고민하기에는 현실의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는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말라 죽은 뒤 길을 찾으면 무슨 소용인가. 대학과 인문학에 대해 사회적 고민을 심화시켜야 할 시점인 듯 하다. (사진 출처: 건국대 제공)

나는 다소 허황되게 들릴, 공상적인 제안을 하고자 한다. 이럴 때일수록 제대로 된 인문학 교육을 강화하자!  

지금과 같은 단순한 물량공세 위주의 대학교육을 진짜 대학교육으로 질적으로 심화시키라는 것이다. 이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을 도도하게 거스르라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이상주의자의 허황된 꿈일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이상은 현실의 불가능한 꿈이었고, 그 꿈의 존재로 인해 현실도 조금씩 개선됐다. 꿈이 없는 현실은 지옥이다. 인문학은 현실의 지옥을 인간의 세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도너휴는 향후 대학에서 인문학이 극소수 대학이나 학생들의 전유물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비판적 지성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사라질 수 없는 것이기에 기업화된 대학의 한켠에서 인문학은 초라하지만 굳세게 명맥을 이어갈 것이다.

어쩌면 그런 모습은 과거 수도원에 갇혀 진리탐구와 인문교양교육을 하던 일부 스콜라들의 모습과 유사할 수 있다. 어쩌면 이토록 막강한 실용의 세상에서 오늘의 인문학자들은 벌써 그렇게 돼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최후의 교수들>은 쉽고, 속도감 있게 읽힌다. 또 미국 대학의  속사정을 여러 사례로 보여주고 있어 읽는 재미가 있다. 

번역 또한 매끄럽다. 옮긴이 차익종은 국문학을 전공하고 박사 학위를 받은, 그 자신 인문학자이다. 이런 이들 덕분에 태평양 너머의 생생한 지식을 편하게 앉아 읽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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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있다면 서울엔 연트럴파크가 있다. 농담이 아니다. 홍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와 가좌동 방면으로 길게 이어진 공원이 바로 연트럴파크다. 이 연트럴파크엔 늘 사람이 많다. 연트럴파크 덕분에 변두리이던 연남동은 졸지에 핫 플레이스가 됐다.

본디 연남동은 개발의 수혜지인 서교동 및 동교동의 반대편에 위치한데다 경의중앙선 철로와 내부순환로의 존재로 인해 접근성과 개발가능성이 매우 떨어지는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비교적 집값과 전월세 가격이 저렴했다. 그러던 연남동이 상전벽해의 변화를 맞으니, 홍대입구역이 공항철도와 지하화한 경의중앙선이 지나가는 트리플 역세권이 되고, 경의선 폐선 부지가 공원으로 탈바꿈 한 것이다. 교통 인프라가 밀집되고 공원까지 생기니 사람들이 밀려드는 건 당연지사. 연남동의 땅값과 집값과 임대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2013년을 기준으로 연남동은 2015년 거래가격이 150% 정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고, 임대료 상승률도 최대 300%에 이른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3년 1분기 연남동 소재 상가 임대료는 ㎡당 2만4000원이었는데 올해 2분기에는 3만6000원을 기록했다.([젠트리피케이션②]연남동, 화교상권서 철길따라 ‘길맥’상권으로)

개발의 수혜지인 서교동 및 동교동의 반대편에 위치한데다 경의중앙선 철로와 내부순환로의 존재로 인해 접근성과 개발가능성이 매우 떨어지는 곳에서 트리플 역세권 형성과 경의선 폐선 부지의 공원화로 일약 ‘핫 플레이스’가 되고 있는 서울 연남동. (사진: 중앙일보)

 

연남동은 가로수길과 삼청동과 서촌과 홍대와 경리단길 등이 걸어간 길을 정확히 뒤따라가고 있다. 연남동 케이스를 보면 다음과 같은 경로가 보인다.

#  지대가 낮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생활하고 창작활동도 한다

→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교통 인프라와 공원 등의 문화 인프라를 확충한다

→ 유동인구가 급증한다 → 각종 영업시설이 들어선다→ 지대가 폭증한다

→ 땅과 집과 상가를 소유한 사람들은 부가 급증한다

→ 임차인들은 치솟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쫒겨난다 #

온갖 문화.사회적 인프라가 집중되고, 문화자본이 투입되는 곳에 사람들이 몰리는 건 당연한 이치. 특정 공간에 사람들이 몰리면 지대가 치솟고, 지대가 치솟으면 땅값이 폭등한다. 부동산 소유주들은 단지 특정 공간에 토지와 건물의 소유권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와 타인이 만든 부를 독식하는 것이다. 특정 공간의 자리에 연남동을 놓으면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물론 부동산 불로소득의 전유는 합법이다. 그러나 그처럼 부정의하고 비효율적인 일도 세상에 드물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최소주의적 정의(justice)는 “기여한 자가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가져가는 것”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의 전유는 이 최소주의적 정의에 완벽히 반한다. 나는 연남동 케이스처럼 ‘비용의 사회화’와 ‘이익의 사유화’의 극단적 결합을 알지 못한다.

