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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미국과 중국 간의 기후문제 협력에 대한 기준과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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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미국과 중국 간의 기후문제 협력에 대한 기준과 원칙

admin | 금, 2021/09/17- 19:51

편집자 주:

역사적으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한 미국과 서구 그리고 현재로서 가장 많이 배출하고 있는 중국이 선도국가군으로서 상호적으로 협력하여 기후위기에 함께 대응하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에는 희망이 없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기후위기의 대응이라는 주제를 자신의 패권을 강화하려는 지정학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는 11월 영국에서 열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6 UN Climate Change Conference)를 앞두고 중국을 방문하여 시전화(Xie Zhenhua) 중국대표를 만났습니다. 케리는 올해 미국 기후특사로서 두 번째 중국을 방문하였습니다.

케리 특사의 중국방문은 미국이 중국과 손을 잡고 긴급한 글로벌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케리 특사는 미국이 중국과 협력하여 기후변화의 시급한 도전 에 대응하여 대화를 강화하고, 목표를 공동으로 설정하며, 리더십을 발휘하고, 파리협정 목표달성을 위한 모범을 보이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그는 또한 기후변화에 대한 미중 협력이 미중 관계가 직면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기후변화에 진지하게 대처하고 환경적 책임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케리의 방문은 기후변화를 정치적 구실로 삼아 중국의 개발속도를 억제하고자 하는 의도를 반복해서 표출하고 있었습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가을 중국이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정점으로,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케리는 중국의 현재적 탄소중립 약속이 충분히 빠르지 않다고 여러 차례 불평했습니다. 당연히 가능한 모든 국가들은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2050년 또는 그 이전까지 순배출 제로를 달성해야 합니다.

케리의 방문은 국제사회에서 진행되는 석탄화력 프로젝트의 자금조달에 대하여 중국이 공개적으로 이의 전면중단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도록 자극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른 한편 미국은 반복적으로 중국이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공식화하고 싶어합니다. 케리 특사와 바이든 행정부는 발전단계에 기반하여 기후변화의 온실가스 배출을 완화하기 위한 상당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중국의 무단한 노력을 단순히 무시하고자 합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효과적인 중미의 협력은 파리기후 변화협정의 목표를 실현하려는 “공통적이며 동시에 차별화된” 원칙에 기초해야 합니다.

기후변화는 인류에 대한 전세계적으로 공유되는 실존적 위협이며 전세계적인 협력과 공동행동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각 당사자의 성실한 대응은 각 당사자의 발전단계에 따라 달라야 합니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근거는 개발도상국이 개발을 시작하기 훨씬 전에 선진국이 자연생태에 엄청난 양의 탄소가스를 이미 방출했기 때문입니다.

서구에서 탈산업화가 일어나고 많은 제조업이 개발도상국으로 이전됨에 따라, 탄소의 해외소비는 개발도상국이 배출하는 탄소수치에 크게 의존합니다.

시 주석이 설정한 배출량 감축목표는 파리협정을 확고히 이행하고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인류의 미래를 공유하는 공동체의 건설을 추진하는 책임있는 국가임을 보여주는 중국의 행동과 결의를 반영합니다.

탄소중립에 대한 공약을 존중하고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중국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데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중국 당국은 신선한 공기, 환경을 녹색화하고 자연자원의 현명한 사용을 국가부흥에 연결하는 “녹색변혁”을 요구했습니다. 녹색산업은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었으며 고품질 개발의 개념 하에 중국은 전통적인 부문이 녹색개발을 추구하도록 하고 수많은 녹색산업이 출현하도록 했습니다.

중국의 자동차 공장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광경. 2019

중국은 말 그대로 국가발전의 전략초점을 화석연료 에너지기반 인프라와 경제를 청정에너지 기반 및 기후회복력의 미래로 전환하기 위해 “재편성”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청정기술의 R&D 및 혁신, 중심축을 지원하는 청정기술, 청정에너지 및 인프라에 대한 투자, 청정에너지 전환을 가장 잘 수용할 수 있는 공급망을 개선하는 방법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국은 태양광과 풍력 외에 신소재, 스마트 그리드, 배터리, 전기차 등 핵심 분야에서 역량과 경쟁을 강화할 예정입니다. 이로 인해 중국은 글로벌 기후혁신과 공급망의 중심에 우뚝 서 있습니다.

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노력과 후속조치로 중국은 녹색개발의 선구자이자 기후 변화와의 싸움에서 선도적인 핵심국가로 부상했습니다.

워싱턴에 소재한 전략 및 국제연구센터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세계최대 풍력 및 태양 에너지 생산국이자 재생에너지에 대한 국내 및 해외의 최대투자자입니다.

실제로 탄소배출량으로 보면 미국의 1인당 탄소배출량이 중국보다 훨씬 높습니다(2.5-3.0배). 현재는 2025년로 일정을 순연하였지만, 파리협정에서 요구한대로 미국이 2020년 이전에 1000억 달러를 제공하지 못한 것은 오히려 나쁜 본보기가 되어 글로벌기후 거버넌스 진행의 일정을 후퇴시켰습니다.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를 바다에 투기하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등 미국의 이중 잣대는 기후위기의 대응에 대한 타격이며 기후변화의 글로벌 리더라는 미국의 주장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케리의 중국방문은 중국과의 협력에 대한 환영의 의사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글로벌 리더십의 연합 또는 양측의 솔직한 협력은 솔루션과 개발단계의 다양성과 공동번영에 대한 열망이 상호 간에 충분히 인식되고 존중될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원문>

On Meeting The US and China on Green Cooperation dated 21-09-03

China and the US are making a somewhat bumpy journey toward climate cooperation, with Chinese officials and experts still calling for partnership between the two countries to tackle climate change, but urged the US to change its hostile attitude toward China and treat China-US cooperation more sincerely.

They made the call shortly after the two countries’ tense relations had spilled over into their climate talks, with a certain US government official blaming China for not doing enough on climate issues, although the blame is more like an unpleasant sound rather than an interruption of the two countries’ ongoing climate talks.

Vice Minister of Commerce Wang Shouwen on Wednesday called on China and the US to play an “ensemble” of low-carbon cooperation. He made the comment during the China Provinces-US States Green & Low-carbon Cooperation Seminar and Matchmaking in Xiamen, East China’s Fujian Province.

“China and the US share common ground in advancing low-carbon development, and that cooperation will not only serve each other’s goal of cutting carbon emissions but also contribute to strengthening bilateral economic and trade cooperation,” Wang said.

According to information provided by the Fujian Provincial Department of Commerce, the event, which focuses on enhancing climate cooperation between Chinese provinces and US states, has attracted about 260 local government representatives and businesspeople from the two countries, including representatives from US industrial giants like Dell, DuPont and General Motors.

Officials from several US states including Ohio and Washington also said during the fair that they hope China and the US can carry out more pragmatic cooperation in green areas to cope with climate change challenges together.

The conditions for China-US climate cooperation are becoming increasingly ripe not only as China is going to great lengths to meet its carbon neutrality goals, but as the US has seemingly reemerged on the global stage of climate cooperation, with moves like rejoining the Paris Agreement and US President Joe Biden’s reported attendance of the 26th UN Climate Change Conference.

Experts stressed that China will always open its door to cooperation and dialogue in green development, but they criticized the US for showing an “insincere” attitude, placing the two countries’ low-carbon partnership, which could be carried out “in any aspects” theoretically, under much uncertainty.

US climate envoy John Kerry reportedly said recently that China can do more in terms of tackling climate change, implying that China’s efforts are insufficient as long as it continues to build coal-fired power plants.

“The US has shown hypocrisy and short-sightedness on the issue of climate cooperation with China. It has politicized the climate issue and taken it as a diplomatic tool against China, and yet tried to shift the blame to China,” Li Haidong, a professor at the Institute of International Relations at the China Foreign Affairs University, told the Global Times.

He Weiwen, a former economic and commercial counselor at the Chinese consulate general in San Francisco and New York, also criticized the US for “finding fault” with China, as blaming China for not doing enough in tackling carbon emissions does not hold water.

“Power generation using coal, petroleum and natural gas accounts for about 60 percent of overall power generation almost same as in China and The US, while Power generation using recyclable energy accounts for 29 percent in China, compared with the US’ 20 percent. But this does not include carbon emissions from California wildfires and wars the US launched,” he said.

He also said that compared with the US, the UK shows more sincerity in conducting climate cooperation with China.

Shortly after Kerry wrapped up climate talks with Chinese officials earlier this month, Britain’s senior climate change official Alok Sharma also arrived in Tianjin to meet his Chinese counterpart Xie Zhenhua. Sharma was later quoted by Reuters as saying that he “welcomes China’s commitment to climate neutrality by 2060 and looks forward to discussing China’s policy proposals towards this goal.”

 

출처: CGTN(중국국제방송) on 2021-09-08.

황용푸

전문적인 경제평론가이며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사회경력을 시작했으며 UN기구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그는 경제학과 관련된 많은 논문과 책의 저자로 현재 관심은 글로벌 개발 및 중미 연결, 특히 무역, 금융 및 기술문제에 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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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어업 상습 국가” 낙인찍힌 한국 원양어업, 환골탈태만이 답이다

○ 한국이 다시 <불법어업국가>라는 오명을 썼다. 2019년 9월 20일, 미국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 지정 통보를 받았다. 2013년 미국과 유럽연합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가로 지정받은 이후, 규제 강화를 강조한 원양산업발전법 개정으로 2015년에 해제되었지만 겨우 4년 만에 불명예는 되돌아왔다.

○ 불법어업국가로 지정된다는 것은 원양수산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 수출길에 차질이 생기는 경제적 손실은 물론, 외교 무대에서 뼈아픈 약점을 잡힌다. 특히, 체제가 불안하거나 경제발전이 더딘 저개발국가들 위주로 된 불법어업국가 목록에 포함되는 것 자체가 국격에 치명타를 입힌다고 할 수 있다.

○ 이번 지정의 발단은 2017년 한국 원양선박이 남극해에서 보존조치를 위반한 사건 때문이다. 국내외 환경단체들은 해당 위반 행위에 대해 수차례 강한 우려를 표하며, 해수부와 원양업계에 이 사건의 심각함과 함의를 알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업계를 대표하는 원양산업협회는 ‘일부 기업의 소소한 위반을 침소봉대하지 말라’며 의미를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 사건을 엄정하게 처리해야 할 해수부도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법적 문제가 없다’, ‘현상태에서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국제여론까지 악화되자 그제서야 관련 원양산업발전법 재개정안을 부랴부랴 마련했다. 그나마도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로, 통과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 위에 언급한 원양산업발전법의 개정안은 작년부터 업계와 시민사회가 참여한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업계의 영향으로 불법어업에 대한 벌금과 제재를 강화하는 정책들이 상당부분 약화된 채 발의되었다. 이마저도 업계에서는 훨씬 더 큰 폭으로 약화하고 싶어했다.

○ 결정적으로, 이 사태는 불법어업 규제가 강화되는 국제적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해수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2018년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 회의에 참가한 당시 정부 대표단은 불법어업 사건을 신속하고 엄정히 처리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안이하게 대응을 하였고 이는 결국 오늘의 예비불법어업국 지정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회의에 참가한 정부 대표단 중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불과 약 1년 전 (2018년 10월)만 해도 당당하게 “한·EU, 국제적인 불법어업 근절을 위한 공동선언” 까지 채택한 한국이 또다시 원양 전선에서 추락했다. 불법어업 국가의 오명을 벗고 효과적인 제재를 가하다가 다시 개혁의 긴장 고삐를 늦추면서 벌어진 일이다. 시민단체는 국민을 대표하여 묻지 않을 수 없다. 또다시 억울함을 호소하며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자세로 이런 외교적 망신을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 불법 어업자들을 확실하게 걸러내어 오히려 불법어업 근절을 선도하는 국제적 리더로 거듭날 것인가? 정부와 업계의 문제 해결의지와 책임있는 행동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이에 시민사회는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 해수부, 특히 본 사태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당시 정부 대표단 대표는 책임을 져야 한다.
○ 불법, 비보고, 비규제 (IUU) 어업이 재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도록 하는, 보다 강력한 제재안을 원산법 개정안에 포함시키고, 불법어업 통제 관리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 원양업계는 불법어업을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업체를 퇴출시키는 등 자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 정부와 업계는 시민사회와 함께 불법 어업 방지를 위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공익법센터어필,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재단

참고:
남극 이빨고기 불법 어업 관련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2070600105

한국 환경단체 성명서:
http://kfem.or.kr/?p=196313

공동선언문 채택:
https://www.yna.co.kr/view/AKR20181018168300098

금, 2019/09/2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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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한 친구에게 도덕과 외교 정책에 관한 책을 집필했다고 전하자, 그녀는 “아주 짧은 소개서 이겠구나”라고 빈정거렸다. 이러한 회의론은 일반적이다. 놀랍게도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미국 대통령의 도덕적 견해가 그들의 외교 정책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참고할 만한 서적은 거의 없다.

저명한 정치 이론가인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는 1945년 이후 미국의 국제 관계론 대학원 교육과정에서 “도덕적인 논쟁은 관행적으로 행해지는 외교적 예의 규칙과 어긋난다”고 서술했다.

회의적인 근거는 명백해 보인다. 역사가들이 미국적인 예외주의와 도덕주의에 대해 기술했을 때, 냉전시대 미국 ‘봉쇄’ 정책의 아버지로 알려진 조지 F. 케넌(George F. Kennan)과 같은 현실주의 외교관들에 의해 오랫동안 미국의 도덕주의-법률주의 전통이 추락된 것을 경고해 왔다.

국제 관계는 무정부 상태의 영역이다. 질서를 규정하는 세계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는 각자의 이해를 방어해야 하고, 생존이 위태로울 때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가치를 지닌 선택이 없는 곳에는 윤리가 있을 수 없다. 철학자들이 “당위는 가능을 예시한다”고 말하듯이 불가능한 일을 하지 않는다고 타인을 나무랄 수는 없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윤리와 외교정책을 결합하는 것은 칼을 선택할 때 잘 드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좋은 것을 고르거나, 빗자루를 사면서 잘 쓸리는 것보다 비싼 것을 묻는 것과 같은 멍청한 실책이며, 따라서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판단할 때는 단순히 외교정책이 도덕적인지 묻기보단 그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는 일부 장점이 있는 반면 어려운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함으로써 회피하기도 한다. 세계 정부가 부재한다고 해서 모든 국제질서도 부재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부 외교 정책 사안은 국가의 생존과 관련이 있지만 대부분 사안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여러 차례 전쟁에 참전했지만 미국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전쟁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인권, 기후 변화, 인터넷 사용의 자유에 대하여 다양하고 중요한 외교 정책을 선택하는 과정에는 전혀 전쟁이 수반되지 않는다.

실제로, 외교 정책 사안 대부분은 엄격한 국가 이성(raison d’état)이라는 공식의 적용이 아니라 선택을 요구하는 조건에서 가치와 균형을 맞추는 과정을 포함한다. 어떤 냉소적인 프랑스 관료는 언젠가 필자에게 “저는 프랑스 이익에 좋은 것을 좋은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도덕은 무관합니다”고 말했다. 그는 그의 발언 자체가 도덕적인 판단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 것 같았다. 만일 그가 “모든 국가가 각국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려고 한다”고 말하려 했다면 상식적인 논리 또는 싱거운 언급을 중복한 셈이다.

개별적이고 상이한 상황에서 국가 지도자들이 국익을 어떻게 정의하고 추구할 지 선택하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이다.

더욱이 우리가 좋든 싫든 미국인들은 끊임없이 대통령과 외교 정책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부당한 요청을 했다는 전화 통화가 익히 알려지기 이전부터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행실은 뉴스 톱기사에 오르면서 이론적인 질문으로부터 도덕성 및 외교 정책에 대해 회의를 일으켜 왔다.

예를 들어 2018년 자말 카슈끄지(Jamal Khashoggi) 사우디 반체제 기자가 이스탄불 영사관에서 살해된 뒤, 트럼프는 사우디 왕세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잔혹한 범죄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를 무시했다고 비난받았다.

진보 성향의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는 카슈끄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비양심적인 거래이고 사실 관계를 무시한 것”이라고 기술했고, 보수 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Wall Street Journal)은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이나 린든 존슨(Lyndon Johnson)처럼 철저한 실용주의자로 간주되는 대통령을 포함해 역대 어느 대통령도 공개적인 성명에서 가치와 원칙을 준수하는 미국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사설에서 전했다.

석유, 무기 판매, 지역 안정 모두 국익과 관련된다. 다른 한편 많은 사안과 관련하여 우호적인 가치 및 원칙 또한 국익에 중요하다. 어떻게 그것들을 조합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윤리와 관련하여 현재 미국 외교정책에 대한 다양한 판단은 무계획적이고 사고 수준이 형편없으며 현재 논쟁의 다수가 트럼프의 성향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필자가 새로 집필한 저서 «도덕은 중요한가?»에서는 트럼프의 일부 행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통령들이 보인 전례가 있는 행동임을 보여줌으로써 이러한 판단을 바로잡고자 했다.

어떤 통찰력 있는 기자는 필자에게 “트럼프는 특별하지 않지만 극단적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미국인들에게 때론 외교 정책을 판단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는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과 같은 대통령을 도덕적으로 명료한 진술을 했다며 칭송한다.

마치 잘 표현된 선한 언급이 도덕적인 판단을 하는데 충분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과 조지 W. 부시(George W. Bush)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적절한 수단을 선택하지 않은 선한 의도는 도덕적으로 잘못된 결과를 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베르사이유 조약이나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때 우리는 단순히 결과를 통해 대통령을 판단한다.

몇몇은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킨 리처드 닉슨을 칭찬하지만, 그는 미국인 21,000명의 생명을 희생시켜서 체면치레를 위해 ‘그럴듯한 휴전’을 이끌었다. 이는 패배의 길에서 덧없는 휴전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훌륭한 도덕적 추론은 의도, 결과, 수단을 저울질하고 균형을 맞추면서 입체적인 성향을 지녀야 한다. 외교정책은 이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또한, 도덕적인 외교 정책은 타국에서 핍박을 받거나 반체제 성향을 지닌 집단을 돕는 것과 같은 특별하게 뉴스 가치가 있는 행위 외에 도덕적 이익을 조장하는 제도적 질서를 유지하도록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전쟁 때 헤리 S. 트루먼(Harry S. Truman)대통령이 핵무기를 사용하자는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의 권고를 따르기 보다 교착 상태와 국내 정치적 불이익을 수용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와 같은 도덕적인 결단을 포함하는 것이 중요하다.

셜록 홈즈(Sherlock Homes)가 말한 유명한 발언처럼 짖지 않는 개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올해에도 여전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외교정책 논쟁에서 윤리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외교 정책을 판단하기 위해 항상 도덕적인 추론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인지해야 하며, 해당 과정을 더 잘 해내기 위해 꾸준히 학습할 필요가 있다.

 

Joseph S. Nye (조지프 S. 나이)

하버드 대학 교수이자 ‘소프트 파워”의 저자로 잘 알려진 인물, “도덕은 중요한가? 루스벨트에서 트럼프까지 대통령과 외교 정책”라는 신작 출간예정

출처: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2020

화, 2020/01/28-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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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코리아 남쪽의 대한민국(ROK)의 눈에는 코리아 북쪽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이라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눈에는 남쪽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없다. ‘코리안 블라인드(Korean blind)’다. 한쪽 눈만 뜬 채 상대를 맹점 지대에 넣어놓고 서로가 상대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헌법에는 ‘한반도’에 오직 대한민국만이 존재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헌법에는 ‘조선반도’에 오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만이 존재한다. 헌법만이 아니라 두 나라의 어느 공식적인 법과 제도에도 상대는 국가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한번쯤은 마리오트 맹점 실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혹시 안 해본 분이라면 이번 기회에 직접 한번 해보시기 바란다.(아래 그림) 먼저 왼쪽 눈을 가리고 오른쪽 눈으로 그림의 십자 표시를 응시한다. 그리고 눈을 멀리 가까이 하여 거리를 조정하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검은 원이 사라져버린다. 다음에는 반대로 오른쪽 눈을 가리고 왼쪽 눈으로 그림의 검은 원을 응시하면서 거리를 조정하다 보면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십자가가 사라져버린다.

