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구의역 사고, 노동 존중이 답이다

지역

구의역 사고, 노동 존중이 답이다

익명 (미확인) | 금, 2016/06/24- 16:58

(이 칼럼은 한겨레신문(2016. 6. 14)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구의역 안전문(스크린도어) 사고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김군의 죽음을 계기로 서울형 노동혁명을 일으키겠다고 말했다. 일단 서울시의 원인규명 작업, 책임자 처벌, 대안을 기대해 보지만, 이것은 서울시만이 감당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나는 한국의 뿌리 깊은 노동 비하 관행, 노동을 오직 비용으로만 보는 이 사회의 주류 지배층의 사고방식과 대학을 나와야 인간대접 받을 수 있다는 이 사회의 관행이 깊게 얽혀서 그를 죽게 만들었다고 본다.

그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144만원의 월급 중 100만원을 저축해서 대학에 진학하려 했다. 그가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노동조건을 감수한 이유는 생활비와 등록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며, 메트로 자회사의 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였으며, 대학을 졸업하면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었으리라.

지난 6월 2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중 숨진 김군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유가족을 만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었던 그는 고용불안 때문에 피켓시위도 했다. 그러나 그는 노동자의 권리를 집단적으로 제기할 수 없었고, 임금인상도 요구할 수 없었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도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손에 공구를 들지 않는 아버지 세대 메트로 출신 간부나 정규직 직원은 400만원의 월급을 챙겨도 자신은 거의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밖에 받지 못하면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이 역 저 역 미친 듯이 뛰어다니면서 ‘노오력’해야 했다.

그가 살았다면 1년짜리 계약은 갱신되었을지 모르지만, 과연 정규직의 희망이 실현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가 되면 과연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열심히 돈을 모아 대학 졸업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자기소개서를 200번이나 써야 하는 지금의 대졸 백수 청년이 되진 않았을까?

그래도 19살의 젊디젊은 그는 이 사회가 만든 교육을 통해 정규직도 되고 관리자도 될 수 있다는 기성의 신화를 의문시할 수는 없었다. 현실을 그냥 감내하기에 그에게 ‘미래’는 너무 크게 열려 있었다. 불행히도 그에게 미래는 없었다.

노동비하/계층상승이라는 도그마는 이 사회 주류층의 이해관계에서 나온 것이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 시간제, 위험 작업장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기보다는 사무실에 앉아 있는 관리자들에게 더 높은 보상과 직업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은 자본주의 일반의 특징이 아니라 한국적 관존민비, 노동천시의 관행이고, 그 최대 수혜자들은 관료와 기업가들이다.

공기업 비용절감, 경영효율을 거의 폭력적으로 강제하면서도 자신들은 어떤 견제나 감시도 받지 않다가 퇴직 후에는 공기업에 한자리 차고앉은 이 나라 고학력 관료들의 특권과 부패, 언론과 지식인들의 반복되는 도그마 유포 역시 이해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기업이 위기에 처하면 경영자를 문책하지 않고 노동자부터 자르는 일은 가장 퇴영적인 한국식 신자유주의다.

메트로 노조는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보다는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주요 업무 아웃소싱으로 자식 같은 청년들이 저임금과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을 모르는 체했고, 시민들은 자신이 비용을 더 부담하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으며, 그들이 노동자의 파업을 죄악시하는 언론에 박수를 쳤기 때문에 청년들이 이 저임금의 위험한 노동을 감수했고, 대학 진학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다.

현재의 메트로 예산 범위 내에서도 김군은 250만원의 월급을 받을 수 있었고, 노조와 시민사회의 감시권이 있었다면 그는 2인1조의 작업팀에서 일하면서 최소한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한국만큼이나 노동자 권리가 약한 일본도 시간제나 비정규직에게는 돈을 더 얹어준다. 배관공이 교수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고,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 격차를 더 줄일 수 있다면,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노동 존중과 노동권의 개념을 가르칠 수 있다면, 김군은 정비공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면서 대학 가기 위해 그렇게 무리하게 일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사회적 갈등 조장하는 정부의 ‘소위’ 맞춤형 보육 유감

맞벌이와 외벌이부모의 갈등 조장하고 부모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

근본적 해결은 국공립어린이집확충, 노동환경 개선, 외벌이부모를 위한 양육서비스 확충 등 돌봄의 사회적 책임 강화해야

 

