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국에 살려야 할 생명체들의 안부가 궁금하실 듯 하여, 알려드려요. 안타깝게도 살려야 한다 1호는 싹을 틔우지 못했고(ㅜ.ㅜ), 2호, 3호는 중간에 고비가 있었지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아침 저녁 분무기로 열심히 물을 주었고, 주말에는 빨간 큰그릇에 물을 붓고 그안에 반신욕을 시키며 열심히 생명을 유지시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물을 줄때마다 "바르고 고운말"로 잘 살아달라고 속삭입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응원의 한마디를 건네는 것처럼요. 그래서인지, 2호와 3호는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외에 사무국에는 산세베리아가 여러개 있습니다. 겨울을 보내면서 위기감이 돌긴 했지만, 다시금 열심히 생장에 힘을 쏟던 이 산세베리아들이 새끼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녀석 중 하나가 새끼를 두개 낳아서 좁은 화분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며칠전에 과감하게 이 녀석들 분가를 시켜주기로 했습니다. 다이*에 가서 화분과 흙, 그리고 영양제를 사서 분가시킬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신문지를 깔았습니다. 그리고 가위와 숟가락을 갖고 본격적인 분가를 시작했습니다. 첫번째 녀석을 잘라낼 때 어찌나 떨리던지요... 잘라낸 녀석을 화분에 담고, 영양흙을 채우고, 위에 돌로 눌러주기까지... 긴장된 순간들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분가한 산세베리아 녀석들입니다. 잘 자랄것 같지요? 뿌리를 건강하게 잘 내려줘야 할텐데요...
그리고 사무국에 있는 다육이들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키가 삐죽 자란 녀석들은 적당한 길이로 잘라서 꺽꽂이를 했고, 풀피리의 재료가 됐던 녀석들은 한곳에 합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진딧물 침공을 받았던 라푼젤에게는 진딧물제거제를 뿌려주었고, 자유분방했던 기린초는 다시 정리해서 두집으로 분가해주었습니다.
너희들이라도 넉넉한 집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분갈이를 끝내고 영양제 하나씩 꼽아주고 나니, 부모가 결혼한 자식 분가시키는 것처럼 뿌듯함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첫조카를 만나는 것처럼 이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 뭐라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그래서 내친김에, 빈화분이 있어서 모기를 쫓는다는 구몬초 하나를 사왔습니다. 큰줄기가 2개여서, 각각 나누어서 한녀석은 화분에 안착시키고, 또 한 녀석은 잠시 뿌리가 안정적으로 내릴 때까지 인큐베이터 안에 있기로 했습니다. 뿌리를 잘 내려야 할텐데요..
그리고 푸르미들의 터줏대감 키다리 녀석은 사무국 천정 보다 높게 자라서 봄이 되자마자 복도로 내놨는데, 이녀석도 물을 잘 주니깐, 쑥쑥 너무 자랐습니다. 꽃집에 문의를 해보니, 과감하게 가지치기를 해주라고 하네요. 지난 장충동부터 같이 해온 녀석의 머리를 자를려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사무국 출근길,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바로 이 녀석이 반겨주는데....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실록읽기] 소모임이 곧 1주년을 맞이합니다. 해설자료를 찾다보면, 한자가 많은데 한글 읽듯이 술술 읽고 싶고, 중요자료가 되는 조선왕조실록도 한번쯤은 읽어보고 싶고, 무엇보다 소소한 배움과 나눔의 즐거움을 회원들과 함께 하고자 시작한 실록읽기는 2015년 8월03일 술시(戌時)에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제 곧 1주년이 되어갑니다.
도성길라잡이로 활동 하고 계시는 박선홍 선생님을 훈장님으로 모시고 시작한 실록읽기는 명심보감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요즘에는 초등학생들이 본다고는 하지만서도, 성인이 되서 만나는 명심보감은 알듯말듯한 한자어들로 가득했습니다.
훈장님이 직접 선물해주신 명심보감 책과 프린트물을 교재로 하여 수업은 2시간정도 진행됩니다. 그 2시간동안 딴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그날 배울 부분을 일단 훈장님이 읽어주십니다. 그러면 모르는 한자에는 슬쩍슬쩍 토를 달아가면서 따라 읽습니다. 이렇게 따라만 읽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 다음에는 순서대로 한사람씩 읽어봅니다. 큰소리로... 그리고나면 뜻풀이를 훈장님이 먼저 해주시고, 또 순서대로 한사람씩 뜻풀이를 합니다. 역시 큰소리로... 그 다음은 중요한 구절을 외워봅니다. 외운것을 순서대로 한사람씩 소리내어 읊습니다. 이러다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발표하고 외우고 하는것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잘 하면 잘하는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훈장님의 칭찬이 넘쳐납니다.
이렇게 작년 여름에 만나, 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을 보내고 여름을 맞이하였고, 또 훈장님은 당신의 스승님이 독송하신 명심보감을 직접 녹음하신 후, 아드님의 도움으로 모두 음성파일로 변환화여 학생들에게 나눠주기까지 하셨습니다. 수업 중간중간에 그 음성파일을 같이 듣고 따라 읽어보기도 하고, 이두문자도 배우고, 고려사의 일부도 읽어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의 시작인 태조실록의 일부를 잠시 읽어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계선편(繼善篇)에서 시작한 명심보감, 지금은 계성편(戒性篇)을 읽고 있습니다.
한달에 두번이라 진도가 눈에띄게 쭉쭉 나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정기적으로 배움의 시간, 나눔의 시간을 함께 하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 되는 시간입니다.
다음 실록읽기는 7월 18일입니다. 그때는 1주년 기념으로 케익도 준비해야겠습니다. 한결같이 실록읽기를 지켜주신 박선홍 훈장님께 감사도 드리고, 또 함께 하는 책동무들과도 서로 격려하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KYC 체인지리더는 수료 이후에도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https://seoulyg.net)를 통해 모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청년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이야기했던 체인지리더 6기 활동을 이어 보다 정책적으로, 제도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모임을 격주로 열고 있습니다.
(모임 참여 및 후기 확인이 가능한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페이지)
모임이 다루고 있는 첫 번째 주제는 병역입니다. 두 번의 모임에 걸쳐 주제와 관련한 문제점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야기하고 어떻게 하면 단지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정책안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병역을 다룬 첫 번째 시간에는 사병복지 등 경험을 통해 느낀 문제점이나 개선해야 할 점을 말한 후 나아가 그런 문제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감축에 대한 이야기까지 전개해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군대를 다녀온 경험이 있는 친구들은 사병 복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요, 무엇보다 병사들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징병제를 실시하는 다른 나라의 경우에도 최저임금에 상응하는 월급을 지급하고, 휴가도 자주 있는 등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형태라는 것입니다.
