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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평화] 탈북자 신상터는 헬조선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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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평화] 탈북자 신상터는 헬조선 정부

익명 (미확인) | 목, 2016/04/28- 16:48

북한의 핵 위협, 일본의 재무장과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 중국의 군사력 확충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의 군비 경쟁과 군사적 긴장은 점점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 불안하고 위험한 악순환의 고리를 언제까지 그냥 두어야 할까요? <프레시안>과 <참여연대>는 악순환의 출발점인 정전체제의 한계를 진단하고, 한반도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안녕과 평화를 보장하는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이제는 평화'를 연재를 진행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진을 통해 현안에 대한 분석과 대안, 국방·외교 분야를 바라보는 평화적인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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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신상 터는 헬조선 정부

[이제는 평화] 대한민국 정부에게 난민은 누구인가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 상근변호사


 


탈북자 신상 공개를 감행하는 세계관 

 

총선을 닷새 앞둔 지난 4월 8일, 통일부는 '집단 탈북 관련 브리핑'을 통해 "북한이 해외 식당에 파견하여 근무 중이던 남자 지배인 1명과 여자 종업원 12명이 4월 7일 서울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그들의 탈북 동기와 마스크 착용 전신 사진도 앞장서서 공개했다.

 

이 브리핑은 내용과 시점 양면에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제재가 성공적으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을 선전하는 북풍 몰이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총체적인 숙고가 부재했던 이 브리핑은 총선 결과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오히려 현재까지도 풀기 어려운 문제만을 남기게 되었다. 

 

이러한 정략적 행위의 타당성이나 목적의 탈법성 자체보다, 한국에서 난민을 옹호하는 활동가들을 더욱 분노케 한 것은 난민의 생명을 담보로 정무적 이익을 얻으려는 시도를 감행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던 그들의 세계관 자체다.

 

난민의 신상은 왜 보호되어야 하는가 

 

탈북자들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국민이다. 하지만 제3국에서는 난민협약 등 국제법에 따라 명확히 '난민(Refugee)'에 해당하며, 난민협약은 난민에 관한 신상 정보는 물론이고 난민이 특정 국가에 비호 신청을 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공개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탈북자들이 이에 적용을 받진 않지만, 한국의 난민법 역시 제17조 제1항에서 본인의 동의 없이 난민 신청자를 특정할 수 있는 인적 사항과 사진 등의 공개 금지, 정보 공개 및 누설 금지 규정과 벌칙 규정을 두고 있다. 

 

왜 이렇게 난민의 신상 정보를 보호해야 하는가? 국적 국가로부터 박해를 피해 제3국에 난민 신청을 했다는 정보는 난민인 탈북자들에게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당사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가 누설되어 본국 정부가 이를 알게 될 경우, 본국에 있는 가족 및 기타 관련자들에게 조사, 처벌 등 박해가 가해질 것이 명백하다.

 

과연 대한민국 정부는 이 브리핑에 대해 그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동의를 거쳤는가? 브리핑이 난민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에게 끼칠 무서운 결과에 대해 과연 정부는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질 수 있는가? 난민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이뤄진 이 브리핑은 과연 한국 정부에게 난민이란 누구인가를 질문케 한다.

 

한국 정부에게 난민은 누구인가

 

한국 정부에게 난민은 구체적 인간이 아니라 정책적 재료다. 우선 난민은 '인권 선진국'이라는 허구적 이미지의 대외 선전 수단이다. 아시아에서 사실상 최초의 난민법 입법 및 시행, 유엔난민기구 집행이사회 의장국 역임, 시리아 난민에 대한 인도적 체류허가 등은 국제사회에 반복적으로 선전된다. 

 

1994년부터 2015년까지 21년 동안 1만5250명이 난민 신청을 했고, 그중 576명이 난민 인정을 받았으며, 910명이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았다. 21년간 신청자 중 평균 3.78%만이 난민 인정을 받아 한국에서 살 수 있었고 나머지는 미등록 체류자로 살거나 추방되어야 했다는 사실은 대외적 선전 뒤로 숨겨진다. 

 

한국 정부에 난민은 사실 거의 존재하지 않는 허구다. 비호를 구하는 대부분의 난민 신청자들은 난민 제도를 남용해서 한국 체류를 꾀하는 허위 신청자들로 여겨질 뿐이고, 난민 제도는 강력한 국경 관리와 체류자 관리를 저해하는 요소일 뿐이다.

