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는 경상남도가 신청한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신청을 반려했다. 6일 환경부는 경남도에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 신청은 공익성과 환경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반려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환경운동연합은 환경부의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신청 반려를 환영한다. 환경부의 반려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당연한 결정이다.
경남도는 산청 중산리~장터목~함양 추성리를 잇는 총연장 10.6km, 세계최대 길이의 케이블카를 설치한다고 홍보하며 사업을 신청했다. 그러나 이 노선은 절대적으로 보호해야할 국립공원인 지리산의 주능선을 넘어간다. 게다가 국립공원 내에서도 특별보호구역인 칠선계곡을 통과하기까지 한다. 칠선계곡 일대가 생물다양성 보전가치가 높은 식물군락과 멸종위기 동물종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공원 삭도 가이드라인 검토(2011.05.03 작성), 국립공원 삭도 시범사업 검토기준(2012.02.03 작성)을 위반한 계획이기도 하다.
그러나 환경부의 이번 결정을 완전히 환영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환경부 스스로 반려 사유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고, 무엇보다 국회와 시민단체가 요구한 경남도의 케이블카 사업 신청서를 여전히 공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결정도 생태보전이라는 가치와 법이라는 원칙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 결정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식이라면 언제든지 반려 결정을 뒤집고, 정치적 판단에 의해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을 재추진할 수 있으리라는 불안감이 남는 것이다.
이는 형평성과 일관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도대체 지리산케이블카는 안되고 설악산오색케이블카 사업은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적법한 절차, 원칙 그리고 투명한 정보공개에 근거한다면, 현재 본안 접수를 앞두고 있는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도 반려되어야 마땅하다. 국립공원위원회 심의과정에서 불거진 위법행위와 경제성 조작논란, 부실한 환경영향평가 초안 등 온갖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다. 환경부 스스로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을 반려했듯이,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도 반려하여, 적법한 원칙과 생태보전이라는 가치에 근거해서 판단하는 부처임을 스스로 증명할 때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5년여의 작업 끝에 『일제식민통치기구사전 : 통감부·조선총독부 편』을 펴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중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제강점기 사전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2009년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이어 두 번째 성과이다. 이 사전은 일제가 조선 지배를 위해 설치한 통치기구 중에서 우선 최고 권력기구인 통감부・조선총독부 본부와 소속관서들을 수록했다. ‘을사늑약’으로 사실상 국권을 상실한 1905년부터 1945년 해방될 때까지 40년간에 걸쳐 존속했던 통감부와 조선총독부 기구를 모두 망라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적지 않다. 수록된 총 248개(통감부 26개, 조선총독부 222개)의 관서와 기구는 일제가 법령 공포를 통해 설치를 공식화한 것으로 모두 『관보』에서 관련 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편제는 개별 통치기구를 각 1항목으로 설정하고, 통감부와 조선총독부로 대별한 뒤 다음으로 통감부 본부・소속관서, 조선총독부 본부・지방관서・학교・위원회 순으로 배열하였으며, 같은 범주 내에서는 설치년도 순으로 정리했다. 각 항목은 표제어(기구명)・존속기간・성격・연혁・조직과 기능・참고문헌 순으로 서술했다. 방대한 자료조사와 사료검증을 거쳐 확정적인 내용만 채택하였으며, 집필자의 주관적 해석은 최대한 배제하여 객관성 확보에 유의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식민통치기구사전』이 학술적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자평한다. 먼저 통감부와 조선총독부 기구 전체를 종합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은 이 사전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통감부와 조선총독부 기구에 대해서는 본부를 비롯한 일부 부서만이 그 실체가 드러났을 뿐, 상당수의 기구는 극히 소략한 정보만을 알 수 있거나 아예 파악조차 되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다. 이 사전을 통해 비로소 일제 식민통치 기구의 구체적인 전모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특히 140여개에 달하는 각종 조선총독부 위원회를 정리한 것은 그동안 다수 위원회가 존재조차 언급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분야 연구에 새로운 단서를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위원회는 대부분 한시적으로 운영되었지만 심의・조사・자문・징계・조정 등의 기능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현안 문제를 처리하거나 긴급한 정책・대책을 마련하고 결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일제 식민지배의 특성을 규명하는 데 주목해야 할 연구 대상이다.
일제의 식민통치와 전쟁동원에 적극 협력했던 ‘직업적’ 친일파들이 위원회 등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관변단체나 협력단체에 참여한 정도의 숫자는 아니지만, 이완용 박중양 박영효 박영철 송병준 한상룡 이범익 등 다수의 특급 친일파들이 관료기구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부수립 이후 각종 법령이나 정책 규제 용어 등의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농촌진흥운동 심전개발운동 기부금품모집취체규칙 등이 새마을운동 새마음운동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그 일부 사례다. 또 민족문제연구소가 소장한 각종 관청이나 인물 사진 등을 중심으로 다수의 희귀자료도 수록해 사료적 가치를 높였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사전이 일제강점기 정책사・제도사 연구에 기초자료로 활용되고 나아가 식민통치 구조나 식민지배의 본질을 해명하는 데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식민지 근대화론’의 본질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문제제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제의 식민통치기구 설치와 운영은 외형적으로 근대의 법령 체계와 관료제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상당수의 기구는 해방 이후에도 그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기도 했다. 그러나 통치기구의 근대적 체계와 운용은 식민지 지배의 억압성과 수탈성을 은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에 지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식민지배기구가 일본의 통치구조에 조응하여 구축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종속적이고 차별화된 조직체계와 운영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근대화보다는 식민지 경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근대의 외피’를 둘렀을 뿐 그 본질은 식민성에 있었다.
이번 사전 발간은 1991년 설립 이래 학술연구와 실천운동을 병행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집단적 작업의 결실이라는 측면에서도 평가가 필요하다. 정부기관의 지원이 아닌 오롯이 시민의 후원만으로 도전을 거듭하며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통감부・조선총독부 기구 전반에 대한 정리는 진즉에 이루어졌어야 할 기초적인 작업이지만 자료의 정보화 없이 개인 연구자들이 접근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연구공동체가 자료의 집적과 집단 작업으로 이를 극복해 낸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식민지 시기이면서 근대라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는 일제강점기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일제강점기 각 부문에 대한 대대적인 기초자료 조사와 정리를 계속 이어나갈 계획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일제식민통치기구사전 : 통감부·조선총독부 편』의 후속작업으로 『일제식민통치기구사전 : 일본군·국영기업·관변단체 편』도 이미 추진단계에 들어섰다고 밝히고, 연구소가 진행하고 있는 일련의 사전 편찬사업이 일제강점기 연구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참고자료 (발간사, 서문, 일러두기, 차례)
■ 차례 2 발간사
8 일러두기
26 총론
45 통감부 편 (45 통감부 본부, 65 통감부 소속관서)
129 조선총독부 편 (129 조선총독부 본부, 221 조선총독부 소속관서, 441 조선총독부 지방관서, 481 조선총독부 학교, 521 조선총독부 위원회)
일제강점기 조선주둔 일본군대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다보면, 그들만의 기념행사가 정례적으로 벌어진 흔적을 어렵잖게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관병식(觀兵式)이니 육군기념일(陸軍記念日)이니 하는 행사가 그것들이다.
<매일신보> 1926년 1월 9일자에 수록된 ‘육군시 관병식(1월 8일)’의 모습. 사이토총독의 참석 하에 광화문 앞길에서 거행되었다.
