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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성장, 위기 그리고 수요와 공급의 제약들에 대한 연속적 돌파구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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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성장, 위기 그리고 수요와 공급의 제약들에 대한 연속적 돌파구들(2)

admin | 토, 2021/09/11- 20:35

내가 방금 개관한 수요공급에 대한 사고방식은 특히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936)에서 정식화된 케인스의 경제이론과 대조적이다.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적 이단을 정식화한 케인스의 작품 배경은 1930년대 경제의 붕괴였다. 작품의 중심 주제는 수요와 공급이 조정에 실패하여 낮은 수준의 고용과 활동에서 균형을 이루게 된 양태였다. 그의 작품은 당시의 형태로나 지금의 형태로나 시장경제가 자체적으로 수정하고 모든 자원을 가장 효율적인 용처에 배정하는 기대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불신할 이유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내가 방금 간략히 제시한 견해와 비슷하다. 노동력을 포함한 모든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시장경제는 완전고용을 유지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방금 간략히 제시한 접근법이 케인스의 견해와 어떻게 다른지를 표시하는 한 가지 방법은 내가 제안한 대안적 시각에서 케인스의 교리와 이러한 교리가 제공한 정책적 처방들이 어떤 점에서 결함을 가지는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케인스 이론의 첫 번째 제약은 그의 이론이 특수 사례의 이론이라는 점이다. 즉, 그의 이론은 수요와 공급이 조정에 실패하거나 고용과 활동의 위축된 수준에서만 조정을 이루는 많은 양상들 중 하나의 사례에 관한 이론이라는 점이다. 케인스의 이론이 다루었던 특수 사례는 세의 법칙148에 어긋나는 사례, 즉 공급이 그 자체로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는 사례이다. 일정한 가격의 고정성(마셜149과 그의 제자인 피구150가 연구한 임금의 하방경직성)으로 인해 가능해진 저축의 생산적인 투자로의 전환 실패(결과적으로 퇴장(退藏))는 총수요의 유지 실패로 귀결될 수도 있다. 유동적인 화폐시장 균형들의 성향에 대한 의기양양함이나 낙담과 같은 인간의 불안정한 기질의 영향은 침체를 확대하고 연장시킬 수도 있다. 신뢰 실패로 시작된 것이 자생적인 수정기제가 있을 수도 없는 실물경제 활동에서 쇠퇴로 마감될지도 모른다. 그 경우 정부는 재정정책 또는 직접적인 정부지출과 활동을 통해 부족한 수요를 만회하고 경제를 다시 활성화시켜야만 할지도 모른다.

여기에 수요와 공급이 상호조정에 실패하거나 침체된 활동 수준에서만 균형을 이루는 하나의 양상에 관한 하나의 설명과 하나의 이론이 있었다. 수요공급의 상호조정이 실패하는 많은 양상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앞의 초보적이고 추상적인 개요에서도 이미 시사하였다. 우리는 케인스가 자신의 일반이론을 출판하기 전 몇 년 동안 가끔씩 쓴 글들을 통해 시대의 위기에 대한 다른 대응들과 위기를 이해하는 다른 방식들을 고려했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러나 케인스는 실질적이고 이론적인 이유보다는 전략적이고 정치적인 이유로 (예컨대, 투자 부족보다는) 수요 부족을 강조함으로써 침체의 특징을 규정하려고 선택했다. 케인스는 수요 부족을 탓하고 재정확장 정책을 해법으로 요구하는 대응이 투자결정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을 주장하는 대응보다 정치적으로 더 매력적이고 따라서 이행하기도 더 쉽다고 생각하였다.

2007년부터 2009년 사이에 미국과 여타 선진국들은 금융위기를 겪었고 실물경제 활동에서 뚜렷한 쇠퇴로 이어졌다. 이러한 혼란이 1930년대에 케인스와 그의 동시대인들이 다루었던 경제적 붕괴만큼 심각하지 않을지라도 이 혼란은 이 시대의 표준적인 “경기순환”의 차원을 초월하였다. 나아가 이 혼란이 재정부양책과 통화확장 정책의 표준적 대응(케인스의 처방들의 취지와는 반대로, 재정부양책보다 훨씬 더 많은 통화확장 정책)을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혼란은 케인스가 직면했던 경제적 붕괴와는 결과적으로 다르지 않을지 모르지만 성격과 인과관계에서는 다른 붕괴로 곧 인식되었다. 혹자는 이러한 혼란상을 가계부채와 기업부채가 금융 불안을 촉발하고 이러한 금융 불안이 이어서 실물경제까지 악영향을 끼치게 된 “대차대조표불황”151이라고 규정하였다.

미국은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이 원하는 충분한 상품과 서비스의 공급을 중단했다. 수십 년 동안 소득과 자산의 급격한 역진적인 재분배가 나타났다. 역진적 재분배는 미국에서 경제성장의 잔여 전략인 저금리정책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간의 통상과 금융 거래에서 나타난 무역 및 자본 적자로 보증된 특히 가계 부분의 부채와 신용의 과도한 팽창을 통해 상쇄되었다. 그 직접적인 원인들의 성격상 이러한 침체는 1930년대의 더 극단적인 위기가 요구했던 것보다 훨씬 더 명백하게 경제의 공급측면에 대한 행동을 요구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침체는 케인스의 걸작의 표제와 상관없이 케인스의 교리가 적중하지 못한 것, 즉 수요공급간 상호조정의 실패들에 관한 일반이론을 요구하였다.

케인스 이론의 두 번째 제약은 그 이론이 구조적 내용이나 제도적 비전을 갖고 있지 않다는 데에 있다. 케인스 이론은 배교를 의도하였지만 영국의 정치경제학 전통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들 중 하나(즐겨 쓰는 설명 방식에서 제도를 심리학에 종속시키는 특징)를 과장하였다. 케인스 체제의 핵심 개념들(유동성 선호, 소비 성향, 장기적 기대상태)은 완전히 심리학적이다. 인간의 충동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유동적인 화폐시장 균형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도록 유도하고 이렇게 활용함으로써 실물경제의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유도한다.

제도적인 것보다 심리적인 것을 우선시하는 것과 경제의 공급측면을 도외시하고 수요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케인스 교리의 심리학주의와 (한계주의 전통과 일치하여) 경제학을 생산이론이라기보다는 시장에 기초한 교환이론으로 파악한 견해 사이에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고용과 경제활동의 쇠퇴에 대한 실천적 대응이라는 흥미로운 관점에서 이 문제를 고찰해보자. 경제의 제도적 안배들이나 생산조직에 대한 어떠한 변화를 수반하지 않은 채 공적자금을 투입하거나 민간지출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정책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최소한 케인스가 말하는 총 수요의 부족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 경제의 수요측면에 대한 더욱 효과적인 조치는 구조변화(경제적 기회와 능력에 대한 접근을 확장함으로써 경제적 편익의 일차적 분배를 쇄신하는 제도적 혁신)를 필요로 한다. 어쨌든 적어도 구조변화를 유발할 어떠한 시도도 회피하면서 수요 부족을 처리하는 방식을 상상하는 것은 가능하다. 구조변화가 없어도 된다는 시각은 케인스와 그 추종자들에게 견해와 정책적 제안들의 초점을 수요에 맞추게 한 요인들 중 하나였다.

우리가 불황의 원인이 경제의 수요측면과 공급측면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정을 알아낸 이상 우리는 시장의 제도와 생산의 안배에 대한 관심을 스스로 접어버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경제의 공급측면에서의 조치는 필연적으로 구조적인 조치이다. 북대서양의 부국들에서 전통적으로 보수적이거나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이 그러했듯이, 비록 그 목적이 경제적 제도들을 개혁하기보다는 시장경제의 소위 표준적인 형태를 순수한 또는 좀 더 순수한 형태로 복원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러한 조치는 구조적이다.

케인스 시각의 세 번째 결함은 다른 두 가지 결함에서 비롯된다. 케인스의 견해가 특수한 사례를 일반적인 해명으로 착각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구조적일 수밖에 없는 문제들을 구조적인 비전도 없이 취급함으로써 싹이 잘려 버렸기 때문에 그의 견해는 미완의 이론이다. 케인스 이론은 노동과 경제의 다른 자원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활동 수준에서 수요와 공급이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는지에 관한 이론[고전파 경제이론]보다 낫다. 그러나 케인스의 이론은 경제에서 영구적인 불균형이론보다 못하다. 이러한 영구적 불균형, 달리 말하면 붕괴에 대한 취약성은 내가 여기서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르는 구조변혁을 통해서만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케인스 이론은 내가 설명한 처음 두 가지 제약 때문에 그와 같은 이론이 될 수 없다. 첫째로 케인스 이론은 일반이론이 아니다. 케인스 이론은 노동과 자본의 상대적 권력들, 실물경제에서 금융의 위상 나아가 경제주체들의 문화와 의식의 더욱 무형적인 변형들을 통제하는 제도적 법적 안배들이 어떤 모습인지에 따라 가변적인 의미를 지니게 될 임금의 하방경직성이나 퇴장성향과 같은 요인들에 결정적인 비중을 부여한다.

둘째로 케인스 이론은 시장경제의 대안적인 조직방식에 관한 비전을 갖고 있지 않다. 결과적으로 케인스 이론은 실물경제 활동에서 붕괴들(공급과 수요의 상호조정이 자생적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붕괴들)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거나 낮은(다소간) 경제조직 방식(어떤 경제조직방식이 실물경제 활동에서 붕괴에 이를 가능성이 높은지 혹은 낮은지)을 공급측면에서도 수요측면에서도 구별할 기준을 갖고 있지 않다.

이러한 이론에서는 경제가 수요와 공급의 상호조정의 실패에 당연히 취약한 것인지 아닌지를 말할 근거가 없다. 어떤 특수한 가정들(예컨대, 임금인하에 맞서 임금을 방어하는 노동의 힘, 투자 결정을 통제하는 자본의 힘, 생산적인 투자에 저축을 유보하는 저축자의 힘 등에 대한 가정들)을 고려할 때, 여건들의 예측가능한 결합 때문에 완전고용은 항상 달성될지는 않는다는 것만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결합에 대해서는 특수한 처방이 존재한다.

이와는 달리 내가 여기서 요약한 견해에 따르면 경제는 어떤 것이 일어날 때까지는 영구적 불균형(공급과 수요는 서로 조정하지 못하고 수요공급의 제약들에 대한 반복적인 돌파구들을 위한 기제를 제공하지도 못한다) 상태에 있다. 여기서 말한 어떤 것은 전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장구한 경제적 진화의 산물이고 또한 이러한 진화를 완성하기 위해 분권적 경제를 조직하는 제도뿐만 아니라 그 생산방식에서도 변화를 요구한다. 나는 이러한 변화를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른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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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하계국제올림픽 개최여부는 혼선과 귀환 이상의 대사건이다. 이미 일본에게는 1940년에 동경에서 개최하기로 예정되었던 올림픽이 전쟁으로 취소된 경험이 있다. 1896년 국제올림픽이 출범한 이래, 1916, 1940, 1944년 등 세 번의 취소 사례가 있었는데 모두 세계대전 때문이었다. 국제경기행사는 때때로 정치적인 보이콧과 테러 등으로 얼룩지기도 했지만, 팬데믹을 이유로 일단 연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64년에 올림픽이 동경에서 처음 개최된 것은 아시아에서 처음 있던 역사적 이벤트이었고, 이를 계기로 일본은 전후 국제적인 무대에 평화를 존중하고 기술적으로 앞서나간 나라의 모습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당시의 구호는 ‘행복한 올림픽-Happy Olympic’ 이었다.

2011년 세가지 재앙을 동시에 겪은 일본은 이번 2020 이벤트를 ‘돌아온(회복의) 올림픽-Recovery Olympic’이라고 명명했는데 이에 대한 속내는 복합적이다.

일본은 이러한 대규모 국제행사를 유치하면서 한편으로 관광과 여행 스포츠와 교육 건강과 은퇴 등 영역에 투자를 유치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팬데믹 상황에도 불구하고 2021년에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낼 수 있다면, 명실공히 ‘Recovery Olympic’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그러나 성공 여부는 전세계가 바이러스와 싸우는 가운데 COVID-19의 대응에 대한 일본의 정치적 역량에 우선적으로 달려 있다.

팬데믹에 대한 판단지연과 공공보건보다 올림픽 유치를 우선했다는 일본의 정치적 판단에 대하여 국제적으로 광범한 비난이 일어났었다. 이런 배경으로 지난 3월24일 IOC(국제올림픽연맹)과 동경 조직위원회는 공동으로 행사의 연기를 선언하였다. 이런 와중에 최종적인 결정권을 쥐고 있던 일본이 마지막까지 연기를 거부하려고 했다는 점에 국제적 여론이 의구심을 던진 가운데, 참여 예정인 선수들과 경기연맹 그리고 각국의 올림픽조직위원회들이 영향을 미치면서 연기하는 것으로 결정이 이루어졌다.

이런 의구심은 올림픽 개최의 이해를 가지는 다수의 관계자들 사이에 복잡한 상황을 재조명하게 한다.

우선 IOC는 세계보건기구가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개최국인 일본과 협력하여 결국 어려운 결정을 해냈다. 개최국가로서 행사를 준비해온 해당도시 그리고 관련 경기연맹과 조직들과 함께 일해온 지난 7년간의 노력을 뒤로 하고 일본과 IOC는 공동으로 2020년 이벤트의 진행 가부를 결정해야만 했다.

6월 23일 현재, 전세계적으로 9백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오고 50만 명이 사망한 가운데, 경기를 연기한 것은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이 연기되었다는 것이 동경에 주는 신호는 (연기인지 축소인지 취소인지) 불분명해 보인다.

2021년에 행사를 치를 것인지 여부는 IOC-동경 간의 합동운영위원회가 관리하는데, 각자의 조직들은 나름대로 고유의 역할을 가진다. IOC팀은 “여기 우리가 간다-Here We go”라는 팀을, 동경은 “새로운 출발-New Lauch”라는 팀을 각자 구성하였다.

원래의 계획대로 진행했다면, 206개 국가들에서, 33개의 경기항목에 339개의 행사를 통하여 11만 명의 선수들이 참가하고, 7천 명의 수행단과 25천 명의 취재단, 8만 명의 자원종사자들 그리고 매일 90만 명의 관객으로 치렀을 것이었고, 전세계에서 10백만 명이 일본을 찾을 것으로 전망하였다.

일본인들은 총7.8백만 좌석표 중에 4.5백만 표를 이미 구매하였다. 국내에 43개의 경기시설들이 완비되었고, 수십 만의 숙박시설이 예약되어 있었다. 행사관련 조직들이 투자한 비용도 126-252억불에 달한다. 올림픽의 국제중계 수수료 역시 수십 억불에 이르는데 이는 IOC의 수입에 2/3에 해당한다. 한 예로 미국의 NBC사가 미국의 단독 중계권으로 14억불을 지불할 예정이었다.

행사의 연기로 발생하는 일본의 손실액은 27-58억불에 이르고, 만약 취소를 할 경우에는 액수가 415억불에 달할 것이다. 한편, 지난 몇 년 간, 일본을 찾는 외국관광객은 급격한 증가를 보였다. 2019년 한해 일본을 찾은 중국인들만 9백만을 헤아렸다.

COVOD-19의 충격은 일본에게 단순히 동경올림픽2020에 제한된 것이 아니다. 올림픽의 시설과 인프라에 이루어진 투자는 장기간에 걸쳐 회수될 것이며, 환경의 지속성을 위한 결정이라는 특징과 더불어, 1964년 동경올림픽 경험에서 보듯이 투자된 시설들은 지금도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듯이, 행사 이후 시설운용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2021년에 행사를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여부는 우선 국내적으로 COVID-19에 대한 일본의 대응력에 달려있다. 현재의 확진자(17,916명?)와 사망자 숫자(953명?)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나, 정책결정권자들은 이에 대한 회의론과 비판을 씻어내야 하며, 향후 있을 수 있는 재차 유행의 발발을 효과적으로 관리해 내야 한다.

또한 2021년 개최여부는 국제적으로 팬데믹이 관리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는데, 특히 올림픽의 주요 참가국(big hitters)인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이탈리아 등 2016년 리오 올림픽에서 메달순위 10위권에 있던 국가들의 참여가 중요하다.  불행하게도 이들 대부분이 코로나바이러스에 심각하게 감염되어 있는 가운데, 이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 지 여부에 달려있다.

주요 국가들의 선수들이 빠진 가운데 열리는 ‘축소올림픽’은 한마디로 인기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동경도지사인 Yuriko Koike는 일본정부와 올림픽조직위원회는 ‘축소된 경기-Simplified Games’를 검토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만약 일본이 2021년 7월까지 전염병을 통제하고 해외유입의 검역을 엄격히 해낸다면, 그나마 행사는 통제된 가운데 제한된 관중으로 치러낼 수 있을 것이다.

마침 2019년에 치른 세계 럭비월드컵 대회의 경험이 소중한데, 토너멘트가 한창 중에 불어 닥친 태풍에도 모든 경기를 무사히 마무리했다. 그러나 팬데믹의 경우에는 이와 달리 새로운 도전일 수 있다. ‘

ToKyo-2020’의 올림픽 행사가 취소가 되던 혹은 축소가 되던, 이는 향후 있을 국제적 대규모의 스포츠 행사들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좌표가 될 것이다. 연기될 ‘ToKyo-2020” 이후 수개월 뒤에 예정된 동계올림픽’Beijing-2022’와 다시 2년 뒤에 열릴 ‘Paris-2024’에 일본의 경험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출처: EAF in Sydney on 2020-06-24.

Helen Macnaughtan

런던 SOAS대학교 부설 국제기업경영 및 일본연구소 소장

수, 2020/07/0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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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북미에 이어 남미로, 이제는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빠른 속도로 확산 중이다.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크게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멕시코는 물론이거니와 브라질을 포함한 대부분 국가에서 거침없이 퍼져가는 이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건 생존의 기회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분명한 현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는 빈곤하지 않다. 살인적인 사회적 불평등이 뿌리 깊은 똬리를 틀고 있는 곳일 뿐, 결코 ‘가난’ 한 대륙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진 덕분에 일찌감치 주변 강대국의 먹이사슬에 저항할 틈도 없이 예속되어 버린 탓에, 외국자본과 소수 매판 자본가 계급이 주축이 되어 형성한 ‘신식민지’가 지금의 라틴아메리카이다.

형식적인 정치적 독립은 중요하지 않다. 자본의 힘이라면 정치 권력쯤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저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지개혁이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쿠데타가 일어났고, 혹독한 독재자에게 저항하여 민중 정부라도 세우면 어김없이 외세의 지원을 받는 반군이 득세하는가 하면, 선거를 통해 집권한다 한들 기득권층인 자본가 계급의 맘에 들지 않으면 ‘우매한’ 대중이 선동에 이끌러 선택한 ‘합법적’이지 않은 정권이 된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20세기 내내 반복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는 여전히 진해 중이다. 유럽의 식민지로 시작해 미국의 ‘신’식민지로 전락한 이 대륙의 운명은 소위 자본주의 시스템이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여지없이 보여주는 곳이다. 이성과 합리가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라, 소수 독점자본의 이해를 보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회를 해체하여 개인 각자도생의 길만을 열어놓았으니,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외면당하는 수많은 라틴아메리카 국민의 설 자리는 벼랑 끝이다.

특히, 지금과 같이 전 세계가 전염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사회로 외면당한 이들에게 남은 것은 코로나19의 위험을 애써 외면하는 일일 것이다. 당장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 막막한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고, 지켜야 할 수칙을 이야기한 들 공허한 소리일 뿐이다. 이를 개인의 문제나 책임으로 치부해 버리지 말자. 자신의 하루 일 노동이 나와 가족 생계의 전부가 되는 사람들에게 중산층의 경제적 여유와 안정을 갖춘 이들에게나 가능할 법한 전염병 대처나 위기 인식 등을 요구하는 것은 더욱 혹독하다. 그렇다. 현재 그들에게 하루의 생계보다 중요한 것은 없지 않은가.

멕시코, 페루, 칠레, 콜롬비아, 브라질 등 소위 라틴아메리카 대부분 국가의 비공식 경제부문은 거의 50%에 육박하고, 이는 구조적으로 국가와 사회시스템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음을 의미한다. 이들에게 삶이란 사회적 공존의 영역이 아니라 원자화된 개인의 치열한 생존의 투쟁이다. 계층의 이동이라는 것은 존재한 적도 없다. 그렇게 차곡차곡 만들어진 라틴아메리카의 이른바 사회질서는 공고하다.

