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 2023년 제2차 사단법인 환경운동연합 정기총회 개최공고

사단법인 환경운동연합
제2차 정기총회 개최공고
사단법인 환경운동연합 정관 제17조에 의거 아래와 같이 정기 총회를 개최하오니 정회원께서는 꼭 참석해 주시길 바랍니다.
- 개최 일시 : 2023년 2월 28일 오후 2시~5시
- 장소 : 서울역 KTX 대회의실
- 안건

사단법인 환경운동연합
제2차 정기총회 개최공고
사단법인 환경운동연합 정관 제17조에 의거 아래와 같이 정기 총회를 개최하오니 정회원께서는 꼭 참석해 주시길 바랍니다.
2017년 숲해설가 전문과정 수강생 모집 공고
(산림청 숲해설-2014-01호)
제주의 아름다운 숲의 가치를 해설하고 숲체험 활동을 이끌어갈 수강생을 모집합니다.
■ 모집기간 : 2017년 2월 6일(월) 10:00 ~ 2월 10일(금)까지(선착순 마감)
(*모집기간 전/마감 후 신청서는 접수하지 않습니다.)
■ 모집인원 : 35명
■ 참가자격 : 숲을 사랑하는 모든 도민
■ 교육기간 : 2017년 3월 7일 ~ 8월 31일 (교육시간 – 총 50강 161시간, 실습 30시간)
■ 강의시간 1. 이론 – 매주 화, 목 19:00-22:00(제주녹색구매지원센터 교육실)
2. 현장 – 매주 토 12:00-18:00
(*현장 및 수업에 따라 일부 변경이 있을 수 있습니다.)
■ 교육수료 및 자격취득 요건
– 오리엔테이션 참석필수
– 교육과정 157시간 중 140시간 이상은 필히 참석(출결석 체크함)
– 교육실습(30시간)을 모두 완료한 자에 한하여 이론 및 시연평가 실시
– 이론평가 매 과목당 50점 이상, 전과목 평균 70점 이상, 시연평가를 70점 이상 취득
(각 100점 만점)
– 위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학습자에게 별지서식에 따른 산림교육 전문과정 이수증명서를 발급
– 전문과정 이수증명서를 발급받은 자는 산림청에서 교부하는 자격증 취득
– 시연계획서, 교육실습보고서 등 과제물을 제출해야 함
■ 수 강 료 : 100만원 (제주환경운동연합 회원 10%감면)
– 회원은 공고일 현재 3개월 이상 회비를 납부한 회원
– 참가비 납부방법 : 교육신청(홈페이지)⟶접수확인(사무국에서 통지)⟶수강료 납부⟶등록 마감
※ 수강료 환불 기준
– 모집공고일 ~ 교육시작 일주일 전까지 취소할 경우 전액 환불
– 교육시작 일주일 전 ~ 교육시작일 전일까지 취소할 경우 20% 공제 후 환불
– 교육 시작 이후에는 환불 불가
■ 입금계좌 : 농협 (355-2164-0003-93 (사)제주환경교육센터)
■ 접수방법 : 홈페이지(www.edujeju.org)공지사항에서 교육내용을 확인한 후 홈페이지 오른쪽 상단 참여하기->교육신청을 함
■ 오리엔테이션 : 2017년 2월 23일(목) 19:00 교육실
(※사전교육이므로 필히 참석하여야 합니다.)
■ 문 의 : (사)제주환경교육센터 064-759-2164 (담당자 – 박지영 간사)
■ 숲해설가 양성과정 교육과목 : 홈페이지 참조
*수강생 미달(25명)시 교육과정은 차기년도에 진행됩니다.
제주환경운동연합 부설 전문기관
(사) 제주환경교육센터 이사장(김경숙)
지난 11월 30일부터 오는 12월 11일까지 파리에서 열릴 21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를 앞두고, 11월 29일 기후변화의 전환을 염원하는 전세계인들의 동시다발 기후행진이 열렸는데요. 비록 파리에서는 테러 이후 기후행진이 불허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렸지만, 상파울루에서 시드니까지 78만 5천명, 전세계 175개국에서 2,300건의 기후 행사가 열렸다고 합니다. 사상최대의 기후행진이라는 기록을 달성했다고 하는데요!
