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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그런 ‘노년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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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그런 ‘노년기’는 없다

admin | 수, 2023/03/29- 10:13

최혜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문제의 해답을 찾기 어려울 때는 난감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언제나 해답을 찾을 방도가 있다는 점에 그나마 위로가 된다. 그런데 해답 사이에 뛰어넘기 어려운 모순이 있으면 난감한 감정을 넘어 마치 덫에 걸린 듯한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노인 기준연령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깊은 이유이다.

배경이야 어찌 되었든 혹은 몇 살로 사회적 조정이 이루어지든, 현재 노인 기준연령에 대한 논의를 보면 두 가지 지점이 우려된다.

기준선을 바꾼다고 국가 책임이 사라지나

먼저, 노인 기준연령에 대한 대중의 이해와 정부의 의도 사이에 껄끄러운 불일치가 예상된다. 일반적으로 노인을 가르는 기준연령은 65세이다. 그런데 평균수명이 84세에 근접한 현 상황에서 ‘65세 이상’은 노인으로 분류하기에 젊어도 너무 젊다. 현대인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고려하면 노인 기준연령을 높이는 것이 합리적이다.

신체적 활동에 어려움이 없고 인지적 기능도 양호한 대다수 65세 이상 사람들은 노인이라는 표식이 반갑지 않다. 뒷방의 적막함에 익숙해져야 하는 노인의 시기가 늦추어지면 사람들은 안도할 수 있다. ‘장년의 시간이 연장되었다’는 사회적 재가는 자신이 늙지 않았다는 혹은 충분히 젊다는 인정으로 읽힐 것이다. 대중에게 ‘노인 기준연령 상향’은 이러한 의미다.

그런데 정부의 관심은 65세 이후에도 사회구성원 다수는 충분히 젊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국가가 부양할 노인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했다는 위기의식이 주요 동인이다. 정부 입장에서 노인 기준연령 상향은 사회적 부담을 완화할 ‘절묘한 해법’이다. 참으로 값진 노인 기준연령의 쓰임새이다. 물론 일부 노인은 ‘노인 기준연령을 상향해 국가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즉, 노인을 비롯한 다수 대중은 노인 기준연령 문제가 노인부양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연동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2023년 노인 인구는 약 950만 명으로 추정된다. 노인복지 예산은 전체 사회복지 예산의 25.1%를 차지하고,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은 70% 노인에게 지급하는 노인 기초연금 예산은 약 18.5조 원에 이른다. 노인 인구 증가로 사회적 부양의 부담은 큰 폭으로 확대되었고 앞으로 더 확대될 것이다. 특히 그 부담이 현재와 미래의 근로 세대에 지워진다는 이유에서 노인 기준연령 상향은 마치 노인부양 부담을 둘러싼 세대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해법인 양 과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노인 기준연령의 상향은 노인복지 급여를 받는 기준연령 또한 상향된다는 뜻이다. 기초연금·노인장기요양보험·경로우대 서비스를 받는 연령은 상향된 노인 기준연령에 맞추어 변경될 것이다.1 지금도 법적 정년 (60세)과 연금수급 개시연령(62세)의 차이로 인한 소득절벽기가 퇴직자의 빈곤을 악화시키고 있다. 연금수급 개시연령은 2033년까지 65세로 늦춰질 예정인데, 노인 기준연령이 상향되면 그보다 더 늦춰질 수도 있다. 이러한 정책변화의 결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연금수급 개시연령 상향이 소득 공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년을 연장하거나 노동자가 희망하는 경우 65세까지 계속 고용을 보장하는 등 제도부터 정비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이유로 별다른 대책 없이 연금수급 개시연령을 상향해 소득 공백기를 늘리고 방치해왔다. 노인 기준연령 상향이 불러올 부정적 결과에 대해 정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응할지 우려되는 이유다.

현대인의 달라진 신체적·정신적 건강 상황 때문에 노인 기준연령을 상향한다면, 65세 이상의 건강한 장년이 노동시장 등 다양한 공간에서 사회적 역할을 하도록 지원하는 제도적 보완이 우선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기초연금 등 노인복지 사업의 수급연령이 늦춰진 탓에 빈곤이 확대되지 않도록 취약집단의 피해를 완화하는 제도적 정비가 선결되어야 한다.

