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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그런 ‘노년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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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그런 ‘노년기’는 없다

admin | 수, 2023/03/29- 10:13

최혜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문제의 해답을 찾기 어려울 때는 난감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언제나 해답을 찾을 방도가 있다는 점에 그나마 위로가 된다. 그런데 해답 사이에 뛰어넘기 어려운 모순이 있으면 난감한 감정을 넘어 마치 덫에 걸린 듯한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노인 기준연령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깊은 이유이다.

배경이야 어찌 되었든 혹은 몇 살로 사회적 조정이 이루어지든, 현재 노인 기준연령에 대한 논의를 보면 두 가지 지점이 우려된다.

기준선을 바꾼다고 국가 책임이 사라지나

먼저, 노인 기준연령에 대한 대중의 이해와 정부의 의도 사이에 껄끄러운 불일치가 예상된다. 일반적으로 노인을 가르는 기준연령은 65세이다. 그런데 평균수명이 84세에 근접한 현 상황에서 ‘65세 이상’은 노인으로 분류하기에 젊어도 너무 젊다. 현대인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고려하면 노인 기준연령을 높이는 것이 합리적이다.

신체적 활동에 어려움이 없고 인지적 기능도 양호한 대다수 65세 이상 사람들은 노인이라는 표식이 반갑지 않다. 뒷방의 적막함에 익숙해져야 하는 노인의 시기가 늦추어지면 사람들은 안도할 수 있다. ‘장년의 시간이 연장되었다’는 사회적 재가는 자신이 늙지 않았다는 혹은 충분히 젊다는 인정으로 읽힐 것이다. 대중에게 ‘노인 기준연령 상향’은 이러한 의미다.

그런데 정부의 관심은 65세 이후에도 사회구성원 다수는 충분히 젊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국가가 부양할 노인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했다는 위기의식이 주요 동인이다. 정부 입장에서 노인 기준연령 상향은 사회적 부담을 완화할 ‘절묘한 해법’이다. 참으로 값진 노인 기준연령의 쓰임새이다. 물론 일부 노인은 ‘노인 기준연령을 상향해 국가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즉, 노인을 비롯한 다수 대중은 노인 기준연령 문제가 노인부양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연동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2023년 노인 인구는 약 950만 명으로 추정된다. 노인복지 예산은 전체 사회복지 예산의 25.1%를 차지하고,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은 70% 노인에게 지급하는 노인 기초연금 예산은 약 18.5조 원에 이른다. 노인 인구 증가로 사회적 부양의 부담은 큰 폭으로 확대되었고 앞으로 더 확대될 것이다. 특히 그 부담이 현재와 미래의 근로 세대에 지워진다는 이유에서 노인 기준연령 상향은 마치 노인부양 부담을 둘러싼 세대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해법인 양 과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노인 기준연령의 상향은 노인복지 급여를 받는 기준연령 또한 상향된다는 뜻이다. 기초연금·노인장기요양보험·경로우대 서비스를 받는 연령은 상향된 노인 기준연령에 맞추어 변경될 것이다.1 지금도 법적 정년 (60세)과 연금수급 개시연령(62세)의 차이로 인한 소득절벽기가 퇴직자의 빈곤을 악화시키고 있다. 연금수급 개시연령은 2033년까지 65세로 늦춰질 예정인데, 노인 기준연령이 상향되면 그보다 더 늦춰질 수도 있다. 이러한 정책변화의 결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연금수급 개시연령 상향이 소득 공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년을 연장하거나 노동자가 희망하는 경우 65세까지 계속 고용을 보장하는 등 제도부터 정비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이유로 별다른 대책 없이 연금수급 개시연령을 상향해 소득 공백기를 늘리고 방치해왔다. 노인 기준연령 상향이 불러올 부정적 결과에 대해 정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응할지 우려되는 이유다.

현대인의 달라진 신체적·정신적 건강 상황 때문에 노인 기준연령을 상향한다면, 65세 이상의 건강한 장년이 노동시장 등 다양한 공간에서 사회적 역할을 하도록 지원하는 제도적 보완이 우선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기초연금 등 노인복지 사업의 수급연령이 늦춰진 탓에 빈곤이 확대되지 않도록 취약집단의 피해를 완화하는 제도적 정비가 선결되어야 한다.