얼마 전 에콰도르 과야낄(Guayaquil)이라는 도시에서 코로나 감염 사망자들의 시신이 길거리에 방치되는 것이 국내에 보도되자, 많은 이들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브라질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사망자를 매장하는 모습이 소개되기도 했다. 외신의 ‘선택’을 받은 극적인 장면들만 국내 포털을 통해 전달될 뿐이다. 미국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제1세계와 제3세계의 기층민중들의 운명은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들 국가와 사회의 시스템이 어떻게 다수의 국민 혹은 사회의 구성원들을 소외시키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낼 수 있었는가이다. 현재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확산되는 코로나19는 분명 ‘계급’에 따른 ‘선별적’ 감염이 두드러질 것이다. 유명인 몇몇이 감염되고 정치인들이 감염되었다고 해서, 이 전염병의 계급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첨단 기술을 갖춘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고 완치될 수 가능성이 있지만, 사회보장은커녕 의료보험도 없는 다수 기층민중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테니까. 코로나19의 급습은 유럽은 물론 미국과 같은 자칭 제1세계가 구축한 체제가 양산한 사회의 배제시스템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세계적으로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지금, 멕시코에서는 코로나19 감염으로 병원을 찾으면 고통 없이 빨리 죽을 수 있도록 주사를 놓는다는 괴담에 가까운 이야기가 SNS와 Facebook을 통해 번지고 있는 모양이다. 이 같은 문제의 본질은 결국 그 소문의 진위보다는 평소 멕시코 의료체계에 대한 불신과 공중보건 시스템의 부재가 낳은 불안과 공포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당뇨나 심장병과 같은 만성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전체 질병의 70%에 이르지만, 현재 멕시코의 공공의료 시스템으로는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여지는 적다. 그렇다고 민영의료 시스템이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멕시코 전체 인구의 약 천 육백만 명이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안정적인 정치와 시장경제가 정착했다고 알려진 칠레도 별반 다르지 않다. 1973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피노쳇 군부 정권은 일찌감치 미국 시카고 대학 출신의 경제관료들을 앞세워 가장 ‘모범적’인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했다. 그 결과 현재 역내 가장 불평등한 민영 의료시스템을 구축했고, 가장 비싼 약값을 치러야 하는 국가이다. 참고로 최상위 1%가 전체 국부의 26.5%를 소유하고, 반면 취약계층의 50%가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2.1%에 불과하다. 2019년 10월부터 시작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구조적 원인인 셈이다.

이번 코로나19로 지금까지 구축되어 온 의료체계의 붕괴, 의료 민영화, 의료의 공공성 등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비판, 그리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러나, 병상이 부족해 환자들이 방치되고 산소 호흡기가 부족했다는 사실보다 정작 문제의 본질은 과연 바이러스라는 공동의 적으로부터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가이다. 단순히 의료시스템만의 문제로만 좁혀서 다루어질 수 있을까. 국가 예산을 들여 병상을 확보하고 호흡기를 대량 구매하는 것이 위기를 대처하는 퍼포먼스에 그치지 않으려면 말이다. 얼마 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볼리비아의 과도기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의료장비 구매 과정에서 불거진 부패 스캔들로 곤욕을 치렀지만달라진 것은 없다.

상점과 마트에 풍부하게 진열된 손소독제나 마스크는 그것을 구매할 수 있는 이들에게나 해당한다. 그리고, 여전히 라틴아메리카의 상당수 국민은 상점에 즐비하게 진열된 손 세정제를 사는 것이 부담스럽다. 반면, 쿠바에는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 돈만 있다면 흔하게 살 수 있는 잘 포장된 손 소독제 따위는 없다. 이 팬더믹으로 더욱 좁혀오는 경제봉쇄를 차치하더라도, 턱없는 물자 부족은 쿠바인들의 일상이 되었다. 이를 사회주의의 ‘저주’라고 속단하지 않기 바란다. 그 이면에는 반세기가 넘도록 미국의 경제봉쇄를 버텨온 저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니까.

쿠바에서 팬더믹이 시작되고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지역사회 중심으로 시작된 공동행동이다. 쿠바의 모든 의료진과 의대생들이 각 지역으로 파견되고, 노인과 감염 취약계층을 파악하는 특별전담의료진들도 구성이 된다. 이 같은 사회적 행동의 목적은 하나다. 코로나19의 급습으로부터 함께 생존할 수 있는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하려는 사회의 빠른 대처였고, 소외 계층이 없도록 하려는 부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그래서 쿠바는 여전히 옳다. 적어도 코로나19의 급습을 받는 지금.

수, 2020/07/08-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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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현재 양극단으로 나뉘어 있지만, 대부분 중국이 커다란 문제라는 점에는 동의하는 것 같다. 트럼프는 취임하는 첫날부터 중국과 통상문제로 대립각을 세웠고, 2017년 국가안보전략에서 중국을 ‘수정주의적 패권’이라고 호칭을 붙이며 주요한 전략적 적국으로 규정하였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예상되는 조 바이던은 2019년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중국이 미국의 먹거리를 빼앗아간다는 우려를 평가절하하였지만, 그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에 대한 강경대응을 추구하고 있다.

공화당의 강경파 상원인 J. Hawley와 M. Gaetz 같은 인사들이 경고음을 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진보와 중도 진영 역시 새로운 냉전시대에 대하여 염려하면서 중국과 관계를 통제할 새로운 대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표현을 달리하고 있지만, 이들 모두는 미중 관계의 현상태를 매우 중대하게 바라보고 있다.

불행하게도 미중 간의 경쟁에 대한 논쟁은 대상국가의 내부적인 성격을 비난하는 관행적 경향에 치우쳐 있다. 이들은 중국의 지배이념, 정치체계, 또는 개인 지도자의 특성 등을 지적한다. 이러한 경향은 미국의 오랜 관행이 되었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의 참여 구실로 독일의 군사주의를 격퇴하고 세계를 민주주의로 지킨다는 것을 내세워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 하였고, 이후 제2차 대전에는 파시즘을 패퇴시킨다는 명분으로 싸웠다.

냉전의 초기 당시에 유명했던 조지 캐넌의 ‘X’ 문건(타이틀: 소비에트 행동의 근원)에는 ‘모스크바는 공산당의 권위주의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내부적으로 팽창에 대한 무자비한 동기를 부여하고 외부적으로 상대국가들을 적으로 규정한다. 원만한 타협은 결코 유효하지 않으며, 소비에트가 내부적으로 무너질 때까지 봉쇄를 감행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이다”라고 적고 있다.

최근에도 미국의 지도자들은 이라크의 문제를 사담 후세인이라는 무자비하고 사악한 야망과 비이성적인 종교적 열광을 지닌 지도자 때문으로 규정하고, 그의 외교정책이 전적으로 이념적 신념에 의해서 진행된다고 비난하였다.

이들에 의하면, 모든 대결의 과정 속에서, 제기되는 현안의 문제들은 국제정치 자체의 본질적인 경쟁적 성격이라는 환경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되는 상대국 지도자의 기본성격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과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전직 백악관 안보보좌관이었던 H.R. MacMaster는 중국이 위협적인 것은 지도자들이 민주적 정치제도와 자유시장경제 대신에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모델을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폼페이오 역시 같은 입장이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미중 관계가 악화된 것은 10년 전 중국과 지금의 공산당 리더쉽이 달라졌기 때문이라며, 현재 중국공산당은 서구의 이상, 서구의 민주주의 서구적 가치를 파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더 나가서, 호주의 수상인 Kervin Rudd같이 중국에 대해 복잡한(황당한) 견해를 지닌 이들은 “중국의 점증하는 위협은 시진핑 주석이 권력집중에 대한 공세적인 입장을 취한 것에 기인한다”고 판단하면서 “시진핑이 개인적 (독재)지도성향으로 중국체제에 관료제라는 전염병을 강화시키려 한다. 반면에 국제사회는 무방비상태로 이를 방관하고 상황에 익숙해져 있다”고 염려를 표한다.

이러한 견해는 중국의 지도자가 다른 성격이면 문제가 덜 심각했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같은 주장을 Timothy G. Ash도 되풀이 한다 “신냉전시대는 시진핑이 2012년 공산당의 지도자가 되면서 반전을 거듭하며 시작되었다.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보다 공세적으로 변질되었다.”

다른 이들은 중국의 강화된 외교정책의 주요한 요인으로 민족주의의 대두(자연적이든, 정부가 조작을 하였든)를 언급하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일군의 국제관계학자들에 의해 제기되는 것으로 카테고리에 의존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들은 단위-차원(Unit-level), 축소주의자(reductionist), 이차(부수적)-이미지(second-image)등으로 카테고리를 분류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상기의 다양한 이론들은 대체로 해당국가의 외교정책이 기본적으로 내부의 특성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미국의 외교정책은 때때로 자신의 민주주의 시스템과 자유라는 가치 또는 자본제적 경제질서 등에서 의존하며, 다른 국가들의 정책 역시 자신들의 내부적인 지배체제, 통치이념, 전략적인 문화 또는 지도자의 개인성향 등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국내적 특성에 기반하는 설명들은 매우 단순하고 직접적이라는 측면에서 부분적으로 매력적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민주주의는 관용에 기반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반면에, 지도자들이 무엇을 하던 견제하는 기능이 없는 독재국가들의 침략자는 지배와 억압의 성향에 기반하여 공세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내부적 특성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면, 대결의 과정에 대한 자신의 책임에 대하여 눈을 감게 하고 손쉽게 상대방을 비난하도록 유도하기 십상이다. 우리는 천사의 편에 서 있으며 우리의 정치체제는 건전하고 정의로운 원칙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전적으로 상대방의 나쁜 정치제도 또는 악한 지도자 때문에 온갖 악한 일들이 터져 나온다는 식이다.

이러한 인식에 기반하면 해결책이 손쉽게 준비된다. “나쁜 나라 또는 사악한 지도자들을 제거하라!” 또한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것은 국제적인 도전에 직면하여 일반대중의 지지를 과시하는 속도전의 방식으로, 악한 짓을 벌리는 것이 상대방의 속성이라고 몰아붙이면 된다.

불행하게도 모든 대결의 원인을 상대방의 국내적 속성에 기인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우선 대결이 일차적으로 상대국가의 체제라는 속성에 나온 것이라면, 장기적인 해결책은 체제를 전복하기만 하면 된다. 타협과 협상, 공존공영, 상호이익을 위한 광범한 협력 등을 거론할 근거가 사라지면서 차후에 잠재적으로 엄청난 재앙을 불러오게 된다. 상대방 역시 우리의 본질을 위협이라고 인식하게 되면 죽을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인 셈이다.

단위-수준(unit-level)이론이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미중 경쟁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광범한 구조적 요인들이다.

일단 강대국인 양국은 국제적인 기구들 속에서 전면적으로 격돌을 마주하게 된다. 왜냐하면 서로가 상대방에게 잠재적인 위협인 까닭에 서로가 상대방을 짜증스럽게 바라보면서 상대방의 이익을 위협하며 자신이 보다 많은 것을 확보하려는 동시에 상대방의 능력을 축소시키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서로가 상대방이 자신의 안보와 번영 그리고 국내적 생활방식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온갖 기법과 성공의 수위를 다양하게 변화시키면서 서로를 견제하여 갈 것이다.  그리고 서로가 상대방의 미래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의 최근 외교정책의 변덕에서 충분히 지켜보았듯이, 모든 영역에서 패권을 향해 양보없이 경쟁을 벌여나갈 것이다. 상대방에게 가하려는 서로의 전략적 목표의 불일치(비양립성)으로 인해, 부분적으로 지정학적 조건에서 부분적으로는 지난 세기의 사건경험을 통하여, 긴장의 상황은 더욱 확대되어 간다.

한가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의 지도자들은 가능한 이웃국가들과 안전하게 지내길 바라는 것이고, 같은 배경으로 과거에 미국이 서구의 지역에서 몬로 독트린(고립주의)을 공식화하고 강화해온 행적이다. 북경당국은 주변국가들에게 자신들의 일당 국가자본주의를 강요할 필요가 없으며, 모든 주변국가들이 각자의 이해에 전념하기를 바라면서 그들에게 심각한 일체의 위협을 가하길 원하지 않는다.

그러한 목표를 향하여, 중국은 미국이 중국 주변에서 철수하여 미국의 군사력에 대해 위협을 느끼지 않거나 일부 주변국들이 미국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이러한 바램은 비현실적인 것도 아니고 비합리적인 것도 아니다. 어느 국가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상대방이 군사력을 주변의 여러 국가들과 연합하여 배치하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한편 미국은 아시아에 잔류해야 할 이유들을 가지고 있다. J. Mearsheimer와 필자가 여러 번 언급하였듯이, 중국이 아시아에서 지배력을 확장하는 것을 봉쇄하는 것이 미국의 안보를 강화하고 중국으로 하여금 국내 현안에 집중하도록 강요하면서 세계를 향해, 특히 미국의 인접 지역에, 힘을 과시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이런 전략의 논리는 역으로 중국이 자유질서를 유지하고 미국이 중국식 국가자본주의를 도입하려 한다고 가정해도 유효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불행하게도 제로-섬의 대립이다. 누구도 상대방을 제압하지 않고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없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 간에 진행되는 경쟁의 근본 구도는 개별적인 지도자의 성향이나 체제의 성격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강대한 양국이 추구하는 힘의 배분과 이에 상응하는 전략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물론 경쟁의 강도에 미치는 영향과 상대방에 가하는 기량과 관련하여, 정치상황과 개별적인 지도력이 전혀 무관한 것은 절대 아니다. 지도자에 따라 수반되는 위험을 감수(또는 회피)하려 할 것이며, 현재의 미국인들은 무능한 지도력이 펼치는 고통스런 현장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거나 국내적 상황이 급변한다고 해서 미중 관계가 가지는 본질적인 경쟁의 성격이 따라서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국 내의 진보진영과 수구집단 모두 잘못하고 있다. 전자는 중국은 미국에 대하여 대단한 위협을 가하지 않을 것이며, 적당한 타협과 능란한 외교를 결합하여 대응하면 새로운 냉전이 야기시키는 격돌의 대부분을 제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필자는 능란한 외교관의 자질을 전적으로 지지하지만, 이것만으로 강대국 간에 힘의 배분과정에서 발생하는 치열한 경쟁을 예방하는데 충분하다고 믿지 않는다.

트럼프가 그가 주도하는 통상전쟁에서 언급하였듯이, 참모인 강경파들은 중국과 경쟁이 승리하기 쉽고 편한 것으로 판단한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더욱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미중의 경제관계에 대한 단절(decoupling)을 시도하며, 국방비를 대폭 증액하는 한편, 미국과 같은 민주주의를 과시하면, 궁극적으로 중국의 공산당체제를 종결시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기의 행동에 따르는 명백한 위험과 비용을 차치하더라도, 이들은 중국의 취약점을 과장하고 미국이 지불할 비용을 과소평가하며, 중국과 치를 십자군 전쟁에 다른 국가들이 흔쾌히 가담할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가정하고 있다. 중국의 주변국가들은 중국에게 지배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미국과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하지만, 한편으로는 폭력적인 대결의 장에 말려들기를 결단코 원하지 않는다.

또한 중국이 민주적으로 변한다 해서 자신의 이해를 방어하는데 소극적이며 미국의 종속적 지위를 항구적으로 수용할 것이라고 믿은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그렇다면 현재 국제정치의 구조적 관점이 제기하는 내용은 무엇일까?

첫째로, 세계가 장기적 변화의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천재적인 전략이나 돌출적인 사건으로 현재의 경쟁구도가 해결될 수는 없다. 최소한 가까운 장래는 아니다.

두 번째, 현재의 상황은 심각한 경쟁구도이며, 미국은 이를 심각하게 대처해야 한다. 아마추어 수준의 책임자들과 국가보다 개인의 이익을 앞세우는 대통령을 내세워 야심적인 경쟁 상대자와 경합할 수는 없다. 당연히 앞선 군사기술에 투자를 해야 하고,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외교관 진영이 갖추어져야 한다. 이에 더하여 아시아 동맹국가들과 충실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긴요한 까닭은 지역내의 많은 도움이 없이 단순히 미국 홀로 아시아에 영향력을 지탱할 수는 없다.

셋째로, 가장 중요한 일은 양국이 경계(boundary)를 가지고 때로는 경합을 하고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면서도, 미국과 중국의 이해가 중첩되는 주제에 대해서는 서로 협력하고 진지하게 이해를 공유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후위기와 팬데믹 예방에 관한 것이다.

일방적으로 상대방을 묵살하고 혼자서 모든 위험을 제거하고 미래의 위기를 예방할 수 없기 때문에, 워싱턴 당국은 중국이 넘어서는 안되는 레드-라인을 분명히 설정하고 중국에게 이를 이해시켜야 한다.

이 지점에서 단위-수준(unit-level)의 이론을 도입해야 한다. 양국은 경쟁을 하면서도 현재 여러 국제적인 기구들 안에서 심하게 얽혀 있기에, 이런 상황에서 경쟁관계를 어떻게 취급해야 할지는 각자의 국내 정치제도와 책임자(지도자)들의 역량에 달려있다.

필자는 현재 미국이 결코 밀리지는 않겠지만 일방적으로 우세하지도 않다고 판단한다.

출처: 포린포리시 on 2020-06-30.

Stephen M. Walt

하버드대학교의 석좌교수이며 국제관계학의 세계적 권위자이다

목, 2020/07/0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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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주:

신향촌건설운동 20주년을 맞아, 원톄쥔 교수가 운동의 회고와 함께 그 이론적 배경을 정리해나가고 있다. ‘맛보기’에 해당하는 이 짧은 비디오 강연에서는, 신향촌건설운동의 큰 사고의 틀을 규정하는 중국 전통사상에 대한 간략한 언급과 함께, 자신들의 이론 다섯가지를 정리해서 설명하고 있다. 

미국과의 갈등이 초래한 직접적 압력과 이에 대한 중국정부의 각종 지정학적 대응, 코로나 사태로 인한 전세계적 혐중분위기와 함께, 최근 홍콩보안법 통과는 미국과 서방을 대체하는 대안 거대담론의 제시자로서, 중국에 대한 세계의 기대를 크게 잠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톄쥔 교수와 그의 추종자/찬동자들은 중국의 주류와 비주류, 그리고 관방/시장과 민간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고 있다는 점에서, 계속 외부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이 이론들은, 기후변화, 불평등과 같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초래한 전지구적 문제들에 대한 대답으로, 큰 틀에서는 생태문명 건설, 구체적으로는 로컬라이제이션과 향촌건설이라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각급 정부의 ‘향촌진흥’정책에 실제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또, 그 내용들이, 중국 바깥 세계와의 충돌을 최소화하거나, 오히려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초래한 다양한 리스크를 줄이는 방향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위협론을 반박할만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원톄쥔 교수의 이론은 주로 중국 (근)현대경제사의 실전적 분석과 정책수립/실천, 민간대안운동 경험을 그 재료로 삼는 2~30년 이상의 실천과 10년간의 연구 성과에 기반하고 있다. 특히, 그의 세계체제속에서의 비용전가론이나 농촌균형발전론은 중국내에서도 여전히 비주류에 속하긴 하지만, 오랜 기간 숙성돼온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문명파생론’은 그의 전문적 연구 영역에서 다소 벗어난 최근의 고민으로, 학계의 활발한 논의대상으로 격상된 것 같지는 않다. 사실, 그 다음 이론인  ‘제도파생론’과 함께, 이 주장들은 서구 학계의 중국문명/ 정부 비판에 대한 대응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학문적 주장으로서의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외부세계와의 열린 논쟁의 과정과, 추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경제학자로서, 그의 사상적 고민, 형이상학적 논의는 그의 연구결과에서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중국 ‘생태문명’의 기반사상이나 그가 스승으로 여기는 ‘량슈밍’사상 등에 주목하는 중국 바깥의 연구자나 활동가들은 이를 궁금하게 여기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강연이, 도덕경을 직접 언급하거나, 중용을 이야기하는 것은, 상당히 예외적이지만, 역시 정확한 학술적 표현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삼농문제는 개발도상국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중국의 삼농문제는 1990년대 급진적인 현대화 개혁이래, 중국사회의 큰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고, 21세기에 진입하는 시점에, 공산당과 국가의 중요한 관심사가 됐다. 2001년 이래 신향촌건설운동을 진행하면서, 삼농문제의 완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과거 20년간, “민생을 보호하고, 연대를 촉진하며, 다원화를 제창한다”라는 생태문명 이념을 받들어 오며, 지식인과 청년학생들이 선도해서, 사회 각계층이 스스로 참여하고, 기층민중과 함께, 향토문화가 결합된 실천적 사회개량 실험을 해왔다. 그 결과, 중국 곳곳에 실천 현장이 생겨났다.

 신농촌건설로부터, 향촌진흥에 이르기까지, 식품안전으로부터, 안전한 문화, 안전한 생태환경, 그리고 국가안보에 이르기까지, 20년에 걸쳐, 향촌건설참여자들의 분투는 쉼이 없었다: 향촌건설에서, 도농교류, 국제교류에 이르기까지, 사회공익에서 사회적 기업에 이르기까지, 인재육성에서, 농민과의 협력, 농민공지원, 사회적 생태농업 (커뮤니티 지원 농업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향토문화부흥, 향촌건설연구에서 향촌종합발전에 이르기까지, 지난 이십년간, 다양한 사회적 모색이 지속돼 왔다.  


향촌건설사상이론체계

여러분들에게 우리 향촌건설의 실천과정중에 만들어진 이론 체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는 60세부터 시작하여 이제 70세에 이를 때까지, 우리 연구진들과 함께, 각종 연구를 수행하는 가운데, 만들어진 성과이기도 하다.

우리의 이론체계는 5개 관점으로 정리할 수 있다. 동시에 이 5개 관점에 대한 연구는 어떻든, 완전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해야겠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연구 그룹의 스타일이다. 우리는 중국 전통문화의 정수를 잘 간직하고 유지해왔다. 이것이 우리 연구의 태도에 일관되게 반영이 돼 있다.

