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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의 철수결정은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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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의 철수결정은 옳았다

admin | 화, 2021/09/07- 20:03

아프칸의 군사 및 행정 조직의 급속한 붕괴는 미국주도의 노력만으로 아프칸의 정부가 자립할 수 없을 것이라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회의적 판단을 단적으로 입증한 것입니다.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지원했지만, 미국은 자립할 수 있는 아프칸 독자정부를 수립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워싱턴 DC –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장악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아프칸 국민과 국제사회가 품위있고? 안전하며 제대로 작동하는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20년 동안 노력한 것이 불과 몇 달 만에 무산되었습니다. 탈레반은 지난 일요일(2021-08-15) 놀랄만큼 빠른 속도로 국토 전역을 장악하고 카불로 이동하여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을 도피하도록 부추겼습니다.

탈레반이 아프칸을 짧은 시간에 사실상 무혈진입으로 장악한 상황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칸에서 미군과 연합군을 철수하도록 결정한 판단에 대해 명백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탈레반의 빠르고 용이한 카불의 입성은 바이든이 올바른 결정을 내렸음을 재확인할 뿐이며 이를 번복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프칸 정부군과 행정조직이 형편없이 붕괴된 사실은 카불 정부가 제 발로 자립할 수 있도록 미국이 주도하여 지원해야 한다는 전략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회의적 판단이 전적으로 옳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국제사회는 20년 가까이 수천 명의 인명피해와 더불어 수조 달러를 지출하면서, 알-카이다를 굴복시키고 탈레반을 격퇴하도록 아프칸 정부를 지원하고 조언하고 훈련을 시키면서 아프칸 정부군을 무장시켜 왔습니다. 또한 통치조직들을 받쳐 주면서 민간의 시민사회에도 투자를 하여 왔습니다.

그런 중에 상당한 진전도 있었지만, 이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탈레반의 빠른 진격에서 드러났듯이, 20년 간의 꾸준한 지원에도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아프칸의 통치조직을 만드는 데 실패했습니다.

실패한 배경에는 그러한 목표의 설정이 처음부터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프칸을 중앙집중식 단일국가로 만들려는 것은 애당초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이 나라가 지닌 산악지형, 인종의 복잡성, 부족 및 지역의 충성도는 지속적인 정치적 분열을 낳습니다. 서로에게 문제가 많은 이웃들과 외부의 간섭에 대한 적대감으로 인해, 제3국의 개입이 매우 위험했습니다.

이렇듯 피할 수 없는 상황은 아프칸을 서구적인 현대국가로 만들려는 모든 노력을 실패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달성할 수 없는 목표에 헛된 노력을 지속하는 일을 철회시키고 끝내려는 정치적으로 매우 힘들고 올바른 선택을 했습니다.

철수에 대한 결정은 한편에서는, 비록 미국이 추구한 국가의 건설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주요 전략적 목표인 아프간 영토에서 미국이나 동맹국에 대한 향후의 테러공격을 방지하는 일을 달성했다는 현실적 판단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알-카에다를 대대적으로 제거했으며, 아프칸에 있는 이슬람국가 IS의 조직이 아프칸을 넘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 공격을 수행할 능력이 없음을 확인한 것도 배경의 하나입니다.

그 동안 미국은 세계적으로 테러리즘과 싸우고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테러리스트 공격에 대한 미국토의 방어를 공동으로 강화하기 위하여 글로벌 파트너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오늘날 미국과 동맹국은 2001년 9월 11일보다 훨씬 강력한 테러의 목표물이 되었습니다만, 알-카에다는 2005년 런던폭탄 테러 이후 주목받을 해외공격을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탈레반이 다시는 알-카에다 혹은 이와 유사한 단체에 은신처를 전혀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탈레반의 조직은 스스로 규율을 제대로 지켜 왔으며 알-카에다와 같은 극렬한 단체들과의 파트너십을 다시 맺을 이유가 거의 없습니다. 탈레반은 또한 국제사회에서 정당성과 지지를 어느 정도 유지하기를 원할 것이며, 아마도 외국세력에 대한 테러공격을 기획하는 조직을 수용하려는 모든 유혹을 거부할 것입니다. 더욱이 이러한 그룹은 다른 지역(국가)에서 매우 쉽게 조직을 재편성할 수 있을 경우에, 구태여 아프칸에서 조직의 편성을 추구할 동기가 거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바이든이 아프칸에서 군사임무를 종료하기로 한 자신의 결정을 지킨 것이 옳았습니다. 그런 결정은 미국 유권자의 뜻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민주당 지지자이든 공화당 지지자이든 대부분의 미국 시민들은 중동의 “영원한 전쟁”에 대하여 인내심을 잃었습니다. 트럼프의 선거(재선될뻔한) 당시 방종적인 포퓰리즘으로 중동의 넓은 지역에서 미국이 과도하게 개입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것이 유권자들의 부정적인 반응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미국 노동자들 사이에서 경제상황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고 팬데믹의 엄청난 영향으로 악화된 현실상황에서, 미국의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세금이 아프칸의 칸다하르가 아닌 미국의 캔자스에 투입되기를 원합니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복원하려는 Biden 노력의 성공여부는 사실상 국내에 자원을 투입하는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 의회를 통과한 기반시설 및 사회정책의 예산안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중요한 단계입니다. 그러나 외교정책도 역시 중요합니다. 바이든이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을 추구하겠다고 약속할 때, 그는 이를 미국대중의 지지를 받는 국가외교정책의 브랜드로서 수행해야 합니다.

아프칸은 가까운 시일 안에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다행히 미국주도의 군사임무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안타깝지만 국제사회가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은 인도주의적으로 현재의 고통을 완화하고 아프칸인들이 평화롭고 안정적인 정치적 균형을 추구하면서 외교에서 타협과 자제를 모색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입니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on 21-08-16.

CHARLES A. KUPCHAN

연방의회 외교위원회의 선임연구원으로 역할을 하고 있으며 Georgetown University의 국제문제 교수이자 Isolationism: A History of America’s Efforts to Shield Self from the World 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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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연방의회 의원의 입법 활동서면 인터뷰>

연방의회 바이에른 아욱스부르크 지역구 의원 울리케 바르 (Ulrike Bahr, 사회민주당•SPD) 의원실 답변으로 본 독일 연방의회의 입법과 의원의 역할:
상임위원회 법안 검토보고 및 토의과정을 중심으로

작성자: 지역구 보좌관 크라취(Kratzsch)

 <각 교섭단체는 상임위원회별로 주제에 따라 검토보고 의원을 둔다>

 

1. 연방의회의 한 의원이 공약사안 등과 관련하여 야심적인 법안을 발의하고자 하는 것을 상정하였을 때, 이 과정에서 의원, 의원실, 의회공무원 등이 어떠한 역할로 어느 정도의 기여를 하는가?

답변:

a) 의원의 역할

바르 의원은 ‘가족위원회’(가족/노인/여성/청소년 위원회 약칭) 및 그 산하 ‘시민연대소위원회’ 상임위원이다. 추가로 보건위원회 및 가족위원회 산하 아동소위원회 대리위원이다(해당 상임위 및 소위 상임위원 궐석 시에 대리).

연방의회 의원들은 다양한 상임위 가운데 적절한 위원회에 배정받음으로써 전문정치가가 된다. 각 원내 교섭단체는 한 상임위 내에 전문 주제에 따라 각각 전문 검토보고 위원을 둔다. 바르 의원은 가족위원회에서 “아동‧청소년복지, 시민연대, 취약아동건강” 사안 등에 대한 전문검토 보고자이다.

법안이 연방의회에 발의되는 것과 관련하여 먼저 구분해야 할 것은, 누가 발의자이고 어느 상임위가 주관 상임위인가이다. 그러므로 바르 위원의 경우, 가족부가 주관상임위이고 해당법안이 바르 의원의 전문검토보고 분야에 해당하는가가 관건이 된다.

대부분의 연정교섭단체의 법안은 해당 부처에서 준비되고, 내각(국무회의)에서 의결되어 의회에 발의된다. 이어서 연정 교섭단체는 법안의 변경 여부에 대하여 토의를 한다. 의원발의법안은 사실상 야당의원들이 발의하는 것인데 의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바르 의원이 찬성한 동성혼인허용법(민법개정)”을 사례로 본 당과 의원의 역할을 보자면)

연방의회가 열리는 매주 사회민주당(SPD)은 의원 전원이 참석하는 의원총회를 개최한다. 여기에서 연방의회 본회의를 앞두고 논의될 법안과 의결될 법안에 대한 토의가 이루어진다. 당에는 연방의회의 각 상임위원회 구성에 상응하는 원내 교섭단체 워크그룹(Arbeitsgruppe/AG)이 존재한다. 각 워크그룹 대표는 여기에서 현안의 내용과 각 상임위원회의 토의 및 표결 결과에 대하여 설명을 한다.