또한 한국 정부에게 난민은 정책적 필요에 따라 활용되는 얼굴과 목소리가 없는 '타자'다. 난민 문제에 더해 남북 관계의 모순까지 함께 투영된 존재인 탈북자는 이번 사건에서처럼 체제 우위성의 선전도구로 활용되거나, 분단 체제를 항구화할 담론을 간접적으로 유포할 도구로 활용된다. 

 

심지어 난민들은 한국 사회에 안보 불안을 가져오는 잠재적인 대상으로까지 이해된다. 작년 말 시리아 난민에 대한 국정원장의 느닷없는 현안 보고는 난민과 테러를 연계시켜 소위 '종북 세력'과 구별된 새로운 안보 불안의 주체로 난민을 활용하려는 시도였다.

 

예일 대학교 정치학 교수인 제임스 스콧은 저서 <국가처럼 보기(Seeing Like a State)>에서 국가가 공간과 사람을 읽기 쉽게 치환해가는 속성을 '가독성과 단순화'라는 키워드로 분석한다. 

 

한국 정부에게도 난민은 통계로 읽히는 체류 외국인 중 일부, 지방자치단체 시설 보수 예산에도 못 미치는 연 17억 가량 예산의 집행 용처, 극히 적은 숫자로 존재하는 무명의 체류 관리 대상일 뿐이지 구체적 인간이 아니다. 과연 대한민국 정부에게 피와 살, 존엄한 영혼을 가진 난민의 인간성은 어디에 있는가. 

 

난민과 국가의 보호, 평화 

 

박해를 피해온 난민은 우리에게 국가의 보호를 되묻는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비극적 사건 속에서 우리는 '국가가 과연 인간을 보호하는가'에서부터 '오히려 국가가 인간을 공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질문을 곱씹어왔다.  

 

난민 역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할 뿐 아니라, 국가와 그에 준하는 집단으로부터의 박해를 피해온 사람들이다. 그들의 고국도, 그리고 한국도 그들을 선뜻 보호하지 않는 경계 속에서 자신의 몸뚱어리에만 의지하고 있을 뿐이다. 

 

난민의 존재는 평화의 소중함을 되묻는다. 국가와 그에 준하는 집단들의 폭력적 박해를 피해온 그들은 언어, 문화, 역사적 경험이 모두 다른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로서 또 다른 비평화를 경험한다. 평화를 찾아온 난민들이 경험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에게마저도 가혹한 '헬조선'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영상 메시지를 통해 "전쟁의 처절함을 체험한 난민들은 어떻게 평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난민의 존재는 우리가 모두 지구에 온 외부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한다"고 심오한 통찰을 줬다.

 

우리는 우리가 국가의 경계를 초월한 코스모폴리탄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역시 어디에선가 이방인이며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이기에 난민들 곁에 선다. 한국 정부가 그들을 얼굴도 목소리도 없는 존재로 치환하여 정책적 재료로 활용하고 있을 때, 국가의 의무를 요구하고 평화를 희망하는 우리는 어떻게 그들 곁에 서고 연대할 것인가.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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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연의 예산언박싱’은 나라살림연구소 신입연구원이 예산의 세계에 발을 들이며 겪은 경험, 예산에 대한 생각 등을 다루는 연재글입니다.

 

예산은 내 일상과 거리가 먼, 정부의 돈 그러니까 내 돈이 아닌 남의 돈이었다. 정부가 쓰는 돈이 내 삶에 들어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예산에 관심이 없었다. 예산서를 볼 줄도 몰랐고, 예산 관련 뉴스를 봐도 당최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냥 제자리걸음인 월급 명세서를 보면서 막연히 불안한 미래를 걱정했다.

  

예산을 알게 되면서, 그러니까 내 지갑에서 나간 세금이 예산으로 편성돼 다시 내 발앞까지 오게 되는 과정을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게 되면서 불안이 조금씩 사라졌다. 긴급재난지원금만 예산인 것은 아니었다. 예산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내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정부는 버스 운행에 돈을 엄청 쓴다던데 내가 타는 버스는 왜 꾸불꾸불 길을 돌아갈까?’, ‘보도블럭 바꾸는 대신 다른 일에 예산을 쓸 수는 없을까?’, ‘내가 바라는 정책은 하나같이 예산이 부족해서 못한다는데 사실일까?’

 

예산을 알면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있다. 예산을 알기 전과 후의 세상은 달라도 많이 달랐다. 나는 예산을 알아가는 일이 흥미롭고 또 보람이 느껴져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진로를 바꿨다. 그렇게 예산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예산의 세계에 발을 들인 자가 맨 처음 할 일은 무엇인가. 바로 예산서를 보는 일이다. 그런데 예산서를 찾는 일부터 난관이다.

