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9년 12월 4일 (수요일) ■ 대담 :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친일파 4389인의 기록 “깜짝 놀랄 의외의 인물, 왜?”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박정희 전 대통령, 장면 전 국무총리, 언론인 방응모, 김성수, 장지연. 음악가 안익태, 홍난파.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인물들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4000여 명의 친일 행적 인사들을 찾아 인명사전을 만들었습니다. 벌써 10년 전 일이죠. 친일 인사는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 인사를 비롯해 판·검사, 경찰, 언론인, 예술가 등 분야도 다양합니다. 개탄스러운 현실은 이 사전에 이름을 올린 친일 인사 가운데 68명은 여전히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는 것입니다. 갈 길이 먼 친일 청산과 친일인명사전 발간 10년의 성과,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이하 방학진)> 네, 반갑습니다. 방학진입니다.
◇ 이동형> 친일인명사전, 10년 됐다고 하는데요. 시작은 꽤 오래 전부터 기획됐죠?
◆ 방학진> 그렇습니다. 시작은 1991년도 민족문제연구소가 출범하면서부터 저희의 일성이 친일인명사전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이었으니까 그것으로 따지면 18년 만에 인명사전이 발간된 거죠.
◇ 이동형> 지금 보이는 라디오에 오신 분들은 친일인명사전을 볼 수 있는데, 총 세 권으로 구성됐습니다. 총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정희님께서 “친일인명사전, 가나다순입니까? 아니면 제일 나쁜 사람순입니까?” 이렇게 물으셨는데요.
◆ 방학진> 가나다순입니다. 아직 사전을 안 보셨군요.
◇ 이동형> 가나다순으로 세 권이 이렇게, 굉장히 방대한 양입니다. 이게 결국은 친일 행적이 어떤 것이냐, 그리고 그 자료는, 증거자료가 있어야 하니까요. 그런 것들을 나열한 것이죠?
◆ 방학진> 네, 보시면 인명 가장 아래 출전이 나오거든요. 이것은 평전이 아니라 사전이기 때문에 개인의 주관이 배제된, 아주 드라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전히 핵심이고, 그 출전이 없었다고 하면 저희가 줄소송을 당했겠죠.
◇ 이동형> 마곡주님께서 “지금 구입 가능합니까?”
◆ 방학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 이동형> 지금도 구입이 당연히 가능하고요. 이 책, 판매는 많이 됐습니까?
◆ 방학진> 영업비밀인데요. 공공도서관이나 대학도서관에는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요. 그다음에 뜻 있는 교육감님들이 학교 예산으로, 교육청 예산으로 보급한 곳은 있고. 또 보급 안 된 교육청도 꽤 있습니다.
◇ 이동형> 처음에는 이거 만든다고 했을 때 일반 대중들이 다 박수를 쳤는데, 발간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왜 그랬을까요?
◆ 방학진> 저희 민족문제연구소가 예나 지금이나 학술단체인데, 그래서 학술면에 언론에서 많이 나와야 하는데, 주로 정치면, 사회면에 많이 나옵니다. 연구영역을 자꾸 정치화 만들려고 하는 세력 때문에 민족연구문제소의 활동들을 정치 편향적이라고 하는 그런 덧씌우기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죠.
◇ 이동형> 소위 말하는 좌파 세력들이 우파를 공격하려고 만든 거 아니냐, 이런 논란이죠?
◆ 방학진> 그렇습니다.
◇ 이동형> 이거 처음에 국회 예산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 방학진> 처음에는 시민들 모금으로 하려고 하다가 그다음에 저희가 할 수 없는 영역들이 있었습니다. 인명사전을 만들기 위한 기초 예산들, 과거 신문, 잡지들을 사야 하고, 그런 것들을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그런 것들은 저희만이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대한민국의 근현대 연구자들에게 활용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 기초 조사사업으로 저희가 예산을 신청했는데, 그게 전액 삭감된 경우가 있었죠.5억 원 정도 예산을 상정했는데, 전액 삭감해서 한 푼도 못 받았는데요. 그것을 안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을 해주셨죠. 그것보다 더 많은 예산을 모금해주셨죠.
◇ 이동형> 예산 삭감해서 0원으로 만들어서 그것에 대해 분노한 시민들이 그러면 우리가 직접 모금을 해주겠다.
◆ 방학진> 국민이 만들자.
◇ 이동형>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등재된 인물이 4000여 명.
◆ 방학진> 4389명.
◇ 이동형> 가장 논란이 된 인물은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입니까?
◆ 방학진> 그렇습니다. 저희야 박정희 전 대통령은 4389명 중 한 명이고, 굳이 등급을 따지자면 특 A급은 아니라고 보는데, 오히려 박정희 대통령을 빼려고 하는 정치인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중요한 인물로 만들어버린 거죠.
◇ 이동형> 박 전 대통령은 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겁니까?
◆ 방학진> 친일인명사전은 각 분야별로 기준이 다르지만, 가장 관통하는 기준은 뭐냐면 친일의 적극성, 자발성, 다목성이 되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23살 문경초등학교 교사 시절에 일본 만주육군사관학교를 지원하죠. 혈서 지원. 이미 교사이기 때문에 군대를 안 가도 되는 면제사유이고, 이미 19이 넘었기 때문에 군대를 갈 수가 없는데, 혈서를 두 번이나 써서 일본의 사관학교에 입대한 그런 자발성, 적극성이 있기 때문에 등재되었습니다.
◇ 이동형> 기준 계급이 있지 않습니까?
◆ 방학진> 기본적으로 소위, 소위라고 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본인이 군대에 입대하려고 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계급이기 때문에. 지금 대한민국 소위와 비교하면 안 됩니다만, 엄청나게 높은 직위라고 할 수 있고요. 박정희 대통령이 혈서를 써서 군대 가겠다고 하는 시기는 1939년이기 때문에 중일전쟁 이후에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 전 영토가 전쟁통에 있는 상황에서 굳이 군대를 가겠다고 하는 그런 자발성, 적극성이 반영돼서 인명사전에 등재된 것이죠.
◇ 이동형> 그 혈서 논란이 있지 않았습니까?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혈서를 주장했는데 가짜다, 이렇게.
◆ 방학진> 조작이다, 라고 해서 많은 보수적인, 수구적인 인사들이 말씀을 하셨지만, 결국은 판결을 통해서 가짜 논란은 이미 종식됐죠.
◇ 이동형> 가짜가 아니고 진짜로 있었다. 관련 기사도 나왔고요.
◆ 방학진> 네, 그렇습니다.
◇ 이동형> 또 논란이 된 사람은 백선엽 장군인 것 같아요.
◆ 방학진> 지금 가장 핫한 인물이고, 최근에 주한미군 사령관이 백선엽 전 장군을 찾아가서 생일 축하, 셀카도 찍고 한 모양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현재 광복회장님이 분개하셨는데, 살아있는 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 중에 가장 고령이면서 가장 유명한 분이 백선엽이죠.
◇ 이동형> 백선엽 장군 같은 경우에는 만주군 중위. 거기다가 간도 특설대 복무했기 때문에.