또한 군대 내에서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병사 간 계급을 나누는 시스템이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다, 군이 폐쇄적 조직에서 벗어나 군과 관련된 논의를 민간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군 장성에 대한 지나친 복지혜택이나 최근 많은 문제가 지적되었던 방산비리로 인해 많은 국방예산 낭비가 생긴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사병복지나 국방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군 규모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는데요. 징병 대상이 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어 군 규모 또한 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노무현 정권 때 2020년까지 군 규모를 50만으로 감축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감축 계획은 계속해서 논의되어 왔으나 계속 미뤄지고만 있는 상황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든, 주변 사람을 통해서든 문제가 무엇인지는 어렴풋이라도 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통해 보다 정책적으로 문제에 접근할 수 있을까요?
두 번째 시간에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중점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이 시간은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에서 정책연구를 하고 계신 최창민 님과 함께했습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 국방위원회 등 여러 가지 사이트를 통해 자료를 구하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문제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을 이야기해주셨는데요. 기존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도 가능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경험에서부터, 가장 실생활에 와닿는 문제부터 이야기하다보면 더 쉽게 이야기가 풀릴 것이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언론 보도도 지속적으로 확인하면서 이슈를 파악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예산, 법률, 여론 등 어떤 차원에서 문제를 이야기할 것인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떤 문제를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어떤 차원에서 접근할 것인지도 달라집니다.
이렇게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각자가 생각하는 문제점에 대해 예산이나 관련법 등의 자료를 찾고 가능하다면 대안까지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거대해보이는 문제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지점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다 보면 우리가 원하는 사회의 모습이 하나하나 그려져나갈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답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다면 그만큼 충분히 고민하고 공부해야 하나의 실마리라도 더 찾아낼 수 있을 테고요.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앞으로 같이 말해나가려고 합니다. 대선정책연구 모임 중간에도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분들은 언제나 참여 가능합니다.
서울KYC의 소중한 분들과 함께하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분 또한 서울KYC와 오랜 인연을 이어가고 계신 분입니다. 도성길라잡이로 활동하고 계시고, 올해는 목멱구간 팀장을 맡고 계신 김창섭 회원님을 만나봅니다.
김창섭 회원님, 안녕하세요!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김창섭입니다. 경주 시골에서 티없이 맑고 철없던 아이로 자란 진짜 촌놈입니다. 20대에 서울로 유학와서 대학시절 4년 내내 우리 문화와 민주화에 대한 고민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 이후 직장생활하다가 3년 동안 영국에 유학을 갔다 온 후 최소한의 의미 있는 활동을 하려고 하던 차에 KYC활동에 겨우 참여하는 정도로 지내왔습니다. 지금은 조그마한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느지막이 결혼하여 아들딸 두명의 자녀를 가진 평범한 가장이며 김포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제 별명은 중학교 땐 권투선수 장정구, 서울오기 직전에는 번데기, 대학교때는 하회탈이었습니다. 모두가 이마에 있는 주름살과 관련되어 있지요.
10년 넘게 서울KYC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서울KYC를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영국에서 지내면서 가끔 영국 주변과 유럽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나이드신 분들이 자기 주변의 문화재(대부분 성당이나 성)에 자긍심을 가지며 설명을 하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난 우리 문화에 대해서 뭘 알까 라는 의구심을 가졌고 귀국과 동시에 궁궐길라잡이라는 것을 모집하게 되는 것을 보고 신청하여 KYC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서울KYC 활동을 돌아보았을 때,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부끄럽지만 사실 지금까지 KYC 활동을 그다지 열심히 하지 못하고 그저 길라잡이 활동에 참여하는 수준이어서 특별한 기억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네요. 그래도 서울KYC의 가장 좋은 점은 활동가 중심의 조직이 아니라 모든 회원들이 참여하는 나눔의 실천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단지 후원회원이 아니라 거의 모든 회원들이 활동하는 그런 조직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 궁궐길라잡이 했을 때 많이 챙겨주었던 선배, 동기들.. 그때의 끈끈했던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후 도성길라잡이가 되고 난 뒤 또한 그런 모습이었구요. 순성놀이는 또하나의 큰 기억을 주고 있습니다.
도성길라잡이 6기로 활동을 이어오고 계신데요, 회원님이 느끼시는 도성길라잡이 활동의 매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도성길라잡이를 통해 도성을 알게 해줘서 기뻤고, 그걸 통해 시민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또한 같이 함께하고 있는 도성길라잡이 선생님들이 옆에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저 가기만 해도 좋은 도성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정말로 좋은 길라잡이 선생님들과 도성의 모든 것을 시민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회원님께 도성은 어떤 의미이고, 도성에서 시민 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으신가요?
도성은 과연 서울에도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해줍니다. 환경적으로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도 이렇게 좋은 곳을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성은 보고 걷고 순성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많은 감탄을 줍니다. 더 나아가 도성속에 담겨 있는 역사를 돌아보게 해주고 그 속에 있는 나의 모습 또한 돌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미래속의 도성, 그리고 도성과 함께 할 나의 모습 또한 그려보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 모두에게 도성은 역사속의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와 함께 숨을 쉬며 미래 또한 우리와 함께 할 문화유산입니다. 많은 시민들도 도성의 과거 현재의 모습을 거울삼아 좀더 살기좋고 행복한 미래의 도시와, 그 속에서 사는 자신의 모습을 꿈꿨으면 합니다.
올해 목멱구간 팀장을 맡아서 활동 중이세요! 목멱구간 팀장으로서 특별히 신경 쓰고 계신 점이 있으신가요? 올해는 우리 구간 선생님들의 좀더 많은 참여를 유도하고, 활동의 다변화를 꾀하고 싶습니다. 이와 더불어 신입기수 선생님들이 끈끈한 동기애를 통해 오랫동안 활동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적극적인 참여와 활동의 다변화를 위해서는 '남산 100년 역사탐방'과 영어안내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시도 단계라서 성과는 좀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또한 신입 기수들이 동기애를 다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전체시연과 스터디 모임을 같이하도록 시도하였는데 성과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목멱구간에서 6월부터 ‘남산100년 역사탐방’을 월1회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소개 부탁드려요.
구간 활동이 너무 시민안내에만 치우치다 보니 시민안내가 여의치 않을 때는 참여에 제한이 있을 수 있고 시민안내 자체에도 내용이 풍부해지지 않을 수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참여방법도 다양화하고 이를 통해 시민안내 내용도 좀 더 풍부해지게 하려는 의도로 시작했습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 많은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남산 주변 근현대사와 관련된 내용을 준비하여 2시간 가량의 답사로 진행합니다. (아래 프로그램 일정 참조)
지나온 활동도 길지만, 회원님과 함께할 앞으로의 활동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서울KYC에서 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열심히 하고 싶지만 개인적으로 회사도 매우 바쁘고 아들딸이 너무 어려서 쉽지가 않습니다. 소박하나마 올해 팀장하면서 활동한 내용이 향후 도성길라잡이 활동에 밑거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서울KYC란 _______다. 한 마디로 말씀해주신다면?