 

우리 지역 예산서, 도대체 어디서 볼 수 있을까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예산서는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어릴 때 학교 운동장에서, 아파트 주차장에서, 골목길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것처럼 우리 지역 예산서 찾기가 무척 어려웠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서울시의 예산서와 결산서를 찾기 위해 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홈페이지 첫 화면 우측 하단 ‘자주 찾은 서비스’에 ‘서울재정포털’이 있다. 이럴수가! 여기에는 서울시가 작성한 예산서, 결산서 파일이 없다. 한참을 헤맨 끝에 다시 서울시청 홈페이지로 돌아와 검색창에 예산서를 검색했더니 연도별 예산서가 뜬다.

 


출처: 서울시 홈페이지 캡처


 

예산서와 결산서는 서울시 홈페이지-분야별정보-행정-자료실(https://news.seoul.go.kr/gov/archives/category/govdata_c1/budget_c1/data_budget_c1/data_document_budget-n2)에 있었다. 시작하자마자 포기할 뻔 했다. 예산서와 결산서의 접근성은 왜 이렇게 불편한지 모르겠다.

 

서울시가 ‘특별시’라서 숨바꼭질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면, 다른 지자체는 다를지도 모른다. 태어나고 자란 전남 순천시의 예산서와 결산서를 찾아보기로 했다. 순천시청 홈페이지 첫 화면에서 정보공개-재정정보(https://www.suncheon.go.kr/kr/open/0006/0014/0018/0001/)에 들어가 예산서와 결산서를 바로 볼 수 있다. 대개 시군구 홈페이지 구성은 비슷하므로,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면 재정정보에서 예산서와 결산서를 발견할 수 있다.

 

예산서, 결산서 외에 재정공시를 통해 재정운용 상태를 볼 수 있다. 재정공시는 주민들이 보다 쉽게 예산과 결산을 이해할 수 있도록 예산서와 결산서를 기준으로 요약 정리한 재정공개제도다. 서울시 재정공시는 서울시 홈페이지-분야별정보-행정-세금·재정-재정운영공시(https://news.seoul.go.kr/gov/archives/category/tax-news_c1/data_year_finance-n2)에서 찾을 수 있다.

 

 

출처: 지방재정365 캡처

 

 

이렇게 고생해서 예산서를 다운받았는데, 실은 예산서를 찾는 지름길이 따로 있었다.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지방재정365(https://lofin.mois.go.kr/portal/main.do)를 활용하는 것이다. 지방재정365 홈페이지-지방재정 전문통계-예산-우리 지자체 예산에 들어가면 보다 쉽게 자료를 찾을 수 있다. 이보다 더 쉬운 방법도 있다. 구글에서 ‘0000년 00시 예산서’를 검색하는 것이다.

세상에…

 

쉬운 길을 돌아가고, 시행착오는 겪는 일이야말로 초심자의 권리(?)다. 예산서를 찾아 온라인 공간을 헤맸을 뿐인데 10km 마라톤을 한 것처럼 피로가 몰려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사는 지자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예산서, 결산서, 재정공시를 찾고 다운받았다. 시작이 반이라고, 엄청난 일을 해냈다.

 

그동안 우리가 알았던 경제는 반쪽짜리라고 한다. 예산을 아는 것은 그동안 경제에서 소외됐던 나머지 반쪽짜리 경제를 아는 것과 마찬가지다. 예산을 접하고 매일매일이 새롭게 느껴진다. 오늘 같은 날들이 켜켜이 쌓이면, 언젠가 예산이 내 발앞까지 올 거라고 상상해본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우리 동네 예산, 내 삶과 연결돼 있는 예산을 읽고 예산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그런 날.

 

 

 

 

용어 설명

예산
: 일정기간 동안의 재정수요와 이를 충당하는 재원을 추정하여 작성한 자치단체의 수입과 지출에 관한 계획 
결산: 예산과정의 마지막단계로 1회계연도의 세입세출예산의 집행실적을 확정된 계수로 표시하는 행위
재정공시: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지방재정법 60조에 따라 예산 또는 결산의 확정 또는 승인 후 2개원 이내에 예산서와 결산서를 기준으로 세입·세출예산의 운용상황 등을 공시하는 행위로, 주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재정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2006년 도입

출처: 지방재정365, 국가법령정보

화, 2020/12/0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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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무기는 없지만, ‘꼭 필요하지 않은 무기'는 있다

김영수 나라살림연구소 정책위원 (전 해군소령, 전 민주연구원 방산개혁특별분과위원장)

 

 

전쟁을 수행할 때 어떤 무기체계와 장비를 갖추고 있느냐는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건이다. 또한 현대전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방식의 전술을 운용해야 하므로 다양한 방어무기를 갖추어야 하고, 이러한 무기체계를 운용·유지하고 관리해야 하는 다양한 인력양성과 군수지원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국방은 최악의 상황과 예기치 않은 변수들을 사전에 전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상황에 맞는 무기체계를 준비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군 입장에서 불필요한 무기는 없고, 이에 따라 군은 전력증강 영역이나 분야에서 매우 다양한 소위 백화점식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육··공군 등 소요군은 어느 한 분야라도 소홀할 수 없다는 강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전쟁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황을 가정하여 필요한 무기체계를 요청하고 합참과 국방부를 거쳐 무기체계의 소요가 결정되게 된다.

