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덮은 미세먼지[펌 - 함께사는길]
철새 수십만 마리 오는 금강, 관광객 차단에 ‘썰렁’
굴뚝산업 버리고 생태도시 꿈꾸던 서천군, AI로 직격타
올해 우리나라를 찾은 철새 50만 마리 중 40만 마리가 금강을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HPAI)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으면서 충남 서천군이 감염을 우려, 관광객을 차단해 주변 상인들이 울상이다.
지난 5일, 가창오리 군무가 펼쳐진다는 금강을 찾았다. 충남 서천군을 찾아가는 길목에는 AI 감염을 차단하려는 듯 곳곳에 방역초소가 눈에 띄었다. 도착해 보니 서천군 조류생태전시관과 국립생태원, 신성리 갈대밭까지 휴관하고 출입을 막고 있었다. 가창오리 군무를 보기 위해 해마다 찾던 관광객 감소는 불 보듯 뻔했다.
AI 때문에 관광객 급감… ‘울상’
평일에도 관광객이 넘쳐나던 서천 하굿둑 인근 일부 식당은 문이 닫혀 있었다. 한 식당으로 들어가 보았지만, 손님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식당 주인 이미숙(가명, 52)씨는 “올해는 새들도 많이 오고 국립생태원까지 새로 문을 열면서 관광객이 많이 증가했는데, AI가 오면서 손님이 뚝 끊어져 버렸다”며 “일부 가게는 문을 닫고 장사를 쉬고 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러지도 못하고 문을 열어 놓았다”고 걱정했다.
관광객이 끊이지 않던 서천특화시장 입구도 길게 늘어선 택시들만 보일 뿐 손님보다는 상인이 더 많아보였다. 상인에게 “왜 손님이 이렇게 없어요?”라고 묻자, “철새가 (AI) 주범도 아니라고 하더구만··· 정부에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사람들을 찾지 못하게 해 손님이 줄었다”고 인상을 찌푸렸다.
담당 부서인 서천군 생태관광과 허철현 주무관은 “지난주 하굿둑과 웅포대교 사이에서 철새 20만 마리가 확인됐다”며 “AI 확산을 막기 위해 도로와 농가는 방역하고 있지만, 강변쪽 제방 출입은 막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금강은 가창오리가 가장 많으며 큰고니, 청둥오리, 큰기러기, 쇠기러기, 흰빰검둥오리, 고방오리, 비오리 등 지난해보다 개체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허 주무관은 “지난해에는 생물 다양성 관리계약사업으로 1200kg 정도의 먹이를 줬다”며 “올해는 (행사의 일환으로) 생태 여행을 준비했다가 AI 때문에 모든 행사를 취소했다”고 말했다. 환경부와 농림부에서 철새 먹이주기를 해도 된다고 해서 내일(6일) 정도에 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허 주무관은 “최근에 개원한 국립생태원이 주말에만 2만 명이 찾을 정도로 호황을 누리면서 조류생태전시관도 70~80% 관광객 상승효과를 누리고 주변은 물론 시내까지 관광객으로 넘쳐나기도 했다”며 “1차 산업인 농·수산을 빼고는 관광산업으로 살아가는 서천군의 지역경제에 AI가 치명타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립생태원 홍보담당자는 “멸종위기 1등급인 검독수리, 참수리, 황새, 매 등 18종 65마리의 조류가 전시된 국립생태원이 지난해 개원해 1월 3일부터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가 1월 24일 AI 때문에 휴관에 들어갔다”며 “22일 만에 17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가 좋아서 서천군 (관광객 유치에) 많은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충남 서천군은 굴뚝산업을 버리고 생태도시로 도약을 꿈꾸면서 한산모시관, 조류생태전시관, 서천특화시장 등을 중심으로 관광객 유치에 힘썼다. 그러나 AI가 전국을 휩쓸면서 관광객이 급감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철새를 AI 주범으로 몰아가는데…”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은 “정부는 겨울철새를 AI 주범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피해자”라며 “AI 확산도 사람과 차량의 이송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철새들이 우리나라를 찾는 이유는 시베리아가 얼어붙으면서 먹이가 부족해져 상대적으로 먹이가 풍부한 우리나라에 와서 먹이를 먹고 다시 시베리아로 돌아가 번식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기존의 장소에서 먹이를 주는 것이 (AI) 확산을 막는 하나의 방법이다”고 자문했다.
이를 증명하듯 정부의 발표와는 다르게 국제기구인 ‘조류 인플루엔자 및 야생조류 학술대책위원회’는 지난 1월 다음과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1.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HPAI)는 가금류 생산 시스템과 이의 가치 사슬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2. H5N8HPAI가 최근 대한민국의 국내 가금류로부터 알려졌으며 가금류 및 야생 조류의 사망을 유발하였습니다.
3. 가금류산업뿐만 아니라 가창오리 무리를 포함한 야생 조류의 엄청난 치사율에도 영향을 줍니다.
4. 야생 조류가 이 바이러스의 근원지라는 증거는 현재까지 없습니다. 그들은 매개체가 아닌 피해자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5. 조류 인플루엔자 및 야생조류 학술대책위원회는 국제연합환경계획 (UNEP), 이동성 종의 보존에 관한 협약 (CMS), 국제식량농업기구 (FAO)와 함께 기관 및 단체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지난 5월 25일, 인천시 시천동에서 서울 개화동을 잇는 인공수로인 경인아라뱃길이 개통 1년을 맞았다. 2조3456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세금이 들어간 이 뱃길은 총 연장 18킬로미터, 폭 80미터, 수심 6미터로 되어 있다. 개통 1년이 됐지만, 이 사업에 대한 사회적 비난여론이 거세다. 보수언론 논설위원마저 “토건족이 주도했다”면서 “참 아름답고 거대한 오시범(誤示範) 사례”라고 꼬집을 정도다. 그러나 경인아라뱃길을 추진한 수자원공사(이하 수공)의 홍보활동은 멈추지 않는다. 수공은 자신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전문가들을 동원해 경인아라뱃길이 필요한 사업이었으며, 발전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를 계속하고 있다.