중국전통문화는 근대 자연과학과 같이 분과가 명확하게 나뉘어 그 구조를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선, 큰 틀을 만들어, 전체적인 대략의 얼개를 이해하려고 한다. 이런 태도는 우리가 지금 강조하는 생태문명 전략의 전환과도 관련이 있다. 21세기를 맞아, 갈수록 공업화, 자본화가 진행되면서 초래된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중국은 생태문명으로 전환을 시작했다. 큰 방향성의 전환이었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생태자원이란 단어는 대단히 풍부한 내용을 품고 있다. 극단적으로 다양화한 자원체계이고, 그 요소들이 함께 묶여 있어서, 하나 하나 분리해 낼 수도 없다. 현재 중국의 국가지도자가 강조하는 ‘양산사상兩山思想’ (역자주: 시진핑이 녹수청산綠水青山이 금산은산金山銀山이다라고 한 표현을 이르는 말, 환경생태자원이 경제적 가치도 가진다는 의미)은, 산과 물, 전답, 숲, 호수, 풀 등의 자원이 종합적인 하나의 시스템으로 개발돼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원을 쪼개서 시장에 내놓으면 그 가치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생태자원은 구조화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원래 시장 논리로 명확하게 분절될 수 없는 자원이다. 전일적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생태 시스템이다. 인류는 공업화 시대에 생태자원을 생산요소로 변화시켰다. 이를테면, 공업화와 도시화는 토지를 사용해야 하는데, 토지는 생산요소로 인식된다. 이렇게 토지를 사용하기 위해, 숲의 나무를 베어내고, 불을 질러 황무지로 만든다. 그 결과로 우리는 생태위기를 목도하고 있다. 아마존 열대우림이 매년 감소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전통적인 개발은 이렇게 토지를 평면자원으로만 인식한다. 그 토지안에 자라는 나무, 풀, 서식하는 동물 등은 토지 자원 관점에서는 전혀 가치가 없기 때문에, 모두 제거돼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물 다양성 자원은 사실,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인류 사회와 매우 고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우선 생태문명 전환이 요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사상의식 측면에서 개명돼야 한다는 것이고 바로 이것이 최근 향촌건설이 강조해온 일련의 기본이념과도 통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대상무형大象無形, 대음희성大音希聲 (도덕경 41장)을 강조해 왔다. 만일 당신이 한마리 코끼리를 묘사하고자 한다면, 특히나 체계적으로 코끼리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다름아니다. 다리를 만지면, 기둥이라고 할 것이고, 배를 만지면, 벽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야기하는 대상무형은, elephant 즉 코끼리 이야기가 아니라, 커다란 객관적인 세계를 의미한다. 중국의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전략이 결합적으로 말하는 물과 숲, 전답 등을 아우르는 생태자원은 또한 구조적으로 쪼개서 분석할 수 없는, 담론상 하나의 객관적인 사물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가 대상무형을 강조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다원화사회구조속의 활동에 참여하도록 독려할 때, 무성무식無聲無息 (출전: 시경, 전혀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정체를 알 수 없음)이 더 명확히 드러난다. 지난 몇년간 외국에서 수많은 친구들이 찾아왔다. 농촌에 가서 수많은 향촌건설 현장을 돌아보고 나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현장이 생겨났는가?” 물었다. 우리 대답은, 허탈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별거 없다. 원래 이렇게 해왔다. 무슨 본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뚜렷한 리더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모두들 자기 일을 하는 거다. 판은 크게 벌리려고 노력하지만, 큰 소리가 나는 것도 아니다. 소식을 챙겨 들으려고 해도 따로 들을 수 없지만, 가보면 만날 수 있다.” 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도가의 철학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은 이 사회가 원래 이런 상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이 자연의 다양성을 갖춘 생태 시스템안에서 느끼는 것과 유사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만일, 지속적으로 생태화를 진행하다보면, 사람은 자연생태와 긴밀하게 결합돼 간다. 인류사회의 다양성은 자연생태의 다양성과 일치한다. 그래서 이런 감각으로 계속 진행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입어중도立於中道”에 처한 자신을 발견한다. 중도는 무엇인가 ? 대도중용大道中庸이다 – 누가 누구이고,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를 판별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의 행위는 어떻든 다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표현으로 나타날 때는, 비이성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존재라면, 각각의 행위에서 나름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존재는 다 합리적이다.

이런 상대적이며, 다양한 이유와 합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중도에 서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처지에 도달했을 때, 이것을 “중도이립中道而立,비비가장야臂非加長也,이종치자중而從之者眾” (역자주 – 맹자와 순자를 동시에 인용하고 있다.  활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활시위를 당기지만, 발사는 하지 않는다. 또,  높은 곳에 올라 팔을 뻗으면 팔이 길지 않아도 보인다. 배우는 사람들이 쉽게 따라 올 수 있도록 여지를 둔다라는 의미 )이라고 할 수있다. 이 표현은 왜 향촌건설운동에 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지 잘 설명해 준다.  그래서, 향촌건설은 서구의 냉전형 이념이 만들어낸, 인문사회과학으로 포장된 시스템을 통해, 오직 하나의 정치형태만이 정답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항상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원선생 어째서 늘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소?” 나는 원래 습관이라고 답하면서 미소를 짓는다. 왜냐하면 매사에 흑백논리를 들이 댈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요즘 연구지도 사상으로 중국전통문명중에서도 비교적 변증론적 색채를 가진 것을 취한다. 또 비교적 자연주의에 가까운 노자의 사상을 채택한다. 물론 공자의 사상도 결합돼 있으며, 불가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실은 전통 사상내에서 유불도儒佛道 삼자를 분리해내기도 어렵다. 그래서 향촌건설연구는 서구의 사회과학이 채택하는 분과학문적 분류를 채택하지 않기로 한다. 특정 이념에서 출발한 연구도 지양한다.

 

회고해보는 우리의 관점

첫번째 관점은 역사적으로 중화민족의 문명전승을 염두에 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만년에 달하는 문명이고, 이 문명의 전승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다. 세계 문명사를 돌아보아도 문명의 연속성은 단순한 인위에 의해서 확보되지 않았다. 그래서 특정 인종이 선진적이라 할 수 없고, 그들이 다른 기타 정신요소를 더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실제는 외부의 환경차이가 있을뿐이다. 그래서 문명의 형성 조건이 다르고, 각각의 인류 문명의 차이를 낳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옳고 그름도 없고, 선진과 후진도 없다고 규정한다. 다양한 인류문명은 각기 스스로 합리성을 가지고 존재한다.   내재적으로 합리적 요소를 갖춘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부락 사회가 낙후된 것이라고 하고, 생존방식이 원시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원시적 생활방식은 그 자체로 생존을 위한 내재적 합리성을 갖고 있다. 왜 이것을 후진적이라고 단정해야 하는가? 이것은 자본주의가 인류문명의 차이를 구별하며 만든, 일종의 주관적 판단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가치관을 배제한 채 인류의 문명을 관찰하려고 한다. 중요한 관찰의 포인트는, 기후의 주기변화에 따라 파생된 적응성 변화이다. 기후주기변화는 또 기후대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렇게 각각의 기후대는 직접적으로 지표의 자원에 영향을 끼친다. 인류사회는 일찍이 원시시대에 농업과 수렵문명의 시기로 접어들었고, 주로 지표의 자원에 의존해서 생존해왔다. 그래서, 기후의 주기변화와 특정 기후대에서의 지표지리자원의 변화가 인류문명의 차이를 가져왔다.

만일 우리가 세계관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면, 우리 향촌건설연구자들의 세계관은 ‘객관적인 역사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인류는 주로 식민화에 의해 결정된 이념에 몰입했고, 실은 서구중심주의가 서방의 이러한 변화 과정을 선진이자 보편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서구중심주의를 포기한다면, 동방의 문명이든 서방의 문명이든, 남방 혹은 북방의 국가이든 각양의 생존 방식이 본래부터 다른 문화로 나타났을 것이고, 당연히 문화다양성의 합리적 내적요인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 향촌건설을 통해서 사람과 자연간의 긴밀한 결합을 추진하고자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식민화 이래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이 세계의 새로운 생태화 세계관과 가치관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예전에 홍콩 링난대학의 라우킨치 LAU Kin Chi 劉健芝선생의 도움으로 국제비교연구를 했을 때, 내 강연에서 beyond cosmology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현재의 세계관을 뛰어 넘어야하고, 가치 판단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당시에는 스스로도 매우 명료한  뜻을 가지고 한 말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나의 중요한 관점중 하나가 됐다.

다음은 근대 인류사회에서 우리가 형성한 연구 관점을 돌아본다.

과거 개발도상국의 많은 사람들은, 우리 중국인을 포함해서, 모든 것이, 제도의 문제라는 ‘제도결정론’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거시적 비교를 한 후에, 역사가 내포하는 세계관을 통해서, 제도문제를 연구해서 ‘제도파생론’을 만들어 냈다.

만일 우리가 앞서 언급한 첫번째 관점을 ‘인류문명차이 파생론’이라고 명명한다면, 그 내용은 자연환경조건의 변화에 따라서 문명의 형태가 결정되고 파생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 다음단계는 ‘제도파생론’인데, 일정한 자원의 구속조건하에서 상이한 인류문화가 형성되고, 거기에 맞는 각각의 제도가 파생됐다는 뜻이다. 

왜냐면, 각 지역에 부여된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식민화이후 수립된 대부분의 후발국가들은 모두 그들의 자원조건을 다시 변화시키는 것이 매우 어렵다. 이런 자원환경이 제한하는 조건하에서, 제도는 요소구조의 변화에서 파생된다. 혹은 요소구조변화가 이런 제도를 형성한다. 그리고 후속제도변화의 경로의존을 결정하게 된다. 제도 변화의 경로가 앞서의 제도 구조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말하자면, 우리는 제도결정론이 아니라, 제도파생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두번째 관점은 사실 하나의 이론 프레임을 형성하게 된다.

세번째 관점은 개발도상국가가 현재 직면한 큰 도전과제들이 실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제도적 비용이 외부에서 전가된 것이라는 점이다. 

한걸음 더나아가 이 이론과 월러스타인, 사미르 아민 그리고 아리기의 이론과 함께 결합해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세계가 사실은 핵심국가-반핵심반주변국가-주변국가의 순서대로 비용이 전가 되는 구조로 운용된다는 것이다.

왜 선진국은 선진국이 됐나? 왜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은 늘 수많은 재난에 직면해야 하는가? 사실은 전자의 비용이 후자에 전가됐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두번째 관점과 관계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어떤 제도변천도 모두 본래 제도의 프레임안에서 수익을 점유하고 비용은 다른 이에게 떠 넘기는 행위를 주도하는 이익집단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목적은 수익은 극대화하고 비용은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획이 성공한다면,  유도된 변천이라고 부를 수 있다. 실패한다면, 이번엔 타인에게 비용을 부담하라고 강요하고, 이를 강제적 제도변천으로 부를 수도 있다. 이런 관점으로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설명하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은 핵심국가 (지금은 미국이 가장 노른자이다)에서 반주변부 국가로 그리고 순차적으로 주변부 국가로 비용이 전가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주변부 국가마저 이 끊임없이 늘어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그 비용을 자연 환경에 전가하게 되며, 이는 생태환경의 파괴, 즉 기후변화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이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엄중한 도전이다. 이러한 글로벌라이제이션 시스템은 그러므로 파멸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다양성을 전제로한 생태문명으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이런 결과를 직면하는 것은, 자연법칙에 다름아니다.

우리의 네번째 관점은 개발도상국은 이런 정해진 틀과 운명에 빠져나갈 수 없고, 즉, 발전함정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주권을 외부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은 스스로 정권을 수립할 때, 대부분의 경우 식민지 종주국과 협상을 통해서 국가의 주권을 쟁취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정한 거래를 하게 되는데, 주로 자원주권을 내줄 수 밖에 없다. 심지어는, 핵심 경제주권을 내주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금융과 재정에 대한 것이다. 이때 얻게 되는 정치주권은 명목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 지도자는 집권을 하면서 사회에 일정한 발전의 약속을 하게 되는데, 경제자원에 기반한 자주개발 수익을 얻을 수 없으므로, 그 약속도 지킬 방도가 없게 된다. 그래서, 개발 도상국은 이러한 주권외부성이 정한 운명의 족쇄안에서, 자기 국가의 발전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전체 20세기는 비록 짧았고, 미완의 혁명도 이미 과거사가 됐으나, 우리는 오늘날 대다수 개발도상국들이 발전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주요한 원인이 주권외부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반식민지 혁명은 완성되지 못했고, 주권외부성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섯번째 관점은 만일 비선진국들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도시화를 추진해서 향촌을 파괴한다면, 많은 사회적 리스크를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향촌의 전통 마을 사회는 외부성 문제를 내부화해서 층격을 완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논리는 사실 간단하다. 국내의 현재 모든 학문적 이론은 대부분 미국의 담론체계를 수용한 채 따라가면서, 다른 이론을 배타시한다. 만일, 우리가 농가의 경제적 합리성을 언급한다면, 모두 시카고대학의 시어도어 슐츠의 소농경제합리성 이론을 떠올릴 것이다. 당연하다. 그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시대적 한계를 지닌다. 소농경제는 자본주의 요구에 맞는 시장주체로서 부합해야 했고, 이 또한, 이념의 반영이다. 슐츠 이전에는 차야노프의 생존소농 이론을 모두 이야기했다. 농가에서는 그 가족 성원을 내칠 수 없기 때문에, 가정내에서 노동을 배분하는 것이 합리적이었고, 여기서 발생한 수익도 가정내에서 배분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래서 소농경제는 가정내의 경제적 합리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소농의 가정이 외부에서 기인한 리스크를 내부화해서 처리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마을 공동체가 같은 방식으로 외부 리스크를 내부화하여 다루는 메커니즘을 논하고자 한다. 마을에 모두 모여살기 때문에, 마을의 자산 경계는 지연에 의해서 형성된다. 그러므로 마을은 함부로 마을에 소속된 농가를 추방할 수 없다. 가정이 그 가족 성원을 내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마을공동체는 반드시 공동의 업무를 공동의 노력으로 완성시켜야 한다. 외부성을 내부화해서 처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중국 향진기업의 발전이 그러하다. 중국 향촌마을의 집체경제의 발전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것은 마을 공동체 조직의 내부화 메커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같은 이치에 따라, 전세계가 글로벌라이제이션 위기에 직면했을 때, 도시화 정도가 높은 개발도상국일수록 큰 리스크를 떠안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일부는 국가 도산에 처해서,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중국이나, 인도와 같이, 큰 농촌지역을 가진데다가, 농촌인구 비율이 높은 국가라면,  큰 위기에 직면했을 때, 상당부분, 향토사회가 위부 위기 비용을 내부화해서 떠안는 기능을 하면서 국가 전체가 위기를 넘기곤 한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다시 중국의 도농2원구조 제도를 평가해보면, 충분히 그 장점을 발견할 수있고, 개발도상국에게 있어서, 과도하고 급진적이며, 빠른 도시화가 강조돼서는 곤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향촌사회의 발전을 일정하게 유지할 때, 안정된 국가체제운영이 가능하다. 특히, 중국대륙과 같이 전면적인 글로벌라이제이션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국가는 오히려 향촌에 대한 국가의 투자를 강화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해진다.

이와 같은 다섯가지 관점이 우리들의 최근 10년간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문헌소스: 2019년 12월23일 Global University 그룹 원톄쥔 교수 방문 비디오 채록

https://mp.weixin.qq.com/s/3jyIticS8LempH2bAU726w

금, 2020/07/10-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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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최신 저작 “정치에서 도덕이 필요한가? Do Marals Matter?”을 위하여 1945년 이후 14명의 미국 대통령을 연구하는 동안에, 미국인들은 외교정책이 기본적으로 도덕적이기를 원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진정 의미하는 것에 대해 고민해본 적(대가를 치른 적)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미국인들은 종종 자신들의 나라를 ‘예외적인 국가’로 여기면서, 민족적 단위가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자유에 기반한 사회의 개방적 사고와 방식으로서 자신들이 미국인이라는 것을 확인해 왔다. 그런데 현재의 대통령인 트럼프는 이러한 전통에서 벗어나고 있다.

물론 미국인들의 ‘예외주의’는 건국 시기부터 모순에 직면했다. 자유에 대한 화려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건국 헌법에 노예제도의 원죄를 삽입함으로써 남과 북이 연합하는 타협을 이루었다.

동시에 미국인들간에 외교정책에 있어 자유를 해석하는 입장이 서로 다르다. 일부에게는 미국의 ‘예외주의’는 때때로 국제법규를 무시하며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다른 민족을 지배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반대로 어떤 이들에게는 ‘미국의 예외주의’란 자유진영에 노력을 고양하여 세계를 보다 자유롭고 평화롭게 만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외부 침략의 위협에서 각국의 자유를 방어하는 국제적 법규와 조직을 지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는 취임연설에서 분명하게 ‘미국우선주의’를 선언하였다 “우리는 세계 다른 나라들과 함께 우정과 선의를 추구할 것이지만, 이는 각자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 모든 국가의 권리라는 것을 확인하는 바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미국의 방식을 타국에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타국에게 모범을 보이는 방식으로 추구해 갈 것이다.” 그는 요점을 잘 정리했다. 즉 미국은 스스로 모범을 세워서 다른 나라들에게 영향력을 증대한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의 외교정책에는 개입과 성전수행(crusading)의 전통이 있다. 윌슨 대통령은 세계에 민주주의를 안전하게 구축하기 위해 외교를 추구했다. 케네디는 세계의 다원화에 미국이 기여하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베트남에 1.6만 명의 군대를 투입하여 개입을 시작했고 그의 후임자인 존슨은 이를 56.5만 명으로 늘렸다. 같은 방식으로 조지 W. 부시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국가안보전략의 명분을 내세워 이라크에 대한 침략과 점령을 정당화하였다.

냉전이 종결된 이후에도 미국은 7번의 전쟁과 군사적 개입을 진행하였다. 그러면서도 레이건은 1982년의 연설을 통해 “총포로 건설된 제국은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는 스스로 모순된 주장했다.

상기와 같은 모순을 기피하는 것이 트럼프가 선호하는 정책의 특징이 되었다. 그는 시리아에서 군대의 개입을 제한했으며, 오는 대선 당일까지 아프간에서 미군을 철수하기를 희망한다.

미국은 두 개의 대양大洋과 상대적으로 약한 이웃들에게 둘러 쌓여 있으면서, 19세기 동안은 주로 서부개척에 집중하여 왔으며, 유럽이 중심이 되어 전개되는 국제적 분쟁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경제적으로 세계제일의 대국이 되었고 힘의 균형을 깨뜨리는 제1차 세계대전에 개입하게 되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인들은 유럽의 분쟁에 개입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믿으면서 귀에는 거슬리는 표현이지만 전통적인 고립주의로 다시 돌아섰다. 그러나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후계자인 트루먼 등은 고립주의를 고수하는 것이 실제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대신 지도자들은 미국과 같은 거대한 국가는 ‘예외주의’라는 두 번째의 선택지가 있다는 것과 미국과 같은 거대한 경제대국이 국제적 공공선을 만드는데 앞장서지 않으면 누구도 이를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전후의 미국대통령들은 안보동맹, 다국적 기구들, 그리고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경제정책들을 수립했다. 70년이 지난 오늘 현재까지 미국정책의 기본이 되어온 ‘자유국제 질서’가, 중국 같은 새로운 강대국이 등장하고 민주주의 진영 내에 포플리즘이라는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면서, 과연 타당한 것인지 회의가 생겨났다.

트럼프는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2016년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고, 1945년 이후 미국이 주도해온 국제질서에 반대하고 이에 함께하는 동맹을 무시하는 입장을 취하여 대통령 직에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국제적 이슈에 대한 시카고의 단체가 조사한 여론에 의하면, 미국인들의 2/3 이상이 대외지향적인 외교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시민들의 주류는 군사적 개입을 반대하는 것이지 동맹들과 다자적 협력을 포기하라는 것은 아니다. 즉, 시민들의 여론은 1930대 식의 고립주의로 복귀하라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핵심적인 질문은 미국인이 직면하고 있는 ‘예외주의’의 모순된 양면의 얼굴을 동시에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지에 관한 것이다 – 무력개입이 없는 민주주의 확산과 국제적 기구들의 지원.

미국인들은 과연 군사적 개입과 성전을 수행하지 않고 민주주의의 가치와 인권을 확산시키는 것과 국제적 위협이 되고 있는 기후위기, 팬데믹, 사이버-공격, 테러리즘, 그리고 경제적 불안정 등을 대처하기 위한 국제적 규칙과 기구들을 만들어 가는 것을 동시에 해낼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트럼프의 미국은 2개의 전선 모두에서 실패하고 있다. COVID-19를 대처하는 싸움에서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핑계로 중국을 비난하고 WHO의 탈퇴를 거론하며 세계를 협박하고 있다. 중국은 이에 대해 많은 답변을 가지고 있겠지만, 특히 트럼프가 중국을 비난하는 이유를 다가오는 국내정치게임인 미국대선의 이슈로 악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팬데믹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고, 향후 COVID-19를 넘어서는 새로운 전염병의 발발도 예상해야 한다. 더구나 미국과 중국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온실가스의 40%를 배출하는 책임을 갖고 있으며, 누구도 독자적으로 국가안보의 위협을 해결할 수 없는 처지이다. 세계 양대 경제대국으로서, 미국과 중국은 경쟁과 동시에 협력의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저주스런 운명이다. 미국으로서는 예외주의라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포용하면서 국제적인 공공선을 함께 만들어 가야하고 인권 등 주요한 가치를 옹호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오는 대선을 치르기 전에 미국인들은 도덕이라는 가치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2020.