전 세계에 멋진 기후행진 사진으로 보기
한국에서도 청계광장에서 기후정의를 염원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모였는데요.
여성환경연대도 “기후정의, 여성의 힘으로!”, “Women’s Action for Climate Justice” 피켓을 들고 머리 곳곳에 해바라기 노랑 주황 드레스코드 티를 팍팍 내면서 행진에 참여했습니다
파리기후총회에서는 2020년 이후부터 적용될 신 기후체제(Post-2020) 협상이 이루어지는데요. 세계 각국이 자발적으로 설정한 감축 목표(INDC)를 가지고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 온도를 2도 낮추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는 가운데, 최근 해외 순방을 좋아하시는 박근혜 대통령도 파리기후변화총회에 참석해 BAU(온실가스 배출전망치)대비 37% 감축한 온실가스 배출 목표를 아주 야심차게(?) 발표해서 국제적 망신을 사기도 했습니다. (“박 대통령, 파리 기후변화 총회에서 국제 망신” 기사)
여성환경연대는 여러가지 사정으로 활동가들이 직접 파리기후총회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함께 파리기후총회 활동을 준비한 환경운동연합이 현지에서 기후총회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해주고 있으니 여기서 확인해보실 수 있구요!
파리기후총회 업데이트 전세계 기후정의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 트위터 보기
여성환경연대는 대신, 전 세계에 한국의 기후정의를 위해 활동, 움직이는 여성들의 공간과 사례를 모아 파리에 참석하는 활동가 편에 제작해서 보냈습니다. 에너지 자립마을을 위해 지역의 여성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성대골마을, 초고압송전탑과 부조리한 핵발전 시스템에 맞서 10년 가까이 투쟁하고 계신 밀양의 할매들,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먹거리와 사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엄마들이 모인 차일드세이브, 매주 화요일 핵불끄기 캠페인을 빠짐없이 진행한 한국YWCA연합회, 지속가능한 여성 농민들의 소농이 지구를 식힐 수 있다고 믿고 농생태학 교육과 토종종자 지키기 운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언니네텃밭 기후변화에 맞서 일상에서 실천하는 대안생활(도시텃밭, 슬로우라이프 운동 등)의 활동을 전개하는 여성환경연대등의 활동 소개과 사례를 영문으로 제작했습니다.
원본은 아래에서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일상의 원심력에 대항하는 구심력
- 민변 노동위원회 1년차의 1년 이지영 변호사(변시 4회)
2015년을 되돌아보니 그 시작도 마무리도 민변 노동위원회와 함께였던 것 같습니다.
변호사시험을 치르고 법전원 게시판에서 민변 노동위 노동법실무교육 안내를 보고 눈이 번쩍 띄어 바로 신청, 3월 한 달 동안 부산과 서울을 오고 가며 민변 선배 변호사들의 열강을 들으면서 민변이라는 조직, 사무실 공간, 무엇보다 민변 사람들과 조금씩 익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4월은 노동위원회 수요모임 참석과 그 전날 변시 합격 발표로 마음 편하게 갈 수 있었던 제주도에서의 민변 노동위원회 전체 모임이 기억납니다. 전체모임 뒤풀이 자리에서 들을 수 있었던 회원들의 소회. 그 진지함과 자기 다짐에 ‘노동위원회에 잘 들어왔구나’ 생각했습니다. 4월 18일 세월호 1주기 범국민대회에 인권침해감시단으로 뜻하지 않게(?) 집회 대오 선두에서 싸우며 민변 변호사로서 집회에 나가는 것이 생각보다 무거운 것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날 처음 경험했던 연행자 접견.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는 분들에게 경찰 조사 방법을 말씀드리니 한결 안도하시던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유독 연행자가 많았던 집회 이후 민변에서 모든 연행자를 파악하고 접견은 하는지 혹시 빠진 곳은 없는지 혼자 걱정했으나, 너무나 일사분란하게 대응하는 민변 조직을 보면서 신입 회원으로 건방지게(?) 괜한 걱정을 했구나 라며 부끄러웠던 기억도 납니다.