누가 뭐라고 말해도 부동산을 통한 이익은 불로소득이며, 합법의 탈을 쓴 강탈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은 모든 불로소득의 어머니며 특권의 우두머리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비롯한 특권이 온존하는 한 대한민국의 정상적 발전은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연남동 케이스처럼 공공과 정부의 노력과 기여에 따라 상승한 개발이익의 환수에 노력해야 한다. 그게 공정이고, 정의다. 공공의 것은 공공에게 귀속되어야 하고, 개인의 것은 개인에게 귀속되어야 한다.

월, 2017/12/1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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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의 한 재건축 아파트 단지.

강남 재건축 아파트 단지에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가 적용돼 특정 단지의 경우 조합원 1인당 부담금이 최대 8억 4천만원에 달할 것이란 소식에 부동산 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단지들은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그런데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에 대해 아래와 같이 조금만 정확히 알면 호들갑을 떨 일도, 저항할 일도 아니란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1. 공공이 만든 개발이익을 공공과 소유주가 나누는 것

먼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는 공공이 만든 개발이익 중 초과이익을 공공이 소유주와 나누는 것 뿐이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에 따라 의미 있는 부담금을 납부할 단지들은 거의 전부 강남에 위치한다.

강남 재건축 단지의 초과이익 규모가 다른 지역 보다 압도적인 건 강남의 교통, 교육, 경제, 문화 인프라가 단연 우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남의 우월한 인프라는 전부 공공이 만든 것이다. 따라서 공공이 만든 인프라로 인해 발생한 재건축초과이익을 공공과 소유주가 분점하는 건 지극히 정당하다.

부담금 최고 8억 4천만원이면 보수적으로 잡아도 재건축초과이익(재건축 아파트 준공 후 가격-재건축 추진위설립승인 당시 공시가격 및 개발비용-주변 집값 평균상승액=재건축초과이익)이 17억도 넘는다. 부담금을 내도 10억원 가까이 남는 것이다. 억울하거나 분할 일이 아니다.

2. 미실현이익에 대한 과세라 위헌이라는 주장에 대해
 
재건축추진조합과 비대언론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가 조합원간의 형평성 및 미실현이익에 대한 과세로 위헌이라고 주장한다.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이다.

재건축 추진 주택을 소유한 시점에 따라 조합원 간의 개발이익의 규모가 다르겠지만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는 2006년부터 만들어져 제대로 시행도 못해 보고 유예만 됐던 제도로 작년으로 유예기간이 끝나 올해 시행이 예정됐던 제도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투기목적으로 조합원이 된 사람들이 형평성 운운하는 건 우습다. 또한 부담금은 특정개인에게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부담금 총액을 계산해 해당 단지에 총액을 부과하고, 그 총액을 조합원간에 어떻게 나눌 것인지는 조합에서 결정할 사무에 불과하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미실현이익에 대한 과세가 합헌이라고 94년 토지초과이득세제 케이스와 2008년 종부세 케이스에서 일관되게 판단하고 있다. 한편 재건축초과이익환제는 양도소득세와 과세의 목적과 대상, 과세 방법 등이 상이해 이중과세에 해당하지 않는다.
 
3. 재건축 추진을 어렵게 해 강남집값이 더 뛸 것이란 주장에 대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가 재건축을 어렵게 하고, 재건축이 어려워지면 강남에 주택을 추가공급할 거의 유일한 방법이 봉쇄되는 것이라 추후에 강남집값이 더 폭등할 것이란 주장은 곡학아세에 가깝다. 단적으로 재건축관련 규제가 무너진 채로 남아있던(즉 공급이 여의치 않던 시기)2008년부터 2014년까지 강남재건축 시장은 침체상태였지만, 최경환이 재건축가능연한을 40년에서 30년으로 줄이겠다고 선언(즉 시장에 공급물량 대거 늘어나게 됨)하자 오히려 재건축아파트의 가격이 폭등한 사례를 봐도 재건축 공급물량 축소와 가격폭등 사이의 상관관계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지 알 수 있다.

또한 그간 분당, 판교, 위례 등 강남대체지를 부지런히 공급했지만 강남집갑은 계속 올랐다. 요컨대 강남집값 상승의 실체는 투기적 가수요이며 보유세 등을 통해 투기적 가수요를 눅이는 게 해법이지 공급확대가 해법일 순 없다.