Joseph S. Nye

하버드 대학의 석좌교수이자 소프트-파워의 개념을 도입한 저명한 학자이디. 최근 미국정치에 “정치에서 도덕이 필요한가? Do Moral Matter?’라는 저서를 출간하여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금, 2020/07/10-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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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6.17대책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에 붙은 이상 열기는 식을 줄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서울 주요지역의 랜드마크 아파트들이 신고가를 경신했다는 소식이 들리는가 하면, 풍선효과 탓에 파주나 김포 등에 위치한 아파트들도 투기의 대상이 돼 가격이 오른다고 한다. 서울 아파트 시장은 6년 연속 대세상승을 이어와 6년 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가격대에 도달한 상태다.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 쇼크가 실물경제에 쉽게 회복할 수 있는 상처를 입히는 중이다. 오를만큼 오른데다 미증유의 역병사태 탓에 실물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고 휘청대는 와중에도 서울 아파트 시장이 재차 꿈틀대는 이 기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서울 아파트값에 직접적이고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건 무엇보다 기존 재고주택의 출회량

서울 아파트값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수다하지만, 가장 직접적이고 영향이 큰 요인은 기존 재고주택(신규 공급이 아니다)의 매물 출회량이다. 문재인 정부가 4번의 큰 부동산 대책들(2017년 8.2대책, 2018년 9.13대책, 2019년 12.16대책, 올해 6.17대책)을 연이어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기존 주택을 가진 사람들(특히 다주택자)이 자신들이 소유한 주택을 팔지 않고, 도리어 기존 재고주택 매매시장에 신규로 구매자들이 계속 유입되기 때문이다.

매물은 시장에 나오지 않는데 구매자들은 많으니 거래가 될 때마다 가격이 계속 치솟는 것이다. 그럼 기존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은 왜 주택을 팔지 않는 것이며, 할 말을 잃게 많들 정도로 비싼 주택을 추격매수하겠다고 덤벼드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주택을 사려고 아우성일까? 당연한 말이지만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적어도 크게 떨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문재인 정부가 지금까지 발표한 부동산대책들은 나름의 합리성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내리누르는 힘이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그 대책들마저 취임 초기에 일괄투사된 것이 아니고 시차를 두고 축차적으로 투사되다 보니 시장을 내리누르는 건 고사하고, 기존 주택재고시장에 신규 구매자가 유입되는 걸 차단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서울 아파트 가격을 하락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존 재고주택시장에 메가톤급 충격을 가해야 한다. 즉 다주택자들이 투매의 선두에 서고 시세차익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조건의 1주택자들이 투매의 뒤에 서는 상황을 정부가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다.

 

시장에 매물이 쏟아지게 만들 4종 정책패키지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다주택자들과 엄청난 시세차익을 누릴 1주택자들이 주택을 들고 가지 못하게 만들면 된다. 다주택자들과 시세차익을 충분히 누린 1주택자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을 4종 정책세트는 ‘보유세의 획기적 강화+1주택자 양도세 감면 폐지+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강화+임대등록사업자에 대한 특혜의 전면적이고도 소급적인 폐지’다.

먼저 특례와 공제를 대거 없앤 보유세 강화 장기 로드맵을 최대한 신속히 발표해야 한다. 예컨대 현재 실효세율 0.16%에 불과한 보유세 실효세율을 10년 내 1%수준까지 강화하겠다고 발표하면 어떨까 싶다. 보유세 실효세율을 혁명적으로 높이기 위해선 보유세의 과표가 되는 공시가격의 현실화, 과세기준과 구간의 획기적 강화, 세율의 대폭 상향 등이 망라되어야 한다. 혹시 조세 저항이 우려되면 기본소득과 결합시켜도 좋을 것이다. 빠져 나갈 구멍이 거의 없게 설계된 보유세의 획기적 강화는 기존 주택 소유자들과 주택 구매희망자들의 기대수익률을 큰 폭으로 떨어뜨려 기존 주택 소유자들은 주택 매도를, 주택 구매희망자들은 매수 의사 철회를 각각 결심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과세의 기본원리에도 정면으로 반하고 투기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1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감면혜택을 폐지하여야 한다. 1주택자에 대한 과도한 특혜는 똘똘한 1채를 비롯해 온갖 부작용의 온상이다. 이제는 실수요 1주택자라는 신화와 작별해야 한다. 1주택자라도 가격에 상응하는 보유비용을 응당 부담해야 하고, 양도차익이 발생하면 당연히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아울러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를 지금 보다 훨씬 강화해야 한다. 다주택자들이 향유하는 양도차익은 최악성의 불로소득이다. 이런 최악성의 불로소득에 대해서는 차익의 대부분을 정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환수하는 것이 지극히 타당하다. 다만 다주택자들에 대한 양도세 중과 강화를 앞두고 5개월 남짓의 유예기간을 줘서 다주택자들이 시장에서 탈출할 수 있는 정도의 정책적 배려는 필요할 것이다. 끝으로 조세회피처와 투기의 소굴 역할을 하는 임대등록사업자에 대한 특혜를 전면적이고도 소급적으로 철회해야 함은 당연지사다.

자, 만약에 이 4종 정책패키지가 발표되고 추진된다고 가정해 보자. 다주택자들과 엄청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는 1주택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응당 보유 매물을 시장에 급매로 던지고 시장을 빠져나가려 아우성일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보유세 고지서가 날아오고, 5개월이 지나면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강화가 시행되며, 1주택자도 양도차익을 온전히 사유화할 수 없고, 임대사업자에 대한 특혜의 대부분이 소급적으로 폐지될 판에 어떤 간 큰 소유자들이 소유 주택을 들고 가겠다고 마음을 먹을 것인가? 시세차익은 고사하고 손해를 볼 마당에 말이다.

시장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는 다주택자들과 시세차익을 충분히 누린 1주택자들이 던진 매물들이 눈사태처럼 시장에 출회되면 추격매수세는 눈 녹듯 사라지고, 투매가 투매를 부르는 시장이 펼쳐질 것이다. 시장의 기조는 완전히 바뀌고 대세하락이 시작되는 것이다.

 

투기꾼을 쫓을 것이 아니라 투기꾼이 발붙일 공간을 없애야

문재인 정부는 지금까지 투기꾼들을 쫓아왔다. 그리고 불행히도 문재인 정부는 유능한 사냥꾼이 아니었다. 이제 문재인 정부가 할 일은 투기꾼을 쫒는 것이 아니라 투기꾼이 발 붙일 공간을 없애는 것이어야 한다. 파르티잔들을 소탕하는 최고의 방법은 파르티잔들을 직접 토벌하는 것이 아니라 파르티잔들이 운신할 촌락을 소개하고 양도를 끊으며 동선을 차단하는 것이다. 성벽을 굳게 지키고 곡식이 자라는 들을 태우면(堅壁淸野) 파르티잔들은 스스로 시들어 없어진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총선 압승을 통해 서울 아파트 시장에 매물이 눈사태처럼 쏟아지게 만들 4종 정책패키지를 입법화하고 추진할 힘을 지녔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의지다. 이번에도 문재인 정부가 서울 아파트 시장을 확실히 하향안정화시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몫이다. 서울 아파트 시장을 못잡으면 얼마 남지 않은 대선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음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월, 2020/07/13-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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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최근 Daiaoyu(일본명 센코쿠)열도와 미국의 Aegis미사일방어 시스템의 일본 내 배치와 관련하여 상반된 신호를 중국에 보내고 있다.

분쟁을 야기하는 현안의 열도와 가까운 지방자치의 선거를 통해 종전의 이름인 Tonoshiro를 중국에 도적적인 Tonoshiro SenKaku로 이름을 변경하는가 하면, 곧바로 며칠 후에는 미국의 Aegis 미사일시스템을 일본(육지)에 배치하는 계획을 포기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들이 얼마나 모순적인가를 고려한다면, 일본이 중국에 보내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해석하는 것이 무척 곤혹스럽다. 첫 번째 움직임은 중국에 매우 적대적인가 하면, 두 번째는 오히려 우호적이다.

아마도 일본 자신도 중국과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확신하고 있지 못한 듯하며, 자신의 (대중국) 기본전략에 대한 재검토를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서로 대립하고 있는 미중 양대 진영에 일본이 균형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무엇인가 라는 점이다.

Daiaoyu 열도에 관한 결정은 미국의 일본에 대한 영향력을 인정하면서 양국이 안보조약을 맺은 동맹이라는 것을 보여주어, 최근 중국과 인도간에 국경(Galwan)분쟁에서 벌어진 충돌사건을 중국에게 재확인해 주려는 듯 하다.

소위 삼국(미국, 일본, 인도)는 호주를 포함하여 Quad(4인방)을 형성하면서 중국을 봉쇄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인도와 국경충돌이 발생하자, 배후에 4개국의 연합된 의도가 있었다는 추정이 곧바로 제기되고 있다.

다른 한편에 미국의 핵심전략인 Aegis 방어시스템을 일본에 배치하려는 기존의 계획을 무효화한 것은 일본이 중국의 봉쇄 전략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동맹으로서 일본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일본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는 동중국해에서 중국과 대치하는 것과 일본의 가장 큰 섬인 혼슈 지역에 군사시설을 배치하여 중국의 핵무기2차 공격능력을 무력화하는 것(MD체계 기본목표)은 차원이 다른 도발에 속한다.

이러한 상반된 메시지는 미국과 중국 양兩진영에 제각기 도전과 동시에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에게는 일본을 무임승차의 동맹으로 간주하여 재정적으로는 값비싸고 전략적으로는 위험한 군시시설의 일본본토 내 설치를 강요하는 것에 거부하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동중국 해역에서는 동맹으로서 상징적인 과시의 제스츄어를 보내는 반면에, 자동적으로 공격적 군사계획을 융통성 없이 (미국의 의도에) 따라 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둥중국해에 대치하고 있는 현안에 대해서는 새로울 것이 없는 반면에, 일본 본토에 Aegis 미사일을 배치한다는 기존의 합의를 폐기한다는 것은 특히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며 동맹관계를 강화하는 시점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기대 이상의 조치인 것이다. 이러한 독자적인 움직임은 중국에 대한 우정과 실용주의적 제스처로 축하할 일이며, COVID-19 이후 양국 간에 높은 수준의 전략적인 대화를 재개할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일본이 이런 견지에서 움직였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합리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동경당국은 트럼프가 재선될 가능성에 대해서 회의적일 것이고, 폴란드의 2009년의 경험처럼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폴란드는 러시아와 격돌하는 공격적 미사일 방어계획을 공화당 대통령(부시)과 합의했으나 민주당 대통령(오바마)이 집권하면서 이를 곧바로 취소시킨 예가 있다.

일본은 자신의 역사와 사회 속에 매우 소중히 여기는 체면(concept of face)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며, 바이든이 당선되어 오바마가 폴란드에서 그러했듯이 합의를 백지화하면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

만약에 트럼프가 재선이 된다 하더라도 분쟁지역으로 국제사회에 잘 알려져 있는 현안의 열도에 대해 트럼프 자신의 전략적인 야심을 상식수준에서 이미 만족시켜준 것이며, 다시 요구한다면 재선 기간 중에 방어미사일(MD) 시스템의 배치에 대한 협상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동경의 전략은 단기적 이해에 기반하고 있지만, 동시에 가장 가까운 미국의 동맹들도 트럼프가 올 연말에 있을 재선에 실패할 경우를 걱정하면서 그러한 시나리오가 벌어질 경우를 대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출처: CGTN on 2020-06-25.

Andrew Korybko

러시아소재 대학의 전략연구소 이사이며, Sputnik지의 국제정치평론가

월, 2020/07/13-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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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4일 북한은 당분간 미국과 마주 앉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외무성 최선희 부상이 언급했다. 그녀에 의하면 미국과 대화를 하는 것은 워싱턴의 자신들을 위한 정치적인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하였으며, 그녀의 주장은 정당하다.

최 부상의 언급은 문재인 대통령과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인 존 볼턴이 오는 11월 대선 이전에 김정은과 트럼프간의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내비친 가운데 나왔다. 그러나 최 부상은 북한이 이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음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하였다 “북미관계의 현재 실태를 무시한 정상회담에 대해 운운함에 대하여 아연함을 금할 수 없다.”

지난 2년 간 양국 간에 정상회담과 다양한 외교 채널, 편지와 전화통화 그리고 협상을 시도했지만 미국은 평양의 신뢰를 확보하는 데 실패하였다. 문제는 북한이 아니라 오랫동안 굳어진 미국측의 고집(비유연성)에 있었다. 이들은 북한이 반대급부로 얻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도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기를 요구한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비합리적인 사고이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은 미국을 가장 위험스런 적국(불구대천의 원수)으로 간주하여 왔으며, 당연히 지난 수십 년간 미국으로부터 있을 모든 가능한 공격으로부터 조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자위력을 증강시켜 왔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미국이 평양에 일방적인 요구를 하면서 양국의 관계에 진전이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독한 망상이다. 이는 비상식적이며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수 년간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접근하면서, 선의적인(상호적인) 협상에 의존하지 않고, 북한에 대해 일방적인 제재를 강화하고 북한인민을 돕는 지원활동을 방해하는 최대의 압박전략을 취하여 왔다. 이러한 압박정책은 미국 행정부들이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방향이다.

어떤 인사는 트럼프 시대는 달랐다고 주장하면서 그가 미국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북한의 지도자를 만났으며 몇 번의 기회를 가진 점을 언급한다. 일련의 계기는 처음이었고 올바른 방향이었지만, 트럼프의 협상팀은 비상식적인 강압적 자세를 견지하면서 외교적 노력을 무산시켰다.

존 볼턴(그리고 폼페이오)같은 인물들이 최대압박 전략을 지속적으로 옹호하면서 평양에 일방적인 요구를 강요하여 북한과 협상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이유이다.

북한측은 그 동안 몇 가지 행동을 취하면서 미국과 협력할 의지를 보여 왔다. 예를 들자면, 주요 핵실험 시설을 해체하는 것에 동의하였고, 전쟁포로들(POWs)의 유해를 미국으로 돌려보냈으며, 인질로 잡혀있던 미국인들을 풀어주고, 대륙간 탄도탄과 추가적인 핵실험을 중단해 왔다.

그러나 미국은 반대급부로 무엇을 했는가? – 아무것도 없다. 이는 협상이 아니다. 하노이에서 미국은 제재의 완화조치 이전에 모든 핵무기를 미국에 양도하도록 평양에 요구하였고, 북한이 이러한 요구를 거절한 것은 자연스러운 것 이상이었다. 말하자면 미국은 요청한 것이 아니라 명령한 것이었다.

미국과 수많은 밀당을 진행하여 왔던 최 부상의 언급은 놀라운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이해할 만한 것이다. “북한과 미국의 대화가 자신들의 정치적 위기에서 빠져나올 궁리 이상 아무 것도 아닌 한, 우리는 미국 측과 얼굴을 맞대고 앉을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는다.”

동시에 김정은 역시 국내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해야 한다. 미국과 적극적인 협상을 지속하였지만, 돌아오는 것이 전혀 없다면 그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 오히려 현재 상황은 북한 내에서 그의 체면을 깎아 내리고 국제무대에서도 그에 대한 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주기만 하고 구체적으로 받는 것이 없는 게임을 지속하면 북한은 완벽한 패배자로 전락한다.

이번을 계기로 미국측은 최 부상의 언급에 유의하고 북한에 대한 정책을 현명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이는 특별히 트럼프가 재선이 되면 더욱 유의미한 일이다. 어찌 되었던, 트럼프와 김정은의 개인적 관계는 유지되어왔고 앞으로도 서로 소통하는 것이 보다 용이할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강한 제재에도 잘 버티어 왔으며(resilience),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을 충당하여 왔다. 서방의 정치분석가들이 수 년 동안 북한이 곧 굴복할 것이라고 전망하여 왔지만, 고립정책은 북한이 무릎을 꿇게 만들지 못했다.

미국이 진실로 북한의 비핵화를 원한다면, 북한을 동등한 협상의 파트너로 취급하면서 상호 간의 양보를 진행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정상회담이 생산적이고, 합의내용이 (실천의) 무게를 지니며, 상호 대화가 한반도의 상황을 실제적으로 개선시킨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다.

 

출처: Asia Times on 2020-07-06.

Gabriela Bernal

아리조나 대학 및 런던의 킹스 칼리지, 그리고 연세대(한국어)와 고려대를 거쳐 서울에 있는 북한대학원에서 한반도관련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The Peninsular Report’를 설립하는 등 동아시아 정세분석가로 활약중인 젊은 여성

화, 2020/07/14-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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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만원씩 수령한 법사위 수석전문위원

2018년 7월 5일에 참여연대가 공개한 2011~2013년 국회 특수활동비 지출결의서 내역은 오늘날 국회가 가진 ‘전근대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수많은 언론들은 전직 국회의장이 얼마를 받았는지, 국회 내 상임위원장들이 얼마를 받았는지 다뤘다. 또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다른 상임위 소속 의원들과 달리 월 50만원 씩 수령했다는 사실도 비중 있게 보도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새로운 사실’이 제대로 보도되지 않은 경우다. 어떤 언론도 국회사무처 법사위 수석전문위원의 특수활동비 수령액이 매달 150만 원씩이었다는 것을 주목하지 않았다. ‘다른 상임위 소속 의원보다 권한이 세다’고 평가받는 법사위 위원의 수령액보다 3배 더 많다는 팩트가 있는데도 말이다. 이는 법사위 위원과 수석전문위원, 양자 간의 위상 혹은 권력 차이의 반영이거나 최소한 그 역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반영일 것이다.

전에 국회 상임위원장을 역임했던 한 의원은 필자에게 “‘뭐든 희망하시는 일을 말씀하시면, 힘써드리겠다’라는 수석전문위원의 말에 ‘이 사람들이 완전 자기들이 주인이고 우리(국회의원)는 그저 왔다 갔다 하는 객(客)으로 아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전문직 분야에 있는 한 지인은 자기들 협회에서 국회의원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힘을 가지고 있는 전문위원에게 로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국회 전문위원 스스로 강조한 전문위원은 정책 결정의 실질적인 주체다

국회 전문위원이 갖는 이렇게 센 힘의 원천은 그들의 ‘검토보고’ 권한에 있다.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면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발의된 법안을 심사하게 되는데, 국회법 상 전문위원의 검토를 반드시 거치게 돼 있다. 국회법 58조에 1항에 따르면 “위원회는 안건을 심사할 때 먼저 그 취지의 설명과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듣고 대체토론[안건 전체에 대한 문제점과 당부(當否)에 관한 일반적 토론을 말하며 제안자와의 질의·답변을 포함한다]과 축조심사 및 찬반토론을 거쳐 표결한다”라고 명기돼 있다.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 검토보고서의 지적 내용을 위원회 회의 과정의 발언과 통과법안의 수정 부분을 비교한 한 논문은 그 두 내용 간에 높은 인용· 일치율로 미루어 상임위 전문위원의 영향력이 지대하다고 논술하고 있다.1

한편 국회에서 일하는 입법관료 스스로 검토보고의 영향이 크다는 점을 알고 있다. 2010년 12월 상임위 입법조사관 12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조사대상의 90.8%가 법안 검토보고서가 중요한 참고자료로서 국회 상임위원회 심사과정에 영향을 끼친다고 답했다.【2

특히 한 국회 수석전문위원이 재직 당시에 쓴 논문은 아예 국회 전문위원의 역할이 지원 차원이 아니라 실질적 주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 제출된 총 44개 조항으로 이뤄진 한 법률안에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의 전문위원이 19개의 검토 조항을 보고하였고 결국 법안은 11개 조항을 수정하였다. 그런데 이 11개 수정안 모두 전문위원이 적성한 검토보고에서 주장한 그대로 수정되었다는 사실을 기술하면서 “전문위원은 소속 위원회 입법 활동의 단순한 지원 차원을 넘어 정책 결정의 실질적인 주체로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3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은폐되고, 견제 받지’ 않은 권력은 위험할 수 있다.

2017년 8월 22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는 국회사무처가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당시 국회사무처에서는 수석전문위원 2명이 성추행과 횡령 혐의로 면직 처리되기도 했으며 국회사무처 직원 간 음주폭행 사건도 발생하여 이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들끓었다.

 

최저임금법 개정 사례에서 드러난 검토보고의 한계

그렇다면 이토록 영향력이 큰 검토보고는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기로 한다. 최근 국회에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은 법안이 있다면 단연 ‘최저임금법 일부법률개정안’이 손꼽힌다. 이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법안 처리를 반대해왔다.