이 과정에서 예컨대 바르 의원은 관련 상임위원회와 사회민주당 소관 워크그룹의 논증을 비교하여 어느 입장을 따를 것인지를 결정한다. 당의 표결 권고(당론)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각 의원은 여기에서 자기 당의 모든 의원과 최고위원회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개진할 수 있다. 표 분산을 막기 위해서 당론 구속이 존재하는데, 원내 교섭단체는 의원총회가 진행되는 동안에 해당 워크그룹 대표를 통해 소속의원들에게 표결권고(당론투표)를 전달한다. 하지만 의원들은 법적으로 이에 구속받지는 않는다.

매 상임위원회 회의가 있기 전에 당의 상임위원들은 소속 당 워크그룹과 만나, 상임위 회의에 대비한 논의를 한다. 검토보고자들은 상임위에서 토의될 사안에 대하여 정보를 제공하며, 여기서 의원들은 특정 사안이나 법안에 대한 토론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정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 당 소속 워크그룹이 상임위에서 법안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가 조율된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워크그룹이 스스로 이니셔티브를 주도하고자 하면 스스로 법안이나 의안을 작성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연정의 상황에 따라 연정파트너와 조율을 하고 각 교섭단체별 의결을 거쳐 상임위나 본회의에 회부되어야 한다.

검토보고자는 상임위에서 다른 교섭단체에 대하여 자기 교섭단체가 사안에 대하여 어떻게 결정하였는지에 대하여 설명한다. 예컨대 바르 의원의 검토보고 사안인 경우 바르 의원이 워크그룹 및 다른 동료의원과 원내 교섭단체의 제1 대화창구가 된다. 바르 의원은 검토보고에 충실을 기하기 위하여 유관 기관 및 활동가들과 수많은 면담을 진행한다. 물론 비판적 견해도 환영한다. 이로써 자신의 결정이 가능한 현실적이고 정의롭게 내려질 수 있도록 최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형성하기 위해서이다. 바르 의원은 교섭단체 내 워크그룹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판단과 평가 및 바람직한 수정사항 등을 다른 위원들에게 전달한다.

 

b) 각 의원의 보좌진

보좌진은 바르 의원을 위해 내용적인 작업을 한다. 문의사항에 대하여 리서치를 하고, (전문가) 소견을 청취하고, 간담회 일정을 준비하며 의원을 위한 현안보고서를 작성한다. 특정사안에 있어 불명확성이 존재하는 경우 바르 의원에게 완전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보좌진이 활용할 수 있는 거대한 정보원으로서 예컨대 연방의회학술서비스(입법지원실)와 연방통계청 등이 있다. 보좌진들은 다른 의원실로부터 정보를 입수하기도 하며 소속 당 보좌진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c) 정당의 전문위원

사회민주당 원내 교섭단체에는 각 상임위에 상응하는 워크그룹에 최소한 1명의 전문위원을 배치하고 있다. 전문위원은 의원들과 보좌진들을 응대하여 법안 제출 및 토의 과정에서 이들을 내용적으로 지원한다. 전문위원들은 워크그룹 대표들과 밀접하게 공조한다. 각 의원실의 업무가 전문위원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할 수 있다. 전문위원들은 다른 원내 교섭단체들, 특히 연정 파트너와의 회합을 주선하여, 법안의 논쟁 부분을 적시에 인지하고, 필요한 경우 의견 조율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주나 지자체 의원 보좌진과의 공조는 이루어지지 않는데, 이는 법이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민주당 당중심부도 사회민주당 원내 교섭단체와는 별도로 움직인다.

 

d) 연방의회 공무원

연방의회학술서비스(입법지원실)의 학술지원직(입법조사관)들은 현안들에 대한 정보를 중립적으로 의원들에게 제공한다. 이러한 작업은 단지 의원이나 의원실의 의뢰가 있는 경우에만 이루어진다. 이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각 의원실에 달려있다.

상임위원회를 위해 일하는 연방의회 직원들은 조직 관련 사무지원인력으로서 일한다. 이들은 의사규칙의 준수를 살피면서 회의록을 작성한다. 입법과정에는 내용적으로 일체 개입하지 못한다.

이와 달리 각 부처의 공무원들은 법안 작업을 하며 법안의 구성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들이 부처의 정치적 의지와 지시에 구속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법안 검토의원 아닌 다른 사람이 대리한다면, 그것은 의회라 할 수 없다>

 

2. 법안의 발의 및 상임위원회 토의 과정

a) 상임위원회 참석자: 상임위원회 위원

▪상임위 위원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 대리참석자가 지정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대리위원이 존재한다. 보좌진이나 입법조사관에 의한 대리는 불가능하다. 회의는 위원회가 선출한 위원장에 의해 진행된다. 위원장은 회의를 가능한 중립적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검토보고자는 각 원내교섭단체의 의원이며, 이들이 가장 먼저 법안과 의안에 대하여 발언을 한다.

▪연방의회 상임위원회 직원은 표결‧발언권이 없이 회의에 참석하여 회의진행을 지원하고 회의록을 작성한다.

▪연방정부 장관 및 차관 또는 부처의 대표단은 의원의 질문이 있는 경우 배석한다.

▪공청회 전문가는 해당 전문사안과 관련하여 초빙되어 의원들에게 해당 사안에 대하여 의견을 진술하고 질의응답을 한 후 해당 사안에 대한 토의가 끝나면 퇴장한다. 공개 공청회인 경우는 예외이지만, 일반적으로 상임위원회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연방의회학술서비스(입법지원실) 입법조사관의 경우, 미리 신청 등록을 한 경우 ‘등록된 게스트’로 상임위원회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허용되지만, 발언권은 주어지지 않는다.

 

b) 상임위원회 회의 진행

상임위원장에 의한 개회선언

▪의사일정의 소개

▪간사(일반적으로 워크그룹 대표)들이 회의 시작 전 진행일정에 대해 최종 합의: 당일 토의사항에 대한 연기라든지 표결 진행 등

▪검토보고자의 보고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의원의 직무이며, 입법조사관(전문위원)이 대신할 수 없다. 상임위 위원이 회의에 참석할 수 없는 경우, 반드시 대리위원을 지명하여야 한다.

 

c) 상임위 법안 토의 및 의결 과정

법안이 상임위에 도달하면 토의가 시작되는데, 각 원내 교섭단체의 입장을 표명하는 검토보고로부터 시작된다. 이어서 법안의 세부사항에 대한 토의가 이루어지며, 이는 연방의회 의사규칙이 정한 순서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진행된다. 모든 수정요청 사항은 위원회 다수결로 확인되어야 한다.

연정 원내 교섭단체들의 검토보고자들은 각 당 워크그룹 대표들과 때로는 부처 대표단과 회합을 갖고 위원회 표결을 준비하기 위하여 자체 검토보고자 회의를 갖는다. 종종 심야에 이르기까지 아주 오래 걸리는 토의과정에서 법안의 세부사항들이 연정 파트너들 사이에 조율되고 확정된다.

법안의 세부사항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면 위원회는 이에 대한 표결을 실시하며 본회의의결 권고안을 작성한다. 위원장은 결과를 접수한 후 직권으로 수정안을 본회의에 회부한다.

 

3. 법안발의자로서 본회의 의결과정에서 의원의 역할 여부?

사회민주당은 대연정 파트너이고 대부분의 법안은 각 부처에서 올라오며, 그 법안들의 토대는 연정협약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르 의원의 경우 소관 검토보고자로서의 지위에서 관련 법안에 대하여 코멘트를 하고 평가를 할 수 있다. 사전에 당 워크그룹에서 의견조율을 한 후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수정제안도 할 수 있다.

법안은 본회의에서 3회독을 거치며, 각 원내교섭단체가 본회의에서 법안에 대해 코멘트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이 역할을 (상임위) 검토보고자인 의원이 담당한다.