지난 4/26 정부는 0-2세 대상으로 전면적 무상보육을 실시하던 것을 부모의 취업여부 및 자격심사를 거쳐 12시간 종일반과 6시간 반일반 및 15시간 긴급보육 바우처로 양분하는 맞춤형 보육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발표하였으며, 5/20부터 종일반 신청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 : 남찬섭 동아대 교수)는 정부가 제시한 ‘소위’ 맞춤형 보육제도는 국공립어린이집확충, 육아휴직 의무화, 노동시간 단축, 외벌이부모를 위한 양육서비스 확충 등 돌봄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정책 없이는 진정한 맞춤형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부모의 돌봄 수요를 반영하는 진정한 맞춤형 보육제도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보육의 사회적 책임이 강화된 정책이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 국공립어린이집은 2015년 시설 기준 5.7% 정도 밖에 되지 않으며 스웨덴 82.2%, 프랑스 66.0%, 일본 41.3%와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또한 우리나라 연평균 근로시간은 2,057시간으로 OECD 1,706시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장시간이고 육아휴직제도는 아직도 활용률이 높지 않은 등 노동환경이 개선되지 않아 일가정양립을 보장하기에 크게 부족하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보육료 지원 이외 양육지원서비스 제공 시스템이 부족하여 외벌이부모는 돌봄을 전적으로 맡아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돌봄의 공공성이 부족하여 이에 대한 정책적 대안이 필요함에도 근본적 대책 없이 오로지 일부 부모의 보육시간을 제한하는 정책으로 ‘소위’맞춤형 보육을 실시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부가 내놓은 소위 맞춤형 보육제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제도를 실시하기 위해 부모의 취업여부 등에 따른 자격심사를 하게 되는데, 고용보험 등 공식적인 증명을 하지 못한 부모는 자신의 근로형태, 고용상황, 생활 및 경제 상태 등을 증명하여야 한다. 서류 발급이 어려운 임시, 일용직,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은 종일반 신청을 위해 자기기술서를 작성하고 이장, 통장의 사실관계 확인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며 이마저도 증명할 수 없는 대상은 돌봄 서비스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이는 비공식 노동종사자 등에게 보육의 필요성을 스스로 증명하고 타인의 확인을 받도록 하는 것으로 반인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책이며, 가정폭력 피해자와 같이 증명이 어려운 부모는 돌봄서비스에서 배제되는 등 다양한 사각지대 발생의 소지가 있다. 또한 정부는 부모와 아이의 애착관계 형성을 유도하기 위해 맞춤형 보육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역으로 현재 0-2세 아이를 둔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은 애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전제하고 있어 동의하기 어려운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만약 어린 나이에 부모와의 애착형성을 강화하기 위함이라면 부모가 경력단절을 겪지 않으며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부모육아휴직제도의 의무화, 육아휴직급여의 현실화, 보편적 아동수당과 같은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정부는 맞춤형 자격심사를 위해 2,550명의 민간보조인력을 읍·면·동 주민센터에 배치하였다. 그러나 인력편성 기준이나 예산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고 있지 않아, 민간보조인력 역시 임시직 등 나쁜 일자리로 귀착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정부는 종일반 신청 관련 서류를 허위로 제출하면 영유아보육법 제54조 제4항에 따라 처벌하겠다고 하나 이는 종일반 무상보육 자격을 어렵게 하여 예산맞춤형으로 축소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부모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다. 

 

여전히 대부분의 보육 돌봄은 여성이 주로 담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소위’ 맞춤형 보육제도는 여성의 경력단절을 더욱 영속화하고 부모의 취업여부에 따라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등 부정적 결과를 낳을 우려가 크다. 이에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진정성 있는 맞춤형 보육제도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국공립어린이집 확충, 노동환경 개선 등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정책이 함께 시행되어야 함을 주장하는 바이며 보육당사자가 마음 놓고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 것을 요구한다. 
 

화, 2016/06/07- 18:07
189
0

(이 글은 일본의 시민운동가인 하라 히로유키씨가 기고한 글입니다. 하라 히로유키씨는 앞으로 (사)다른백년의 고정필진으로 활동할 예정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국의 여러분. 저는 하라 히로유키(原 裕幸)라고 합니다. 일본인입니다.

지난번에 어떤 분의 소개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여러 한국분들과 만났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이번에 다른백년에 투고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른백년 측에서 무엇인가 일본에 대해서 써 달라고 해서 무엇을 쓸까 생각해 보았는데, 종군위안부라든가 북한의 핵문제가 주목을 받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종군위안부에 대해서 말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인 종군위안부 사죄해야

종군위안부의 문제는 일한의 문제로서 양국민의 우호에 골을 만들고 있지만, 잘못은 일본측에 있습니다.

200503030365_01
1944년 중국 윈난성에서 미군이 촬영한 일본군 조선인 위안부들 모습.

원래 군대라고 하는 것은 남성 중심 집단으로서 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여성에 대한 수요가 생겨납니다. 이는 인간의 성욕이 있는 한 피할 수 없는 문제로서 이 문제를 방치하면 군의 사기가 떨어지는 등 폐해가 있으며, 부대를 관리하는 장교는 이 문제에 대해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근대 이전에 칼로 싸우던 시대라면 위안부라는 존재가 없었기 때문에 행군하는 곳마다 병사들이 현지 여성들을 강간하는 사건이 빈번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종군위안부의 존재는 행군하게 되는 지역의 여성을 지킨다는 인도적인 측면도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기 위해서는 위안부라는 여성을 합법적 도덕에 기초하여, 그 일에 합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행군하는 지역에서 강강당하는 여성의 피해를 다른 여성에게 전가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뿐더러, 어떠한 의미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종군위안부 문제는 위안부가 된 여성을 어떻게 고용했는가하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