그런데 ‘최저임금법 일부법률개정안’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내용을 살펴보면 단지 임금의 개념에 대해 언급한 것이 전부였다. 최저임금법이 개정된 뒤 생긴 사회적 갈등과 논란을 봤을 때, 진정한 의미의 ‘검토보고’라면 마땅히 이 법안이 사회적으로 마칠 파장까지 충분히 검토했어야 할 일이다.

한국 사회에는 단순히 입법관료의 검토보고에 의해 처리되어서는 안 되는 법률과 쟁점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보다 심층적으로 토론하고 논의하기 위하여 국민의 대표자로서 국회의원이 선출되는 것이다. 또한 이들 국회의원들의 활동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정당이 존재하고 그 정당 소속의 정책위원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법안 처리의 길목에 국회 입법관료는 일종의 게이트키핑(gatekeeping)의 역할을 한다. 국회사무처는 전문위원 임용자격에 관한 규칙에서 전문위원의 자격기준(국회에서 10년 이상 재직하고 2급 이상의 공무원이 돼 2년이 경과한 자로서 입법심사와 조사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자 등)을 정해놨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은 선출되지 않은, 그리고 전문가집단에서 선발되지 않은 ‘행정사무’의 역할을 갖고 있는 공무원일 뿐이다.

특히 전문위원의 업무상 전문성에는 의문부호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물론 전문성이란 ‘개인이 조직에 들어오기 전 그가 사회화 과정을 겪으면서 취득하는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의미하는 통상적인 의미로서의 ‘개인적 전문성’ 외에도 ‘조직에 들어와 업무를 수행하게 됨으로써 그 업무를 통하여 획득하게 되는 전문적 지식’을 뜻하는 ‘업무상 전문성’의 측면이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 국회 전문위원의 경우, ‘개인적 전문성’의 측면만이 아니라 ‘업무상 전문성’의 측면에서도 순환 보직 근무의 관행으로 인해 깊은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실제 지금은 퇴직한 한 수석 전문위원은 불과 몇 년 사이에 각기 다른 세 곳 상임위원회의 수석전문위원을 맡았다.

 

관료들은 전문성 있다’, 왜곡된 신화

흔히 공무원들은 대단한 전문성을 지니는 존재로 이해된다. 적지 않은 언론매체들이 그러한 시각으로 기사를 쓰고 있으며, 심지어 진보 쪽에 있는 정당들의 관계자도 예를 들어, “(정치인들이) 전문성으로 무장한 공무원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 등의 논리를 계승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혹시 부분적으로나 특수한 상황에서 타당할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잘못된 ‘선입견’이다. 무엇보다 공무원들은 ‘전문성’을 기준으로 선발된 것이 아니라 단지 공무원시험을 통해 선발되었을 뿐이다. 더구나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대부분의 경우 2년을 단위로 여러 부서를 옮겨 다니며 순환 근무하게 된다. 결국 전문성을 축적할 기회가 근본적으로 차단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관료들은 전문성이 있다”는 시각은 우선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최소한 정보 접근성이 압도적으로 용이한) 공무원들의 객관 조건으로부터 비롯될 수 있다. 또 절차나 수속 등의 행정업무 분야에서 공무원들이 전문성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시각이 그런대로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밖의 관련 분야의 전문지식이나 분석력 등 순수한 의미의 ‘전문성’ 측면에서 관료집단은 근본적으로 결여되어 있거나 혹은 대단히 미흡할 수밖에 없다.

공무원들이 높은 전문성을 지니고 있다는 ‘잘못된’ 선입견과 시각은 우리 사회의 강고한 관료주의를 유지시켜주는 주요한 이데올로기로 작동되고 있다.

 

국민을 너무 힘들게 하는 국회

국회는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라는 꿈도 야무진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과연 그렇게 생각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국회의원들은 입만 열면 스스로의 특권을 줄이겠다고 매일 같이 다짐하지만, 그러나 실천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지칠 줄 모르는 정쟁과 내로남불, 외화내빈의 말잔치만 난무한다.

‘국민을 힘들게 하는 국회’라는 말이 훨씬 정확하고 설득력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본업을 수행하지 않고 방기하는 조직은 왜곡되고 부패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의 본업인 입법을 스스로 올곧이 수행하게 될 때, 국회는 시민의 진정한 대표로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발전하는 출발선에 다시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국회 전문위원 제도의 개혁이 절실하다.

 

1】 장봉아, “국회상임위원회 공무원의 입법과정상 영향력 분석: 법안 심사 회의록과 검토보고서의 일치 여부에 대한 사례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4.

【2】 배용근, “국회 상임위원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의 영향요인과 발전방안”, 「의정논총」제6권 제1호, 2011

【3】 김춘엽, “논변 모형을 통해 본 법률 제정 과정에서의 전문위원 검토보고의 영향력에 관한 연구”, 「한국인사행정학보」제5권 제2호, 2006.

화, 2020/07/14-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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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슬람공화국은 COVID-19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을까? 미국의 무자비한 압박에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이란의 대표적 지식인 테헤란 대학교의 Mohammad Marandi와 통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혁명이 일어난 이후 이란은 온통 사회정의라는 주제에 집중하였다. 쿠바와 견줄만한 보건의료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는데 재정까지 투입하여 규모를 갖춘 일반병원들이 건립되었다. 코로나가 발발하여 미국이 테스트-키트조차 수입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였지만, 개인병원 수준이 아니라 공적 단위에서 잘 관리하고 대처하여 왔다. 모든 것이 잘 통제되고 있다. 서구와 비교하여도 이란은 방역에 필요한 테스트, 마스크 등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병실은 아직 여유가 있는 상태이다.”

Marandi 의 설명에 추가하여, 테헤란의 언론인 출신인 Alireza Hashemi 역시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이란은 공공 클리닉을 포함하여 일차 보건의료시스템을 광범하게 갖추고 있고 수천 개의 도시들과 마을에 보건소와 건강센터들이 소재하고 있어서, 정부가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Hashami는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이어 간다 “보건당국에 COVID-19 전담센터가 구성되었고 자원공급 업체들이 공급해준 방역장비들을 전국에 배포하였다 최고지도자 Ayatollah Khamenei의 지시에 따라 30만 명의 군인과 자원봉사자들이 자원하여 거리와 공공장소들을 방역하고 있고 있으며, 시민들에게 소독제와 미스크를 배포하고 필요한 테스트를 시행하고 있다.”

Hashemi에 의하면 마스크 등 방역에 필요한 장비를 생산하는 설비를 이란 군대가 이미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테헤란의 상공회의소와 시민단체들이 Nafas(호흡이라는 뜻)라는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의료 자재들과 클리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FaraBourse라는 비공식적인 클라우드 금융을 통하여 테헤란를 거점으로 모금이 진행되면서 필요한 의료 장비와 시설을 구매하여 의료진을 지원하고 있다. ‘지하디’라고 불리는 수 백의 자원봉사 그룹들이 형성되어 신학교와 예배성전 그리고 현장 진료소에서 땀흘리며 일하는 의료 진들에게 개인보호장구들과 신선한 과일까지 공급해 주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연대는 시아파의 문화에서 지극히 당연하며 강력한 전통이다.

Hashaemi에 의하면 이란당국은 이미 한달 전부터 통제를 완화하기 시작했고 최근 몇 주간에는 정상적인 생활을 조금씩 맛보고 있다고 한다. “이제 전투는 끝나가지만 서구사회가 염려하듯이 2차 대유행의 재발을 염려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경제가 엉망이고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제재로 인하여 경제의 타격이 이미 상당히 진행되었다. 외부에서는 감지했는지 모르겠으나 원유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경제가 돌아가고 있고, 그렇다고 사우디와 이라크, 터어키와 UAE와는 비교할 필요가 없다. 한편에서는, 걸프만 일대에서 일하던 인도와 파키스탄 노동자들이 무리를 지어 고국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두바이는 죽음의 도시가 된 반면에, 구태여 비교하자면, 이란은 바이러스와 싸움에서 이들보다 잘해 내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작년과 올해 작황이 좋아서 식량의 자급자족이 충분한 상태이다.”

Hashemi는 매우 중요한 사항을 지적했다. 코로나 위기가 광범위한 탓에 이란국민들은 힘을 합하여 상부상조하며 새로운 수준의 연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별 단체별 조직별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되어 팬데믹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정부와 의료진을 도와주고 있다.

서구의 거짓(조작된) 정보들은 이란인들이 혁명 이후 특히 1980년대 있던 8년간의 이란-이라크 긴 전쟁을 시작으로 얼마나 심각한 여건 속에서 버티어 살아왔는지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다. 이러한 시련을 이겨낸 중년세대들에게는 현재의 경제적 위기는 견딜만한 것이다.

Maranti는 경제적 데이터와 연동하며 상황을 분석하여 내용을 제공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이란정부의 예산을 담당하는 책임자는 새로운 사태로 인해 이제 원유는 경제에서 보조적인 역할일 뿐이며 나라의 살림은 원유수입 없이 운용되고 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이란은 십 수년 전 만해도 1190억불의 원유수입이 있었는데 반하여 2019-20년 현재는 겨우 89억불에 지나지 않는다.

이란 경제 전체는 이행기에 접어들었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제조업의 붐이 일어나서 생산품이 국내수요를 넘어서 수출을 지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출의 혜택을 부여하기 위하여 이란 리알화에 대한 대대적인 평가절하를 시도하려고 한다.

2019-20년간에 비非석유 수출액은 413억불에 달했다. 이는 혁명 이후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원유수출액을 추월한 것이며 이중 약 절반은 제조상품이었다. 트럼프의 소위 ‘최악의 압박 max. pressure’라는 제재로 인하여 비非원유 수출액이 줄기는 했지만 약 7%정도 감소하는 것에 그쳤다. 이 모든 것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

이란 상공회의소가 제공하는 구매자지수에 따르면, 일부 봉쇄의 완화가 이루어진 후 첫 달 만에 민간기업들의 생산활동이 이전을 회복했다.

사실인즉, 과자류에서 스테인레스 제품까지 이란의 소비재와 생산재들이 중소규모의 기업들을 통하여 중동의 광범한 지역과 중앙 아시아, 중국 그리고 러시아까지 수출되고 있다. 이란의 고립상황을 감안한다면 이는 기적인 셈이다.

새로운 산업기지 거점들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군장비와 우주항공, 해양산업 그리고 다양한 산업에 수없이 적용되는 티타늄을 예로 들면 Urmia 지역의 탄광에 상당히 매장되어 있으며, 이란의 광물자원 벨트지대에는 상당한 매장량의 금광들이 존재한다. 광물자원분야에서 이란은 세계 15대 국가군에 포함되며, 지난 1월 선진적인 채굴기술을 확보한 이후에는 희귀광물을 축출하는 시험프로젝트를 착수하였다.

이에 대해 워싱턴은 마치 모든 것을 끝장내려는 듯이 (as Terminator) 압력을 가하고 있다.

백악관은 지난 1월에 건설업과 채굴, 제조업과 방직분야를 목표로 추가적인 제제조치를 시행하였다. 이는 위에 언급하였듯이 활발하게 돌아가는 민간기업들을 목포로 삼은 것이며, 결국 수많은 육체노동자들과 가족들을 공격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이는 현재의 Rouhani 행정부를 압박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선량한 이란 시민들의 숨통을 끊으려는 것이다 – I can’t breathe.

이란 국가수비대 및 보건당국과 중국간의 코로나 대응에 대한 협력이 지지부진한 것과는 별도로, 이란과 중국 간 일반전략파트너제휴(CSP)는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

이러한 전략적 파트너쉽은 오는 11월에 커다란 시련을 앞두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는 10월이면 기간이 완료되는 이란에 대한 무기수출 금지사항을 연장시키고 안보리결의 2231호에 대하여 스냅백(기존합의에 대한 강제적용)을 작동시키려고 온갖 협박을 가하고 있는데, 이는 안보리 회원국들의 동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중국의 유엔에서 역할은 분명하다. 트럼프는 이란핵협정을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자의적으로 제제를 가해 왔다. 따라서 미국은 이란에 대한 무기수출금지를 연장시키고 스냅-백 사항을 강제할 권한이 없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이란은 유라시아 연합의 삼각 거점 국가들이다.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나 이들은 중요한 결정에서 화음의 협력을 이루어야 한다. 따라서 지난 주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Lavrov(러시아)와 Zanif(이란) 외무장관 회담에서 이를 강조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이들의 의기투합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러시아 외무장관은 말했다 “우리가 합의한 약속을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입니다 워싱턴은 이란을 압박할 아무 권한이 없습니다.”

이란 외무장관인 Zarif는 전반적 흐름이 매우 위험하다는 자신의 견해를 밝혔습니다.

이란문제 분석가들과 추가적인 대담을 통해서, 양국 외무장관들은 해당지역의 지정학적 정세와 대치한 두 개의 전선 (테헤란, 바그다드, 다마스커스, 해지볼라의 )에 대한 중요성을 설명하였다. 두 개의 전선이란 미국과 하수인들(사우디, UAE, 이집트의 정치인들)과 수괴인 이스라엘, 그리고 터어키와 카다르 등 이란을 지지하지만(정치적으로 이슬람공화국을 지지하는, 수니파 변종이지만, 무슬림 형제국가군) 하수인이 아닌 형제 국가들과 대치이다.

이들 분석가들 중 필명이 Blake Archer William은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주석을 달았다. “러시아가 상호교역이 거의 없는 이란을 돕는 주요 이유는 이란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레이건 정권과 달리 이란을 설득하지 않고 이란을 중동에서 축출하려 들면서 이란과 무기를 사용하는 대결의 국면으로 치달으면, 중동의 주요 산유국들, UAE 포함하여 카다르, 쿠웨이트, 바레인 이라크 그리고 당연히 사우디의 Qatif 유전지역 (100% 시아파지역)이 항미 투쟁의 영향권에 들어간다.”

여전히 러시아와 중국은 모든 전선에서 이란을 지지하면서, 미국의 협박에 굴복한 IAEA (국제원자력기구)가 2012년 이래 이란을 비난해온 프랑스, 영국, 독일 삼국의 합동결의를 통과시킨 점을 비난하고 나섰다.

또 다른 외교전선의 핵심은 베네수엘라이다. 테헤란 당국은 소프트-파워 전략으로 지구의 남반부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워싱턴이 뒤로는 몬로-독트린(고립주의, 예외주의)를 내세우며 실제로는 무자비한 제제를 가하는 것을 조롱해 왔다.

이란의 5척 유조선이 휘발유를 싣고 성공적으로 대서양을 가로질러 베네수엘라의 전투기와 헬리콥터 그리고 해군함정의 보호를 받으면서 입항의 환영을 받았다.

이는 처음 시도한 시험적인 항해이었다. 테헤란의 석유담당 부처는 카라카스에 매달 2-3척의 유조선으로 휘발유를 인도할 계획을 이미 짜놓고 있다. 이는 이란이 국내에서 생산된 석유를 해외로 반출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상기의 역사적 유조선 운항은 양국 간의 과학적이며 산업적인 협력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세계에 연대의 행동을 과시한 것이다.

칼럼을 마감하면서 필자는 최고지도자 Ayatollah Khamenei가 직접 언급한 지시를 확인하고자 하며, 그의 표현을 그대로 전달한다 “(미패권의) 봉쇄는 무너져야만 한다. 남는 일은 지구의 남반부가 만들어가는 역사이다.”

 

출처 : Asian Times on 2020-06-28.

Pepe Escobar

브라질 출신의 언론인,  Asia Times와 러시아의 RT & Sputnik 및 이란의 Press TV 등에 기고 및 출연 활동 중

수, 2020/07/1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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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 미국 역사상 가장 불행한 세대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에 항의하는 미국의 항의시위가 전혀 잦아들 기미가 안 보이고 있다. 그런데 시위 현장을 중계하는 뉴스들을 보고 있노라면 유독 청년들의 많은 참여가 눈에 들어온다. 그들이 시위의 주축이다.(“Across the country, young activists take different approaches in the name of justice for George Floyd,” CNN, June 3, 2020; “How the New York Protest Leaders Are Taking On the Establishment: They’re young, charismatic and drawing crowds of thousands around the city,” New York Times, June 11, 2020; “Young people turned out to protest. Now, will they vote?,” APNews, June 11, 2020).

청년층이 시위에 나섰다. 이제 이들이 투표장으로도 향할지를 묻는 에이피 기사

그렇다면 왜 미국의 청년들이 특히 분노하는가? 무엇이 그들을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하고 있는가? 어떤 이들은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코로나로 집구석에 박혀 있다가 좀이 쑤셔 하던 차에 조지 플로이드 사망을 핑계 삼아 그 혈기를 발산하러 밖으로 나왔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주 조금, 일말의 일리가 있을지도 모르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청년들은 재미를 보자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분노에 차서 길거리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들의 사정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게 이 시점에서 중요하다. 그것을 톺아보면 미국의 문제를 들여다보게 된다.(“What Students Are Saying About the George Floyd Protests,” New York Times, June 4, 2020; “‘Apathy is no longer a choice’: will the George Floyd protests energize young voters?” The Guardian, June 8, 2020; “Most political unrest has one big root cause: soaring inequality,” The Guardian, Jan. 24, 2020; Joseph E. Stiglitz, “Opinion: Why young people are angry about generational injustice,” MarketWatch, March 16, 2016).

청년들을 일컬어 소위 밀레니얼 세대라고 부른다. 1981년에서부터 1996년 사이에 태어난 청년들로 24세~39세에 이르는 사회의 중추세대다. 국가의 미래다. 이런 그들이 좌절하고 있다. 절망하고 있다. 그리고 분노를 터트리고 있다.

왜일까?

그들에게 미래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아메리칸드림이 사라져 버린 미국이라 그렇다. 왜 하필 우리 세대에? 그들의 입장에서 그런 말이 나올만하다. 평균적으로 대략 그들은 부모 밑에서 세상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다. 그리고 자신들의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라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고 자랐다. 그러나 막상 그들이 세상에 나와 사람 몫을 하려고 들 때, 당당하게 한 사람의 성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하려 할 때, 세상은 그들의 생각대로가, 듣던 대로가 아니었다. 미국이 가장 부유한 나라라는데 왜 나에게 번듯한 직장을 잡을 기회는 오지 않는가? 그것이 왜 낙타가 바늘귀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가? 왜 나는 부모가 결혼한 나이에 결혼을 하지도 못하는가? 왜 아이도 낳지 못하는가? 왜 나는 이렇게 비정규직으로 이곳저곳을 전전해야 하는가? 왜 나는 아무리 갚아도 끝이 없는 빚쟁이 인생을 계속해야 하며 빈털털이인가? 등등. 그러나 부모들은 말한다. 자신들은 청년시절에 비록 많이 배우지도 못했을지라도 일가를 이루고 사업을 이루고 돈을 모았는데 지금 네 꼴은 뭐냐고. 부끄러운 줄 알라고. 더 좀 열심히 노력하라고. 승부근성과 헝그리 정신이 결여된 나약한 인간이라고 혀를 쯧쯧 차댈 뿐이다.

젠장! 나도 할 만큼 노력한다. 그런데 안 되는 걸 어찌하는가? 취직을 해보려한들 안 되는 걸 어찌하는가? 기를 쓰고 돈을 모아보려 애써보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은 걸 어찌하란 말인가. 그러한 좌절 속에서도 미국 청년들은 왜 자신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대부분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고 마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왜 할아버지세대와 부모세대는 그렇게 가정도 일구고 그랬는데 왜 나는 그게 딴 세상의 이야기로만 느껴지는 것일까? 오리무중의 궁금함 속에서 눌리고 눌려왔던 좌절과 짜증이 코로나로 집안에 갇혀있으며 증폭되다가 플로이드로 터져버렸다. 게다가 직장조차, 알바조차도 코로나로 다 날아가 버렸다. 이판사판 밑바닥인데 잃을 게 뭐가 있나. 가만히 보니 내 처지가 가장 불쌍하다. 이렇게 불공평한 세상이 어디 있나? 왜 젊음이 축복이 되지 못하고 이렇게 지리멸렬한 것이 되었나. 왜 우리 또래의 청년들만 가장 불행한 것처럼 여겨지는가? 그걸 따지러 나가야겠다. 뭔가 변화를 부르짖어야 되겠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분노가 삭여지질 않는다. 이게 요즘 미국 청년들이 심적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The unluckiest generation in U.S. history,” Washington Post, June 6, 2020; “’Perfect storm’: Coronavirus lockdown, joblessness fuel longstanding grievances,” NBC News, June 6, 2020; “Why rage over George Floyd’s killing is more explosive this time,” San Francisco Chronicle, June 1, 2020; “’It was never just about Floyd’: Protests reflect anger over inequality, neglect,” Buffalo News, June 8, 2020).