경인아라뱃길은 경인운하의 새로운 명칭이다. 2009년 수공은 명칭 공모를 통해 ‘아리랑’ 후렴구 ‘아라리’에서 ‘아라’를 빌려 우리민족의 정서와 문화가 담긴 뱃길이자 천년의 숙원을 표현하고자 선정했다고 밝혔다. 불행히도 ‘경인아라뱃길’이란 이름에서 한반도 대운하를 ‘4대강 살리기’라 이름 짓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천년의 숙원이란 표현도 정확히 살피자면 민족 전체의 숙원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서 우리 땅 곳곳에 깊은 상처를 만들어낸 토건족의 숙원사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경인아라뱃길이란 명칭은 토건세력의 욕망을 숨기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하다.
경인운하 논란의 핵심은 경제성이다. 경인운하는 2008년 이명박 정권시절 확정돼 완공됐지만,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수백여 년 동안 경인운하는 경제성이 없다는 결정적 하자 때문에 성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서울과 인천을 물길로 이으려는 시도는 계속됐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초창기 도로가 덜 발달된 상황에서 대규모 물량을 서울로 바로 이동시킬 수 있는 운하계획은 물류비 절감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기반시설 조성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후 도로가 발달된 상황에서는 투자대비 효과가 더욱 빈약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경인운하는 경제성, 환경파괴, 지역공동체 훼손 등에 대한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 개발부처가 호언장담한 수익성은 여전히 현실 가능성에 의문을 들게 만들고 있다.
경인운하는 왜 시작됐을까? 그리고 이 사업의 현재는 어떤 상태이며, 미래는 어찌 될 것인가? 이번 호에서는 우선 1990년대 말까지 경인운하의 과거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토건족이 왜 경인운하에 목을 맸는지 살펴본다.
고려, 조선조 민초들의 고통을 민족의 염원이라고?
경인운하를 운영하고 있는 수공은 경인운하를 두고 ‘천년의 약속’, ‘민족의 염원’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그 이유가 고려 시대부터 운하를 시도했기 때문이라 한다. 이 시기 지방에서 올라온 공물을 수송하기 위해서는 만조 때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좁은 수로인 손돌목(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일대)을 거쳐야 하는데, 물살이 빠르고 암초가 많아 숙련된 뱃사람들조차 공포를 느낄 정도로 사고가 많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고자 인공수로를 통해 안전하게 공물을 운송하고자 운하공사를 한 것이다. 현재 인천시 부평구와 부천시, 김포시, 서울 강서구를 흐르는 하천은 굴포천(掘浦川)이다. 여기에 한자 ‘팔 굴(掘)’이 있는 것은 인공적으로 수로를 내고자 했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 고려시대, 조선시대 운하를 만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부천시 등의 자료를 보면 인천시 지하철 1호선 동수역 인근의 바위산을 뚫지 못했다고 되어 있다. 굴착용 기계장비와 다이너마이트 등이 없던 시절 인력으로만 공사를 해야 했기에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려시대 굴포천 공사는 무신정권의 최우(뒤에 최이로 개명)가 주도했는데, 이때는 몽고의 침입 등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운 탓에 완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김안로가 주도한 굴포천 공사는 400미터의 돌산을 넘지 못해 완공을 못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왕족의 안녕과 연관된 풍수지리로 해석해 왕이 중지시켰다고 해석하는 이도 있고, 기술력 부족이라 지적하는 이도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투자대비 효과가 부족한 탓이다.
조선 영조 때 청계천은 홍수 방비 등을 위해 준설공사를 했는데, 약 두 달간 연인원 20만 명에 3만 5000냥, 쌀 2300석을 투입했다. 상대적으로 쉬운 준설공사에 많은 비용이 소용되는데, 맨땅을 파내고 돌산을 깎아 내는 사업에는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가야 했겠는가? 굴포천 공사 당시, 이 사업이 정말 필요한 사업이었다면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라도 했었을 것이다. 굴포천 공사를 중단한 것은 오늘날 표현으로 하자면 운하건설이 정책의 우선순위가 아니었으며, 경제성이 맞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지배층을 위한 운하건설에 동원돼 온갖 고초를 겪었을 민초들 입장에서, 대규모 운하공사는 마뜩잖은 일이었을 것이다. 수공이 경인운하를 민초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민족의 염원이라 표현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일제 강점기에도 경인운하 계획이 나왔었다. 1926년 5월 7일 동아일보는 ‘환상의 도시계획’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경인운하’라는 용어를 처음 보도했다. 당시 경성부(일제 강점기 서울의 명칭)는 인천과 서울에 운하를 중심으로 도시계획을 수립한다. 경성은 상업도시, 인천은 공업도시로 구상한다는 이 계획은 당시 금액으로 2억5000만 원(圓)이 예상됐다. 당시 2억5000만 원이 대략 어느 정도의 금액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된 김동인의 단편소설 「감자」에서 여주인공 복녀가 죽었을 때, 남편은 보상금 20원을 받고 모른 체 한다. 20원은 당시의 쌀 한 가마니의 가격이었는데, 최근 쌀 한 가마니 가격을 대략 17만 원(2012년 기준)과 비교해 단순 계산할 때 일제 강점기 2억5000만 원은 현재 약 2조1250억 원에 해당한다. 현재 기준으로도 매우 큰 금액인데, 이는 조선총독부의 한 해 실행예산(1929년 2억3600만 원)보다 크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총독부는 1934년 5월 경인운하를 재정곤란 때문에 가능성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게 된다.