 

국방부에서 요구한 2021년 국방예산은 약 52.9조 원으로, 전년 대비 5.5% 증가한 금액이다. 이 가운데 병력운영 부문 예산이 약 20.6조원(3% 증가), 기존 획득된 전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전력유지 부문 예산이 약 15.3조원(12% 증가)이다. 방위력개선비는 지휘정찰 등 5개 분야 172개 사업에 대하여 약 17조원(2.4% 증가)이 편성되었다.

 

한 번 무기체계를 획득하면 통상 약 30년 정도 운영하게 되는데, 현재는 워낙 많은 종류의 무기체계 및 장비를 운영하기 때문에 이러한 무기체계 등을 운영·유지(정비관리하는 데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이러한 운영유지를 위한 예산의 증가율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 등에서는 운영유지 예산의 증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말도 안되는" 효과성 제로 60년대식 특수침투정, 

이대로 두면 2029년까지 1.3조 원어치 사들인다 

 

 

무기체계를 한 번 획득하게 되면 30년 동안 운영·유지하게 된다.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입되는 점을 고려하여, 불필요하지 않은 무기체계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거나 비용대비 효과가 크지 않은 무기체계의 획득에는 신중하고 보수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현대전의 특성에 맞지 않고 작전목적 실현을 보장할 수 없거나 비용대비 효과가 매우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이미 사업비가 투자되어 획득이 진행된다는 이유만으로 사업 추진을 중단하지 못하는 사례는 없는지 냉철한 시각에서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해군에서 운용되다가 노후 도태에 따른 특수침투정 및 특수전지원함 확보 사업’(이하 특수침투정)이 있다. 상선처럼 위장된 특수전지원함에 특수침투정 O척을 싣고 적진의 원거리 해안에서 침투정을 수중으로 내리면, 특수침투정은 수중으로 잠행(잠수정)하다가 해안 근처에서 수상으로 항해(고속정)하여 적 해안가에 특수전요원 O명을 침투시키는 작전 개념인데, 이러한 작전 개념은 1960~1980년대 북한이 간첩을 침투시키거나 우리 군이 북파공작 시 활용했던 작전방식이다.

 

이러한 작전 개념은 현대전에서는 한 마디로 실현 불가능한 것이고, 구태의연한 작전 개념에 불과하다. 아무리 북한이 우리보다 탐지 능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수천 톤의 지원함(모선)이 원거리 공해상에서 이동한다면 당연히 탐지하여 사전 경계를 할 것이고, 여기서 침투정(자선)이 북한 해안으로 침투하는 것에 대해 강화된 경계를 할 것인데, 지금 1960~1970년대도 아닌데 아직도 이런 작전이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구태의연하다. 지금은 2020년인데, 특수침투정 등이 확보 완료되는 시기는 대략 2029년이다. 세월은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탐지기술도 그만큼 발달하고 있다. 이 사업은 2008년도에 장기 신규 소요로 결정되어 13년째 사업추진이 진행 중이다.

 

이 사업비가 무려 약 9,000억 원이다. 그런데 이 사업비가 약 12,500억 원까지 증액될 것 같다. 또 이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약 100여 명의 특수전 요원을 침투시키는데 약 600여 명 이상의 지원인력(지원함과 특수정의 함정 승조원)이 필요하다. 특수전 요원 1명을 침투시키는 데 약 100억 원의 비용과 약 6명의 지원인력이 필요한 것이다. 한 마디로 비용대비 효과는 아주 미비하고 더군다나 생존성 보장이 취약하다.

 

그러면 이 사업을 계속 추진할 경우, 누가(업체) 가장 큰 이익을 얻을 것인가?