"삶의 에너지"다.
마지막으로, 서울KYC에 바라는 점이나 다른 회원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저는 서울 KYC의 회원으로 활동을 하게 되어 참 기쁘고 활동을 통해 다른 회원분들도 만나게 되어서 또한 기쁩니다. 저 또한 생업에 바쁘다보니 많은 참여를 하지 못해서 늘 죄송하게 생각을 합니다. 특히 올해 팀장을 하다보니 참여가 생각만큼 원활하지 못한 데서 오는 어려움을 좀 느끼네요. 모든 분들이 열심히 활동하시겠지만 좀만 더 시간을 내어서 각자 활동하시는 모임에 좀더 적극적인 활동을 부탁드리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기쁘다", "좋다", "삶의 에너지"라는 말로 서울KYC 활동을 표현해주시는 김창섭 회원님! 서울KYC 또한 회원님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참 기쁘고 좋습니다. 서울KYC에서 꾸준히 삶의 에너지 얻어 가실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지하겠습니다.
<남산 100년 역사탐방>
1) 2016년 6월 19일(일) 오전9시30분~11시30분: 일제침략의 시작 ( ~ 1905) 코스 : 한국의 집(경무총감 관저) -> 한옥마을 -> 통감관저 터
5년차를 맞이하는 [2016년 다같이 돌자 서울 한바퀴, 한양도성 원정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서울 경기권 지역아동센터 친구들이 건강한 사회성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신한은행 봉사자들과 함께 한양도성을 직접 체험해보면서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지지해주는 멘토링프로그램입니다.
건강한 사회성, 정서적 지지, 멘토링활동... 무척 어렵고 부담스런 단어들 같지만, 토요일 오전에 아이들과 한양도성에 모여 즐겁고 신나게 놀면서 넓은 세상도 이야기하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큰 꿈을 품을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멘토링 활동의 기본, 멘토와 멘티가 서로 짝을 이룹니다. 그러나 멘티가 되어 줄 아이도, 멘토가 되어 줄 성인도 처음에는 서로 어색해서 잘 어울리지 못합니다. 그렇다보니, 어떻게 하면 멘토와 멘티가 대화를 잘 이어갈 수 있을까? 그럴려면 신나게 한판 놀다보면 쉽게 친해질 수 있는데, 어떤 놀이를 해야 참가자들이 재미나게 놀면서 친해질수 있을까? 그리고, 한양도성은 어떻게 하면 쉽고 흥미롭게 설명할 수 있을까? 또 한양도성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프로그램의 마무리는 어떻게 해야 서로의 마음도 전할 수 있을까? 한양도성원정대 활동이 거듭될수록 이 고민의 꼬리가 길어집니다. 그러나, 함께 해주는 자원활동가 선생님들이 계시니, 해결의 지혜를 차근차근 모아보면 될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2016년 다같이 돌자 서울 한바퀴, 한양도성원정대가 시작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은 9시 20분에 시작하지만, 자원활동가 선생님들과 8시 30분에 모였습니다. 프로그램 브리핑도 하고, 참가자들에게 나눠줄 물품도 셋팅하고 나니, 멘토역할을 해줄 신한은행 봉사자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멘토 봉사자들을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려고 하는데, 시흥에서 출발한 친구들이 벌써 도착을 했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살짝 당황스럽긴 했지만, 봉사자를 대상으로 프로그램에 대한 일정과 주의사항은 꼭 필요한 부분이라, 압축적으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고,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서로의 멘토-멘티 짝꿍을 먼저 찾아보았습니다. 이번에도 여-여, 남-남 커플이 될 수 있도록 미리 명찰순서를 조정하여 장치를 마련해두었습니다. 그리고선 손가락 끝으로 서로 텔레파시를 보내는 외계인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손을 계속 잡고 있어야 하는 가위바위보 놀이, 그리고 짝꿍을 지켜줘야 하는 기차놀이와 서로의 키를 맞춰야 하는 꼬인손 풀기까지. 이렇게 한판 놀이가 끝나고 나면 서로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집니다. 간식 먹을 때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도 자연스러워집니다.
이제 한양도성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 !! 이번에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한양도성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했습니다. 여름방학 직전이라 그런지, 박물관 안이 상당히 북적였지만, 우리 선생님들 어찌 잘 아시고, 빈공간을 찾아 한양도성에 대한 설명도 하고, 캐릭터 스티커도 붙이고, 한양도성 지도의 빈칸채우기도 하고, 수선전도가 그려진 에코백도 멋지게 만들어보았습니다.
한여름이어서 실내에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늘리고, 외부활동을 최소화 하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양도성을 직접 밟아는 봐야겠기에, 버스를 타고, 남산 소나무길로 갔습니다.
남산위의 그 소나무는 아니지만, 소나무 군락과 성곽이 함께 있으니, 그늘이 짙어서 걷기에 딱 좋았습니다. 박물관에서 보았던 한양도성을 직접 만져보고 걸어보는 시간입니다.
마무리로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메세지를 전하는 마음나누기를 하고, 한양도성의 정문 숭례문을 거쳐 맛있는 점심을 먹으러 출발~~!! 제일 활기차고 제일 생생한 아이들의 모습을 이때 보았습니다. 역시 밥은 중요합니다 ^^*
점심을 먹고 나면 헤어짐이 있습니다. 서로의 아쉬움을 잘 마무리 해야 하는 이 시간이 제일 어려운 시간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다시 버스 태워 보내고 나니, 몇일동안 긴장했던 마음도 스르륵 풀리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2016년의 첫번째 한양도성원정대가 마무리 하고, 평가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평가는 늘 ... 혹평과 호평이 함께 합니다. -아이스브레이킹은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마음나누기 시간이 뭉클하였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 어려웠다. -전반적으로 시간은 짧은데, 해야할 프로그램이 너무 많아서 시간배분이 어려웠다. -마무리 프로그램을 좀더 보강하자 -봉사하려고 왔는데, 참가한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등등
이러한 평가내용을 바탕으로 8월에는 자원활동가 선생님들과 워크숍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새로운 아이스브레이킹도 만들어보고, 그동안 못가본 동선도 짜보고... 서로의 지혜를 나누고 다듬어서 보다 진화하는 2016년 한양도성 원정대를 만들어보겠습니다.