해방 이후 숱한 백지화 및 재추진
경인운하는 1945년 해방이후에도 끊임없이 논란 거리였다. 첫 시작은 경성을 동양의 중심으로 뉴욕이나 런던과 같은 도시로 만들자는 구상으로 당시 인천항이 국제무역 교역창구인 만큼 서울로 전기열차와 경인운하를 연결하자는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국가재건사업을 위한 원조 항목에도 인천과 서울 밤섬까지의 경인운하가 포함됐다. 하지만 정부부처 내에서 경인운하 건설에 필요한 환화 142억 환(1953년에 환폐단위는 ‘원圓’에서 ‘환’으로 변경)과 외자 525만 달러를 구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경인운하는 경인지역 종합개발계획에 포함돼 1965년 대통령 공고 1호로 추진됐다. 이 시기 운하는 남한강 전체를 대상으로 계획 됐다. 경인운하는 1967년 당시 재선을 노리는 박정희 대통령과 공화당의 주요공약 중에 하나였기에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러나 이 역시 경제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취소된다. 1970년 3월 2일 국토종합개발 공청회에서 한 언론인은 “기술의 진보는 운하 없이 컨테이너 등 대량수송수단의 발달을 가져와 수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서 당시 박정희 정권이 국토계획을 미래예측과 기술 진보에 대한 고려를 소홀히 했다며 비판했다. 그의 비판은 정확했다. 교통발달사를 보면 19세기까지는 운하의 시대였지만, 20세기 들어서는 자동차가 시대를 이어 받았다. 컨테이너는 운하가 아니어도 충분히 수송 가능했다.
하지만 경인운하는 1971년 물류혁신 논리에 이어 홍수 방지를 빙자해서 다시 추진돼, 1977년 4월에 건설부는 경인운하 구간을 고시(행정기관의 결정사항을 알리는 명령적 성격)하게 된다. 경인운하는 그렇게 추진되는 듯 했으나, 1980년대 들어 다시 운하의 경제성 등에 의문이 제기 된다. 더욱이 이때부터 서울의 생활하수와 공장폐수가 운하로 유입돼 인천항의 수질이 나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1981년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에서 경인운하는 후순위로 빠졌다. 한강에서 단양까지 221킬로미터의 남한강 운하가 더 경제성이 있어, 이를 1991년에 완공한 이후에 경인운하를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88올림픽을 대비해 한강을 정비하면서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하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1985년 2월 서울시는 경인운하 계획으로 도시계획시설로 묶여 있던 강서구 일대를 해제했고, 1986년에는 인천시에서도 경인운하 예정구간을 50미터 도로로 만드는 도시계획재정비계획을 확정했다. 경인운하는 또 다시 사망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이로써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 시기 동안 경인운하는 6번째 백지화를 맞게 됐다.
경인운하가 다시 추진된 것은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89년이었다. 이번에는 다가오는 서해안 시대를 대비한다는 논리 아래 경제성과 해양 레포츠를 살릴 수 있다고 홍보됐다. 또한 이때부터 경인운하 추진세력은 굴포천 유역(부천시와 김포시)의 상습 침수피해 방지를 위해 운하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주창했다. 당시 경제기획원 등에서는 경제성과 예산 문제 등으로 운하 건설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면서, 정부 부처 간의 보이지 않는 논쟁에 돌입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1992년 3월 27일 인천시는 길이 15.5킬로미터, 폭 55미터의 굴포천 방수로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를 두고 해석이 양분된다. 한쪽에서는 경인운하가 사실상 방수로로 대체돼 백지화됐다 보고 있지만, 건설부 등은 방수로 공사를 경인운하 건설의 1단계로 해석하고 있었다.
경인운하 추진의 최전성기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0년 대 중반이었다. 1994년 1월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자유치촉진법」이 제정돼, 재벌들이 앞다퉈 SOC(사회간접자본)사업 참여를 선언했고, 서울시, 인천시 등은 경인운하와 연계한 민자사업계획을 발표했다. 이 시기 경인운하는 민자를 유치해 ▲ 굴포천 유역의 상습적인 홍수피해 예방 ▲ 서울~인천 간 화물의 경제적 수송과 만성적인 내륙의 교통난을 해소 ▲ 건설 예정인 영종도 신공항과 연계해 내륙수송 수단 활용 ▲ 운하 주변 정비로 외국인의 관광명소 ▲ 87년 대선공약 해소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건교부는 경인운하와 한강 주운과 연계한 낙동강 주운을 검토했으며, 수공은 성남시 탄천과 오산시 안성천을 잇는 서울~평택 간 운하건설(경평운하)까지 검토했다. 정부는 1996년 7월 경인운하 사업을 고시했고, 그해 말에는 국토개발연구원에서 2차 수도권정비계획안에 경인운하를 포함시켰다. 정치인들은 앞다퉈 경인운하 조기건설을 선거공약으로 삼았고, 건교부는 1997년 수자원심의관실 산하에 ‘경인운하과’를 신설해 과장직급 및 직원 8명을 발령했다. 특정사업을 중앙부처가 업무를 전담하는 경우는 있지만, 부서명칭 자체를 특정사업에 맞추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였다. 이는 당시 건교부가 경인운하 추진에 적지 않게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인운하는 내륙운하 개발의 도미노
해방 이후 토건세력이 경인운하에 이렇게 강력하게 집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운하로 화물선을 띄우고 있는 외국의 사례를 봤을 때, 단거리 운하는 결코 경제성이 있을 수 없다. 즉 장거리로 대량으로 화물을 운송해야 경제성이 나올 수 있는데, 경인운하 18킬로미터로는 수지타산이 맞을 수 없었다. 이는 이 사업을 추진한 토건세력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990년대 중후반 민자사업으로 현대건설 등의 재벌 건설사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경인운하 공사를 추진할 때, 민간건설업체들은 정부에게 경인운하의 수익성이 모호하다는 이유를 들어 더 많은 지원을 요구했다.
