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지향)일기] 때로는 모순적이고 가끔은 나약한

[비건(지향)일기 시즌4]
때로는 모순적이고 가끔은 나약한
이은
비건을 지향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내 신념을 완벽히 지키며 일상을 영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코로나가 한창이었을 때라 삼시세끼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 먹었으므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는데, 이대로라면 스스로, 그리고 비인간 동물들에게 떳떳한 밥상을 평생 먹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단체 회식을 할 때나, 초면인 사람들과 식사하는 경우가 생겼고, 그럴 때마다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자신 없는 목소리로 채식해서 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말하거나, 말없이 눈치껏 밑반찬을 주워 먹곤 했다. 어느샌가 음식을 먹지 않는 기준이, 동물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음식인지 아닌지보다는, 내가 죄책감을 느낄 만한 음식인지 아닌지가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마음대로 죄책감을 덜 수 있는 선을 만들었고, 그 선을 지키면 안심했는데, 이도 저도 아닌 듯한 내 모습이 참 어설퍼 보였다. 그 누구를 위한 길도 아닌 것 같았다. 완벽하게 살지 못할 거면서 마음만 앞서 섣부른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고, 비건이라는 세계를 발견한 과거의 나를 한동안 원망하기도 했다. 못난 나의 모습을 이따금 마주할 때마다 너무나 부끄러워서, 내가 갖고 있는 모순과 나약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엉뚱하게도 과거의 나를 원망했던 것 같다. 지구상의 모든 존재들을 위해 비건 지향의 길을 택한 것인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 길 위에는 과거의 나와 비교하는 현재의 나만이 있을 뿐이었다. 한동안 그 길 위에서 혼자 서서 방황하다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연결성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내서 비건 지향인들과의 모임에 처음 갔는데, 그곳에서 나의 이야기를 꺼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각기 다른 이유를 가지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같은 지향점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보낸 시간은 내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이상하게도 내게 위안이 되었던 부분은, 모두가 나름대로 고충을 겪으며 자신의 믿음을 지켜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저마다 모순과 나약함을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앞으로도 이렇게 나아가면 되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처음 했던 굳은 다짐만으로는 오랫동안 이 길을 걷기 어렵다는 것을, 오랫동안 숨기고 싶어했던 나의 모순과 나약함도 함께 껴안아야만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때로는 모순적이고 가끔은 나약한 나를 사랑하며, 나와 같은 어설픔을 흘리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과 이 세상을 가꾸어 나가야겠다.
안녕하세요. 저는 환경운동연합 에코생활협동조합의 대의원 워킹맘 이서윤입니다.
생협을 한번이라도 이용해본 시민이시라면 어떤 마음으로 생협 매장에 찾아가는 지 아실 겁니다. 처음에는 저도 ‘유기농.무농약.공정무역’ 이런 딱지를 붙인 식품들을 굳이 사서 먹어야 하나, 너무 유난스럽게 내 몸의 건강을 위하는 것은 아닌가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한명, 한명 또 한명 태어날 때마다 자연스레 생협을 찾는 횟수가 늘어갔습니다. 왜냐하면 어린 아이의 건강은 온전히 나의 선택에 좌우되고, 제게 그 무엇보다 귀한 가치는 아이들의 건강과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와 우리 가족, 이웃 모두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나쁜 뉴스를 접했습니다. 자국의 발전소에서 생긴 사고로 오염된 물을 전 세계 인류와 해양생물들이 공동으로 소유한 바다에 흘려 버리겠다는 발상은 대체 어느 정도로 양심에 털이 나면 가능한 건지 짐작조차 안 됩니다.
게다가 자국의 어업을 수렁에 빠지게 하고,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고 우려하는데도 굳이 남의 나라 핵오염수 방류를 쌍수 들고 환영하며 응원해주는 한나라의 지도자와 정치인들은 무엇을 먹고 살기에 그렇게 남의 집 불구경이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제주도산 고등어만 안 먹고, 태안반도 바지락만 안 먹고, 동해 오징어만 안 먹으면 본인들은 무병장수, 자식들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착각하고 있나요?
바다는 돌고 도는데도 미국, 유럽 국민들은 별 소리 없는데 왜 대한민국 사람들은 유난스럽게 불안해 하냐, ALPS 시설로 위험한 핵종은 다 걸러내고 안전한 성분만 바다에 방류되는 거라는데 왜 그렇게 반대를 하냐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오염수 방류 옹호자들의 논리를 수십, 수백 번 제 자신에게 물어봤습니다. 그 물음에 대한 결론이 ‘반대’로 내려지면 당당하게 ‘반대’를 하려구요.
그 수백 번의 물음에 대해 제가 내린 결론은 제가 오늘 이 자리(기자회견)에 선 것입니다. 그 모든 옹호론자들의 반문에도 불구하고 저는 차마 그 오염수 섞인 바다에 나의 아이들을 물장구 치러 들어가게 할 수는 없습니다. 원자력 전문가니, 핵물리학자니 이름도 거창한 분들이 언론에 나와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의 입장을 대변하셔도 소용없습니다. 저는 도저히 핵 발전소 연료봉이 녹아내린 곳을 휩쓸고 지나간 물이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바다 물살이 동식물의 몸 속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언제든 다시 제2, 제3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때마다 지구 공동의 바다에 갖다 버릴 구실을 만들 순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충분히 많은 핵발전의 리스크를 안고 살고 있습니다. 양심을 가지고 그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훗날 우리는 두고두고 오늘을 후회할 것입니다. 물론 양심이 있는 자라면 말입니다.
저는 지금 당장 핵 오염수 방류계획을 철회하기를 일본 정부에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또한 일본의 꼭두각시 놀음을 그만 두고,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우선시 해주기를 대한민국 정부에 촉구합니다.
쏟아진 물은 다시 컵에 담을 수 없습니다. 저의 첫째 딸이 지금의 저와 비슷한 나이가 될 때까지 긴 시간 오염수를 방류하겠다는 이 끔찍한 악몽을 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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