월, 2018/01/2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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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특수 검사를 가리키는 ‘칼잡이’라는 말이 있다. 언론과 검찰은 불의에 당당히 맞서는 이상적인 검사를 그리며 ’칼잡이’라는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그들의 ‘칼’이 유독 정치권력에 무디고, 오히려 정치권력을 지키는 ‘방패’가 되는 모습을 국민들은 자주 봐왔다.

10월30일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첫 수습책으로 청와대 수석 비서관 일부를 교체하며 민정수석 자리에 또다시 ‘칼잡이’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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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위기에 몰린 박근혜가 청와대 비서진을 개편하면서 가장 먼저 임명한 사람이 최재경 민정수석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검찰을 쥐고 가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최순실 게이트’의 한 축으로 주목받고 있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검사 시절 ‘칼잡이’로 불렸는데, 후임자 역시 당대 최고의 칼잡이로 불렸던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54·사법연수원 17기)을 내정한 것이다. 

박근혜의 승부수

‘사태 해결을 위한 적임자’와 ‘정치 검사’라는 평가가 엇갈렸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 연루 의혹이 제기된 ‘비비케이(BBK) 사건’을 수사하면서 관련자 대부분을 무혐의 처분한 이력 탓에 ‘박 대통령이 MB에 손 내밀었다’는 호사가들의 반응까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김병준 책임 총리 카드’ 이전에 ‘최재경 카드’라는 수를 던진 것은 (두 차례의 사과와 상관없이) 앞으로의 검찰 수사를 컨트롤하고 국정 주도권을 계속 쥐고 가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에 대부분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민정수석은 검찰 등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자리인데 또다시 검사를, 그것도 검찰 내부에서 신뢰를 얻고 있는 ‘칼잡이’를 임명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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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5일 광화문광장에는 20만명의 시민이 모여 박근혜 하야를 외쳤다. 이런 상황에서 최재경 신임 민정수석은 검찰을 콘트롤함으로써 위기에 몰린 박근혜를 지켜야 할 위치에 있다. (사진 출처: http://tadream.tistory.com/16311)

11월5일 20만이 넘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박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 가운데 최 신임 민정수석의 행보는 앞으로의 정국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중 하나다. 

최 신임 민정수석이 박 대통령의 ‘칼’이 돼 침몰하는 배와 운명을 같이 할지, 아니면 박 대통령을 지키는 ‘방패’가 될지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TK성골로 승승장구…BBK 무죄 준 정치검사

경남 산청에서 태어났지만 최 수석은 대구고를 나와 검찰의 TK(대구·경북) 인사로 꼽혀왔다. 친박 핵심인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의 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하다. 

그는 1981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뒤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1985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1987년에 서울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김수남 검찰총장과 김현웅 법무부 장관의 1년 후배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 대검 수사기획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등 특수수사의 요직을 거치며 검찰 최고의 ‘칼잡이’로 불려왔다. 

최 민정수석을 설명하는데 빠지지 않는 말은 ‘뛰어난 수사능력’, ‘판단력’, ‘후배들의 신망’이다. 검찰을 출입하는 기자들도 대체로 이러한 평가에 동의한다.

‘TK 성골’이라는 배경과 상관없이 실제로 그는 특별수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날렸다. 2006년 대검 중수1과장 때 현대·기아차 비자금 사건 수사를 맡아 정몽구 회장을 구속했고, 론스타 사건 주임검사를 맡았다.

대검 수사기획관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구속하며 노 전 대통령 직접 수사의 밑돌을 놓기도 했다. 정치인·공직자·재벌 등 권력을 가진 이들을 겨냥하는 특별수사의 특성상 강직한 성품과 외압에 굴하지 않는 강단이 밑바탕을 깔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그는 소탈하고 겸손한 성품으로 검찰 내부 후배들의 두터운 신망을 받아온 것도 눈에 띈다. 이에 검찰 안팎에서 그를 예비 검찰총장으로 꼽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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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4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BBK 사건’과 관련해서 박영선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 ‘BBK 사건’ 수사지휘 검사였던 최재경 중앙수사부장이 한상대 검찰총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전후로 그의 이름 앞에 ‘정치 검사’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2007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재직 당시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에게 면죄부를 준 BBK의 사건 수사로 그의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검찰 TK 라인이 요직을 독점하며 민간인 불법 사찰, 내곡동 사저 사건 등에서 정권의 부담을 덜어주는 수사를 진행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그의 행보 역시 이러한 흐름과 같이 묶여 평가됐다.

특히 2010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의 민간인을 불법사찰 사건을 수사하며 정치 검사라는 비판을 거세게 받았다. 

2013년 1월 <한겨레> 보도 ( “최재경 중수부장, 사찰 핵심물증 틀어쥐고 시간끌었다” )를 보면 당시 대검 중수부장을 맡고 있던 최 민정수석이 민간인 사찰이 정권 차원의 조직적인 범죄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핵심증거(USB)의 수사팀 전달을 막은 의혹에 휩싸였다. 