우선 관병식은 천황 앞에서 군대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열병(閱兵)과 분열(分列)을 포함한 일종의 대규모 군사퍼레이드를 벌이는 것을 말한다. 식민지 조선에 있어서도 해마다 새해가 되면 일정한 날(대개 1월 8일)을 정하여 조선총독과 군사령관이 참석한 가운데 ‘육군시 관병식(陸軍始 觀兵式)’을 개최하며, 자기들 천황 생일인 천장절(天長節) 혹은 천장절축일(天長節祝日)에도 빠짐없이 다수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주둔지의 연병장과 도심지 대로에서 성대한 관병식을 거행했다. 드물게는 사단대항연습(師團對抗演習)과 같은 대규모 군사훈련의 말미에 열리는 관병식도 있었다.
예를 들어 ????매일신보???? 1926년 1월 9일자에 수록된 「가상(街上) 관병식의 성관(盛觀), 도창검극(刀槍劍戟) 일광(日光)에 찬연」 제하의 기사에는 광화문 앞길에서 벌어진 관병식의 풍경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오랫동안 적막하고 있던 광화문통(光化門通) 너른 마당도 8일 아침 11시부터 거행된 관병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었다. 총독부가 경복궁으로 옮겨간 기회에 조선에서도 관병식을 거리에서 행하는 실례를 보게 된 것이니 정각 전부터 전차와 인마의 교통을 끊자 모여드는 구경꾼과 각 학교 생도들의 단체관람자로 인하여 광화문 앞에서부터 태평통 본사 앞까지 두 길가에서는 사태가 치밀리는 구경꾼과 기마경관 사이에는 쉬지 않는 승강이가 먼저 시작하였던 것이다. 정각이 되매 맑은 하늘 빛나는 일광을 춤추는 듯한 요란한 나팔소리와 함께 모여드는 보병, 공병, 기병, 포병의 씩씩한 기치, 창검은 오히려 무사의 위풍이 넘치었으며 ‘선린상업’, ‘경성사범’, ‘경성중학’ 등 세 학교의 학생들까지 뒤를 따라 장쾌한 관병식은 눈에 덮인 광화문 넓은 뜰에서 감개 깊은 광화문을 향하여 성대히 열렸었다. 스즈키(鈴木) 군사령관의 검열이 있은 후 뒤를 이어 분열식도 무사히 끝이 나 조선에서 처음으로 거리 위에 관병식은 이로써 종결을 고하였는데 때는 열두 시 십 분이었었다.
1874년 12월 2일 태정관 포고 제130호에 의해 제정된 ‘육군연대군기(황색 테두리에 자주색 수술을 두른 욱일기)’의 모습. 보병연대는 장방형이고, 기병연대는 정방형인 것이 다르다.
다음으로 육군기념일은 러일전쟁 당시 1905년 3월 10일 일본육군이 러시아군을 상대로 봉천(奉天)을 점령한 날을 기려 제정한 것이다. 이에 상대되는 것으로 해군기념일도 있었는데, 이 역시 1905년 5월 27일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가 이끄는 일본해군의 연합함대가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물리친 것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해마다 육군기념일이 되면 이날에 맞춰 거리행진을 포함하여 모의전투시범이나 한강변에서 폭격연습과 같은 행사도 곧잘 벌어지곤 했다.
이것 말고도 일본군대에서 거행되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연례행사의 하나는 군기제(軍旗祭)이다. 군기제란 것은 천황으로부터 연대(聯隊) 단위의 일본군대에만 하사되는 군기, 즉 ‘욱일기(旭日旗, 쿄쿠지츠키)’를 수여받은 날을 기념하는 행사인데, 바꿔 말하면 ‘부대창설기념일’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1889년 10월 7일 칙령 제111호 해군기장조례(개정)에 의해 처음 군함기로 채택된 ‘욱일기’의 모습. 이 규정에 따라 일본군함에는 배 앞쪽에 일장기를, 배꼬리에는 군함기(욱일기)를 게양하게 되었다. 해군기(욱일기)는 육군기와는 달리 일장의 중심이 깃대 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해군제도연혁>, 1940)
일장기 도안를 바탕으로 16가닥의 붉은 아침 햇살이 묘사된 ‘욱일기’의 제정 연혁을 살펴보면, 1870년 5월 15일에 공포된 ‘태정관 포고 제355호 육군국기장(陸軍國旗章) 병(並) 제기장(諸旗章) 병부성(兵部省) 도등막(挑燈幕) 등의 건’이 그 효시이다. 이것이 1874년 12월 2일 ‘태정관 포고 제130호 육군보기포삼병연대군기(陸軍步騎砲三兵聯隊軍旗) 병(並) 보병대대기(步兵大隊旗) 급(及) 동향도기(同嚮導旗)’로 개정되면서 각 연대 단위로 욱일기가 하사되기 시작했는데, 이에 앞서 1874년 1월 23일에는 일본천황이 근위보병 제1연대 및 제2연대를 대상으로 손수 욱일기를 건네는 최초의 군기수여식이 거행된 바 있었다. 이렇게 하사받은 군기는 그 자체가 제국군대의 상징이 되어 목숨을 걸고 지켜야하는 절대적인 존재로 간주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만약 적군에게 포위될 때는 불가피하게 이를 소각하는 방식으로 군기가 탈취되는 치욕적인 상황을 모면하기도 하는데, 이런 예외적 상황을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군기는 재교부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한 번 하사된 군기는 포탄을 맞거나 총알이 관통하여 깃발이 다 떨어지고 헤어진 흔적이 역력하더라도 회수되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 테두리만 남은 채 기면(旗面)이 완전히 사라진 경우도 흔했지만, 오히려 그러한 전투이력을 지닌 부대 역사 자체가 자기들만의 대단한 명예와 자부심으로 승화하는 연결고리가 되기도 했다.
한편, 욱일기는 육군기에 머물지 않고 해군기로도 사용되었는데, 1889년 10월 7일에 개정된 ‘칙령 제111호 해군기장조례(海軍旗章條例)’에서 처음 그 흔적이 포착된다. 이때의 규정에 따라 일본 군함에는 뱃머리에 일장기 모양의 함수기(艦首旗; 국기와는 ‘일장’의 크기가 다름)를, 배꼬리에 욱일기 모양의 군함기(軍艦旗)를 각각 게양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게 되었다. 다만, 해군기로 사용된 욱일기는 육군기와는 달리 일장(日章)의 중심이 바람방향을 고려하여 깃대 쪽으로 치우친 모양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욱일기가 일본제국이 벌인 침략전쟁 때마다 빠지지 않고 그 선봉에 등장했다는 사실이었다. 개항 이후 일본공사관의 경비를 명분 삼아 조선에 주둔했던 일본군 수비대의 선두에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걸쳐 큰 전쟁을 일으킬 때마다 밀려든 일본함정과 기병대의 말머리에도, 그리고 이른바 ‘의병진압작전’을 위해 이 땅에 무단상륙을 감행했던 임시파견부대의 행렬에도 어김없이 욱일기는 그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조선주둔 일본군의 연대별 군기수여일 현황>
이러한 상태에서 조선총독부에 의한 식민지배가 개시되고 곧이어 일본군대의 주둔방식이 주차군(駐箚軍) 편제에서 상주군(常駐軍) 형태로 전환하였는데, 이때가 바로 1916년 봄이었다. 이에 따라 조선 전역에 새로 주둔할 2개 사단 가운데 제19사단(용산)이 먼저 창설되어 신설 7개 연대(보병 제73, 74, 77, 78, 79, 80연대 및 기병 제27연대)에 대한 군기친수식(軍旗親授式)이 1916년 4월 18일 일본 동경 황궁에서 일괄 거행되었다.