지금 코리아 남북의 두 나라가 꼭 마찬가지 아닌가. 그러나 두 눈을 다 뜨고 바라보면, 멀리 보든 가깝게 보든, 뒤집어 보든 바로 보든, ‘코리아’에는 엄연히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2019년 현재 세계 157개국이 한국(ROK)과 조선(DPRK) 두 나라를 모두 인정하여 동시 수교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코리아 남북의 두 나라는 서로 상대를 부정하고 있으니 세계인의 시각에서 볼 때는 매우 이상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코리아 양국체제란 이제는 두 코리아 모두 정상적인 세계인의 시각을 갖자는 것이다.

코리안 블라인드는 있는 것을 없다고 우기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거꾸로 없는 것을 있게 만드는 놀라운 신박을 부린다. 아직도 여전히 1980년 5월의 광주 시민항쟁 대열에 북에서 보낸 수백 명의 특수부대(소위 ‘광수’)가 있었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 망상 허언에 증거가 있을 리 없다. 5·18 당시 계엄사령부와 미국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맹목의 외눈박이들에게는 증거가 중요하지 않다. 필요하지도 않다. 오직 ‘그래야만 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외눈박이 맹목의 당위가 있을 뿐이다. 존재를 부정하는 북과 연결시켜야 5·18 광주를 부정할 수 있고, 그래야 광주 시민들에 대한 피의 살육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있는 것을 없다고 하고,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외눈박이 맹점 놀음은 이렇게 내통하고 있다. 이러한 지록위마(指鹿爲馬) 뺨치는 외눈박이 맹점 놀음으로 오랜 세월 독재체제를 정당화해왔다. 심지어 세월호 참사 항의도 촛불집회도, 북과 연결시켜 압살하려 했던 공작들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코리아 양국체제란 외눈박이 넌센스, 블라인드 기만술로 지탱해온 독재체제, 독재심리를 영구히 종식시켜 정상체제, 정상심리가 확고히 자리 잡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난 70년 코리아 남북에 독재체제, 독재심리가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양측이 ‘내전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전 상태’란 하나의 주권, 하나의 영토를 누가 차지하느냐를 놓고 벌이는 필사의 전쟁 상태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절박하고 극단적인 심리 상태다. 그래서 상대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불법단체’나 ‘반란집단’으로 간주한다. 내전체제는 전쟁체제고 비상체제다. 6·25 전쟁 이후 남과 북 사이가 그랬고, 남과 북 내부가 그랬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남이든 북이든 독재의 위협을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전쟁 상태, 내전 상태이므로 독재가 정당화된다. 내전 상태로 맞선 남북이 ‘상응(相應)하여’ 자신의 독재를 정당화해온 체제를 1970년대 이래 한국의 민주화운동권에서는 ‘분단체제’라 불러왔다. 이러한 ‘내전 상태=분단체제’가 지속되는 한, 순수한 통일 의지와 통일 열망은 오히려 내전 격화와 독재 강화의 불쏘시개로 역용(逆用)되었을 뿐이다.

오늘날 코리아가 이러한 ‘내전 상태=분단체제’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다. 하나의 주권, 동일한 영토를 놓고 벌이는 필사의 전쟁 상태를 끝내야 한다. 그러자면 한국과 조선 두 국가가 서로의 주권과 영토를 인정하고 공존해야 한다. 코리아 남북은 이미 70여 년 동안 두 개의 주권국가다. 국가주권의 구조적 작동논리는 혈연적 정서논리와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이해하고 대처해야 마땅하다. ‘한 민족 한 형제인데 두 나라가 웬 말이냐’는 식의 민족정서·혈연논리만으로는 내전 상태의 두 나라, 두 주권 간의 적대와 대립을 결코 해소할 수 없다. 1950년 코리아전쟁부터가 한 민족에 두 나라가 있을 수 없다는 논리의 귀결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남북이 서로의 주권과 존재를 인정해야만 통일로 가는 길이 열린다는 것은 사실은 너무나도 상식적이고 당연한 말이다. 상대를 인정하기를 기필코 거부하면서 우리는 둘이 아니니까 반드시 합쳐야 한다고 우겨봐야 하나가 될 리 없다. 갈등만 더 증폭될 뿐이다. 누가 보더라도 서로 합칠 생각이 없는 둘의 모습이다. 반대로 상대를 진정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서로 충분히 확인한 연후에 이제부터 어떻게 합칠 것인가를 이야기해보자고 한다면, 이제야 비로소 누가 보더라도 정말 합칠 생각이 있는 둘의 모습이다.

분단체제에서는 남북이 서로를 결코 인정하지 못한다. 분단체제에서 가능한 입장이란, 남과 북 어느 한쪽만을 인정하든지(남과 북 당국의 공식입장), 아니면 양자 모두를 부정하는 입장(둘 모두에 비판적인 입장)일 수밖에 없다. 반면 양국체제에서는 남북이 서로를 마땅히 인정하게 된다. 시늉이나 속임수로서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상대가 더는 자신의 영토와 주권을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서로에게 확고해져야 한다. 그것이 코리아 양국체제다. 그때서야 통일의 길은 비로소 열린다. 하나가 되자고 하면 오히려 하나가 되자는 둘이 우선 분명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고 애당초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하나가 되자고만 해왔던 것이 오히려 분란과 갈등을 키워왔다. 코리안 블라인드를 걷어내고 둘임을 인정해야, 하나가 되자는 양편의 진실성이 입증된다. 오직 이 길을 통해서만 통일은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코리아 양국체제는 한 민족 두 나라 공존을 통해 평화적 통일에 이르는 길이다.

이 책의 제목을 ‘한반도 양국체제’가 아니라 굳이 ‘코리아 양국체제’라 한 이유를 눈 밝은 독자라면 이미 눈치 채셨을 것이다. 반도 남쪽의 대한민국(ROK)에서는 ‘코리아 반도(Korean peninsula)’를 ‘한반도’라 부르지만,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RPK)에서는 ‘조선반도’라고 부른다. 양국체제는 한국과 조선 두 나라 모두를 인정하고 위하자는 것인데, 그 이름을 한국에서만 쓰고 있는 용어로 ‘한반도 양국체제’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름부터 남북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공통의 것을 쓰자는 취지이다. 또 ‘코리아’라고 하면 지리적인 의미의 ‘코리아 반도’만이 아니라 코리아 반도와 전 세계 도처의 코리아 사람들(Korean people), 코리아 민족(Korean nation)을 포괄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앞으로 양국체제가 정착되어 양국이 합의하여 양국을 통칭하는 합의된 언어를 찾기까지는 아쉬운 대로 ‘코리아 양국체제’라는 용어를 쓰기로 한다.

 

기회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첫 가능성은 이미 지난 1989~1991년 사이에 한번 열렸던 바 있다. 미소(美蘇) 냉전 종식 국면에서 한국(ROK)과 조선(DPRK)은 유엔에 동시 가입했고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조선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 합의할 수 있었다. 노태우 정부는 양국체제 전망에 적극적이었고, 북 역시 북미 수교를 타진하면서 남북 공존을 통한 체제 보장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코리아에서의 냉전대결 국면을 연장시키려는 국내외 세력은 ‘북한 조기붕괴론’을 유포하면서 양국체제의 전망을 가로막았고, 소련·동구권 붕괴에 이은 ‘북한 붕괴’의 위협으로 궁지에 몰린 북은 핵 개발에 올인하게 되었다. 1987년의 민주화 동력이 하나로 뭉쳐 1987년의 대선에서 정통성이 강한 민주연합정부를 수립했다면, 이러한 내외의 방해를 물리치고 이미 1990년대에는 코리아 양국체제가 출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민주화 동력은 분열되었고 양국체제의 전망은 ‘북한붕괴론’과 ‘북핵위기론’의 공세에 밀려 너무나 빨리 닫히고 말았다.

그러나 거의 30년 만에 코리아 양국체제의 새로운 가능성이 다시 열리고 있다. 2016년 말 한국의 촛불혁명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 그리고 2017년 조선의 핵 완성이라는, 각각이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세 요소가 한 시점에 합류하면서 그 조건이 형성되었다. 한국의 촛불혁명은 1960년 4·19와 1987년 민주항쟁이 미처 이루지 못했던 나라의 민주적 정통성의 필요충분조건을 비로소 충족시켰다. 촛불혁명은 남북 대결과 적대의 경사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소시켰고 그 힘이 온전히 민주정부로 이어졌다. 반쪽국가가 아닌 온전한 한 국가로서 안정된 정당성과 자신감을 갖춘 것이다. 그렇기에 2017년 북미 간 전쟁 위기의 고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남북 화해, 북미 화해의 길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 결실이 2018년부터 남북미 간 정상회담으로 맺히기 시작했다.

1989~1991년 소련·동구권 붕괴 이후 미소 냉전이 종식되었지만 당시 미국은 곤경에 빠진 조선(DPRK)을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붕괴를 위한 압박과 제재를 강화했다. 그 결과 ‘북핵문제’가 본격화했다. 북핵 개발과 제재·압박의 벼랑 끝 줄다리기는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되어 2017년까지 계속됐다. 이 30년의 위기와 긴장 속에 북미 간만이 아니라 남북 간의 적대와 대결의식도 고조되어왔다. 이 적대와 대결의 고조를 한국의 촛불혁명이 먼저 끊었다. 그리고 조선의 ‘핵 완성’ 선언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북핵문제의 해결은 북핵 완성을 통해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그 역설은 미국 주류 정치의 국외자인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북미 대화의 파트너가 되면서 현실화의 실마리를 찾았다. 2018년 벽두부터 남북이 극적으로 화해의 물꼬를 텄다. 촛불혁명을 통한 한국의 자신감과 핵 완성을 통한 조선의 자신감이 당당하게 만날 수 있었다. 양국체제의 기반이 형성된 것이다. 이어 한국이 북미 간 협상을 성공적으로 중재함으로써 영영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남북미 간 화해의 협주가 가능해졌다. 이제 남북미는 종전과 평화협정, 그리고 한조·북미 수교와 한반도 비핵화를 일정에 올려두고 있다. 코리아 양국체제가 바로 우리 코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두 번째 기회

이렇게 다시 열린 코리아 양국체제의 두 번째 기회는 매우 소중하다. 그러나 이 기회를 어떻게 해서든 다시 한번 닫아버리고 싶어 하는 냉전대결 세력도 여전히 남아 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제야말로 북한체제를 끝장낼 때’라고 소리를 높이고 있는 세력들이 그렇다. 정확히 1990년대 초반의 북한 붕괴 – 북핵 위기 – 전쟁위기론의 복사판이다. 1991년 12월의 역사적인 <남북기본합의서>에 남북 양측 총리가 서명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한국 보수 언론에서 ‘북핵위기론 – 북한붕괴론’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채 2년 반이 지나지 않은 1994년 5~6월, 코리아는 전쟁 일보 직전의 초비상 위기 상태에 빠졌다. 그 후 양국체제의 전망은 굳게 닫히고 말았다. 냉전대결 세력은 이 순간 코리아의 상황을 다시금 그때와 꼭 같이 몰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과 30년이 지난 촛불 이후 현재의 상황은 너무나도 다르다. 1992~1994년의 반전의 핵심은 당시 냉전대결 세력이 한국의 여론의 방향을 남북 화해에서 남북 적대 기조로 뒤집어놓는 데 성공한 데 있었다. 당시는 남북대결체제를 남북공존체제로 밀고 나갈 지형과 중심이 아직 충분히 형성되어 있지 못했다. 노태우 정부는 군부연장 세력인 데다가 허약했고, 87년 시민항쟁을 이끌었던 민주화 세력도 분열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 반쪽은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냉전대결 세력과 합쳐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냉전 세력과 합친 민주화운동 세력의 한 축이 ‘북한붕괴론 – 북핵위기론’에 동조했다. 그래서 쉽게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고 말았고, 그러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촛불 이후 오늘날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우선 촛불혁명이 30년 전 만들어진 ‘기울어진 운동장’을 소멸시켰다. 그리고 촛불혁명 이후 들어선 정부의 민주적 정통성이 과거 노태우 정부에 비해 훨씬 강하다. 촛불혁명의 주도 세력의 일부가 냉전대결 세력과 야합할 가능성도 없다. 오히려 냉전대결 세력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자체를 거부하고 폭력적이고 억지스런 대중동원을 고집하면서 합리적 보수층의 마음으로부터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국제적 상황 역시 차이가 크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가능성이 처음으로 열렸던 1990년대 초반은 냉전 승리 이후 미국 일극(一極)주의의 전성기였다. 1990~1991년 사이의 ‘걸프전쟁’을 돌이켜 보면 이 당시 전 지구상에 미국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또 ‘북한붕괴론’이 먹히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 엄청난 소련도 무너졌는데 ‘북한’이 따라서 무너지지 않겠느냐는 여론이 국내외에 상당히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완연히 다르다. 미국 일극주의란 냉전 종식 이후 단지 10년의 에피소드였을 뿐이었다. 세계가 미소 양극으로 나뉘어 필사적인 세계내전을 벌이던 시대는 영영 끝났다. 세계사는 이제 일극주의가 아니라 주요 지역 문명권들의 공존체제 형성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이 대표하는 미영 문명권은 이제 그러한 주요 문명권 중 하나일 뿐이다. 현금의 미중 갈등은 세계가 어느 한편에 서야 했고 어느 한쪽이 망해야 끝났던 미소 냉전과 본질적으로, 근본적으로 다르다. 앞으로도 밀고 당김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제 미래는 여러 문명이 협력하여 공존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데 세계의 이해가 모아지고 있다. 1990년대 초의 ‘북한붕괴론’이 실제와 동떨어진 엉뚱한 이야기였다는 것도 이제는 분명해졌다. 동아시아의 조선, 중국, 베트남은 소련·동구권과는 다른 역사적·문명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소련·동구권 붕괴 이후에도 독자적 근거 위에서 존속할 수 있었다. 유럽 기원의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세계내전적 폐쇄회로와는 다른 문맥에서 동아시아 역사를 새롭게 볼 때가 되었다. 이렇듯 30년 전과 상전벽해(桑田碧海)처럼 크게 달라진 세계 상황에서 30년 전과 꼭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사람들에게 귀 기울일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제 코리아 양국체제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세계사적 상황이 무르익은 것이다.

필자가 양국체제론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은 촛불혁명 전이었다. 필자는 21세기 들어 세계사의 큰 흐름이 코리아에 아주 유리한 기회를 주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냉전의 족쇄를 풀고 아메리카 – 태평양권과 유라시아권을 이어주는 절묘한 위치에서 새 도약의 호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한국의 정치상황은 자꾸만 과거로 역주행하고 있었다. 왜 그럴까? 너무나도 오래 지속된 코리아 내전체제, 분단체제 때문이었다. 특히 1990년대 초반 양국체제의 첫 기회가 깨진 이후 줄곧 심화되어온 북핵문제와 남북·북미 간 대결 기조가 문제였다.

이 역주행의 순환고리를 깨뜨리고 벗어나야만 했다. 당시의 현실이 아무리 어둡고 비관적으로 보이더라도, 현실이 이렇게까지 나빠진 원인을 정확히 알면 반드시 빠져나갈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문제만 해결하면 코리아엔 큰 기회가 온다고 믿었다. 오랜 고심과 궁리 끝에 그 족쇄를 푸는 핵심 방법이 코리아 양국체제 정립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촛불혁명 이전이었다. 그러나 당시는 어둠이 너무나도 짙었던 오밤중이었지 않은가?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하더라도 과연 그 족쇄 풀기가 실제로 언제나 가능할까? 까마득하지 않은가? 그냥 상상으로 끝나는 것 아닌가? 그럴 때마다 나는 그때보다 더 어둡고 더 힘들었던 87년 이전의 시간들을 생각했다. 설혹 나 혼자의 외침이라 하더라도 누군가는 시작해야 할 일이 아니겠냐고 자신을 북돋았다. 그런 막막한 기분으로 양국체제를 이야기해가던 중, 촛불혁명이 일어났다. 변화가 이렇게 빨리 그리고 그렇듯 거대한 규모로 시작되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그 엄청난 에너지 속에서 양국체제론은 현실의 발판을 얻고 한층 구체화될 수 있었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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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20/01/07-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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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년 아펜젤로-이네르호덴Appenzello-Innerrhoden칸톤 주민들은 매년 4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군도로 무장하고 모여서 칸톤의 새로운 법률을 결정했다. 1990년이 되어서야 모든 칸톤에서 여성들도 선거의 참여가 허용되었고, 일반 남자들의 경우에도 1971년부터 보통 투표가 시작되었다. 글라로나Glarona 칸톤에도 아직 전통적인 “란트스게마인더Landsgemeinde”가 존재하는데, 이는 야외에서 열리는 칸톤 시민들의 입법회의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중세 스위스 특유의 민주적 회의는 다른 모든 칸톤에서는 투표소에서나 우편으로 하는 레퍼렌덤 투표로 대체되었다. 많은 스위스 기초자치단체에서 매년 총회가 열려서 시민들은 기초자치단체에서 정치적으로 필수 현안들에 대해 직접 투표한다.

 

150년 동안 지속된 전통

스위스는 전 세계에서 민주적인 많은 기관들과 국책 사업에서 큰 모범이 되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을 제외하고 어떤 다른 나라보다 레퍼렌덤 권한이 매우 잘 발달되어 있다. 스위스의 정치 생활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특히 칸톤과 기초자치단체 차원에서 사실상 특별한 역할을 담당한다.

의회에서 바라는 헌법 개정에 대한 의무적 실행 레퍼렌덤이 있는 직접 민주주의의 첫 제도들이 1848년 현대 스위스의 첫 헌법에 이미 포함되었다. 처음에 의원들은 오늘날 주변 국가의 많은 정치인들이 계속해서 그러듯이 직접 민주주의의 도입에 반대했다. 1870년대에는 의회를 장악했던 자유-자본주의적 과두정치에 대항하여 장인匠人, 소작농, 노동자 및 지식인 층 시민들의 강력한 국민 운동이 펼쳐졌다. 이 국민운동은 정당의 지나친 권력에 대항하여 더 큰 통제권과 더 큰 직접 참여를 주장했으며, 1874년에는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을 법제화하는데 성공했다. 이 국민 거부권은 오늘날 스위스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레퍼렌덤 도구이지만, 이탈리아에서는 헌법 제138조에 따른 헌법적 레퍼렌덤을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위스 사람들은 국민발안으로 헌법을 개정하여 새로운 규정을 도입할 수 있는데, 몇몇 칸톤에서는 1840년 대부터 이미 정치적 권리가 존재했다. 당시에도 금융과 상업의 중심지였던 취리히 칸톤은 1869년 국민발안을 마련했다. 이 도구는 1891년 연방 차원에서 도입되어 1921년 국제 조약에 대한 선택적 레퍼렌덤이 추가된다. 1949년에는 연방정부의 긴급하고 법적 구속력 있는 심의를 위한 의무적 레퍼렌덤이 제정된다. 1977년 UN 등의 국제 기구에 대한 가입 결정에 대해서, 그리고 2003년에는 곧 연방법 채택을 의미하는 국제 조약에 대한 승인 결정에 대한 레퍼렌덤 권리가 뒤따른다.