<이 글은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학모 연구위원이 2018년 9월 독일 연방의회 아욱스부르크 지역구 의원 울리케 바르 의원실에 보낸 질의에 대한 답변으로서 독일어 원문을 박학모 연구위원이 옮겼다.>

화, 2020/04/21-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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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달 동안 서양의 현대철학을 다시 리뷰하면서 발견한 것은 현대철학은 니체, 하이데거나 화이트헤드가 탐구해온 보편적 존재론과 포스트모더니즘(푸코, 라깡, 들레즈, 데리다 등),후기포스트모더니즘(알랭 바디우, 조르쥬 아감벤, 슬라보예 지젝 등)과 같은 사회철학, 문화철학 및 정치철학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슬라보예 지젝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철학, 문화철학과 정치철학은 모두 그 뿌리를 보편적 존재론을 실체론이 아니라 생성론에서 찾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이는 특히 니체의 생성철학과 하이데거의 실존철학 및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에 힘입은 바 크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보편적 존재론외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맑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및 소시에르,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에도 힘입은 바도 크다 할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덧붙여서 말하고 싶은 것은 서양철학은 시계열적으로 가족유사성을 띄고 있기에 현대철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이건 후기포스트모더니즘이건 반드시 그의 사상적 피상속인이 스승으로 존재하기에 그들 스승의 철학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현대 철학자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푸코, 들레즈와 데리다는 프랑스출신 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니체와 하이데거 철학의 계승자이기 때문에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해가 불가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새삼 그들의 사상의 역사적 폭과 깊이가 상상 이상으로 넓고 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오늘날 서양문명의 철학적 토대(자유, 평등, 박애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참여와 연대 등)가 만만치 않게 굳건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는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서구문명의 전통적 이념들이 최근 코로나 사태를 맞아 비상사태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서구 정신문명의 근원적인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도 제기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필자의 입장은 이러한 팬더믹은 서양 문명의 근본적 결함인 실체론적 존재론에서 기인하는 바도 있지만 도리어 산업화에 따른 독점자본주의, 국가자본주의 및 재벌독점자본주의와 그이 극단적 발현형태인 신자유주의의 모순에서 기인하는 것이 훨씬 크다할 것이며 이제는 자본주의 자체를 거부할 수 없다라는 체념으로 인해 심화된 산업화의 모순이 인간의 대응능력을 넘어서버릴 정도로 급격히 악화되버린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은 슬라보예 지젝의 지적과도 일치하는 것이기에 따라서 오늘날 마지막 현대철학자라는 칭호를 듣는 지젝의 철학을 일별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지젝의 철학적 태반으로 헤겔의 변증법과 칼 맑스의 이데올로기 이론과 라깡의 정신분석학을 들 수가 있습니다.

먼저 그는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정의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결코 들레즈를 비롯한 후대의 철학자들이 함부로 단정해버린 동일성 또는 통일성의 변증법이 아니라고 재해석하면서 헤겔은 시간성 속에서 변화와 운동을 일으키는 원리를 변증법으로 풀어보고자 한 것이지 결코 차이를 지양하고 배제하여 동일성으로 차이들을 해소해버리는 전체주의적인 철학자가 아니라고 강변하면서 그는 헤겔의 변증법을 새롭게 현대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독자적인 시각에서 ‘차이의 변증법’을 주장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헤겔은 칸트의 선험적 주체와 같은 독자적인 주체는 존재하지 아니하면 단지 주체는 타자와의 관계속에서만 자신의 존재의미를 갖게 된다고 보았기에 결국 주체와 타자 사이의 차이를 변증법을 통하여 해소시키고자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에 헤겔의 입장을 대체로 계승한 지젝은 타자를 주체의 결핍으로 보았으며 그러한 결핍의 타자를 통해, 즉 타자의 부정성과 차이성을 통해 즉자인 주체는 자신을 반성하게 되며 이후 타자의 부정을 재부정하는 재귀적 부정을 통하여 자신을 합정립synthese하게 되는데 여기서 타자는 결코 즉자로 흡수되거나 통일되어버리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지젝의 변증법은 동일성 또는 통일성이 아닌 타자(대자)를 영원히 차이로 인정하는 차이의 변증법으로 나아가게 되며 단지 차이의 타자로 인해 즉자인 주체는 한껏 고양된 재귀적 존재self-being로 다시 태어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를 우리 속담대로 해석하자면 ‘애들은 서로 싸우면서 큰다’라는 관점과 같다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즉자의 결핍을 내용으로 하는 대자인 타자를 통해 즉자는 자신의 존재의 결핍을 인식하고 반성을 하게 되며 이후 즉자는 자신을 재부정하면서 재귀적 존재로 고양되어가는 한편 영원한 차이인 대자는 자신의 존재를 즉자에 의해 지양되거나 억압받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고유한 부정성을 유지하며 존속하게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여 지젝은 즉자는 결핍과 차이인 대자를 통해 재귀적 존재로 고양되는 한편, 즉자는 차이로서의 대자(타자)를 억압하거나 지양하지 않고 즉자와 동등하게 등가적인 가치를 인정해주는 생성론의 세계관을 구축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그는 맑스의 이데올로기이론과 라깡의 정신분석학을 결합시키면서 그만의 독자적인 쥬이상스, 즉 향유의 이론을 전개시켜 나갑니다.

맑스는 이데올로기를 부르죠아의 허위의식이라고 규정하였는데 라캉은 프로이트의 생물학적 정신분석학을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 해석하면서 자아를 상상계, 상징계와 실재계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서 지젝은 맑스의 이데올로기이론을 상징계이론으로 재해석해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젝은 유아의 상상계를 거울단계로 해석하면서 소타자인 어머니를 자아로 착각하면서 자아는 이미 정신분열의 조짐을 보이는데 상징계에 이르러서는 프로이트의 아버지와 같은 대타자인 국가, 규범, 종교, 자본주의 등에 의해 주체가 수동적으로 사회화되는데 이중에서도 특히 자본주의의 자본이 만든 잉여욕망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인간의 주체가 결정적으로 형성되는데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결국은 자본이 만든 실상을 은폐한 거짓 환상에 불과하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즉, 자본이 만들어낸 잉여욕망의 이데올로기를 마치 욕망의 실상을 구현한 실재계인양 호도하고 왜곡하여 주체를 자본에 복종하는 노예로 전락시키고 있으며 결국 자본주의는 자신을 결코 전면에 드러내지 않은 채 국가, 종교, 문화, 예술 등 대타자 뒤에 숨어서 욕망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면서 인간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주인이 되고자 획책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하여 그는 무엇보다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지 않은 채 대타자들의 뒤에 숨어서 결코 자본주의 모순의 피해자들과의 전면전을 거부하는 자본의 교활한 책략에 봉사하는 잉여욕망의 이데올로기를 해체하는 작업을 빨리 시작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본은 항상 대타자들 뒤에 숨어버리기 때문에 자본주의 모순에 따른 피해자들(노동자, 무산자, 소수자등)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투쟁의식을 희석시키기 때문에 결코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혁명은 전략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지젝은 그렇다면 차선책으로 자본이 만든 상징계의 이데올로기만이라도 그 허상, 환상을 폭로하여 해체하자고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그는 실재계를 향한 향유, 즉 라깡의 쥬이상스enjoyment로서 죽음충동으로서의 향유를 제시하게 됩니다.

달리 설명하면 상징계의 이데올로기를 벗어나는 것은 주체에게는 일종의 기존 사회질서를 부정하는 자살행위와 같은 모험이기에 실재계를 찾아나서는 모험인 향유는 죽음충동이라고까지 표현한 것입니다.

결국 그는 생산양식으로서의 자본주의를 변혁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기존 상징계의 질서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법의 실현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향유를 주장한 것입니다.(이는 지젝이 맑스와는 달리 상부 구조가 하부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발터 벤야민의 이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능산적 주체는 단지 자본이 만든 잉여욕망의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 주체가 되어 스피노자의 능산적 욕망, 즉 코나투스Conatus가 만개한 실재계를 현실에 실현시킬 수 있는 향유와 차이의 변증법의 주인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한 것 입니다.

특히 그는 자본주의의 현대적 변형태인 신자유주의에 대해 엄청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그가 슬리브족 출신으로서 서구의 자유주의가 지나치게 개인주의와 결탁하면서 공동체의 연대와 공화주의를 해체하고 뷸평 등을 가속화시키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강화하는데 이바지 했다고 보았기에 이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허구성을 폭로하는데 앞장서 온 것입니다.