즉 일의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지 않고, 속여서 먼 전장까지 동행하게 하고, 강제로 연행했다면 이것은 인권 피해로서 비판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보면 당시의 일본 정부가 그러한 비인도적인 행동을 한 증거는 없는 듯합니다. 저 자신도 알지 못합니다. 일본측에서 종군위안부가 된 여성을 속여서 전장에 동행하게 했다는 증거는 위안부가 된 여성의 증언으로, 실제로 위안부를 산 구일본군 병사의 증언 등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증거가 없는 점이 현재 일본 정부가 종군위안부의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 져서 항복하기 직전에 이후 문제가 될 법한 자료 등을 소각처분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로서, 증거가 없다고 해서 인권 피해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일본 정부가 한 일은 동시기의 다른 소행으로부터 유추하는 것이 진실에 가장 가까울 것이며, 당시의 일본 정부가 일본 국민에게 무엇을 했는지를 통해 타국인에게 무엇을 했는가를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본인 여성을 카페의 급사나, 아니면 비슷한 일이라고 속여서 먼 전장에 데리고 가, 위안부 일을 하지 않으면 일본에 돌아갈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다든가, ‘나라를 위해’라고 속여서 적함에 자폭공격을 강요한다든가 자국민을 속인 당시의 일본정부라면, 더 약한 입장에 있는 조선반도의 사람들에게 더 심한 일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입니다.

실제 당시 일본 정부는 포로에 대한 비인도적인 처우를 금지한 제네바 협정을 따르지 않은 채 태국에서 잡힌 영국과 미국인 군인 포로들에게 강제노동을 시킬 정도였으니 인도주의에 기초한 행동을 할 의도는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따라서, 비록 증거가 없다고 할지라도 종군위안부에 대한 인권피해는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으며, 일한의 이후 우호를 생각할 경우 일본 측의 사죄는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일본의 양심있는 정치인들

이는 단순한 인간관계에 비추어봐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 싸운 상대와 그 이후에도 우호관계를 구축해 나가려면, 과거의 잘못을 사죄하고, 잃어버린 상호신뢰를 돌려놓아야 합니다. 그런 사죄를 통해 과거의 불행에 구애되지 않고 새로운 우호관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성의있는 대응을 해온 이가 우리나라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입니다. 그는 일본의 수상이었던 시절에 미군기지의 피해에 시달려온 오키나와인들을 위해 미군기지를 오키나와에서 이전하도록 계획했습니다.

NISI20150812_0005772494_web
2015년 8월,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가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본의 종미적 매스컴과 친미매국적인 관료들에 의해 미군기지의 이전 문제가 그의 사임을 가져왔습니다. 대단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렇게 보자면, 하토야마 유키오의 한국 종군위안부에 대한 사죄와 오키나와 기지 문제에 대한 대응을 보자면, 그의 정치가로서의 위치가 보입니다. 이 두 가지 문제에 공통적인 그의 행동은 피해자의 측면에 다가섰다는 것입니다.

한국인 종군위안부들은 과거 일본의 악정 피해자이고, 오키나와 분들은 현재 일본의 악정 피해자입니다. 이러한 피해자들의 고난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그의 행동의 근거일 것입니다. 나 자신은 하토야마 유키오씨와 일면식도 없고, 자세히 말해본 적도 없지만, 긔 행동에서 보자면, 그렇게 생각됩니다.

이렇게 하토야마 유키오는 국민편의 정치가라고 평가할 수 있는 정치가이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의 종미 매스컴이 그에 대한 대한 비난을 집요하게 유포시켰기 때문에, 일본 내에 그의 인기는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하토야마 유키오 이전에도 일본에는 평가할 만한 정치가가 존재합니다. 그러한 정치가로서는 야마모토 타로의 이름이 거론될 수 있을 것입니다.

20170609_111718
배우출신 참의원인 야마모토 타로의 모습(왼쪽). 그는 2013년 10월, 도쿄 아카사카교엔(赤坂御苑)에서 열린 가든 파티에서 아키히토(明仁) 일왕(오른쪽)에게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의 실상을 알리는 서한을 전달한 일로 ‘무엄하다’는 보수파의 공격을 받았지만, 진보진영으로부터는 ‘개념 의원’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한국의 여러분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야마모토 타로는 현재 일본에서 시민운동에 종사하는 사람들로부터 적지 않은 희망으로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야마모토 타로는 원래 배우로서 정치나 시민운동과는 전혀 연이 없는 인물이었지만, 2011년의 원전사고 이후 자신의 이전까지의 생활을 던져버리고 원전사고의 피해자를 위해 활동했으며 예능계에서 축출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그것으로 원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참의원이 됐습니다.

야마모토의 정치가로서의 출발점도 하토야마와 같이, 피해자에게 다가가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자는 것입니다.