◆ 방학진> 간도 특설대는 쉽게 말하면 이이제이죠. 조선인을 통해서 조선인 독립군을 때려잡아야 한다고 하는 특수부대이고요. 아주 잔악하고, 행위가 악질적이기 때문에 그 당시 조선인들뿐만 아니라 중국인들도 대단히 두려움에 떨었던 부대죠.
◇ 이동형> 이 간도 특설대가 일제가 패망하기 전까지 108차례 작전을 벌여서 항일 무장세력과 민간인을 172명 이상 살해했으며 많은 사람을 체포하거나 강간, 약탈, 고문했다. 그리고 백선엽 장군 본인도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와 같은 과거에 대해서 스스로 쓴 글이 있지 않습니까?
◆ 방학진> 있었고요. 어쩔 수 없다고 표현했습니다.
◇ 이동형> 이 부분도 논란이 될 수 없다고 보시는 거고. 의외의 친일파도 있습니까?
◆ 방학진> 개인적으로는 그런 게 있었을 것 같아요. 친일파는 DNA 자체가 친일파의 DNA가 있을 것이다, 라고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고요. 어떤 인물은 독립운동가의 동생이 친일파인 경우, 또는 그 반대인 경우. 또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인데, 아들이 친일파인 경우, 또 그 반대인 경우. 보니까 역시 친일의 문제는 개인의 판단의 문제이고, 개인의 사회적 책임이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생각이 듭니다.
◇ 이동형> 장지연 같은 경우에는 우리 학교 다닐 때 시일야방성대곡, 독립운동가로 배웠는데요.
◆ 방학진> 그렇습니다. 장지연 같은 경우에는 많은 분들이 충격을 받았죠.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고, 장지연 이름을 딴 언론상도 오랫동안 있었는데요. 그분이 시일야방성대곡을 발표한 이후에 변절하게 되고, 그 변절의 증거가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고요. 그 후손들이 가처분 신청을 했어요, 법원에. 그렇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수록이 되어 있는 인물입니다.
◇ 이동형> 성훈님께서 “혹시 사전에 후손이 누군지도 나오나요?”
◆ 방학진> 그런 것은 저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아까 말씀드렸듯이 어떤 인물이 독립운동가이지만, 그 독립운동가의 동생은 또 친일파인 경우도 있고요.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기 때문에 친일의 문제, 역사의 문제를 가족의 문제, 혈통의 문제로 연관시키는 것은 오히려 피해야 할, 연좌제를 범할 수 있는 우려가 있습니다.
◇ 이동형> 과거에 소위 말하는 빨갱이 활동을 했다. 그러면 그 자식도 연좌제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죠.
◆ 방학진> 그것을 피하자고 하는 것이 저희의 목적이니까요.
◇ 이동형>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후손이 누구인지 나오지 않는다. 아까 말한 것처럼 굉장히 드라이하게 적혀 있는 것이죠.
◆ 방학진> 그렇습니다.
◇ 이동형> 친일활동을 어떻게 했고, 나중에 해방 후에 활동은 어떻게 했고, 이 정도로 나와 있는 겁니다. 정치인, 언론인, 예술인. 법조인도 상당 부분 들어갔습니다.
◆ 방학진> 네. 전체 법조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많지 않지만 그 인명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대단히 한국 사회에서 많은 족적을, 어떻게 보면 악명을 남긴 분들인데요. 대표적으로 민복기 대법관하고, 홍진기 장관을 꼽을 수 있는데. 민복기는 아시겠지만 일제 때 판사였고, 해방 이후에 인혁당 사건의 장본인 아니겠습니까? 대법원 판결을 내릴 때 대법원장이었고요. 홍진기 씨는 4.19 당시에 내무부 장관으로서 3.15 부정선거에 앞장 선 분이고, 그로 인해서 혁명 재판소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분인데, 복권이 돼서 나중에 중앙방송, 지금 JTBC, 중앙일보, 이것을 설립하고, 그 공로인지 모르겠지만 죽기 전에 국가에서 금관문화훈장까지 받았습니다.
◇ 이동형>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파 가운데 국립묘지에 안장된 인물들도, 아까 제가 68명이라고 이야기했는데요. 맞습니까?
◆ 방학진> 그동안 저희가 63명설, 65명설이 있었는데요. 이번에 저희가 인명사전 발간 10주년을 맞아서 다시 한 번 정밀하게 조사를 해봤더니 68명이었습니다. 서울에 35명, 대전에 33명인데요. 그중에서 특이한 것이 서울에 장군 제2묘역에 가면 6명의 장군들이 안장되어 있는데, 그 6명 중에서 3명이, 신태영, 이응준, 임충식, 3명이 친일인명사전에 임명된 분입니다.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국민들에게 동작동 국립묘지, 특히 장군 묘지에 이 묘역을 꼭 가보시라고 전해주고 싶어요. 저도 가보고 깜짝 놀랐는데, 가장 좋은 명당자리이고, 다른 장군 묘역은 수백 명의 장군이 안장되어 있는데, 여기는 딱 여섯 분만 안장되어 있습니다. 그분들 위해서 내려다 본 위치가 바로 임정요인 묘역이에요. 바로 임정요인 묘역을 발 아래로 내려 보고 있는 그곳에 있는 것이죠.
◇ 이동형> 지금 장군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김창룡, 김백일 같은 경우에는 친일 행적은 당연한 것이고, 훗날에는 독재에 부역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이거 어떻게 우리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쳐야 합니까?
◆ 방학진> 이런 현실을 빨리 우리가 개선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법 개정을 할 수밖에 없는데요. 현재 이 68명의 친일파들을 국립묘지에서 이장하려면 유가족의 동의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제 법 개정을 통해서 유가족 동의 없이 직권으로, 정부가 스스로 직권으로 이장하는 그런 법이 매 국회 때마다 발의는 됩니다만,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그다음에 특정 정치 세력의 반대 때문에 이 법 개정이 여전히 안 되고 있습니다.
◇ 이동형> 우리가 지난번에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 분들을 모시고 방송도 했었는데, 그분들에게 간첩이 아닌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넣고 고문을 자행하고, 죄 없는 사람을 사형시키고, 또 감옥에 보내고, 그 사람들이 나중에 훈장 받았거든요, 다들?
◆ 방학진> 제가 조금 전에 홍진기 씨에 대해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홍진기는 일제 때 판사로서 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고, 3.15 부정선거 당시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는데, 언론문화창달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마 중앙일보를 만들고, TBC를 만들었다고 하는 그런 명분으로 국가로부터 금관문화훈장을 받습니다. 그런 훈장을 취소하는 문제도 많은 국민들이, 저희가 이번에 여론조사를 했거든요. 10주년을 맞아서 많은 국민들이 그 지점에서 많이 분노하고 계셨습니다.
◇ 이동형> 일제에 부역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들에게 훈장을 줄 수 있느냐.
◆ 방학진> 그렇습니다.
◇ 이동형> 또 민주주의를 반대하고, 독재에 부역한 사람에게 훈장을 줄 수가 있느냐. 그런데 훈장은 추서가 되어 있고, 그것을 박탈하는 것은 힘들고, 이런 차원이네요?
◆ 방학진> 훈장을 준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생애를 국민들에게 모범으로 삼아서 배우라고 하는 것인데, 정말 그분들이, 친일파들이 정말 배울 점이 있는 것인지. 정말 모순적인 행태라고 할 수 있는 거죠.