이런 그의 ‘변신’에 대해 당시 한 검찰 관계자는 “비비케이 사건 뒤 야당의 정치적·감정적 비난을 받고 방어 심리 탓인지 생각 자체가 여당 쪽으로 가버린 것 아닌가 싶었다”고 바라보기도 했다.  (‘최재경 지검장, 한때 ‘특수통’ 명성…요직 거치며 승승장구’)

한상대 검찰총장과 충돌…검찰 내 신망 높아

물론 그는 2011년 대검 중수부장 시절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핵심 측근으로 꼽힌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구속하는 등 칼잡이의 자존심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검찰 내분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대검 중수부장을 맡고 있던 2012년 12월 중수부 폐지에 맞서 한상대 검찰총장과 정면으로 충돌했고, 결국 전주지검장으로 좌천성 인사를 당하기도 했다. 그를 따르는 검찰 후배들이 두터운 신망을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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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한상대 검찰총장은 수뢰검사와 성추문 검사, 그리고 중수부 폐지를 둘러싸고 자신에 맞섰던 최재경 중수부장에 대한 ‘보복 감찰’ 논란으로 집단 항명을 받아 사임했다. 한 총장이 사퇴 기자회견을 갖고 떠나는 모습을 최재경 중수부장이 지켜보고 있다.

차기 검찰총장으로 꼽힌 그였지만 그는 2014년 인천지검장을 끝으로 검찰 옷을 벗었다. 세월호 참사 뒤 검경이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검거 작전’ 실패의 책임을 진 것이다. 검찰 내부에서 승승장구하던 그가 다소 엉뚱한 데서 발목이 잡힌 셈이다.

박근혜의 검찰 될까?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능력에 인격을 더하면 최재경이다”는 말이 나올 정도(“‘전설의 특수통’은 ‘의뢰인 박근혜’를 구할 수 있을까”)로 그의 능력과 인품에 대해서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언제든 민정수석의 자리에 오를 만한 자격을 가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청와대행은 의미심장하다. 대통령의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르고 전국 30만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그는 검찰 등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민정수석을 맡았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11월2일 <한겨레TV>의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해 “수사능력이 탁월한 검사였다. 아주 훌륭한 검사다. 여러 가지 혈연, 학연, 또 검찰에서 맺어왔던 인간관계, 그런 인연들에서 과연 자유롭게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결국 그의 청와대 입성은 검찰 수사와 국민들의 분노를 막아내는 박 대통령의 방패가 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수, 2016/11/0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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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글(“일본군 위안부, 한국 시민의 힘 느꼈다”)에서는 종군위안부의 문제와 한국 민중운동의 승리에 대해 썼습니다만 이번에는 이전과는 반대 관점, 즉 정부측 관점에서 말해보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이후의 한국 민중운동이 직면할 위기와 방해 등 여러 가지 곤란을 명확히 예상하고 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종군 위안부의 문제를 간략히 개괄해 보겠습니다. 이전 기사에서는 자세히 서술하지 않았는데, 종군위안부가 탄행하게 된 배경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종군위안부는 여성인권 침해행위

근대 이전, 칼과 창으로 싸우던 시대에는 종군위안부라는 존재가 없었습니다.  그 시대는 행군하는 군대가 가는 곳마다 그 지방의 여성을 강강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근대에 들어와 종군위안부라고 말하는 조직이 생기가 되면서 적지 않은 군대의 행군선에서 강간당하는 여성은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종군위안부가 긍정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위안부가 되는 여성에게 일의 내용을 확실히 설명한 후에 그 일의 내용에 합당한 충분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습니다.  설명도 없이 여성을 속이고, 심지어 강제 연행해서 위안부의 일을 하게 한다면 그것은 행군선에서 강강당하는 어떤 여성의 피해를 다른 여성에게 옮기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종군위안부가 인도적인 관점에서 고안되었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당시의 일본 정부에는 그리 높은 인권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목적으로 종군위안부를 만들었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2009년, 하토야마 유끼오 일본 수상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이전을 정치목표로 세웠습니다. 그가 이러한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오키나와에서 일어난 한 가지 사건때문이었습니다. 

1995년, 오키나와 미군 기지 소속의 해병대원 2명과 미 해군 군인 총 3명이 당시 12세였던 소학교 6학년 소녀를 납치하여 3명이 돌아가며 강강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오키나와 현민의 반미감정과 반기지감정이 폭발했지만, 이 3명은 죄를 문책당하지 않고 본국으로 송환됐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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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일본 오키나와 현민들이 초등학교 소녀를 강간한 미군 해병대 사건에 대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mbc)

이는 일미지위협정에 근거한 것으로,  공무 중인 미군이 일본국민에게 위해를 가해도 일본 법률에서는 재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과거 미군이 일본에서 범죄를 저지른 죄를 문책한 경우는 한 번도 없고, 실제로 공무 중이 아니었다고 해도 보통 재판받지 않고 처리되었습니다.