현재는 정치가로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지식 면에서도 발군입니다. 또, 이전에 하토야마와 손을 잡았던 오자와 이치로와 함께 자유당의 공동대표를 하고 있습니다. 야마모토 타로는 틀림 없이 국민 편의 정치가로서 평가받을 만한 정치가입니다. 한국의 여러분은 야마모토 타로를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촛불혁명, 한국 민주주의 저력 느껴 

끝으로 종군위안부의 문제에서 실제로 그다지 다루어지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인 위안부의 명예회복입니다.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항거의 목소리를 높이기 때문에 명예회복이나 과거의 인권피해에 대한 보상이 실현된 듯한 감이 있습니다만, 일본인 위안부의 명예회복은 결실없이 끝난 듯합니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그들의 존재는 잊혀졌습니다. 간혹 대형 미디어에서 위안부 문제가 다뤄지더라도, 대개 한국인 위안부 문제이고, 더욱이 반일운동의 하나로 밖에 보도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에 의한 인권피해라는 관점은 보통 간과되어 있습니다.

이것만이 일본인 위안부가 잊혀지는 이유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일본인이 동포의 불행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일본인 위안부의 구제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대단히 슬픈 일입니다.

20170609_112321
박근혜정부를 몰아낸 촛불혁명은 한국 시민의 힘과 민주주의의 저력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일본인들에게 각인되고 있다.

한국의 많은 여러분들이 동포의 불행에 항거하는 목소리를 높인 것이 위안부 문제에 빛을 던지고 해결의 가능성을 넓혔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한국 여러분들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대처방안을 보면서 생각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국민을 지키는 것은 국민의 연대이며, 이것이 국민을 지키는 기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쁜 정치에는 반드시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여러분, 앞으로도 나쁜 정치에는 항거의 목소리를 높여 주십시오. 이것이야말로 동포를 지키고, 국가를 지키고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횡행하는 현재의 일본에서는 정부가 당연한듯이 국민의 인권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된 것은 이미 늦어버린 듯합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 정부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국민의 의사를 늘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최근의 한국의 시위를 보면,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의 여러분들은 일본의 현실을 정치를 잊어버린 국민의 말로라고 생각하시고, 언제까지나 마음에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아래는 일본어 원문>

はじめまして、韓国の皆様。私はHiroyuki Haraと言います。日本人です。先日、とある人の紹介で初めて韓国を訪れました。その時、多くの韓国の方々とお逢いし、それが縁となり、このたびTomorrow webに寄稿することになりました。よろしくお願いいたします。

Tomorrow webのMr.Hyunki Shinさんから何か日本について書いてくださいと言われ、何を書こうかと考えていたところ、従軍慰安婦とか北朝鮮の核問題が注目を集めますと言われたので、それならば従軍慰安婦について語ろうと思いました。

従軍慰安婦の問題は日韓の問題として両国民の友好に溝を作るものですが、非は日本の側にあります。

そもそも軍隊とは男性偏重の集団であり、それゆえに必ず女性への需要が生じます。これは人間に性欲がある限り避けられない問題で、この問題を放置すると軍の士気が落ちるなどの弊害から、部隊を管理する将校は、この問題に対処する必要があります。

近代以前の刀槍で戦っていた時代だと、慰安婦と言う存在がなかったために、行軍する先々で兵士達が地元女性をレイプする事件が頻発しました。それを考えれば、従軍慰安婦の存在は行軍先の女性を守る人道的な仕組みと言える面もあります。

しかし、そう言えるには慰安婦として雇う女性を合法的、道徳に基づいて、その仕事に見合う対価を払わねばなりません。でなければ、行軍先でレイプされる女性の被害を他の女性に転化したに過ぎず、何の意味もありません。

とすると、従軍慰安婦の問題は慰安婦になった女性をどのように雇用したかと言う点が問題になります。

つまり仕事の内容を詳しく説明せず、騙して遠い戦地へ同行させたり、強制連行したら、それは人権侵害であり、糾弾されねばなりません。

とは言え、当時の日本国政府がそうした非人道的な行いをした証拠はないようです。私自身も知りません。日本側で従軍慰安婦となる女性を騙して戦地へ同行させた証拠は、慰安婦となった女性の証言や、実際に慰安婦を買った旧日本軍兵士の証言などが主なものです。

この証拠の無い点が、現在の日本政府が従軍慰安婦の強制連行はなかったと主張する根拠になっているわけですが、戦争に負けて降伏する前には、後々問題になりそうな資料などを焼却処分するのが常であり、証拠が無いからと言って人権侵害がなかったとは言えません。

ですから、当時の日本国政府がしたことは同時期の他の所業から類推するのが真実に最も近いはずで、当時の日本国政府が日本国民に何をしたか?統治下の他国人に何をしたかで判断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日本人女性をカフェの給仕やそれに類する仕事と偽って遠い戦地へ連れて行き、慰安婦の仕事をしなければ日本へ帰れない状況に追い込んだり、「お国のため」と騙して敵艦への自爆攻撃を強要したりと自国民をも騙していた当時の日本政府なら、より立場の弱い朝鮮半島の人々へはさらにひどいことをしたと考えるのが理にかなっているでしょう。

