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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경실련 전임 고계현 사무총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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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경실련 전임 고계현 사무총장 별세

admin | 금, 2021/08/27- 05:35

 

[부고 안내]

경실련 전임 고계현 사무총장 별세

빈소 : 서울성모장례식장 12호실
발인 : 2021년 8월 28일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전임 고계현 사무총장께서 별세하여 알려드립니다.

 

고인은 경실련에서 시민운동을 시작해 시민입법국장, 정책실장을 거쳐 10대, 11대 사무총장으로 역임(2011.1.1.~2016.12.31.)했습니다. 현재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으로 재직 중이었습니다.

 

고인은 30년간 시민운동에 몸담으면서 경제정의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권력 감시와 정책제언, 시민참여 확대 등을 위해 모든 힘을 쏟았습니다. 특히, 부패 척결과 공명선거, 의정 감시와 국회 개혁, 지방자치 확대, 정보공개운동, 금융개혁, 사회복지 확대, 예산감시 및 조세개혁, 서민주거와 민생안전, 소비자주권 등에 앞장서서 시민운동을 개척하고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했습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장례식장이며, 8월 28일(토) 발인 예정입니다. 우리 사회의 경제정의와 사회정의를 위해 헌신하신 고계현 전임 사무총장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경실련과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공동으로 장례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 붙임. 고계현 전임 사무총장 주요약력 등 부고안내는 아래 보도자료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210826_보도자료_故 고계현 전 사무총장 부고안내

부고장

문의: 장례위원회 02-3673-2300 / 010-8782-0720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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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경실련 창립 멤버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공정 무너뜨리는 양극화 반드시 해결해야”

“시민단체는 이익집단이 아니라 특정한 가치 실현하기 위한 집단”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30년 역사를 이어온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창립 멤버다. 경제학자이자 시민운동가인 그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규제개혁위원장과 부패방지위원장, 그리고 공정거래위원장을 잇달아 역임했다. 그런 후 고향과도 같은 경실련에서 4년간 공동대표로 활동했다.

규제개혁과 부패방지, 그리고 공정거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핵심과제들이었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개혁’과 ‘청렴’ 그리고 ‘공정’은 여전히 시대의 화두다. 10월23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강 전 위원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경실련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창립 준비할 때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1989년 당시 경제는 좋았다.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문제는 부동산 투기가 극성을 부렸다는 거다. 전 국토가 투기장이고 전 국민이 투기꾼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했다. ‘이래선 안 된다, 나라가 망한다’는 생각에 모이기 시작했다. 11월 창립총회 전에 세미나도 하고 시위도 하고 그랬다. ‘일한 만큼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자’는 게 슬로건이었다. 비판만 하는 시민단체가 아니라 대안을 제시했다. 토지공개념 3법을 입법화했는데 반대세력이 많았다. 그게 출발이었다. 또 하나 법 테두리 안에서 한다는 기준을 세웠다. 이전 시민운동과 달리 87년 체제로 바뀌었으니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하자는 거였다. 제도개혁에 역점을 뒀다. 그중 하나가 금융실명제였다. 토론회에서 늘 경실련과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이 다퉜다. 이러한 원칙을 지켜왔기 때문에 30년 동안 견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다.”

 
시민단체의 역할은 뭐라고 보나. 그리고 현재 시민단체는 그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보나.