먼저 지원함의 탐색개발을 완료한 OO조선일 것이다. 지원함 건조비가 최초 7,500억 원에서 약 9,400억 원으로 증가되었는데, 아마도 탐색개발을 했던 OO조선이 건조업체로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침투정은 최근 국내업체에서 탐색개발(시제품 제작)을 했는데 아직까지 국내 건조할 것인지 수입할 것인지가 최종 결정되지 않았다. 최초 약 1,400억 원으로 책정됐는데, 업체는 약 3,100억 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해군 소령 출신이지만 작전 분야에 문외한이다. 그래서 해군 특수침투 관련 전문가들에게 이 작전 개념이 현재나 미래에서 먹힐 것인지 여부에 대해 물어봤는데, 필자가 만난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말도 안되는 작전 개념이라고 한다. 특히 해군에 몸담고 있는 현역들도 이 사업은 중단되어야 하고 특수침투 수단은 필요한 만큼 다른 침투 수단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한다.

 

 

150억 원에 대한 책임 회피 위해 1.3조 원 낭비하는 국방부

원점에서 재검토해야할 사업, 특수침투정 뿐 아니다 

큰 낭비 막기 위해 매몰 비용에 대한 면책 고려해야

 

 

그런데 왜 이렇게 문제가 많은 사업이 중단되거나 대체 전력으로의 전환이 검토되지 못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13년 동안 사업이 추진되면서 약 150억 원의 예산이 사용되었는데, 만약 여기서 사업을 멈추고 다른 대체 수단으로 사업이 다시 시작되면 이미 투입된 약 150억 원은 매몰 비용이 될 것이고, 해군이든 방사청이든 누군가는 이 매몰비용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12,500억원이 별 효용도 없는 사업에 낭비되는 것은 모르겠고, 내가 관련 부서에 근무하고 있을 때는 아무 일 없이 그냥 지나가면 된다는 지극히 관료적 사고방식과 조직문화로 인하여 이 사업은 그냥 계속 진행하는 것이다.

 

비단 특수침투정 사업만이 이런 것일까?

군에서 추진한 전술정보통신체계사업(TICN)의 경우에도 기술의 발전 속도를 고려하지 않아 막대한 추가 예산과 상당 기간 사업이 지연되었는 바, 소요군과 합참, 국방부 및 방사청은 최초 계획한 작전 목적 실현의 효과성이 떨어지거나 비용대비 효과가 미미하거나 관련 기술의 발달로 사업 중단 또는 대체 전환이 불가피한 사업은 비록 일부의 매몰비용이 발생되었다고 하더라도 과감히 재검토를 해야 한다.

그리고 특수침투정 사업에 대해서는 용기 있게 원점에서 재검토를 해야할 것이고, 감사원은 매몰비용 발생에 대해 어느 공무원한테 책임을 묻겠다고 덤비지 않아야 할 것이다. 또한 국회는 이 사업 등 원점에서 재검토해야할 사업을 적극 발굴하여 주도적으로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특히 사업이 계속 추진될 시 이익을 얻게 될 관련 이해관계자(업체)들에게 휘둘리지 않아야 용기있는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수, 2020/12/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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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예산안 예비심사 전체회의에서 매우 이례적이고 유감스러운 결정이 이루어졌다. 산자위 예결소위에서 올라온 심사안이 여야 간사 합의로 변경되어 전체회의 안건으로 상정된 것이다.

가정용 스마트전력 플랫폼에 610억 원이 소위에서는 원안유지로 결정되었는데 전체회의에는 감액되어 올라온 것이 논란이 되었다. 예결소위 위원인 이소영, 조정훈, 김정호 의원 등이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결국 여야 간사 합의안대로 의결되었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회에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심의하고 의결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는 국민을 대리해 정부의 예산 편성과 집행을 관리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지금 국회 예결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예산안 심의는 헌법에서 명령한 법집행 과정이다.

 

국회법은 예산 심의의 상세한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예산안 심사의 최종 결과물은 정부예산안의 각 사업에 대한 감액 또는 증액, 또는 새로운 사업 예산의 신설(증액)이다.

각 부처의 예산안을 상임위원회에서 예비심사를 하고, 그 결과를 예결위원회에 제출한다. 상임위 예비심사의 결과라고 하는 것은 사업에 대한 증액,감액 요구액과 예산 편성과 집행에 대한 권고 내용을 답은 부대의견으로 구성된다.

상임위의 예비심사는 최종적 결정권한을 가지고 있는 아니기 때문에 예결위에 삼임위에서 '예비'로 심사한 내용을 제출만 할 수 있고, 본회의에 제출할 수정예산안은 예결위에서 결정한다.