앞으로 한양도성원정대는 9월3일, 10월8일, 11월 5일과 19일, 12월3일 이렇게 5회 진행될 예정입니다. 관심있는 서울KYC회원이라면 누구나 자원활동가가 될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사무국으로 문의주세요. *서울KYC 사무국: 02-2273-2276
군산에 도착해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경암동 철길마을입니다. 제지원료를 역까지 실어나르기 위해 사용된 철길인데요, 회사 근로자들이 철로 바로 옆에 집을 지어 살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마을입니다. 2008년까지는 기차가 운행되었으나 지금은 다니지 않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 철로는 일제강점기에 쌀을 군산항까지 실어나르기 위한 수탈의 길로 사용된 내력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을 방문해서 군산의 근대를 잠시 훑어보았습니다. 군산에는 이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집들도 많지만,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새로 적산가옥으로 개조할 예정인 곳들도 많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군산의 모습과 더불어 군산에서 일어났던 민족운동, 사회운동을 소개하고 1930년대 거리를 그대로 재현해놓은 듯한 시설을 통해 군산 근대 역사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모형으로 수탈하는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부잔교(뜬다리) 또한 수탈의 상징 중 하나입니다. 부잔교는 조수간만의 차로 인해서 큰 배들이 항구에 정박하기 힘들기 때문에 물높이에 따라 조절할 수 있도록 한 다리인데, 이 다리를 통해 쌀이 옮겨져 일본으로 반출되었습니다. 항구 주변에는 굶주린 사람들이 쌓여 있는 쌀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보초를 세웠다고 합니다.
밖으로 나가 부잔교의 모습도 직접 확인해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옛 군산세관입니다. 이곳 또한 일제가 쌀을 수탈하던 창구로 이용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908년부터 1990년대까지 세관으로 사용되었는데, 지금은 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과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도 돌아보았습니다. 조선은행 군산지점과 18은행은 일제 식민지 지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금융시설입니다. 쌀 반출 자금과 토지 강매 등 수탈한 자금이 이 은행들에서 관리되었습니다. "이 금고가 채워지기까지 우리 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만 했다"는 문구가 이곳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나타내줍니다.
다음으로 임피역에 도착했습니다. 일제는 호남 평야의 쌀을 운반하기 위해 군산선을 건설했는데요, 군산선의 간이역인 임피역은 호남 지역에서 수확한 쌀을 군산항으로 옮기기 위한 중간 거점이었습니다. 해방 후 돌아오지 못한 가족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모습 또한 임피역이 가지고 있는 기억입니다. 이 역을 스쳐 지나갔을 많은 식민지 시대 사람들의 모습들이 떠오릅니다.
일본 본토에 낮은 가격으로 쌀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일본인 지주들은 농민들에게 높은 소작료를 요구했는데요, 1927년에는 터무니 없는 소작료를 요구한 농장주에 대항해 수 백명의 농민이 들고 일어난 옥구농민항일항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1919년 만세운동, 20~30년대 총파업투쟁 등 군산에도 저항 운동은 지속되었습니다.
군산의 대표적인 일본인 대농장주는 구마모토 리헤이입니다. 현 발산초등학교 한편에는 정원에 마구잡이로 가져다 놓았던 발산리 5층 석탑, 석등 등 여러가지 문화재가 남아 있고 귀중품을 보관했던 금고 건물도 한켠에 텅 빈 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견고한 벽, 두꺼운 철제 문과 숨겨진 가파른 계단이 이 건물의 용도를 말해줍니다.
근처에는 1920년대 구마모토에 의해 별장으로 지어진 가옥이 있습니다. 당시 구마모토가 불러온 이영춘 박사가 해방 후에도 이곳에서 계속해서 거주하며 우리나라 보건 분야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겼기 때문에 이영춘 가옥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국사에 들렀습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입니다. 대웅전 뒷편에는 일본식 대나무숲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동국사 한 켠에는 군산 평화의 소녀상이 있습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분들을 뜻하는, 서 있는 소녀상입니다. 소녀상 뒤에는 일본 조동종의 참사문, 즉 참회와 사죄의 글이 적혀 있는데요, 메이지유신에서 태평양 전쟁에 이르는 시기 일본의 지배 야욕에 불교가 가담한 행태에 대해 아시아인들에게 사죄하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거점이었던 군산을 돌아보았습니다. 함께한 민족문제연구소 김재호 선생님은 일제에 의해 계획적으로 수탈의 도시로 만들어진 군산이 식민 유산에 대해 근대문화유산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우려한다면서, 관광객을 모으기 위해 새로운 건물조차도 일제식으로 만드는 등 식민지 근대화론의 긍정적 해석이 될 수 있는 오늘날 군산의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수탈을 위해 만들어지고 사용된 철길, 항만시설, 은행, 세관, 조선인들에게 높은 소작료를 징수하고 대농장을 가졌던 일본인 지주... 군산이 가지고 있는 유산은 대체로 일제강점기 수탈이라는 잔혹한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그대로 남아있는 건물과 시설을 보면서 역사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도시가 가지고 있는 유산을 지금 시대에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해야 할지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근현대사아카데미는 8월에도 계속됩니다. 시민들이 만든 대통령, 시민들과 많은 것을 나누고자 한 대통령이 머물던 곳, 가장 최근의 역사를 품고 있는 김해를 방문해 참여민주주의를 생각해봅니다.
복지부가 서울시 청년수당 지급을 막아 나섰다. 8월 3일 오늘, 서울시가 2831명의 청년에게 청년수당을 첫 지급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시정명령'을 내렸다.
복지부는 도대체 어느 나라 부처인지 모르겠다. 한국에 사는 한국 청년을 위해 지자체가 시행하고자 하는 이 정책을, 한국 정부가 금지하는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
복지부에게 묻고 싶다. 법 조항이 먼저인가, 청년의 삶이 먼저인가. 법률도 청년을 포함한 시민의 삶을 보장해주기 위해 존재한다. 새로운 청년정책 시도를 막으라고 존재하는 게 아니다. 복지부처럼, 억지로 끼워 맞추면 법률은 박제화 된다. 복지부는 눈을 똑바로 뜨고, 청년과 시민의 삶을 직시하기 바란다.
우리도 안다. 50만원 지급하는 청년수당이 청년 문제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다만, 청ㅊ년수당은 청년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다. 새로운 시도가 많아져야, 청년정책이 제도적으로 정착될 수 있다.
더욱이, 청년수당은 지난 3년간 수백 명의 청년들이 서울시에 요구해서 도입된 사업이다. 청년의 땀이 묻어 있는, 청년의 손으로 만든, 청년에 의한 정책이다. 청년의 요구를 행정이 직접 받아 안은 모범적인 정책도입 사례인 것이다.