즉, 그는 신자유주의가 자유의 확장이 아니라 도리어 자유의 불평등을 확대, 심화시켰기 때문에 실질적인 자유의 평등을 실현하기위해서는 형식적 민주주의나 경제적 신자유주의를 배격하고 자본과 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전반적인 개입과 통제가 필요하다고 본 것으로 그 방법으로 코나투스로 가득한 실재계를 향한 향유를 제시한 것이며 대안으로 맑시즘과 기독교의 평등정신의 복원을 꿈꾸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그는 대타자에 의해 수동적으로 노예가 되도록 강요해온 자본의 잉여욕망의 이데올로기가 환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서 이를 해체하는 작업에 시민들이 새로운 인식론, 존재론과 변증법의 주체가 되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현실정치에도 앞장서서 직접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치철학은 평등을 강조한 나머지 자유주의 정신의 기틀마저 손상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하는 우려와 함께 존재의 욕망을 당위인 평등가치로 통제하는데 실패해온 역사적 경험을 반추해본다면 그의 정치철학 역시 윤리학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수, 2020/04/29-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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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단서를 앞서 최원식 교수의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이라는 구절에서부터 풀어가 보기로 하자. 남북연합이란 분단체제론에서 제기해온, 분단체제 극복과 변혁을 위한 핵심적인 방법론이다. 그런데 그 남북연합은 분단체제를 “상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분단체제론은 분단체제 부정론, 극복론, 변혁론이지만, 그 부정, 극복, 변혁을 위해서는 분단체제의 존재와 존속이 상정되어야 한다. 이러다 ‘분단체제’가 ‘분단체제 극복’의 과업 안에 포함돼 어느덧 그 일부가 되어버린다. 그러다 보니 분단체제론과 분단체제를 혼동하는 현상도 생겨난다. 결국 부정했던 대상을 인정하고 공존하게 되는 딜레마가 분단체제론 내부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를 ‘분단체제론의 곤경(딜레마)’이라 부르자.

그런데 최원식 교수가 보여주었듯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분단체제는 ‘분단된 남북을 연계시키는 불일불이의 상태’, 즉 그 자체가 “통일의 최종형태”가 될 수도 있는 상태로 격상되는 단계로 나갈 수도 있다. 부정의 대상이었던 분단체제가 소극적인 인정을 넘어 이제 적극적인 긍정의 대상으로 완전히 탈바꿈해버린다. 이것을 분단체제론의 역설(패러독스)이라 부르기로 하자. 이 분단체제론의 역설은 최 교수의 언급을 통해 그 순수한 형태를 드러냈지만, 그 역시 분단체제론의 이론 구조 안에 잠재해 있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애초부터 백 선생의 분단체제 개념 자체에 부정과 긍정의 2중 계기가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분단체제의 부정적 현상을 강조해왔지만 이는 오히려 부차적인 것이었고, 이론적으로 핵심적인 지점은 분단체제란 ‘둘이 아닌 하나의 체제’라는 발상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하나의 체제’라는 발상 속에는 ‘분단의식’ 또는 ‘반쪽국가의식’의 강렬한 ‘분단부정의 정언명령’이 ‘무의식적 금압’으로 깊이 깔려 있었던 것이고,(이 책, 37~46쪽) 그렇기 때문에 ‘한 민족이 이룬 두 개의 국가’, ‘두 개의 코리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는 양국체제론에 대해 그토록 강한 거부감을 보이게 된 것이다.

분단체제론에서 ‘분단체제’란 ‘하나’의 체제이기 때문에 ‘하나(분단체제)에서 하나(통일)로’ 갈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양국체제에 대한 반발의 근원이 있다. 양국체제론은 한반도 상태를 ‘하나’의 체제가 아니라 두 국가 상태라 하니, 이것은 애초부터 통일을 하지 말자는 것 아니냐고 단정해버린다. 너무나 단순한 이해가 아닐 수 없다. 하나가 되자면 우선 둘이 서로 인정을 해야 할 것 아닌가. 그것이 양국체제다. 그런데 그렇게 둘임을 서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하나가 되자고 하면 ‘먹느냐 먹히느냐’의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남북이 경쟁적으로 적대와 불신을 고조시켜왔던 체제가 분단체제였고, 그 분단체제가 통일을 가로막아왔던 것 아니냐고 묻는다. 그 장애물을 치우고 양국체제가 정착되어야만 통일로 가는 길이 열린다고 했다.

분단체제론은 비원(悲願)의 언어인 ‘분단’을 동시에 희원(希願)의 언어로도 사용하고 있다. 분단체제론에서 분단체제는 고통이자 동시에 희망이다. 그렇다 보니 분단체제론의 서술 속에서는 이렇게 한쪽으로는 비원과 고통 그리고 다른 쪽으로는 희원과 희망이라는 정반대의 가치와 정서가 ‘분단체제’라는 하나의 개념을 통해, 이때와 이 장소에서는 이 얼굴로, 저때와 저 장소에서는 저 얼굴로, 번갈아가며 널뛰기 하듯 나타난다. 분단체제론 측에서야 그것이야말로 ‘분단체제’의 양면성과 복합성의 전체상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 자부할지 모르겠지만,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는 분단체제가 도대체 이것인지 저것인지 자꾸만 헷갈리게 만드는 식자들의 악취미이거나 고질적인 병통이 아니냐고 항의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순전히 이론적으로만 보자면 무슨 악의나 악취미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고, 분단체제론에 내재한 곤경과 역설이 필연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일 뿐이다.

시간적으로 보면, 분단체제론을 처음 제기했던 90년대 초반에는 분단체제의 부정성에 대한 비판과 민중주도 분단극복의 운동성에 대한 강조가 논의의 표면을 압도하여 ‘하나의 체제로서의 분단체제’라는 이론적 핵심이 갖는 함의를 덮고 있었다. 그러다 1997년 「분단체제극복운동의 일상화를 위해」라는 글에서부터 분단체제의 부정적 파생 현상보다 ‘둘이 아닌 하나의 체제’로서 갖는 분단체제의 적극적 의미에 대한 인정이 강조되기 시작한다. 이는 1999년에 쓴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새 발상」에서 ‘과정으로서의 통일’과 ‘국가연합’에 대한 적극적 강조로 이어진다. 분단체제 상태에서 연합을 하다 어느 순간 문득 통일이 된다는 발상이다. 2005년에 쓴 「6·15 시대의 한반도와 동북아평화」에서도 둘이 아닌 하나의 체제로서의 남북 상태가 연방·연합제의 조건이 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기조는 이후 출간된 저서들에서 일관되게 유지되어 2012년의 「‘포용정책 2.0을 향하여」에서 종합된다. 그러다 2018년에 이르면 백 선생은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라는 말에 “과정으로서의 남북연합 건설”이라는 말까지 더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최 교수의 표현대로 ‘남북연합이 분단체제를 상정’하는 것이라면, ‘과정으로서의 남북연합 건설’이라는 말을 새로 도입하여 ‘불일불이의 분단체제 상태의 장기화’에 대한 적극적 인식을 한 단계 더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분단체제론 30년 궤적 속에서 분단체제는 그 30년간 흔들리고, 허물어지고, 해체되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불사의 존재가 되었다. 분단체제에 대한 백 선생 자신의 기왕의 표현을 통해서 그러하다. 먼저 2006년 출간된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의 머리말이다.

벌써 8년 전의 일이 되었지만, ‘흔들리는 분단체제’라는 책 제목을 달면서 당시로서는 약간의 모험심을 발휘했다. 분단체제가 안 흔들리면 어쩔 거냐는 주위의 은근한 귀띔도 없지 않았다 …… 지금 돌이켜 보면 — 이것이 이번 책의 주장 가운데 하나이기도 한데 — 한반도의 분단체제는 남북에서 그것을 받쳐주던 군사독재가 결정적인 타격을 입은 1987년 6월부터 이미 동요하기 시작했었다. 따라서 1997~1998년께 가서야 ‘흔들리는 분단체제’라는 제목을 생각해낸 나는 현실에 뒷북이나 치며 따라가는 지식인의 한 표본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그런 지식인들의 세계에서는 2000년 6월의 남북공동선언으로 ‘6·15 시대’가 열리기 이전에 분단체제의 흔들림을 공언했다는 점에서 얼마간 앞서간 형국이 되었다 …… 6·15 공동선언 이후의 세월 동안, 애초의 부푼 기대가 갖가지 난관으로 좌절을 겪는 가운데서도 남북관계가 꾸준히 진전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진작에 흔들리던 분단체제가 드디어 허물어지기 시작했으며 ‘6·15 시대’가 곧 분단체제의 해체기에 해당한다는 믿음을 굳히게 되었다.

그러나 분단체제는 이렇듯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고, 허물어져도 허물어지지 않고, 해체되어도 해체되지 않았다. 이렇게 글을 쓴 지 12년이 흘러 이제 촛불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2018년에도 백 선생에게 분단체제는 여전히 마찬가지다.

세월호 때나 탄핵행동 때 무작정 ‘가만있으라’던 권력자들은 몰락했고 그들의 노골적인 ‘좌파·종북’ 몰이는 자유한국당 내에서조차 신용을 잃었다. 그러나 분단체제는 반공수구세력보다 훨씬 뿌리가 깊고 신축자재한 것이어서 일반민중더러 ‘가만있으라’는 기득권층의 논리는 얼마든지 다른 형태로 재생될 수 있다.