하지만 상임위 예비심사가 단순히 의견 제출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상임위에서 증액 의견에 대해서는 예결위가 수용할 의무가 없지만, 상임위가 감액 의견을 낸 사업에 대해서는 만약 예결위가 감액 금액을 줄이거나 감액을 철회할 경우에는 해당 상임위원장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통상적으로 상임위에서 이루어진 감액은 예결위에서 수용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래서 상임위원회의 예비심사에서 감액 사업의 결정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산자위 전체회의의 결정은 예결소위의 전문적 심사 기능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결정이라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예결소위 심사 결과를 여야간사 합의로 간단하게 바꿀 수 있다면 예결소위의 심사는 의미가 없다. 상임위 예비심사가 말 그대로 예비심사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더욱 그렇다.

 

김정호 의원은 예결소위에서 매우 꼼꼼하게 심사를 진행한 사실을 밝히며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저희 예결소위에서 어떤 정무적 판단으로 밀당하지 않았습니다. 항목 하나하나에 대해서 증액이든 감액이든 그것을 제기하신 분들의 질의나 서면이든 구두든 충분히 검토를 했고요. 거기에 정부 측 의견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시간까지 충분히 소명할 기회도 주고 시간도 주고 그렇게 해서 한 건 한 건을 매우 신중하게 그렇게, 아무런 정치적 고려 없이 심의했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고.
특히 감액 부분에 대해서는 좀 민감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감액 사유에 대해서 우리가 정말 꼼꼼히 챙겼습니다. 이철규 간사님 생각처럼 ‘하나도 못 했다’가 아니라 감액 사유가 대체로 집행 잔액이 많다, 집행률이 저조하다 그런 것 등이었는데 실제 그랬는지에 대해서 사유를 객관적으로 팩트 체크를 다 했습니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국회의 예산 심의는 매우 제한적이고 형식적이라 반드시 강화되고 개선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제도와 절차가 의미가 없어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산자위의 결정은 상임위의 예산 심사가 부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평가에 더해 법적 절차마저 무시하고 있다는 민낯을 보여주는 매우 유감스러운 사태이다.

 

민주주의의 파괴는 규정과 절차의 무시와 변형에서 시작된다. 이 작은 구멍이 민주주의의 벽을 무너뜨리는 징조가 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수, 2020/11/18-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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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인이든, 탈북인이든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 – 시민연구자 김명애 님

북한에 관심이 많아 탈북청소년의 한국 적응을 돕고자 꾸준히 만나왔다. 이번 연구를 진행하려고 만난 탈북 청소년 중 한 명은 3년 전에 수줍게 인사만 나누던 학생이었다. 당시 나와 이야기를 나눌 때 눈도 전혀 못 마주치고, 핏기없는 낯빛에 머리가 아프다며 힘들어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만나니 까르르 웃어댈 정도로 어찌나 밝아졌는지, 너무나 달라진 모습에 믿기지 않아 어리둥절했다.

“무엇이 널 이렇게 웃게끔 했니?” 어쩌면 내가 하려는 연구인 탈북청소년의 한국사회 적응에 미치는 긍정요소에 대한 직접적인 답이 될 수 있는 질문을 조심스럽게 던져봤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전문상담사에게 여러 번 상담을 받았는데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난 누구? 여긴 어디?” 아마 누구나 이런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복잡한 상황에 놓인 적이 한 번쯤은 있었을 것 같다. 이 친구도 목숨을 걸고 탈북을 시도해 어렵사리 한국에 왔지만, 모두가 바쁘게 살아가는 현 사회에서 북한에서 힘들게 왔다고 해서 특별히 따뜻한 눈빛이나 손길을 내미는 것 같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인이라고 하기에 뭔가 이상하고, 그렇다고 북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더욱 겁나는 상황에서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고민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찾게 된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점차 알면서 한국에서의 생활이 점차 편안해졌다고 한다.

자아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누군지를 알지 못하면 북한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아~ 이게 나지. 맞아! 이 모습이 나야.”라고 하면서 심리적, 사회적 안정을 찾게 된다.

흔히 사춘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부르지 않는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자신을 바라보며 어린이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어중간한 신체적 변화와 함께 남성과 여성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정체성을 혼란을 느꼈는지 되짚어 보면 그때의 심적 고통이 떠오를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싶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고려해 나를 포장하기보다는 상황 그대로의 나를 있는 그대로 오롯이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사회라는 곳에 적응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 또 주위에 자신을 돕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들에게 얼마나 큰 소속감과 안정감을 주는지 알 수 있었다.