実際、当時の日本国政府は捕虜の非人道的扱いを禁止したジュネーブ協定を批准しておらず、タイ国では捕らえた英米軍の捕虜に強制労働させていたくらいで、人道に基づいた行動をするつもりでいたとは考えにくいです。

したがって、たとえ証拠がなくとも従軍慰安婦による人権侵害はあったと考えるべきであり、日韓の今後の友好を考える場合、日本側の謝罪はなくてはならないと言えるでしょう。

これは単純な人間関係に置き換えれば分かりやすいです。過去に諍いがある相手とその後も友好関係を築いて行くつもりなら、過去の非を謝罪することで失われた相互の信頼を取り戻すことができます。謝罪によって、過去の不幸にとらわれない新しい友好関係がはじまるのです。

この点、誠意ある対応をしてくれたのが我が国の鳩山由紀夫氏です。彼はかつて日本の首相であった時に、米軍基地の害悪に苦しむ沖縄の人々のために米軍基地を沖縄から移転させることに取り組みました。

しかし、残念なことに日本の従米マスコミや親米売国の我が国の官僚たちによって、米軍基地の移転どころか辞任を余儀なくされました。非常に残念なことです。

とは言え、鳩山由紀夫氏の韓国従軍慰安婦への謝罪や沖縄基地問題への対応を見るに、鳩山氏の政治家としてのスタンスが見えます。この二つの問題に共通する鳩山氏の行動は、被害者の側に寄り添った行動です。

韓国人慰安婦の方々はかつての日本の悪政の被害者であり、沖縄の方々は現在の日本の悪政の被害者です。これら被害者の方々の苦しみを何とかしたいと言うのが、鳩山氏の行動の原点でしょう。私自身は鳩山由紀夫氏と面識もなく、詳しく話したことはありませんが、鳩山氏の行動を見る限り、そのように読み取れます。

このように鳩山由紀夫氏は国民の側の政治家として評価に値する政治家と言えますが、惜しむらくは我が国の従米マスコミが鳩山氏の悪口をしつこく流布し続けたため、日本国内であまり人気がないところです。

鳩山由紀夫氏以外にも、日本には評価に値する政治家が存在します。そうした政治家として山本太郎氏の名前が挙げられるでしょう。

韓国の方々には馴染みがない名前だと思いますが、山本太郎氏は現在の日本で市民運動に従事する人々から、数少ない希望として強く支持されています。

山本太郎氏は元は俳優であり、政治や市民運動とは全く無縁の人でしたが、2011年の原発事故以来、自分のそれまでの生活を投げ打って、原発事故の被災者のために活動して、芸能界から干されました。しかし、それでも活動をやめず、その活動が原発に反対する人々の強い支持を受けて参議院議員となった人物です。

山本氏の政治家としての原点も鳩山氏と同じで、被害者に寄り添い、苦しんでいる人々を助けることです。現在は政治家として勉強も旺盛で、知識の面でも抜きん出たものを持っています。また、かつて鳩山由紀夫氏と手を取り合った小沢一郎氏と共に自由党の共同代表を務めております。山本太郎氏は間違いなく国民側の政治家であり、評価に値する政治家です。韓国の方々には山本太郎氏のことを覚えていてほしいです。

最後に、従軍慰安婦の問題で実はあまり触れられていない問題があります。日本人慰安婦の名誉回復です。韓国では大勢の人々が抗議の声をあげたので、名誉回復や過去の人権侵害への補償が実現できそうな気配がありますが、日本人慰安婦の名誉回復は果たされることなく終わりそうです。

これは日本人の間ですらも、慰安婦の存在が忘れられており、慰安婦の問題が大手メディアで報道されても韓国人慰安婦のことばかりで、しかも反日運動の一つとしてしか報道されません。国家による人権侵害と言う視点が常に抜け落ちています。

それだけが日本人慰安婦が忘れられる理由ではないのですが、日本人が同胞の不幸に無関心でいるせいで、日本人慰安婦の救済は全くなされずに終わりそうです。とても悲しいことです。

韓国の多くの方々が同胞の不幸に抗議の声をあげたことが、慰安婦の問題に光を当て、解決の可能性を広げたのは確かでしょう。

私が韓国の方々の慰安婦問題への取り組み方を見て思うのは、最終的に国民を守るのは国民、国民の連帯こそが国民を守る礎となり、悪い政治には必ず抗議の声をあげねばならないと言うことです。

韓国の皆様方。これからも悪い政治には敢然と抗議の声をあげていってください。それこそが同胞を守り、国を守り、政府の腐敗を正す最善の方法です。政治への無関心が横行する現在の日本では、政府が堂々と国民の人権を無視しはじめています。このような状況になってはもう手遅れです。そうなる前に政府に道を踏み外させないよう国民の意思を常に見せつけていかねばなりません。

昨今の韓国のデモの盛り上がりを見る限り、大丈夫と思いますが、韓国の方々には本の現状を政治を忘れた国民の末路として、いつまでも心に留めてほしいと願っております。

금, 2017/06/09- 11:33
189
0

<대선후보자 시리즈>

다른백년은 ‘금주의인물’ 코너를 통해 매주 소개해 온 인물 가운데 이번 대선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을 추려 <대선후보자 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어떤 후보자는 소개 시점이 빨라 지금 상황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직 소개하지 않은 후보자도 있습니다.