오키나와에 배속된 미군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흉악한 범죄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처벌되지 않는다고 확신해서 범죄행위에 가담하는 인간이 바로 가까이서 활개친다는 것은 지역주민에게는 공포이자 인권침해일 것입니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이전을 계획했던 것입니다.

그 지역에 주둔하는 군대가 현지 여성을 강간하는 것이 빈발하게 되면, 현재의 오키나와처럼 그 지역에 주둔하는 군대와 이를 강제한 정부가 분노의 표적이 됩니다. 다시 말해 점령 후 해당 지역의 통치라는 문제에서 현지인들의 반감을 사서는 통치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종군위안부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군위안부는 군대가 주둔하는 지역의 여성을 지키는 것 뿐 아니라 그 지역의 통치의 편이를 목적으로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여성의 인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위안부가 될 여성을 속여서 데리고 간다든가, 강제연행해서 위안부 일을 하게 하는 등의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일본인

정부 관료와 정치가들은 통치라는 문제를 고민합니다. 국정의 담당자는 자국의 정치권력이 미치는 범위, 곧 자국 영토를 가능한 한 원만하게 통치하려는 의도에서 움직입니다. 이는 국내 치안이 정부의 책무라는 근대정치학의 정의에서 당연한 일입니다. 

정치가와 관료가 국민의 입장에 선다면 극단적인 문제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반대로 기계적으로 통치의 편이를 구한다면, 즉 정치가와 관료가 지배자의 관점에서 국민을 본다면, 시민운동을 억압하려고 할 것입니다.

실제 1960년 일미안보투쟁 당시, 키시 노부스케 총리는 국회를 포위한 33만명의 국민을 따돌리기 위해 진지하게 자위대 투입을 생각했습니다. 만약 이것이 실현됐다면, 천안문 사태 같은 일이 도쿄에서 일어났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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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아베 현 일본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당시 총리가 일본이 유사시 다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미·일 안전보장조약 개정안을 통과시키자 이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도쿄 시내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사진 출처: 마이니치신문)

그러나 당시 아카키 무네노리 방위청 장관이 “자위대가 출동해서 데모참가자 중 사망자가 생길 경우 항거행동이 전국규모로 확대해서 수습이 어려워진다”고 간언한 덕분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의 자민당 간부에게 이성이 있었다는 에피소드로서 회자되고 있습니다만, 아카끼 방위청 장관의 발언을 주의깊게 읽어보면, 자위대 출동을 저지한 것은 그것이 효과가 없기 때문이지, 결코 국민의 항거행동을 이해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국민의 항거행동을 무력화시킬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면, 그도 그 방법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60년 안보투쟁 이후에도 베트남 반전운동 등 반정부 투쟁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일본에서는 데모활동이나 정부에 대한 항거운동은 점점  줄어들어 지금은 ‘테러 준비법’ 등 인권탄압법안이 가결돼도 반대데모 참가자가 전혀 모이지 않습니다.

아마 수 십년 사이에 일본인은 정치에 무관심한, 인권탄압에도 둔감한 국민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가요?

일본의 엘리트층은 자신들이 국민의 지배자라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통치자의 관점에서 국민을 봅니다. 이러한 엘리트들은 국민의 데모활동이나 항거운동을 최대한 억제하려고 합니다. 

앞서 살펴본 키시 노부스케 총리는 국회를 포위한 국민을 자위대로 탄압하려고 했다가 그 방법이 효과가 없어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항거행동을 부수고 싶다는 욕구를 버린 것은 아닙니다. 항거운동을 무력화하기 위한 더 효과적인 방법이 모색되었고, 그 하나로서 실제 실시되었던 것이 노동조합의 합법적인 해체와 무력화입니다.

이 외에도 여러 방법이 시행돼 현재의 일본인은 서서히 정치에 관심을 잃고, 시민운동도 그에 비례해서 무력화되었습니다.

80년대 후반은 일한 쌍방에 상징적인 시기였습니다. 한국에서는 강한 국민운동이 전두환정권으로부터 민주화를 이끌어냈고 이어서 노동자대투쟁도 성공적으로 달성했습니다.

반면 일본에서는 노동조합 해체와 무력화가 이 무렵부터 본격화됐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일한의 시민운동은 명암을 달리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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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촛불시민혁명은 한국 시민사회의 에너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최근 한국의 촛불혁명은 공평무사해야 할 정부활동을 왜곡하고, 측근이 사익을 취하게 한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시켰습니다. 국민 항거행동의 승리입니다.