1916년 4월 21일 용산역에 도착한 제19사단(신설) 소속 연대기들의 모습. 여기에는 보병 제78연대를 비롯한 5개 신설연대(보병 및 기병)의 군기가 포함되어 있다. (<조선사단창설기념호(조선사진화보 특별호)>, 1916년 11월)
이들 깃발은 이틀 후 부산항에 도착하고, 대전과 대구에 각각 주둔지역이 설정된 보병 제79연대 및 제80연대를 제외한 나머지 5개의 연대기는 모두 기차편을 통해 용산역으로 이동하였다.<매일신보> 1916년 4월 22일자에 수록된 「신연대기 도착(新聯隊旗 到着)」 제하의 기사는 이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기보(旣報)와 여(如)히 보병 제73, 74, 77, 78의 4연대 및 기병 제27연대의 군기(軍旗) 5류(旒)는 각 기수(旗手)가 봉대(奉戴)하고 예정과 여(如)히 작(昨) 21일 오전 8시 50분 용산역(龍山驛)에 도착하였는데 차전(此前)에 이구치(井口) 군사령관, 다치바나(立花), 하시모토(橋本) 양 사단장 이하 군사령부 제9, 19 양 사단 막료, 장교, 동 상당관, 조선장교, 애국부인회, 정내유지(町內有志), 용산 각학교 생도, 기타 일선관민(日鮮官民) 등 수백 명의 출영이 유(有)하였는데 열차가 정각에 도착하매 역내 승강장에 출영한 이구치 군사령관, 다치바나, 하시모토 양 사단장 및 각요부원(各要部員) 경호 하에 기수가 차(此)를 봉지(奉持)하고 제78연대 군기는 복(覆, 덮개)을 제하고 타(他)는 복(覆)을 시(施)한대로 1개 중대의 병사가 차(此)를 호위하고 나팔의 향(響)으로 대오 정정히 제78연대본부에 입(入)하였고 차(且) 78연대는 양삼일중(兩三日中), 기타의 각 연대는 착대 순차(着隊 順次) 다치바나 사단장이 각대에 출장하여 각각 수여식을 행하였더라.
수압식 도록코에 실려 옮겨지고 있는 함경북도 나남 주둔 보병 제73연대 및 기병 제27연대의 군기 모습. (<사진통신> 1916년 11월호)
<조선제23부대 지나사변기념사진첩> (1940)에 수록된 용산 주둔 보병 제79연대의 군기 모습. 깃발의 일부가 훼손된 것은 이 부대가 중일전쟁과 같은 침략전쟁에 가담했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제국육군대사진첩 (소년구락부 1933년 11월호 부록)>에 수록된 일본군대의 전투장면. 여기에는 어김없이 일본국기인 일장기와 더불어 육군기인 ‘욱일기’의 모습이 함께 등장하는데, 기면(旗面)은 몽땅 사라지고 테두리만 남은 군기의 모습에서 무수한 침략전쟁의 흔적을 읽어낼 수 있다.
그 직후 5월 1일에는 보병 제78연대의 연병장에서 데라우치 총독의 참석 하에 각 부대에 대한 군기수여식(軍旗授與式)과 더불어 사단개청식(師團開廳式)도 이날 함께 열렸다. 이로부터 3년이 지나 1919년 6월에 제19사단은 함경북도 나남으로 옮겨가고 제20사단(용산)이 신설되면서 예하 연대의 소속변경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용산주둔 보병연대의 경우 매년 4월 18일이 군기수여일이기 때문에 군기제(軍旗祭)라는 이름의 부대창설기념행사가 꼬박꼬박 거행되었다. 조선군사령부의 창설기념일(1918년 6월 1일)에도 줄곧 기념식이 벌어지긴 하지만, 그 규모가 훨씬 더 성대하고 다수의 군중이 동원되는 것은 ‘군기제’ 쪽이었다.
만주사변에 파견된 일본군대에 제공된 군용담배 ‘히카리’의 포갑지 도안이다. 여기에도 어김없이 일본군대의 상징인 ‘욱일(아침햇살)’ 모양이 등장하고 있다.
조선에 주둔하는 일본군대는 단지 식민통치를 뒷받침하는 역할에만 그치지 않고 시베리아
출병, 간도침공, 만주사변, 중일전쟁, 장고봉사건을 비롯하여 태평양전쟁에 이르는 침략전쟁
에 속속 참전했던 내력을 지녔고, 그때마다 파견부대의 선봉에는 ‘욱일기’가 빠지는 법이 없었
다. 이러한 까닭에 전쟁터를 누빈 ‘욱일기’야말로 영예로운 군기이기는커녕 침략전쟁에 의한
고통과 상처, 그리고 일본제국군대가 행했던 폭압과 만행을 상기시켜주는 ‘전범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한국투명성기구, 한국YMCA전국연맹,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공수처설치촉구공동행동>의 발족을 알리는 기자회견 “2017 정기국회 1호 법안은 공수처”를 9월 25일 월요일 오후 1시 30분 광화문광장에서 개최했습니다.
참여 시민단체들은 공수처 설치 법안의 조속한 심사와 이번 정기국회 내 공수처 설치 법안 통과를 위해 <공수처설치촉구공동행동>를 발족하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지난 대선에서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바른정당 대선 후보 모두가 공수처 설치를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으며, 각 정당과 시민단체가 제출한 법안이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다수가 설치에 찬성하는 만큼 공수처 설치 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공수처설치촉구공동행동>은 공수처 설치를 통해 권력형 비리를 근절하고 엄중하게 처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정권한을 나눔으로써 무소불위 권한을 행사해온 검찰을 견제하는 동시에 검찰은 정치적 부담이 큰 수사와 기소 부담을 덜어 정치적 중립성 시비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공수처설치촉구공동행동>은 국회가 이번 2017 정기국회에서 공수처 법안을 우선적으로 심의하고 법안을 통과시켜야 하며, 공수처는 부패척결뿐만 아니라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도입되어야 하고, 공수처 처장의 추천 등 운영 과정에 시민의 참여와 감시를 보장할 것 등을 요구하였습니다.
<공수처설치촉구공동행동>은 정기국회에서 공수처 설치 법안 통과를 위해 「2017 정기국회 1호 법안은 공수처 캠페인」을 전개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캠페인은 △공수처 홍보 팜플렛/소책자 제작 및 배포, △길거리 홍보, △스토리펀딩 등 온라인 공론화, △언론기획 및 릴레이기고 등 대국민 공론화 전개, △국회 상임위원회 방청 및 집중 모니터링, △공수처에 반대하는 의원 대상 항의행동, △필요시 항의방문 및 규탄집회 등 공수처 법안 통과 촉구 행동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정기국회기간 동안 10월 마지막 주 등 매달 집중행동주간을 선포해 공수처 법안 통과를 위한 시민의 요구를 집결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기자회견문 낭독 : 성창익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위원장, 임지봉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 붙임자료. 기자회견문
2017 정기국회 1호 법안은 공수처 설치 법안!
촛불대선 이후 적폐청산을 위한 입법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가운데 정기국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최악의 권력형 비리 사태인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또다시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고 엄중하게 처리하기 위한 독립된 수사기구를 설치하는 것은 적폐청산의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즉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입니다. 이에 우리 시민단체들은 2017 정기국회에서 공수처 설치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며 <공수처설치촉구공동행동>을 발족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국정농단사태는 우리사회에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이 여전히 만연하다는 사실을 드러냈습니다. ‘1인당 GDP 3만불 시대’, ‘선진국’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우리 사회의 병폐를 애써 묵인해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입니다.
촛불대선 이후 검찰이 가장 분주해보입니다. 박영수 특검의 국정농단 수사부터 국정원의 블랙리스트와 댓글알바, 방산비리 등 지난 10년간 곪은 환부를 도려내는데 검찰이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촛불광장에서 검찰이 ‘부역자’라고 불렸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권력의 의중에 따라 검찰권을 오남용해온 검찰이 아니라 독립적인 수사기구를 설치해 적어도 고위공직자의 비리 수사를 전담하도록 해야 합니다. 공수처 설치는 사정권한을 나눔으로써 무소불위 권한을 행사해온 검찰을 견제하는 동시에 검찰은 정치적 부담이 큰 수사와 기소 부담을 덜어 정치적 중립성 시비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낼 것입니다.