◇ 이동형> 우리가 사과하지 않은 일본을 상대로 해서 계속해서 주장하는 게 독일한테 배워라,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도 독일한테 배울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반나치법, 혹은 독일 같은 경우는 나치를 옹호하거나 이러면 정말 큰일 나잖아요?
◆ 방학진> 네, 과거에는 김완섭이라든지, ‘친일파를 위한 변명,’ 그다음에 세종대학교 박유하 교수, 이런 분들이 친일을 옹호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폄훼했을 때는 그냥 학계의 논쟁으로 이길 수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 단계를 넘어섰거든요. 우리가 ‘반종족주의’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분들이 더 이상은 학계 토론회에서 하는 문제가 아니고, 형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고. 이번에 저희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70%가 이분들은 형사처벌을 해야 한다, 라는 것이고. 독일의 경우에는 독일 형법 86조와 86조 A항이 바로 그런 해당 조항이 되거든요. 나치를 찬양한다든지, 옹호한다든지 하는 것은 가차 없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바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됩니다. 이런 법을 만들자고 하는 것을 광복회가 열심히 추진하고 있는데요. 지금 김원웅 광복회장께서 친일 미화 금지법을 내년 총선 때 주요한 화두로 만들어야겠다, 이런 입장을 강하게 가지고 계십니다.
◇ 이동형> 친일 잔재도 여전히 여러 곳에 남아 있습니다.
◆ 방학진> 친일 잔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보이는 친일 잔재와 보이지 않는 친일 잔재가 있을 텐데요. 일단 보이는 친일 잔재부터 우리가 솎아낼 필요가 있는데, 그러려면 전수조사가 필요하거든요. 전국적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다 조사할 수 없기 때문에 해당 지자체, 특히 광주광역시가 가장 모범이고요. 그다음에 경기도, 충남, 이런 곳이 선도적으로 그 지역 내에 있는 보이는 친일 잔재를 조사하려고 하고 있고, 거기에 민족문제연구소가 열심히 돕고 있습니다.
◇ 이동형> 안익태 작곡가의 애국가는 계속 불러야 하느냐, 이런 논란도 있습니다만, 보수 진영에서 이거는 강력 반발하고 있는 부분인 것 같긴 합니다.
◆ 방학진> 이건 민감한 부분이기는 한데요. 그렇지만 안익태의 애국가 문제는 오랫동안 표절 시비, 또는 작곡가 안익태의 친나치 시비가 오랫동안 돼왔기 때문에 이것을 부른다, 부르지 말자고 하는 결론부터 내지 말고, 안익태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 친나치 행적에 대해서 공론회장을 만들어서 계속 토론하는 게 중요하겠다. 여기서 멀지 않은 숭실대학교에 가면 음악대학교 이름이 안익태 기념관이거든요. 그러면 안익태 기념관이라고 하는 음악대학이 있는 숭실대학교 그 기념관 내에서 안익태의 이런 문제, 애국가, 논란이 되는 문제를 공동으로 연구하고, 토론하고, 우리가 정치 영역이 아닌 순수한 학술의 영역에서 토론이 지속적으로 됐으면 좋겠습니다.
◇ 이동형> 네, 학술 영역에서의 토론이 중요한 것이죠. 아까 훈장 이야기도 했습니다만, 이종찬. 일본군 공병소자로 근무했는데, 일본군 최고 영예 금치훈장을 받았습니다. 이종찬이 유일하게 조선인으로서 받은 일본군 최고 훈장인데요. 이 사람도 지금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단 말이죠.
◆ 방학진> 네, 국립묘지에 되어 있고요. 지금 아까 말씀드렸던 장군 2묘역, 6명 중 3명은 제가 설명을 드리면 이응준, 그다음에 신태영, 임충식인데요. 임충식은 간도 특설 때 멤버이고, 그다음에 해방 이후에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고요. 이응준의 경우에는 초대 육군 참모총장으로서 육군을 세팅한 사람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분이 무슨 말을 하냐면 이런 말을 합니다. 조선 청년에게 가장 큰 꿈이 있다면 천황폐화를 위해 죽는 것이다, 이런 발언을 하고요. 그다음에 신태영의 경우에는 군인으로 첫 번째 목표는 바로 야스쿠니 신사에 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 군인으로서 죽는다고 하는 것은 죽는 것이 아니라 야스쿠니 신사의 신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라고 하기 때문에 그런 죽음을 선동했던 그런 분들이 장군 2묘역에 3명이나 안장되어 있는데, 가서 비문을 보면 더군다나 기가 차는데요. 애국 일념으로 일평생을 사셨다, 이런 식의 그런 비문이 여전히 쓰여 있죠.
◇ 이동형> 간도 특설대, 또 만주군에 복무했던, 일본 육사에 복무했던, 이런 사람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나중에는 다 국회의원도 하고, 국가재건최고회의, 또 장군도 하고요. 천수를 누리면서 훈장도 타고, 이러면서 살았단 말이죠.
◆ 방학진> 그렇습니다. 내년이 한국광복군 창설 80주년입니다. 광복군 총사령관인 지청천 장군이 바로 장군 2묘역에 있는 이응준, 임충식, 신태영의 발아래 묻혀 계세요.
◇ 이동형> 그래요. 그런 게 참 안타깝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텐데요. 그런데 이게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우리가 문제제기를 했고, 논쟁이 됐고, 논란이 됐습니다만, 여전히 바로 잡아지지 않는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 방학진> 그렇지만 사실 저희가 이번에 여론조사를 하면서 많이 느꼈던 것은 많은 국민들이 여전히 친일 문제가 청산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 그다음에 친일 문제가 단순히 사회적 논란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통합의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하는 것이 70% 가까이 답이 나왔기 때문에요. 많은 국민들은 그 해답을 이미 알고 있다. 이렇게 기대해보고 있습니다.
◇ 이동형> 그리고 친일 논란이 있었던 인물들은 어쨌든 대부분 지금 사망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 사람들을 다시 잡아다가 처벌을 하자, 이런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것을 기록으로라도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야 후대에 떳떳한 선대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은 이념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보입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방학진 실장하고 이야기는 여기까지 들을게요. 수고하셨습니다.
◆ 방학진> 네, 고맙습니다.
* 인터뷰 중 언급된 여론조사는 민족문제연구소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1월 1일~4일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무작위 추출 웹조사를 통해 설문조사한 결과입니다. 응답률은 12.8%, 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p였습니다.