언제든지 기댈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고 감사하는 탈북청소년을 바라보는 내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음을 느꼈다. 앞서 말했던 그 친구는 한국에서든 북한에서든 바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친구의 말에 함께 바다 여행을 떠나자고 약속했다. 기대감이 가득 찬 눈빛과 너무 행복한 모습에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탈북청소년의 한국 문화 적응을 위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간호의 긍정적 요인을 연구하면서 어찌 보면 한국, 북한 나눌 것 없이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긍정 요인을 연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쓴 현실 앞에서 탈북청소년에 관한 연구를 발판으로 아파하는 한국의 청소년과 나아가 전 세계 청소년에게 가장 필요한 긍정 요인을 찾아주고 싶다. 그들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서 나아갈 수 있는 요인을 알아가는 연구로 점차 확장되길 기대한다.

[칼럼] 남한 사회에 적응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야 – 시민연구자 백성희 님

청소년 시기는 자아 정체감을 형성하고 성인기를 준비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탈북한 청소년은 북한에서 태어나 북한의 교육을 받다가 중국 등 제3국을 거쳐 또 다른 적응 시기를 보낸 후 남한으로 들어온다.

남한 사회라는 세 번째 다른 세상에 놓이며 자신의 역할에 많은 혼돈을 겪는다. 기본적인 지지체계인 가족은 해체되거나 상실된 상태이다. 지지체계의 상실과 함께 남한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연결된 교육을 받지 못해 학력이 결손 난 상황에 놓인다.

하나원을 통한 교육 이후에는 학교에 다니지만,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교사나 친구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해 중도 탈락률이 일반 중고등학교와 비교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청소년 시기는 곁으로 보이는 자신의 신체상이 매우 중요하다. 남한으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청소년은 외모와 말투가 확연히 다름으로 드러나지 않은 낙인을 경험한다. 여러 과정을 거쳤기에 또래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도 흔하다.

북한에서 왔다고 특별하게 인식되면서 겪는 불편함도 있다. 많은 탈북청소년이 일상생활에서 겉으로는 남한 사회에 적응을 잘하는가 싶어도 우울과 불안과 같은 내면화된 정서 반응을 보인다. 남한 사람에 의해 드러난 낙인과 스스로 지닌 숨겨진 낙인으로 낮은 자존감, 수치심을 겪는다.

탈북청소년이 남한 사회에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을 이루는 긍정적인 요인이 무엇일까. 많은 연구에서 사회적 지지수준이 높을수록 심리·사회적인 적응과 일상생활의 적응수준이 높은 결과를 보였다. 지지체계를 만들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남한 사람들이 모르고 있어서 갖는 편견을 극복할 수 있었다.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과 사회에서 제공된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남한으로 오기까지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이후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잠재적인 심리적 문제들은 공식적인 지지체계보다는 비공식적인 소집단에 참여하고, 여기에서 상호작용하면서 정보를 나누기도 하고, 정서적인 문제를 스스로 극복하기도 하는 경우를 봤다.

그만큼 소집단이 활성화되고 지지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청소년 시기에 맞는 교육, 각각의 상황에 맞는 맞춤 교육을 하면서 한국사회의 심리·사회·문화적 적응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새터민은 우리 사회의 편견으로 인해 신분이 노출되었을 때 받게 되는 불이익에 대한 우려로 대부분 자신을 숨긴다. 그러나 이번 연구를 하면서 모든 편견에 맞서서 곳곳에서 사회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 새터민을 만났다.

청소년기에 탈북해 남한 사회의 여러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성인에 이른 한 새터민은 남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자신이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한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직접 경험하고, 극복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정서적인 지지체계를 형성할 수 있으리라 본다.

탈북청소년에게 남한에 와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했을 때 자유를 얻은 것이라고 했다. 꿈에 부풀어 바다에 가고 싶다고도 했다. 남한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곳이라는 마음이 들어서 좋았다고 한다.

‘자유’라는 단어를 다시 떠올렸다. 스스로 옭아매거나 다른 사람에 의해 구분될 때 자신이 자신의 자유를 빼앗아 버릴 수 있다. 지키고자 하는 자유가 단단히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누구이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발견하는 청소년기에 남한 사회에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적응에 성공해 안정을 찾길 바란다.

[칼럼] 탈북인 그들이 가진 고유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는 것 – 시민연구자 정란 님

이번 연구를 진행하며 공동체 의식에 관해 생각했다. 공동체란 소속감과 안정을 대표하는 사회적 구성에 기본 관념이다. 이와 관련해 인간의 기본욕구 중 소속과 안정의 욕구에 대한 결핍은 상위욕구를 향하는 열정마저 사그라지게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제3국을 통해 남한으로 넘어오려는 욕구는 생존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들이 남한에 정착하는 데 필요한 두 번째 욕구는 소속과 안정감이다. 그렇기에 하나원에서 사회화를 위한 교화 교육을 받고,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 때 얼마나 큰 벅참과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을지 탈북청소년과의 대화에서 알 수 있었다.