촛불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그리고 바른정당의 대선후보들은 공수처 설치를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습니다. 그리고 각 정당과 시민단체가 발의한 공수처 설치법안은 국회에 계류되어 있습니다. 국민 10명 중 7명이 공수처 설치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국회가 일을 해야 할 때입니다. 공수처 설치를 위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설치 법안 통과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아울러 공수처는 권력을 가진 자를 제대로 수사하기 위한 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국회는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대통령도, 국회도, 무엇보다 검찰도 공수처에 그릇된 영향을 미칠 수 없도록 공수처를 설계해야 합니다. 동시에 공수처가 제2의 검찰이 되거나 부여된 권한을 남용할 수 없도록 하는 견제장치 또한 반드시 설계되어야 합니다.
이에 우리 공수처설치촉구공동행동은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첫째, 국회는 이번 2017 정기국회에서 공수처 법안을 우선적으로 심의하고 법안을 통과시켜야 합니다.
둘째, 공수처는 부패척결뿐만 아니라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도입되어야 합니다.
셋째, 공수처 처장의 추천 등 운영 과정에 시민의 참여와 감시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우리 공수처설치촉구공동행동은 <2017 정기국회 1호 법안은 공수처> 캠페인을 전개하며 위와 같은 요구사항이 반영된 공수처가 설치될 수 있도록, 시민사회와 시민들과 함께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것입니다.
둘레길 걷기를 전문으로 하는 소모임인 둘둘(둘레길 둘러볼래)이 여섯 번째 걷기를 공지합니다.
여섯 번째 걷기 장소는 속리산 둘레길 중 달천들녁길입니다.
속리산둘레길 행사와 함께 할 예정입니다.
아름다운 단풍과 많은 상품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많은 신청 바랍니다.
회원님들과 함께 하는 오픈 공지이며, 선착순으로 마감할 예정입니다.
총 신청자는 6명으로 회원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하반기 첫 둘레길입니다.
11월에는 지리산둘레길로 떠날 예정이니 신청바래요~~
일시 : 2017. 10. 21(토) 08:30
장소 : 청주체육관 앞 출발
도착지 : 충북알프스휴양림
총 거리 : 8km (충북알프스 휴양림~백현마을)
총 시간 : 2시간 30분
난이도 : 하
준비물 : 물, 등산용 스틱, 간식 (물과 간식은 속리산둘레길 행사에서 일부 제공)
일정 :
08:30~9:40 – 인원파악 이동 충북알프스도착
10:00~10:30 – 행사 시작 및 경품행사
10:30~13:00 – 둘레길 탐방 백현마을 도착
13:00~14:00 – 점심식사
14:00~15:00 – 청주 도착
회비 : 무료
참가 신청 방법은 문자 or 전화 주세요~(010-8875-2466 / 043-222-2466)
우리의 손과 발이 할 수 있는 작은 움직임
환경, 인권, 사회문제를 디자인으로 승화시켜
우리의 일상에서 친근하게 메시지를 전하는 제품을 만드는
마니에피에디에서,
북극곰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지구를 위해 여러분의 관심과 작은 행동이 다음 세대에게 소중하고 값진 선물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마니에피에디의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16815
[caption id="attachment_181078" align="aligncenter" width="640"] 경남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지리산댐이 들어설 일대. 엄천강이 흘러가는 아름다운 지리산 골짜기다. ⓒ 정수근[/caption]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호가 어딘지를 아는 사람은 드물 것 같다. 기자도 사실은 실상을 잘 몰랐다. 그러나 알게 되면 “음 그렇구나” 하고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모름지기 1호로 꼽힌 국립공원은 그 나라의 자랑이자 보배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는 어디냐? 그렇다. 바로 지리산이다.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에 웬 댐이란 말인가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 그만큼 지리산은 우리의 자랑이자 이 나라의 보배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고, 그것은 누대로 물려줘야 할 공공의 자산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편에선 이상한 소리가 터져 나온다. 오호통재라, 지리산댐이라니. 국립공원 제1호에 댐을 짓겠단다. “민족의 영산에 초대형 댐을 세우겠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이 나라 토건세력들의 탐욕은 끝이 없다”는 탄식들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이렇게 해서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지리산에 무려 높이가 아파트 50층 높이에 해당하는, 국내 최대인 평화의 댐(125미터)보다 더 높은 141미터로 국내서 가장 높은 댐이 된다. 길이(896미터) 또한 국내서 두 번째로 긴 댐이 된다. 총저수량 1억7천만톤의 초대형 댐이 계획된 것이다. 수몰면적이 4.6㎢에 수몰가구수는 289가구다.
[caption id="attachment_181079" align="aligncenter" width="613"] 지리산댐 개요도. 저 멀리 실상사까지 댐의 영향권에 들어와 있다ⓒ 박재현[/caption]
예정대로 지리산댐이 건설된다면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에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댐 중의 하나가 지리산에 들어서는 게 되는 셈이다.
지리산댐 계획은 지난 30년 전 집중 거론되다 시민환경단체와 불교계 등의 강력한 반발로 수면아래 가라앉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지리산댐을 홍준표 도지사가 2014년 6월 "지리산댐 건설을 함양 주민투표로 물어야 한다"며 논란을 재점화했고, 2016년 9월에는 지리산댐 등을 통한 식수정책을 발표함으로써 지리산댐 건설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남도의 계획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주무부서인 국토해양부는 지리산댐을 식수용이 아닌 홍수조절용으로만 검토하고 있다고 하고, 시민환경단체의 반발 또한 여전히 견고하기 때문에 경남도의 계획대로 갈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caption id="attachment_181080" align="aligncenter" width="640"] 용의 전설이 깃든 용유담 전경ⓒ 정수근[/caption]
국가명승지 격인 용유담과 포트홀
특히 댐 수몰 예정지 안에는 유명한 절경지인 용유담(龍遊潭)이 자리잡고 있다. 이는 국가명승지로 지정해도 좋을 만큼 경관이 수려한 곳으로 댐 건설을 둘러싸고 2012년 한국수자원공사는 용유담의 국가명승지 지정 반대 의견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하기도 했다.(국가명승지로 지정되면 댐 건설의 장애가 되기 때문에)
[caption id="attachment_181081" align="aligncenter" width="640"] 환경연합 활동가들이 용유담 안에서 현수막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정수근[/caption]
또한 이곳은 국내에서 흔하지 않는 특이한 지형을 가지고 있어 학계의 높은 관심을 갖는 지역이기도 하다. 용유담에는 기이한 모양의 기반암이 넓게 펼처져 있고, 움푹 파인 바위도 흔히 볼 수 있다. 이를 포트홀(Pothole)이라고 한다.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오창환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포트홀은 기반암의 오목한 부분에 들어간 자갈이나 모래가 물살에 따라 돌며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낸 절경이다. 이러한 회전운동이 계속 되면 오목한 부분이 점점 깊게 파이면서 수 미터의 구멍이 생기기도 한다 … 지리산은 18~19억 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지리산 지역이 어떻게 생성되었는가는 학계에서도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있다”
또한 “용유담은 강원도 인제 내린천, 경기 가평군 가평천 등 한국에서 몇 되지 않는 포트홀(침식지형)지역으로 아름다운 경관적 가치와 연구적 가치에 문화, 역사적 배경과 귀중한 생태적 가치 등 복합적인 가치를 가가지고 있기 때문에 용유담 자체를 지질공원으로 지정하는 등의 보전활동을 펼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caption id="attachment_181083" align="aligncenter" width="640"] 자연이 만든 절경, 포트홀. 우리말로 '돌개구멍'ⓒ 정수근[/caption]
이처럼 이곳 경남 함양군 휴천리 문정리 일대의 지리산은 청정지역이자 경관이 수려한 곳으로 환경단체 등의 주장대로 이곳은 댐이 아니라 절대 보존지역으로 묶어서 보존해야 할 곳으로 보인다.