“우리 사회는 개인 간 경쟁하는 사회가 아니라 집단 간 경쟁하는 사회다. 당연히 이익집단이 많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이익집단이 아니다. 특정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집단이다. 예를 들면 경제 정의, 환경 정의, 소비자 주권, 문화재 보호, 독도 수호 등을 실현하자고 할 수 있다. 특정 가치를 실현하려는 집단이기 때문에 운용자금이 늘 부족하다. 선진국 같은 경우 정부 예산으로 지원해 준다. 우리는 그걸 받으면 어떤 정파나 정당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안 된다. 그래서 정부 지원을 안 받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후원도 얼마 이상은 안 된다고 정해 놨다. 어려운 점이 있지만 그렇게 한다. 그런데 시민단체 중에는 사이비가 많다. 돈 뜯어내려는 곳도 있고, 어떤 이익집단에 편향돼 있으면서 이름만 시민단체로 운영되는 곳도 있다. 사회 영향력에 있어서 다소 약해진 면도 있다. 그래도 여전히 중요하다. 조금은 앞장서 나가야 한다.”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의 정계 진출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직접 정치를 해서 추구해 온 가치를 실현해 보자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기고 실행에 옮긴 사람도 있다. 내가 보기에는 대부분 실패한다. 성공 사례도 가끔 있겠지만. 왜 그러냐면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가치 실현을 위해 싸우고 투쟁하던 게 사라질 수 있다. 행정은 상관없지만 정치를 하면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그래야 정치에서 성공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갈등이 생기고 양심의 가책도 받고 그럴 거다. 그렇다고 정치가 무의미하다는 건 아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규제개혁위원회와 부패방지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어디에 중점을 뒀었나.

“규제개혁위원회의 경우 2000년부터 2년 동안 총리와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행정부가 내는 입법 활동은 전부 이곳을 거쳐야 했다. 규제가 뭐가 있는지 합당한 규제인지 심사해서 통과해야 국무회의에서 의결해 국회로 넘어갔다. 각 부처에서 싫어했다. 규제를 다 등록하라고 했더니 1만4000여 건이나 됐다. 반으로 줄이는 게 목표였다. 부패방지위원장은 2002년 1월에 맡았다. 권력을 가진 고위 공직자가 대상이었다. 그런데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신고자는 조사를 하는데 피신고자에 대한 조사권이 없었다. 법을 고쳐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선 때였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후보가 되고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이 부패방지위원회였다. 법 개정에 들어갔지만 야당이 반대해 부결됐다. 이제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설치돼야 한다. 국회의원도 당연히 포함시켜야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가 굉장히 투명해진다. 공수처가 존재만 해도 고위 공직자가 굉장히 달라질 거라고 본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3년 동안 공정거래위원회를 이끌었다.

“민간인이 위원장이 된 건 최초였다. 시장 개혁 3개년 계획을 세웠다. 재벌 개혁이 핵심이었다. 그런데 MB 정권으로 바뀌면서 유야무야됐다. 출총제(출자총액제한제)가 아무 조건 없이 폐지됐다. 재벌이 되살아나는 데 도움이 된 거다. 하나 기억나는 게 2004년에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냈다. 항목 중에 금융계열사 의결권을 제한하는 게 있었다. 의결권 제한을 강화해 30%에서 15%로 낮추려고 했더니 야당이 상임위 회의실 문에 못질을 하고 못 들어가게 했다. 재벌에서 로비를 한 거다. ‘여기 의원들 중 재벌에게 로비 안 받은 사람 있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니까 의원들이 한 명씩 나가더라. 나머지 의원들로 통과시켰는데 그만큼 힘들더라. 지금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을 내세웠는데 힘들 거다. 필요한 건만 선별적으로 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본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공정’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나.

“공정의 기준이 많은데, 심리학에서는 마음에 상처를 입어 불편하면 정의가 깨진 거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공정이 상당히 무너지고 있다. 우선 진입 장벽이 높다. 기업도 시장에 들어가기 힘들고 서민 자제들이 학교에 진학하고 취직하기가 어렵다. 실력이 안 돼서 그런 건 상관없지만 ‘부모 찬스’니 하는 기득권의 장벽을 못 넘으면 안 된다. 또 장벽을 넘어 성안에 들어가더라도 운동장이 전부 기울어져 불공정 행위가 넘친다. 남의 것을 뺏는 착취적 남용이 있다면 남을 배제하는 배타적 남용도 있다. 기득권을 가진 집단이 연줄로 연합을 형성해 강해지면 장벽을 넘기도 힘들고 넘더라도 경쟁하기가 힘들다. 양극화가 너무 심해져 사실상 신분사회가 됐다. 그게 현실이다. 이를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여행을 좀 더 다니고 싶다. 창의력은 ‘3T’에서 나온다. 첫 번째가 트래블(travel·여행)이다. 여행이 그만큼 중요하다. 두 번째 탤런트(talent·재능)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세 번째도 중요한데 바로 톨러레이션(toleration·관용)이다. 서로 공존해야 한다. 싸우면 막말만 나오지 창의력이 나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만나 얘기해야 창의력이 나온다.”