그렇지만 이를 탐탁치 않아할 관료도 있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종군위안부 문제를 처리한 관료들에서 그런 징후가 엿보였기 때문입니다.

민의를 무시하고 약간의 돈으로 일본 정부와 합의해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을 철거하려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물론 한국의 관료  입장에서 민의를 무시하고서라도 일본과 합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더라도 향후 일본과의 합의를 이행할 수 없게 될 경우 이는 한국 정부를 매우 곤혹스럽게 할 것입니다. 

일본 시민운동의 실패 경험 배우기를

제가 한국의 시민운동, 사회운동 관련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모두 사람들이 일본의 사정을 설명하는 저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준다는 점. 아마 이런 진지함이 촛불혁명을 성공적으로 인도한 원동력일 것입니다. 

그리고 시민운동과 사회운동을 약화시킨 일본 정부의 수법이 한국에도 도입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일본에서 시민운동을 하면서 갈수록 그 세력이 위축되고, 나쁜 정치가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여러 선배 운동가를 통해 그동안 일본정부가 시민운동을 무력화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왔는지 듣곤 했습니다.

만약 한국 정부가 이런 일본 정부의 길을 모방한다면, 한국민들이 이룩한 민주화의 성과도 사라질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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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과 관련해 한국 관료가 “민의때문에 어렵다”고 말한다면, 일본 관료가 “우리가 썼던 이런이런 방법이 있다”고 조언해준다면 어떨까요?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일본에는 ‘이긴 투구의 끈을 묶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승부에 이겨도 방심하지 말고, 다음을 준비하자는 의미입니다. 계속 이기기 위해서는 승자도 평소 노력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시민운동과 국민항거행동은 계속해서 이겨야 합니다. 이는 이웃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한국의 민중운동이 계속 승리하려면 일본의 시민운동의 실패 경험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목, 2017/07/0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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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반공주의자들이 즐겨 말하는 대로 ‘헌정과 국기 문란’을 가져온 최순실 사태로 정치권의 시계가 제로가 되었다. 확실한 것은 이 사태의 귀결이 어떠하든 간에 정부와 여당이 주도하는 개헌은 물 건너갔다는 것이다.

더불어, 탄핵이든 하야든 아니면 책임총리든 거국내각이든 무엇이 나타나든 현 정부의 총체적 레임덕과 함께 대선 국면이 조기화 될 것이라는 점은 명확해졌다.

‘국민성장’, 대선 앞두고 대규모 세 과시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10월 6일 문재인 전대표를 지지하는 학계 및 전문가들이 모여 ‘정책공간 국민성장’(이하 ‘국민성장’)이라는 자발적 싱크탱크를 발족하여 안팎의 눈길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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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6일,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가칭)’ 창립 준비 심포지엄. 왼쪽부터 소장 조윤제 교수, 문재인 전 더민주당 대표, 자문위원장 박승 전 한은 총재, 상임고문 한완상 전 한성대 총장.

사실 유력한 대권 후보의 싱크탱크 형식의 연구소는 새로운 현상도 아니다. 최근 김무성 전 대표는 지난 9월 ‘공정사회연대’라는 원외 싱크탱크를 출범시킨 것으로 알려 졌다. 안철수 전 대표의 ‘정책네트워크 내일’이나 안희정 충남지사를 돕는 것으로 알려진 ‘더 좋은 민주주의 연구소’도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외곽 싱크탱크로 최근에는 시민단체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희망새물결’이 출범(9.10)하였다.

이 가운데 특히 ‘국민성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지난 대선에서 48%(1,469만)를 득표하여 분패한 문재인 전대표가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야권의 대권후보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1차 발기인으로 이미 500여명의 교수진이 참여했고, 연말까지 1,000명 이상으로 확장할 계획이라는 ‘국민성장’측의 발표 때문이다.

홍일표(더좋은미래연구소) 사무처장의 칼럼(누가 ‘잠룡들의 싱크탱크’에 참여하는가)에 따르면, 이러한 규모는 그간의 다른 어떤 싱크탱크들에 비해서도 압도적이다. 박근혜 후보의 싱크탱크로 알려졌던 ‘국가미래연구원’의 2010년 출범 당시 발기인이 78명이었고, 다음해까지 1차 정회원 숫자가 200명 정도였다.

2013년 출범한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발기인 숫자는 52명이었다. 대선을 7개월여 앞두고 문재인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출범(2012.5)했던 ‘담쟁이포럼’의 발기인 규모도 260여명 정도였다.