노인 기준연령이 몇 살이 되든 소득 보전이 필요한 사람,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사라지지 않는다. 노인의 기준을 바꾸고 기준선 안에 있는 사람의 머릿수를 줄인다고 해서 국가의 부양책임이 가벼워지는 것도 아니다. 연령을 기준으로 금 그어진 선 밖에서 누군가는 더 비극적인 상황을 감내해야 한다.

꿈꾸는 노인을 위한 나라

두 번째 우려는 노인 기준연령 상향에 대한 논의가 노인을 향한 부정적 시각을 재현한다는 점이다. 몇 살이 노인으로 인정되든, 노인은 ‘부담’이란 단어와 손잡은 존재, 사회적 가치를 상실한 존재로 가정된다.

인간의 생을 몇 개의 단계로 묶어 일렬로 배열한 생애주기적 관점은 ‘인간의 삶에는 앞선 시간과 구분되는 불연속의 단층들이 존재한다’는 전제를 담고 있다. 인생의 단층마다 개인에게 새로운 과제를 주고, 이 과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는가에 따라 성공적인 삶이 결정된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오랫동안 인간의 사고를 지배했다.

아동기와 청년기에는 가정과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사회에 유용한 인간’으로 자라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는다. 자본주의 출현과 함께 등장한 공공 교육제도는 아동을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노동 인력’으로 배출하는 기제가 되었다. 청장년기에는 노동시장에 진입해 일정한 직업을 갖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 사회적 생산과 생물학적 재생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노년기에는 노동시장에서 벗어나 직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정체성을 대체할 새로운 자신을 찾고 죽음을 수용해야 한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서 현재의 자신을 재정의하고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부정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노인의 삶’으로 묘사된다. 물질적 가치를 생산하는 역량이 감소한 노인은 존재 가치를 부정당하고 죽음의 상징으로만 인식되는 것이다.

예컨대 ‘N포세대’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21세기 한국 청년의 비극은 ‘꿈의 상실’에 있다. 그런데 높은 빈곤율과 자살률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한국 노인의 삶 또한 매우 위태롭다. 그런데도 노인의 삶이 처한 비극적 요소에서 ‘꿈’은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꿈을 잃은 청년의 문제는 사회적 쟁점이 되지만, ‘도전하는 노인’, ‘꿈꾸는 노인’은 일종의 형용모순으로 여겨지고 사회적 관심도 받지 못한다. 노인은 죽음, 즉 미래가 없다는 전제를 중심으로 규정되고, 이러한 시각에서 미래의 도전인 ‘꿈’은 노인과 조화될 수 없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산업사회에서는 생애주기적 관점이 비교적 유용했다. 사람들 대부분이 교육을 마친 후 무리 없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고용관계를 기반으로 노후소득을 보장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산업사회에서는 ‘일자리 없는 성장’으로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 시점이 늦어지고, 노동자들도 노동시장 진입과 퇴출을 반복하며 지속해서 재교육을 받는다. 고용주를 특정하기 어려운 플랫폼노동 등의 비전형적 일자리가 증가하면서 일정 규모의 노동자는 고용계약 관계를 기초로 하는 사회보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실업보험은 소득 중단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국민연금은 노인 생계를 책임질 만큼 미덥지 못하다.

이런 사회에서 표준적 생애주기 모델은 더 이상 맥을 추지 못한다. 탈산업사회는 생의 과업을 교육·노동·여가로 구분하고 노년기를 ‘교육과 노동이 배제된 여가의 시기’로, 노인을 ‘비생산적 존재’로 인식해온 사회적 관성에 도전한다.

‘무엇이 생산적인 삶인가’에 대해서는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탈산업화가 추동한 사회적 변화에 맞춰 노년기는 교육·노동·참여가 통합된 시기로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노인은 적극적으로 교육의 기회를 얻고, 가족과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활동을 지원하고, 사회적 의사결정 구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노인은 노년을 경작하는, 꿈꾸는 주체여야 한다.