지리산댐 계획 철회하라
이에 지난 14일 전국에서 온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지리산에 모였다. 댐 예정지를 둘러보고, 국가명승지나 다름없는 용유담에도 들어가보면서 지리산댐을 계획하고 있는 경남도를 이구동성으로 성토했다.
“철이 지난 지리산댐을 다시 들고 나와 이 아름다운 지리산을 수장시키려 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사업을 벌이는 짓이다. 4대강사업이 국민의 철퇴를 맞은 것처럼 지리산댐도 만약 강행하게 된다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현장을 안내한 진주환경운동연합 백인식 국장의 일성이다.
[caption id="attachment_181084" align="aligncenter" width="640"] 지리산 생명연대 사무국장으로부터 지리산댐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정수근[/caption]
[caption id="attachment_181085" align="aligncenter" width="640"] 지리산댐 계획, 즉각 철회하라!!!ⓒ 정수근[/caption]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에 애초에 누가 이런 댐계획을 생각해냈는지 그 상상력이 대단하게 여겨진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은 댐이나 케이블카 등이 들어설 곳이 아니라,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서 후대로 그대로 전해져야 할 보배임이 분명하다. 그것이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의 참 역할일 것이다.
그러니 “댐의 시대는 갔다. 댐은 이제 그만, 지리산댐 계획, 즉각 철회하라!”
환경정의 먹거리정의센터는 마을부엌 연대를 위한 방안으로 먼저 지역적으로 가까운 마을부엌 운영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작년에도 선배활동가 분들이 탐방한 적이 있는 오늘공작소 안의 우리마을사랑방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한 날 오늘공작소 신지예 선생님이 갑작스런 사고에도 몸이 불편하셨을 텐데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오늘공작소는 이미 환경정의 회원이시기도 하셨어요~~
우리마을사랑방 들어가기에 앞서 한 컷~!
현재 마을부엌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으신가요?
작년부터 월마다 한 번씩 운영합니다.
서울시 마을부엌사업은 운영 중이신 건가요?
우리마을사랑방은 자체적으로 2년 전에 서울시 마을부엌사업을 중단하였어요. 마을부엌 사업에서 사람들이 많이 오고, 적게 오고는 파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지역에서 1년에 2~3명이라고 하더라도 돌멩이나 조약돌처럼 곳곳에서 우직하게 발굴 되는 것이 큰 자원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마을부엌에서 참여자들과 운영 강사들 사이에 힘든 점은 없었나요?
그런 것은 딱히 없었어요. 저희는 강사분들을 웬만하면 지역 사회에서 참여 하기 위해 오색오미 밥상과 우야식당 운영자 등을 초청하여 진행을 했었구요. 공간이나 사람들을 웬만하게 발 닿는 곳에서 모시려고 했기 때문에 힘든 점은 없었어요.
초청하려면 강사비나 운영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셨어요?
처음에는 재료비를 받지 않았구요. 재작년부터 참여자들에게 회당 10,000원씩 받았어요. 예를 들어, 피자 만들기 등을 해서 재료비가 남으면 강사비로 드렸구요. 모자를 때는 사실 다 걷었어요. 15명이 오시면 사실 다 할 수 있거든요. ㅎㅎ
우리마을사랑방 운영 공간~
마을부엌 이용시 참여자의 연령층 및 비율이 어떻게 구성이 되었나요?
주로 2~30대 였어요. 여성분들이 많았고, 비교적 활발하게 잘 참여해 주셨고, 이곳을 찾아오시는 남성분들은 부드럽고, 서포트를 잘 해 주셨어요.^^
마을부엌을 운영하는 원재료는 어떻게 수급하나요? 로컬푸드라던지 체계적으로 공급받는 곳이 있는지요?
첫 회에는 울림두레생협을 이용 했었어요. 자기 밥도 해먹기 힘든 2~30대 분들을 대상으로 하려다 보니 몇 만원씩 되는 것을 부담하기 어려워서 이후에는 망원시장을 이용 했어요~
그런 것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요새 채식주의자 이외에 육식하시는 분들 중에 동물권 이야기하시는 분들의 근거가 재미있더라구요.동물권 이야기를 하시는 거에요.왜 그러냐면 인간의 몸 자체가 육류를 섭취할 때 오메가 3, 오메가 6가 나오는데. 오메가3가 훨씬 더 좋은 오일 이잖아요. 그런데 방목해서 키운 소랑 비교했을 때 공장식 사육한 소의 경우 오메가 6가 훨씬 많게 섭취한다는 거에요. 이렇게 되면 오메가 3와 오메가 6의 균형이 안 잡힌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육식하는 분들이 동물권이 보장된 방목된 사육된 가축을 섭취하자는 거에요.흥미로웠어요~ 공장식 축산, 동물 사육 반대를 채식주의자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요새 또, 알러지 검사하는 게 먹거리 하시는 분들 중에 유행이더라구요~바로 즉각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지연성 알러지라고 하더라구요. 그걸 먹으면 2~3일 정도 후에 나타나는데요. 증량, 두통, 발열.. 이게 미세해서 모르는데 축적되면 장누스 증후군이 된다고 해요. 이게 장에서 융털이 찢어지면서 독소들이 발생되는 것인데, 한의약 쪽에서 나왔데요. 인간의 피로, 만성 피로가 왜 발생되느냐 등이 장누스 증후군에서 근거가 된데요. 제가 얼마 전에 검사를 해보니까 계란, 돼지고기, 우유, 요거트 등에 알러지가 발생 되더라구요. 전 엄청 맛있게 먹었거든요~^^
알러지 검사를 어디에서 하나요?
보통 일반 내과에서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런것도 있더라구요ㅎㅎ 자가진단 키트도 있었어요.먹거리 하니까 제가 관심 있는 게 생각나서요^^
그럼 초반에 먹거리 활동을 하셨던 것이 먹거리를 이야기하기 보다는 무언가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필요하셨던 건가요?
네, 커뮤니티 중심이었어요. 먹거리를 하셔서 잘 아시겠지만 엄마들이 나보다 약자인 아이들을 위해서 잘 챙기게 되잖아요. 그런데 혼자 먹으면 사실 아무렇게나 먹게 되고 가리지 않게 되잖아요. 사실 커뮤니티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잘 먹을지 거기에 집중을 하게 했죠. 그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바른 먹거리에 대한 시작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했지요~
그럼 이후에 먹거리에 대해 관심이 많이 생겼나요?
꾸준히는 아니더라도 집에 가서 연두를 쓴다거나 천연다시마물을 쓴다거나 하게 되었죠~
저도 잘 몰랐는데 이렇게 준비해 놓으면 음식 만들기가 수월하게 되더라구요. 자연스럽게 입맛도 변해가는 것 같아요.
우리마을사랑방을 운영하고 있는 오늘공작소 공간~
앞으로도 마을부엌 계속 운영하실 계획이 있으신지요?
지금 4년차가 되었는데,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조약돌 같은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어렵고, 망원동 주민이라는 의식이 사실 있지는 않잖아요. 개인적인 생각으로 주거 문제가 잘 개선되지 않는 이상 마을부엌을 유지 하는 게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무거울 수도 있겠지만 먹거리에 대한 철학이 있으신가요?