노인 기준연령이 몇 살이 되든 소득 보전이 필요한 사람,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사라지지 않는다. 노인의 기준을 바꾸고 기준선 안에 있는 사람의 머릿수를 줄인다고 해서 국가의 부양책임이 가벼워지는 것도 아니다. 연령을 기준으로 금 그어진 선 밖에서 누군가는 더 비극적인 상황을 감내해야 한다.

꿈꾸는 노인을 위한 나라

두 번째 우려는 노인 기준연령 상향에 대한 논의가 노인을 향한 부정적 시각을 재현한다는 점이다. 몇 살이 노인으로 인정되든, 노인은 ‘부담’이란 단어와 손잡은 존재, 사회적 가치를 상실한 존재로 가정된다.

인간의 생을 몇 개의 단계로 묶어 일렬로 배열한 생애주기적 관점은 ‘인간의 삶에는 앞선 시간과 구분되는 불연속의 단층들이 존재한다’는 전제를 담고 있다. 인생의 단층마다 개인에게 새로운 과제를 주고, 이 과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는가에 따라 성공적인 삶이 결정된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오랫동안 인간의 사고를 지배했다.

아동기와 청년기에는 가정과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사회에 유용한 인간’으로 자라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는다. 자본주의 출현과 함께 등장한 공공 교육제도는 아동을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노동 인력’으로 배출하는 기제가 되었다. 청장년기에는 노동시장에 진입해 일정한 직업을 갖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 사회적 생산과 생물학적 재생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노년기에는 노동시장에서 벗어나 직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정체성을 대체할 새로운 자신을 찾고 죽음을 수용해야 한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서 현재의 자신을 재정의하고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부정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노인의 삶’으로 묘사된다. 물질적 가치를 생산하는 역량이 감소한 노인은 존재 가치를 부정당하고 죽음의 상징으로만 인식되는 것이다.

예컨대 ‘N포세대’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21세기 한국 청년의 비극은 ‘꿈의 상실’에 있다. 그런데 높은 빈곤율과 자살률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한국 노인의 삶 또한 매우 위태롭다. 그런데도 노인의 삶이 처한 비극적 요소에서 ‘꿈’은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꿈을 잃은 청년의 문제는 사회적 쟁점이 되지만, ‘도전하는 노인’, ‘꿈꾸는 노인’은 일종의 형용모순으로 여겨지고 사회적 관심도 받지 못한다. 노인은 죽음, 즉 미래가 없다는 전제를 중심으로 규정되고, 이러한 시각에서 미래의 도전인 ‘꿈’은 노인과 조화될 수 없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산업사회에서는 생애주기적 관점이 비교적 유용했다. 사람들 대부분이 교육을 마친 후 무리 없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고용관계를 기반으로 노후소득을 보장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산업사회에서는 ‘일자리 없는 성장’으로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 시점이 늦어지고, 노동자들도 노동시장 진입과 퇴출을 반복하며 지속해서 재교육을 받는다. 고용주를 특정하기 어려운 플랫폼노동 등의 비전형적 일자리가 증가하면서 일정 규모의 노동자는 고용계약 관계를 기초로 하는 사회보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실업보험은 소득 중단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국민연금은 노인 생계를 책임질 만큼 미덥지 못하다.

이런 사회에서 표준적 생애주기 모델은 더 이상 맥을 추지 못한다. 탈산업사회는 생의 과업을 교육·노동·여가로 구분하고 노년기를 ‘교육과 노동이 배제된 여가의 시기’로, 노인을 ‘비생산적 존재’로 인식해온 사회적 관성에 도전한다.

‘무엇이 생산적인 삶인가’에 대해서는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탈산업화가 추동한 사회적 변화에 맞춰 노년기는 교육·노동·참여가 통합된 시기로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노인은 적극적으로 교육의 기회를 얻고, 가족과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활동을 지원하고, 사회적 의사결정 구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노인은 노년을 경작하는, 꿈꾸는 주체여야 한다.

노인 기준연령 논의 속에 담긴 ‘노인’, ‘노년’에 대한 낯설게 보기가 필요한 때다.


1  기초연금, 노인장기요양보험, 노인맞춤돌봄서비스, 노인여가복지시설(경로당), 경로우대제, 노인주거복지시설, 노인건강진단, 노인일자리(공공형, 사회서비스형), 독거노인 공동생활 홈서비스, 단기 가사서비스(독거), 이동통신비 감면, 노인 치과 지원, 노인 틀니·임플란트 지원, 행복주택, 응급안전안심서비스, 노인 외래 정액제, 어촌 가사도우미, 고령자전세임대주택(전세금 지원), 고령자 복지주택, 예방접종, 노인 이동통신비 감면, 학대피해노인상담지원, 학대피해노인 쉼터, 노인양로시설 등 24개 주요 노인복지사업 대상자의 기준연령은 65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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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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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시민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국민연금 개혁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자 시리즈 이슈리포트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2023년 제2차 이슈리포트는 부과방식비용율이 무엇이며, 어떻게 봐야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2023년 연금행동 이슈리포트②_부과방식비용률,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봐야 하는가?