연방 일반법ordinary law에 대한 입법 국민발안(제안적 레퍼렌덤)은 2003년 도입되어야 했는데 입법자들의 거부로 가로막혔다. 기초자치단체와 칸톤에는 그 밖의 직접 민주주의 권리들도 있는데, 그중 재정 관련 레퍼렌덤도 있다. 만일 기초자치단체의 지출에 관한 어떤 결정이 규정된 최소한의 문턱을 넘으면 이 결정은 시민들의 요청에 따라 혹은 법적 의무 상으로도 레퍼렌덤 투표에 부쳐져야 한다.

 

스위스 시민은 어떤 레퍼렌덤 권리를 이용할 수 있는가?

연방차원에서 유권자인 시민들은 (2018년 현재 약 5백만 명) 세 가지 주요 레퍼렌덤 도구들을 이용할 수 있다. 이 모든 권리들은 칸톤 차원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모든 레퍼렌덤 투표는 법적 구속력이 있다.

1. 헌법상 의무 레퍼렌덤(1848년부터): 모든 헌법 개정이 발효되려면 시민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스위스의 몇몇 국제 기구 가입 또한 의무 레퍼렌덤의 대상이 된다.
2.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1874년부터): 5만 명의 시민들(유권자들의 약 1.1%)은 의회에서 승인되었지만 아직 발효되지 않은 법률에 대해 레퍼렌덤 투표를 요청할 수 있다. 서명을 모으기 위해 유효한 시간은 법률 반포로부터 100일 동안이다.
3. 국민발안(1891년부터): 10만 명의 시민들(현재 유권자의 약 2%)이 특정 헌법 조항의 개정, 연장 혹은 폐지를 요청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헌법상의 발안”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주안점은 특정 주제에 대해 정치적 토론을 불러일으키거나 촉진시키는 것이다. 서명을 모으기 위해 유효한 시간은 18개월이다. 의회는 레퍼렌덤 투표에 대한 반대 제안을 제출할 수 있다.

국민발안을 통해 스위스 사람들은 거의 모든 정치적 사안에 대해 레퍼렌덤 투표를 요청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처럼 직접 민주주의에서 배제되는 사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는 세금이나 관세, 국제 협정에 대해서는 투표가 허락되지 않지만, 스위스에서는 어떤 정치적 의제라고 하더라도 모두 시민 투표에 부쳐진다. 직접 민주주의에서 배제된 유일한 주제는 스위스에서 비준된 국제 권리의 규정들이다. 이렇게 모든 정치적 사안에 개입할 수 있는 주권자의 보편적 권리는 스위스 정치체제에서 레퍼렌덤 현상의 중요성을 잘 반영해 준다.

국민발안은 형식과 내용의 일치라는 전제 조건을 존중해야 한다. 이는 국민발안의 법 제안에서 두 가지 이상의 주제를 다룰 수 없음을 뜻한다. 현행 법은 결국 실행 불가능한 제안들은 직권상 기각될 수 있음을 분명히 규정하지만, 그런 상황은 매우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어떤 법 제안이 레퍼렌덤 투표에 부쳐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예전에 투표에 대해 공공 지출로 그렇게 규정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스위스에서는 여전히 세금, 공공 지출, 군사 및 방위 문제, 심지어 정부 형태에 대한 법 제안들이 거듭되고 있다.

국민발안으로 시민들이 능동적으로 정치적 의제를 결정할 수 있고, 그러므로 연방의회와 함께 일하여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한편으로, 스위스 사람들은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으로 의회에서 승인된 법률에 반응하여 그것을 가로 막거나 확정할 수 있다. 칸톤의회에서 승인된 모든 법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스위스에서는 제도권 기관에서 선포하는, 곧 의회나 정부 측에서 요청하는 레퍼렌덤 투표가 없다. 그것은 자문적 성격이건 심의적 성격이건 마찬가지이며, 앞서 말했듯이 플레시비트 또한 그러하다. 레퍼렌덤 도구는 의무적인 것이거나, 다시 말해 특정한 경우 헌법으로 엄격히 규정되었거나 서명을 모아 시민들이 주도한다.

이런 국민발안의 제안은 형식적 기준에 정확하게 부합되어야 하며, 내용 면에서도 그렇다. 제안을 제출한 후 칸톤의회와 발안위원회 간의 협상이 시작된다. 발안 위원회는 항상 자신들의 제안을 철회할 권한이 있다. 합의에 도달하지 않으면, 시민들의 제안은 레퍼렌덤 투표로 넘어간다. 그러나 의회는 그에 대한 입장을 다수결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 제안을 투표에 부칠 권한이 있다.

국민발안권의 경우 스위스 사람들은 칸톤 헌법의 완전 개정이나 부분 개정, 또 법 의사나 법 조항 제안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칸톤 중 약 2/3 가량에서 시민들은 국민투표를 통해 칸톤 정부의 법령 또한 수정 할 수 있다. 몇몇 칸톤에서는 선출된 정치인들의 소환투표권이 제정되었다. 소환투표의 요청은 국민발안을 통해 개시되지만, 어쨌듯 이 권한은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

확정적 레퍼렌덤의 경우, 선택의 폭이 더 넓은데, 법률에 대한 레퍼렌덤이나 헌법 개정에 대한 레퍼렌덤, 의무 혹은 선택적 레퍼렌덤, 재정 혹은 행정 관련 레퍼렌덤, 연방에서 규정한 국제 협정에 관한 레퍼렌덤 등이 있다. 국민발안이 시민 위원회에서 바라는 입법 절차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반면, 레퍼렌덤은 입법 절차의 마지막 단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항상 그 요청에 대한 다른 시민 청원자들의 숫자가 충분하다는 조건으로 국민투표에 이른다. 최소 서명 인원은 유권자들의 0.8%(취리히)에서 5%(티치노) 사이이다. 레퍼렌덤 요청 후에 발안 위원회는 필요한 서명을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모아야 한다.

 

150여 년간 지켜 온 민주주의 관행

스위스의 이 모든 직접 민주주의 형식들의 특징이 되는 네 가지 기본 원칙이 있다. 첫째, 항상 참여 정족수 없이 찬반을 결정한다. 둘째, 모든 레퍼렌덤 요청이나 국민발안 요청에는 단 하나의 사안을 담을 수 있다. 셋째, 레퍼렌덤 캠페인은 열려 있어서, 누구나 개입하고 찬반을 표명할 수 있다. 넷째, 시민들과 선출된 대의원들, 그리고 행정부 관리들을 포함시키는 민주적 절차이다. 연방이나 칸톤의회를 무시하고 투표에 착수하는 것이 아니다. 연방 차원의 서명 기준점으로 실행적 레퍼렌덤을 위해서는 5만 명, 국민발안에는 10만 명의 서명이 필요하다. 참여 정족수는 스위스에서 토론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없다. 투표하는 사람이 결정하며, 그 이상 이론異論은 없다.

시민들의 제안이나 선출된 대의원들이 제출한 법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요청하기 위한 절차에서 서명의 보증, 확인 및 공증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는 발안 위원회에 이런 것들을 요청한다. 또한 서명 운동을 펼치기 위한 공공 장소 사용의 문제처럼 재정적 측면에서도 서명 모으기 작업을 방해하거나 번거롭게 만드는 관료적 올가미 없이, 자유롭게 서명 운동을 펼치고 정치적 권리를 행사한다. 스위스의 관청에서는 투표 때마다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의 논점을 모아 설명하는 정보를 담은 소책자 형태의 안내서를 발행한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레퍼렌덤 권리는 확정적 레퍼렌덤 권한으로서 발안한 시민들의 높은 성공률을 자랑한다. 레퍼렌덤은 단순히 경고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므로 레퍼렌덤을 시작할 역량을 갖춘 시민 조직은 부득이 입법 절차에 참여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스위스는 수십 년 전부터 독특한 공적 조사 및 공청회 양식을 마련했다. 현재 무엇보다 인터넷을 통해 실시하는 이런 형태의 공청회 덕분에 연방 국회나 칸톤의회는 모든 정당과 조직 및 기업들을 초대하여 각자의 입장을 밝히게 할 수 있으며, 이렇게 견지된 입장은 공식 사이트에서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절차가 더욱 투명해지고, 입법 계획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이 준비 단계에서부터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선택적 레퍼렌덤으로 모든 연방 법률이 국민투표에 부쳐질 수 있다. 국회는 대개 입법 과정에서 사실상 비판적인 입장을 수용함으로써 이런 종류의 레퍼렌덤을 피하려고 한다. 결과적으로 승인된 법률 중 일부 소수만이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1874년부터 183차례 있었는데, 그외 34건의 경우 레퍼렌덤 위원회는 필요한 지지를 모아내지 못했다(DFAE, <현대의 직접 민주주의>, 2018).

국민발안은 레퍼렌덤에 비해 성공률이 확연히 낮다. 스위스의 역사상 2017년 2월까지 제출된 446건의 국민발안 중 324건이 10만 명 최소 서명 인원 요건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으며, 209건은 연방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투표자 다수결이나 26개 칸톤의 다수결로 단 22건만이 통과되었다. 114건의 경우, 발안자들이 필요한 서명을 모으는 데 성공하지 못한 반면, 96건의 경우 발안 위원회가 절차가 끝나기 전에 제안을 철수했다(DFAE, <현대 직접 민주주의>, 2018, 11). 1891년부터 2014년까지 연방 차원에서 189건의 연방 발안이 전개되었지만 국민 제안의 단 10%만이 투표 심사를 통과했다. 칸톤 차원에서 국민발안의 성공률은 좀 더 높은 23%이다. 분명 스위스 사람들은 직접 참여를 좋아하는 듯하지만 또 혁신적인 제안들에 대해서는 다소 보수적이기도 하다.

 

법의 속성

보통 스위스 사람들은 한 해 3차례 투표소로 가서 연방, 칸톤, 시군 차원의 사안들에 대해 한꺼번에 투표를 한다. 평균 참여율은 40%대를 맴돌지만, 유엔이나 유럽경제공간SEE 가입처럼 막중한 현안에 대한 투표들이 있어서, 선거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참여율을 보인다. 스위스에서도 99%의 결정이 선출된 정치인들의 몫으로 남겨지지만, 직접 민주주의는 칸톤과 연방의 정치적 결정 과정에 강력한 인장처럼 새겨져 있어 스위스 정치 문화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대체로 1866년에서 2018년 3월 사이 스위스 사람들은 617건의 국가적 레퍼렌덤 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그 취지들은 298건의 경우 받아들여졌으며, 333건의 경우 기각되었다. 이런 규칙적이고 집중적인 빈도의 자문은 국민발안이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눈에 띄는 영향력을 미친다. 각각의 사안에 대한 공식 정보 전달 기능도 있는 레퍼렌덤 캠페인은 광범위한 공공 토론이 이루어지게 하며, 각계각층의 국민들이 그에 대한 지식과 비판 의식을 심어 준다. 국민발안의 약 2/3가량이 그저 다음 3가지 영역, 곧 환경과 에너지 보호, 사회 정치 및 제도적 법규와 시민권리의 주제에 관한 것이다.

스위스의 독특한 점 중 하나는 연방 레퍼렌덤 투표에서 이중 찬성이라는 필수조건이다. 어떤 확정적 레퍼렌덤이나 국민발안이 유효하려면 전국 모든 투표자들이 던진 표의 과반수뿐만 아니라 26개의 칸톤 중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렇게 칸톤들 사이에서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조건은, 현실적으로 이 나라의 연방주의를 지키기 위해 다소 골치아픈 문제이기 때문에 적어도 13개 칸톤에서 그 찬성을 얻어내어야 하는 것이다.

때로 학자들은 스위스의 체제를 “절반의 직접 민주주의”로 정의한다. 국회의 입법 절차를 시민들의 레퍼렌덤 권리나 투표를 통한 선거와 결합시킴으로써 정치인들과 시민 사회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대화하도록 압박하기 때문이다. 권리를 온전히 지닌 스위스인들은 그들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자신들을 “주권자”라고 정의한다. 단지 정치인들을 뽑을 뿐만 아니라 언제라도 특정 현안이나 사안들에 대해 결정할 권한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칸톤과 연방 차원의 정치적 결정의 98%는 정치인들이 담당한다. 정치인들은 또 레퍼렌덤 투표의 결과를 적용해야만 한다. 직접 민주주의에서 정치인들은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주역으로 참여하며, 선거구 시민들과 더욱 직접적인 관계에 놓인다.

자주 이런 종류의 직접 민주주의는 입법 절차를 지나치게 지연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날 입법 생산성의 문제는 법의 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질에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마찬가지다. 틀림없이 이탈리아 국회는 지나치게 많은 법률을 양산해 내고, 그것도 지나치게 많은 성공적이지 못한 법률들을 만들어 낸다. 스위스에서는 법률 생산량이 부족한 것을 불평하지 않으며, 입법 절차 상 시민 동의나 직접 관련된 모든 사회적 그룹들의 공적인 참여에 훨씬 더 주의를 집중한다. 행정부는 효율적이고, 경제는 번영하고, 시민 만족도는 높고, 공공 부채는 낮은 스위스는 인구 대비 GDP상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스위스에서도 체제의 개혁을 논한다. 예를 들어, 인구 통계학적 성장에 비례하여 레퍼렌덤 투표를 개시하기 위해 필요한 서명 인원을 늘리는 것이나 연방 차원의 재정적 레퍼렌덤 도입 등을 다룬다. 헌법을 지나치게 부풀리지 않기 위해 일반 법률 상의 연방 국민발안이 제안되었다. 이 도구는 입법자들을 설득해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스위스는 국가에서 조인한 국제 협정에 대해 시민들이 투표할 권리를 훼손하지는 않으면서도 스위스가 지켜야 할 국제적 의무에 어긋나는 레퍼렌덤 투표를 막기 위한 헌법적 권한 행사에 대해 숙고하고 있다. 그러나 참여의 정족수 도입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스위스의 시스템을 이탈리아로 옮겨올 수 있을까?

사람들은 종종 역사적 발전과 특수한 전통을 바탕으로 직접 민주주의는 오로지 스위스에서만 작동할 수 있으며, 유럽 다른 지역에서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스위스에서 특정한 형태의 시스템이 발전했으며, 정치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는 최고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무엇보다 결과이다. 직접 민주주의가 잘 발달하면 시민들은 정기적으로 구체적인 현안에 대해 투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그러한 전통이 없다는 것이 직접 민주주의가 확대되는 것에 반대할 논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그러한 문화가 발달할 수 있도록 레퍼렌덤 권한을 규정해야 할 것이다.

많은 경우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반대의 목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스위스 사람이 아니니 이러한 모델을 이탈리아의 현실에 이전할 수 없다.” 직접 민주주의를 스위스에서만 적용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나라는 독특한 발전을 이루어 왔으며, 매우 특별한 정치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혹은 이론적으로 모든 의회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보완할 수 있는 일련의 법률이나 도구가 있기 때문인가?

물론 스위스는 이탈리아나 이탈리아의 지방들에 비해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스위스는 매우 독특한 연방정치를 발전시켰으며, 스위스 사람들은 자신의 칸톤에 대한 소속 의식이 매우 강하다. 게다가 스위스는 정부 구성에서 화합의 원칙을 실천한다. 어떤 “연금술”에 따르면, 연립 정부에도 늘 더 강력한 정당들이 존재한다. 스위스의 모든 정치 관련 조직들은 촘촘한 연결망으로 연결된 강력한 연합주의를 자랑하며, 스위스 사람들은 대개 자신들의 전통에 매우 큰 애착을 갖고 있다.

스위스의 또 다른 독특함도 있다. 국제 정치에서 절대적 중립을 지키고, 지역성을 원칙으로 여러 언어를 사용하며(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모든 칸톤은 그들 특유의 공식 언어가 있다), 다양한 교파의 그리스도교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고, 2017년 현재 이주민 비율이 25%를 넘는다.

연방 조직이 모두에게 공통되는 하나의 연방 국가라는 큰 틀을 유지하는 가운데, 26개 칸톤에 각자의 언어와 문화, 개성을 개발할 수 있게해 준 한편으로, “국민의 권리”, 곧 직접 민주주의 권리들은 시민들로 하여금 각자의 정치 시스템을 자기 자신과 완전히 동일시하게 한다.

연방주의와 직접 민주주의, 이 두 가지는 스위스에서 국가와 사회통합의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아니, 이는 스위스인들 공통의 역사적 유산이 되었다. 결정 과정에서 민주주의 면모는 더 잘 드러난다. 즉 대의민주주의 기구들 말고도 시민들은 구체적인 단일 정치적 현안에 대해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시민 직접 참여의 노정이나 기회는 시민들에게 유리한 법규를 갖춘 명확한 권리에 기반을 둔다. 또한 스위스 시민들은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레퍼렌덤 투표로 결정할 수 있으며, 의회 또한 그러한 사안들을 토론하고 심의한다. 요컨대, 스위스에서는 정치적 주권자인 시민들이 사실상 최후의 발언권을 지닌다. 이 모든 것이 다른 민주주의 체제, 특히 중부 유럽에서 그렇지만,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가능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종종 스위스 사람들은 여러 다양한 레퍼렌덤 투표에서 용납할 수 없는 투표를 했다는 비난을 받곤 한다. 예를 들어, 1992년 스위스가 “유럽 경제 공간European Economic Space”에 가입하는 것을 거부했을 때 그랬고, 그 후 2001년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한 협상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을 때도 그렇다. 최근에 이탈리아 언론을 떠들썩하게 한 새로운 이슬람교 사원의 건설 금지(2009년)와 솅겐Schengen(유럽연합에 속한 26개국들로 서로 여권 검사 없이 국경을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다)협정으로 합의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왕래를 철회하기로 한 결정(2014년)도 있었다. 이 경우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필터”가 작동된다. 이런 몇몇 불쾌한 결정들은 다른 나라에서 늘 직접 민주주의의 적들의 이용을 당하는 반면, 그 밖의 수백 건에 달하는 다른 사안들에 대한 투표에 대해서는 전혀 주목하지 않고 언급도 하지 않는다. 스위스 사람들은 이민과 난민 관련 정치에서 원칙적으로 소수자 및 외국인들에게 개방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주관적인 이데올로기적 필터를 가동하여 스위스의 어떤 레퍼렌덤 투표의 결과에 대해 “잘못”되거나 “불의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투표 결과를 레퍼렌덤 도구 자체와 혼동하는 심각한 오해가 있는 듯하다. 직접 민주주의는 역사의 특정한 순간에 국민들 내부에 존재하는 입장을 반영하는 거울과 다름 없다. 비춰지는 모습이 싫다고 거울을 깨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외부에서 볼 때 정치적으로 주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때 스위스에서는 “긍정적” 결과와 “부정적” 결과가 교차한다. 스위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만, 세상과 사회 및 정치 개혁에 열려 있는 국민으로서
항상 최고의 전문가들도 깜짝 놀라게 만들 준비가 되어 있다.