노인 기준연령 논의 속에 담긴 ‘노인’, ‘노년’에 대한 낯설게 보기가 필요한 때다.


1  기초연금, 노인장기요양보험, 노인맞춤돌봄서비스, 노인여가복지시설(경로당), 경로우대제, 노인주거복지시설, 노인건강진단, 노인일자리(공공형, 사회서비스형), 독거노인 공동생활 홈서비스, 단기 가사서비스(독거), 이동통신비 감면, 노인 치과 지원, 노인 틀니·임플란트 지원, 행복주택, 응급안전안심서비스, 노인 외래 정액제, 어촌 가사도우미, 고령자전세임대주택(전세금 지원), 고령자 복지주택, 예방접종, 노인 이동통신비 감면, 학대피해노인상담지원, 학대피해노인 쉼터, 노인양로시설 등 24개 주요 노인복지사업 대상자의 기준연령은 65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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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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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임성희

무제한으로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한 독일의 ‘9유로Euro 정책’이 국내외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 기후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세계적으로 무제한 또는 무상 대중교통을 확대하고 있는데, 9유로 정책은 이 흐름에 정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정책 내용을 살펴보자. 독일 정부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 위기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6월부터 3개월 동안 지역 간 고속 열차를 제외한 모든 대중교통을 월 9유로(약 1만2천 원)로 무제한 이용하도록 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이를 위해 제도 시행 기간에 26억 유로(약 3조 4천억 원)의 정부 재정을 투자했다.

9유로 정책은 시행되자마자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고 총 5,200만 장의 티켓이 판매되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독일 정부는 △물가상승률 0.7% 감소 △대중교통 이용 25% 증가 △이산화탄소 180만 톤 저감 및 대기오염 6% 감소 △교통혼잡 개선 △가구 소득보존 등의 다양한 사회경제적 효과를 달성했다. 이 밖에도 독일의 복잡한 대중교통 요금체계를 단순화하는 성과도 얻었다.

정책이 대대적으로 성공하자 상시적인 도입 요구가 거세게 일었다. 독일 연방정부와 주 정부는 논의 끝에30억 유로(약 4조 원)의 예산을 절반씩 부담하기로 하고, 2023년 5월 1일부터 월 49유로(약 6만 6천 원) 무제한 독일 티켓DeutschlandTicket을 상시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기후위기와 고물가 시대에 국가 차원에서 공공요금 정책으로 대중교통의 사회경제적 편익을 증명하면서 변화를 끌어낸 것이다.

한국산 ‘9유로 티켓’ 도입, 재정여력은 충분하다

이러한 영향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기후환경단체 중심으로 1만원패스연대(준)가 결성되었고, 정의당도 ‘3만원 무제한 패스’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반면 서울시는 ‘해외에 비해 요금이 싸며, 무임수송에 따라 적자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300~400원의 대중교통 요금 인상을 예고했다. 정부의 공공요금 동결 기조에 따라 인상 시기는 올 4월에서 하반기로 연기했지만, 계획은 바꾸지 않았다.

이러한 서울시의 입장은 대중교통 이용자가 누구인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변화된 상황은 무엇인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이다. 우선 외국과 달리 정기할인권이나 소셜Social할인 제도가 활성화되지 않은 한국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만큼 요금이 늘어난다.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는 저소득 노동자, 청년 실업자, 노인, 영세자영업자, 장애인 등에게는 요금부담이 역진逆進적이다. 특히 요즘같이 경제위기와 고물가 시기에는 그 부담이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중교통 이용률은 보수적인 정부 통계로도 이전 대비 3분의 1 이상 폭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률 회복과 증진을 위해서 적극적 인센티브 정책도 요구된다. 지금은 오히려 무제한 정액제 도입 등의 긴급 처방이 필요하다. 재정을 들여서라도 서민을 위해 요금을 내리고, 대중교통 이용률을 복원하고 더 늘려서 환경오염에도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재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교통시설 특별회계 세출 예산’을 교통 관련 재정으로 사용한다. 이 중에 불용不用 처리되어 5년2017~2021년 동안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 예탁된 돈만 무려 20조 원이라고 한다. 정부의 결단만 있으면 유류세에 부과되는 재원으로 조달된 교통시설 특별회계 예산을 대중교통 요금할인과 운영지원을 위해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중앙정부가 재정을 내어놓는다면 지방정부 또한 쉽게 호응할 것이다. 정부는 이미 자가용 이용자들에게는 유가 인상에 따른 9조 원의 유류세를 감면해주었다. 대중교통 이용자에 대한 혜택도 그만큼 줄 수 있어야 한다.