1996년 경인운하 사업구간에 대한 고시 이후 건설업체들과의 협상은 2년 6개월이나 걸렸다. 그 과정에서 정부는 세금으로 운하 구간 매입비와 교량 설치비 등 약 4000억 원 이상을 부담하는 것으로 결정했고, 건설사들은 운하통행료 등을 40년 동안 마음대로 관장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주변 개발 사업 및 부대사업으로 막대한 이득을 챙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인천환경연합에서 10여 년 동안 경인운하 백지화 활동을 벌였던 조강희 전 사무처장은 이를 두고 “건설사들이 절대 손해보지 않는 구조였다.”며 잘라 말한다. 이는 민자유치사업의 기본을 흔드는 것으로 특혜 시비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경인운하를 추진했던 이들의 속내는 경인운하에만 머무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한강·낙동강운하를 제안한 바 있는 세종연구원은 ▲경평운하(탄천~오산천 연장 92킬로미터) ▲광평운하(팔당댐~평택 연장 67킬로미터) ▲경수운하(서울 강서구 염창교~수원시 서탄면 연장 62킬로미터) ▲수안운하(용인시~시화간척지 연장 42.6킬로미터) ▲경전운하(중랑천~한탄강 연장 68.1킬로미터) ▲경춘운하(청평·가평~서울 연장 74.4킬로미터) 등 전국적 운하망 건설을 제안하기도 했다. 실제 건교부는 최소한 남한강 운하(인천에서 영월까지)를 검토했고, 수공 등도 전국적으로 운하 추진 여부를 고려하고 있었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운하를 통해 끊임없는 토목공사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운하는 단순히 뱃길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륙항만 및 관광지 개발 등과 같은 주변의 토지개발계획과 같이 갈 수밖에 없다. MB정권 4대강사업의 화룡정점이 수변지역을 개발할 수 있는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이라 불리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 이러한 거대한 개발사업을 통해 개발부처는 부처의 인력과 예산과 확보할 수 있고, 건설업체들은 해외 토목공사 물량 감소를 벌충할 내수시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정치인들은 ‘개발이 곧 발전’이라는 그릇된 환상을 통해 표를 얻고자 했다. 결국 경인운하는 ‘내륙주운의 시금석’, 즉 운하 개발의 도미노였던 것이다. 경인운하를 통해 토건세력은 웃었을 것이고, 서민들은 고려시대, 조선시대 민초들처럼 울 수밖에 없는 사업이 바로 경인운하다.
경인운하는 화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토건세력의 욕망이 흐르고 있다.
다음호 ‘경인운하 02’에서는 10년 넘게 경인운하 백지화 활동을 벌였던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2000년부터의 경인운하 백지화 활동의 현황과 현재의 경인운하 상황을 짚어보면서, 앞으로 경인운하를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글•사진 이철재 에코큐레이터·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 [email protected]
환경의 날, 환경부를 생각한다
- 환경부의 부족한 역량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미래세대의 권리가 위협당하는 문제
6월 5일은 세계 환경의 날이다. 국제사회가 처음으로 환경을 위한 대규모 회의를 열고, 환경의 보호와 개선에 관한 공통의 인식과 원칙을 밝힌 1972년 스톡홀름 UN인간환경회의를 기념해 지정됐다. 이곳에서 발표된 UN 환경선언에서는 인간이 환경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환경의 창조자로서, 복지와 인권 나아가 생존을 위한 기본권인 환경을 지키는데 사명이 있다고 밝혔다. 시민과 사회, 기업과 단체, 정부가 모든 위치에서 책임을 지고 공통의 노력을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고도 했다.
UN 총회의 결의에 따라, 각국 정부는 매년 6월 5일을 ‘환경의 날’로 기념하고 환경인식 증진을 위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 역시 1996년부터 법정기념일로 지정하고, 정부 공식의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환경의 날은 시민들이 환경의 중요성과 환경을 위한 역할을 다짐하는 날이며, 동시에 환경인들에겐 생일과 같은 날이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환경의 날은 환경단체들이 쓴 소리를 담은 논평과 기고를 내는 날이었다. 4대강사업과 원전확대를 녹색성장이라 주장하는 정부 때문이었다. 국토 환경의 대들보들이 무너지고 국가의 지속가능성이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 저항하고 경고하는 것이 임무라고 생각했었다. 특히 4대강사업의 전도사를 자임하는 이만의 전환경부장관, 환경 이슈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닫아 버린 유영숙 전환경부장관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가 바뀌고 처음 맞는 환경의 날, 우리단체는 정부에 직접 날을 세우는 논평을 준비하지 않았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환경정책이 그럴듯하다거나, 우리가 높은 기대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경제’와 ‘복지’를 목표로 내건 박근혜정부에서, ‘환경’이 비중 있게 다뤄질 여지는 별로 없다. 기껏해야 ‘안전’의 부분 정도로만 치부되고 있다. 환경정책은 경제 성장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에서 고려되고, 환경부는 사고처리 부서로 기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명박 정부처럼 환경의 이미지를 차용해 억지를 부릴 가능성이 적고, 지난 정부의 난장판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필요할 것임에 대한 배려다.