과연 그토록 신축자재한 분단체제에 대응해야 하는 분단체제론 역시 최소한 그만큼은 신축자재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래야 분단체제를 극복·변혁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신축자재한 분단체제론이 본 2018년의 분단체제는 단순히 “일반민중더러 ‘가만있으라’는 기득권층의 논리”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다.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닌” 무엇이 되었다.

통일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러나 전쟁을 또 한번 하는 것보다는 지금 상황이 차라리 낫다 하는 게 거의 국민적인 합의사항이 돼버렸어요. 그게 분단체제의 한 기반이죠. 그러니까 분단체제라는 게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어쨌든 1953년부터 지금까지 전쟁이 다시 안 일어나고 살아왔으니까 세계의 다른 분쟁지역과 비교해보면 굉장히 행복한 편입니다. 아주 행복한 것은 아니고 그래도 상대적으로 다행스러운, 중동의 여러 지역이나 발칸반도 어디하고 비교하더라도요.

아무리 불만족한 현실이더라도 그래도 거기서 만족할 구석을 찾아내야만 하는 것이 인간이고 인간의 삶일 것이다. 현상 인정의 심리적 장치가 없다면 삶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렇듯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상에 ‘분단체제’라는 이름을 내거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분단체제’가 마치 ‘삶의 조건’, ‘인간 조건’ 수준으로 범박화되기도 하고, 동시에 초월화되기도 한다. ‘분단체제’란 민족 간의 참혹한 전쟁을 일으키고야 말았던 체제다. 전쟁 후의 평화도, ‘경제성장’도 항상 조마조마한 전쟁 위기의 칼끝에서 이뤄져야만 했던 체제였다. 분단체제란 바로 그러한 남과 북의 항상적 위기와 비정상 상태, 즉 영구적 비상 상태(permanent state of emergency)의 구조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체제가 “굉장히 행복한 편”이고, “상대적으로 다행스러운” 것이었다니. 도대체 분단체제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개념이 초점을 잃으면 모든 것이 될 수 있고, 모든 것이 되는 순간 무의미해진다.

결국 백 선생의 분단체제론에는 분단체제의 지속을 수동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고, 더 나아가 분단체제의 성격 자체에 긍정이 포함되기에 이르는 곤경과 역설의 싹이 내재되어 있었다. 이 곤경과 역설은 분단체제론에서 분단체제라는 개념이 2중의 모습을 띠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으로 부정의 대상이며, 다른 한편으로 긍정의 대상이 된다. 후자, 즉 긍정의 대상으로서의 분단체제는 ‘남북연합을 허용하게 해주는 조건으로서의 둘이 아닌 하나의 체제’라는 우회적인 표현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백 선생의 글 속에서는 그것이 직접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보다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분석에 들어가기에 앞서 백 선생의 분단체제론의 이론사적 위상을 먼저 짚어둘 필요가 있다. 이론에도 장강의 앞 물결 뒷 물결이 있고, 생애 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걸 보아야 이론의 전체 풍경을 볼 수 있다. 백 선생이 분단체제에 대한 단편적인 발상을 내놓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이라 하지만, 이론적인 구성을 갖춘 체계적 입론으로서 ‘분단체제론’을 처음 내놓은 것은 1992년 《창작과비평》 78호(겨울호)에 발표한 「분단체제의 인식을 위하여」였다. 이 시점은 묘하다. 소련·동구권의 붕괴로 동서 냉전이 종식된 이후이며, 그 여파로 한반도에서 분단 이래 최초로 열렸던 양국체제의 가능성이 내외의 ‘북한붕괴론 – 흡수통일론’ 유포 세력의 반격을 받아 급격하게 닫혀가는 시점이었다. 다시 말해, 당시는 분단체제가 그 절정을 지나 크게 흔들리던 위기의 시기였고, 그 위기는 분단체제가 붕괴하고 양국체제가 열리는 첫 계기로까지 발전했다. 그러나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의 전환을 완수해낼 내적 역량의 부족(주로 민주진영의 분열로 야기된 것)과 외적 조건의 한계(주로 미국의 대북정책이 강경일변도였던 점)로 인해, 그 가능성이 급격히 닫히고 있던 시점이었다. 아울러 이 시기는 동구권 붕괴와 87년 대선 패배 이후 야권과 운동권이 분열하고 약화되면서 80년대의 ‘사회구성체’ 논쟁을 비롯한 여러 혁명 이론들이 급속히 쇠퇴해가던 때이기도 했다.

위기와 혼란은 새로운 이론을 요청한다. 그러나 분단체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분단체제론이 등장했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더구나 이렇게 등장한 분단체제론은 뜻밖에도 분단체제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하위체제로서,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그러한 것처럼, 장기지속의 존재임을 설파했다. 80년대 ‘사구체 논쟁’이 러시아 혁명 이후 자본주의 – 사회주의 양대 진영의 대결논리와 그 연장인 반제국주의 – 민족해방투쟁의 혁명이론인 NLPDR(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의 양 측면(NL과 PD) 사이의 논쟁이었던 만큼, 자본주의 – 사회주의의 진영 대립이 붕괴된 새로운 상황에서 미래를 조망하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새로운 시각이 요청되던 때였다. 그런데 왜 다시 ‘장기 자본주의’이고 더구나 ‘장기 분단체제’인가?

자본주의 – 사회주의 양 진영의 대립, 즉 냉전의 붕괴는 단순히 사회주의(현실에 존재했던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를 알리는 신호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깊은 수준에서 세계사적 격변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은 소위 ‘아메리카 발견’으로부터 시작된 서구 자본주의적 근대의 긴 여정과 그 격발점이 된 ‘긴 유럽내전’, 그리고 그 유럽내전을 배경으로 한 유럽 – 서구의 세계지배의 역사가 비로소 종식되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러한 사실이 이제 서서히 학계를 중심으로 인정되고 확산되고 있지만, 분단체제론이 처음 모습을 보인 1990년대 초반에 이러한 인식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백 선생의 분단체제론이 크게 의지한 세계체제론자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도 2001년의 가히 묵시론적인 9·11 이후에야 (그가 500년 되었다고 본)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막장에 이르렀다는 것, 세계사는 미지의 새로운 단계(가지치기, bifurcation)로 접어들고 있다는 생각을 굳힐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새로운 단계가 자신의 입론인 근대 자본주의 세계체제론 자체에 대한 상당한 수정을 요구한다는 사실에는 여전히 인식이 미치지 못했다.

나는 백 선생의 분단체제론에 대한 비판에 앞서,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분단체제론이 처음 제기되었을 당시인 80년대 말~90년대 초반에 그토록 크게 변화했던 현실에 대한 완전한 조망을 가질 수 없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된다고 본다. ‘사구체 논쟁’의 주도자들 대부분이 이론적인 혼란과 좌절 속에서 물러나 앉는 상황에서 백 선생이 새로운 종합의 무거운 짐을 지려 했던 용기는 높이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아울러 그 이후 거의 30년 동안 담론의 확산을 넘어 ‘6·15 민족공동위’ 등 현실의 통일촉진운동의 주요 행위자의 하나로 적극적 역할을 해온 것 역시 그렇다. 이 글은 이러한 인식을 전제한다.

다만 공적과 함께 그러한 시대상황에서 나왔던 이론의 한계 역시 짚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2018년)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시대적 전환기다. 그런 작업 없이 미래는 정확히 포착되지 않는다. 분단체제론이 처음 제기된 1990년대 초반은 오늘날보다 더 큰 변화가 진행 중이었고, 당시의 현실과 미래는 오늘날보다 훨씬 더 불투명하고 불확실했다. 당시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이 처음 겪는, 어느 역사책에도 전례가 없는 새로운 상황이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분단체제론은 ‘길’을 제시해야 했는데, 이때 현실과 미래에 대한 탐색은 ‘인간의 조건’ 속에서 필연적으로 과거의 의상과 언어를 빌려 행해질 수밖에는 없었다. 이 또한 백 선생이 제기했던 분단체제론의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의상과 언어를 빌린다’는 말은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유명한 풍자적 언어이지만, 나는 결코 단순히 풍자적인 뜻으로 이 말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 말을 했던 때의 마르크스는 아직 젊었다. ‘빌린다’보다는 강물처럼 ‘잇는다’가 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것은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자연적 질서와 같다. 반드시 빌리고 이어갈 수밖에 없되, 또한 그것을 넘어서 가야 하는 것이 무거운 사명이다.