대선 후보자들의 과거 행적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이번 시리즈가 올바른 선택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마운드에 오른 폐족, 안희정 충남도지사 (2016. 9. 13)

SNS를 든 싸움닭, 이재명 성남시장 (2016. 10. 14)

말이 통하는 보수주의자, 유승민 의원 (2017. 1. 20)

계급배반을 꿈꾸는 금수저, 남경필 경기도지사 (2017. 2. 14)

‘아스팔트 우파’의 마지막 희망,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2017. 2. 21)

길 잃은 ‘새정치’,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그런 말은 짐승만도 못한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지난 13일 광주에서 열린 광주전남언론인포럼 초청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지난 대선에서 적극적으로 문재인 후보를 지원하지 않아 실망감을 줬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안 전 대표는 “양보만으로도 고맙다는 것이 (정치의) 기본적 도리 아니냐. 동물도 고마움을 안다”며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후보를 양보한 이후 40회가 넘는 전국 유세, 그리고 4회에 걸친 공동유세를 했다. 선거 전날 밤에는 그 추운 서울 강남역 사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다”고 핏대를 세웠다.

i
안철수에겐 권력의지가 충만해졌고, 화법도 단호해져다는 평가가 많다. 정치판에서 단련됐지만, 그를 상징하던 ‘새정치’의 프리미엄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강철수로…안철수Ver. 3.0 으로 변신 중

부드러운 이미지의 안 전 대표가 작심한 듯 ‘센 발언’을 쏟아내자, 드디어 ‘독철수’(독한 안철수)가 됐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정치권에서는 대선 후보의 제1 덕목으로 꼽히는 ‘권력의지’ 측면에서 안 전 대표가 자격 요건을 갖춰가고 있는 것이라며, 비문(비 문재인) 진영을 중심으로 기대를 드러내기도 했다.

지지자들은 “간 보는 ‘간철수’ 말고, ‘강철수’(강한 안철수)가 되라, 울트라 철수, 최강 철수가 돼야 한다”고 요구에 호응하는 모습에 “우리 안철수가 달라졌다”며 환호했다. 물론 경쟁자들은 안 전 대표가 권력에 눈이 멀어 ‘막철수’(막 나가는 안철수)가 됐다고 깎아 내린다.

안 전 대표에게 지난 5년여의 시간은 영욕의 시간이었다.  2011년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적 열망 속에 ‘안철수 현상’ ‘안철수 신드롬’이라는 말과 함께 등장했고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 안철수’로 전격 변신했지만, 부침이 심했다.

news1355024972_317962_1_m
2012년 12월 6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문재인과 안철수가 단일화에 전격 합의한 뒤 환하게 웃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단일화는 선거 승리로 이어지지 못했고, 두고두고 논란이 됐다. (사진 출처: 데일리안)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정권교체를 명분으로 ‘아름다운 단일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이전투구였다. ‘단일화 피로감’만 키웠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고, 대선 무대에 서 보지도 못한 채 패배의 책임은 오롯이 나눠져야 했다.

앞으로의 5년을 준비하는 안 전 대표는 그 사이 ‘Ver 3.0(V3)’가 됐다. 재선 국회의원이 됐고, 새정치민주연합과 국민의당 등 당 대표도 두 번이나 지내며 두 차례의 업그레이드됐다.

바이러스 백신 ‘V3’처럼 ‘정치인 안철수 V3’도 시민들의 폭발적 관심과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확실한 건 이번 대선에서만큼은 안 전 대표가 누군가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하거나 중도에 후보 직을 사퇴하는 모습은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에 만연한 ‘시스템 바이러스’를 없앨 백신으로 어떤 것을 채택할 지의 선택은 오로지 ‘민주주의의 유저(사용자)’인 유권자 몫이다.

가난한 의사 아버지 보고 자란 책벌레

안 전 대표는 1962년 2월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안 전 대표의 아버지 안응모씨가 밀양에 있던 육군병원 군의관으로 결핵 환자를 치료하던 때다.

아버지 안씨는 1963년 전역 후 부산 범천동에서 개원했다. 피난민이 많이 모여 사는 판자촌이었고, 자연스레 가정 형편이 어려운 환자를 무료로 진료하는 일이 잦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대표가 대선에 출마한 2012년까지 이 지역에서 49년간 범천의원 원장으로 진료를 하며, 큰 돈을 버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혹자는 안 전 대표의 삶의 뿌리를 이곳에서 찾기도 한다.

1
위는 부친 안응모 원장과 모친 박귀남 여사와 함께 찍은 사진. 아래는 중학교 졸업식에서 부친, 두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

 ‘소년 안철수’는 유별날 게 없었다. 그 모습은 안 전 대표가 2009년 출간한 책 ‘행복바이러스 안철수’에서 엿볼 수 있다. 초등학생을 위한 자서전으로 불리는 책이다. 