제가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웬만하면 밖에서는 육식을 안하려고 해요.인간의 생명도 중요하지만 공존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동물들도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자연이 최대한 보호되는 먹거리가 중요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제가 사실은 채식을 시도했다가 중간에 실패했어요. 약간 몸이 안 좋아지는 거에요. 몸에 영양소가 빠져나간 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손톱이 잘 부러지고, 머리가 좀 빠지고.. 푸석푸석해 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채식을 한 기간은 20대 초반에 6개월 정도 했어요. 채식을 하면서 내 몸에는 맞지 않다는 것을 느꼈어요. 인간이 채식을 위해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누군가는 노력을 해서 채식을 할 수 있고, 피치 못할 사정이지만 자연을 보호할 수 있는 바람직한 육식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 자율주행차 시대 논의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율주행차 시대를 대비하려면 거창한 수사를 내세우기에 앞서, 근간이 되는 데이터의 수집과 분석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카풀 등 라이드쉐어(rideshare) 플랫폼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와 의사가 교환되고 관련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분석되어 자율주행차 시대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우버나 디디추싱, 그랩과 같은 글로벌 또는 해외 로컬 기업들은 이미 수년간 라이드쉐어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획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율주행 시대를 차분히 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정은 어떻습니까? 오히려 당국은 카풀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다고 하여 현행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상 합법의 영역에서 자율주행차 시대를 대비하려는 국내 스타트업 기업들의 설 자리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물론 현행 유상운송 규제가 담보하려는 공익 자체를 가벼이 여기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라이드쉐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사업자가 이용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공익적 효용 역시 가벼이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사단법인 오픈넷과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혁신과 규제 포럼을 통해 혁신적 서비스와 규제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포럼을 통해 스타트업 기업뿐 아니라 이용자의 입장에서도 규제 디자인을 함께 고민해보려 합니다. 그 첫 번째 주제로 자율주행차 시대 라이드쉐어 정책의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제1차 혁신과 규제 포럼]
자율주행차 시대의 카풀 규제 강화 논의, 어떻게 볼 것인가?
주최: 사단법인 오픈넷,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일시: 2017년 11월 8일 (수) 오후 7시 30분 ~ 9시 30분
장소: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앤스페이스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423 현대타워 7층 / 지하철 2호선 선릉역 10번 출구에서 직진, 걸어서 5분)
– 지도 보기: http://startupall.kr/location/
패널: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강정수 메디아티 대표
김태호 풀러스 대표
정보라 더기어 객원기자
인간은 누구나 깨끗한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지 않을 권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곳곳에서는 불평등한 환경 피해사례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사)환경정의는 시민들과 함께 환경부정의 상을 시상하여 국내에서 일어나는
환경 불평등, 부정의의 심각성을 알리고, 그 책임을 묻고자 합니다.
2017 제1회 ‘환경부정의 상’은
지난 10년 동안 국내에서 일어난 불평등한 환경사례를 모아
시민선정위원단의 온라인 투표로 수상자를 선정하고자 합니다.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투표방법]
1) 시민선정위원단 모집 – 신청자격 : 환경퀴즈를 통과한 10대~60대 국민 누구나 – 모집일정 ♦ 모집기간 : 11월 6일~ 11월 17일(~오후3시 마감) ♦ 선정위원 결과발표 : 1차- 11월 13일 / 2차-11월 17일(개별통보) – 활동내용 : 환경부정의 상 투표 (개별로 투표링크 발송) – 신청방법 : (사)환경정의 홈페이지( eco.or.kr) 에서 신청 하단에 ‘시민선정위원단 신청하기’ 버튼을 클릭해주세요
2) 환경부정의 상 투표 – 투표자 : 시민선정위원단 – 투표일시 : 11월 11일~11월 20일 – 투표방법 : 온라인투표 * 투표링크과 함께 환경부정의 상 후보 소개가 문자로 발송됩니다. * 투표를 완료해주시면 소정의 선물을 드립니다.
[일정안내] – 시민선정위원단 모집 : 11월 6일~11월 17일 – 환경부정의 상 투표 : 11월 11일~11월 20일 – 시상식 : 12월
[공동보도자료] 시민단체, 고객정보 3억 4천여만 건 무단결합제공한 비식별화 전문기관 및 20개 기업 고발 기자회견 개최
일시 및 장소 2017년 11월 9일(목) 오후1시, 서울중앙지검 정문
1. 취지와 목적
– 2017년 국정감사에서 한국인터넷진흥원, 한국정보화진흥원, 금융보안원, 한국신용정보원 등 박근혜 정부 때 설립된 비식별 전문기관이 20여개 기업으로부터 고객 정보를 넘겨받아 이른바 <정보집합물 결합서비스>를 통해 3억 4천여만건의 개인정보결합물을 기업 등에 제공한 사실이 확인됨.
– 이와 같은 정보집합물 결합서비스는 박근혜정부가 2016년 6월 방송통신위원회, (구)미래창조과학부, 행정안전부 등 6개의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마련한 <개인정보비식별조치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으로, 개인정보라 하더라도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는 비식별화조치를 취하면 개인정보가 아닌 것으로 추정하여 기업 등이 마케팅에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임.
– 그러나 정부가 설립한 공공기업이 기업의 마케팅 활용을 위해 국민의 개인정보를 결합하는 것은 전세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듬.
– 무엇보다 이들 정보집합물 결합 서비스를 위해 기업이 보유한 고객의 정보를 무단으로 제공하고 처리하도록 한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사전동의, 목적외 이용 및 제3자 제공 금지 의무 등을 위반한 것임.
– 이에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들 전문기관과 관련 기업20개를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이용및정보보호법, 신용정보보호법 등 위반으로 고발함
2.개요
○ 제목 : <고객 몰래 정보 제공, 결합 교환한 20개 기업과 4개 전문기관 개인정보보호법 등 위반 고발 >기자회견
11월17일은 ‘순국선열에 날’이다. 이날은 일제강점기 하에서 대한민국의 국권회복과 조국독립을 위해 희생하거나 헌신한 애국자 및 독립운동가 등의 순국선열들에 대한 추모와 존경을 표하는 날이자 그들의 독립정신 및 호국정신을 기리는 법정 기념일이다. 또한 이날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던 치욕적인 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순국선열의 날’ 지정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독립투사들을 추모하는 날로 기념하고, ‘을사조약’ 체결의 역사적인 치욕을 새기기 위해서 지정하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다만 이같이 국권을 뺏겼던 날을 잊지 않고, 나라를 위해 목숨걸고 싸웠던 순국선열들을 기리기에는 아직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친일파’, 그중에서도 ‘재산환수’ 문제는 우리나라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법률 개정으로 친일행위에 대한 유연한 법률적용 가능
친일재산환수 대한 법률적 증거 있음에도 미진한 환수
승소율은 매우 높지만 재판성립요건 자체가 쉽지 않아
이완용 ‘0.09%’ 환수…되팔거나 법인명의라면 불가능
▲‘순국선열에 날’을 맞아 친일파 재산환수 이슈가 다시금 제기된 상황이다. <사진=YTN 뉴스 캡처>
[사건의 내막=김범준 기자] 국내에서 ‘친일파’란 과거 일본 제국주의에 동조했던 자로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굉장히 치욕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당시 적극적으로 동조한 협력한 인물들과 함께, 해방 이후 현재까지도 ‘과거에 대한 반성’은 커녕 이들의 만행을 극단적으로 부정하며 옹호하는 자들도 친일파로 불린다. 결국 ‘친일파’는 ‘매국노’와 동급으로 사용되는 말이됐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이같은 친일파는 1800년대 말 일본이 ‘군국주의’로 우리나라를 위협하면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본은 1867년 메이지 덴노가 즉위한 후 근대 서양의 시스템으로 국가를 개조했다. 중국이 정점에 서는 수천 년 간의 조공 제도로 고착된 동아시아 국제 질서를 깨고 천황의 이름으로 대등하게 청나라와 조선에 외교 문서를 보냈다.