간접적으로 겪은 경험담으로는 그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글로 옮겨쓸 수 없을 듯하다. 그간 탈북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은 청소년기 탈북민과 교류하면서 나에게도 그들을 향한 선입견이 있었음을 깨닫게 했다.

또 그들은 유학생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깝고도 먼 북한 땅에서 다른 문화와 교육을 받았기에 사상과 가치관이 우리와는 완전히 다를 것 같았는데 실제 만난 탈북청소년은 새로운 문화를 동경하고 또 받아들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한국문화에 하루빨리 적응하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 헤매는 여느 유학생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어쭙잖은 나의 섣부른 통찰력과 무분별한 조언은 그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행에 신중함을 기하고, 젊은 연구자의 장점으로 실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과 관련해 정보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나의 자만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난 왜 그들이 우물 안 개구리와 같다는 여기며 정보를 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느꼈을까. 정작 우물 속에 있던 사람은 연구자 나 자신이었음을 알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탈북청소년은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확고한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과 만난 모임에서, 그리고 나눈 대화에서 자아 성찰을 하며 발전을 꾀했고, 그들에게 소속의 안정감을 주려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고 접근하기로 했다.

탈북청소년이기에 최신 추세에 민감하고 빠르게 흡수할 수 있을 거라고 본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처지를 바꿔 생각하면 나 역시 외국에 나가서 그곳의 경향과 유행을 따라가기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강점을 찾아주는 것으로 방향성을 잡았다.

빨갛게 머리를 물들인 남자 탈북청소년은 탈북한 지 갓 1년이 지났을 때였다. 북한식 말투와 억양이 강해 나서서 말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듯 보였다. 그래서 그가 관심을 가질만한 정보를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대화의 폭을 넓혀나가다 보니 교우관계에 문제가 있어 한국에 온 이후 학교를 여러 번 옮길 수밖에 없던 사연을 자연스럽게 털어놓았다.

이를 통해 탈북청소년과 정감 어린 교감을 했고, 탈북청소년이 아닌 평범하게 청소년기를 겪고 있는 고등학생의 멘토가 되어 편안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대화를 통해 “우리”, “함께”라는 소속감을 심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친구는 같은 여성이라는 성별을 앞세워 진학과 결혼, 육아에 대해 소탈하게 이야기를 나눴고, 미래에 대한 생각과 가치관을 공유하며 연대감을 가질 수 있었다. 이외에 꿈과 관련해 현재의 불안함과 이를 해소하는 방법을 나눴고, 탈북이 약점이 아닌 강점이 될 수 있다며 힘을 북돋웠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거창하게 생각했던 연구과제는 생각 외로 단순한 문제로 다가왔다. 소속감과 안정은 협회나 단체를 통해서만 충족되는 게 아니라는 걸 새롭게 발견했다. 개인적으로 연구라는 거창한 단어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막연함이 있었다. 나의 관심과 호기심에서 시작된 문제점이지만 풀어내기엔 너무 큰 과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과제를 수행하면서 위대한 발명은 대부분 호기심이 계기가 되어 시작되었음을 다시 깨달았다. 그러한 호기심으로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무척 감사함을 느낀다. 연구주제가 포괄적이지만 대상자를 선정함에는 어려움이 큰 연구다.

탈북이라는 특성상 가명을 사용하는 사람도 많고, 특히 청소년기를 겪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 이번 연구로 즉각적인 변화를 도모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건 그들의 삶에 있어서 소속과 안정은 다음 욕구와 자아 성찰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 자부한다.

화, 2020/01/2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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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2021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폭력에 대항하는 여성들: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Women Against ViolencE)》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여성 작가 8명과의 협업을 통해 파도가 되어 여성 폭력에 대항하는 다양한 일상의 목소리를 담아봅니다. 아래의 작품은 앰네스티 캠페인에 함께 한 일러스트레이터 윤예지님의 작품입니다.

국제앰네스티 X 일러스트레이터 윤예지

국제앰네스티 X 일러스트레이터 윤예지

 

작가명

일러스트레이터 윤예지

참여 소감

느리지만 확신을 가지고 함께 걷고 있습니다. 눈 앞에는 아직도 바뀌지 않은 것들이 잔뜩 쌓여 우리를 막아내고 있는 것 같아도 뒤돌아 돌이켜보니 우리는 꽤 멀리 나와 있더군요. 한걸음씩 따박따박 걸어나온 시간들이 길이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한 걸음 먼저 미래로 갑니다.

 

일러스트레이터 윤예지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심볼

월, 2021/03/08-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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