수요모임의 노동판례분석을 담당하게 되어 2주마다 한 번씩 노동판례를 읽고 정리하면서 2015년 한국사회의 노동판례 흐름을, 2015년 인권보고대회 발표를 위해 개별적 노사관계를 정리하면서 2015년 한 해 동안의 노동이슈를 일별하면서 어느덧 밥벌이 일(?)에만 매몰되고 있었던 제가 끊임없이 노동문제를 접하고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일상의 원심력에 대항하는 구심력으로서의 민변 노동위원회 활동!
일상에 치이고 지쳐 헤매지 않게 끊임없이 과제를 내주는 것에 이어 송년회 모임에 2015년 신입모범회원 상까지 주셔서, 올 한 해는 민변에서 시작과 마무리를 할 수 있어 뜻 깊고 행복했습니다.
소박하게 2016년도 다짐을 해 봅니다. (밥벌이) 일과 (민변 노동위) 활동의 양립을 위해, 원심력과 구심력으로 ‘나의 궤도’를 항해할 수 있게, 무엇보다 성실히, 꾸준하게!
민변 노동위에서의 1년
- 심재섭 회원
2014년 5월경 민변 가입원서를 쓰면서, 큰 고민 없이 노동위원회를 지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왜 노동위인지는 지금도 명확한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 좋은 선택이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연수생 신분으로 가끔 출석했던 수요모임이나 월례회만으로는 민변에서 어떤 변호사가 될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다른 분들은 어떤 계기로 민변에 들어오는 것인지, 누구에게 오리엔테이션을 받기라도 하는 것인지 궁금해 하다가, 작년 1월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첫 해의 목표는 명료했습니다. 어차피 달리 바쁜 일도 없으니, 혹시라도 누가 시키면 어디든 참석해서 도대체 노동위 변호사는 무슨 일을 하는지 구경이나 해보자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그 기회가 너무 빨리 왔습니다. 변호사로 처음 참석한 수요모임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얼떨결에 ‘공감대’에서 주최하는 오체투지행진 관련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아, 사실 저는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운동하는 친구들과 밤에 만나 놀기나 했지, 낮에 같이 집회에 나간 적은 손에 꼽습니다. 집회, 투쟁, 회의, 민가까지도 저에게는 어색한 일이었고, 그다지 내키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연대회의라는 것도 막연히 겁이 났습니다. 오체투지는 뉴스로만 접했던 제가 회의에 가서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말을 듣고 와야 하는지 무얼 알았겠습니까. 하릴없이 저를 지탱하는 두 가지 신념, ‘난 대한민국 평균은 된다.’, ‘내가 못하면 시킨 사람 잘못이다.’라는 마음만 가지고 일단 참석은 했습니다.
다행히 아무도 제게 묻지 않았고,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라, 자리만 채우면 되는 거였네?’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즈음에 ‘노동법률가대회’도 있었습니다. 아마 수요모임 끝나고 지나가는 말로 이현아 간사님께서 ‘변호사님, 오실 거죠?’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 1년 늘 그랬지만, 간사님께서 하라시면, 일정이 안 되는 경우 말고는 대답은 ‘Yes’였습니다. 아는 변호사님들도 많지 않아 어색할 자리가 될 것이 분명했지만, 다른 선택은 없었습니다. 딱 예상한 만큼만 어색하게 앉아서 5개 법률가 단체의 발언을 듣고, 사진을 찍고 뒤풀이 전에 돌아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후 세월호 관련 집회 대응과 관련한 모임에 참석하여 몇 분의 변호도 했고, 알바노조 분들과 만날 기회도 있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덜컥 마이크를 쥐어 주셔서 무어라 발언도 했지만, 내용은 기억이 안 납니다.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스스로 위안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결석한 수요모임에서 동양시멘트 진상조사단을 꾸린다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역시 이현아 간사님께서 텔레그램으로 참여를 권유해 주셔서 알았습니다. 금요일 하루 태백에 바람 좀 쐬러 다녀올 겸 편하게 내려갔는데,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논평이나 기사, 재판 자료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그 뒤로도 특별히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없다 하더라도 이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제 앞에 덜컥, 크고 중요한 일이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일 년이 지나서야 알았습니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일들이 있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이 불러주는 사람이 있어서 참석할 수 있었고, 고사리손이라도 보태면서 실제로 뉴스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냥 살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을 일들에 얄팍하게나마 조금씩 몸을 적시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그나마 부끄럽지 않은 변호사로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더군요. 어떻게 노동위 변호사가 되는 것인지를 알았으니, 이젠 아는 대로 살아야 될 텐데, 걱정입니다.