사회구조를 바꾸는 요금제, 우리도 할 수 있다

독일 9유로 정책의 사회경제적 편익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증명되고 있다. 아직은 소규모이지만 강원 정선군, 경기 화성시, 경북 청송군 등에서 무상버스 정책을 도입한 것이다.

강원 정선군은 2020년 6월부터 버스공영제와 함께 65세 이상 노인과 초·중·고 학생들에 대한 부분 무상교통을 실시했는데 승객이 30% 증가하고 지역 상권이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경기 화성시 또한 2020년 11월부터 버스공영제와 함께 청소년·노인·청년(만23세 이하) 대상 무상교통을 실시해 환경개선, 교통비 절감, 경제활성화 등으로 연간 약 86억 6천만 원의 사회경제적 효과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보편복지의 일환으로 2023년부터 전면 무상버스를 도입한 경북 청송군은 시행 두 달 만에 이용객이 20% 늘었고 이동 증가로 지역경제도 활성화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광역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세종시는 광역단체 최초로 2025년부터 시내버스 요금 전면 무료화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앞으로 지역을 중심으로 부문 또는 전면 무상교통이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정책이 요금할인과 무상교통 자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책이 지속적으로 유지·확대되기 위해서는 수요 확대에 걸맞은 인프라 확대, 재정투자 증가, 안전인력 충원 그리고 통합공공교통체계가 수반되어야 한다.

대중교통이 잔여적이고 주변적인 한국 현실에서 무상교통 및 무제한 요금제는 고물가 대응, 환경오염 저감과 지역 활성화 등을 도모하기 위한 사회경제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자가용 중심 체계에서 대중교통 중심 체계로 전환하는 마중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독일 9유로 정책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시사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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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3/02/24-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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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미 녹색전환연구소 운영실장

올겨울 난방비 고지서를 받고 모두 사색이 되었을 것이다. 난방비가 많이 나온 이유는 다양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한국은 에너지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이기에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그뿐인가. 북극에서 불어닥친 한파가 보일러 온도를 올렸고 이러한 맥락에서 에너지 요금이 동반 상승했다.

난방비 문제로 곳곳에서 앓는 소리가 나오자 국회와 정부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지원금 카드부터 꺼냈다. 동시에 ‘난방비 폭탄’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여당과 야당은 서로를 탓하기 시작했다. 마땅한 해결책 없이 상대 정당을 비난하는 현수막만 동네마다 즐비하게 걸었다. 일각에서는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을 인상한 것 자체가 ‘공공성’ 또는 ‘에너지 기본권’을 훼손하고 박탈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결국, 작금의 난방비 사태는 ‘전쟁’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기에 난방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말이다. 한국과 해외 사례를 비교해서 살펴보자.

같은 폭탄, 다른 정책

한국에서 난방비 대란에 대한 공방攻防만이 오갈 때, 우리와 비슷하거나 혹은 더 심각하게 러-우 전쟁의 타격을 입은 국가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독일과 프랑스, 미국의 경우 난방비가 급격하게 오른 상황은 같으나 정부의 대응 방식은 한국과 큰 차이가 있었다. 이번 사태가 에너지 위기의 결과임을 인정하고 구조적 해결책을 마련한다는 점, 더 나아가 난방비를 주거 문제와 연결 지어 풀어가고 있다는 점이 핵심 차이다.