안 전 대표는 본인 스스로는 두드러지게 잘 하는 게 하나도 없어 열등감에 사로잡힐 정도였다고 회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호기심이 대단했다. 알을 품으면 새끼가 태어난다는 얘기를 듣고 메추리알을 품고 자다 알을 깨뜨렸을 정도로 엉뚱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 전기에 나오는 거위 알 일화를 아직 몰랐을 때였다고 한다.

책 읽기를 유독 좋아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쯤에는 학교 내 도서관에 있던 책을 거의 다 읽었다. 장난으로 대출카드 모두에 자기 이름을 적어 놓은 걸로 선생님들이 오해하기도 했다. 안 전 대표는 “평생 읽은 책의 절반 정도를 중학교 때까지 다 읽었다”고 한다.

하지만 성적은 중간 정도였고, 성격은 내성적이었다. 안 전 대표는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에서 “학교를 한 살 빨리 입학해 키가 제일 작았고 공부를 못했다”며 “초등학교 내내 ‘수’ ‘우’가 별로 없었는데, 성적표에 ‘수’가 보이는 게 제 이름 철수였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1등을 못해봤지만,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이과에서 1등이었고, 1980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 공대를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의대 진학을 원했다고 한다. 

컴퓨터 백신 개발…의사에서 벤처CEO로 변신

의대 본과 1학년이던 1982년 하숙집 친구의 컴퓨터를 보고는 그 매력에 곧장 빠져든다. 세계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가 1988년 한국에 상륙하면서 6년간 애지중지 해온 자신의 컴퓨터도 감염되자 안 전 대표는 직접 치료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파키스탄의 한 컴퓨터 프로그램 상점에서 일하는 프로그래머 형제가 1986년 만든 ‘브레인’ 바이러스다. 그렇게 일명 ‘V1’으로 불리는 컴퓨터 바이러스 첫 백신(Vaccine)을 만들었다. 해외에서는 ‘안티 바이러스’ 라 불리는 스프트웨어가 한국에서는 백신이라는 이름으로 붙게 된 유래다. 안 전 대표는 연 이에 V2, V3 백신도 개발했다. 그리고 플로피디스크에 담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안 전 대표는 1989년 단국대 의대 전임강사로 임용된 뒤 27세에 최연소 의예과 학과장이 되면서 다시 한번 주목을 받는다. 이후 7년간은 낮에는 의사, 새벽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이중생활을 했다.

해군 군의관으로 복무(1991~1994년)할 때도 새로 발견되는 바이러스에 맞춰 백신을 업그레이드 배포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안 전 대표는 “컴퓨터를 하면서 느꼈던 성취감을 의학 공부로는 느낄 수 없었다”며 제대 후 1995년 ‘안철수 연구소’를 세우면서 이중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

창업 후 3, 4년 동안은 직업 월급을 줄 돈이 없어서 부인인 김미경 서울대 의대 교수 월급에 손을 대야 했다. “단 한 달만이라도 월초에 월급 걱정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소원”이던 시절이다.

1999년 체르노빌(CIH) 바이러스 감염 사태로 기회가 찾아왔다. 창업 4년만에 흑자 전환을 이뤘고, 2001년 코스닥 상장사가 된다. 2004년 매출 300억원을 돌파하며, 안 전 대표는 벤처창업 1세대를 대표하는 성공한 최고경영자(CEO)로 자리매김한다.

광고_CI변경_2000년6월
2000년, 안철수연구소가 백신 기업에서 통합보안 기업으로 변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당시 CEO였던 안철수가 파격적인 모습으로 등장한 CI광고.

안 전 대표는 회사가 안정 궤도에 오르자 2005년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고 부인과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났다. 안 전 대표는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김 교수는 워싱턴주립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안 전 대표 부부는 2008년 귀국 후 나란히 카이스트(KAIST) 교수가 됐다. 2011년엔 모교인 서울대 교수로 같이 자리를 옮긴다.

‘무릎팍도사’  출연 이후 안풍(安風)… 아름답지 않았던 ‘단일화’

안 전 대표는 2009년 MBC 예능 프로그램인 ‘무릎팍도사’에 출연하면서 대중들의 폭발적 관심을 받게 된다.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과 의기투합해 시작한 ‘지방대학 기 살리기’ 강연은 법률 스님과 인연을 맺어주며 ‘청춘콘서트’로 이어진다.

‘젊은이의 멘토’라는 이미지를 굳혀가던 2011년 여름, 안 전 대표가 서울시장 재ㆍ보궐 선거 출마 의사를 내비치자 시민들이 뜨겁게 반응했다.

안 전 대표는 단숨에 지지율 50%를 넘어서며 유력 후보로 자리매김 한다. 지지율 5%에 그쳤던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조건 없이 후보 자리를 양보하는 결단으로 정치권 안팎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2011090710091587074_1
2011년 9월, 안철수는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줬다. 당시 단일화 합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장에서 서로 포옹하는 모습.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법칙 아래 ‘이합집산’을 거듭하던 기성 정치권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국민들은 안 전 대표의 ‘아름다운 양보’에서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찾기 시작했다. 안 전 대표는 단숨에 유력 대선주자로 떠올랐다.