권영국 변호사님께서 수서경찰서에 체포되셨을 때, 아마 그때가 노동위 오길 잘 했다고 확신했던 날이었습니다. 새벽 2시 즈음에 나오신 권변호사님과 함께 20여 명의 동료들이 수서경찰서 앞에서 모여 동지가를 불렀었지요. 저는 물론 모르는 노래에 입만 뻥긋거렸지만, 이들 사이에 계속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처음 수요모임에서 아무와도 안부를 나누지 못하고 돌아가던 때가 있었고, 4월 제주에서의 노동위 모임에선 몇 명의 동료 변호사님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으며, 지금은 적어도 노동위의 어떤 모임이라도 불편하지 않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렇게 노동위에 느리지만 조금씩 스며들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행운입니다.
저는 게으르고 이기적이어서 어떻게 좋은 변호사가 되는지 알아도 그렇게 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옆에 계시는 멋진 동료 분들이 있고 이들 사이에 끼고 싶다는 욕심이 있으면 그래도 앞으로는 더 괜찮은 변호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민변의 창립회원이시자 초대 대표셨던 조준희 변호사님께서 어제(18일, 수) 저녁에 돌아가셨습니다.
민변은 유가족들과 협의하여, 이번 장례를 ‘민변장’으로 치르려 합니다. 아래와 같이 ‘민변장’ 관련하여 단체 분들께 안내 및 요청을 드리니. 조준희 변호사님 가시는 마지막 길에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인권변호사 1세대 조준희 변호사가 18일 78세의 일기로 별세하였습니다. 조준희 변호사는 1938년 경북 상주 출신으로 1959년 제11회에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서울지방법원 판사를 역임하다 1971년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조준희 변호사는 이후 엄혹한 유신독재에 저항하여 1980년대까지 시국사건을 도맡아왔던 이돈명, 황인철, 홍성우 변호사와 함께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리영희·백낙청 교수의 반공법 위반 사건, 동일방직·원풍모방시위 사건, 와이에이치(YH) 노조 신민당사 농성 사건 등의 변론을 맡아 ‘인권변호사 4인방’으로 불렸습니다. 80년대에는 부천서 성고문 사건, 김근태 고문사건, 미문화원 점거 농성사건, 말지 보도지침 사건, 남민전 사건 등의 변론과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특별조사단 활동을 통해 민주화 인사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1986년에는 한승헌, 홍성우, 이돈명, 조영래 변호사 등 인권변호의 뜻을 같이 하는 인사들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모태가 된 ‘정의실천법조인회(정법회)’를 결성했으며 1988년 민변 창립과 함께 민변의 초대 대표를 맡아 불의에 단호히 맞서는 인권변론의 정수를 보여주었습니다.
조준희 변호사는 1994년 인권변호사로는 처음으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였으며 2001~2002년까지 민주화운동 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원회 위원장, 2005~2008년까지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2003~2004년까지 사법개혁위원회 위원장으로 사법개혁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2. 빈소 및 장례일정 안내
- 빈소: 서울 일원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9호실
- 장례: 민변장
- 주요일정
* 추모의 밤: 2015. 11. 20.(금) 19시 30분 / 삼성병원 장례식장
* 발인: 2015. 11. 21.(토) 6시 30분
* 장지: 성남영생원-경북 상주시 헌신동 선산
장례위원에 함께 하시고 싶으신 분은 메일 회신 또는 문자회신(010-9947-9920, 이동화)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장례위원은 1만원 비용을 납부해주시고, 국민은행 578601-01-075271, 민변 입니다. 신문광고를 위해 최대한 빨리 회신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11. 19. 오후 5시까지)
- 장례 관련하여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연락(010-9947-9920 이동화 팀장)주십시오.
- 장례위원에 많은 참여를 부탁 드리고, 추모의 밤에 꼭 많은 회원 분들이 참석해주시길 거듭 부탁 드립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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