백 선생이 이었던 흐름의 하나는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이었다. 이 이론은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체제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며 (붕괴 이전부터) 이 체제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예견하고 있었다. 소련·동구권 붕괴 직후 이러한 세계체제론에 근거한 분단체제론이 나름의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소련 해체 이후 미국 중심의 일극주의적 세계질서는 세계체제론이 설파해온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전일성(專一性)을 입증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9·11 이후 이라크 전쟁의 실패, 그리고 연이은 금융 위기로 미국 일극주의는 급격히 막을 내렸다. 이후 세계는 명백하게 다극화로 가고 있으며, 자본주의적 전일성 대신 국가, 시장, 호혜 공동체가 다양하게 조합되는 ‘혼합체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어받을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앞 물결은 백 선생 자신이 그 가운데 있기도 했던 70년대 재야 민주화운동의 ‘분단시대론’과 ‘분단체제론’이었다. 엄혹한 냉전, 유신시대의 절정기에 제기된 이 견해들은 외세에 의해 강요된 분단이 안으로부터 이에 ‘상응하는’ 세력이 생기면서 ‘분단체제’로 발전했다고 보았다. 70년대 분단시대/체제론의 주요한 특징의 하나는 남과 북 모두의 정부·체제·국가에 대한 강한 불신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주도자들은 박정희 유신체제에 대한 반대투쟁을 이끌면서 투쟁의 궁극적 목표를 통일에 두고 있었는데, 그 통일이란 남과 북의 현존 체제, 국가를 부정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입장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남과 북의 기왕의 독재체제를 더욱 강화시키기 위한 공모(共謀)에 불과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냉전의 절정기에 남과 북 모두를 정당성 없는 ‘반쪽국가’(1971년 함석헌 선생의 표현으로는 “둘 다 가짜”)로 보는 것은 그 시대에는 그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두 개의 가짜’를 걷어내고 ‘민중의 힘’으로 하나의 진짜를 찾아내자는 것이 당시 재야운동권 분단체제 극복론의 논리요 정서였다. 70년대 재야 민주화론, 통일론이 한국 민주화운동에 커다란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하다. 그 논리와 정서는 모든 코리안에게 ‘무의식적 금압’으로 깊이 깔려 있던 ‘분단부정의 정언명령’의 강렬한 표현이었고, 백낙청 선생의 분단체제론은 그 흐름을 이었다. 그러나 ‘둘 다 가짜’라는 논리와 정서는 동서 냉전이 종식되고 남북 유엔 동시가입이 이뤄졌으며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어 분단체제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 이후에는 더 이상 자명한 명제일 수가 없었다.

필자가 양국체제론을 제기하게 된 것은 87년 이후 30년에 대한 뼈아픈 반성, 복기(復碁)의 결과였다. 그때는 촛불혁명 전이었고 상황은 암담했다. 우선 어찌하여 87년의 희망이 이렇게까지 어두운 지경으로 곤두박질쳤는지 그 이유를, 그 뿌리를 정확히 알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도달한 것이 한국 현대사에 ‘독재가 민주를 회수하는 마의 순환고리’가 30년 주기로 작동해왔다는 생각이었고, 그 ‘마의 순환고리’를 깨기 위해서는 반드시 ‘분단체제를 끝장내고 양국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던 촛불혁명이 일어났다. 이제 그 촛불혁명의 힘으로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의 전환’은 막연한 희망을 넘어 현실의 발판을 갖게 되었다. 그러한 ‘체제전환’이 이루어져야 촛불은 진정 혁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제기된 양국체제론에 대해 뜻밖에 창비 분단체제론 그룹이 그렇듯 강하게 반발해온 이유가 무엇일까? 문제제기의 전후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다만 양국체제론을 제기한 목적이 단지 창비 분단체제론을 비판하는 데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필자가 ‘잃어버린 30년’을 복기하면서 분단체제 – 분단체제극복의 논리가 ‘분단체제의 반복강박’의 일부가 되었다고 이야기했던 것은 맞다. 그러나 그 비판은 창비 분단체제론을 특정한 것이 아니라 87세대 운동권 일반, 아니 60~80년대에 형성된 민주화 운동권 일반의 분단극복 논리에 내재된 모순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런 논리로는 ‘마의 순환고리’를 깰 수 없었고, 그 결과 87년은 결국 다시 독재로 회수되고 말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 없이, 다만 창비 분단체제론을 비판했다는 사실 자체에 반발하고 있었다. 그 반발의 내용도 들여다보면 ‘분단체제’ 비판을 ‘분단체제론’ 비판과 등치하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애초부터 양국체제론 구상의 동기가 무슨 ‘창비 비판’에 있지도 않았고 분단체제와 분단체제론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만큼, 처음에는 그렇게 특이할 정도로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분명히 내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본지(本旨)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순한 오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반발의 배경에 필자와 창비 그룹 사이에 ‘분단체제’ 개념에 대해 매우 큰 이해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서서히 그리고 이제 분명히 알게 되었다. 양국체제론은 분단체제론과 마찬가지로 분단체제를 비판하며 이를 극복하자고 한다. 그런데도 양국체제론에 그렇듯 반발하는 이유는 실제로 ‘내가 생각하는 분단체제’와 ‘분단체제론이 생각하는 분단체제’가 실제로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읽어 보니 분단체제와 분단체제론은 분명 서로 구분이 안 되는 바 있다. 분단체제를 비판하고 극복하자고 시작한 분단체제론이 어느덧 분단체제와 동반(同伴)하자는 이론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 양국체제론의 핵심은 마의 순환고리를 끊자는 것이고, 마의 순환고리의 핵심에 분단체제가 있다. 따라서 양국체제론의 입장에서는 분단체제를 확실히 끝장내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분단체제론은 어느덧 분단체제와 적당히 공생하자는 주장이 되어버린 것인가. 분단체제론은 어느덧 ‘분단체제 현상유지론’이 되어버린 것인가. 그렇다면 정말 문제는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게 된다. 중대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를 차근차근 밝혀보기로 한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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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5/06-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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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후임은 누가 될 것인가. 오는 9월 독일은 연방하원 선거를 치르고 새로운 총리를 선출한다. 메르켈 총리가 소속된 집권 기독민주당(CDU·기민당)의 지지율이 여전히 높기 때문에 지난 1월 당 대표로 선출된 아르민 라셰트(60)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총리를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상황이 간단치만은 않다. 당 대표로 선출되고 총선에서 승리한다고 반드시 총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라셰트 대표의 인기가 그다지 높지 못하기 때문이다.

독일 슈피겔이 지난해 12월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정치인을 꼽는 질문에서 라셰트는 31%로 11위에 그쳤다. 독일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에 이어 가장 높은 지지율인 60%를 얻은 정치인은 기민당의 자매정당인 기독사회당(CSU·기사당) 마르쿠스 죄더 대표(바이에른주 총리)와 옌스 슈판 독일 보건장관이었다. 라셰트는 야당인 사회민주당(SPD·사민당) 총리 후보인 올라프 슐츠 재무장관(52%)과 같은 당 소속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51%)에도 지지율이 한참 미치지 못했다.

전통적으로 함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해 온 기민-기사 연합에서는 대체로 다수파인 기민당 내에서 총리 후보가 선출돼 왔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죄더 기사당 대표가 사실상 총리 선거 출마를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당 부대표로 선출된 슈판 보건장관 역시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지지세를 등에 업고 차기 총리 후보군으로 떠오르고 있다. 라셰트 대표는 대표 선출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총리 후보 결정과 관련해 “여론조사 결과가 중요하지만, 결정을 할 때 유일한 근거가 아니라는 점을 안다”며 선을 긋고 있다.

 