일 사과 없이 위로금만…소 취하 조건 ‘승소 예상 피해지’ 지급 기준도 모호 피해자들 “졸속 입법 말라” 반발
대전 지역 시민단체가 9일 오전 대전시 서구 둔산동 강제노역 노동자상 앞에서 ‘문희상 안’ 즉각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희상 국회의장이 한·일 기업 기부금과 국민들의 자발적 성금으로 재단을 만들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위자료(위로금)를 지급하는 이른바 ‘문희상안’을 이번주 발의할 예정이다. 법원에서 승소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에도, 23~24일 한·중·일 정상회의 기간 개최를 조율 중인 한-일 정상회담에 맞춰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문희상안’은 일본의 사과와 책임이 빠진 가운데 피해자들이 소송을 포기해야 위자료(위로금)를 받을 수 있는 구조여서, 20년의 법적 투쟁의 결실인 한국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할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피해자 22만여명 중 ‘소송 관련’ 일부만 지원을 받을 수 있어 형평성 논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문 의장이 법안 발의를 서두르는 것은 한-일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일본이 대한국 수출규제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에 나서는 것을 조건으로 지난달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가 연기되었지만, 양국 갈등의 핵심 쟁점인 ‘강제동원’이 해결돼야 한-일 관계가 전환점을 맞을 수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한·일 정상이 논의할 때 ‘문희상안’이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며 “일본의 사죄를 명문화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양국이 화해의 계기를 만드는 ‘문재인-아베’ 선언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일 관계가 개선되면 양국 기업 기부금, 국민 성금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 의장은 강제동원과 관련해 두개의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핵심적으로 추진하는 ‘기억·화해·미래재단법’(재단법) 제정안과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강제동원 특별법) 개정안이다. 애초 강제동원 특별법 개정안 하나로 ‘문희상안’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소송 피해자’에 맞춰 아예 새로운 법을 만들기로 했다.
지원 대상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이미 집행력이 생긴 국외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재판에서 승소가 예상되는 피해자와 유족들이다. 현재 소송에 나선 피해자들은 1천여명 정도인데 이 가운데 700~800여명의 소송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의장실 관계자는 “소송 중이거나 앞으로 소송을 준비하는 피해자 모두 대상이다. 소송에 들어간 피해자는 소송을 포기하고 신청하면 된다”며 “재단에서 심사를 거쳐 위자료를 지급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재판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 문제도 있어 ‘소송 포기’를 놓고 피해자들 사이에서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또 ‘문희상안’에 동의하지 않는 피해자들이 소송을 유지할 경우 일본 기업 현금화 문제 등은 여전히 남게 돼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위자료 심사와 지급을 놓고도 형평성 논란이 예상된다. 미쓰비시중공업 소송 등을 대리하고 있는 이상갑 변호사는 “이미 법에 따라 정부로부터 피해자로 인정받았는데, 또다시 심사를 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특히 일부 소송 관련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은 평등권 침해”라고 비판했다.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강제동원 피해자만 21만8639명이다. 노무자가 14만8961명, 군인 3만2857명, 군무원 3만6702명, 위안부 등 기타가 119명이다. ‘승소가 예상되는 피해자’ 등 지급 기준도 애매하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은 “그동안 지원이 미비해 피해자들 사이에서 위자료는 굉장히 예민한 문제다. 모호한 기준으로 선별해 지원할 경우 새로운 법적 분쟁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단을 놓고 ‘세금 낭비’란 비판도 피해 가기 힘들다. 현재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이 있는데, ‘문희상안’이 통과되면 별도로 ‘기억·화해·미래재단’이 생긴다. 강제동원 관련 재단이 두 개가 되는 셈이다. 의장실 관계자는 “위자료 지급 등이 있어 당분간 별도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 나중엔 어떻게 해야할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의장은 재단법과 함께 강제동원 특별법 개정안도 준비 중이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강제동원 법안을 병합해 개정안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군인·군무원 지원과 2015년 없어진 강제동원 조사위원회를 다시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 조직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고, 군인·군속 지원에 상당한 재정이 들어가야 하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불투명해 사실상 ‘구색맞추기’라는 지적이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강제동원 문제는 졸속으로 처리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라며 “지금이라도 입법을 중단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을 거쳐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21일, 시민단체가 제작한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2013년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내렸던 법정제재는 위법하다고 최종 판결했습니다. 이번 판결은 현행 방송 공정성 심의제도를 개혁할 필요성과 더불어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를 재정립할 계기가 마련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대법원은 현행 심의제도가 정치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했으며 급변한 미디어 환경을 반영하지 못한 공정성 조항으로 방송의 실질적인 균형성을 판단하지 못할 것이라 우려했습니다. 그러한 제도 때문에 2013년, <백년전쟁>에 부당한 제재가 결정됐다는 겁니다. 대법관 단 1명 차이로 판결이 결정됐다는 점에서 그러한 쟁점이 현재도 치열한 토론의 대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론 자유의 또 다른 당사자인 조선일본는 그러한 의미와 가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여전히 반공 군사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는 ‘백년전쟁’이 이승만‧박정희를 뭐라고 욕했는지에 분노하며 비난을 퍼붓기에 바쁜 모양새입니다.
조선일보는 판결 직후인 22일부터 29일까지 7건의 보도를 냈는데(지면 기준) 모두 대법원 판결을 ‘좌파 사관’이라고 비난하는 내용입니다. <이승만·박정희 비방다큐 ‘백년전쟁’…김명수 사법부의 면죄부, 1·2심의 제재 판결 대법원이 뒤집었다>, <정권 정치 기구 된 대법원과 교육청>, <이승만은 악질 친일파, 박정희는 스네이크박 친일인명사전 만든 민족문제연구소 제작>, <백년전쟁 문제없다 대법관 7명 중 6명 문정부서 임명>(11월22일), <만물상-백년전쟁과 대법원>(11월23일), <백년전쟁 판결, 독이 든 사관을 대법원이 인정해준 것>(11월26일), <고 김일영 교수, 한국 현대사를 건국과 부국의 역사로 규명해 좌파 사관 극복>(11월28일) 등 제목만 봐도 대법원이 문재인 정권의 기구로 전략했다거나 잘못된 좌파 사관을 인정했다는 적나라한 공세가 나타납니다.
이승만‧박정희에 대한 조선일보의 순애보가 두 눈을 가렸다.
재판의 발단이 된 2013년 방통심의위 심의 당시 새누리당 측 위원들은 이승만‧박정희 두 역사적 인물에 대한 다양한 평가, <백년전쟁>이 제시한 여러 사료 등 근거와 관련 없이 정치적 비난을 퍼부은 바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거기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조선일보 <‘백년전쟁’ 판결, 독이 든 史觀을 대법원이 인정해준 것>(11월26일)은 박근혜 정부 당시 이른바 ‘뉴라이트 학자’로서 KBS 이사장까지 역임했던 이인호 씨를 인터뷰했는데 이 씨의 주장을 제목으로 인용하면서 따옴표 처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 판결이 “독이 든 사관”이라는 한 개인의 판단을 마치 사실처럼 적시한 셈입니다. <만물상-백년전쟁과 대법원>(11월23일)은 “좌파 단체가 만든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은 오로지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욕보이고 조롱하려고 제작한 영상물”, “‘백년전쟁’이 대한민국 역사를 능멸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그들의 조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년전쟁’은 대한민국에 대한 선전포고” 등 원색적인 비난, 케케묵은 색깔론으로 일관했습니다. <‘백년전쟁 판결’ 뒤집은 대법관 7명 중 6명, 文정부서 임명>(11월21일)의 경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진보로 기운 대법원의 성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판결이라는 평가”를 내세워 대법원 역시 이념으로 재단했는데, 어째서 ‘진보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안철상‧이동원 대법관은 ‘백년전쟁’ 제재가 정당하다며 소수의견으로 갔는지, 어째서 ‘보수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김재형 대법관은 제재가 부당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는지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 지난 11월23일 조선일보 오피니언면에 실린 ‘만물상-백년전쟁과 대법원’
대통령 바뀌어서 나라가 흔들린다? 부실한 심의로 TV조선만 구제됐다
가장 황당한 보도는 인터넷판 보도인 조선일보 <김광일의 입-박근혜·문재인, 둘은 전쟁 중이다>(11월22일)입니다. 얼마 전까지 TV조선의 <신통방통>을 진행했던 김광일 논설위원은 “대통령이 바뀌면서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급격 인상, 주52시간제 강행, 탈원전 정책, 굴욕적 친북 안보정책, 이런 것들 때문에 고통 받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중대하게, 대한민국과 국민들의 정체성을 뿌리부터 뒤흔들 수 있는 전·현직 대통령의 전쟁이 대법원을 무대로 벌어지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다양한 평가와 표현의 자유를 논한 대법 판결에 경제정책들을 언급하는 대목부터 이미 합리성을 잃었습니다. 전현직 대통령이 대법원에서 전쟁을 벌인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체성을 뿌리부터 뒤흔든다’는 것으로 묘사한 일장연설은 실소를 머금게 합니다. 삼권분립이 확립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법원이 대통령들의 전쟁터가 될 수 있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습니다.