대통령과 복지부의 큰 품을 기대한다. 서울시 올해 예산은 24조원이 넘는다. 올해 정부예산도 386조가 넘는다. 90억원은 이 규모로 보면, 적은 액수다. 우리 청년은 대통령과 정부가 90억원의 청년수당 사업을 막는 데 왜 이토록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서울시 청년수당 90억원은 올해 처음 시행하는 시범사업이다. 시범사업으로 해보고, 그 후에 사업의 지속 여부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
청년들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청년정책을 막는 이 기막힌 사태에 대해, 청년들과 함께 규탄해나갈 것이다. 청년수당을 막는 정부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 비판할 것이다.
나아가, 청년수당의 예산증액을 요구할 것이고 정부 청년정책의 제도화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행동할 것이다. 청년은 모일 것이다.
서울KYC도성길라잡이 8기 수료식이 지난 7월30일에 있었습니다. 올 1월9일에 발대식을 하고 7개월이란 긴 시간동안 수습과정을 거쳐 드디어 도성길라잡이 8기, 19명의 선생님이 탄생했습니다.
2016년의 겨울,봄 그리고 여름을 거치면서 교육답사와 워크숍, 그리고 구간별로 진행된 선배안내듣기와 각종 답사와 스터디.. 시민안내의 실전이라 할수 있는 메뉴얼 쓰기와 여러차례의 시연... 녹록치 않은 과정을 거쳐 시민 앞에 서야했던 첫번째 해설자와 진행자로써의 시간.. 설렘과 긴장 그리고 끝모를 떨림의 시간들이 지났습니다.
물론 이러한 시간들은 예비 선생님들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먼저 거쳤던 기존 선생님들의 참여와 나눔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시간들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출발점에서 선 8기 도성길라잡이 선생님들을 축하하고 응원하는 시간, 바로 수료식입니다 .
그럼 이제부터 그 수료식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살펴볼까요?
먼저 8기 선생님들의 수습과정을 사진으로 남겨보았습니다. 그리고 행복한 표정, 힘든 표정, 진지한 표정.. 사진 속 선생님들의 설명을 듣고 보니 그 표정들이 더 인상적입니다.
수료식은 기존 도성길라잡이 선생님들에게도 그동안 못만났던 도성길라잡이를 만날 수 있는 반가움의 시간입니다. 다들 오래된 친구처럼 만나니 반갑고, 그저 좋습니다.
본격적인 수료식을 시작해볼까요? 사회는 도성길라잡이7기 김병규 선생님이 해주셨습니다.
서울KYC 공동대표이신 최원명, 오경봉 선생님의 환영인사,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친 만큼 지속적인 활동 속에 스스로 성장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는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배워서 남주자"라는 짧은 인삿말을 남겨주신 도성길라잡이 대표/부대표 홍은영, 정재하 선생님, 곧 참여와 나눔의 실천! '배워서 남주자' 앞으로 남줄 시간이 더 많습니다.
이렇게 환영의 인삿말과 함께 7개월의 시간을 경과보고와 영상을 통해 되돌아 보았습니다. 지난 시간 우리 선생님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들도 살펴보았습니다 "함께 해 준, 고마운, 동기, 선배 길라잡이, 떨리고, 잠못잤다, 꿈에서도, 부족한, 다음엔 좀더 잘" 가장 인상에 남는 단어들은 역시 "함께"라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늘 힘이 되는 단어 "함께'입니다.
그리고 이어진 수료증 전달식.. 올해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수료증"을 만들어 나누어 보았습니다. 8기 선생님들에게는 "나에게 도성길라잡이란?" 이라는 질문을, 그리고 함께 해준 기존도성길라잡이 선생님들에겐는 수료를 하게 되는 이유를 물어 수료증을 만들어보았습니다. 고민의 시간이긴 했지만, 그래도 스스로 지난 7개월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고민의 시간을 마치고 한분한분 정성스레 수료증을 전달했습니다. 물론 수료증을 처음부터 꼼꼼히 다 읽고 전달했습니다.
축하의 떡케익을 나누고, 새롭게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우리의 다짐'을 다같이 읽어보았습니다. 우리의 다짐을 다같이 읽을 때는 항상 비장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단체 사진도 기념으로 남겼습니다.
설레고 쿵쾅거렸던 그 첫느낌, 그 느낌 그대로... 함께 해서 더 의미 있는 자원활동 도성길라잡이입니다.
600년 서울의 역사 문화 생태를 한양도성을 통해 시민들에게 알리고 살기좋은 서울의 모습을 "함께"상상하고 꿈꾸는 서울KYC 도성길라잡이 8기 새로운 출발선에 오심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이날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도성길라잡이 1기 선생님들이 많이 오셨어요. 도성길라잡이가 자리잡아 가는데 주춧돌을 많이 놓아주셨습니다. 앞으로도 든든한 주춧돌이 되어주세요.
서울KYC 회원들이 함께 동아시아적 관점의 역사를 이해하고, 과거사 갈등 해소와 피해자 인권 회복, 평화로운 미래를 함께 생각해보는 평화여행!
올해는 8월 11일부터 14일까지 도쿄와 요코하마를 방문해서 일본의 개항과 제국주의 전쟁의 흔적을 살펴보고, 전쟁을 기억하는 일본의 모습을 살펴보는 시간을 함께합니다.
평화여행을 가기 전, ‘아는 만큼 보인다’는 생각으로 7월 15일과 8월 2일 두 번의 사전 모임을 가지고 평화여행을 준비했습니다.
서로 처음 만나는 분도 있고 해서 간단한 자기소개도 나누고, 어떤 기대와 마음을 가지고 일본 평화여행에 함께하는지 이야기한 후 일정과 준비물에 대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습니다.
일본의 개항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요코하마, 도쿄에서 마주하게 될 조선인 강제징용과 유골 문제, 야스쿠니신사, 그리고 독립운동 사적지들.. 이외에도 우리가 가지 않으면 누가 갈까? 하는 생각으로 함께 가기를 부탁드리는 잊혀진 장소들까지. 가는 장소와 주제를 하나씩 살펴보며, 평화여행의 취지를 생각해봅니다.
날씨도 덥고, 빡빡한 일정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건강을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미리 부탁도 드립니다.
두 번째 모임에서는 미리 책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을 읽어오기로 했는데요, 한중일 역사학자들이 모여 어느 한 나라만의 시선이 아니라 동아시아 삼국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공동의 역사 의식을 모색한 책이었습니다. 책 내용에 대한 간단한 소감을 나눈 후 일본의 개항, 메이지유신, 유슈칸에 관한 영상을 다같이 보면서 우리가 방문할 요코하마와 도쿄 지역의 장소들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개항과 메이지 유신 이후 다른 국가들로 침략의 길을 걷게 된 일본, 아직도 일본 제국주의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전시하고 있는 공간들.. 그리고 그 안에서 조선인들은 희생되기도 하고, 독립을 외치며 행동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보고 찾게 될 역사의 기억들을 하나 둘 미리 떠올려봅니다.