스위스에서 실행된 직접 민주주의의 주춧돌은 이미 다른 많은 나라로 이전되었다. 1900년대 초 미국 서부의 연방 주들은 공공연히 스위스의 모범을 따라 주와 기초자치단체 차원에서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요소로서 국민발안와 헌법상의 레퍼렌덤을 시작했다. 일단 미국 연방 24개 주들이 이 권리를 적용한다. 세계적으로 37개국이 적어도 일부 이 참정권을 갖추고 있다. 또한 여러 대표단과 관료들도 매년 스위스를 방문하여 직접 민주주의 운영을 담당하는 기관들을 둘러보며 그 기능을 연구하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는 현대적인 개념이며, 성공적이고 수출에 적합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적어도 150여 년간의 경험으로 스위스는 레퍼렌덤 권한이 모든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 적용 가능함을 보여준다. 의심할 여지없이 스위스에 비해 이탈리아는 모든 차원의 레퍼렌덤 권리에서 매우 뒤쳐지고 있다는 것이 보고된다. 이탈리아에서 주 차원의 직접민주주의는 스위스의 칸톤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종종 직접 민주주의와 관련된 토론에서 스위스의 모델은 다른 곳으로 이전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스위스의 모든 법령을 그대로 베껴 쓸 필요는 없더라도 이 시스템의 기반을 이루는 주춧돌은 참고로 하여 이탈리아 민주주의의 개혁을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위스적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스위스에서 일관된 형태로 실행된 보편적 직접 민주주의의 모델이 존재할 뿐이다. 이 보편적 모델의 다양한 요소들이 이탈리아에서도 적어도 기초적인 형태로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확정적 (헌법상의) 레퍼렌덤, 정족수제로, 낮은 진입 장벽, 주 정부의 심의에 대한 레퍼렌덤, 몇몇 특별자치주에서 실시하는 제안적 레퍼렌덤 등이 그것이다. 어쨌든 이런 권리들은 대개 제대로 규범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러니 이탈리아 사람을 스위스 사람들로 바꿔놓자는 것이 아니라 세계 모든 민주주의 체제에서 실행할 수 있는 법규를 이탈리아에서도 실시하자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잘 법제화되고 시민들에게 유리한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더 스위스화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더 민주적인 나라가 될 것이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금, 2020/02/1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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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란 : 유라시아의 중원

21세기의 20년대가 사납게 출발했다. 다음 십년을 예고하는 첫 사건은 1월 3일, 전격적인 드론 공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을 받들어 이라크 주재 미군이 술레이마니를 정밀 사살한 것이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사령관이었다. 혁명수비대는 일국의 군대, 국군을 능가한다. 이슬람혁명의 사수대로서 문명의 호위병 노릇을 해왔다. 응당 그 활동 반경 또한 국경을 훌쩍 넘는다. 나라 밖 특수작전을 전담하는 쿠드스(Quads)군을 이끌어온 인물이 바로 술래이마니였던 것이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부터 시리아와 레바논까지 광활한 지대를 통솔해왔다. 공식적으로는 군인이되 최근에는 외교관에 준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이라크와 시리아, 레바논과 예멘 등에 이란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와의 관계 개선에도 앞장선 인물이다.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후원하고, 레바논의 헤즈볼라 정권을 지원했으며, 예멘의 민병대를 훈련시킴으로써 내전의 종식도 견인했다. 이번에도 레바논을 방문한 후 민항기의 정기편으로 이라크에 들어왔다. 외교여권으로 입국심사를 받고 바그다드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돌연한 무인기 공습으로 사망한 것이다.

테헤란의 술레이마니 장례식

미국의 해명은 뻔뻔하다. 지난해 4월, 혁명수비대를 테러집단으로 선포했단다. 일방적으로 술레이마니를 테러집단의 수뇌, 테러리스트로 간주한 것이다. 실상은 정반대이다. 알카에다와 IS 퇴치에 최선봉에 섰던 조직이 혁명수비대였다. 바그다드 방문 역시 이라크가 중재하는 이란과 사우디의 화해 교섭을 진척시키기 위해서였다. 작년 가을부터 이라크는 사우디와 이란의 화해를 중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사우디가 이라크를 경유하여 이란에 친서를 보냈고, 그에 화답하여 사우디 국왕에게 전하는 답신을 전하기 위하여 술레이마니가 방문한 것이다. 당일 오전에는 특사 자격으로 이라크 총리 압둘 마흐디와의 회동이 예정되고 있었다. 그 직전에 암살 작전을 단행한 것이니, 미국의 의중은 명확하다. 이란-이라크-사우디로 이어지는 중동의 안정화에 급제동을 건 것이다. 무엇보다 수니파의 선봉국가 사우디와 시아파의 지도국가 이란의 협력 모색을 좌시할 수 없었다. 양 나라는 다툼을 지속해야 한다. 두 종파는 갈등을 계속해야 한다. 중동은 대분열체제를 이어가야 한다. 종횡무진 이슬람 문명권의 안정과 대통합을 도모하는 술레이마니는 필히 제거되어야 하는 눈엣가시였다.

 

2. ‘중동’과 ‘서남아시아’

카메라를 줌아웃해볼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의 심층에 가닿기 위해서는 유라시아 전체를 거시적으로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 사우디와 이란의 화해를 중재했던 이라크의 행보를 더 큰 판도에서 조감해 보아야 한다. 술레이마니를 맞이하던 압둘 마흐디는 작년 9월 중국을 방문했다. 이라크 재건 펀드를 조성하여 인프라를 재정비하는 대규모 계약도 체결했다. 중국 방문 직전 8월에는 시리아와 이라크의 국경을 다시 여는 조치도 취했다. 이란, 이라크, 시리아의 삼국회담에서는 역내 교통망과 교역망의 정비와 확충을 ‘실크로드 부활’이라는 더 큰 프로젝트와 연동시키기로 했다. 진즉에 내전 이후의 시리아 재건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이라크를 경유하여 시리아의 지중해까지 이르는 철도와 도로와 송유관 등 인프라 건설 계획이 입안되었다. 즉 중국의 일대일로와 연결하여 중동의 새 질서를 만들어가는 큰 그림이 그려졌던 것이다. 따라서 이란의 혁명수비대 또한 알게 모르게 일대일로가 이슬람권으로 확장되는 첨병 역할을 수행해 왔던 셈이다. 아프가니스탄부터 레바논까지 이슬람권역이 안정되면 될수록 일대일로 사업 또한 더욱 탄력을 받게 된다. 고로 술레이마니 폭살 또한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합장을 견제하는 지역적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유라시아의 동과 서를 상징하는 페르시아제국과 중화제국의 대합창을 겨냥하는 지구적 사건이었던 것이다.

중국-이라크 정상회담

실로 지각변동이 한창이다. 20세기 후반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체제가 오일-달러에 기초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지하자원 석유와 미국의 화폐인 달러를 긴밀하게 결박시켜 국제경제를 좌지우지했다. 석유를 수출하는 나라도 수입하는 나라도 미국에 종속시키는 절묘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오일과 달러의 연결고리는 이미 끊어졌다. 미국은 더 이상 중동의 석유를 수입하지 않는다. 셰일혁명으로 에너지 자립국을 지나 수출국으로 전환하고 있다. 사우디 국왕이 2016년 아시아의 인구대국을 순방하고 2017년에는 러시아까지 방문하여 새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라크 역시도 가장 많은 석유를 수입하는 중국과 협력하며 석유와 인민폐를 교환하는 오일-위안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항상적인 경제 제재를 감당하고 있는 이란은 오일-위안 교환이 익숙한지 이미 오래이다. 러시아와 천연가스나 무기를 거래하는 나라들은 루블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인도와 이란 사이의 무역 결제는 루피가 활용된다. 유라시아 국가들의 내부 거래에서 탈달러화 흐름이 도저한 것이다.

군사적으로는 북방제국 러시아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붕괴 직전의 시리아가 기사회생한 것도 러시아의 개입 탓이었다. 이라크에서 IS 잔당을 퇴치하는 데에도 러시아 공군의 역할이 다대하다. 지상에서는 이란이 후견하는 민병대의 역할이 두드러지고, 천상에서는 러시아의 공습이 보조를 맞추고 있다. 이로써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적대적 공생’을 유지해왔던 IS도 알카에다도 동반퇴진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으로 21세기 20년 내내 이어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등지의 내전과 혼란은 러시아와 중국과 이란의 전 방위적 협력에 의해 안정 국면으로 반전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자국 영토에서 일어난 술레이마니 암살에 아연실색한 이라크 의회는 미군철수 요구를 가결시켰다. 그 공백 역시도 러시아와 중국과 이란이 채워나간다.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유라시아 대연합전선이 구축되고 있는 것이다.

실크로드와 페르시아

이란은 지정학적으로 유라시아의 동과 서, 남과 북을 잇는 허브국가였다. 역사적으로 이란 고원은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의 일부를 포함했으며, 동쪽으로는 신장을 잇고 서쪽으로는 아나톨리아까지 아울렀다. 서쪽으로는 로마제국과 오스만제국, 북쪽으로는 몽골제국과 러시아제국, 동쪽으로는 중화제국, 남쪽으로는 인도의 여러 제국 사이에 페르시아제국이 자리했다. 페르시아의 고도(古都) 페르세폴리스에 괜히 ‘만국의 문’이 자리했던 것이 아니다. 유라시아의 모든 연결망이 이란 고원과 교통하고 소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이란을 유라시아의 만국과 다시 연결시키느냐, 아니면 중동의 일국으로 봉쇄하고 고립시키느냐, 신유라시아의 뉴그레이트 게임이 후끈 달아오른 것이다.

페르세폴리스의 만국의 문

서방의 입김이 약해지고 동방과의 혈로가 다시 두터워지면서 지리 감각 또한 급변한다. 대영제국의 지정학적 호명이었던 ‘중동’(Middle East)은 오늘날 영국의 흐릿한 처지만큼이나 존재감을 잃어갈 것이다. (재)부상하는 아시아의 서남부, ‘서남아시아’(Southwest Asia)로 재정초 되어 갈 공산이 크다. 동북아시아 또한 유라시아의 동단일 뿐이며, 서유럽 또한 유라시아의 서쪽 반도로 접수하는 감각의 전환이 시급한 것이다. 그야말로 지구본을 빙글빙글 돌리며 지구적 시야로 동서남북 천하의 대세를 살필 수 있는 너른 안목이 요청된다. 앞으로 2주에 한 번씩 유라시아 곳곳의 현황을 깊고 넓게 짚어보는 복안을 함께 연마해 보기로 한다. 구대륙 아프리카와 신대륙 아메리카를 잇는 유라시아는 이미 21세기 지구문명의 중원이다. 동북아의 개마고원부터 서남아의 이란 고원을 잇는 ‘천개의 고원’ 가운데 파미르 고원이 자리한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길이 닦이고 엮이고 있는 ‘지구의 지붕’으로 이동해본다.

금, 2020/03/06-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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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의 주택 중간가격은 1백만 달러(약 11억 6천만 원)를 훌쩍 넘었다(“Life on the Dirtiest Block in San Francisco,” New York Times, October 8, 2018). 트위터와 우버 같은 세계적인 기업의 유치를 집값 폭등의 탓으로 흔히 돌리곤 한다. 그곳엔 일자리가 있고 일자리를 얻는 이들이라면 거주할 곳이 필요하니까. 그러나 지금의 터무니없이 오른 가격은 그것로만으로는 충분히 설명이 안 된다. 그렇다면 그 가격을 누가 왜 어떻게 올렸을까? 거기에 누가 일조하고 그 큰 그림을 누가 그렸는가? 그 큰 그림의 승자와 패자는 누구인가? 그것을 따져 보는 것이 이번 편의 목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미국의 부동산 시장에서 적용된 ‘자유주의 정책’과 직결되어 있다.

이를 위해 힌트를 주는 장면 하나를 먼저 보자.

 

임차인과 사모펀드

#장면 1.

2018년 11월 어느 날 일군의 시위대들이 캘리포니아의 산타모니카(Santa Monica)의 한 회사 사무실 앞으로 몰려가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그 회사는 뉴욕에 본사를 둔 사모펀드 블랙스톤(Black Stone)의 지부이다. 이들은 ‘법률개정안 10(proposition 10)’―일종의 임대차 보호법안 통과―이 좌절되자 이에 항의하기 위해 여기로 모여든 것이다.(“Protesters arrested during Santa Monica rally over rejection of Prop 10,” ABCNews7, November 8, 2019). 도대체 사모펀드와 임대법이 무슨 관련이 있기에 그럴까?

“집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구호를 들고 임대차보호법지지 시위를 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민들 <출처: AP>

그 답은 간단하다. 사모펀드 블랙스톤이 바로 주택임대사업을 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런데 보통의 임대업이 아니니까 문제다. 영국의 매체 가디언은 캘리포니아 주에서의 주택 가격과 임대료가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매체는 이것을 ‘성층권 가격’stratospheric price이라고 묘사했다. 얼마나 높이 치솟았으면 성층권이라는 것일까?) 서민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는데 그 원흉이 바로 블랙스톤을 위시한 사모펀드라고 콕 짚어 지적하고 있다.(“How California public employees fund anti-rent control fight unwittingly,” The Guardian, October 23, 2018). 도대체 미국의 임대주택 시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것은 블랙스톤을 위시한 사모펀드가 어떻게 서민들의 삶을 작살냈는지를 살펴보는 것을 의미한다.

 

부동산 업계의 최강 제국, 사모펀드 블랙스톤

스티브 슈워츠만(Steve Schwarzman) 블랙스톤 회장은 2015년 가을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에 “블랙스톤이 현재 세계 제일의 부동산 소유주다”라고 선언했다.(“Blackstone is now ‘the largest owner of real estate in the world’,” Business Insider, November 16, 2015). 그의 말은 허튼 소리가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제시한 다음의 도표를 보라. 그야말로 부동산업계의 제국 중 제국이 바로 블랙스톤이다. 도표는 2010년에서 2015년 사이에 부동산 업계에서 선두를 달리는 10개의 사모펀드를 보여준다. 블랙스톤은 그 중 최강으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도표: 부동산시장의 선두 그룹 사모펀드 현황>

설명: 2010년~2015년 동안 부동산 투자 총액으로 본 사모펀드 선두 그룹의 순위. 블랙스톤이 약 470억 달러(약 55조 원)로 단연 업계 1위이고 그 다음이 스타우드, 론스타가 있다. <출처: 파이낸셜타임스>

어느 정도라 회장이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일까? 블랙스톤은 2012년 7월 기준 미국 14개 지역에 86억 달러 들여 44,000채의 주택을 구입했고, 2019년 6월 현재 17개 지역에서 80,000채를 보유한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부동산업체다. 그런데 부동산은 원래 블랙스톤(Black Stone)의 주력 사업이 아니었다. 했다 해도 상업용만 조금 손댔을 뿐이다. 그러나 2012년부터 전략을 확 바꿨다. 부동산에 주력했고 그것도 상업용 보다는 일반 주택에 꽂혔다. 그런데 그것도 주택을 사고 파는 것이 아닌 임대사업으로.

블랙스톤은 가격이 대폭락한 지역의 은행에 압류된 집들을 대거 매입해서 되팔기보다는 임대사업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채택했다. 알다시피 사모펀드는 현금총알(loads of cash)이 두둑한 재력가들(deep-pocketed investors)로 이루어진 자본 제국이다. 게다가 이 제국은 ‘임대주택증권’(rental-home-backed security)을 발행해 더 많은 자금을 끌어 들여 헐값에 내 놓은 주택들을 아귀처럼 쓸어 담았다.

 

그라운드 제로는 애리조나 주, 피닉스

그런데 블랙스톤이 맨 처음 임대사업 시작한 것은 캘리포니아가 아닌 애리조나 주의 피닉스(Phoenix, Arizona)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피닉스가 2008년 이후 주택가격이 정점에서 2011년 무려 60%나 떨어진 대폭락 지역이기에 그렇다.(“The Future of Housing Rises in Phoenix: High-tech flippers such as Zillow are using algorithms to reshape the housing market,” Wall Street Journal, June 19, 2019). 둘째, 막대한 이익을 노리는 사모펀드에겐 그저 수십 채의 주택 매집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대량매집이 훨씬 남는 장사이니까. 대량매집의 최적지가 바로 피닉스였다. 왜냐하면 피닉스는 뉴욕과 보스턴 같은 대도시가 아니니 원래부터 주택가격이 높았던 지역이 아니다. 대도시는 아무리 거품 붕괴로 주택 가격이 떨어졌다고 해도 피닉스처럼 대량매집이 불가능하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지 반대로 되기는 어렵다. 그처럼 부동산 초짜들이 사업에 손을 대기에는 원래 가격이 낮았던 데다가 거품까지 꺼져 대폭락까지 한 피닉스만한 데가 없었다.

블랙스톤을 위시한 대형 임대주택투자자(큰손)들은 피닉스를 발판(그라운드 제로)으로 하여 조지아 주 아틀란타(Atlanta, Georgia)와 텍사스 주 달라스(Dallas, Texas)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이제는 미국 전역에서 30만 채 이상을 싹쓸이 하고 있다. 물론 캘리포니아도 포함된다. 몸집을 불렸으니 총알은 탄창에 두둑한터. 그 때문에 로스엔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압류된 주택들의 대량매집도 가능하게 됐다. 게다가 이들은 주택공급이 부족한 시장을 선택해서 지역 건축업자들과 결탁해 자신들만을 위한 주택을 짓는 이른바 ‘핀셋 건축’ 꼼수 부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The Future of Housing Rises in Phoenix: High-tech flippers such as Zillow are using algorithms to reshape the housing market,” Wall Street Journal, June 19, 2019).

 

2008년 이후는 사모펀드 세상

2008년 이후는 그야말로 사모펀드의 세상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월가의 대형투자은행은 어느 정도는 감시의 대상이 된 듯 보였다. 적어도 그런 것처럼 시늉을 냈다. 그러나 월가에 기반 한 사모펀드는 거기서조차도 완전히 빗겨 나있다. 그래서 설사 밑천이 별로 없어도 초저금리 거래가 가능해 얼토당토않은 사업 구상도 현실화 할 수 있었다. 수익률에 걸신들린 투자자들이 냄새를 맡고 사모펀드로 마구 유입되었다. 감시와 규제가 없는 곳, 그것은 투기꾼들의 천국이다. 그것은 새로운 월가의 블랙홀이다.

사모펀드의 경영 전략은 매우 단순하다. 사모펀드가 부채를 안고 기업을 인수 한 후 값을 최대한 올려 매각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것을 투자자에게 배분한다. 수익이 난다는 소문이 나면 날수록 돈은 몰려들게 되어 있다. 이른바 차입매수(Leveraged Buyout). 사모펀드가 매수 대상의 자산과 수익을 담보로 은행에서 자금을 차입하여 매수합병을 하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현재 가진 돈 없어도 인수할 기업을 위해 빚을 지고 기업을 인수한다. 그러나 그 빚은 인수 대상에게 떠넘기고 바이, 바이! 망해가거나 저렴한 기업 인수한 뒤 분칠 살짝 해서 또 다른 구매자에게 팔아치운다. 거기에 비상장회사가 상장회사를 사서 합병하는 우회상장도 당연히 포함된다. 그러면 이를 주도한 사모펀드는 엄청난 수익을 창출한다. 때로 이것을 넘어 사모펀드는 매수한 회사의 직접 경영에 손을 대서 인수 기업에 “감 놔라 배 놔라”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수기업에 대한 애정을 갖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오직 목적은 수익창출. 그것도 막대한 수익창출. 수익이 나면 곧 바로 미련 없이 떠난다. 다른 먹잇감을 찾아서.

 

블랙스톤의 2인자 존 그레이 좌우명

블랙스톤은 임대주택 사업을 자회사 인비테이션 홈즈(Invitation Homes)를 통해 시행해 천문학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 그 책임자는 현재 블랙스톤의 2인자, 존 그레이(Jon Gray). “절대로 적게는 먹지 않는다. 크게 먹는다. 그것도 상상이상으로 왕창!”이라는 좌우명을 갖고 사는 월가 사람이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신부동산부호(the new property barons)’라고 칭한 그는 다음과 같이 인터뷰 한 바 있다.