 

운도 지지리 없는 저성장시대에 태어난 죄

미국의 불평등 연구자들은 밀레니얼세대가 미국 역사상 가장 불행한 세대라고 진단한다.(“The Unluckiest Generation in U.S. History,” Washington Post, June 6, 2020). 그게 사실이라면 청년 세대가 좌절하고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먼저 경제성장면에서 보면, 밀레니얼세대가 노동시장에 막 진입하는 때에 미국엔 굵직굵직한 안 좋은 일들이 터졌다. 911테러,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의 코로나19 사태다. 모두 경제에 치명타를 안기는 사건들이다. 그런 사태가 한 번 터지면 경제가 위축되고 일자리는 줄어들며 그 폐해는 오래 지속된다. 그래도 힘든 시기를 견디고 극복해서 일어설만하면 또 다른 타격이 온다.(Kevin Rinz, “Did Timing Matter? Life Cycle Differences in Effects of Exposure to the Great Recession,” Working Paper, Center for Economic Studies, US Census Bureau, Sept. 8, 2019). 그 과정을 겪는 동안 밀레니얼 세대의 경력은 이탈되었고, 재정은 파탄 났으며, 그들의 사회적 삶도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코로나다. 그러니 코로나세대(C세대: 코로나이후에 태어난 세대를 말하지만, 코로나를 겪은 청년들도 포함하는 신조어)는 이젠 아예 “어디에고 비빌 언덕이 없다”(nowhere to turn)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Generation C Has Nowhere to Turn,” Atlantic, April 13, 2020).

18세에 노동력 시장에 나온다고 가정한 뒤, 그 후 15년 동안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세대별로 측정한 결과치를 보면 미국역사상 경제성장이 가장 안 좋은 시대에 태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 몫을 하기 위해 노동시장에 진입한 이후의 15년 동안 가장 안 좋은 경험을 했다는 것은 단지 그 사실로만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향후의 밀레니얼 세대의 전 생애 동안 경제적인 상처를 깊이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낮은 임금으로 시작한 직장은 그 만큼 이전 세대 보다 재산을 적게 모은다는 것을 말하고 그것은 자택의 소유에서부터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하는 모든 것들의 지연이나 포기를 의미한다. “삼포세대” 같은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이러니 특히 경제가 안 좋을 때 청년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는다.(“Millennials really are special, data show,” Washington Post, March 16, 2019; “Middle class Americans can no longer afford to get married due to huge debts as just 50 per cent now tie the knot,” DailyMail, March 10, 2020; “Affluent Americans Still Say ‘I Do.’ More in the Middle Class Don’t.,” Wall Street Journal, March 8, 2020). 반면 그 이전 세대인 베이비부머세대(1946년~1964년 출생: 현재 56세~74세)와 X세대(1956년~1980년 출생: 현재 40세~55세)에 이르는 선배세대는 밀레니얼 세대보다 호시절에 태어나 누릴 것을 그나마 어느 정도는 누릴 수 있었다고 봐야 한다.(“The Unluckiest Generation in U.S. History,” Washington Post, June 6, 2020).

세대별 1인당 GDP 성장상황. 각 세대의 노동시장진입 후 첫 15년 동안의 1인당 GDP성장률. 밀레니얼 세대는 가장 아래에 위치한다. <출처: 워싱턴포스트>

 

아메리칸드림의 소멸: 자수성가는 옛 말

1940년생과 1980년생의 비교를 한 연구가 있다. “당신의 부모와 같은 나이 대에 당신은 부모 보다 더 많이 벌었는가?”란 질문, 즉 자수성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 1940년생 미국인들은 92%가 그렇다고 답했다. 심지어 실직이나 이혼, 질병과 여타 금전적인 문제가 있었다 해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의 부모보다 더 많이 벌고 더 잘 살았다. 지금 80세 노인세대다. 그러나 1980년생 미국인 중에서 그렇다고 대답한 이는 50%만 차지한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아메리칸드림을 이루는 것은 이제는 거의 “동전던지기”(coin flip) 같다고 이야기 한다. 복불복이라는 이야기다. 즉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아메리칸 드림의 소멸을 의미한다.(“America Will Struggle After Coronavirus. These Charts Show Why,” New York Times, April 10, 2020; “Parents’s Jobs Increasingly Shape How Far Kids Get in Life,” Wall Street Journal, Sept. 3, 2018; Raj Chetty, et al., “The fading American dream: Trends in absolute income mobility since 1940,” Science 28, Vol. 356, Issue 6336, pp. 398-406. Apr 2017; “If Americans are better off than a decade ago, why doesn’t it feel that way?,” The Guardian, Nov. 5, 2019; “American Dream collapsing for young adults, study says, as odds plunge that children will earn more than their parents,” Washington Post, Dec. 8, 2016).

1940년생부터 1980년생까지의 자수성가 비교. 부모 세대보다 당신 대에서 동일한 연령대에 부모보다 더 많이 재산을 일구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1940년생은 92%가, 1980년생은 절반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불평등의 끝은 세습사회

이러니까 청년들에겐 미래가 안 보일 수밖에. 아메리칸드림은 개뿔. 아무리 노력을 해도 부모세대나 할아버지세대가 누렸던 것들을 자신들은 향유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실제로 겪어나가면서 청년들은 사회가 부조리하다는 것을 절감했을 것이 분명하다. 청년들은 그 거대한 부조리의 결과가 불평등이라는 것과 자신들이 그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체계의 피해자임을 간파하게 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국가나 나이든 사람들은 이런 구조적 부조리함을 시정할 생각일랑 없는 것으로 보이고 오히려 타박만 가할 뿐. 그런데 이 대목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모든 불평등의 끝은 세습사회의 도래라는 것이다.

극심한 불평등은 청년들을 진취적이기 보단 소극적으로 만든다. 지독한 복지부동과 안전지향 성향을 띄게 한다. 왜냐하면 아차 하고 자칫 실수를 범하는 순간 그나마 현재 손에 쥔 것마저도 홀랑 날릴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보일 이런 경향의 끝에는 결국 세습사회밖에 남을 게 없다. 청년들은 안전만을 지향하면서 동시에 매사에 다음 같은 사고를 할 공산이 크다. 노력이 뭐가 필요 있나? 실력이 뭐가 필요 있나? 부모가 고관대작이 아니고 재산 갖고 있지 않으면 난 개털인데. 이제 기댈 것은 부모의 배경과 돈밖에 없는데. 그런 잘 나고 부자인 부모를 두면 게임 끝. 별 볼일 없는 나는 인생 끝.(“When It’s This Easy at the Top, It’s Harder for Everyone Else,” New York Times, Feb. 28, 2020). 그런데 이런 자포자기와 자조는 불평등이 양산할 웬 못된 결과인 세습사회의 도래를 더욱 앞당길 뿐만 아니라 그것을 더욱 공고화한다.

최상층의 사람들에게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것이 나머지 사람들에겐 점점 더 어려운 것이 되어가고 있다. 미국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늘 상존했다. 그러나 지금은 계단식 체계(tiered system)가 요지부동의 카스트제(caste system)로 변질되고 있다. 신분제사회와 세습사회화 되고 있는 것이다. <출처: 뉴욕타임스>

어쨌든, 미국이 능력사회? 웃기는 소리다. 그렇다면 어쩌다 미국이 이렇게 변해 버렸나? 클린턴의 마누라가 대통령후보로 나왔고, 그 딸을 대통령 만들려 불철주야 돈 모으고 애쓰고 있는 것을 보라. 한 집안에서 돌아가며 대통령이 나오고, 나와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그런 나라가 되어버렸다. 미국이 어쩌다 대통령의 딸 이방카와 사위를 백악관의 고문으로 떡하니 앉히고 나랏일에 훈수를 두는 족벌주의(nepotism) 정치를 해도 아무 말도 안 나오는 그런 세습사회가 되어버렸나. 이방카를 비롯한 남매가 차기 대권을 감히 노리며 권력 암투를 벌이는, “트럼프왕조”(Trump Dynasty)라는 말이 회자되는 그런 거지같은 나라가 되었나?(“The Heir: Ivanka was always Trump’s favorite. But Don Jr. is emerging as his natural successor.” The Atlantic, Oct. 2019; “Of COURSE the Trumps are planning to be a political dynasty,” CNN, Sept. 9, 2019; “Inside Ivanka’s Dreamworld,” The Atlantic, April, 2019; “The Dynasty Ends With King Donald: There will be no President Ivanka. No President Jared. And certainly no President Donald Jr.,” Politico, Sept. 9, 2019).

트럼프왕조의 차기 상속자에 대한 권력 암투를 보도한 <애틀랜틱> 기사의 한 장면

문제는 이것이 단지 트럼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트럼프뿐만 아니라 돈과 권력이 많다고 재세하는 자들이, 즉 내 말로 “제국”들이 죄다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려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모든 제국들의 트렌드다. 자기 자식만큼은 너무나 특별하고 독특해서 자기가 가진 것을 자식들이 온전히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제국들의 욕망의 발로다. 하지만 그들이 속한 나라의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굴러가도록 이미 만들어져 있어서 그것이 가능하다.(물론 제국들이 시스템을 그렇게 만들었다). 하여 이제는 가만히만 있어도 저절로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일이 그런 식으로 술술 굴러간다. 그렇게 모든 것들이 자식들에게 전승되고 그러면 자식들은 아무런 노력없이, 그리고 아무런 자질이 없어도 승승장구한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런 귀결이다. 극심한 불평등이 활개를 치는 사회에서는 극히 당연한 결말이다. 불평등은 사람을 둘로 나눈다. 귀족과 노예로! 그리고 그 선은 절대로 넘어 갈 수 없다. 그 경계를 넘어 갈 수 없는 신분제 사회, 그게 바로 세습사회다. 부모의 것이 자식에게 그대로 대물림 되는 사회. 하여 있는 놈만 결혼하고 있는 놈만 집 사고, 있는 놈만 좋은 대학가고 있는 놈만 좋은 직장 갖고, 있는 놈만 부와 높은 소득 얻는다. 그것은 뒤집을 수 없다. 빌어먹을 무슨 놈의 나라가 이런 사회가 되었는가? 그러니 아메리칸드림은 없어진 거다. 아메리칸드림의 진수는 자수성가니까. “빽” 그런 것 없이 노력만 하면 뭔가를 성취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기울어진 운동장, 아니 기울어지다 못해 거의 90도의 수직 낙하된 운동장은 한 번 삐끗하면(주로 부모 잘 못 만나면) 도저히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그런 절망의 늪이 되어 버렸다. 한 번 이긴 자는 승자독식에 이어 계속해서 승자가 되는 연승의 게임. 반면, 그곳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이들은 서서히 익어가는 끓는 물 속 개구리처럼 그렇게 익어가고 나중엔 단말마의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Robert Frank and Philip Cook, The Winner-Take-All Society, 1996; Branko Milanovic, Global Inequality: A New Approach For the Age of Globalization, 2016).

이처럼 세습사회, 신분제사회는 한 번 고착되면 어지간해서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지하감옥과 같은 것이라 그 조짐이 보일 때 바로 척결해야 하는 게 답이다. 정녕 그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적이기에 그 싹이라도 보이면 바로 제거해야 마땅하다. 사소한 하나라도 우습게 알고 용인했다가는 큰코다치고 만다. 그러나 지금 미국 사회는 그 도를 넘겨버렸다. 무슨 짓을 자행해도 아무도 토를 다는 이 없는 서방에 위치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 그런 순응의 나라가 되어 버렸다. 법이고 나발이고, 오직 닥치고 돈과 권력이 최고인 세상. 그것들끼리 야합하고 서로가 서로를 뒷배를 봐주고 세세토록 해 먹는 빌어먹을 세상이 되어버렸다. 나머지는 시궁창과 같은 삶 속에서 헤어 나올 엄두도 감히 내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겉으론 그 잘나 빠진 능력주의, 개인주의와 세계 제 1의 국가 시민이라는 미명 아래 도끼자루 썩는지 모르고 돈을 숭배하며 살다 결국 저 짝이 나 버렸다. 계층의 상향이동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꽉 막혀 버린 세상. 그것이 바로 아메리칸드림이 사라진 세상이며, 청년들이 좌절하는 세상이며, 있는 자와 가진 자(제국)가 천하를 호령하며 그의 자손대대로 가진 것을 향유하게 하고 부모가 하던 짓거리를 자식 대에도 그대로 해대는 그런 나라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그러나 미국이 그런 나라가 되든 말든 지금 무슨 상관이랴. 내 코가 석자인데. 나는 이 칼럼을 연재하면서 의식적으로 한국 이야길 꺼내는 것을 가급적 피했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서다. 그러나 오늘은 좀 해야겠다.

신분제사회와 세습사회. 이게 미국만의 일일까? 우리나라는? 세습사회의 특징은 뭔가? 그것은 온갖 특권과 반칙의 난무이다. 기득권세력(제국)들끼리의 서로 봐주기. 품앗이. 작당. 상부상조. 그래서 세습사회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법치의 파탄이다. 법치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것을 말한다. 죄 지은 자는 법대로 신분고하, 재산과 권력의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죄 값을 물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그건 법치가 무너진 것이고 민주주의와 능력주의가 사라지고 신분에 의한 세습사회가 된 것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며칠 전 이재용의 구속영장기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각설하고, 이재용은 참 좋겠다. 소위 보수도, 진보도, 그 진영을 대표한다는 정권도 죄다 자기편을 들어줘서. 이전 정권, 현 정권 가리지 않고 이재용에게 친화적이어서. 고백컨대 난 솔직히 법에 대해 1도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정말 무식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집행유예로 중간에 풀어주는 것도 이상하고, 그렇게 풀려난 자를 수차례 대통령이 만나는 것도 이상하다. 증거가 확실히 잡힌 다른 건으로 다시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 자에게 재판부가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라고 권유하는 것도 이상하고, 수사심의위라는 것도 난생 처음 들어보았고, 공장바닥에 컴퓨터를 박아 두는 증거인멸을 했는데도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것도 정말 이상하다. 더더욱 이상한 것은 왜 이재용의 부친 이건희 회장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국가 기관이 아직도 확인하지 않는다는 게 정말 이상하다. 그것은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불법행위 여부 판단에 더 없이 중대한 사안이라고 생각되기에 그렇다. 전 정권에서 안 했다면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왜 정의와 공정의 기치를 내세운 문재인 정권에서는 하지 않는가?

삼성 앞에만 서면 왜 정권과 정치권과 사법부는 한 없이 작아지는가? 아니 왜 삼성의 이씨 일가 앞에서만 서면 그렇게 민망할 정도로 쪼그라지는가. 대한민국에 무슨 “신(新)이씨왕조”라도 있단 말인가? 이런 걸 용인하는 세습사회의 도래를 인정하겠다는 뜻인가? 만일 그렇다면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 사법부에 앉아 판단을 할 자격이 없다. 입법부에 앉아 법을 제정할 자격이 없다. 다들 물러나라. 왜? 세습사회는 근본적으로 법치를 부정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적인 법치의 파탄을 가져오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법치의 파탄을 방치하거나 가져온 자들이 어찌 법을 제정하고, 법에 의거해 판단을 내리고, 법에 의해 정치를 한다는 말인가? 실로 역겹다.

왕조를 넘어 절대로 넘어가지 않는 제국으로 우뚝 선 기득권세력들. 감시와 제재, 그리고 저항은커녕 그들을 방치하고 그러다 못해 물심양면으로 조력하는 사이 한국의 청년들은 미국의 청년들처럼 깊은 곳에서 나오는 신음을 토해내고 있다. 헬조선! 올 5월 현재 청년 체감실업률은 26%로 청년 4명 중 1명은 백수다. 실제는 더 심하다. 미국과 똑 같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력직 위주의 취업시장 재편으로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들은 피를 보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 코로나사태로 청년들은 또다시 직격탄을 맞았다. 오늘도 그들은 마스크를 끼고 알바 장소로 독서실로 향하고 있다. 누가 그들의 어깨를 활짝 펴줄 것인가? 그 관건은 세습사회의 싹수를 초장에 잘라버리는 것이다. 그러려면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부터 서릿발처럼 다시 세울 일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백약이 무효. 남을 것은 청년들의 분노와 신음 그리고 국가 미래의 부재다. 나아가, 그것 보다 청년들의 정신마저 썩어버릴까 더 걱정스럽다. 이들에게 법과 정의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고 지키라 할 것인가? 왜곡된 법과 정의 개념이야말로 그들을 진정으로 망하게 하는 것이다. 망조가 든 대한민국을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

 

참고자료

“청년 4명 중 1명 ‘백수’,” 한국경제, 2020. 6. 10.

“3년전 이재용 ‘영장기각’ 비판하던 민주당, 이번엔 왜 ‘잠잠’할까요?” 한겨레, 2020. 6. 10.

Robert H. Frank and Philip J. Cook, The Winner-Take-All Society: Why The Few At the Top Get So Much More Than The Rest of Us(New York, NY: Penguin Books, 1996).

Branko Milanovic, Global Inequality: A New Approach For the Age of Globalization(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16).

Kevin Rinz, “Did Timing Matter? Life Cycle Differences in Effects of Exposure to the Great Recession,” Working Paper, Center for Economic Studies, US Census Bureau, Sept. 8, 2019.

“How the New York Protest Leaders Are Taking On the Establishment: They’re young, charismatic and drawing crowds of thousands around the city,” New York Times, June 11, 2020.

“Young people turned out to protest. Now, will they vote?,” APNews, June 11, 2020.

https://apnews.com/81c19f569aec81907f7b46281b8ae906

“American Dream collapsing for young adults, study says, as odds plunge that children will earn more than their parents,” Washington Post, Dec. 8, 2016.

“‘Apathy is no longer a choice’: will the George Floyd protests energize young voters?” The Guardian, June 8, 2020.

“The Unluckiest Generation in U.S. History,” Washington Post, June 6, 2020.

“What Students Are Saying About the George Floyd Protests,” New York Times, June 4, 2020.

“Across the country, young activists take different approaches in the name of justice for George Floyd,” CNN, June 3, 2020.

“’Perfect storm’: Coronavirus lockdown, joblessness fuel longstanding grievances,” NBC News, June 6, 2020.

“Why rage over George Floyd’s killing is more explosive this time,” San Francisco Chronicle, June 1, 2020.

“’It was never just about Floyd’: Protests reflect anger over inequality, neglect,” Bufflao News, June 8, 2020.

“The Unluckiest Generation in U.S. History,” Washington Post, June 6, 2020.

“Millennials really are special, data show,” Washington Post, March 16, 2019.

“Generation C Has Nowhere to Turn,” Atlantic, April 13, 2020.

“When It’s This Easy at the Top, It’s Harder for Everyone Else,” New York Times, Feb. 28, 2020.

“Young Adults, Burdened With Debt, Are Now Facing an Economic Crisis,” New York Times, April 6, 2020.

“If Americans are better off than a decade ago, why doesn’t it feel that way?,” The Guardian, Nov. 5, 2019.

“Parents’s Jobs Increasingly Shape How Far Kids Get in Life,” Wall Street Journal, Sept. 3, 2018.

“America Will Struggle After Coronavirus. These Charts Show Why,” New York Times, April 10, 2020.

Raj Chetty, et al., “The fading American dream: Trends in absolute income mobility since 1940,” Science 28, Vol. 356, Issue 6336, pp. 398-406. Apr 2017.
DOI: 10.1126/science.aal4617

“Middle class Americans can no longer afford to get married due to huge debts as just 50 per cent now tie the knot,” DailyMail, March 10, 2020.

“Affluent Americans Still Say ‘I Do.’ More in the Middle Class Don’t.,” Wall Street Journal, March 8, 2020.

“Most political unrest has one big root cause: soaring inequality,” The Guardian, Jan. 24, 2020.

“Our social crisis is no longer just about inequality, it’s about life and death,” The Guardian, March 9, 2020.

Joseph E. Stiglitz, “Opinion: Why young people are angry about generational injustice,” MarketWatch, March 16, 2016.

“The Heir: Ivanka was always Trump’s favorite. But Don Jr. is emerging as his natural successor.” The Atlantic, Oct. 2019.

“Of COURSE the Trumps are planning to be a political dynasty,” CNN, Sept. 9, 2019

“Inside Ivanka’s Dreamworld,” The Atlantic, April, 2019.

“The Dynasty Ends With King Donald: There will be no President Ivanka. No President Jared. And certainly no President Donald Jr.,” Politico, Sept. 9, 2019.

 

김광기 경북대 교수의 연재 ‘인사이드 아메리카’는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목, 2020/07/16-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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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한 경제충격을 구제하기 위하여 미국연방의회는 기존의 2.9조 달러에 추가하여 지난 5월 15일 3조 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재차 승인하였다. 연방준비제도 역시 미국의 200년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규모와 빠른 속도로 자금을 경제권에 쏟아 붓고 있다.

밀턴 프리드만이 1963년에 행한 언명 “인플레는 단지 통화현상이다”는 여전히 적용이 가능하지만, 이를 심하게 비판하자면 “재화가 부족한 반면에 돈이 너무 넘쳐나는 현상”의 결과이기도 하다. 어찌했거나, 통화가 팽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의 물가는 목표치의 인플레 밑으로 유지되면서 이러한 경제적 통합운용이 광범하게 인정을 받아 왔다.

동시에 트럼프가 집권하기 이전까지 수십 년 사이에 중국이 미국의 가장 큰 무역 파트너로 부상하였는데, 미국대통령이 지난 5월 14일 FOX TV와 인터뷰를 통해서 중국과 통상을 단절(decoupling)할 것이라는 협박을 공식화하였다.

트럼프가 실제로 미중 간의 단절을 추구한다면, 이는 미국경제가 하강국면에 들어서는 가운데 인플레를 자극하는 것이고, 미국의 경제와 시민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셈이다.