대선의 조기 점화가 명확한 현재의 시점에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대선 캠프를 정치발전 특히 정당정치와 정책정당의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것은 싱크탱크를 가장한 권력 지향적 지식인들의 ‘떳다방’인가? 아니면 실용적인 정책을 공급하는 안정적인 ‘지식의 생산기지’인가?

이 문제를 논하는데 ‘국민성장’은 매우 유용한 토론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왜 그런지 살펴볼 차례이다.

취약한 정당체제의 보완재

정책 및 홍보, 여론조사에 주력하는 싱크탱크형 대선 캠프는 좋으나 싫으나 대통령제와 선거전문가 정당체제가 낳은 불가피한 산물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그것은 우리뿐 아니라 대통령제의 모델로 거론되는 미국에서 유래한 것이다. 21세기에 들어 나타난 새로운 정치현상 중 하나는 전문가 집단의 영향력 확대와 지식인 집단의 정치화에 따른 싱크탱크 정치(think tank politics)의 대두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네오콘’이나 우리나라의 ‘뉴라이트’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정당과 당원이 중심이 되어 선거를 치루는 내각제보다는 후보와 캠프가 선거를 주도하는 대통령제 하에서 싱크탱크 정치가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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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싱크탱크의 천국이다. 여기에는 약한 정당체제, 후보자 개인 중심의 선거운동, 정부 고위직을 외부에서 충원하는 정치적 임명 전통 등이 영향을 미쳤다. (이미지 출처: https://nworeport.me/)

왜냐하면, 대통령제 국가에서 이들은 민간 부문의 전문성을 중시하는 세계화 시대의 지적 유행과 정치적 임명직이라는 제도화된 채널을 통하여 정부와 의회의 고위직을 과점하면서 새로운 권력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왔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텍사스 사단(부시), 아칸소 사단(클린턴), 시카고 사단(오바마) 등등은 정당에 소속되지 않는 전문가 정치, 또는 정책이나 이슈 중심의 싱크탱크 정치의 현대적 사례들이다.

한국에서도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싱크탱크형 대선 캠프는 당분간 존속할 수밖에 없다. 유력하든 잠재적이든 대선 후보 또는 유망한 정치인을 정책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제도적 채널이 포럼이나 연구소를 내건 싱크탱크밖에 없다.

미국은 유권자와 지지자들이 좋아하는 정당과 정치인의 재정적 후원과 선거 캠페인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정치활동위원회(PACs)의 천국이다. 2008년 선거에서 오바마의 당선에 크게 기여하였던 무브온(MoveOn)은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의 돌풍을 주도하였다. 반면, 힐러리를 지지하는 정치자금 모금단체(Ready for Hilary)는 오바마의 ‘시카고 사단’과 힐러리 사단을 연계해주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더구나 진보와 보수, 중도 성향을 명확히 하고 자신의 이념에 맞는 정책과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민간연구소는 유력 정치인들이 굳이 자신의 돈과 시간을 들여 싱크탱크를 만들 이유를 없게 만들어 놓았다(<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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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thirdworldtraveler.com/Democracy/ThinkTank_watch.html(2016.1…)

한국의 취약한 정당 연구소

하지만 한국은 미국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한 신문사의 보도에 의하면 한국을 움직이는 100대 싱크탱크 중 거의 절반(45개)이 정부연구소이고, 4분의 1 정도(24개)가 민간ㆍ기업 연구소였다(『한경비즈니스』.2016.1.13./ 통권 1050호).

더구나 심각한 것은 정책생산의 주체이어야 할 양대 정당 연구소의 취약하고 불안정한 지위와 기능이다.

조진만 교수의 연구(2013)에 의하면 2008-2012년 동안 <여의도연구원>의 박사급 연구진은 평균 11.5명이고, <민주정책연구원>은 11명이었다. 정당연구소의 재정을 90% 이상 정당에 의존하고 있고, 당 대표에 따라 연구소의 원장 및 연구진의 인선이 뒤바뀌는 상황에서 신뢰할만한 정책공급 기능은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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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당의 정책연구소는 인력, 재정 등에서 매우 취약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정당의 약한 정책기능으로 드러난다. 이로 인해 대선 후보들은 대선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개인 캠프형 싱크탱크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미지 출처: http://www.sisaweek.com/)

정당연구소도 민간연구소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고, 더구나 당내 후보지명 과정과 본선 경선이 미국의 절반에 불과한 짧은 선거 일정을 고려할 때 싱크탱크형 대선 캠프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리고 이를 제대로 활용만한다면 정책선거를 주도하고 정치담론을 활성화할 수 있는 장점도 갖고 있다.

문제는 ‘싱크’가 없는 ‘폐쇄형 탱크 캠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이다.