조선일보가 은근슬쩍 누락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좌파 사관’을 용인하도록 만들어 전직 대통령과 법원에서 싸우고 있는 바로 그 대통령의 정부 하에서도 방송 심의제도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언론이 조선일보의 종편 TV조선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이번 대법 판결이 명백히 확인한 현행 심의제도의 불공정성을 반증합니다. 김광일 씨가 진행했던 TV조선 <신통방통>은 지난해 11월 “오산 미군기지 앞 아파트에 고정간첩이 있다. 근거는 없다”는 초유의 시사 대담을 내놓고도 방통심의위로부터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습니다. 근거를 제시했던 <백년전쟁>에 ‘관계자 징계 및 경고’라는 중징계를 내렸던 방통심의위가 TV조선의 근거도 없는 거짓말에는 면죄부를 준 셈입니다. 3차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던 지난해 9월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은 “힘이 없고 돈이 없어서 미국의 도움, 친일파 청산을 못 하고 대한민국을 세웠던 이승만 대통령”, “김정은을 두고는 후한 평가를 하면서 이승만·박정희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박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했는데, 바로 그 문재인 정부의 방통심의위는 아무런 강제력이 없는 ‘행정지도’(권고)만 의결했습니다. 대통령이 바뀌어서 대한민국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조선일보 주장대로라면 TV조선은 <백년전쟁>이 받았던 중징계보다 훨씬 큰 대가를 치렀어야 합니다.
독재 시절이 그리운 조선일보, 현실로 돌아와야
사안의 핵심, 사태의 본질을 은폐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반공주의 이념에 매몰되면 이렇게 설득력이 없고 구호만 남는 기사가 나오는 겁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대통령이 바뀌어서 좌파 사관이 법적으로 인정됐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조선일보가 꿈에서나 그리는 이승만‧박정희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고백에 가깝습니다. 여전히 그러한 이념적 이분법, 색깔론, 반공주의에 머물러있기 때문에 늘 조선일보가 언론개혁 대상으로 지목되는 건 아닐까요? 대법 판결로 우리가 논의를 시작해야하는 대상은 시민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미디어 콘텐츠의 합리성‧객관성을 누가 판단할 것인가, 그 심의기관의 정치적 독립성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근거 없는 날조와 특정집단에 대한 혐오는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등 미디어 영역 전반에 걸친 규제체계에 대한 고민입니다. 대법관 딱 1명 차이로 대법원이 확정한 것은 합리성을 갖춘 시민의 콘텐츠를 정치적으로 오염된 국가기관이 자의적인 공정성 기준으로 심의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이 근소한 차이로 하여금 우리 사회 공론장의 민주성을 확장하는 일이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 등 유관기관과 시민사회, 언론계가 모두 나서서 공식적 논의기구 출범 등 실질적 행동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조선일보도 그 일원으로서 함께 하고 싶다면 늦지 않게 반공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시즌4는 기존처럼 친일파를 소환하여 그들이 식민지 시기에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이번시즌부터 인물을 확장하여 친일파 뿐 아니라 식민지를 살아간 다양한 사람들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좀 더 입체적으로 식민지 시기를 다룰 예정이니 많은 관심과 지속적인 청취 부탁드립니다.
전북 전주시가 16일 역대 전주시장 가운데 초대 시장 임병억과 3대 시장 임춘성의 홈페이지 사진을 삭제하고 회의실 액자를 치웠다.
친일반민족행위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는 이유에서다.
초대 전주시장 임병억초대 시장 임병억은 정읍군속과 무주군수로 재직 중이던 1937년 7월부터 1940년 4월까지 △중일전쟁과 관련한 영화회, 강연회, 좌담회를 통한 국방사상 보급 △군마(軍馬) 징발 △국방헌금과 애국헌납자금 모금 △출정군인 환송연 △징수품 공출 △국채소화와 저축 장려 등 전시 업무를 적극 수행한 공로가 인정돼 지나사변(중일전쟁) 공로자 공적조서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해방 후 1945년 12월부터 1948년 12월까지 전주부윤을 지냈다.
3대 시장 임춘성은 1940년 장수군수 재임 시절 중일전쟁에 참전한 일본군을 위해 △국방헌금 모금 △출정군인 환송연 △귀환군인 위안회 개최 등 전시 업무를 도맡은 공로로 역시 지나사변(중일전쟁) 공로자 공적조서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해방 후에는 진안군수, 남원군수, 전주시장 등을 거쳐 1960년 6월부터 10월까지 전북도지사(11대)를 지냈다.
전주시는 홈페이지 사진과 회의실 액자를 제거한 후 그 자리에 ‘친일반민족행위자'(친일인명사전 등재)라는 글을 적었다.
이에 앞서 전북도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잔재 청산 취지에 공감한다며 11대 도지사 임춘성과 12대 도지사 이용택 등 2명에 대해 같은 조치를 취했다.
시즌4는 기존처럼 친일파를 소환하여 그들이 식민지 시기에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이번시즌부터 인물을 확장하여 친일파 뿐 아니라 식민지를 살아간 다양한 사람들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좀 더 입체적으로 식민지 시기를 다룰 예정이니 많은 관심과 지속적인 청취 부탁드립니다.
염치.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한다. 이 단어는 주로 ‘없다’와 만나 분노로 이어지곤 한다. ‘염치 있는’ 사람들을 만나본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염치’란 단어가 원래 갖고 있는 사회적 의미를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말]
“친일 세력, 민족 정기라는 걸 우리가 제대로 증명하지 못했거든요? 거기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느냐, 우리 자신이 친일파나 마찬가지라는 논리가 되어 버렸어요. 자손들한테 ‘민족 정기다, 애국해라’, 무슨 얼굴을 갖고 그런 얘기하겠어요? 친일파를 처벌하지도 못했고, 그 사람들이 날뛰는 꼴을 그대로 봐놨고, 그들에 대한 단죄가 없는 그 세대로서…”
부끄러워하는 그 마음이 느껴졌다. 평생을 친일반민족 행위 연구에 헌신했던 임종국 선생이 1988년 CBS 라디오 대담에서 했던 말이다. “무슨 얼굴로 애국을 얘기하겠냐”는 그 말을 당시 현장에서 직접 들었던 이가 바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다.