그런데 정부의 뜻대로 ‘환경’이 보이지 않는 이슈가 되고, 정부가 ‘경제’와 ‘복지’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당장 지난해 구미 불산 누출사고 이래로 화학물질 유출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밝혀진 사망자 숫자만 125명에 달하는 가습기 피해자의 문제도 간과할 수가 없다. 4대강 사업의 이면에서 벌어졌던 부정과 부패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고, 벌써 낙동강에서 시작한 녹조는 전국의 하천을 물들일 기세다. 원전을 둘러싼 부정부패도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납품했던 부품을 빼돌려 재 납품하거나 품질보증서 위조했을 뿐만 아니라, 검증기관 자체가 시험성적을 조작하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 발각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이런 상황을 자신들만의 능력으로 관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개발과 성장에 집착해온 보수적인 정권이 국민들의 환경에 대한 감수성과 논리를 따라가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환경 관련한 주요 직책들을 모두 환경부 출신 공무원들로 채운 상태라, 국민과 소통하거나 새로운 의제를 발굴하는 데도 한계가 많을 것이다. 2013년 환경부 사업계획이 생활환경의 질을 개선하겠다는데 방점을 찍고 있는데, 이는 90년대 사업 계획과 비슷한 방향이다. 반면 2020년 예측 온실가스배출량을 재산정하겠다고 해서 탄소배출을 줄여야 할 산업계가 의무를 회피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고, 세계적 관심사인 생물다양성의 확보 등을 위한 노력은 미약한 편이다. 사고의 처리뿐만 아니라, 새로운 의제를 통해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할 환경부의 방향으로서는 한참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돌아볼수록 안타까운 것이 이명박 정부 5년이다. 꾸준히 발전해 왔던 환경정책은 지난 5년 동안 국토계획의 실효성을 높이고, 화학물질 관리의 대응 체계를 갖추고,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 하지만 법을 어겨가며 4대강사업을 추진했고, 노후한 산업단지를 방치하고 위험한 상품에 대해 관리하지 않았으며, 전기 사용량 관리에 실패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큰 폭의 상승으로 되돌려 놓았다. 새롭게 발전해야할 시기를 퇴행과 일탈로 낭비한 셈이다. 정부의 집요한 탄압과 배제 탓에 환경단체들 역시 새로운 의제를 발굴하고 제안할 역량의 크게 상실했다.
2013년 환경의 날, 그리 강력하지 않은 환경부는 어느 때보다도 무겁고 심각한 상황을 대면하고 있다. 과거에 대한 정비와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한 채 고난이도의 시험을 당하는 모양새다. 이는 새 정부가 받게 될 군색한 평가가 안타깝다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미래세대의 권리가 위협 당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국가적인 문제다. 환경부의 정책 실패가 최소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환경인으로서 환경부의 부족한 역량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환경부가 ‘공통된 이익을 위해 광범위한 협력과 공동노력을 요청’하고 있는 스톡홀름 선언을 되새겨, 주변과 협력하겠다는 열린 자세로 일부라도 보충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 : 염형철(환경연합 사무총장)
담당 : 정책국
생태발자국은 줄이고, 지구는 살리고! 350캠페인 2013년 자료입니다.
“덧칠했다는 것 자체가 부실공사 인정한 셈”
[4대강 금강구간] ‘부실시공’ 드러난 공주보… 안전에 빨간불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공주보 난간을 지탱하는 하부 콘크리트가 준공 반년 만에 떨어져 나가고 있다. 수자원공사는 한 달 전에 이 사실을 파악하고도 현장조사도 없이 방치하다 지난 28일에야 발주처인 대전지방국토관리청에 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30일 다시 찾아간 충남 공주시 웅진동 공주보 공도교(길이 280m, 너비 11.5m)에서는 관리자가 깨지고 있는 콘크리트를 비로 쓸어 치우고 있었다. 난간과 중앙분리대를 지탱하는 콘크리트 부위에 표면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서 덧바른 시멘트 페이스트(시멘트와 물만을 혼합한 시멘트 풀)가 줄줄이 깨지고 있음을 확인했다(관련기사 : <준공 1년 안 된 공주보 교각 '깨지고 떨어지고'> <손으로 만져 깨지는 공주보, 문제 없다?>).
나무껍질처럼 갈라져 있어 그나마 붙어 있는 콘크리트도 기자가 손으로 떼어도 쉽게 떨어질 정도였다. 다니는 차량의 진동만으로도 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자원공사는 “안전 문제 없다” 말만 되풀이
유지관리를 맡은 수자원공사 공주보 담당자는 “거푸집을 떼어내고 울퉁불퉁한 표면을 매끄럽게 처리하다 보니 일어난 현상으로,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동행한 지역방송사 기자가 “시공사(SK건설)에서 나온 직원이냐”라고 물어볼 정도로 시공사 홍보부 역할을 자청하고 나선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이 담당자는 “자연스러운 박리현상으로 대수롭지 않다”고 말했다. 유지관리를 맡고 있는 수자원공사와 이를 감독해야 하는 국토해양부는 시공상의 문제가 드러났다면 부실공사에 관한 책임을 시공사에 물어야 하고, 부실의 정도가 공도교는 물론 공주보의 안전에 영향을 미칠지 정밀조사를 해야 한다.