한국처럼 재생에너지 비율이 두 자릿수조차 안 되는 국가에서는 에너지 생산부터 소비까지 모든 과정에서 과도하게 탄소배출을 할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 대응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난방비 문제 해결을 위한 기존의 에너지 생산 방식은 필연적으로 사회적·경제적 비용을 상승시킨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에너지 요금 인상을 정직하게 논의하지 않았고, 이로 인한 충격을 시민들이 직격으로 맞은 것이다. 에너지 생산 및 수요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요금은 오를 수밖에 없고, 보통의 시민들이 그 부담을 각자 짊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기후위기 대응과 적응’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에너지 안보를 지켜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탄소 절감, 에너지 분권·자립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가격 변동성이 낮고 지속 가능한 재생에너지 확대도 필수적이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조차 영구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핵발전소로 탄소중립과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겠다”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획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이다. 모두가 안전한 에너지 전환정책은 이제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는 더 뜨거워지고 날씨는 변덕스러워질 것이며, 에너지 가격은 감당할 수 없이 높아질 것이다.

주거권과 에너지 기본권, 두 가지 권리 동시에 사수하기

또 하나 우리가 함께 요구할 것이 있다. 주거 공공성을 강화하는 일이다. 난방비 사태를 맞은 독일이 가장 먼저 내린 결단은 바로 ‘강제 퇴거 금지’ 조치였다. 에너지 요금을 감당하지 못해 월세를 못 내도 세입자를 내쫓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프랑스 역시 주거 관련 법안을 만들고 있다.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집은 아예 세입자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단기적인 에너지 요금 지원으로 땜질만 하는 한국과는 전혀 다르다.

미국의 경우 ‘모두를 위한 청정에너지’라는 이름으로 주거 개선 사업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고, 백악관 홈페이지에 관련 정책 정보를 게재하고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 감축법1 Inflation Reduction Act의 연장선에 있는 조치로, 주거 공간의 상태에 따라 기후위기의 영향을 다르게 겪기에 정책적으로 주택 품질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2018년 한국의 여름을 복기해보자.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기록적인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160여 명에 달했다. 온열질환 사망자의 50%가 의료시설에서, 19%가 주택에서 발생했다.

이 통계는 적정하지 못한 주거 공간이 시민의 삶을 얼마나 위협하는지 잘 보여준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노인 빈곤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한국에서 폭염·혹한 등 날씨로 인한 인명피해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에게나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주거 공간확보’는 필수적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주거 공공성을 가열차게 주장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구멍 뚫린 에너지 바우처 대신 에너지복지법이 필요하다

이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화는 피할 수도 미룰 수도 없다. 대표적으로 에너지복지법이 있다. 바우처voucher로 포괄하지 못하는 시민들의 삶을 담을 더 큰 그릇이 필요하다. 여러 전문가가 지적하듯 현재 에너지 바우처는 대상자가 매우 불분명한 데다가 심각하게 파편화되어 있다. 또한 한국 복지정책의 고질적 문제점인 ‘신청주의’로 인해 당사자가 직접 신청하지 않으면 복지혜택을 받을 수도 없다. 수급 자격도 협소하다. 소득 기준으로는 바우처를 받을 수 있는 생계급여·의료급여 당사자라고 하더라도 노인·영유아·장애인·임산부·한부모가족 등 ‘세대원 특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수급 자격에서 탈락한다.

이로 인해 매년 에너지 바우처 지급률은 떨어지는 추세다. 단전가구2 중에서도 에너지 바우처 이용률은 10%에 불과하다. 결국 에너지 위기 속에서 사회안전망의 구멍이 더 커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 2월 8일 ‘기후전망과 전략, 10인과의 대담’에서 대기 과학자 조천호 교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 6차 보고서를 토대로 “어느 때보다 나빠지는 기후 상황에서 지역별·계층별 불평등은 더 강화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제 의회를 통해 기후위기 불평등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해법을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그런 점에 최근 출범한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의 역할과 책임이 막중하다. 엘니뇨El Nino 현상으로 또다시 역대급 더위가 예상되는 2023년에 5년 전 여름처럼 불평등한 재난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1  기후변화 대응, 친환경 에너지의 보급, 취약계층 지원 확대, 일자리 창출 및 노동자 보호, 의료비 지원 등을 목표로 약 7,900억 달러의 재정을 투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
2  전기요금 체납으로 전류 제한을 겪은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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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3/02/24-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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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한국에서만 치열한 ‘재정건전성 논쟁’

작년과 올해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또 다시 재정건전성이 도마에 올랐다. 한쪽은 “재정건전성이 중요하니 국가부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고물가 경제위기 상황에서 국가가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 말이 맞을까? 아니면 두 개의 상반된 주장 사이 어디쯤 정답이 있는 것일까?