그로부터 23년 후, 임 소장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일제 식민통치는 염치없는 인간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러니 일제 잔재 청산이란 것도 단순히 인적 청산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염치없는 인간 대량 생산’이라는 식민통치 이데올로기를 청산하는 일이기도 하다”며 이렇게 확언했었다.
“이걸 못하면 민주주의도 허상이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주도하는 등 역시 친일 청산에 힘을 썼던 그였기에, ‘일제시대 염치없는 인간이 많이 만들어졌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염치와 민주주의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구체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지난 12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그와 마주 앉았던 이유다. 먼저 염치의 정의에 대해 물었다.
인간다움, 그리고 부끄러움과 참회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 이정환
– 염치없다는 말이 인간의 기본을 버렸다는 뜻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공자, 맹자, 그들의 이야기를 다 합치면 그겁니다. 가장 기본적인 인간다움. 지구상의 모든 동물 중에서 인간만이 염치가 있어요. 예의가 됐든 사회규범이 됐든 그 기본이 되는 게 염치입니다.”
임 소장은 “지구상에 인간을 공존하게 만드는 모든 질서 자체가 예의에서 비롯된다”며 “인사를 잘 하거나 어르신에게 자리를 비켜주는 그런 게 아니다, 사회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을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와 같은 예의를 어겼을 때 부끄러움을 느끼는 게 인간답다는 말이었다.
따라서 그에게 염치없음은 “수치를 모르는 것”이었다. 물론 그 반대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은 참회로 이어질 수 있다. 임 소장은 이렇게 예를 들었다.
“굴이 무너져서 사람들이 갇혔어요. ‘누구 하나 때려잡아 먹자’, 그런 상황에서 사람 고기가 아니라고 하면서 주워먹었던 사람이 있어요. 그러나 그 후 그 사람이 참회를 하느냐 마느냐, 이런 차이인 거죠.”
– 인간다움을 잃어버렸을 때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 염치다?
“그렇죠.”
“염치없는 친일파 가면 미국이 더 예쁘게 만들어 줘”
▲ 1966년 9월 10일 <동아일보>에 실린 “친일문학론” 광고. 해방 이후 처음으로 임종국 선생이 당시 유명 작가들의 친일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그와 반대로 부끄러운 줄 모르는 뻔뻔한 사람, 철면피란 말의 사전적 정의다. 임 소장의 말이 이어졌다.
“세계적으로 철면피가 양산되는 건 전쟁이 끝난 다음입니다. 전쟁으로 윤리 의식이 허물어지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일제시대부터 생겨요.”
임 소장에게 그 시대를 대표하는 철면피는 당연히 이완용이었다. 그는 “법이 규정할 수 없는 가장 큰 죄가 민족 배반 아니냐”며 “그런 큰 죄를 저지르고 나면 다른 건 우습게 보인다, 이완용은 나라만 팔아먹은 게 아니라 불법적인 재산 탈취까지 다 저질렀다”고 말했다.
그는 “친일파들의 본질은 ‘염치없음'”이라고 강조했다. “잘못을 알고도 행한 사람들”이며 또한 그래서 “자기가 잘했다고 우겨요”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임 소장은 “식민지 시대가 염치없는 사람들을 만들었고, 우리나라에 내려오던 염치의 근본이 그 때 완전히 뒤틀려 버렸다”고 말했다. 그 다음에도 이어진 뒤틀림을 임 소장은 이렇게 표현했다.
“광복이 된 후에도 친일파들은 가면을 바꿀 필요가 없었어요. 그 가면 그대로 쓰고 일본으로 향했던 눈을 미국에 돌리면 다 예쁘게 봐줬어. 그대로 이승만 독재에 핵심 인사들이 됐죠. 염치없는 친일파들의 가면을 미국이 더 예쁘게 만들어줬거든.”
그러면서 임 소장은 친일파들의 이데올로기 자체가 민주주의와 안 맞는다고 강조했다.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파시즘”이며, 그렇기에 “노동자들이 배부르고 잘 사는 거 못 보고, 인권이나 여성 인권 등에 체질 자체가 안 맞는다”는 것이었다. “자기 머슴이어야 하며, 그래서 독재를 찬양하는 것”이란 주장도 잇따랐다. 그를 만나게 만든 질문으로 이어졌다.
“염치는 전염된다”… 친일인명사전 또한 그랬다
▲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임종국 선생의 유고. 친일반민족행위 연구에 헌신한 그의 아버지는 친일부역자였다. <친일문학론>을 쓰던 아들에게 “내 이름이 빠지면 그 책은 죽은 책”이라며 자신의 이름을 넣으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임종국 선생이 평생을 바쳐 기록한 “친일인명카드”는 훗날 친일인명사전의 밑거름이 됐으며, 그의 뜻을 담아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들어졌다. ⓒ 이정환
– ‘염치없는 인간들이 지금도, 미래에도 나오는 한 민주주의가 위태롭다’고 하셨습니다.
“투표의 자유가 있다고 자유 대한민국이 아닙니다. 정치적 자유 뿐 아니라 사상의 자유, 경제적 자유, 생존의 자유도 보장되는 게 올바른 민주주의입니다. 그러니까 몰염치가 많으면 사회가 불안해지는 건 당연하죠. 특히 파시즘적인, 극우 이데올로기에 심취해 있는 사람의 숫자가 많을수록 불안해집니다. 올바른 민주주의가 그냥 선거하는 것만이 아니잖아요.”
다수결의 논리에 따라 염치없음이 얼마든지 이용될 수 있다는 그의 경고가 서늘하게 들렸다. 이런 질문이 튀어나왔다.
– 염치, 전염성이 있나요?
“있습니다.”
반대로 생각해도 그의 말이 맞았다. 그의 ‘동지’, 임종국 선생의 경우가 그랬다.
“1966년 1월쯤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빠가 그때 코트를 입고 있었으니까. ‘친일문학론’을 집필하면서 헌 신문을 뒤지다보니 학병 지원 연설을 나간 아버지의 기사가 났습니다. 오빠는 그 글을 쓰다 말고 집에 와서 아버지께 여쭈었습니다. ‘아버지! 친일문학 관련 책을 쓰는데 아버지가 학병 지원 연설한 게 나왔는데, 아버지 이름을 빼고 쓸까요? 그러면 공정하지가 않은데…’ 하자 아버지께서는 ‘내 이름도 넣어라. 그 책에서 내 이름 빠지면 그 책은 죽은 책이다’고 하셨습니다.” (정운현, 임종국 선생 평전 중에서)
그리고 임종국 선생은 평생을 바쳐 친일인명카드를 기록했다. 아버지와 아들의 염치가 훗날 친일인명사전으로 옮아왔던 셈이다.
염치 없음도 전염되지만 염치 있음도 전염된다.