단순하게 겉보기를 위한 하자보수를 요구하는 것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세금 2081억 원을 투입하고도 준공 반년도 안 되어서 콘크리트가 깨지는 등 문제가 드러나고 있음에도, 관리 당국은 이를 감추기에 급급해 보였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보 건설을 하면서 거푸집을 치고 양생하여 떼어내면 그걸로 끝이다, 원인은 콘크리트 레미콘 품질이 원래 나쁘든지, 겨울철 공사로 양생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얼어버렸든지 두 가지 중에서 하나일 것이다”라며 “콘크리트를 치고 나서 문제가 있으니 이를 덮기 위해 (시멘트 페이스트로) 덧칠을 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준공한 지 반년도 안 돼서 깨지는 콘크리트는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다, 덧칠한 자체가 부실시공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환경단체 “차량통행 통제하고 안전진단 해야”
현장을 찾은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은 “수자원공사는 겉에 보이는 부분만 이런 현상이 있다고 하는데 하부 부분에 문제가 없는지 볼 수 없어서 우려스럽다”며 “보에 대한 전체적인 안전진단을 시행하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차량통행을 통제하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지난 8월 준공을 해준 감리, 시공사, 국토관리청 등 시행하고 집행했던 기관에 대해 반드시 문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요구했다.
건설업에 20년째 종사한다는 아무개씨는 “옛날에는 나무로 거푸집을 만들다보니 표면이 매끄럽지 못하게 나와서 (시멘트 페이스트로) 덧칠을 했는데 지금은 철판 거푸집을 사용하여 표면이 매끄럽게 나와서 덧칠을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한편 시공사인 SK건설은 <오마이뉴스>의 공주보 부실공사 보도가 이어지자 31일 현장조사와 보수를 할 실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10만인클럽 특별기획] 4대강 예비 청문회 1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mov_pg.aspx?CNTN_CD=ME000069433&PA…
이명박 A, 유인촌 A… 4대강 찬동 인명사전
[4대강 사업, 낯뜨거운 기록①] 우리는 이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 4대강 사업 찬동인사 12인. 사진 윗줄 왼쪽부터 이명박 대통령, 박희태 전 국회의장, 정운찬 전 국무총리,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 심명필 전 4대강 추진본부장,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 유영숙 환경부 장관,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나성린 새누리당 국회의원, 유인촌 전 문화관광부 장관, 심재철 새누리당 국회의원 순.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관련사진보기
지난 17일 감사원의 4대강 총체적 부실 지적감사 발표 이후 4대강 사업이 또다시 뜨거운 이슈가 됐다. 사실 MB(이명박) 정권만 4대강 사업의 부실을 부정하며 스스로 성공했다고 자화자찬했었지, 현실에서는 계속되는 댐(보) 안전성 논란과 비리 문제 등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4대강 감사는 부족한 점이 있지만, 4대강 사업의 부실함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4대강 사업 추진에 관여한 인사들 중 상당수는 MB보다 더 MB스럽게 4대강 사업에 올인했다. 그들 중에는 정치인, 전문가, 공직자, 기업인, 언론인 등 우리 사회의 이성을 지켜야 하는 인사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4대강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MB정권과 그 측근들은 진실을 왜곡했다. ‘물이 고이면 썩는다’라는 상식을 부정했다. 22조 원이라는 막대한 혈세가 국토 보전과 서민 생활 안정에 쓰이지 않고 엉뚱한 곳에서 낭비됐다. 이러한 4대강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찬동했던 이들의 기록을 남기는 것은 역사적 과제다. 기록을 남겨야 역사가 기억하고 국민이 심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시절인 2007년 8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만 50개월 동안의 ‘한반도 대운하’와 ’4대강 사업’에 대해 지지하고 찬동했던 이들의 발언을 조사해서 추렸다.
이 기간 동안 약 15만 개의 대운하와 4대강 관련 기사를 조사했고, 이들 중 약 3천여 개의 찬동 발언을 추려냈다. 전문가, 파워블로거, 누리꾼 등과 심층 평가 과정을 거쳐 총 258명의 찬동인사를 선정했다. 2011년 11월부터 최근까지의 4대강 찬동인사 조사도 현재 진행 중에 있으며, 조만간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4대강 찬동인사들의 행보를 조사하고 기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십만 개의 기사를 몇 달 동안 밤잠 못자며 분류하는 작업을 거쳤다. 육체적 피로보다 심적 고통이 더 컸다. 너무도 뻔한 진실을 왜곡해 이 땅의 민주주의와 강을 망치려 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마치 누가 더 뻔뻔하게 거짓말을 잘 하는지 가리는 경연장을 보는 듯했다.
찬동인사 구분은 ▲ 진실 왜곡 등 발언 강도 ▲ 발언자의 사회적 지위 ▲ 발언 회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A급, B급, C급(C급은 비공개) 찬동인사로 정리했다.
4대강 사업 발언자의 발언강도에 따라서는 a등급(진실왜곡이 매우 강함), b등급(의도적 부분 왜곡 또는 찬양), c등급(왜곡 부분 있으나 자료만으로 판단 쉽지 않음)으로 나누었다. 4대강 정비사업 발언자의 사회적 영향력 평가에 따라서는, a등급(영향력 매우 강함), b등급(영향력 강함), c등급(영향력 다소있음)으로 구분했다. 4대강 정비사업 발언자의 발언 횟수에 따라 a등급(5회 이상), b등급(3~4회), c등급(1~2회)로 나누었다.
이렇게 나온 결과에 따라 평가지표 a급이 3개이거나 a급 2개 중 사회적 영향력이 있고 강한 발언을 한 경우 A급 찬동인사로, 평가항목 중 a급 2개 이하는 B급 찬동인사로, 평가항목 중 a급 1개 이하일 경우 C급 찬동인사로 구분했다.