특히 이듬해인 1868년 조선을 향해 자신들이 ‘왕정 복고’를 이뤘음을 국서로 통보했는데, 그동안 형님 정도로 자신을 생각하던 조선 조정에 황제를 참칭하는 민감한 언어 선택으로 큰 충격을 줬다. 자연히 ‘왕’인 조선은 일본에 격이 한 등급 내려간다. 당연히 조선은 국서 접수를 거부하고 일본도 1872년 외교 사절단이 철수하는 등 갈등은 점점 고조됐다.
그러나 1876년 운요호 사건 때 이양선으로 일본이 무력 시위를 하자 조선 조정은 격론 끝에 문호를 제한적으로 개방하기로 했다. 당연히 일본과 통상은 텄다고 해도 조선 조정의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국론 역시 ‘존왕양이’의 외세 배척 여론은 더욱 강해졌고, 흥선대원군과 위정척사파는 이런 여론을 잘 이용했다. 이 때만 해도 우의정 박규수와 영의정 이유원 정도가 외세를 이용하자는 의견이었는데 실상 그마저도 동도서기론, 즉 “서양 문명은 기술면에서 앞서 있을지는 모르나 동양의 정신 문화를 존중하고 배울 점이 있다”는 식의 이상론이었지 일본을 좋아한다는 커녕 최소한 일본에게 뭘 배운다거나 가까이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1880년 대, 우의정 박규수의 제자들인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이 일본 책과 문물을 접하고 일본의 발전상을 흠모하게 된다. 물론 김옥균의 ‘일본은 동양의 영국을 자처하니, 우리는 프랑스 같은 문화 군사 강국을 이루자’는 언급을 볼 때, 일본과 동급으로 조선을 생각했지, 결코 ‘신하’가 된다는 생각은 그들 역시 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당시 청나라의 도움으로 대원군을 숙청하고 정권을 잡은 명성황후와 민씨들이 청나라식 근대화, 양무운동을 개화 모델로 삼고 국정을 장악하면서, 상대적으로 일본식 급진 개혁을 바랐던 김옥균의 개화당은 친일파란 누명을 쓰고 권좌에서 밀려났다.
서양에 쓰러지기 직전인 청나라 모델로는 미래가 없다는 건 확실했던 개화파는 초조했다. 1884년 우리나라 최초의 우체국인 우정국 완공 축하연에 난을 일으켰다. 고종의 신병도 확보하고 서울 요지를 선점한 그들의 난은 성공하는 듯 했으나 압록강 근처에 주둔했던 청나라 군대가 삽시간에 반격을 가하면서 실패한다. 갑신정변이다. 역적이 된 개화파는 일본으로 탈출했고, 조선에 일본식 개혁을 말하는 사람은 없어졌다. 친일파가 처음 매국노의 멍에를 쓴 건 한일강제합병이 아닌 이 때가 최초다.
그러다 일본이 1894년 청일전쟁에,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한일합병은 피할 수 없게 됐다. 그 전만 해도 친일 세력을 발본색원 할 것같이 굴었던 수구파(개화당을 제외한 민씨 쪽 친청파+이완용)들은 얼굴을 싹 바꿨다. 1905년 외교권을 뺏긴 을사늑약을 시작으로 정미 7조약 등등 대한제국을 해체할 치명적인 조약들마다 수구파들은 누구보다 일본을 위해 열심히 일했으며, 이완용, 송병준 등은 각기 무리를 짓고 친일 충성 경쟁을 벌일 정도였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났지만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맨 앞에서 길안내를 맡은 것은 친일파들이 심어놓은 헌병보조원, 즉 조선인 조센징 앞잡이들이었다. 1910년 강제병합이 완성되자 이들은 일본 정부로부터 각종 은사금과 부동산 등은 물론 조선귀족 지위까지 나눠 받았다.
과거 대한제국이 부족한 재정에도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던 주미공사관은 단돈 5달러에 일본에 넘어갔고, 개화파의 거두이자 왕실 종친 박영효는 28만원, 이완용은 15만원, 박제순은 10만원의 은사금을 받고 아주 떵떵거렸다. 구한말 끝날 때까지 그동안 친일을 했든 친청·친러였든 상관없이 합병 때까지 조선 조정에서 버틴 자들은 모두 친일파라고 봐도 된다.
▲ 이완용 일가가 옥인동 집에서 찍은 사진. 가운데가 이완용 본인이다. 친일파의 거두로 불리는 이완용은 여의도 면적 두 배에 가까운 토지를 소유했지만 국고로 돌아온 것은 0.09%에 불과하다. <사진출처=구글 이미지 검색>
그 후로도 일본 제국이 35년 간 한반도를 강점하면서 제국주의의 양상도 같은 듯 같지 않게 계속 변모했는데, 친일파들의 친일 부역 행위 역시 변모해 갔다. 조선이 점점 제국주의 일본에 동화되고 식민 지배의 정도도 깊어지고 점차 더 많은 조선인들이 시스템에 편입되면서, 일부 권세를 가진 집안들이 저질렀던 친일 부역 행위 역시 그 범위를 넓히고 곳곳에 스며들었다. 이런 시대를 시각적으로 리얼하게 잘 그려낸 작품이 옛 MBC 대하드라마인 ‘여명의 눈동자’다. 친일파의 출신 성분은 조선 귀족들에서 점차 일반 서민 출신들까지 확대되면서 광범위하게 우리나라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친일파의 정의
이같은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정의는 법률로도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지난 2021년 10월12일에 공포되고 시행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2조 정의 부분에 따르면, ‘친일반민족행위’라 함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지난 1945년 8월15일까지 행한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리고 이 법에서는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20가지의 구체적인 사례들이 나온다. 그 사례는 다음과 같다.
1. 국권을 지키기 위하여 일본제국주의와 싸우는 부대를 공격하거나 공격을 명령한 행위
2.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단체 또는 개인을 강제해산시키거나 감금·폭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단체 또는 개인의 활동을 방해한 행위
3. 독립운동 또는 항일운동에 참여한 자 및 그 가족을 살상·처형·학대 또는 체포하거나 이를 지시 또는 명령한 행위
4. 독립운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의 장 또는 간부로서 그 단체의 의사결정을 중심적으로 수행하거나 그 활동을 주도한 행위
5. 밀정행위로 독립운동이나 항일운동을 저해한 행위
6. 을사조약·한일합병조약 등 국권을 침해한 조약을 체결 또는 조인하거나 이를 모의한 행위
7.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행위. 다만, 이에 해당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작위를 거부·반납하거나 후에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사람 등으로 제3조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결정한 사람은 예외로 한다.