모임에 오신 선생님들도 기타 다른 자료와 강의를 추천해주시기도 하고 평소 알고 계신 역사 이야기도 많이 덧붙여 나누어주셨습니다.
이렇게 사전 모임은 끝나고 정말 여행이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덥고 습한 날씨와 전쟁과 비극이 담긴 역사, 분명 쉽고 편한 시간은 아니겠지만 많이 배우고 느끼는 평화여행 다녀오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다시피 KYC는 본부가 있고, 전국 곳곳에 서울KYC와 같은 지부를 두고 있는 구조입니다.
서울KYC의 오랜 회원이기도 하면서 지난 2월 정기 대의원총회를 통해 2016-2017 KYC 대표를 맡고 계신 최융선 대표님을 서울KYC 회원 분들께 소개합니다.
최융선 대표님, 안녕하세요! 서울KYC 회원 분들에게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가끔 이력을 정리하기는 하지만 … 어색하네요. 대학시절에 어머니께서 용하다는(?) 점쟁이에게 저에 대해서 물었답니다.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사회생활이나 할 수 있을런지?” 부산에서 서울 올라 오니 갈데가 많았어요. 강의실 보다는 전시회, 박물관, 패션쇼, 발레공연, … 멀리 있는 친구들집에 놀러 가는 것도 중요했고. 돈이 필요했으니 아르바이트도 여러가지 바꿔가면서 해야 했고. 그래서 학사경고로 기숙사를 나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점쟁이가 어머니에게 해주었다는 이야기와 MBTI 검사결과로 나온 제가 너무 흡사했습니다. 성격유형이 ESTP랍니다. 물론 시간이 흐른 지금은 좀 변하기는 했겠지만.
긴 설명보다는 직접적인 관찰을 중요하게 여기고, 길게 고민하기 보다는 부딪쳐 보는 것을 선호합니다.
지금은 손에 쥘 수 있는 디지털 도구 덕택에, 메모도 하고 관리도 하기 때문에 실수가 줄어 들었지만, 이순신 장군 처럼 이기는 싸움만 하는 사람이 되기는 힘들겁니다. 찰스다윈은 갈라파고스 같은 곳을 비글호 타고 돌아 댕기다가 위대한 관찰로 수만 년을 상상했잖아요. 저는 그런 삶이 부럽습니다.
올해부터 KYC 대표를 맡고 계십니다. 대표로 있는 동안 중점을 두겠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KYC가 우리 시대의 문제를 바라보는 메세지와 변화를 위한 상상을 내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운영체제를 업데이트 하는 정도로는 ‘헬조선’에서 변화를 만들기는 어렵다고 여깁니다. 발상과 형식을 바꾸지 않으면 사람들은 도전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당연히 결과도 뻔하겠죠.
예를 들어, 우리의 헌법과 주민자치는 국민을 위해, 주민을 위해서라고 되어 있기는 하지만 주민의 의해서 변화를 만들어가는 기회와 형식이 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회서비스의 제공을 보편적으로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것에 대한 참여를 보편적으로 만드는 운영체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을만들기도 주요 활동으로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을만들기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요?
마을에서 주민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소개해주신다면?
질문이 재미없네요.
앞서 이야기한 우리 사회의 운영체제를 바꾸기 위해, 주민참여. 주민자치를 돕는 활동을 합니다.
웬만한 드라마나 소설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방법을 어떻게 알려주나요?
“마을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지 묻지 말고 네가 마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 지 찾아 봐라.”
(참조, And so, my fellow Americans: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ask what you can for your country.
_President John F. Kennedy)”
많은 사람들이 청년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청년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 혹은 시민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혼자 쿨하게 살려고 하지 마세요. 헬조선에서는 전혀 쿨하지 않습니다. 선택가능한 보기는 1~4번까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것을 선택하든가 아니면 새로운 보기를 만들든가. 대학 경쟁력을 주장하는 후보보다 지방대학의 존재를 걱정하는 학생회장 후보를 선택하세요. 그것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중요합니다. 청년창업학교에 가기 보다는 권리금이 없는 사회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세요. 그것이 훨씬 창업에 유리합니다.
청년 정책 중 하나로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청년활동지원사업(청년수당). 지난 8월 3일 서울시는 청년수당 대상자로 선발된 3,000명의 청년들에게 50만 원을 지급했습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3일 시정명령을 내린 후 바로 다음날 청년수당 집행을 중단하는 직권취소 처분을 내렸고, 서울시는 직권취소 처분에 맞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진행하고 대법원에 제소할 예정입니다. 결국 청년수당을 둘러싼 갈등은 대법원으로 갈 것으로 보입니다.
3일 복지부가 시정명령을 내리자 KYC를 비롯한 청년단체들과 청년 당사자들은 사회보장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정명령을 비판했습니다.
청년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지자체가 하는 새로운 시도를 막는 정부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자회견문 바로가기)
특히 청년수당은 서울시가 위에서부터 만들어 내려보낸 정책이 아니라 지난 몇 년간 청년들이 스스로 요구해와서 관철된 정책이기 때문에 그 의미는 더 큽니다.
KYC는 작년부터 토론회, 기자회견, 기사, 강의 등을 통해서 청년수당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청년 정책의 필요성을 확인해왔습니다.
청년 실업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더 이상 성장이 가능할지조차도 의문인 지금 시기에 매해 2조가 넘는 예산을 쏟아 부으면서도 그 효과는 의심스러운 중앙정부의 일자리 사업만을 권할 것이 아니라, 좀더 청년의 삶에 직접적으로 와 닿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사업에 대해 중앙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하며 자율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상호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간섭하고 훼방을 놓는 구도를 만들어내는 것이 누구를 위한 일인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도덕적 해이’라고 하는 말로, 현금을 주면 유흥비로 쓸 것이라고 하는 말로 청년을 아직 부족하기만 한 사람처럼 볼 것이 아니라,
정부가 먼저 청년의 발전가능성을 믿고 지지하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 때입니다.
돈이 아니라 '시간'을 얻고 싶다며 청년수당에 지원한 청년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KYC는 앞으로도 청년 당사자들, 다른 청년단체들과 함께 청년수당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새로운 청년 정책 시도가 좌절되지 않도록 행동해나갈 예정입니다. 지속적인 소식 전해드릴 테니, 청년 정책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다음 사회를 위한 시정참여’를 주제로 8월 21일 서울청년의회가 열렸습니다. KYC가 열고 있는 모임인 2017대선정책연구소 참여자 중 5명도 청년의회에 참여했습니다.