부과방식비용률이란 국민연금기금이 소진되었다고 했을 때, 연금급여지급을 위해 우리가 납부해야 하는 보험료율을 말함. 부과방식보험료율이라고도 합니다.

국민연금 급여지출 총액
부과방식비용률 = ————————————————– X 100
국민연금보험료 부과대상소득 총액

위의 식은 국민연금기금이 하나도 없다고 가정할 경우이며, 그래서 제4차 재정계산에서 2080년이 되면 우리가 걷어야 하는 보험료가 30%(실제는 29.5%)에 이른다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다시말해 GDP의 30% 정도 밖에 안되는 소득에 연금급여지출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부담시키니 당연히 보험료율이 30%씩이나 되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동안 GDP의 30% 정도밖에 안되는 소득에만 국민연금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부과방식비용률이라는 걸 계산해 온 것은 국민연금제도가 70년 동안 변 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국민연금 재정 계산을 했기 때문입니다.

연금보험료 부과대상소득이 GDP의 30% 밖에 안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국민연금보험료 부과소득에 상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퇴직연령을 늦춰 노동기간을 늘려 노후기간을 줄여야 하는 한편, 늘어나는 퇴직세대의 GDP 30% 밖에 안되는 소득이 아닌 그보다 더 넓은 범위의 소득에 비용을 부과해야 합니다. 넓은 범위의 소득에 골고루 분담시켜 재정을 마련하는 것이 공적연금의 취지에도 부합합니다. 따라서 아래와 같이 GDP 전체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GDP 대비 비용률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연금 급여지출 총액
GDP 대비 비용률 =—————————————- X 100
GDP

부과방식비용률 수치를 보고 놀라기보다 그것이 어떤 가정 하에 나온 수치인지를 잘 알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지 보험료가 많아지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가운데 퇴직제도는 유지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가 생애주기를 어떻게 재편할 것이며 그것을 위해 노동시장과 기업경영방식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 등과 같은 우리 사회 전체의 전반적인 작동방식을 바꾸기 위한 새로운 상상과 구상을 해야 합니다.

보도자료 [원문보기/다운로드]

이슈리포트② [원문보기/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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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3/01/2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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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연금특위 자문위의 미확정 논의가 결과인 듯 보도돼 우려
연금개혁의 목표는 기금 안정 아닌 적정노후소득 보장되어야

확정되지 않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이하 ‘연금특위’) 소속 민간자문위원회 논의가 확정된 것인 양 흘러나오면서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국민연금 보험료율 9%→15% 합의’, ‘가입상한·수급개시 65세 일치’ 등의 내용이 보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의 전제는 소득대체율 향상이며, 의무가입연령 상향 조정은 노동시장의 현황과 연동해 신중하게 다뤄야 할 문제다. 다양한 쟁점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결정되지 않은 내용이 마치 확정되어 여론을 떠보듯 보도되어서는 안된다.

특히, ‘적정 노후 소득보장’이라는 공적연금제도의 ‘목적’이 아니라 재정이라는 ‘수단’의 확보 방안에 초점이 맞춰진 것도 매우 우려스럽다. 연금개혁 논의의 초점은 주민 모두의 존엄한 노후 보장을 위한 공적연금제도의 개혁에 있어야 함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현재 논의의 초점을 기금고갈과 기금 존속을 위한 부담으로 끌고가는 것은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의혹만을 키울 공산이 크며, 결국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적정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소득대체율 상향, 그리고 그에 따른 보험료율 인상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공적노후소득 보장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초연금 등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국회 연금특위 논의와 보도의 방향과 내용이 중요한 이유다. 모든 시민의 노후와 부양 부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쥔 연금개혁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확정되지도 않은 내용이 잘못 알려지고 확산된다면, 불필요한 혼선과 갈등만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가뜩이나 연금개혁 논의 과정에 가입 당사자인 시민과 노동자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문제제기되고 있는 지금,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의혹만을 부풀려서는 안될 것이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우리 사회의 주요한 과제인 연금개혁 논의와 이에 대한 보도가 도리어 연금제도의 불신을 키우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에 대해 깊이 우려하며, 적정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 논의와 여론 형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논평 [원문보기/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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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23/01/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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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자 중앙일보의 “소득대체율 인상? 젊은이들 무슨 죄 졌나… 이상해진 연금개혁” 기사는 두 눈을 의심할 정도이다. 국민연금에 관한 한 언론의 최소한의 중립성 마처 팽개친 가히 역대급 편파보도라 할만하다. 