“나는 성공의 취약성을 안다, 그것은 [아버지 다이달로스(Daedalus)의 경고를 무시하고 밀랍의 날개로 날다 태양에 너무 접근해 밀랍이 녹아 바다에 떨어졌다는 인물] 이카루스(Icarus)와 같다. 나는 내 무덤에 ‘그저 상당한 내부수익율(internal rates)을 올렸을 뿐’ 이라는 묘비가 적히길 원치 않는다.”(“Investment strategy: The new property barons,” Financial Times, April 4, 2016).

임대주택 사업에 뛰어들어 사모펀드 블랙스톤을 세계 부동산업계 1위에 올린 존 그레이. 그는 웬만한 수익은 성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상상이상의 수익만을 추구한다고 공공연히 천명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그가 블랙스톤의 자회사 인비테이션 홈즈를 통해 손댄 임대주택사업이다. <출처: 파이낸셜타임스>

가히 그저 고만고만한 성공은 성에 안 찬다는, 즉 확실한 대박만을 노린다는 거대 탐욕의 노출 선언이다. 그것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존 그레이의 투자 철칙: 바이(Buy), 픽스(Fix), 앤드 셀(Sell).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미국의 단독 주택 가격은 절반 이하로(40~70%) 수직 하강했다. 특히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가 심했다.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었던 대표적인 곳이기에 그렇다(왜 그곳이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었는지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거품이 갑자기 꺼지고 모든 이들이 부동산 시장에서 손을 털 때, 존 그레이는 역발상으로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즉 매매가 아닌 임대사업으로. 돈 버는 데는 가히 천재적이다. 왜냐하면 당시엔 아무리 집이 헐값에 나와도 구매할 사람들이 없었으니까. 투자처로서의 매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진짜로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대출 자격 요건이 안 돼서 못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으니까 그렇다.

이것을 간파한 자가 블랙스톤의 존 그레이다. 그는 이런 이들이 발걸음을 옮길 곳이 임대주택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자가가 아니면 월세를 살아야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니까(미국엔 전세가 없다). 그래서 그간 등한히 해 온 부동산 사업에, 그것도 전혀 해 본 적 없는 임대주택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뛰어들자마자 바로 압류된 주택 시장의 최강자로 등극했다. 그의 예감은 적중했다. 그것을 파이낸셜타임스가 제공한 도표에 잘 보여준다. 임대주택 비율이 금융위기 이후 대폭 상승했기 때문이다. 2005년 33%에서 2014년엔 37%로 증가했다. 2014년 현재 1천 5백만 가구가 임대하고 있다. 그러면 그 이전에는 왜 임대사업이 월가의 큰손들의 구미를 당기지 못했을까? 그것은 시장규모가 작았기 때문이다. 2005년 당시에는 1천 2백만~3백만 가구만 임대해 거주했기 때문에 큰손 투자자들의 눈에 들어오지 못했다. 월가의 제국들은 적당히 먹는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탐욕에 찌든 야수들에겐 먹잇감도 덩치가 커야 덤벼들 가치가 있으니까.

<도표: 미국 자가주택 대 임대(월세)가구 구성 비율 현황>

설명: 2005년에 임대가구는 33%인데 비해 2014년에는 37%로 4%p 더 증가했다. <출처: 파이낸셜타임스/미 인구조사국>

그레이의 임대주택 투자 전략도 사모펀드의 기본 경영 방침과 그대로 일치한다. 매수대상을 헐값에 차입매수 해서, 약간 분칠해 매각하듯, 임대주택도 개당 헐값에 대량매집해서(buy), 25,000 달러(약 3천만 원) 정도 들여 간단히 손 보고(fix), 임대(sell)하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부동산업계의 절대 강자가 되었다(“Investment strategy: The new property barons,” Financial Times, April 4, 2016; “Jonathan Gray: The Man Who Revolutionized Real Estate Investing On Entrepreneurship In A Big Company,” Forbes, October 18, 2016).

 

규제 없는 곳에 우뚝 선 망나니 제국, 블랙스톤

그런데 임대가구가 늘어난 것은 이들 사모펀드 제국들이 그린 큰 그림 때문이기도 하다. 일종의 피드백효과라 할까? 이제 막 붙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니까. 이들이 주택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았기 때문에 그렇다. 대량매집 자체가 주택 가격 올려놓은 일차적 효과 가져온다. 그리고 대량매집으로 공급도 줄어든다. 그러면 실수효자들의 ‘내 집 마련’ 꿈은 요원해 진다. 천정부지로 오른 집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러니 임대가구가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미국만이 전 세계에서 ‘나 홀로’ 경기가 좋다고 말들 하는 데 앞의 사실의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일반 서민들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것은 왜일까? 규제 없는 곳에 어김없이 제국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즉 자유주의 정책은 망나니를 양산할 뿐이다. 이것의 한 가지 예를 지금 캘리포니아를 위시한 미국의 전 지역에서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모펀드의 난동으로 미국의 집값이 하늘로 치솟는 폭등을.

 

내부의 적에게 강탈당한 영토

모든 전쟁은 궁극적으로 영토를 차지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미국의 사모펀드는 이 전쟁에서 백전백승의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자. 사모펀드는 미국의 외부의 적인가? 내부의 적인가? 내부의 적이 승승장구하는 곳엔 자멸이 다음 수순이다. 하긴 서민들의 주거안정성이 파괴되는 마당에 그런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그러니 미국은 더 이상 외부의 적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호들갑은 떨지 말기를….

그렇다면 사모펀드가 집값만을 올려 서민들을 괴롭히고 있을까? 결코 아니다. 모든 제국은 하나를 주면 열을 달라하는 법. 하나에 만족하는 신사 제국은 없다. 다음은 임대업에 뛰어든 사모펀드에 의해 피를 보고 있는 임차인들의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미리 살짝 결론만 말해주고 이 글을 마치고 싶다. 사모펀드가 대량매집 하는 데 아무런 규제가 없듯이, 임대업을 하는 데도 아무런 규제가 없다. 오직 그들이 맘대로 활개를 칠 수 있게 만든 자유주의 정책들만 있을 뿐이다.

 

<참고자료>

“Blackstone is now ‘the largest owner of real estate in the world’,” Business Insider, November 16, 2015.

“Life on the Dirtiest Block in San Francisco,” New York Times, October 8, 2018.

“How California public employees fund anti-rent control fight unwittingly,” The Guardian, October 23, 2018.

“Protesters arrested during Santa Monica rally over rejection of Prop 10,” ABCNews7, November 8, 2019.

“Jonathan Gray: The Man Who Revolutionized Real Estate Investing On Entrepreneurship In A Big Company,” Forbes, October 18, 2016.

“Investment strategy: The new property barons,” Financial Times, April 4, 2016.

“The Future of Housing Rises in Phoenix: High-tech flippers such as Zillow are using algorithms to reshape the housing market,” Wall Street Journal, June 19, 2019.

수, 2020/01/0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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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새로운 10년(decade)의 시작에 들어 왔다. ‘20년대’가 시작되면서 대다수 사람들은 20년대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게 되었다. 현대사에서 매 10년은 더 포괄적인 역사적 서술로 엮인 저명한 상징, 사건 및 주제로 정의되는 경향이 있다. 비록 주어진 사건 또는 발견의 이면에 있는 요소들이 더 오래 지속되거나 깊이 뿌리 박혀 있을지라도 말이다. 예건데, 세계는 1940년대를 전쟁 및 파멸의 시기로, 1960년대를 반체제 문화 및 반항의 시기로, 1990년대를 새로운 ‘현대성’의 시기 등으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역사는 2010년대를 어떻게 돌아볼 것인가? 필연적으로 역사는 항상 나중에서야 깨달음을 주기 때문에 현재의 대답은 불가피하게도 미완성이다. 우리는 세계가 아직 이루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미래 역사가들이 회고할 수수께끼에 오늘날의 사건들이 어떻게 ‘들어맞을지’ 확실히 예상하거나 파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2010년대의 10년사가 1991년에 구축된 ‘자유주의적 합의’가 무너지기 시작한 시대로 개념화되어 역사의 예비 전환점(preliminary turning point in history)으로 회고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0년 동안 통합 및 조화로운 세계에 대한 꿈이 흐지부지 사라졌다.

온라인 대중 매체가 부상하면서 사회가 극적으로 변화하도록 촉진되었고, 성난 반체제 정치 및 정체성 갈등이 뒤끓던 서구에 새로운 형태의 불만을 매개했다. 세계화는 역행했고, 10년이란 시간은 한 때 역사에 국한된 것으로만 여겨졌던 거대한 패권 경쟁이 재현됨에 따라 결국 퇴색되었다.

2010년대는 ‘소셜 미디어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소셜 미디어가 정식으로 출시된 시기는 그보다 10년 전이지만, 페이스북(Facebook), 트위터(Twitter) 및 기타 미디어는 스마트폰이 등장함에 따라 세계 문화로 확고히 통합되었는데 이런 현상은 최근 몇 년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바로 이 장치 곧 스마트폰은 수십억의 인생을 영구적으로 바꾸었고 기존에 시간 할당제로 편리함을 주었던 인터넷을 일상 활동 자체의 본질적 요소로 이에 맞게 편리해질 수 있도록 탈바꿈시켰다. 소셜 미디어는 그 자체가 없는 상황을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전 세계 사회에 융합되었다.

결과적으로 대중 소셜 미디어의 부상에는 심오한 정치적 영향이 있었다. 기존 언론매체를 벗어나,이제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견해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새로운 플랫폼과 방식이 생겼다. 그 동안 자주 소식을 접할 수 없던 사람들도 오늘날에는 수백만 명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신문, 텔레비전과 같은 전통적인 매체를 넘어 사람들의 정보원 및 연락망이 다양해졌다.

자연스레 이러한 매체가 없었다면 사회에서 고립되고 소외되었을 이들이 새로이 불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가 생겼다. 2008년 서양 국가들에서 벌어진 금융위기라는 사건과 뒤따른 긴축 재정에 대해 사람들이 소식과 견해를 공유하면서 분노하고 환멸을 느끼게 되었고, 정치가 양극화되기 시작했다.

정치가 양극화되고, 좌파 및 우파의 새로운 움직임이 대중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회에 영향을 미치면서 1991년 이후의 소위 ‘자유주의적 합의’가 산산조각이 났다. 새로이 부상한 포플리즘 운동은 현 상황을 유지하고자 하는 엘리트 계층과 권력 계층을 공격했고, 결과적으로 전세계 곳곳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선거 결과를 야기했다. 이제 ‘중도 정치’를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2010년대는 브렉시트, 도널드 트럼프 등으로 기억되는 시대가 되었다. 확실하게 인지된 세계화의 불확실성 속에서 급속히 형성되는 대중의 불평을 무기 삼아 나타난 현상들이다.

미국 내 변화는 지정학적 파급력을 지닌다. 이른바 1991년 자유주의적 성향을 지닌 서구의 승리가 더 이상의 영향력을 상실하자, 변화하는 세계를 중심으로 엄청난 불안과 불확실성이 자리잡았다. 정치인들은 정치적 문제, 불평등 및 자신들의 실패에 대해 새로운 희생양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에 부상하는 포플리즘을 이용하여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두려움이 조직적으로 자리잡도록 악용하였다.

미국 엘리트 계층은 트럼프 대통령의 부상이 러시아의 잘못이며 모스크바가 소셜 미디어의 거대 기업을 활용하여 편집증을 유발시켰다고 비난했다. 이런 대외 의혹 풍토 속에서 정작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중국에 대한 공포와 미국의 ‘강대국 패권 경쟁’의 부활을 조성하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라는 문구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이것이 2010년대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그것은 2010년대가 불확실성과 불안정의시대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고 시사한다.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으로 소셜 미디어 문화가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성난 포플리즘적 민족주의로 변모한 서양사회에 새로운 불안정을 초래했다.

미국은 세계에 대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점점 더 편집증적이 되었다. 이후 미국은 공격적으로 두려움을 유발하고 지정학적 투쟁을 추구하며 오랫동안 유지된 팍스-아메리카나를 여전히 갈망함으로써 실패로부터 벗어나 다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던 시기였다.

 

톰 포우디(Tom Fowdy)

중국 국영방송 CGTN 칼럼니스트

옥스포드 대학교의 중국학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더럼 대학교에서 정치학 전공

목, 2020/01/1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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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태문명의 비전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반드시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다른 어떤 가치도 그 비전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삶의 중심에 있는 가치이며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일의 핵심이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아름다움을 자기 철학의 중심에 두었다. 그는 관계적 관점에서 세계를 설명했으며 이런 관계들이 “아름다움의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미적 사건들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아름다움의 생산”이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면 아름다움이라는 원리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를 견고하게 재구조화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현대 서구 문명의 지배적 패러다임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이 “보는 사람의 눈”에 달린 것, 단지 의견에 그치는 판단이라고 믿게 됐다. 그래서 아름다움을 피상적이고 사소한 특성으로, “오직 피부 두께”로 거론한다. 이런 가르침은 아름다움을 공공생활에서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예술세계에서는 아름다움이 줄곧 논쟁적인 주제였지만 대개는 화장품, 패션, 성 상품화, 소비자 마케팅의 영역에 갇혀 있었다. 그래서 아름다움이 공공정책, 지방정부, 경제발전, 교육, 공공보건, 환경보호에서도 고려할 가치가 있는 주제라고 제안하는 일은 당황과 조롱 사이의 어디쯤에 있는 무미건조한 감정을 끌어낸다.

자연세계와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에서도 아름다움에 대한 현대성의 편견이 그대로 유지된다. 토지이용계획을 세울 때 산책로를 만드는 것과 건물을 짓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한다면 우리는 미적 결정을 내린다. 구역설정, 쓰레기처리, 대기질과 수질에 대해서도 비슷하다. 물론 우리의 도덕적 코드와 문화적 관계에는 미적 차원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름다움의 사소함을 확신하기 때문에 이런 결정에서 아름다움을 여러 요소 중 하나로 경시한다. 그 결과는 우리 도시와 집들이 싸고 투박하게 지어짐으로써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직접적 경험을 퇴화시키는 비타협적 법칙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생태적 패러다임의 본질이다

사실 아름다움은 생태적 패러다임의 본질이다. 아름다움은 현대 산업기술 자본주의 세계관의 핵심에 도전해 생명을 부정하는 원리와 가정을 소환하는 가치체계이다. 아름다움은 생명체에 내재하는 생동감과 관련이 있으며 존재들간의 관계에서 강화된다. 생명을 긍정하는 관계는 가치를 가지며 아름다움은 우리가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아름다움은 생명, 그리고 생명의 경험들과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가치이며 그래서 다른 존재들의 활기와 연결된 우리 자신의 활기를 북돋운다.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실재를 좀더 정확히 설명하는 포스트 기계론의 패러다임을 구상할 때 아름다움을 고려할 것을 요구한다. 기계론의 반생명성에 대항하기 위해 화이트헤드는 느낌의 형이상학을 제안했고 관계의 느낌을 실재의 가장 기본으로 설정했다. 느낌을 다시 도입하는 것은 기계론의 가정들과 현대사상의 경로에 대항하는 생각들을 순차적으로 끌어낸다. 느낌은 주체성을 요청하고 주체성은 자유, 새로움, 목적, 가치를 요청한다. 생명이 다시 세계로 돌아오는데 이는 생존을 위한 혼란스런 돌진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향한 궁극적 목적으로서의 회귀이다. 화이트헤드는 “아름다움, 도덕적이고 미적인 그것은 존재의 목적이다”(Cited in The Philosophy of Alfred North Whitehead, Paul Arthur Schilpp, editor (La Salle: Open Court, 1941 and 1951), p. 8)라고 썼다.

 

조직의 원리이자 목적으로서의 아름다움

이런 방식으로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예술에 국한돼온 아름다움이 확장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현대 세계에서는 공공영역에서 아름다움에 기울이는 작은 관심이 오로지 예술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공공예술 지원은 공공조각, 벽화, 간판 같은 형식적 활동에 그친다. 그러나 아름다움이 “존재의 목적”으로 이해된다면 세계의 구조와 과정이 생명을 긍정하고 의도적으로 “생명의 생생함”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이끄는 비전을 제시하게 된다. 아름다움은 이런 저런 물질적 형태가 아닌, 문화적 커먼즈를 창조하는 조직 원리로서 우리의 공공영역에 다시 들어와야 하며 전반적인 삶의 실천이 돼야 한다.

생태적으로 건전하고 사회적으로 공정한 새 패러다임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실재의 구조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새로운 형이상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오랫동안 인식해 왔다. 그러나 그들조차 지속가능성과 아름다움이 어떤 관계인지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환경에 대한 글과 함께 제시된 이미지가 아무리 우리의 마음을 열고 “이 아름다운 세계에 등을 돌리지 마시오”라고 외치도록 만들더라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아름다움의 역할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토론을 위한 시각적 자료 이상으로 활용되지 않으며 기계론과 유물론의 형이상학을 전복하는 일의 중요성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이것은 아름다움이 실재가 아니거나 우리가 아름다움의 부재에서 괴로움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아름다움의 가치를 고려하지 않도록 훈련 받아왔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조직의 원리로서 다시 도입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생태적 패러다임을 향해 움직이려는 노력을 기울여도 여전히 현대적 패러다임에 속박된다. 지속가능성이라는 목표에 접근하는 지배적 방식도 현대성에 명백하게 붙들려 있다. 지속가능성이 공공의 논의에서 견인력을 가질수록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서 거의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 기술적 혁신으로 환원된다. 탄소저감기술이 우리의 제1세계 생활양식을 유지해주면서 기후붕괴를 피하는 놀라운 가능성을 갖는 지속가능성의 성배가 되어왔다.

에너지 절약과 재생 가능한 자원기술이 기후안정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에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는 자신에게 내재한 활력과 모든 존재의 가치를 긍정하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보다 넓고 깊은 토대가 필요하다.

 

지속가능성, 생명에 대한 긍정, 아름다움

“지속가능성”이란 단어는 인내를 최선의 목표로 제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더 큰 의도가 있다. 바로 번성에 대한 관심이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지구에서 끝없이 견디는가” 혹은 “우리가 어떻게 현재의 지위를 유지하는가”가 아니다. 지속가능성은 그것 자체가 목표가 되거나 에너지 절약과 재생 가능한 자원의 문제로 축소되면 안 된다.

지속가능성이란 개념의 핵심에는 가치, 그리고 무엇이 지속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공리적 질문이 있다. 그것은 (확실히 재생능력이 해답의 필수적 부분이기는 하지만) 단순한 지속을 넘어선 문제이다. 훨씬 위대한 미적-윤리적 비전이 아름다움과 선함이 융합되는 지속가능성의 실천적 작업을 제시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어떻게 하면 생명을 긍정하는 방식으로 살수 있는가”이며 이것은 “우리는 아름다움을 증진시키는 방식으로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도 같다. 그래서 지속가능성은 아름다움과 함께 번성하는 세계에 도달하는 실천적 지침이 된다.

아름다움을 생태문명의 점근선적 목적으로 만들 때 우리는 기계론을 유기체적 세계관으로 대체하는 일을 완성하게 된다. 아름다움을 다시 도입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정신을 만족시키고 고양시키며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의 주체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문명을 재형성할 수 없다.

 

아름다움을 실천하기

“실천(practice)”이란 단어는 영어에서 두 가지 품사-명사와 동사-로 쓰이지만 단수이며 의도적인 반복이란 특징이 있고 삶의 형태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실천은 바람이나 생각을 실용적, 기술적 활용으로 변형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실천”이란 단어의 어원은 그리스어 동사 “성취하다(accomplish)”에서 왔으며 “행동에 적합한(fit for action)“, “효과적인(effective)”, “활기 있는(vigorous)” 같은 단어들과 관련이 있다.