라셰트의 도전, 기회와 위협

라셰트는 1961년 2월 벨기에와 네덜란드 국경에서 가까운, 독일의 가장 서쪽에 있는 도시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아헨에서 태어났다. 양친 모두가 벨기에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가톨릭 신자이고 불어에 능숙하다. 아버지는 광부였다. 당 대표 출마 연설에서 그는 아버지가 광산 갱내에서 일하면서 동료들과 서로 믿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본과 뮌헨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1차 사법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이후 저널리즘을 공부했으며, 주로 언론인으로 일했다. 바이에른 방송의 본 특파원을 지내기도 했다. 가톨릭 신문의 편집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94년에 독일 연방 하원 의원에, 1999년에는 유럽 의회 의원에 당선됐다. 2005년에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정부 초대 세대·가족·여성·통합 장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특히 2017년 독일 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총리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전통적인 사민당의 텃밭이자 당시 메르켈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마르틴 슐츠 사민당 대표의 고향에서 승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라셰트는 메르켈 총리의 후계자로 불렸던 안네그레트 크람프 카렌바우어 전 기민당 대표가 지난해 초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연대 논란으로 사퇴하면서 당 대표에 나설 기회를 얻게 됐다. ‘차기 메르켈’로 불리던 바우어의 사퇴 이후 기민당은 지난해 4월 전당대회에서 대표를 선출하려 했으나 코로나19로 무기한 연기됐다. 당시 차기 총리 후보이자 대표로 유력하게 떠오른 인물은 프리드리히 메르츠였다. 보수 성향이 강하며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독일 경제를 다시 활성화시킬 거라는 기대를 받았다. 만약 그때 대표 선출을 했다면 라셰트가 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1년 사이 메르츠는 코로나19의 위험성을 부정하면서 당 대표 선거 연기가 자신이 대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폈고, 인기가 많이 하락했다. 해를 넘겨 올해 온라인으로 진행된 투표에서도 메르츠는 1위를 차지했다. 라셰트는 결선투표에서 이를 뒤집었다. 최종 단계에서 메르츠 당선 이후 혼란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 다시 메르켈을 비롯한 중도파 쪽으로 다시 표심이 기운 셈이다.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지난 3월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와 라인란트팔츠주 의회 선거에서 기민당이 역대 최저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패배했다. 이 두 곳의 선거는 올해 연방 하원 의원 선거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첫 시험대라는 점에서 여파가 컸다. 현직 주지사들의 인기에 따른 것이라며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도 있지만 최근 악재의 영향도 있었다. 기민당의 니콜라스 뢰벨 의원이 중국산 마스크 중개 수수료를 받은 혐의로 사퇴한 것이다. 게다가 미국, 영국에 비해 늦어지고 있는 독일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상황이 유권자들의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다. 라셰트 역시 선출된 뒤 두 달만에 당을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면서 차기 총리에 적합한지에 대한 의문도 조금씩 나오는 상황이다. 라셰트는 선거 결과에 대해 “기민당의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메르켈의 공백을 기민당이 어떻게 메울 수 있을지가 더 큰 문제다. 메르켈은 지난 15년 동안 유럽에서 독일의 위상을 높여왔다. 메르켈의 리더십 덕분에 오늘날의 유럽연합이 유지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민당의 현재 지지율 역시 ‘메르켈 보너스’라고 불릴 정도로 메르켈의 인기가 끼친 영향이 크다. 분석가들은 메르켈이 자리에서 물러날 경우 기민당의 인기가 약화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 최근 여론조사에 조금씩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기민당의 지지율 하락은 라셰트의 총리 도전에도 위협이 아닐 수 없다.

 

포스트 메르켈, 독일의 행보는 어디로

라셰트의 총리 선출 여부는 메르켈식 국정철학이 계속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언론에서는 라셰트를 ‘메르켈의 충신’(도이체벨레) ‘메르켈과 연속성을 가진 후보’(가디언)라고 표현하고 있다. 라셰트는 메르켈 총리와 공개적으로 논쟁을 벌인 적도 없으며, 늘 메르켈의 편에 섰다고 알려져 있다. 2015~2016년에 걸쳐 메르켈 총리가 백만 명 이상의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했을 때 기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심했지만, 라셰트는 끝까지 메르켈을 지지했다. 메르켈 역시 당 대표 선거에서 라셰트를 지지했다. 라셰트도 메르켈 정부에 대한 신뢰를 강조하며 당 대표 선출 이후 “총리의 국정 운영이 안정적으로 마무리되도록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라셰트는 ‘통합의 마이스터’라고 불린다. 중도 실용주의자로 알려져 있으며 기민당 내에서도 진보적인 편에 속한다. 다양성과 통합에서 독일이 얻는 이익이 많다는 메르켈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유럽의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서 미국과 나토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독일의 성공을 위해서는 러시아와 관계를 맺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러시아의 천연가스는 독일의 친환경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전환 정책의 보완재로서 중요하기도 하다. 메르켈 총리가 유지해 온 친중정책을 이어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라셰트 역시 독일 수출기업의 이익을 위해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 중국과의 가까운 관계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껄끄러운 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미국은 유럽연합이 최근 중국과 포괄적 투자협정을 체결한 일을 두고 불만을 품고 있다.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대중국봉쇄정책에 찬물을 끼얹은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협상을 주도한 것이 유럽연합 이사회 의장국인 독일이고, 메르켈 총리다. 라셰트 역시 친중, 친러 입장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라셰트는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천연가스 수송관 사업에 대해 “재고의 여지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미국은 이 사업이 자국 천연가스를 유럽에 판매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보고 반대하고 있다. 메르켈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각을 세워왔지만, 때맞춰 새로 출범한 미국 바이든 행정부로서도 메르켈의 행보를 답습할 것으로 보이는 라셰트가 달갑게 보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누가 총리가 되든 복잡한 국제 역학관계에서 독일의 운신 폭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한편으로 메르켈 시대가 끝나면서 그의 리더십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당 대표 선거에서도 라셰트를 비롯해 후보로 거론됐던 인물들이 ‘가톨릭에 법학 전공, 서독 노스트라인-베스트팔렌 출신 남성’이라는 점에서 과거 서독 시절로 회귀했다는 말도 나왔다. 동독 출신의 여성 과학자라는 배경을 가진 메르켈과는 어떤 식으로든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헤르프리트 뮝클러 독일 훔볼트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메르켈이 보여준 깊이 경청하고, 인내심과 중재력이 뛰어나며, 믿을 수 없는 수용능력을 지닌 리더십은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티모시 가튼 애쉬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메르켈의 퇴장은 독일 역사상 매우 좋은 시기의 끝”이라며 “메르켈은 우리가 경험한 가장 좋은 독일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잘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헝가리와 같은 사실상 독재 국가들에게 강한 면모를 보이지 못했고, 디지털/생태 전환에는 미온적이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기민당이 녹색당과 연합하게 되면 중국과 유럽의 신진 독재자들에게 강한 입장을 표시하면서 디지털/환경에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차기 연합의 형태가 차기 총리의 성향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녹색당은 기민당에 이어 지지율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참고자료

Wikipedia, Armin Laschet 인물정보 바로가기

[연합뉴스 2021.3.15.] 독일 포스트메르켈 선거개시…주의회 선거 2곳서 여당 패배 유력

[시사저널 2021.2.2.] 누가 라셰트를 ‘포스트 메르켈’이라 했나

[가디언 2021.3.15.] Questions over new CDU leader as Angela Merkel’s party slumps to defeats

[한겨레 2021.3.15.] 일 기민련, ‘메르켈 이후 선거 전초전’에서 뼈아픈 패배

[서울신문 2021.1.17.] 메르켈 떠나도 ‘메르켈 시대’

[경향신문 2021.1.17.] ‘포스트 메르켈’ 윤곽…라셰트, 여당 대표 선출

[조선일보 2021.1.18.] 獨 집권당 대표에 라셰트…’메르켈 후임’ 경쟁 본격화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1/18/2021011801949.html

[오피니언뉴스 2021.1.25.] 최수정의 유럽외교전 – 메르켈 보다 더 친러시아, 獨총리 후보 ‘라셰트’

[뉴욕타임스 2021.1.16.] A Step Toward a Post-Merkel World: Her Party Picks a New Leader — Again

[뉴욕타임스 2021.1.15.] Merkel’s Party to Choose New Leader, and Possible Successor as Chancellor

[연합뉴스 2021.1.23.] 라셰트 독일 기민당대표 “총리후보 결정, 여론조사에 의존 안해”

[연합뉴스 2021.1.18.] 홍콩매체 “독일 집권 기민당 새 대표 선출, 中에 긍정 신호”

[연합뉴스 2021.1.19.] 포스트 메르켈 체제 이끌 라셰트 기민당 대표…차기 총리 될까

[연합뉴스 2020.1.19.]포스트 메르켈 체제 이끌 라셰트 기민당 대표…차기 총리 될까

[문화일보 2021.1.26.] 라셰트 獨 기민당 대표 “노르트스트림-2 사업 재고 없다”

 

황경상

목, 2021/04/1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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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로베르토 M.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가 출간되었습니다.

‘시대의 예언자’ 혹은 ‘미래를 향한 메시아’로 불리는 웅거는 브라질 태생으로 하버드 법대를 다니며 비판법학 운동을 주도하면서 약관 29세에 종신교수직을 획득하고 이후 수많은 화제의 저술을 남기면서 국내에도 ‘주체의 각성’ ‘민주주의를 넘어’ ‘정치 3부작’ ‘진보의 대안’ 등이 번역 소개된 미국을 대표하는 현시대 최고의 지성입니다.