국민연금의 개편 방향은 국민연금 확대론과 축소론으로 양분되어 있고, 이번 국회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의 대안 마련에서 두 입장은 평행선을 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두 입장이 대립하고 있는 만큼 50:50의 기계적 균형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균형을 갖춘 기사를 내보는 것이 언론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중앙일보 기사는 국민연금 재정안정화만을 중시하는 전문가들을 등장시키면서 국민연금 강화론에 대한 일방적 매도에 가까운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기사에 언급된 내용도 한쪽 시각만을 반영한 편파적 논리로 도배되어 있고 진지하게 생각할 지점이나 반대 논리는 언급조차 안하고 있다. 가령 기사에서 언급한대로 재정안정화를 위해 보험료를 20% 정도로 올리면 국민연금 적립금이 대한민국 GDP의 150%를 넘은 코미디같은 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평균연금 가입기간이 17-18년에 불과하다는 언급도 기이하다. 재정추계에 의하면 평균가입기간은 25-27년으로 보는 것이 표준이다. 그리고 소득대체율 인상이 노인빈곤율 해소에 도움이 안된다는 언급도 한쪽만의 편향적 주장이다. 최근 노인빈곤율이 완화되는 것은 국민연금 수급자가 대거 노인으로 편입된 것이 중요하게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번 중앙일보 기사는 노골적으로 한쪽을 비방하고 한쪽을 편들고 있다. 최근 언론보도 중 이렇게 지독하게 편파성을 띈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식의 기사가 계속되면 중앙일보와 재벌보험사의 관계를 의심하는 눈초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앙일보의 자성을 촉구한다

2023년 1월 31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www.pensionforall.kr)

성명 [원문보기/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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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23/01/3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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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한국에서만 치열한 ‘재정건전성 논쟁’

작년과 올해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또 다시 재정건전성이 도마에 올랐다. 한쪽은 “재정건전성이 중요하니 국가부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고물가 경제위기 상황에서 국가가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 말이 맞을까? 아니면 두 개의 상반된 주장 사이 어디쯤 정답이 있는 것일까?

놀랍게도 재정건전성 논쟁은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재정건전성 논쟁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정답은 “이런 논쟁을 하지 않은 것”이다. 재정건전성은 영어 ‘financial soundness’의 번역어다. 그런데 이는 OECD 등 다른 나라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않는 개념이다. 최근에는 재정건전성보다 ‘재정의 지속가능성’financial sustainability을 논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재정건전성은 부채가 적고 재정수지1가 흑자일수록 좋다고 평가받는다. 반면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중장기적인 재정의 건강 상태 유지에 관심을 둔다. 조금 거칠게 말하면, 지금 당장 빚을 져서라도 필요한 투자를 하면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즉, 단기적인 재정건전성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중장기적인 재정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당장의 재정건전성을 위해서 아무런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중장기적인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하락한다.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다.

부채가 적을수록 좋다?

CNN 뉴스 사이트에서 ‘financial soundness’를 검색하면 29개
기사만 검색되나 ‘financial sustainability’를 검색하면 347개
기사가 검색된다.(검색일 2023.2.23 기준)

국가 부채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부채는 적을수록 좋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부채는 적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가장 적절할수록 좋다. 2022년 기준 삼성전자는 115조 원이 넘는 돈을 가지고 있다.2 그럼에도 94조 원의 부채를 유지하고 있다. 10조 원의 매입채무3는 물론 5천억 원의 사채까지도 아직 존재한다. 현금이 그렇게 많은데 왜 빚을 져서 물건을 사고 사채도 안 갚고 있을까? 삼성전자의 재정 목표는 ‘가장 적은 부채비율 달성’이 아니다.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 유지’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을 유지할수록 좋다. OECD 국가 GDP 대비 부채비율 평균은 120%가 넘는다. 부채비율이 적을수록 좋다면 이 국가들이 모두 잘못된 행정을 한다고 평가해야 한다. 물론 그럴 리는 없다.