인플레는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촉발될 수 있는 데, 공급사슬의 차단, 팬데믹 와중의 경제재개, 원유가격의 반등 등이 주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COVID-19이 가져오는 의료적 경제적 충격에 대응하여 미국의 정책당국자들은 ‘구제지원법’에 의거하여 상기에 언급하였듯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조직에 6조 달러에 달하는 급진적이고 단호한 지원정책을 진행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2007-9년간에 있었던 금융위기의 지원 액수를 훨씬 능가는 수준이다.

지원정책에 대한 시행을 책임지는 연방준비제도에 의해 풀려나는 엄청난 부채는 분명히 추후에 상환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다한 지원책이 코로나-19에 대한 지나친 반응이었을까? 혹시나 인플레를 자극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인플레 발생의 여부는 정부의 결정에 의존한다. 긴축재정과 증세를 시행하면, 인플레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연방준비제도가 시행하는 ‘헬리콥터 모니’방식처럼 경제에 직접 돈을 푸는 방식은 인플레를 피하기 어렵다.

지속적으로 팽창하는 화폐정책은 은행차입과 통화공급량을 증가시키면서 복합적인 수요를 촉발하고 인플레를 자극하게 된다. 부채가 증가하게 되면 재정적 압박이 발생하여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금리를 인하하도록 압박하게 되는데, 이는 결국 예금자와 채권보유자를 불리하게 하면서 높은 인플레의 위험성을 가져온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과다한 정부의 부채는 국제적으로 제한되어 있는 가용자본에 대한 초과수요를 만들면서 인플레를 유도하는 신호가 된다. 세계 1,2차대전과 베트남전쟁으로 인한 정부의 과다한 차입은 결국 미국에 하이퍼-인플레를 상당기간 불러 왔다.

이에 추가하여, 인플레에 대한 전망은 공급사슬의 차단과 경제활동의 재개 그리고 원유가격의 변동과 관련되어 있다.

봉쇄와 거리두기로 인하여 공급사슬은 심각하게 손상되었고, 일부 국가들의 자국주의적 통상정책으로 안착되었던 국제적 수준의 공급사슬의 흐름에 장애가 발생하였다. 세계적 규모로 경제활동이 급속히 재개되면, 그동안 억제되었던 개인과 기업들의 소비활동이 되살아 나면서 인플레 압력이 형성될 것이다. 미 연방저축공사 FDIC의 조상에 의하면, 지난 1분기에만 1조 달러의 자금이 기업과 소비자에게서 은행의 예금으로 흘러 들어 왔다.

봉쇄가 해제되고 산유국과 동맹들이 산유량을 줄이기로 합의하면서, 석유가격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6월과 7월분의 미국원유 선물거래지수는 지난 몇 주간의 가격추락을 회복하고 있다.

더구나 세계화의 흐름은 지난 수십 년간 미국에 인플레를 완화시켜 왔다.

높은 인플레는 경제를 망치는 기구로 이해되면서 미국대통령들에게는 이를 재난으로 받아들였다. 1980년대 대통령에 취임한 레이건은 인플레를 비유하여 “노상에서 만난 강도처럼 폭력적이며, 무장한 괴한이 사람을 내려치는 것과 같이 치명적인 것”이라고 언급했다.

지난 수십 년간은 다행히 ‘인플레 안정기의 시대’로 불리며, IMF가 작년에 언급하였듯이 선진경제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개발국가들도 인플레를 목표치 이내에서 관리했거나 혹은 적정하게 진정시켜 왔다.

그동안 하나의 공식처럼 여겨져 왔던 “필립스-곡선”1 즉 인플레와 실업률의 반비례라는 공식을 벗어나, 낮은 실업률과 높은 인플레라는 산뜻한 관계가 붕괴되어 왔다. 솔직히 말하면 상기의 공식이 충분히 이해되고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골드만 삭스의 주장인 ‘실업률 1.0%의 저하는 인플레의 01 -0.2 %의 인상으로 연계된다’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은 ‘필립스-곡선’의 공식과 달리 예외적으로 수평을 유지해 왔다. 2019년의 낮은 실업률이라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인플레를 야기하지 않았다. 실업률이 낮아져도, 인플레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으면서 전통적인 미세조정(fine-tune)이 어려워진 것이다.

이에 사람들은 인플레의 동력이 정말 무엇인지 당황해 하면서, 이를 야기하는 것이 시민들의 인플레 기대심리인지 노동시장의 변동 또는 공급측면에 의한 것이지 기술발전 때문인지 아니면 국경을 넘어선 공급사슬이 국제적 충격을 굴곡시키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게 되었다.

온라인 거래가 가격을 인하하고 사람들의 일상적 거래에 필요한 많은 서비스와 방식들이 무상으로 제공되면서 기술진보가 인플레를 억제할 수도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과 거시정책입안자들은 수십 년간 국제적으로 전개된 세계화가 (인플레 억제의) 보다 중요한 원인이라고 믿고 있다. 세계화는 인플레를 낮추는 역할을 해왔는데 생산시설이 임금과 토지비용이 싼 곳을 찾아 입지하는 동시에 물류와 자본과 기술의 신속한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생산성이 높아지고 공급이 원활해진 것이 배경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중 간의 경제 협력이 단절을 택하는 것보다 미국의 경제에 도움이 된다.

지난 4-5 월의 실업률을 보면 20.5백만 명이 실직을 당하면서 14.7%로 치솟았으며, 이제 스태그플레이션의 시대가 눈앞에 다가온 듯 하다. 현대사를 살펴보면, 높은 인플레의 시대에는 급격한 정책적 변화가 이루어지는데 ‘브레튼우드 체제의 포기’와 ‘세계화에서 탈세계화로 전환’ 등이 그러한 실례가 된다.

트럼프가 미중 간의 결별을 시도한다면 양자의 경제협력이 망가지고 세계화 흐름이 역류하면서 자신의 기반을 와해시키는 꼴이 될 것이다.

양국간 대립과 결렬이 진행되면 물가가 뛰어오르고, 각종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이 터져 나오면서 미국인들은 경제의 침체기 동안 심한 고통을 받게 될 것이고, 트럼프 행정부는 결과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1】 필립스곡선-편집자 주) 일반적으로 실업률과 화폐임금상승율(인플레)와는 반비례 곡선을 형성하는데 이러한 특성을 활용하여 재정금융정책을 통하여 실업률과 물가안정 간의 선택이 가능하다. 그러나 필립스 곡선의 특성이 작동되지 않는 딜레마 영역이 존재하며, 이러한 딜레마 영역의 탈출은 재정금융정책이 아니라 산업구조조정과 강력한 독점금지조치 및 소득정책을 통해야 가능하다.

 

출처 : CGTN on 2020-05-21.

Huang Yongfu

캠브리지 대학의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다년간 유엔에서 근무했고 미중의 통상과 기술 및 금융 관련 전문가로 활약 중

목, 2020/07/16-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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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 전 국정원장을 안보실장으로 임명한 것으로 이제 4년 차를 맞이하는 현재의 정부에게 긍정적인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서 실장은 문대통령 앞에 놓인 복잡한 과제상황을 수행하는 핵심요직 인사로서 훌륭한 배경과 성실함을 겸비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해결해야 할 과제상황은 우선 한미동맹을 양국의 전략적 이해에 맞도록 조정하고, 현재의 한중관계의 한계를 솔직이 인정하는 동시에 이를 생산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리며, 한일양국 간의 현안이 상호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협력을 유도하면서, 무엇보다도 남북 간의 포용정책을 상기 현안들에 앞서 최우선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박지원 전의원이 국정원을 이끌도록 지명함으로써, 문재인 대통령은 정보조직(NIS)이 제대로 역할을 하도록 요청하는 신중함을 선택하였다. 국정원은 과거 몇몇 대통령의 부패로 인하여 형편없이 파괴적이었지만, 여전히 정황(情況)에 대한 최고의 분석가와 기획자들을 지니고 있는 조직이다. 박원장의 개인적 대북이력 즉 세대를 걸쳐 북한의 주요 인사들과 접촉하고 남북협력의 속사정에 매우 밝은 경험이 매우 소중한 시기이다. 또한 박원장이 한때 뉴욕시민으로 사업가이자 1990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후원하면서 당시의 권위적 체제와 싸웠다는 사실도 커다란 장점이다. 그는 워싱턴과 서울의 우익인사들이 남북간의 화해에 대하여 반대의 목소리를 시끄럽게 높이더라도 이를 능히 감당할 폭넓은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인영 의원이 통일부 장관으로 내정됨으로써, 해당 부처는 엄중한 상황에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역동적으로 일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남북 간의 평화와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북한의 핵능력과 ICBM 역량을 동결시키고 점차 축소시켜나가야 하는 일이 남한의 중대하고 핵심적 사안이며, 실천적인 남한정부의 중심적 내용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반대로 이명박 시절 상기의 아젠다를 폐기시키려던 시도는 한국 내 반민주적 인사들의 과거퇴행적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상기에 언급한 주요 보직의 인사개편은 대통령의 태도에 변화가 없는 한, 소용이 없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동맹과 현안이 발생하리라는 것은 문대통령이 선출되는 즉시 예상된 것이었다. 많은 인사들이 지적하였듯이, 도날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미국의 외교정책이 엉망이 되기 이전부터 워싱턴 내의 남북한 정책은 십 수년간 잘못 설정되어 있었다. 남한과 북한 모두에게 트럼프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비밀이 아니었다. 그가 지명한 참모진들, 존 볼턴과 스티브 비건이 트럼프의 결점을 보상할 수는 없었다. 서울당국이 역할을 해야 했다. 처음부터 한국정부가 북한을 생산적인 협상 테이블로 불러들이는 다자적 노력을 해야만 했다.

더구나, 한반도상황에 대한 청와대의 분석에는 문제가 있었다. 문대통령은 자신이 김대중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여러 번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취임부터 그는 북한을 비핵화 협상에 끌어 들이기 위해서는 유엔을 통한 강력한 제제가 필요하다고 확신해 왔다. 황당하게도 그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블라디보스톡에서 회담하는 중에 미국이 제안한 북한의 에너지 금수조치를 지지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당시 푸틴은 그러한 정책의 비현실성을 점잖게 지적했다.

그 동안 다행히 한국의 국가안보, 남북 관계 그리고 한미동맹은 해당 부처 장관들의 노력 덕분에 위기에 빠지지는 않았다. 반면에 세 분의 지명 모두가 탁월한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이번 새로운 인사가 교착에 빠진 상황을 해결하거나 개선시킬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김정은의 새로운 접근은 문대통령이 이를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입장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유엔제재는 긴급히 완화(조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북한제제 자체가 지난 20년 동안 줄곧 실패한 한미의 공동 이해와 목표이었기 때문이다 (실패를 지속해서는 안된다). 김위원장에게 보내는 선물로서 제재를 완화하는 조치가 워싱턴과 서울당국이 원하는 새로운 경로를 열어줄 것이다.

결론적으로, 서울당국이, 미국이 무언가를 해낼 것이라는 기대를 접고, 당사자로서 일차적인 책임을 느끼며 상황과 현안에 주도권을 쥐고 행동을 취할 때에 한미동맹은 활력을 되찾고 소생할 것이다. 이제 미국은 뒤로 물러서서 하노이의 협상에 대해 재평가(반성)해야 할 때이다.

앞으로 북미의 협상은 유엔과 아시아의 인접국가들 EU 그리고 호주 등의 통로를 활용해야 한다. 새로 개편된 진용으로 문대통령은 이제 복잡한 외교경로를 대응할 수 있는 팀을 제대로 갖춘 셈이고, 필요하다면 도움을 제공할 많은 인사들이 배후에서 대기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은 문대통령 자신이 역할을 제대로 맡아야 하며, 미국의 무능(용)함에 핑계를 돌려서는 안될 것이다.

 

출처: Korea Times on 2020-07-09.

Stephen Costello

워싱턴 평화재단의 부이사장 출신으로 미국 내의 햇볕정책 전도사라는 별칭과 함께 다양한 매체에 한반도 관련기고를 하고 있으며, 현재 조지 워싱턴 대학의 한국연구센타 초빙연구원으로 활약 중이다

금, 2020/07/17-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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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가을 재선을 갈망하는 미국대통령 트럼프에게 그의 지난 4년 임기 중에 이룬 주요 성과가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그는 북경당국과 통상합의를 이룬 것이라고 크게 떠벌릴 것이다. 1월에 체결된 내용에 따르면, 중국은 상당한 액수의 미국제품을 수입하여 무역적자의 폭을 대폭 줄이고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트럼프 협상의 핵심사안은 중국이 미국산 원유와 천연가스를 도입하여 미국 에너지 분야의 성장을 돕는 것이다.

트럼프가 떠벌리는 통상협상의 승리는 코로나 팬데믹과 충돌하면서 물거품이 되었는데, 무엇보다 극적으로 추락한 것은 에너지 분야에 관한 합의사항이다. 팬데믹으로 인하여 원유수요가 격감하고 가격이 추락하는 가운데, 중국이 약속한 에너지 수입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음이 분명해 지면서, 트럼프의 퉁상전략이 어리석은 것임이 드러나고 있다.

트럼프가 중국의 무역관행에 문제가 많은 것을 지적하며 대응한 것은 옳았으나, 미국행정부의 접근은 상식 밖이었으며 팬데믹 이후에는 의미가 없어졌다.

지난 협상과정을 다시 돌아보자. 양국은 지난 18개월 동안 힘든 무역전쟁을 치르면서 소위 트럼프 협상의 제1단계에 서명하였고 미국의 에너지에 대한 중국의 수입관세를 무력화시켰다. 협상의 핵심사항은 2017년을 기준으로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수입액수를 두 배로 늘려 2000억불을 수입하는 것이었고, 주로 4개 부문에 집중되었다. 그 중의 한 부문이 에너지에 관한 것으로 중국은 2020년에 190억불, 2021년에는 340억불을 추가로 수입하는 것을 약속하였는데 이는 2017년 기준으로 각각 240% 그리고 440%의 중가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는 1월에 서명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이미 비현실적인 것이었지만, 이에 대해 트럼프와 참모진들은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협상의 내용에 따르면, 오는 11월 대선 이후 결과에 따라 중국이 실제 구매행위를 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어찌되었거나 코로나-19의 상황은 협상을 재고할 구실을 가져다 주었다. 이제 트럼프의 협상은 확실하게 무효가 되었고 중국에게 약속의 이행을 강요할 방도가 없어졌다.

산술적 계산을 해보자. 협상 내용에 따르면 2020년 간에 중국은 매달 22억 달러의 에너지를 수입해야 한다. 그러나 전문기관의 보고에 따르면, 실제로는 지난 1월과 2월에 수입액이 전혀 없었고 3월 중에 겨우 320백만 불 정도 수입했다고 한다. 1/4분기의 목표량에 90%가 부족한 액수이다.

이런 형편없는 부족액수는 물론 놀랄 일이 아니다. 중국의 1/4분기 에너지 수요는 코로나-19로 인한 봉쇄조치와 경제활동의 중단으로 붕괴되었다. 동시에 세계적인 에너지 수요 격감으로 원유가격이 폭락하였고 이는 중국이 애초 약속한 목표 액수에 도달하려면 엄청난 에너지를 수입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협상의 발효시점이 2월 14일이었고 이에 따라 중국은 미국산 원유와 가스에 대한 관세를 3월 2일까지 여전히 부과하고 있었다. 이런 배경으로 트럼프가 떠벌렸던 협상은 실제로 무효화되었고 중국은 약속을 이행할 길이 없었다.

한편, 코로나-19로 인한 봉쇄만으로 중국이 에너지 구매약속을 거의 이행하지 않은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중국은 가격의 폭락을 활용하여 전력적인 비축량을 확대하려는 목적으로 지난 1/4분기 중에 사우디와 러시아 등에서 수입하는 원유량을 늘려 왔다.

더욱이 중국의 경제활동이 재개되고 가솔린 수요가 반등함에도 불구하고, 3월에 비하여 4월에 미국원유를 수입하려는 중국 유조선의 이동에 대한 예비적 데이터는 단순히 금액뿐만 아니라 절대 수량에서도 줄어들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향후 중국의 대미 에너지 수입이 증가한다 해도 합의된 목표에 이르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이는 단순한 산술에 불과하다. 목표치를 채우려면 중국이 4월부터 12월까지 매달 290억불을 배럴당 30불(미국당국이 2020년에 적용한 평균기획 단가)에 수입해야 하는데 이는 매일 3백만 배럴을 수입해야 한다는 것이고 미국이 수출하는 원유의 전량에 해당한다. 다시 말하면 중국이 미국의 수출원유에 대한 마지막 한방울까지 수입해가야 한다는 것인데, 실제로는 이의 공급조차 가능하지도 않은 상태이다. 미국의 세일가스 산업이 붕괴되면서 미국의 원유 수출량이 올해부터 줄어들기 시작했고 내년에는 1/3 수준으로 축소될 전망이다.

한편에서는 설령 미국이 공급량을 댄다고 하더라도 중국 역시 매일 3백만 배럴을 수입할 수 없다. 현재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인 사우디에서 원유량을 전부 미국으로 돌린다 해도 이는 매일 1.8백만 배럴 수준에 머문다. 중국이 수입하는 모든 형태의 에너지, 즉 LNG, LPG 그리고 석탄을 다 대체한다 해도 원유 수입액의 일부만을 충당할 뿐이다. 중국이 수입하는 모든 에너지 포트폴리오portfolio를 미국으로 대체한다 하더라도 산술적으로 목표액을 다 채울 수는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전략 한계가 최근 몇 주간에 매우 분명해지면서, 심각한 타격을 입은 미국의 산유업체들과 종사자들을 구제하고자 돈줄을 마구 쏟아붓는 방식으로 지원하였다.

원유가격이 붕괴되면서 지난 2월부터 미국의 원유생산량은 최소 하루 1.5백만 배럴이 줄어들고 있다. 한 조사기관에 따르면, 원유가격이 회복되지 않으면 원유생산업체의 40%가 파산에 이를 것이며, 22만 명이 실업자로 전락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재난상황에 직면하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원유와 가스생산업체들을 지원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제안하면서, 생산을 중단하는 업체에게 지원금을 제공하고 연방준비제도를 통하여 대출금 한도를 높이고 전략적인 석유 비축량을 늘리며 수입원유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는 둥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결국 미행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차별적 조치는 사우디와 러시아를 한데 묵어 압박하면서 OPEC과 산유국들에게 역사상 가장 극적으로 산유량을 줄이는 것이다.

이상한 것은, 원유생산업계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미행정부의 관리들이 중국에게 무역협상의 의무를 이행하라는 압력에 대해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해당 업계는 원유가격의 인상과 기업에 대한 지원조치를 앞에 두고 의견이 갈라지고 있지만, 이들이 하나의 목소리로 동의하는 것은 중국이 미국의 에너지를 많이 수입할수록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팬데믹 상황은 중국의 에너지 수입약속을 공허하게 만들었으며, 트럼프의 통상전략은 실패한 것이 되었다.

만약 중국이 미국과 약속한대로 실제로 지난 몇 개월 사이에 원유와 가스를 수입해 갔다면, 미국의 해당업체들이 그들의 저장고조차 가득 채운 상태에서 미국 원유가격을 역사상 처음으로 부負의 가격수준으로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트럼프가 중국에게 강제로 원유를 수입하도록 요구할 수 없다면, 관련업체들은 기존협상의 시효에 지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중국과 새로운 구매계약을 맺어 최소한 LNG 수출이라도 붐을 일으키도록 제안하고 있다.

원유가격의 추락이 중국이 에너지 수입목표를 이행하지 못하는 핑계를 제공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트럼프의 통상전략의 한계로 일부 특정 분야의 구매를 약속으로 받아내는 방식인 것이다.  특정상품의 구매약속이 아니라, 무역장벽의 제거에 대한 제도적 작동, 중국의 부당한 산업정책에 대한 우려 해소, 지적 재산권과 환율 그리고 보조금 등에 대한 합의 등으로 접근했어야 한다. 이러한 주제들에 관하여 중국이 수년간 문제를 야기시켜 왔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제품만을 많이 구매하도록 협박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책이 결코 될 수 없다.

코로나-19 상황은 미국의 에너지 수입에 대한 중국의 약속을 물거품으로 만들었고, 트럼프는 통상전략에서 실패했다.

 

출처 : 포린 폴리시 Foreign Policy on 2020-05-22.