서울청년외회는 서울특별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진행되었고, 청년수당, 청년공간, 시민교육, 청년 1인가구 식생활, 장애인, 부채, 주거, 미세먼지, 자전거 안전, 일자리 등 그간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를 통해 청년들이 논의해온 10대 의제에 관해 시정 질의를 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행사로 진행되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한 서울시 공무원들과 서울시의회 청년발전특별위원회 의원들, 그리고 120여 명의 청년의원들이 이 자리에 함께했습니다.
본회의에 앞서 사전행사가 있었습니다. 서울 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활동하는 청년들, 그리고 지난 5월부터 함께 청년의원으로 활동했던 청년들이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뭔가 활동을 해보려고 하는, 변화를 만들어보려고 하는 청년들이 서로 공감하고 특히 지난 청년정책네트워크를 통해 만들어진 정책인 청년수당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이날 열린 청년의회는 일회성 자리는 아닙니다. 5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모임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에 걸친 분과별 모임과 토론, 시 공무원과 시의회의원들과의 간담회를 거쳐 나온 과정입니다.
의회 행사 자체는 상징적인 행사일지 모르지만, 긍정을 이야기하는 젊은 사람들이 변화를 찾고 그 방법을 실질적으로 고민해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사람들끼리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과정이었고, 적어도 청년들이 어쨌든 할 수 있다,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할 만한 자리였습니다.
특히 분과별 발표를 통해 청년 당사자가 내는 목소리가 가지는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덧붙여, 활동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만 하면 청년들이 굉장히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각 분과마다 가지는 정책 내용의 차이도 있고 서울시라는 한정적인 지자체에서 이루어지는 행사이기 때문에 아직 모든 청년을 포괄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사전 행사에서 다른 지역의 청년들과 함께 했듯이 더 큰 변화를 같이 이야기한다면 좋은 성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앞으로를 기대하게 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청년의회 행사는 끝났지만 청년정책네트워크의 활동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9월 말 청년의회에서 이루어졌떤 정책 제안에 대한 보고대회가 열릴 예정이고 10월 초에는 그간의 활동을 전시하고 정리하는 청년주간 행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출처: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마지막으로 청년의회에 함께한 일부 체인지리더의 소감을 전합니다.
청년의회의 취지는 청년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오늘날 서울시 정책 실무진들이 이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 마련을 위해 당사자인 청년에게 직접 정책 제안권을 준 것인데, 이는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접근방법으로 전국적으로 퍼져야 하고 오랜 기간 지속되어야 한다. 앞으로 "청년의 삶을 개선한다."는 본질적인 주제에 대한 계속적인 고민을 통해 더 나은 모임이 되었으면 한다. (차석호)
청년의회를 하면서, 그 준비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었다. 이는 다시 말하면, 그만큼의 에너지가 발산하여 현재의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거기서 나오는 치열함으로 인하여, 나는 내 주변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한 적이 있었나 되돌아보게 된다.
이번 청년의회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막상 현장에 참여하면서, 민의를 실현하는 일은 안보이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치열한 과정과 노력과 땀이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덤으로 국회의원에 대해서 다시 보게 되기도 하면서... 그러면서 의회가 열렸던 시의회에 있는 이 자리가 신성해보이기까지 하였다.
그만큼 중요한 자리이기에, 투표를 신중히 해야함은 당연하고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더 잘 알아야 하고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 과정에 참여하면서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장이 마련되면 많아진다고 생각된다. 세파에 시달린 청년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 자신이 그러한 처지에 있으면서 스스로와 그 주변에 대해서 사랑하는 것을 조금씩 포기했지만, 이번 경험은 그래도 나 자신과 내 세상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 (김유석)
동아시아 역사를 이해하는 일본 평화여행 – 요코하마 도쿄 지난 8월 11일부터 14일까지 서울KYC 회원 15명이 함께 평화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올해 평화여행은 요코하마와 도쿄에서 일본의 개항, 제국주의 전쟁과 패전 후 이를 기억하는 일본의 모습까지 살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3박 4일의 일정을 다시 한번 따라가면서 그날의 생각과 느낌을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8월 11일: 개항과 제국주의의 길 - 요코하마
이른 아침부터 출발해 나리타 공항에 도착, 요코하마로 이동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시작을 찾아가면서, 일본의 개항을 알고 가지 않을 수 없는데요, 그래서 요코하마 개항자료관을 둘러보고, 개항의 길을 걸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그마한 시골이었던 요코하마, 그러나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곳에 당도한 이후 요코하마를 비롯 일본 전역은 개항과 함께 메이지유신이라는 전격적인 변화의 길을 가게 됩니다.
요코하마 개항자료관에는 페리와 관련된 자료들과 함께 개항을 통해 변화하는 요코하마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개항자료관 안에는 페리가 왔을 때도 자리했다던 나무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관광지로 사람들이 휴양을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요코하마의 현재를 걸으며, 풍경을 보며 개항에 관한 기억을 찾아보았습니다.
개항을 하면서 통역을 위해 함께 들어온 중국인들이 형성한 차이나타운도 방문해보며 첫 번째 하루는 저물어갔습니다.
8월 12일: 관동대지진과 도쿄대공습, 재일한인역사관, 조선인 강제징용과 유골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일본 시민단체 봉선화, 그리고 도쿄 조선인 강제연행진상조사단과 함께 했습니다.
봉선화 대표 니시자키 선생님으로부터 당시 조선인 학살에 관한 설명을 듣고 학살지로 추정되는 장소를 방문할 수 있었는데요, 자전거를 타고,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옆 풀밭은 설명을 듣지 않으면 이곳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 당시 조선인들이 얼마나 죽었는지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학살지 근처에는 봉선화가 건립한 추모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조선인 학살의 주체를 명시했다는 의의를 가지는 이 비 앞에서 마련해온 추도 물품으로 간단한 추모 의식을 진행했습니다.
자주 가던 선술집 주인이 추도비 건립 터를 마련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우리가 이야기를 듣는 동안 간단한 먹을 것을 챙겨주는 동네 주민을 보면서 일본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이들과, 그들을 둘러싼 도움을 생각해봅니다.
이어서 찾아간 도쿄도 위령당은 관동대지진 당시 피난 온 사람들이 번져온 불에 타 사망한 사연을 간직한 비극적인 장소입니다. 이곳에는 관동대지진 당시 사망한 사람들의 유골과 함께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의 대공습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는데요, 이 유골 중에는 조선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유골 또한 있습니다.