4대강사업 A, B급 찬동인사 비율은 정치인과 MB 정권의 장차관급 인사들이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내 모두 90명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4대강 사업 찬동 A급 인사로는 ▲정치인 65명 ▲전문가 44명 ▲공직자 31명 ▲공기업 및 기업인 15명 ▲사회인사 및 언론인 12명이다. B급 인사로는 ▲정치인 25명 ▲전문가 20명
여기서는 우선 4대강 사업 추진하고 찬동했던 정치인과 MB 정권 장차관급 인사들의 언행을 짚어보고자 한다. 4대강 찬동 정치인의 대표는 MB 본인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감사원의 4대강 감사 발표 후 MB정권은 매우 당황해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2011년 초 4대강 봐주기 감사로 MB 정권에게 충성을 선언했던 감사원에게서 2차 감사결과로 뒤통수를 맞았으니 그럴 수밖에. 또한 그간 MB는 4대강 사업과 자신을 동일시했기 때문에 총체적 부실에 대한 충격이 더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대운하부터 4대강까지 MB의 발언은 시기별로 몇 개의 핵심 키워드를 구분할 수 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시절의 키워드는 ‘내륙 항구’였다. MB는 한반도 대운하야 말로 국운 융성의 길이라며, 유세를 다니는 대부분의 곳에서 항구 건설을 언급했다. 2008년 대운하가 촛불에 좌절된 이후, ’4대강 정비 사업’이란 이름으로 4대강 사업이 추진됐다. 이때부터는 MB의 키워드는 ’4대강 재창조’였다. 이는 2009년 2월 국토부의 4대강 사업 홍보 동영상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4대강이 죽어야 MB의 재창조 효과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MB의 ’4대강 재창조’ 키워드는 2010년에 좀더 업그레이드된다. MB는 2010년 3월 국무회의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해 “생명을 살리고 죽어 가는 생태계를 복원하며, 깨끗한 물을 확보하는 것이 4대강의 목표이자 내 소신”이라 말했다.
그에 앞서 2009년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졌을 때 MB는 지상파, 케이블 방송에서 동시 생중계한 대통령과의 대화(2009년 11월)에서 “청계천 사업도 반대가 많았다”면서,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하는 정치권, 학자, 환경단체를 ‘반대를 위한 반대’ 집단으로 몰아 세웠다. MB의 ‘반대를 위한 반대’ 키워드는 4대강 추진 진영에게는 비판 진영을 일거에 몰아붙일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제공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좌파들의 이념 전술이라는 상투적 전략까지 나오는 상황이 됐다.
2011년 10월 4대강 그랜드 오픈 즈음에는 ‘자전거’가 키워드였다. 4대강 곳곳에서 누수와 균열, 침식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MB가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4대강에 천지개벽이 일어났다”는 말은 MB 특유의 유체이탈식의 화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2012년부터는 ’4대강 자화자찬’이 키워드가 됐다. 2011년 아셈정상회의와 2012년 리우+20 회의 등에서도 “4대강 사업 덕분에 홍수와 가뭄 피해를 모두 막았다”는 등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를 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MB의 키워드는 그의 측근들에게 그대로 영향을 미쳤다. 정종환 전 국토부 장관과 권도엽 국토부 장관, 심명필 전 4대강 추진본부장,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정종환 전 국토부 장관과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은 ‘MB 아바타’로 불릴 정도였다. 정종환 전 장관은 4대강 공사 현장에서 속도전 탓에 노동자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이어지는 2010년 10월 국감장에서 “(사망 사고를) 분석해보면 사고다운 사고는 몇 건 없었고, 대부분 본인 실수에 의한 사고”라고 말해 장관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스럽게 한 인물이었다.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 역시 2010년 국감 때 4대강 환경영향평가 부실 지적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일관하면서 “4대강 사업이 잘못되면 책임지겠다”, “역사의 심판을 받겠다”라고까지 말했던 인사다. 오죽했으면 환경부 과장급 이상 간부들이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 면전에서 “우리가 국토부 2중대냐”라는 볼멘소리를 했을 까 싶다.
권도엽 “빨리 삽 뜨고 괭이질 시작해서…”
권도엽 국토부 장관의 경우도 차관 시절부터 언론 기고를 통해 4대강 사업을 적극 지지해왔다. 2009년 6월 <문화일보> 기고에서 “더 늦지 않게 하루라도 빨리 삽을 뜨고 괭이질을 시작해서 그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됐던 우리의 강을 강답게 제대로 가꿔보자”라면서 4대강 사업 추진을 강력히 촉구했다. 2011년 11월 상주댐에서 누수현상 발견된 이후 16개 댐에서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권 장관은 끝까지 “별일 아니다”, “안전에는 문제없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2012년 초에는 생명의 강 연구단의 4대강 사업 비판적 조사 활동을 두고 법적 대응을 운운하기도 했으며, 녹조가 심각했던 2012년 7월에는 4대강 사업으로 수질이 개선됐다는 주장을 펼쳤다. 감사원의 4대강 총체적 부실 지적에 대해서도 MB를 대신해 가장 강력히 반발한 것이 바로 권도엽 장관이다.
심명필 전 4대강 추진본부장의 경우 ’4대강 만능론’의 대표적 신봉자였다. 그는 4대강 사업으로 기후변화, 물부족 및 홍수피해의 근본적 해결, 수질개선, 하천복원, 국민 여가문화 수준 및 삶의 질 향상 등 녹색뉴딜 사업으로 인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주장했다. 심 전 본부장이 대학 교수시절이었던 2008년 12월과 2009년 1월 각각 언론 기고에서 “우리 하천은 무관심 속에 방치돼 왔다”는 것을 계속 강조하면서 4대강 사업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그는 4대강 추진본부장이 돼서는 정치인으로서 활동했다. 그가 2012년 12월 29일 퇴임하면서 했던 말은 그가 4대강 신봉자였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4대강 사업에 대해 스스로 100점 만점에 95점을 주면서, “하천 준설을 통해 일 년 내내 물이 흐르는 강을 만들고 홍수, 가뭄에 견딜 수 있는 수자원 관리가 이뤄졌다”며 “경부고속도로, 인천국제공항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높게 평가받는 국책사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유인촌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경우 2010년 11월 4대강 사업으로 문화재 훼손 우려가 높음에도 “4대강 공사를 안 했으면 문화재도 안 나타났을 것”이라며 궤변을 설파했다. 나성린 새누리당 국회의원의 망언도 있다. 2009년 10월 국감에서 “백마강에 물이 없다. 삼천궁녀가 지금 낙화암에서 떨어졌다면 맨땅에 헤딩이고, 머리가 깨져서 죽게 된다”며 물을 담는 4대강 사업의 효과를 강조했다.