Jason Bordoff

콜롬비아 대학교수로 국제공공정책과 에너지 전략분야의 전문가이며, 오바마 시절에 국가안보회의 참모들의 교육담당과 대통령 자문역을 지냈다

금, 2020/07/1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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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2019년 7월부터 진행해온 기획칼럼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는 총 17회로 구성하여 격주에 한번씩 소개하였으며,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게재하면서 마무리합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날 유럽에서는 많은 법규는 [유럽공동체의 본부가 있는] 브뤼셀에서 직접 만들어지거나 적어도 유럽공동체의 법규와 양립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유럽연합은 대의 기관을 갖춘 주권 국가들의 연합체이지만, 그 구조 자체가 연방국가와는 다르다. 수많은 유럽 시민들은 느낌 상 유럽 차원에서 보통 시민인 자신들의 표가 그다지 중시되지 않는 반면, 막강한 경제력을 지닌 소수들의 이익은 더 많이 반영되는 듯하다고 느끼고 있다. 유럽연합의 핵심 목표인 유럽연합 내의 국경없는 시장에서 경제는 초국가적인 것이 되었고 유럽연합의 집행부도 힘을 얻게 되었지만, 그들의 민주적 통제에 강한 강제력이 뒤따르지 않은 현실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아직 국가적 울타리에 갇혀있는 듯하며, 유럽의회 내에서 초국가적 민주주의를 향한 발걸음은 너무나 소극적이다. 유럽연합은 세계최고 선진국들의 연합 프로젝트이지만, 근본 가치 중 하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아직 완성에 이르지 못했다. 그것은 민주주의이다.

 

유럽연합을 민주화해야 하는 이유?

유럽연합은 매우 특별한 조직이다. 국가가 아니지만 곧바로 시행할 수 있는 법령을 승인할 수 있는데, 이 법령은 실제로 개별국가의 법규를 침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구속력있는 법률 규정권을 지닌 유럽연합은 여타 초국가적 조직들과 확실히 구분된다. 유럽연합의 기구들은 제도화된 구조와 완전히 민주적인 민주주의 절차를 갖추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곧 기구의 중심에 시민들이 직접 선출하여 좀더 정치적 합법성을 지닌 기구, 곧 유럽의회EP가 결정권을 지니고 있지 않다. 유럽연합 리스본 조약이 유럽의회의 역량을 강화시켰지만, 국가 민주주의 특유의 권력 분산이 유럽연합에서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유럽연합은 커다란 정치적 방향의 결정은 물론 우리 일상 생활과 관련해서도 실로 폭넓은 법적 권한을 지닌다. 지속적으로 유럽공동체 차원으로 양도되고 있는 법적 권한들을 양적으로 측정하기는 어렵다. 1998년~2004년 기간 동안 전체 법령의 83%가 브뤼셀에 양도되었다. 그러나 이런 법령들의 중요성을 잘 평가할 필요가 있다. 리스본 조약조차 법제권이 계속해서 브뤼셀 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구조를 바로잡지 못했다. 다양한 법률 조항으로 유럽연합은 새로운 법적 권한을 지니게 되었지만, 그에 비해 시민들의 민주적 권한은 더 커지지 않았다. 대개 유럽연합에 법적 권한을 양도할 때마다 민주적인 통제력을 잃게 되는데, 유럽연합 차원에서 선출된 정치인들에 대한 시민들의 견제가 그리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종 유럽연합은 독특한 구조로, 연방국가 비슷한 특징을 지닌 국가들의 연합체로서 민주적 단일 민족 국가의 척도로 평가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그에 대한 우리의 반론은, 민주주의의 척도는 그저 좁은 의미의 국가들만이 아니라 권력을 행사하는 연합의 모든 결정에 시민들이 중심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가치와 원칙, 방법과 제도들로 이루어지며, 개별적 전통 국가에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 조직에 적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럽연합 또한 민주적 권리라는 획득한 기준들에 맞춰 보아야 할 것이다. 유럽연합에도 여느 국가에 적용하는 것과 같은 민주주의의 척도들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유럽연합은 다양한 정치부문에 입법 및 행정 권력을 행사한다. 그러므로 하나의 정부 조직처럼 작동하며, 1천 4백 억 유로에 달하는 예산을 집행한다.

▪유럽의 통합과 그에 따른 유럽공동체 차원으로 법적 권한의 양도가 이탈리아 헌법에 허용되었으나 근본 원칙에 어긋나는 것일 수는 없다.

▪리스본 조약의 서문에 유럽연합 자체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연결되어” 있으며, 그러므로 유럽연합은 시민들이 그 원칙들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 줄 의무가 있다.

▪유럽의 시민들은 매우 다양한 법규와 조례의 영향을 직접 받으며, 그러므로 그에 직접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종종 유럽 통합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옹호하면서, 평화보장과 안정에서부터 시작하여 기능적인 단일 시장과 단일 통화, 노동 및 자본의 완전한 이동 가능성, 안정된 농가 수입, 대학생들의 교환 프로그램 등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들을 열거하곤 한다. 합법성이나 민주적 투명성이 부족한 것은 시민들이 누릴 직접적 이익, 곧 유럽연합의 결과물로 보상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실상, 민주주의에서는 그저 결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바람직한 결과물인지 시민들이 명확히 판단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 또한 중요하다.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은 정치 논리를 통해, 그리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각각의 구체적인 정책의 목표와 수단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독재 정권들도 대체로 민주적 정통성의 부재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시민들을 위한 결과물이라는 관점에서 성과를 자랑한다. 그러므로 정치의 실제 성과가 시민들에게도 받아들여지고 승인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직접 민주주의를 하기에 유럽은 너무 크지 않은가?

230년 전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유럽 사람들 대다수를 열광시키기 시작했을 때 (이론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프로젝트로서), 대개 다음 질문을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되었다. 어떤 환경에서 민주주의가 더 잘 시행될 수 있을까? 루소Rousseau는 더 작은 환경일수록 민주주의가 더 잘 작동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프랑스 혁명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같이 커다란 나라에서는 민주주의를 실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날에도 이와 비슷하게 많은 동료 시민들에게 유럽, 곧 4억 5천 만 인구를 지닌(영국은 제외) 단일 유럽연합은 민주적 형태로 조직되기에는 단순히 지나치게 크다.

이와 상반되는 첫 번째 역사적 증거는 미국에서 나왔다. 미국은 1776년 연방국이자 민주주의 국가로 건국되었다. 또 다른 증거는 인도인데, 인도는 1947년부터 연방국이자 다국적 민주주의 국가로 작동하고 있다. 2017년 인도는 13억 3천 9백 만 인구를 기록했으며, 벌써 2020년에는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견되고 있다. 유럽연합 3배 인구 규모의 민주주의 체제이다. 유럽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기 전에, 주권자인 시민들에게 최대의 참여를 보장하려면 그 체제가 어떻게 조직되어야 할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질문을 들고 27개 국에서 인구 4억 5천 만에 이르며, 조만간 그 숫자가 더 늘어날 전망인 유럽연합 거주민들과 마주해야 할 것이다. 미래의 통합된 유럽에는 5억 5천 만 명이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의회는 실행상의 이유로 선출 의원숫자 750명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유권자75만 명 당 한 사람의 의원으로 대표성이 매우 낮다. 이 경우 민주주의는 공허한 약속이 될 위험이 크다. 그러므로 레퍼렌덤 권한으로 통합하는 수 밖에 없다. 유럽연합의 규모가 그 구조 안에 직접 민주주의를 끼워 넣는 것에 장애가 되지는 않으며, 오히려 대표성의 약화로 인해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할 필요성이 더욱 크다.

2009년 새로운 리스본 유럽연합 조약은 유럽의회의 역할을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 시민 발안으로 유럽 차원의 레퍼렌덤 권리를 향한 새로운 창을 열어 주었다. 반대로, 독일 연방의 전 정부 관료이자 2001-2003년 유럽 헌법 제정 협의회의 주요 주창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요슈카 피셔Joschka Fischer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전혀 계획을 갖고 있지 않았다. 곧 유럽연합은 직접 민주주의를 하기에는 지나치게 크다는 생각이었다. 유권자 규모는 물론 레퍼렌덤 절차를 작동시키는데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숫자만이 어떤 시민 정치 참여 시스템이 실현 가능하지 않다고 선언하기 위한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을까?

민주적 정부 형태의 적용은 모든 차원의 정부에서 민주적 제도와 권리와 법규가 제대로 작동하기만 한다면 지리적인 문제가 아니다. 어떤 특정 지역에서 민주주의의 제도화는 주로 해당 주민들의 뜻에 달려 있으며, 그 다음으로 시민들의 문화적 수준에 달려있다. 유럽 시민들은 관찰하고, 성찰하고, 토의하고, 여론을 형성할 능력이 있는가? 그들은 평화롭게 서로의 의견을 대조하고 경청할 수 있는가?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과 그들 주위 공동체의 운명에 책임의식을 갖고 있는가? 그들은 정치적 사안들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입수하고 바람직한 미디어에 접근할 기회를 갖고 있는가? 그들은 전반적 문제들에 대해 해결책이나 프로젝트를 마련할 수 있는가? 미디어들은 독립적이고 정치, 경제적 세력들을 견제하고 있는가?

이런 요인들이 유럽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실현 가능성을 결정한다. 만일 지금 유럽연합이 충분히 민주적인 조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무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력이나 의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유럽연합 지역의 민주적 체제들은 시군, 광역 및 국가적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다. 어째서 그 같은 유럽 시민들이 직접 민주주의의 도구들이 통합된 의회 체제에 기반하여 초국가적 차원에서도 강력한 민주주의를 조성할 능력이나 관심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일까?

직접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규모가 작아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극복되었지만 이는 장 자크 루소의 오랜 가설이었다. 유럽연합이 직접 민주주의에는 지나치게 크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더 커진 것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공간이며, 이 공간에서 더 많은 시민들이 살고 있을 수록, 순전히 의원들만이 직접 참여권을 지닌 대
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것이 더욱 시급하다.

 

유럽 시민 발안: 유럽연합에서 직접 참여를 향한 첫 발걸음

2012년 4월 1일부터 유럽연합은 리스본 조약으로 도입된(제11항 4절) 시민들의 새로운 참여권인 유럽 시민 발안ECI: European Citizens’ Initiative을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 60여 건 이상의 유럽 발안이 제기되었지만 단 4건만이 백 만 명의 서명 문턱에 도달하여 유럽의 의사 결정 절차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는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초국가적 직접 민주주의의 첫 번째 권리 행사이다. 최소 7개 유럽연합 회원국에서 적어도 백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유럽위원회에 유럽공동체에 법적 권한을 지닌 법령 제안을 제시할 권리를 지닌다. 그러므로 유럽 시민 발안ECI은 일종의 “집단 청원”으로서, 시민들은 유럽연합 기구들에 발안을 채택하도록 촉구할 수 있다. 이는 유럽공동체의 입법을 위한 초기적 직접 참여 형식이며, 그렇더라도 유럽위원회에 어떤 행동을 취하도록 의무를 부과하지는 않는다. 만일 유럽위원회가 시민들의 제안을 기각한다면, 그 어떤 레퍼렌덤 투표도 따르지 않으며, 최악의 경우 시민들의 모든 발안이 거기서 끝난다. 그러므로 유럽 시민 발안은 의회 측에서 기각된 후 국민투표가 따르지 않아 사라지고 마는 이탈리아 버전의 국민발안 법제안과 매우 흡사하다(이탈리아 헌법 제50조).

유럽 시민 발안은 최소 백 만 명의 시민들이 유럽위원회의 정치 의제에 영향을 주기 위한 국민 청원에 비교할 수 있지만, 레퍼렌덤 투표를 실시할 권한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완전히 무익한 도구는 아니다. 백 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유럽공동체에 법적 권한이 있는 어떤 정치적 제안을 지지한다면, 이는 어떤 로비나 비정부 기구들이 제기하는 단순한 호소와는 다른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유럽 시민 발안으로 초국가적 형태로 조직되어 일하는 시민 사회는 유럽위원회나 다른 유럽 기구들이 간과할 수 없는 강력한 제안들을 표현해낸다. 그러므로 유럽 시민 발안은 여러 조직들에 유럽공동체의 다양한 정치 부문에서 하나의 새로운 압박 루트를 제공한다.

어쨌든 유럽 시민 발안은 초국가적 직접 민주주의의 첫 도구이긴 하지만, 유럽 연합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시민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기에는 너무나 약한 권리이다. 결정에 영향을 주는 참여는 오직 시민들이 자신들의 유럽 국민발안과 유럽 실행 레퍼렌덤에서 투표할 자격 또한 부여받아야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유럽연합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결정들이 그저 강력한 로비의 압박에 놓인 브뤼셀에 집중된 테크노크라트들이나 유럽의 정치 엘리트들에게만 맡겨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돌아갈 것이다. 그러면 시민들은 자신들이 공공 영역이나 정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으로 느끼게 될 것이고, 유럽은 시민들 차원에서도 통합될 수 있을 것이다.

 

유럽 시민들에게 필요한 레퍼렌덤 권리들

지금까지는 유럽연합에 전통적인 직접 민주주의의 도구들이 없다. 2012년 도입된 유럽 시민 발안ECI은 전통적인 레퍼렌덤 권한, 곧 국민발안과 선택적 혹은 의무적 실행 레퍼렌덤을 대신할 수 없다. 그것은 보다 민주적인 유럽을 위해, 유럽의 입법을 통제하고 시민 사회에서 나온 제안들로 대의 기구들을 자극하기 위해 양도할 수 없는 권한을 말한다. 이 시점에서, 추후의 유럽 조약문서 개정을 염두에 두고, 국가적 차원에서 필요한 레퍼렌덤 권한을 되짚어 보며 다음 세 가지 종류의 직접 참여권을 제안할 수 있을 듯하다(베네딕토, 2010).

1) 국민발안의 법제안들에 투표하기 위한 유럽 레퍼렌덤을 포함하는 국민발안 입법권 (이탈리아의 법률 용어로는 ‘유럽의 제안 레퍼렌덤’이다). 일정 최소 인원의 시민들이 오늘날 유럽위원회와 매우 제한된 형태로 유럽의회에만 국한된 권한인 유럽의 법률 입안을 제안할 권리를 지닌다. 이 권한은 세 단계로 나뉘는데, 최소 백 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제기한 국민발안의 유럽 법률 제안으로 시작하며, 이어서 의회에서 토론을 거친다. 이 제안이 기각된다면, 시민들은 서명보다 더 높은 인원으로 레퍼렌덤 투표를 요청함으로써 이를 유럽의 제안 레퍼렌덤 실행으로 가져갈 수 있다.

2) 국민의 거부권, 곧 유럽의 실행 레퍼렌덤. 어떤 새로운 유럽공동체 법령이 승인되고 나서 일정 기간 내에 유럽 시민들은 이미 유럽연합 기구들에서 승인된 법령이나 어떤 새로운 회원국의 유럽연합 가입 여부에 대해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을 요청할 권리를 지닌다. 이 레퍼렌덤을 “선택적”이라고 정의하는데, 일정 최소 인원의 시민들이 그 레퍼렌덤을 요청할 권한을 갖기 때문이다.

3) 유럽의 의무적 실행 레퍼렌덤은 향후 헌법 조약의 개정에 대해 자동으로 규정되었다. 곧 최소 인원 시민들 편에서 특정 요청이 없이도 법으로 규정되어 있음을 뜻한다. 이런 이유로 이를 “의무적 레퍼렌덤”이라고 한다.

“유럽의 레퍼렌덤”에서 투표권을 지닌 모든 유럽연합 시민들은 잠정적으로 유럽공동체 제도권의 어떤 반대 제안에 맞서 제기된 국민발안 제안에 관하여 결정하기 위해 투표하도록 요청받는다. 유럽연합의 독특한 제도적 구성은 소수 회원국들이 계속해서 소수파의 위치에 놓이는 것을 막기 위한 일련의 메커니즘을 지닌다. 그러므로 유럽의 레퍼렌덤 투표에 그런 연방적 요소를 넣는 것이 불가피할 것인데, 곧 “이중 과반수”를 규정해야 한다. 스위스에서 벌써 오래 전부터 이를 규정하고 있는데, 연방 레퍼렌덤 투표에서 총 투표자들 표의 과반수와 칸톤들의 절대 과반수가 둘다 필요하다(“Ständemehr”라고 한다). 이를 유럽 차원으로 가져가면 유럽의 투표에서 “연방”이라는 조건의 대의성을 보장하기 위해 총 투표자들 표의 과반수만이 아니라 대다수 회원국에서 나온 표들의 과반수 또한 요청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제안에 대해 만일 투표자들의 과반수가 찬성을 표시하고 유럽연합 회원국(현재 27개 회원국 중 최소 14개국)의 대다수로부터도 승인된다면 그 제안이 수용된다는 뜻이다. “이중 과반수”는 연방이라는 의미에서 시민 숫자가 적은 회원국에 보호책을 제공한다. 유럽 레퍼렌덤 투표 또한 참여 정족수가 없는 것이 나을 것이다.

유럽의 시민들은 새로운 나라가 유럽연합의 회원 자격을 얻는 것에 대해서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나 제도권에서 공포하는 가부형 레퍼렌덤 투표(플레비사이트)는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은 이미 자국의 정치에 쉬운 환호를 얻기 위해 이용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으며, 진정한 국민발안의 표현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직접민주주의의 발전은 현재 유럽연합의 제도적 틀에서 민주적 결함을 보완할 수 있고, 유럽의 참된 여론 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촉진시킬 수 있지만, 그것이 유럽 민주주의를 위한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유럽연합 내직접 민주주의를 위한 도전들

직접 민주주의의 도구 도입은 나름의 어려움에 봉착하는데, 유럽연합은 완전히 독특한 나름의 스토리와 정치적 구조가 있는데, 그것은 유럽연합을 이루는 여느 단일 국가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이런 종류의 초국가적 민주주의 프로젝트가 공통으로 갖는 특유의 문제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많은 시민들이 유럽연합은 지나치게 크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민주적인 방식으로 작동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긴다.

▪유럽연합은 모든 차원에서 명확한 법적 권한이 구분되어 있거나 제도권과 권력의 분명한 위계 질서를 갖춘 연방 정부가 아니다

▪유럽연합은 성숙한 의회 민주주의 조직이 아니며, 유럽의회 또한 아직은 힘이 없고 유권자들 측의 관심 부족이라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럽의 레퍼렌덤 도구에 대해 확신이 없는데, 그것은 일부 회원국들 차원에서 비슷한 도구들에 대해 부정적인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회원국 대부분은 중앙집권국가들이며 수많은 시민들이 이미 자국에서 정치적 의사 결정을 하는 본부들과 그들 일상의 상황 사이에서 느끼는 거리감을 비난하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로 역사적인 혁신을 도입하고자 하며, 그러므로 우리는 정치 구조의 변혁이라는 필요에 직면해야 한다.

▪모든 시민들이 벌써 “세계적으로 의사 소통을 하는 시민들”로 변화되지는 않았다. 한편으로 대다수의 시민들은 그저 자기 모국어(게다가 지역적 방언)만 알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아직 정치적으로 다소 지방색이 강한 시각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유럽 직접 민주주의는 건설 중인 과정이자 과업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유럽연합의 “민주적 후진성”에 대해, 유럽공동체 차원에서 모든 레퍼렌덤 권한이 갑자기 제도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미 몇 개 국가군에서는 종종 레퍼렌덤 권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먼저 의무적 실행 레퍼렌덤부터 시작하여 앞으로 제정되고 개정할 수 있도록 활동하면서, 유럽의회에 입법 국민발안과 국민 청원을 할 수 있게 하며, 그 다음 계속해서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 권리를 위해 일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직접 민주주의의 유럽적 도구 도입에 처음부터 사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유럽연합 민주주의의 초국가적 규모로 인해 유럽연합은 특별한 특징을 지니며, 이는 국가적 민주주의에서 제기되는 것들에 비해 다음과 같이 독특한 요구사항을 만들어 낸다.

▪지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발안의 결정이나 절차가 일방적이 되는 것을 피해야 할 것이다. 시민들의 발안들은 가능한 한 여러 나라에서 모든 사회 계층에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

▪여러 종류의 엘리트 의식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재정적 권력이나 잘 조직된 비정부 기구들의 권력이 직접 민주주의를 장악해서는 안된다. 직접 민주주의의 도구들은 그저 잘 조직되고 자금력이 있는 소수들만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초국가적 활동을 격려하고 지원함으로써 “유럽의 공적 공간” 조성을 장려해야 할 것이다.

▪유럽 국민발안을 다루고 실행하기 위해 기간을 정할 때, 제도권과 발안자들과 다양한 이익 집단들 사이에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협상과 노력에 충분한 시간을 허락해야 할 것이다.

▪유럽 직접 민주주의의 형태는 그저 유럽의 제도권에 시민들의 의견을 더욱 경청하도록 의무를 지우는 것만이 아니라 시민들 또한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도록 설계해야 할 것이다.

모든 국가적 민주주의가 당면한 위기는 이중적인 위기이다. 한편으로 회원국들의 국가 민주주의는 지나치게 간접적이며, 거의 항상 선거에만 기반을 두어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들로 보완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국가적이기도 해서, 초국가적인 막강한 경제 세력들을 감당하거나 견제해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민주적 권력들은 초국가적인 방식으로, 곧 유럽연합의 유럽 차원으로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오로지 대의적 요소들을 직접적 요소들과 잘 결합시킴으로써 우리는 유럽연합에 단순히 과반수로 정해진 결정을 초국가적 차원에서 통과시키는데 필요한 민주적 합법성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연합은 시민들과 자연에 대한 관심에서 시장의 인간화와 문명화를 위해 요청되고, 꼭 필요한 합법성을 얻게 될 것이다. 그렇게 직접 민주주의는 한 구석에서 벗어나 그 잠재성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며, 더 이상 플레비사이트적 요소들과 혼동되지 않을 것이다.


토, 2020/07/1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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