▲ 식민지역사박물관 방문자들의 관람 소감. 2019년 12월 7일 방문자의 글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그는 “나라에 부끄러운 짓을 한 친일파들은 저리 잘 먹고 잘 사는데, 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자들은 항상 탄압 받는가”라고 물었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이건 잘못되었다. 바로 잡아야 한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지난 2018년 8월 개관했다. ⓒ 이정환
시즌4는 기존처럼 친일파를 소환하여 그들이 식민지 시기에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이번시즌부터 인물을 확장하여 친일파 뿐 아니라 식민지를 살아간 다양한 사람들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좀 더 입체적으로 식민지 시기를 다룰 예정이니 많은 관심과 지속적인 청취 부탁드립니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2019년 역시 다사다난이라는 표현에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한 해일 것이다. 연초에 비하면 남북 간 관계 개선의 전망은 어두워졌고, 북미 간의 교섭은 퇴보를 거듭하는 상황이다. 식민지 시기 일본 전범 기업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비상식적인 보복 대응은 동아시아 외교환경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게다 가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몰상식한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면서 문재인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촛불의 힘으로 수립되었던 문재인 정부의 내치 성과도 그다지 신통치 않아 보인다. 지난 8월 이래 조국 사태가 부각되면서 검찰 개혁의 시대적 소명보다도 공정 가치의 실현이 더 근원적인 사회 이슈로 떠오른 상황이다. 다만 새로운 법무부 수장 임명을 계기로 검찰 개혁의 동력이 다시 탄력을 받기를 기대한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반환점을 돈 지금 시점에서 민생문제 역시 시급해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가시적으로 내세울 만한 경제적 성과가 별로 없는 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문재인 정부의 노동 개혁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어 실망감을 주고 있다. 게다가 지난 한두 달 새 에는 수도권 집값이 급등 양상을 보이면서 많은 사람이 절망과 허탈감에 빠져 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국의 보수세력은 여전히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례성을 강화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 개편을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보수 야당의 행태에서, 지역주의의 기득권에 집착하는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와 같은 보수세력의 모습에서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공정 가치의 실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019년의 마지막 호인 이번 77호에서도 다양한 내용을 구성하였다. ‘통일에세이’에서는 김오석이 한반도 비무장지대의 가치와 활용에 대하여 다루었다. 비무장지대를 여러 차례 답사한 환경지리학자의 입장에서 비무장지대 경관 보존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한편, 현재의 군사시설 또한 미래의 역사유적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번 호의 특집은 ‘한국과 일본,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제목 아래 네 편의 글로 구성하였다. 석주희는 일본 우경화의 핵심 조직으로 일본회의라는 비정당 우익세력에 주목하고 아베 내각과의 관련성을 살폈다. 아울러 일본 우익의 역사 수정주의가 가지는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민간차원에서 한일 간 상호이해를 위한 시민연대를 지속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박진우는 오늘날 일본의 상징 천황제가 과거와 같이 군국주의와 결부하여 부활할 가능성은 작으나, 아베 내각의 우경화 행보 속에서 천황제가 일본 우익 내셔널리즘의 중추로 떠오를 수 있음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고 하였다.
양기호는 해방 이전 일본 전범 기업 강제동원 피해 보상에 대한 해법으로, 한국 정부는 피해자와 원고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전범 기업의 사죄와 반성이 담긴 기금의 설립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영채는 일본군 위안부합의 문제와 강제동원 배상 판결 문제를 계기로 한일시민사회가 문화교류와 상호 네트워크 형성을 활성화하여, 한일 간의 동등한 파트너십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획들을 제안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쟁점으로 보는 역사’에서는 박상수가 동아시아론의 과거와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전망하였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제기되었던 다양한 동아시아 담론들이 그 자체에 담긴 인식론적 한계들을 극복하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동아시아를 ‘트랜스 내셔널리즘’의 공간으로 사유 한다면 동아시아가 서구 근대의 성취까지 왜곡 없이 온전히 포용하는 더 큰 보편성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지금 우리는?’ 코너에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미동맹의 미래, 용산 미군기지의 공원 조성 문제, 그리고 홍콩의 송환법 반대 투쟁 등 세 개의 주제를 다뤘다. 오혜란은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을 촉진하고 평화번영통일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 한미동맹에의 지나친 의존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하였다. 염복규는 용산이라는 장소가 지녀왔던 역사적 시간대의 기억을 최대한 남겨, 그 역사성을 후대에 전승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용산공원이 조성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강인화는 2019년을 뜨겁게 달궜던 홍콩시위를 다각적으로 분석하면서, 기존 사회와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잃은 홍콩 주민들이 스스로 신뢰를 회복하며 새로운 사회와 정치를 만들고 있음에 주목하였다.
인물로 보는 역사에서는 임경석이 지난 호에 이어 이탈리아어판 『코 민테른인명사전』에 실린 한국인 관련 내용을 정리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남만춘, 장건상, 이동휘, 김규식에 관한 내용을 실었다.
사실 체크에서는 두 편의 글이 기획되었다. 이정희는 식민지 시기 조선 거주 화교가 한국 근대사에 끼친 영향이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음을 실증적으로 살펴보았다. 김용흠은 전근대 우리 역사 속에 존재했던 유교 문화를 대상화하여 객관적으로 인식해야 함을 역설하면서,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유교 문화에 가졌던 문제의식과 고민을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내일을 여는 책에서는 두 권의 책을 다뤘다. 정명현은 조선 최대의 실용백과사전이라 불리는 『임원경제지』의 재해석을 통해, 조선 후기의 문명을 창조적으로 되살려 활용하는 실용적 복고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정대성은 독일 태생의 미국의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1906∼1975)의 『인간의 조건』을 다루면서, 그의 연구가 신자유주의 적폐해가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21세기에 더 강력한 호소력을 지녔음을 살펴보았다.
사료의 재발견에서는 서민교가 3·1운동 당시 조선 주둔 일본군 사령 관이었던 우츠노미야 타로의 일기를 소개하였다. 북한의 이해에서는 정우영이 북한에서 대집단체조가 형성되는 과정을 살피고 대집단체조로 대표되는 북한 공연예술의 특징을 검토하였다.
예인열전에서는 최열이 겸재 정선의 작품들에 대한 글을 실었다. 겸재의 작품 전반을 싣기에는 이번 호의 지면이 넉넉지 않아, 이 글은 다음 호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호에서는 금강산을 비롯한 관동지역, 그리고 한양과 그 주변 지역을 소재로 한 겸재의 실경산수화를 다루었다.
예술과 현실의 소통에서는 두 편의 글을 실었다. 이나바 마이는 일본의 대표적인 국제 예술제인 아이치트리엔날레 2019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주제로 한 <평화의 소녀상>이라는 작품이 전시 중단되는 사태를 조명하였다. 한진금은 2019년 한해 전국 각지의 박물관과 전시관에서 기획, 진행되었던 3·1운동 100주년 기념 전시를 검토하면서, 평범한 사람들이 3·1운동 서사의 주체가 되는 경향성에 주목하였다.