아름다움을 단순한 “우리의 경험”이 아니라 “생명의 구조의 일부”로서 세계에 돌려주는 일은 아름다움의 실천을 우리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만들려는 헌신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다. 음악에서 스즈키 메소드의 창시자인 스즈키 신이치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네가 밥을 먹는 날에만 (바이올린을) 연습하라.” 스즈키의 목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본사회를 아름다움과 도덕성으로 정의되는 국가로 만들어 재건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세계관을 재형성하려면 악기를 배우는 것처럼 엄청난 연습이 요구된다는 걸 알았다. 낡은 습관을 깨고 새로운 습관을 개발하려면, 새로운 자세를 유지하는 새로운 근육을 만들려면, 인식을 정화하려면, 새로운 느낌을 표현하는 언어능력을 얻으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아름다움을 실천에 옮기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출발점으로 4가지를 제안한다.

1. 아름다움으로 이끌라

현대성은 형식과 기능의 관점을 부과했는데 오로지 이런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기능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될 때는 효율성(시간과 비용 모두에서)만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형식이 기능에 종속될 때는 보다 큰 관계의 패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물질적 생산이란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이 계획이 세계의 아름다움에 어떻게 기여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면 기능과 형식은 삶의 위대한 경제를 책임지게 될 것이다. 이 경제는 관계의 전체성과 모든 행위가 전체성으로부터 나온다는 규칙에 기초를 둔다. 미적 문제를 우선으로 한다는 것(관계 없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 존재의 활기와 그 활기가 어떻게 전체의 활기에 기여하는지,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런 상호성이 핵심이다: 어두운 하늘의 별빛처럼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빛나게 한다. 화이트헤드가 든 사례는 샤르트르 대성당의 9개 문을 그린 조각작품이다: “이 조각들은 각각 아름다움을 지니면서 전체의 아름다움에 자신을 내어준다.”(Alfred North Whitehead, Adventures of Ideas (New York: The Free Press, 1933), p. 264) 아름다움으로 이끄는 것-삶을 긍정하는 관계로서 이해되는 아름다움-은 즉각 효율성과 금전적 이익을 넘어 생명체계의 활기로 관심을 확장시킨다.

서울의 1호 공공건축가인 승효상은 도시 디자인에 대한 자신의 접근법이 “재개발”보다는 “재생”이라고 설명함으로써 경제발전에서 재생으로 초점을 옮겨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다. 그의 구분은 1960년대 이후 서울에서 지배적이었던 서구 산업화 모델을 생태적이고 문화적으로 조율된 모델로 대체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승효상의 비전에 따르면 건축가들은 서울이란 장소의 독자성과 생기를 얻기 위해 서울을 둘러싼 8개의 산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는 도시를 “기억과 바람을 가진 살아있는 존재”라고 하면서 “존재하기보다 생성”하는 전체를 디자인하는 최우선 원리로서 전통 문화와 자연-기술과 건축가 개인의 육감이 아닌-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http://www.urbanista.org/issues/local-eyes/news/close-encounters-of-the-...) 세계에 존재하는 살아있음에 대한 그의 옹호(그리고 우리를 삶으로 데려가기 위한 도시 디자인에 대한 그의 헌신)는 생태문명을 형성하고 아름다움을 우리 삶의 조직 원리로 만드는 중요한 발걸음이다.

2. 느낌을 앎의 기초로 만들라

미학(aesthetics)이란 단어는 “느낀다”는 뜻이다. 어원은 그리스어인데 인식하거나 감각한다는 뜻이 들어있다. 반대말인 반미학(anesthetic)은 “무감각하다”는 뜻으로 감각을 무디게 만듦으로써 고통의 공포를 없애는 의학적 발전과 연관돼 대부분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친근한 단어이다.(번역자주: anesthetic은 마취제라는 뜻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느끼고 느낌을 갖는 것, 다른 사람의 느낌을 경험하는 것, 삶을 유지하는 일들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적 세계관은 실재의 구조에서 근본적인 것인 느낌의 부정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느낌, 주체성, 가치는 서로 통한다. 이것은 모두 기계론의 가정에 대한 평형추이며 삶의 형이상학을 향한 주춧돌이다. 살아있는 주체들의 세계에서 세계의 전체성과 세부를 동시에 알 수 있는 것은 철저한 느낌을 통해서이다. 상호적응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느낌이고 상호적응이 가져오는 생명을 긍정하는 결과-즉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도 철저한 느낌을 통해서이다. “무엇이 아름다움 혹은 아름다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느낌의 형이상학에 달려있다. 그래서 아름다움의 실천은 느낌을 근본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실천이자 느낌에 의해 구성되는 전체성에 대한 수용성을 배우는 실천, 그리고 타자와의 관계에서 우리 자신의 삶-정신을 느끼도록 자신을 훈련시키는 실천을 통해 우리의 인식이 보다 정교해지고 “언제나 우리를 둘러싼 것들을 우리의 눈이 볼 수 있고 우리의 귀가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실천이다.

3. 아름다움의 이름을 말하라

서구의 지배적 문화는 아름다움이 단지 주관적 의견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름다움을 개인적 스타일의 문제로 생각하도록 배우고 그것을 사적인 삶에 국한시켰다. 그리고 오직 합법적인 가치체계는 돈과 관련된 것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였다. 아름다움을 공공생활의 한 요소로 여길 때도 기껏해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름다움의 가치를 여행객들이 쓰는 돈이나 생태적 서비스의 형식으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아름다움이라는 게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간명한 대답을 할 수 없는데 당황할까 봐 걱정된 나머지 우리는 아름다움을 공공적 고려가 필요한 가치로서 언명하는 것을 자제해왔다. 같은 이유로 우리는 새로 들어서는 고층호텔이나 대규모 학생기숙사 프로젝트, 대형 조립식건물의 상점을 추하다는 측면에서 반대하지 않았는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그런 개발을 반대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이다.

아름다움은 세계에 있는 어떤 것, 그러나 단순히 우리의 사적 감각에 의해 구성된 것은 아닌 경험에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을 검열함으로써 우리 자신에게 심각한 장애를 만들었다. 공공 영역에서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부정하는 형이상학 체계에 굴복했다. 우리는 경제주의에 도전하기에 충분할 만큼 강력하고 만족스러운 비경제적 가치의 형식을 스스로에게서 빼앗았다. 가장 중요하게는 아름다움에 대한 침묵을 통해 우리는 세계를 파괴하는 일의 공모자가 됐다.

우리는 문화를 형성하고 문화적 가치를 강화하는 언어의 힘을 안다. 아름다움의 실천에서 중요한 부분은 모든 구조물, 시스템, 공동체 생활을 규정하는 과정에 대한 공공의 대화에 미적 판단을 다시 도입하는 것이다.

4. 아름다움을 가르치라

우리에게는 삶의 구조를 가치로 가득 찬 관계의 문제로 이해하는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STEM 교과목-과학, 기술, 공학, 수학-에 대한 현재 교육의 선호는 우리가 세계를 그토록 심각하게 파괴하도록 이끌어온 바로 그 사고방식을 계속 껴안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이 커리큘럼에 예술을 더한 STEAM 역시 이런 패러다임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모든 측면에 드러난 생명”(Alfred North Whitehead, The Aims of Education and Other Essays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repr. 1959), p. 10)을 주제로 삼고 삶의 전체성은 미적 과정, 즉 “생명의 생생함”에 기여하고 그것을 즐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생명과 생명의 상호적응을 통해 가장 잘 이해된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교육이 필요하다. 아름다움 중심의 교육은 예술, 예술감상 혹은 철학적 미학을 가르치는 게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철학과 느낌에 기반한 인식론에 기초를 둔 교육이다. (전체는 부분으로 환원시킬 때 가장 잘 이해된다고 가정하는) 환원주의적 방법론에 근거한 비판적 사고를 강조하는 논리 중심의 교육과는 대조적으로, 아름다움 중심의 교육은 전체가 부분보다 크다고 간주한다. 무엇보다 이것은 “세계의 활기찬 존재함”을 가정한다. 아름다움의 학습이 우리 대학에서 탐구주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산업적 패러다임에서 생태적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작업이 필요한지를 우리에게 말해준다.

 

결론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경시와 지구의 생명을 지탱하는 서식처의 변형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다. 현대성의 특징인 미적, 도덕적 무관심은 자연세계의 남용과 전반적인 생명에 대한 저평가에 기여한다. 우리의 형이상학, 언어, 교육시스템, 삶의 실천에 아름다움을 다시 가져오는 것은 우리가 생태문명을 창조하는데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샌드라 B. 루바스키

노던아리조나대학교 종교학과 명예교수

월, 2020/02/17-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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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아래의 칼럼은 다른백년에 자유롭게 수시로 기고하시는 김광수 박사의 글로 다른백년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선거를 앞두고 만절필동(萬折必東)과 그림책 <사자와 소년>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대의는 지켜지고, 정도(政道)를 넘어서는 감동이 이번 선거에서 꼭 연출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도 예외 없이 그런 대의존중과 감동은 없을 것이다. 선거라는 것이 언제나 그러하였듯이 정치교본에 따른 선거의미보다는, 정파의 입장과 각 정당들의 이해득실에 따른 현실의 문제로 더 압박해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비례위성정당문제이다. 애초 선거법 개정을 통해 얻고자 했던 등가성의 원칙과 소수정당에 대한 배려의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다수당이 되기 위한 이전투구만 남아있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이는 선거를 정치의 한 과정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이기고지는 게임의 문제’, ‘이익의 문제’, ‘프레임의 개념’으로 이해하다보니 필연적으로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게 되고, 이익이 걸려있다 보니 진영논리가 만들어져 네편·내편으로 나눠져 피터지게 싸울 수밖에 없고, 더해서 우월적 프레임으로 도그마(dogma)하여 승자·패자를 분명히 하려하다보니 승패만 남게 되어서 그렇다. 그렇게 상대방을 죽여야만 내가 사는 것이다.

선거가 이렇게 잔인하다.

연동되어져 진보와 보수를 떠나 과장된 언술과 정치적 선전선동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의도와 속임수는 다반사이고, 주의주장은 포퓰리즘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정도와 비(非)정도는 구분되지 않아 넘지 말아야할 선도 없다. 오직 있다면 유권자와 후보자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직립보행 진화과정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선거는 현실적인 문제이고, 권력을 향한 무한질주이다.

이를 위해 모든 정치세력들은 프레임 전쟁을 펼친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선거는 세 개의 프레임이 작동한다.

정권심판 VS. 야당심판 VS. 적폐세력 부활저지다.

전자는 미00이, 중간 것은 민00이, 그리고 제일 마지막 것은 시민사회진영의 프레임이다.

과연 어느 프레임이 더 많은 민심을 정확하게 반영하게 되고, 승리하게 될까?

당연히 긴 시간과 역사적 관점, 운동적 대의측면에서는 적폐세력 부활저지가 보다 많은 유권자들의 동의를 얻어내어야만 하지만, 현실에서는 반드시 그렇게 일치하지도 않는다.

다만, 최선을 다 할뿐이고, 그 중심에 우리가(시민사회진영과 진보적 대중정당이) 왜 이번 선거를 전략적 사고로 접근해야하는지, 그 결과 얻어진 결론이 야당심판세력과 적폐세력 부활저지세력 간의 연대여야 한다.

이유는 지금의 현 정부가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촛불시민항쟁으로 만들어진 정부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이번 선거는 당연히 적폐세력을 축출한 촛불시민항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이번 선거는 적폐세력들 간의 부활노림이 최고치로 도달하고 있어 이들 세력의 부활을 막는 것이야말로 너무나도 당연한 절체절명의 과제로 되고 있다.

해서 이번 선거는 누가 뭐래도 촛불시민항쟁 버전-2(version-2)이다. 그러니 각 정당들이 제아무리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야당심판이니, 여당심판이니, 대통령 국정전반에 대한 평가이니 하면서 떠들어 댄다하더라도 이번 선거의 의미와 본질이 변할 수는 없고, 적폐세력의 부활저지라는 목표가 부정될 수는 없다.

똑 같은 적용으로 제 아무리 진보적 대중정당의 독자적 후보전술의미가 커다하더라도 적폐세력 부활저지라는 목표를 넘어설 수는 없고, 연동하여 진보적 대중정당 후보당선도 적폐세력의 부활저지라는 목표를 넘어설 수는 없다.(당선시키지 말자는 의미가 아니다. 그렇게 오역하지 않았으면 한다.) 철저하게 적폐세력 부활저지에 복무하는 독자후보전술이어야 하고, 당선전략이어야 한다.

이를 위한 기준점과 관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적폐세력의 범주문제이다. 여러 기준점을 상정할 수는 있겠지만, 함의되고 합의되는 지점은 ①친일세력 ②분단세력 ③보수수구세력으로 규정할 수 있다.

둘째, 민주당에 대한 입장정리문제이다. 여러 주장들이 난무할 수는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 정당의 성격이 보수정당이라는 사실, 이것만은 변하지 않는다. 또한 분명한 것은 적어도 이 정당이 보수수구세력은 아니라는 점, 이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게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을 어떤 태도와 관점으로 대해야 되는지가 분명해졌다.

다름아닌, 이번 선거가 적폐세력의 부활저지에 있다면 이 당과는 연대의 관점에서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이다.

설명은 이렇다. 촛불시민의 이해를 제대로 대변하는 진보적 대중정당이 독자적 힘으로 적폐세력의 부활을 막아낼 수만 있다면, 위 ‘둘째’와 같은 그런 전략적 고려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현실은 진보적 대중정당이 촛불민의를 100% 반영해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 정부와 집권여당 민00에 의해 촛불민의가 일부 반영된 개혁입법이 그것조차도 적폐세력의 저항으로 좌절되고 있는 것도 한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는 민00과도 연대해 반드시 이번 선거에서 과반이상의 의석수를 차지해야만 하는 당위가 충분히 발생한다.

그렇게 개혁입법을 완성시켜 낼 수 있는 동력이 이번 선거에서 마련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이번 선거는 반드시 민00을 포함한 비(非)적폐세력들이 과반이상의 의원확보를 해내어야만 한다.

셋째, ‘첫째’와 ‘둘째’를 함의하는 선거전술의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적폐세력 후보를 제외한 모든 당선 가능한 후보에 표를 집중해주고, 정당투표는 반드시 진보적 대중정당에게 투표하는 전략적 선택이 그 정답임을 알 수 있다.

왜 그런지는 다음과 같다.

각 정당들의 셈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민00은 거의 모든 선거구에서 후보를 내서 자당 중심으로 과반이상을 목표로 하고, 반대로 진보적 대중정당은 이번 선거가 적폐세력의 부활저지에는 동의하나 자당후보의 당선도 포기할 수는 없기에 나름 전략지구를 중심으로 후보를 내려할 것이다. 후보가 그렇게 대립한다.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답은 위에서 확인한대로 적폐세력의 부활저지라는 이번 선거목표에 충실하면서도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강화라는 조직적 강화관점을 견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지역구에 진보적 대중정당 후보가 없을 때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민00 후보를 찍으면 되겠지만, 문제는 진보적 대중정당 후보가 있을 때이다.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적 셈법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 적폐세력 부활저지에 더 무게중심을 둘 것이냐, 아니면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강화 구축이라는 명분, 혹은 당원으로서 자당후보의 당선을 위해 최선의 의무를 다할 것이냐에 따라 그 선택지가 분명 달라질 것이다.

했을 때 단일화가 되면 좋겠지만,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최종 투표선택을 해야 한다.

▪기준1: 여러 차례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이번 선거의 최고 당면목표는 누가 뭐래도 적폐세력의 부활저지이다, 그래서 이 관점에서 투표행위가 이뤄져야만 하는 것은 당위이다. 제아무리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강화와 독자후보전술의 의의가 커다하더라도 이 선거의 의미를 뛰어넘어 설 수는 없다.

해서 감정적으로야 어느 교수의 심정대로 ‘민주당만 빼고’로 투표하고 싶지만,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유는 집권당인 민00이 백번이고 비판받고, 또 역사적으로도 심판받아야 하겠지만, 위 ‘첫째, 적폐세력의 범주문제’에서 확인받듯이 민00이 적폐세력이 아님은 분명하고, 또 현실적인 측면에서 진보적 대중정당이 민00만큼 촛불민심을 제대로 수용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상황은 이 당을 포함한 당선 가능한 모든 비(非)적폐세력의 후보들에게 전략적 투표행위를 해 적폐세력의 부활저지라는 선거당면목표에 반드시 부합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적폐세력의 부활을 저지해야 한다.

▪기준2: 위 ‘기준1’과 같은 기준으로 투표했다하더라도 투표할 기회는 한 더 번 남아있다. 다름 아닌, 정당투표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제대로 된 진보의 미래와 평화, 통일을 위한 여정은 계속하기 위해서는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마련이 결코 포기되어져서는 안 된다. 해서 비례에 있어서만큼은 연동형비례대표제의 도입취지에도 맞고, 또 민00으로는 한국사회의 근본개혁과 통일지향이 불가능함으로 반드시 진보적 대중정당들에 대한 전략적 투표행위가 이뤄져야만 한다.(여기서 ‘진보적 대중정당들’이라고 복수화한 것은 유권자 각자는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과 지지정당 선호도 등에 따라 진보적 대중정당을 달리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문제를 반영한다.)

이렇게 이번 4.15 총선은 철저하게 촛불시민항쟁의 연장선상으로 바라봐야 하고, 그러려면 비록 차선(혹은, 차차선)이라도 민00과 함께 적폐세력들의 발호를 막아내어야만 한다. 이것이 민00이 갖는 한계는 명백하지만, 민00을 버리고 갈 수 없는 명백한 이유이다.

그뿐만 아니다. 굳이 이번 선거가 아니더라도 민00과는 연대의 대상으로 바라봐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정말 온전한 주권국가이고, 분단이 되어있지 않다면 시민사회진영은 위와 같은 그런 전략적 고민들을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민00과 후보·정책연대 등을 그 핵심으로 하는 선거연대·정책연대 등을 고민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유럽등과 같이 진보적 대중정당을 직접 창당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진보적 대중정당 후보를 지지하여 일반 민주주의 정치를 구현해나가면 된다.

하지만, 분단국가의 숙명은 위와 같은 일반론적인 의미에서의 시민사회진영의 정치개입 방식과는 좀 다른 필연을 낳을 수밖에 없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국가보안법 등이 존재하여 온전한 정치적 활동을 보장받지 못할 수밖에 없다는 법·제도의 측면이다.

▪또 다른 하나는 분단극복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 운동방식이 정당정치를 포함한 광범위한 전선적 조직운동이라는 그 측면 때문이다.

바로 위 2가지가 민00이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보수수구이자 적폐세력의 본산인 미00을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들이 진보적 대중정당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헌법적 책무라 할 수 있는 분단극복(=평화통일) 실현을 위해 연대해야 한다.

더군다나 국가보안법 등 악법들이 존재하는 엄연한 상황하에서는 분단을 넘어서려는 그 어떤 정상적인 제도권 정치활동마저도 쉽지 않고, 그렇게 쉽지 않은 만큼 민00을 정치파트너 우군으로 함께 해야 할 전선적 원리가 발생한다.

해서 대한민국 정치는 광의적 개념으로 전선운동으로서의 정당운동도 함의하고, 좁은 의미로서의 제도권 정당운동으로서의 정치운동도 공존하는 그런 개념이 된다.

대한민국 정치의 숙명이 그렇게 규정되어진다. 진보적 대중정당의 독자적 강화를 주선으로 틀어쥐면서도 비(非)적폐세력인 민00과는 전략적 연대를 끊임없이 고려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운동적 요구가 그렇게 발생한다.