그는 현재의 산업체계를 ICT첨단기술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를 ‘지식경제의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실제로 ICT 첨단기술이 산업과 생활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켰지만, 2000년을 넘어서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산업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고 일부 집단이 소위 e-Flatform이라는 이름으로 독과점을 강화하고 경제운용의 성과를 독차지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약직과 비선형적 고용의 불안정이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웅거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첨단기술을 소수의 그룹이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狹域(프린지)의 폐쇄적 전위주의와 거대기업들이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해와 지위를 강화하는 유사적 전위주의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지식경제의 소명은 가장 선진화된 기술과 생산관행을 생활과 산업전반으로 확산하고 보편화시키는데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이를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르면서 이를 실현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세가지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인지적 교육적 요건 – 사회적 도덕적 요건 – 법적 제도적 요건.

이어서 웅거는 기존의 경제학인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고전경제학, 마샬과 빈-학파에 의해 주도된 한계(효용)학파와 미시경제, 그리고 이단이라는 표현으로 케인즈의 이론, 이후의 신자유주의와 이에 타협한 사민주의의 타락과 제3의 길 등을 모두 비판하면서 새로운 경제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는 아마도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못지않게 매우 난해하고 추상적인 저술입니다만, 기존의 논리와 관행에 갇혀 있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도전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른백년의 지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구매를 요청합니다. 책의 내용은 매주 한차례씩 20여 주에 걸쳐서 다른백년의 홈에 게재됩니다. 두손모아,

다른백년 이사장  이래경


우리는 현재 지식경제가 경제의 각 분야에서 섬과 프린지의 형태로 제약되어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흔히 지식경제와 그 가장 친숙한 형태(소수의 세계적인 거대기업들과 주변부의 신생기업들이 추진하는 첨단기술산업)를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한편으로는 규모와 상관없이 어떤 기업이 그 운영방식을 달리 변경하지 않으면서 지식경제의 제품과 서비스, 특히 컴퓨터와 기타 정보기술을 사용하여 복잡한 정보를 조직하고 업무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경우에도 우리는 지식경제와 그 제품 혹은 서비스를 혼동한다. 이러한 지식경제의 제품과 서비스의 사용이 새로운 생산방식의 잠재력 중 극히 일부를 포착할 뿐이라는 명백한 신호는 그러한 사용이 반짝했다가 곧 사라질 생산성의 일시적인 상승을 제공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그것은 1994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에서의 생산성의 일시적인 상승을 해명하는 데에 유용한 변화였다. 즉 정보관리를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고자 디지털 기술을 채택하는 흐름이 일회적인 상승을 낳았다.

우리는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참된 성격을 파악하려면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이 널리 보급되고 이러한 보급을 통해 심화되고 급진화되는 것을 상상해야만 한다.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은 넓고 다양한 경제활동 영역을 가로질러 펼쳐짐으로써 그 성격과 잠재력을 보여준다.

우선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지식경제는 생산활동의 수행에서 자본, 기술, 기술관련 역량 및 과학의 축적이다. 지식경제의 특징적인 이상은 제품과 기술뿐만 아니라 절차와 방법의 영구혁신(permanent innovation)에 있다. 지식경제는 특징적인 기술적 장비를 통해서 상품과 서비스의 또 다른 생산방법으로 그치기를 원하지 않는다. 지식경제는 자체적인 재발명을 지속하는 생산패러다임이 되기를 원한다. 우리는 이러한 지식경제의 이상이 의미하는 바를 우선적으로 경영, 조정, 생산의 좁은 수준에서, 이윽고 세 가지 더 심층적인 속성들에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성들은 지식경제를 지금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보급되고 급진화된 다음 존재할 수 있는 모습으로 기술한다.

경영과 생산 공학의 제약적이고 상대적으로 피상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지식경제는 대규모 생산과 ‘탈규격화’나 맞춤제작을 조화시키고, 생산계획의 일관성 및 추진력의 유지와 기업활동의 분산화를 조화시키는 관행이다. 이러한 성과들은 얼마나 많이 성취되는지에 따라 사소한 의미를 갖거나 혹은 중대한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기업 안에서 재산과 권력을 재편하지 않은 채 개인적 주도성과 팀워크를 위한 더 큰 여지를 노동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효율성의 부수적인 향상과 노동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전략을 재현할 수 있다. 혹은 이러한 성과들은 업무조직과 궁극적으로는 재산체제에서 누적적이고 중요한 변화의 일부를 구성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생산방식의 이러한 더 피상적인 특성들의 재현과 발전은 모두 내가 나중에 논의할 더 깊은 특성들의 진보에 따라 달라진다.

적층제조(3차원 프린터), 로봇 공학 및 더 일반적으로 유연하고 수리적으로 제어되는 기계도구는 가능한 변형을 탐구하면서 제품의 다각화를 가능하게 하고 또한 엄청난 다각화와 생산규모를 조합할 수 있게 한다. 생산활동과 실험과학 사이의 격차를 줄이는 다양한 능력을 동원하고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기술적인 역량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3차원 프린터는 사용자가 제품의 개념과 실현 사이에서 신속하고 부단히 움직이는 것과 구체화 과정에서의 발견에 비추어 개념을 수정하는 것을 허용한다. 인공지능은 기계가 우리 대신에 수행할 수 있는 일(아직 반복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영역으로 우리가 전진할 수 있도록 이미 반복 방법을 터득한 것이라면 기계의 도움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명료화함으로써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생산규모와 탐험적인 제품 차별화 및 변형과 조화시키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이 함께 작업하는 방식(기술적인 노동분업)을 변화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요체는 일관성과 추진력을 잃지 않고서 주도권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업무를 조직하든지 간에 개인이나 집단에 의한 분권적이고 재량적인 주도권의 장점들과 그러한 추진력과 일관성의 유지 사이에는 완전한 모순은 아닐지라도 녹록치 않은 긴장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지식경제의 방식은 현재의 고립된 형태에서도 이러한 긴장을 해소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를 완화시킨다.

지식경제의 한 가지 방식은 업무의 조직방법에 대한 포괄적인 재량을 누리는 작업반에게 업무를 할당하는 방식이다(예컨대, “도요타 생산방법”). 또 다른 방식은 이러한 팀들의 활동을 조정함으로써 작업반들과 반장들에 의한 생산계획의 협력적인 개발과 수정으로 중앙의 경영권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더 훌륭하게 개선의 기회를 확인하고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더 고차원적이고 더 유연한 형식을 낳는다.

기술만으로는 규모와 차별화의 결합 나아가 조정된 전진운동과 분산적인 주도권의 결합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한다. 기술의 사용은 작업방식에서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경제의 제도적 안배와 생산작업 참여자들의 교육과 문화에서 더 심층적인 변화 방향을 가리키는 관행과 태도로 밑받침되어야만 한다.

거의 무제한적인 제품 차별화 또는 맞춤제작과 규모의 결합은 자사제품의 수요를 외생적이고 불변적인 여건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신규수요, 신규소비자층, 신규시장의 창출을 추구하는 기업을 이해하고 발전시키는 방식을 전제한다. 상품과 서비스 등의 차별화에 대한 욕구는 소비자들이 새로운 선택지들에 대해 놀라워하고 대규모 시장 위한 제조업생산이 엘리트를 위한 장인생산의 특성을 일부 갖게 되며, 제조업과 서비스간의 구분이 붕괴됨으로써 탄력적일 수 있다. 선진적인 제조업은 서비스와 결부된 제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넓은 범위에서 결정(結晶)된 지적 서비스들로 구성된다.

분산적 주도권과 조정된 생산계획의 일관성 간의 화해는 업무조직에 대한 지휘통제 접근법과 양립할 수 없다. 그러한 화해는 기술적 노동분업의 성격(생산과정 참여자들의 협력방식)에서 변화를 요구한다. 감독역할과 집행역할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사라져야만 한다. 생산계획은 집행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수정되어야만 한다. 감독역할과 집행역할의 차이를 완화시키는 것은 모든 전문화된 집행역할들을 상대화하는 것을 동시에 요구할 것이다. 이와 같은 경직된 전문화는 개념의 수립과 집행 사이의 극명한 차이를 전제한다. 유동적인 내부 조직을 가진 작업반은 전문가를 대체한다. 기술적 노동분업의 성격에서 이러한 변화는 생산과 과학의 관계에서 더 심층적인 변화를 미리 보여준다.

경영과 생산 공학의 수준에서 다루어지는 국한된 지식경제의 외견상 피상적인 특징들은 결국 그렇게 피상적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한 특성들을 완전히 성취하려면 더 중요한 변화들이 요구된다. 그러한 변화들은 억압된 변혁적 잠재력의 존재를 암시한다.

지식경제가 경제 전반에 걸쳐서 입지를 구축하려면 지식경제는 고립된 전위 부문들에 제약되어 있는 대신에 지금으로서는 먼 장래의 약속에 불과한 권능들을 지속적으로 이행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선진적인 생산방식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어야만 할 것이다.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보급과 그 급진화는 불가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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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21/05/2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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