안 전 대표는 대선을 앞두고 있던 2012년 7월 각종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안철수의 생각’을 내놓으며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준비한다. 당시 예비 대선후보들이 차례로 출연하던 SBS TV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에도 출연하며 대중들의 기대치를 높였다. 그리고 그해 9월 “진심의 정치를 하겠다”며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한다.

하지만 정권교체를 명분으로 야권 후보단일화를 이루겠다며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와 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안철수 신드롬’을 급격히 식어간다. ‘아름다운 단일화’를 하겠다는 약속과 달리 양측이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단일화 피로감’만 키운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안 전 대표가 11월 23일 대선 후보등록일(25, 26일)을 목전에 두고 “정권교체를 위해 백의종군할 것을 선언한다”며 돌연 대선 후보직 사퇴를 선언하자 그칠 것 같지 않던 안풍도 잦아들기 시작했다.

신당 창당 후 돌연 통합…새롭지 않은 ‘새정치’

대선 이후 미국에 머물던 안 전 대표는 2013년 4월 재ㆍ보궐 선거에서 서울 노원병에 출마하면서 원내 입성에 성공한다.

안 전 대표는 ‘새정치’의 가치를 완성하겠다며 신당 창당을 추진했고, 김성식ㆍ금태섭 의원 등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인사들도 안 전 대표를 돕기 위해 다시 모였다.

그런데 안 전 대표가 별안간 김한길 당시 민주당 대표와 통합을 결정하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기대보다는 실망의 목소리가 컸다.

그렇게 탄생한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2015년 12월 문재인 전 대표의 패권에 밀려나면서 끝내 탈당했다. 정치권에서는 “3대 미스터리가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 북한 김정은의 생각 그리고 안철수의 새정치다”라는 조롱이 나돌기도 했다.

불분명한 화법과 우유부단한 태도 탓에 ‘간철수’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다녔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최장집ㆍ장하성 고려대 교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송호창 전 의원 등 안 전 대표 주변에 있던 이들은 소통 문제를 지적하며 그를 떠난 게 뼈아팠다.

국민의당 창당 승부수… 대선에도 통할까?

안 전 대표는 지난해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신당 창당이라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 당 안팎의 우려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독자노선 의지를 꺾지 않았다. 선거 결과 국민의당이 38석으로 단숨에 제3당의 자리에 오르면서 안 전 대표 또한 대선 재도전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가 많다.

1604_091_1
안철수는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을 창당했지만, 당내 김한길 의원(왼쪽)과 천정배 공동대표(가운데)로부터 야권연대 압력을 받았다. 그러나 안철수는 이들 주장에 대해 “연대는 없다”고 쐐기를 박았고, 결과적으로 그의 선택이 옳았음이 증명됐다. (사진출처:http://m.monthly.chosun.com/)

최순실 게이트 이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는 박 대통령의 ‘하야’를 강한 어조로 주장했다. ‘간철수’의 이미지를 벗고 ‘강철수’(강한 안철수)로 변신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귀국 이후에는 반 전 총장과의 거센 연대 요구에도 ‘자강론’이 우선이라며 꿋꿋이 버텨내면서 정치인으로서의 근성을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안 전 대표 앞에 놓인 현실은 여전히 녹녹하지 않다. 안 전 대표가 내세우는 중도ㆍ실용 노선은 확장성이 큰 반면 일관성을 지켜나가기가 쉽지 않다. 

당장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와 관련해 ‘오락가락 행보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성공한 벤처사업가라는 장점을 살려 ‘4차 산업혁명’을 자신의 정책 브랜드로 띄우려 힘을 쏟아 붇고 있지만 성과는 미미해 보인다.

안 전 대표의 지지율이 주춤하는 사이 중도ㆍ실용의 영토를 안희정 충남지사가 장악해 가며 ‘안희정 대안론’을 키우고 있기도 하다. 한국갤럽이 지난 25일 내놓은 정례 여론조사 결과 안 전 대표는 지지율 8%로 문 전 대표(32%)와 안 지사(21%)에 크게 뒤졌다. 이재명 성남시장,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함께 3위권을 형성했다.

하지만 안 전 대표는 “이번 대선은 저 안철수와 문재인의 대결이 될 것”이라며 “저는 이 싸움에서 이길 자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안 전 대표 측은 특히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이 끝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탄핵 심판 결론 이후 보수 지지층 표심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헌재 결론 이후 선출할 민주당 대선 후보로 누가 뽑히느냐도 대권의 향배를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안 전 대표는 9일 JTBC 뉴스룸 연속대담에 출현해 “대선 직전에 거의 한 90일, 100일은 조선왕조 500년 동안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생길 거라고 한다”며 “저는 (누구와도 연대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목, 2017/03/02- 01:41
189
0
  전국건설산업노조(위원장 진병준) 산하 현장분과 부울경지부(지부장 전웅조)와 부울경철콘협의회...
금, 2017/07/14- 16:58
188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