그럼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이 얼마일까? GDP 대비 50%일까? 100%일까? 불행히도 ‘알 수 없다’가 정답이다. 하버드대 로고프 교수는 적절한 부채비율을 제시한 적이 있지만, 기초적인 에러가 발견되어 큰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전 세계 어떠한 재정 전문가도 적절한 부채비율을 안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런데 유독 대한민국 언론과 정치인들은 ‘적절한 부채비율을 안다’고 주장한다. 현재 한국 부채비율이 50%로 너무 높다는 말은 곧 현재 적절한 부채비율은 50% 이하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한국의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이 40%인지 60%인지 알 수 없다. 만약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이 40%라면 현재 부채비율을 50%에서 더 낮춰야 한다. 그러나 적절한 부채비율이 60%라면 반대로 부채비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 부채비율을 높이면 빚을 더 많이 지는데, 이게 왜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일까? 물론 부채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허비한다면 당연히 부채는 낮을수록 좋다. 그러나 국가가 부채를 통해서 조달한 자금은 경제성장을 높이고 사회 후생을 높이는 데 쓰인다. 한마디로 말해서 부채 조달 비용보다 이를 통해 창출할 수 있는 사회적 후생이 더 크다면 부채를 더 조달하는 것이 이익이다.

내가 국민은행에서 4%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고 새마을금고에서는 5% 이자를 주는 예금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국민은행에서 얼마를 빌리는 것이 가장 큰 이득일까? 정답은 다다익선이다. 그러나 내가 지나치게 돈을 많이 빌리려고 하면 국민은행은 나의 대출금리를 높일 것이다. 또한 내가 지나치게 많은 돈을 예금하려고 하면 새마을금고는 나의 예금금리를 낮추게 된다. 결국 이론적으로는 대출금리와 예금금리가 같아질 때까지 돈을 빌리는 것이 가장 좋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국채 이자를 지불하고 이를 사회에 투자한다. 우리나라 전역에 완벽한 ‘포트폴리오 투자’4를 한다면 명목성장률5 정도의 이익을 얻게 된다. 2000년부터 2021년까지 우리나라 명목성장률이 국채이자율보다 낮았던 해는 단 두 해밖에 없다. 이는 지난 20년간 국채발행이 지나치게 비효율적으로 발행했다는 방증일 수 있다.

국채 투자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국채에 투자하지 않았다면 여유 재원을 금고가 아닌 다른 어딘가엔 투자할 것이다. 안전자산인 국채에 투자하는 대신 다른 안전자산인 토지·건물 등 부동산에 주로 투자하지 않을까? 국채는 국가입장에선 채무지만 투자자에게는 자산이다. 그리고 국채 투자자의 80% 이상은 내국인이다. 국가가 국채라는 자산을 공급해주면 투자자는 안정적 이자 수입을 얻고 더 많은 소비를 창출할 수 있다. 최소한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국가경제에 더 효율적이다. 국고채는 한국 전체 채권시장에서 약 40%의 비중을 차지하는 최대 공급원이다. 국채가 없으면 채권시장 자체가 형성되기 어려울 지경이다. 즉, 국가부채는 적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적절할수록 좋다는 점을 시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지속가능한 ‘적절한’ 부채를 이야기하자

끝으로 국가의 부채비율을 낮췄을 때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는지도 파악해 보자. ‘매크로 레버리지’macro leverage라는 개념이 있다. 정부부채·가계부채·기업부채를 통틀어서 매크로 레버리지라고 한다. 그런데 정부부채·가계부채·기업부채는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나가 낮아지면 다른 두 개의 부채는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즉, 정부부채를 낮추려고 하면 가계부채나 기업부채가 높아진다. 마찬가지로 가계부채를 낮추려고 하면 정부부채나 기업부채가 높아진다.

현재 한국 매크로 레버리지 상황을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해보면, 정부부채 비율은 가장 낮은 반면 가계부채는 가장 높고 기업부채는 약간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부채를 낮춘다면 가뜩이나 높은 가계부채 문제가 악화할 수 있다.

재정정책은 균형이 중요하다. 이 세상에 아무런 부작용이 없는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부채가 높아지면 부작용이 생기지만, 국가부채가 낮아져도 부작용은 발생한다. 다시 말하지만, 국가부채 비율은 낮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적절할수록 좋다. 문제는 가장 적절한 비율이 얼마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무도 적절한 부채비율을 알 수 없다면, 국민적 합의를 통해 정치적으로 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질문은 “적절한 부채비율을 구합시다”여야 한다. 즉,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낮은 부채비율을 이룩해 봅시다”라고 말하는 건 잘못된 질문이다. 재정건전성이 목표가 되면 안 된다.