나 의원은 같은 해 11월 국감장에서 “4대강 사업이 향후 50년간 총 500조 원 이상의 편익을 얻을 수 있는 미래수익 창출사업”이라며 장밋빛 환상을 전했다. 그런 인사가 현재 새누리당 정책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전국에 망치소리가 끊이지 않게 하라’면서 ’4대강 사업을 KTX 탄 듯’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라고 했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 4대강 사업을 위해 물 부족 국가라는 허구 논리를 내세웠던 새누리당 심재철 국회의원과 유영숙 환경부 장관, 4대강 사업에 비판적이었다가 국무총리가 된 후 180도 변한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도 빼놓기 어려운 4대강 찬동인사다.
또한 4대강 사업에 비판적 의견을 좌파들의 전술이라 폄하하는 것도 모자라 “신부가 삭발하면 절에 가야지”라며 성직자를 모욕한 김문수 경기도 지사 등도 4대강 찬동 정치인이다.
4대강 찬동인사 조사는 ‘시민 판 정책실명제’다. 실패한 국책사업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지만,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인사가 없다. 시골에서 생산되는 사과 하나에서 생산자의 이름이 박히는 요즘 상황에서 수십조 원이 소요된 사업에 책임지는 이가 없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4대강 찬동인사 조사는 부끄러운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4대강 찬동인사 명단
http://www.kfem.or.kr/kbbs/bbs/board.php?bo_table=hissue&wr_id=369135&s…
거짓말을 수출하자는 대통령
- 4대강사업 태국 수출의 객관적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 NGO의 역할
환경엔 국경이 없다. 4대강 사업으로 꽁꽁 언 강에서 먹이를 찾지 못해 굶주리고 있는 낙동강 큰고니들은 여름철 시베리아 벌판을 노닐던 녀석들이다. 타이에서 월동중인 도요새 무리들 중엔 한반도를 거쳐 간 경우도 많다. 중국 원전에서 사고가 난다면 우리도 그 피해를 면하긴 힘들다. 환경운동에 국제연대의 전통이 강한 이유다.
76개국에 회원단체를 둔 세계적 환경단체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이 4대강 사업 중단을 위해 이메일 보내기 캠페인을 전세계적으로 벌이고, 니모 배시 의장이 여러 차례 방한한 것도 이런 전통 때문이다. 세계적인 습지단체 200여곳이 모인 세계습지네트워크의 크리스 로스트론 의장 등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4대강 사업의 중단을 촉구하며 2009년에 서한을 보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국무회의에서 ‘일부 비정부단체(NGO)가 한국 기업의 타이 물관리 수주를 반대하는 운동을 하는 것은 매우 반국가적이고 비애국적인 행동이며, 엔지오의 역할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이런 특징을 이해하지 못한 촌스러운 발언이다. 국제단체들이 4대강 사업에 반대했듯 한국 환경단체들이 타이판 4대강 사업을 우려하고 우리의 경험을 전달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공사 하나 수주가 아니라 4대강 사업의 골격과 방식을 그대로 수출하겠다는데도 침묵한다면 제대로 된 환경단체라고 할 수 없다.
그동안 정부는 타이 사업이 4대강 사업의 연장선에 있음을 강조해 왔고, 수자원공사를 비롯한 4대강 사업 참여 업체들로 컨소시엄을 구성하기도 했다. 공사 수주 활동에는 대통령까지 나섰다. 이 과정에서 ‘4대강 사업이 없었으면 지난여름 물난리가 날 뻔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정부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은 ‘외국에서도 환영받는 사업’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4대강 사업에 비판적인 한국 국민들을 달래려는 것인지 모른다. 따라서 한국 컨소시엄이 타이 사업 수주에 성공한다면, 이는 한국 정부가 비정상적인 지원을 해서라도 4대강 사업과 비슷한 모양으로 발표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문제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수출했다는 원전 계약에조차 ‘한국이 경비 군인을 파견하고, 재정 장기저리 융자를 실시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듯, 수질오염에 따른 ‘녹조라테’ 사태와 건설사 담합 사건 등으로 눈총받고 있는 4대강 사업을 수출하기 위해 놀라운 조건들이 붙을 수밖에 없다. 이 몰상식의 간극은 한국 국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메워질 것이고, 타이는 훼손된 자연환경 위에 불필요한 시설만 떠안게 될 것이다. 부패한 정치인과 기업들은 잔치를 벌이겠지만.
물론 한국 환경단체들은 타이의 물관리 정책이 발전하길 바란다. 그러나 한국의 4대강 사업과 같은 시행착오는 겪지 않기를 원한다. 4대강 사업의 진실, 이 대통령이 말하지 않은 다른 면을 전달할 책임을 느끼는 이유다. 타이 정부와 국민이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균형 있는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자 하는 근거다.
이 대통령이 ‘반국가’, ‘비애국’ 등의 개념을 동원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관계 당국에 ‘대책을 강구하라’고 한 지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걱정이다. “은퇴 후엔 환경운동을 하겠다”던 이명박 대통령께 제발 부탁드리건대, ‘한국 환경단체들의 활동보다 환경적으로 생각하기부터’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글 : 염형철(환경연합 전국사무처)
담당 : 환경연합 국토생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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