위령당 외부 한켠에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를 추모하는 추도비가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봉선화가 건립한 비와는 달리 '누가'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도 모두 함께 절을 올리며 추모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걸음을 재촉해 방문한 재일한인역사자료관에서는 재일한인들이 살아온 생활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재일한인들이 실제 사용했던 가재도구, 문서, 사진들을 보며 때로는 강제로 끌려와서, 때로는 먹고 살기 위해 일본에 온 조선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조선학교, 국적 문제 등 아직 해결되지 않은 재일동포 문제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일정으로 방문한 곳은 유텐지. 이곳에는 조선인 강제징용자 유골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특히 우키시마호 침몰사건 당시 희생된 조선인들의 유골이 일부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만난 이일만 선생님을 비롯해 도쿄 조선인 강제연행진상조사단은 누군가의 가족이고, 누군가의 친구였던 마지막 한 사람까지 밝혀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공사로 인해 유텐지 내부를 볼 수는 없었지만, 식민지 시대 일본에서의 비극적 사건을 살펴본 오전부터의 일정을 돌아보며 짐작하기도 어려운, 죽어서도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의 한을 생각해봅니다.
이날 봉선화와 도쿄 진상조사단과의 만남을 통해서 진실을 끝까지 밝혀내고, 한 명 한 명의 삶을 끝까지 담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재일한인’ 또는 ‘동경대지진의 피해자들’ 같은 집단적 개념으로는 미처 다 담을 수 없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그 의미를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에 반성하게 됩니다.
8월 13일: 야스쿠니 신사와 유슈칸, WAM 그리고 야스쿠니 촛불행동
이날은 야스쿠니 신사와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WAM)을 방문한 후 야스쿠니 전사자 유족 증언을 듣고 야스쿠니 촛불행동에 함께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에 방문하기 전 잠시 들른 곳은 바로 이치가야 형무소 터. 일본 천황 암살을 기도했던 이봉창 의사가 사형을 당한 곳입니다.
현재 이곳에는 형사자 위령탑이 세워져 있지만, 이봉창 의사과 관련된 표시나 관리는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보입니다. 최근 이와 같은 방치 상태가 언론에 보도되어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알지 못하면 갈 수 없는 장소, 간다고 해도 크게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없지만 '기억한다'는 마음으로 함께했습니다.
뒤이어 방문한 야스쿠니 신사와 유슈칸. 야스쿠니 신사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들과 함께, 식민지였던 한국과 대만 등지에서 전쟁에 끌려가야 했던 사람들도 전쟁영웅이라는 말로 무단으로 합사되어 유족들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는 논란의 장소입니다. 일면 평안해보이는 신사 풍경 속, 해결되지 않고 있는 전쟁이 낳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 그것이 비단 죽은 자들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은 야스쿠니 신사 경내에 위치하고 있는 군사박물관인 유슈칸에서 더욱 확인해볼 수 있었습니다. 내부에 들어가자마자 볼 수 있는 가미카제에 동원된 제로센 전투기를 비롯해서 유슈칸에는 가미카제 특공대원의 동상, 참전 군인의 유품 등 일본 제국주의 전쟁의 상징처럼 보이는 전시물들이 가득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전시물들은 전쟁의 책임이나 평화를 말하기보다는 국가에 대한 충성과 어떤 희생을 긍정하고 돋보이게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유슈칸에는 일본의 어린 학생들도 여럿 와서 둘러보고 있었는데요, 학생들이 그 전시품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생각해보면 답답해집니다.
답답한 마음을 뒤로 하고 향한 곳은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뮤지움(WAM). 이곳에서는 그러나 일본이 저지른 전쟁의 책임을 묻고 피해자들을 끊임없이 기억하며 진실을 찾아가는 일본인들의 노력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WAM에서는 일본군 성노예에 관한 자료를 모아나가고 일본군이 점령한 지역의 위안부 지도 등 여러 가지 내용을 전시하고 있는데요, 상대적으로 안전한 와세다 대학 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위안부'에 대해 잘 모르는 일본인들에게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일정이 맞아 1년에 한 번 있다는 야스쿠니 공동행동에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들이 모여 야스쿠니 유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야스쿠니 합사와 전쟁에 반대하는 촛불행동을 하는 시간이었는데요, 가족들이 야스쿠니에 있는,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해졌지만 힘 있게 가족을 돌려달라 말하는 유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야스쿠니 합사 문제가 아직 끝나지 않은 살아 있는 문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시간이 좀 더 흘러 세대가 넘어가면 이 문제가 또 해결되지 않은 채 쌓이는 것은 아닌지 우려도 됩니다. 행진을 통해서는 야스쿠니 합사와 전쟁에 반대하는 촛불을 위협하는 일본 우익의 모습을 실제로 보며 일본의 현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8월 14일: 일본 제국주의 심장 속 독립의거지를 찾아서
마지막 날에는 도쿄에 있는 독립의거지를 찾았습니다. 오전에 찾아간 곳은 재일한국YMCA 건물 10층에 있는 2.8독립선언기념관. 이 건물 앞에는 2.8 독립선언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는데요, 10층에 따로 기념관이 있습니다. 2.8독립선언을 주도한 청년들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고, 독립선언의 전개와 의의를 나타낸 영상도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도쿄라는 일본 제국주의의 한복판에서 있었던 청년들의 독립 선언! 이는 거국적인 3.1운동으로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제국주의 심장을 강타한 독립의거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평소 관광지로 지나칠 수 있는 황거와 도쿄역, 히비야 공원도 독립 운동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들도 함께 찾았습니다.
2.8독립선언 직후 주도자들은 체포되고, 이때 체포되지 않은 나머지 학생들이 만세 시위를 벌였던 곳이 히비야 공원입니다. 그때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지만, 당시 학생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며 지나갑니다.
황거(고쿄)는 천황이 있는 중심지이고, 그래서 더 어려웠을 텐데도 우리가 익히 아는 이봉창 의사와 김지섭 의사가 각각 천황과 왕궁을 겨냥한 투탄 의거를 한 장소입니다. 지금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는 관광지로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그곳을 보며 과거 도쿄 한복판에서 있었던 의거를 눈으로 그리며 독립투사들의 담대한 의기를 헤아려 봅니다. 지금도 남아있는 도쿄역 호텔은 양근환 의사가 친일파 민원식을 처단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3박 4일의 어쩌면 일본의 개항부터 제국주의 전쟁까지를 파악하기에는 짧은 기간일 수 있지만 그 일정에 가능한 경험을 가득 담고, 만나는 장소와 사람들 속에서 의미를 하나하나 찾아가는 여행이었습니다.
사전답사부터, 또 현지 일정에서 통역과 안내를 비롯해 장소마다 발 벗고 나서 도움 주고 함께 해주신, 평화여행을 통해 만난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일본에서의 소중한 만남에서, 역사를 기억하고 서로를 마주하면서 끝까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에게서, 동아시아 역사를 이해하는 걸음을 내딛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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