한국은 이미 저출생·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이런 상황에 맞춰 지속가능한 부채비율을 유지해야 한다. 저출생·고령화 사회를 대비하는 데 있어 부채비율이 너무 높으면 재원을 마련할 수 없고, 부채비율이 너무 낮아 사회투자를 하지 못해도 적절히 대비할 수 없다. 우리는 후손에게 빚과 동시에 자산도 물려준다. ‘0원의 빚과 0원의 자산’보다 ‘10억 원의 빚과 20억 원의 자산’을 물려주는 것이 좋지 않은가. ‘재정건전성을 지킨다’는 이유로 미래의 재정 지속가능성을 희생시켜선 안 된다.

1  정부의 세입과 세출 간 차이
2  현금 및 현금성 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을 합친 액수다
3  원재료의 구입 등 일반적 상거래에서 발생하는 외상매입금과 지급어음
4  다양한 투자 대상에 분산하여 자금을 투입·운용하는 일
5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의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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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3/02/2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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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참여 배제된 전문가 중심의 논의 한계 드러나

수급자 참여 보장하는 사회적 합의기구로 논의 틀 다시 짜야

어제 국회 연금개혁특별의원회(이하 “연금특위”) 여야 간사가 국민연금 구조개혁이 먼저라고 발표하며 소득대체율이나 보험료율을 조정하는 모수개혁의 공이 정부로 넘어간 형국이 되었다. 이는 최근까지 모수개혁 중심의 논의를 이어오다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결과다. 구조개혁의 흐름 속에서 모수개혁도 논의해야 하는데 앞선 모수개혁 논의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관련 보도가 이어지자 국회가 부담을 느끼고 뒤로 물러선 모양새다. 하지만 연금개혁과 같은 어려운 문제를 풀자고 국회가 있는 게 아닌가. 표심의 눈치를 살피고, 이해 당사자보다 전문가에 의존하는 지금의 논의 구조로 연금개혁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연금특위 논의 과정에서 불안과 갈등만 부추기다 ‘지금은 모수개혁을 논의할 상황이 아니’라며 논의를 원점으로 돌린 국회의 무책임함을 규탄하며, 조속히 사회적 합의 기구를 구성해 연금개혁 논의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당초 국회 연금특위는 구성부터 운영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특위 구성에 노동조합이나 시민사회단체 등 가입자와 제도 수혜자를 대표하는 시민의 참여를 배제한 채 민간자문위원회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렇게 구성된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는 어떠한 합의도 이뤄내지 못했다. 또한 세대갈등을 부추기고 기금소진 불안감을 과장한 일부 전문가들과 합의되지 않은 내용을 합의된 것처럼 편향적인 보도를 쏟아낸 언론의 행태로 인해 국민연금의 목표인 ‘적정 노후 소득보장’은 뒷전으로 밀리고 연금재정문제만 부각되어 본말이 전도되고 말았다. 본말전도된 상황을 바로잡지 못한 채 연금개혁의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연금개혁의 당사자인 시민들은 대체 무엇이 중요한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국회 연금특위의 문제는 예견된 결과다. 가입자 대표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적 논의로 흐를 우려가 컸던 데다 위상이 모호한 민간자문위원회의 한계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또한 모수개혁을 내세웠다 갑자기 구조개혁으로 선회한 점에서 국회가 애초에 선거를 앞두고 소득대체율이나 보험료율 인상을 반영한 연금개혁 논의를 추동할 의지와 용기가 있었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연금특위가 당장 해야할 논의를 뒤로하면서 연금개혁의 시계마저도 불투명해졌다. 올해가 법정 재정계산 연도여서 연금제도를 논의할 정부기구가 가동되고는 있지만 이 역시 전문가중심기구이다. 전문가중심기구인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의 실패와 언론의 편향적인 보도는 당사자를 배제한 일방적인 연금개혁 논의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결국, 연금개혁 논의를 위한 사회적 합의 기구 필요성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사회는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와 심각한 노인빈곤율 문제를 안고 있다. 모든 시민의 존엄한 노후를 보장하고 부양 부담의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될 연금개혁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연금개혁 논의를 원점으로 돌린다면, 논의의 틀부터 다시 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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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3/02/0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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