역사와 공간에서는 꾸준히 좋은 글을 연재하는 김창회가 충남 홍성의 조선 시대 읍치 유적에 관한 내용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이번 호의 서평에서는, 『3월 1일의 밤–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권보드래 저, 돌베개, 2019)에 대한 이찬수의 글을 실었다. 그는 이 책이 향후 근현대 문학과 한국사는 물론, 한반도 평화사 분야에서도 스테디셀러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이번 호에는 자유 기고의 형태로 두 편의 글을 실었다. 최병택은 친일 청산의 문제는 권선징악의 개념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내부에 자리 잡은 국가주의와 비민주성의 잔재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이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된 사 람들을 미화하는 책인 『반일 종족주의』에 대한 엄중한 비판으로 연결된다. 양조훈은 제주 4·3의 비극에, 이승만 정권뿐만 아니라 미군정과 주한미군사고문단의 책임과 역할이 작지 않았음을 장문의 글을 통해 강조하였다.
2020년 새해 벽두부터는 바야흐로 본격적인 총선 정국이 시작될 것 이다. 하지만 총선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사회에서 시급히 풀어야 할 산적한 과제들이 잊히는 것은 아닐까 우려스럽다. 남북 관계 및 북미 관계의 개선, 검찰 개혁 등도 시급히 성과를 거두어야 할 사안이지만, 정부의 각종 정책을 비웃는 듯한 수도권 집값의 급등은 다주 택자들에 대한 더욱 강력한 징세 정책을 요청하는 형국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 시에 내세웠던 각종 노동공약의 실천은 매우 저조한 상황이다. 전교조는 여전히 법외노조의 상태에 있고, 최저임금 1만원 시대의 도래도 언제 실현될지 기약하기 힘들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역시 너무나 미진하며, 주 52시간 노동 상한제 적용 역시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김용균법의 국회 통과에도 불구하고 ‘위험의 외주화 금지’ 문제는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
해마다 연말이면 저무는 해를 아쉬워하면서도 새해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내년 연말에는 올 연말에 가졌던 새해에 대한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변질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던 『내일을 여는 역사』 현 편집위원들의 역할도 2019년을 끝으로 종료된다. 2020년 새해에는 새로운 편집위원들과 함께 『내일을 여는 역사』 역시 더 나은 책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편집위원 정요근
<내일을 여는 역사> 77호 겨울호 목차
04 여는 글
○ 2020년 새해에도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기대하며 / 정요근
11 통일에세이
○ 비무장지대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 김오석
19 특집 : 한국과 일본, 어디로 갈 것인가?
○ 일본 우익에 대한 소고 – 아베내각과 일본회의 / 석주희
○ 현대 일본인의 천황관과 역사인식 / 박진우
○ 1965년 체제의 한계, 극복은 가능한가 / 양기호
○ 아베정권의 대한국 무역보복조치이후 한일시민연대운동의 현황과 과제 / 이영채
81 쟁점으로 보는 역사
○ 한국의 ‘동아시아’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나? / 박상수
95 지금 우리는?
○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미동맹의 장래: 주한미군 철수는 가능한가? / 오혜란
○ 용산공원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 염복규
○ 2019년 홍콩시위와 민주주의, 그리고 ‘탈식민’ / 강인화
131 인물로 보는 역사
[코민테른인명사전]
○ 이탈리아어판 『코민테른인명사전』에 실린 한국인들 (2) – 남만춘, 장건상, 이동휘, 김규식 / 임경석
149 사실 체크
○ 조선화교가 우리 근대사에 던지는 문제 제기 / 이정희
○ 유교 문화에 대한 오해와 이해 / 김용흠
173 내일을 여는 책
○ 조선의 실용백과사전 『임원경제지』에서 구하는 실용적 복고 / 정명현
○ ‘인간의 조건’의 상실과 정치 –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 정대성
“공식적 약속이지만 구두로 이뤄져…구체적 권리·의무의 창설 불분명” 헌법소원의 대상은 되지 않지만, 피해자의 청구권은 남아있다고 판단 위안부 합의 근거로 손배 청구에 응하지 않은 일본 정부, 정당성 잃어
헌법재판소는 2015년 박근혜 정부와 일본 정부가 발표한 ‘한·일 위안부 합의’가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내용들뿐이라서 정치적·외교적 행위 이상의 의미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시민 기본권을 침해한 국가권력의 행사가 아니면 헌법소원 심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헌재는 사건 결론을 ‘각하’로 내렸다.
한·일 위안부 합의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제대로 해결된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이번 헌재 결정에 의미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헌재는 27일 각하 결정문에서 이 합의를 두고 “양국 외교장관의 공동 발표와 정상의 추인을 거친 공식적인 약속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면서도 구속력이 없다고 했다. 서면이 아닌 구두로 이뤄졌고, 구속력이 있는 조약에 부여되는 명칭이나 조문의 형식도 갖추지 않은 채 ‘기자회견’(일본은 ‘기자발표’) 형태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헌재는 “구두 발표의 표현과 (양국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발표문의 표현조차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존재했다”며 “국제법상 구속적 의도를 추단할 수 있을 만한 표현 역시 사용하지 않았으며, 전체적으로 모호하거나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돼 있다”고 했다.
헌재는 “무엇보다 합의의 내용상, 한·일 양국의 구체적인 권리·의무의 창설 여부가 불분명하다”고 했다.
헌재는 합의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시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그게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목적으로 하는지 불분명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헌재는 “합의에 피해자가 입은 피해 원인이나 국제법 위반에 관한 국가책임이 적시돼 있지 않다”며 “일본군 관여의 강제성·불법성 역시 명시돼 있지 않다”고 했다. 일본 정부가 합의 이후에도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해결돼 법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한 점은 이 합의가 법적 효력이 없는 선언적 행위에 불과하다는 판단의 근거가 됐다.
합의의 또 다른 주요 내용인 재단 설립과 일본 정부 출연을 두고서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의무 이행의 시기·방법, 불이행의 책임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헌재는 봤다. 헌재는 “이 합의에는 ‘해야 한다’라는 법적 의무를 지시하는 표현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며 “대략 10억엔 정도의 일본 정부 출연금 규모가 언급됐다고는 하나, 정확한 출연금액과 시기, 방법은 언급되지 않았고 이 같은 출연금 규모의 언급은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게재 발표문에는 표시조차 되지 않았다”고 했다. 헌재는 “국가 간 정치적 합의에 따른 협력조치의 시행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일본 정부가 과거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국민기금’을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의료·복지 용도로 사용하도록 한 사례를 들었다.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부족했다면서 피해자 중심의 조치를 모색하겠다고 발표한 상황도 고려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외교부 장관)은 이 사건 합의가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일본이 진실을 인정하고 피해자의 명예·존엄 회복과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 줄 것을 기대하며 미래지향적 협력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며 “(한국 정부가) 외교적 보호권한의 행사를 포기했다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번 결정에서 중요한 부분은 피해자 권리를 확인한 것”이라며 “각하라고 결정은 했지만, 헌재가 피해자 권리의 실현을 정부의 할 일이라고 주문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결정이라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조 연구위원은 “위안부 합의는 법적 책임에 대한 게 아니기 때문에 향후 이런 부분을 정부가 성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헌재가 명확히 했다”고 말했다.
피해자와 가족들 개인의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여전히 남아 있다. 헌재는 이날 결정에서 “합의에 구체적인 청구권의 포기 및 재판 절차나 법적 조치의 면제 보증 등이 전혀 규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의 포기나 처분을 다뤘다고 볼 사정이 없다”고 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로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해결됐다면서 피해자들 소송에 응하지 않는 일본 정부 주장에 정당성이 없어진 셈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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