8. 일본제국의회의 귀족원의원 또는 중의원으로 활동한 행위
9.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고문 또는 참의로 활동한 행위
10.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소위(少尉) 이상의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11. 학병·지원병·징병 또는 징용을 전국적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선전(宣傳) 또는 선동하거나 강요한 행위
12. 일본군을 위안할 목적으로 주도적으로 부녀자를 강제동원한 행위
13. 사회·문화 기관이나 단체를 통하여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을 적극 주도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14. 일본제국주의의 전쟁수행을 돕기 위하여 군수품 제조업체를 운영하거나 대통령령이 정하는 규모 이상의 금품을 헌납한 행위
15. 판사·검사 또는 사법관리로서 무고한 우리민족 구성원을 감금·고문·학대하는 등 탄압에 적극 앞장선 행위
16. 고등문관 이상의 관리, 헌병 또는 경찰로서 무고한 우리민족 구성원을 감금·고문·학대하는 등 탄압에 적극 앞장선 행위
17. 일본제국주의의 통치기구의 주요 외곽단체의 장 또는 간부로서 일본제국주의의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18. 동양척식회사 또는 식산은행 등의 중앙 및 지방조직 간부로서 우리민족의 재산을 수탈하기 위한 의사결정을 중심적으로 수행하거나 그 집행을 주도한 행위
19.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하여 포상 또는 훈공을 받은 자로서 일본제국주의에 현저히 협력한 행위
20. 일본제국주의와 일본인에 의한 민족문화의 파괴·말살과 문화유산의 훼손·반출에 적극 협력한 행위
▲ 최근 ‘친일파 단죄문’ 등 반민족행위자들을 색출하려는 움직임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YTN 뉴스 캡처>
이같은 20가지의 친일행위의 법률적 정의로 인해, 그동안 애매했던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상당히 구체적인 지목이 가능해졌다. 또한 친일파의 청산 및 친일재산 환수의 법률적 증거가 생긴 것으로 평가된다.
친일파 재산환수
문제는 친일파 땅 환수 작업이 미진하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환수한 친일파의 땅은 전체 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민족문제연구소와 자치단체는 친일파 무덤과 땅을 찾아 단죄비를 세우고 국가 환수를 촉구하기도 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 관련소송 97건 중 93건이 종결됐다. 이 93건 중 91건에서 승소해 승소율은 97.8%에 이른다. 2006년 7월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이완용, 송병준 등 168명을 조사해 여의도 면적의 1.3배에 해당하는 1113만9645㎡를 환수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국가에 귀속된 친일파의 땅은 1300만㎡(전체 3%)에 불과하다.
남아있는 4건은 모두 친일파 이해승과 관련된 소송이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지난 2009년 9월 이해승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하고 그의 후손이 물려받은 서울 은평구 일대 토지 2922m²를 친일재산으로 결정했다. 이에 이해승의 손자 그랜드힐튼서울호텔의 이우영 회장은 경기 포천시 임야 등 192필지(공시지가 110억원대)에 대해 국가귀속결정 처분 취소 소송을 내 승소 했지만,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지난 11월9일 이해승의 손자인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이 낸 친일반민족행위자 지정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심대로 “이해승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또 이 회장이 제기한 친일 재산 확인 결정 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서도 원심과 같이 “친일 재산이 맞고 환수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해승은 철종의 생부인 전계대원군의 5대 손으로 1910년 10월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아 광복될 때까지 유지했다. 1911년 1월에는 일제의 한일병합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당시 16만8000원의 은사공채를 받았고 이듬해엔 한국병합기념장도 받았다.
이해승은 또 1917년부터는 친일파 이완용 주도로 설립된 친일단체 불교옹호회에서 고문을 맡았다. 이후에도 그는 일제 식민 통치에 협력한 공로로 쇼와대례기념장(1928년)을 받고 조선총독부가 조직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에서 평의원(1937년)을 지냈다.
대통령 직속으로 꾸려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2009년 5월 이해승의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했다. 이어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도 이해승이 1913년과 1917년 취득한 서울 은평구 일대 토지를 친일 재산이라고 보고 국고 환수를 결정했다.
이에 이해승의 후손인 이 회장이 “조부는 대한제국의 황실 종친으로 후작 작위를 받았을 뿐이다. 식민 통치에 협력한 친일행위자가 아니고 재산도 환수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이해승이 식민 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를 인정한다”면서도 “한일병합에 대한 공로로 후작 작위를 받은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재산 환수 불가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이해승이 친일행위의 대가로 각종 이권과 특혜를 부여받은 것이 맞다”며 “당시 취득한 이해승의 재산은 친일 재산이기 때문에 국가가 환수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결국 재판 끝에 친일반민족행위자 이해승이 후손에게 물려준 300억원대 재산은 국고로 환수되게 된 것이다.
부족한 재산환수
하지만 국가에 환수되는 땅은 친일파들이 일제 강점기 보유했던 재산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현행 상법 상 후손들이 물려받은 토지를 팔거나 법인 재산으로 등록하면 환수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을사오적 이완용은 일제강점기 여의도 면적 두 배에 가까운 토지를 소유했지만 국고로 돌아온 것은 이 토지의 0.09%에 불과하다. 또 친일파 송병준도 일제강점기 당시 받은 토지의 0.04%만 환수 대상이 됐다.
조사위 관계자는 “해방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 토지 관련 행정자료가 사라져서 찾지 못한 것도 많다”며 “해방 이후 곧바로 친일청산 작업에 들어갔다면 친일파 재산을 모두 찾아내 국고로 돌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와 기업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행사한 국민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입법으로 막을 수 있을까?
11월 28일(화) 오후2시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실에서 ‘국가/기업의 괴롭히기 소송 남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린다. 본 토론회는 강병원, 금태섭, 노회찬, 박주민, 이정미 국회의원이 공동주최하고, 쟁의와 집회・시위에 참여한 이유로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제기된 시민사회단체의 공동주관으로 개최된다.
본 토론회에서 말하는 ‘괴롭히기 소송’은 국가와 기업이 집회・시위, 쟁의에 참여한 국민에게 청구하는 소송을 말한다. 주관 측은 소송을 통해 ‘집회를 하고 노동3권을 행사하면 어마어마한 액수의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공포심을 조장함으로써 더 이상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괴롭히기 소송’으로 명칭했다고 밝혔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동안, 쌍용차, 세월호, 밀양, 강정, 민중총궐기 등에 참여한 당사자와 관련 단체에게 국가와 기업이 손해배상・가압류 등의 소송을 남용한 사례가 계속되어 왔다. 각 사건의 당사자와 관련 단체, 대리인들은 올 초 ‘국가손배대응모임’을 구성해 소송현황과 소송으로 인한 당사자의 고통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국가손배대응모임의 집계에 따르면 집회・시위와 쟁의 참여로 국가로부터 제기된 손배소송은 8건, 청구금액은 약 70억원에 달한다(2017년 6월 기준). 기업으로부터 제기된 손배소송은 60건, 청구금액 금액은 약1,800억원에 달한다(2017년 6월 기준). 이 천문학적인 금액이 당사자 개인과 관련 단체에 부과되며, 소송에 따른 국민의 고통도 이어지고 있다.
국가와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 기본권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국내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유엔사회권규약위원회가 손해배상가압류를 ‘쟁의에 참여한 노동자에 대한 보복조치’로 명시하고, 한국정부에 ‘자제’와 ‘전면조사’를 권고했다. 과거에도 ILO,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특별보고관 의견 등을 통해서 국민 기본권 후퇴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껏 정부차원의 유력한 해결책은 물론 제대로 된 실태파악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본 토론회는 입법을 담당하는 국회와 학계, 법조계, 시민사회, 법무부가 한 데 모여 각각의 입장과 대안을 검토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주최와 주관에 참여한 단체들은 본 토론회를 통해 괴롭히기 소송에 대한 입법적 해결과 입법 전이라도 별도의 사법적, 행정적 해결을 시급하게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1부에서는 “괴롭히기 소송 실태”를 주제로 박래군 손잡고 운영위원과 김득중 쌍용자동차지부장이 발제한다. 2부에서는 “괴롭히기 소송,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송상교 변호사(민변공익인권변론센터 소장), 서선영 변호사(공인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장석우변호사(금속노조법률원),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가 지금까지 제기된 각 대안들을 분석한다. 3부에서는 민법 전문가인 김제완 교수(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 헌법 전문가인 박경신 교
수(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시민사회에서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 법무부에서 송길대 국가송무과장이 종합토론에 참여해 각계 입장과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사회는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가 맡았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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