‘세몰이’, ‘줄세우기’ 의혹

‘국민성장’이 출범하자마자 이런 저런 고까운 말들이 많이 들린다. 그 중 눈에 띠는 것은 ‘국민성장’이 “기존의 소득 주도 성장을 벗어나지 못한 분배론일 뿐”이라는 유승민의원의 비판이다.

‘국민성장’이 취지문에서 표명한 것처럼 국가가 아닌 국민의 풍요로운 삶을 가져올 성장과 분배의 동시 해법이 될 것인지 아니면 김종인의원의 비판처럼 말장난 같은 “성장변형 이론”일지는 현재로서 예단할 수 없다.

오히려 문제가 될 지점은 ‘컨텐츠를 앞선 규모의 방대함’이다. 이것은 분명 구태의연한 시도이고, 산업화 시대의 선점 및 전시 효과를 노린 ‘규모의 경제’의 복사판이다.

‘국민성장’측은 각계각층의 500명이 참여하였고, 연말까지는 1,000여명의 전문가가 참여할 것이라고 공언하였다.

하지만 홍일표 사무처장의 지적대로 10여명의 유명인사만 발표하였지 발기인으로 참여한 이들이 누군지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대세몰이’와 ‘줄서기’를 강제하고 있다는 의혹을 살 수 있다.

대선캠프와 달리 싱크탱크의 역동성은 누가 참여하고 있는가를 보여줌으로써 얻는 정책의 예측가능성과 내부 전문가들의 치열한 논쟁 끝에 도출된 정책의 높은 실현가능성에 있다. 즉 사람과 소통이 정책의 성공을 보증한다.

‘한국형 싱크탱크’ 정착에 기여해야

두 번째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선거에 임박해 지지성명만 발표하고 개업 휴점하는 유령 포럼이 아니라 분야별 국정이슈와 대통령 의제를 기획ㆍ발굴할 수 있는 알짜배기 싱크탱크를 운용하기 위한 철저한 사전 준비와 기획의 중요성이다.

대선캠프 운용을 둘러싼 정치자금 시비와 인사 청탁은 대선의 단골 메뉴였다. 더구나 김영란법이 작동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재정의 투명성과 활동의 자발성, 운용의 공개성은 싱크탱크 존립의 필수조건이 되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별 인사를 끌어들이는 명망가 영입이 아니라 추구하는 목표와 방향이 같은 정책집단과의 정책협약(policy pact) 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민성장’이 ‘기본소득제도’를 지지하는 연구회나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을 추구하는 시민사회단체와 정책협상을 통해 협약을 맺는다면 그것은 정책의 질을 높이고 정치적 외연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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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캠프형 싱크탱크는 한국 정치환경의 불가피한 산물이라고 하더라도 한국형 싱크탱크의 정착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설계, 운영돼야 한다. 여타 시민사회 내 싱크탱크와 정책 협력을 맺는 것은 물론, 정당의 정책부문과 긴밀히 연계함으로써 정당의 정책기능 강화에 기여해야 한다.

끝으로 선거형 싱크탱크는 한국정치의 고질적 문제점인 정당정치의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

당파성이 강한 (정당)정치를 멀리하는 전통적 선비의식과 정당 가입을 가로막고 있는 규제주의적인 선거법 때문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정당과 애써 거리를 두어 왔다.

선거과정에서 이들의 정책 관련 경험과 전문성은 후보 지명 이후에는 개별 정치인의 자산이 아니라 정당의 공공재로 활용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싱크탱크의 핵심 인물, 정책과 프로그램들은 정당연구소와 정책위원회에 의해 검증ㆍ보완ㆍ환류 되어야 한다. 이것은 학계 인사의 현장감을 높이는 한편 정당의 정책 기능을 제고하는 윈-윈 효과를 낳을 것이다.

싱크탱크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또는 유력 후보와의 인연으로 갑자기 장차관이나 청와대에 입성하는 것이 아니라 인수위원회와 정당연구소 등을 거쳐 정치에 입문하는 것이 개인은 물론이고 정치사회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2017년 대선은 한국사회가 처한 복잡하고 어려운 다층적 위기를 해소할 정책과 리더십의 경연장이 될 것이다. 경쟁의 승패는 시민들의 눈과 현실에 적합한 대안을 어떤 싱크탱크가 제공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리더십의 역할은 유명인사로 구성된 방대한 규모의 싱크탱크를 남보다 먼저 꾸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좀 더 개방적이고 유연한 네트워크에 기초한, 그러나 좀 더 신중하고 체계적인 사유를 공유하는 한국형 ‘싱크뱅크’(think-bank)를 개척하는 것이다.

그것은 비단 ‘국민성장’만이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니라 19대 대선을 준비하고 있는 예비 주자들의 과제이자 우리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성공한 정부’와 ‘성공한 대통령’을 위한 출발점이다.

월, 2016/10/3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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