놀랍게도 재정건전성 논쟁은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재정건전성 논쟁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정답은 “이런 논쟁을 하지 않은 것”이다. 재정건전성은 영어 ‘financial soundness’의 번역어다. 그런데 이는 OECD 등 다른 나라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않는 개념이다. 최근에는 재정건전성보다 ‘재정의 지속가능성’financial sustainability을 논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재정건전성은 부채가 적고 재정수지1가 흑자일수록 좋다고 평가받는다. 반면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중장기적인 재정의 건강 상태 유지에 관심을 둔다. 조금 거칠게 말하면, 지금 당장 빚을 져서라도 필요한 투자를 하면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즉, 단기적인 재정건전성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중장기적인 재정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당장의 재정건전성을 위해서 아무런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중장기적인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하락한다.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다.

부채가 적을수록 좋다?

CNN 뉴스 사이트에서 ‘financial soundness’를 검색하면 29개
기사만 검색되나 ‘financial sustainability’를 검색하면 347개
기사가 검색된다.(검색일 2023.2.23 기준)

국가 부채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부채는 적을수록 좋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부채는 적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가장 적절할수록 좋다. 2022년 기준 삼성전자는 115조 원이 넘는 돈을 가지고 있다.2 그럼에도 94조 원의 부채를 유지하고 있다. 10조 원의 매입채무3는 물론 5천억 원의 사채까지도 아직 존재한다. 현금이 그렇게 많은데 왜 빚을 져서 물건을 사고 사채도 안 갚고 있을까? 삼성전자의 재정 목표는 ‘가장 적은 부채비율 달성’이 아니다.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 유지’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을 유지할수록 좋다. OECD 국가 GDP 대비 부채비율 평균은 120%가 넘는다. 부채비율이 적을수록 좋다면 이 국가들이 모두 잘못된 행정을 한다고 평가해야 한다. 물론 그럴 리는 없다.

그럼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이 얼마일까? GDP 대비 50%일까? 100%일까? 불행히도 ‘알 수 없다’가 정답이다. 하버드대 로고프 교수는 적절한 부채비율을 제시한 적이 있지만, 기초적인 에러가 발견되어 큰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전 세계 어떠한 재정 전문가도 적절한 부채비율을 안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런데 유독 대한민국 언론과 정치인들은 ‘적절한 부채비율을 안다’고 주장한다. 현재 한국 부채비율이 50%로 너무 높다는 말은 곧 현재 적절한 부채비율은 50% 이하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한국의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이 40%인지 60%인지 알 수 없다. 만약 가장 적절한 부채비율이 40%라면 현재 부채비율을 50%에서 더 낮춰야 한다. 그러나 적절한 부채비율이 60%라면 반대로 부채비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 부채비율을 높이면 빚을 더 많이 지는데, 이게 왜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일까? 물론 부채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허비한다면 당연히 부채는 낮을수록 좋다. 그러나 국가가 부채를 통해서 조달한 자금은 경제성장을 높이고 사회 후생을 높이는 데 쓰인다. 한마디로 말해서 부채 조달 비용보다 이를 통해 창출할 수 있는 사회적 후생이 더 크다면 부채를 더 조달하는 것이 이익이다.