그래서 이번 4. 15선거는 현 정국하에서 민00과 함께 과반이상의 국회의원 획득과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강화라는 원래의 조직적 목적이 충족되는 그런 수확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향후에는 진보적 대중정당들이 분단극복을 위한 일상적 정치활동이 가능하게 되고, 촛불민의를 보다 일상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확장된 정치 공간과 이후 선거에서는 보다 유리한 환경 속에서 진보적 대중정당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독자후보전술을 쓸 수 있어야 한다.

분명 이번 선거는 그런 선거가 되어야한다. 하지만, 대단히 우려스러운 것은 코르나19와 적폐세력들의 의도된 ‘낮은 투표참여전략’으로 조직선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져 있다는 사실이다.

넘어설 묘책이 필요하다.

▪우선은 이 글 전반에 걸쳐 관통하고 있는 맥락, 이해관계와 당리당략을 떠나 크게 대의적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나 자신부터 투표허무주의나 무용론에서 빠져나와 차선(혹은, 차차선)이라하더라도 투표하고, 선거투쟁을 통해 유권자들을 반드시 투표장으로 안내하자.

구호는 다음과 같다.

‘4.15투표를 통해 적폐세력 청산하자!!!’,

‘촛불시민항쟁은 4.15투표를 통해 완성된다!!!’,

‘4.15선거투표 없는 적폐청산 없다. 투표로 적폐세력 심판하자!!!’

참여하고, 지혜로운 선택을 통해 그렇게 촛불시민항쟁을 계속 이어나가자.

 

민플러스, 2020년 3월 13일에 게재된 글입니다 (필자와 협의하여 수정 후 본지에 실린 것임).

토, 2020/03/21-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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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 데 요구되는 자질은 능력과 공정성으로 통치하는데 필요한 자질과 거의 관련이 없습니다.”– 장 프랑수아 레벨(Jean-François Revel) (1924-2006), 프랑스 철학가 (마르크와 예수, 1970, p. 68)

“첫 번째 진실은 국민이 민간 권력의 성장을 용인하여 민주주의 국가 자체보다 강력해진다면 민주주의의 자유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파시즘이며 개인에 의해, 단체에 의해 또는 민간 권력에 의해 정부에 귀속됩니다.”–프랭클린 D.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1882-1945), 32대 미국 대통령 (1933-1945) (의회 연설, 1938/04/29).

“권력의 아가리는 항상 삼켜버릴 수 있도록 열려 있고, 권력의 갈래는 제멋대로 널려 있어서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자유를 파괴합니다.”존 애덤스(John Adams) (1735-1826), 2대 미국대통령, 1797-1801 (‘교회법과 봉건법에 대한 논문’, 1765).

“정의를 위한 인간의 능력은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지만, 부당함을 향한 인간의 성향은 민주주의를 요구합니다.”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1892-1971), 미국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녀들», 1944)

“박사님, 우리는 어떤 국가를 만들었나요? 공화국인가요 아니면 군주국인가요? — 공화국입니다. 그것을 지킬 수 있는 한에서만.”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 미국 건국의 아버지 (1787년 헌법 제정 회의 말미에 여성의 질문에 대한 프랭클린의 답변)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이 펜실베니아 게티스버그에서 표현했듯이 민주주의는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사상, 양심, 연설, 종교, 집회, 청원, 언론 등)를 보장하는 정치 제도로서 법 앞에서 정당한 법적 절차와 평등을 약속한다. 그것은 정부가 국민들에게 책임지도록 하며 정부가 독단적으로 개인을교도소에 수감시키고 노예화하거나 감옥, 노예, 결박하는 행위 등을 금지한다. 개인은 민주주의 아래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고 정치적 선호를 표현해도 안전함을 보장받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12세기 영국에서 유래한 인신 보호령(Habeas Corpus)의 법적 원칙은 민주국가에서 자유와 해방을 향해 나아갔던 위대한 단계였다. 해당 법령이 적법한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 체포, 구류 또는 투옥을 금지하기 때문이었다.

민주주의는 사회 내의 정치적인 권력이 개념적인 신과 지구상의 가까운 통역자(왕, 황제 등)에서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자주권으로부터 나온다는 근본원리에 기초한 체제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민주주의 아래에서 국민의 동의를 얻어 통치한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자유 정부에서 통치자는 하인이요, 국민은 그들의 상관이자이자 주권자”라고 쓰면서 민주주의 개념을 확고히 만들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체제는 완벽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타락하고 와해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1947년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시도된 정부 형태를 제외하고 가장 나쁜 정치 형태이다”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대의민주주의는 취약한 정부 형태이고, 당연하게 여겨질 수 없다. 대의민주주의가 실존하고 지속하려면 특별한 조건과 지속적인 경계가 필요하다. 그래야 그것이 독재자의 영향이나 다른 유형의 과두제 집권층에 의해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 민주주의는 기본 원리 세 가지에 기반을 두고 있다”

1. 정치적 소수자를 고려하여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선거 또는 국민 투표에서 당선된 국민이 최종 권한을 행사해야 합니다;

2. 법 아래에 국민은 평등해야 합니다 그리고

3. 첫 두 원칙이 지켜지도록 보장하기 위한 헌법 규칙과 정치 및 법률기구가 필요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는 결코 자연스러운 정부 체제가 아니다. 특히 전체주의적 독재정권 같은 독재정권은 폭력, 압살과 개별 군주 또는 과두정치 정부에 의존하여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규제를 가한다. 사실 이에 의해 역사를 통틀어 왕, 황제, 선동가, 폭군, 독재자, 과두 정부가 절대권력을 강탈하고 국민을 지배하며 야당 및 기타 정당을 없애게 되었다.

사실 어떤 민주주의도 권위주의적 압박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민에 의해, 편견이 없는 언론에 의해, 지식인 및사상가에 의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주의 헌법과 부패하지 않은 사법 제도에 의해 변호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Is Democracy Consistent with Islam?

민주주의는 이슬람 제도와 함께할 수 있을까?

20세기 후반에 민주주의 제도를 따르는 국가의 수가 크게 증가했다.

20세기 전반은 두 차례 세계 대전과 심각한 경제 침체로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에서 비롯되어 다수 국가에서 고질적으로 발생한 경제적 사안과 빈곤은 그때 당시 독재자 및 전제 군주들을 위한 왕성한 토대를 만들었다. 그 기간 동안 민주주의 국가의 비율은 31 퍼센트를 넘지 않았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세계에 전제 군주국이 총 137개국이 존재한 반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는 12개국에 불과했다 (즉, 민주주의 헌법과 민중 자유를 위한 보호, 자유 선거, 독립된 사법부를 지닌 국가).

20세기 후반에 상황이 극적으로 변했다. 이전에는 세계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발전이 있었다. 민주주의 국가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향후 전쟁을 방지하겠다는 사명을 가지고 1945년에 유엔이 창설되었다. 비록 회원국 50국 모두가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수호하지 않았지만 일부 50개국은 유엔의 창립회원국이 되었다. 그리고 세계 인권 선언은 민주주의 기본 개념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면서 선포되었다. “국민의 의사가 정부 권력의 기반이 된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 동안, 중요한 지정학적 발전이 두 가지 일어났다.

– 먼저 1945년부터 1960년대까지 미국 및 기타 국가에 의한 압력 아래에서 발생한 공격적인 독립운동을 통해 이전 식민지 정치체제로부터 식민지 국가를 해방시켰다. 이러한 탈식민지화 과정은 아프리카와 특히 오늘날 가장 인구가 많은 민주주의 국가인 인도로 대표되는 아시아에서도 발생했다. 이로 인해 새로운 국가가 탄생했는데, 그 중 많은 국가가 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했다.

– 두 번째로, 1991년 12월 소련 붕괴와 이어진 해체는 동유럽 내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의 숫자를 극적으로 증가시켰다.

No less than 14 of the former Soviet republics became independent states, besides Russia. 러시아를 제외한 구소련 공화국 14개국은 독립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공화국 중 오직 소수만이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의 발트 3국) 진정으로 민주적이고 자유로우며 공정한 선거를 치룬다. 그러나 새로운 국가 중 일부는 사실상 독재 정권(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하에 있으며 상징적인 선거를 치를 뿐이다. 구소련 공화국 중 기타 5개국 중 몇몇은 더 민주적인 국가가 되었지만 여전히 민주주의 및 권위주의가 혼재한다.

문제는 2006년 이후로 세계에서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는 감소해왔다는 것이다.

최근 스탠포드 대학연구진은 미국의 도덕적인 리더십이 없다면 모든 민주주의는 추락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경보를 울렸다. 래리 다이아몬드(Larry Diamond) 정치학자는 «역경: 러시아의 분노, 중국의 야망, 미국의 자만으로부터 민주주의를 구출하기»라는 새로운 저서를 출판했다. 그는 이 책에서 미국 및 해외에서 독재주의의 증가 추세에 의해 자유가 어떻게 침해되고 있고,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어떻게 약화하거나 실패했는지에 대해 다루었다. 예를 들어, 그는 최근 2006년까지만 해도 모든 국가의 62%가 민주주의를 따르는 국가로서 기능을 하고 있었으나 2017년에다다르자 그 수가 51%로 감소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언젠가 21세기가 ‘전제 군주의 부상’으로 정의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감지했다.

이는 왜 그러한가? 그 중 주된 요인은 국내 경제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민주 정부의 역량을 약화시킨 경제 및 금융의 세계화로 추정된다. 또한 세계화는 중요한 경제적 구조 변화를 야기했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기술 및 산업의 성장을 촉진해왔지만, 특히 오래된 산업 내 일부 노동자 집단이 뒤쳐지면서 탈산업화 과정과 고임금을 받는 직업이 사라지는 결과를 낳았다.

일부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쇠퇴하는 또 다른 원인은 세계화가 과도하게 빠른 속도로 지나가 버린점에 대한 민족주의자들의 반발 때문일 수 있다. 많은 국가는 점점 허술한 국경지대를 형성하면서 외국에서 온 이민자와 난민의 유입이 증가했고 몇 사람은 “민주주의는 그들에게 잘 적용되지 않으며 더 이상 그들의 이익을 증진하지 않는다”는 말에 설득 당했다.

어느 정도의 민주주의 후퇴 또한 지난 수십 년 동안 목격되어 왔다. 일부국가는 과거 관습처럼 공공 조사 위원회를 설립하기 보다 기술 관료 또는 판사에게 논쟁의 여지가 있는 사회 및 정치적 사안을 해결할 권리를 위임하는 경향성을 보였다.

사실 특히 유럽 연합 내 일부 국가에서 중요한 정치 권력이 국가 정부로부터 선출되지 않은 기술 관료로 이동함에 따라 민주주의 결핍을 초래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 의지를 좌절시키고, 소외시키며 국가 내 정치인에 대한 믿음을 훼손시키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영국인들은 국경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고 싶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EU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다른 국가 중 캐나다를 예로 들면 1982년 이후 다수정치 세력은 소위 판사들의 정부로 이동했다. 판사들로 구성된 정부는 일반적으로 선출된 정부 관료들의 책무를 사법부가 결정할 수 있도록 맡겼다.

위에 언급된 두 가지 원인과 관련된 또 다른 요인은 일부 국가 내 소득 및 부의 불균등 증대와 국내 정치에서 거부를 위한 역할과 관련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부유층을 위한 민주주의’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경제와 금융의 세계화가 국가간의 세계적인 불평등을 감소시켰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산업화된 국가들 내의 불평등을 증가시키기도 했다.

예를 들어 미국 내세계화로 성공한 사람들은 세계화로 패배한 자들에게 보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부과해야 하는 세금을 낮추기 위해 넘치는 부를 활용하여 미국 정부에 영향을 끼쳤다. 이는 불균등 증가에 대한 정치 및 경제적 요인에 추가할 수 있다. 미국 및 기타 국가에서 나타나는 증가하고 불안정한 정치 양극화는 사회적 양심이 결여된 일부 자본가들의 무한한 욕심에 대한 대중적인 반응으로 보여질 수 있다.

 

결론

금세기에 나타나는 민주주의 쇠퇴는 경제적 및 정치적 요인 서로 얽힌 사안으로 보인다. 민주주의로부터의 후퇴를 멈추고 이를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경제적, 정치적 해결책을 모두 찾아야 할 것이다. 자만과 현실 부정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Rodrigue Tremblay (로드리그 트렘블레이 교수)

«세계 윤리 강령, 10 휴머니스트 원리», «신생 미국 제국»의 저자

 

2020/01/02 글로벌 리서치

금, 2020/01/2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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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이토록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 할까?

선거철이 다가오니 여기저기서 출마한다고 떠들썩하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을 해봐야 한다. 왜 우리 사회는 언론에 몇 차례 이름이 나올라치면 얼마 되지 않아 국회의원이 된다고 난리일까?

나는 그 근저에 국회의원이 그 특권은 거대하지만 하는 일은 너무 없고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구조는 바로 법안 검토를 의원이 스스로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대리하고 있는 잘못된 현 시스템에서 비롯된다. 사실 다른 나라 의원들은 법안 검토를 핵심으로 하는 의원의 직무가 너무 힘들고 고되기 때문에 스스로 중도에 그만 두는 경우도 적지 않고 배우자의 불만도 커서 이혼율이 높은 실정이다.

만약 우리 국회가 다른 나라 의회처럼 의원 스스로 힘들고 고된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면, 과연 지금처럼 모든 사람들이 마치 불나방처럼 너도나도 앞 다투어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 할 수 있을까?

 

노회찬이 발의한 국가보안법폐지법안을 국회공무원이 검토한다?

2004년 10월 21일 故 노회찬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가보안법폐지법률안」에 대하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2005년 5월 ‘검토보고’를 한다.

언뜻 봐서는 문제가 없는 듯하지만, 사실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 바로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국회 공무원에게 ‘검토’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라는 문제이다.

국회 공무원인 수석전문위원은 과연 국가보안법 존폐를 논할 ‘능력’과 ‘자격’이 있을까? 국회 전문위원은 법률가도 아니고 또 국민이 선출하여 입법 권한을 부여한 대표도 아니다. 단지 국회 사무처 조직에서 오랫동안 순환 근무를 하고 연공서열 순위에 의하여 승진한 국회 공무원일 뿐이다. 이러한 국회공무원에게 국가보안법 존폐에 대한 ‘검토’를 맡기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결국 노회찬 의원이 발의했던 「국가보안법폐지법률안」은 이러한 ‘비정상적’ 과정을 거쳐 결국 임기만료 폐기되었다.

 

양승태 법원행정처주장에 적극 동조한 국회전문위원 검토보고

2014년 함진규 의원 대표발의로 대한변협, 지방변호사회 등 대법원규칙으로 정한 외부기관, 단체의 의견을 들어 평정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법사위에 회부되어 이에 대한 검토보고가 이뤄졌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의 눈을 의심케 하는 사실이 발견된다. 바로 국회 전문위원이 작성한 이 검토보고가 사법농단의 온상이던 법원행정처의 의견에 적극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검토보고는 “대한변호사협회 등 변호사단체의 의견을 들어 평정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하는 때에는 단체 구성원의 법관평가에 대한 참여도가 낮을 경우 전체 변호사의 총체적 평가가 아니라 소수 변호사의 편향된 평가가 마치 전체의 의사인 것처럼 왜곡될 우려가 있음.”이라면서 “법원행정처의 의견도 이와 같은 취지”라는 설명까지 아무 거리낌 없이 붙이고 있다.

부정적인 이 검토보고에 의해 당연히도 이 법안은 입법의 ‘본선’에 오르지 못하고 임기만료 폐기되었다. 이 검토보고는 법원행정처의 의견대로 대한변협 등 비판세력의 목소리를 철저히 배제시킨 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제왕적 1인 체제를 구축을 옹호하는 논리로 이어졌다. 결국 법원행정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을 적극적으로 거든 ‘그릇된’ 검토보고였다.

 

테러방지법안에 무비판적인 검토보고, 이것은 검토가 아니라 아부

한편 ‘테러방지법’은 박근혜 정부 시기에 크게 논란을 빚었던 법이다. 그런데 이 법안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는 “대테러 업무를 감독하기 위하여 국가테러대책위원회 소속으로 대테러 인권보호관 1인을 배치하도록 하고 있어 대테러 업무에 대한 통제방안을 마련하고 있고, 무고·날조의 죄를 「형법」보다 가중하여 처벌하도록 하고 있는 등 제도적 보완장치가 마련되었다”면서 “테러방지를 위한 국가 등의 책무와 필요한 사항을 명확히 규정하여 공공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이 법의 제정이 필요하다”고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테러방지법은 당시 야당의 필사적인 반발에 부딪쳐 의원들의 필리버스터(Filibuster, 의사방해 연설) 발언이 이어졌고,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도 상당히 높았었다.

분명한 점은 이러한 테러방지법에 대한 검토보고가 비판은 완전히 결여되었고 균형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던 ‘검토’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검토보고’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노골적인 ‘아부’의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검토보고’, 보수적 경향이고 외부 로비에 취약

국회 공무원에 의한 검토보고 제도는 입법의 보수적 경향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일반적으로 관료집단은 그 보수적 조직문화와 신분적 조건 등의 요인에 의하여 대부분 보수적 성향을 보이며, 이에 따라 국회 공무원에 의한 검토보고 역시 보수적 경향이 강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 52명이 서명하여 제출했던 「한일군사정보협정 효력정지 특별법안」은 이러한 ‘보수적인’ 검토보고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실제로 입법관료들은 다양한 정치적 집단의 의견을 청취하고 그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한 후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검토를 시도하기보다는 이미 잘 정리되어 있는 행정부 자료를 주로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또 이들의 직무수행을 소속 상임위원장이 지휘하기 때문에 상임위원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채 객관성과 중립성을 유지하기도 매우 어렵다.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며 정당 간 경쟁이 전개되는 입법 과정에서 상임위 스태프를 정당 별로 체계화하지 않고 중립성만을 요구하는 비현실성에서 상임위 보좌 관료들은 각계각층의 다양한 이익을 조정하기 위하여 정보의 소스를 다양화하기 보다는 믿을 만한 정보원인 행정부의 정보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특히 전문성 결여라는 근본적인 취약점에 더해 인력과 검토시간의 부족이라는 요인은 이러한 정보 소스의 축소를 더욱 부추기게 된다. 이렇게 행정부 관료들이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함으로써 행정부에 대한 감시 기능 또한 저하된다. 결국 입법 지원관료들의 정보 소스의 축소는 행정부에서 제공되는 자료에 의해 작성되는 검토보고와 그 검토보고에 의존하는 상임위원회의 결정으로 연결되어 국회 고유의 권한인 입법이 행정부의 영향 하에 있게 되는 아이러니한 현상을 초래한다.

국회 공무원에 의한 검토보고가 재벌이나 대형 로펌, 각종 협회의 로비나 영향력으로 훼손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일례로, 국회의 한 수석전문위원이 장충기 전 삼성 사장에게 민원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당시 박용진 의원은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가 일부 재벌이나 로비 대상 단체에 의해 편향되고 왜곡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앞에서 살펴본 테러방지법 검토보고에서 드러났듯, 권력에 대한 맹목적 아부의 경향도 중대한 문제점이다. 그 ‘권력’에는 대통령만이 아니라 상임위원장이나 여당 대표 등 중진 의원이 포함된다. 공무원 사회의 뿌리 깊은 승진 제일주의와 줄대기의 관행과 문화는 그대로 ‘검토보고’에 투영될 수밖에 없다.

한편, ‘전문위원 검토보고’라 하면 흔히 외부에서 선발된 전문가 그룹에 의한 검토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국회 전문위원은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국회 공무원시험으로 선발되고 국회 내에서 순환 보직하는 순수 공무원 출신일 뿐이다. 결국 ‘전문위원’이라는 명칭과 전혀 상반되게 ‘전문성’ 그 자체에서 근본적인 취약성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위원의 임용은 「국회사무처법」에서 정원의 20% 이내에서 개방직을 임용할 수 있는 직위에서도 배제시키도록 규정하여 외부 전문가의 진입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반면 미국 의회의 상임위원회 스태프는 그 충원 방식에서 전문성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우선 책임 보좌관(staff director)은 장기간 행정부나 의회에서 많은 경험을 축적한 인물이며, 직접 조사를 담당하는 전문 보좌관(professional staff)들은 변호사나 경제전문가, 조사관, 행정전문가 등 각계각층의 전문 경력자들로 충원된다. 또한 변호사 출신들로 상담역 보좌관(counsel)을 충원하여 법제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으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컨설턴트로서 상임위원회를 보좌한다.

 

다른 나라 법안검토담당 의원검토를 위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국감 때마다 적지 않은 의원들은 마치 연예인인양 한복을 입는다거나 고양이를 ‘특별증인’으로 신청하는 등 ‘연기(演技) 정치’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곤 한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연예인이 아니다. 또한 매일 같이 정쟁과 반대만으로 지새는 국회의 모습이야말로 사람들이 가장 혐오하고 없어져야 할 폐습으로 생각하는 장면이다.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의회처럼 본업인 입법 활동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물리적으로’ 시간이 모자라서도 절대 이렇게 변질될 수 없다.

우리 국회를 제외하고 세계의 어느 나라 의회든 법안에 대한 검토는 반드시 의원의 기본 임무이다.

상임위에 상정된 법안마다 각 원내 교섭단체는 검토보고 담당 의원을 두게 되는데, 이 검토보고 담당 의원은 검토보고를 충실하게 준비하기 위하여 관련 기관 및 다양한 활동가들과 많은 면담을 진행한다. 물론 비판적 견해도 환영한다. 자신의 결정이 가능한 현실적이고 정의롭게 내려질 수 있도록 최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형성하기 위해서이다. 이 검토보고 의원은 교섭단체 내 워크그룹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판단과 평가 및 바람직한 수정사항 등을 다른 의원들에게 전달한다. 아울러 다른 교섭단체 검토보고 담당 의원과 심도 있는 토의 과정을 거치며 이 토의의 회의는 장시간의 토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종종 심야에 이르기도 한다. 검토보고 의원은 이 과정에서 교섭단체 소속 정책 전문위원의 밀접한 지원을 받으며 매주 교섭단체 의원들과 소그룹 토론을 진행한다.

그러나 우리 국회만은 전혀 다르다. 이 기본 임무를 의원 자신이 수행하지 않고 있다. 그 일을 국회 공무원이 대신하고 있다.

지금 국회의 문제점들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국회가 국민이 부여한 직무, 즉 ‘입법’이라는 ‘본업’을 방기하고 있는 것, 이 문제야말로 국회의 존재 의미와 긴밀하게 관련된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말한다면, 이 본업을 수행하지 않는 국회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 최소한의 자격도 없다.

 

 

수, 2020/01/29-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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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논쟁의 중심에 있는 임미리 교수의 칼럼은 한국사회에 대한 단초적인 스냅사진일뿐.

소모적인 논쟁으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다가오는 총선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다!

“정작 빼고 찍어야 할 대상은 미래한국당이라는 좀비를 급조해낸 거시기집단이다.”


<출처: 국민일보>

활자판 경향신문의 오랜 구독자로서 1월말 당시 놓쳐버린 임미리 교수의 칼럼을 다시 읽어 보았다. 촛불연대의 정신을 잃어버린 문재인 정권을 출범부터 격하게 비판해온 필자의 평소 생각과 임교수의 비판 내용이 너무나 유사하여 오히려 감사하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를 어찌하랴! 그의 마지막 멘트 ‘민주당만 빼고 찍자”는 앞서 기술한 비판적 지성의 내용을 쓰레기로 만드는 자해행위이자, 역사적 흐름에 대한 배신이며, 기득권 체계에 시달려온 일반시민들을 우롱하는 기만적 행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을.

앞에도 언급했지만, 지난 2-3년 간 보여준 민주당의 잘못과 패착에 대한 임교수의 지적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는 눈앞에 보인 장면을 스냅사진으로 찍으면서, 현재의 시점을 이루는 역사적 맥락을 놓치고 있으며,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촛불혁명의 원인이 되었던 수구의 기득권 체계를 묵인하고 옹호하는 오류를 범한 셈이다.

이 지점에서 현대중국의 분기점을 이룬 ‘서안사건’과 주역인 ‘장학량’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도올 선생은 지난 해 공중파의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오늘의 중국을 만들어 낸 일등공신은 신해혁명의 주역인 손문 선생도 아니고, 중국공산당을 이끌어 온 모택동 주석도 아닌 서안사건의 주인공 ‘장학량’이라고 분명하게 언명하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지만 요약해서 적어 본다. 군국주의자들이 이끄는 일본제국의 군대가 만주와 중국의 중북부 연안지역 대부분을 점령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당의 장개석 총통은 중국민족의 해방을 위한 항일투쟁보다는 팔만대장정 끝에 연안으로 피신해 간 공산당의 괴멸을 위하여 민족전쟁이라는 명분으로 민족내부의 투쟁에 군사적 역량을 집중한다.

마침 그의 휘하에서 서부지역 부사령관직을 맡고 있던 ‘장학량’은 1936년 말 장개석이 서안을 방문하자, 그를 구금시키고 연안의 주은래를 초빙하여 국공합작을 성사시킴으로써 소모적인 민족내부의 싸움을 항일해방전쟁으로 전화시키는데 성공한다. 덕분에 중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과정에서 주요한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승전국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장개석이 남경으로 복귀한 이후 1990년 초까지 오랜동안 가택연금 상태에 놓이게 된다.

역사적 계기를 마련한 ‘서안사건’을 거울삼아 우리 시대의 정말 중요하고 핵심적인 현안이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현재의 민주당 모습이 1936년 당시 정신나간 장개석의 국민당 정권과 흡사 닳았다고 인정하자. 그런데 국민당 정권이 패착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며 장개석의 처형을 요구했던 일부의 주장을 그대로 실행했더라면 겉잡을 수 없는 대혼란으로 중국대륙 전체가 일제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식민지화 되었을 것이 명약관화했던 상황이다. 당시에는 항일투쟁을 위한 ‘국공합작’만이 정답이었다.

이제 다가온 총선을 앞두고 ‘서안사건’ 당시 일본 군국주의자들에 비견되는 현재 한국사회의 매판적이며 반역사적 세력이 누구인지를 꼼꼼히 헤아려 볼 일이다.

일제강점기 기간에 친일부역한 세력들의 뿌리와 잔재,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워싱턴에 팔아먹고 해방 이후에도 새로운 시대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짓밟으며 독재를 자행하였던 이승만과 추종세력, 일본군국주의와 괴뢰 만주정부의 행태를 완벽하게 재현시킨 박정희 유신독재와 하수인들, 광주를 피로 물들이며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등장한 신군부 세력과 이에 협조를 다한 속물 언론과 지식인 그룹들, 현재로 사법적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 부패하고 무능한 이명박근혜 정권과 이를 태동시킨 수구정당 등이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가는 우리의 발길을 가로막았던 정치적 장애물들이었으며, 다행스럽게 한국 민중들의 역량에 의해 4.19 혁명, 10.26 사건과 80년의 봄, 6월 민주화 그리고 촛불시민혁명 등으로 이미 역사적 평가를 받은 셈이다.

다가온 총선과 관련하여 지난 70여 년 민족의 역사를 더럽힌 정당이름을 역사적 순서로 나열해 보면, 자유당 공화당 민정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등이다. 더구나 촛불시민의 요구에 따라 도입되어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되는 연동형 비례제 도입의 취지를 무참하게 짓밟고 이를 악용하여 좀비 정당인 미래한국당을 태동시킨 거시기 집단들이야말로 상종을 못할 무뢰배들로 총선을 통하여 이제는 용도가 폐기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던가?

촛불정부를 자임하고 출범한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지난 2-3년 동안에 보여준 기대 이하의 행보는 혹독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해방 이후 대부분의 선거역사에서 그랬듯이, 자연스레 그간의 업보에 대한 심판은 총선을 통하여 주권자인 시민들의 집단지성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잘못했다 해서 지난 역사를 그르친 적폐의 집단을 묵인하고 오히려 옹호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서안사건’이라는 극적인 계기를 통하여 참략자 일본군대를 격퇴하기 위한 ‘국공합작’이 이루어지며 중국이 회생하였듯이, 역으로 2020년 한국사회가 민주당의 패착을 빌미로 이명박근혜의 잔당들이 다시 정치를 좌우하는 암흑의 시대로 되돌아 갈수는 없는 일이다.

임미리 교수의 민주당에 대한 비판의 진정성과 본심을 그대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의 마지막 멘트는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빼고 찍어야 할 대상은 미래한국당이라는 좀비를 급조해낸 거시기 집단이다”.

월, 2020/02/17-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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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어업 상습 국가” 낙인찍힌 한국 원양어업, 환골탈태만이 답이다

○ 한국이 다시 <불법어업국가>라는 오명을 썼다. 2019년 9월 20일, 미국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 지정 통보를 받았다. 2013년 미국과 유럽연합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가로 지정받은 이후, 규제 강화를 강조한 원양산업발전법 개정으로 2015년에 해제되었지만 겨우 4년 만에 불명예는 되돌아왔다.

○ 불법어업국가로 지정된다는 것은 원양수산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 수출길에 차질이 생기는 경제적 손실은 물론, 외교 무대에서 뼈아픈 약점을 잡힌다. 특히, 체제가 불안하거나 경제발전이 더딘 저개발국가들 위주로 된 불법어업국가 목록에 포함되는 것 자체가 국격에 치명타를 입힌다고 할 수 있다.

○ 이번 지정의 발단은 2017년 한국 원양선박이 남극해에서 보존조치를 위반한 사건 때문이다. 국내외 환경단체들은 해당 위반 행위에 대해 수차례 강한 우려를 표하며, 해수부와 원양업계에 이 사건의 심각함과 함의를 알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업계를 대표하는 원양산업협회는 ‘일부 기업의 소소한 위반을 침소봉대하지 말라’며 의미를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 사건을 엄정하게 처리해야 할 해수부도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법적 문제가 없다’, ‘현상태에서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국제여론까지 악화되자 그제서야 관련 원양산업발전법 재개정안을 부랴부랴 마련했다. 그나마도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로, 통과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 위에 언급한 원양산업발전법의 개정안은 작년부터 업계와 시민사회가 참여한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업계의 영향으로 불법어업에 대한 벌금과 제재를 강화하는 정책들이 상당부분 약화된 채 발의되었다. 이마저도 업계에서는 훨씬 더 큰 폭으로 약화하고 싶어했다.

○ 결정적으로, 이 사태는 불법어업 규제가 강화되는 국제적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해수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2018년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 회의에 참가한 당시 정부 대표단은 불법어업 사건을 신속하고 엄정히 처리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안이하게 대응을 하였고 이는 결국 오늘의 예비불법어업국 지정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회의에 참가한 정부 대표단 중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불과 약 1년 전 (2018년 10월)만 해도 당당하게 “한·EU, 국제적인 불법어업 근절을 위한 공동선언” 까지 채택한 한국이 또다시 원양 전선에서 추락했다. 불법어업 국가의 오명을 벗고 효과적인 제재를 가하다가 다시 개혁의 긴장 고삐를 늦추면서 벌어진 일이다. 시민단체는 국민을 대표하여 묻지 않을 수 없다. 또다시 억울함을 호소하며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자세로 이런 외교적 망신을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 불법 어업자들을 확실하게 걸러내어 오히려 불법어업 근절을 선도하는 국제적 리더로 거듭날 것인가? 정부와 업계의 문제 해결의지와 책임있는 행동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이에 시민사회는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 해수부, 특히 본 사태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당시 정부 대표단 대표는 책임을 져야 한다.
○ 불법, 비보고, 비규제 (IUU) 어업이 재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도록 하는, 보다 강력한 제재안을 원산법 개정안에 포함시키고, 불법어업 통제 관리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 원양업계는 불법어업을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업체를 퇴출시키는 등 자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 정부와 업계는 시민사회와 함께 불법 어업 방지를 위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공익법센터어필,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재단

참고:
남극 이빨고기 불법 어업 관련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2070600105

한국 환경단체 성명서:
http://kfem.or.kr/?p=196313

공동선언문 채택:
https://www.yna.co.kr/view/AKR20181018168300098

금, 2019/09/2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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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어업 상습 국가” 낙인찍힌 한국 원양어업, 환골탈태만이 답이다

○ 한국이 다시 <불법어업국가>라는 오명을 썼다. 2019년 9월 20일, 미국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 지정 통보를 받았다. 2013년 미국과 유럽연합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가로 지정받은 이후, 규제 강화를 강조한 원양산업발전법 개정으로 2015년에 해제되었지만 겨우 4년 만에 불명예는 되돌아왔다.

○ 불법어업국가로 지정된다는 것은 원양수산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 수출길에 차질이 생기는 경제적 손실은 물론, 외교 무대에서 뼈아픈 약점을 잡힌다. 특히, 체제가 불안하거나 경제발전이 더딘 저개발국가들 위주로 된 불법어업국가 목록에 포함되는 것 자체가 국격에 치명타를 입힌다고 할 수 있다.

○ 이번 지정의 발단은 2017년 한국 원양선박이 남극해에서 보존조치를 위반한 사건 때문이다. 국내외 환경단체들은 해당 위반 행위에 대해 수차례 강한 우려를 표하며, 해수부와 원양업계에 이 사건의 심각함과 함의를 알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업계를 대표하는 원양산업협회는 ‘일부 기업의 소소한 위반을 침소봉대하지 말라’며 의미를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 사건을 엄정하게 처리해야 할 해수부도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법적 문제가 없다’, ‘현상태에서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국제여론까지 악화되자 그제서야 관련 원양산업발전법 재개정안을 부랴부랴 마련했다. 그나마도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로, 통과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 위에 언급한 원양산업발전법의 개정안은 작년부터 업계와 시민사회가 참여한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업계의 영향으로 불법어업에 대한 벌금과 제재를 강화하는 정책들이 상당부분 약화된 채 발의되었다. 이마저도 업계에서는 훨씬 더 큰 폭으로 약화하고 싶어했다.

○ 결정적으로, 이 사태는 불법어업 규제가 강화되는 국제적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해수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2018년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 회의에 참가한 당시 정부 대표단은 불법어업 사건을 신속하고 엄정히 처리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안이하게 대응을 하였고 이는 결국 오늘의 예비불법어업국 지정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회의에 참가한 정부 대표단 중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불과 약 1년 전 (2018년 10월)만 해도 당당하게 “한·EU, 국제적인 불법어업 근절을 위한 공동선언” 까지 채택한 한국이 또다시 원양 전선에서 추락했다. 불법어업 국가의 오명을 벗고 효과적인 제재를 가하다가 다시 개혁의 긴장 고삐를 늦추면서 벌어진 일이다. 시민단체는 국민을 대표하여 묻지 않을 수 없다. 또다시 억울함을 호소하며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자세로 이런 외교적 망신을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 불법 어업자들을 확실하게 걸러내어 오히려 불법어업 근절을 선도하는 국제적 리더로 거듭날 것인가? 정부와 업계의 문제 해결의지와 책임있는 행동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이에 시민사회는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 해수부, 특히 본 사태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당시 정부 대표단 대표는 책임을 져야 한다.
○ 불법, 비보고, 비규제 (IUU) 어업이 재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도록 하는, 보다 강력한 제재안을 원산법 개정안에 포함시키고, 불법어업 통제 관리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 원양업계는 불법어업을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업체를 퇴출시키는 등 자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 정부와 업계는 시민사회와 함께 불법 어업 방지를 위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공익법센터어필,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재단

참고:
남극 이빨고기 불법 어업 관련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2070600105

한국 환경단체 성명서:
http://kfem.or.kr/?p=196313

공동선언문 채택:
https://www.yna.co.kr/view/AKR20181018168300098

금, 2019/09/2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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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어업 상습 국가” 낙인찍힌 한국 원양어업, 환골탈태만이 답이다

○ 한국이 다시 <불법어업국가>라는 오명을 썼다. 2019년 9월 20일, 미국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 지정 통보를 받았다. 2013년 미국과 유럽연합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가로 지정받은 이후, 규제 강화를 강조한 원양산업발전법 개정으로 2015년에 해제되었지만 겨우 4년 만에 불명예는 되돌아왔다.

○ 불법어업국가로 지정된다는 것은 원양수산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 수출길에 차질이 생기는 경제적 손실은 물론, 외교 무대에서 뼈아픈 약점을 잡힌다. 특히, 체제가 불안하거나 경제발전이 더딘 저개발국가들 위주로 된 불법어업국가 목록에 포함되는 것 자체가 국격에 치명타를 입힌다고 할 수 있다.

○ 이번 지정의 발단은 2017년 한국 원양선박이 남극해에서 보존조치를 위반한 사건 때문이다. 국내외 환경단체들은 해당 위반 행위에 대해 수차례 강한 우려를 표하며, 해수부와 원양업계에 이 사건의 심각함과 함의를 알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업계를 대표하는 원양산업협회는 ‘일부 기업의 소소한 위반을 침소봉대하지 말라’며 의미를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 사건을 엄정하게 처리해야 할 해수부도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법적 문제가 없다’, ‘현상태에서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국제여론까지 악화되자 그제서야 관련 원양산업발전법 재개정안을 부랴부랴 마련했다. 그나마도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로, 통과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 위에 언급한 원양산업발전법의 개정안은 작년부터 업계와 시민사회가 참여한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업계의 영향으로 불법어업에 대한 벌금과 제재를 강화하는 정책들이 상당부분 약화된 채 발의되었다. 이마저도 업계에서는 훨씬 더 큰 폭으로 약화하고 싶어했다.

○ 결정적으로, 이 사태는 불법어업 규제가 강화되는 국제적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해수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2018년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 회의에 참가한 당시 정부 대표단은 불법어업 사건을 신속하고 엄정히 처리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안이하게 대응을 하였고 이는 결국 오늘의 예비불법어업국 지정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회의에 참가한 정부 대표단 중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불과 약 1년 전 (2018년 10월)만 해도 당당하게 “한·EU, 국제적인 불법어업 근절을 위한 공동선언” 까지 채택한 한국이 또다시 원양 전선에서 추락했다. 불법어업 국가의 오명을 벗고 효과적인 제재를 가하다가 다시 개혁의 긴장 고삐를 늦추면서 벌어진 일이다. 시민단체는 국민을 대표하여 묻지 않을 수 없다. 또다시 억울함을 호소하며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자세로 이런 외교적 망신을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 불법 어업자들을 확실하게 걸러내어 오히려 불법어업 근절을 선도하는 국제적 리더로 거듭날 것인가? 정부와 업계의 문제 해결의지와 책임있는 행동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이에 시민사회는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 해수부, 특히 본 사태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당시 정부 대표단 대표는 책임을 져야 한다.
○ 불법, 비보고, 비규제 (IUU) 어업이 재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도록 하는, 보다 강력한 제재안을 원산법 개정안에 포함시키고, 불법어업 통제 관리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 원양업계는 불법어업을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업체를 퇴출시키는 등 자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 정부와 업계는 시민사회와 함께 불법 어업 방지를 위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공익법센터어필,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재단

참고:
남극 이빨고기 불법 어업 관련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2070600105

한국 환경단체 성명서:
http://kfem.or.kr/?p=196313

공동선언문 채택:
https://www.yna.co.kr/view/AKR20181018168300098

금, 2019/09/2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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