내가 국민은행에서 4%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고 새마을금고에서는 5% 이자를 주는 예금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국민은행에서 얼마를 빌리는 것이 가장 큰 이득일까? 정답은 다다익선이다. 그러나 내가 지나치게 돈을 많이 빌리려고 하면 국민은행은 나의 대출금리를 높일 것이다. 또한 내가 지나치게 많은 돈을 예금하려고 하면 새마을금고는 나의 예금금리를 낮추게 된다. 결국 이론적으로는 대출금리와 예금금리가 같아질 때까지 돈을 빌리는 것이 가장 좋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국채 이자를 지불하고 이를 사회에 투자한다. 우리나라 전역에 완벽한 ‘포트폴리오 투자’4를 한다면 명목성장률5 정도의 이익을 얻게 된다. 2000년부터 2021년까지 우리나라 명목성장률이 국채이자율보다 낮았던 해는 단 두 해밖에 없다. 이는 지난 20년간 국채발행이 지나치게 비효율적으로 발행했다는 방증일 수 있다.

국채 투자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국채에 투자하지 않았다면 여유 재원을 금고가 아닌 다른 어딘가엔 투자할 것이다. 안전자산인 국채에 투자하는 대신 다른 안전자산인 토지·건물 등 부동산에 주로 투자하지 않을까? 국채는 국가입장에선 채무지만 투자자에게는 자산이다. 그리고 국채 투자자의 80% 이상은 내국인이다. 국가가 국채라는 자산을 공급해주면 투자자는 안정적 이자 수입을 얻고 더 많은 소비를 창출할 수 있다. 최소한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국가경제에 더 효율적이다. 국고채는 한국 전체 채권시장에서 약 40%의 비중을 차지하는 최대 공급원이다. 국채가 없으면 채권시장 자체가 형성되기 어려울 지경이다. 즉, 국가부채는 적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적절할수록 좋다는 점을 시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지속가능한 ‘적절한’ 부채를 이야기하자

끝으로 국가의 부채비율을 낮췄을 때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는지도 파악해 보자. ‘매크로 레버리지’macro leverage라는 개념이 있다. 정부부채·가계부채·기업부채를 통틀어서 매크로 레버리지라고 한다. 그런데 정부부채·가계부채·기업부채는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나가 낮아지면 다른 두 개의 부채는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즉, 정부부채를 낮추려고 하면 가계부채나 기업부채가 높아진다. 마찬가지로 가계부채를 낮추려고 하면 정부부채나 기업부채가 높아진다.

현재 한국 매크로 레버리지 상황을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해보면, 정부부채 비율은 가장 낮은 반면 가계부채는 가장 높고 기업부채는 약간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부채를 낮춘다면 가뜩이나 높은 가계부채 문제가 악화할 수 있다.

재정정책은 균형이 중요하다. 이 세상에 아무런 부작용이 없는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부채가 높아지면 부작용이 생기지만, 국가부채가 낮아져도 부작용은 발생한다. 다시 말하지만, 국가부채 비율은 낮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적절할수록 좋다. 문제는 가장 적절한 비율이 얼마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무도 적절한 부채비율을 알 수 없다면, 국민적 합의를 통해 정치적으로 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질문은 “적절한 부채비율을 구합시다”여야 한다. 즉,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낮은 부채비율을 이룩해 봅시다”라고 말하는 건 잘못된 질문이다. 재정건전성이 목표가 되면 안 된다.

한국은 이미 저출생·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이런 상황에 맞춰 지속가능한 부채비율을 유지해야 한다. 저출생·고령화 사회를 대비하는 데 있어 부채비율이 너무 높으면 재원을 마련할 수 없고, 부채비율이 너무 낮아 사회투자를 하지 못해도 적절히 대비할 수 없다. 우리는 후손에게 빚과 동시에 자산도 물려준다. ‘0원의 빚과 0원의 자산’보다 ‘10억 원의 빚과 20억 원의 자산’을 물려주는 것이 좋지 않은가. ‘재정건전성을 지킨다’는 이유로 미래의 재정 지속가능성을 희생시켜선 안 된다.

1  정부의 세입과 세출 간 차이
2  현금 및 현금성 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을 합친 액수다
3  원재료의 구입 등 일반적 상거래에서 발생하는 외상매입금과 지급어음
4  다양한 투자 대상에 분산하여 자금을 투입·운용하는 일
5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의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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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3/02/2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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