목, 2019/10/31-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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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 인지도 조사 결과 85.7% 알고 있다

[경실련-시사저널 30주년 공동기획] 시민단체 국민인식 여론조사 “권력 감시와 비판이 최우선 역할”

 
* 경실련과 시사저널이 30주년을 맞아 공동기획으로 시민단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조사를 진행했다. 더불어 경실련에 대한 인지도 조사를 진행한 결과 85.7%가 경실련을 알고 있었다. ‘잘 안다’ 39.9%, ‘이름은 들어봤다’ 45.8%, ‘모른다’ 14.3%로 결과가 나왔다. 성별로는 남성이 86.8%, 여성이 84.7%로 남성이 약간 높게 인지하고 있었고, 연령별 인지도는 20대가 57%, 30대가 86.2%, 40대가 91.2%, 50대가 95.9%, 60대 이상이 92.4%로 20대가 현저히 낮았고, 40~50대 이상이 월등히 높게 나왔다.

 
– 아래는 시사저널 기사내용 (원문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92104)

국내에 등록된 비영리민간단체의 수는 2018년 기준 1만4275개에 달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시민사회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지난해에도 340여 개의 비영리민간단체가 새롭게 생겼다. 중앙행정기관에 등록된 시민단체 수만 해도 2013년 1만여 개를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1만2000여 개에 이르며, 지방행정기관에도 지난해 기준 1662개의 시민단체가 등록됐다. 행정부에도 각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진출해 있는 시대다.

이같이 시민단체가 늘어난 상황에서, 국민들은 시민단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시사저널은 창간 30주년을 맞아 창립 30년을 맞이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함께 시민단체에 대한 국민 인식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30% 이상이 시민단체의 최우선 역할로 권력감시와 비판 기능을 꼽았다. 앞으로 시민단체가 집중해야 할 분야 역시 권력 감시-경제문제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80% 가까운 응답자가 시민단체가 특정 이념에 쏠려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 기관에 시민단체 관련 인사들이 진출하는 것에 대해서도 50% 이상의 응답자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시민단체가 갖춰야 할 최우선 가치는 공익성”

이번 조사는 여론조사업체 포스트데이터에 의뢰해 10월19~20일 양일간 실시됐다. 연령별·지역별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했으며, 신뢰수준 95%, 최대허용오차는 ±3.10%포인트다.

응답자의 30.7%는 시민단체에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역할로 ‘권력 감시 및 비판’을 꼽았다. 이어 ‘적폐청산과 사회 개혁’(20.2%), ‘정책 대안 제시’(15.5%), ‘불평등 개선’(14.3%), ‘인권 보호’(13.8%) 순이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20대 응답자의 40.4%, 중도 성향 응답자의 35.7%가 권력 감시 기능을 강조했다. 지역별로는 서울(35.9%), 경기·인천(30.6%), 대구·경북(33.6%), 부산·울산·경남(29.5%)이 권력 감시를 1위로 꼽았다. 반면 광주·전라의 경우 ‘적폐청산과 사회 개혁’을 선택한 응답자가 28.7%로, 권력 감시를 선택한 응답자(28.1%)보다 조금 더 많았다.

응답자들은 시민단체가 향후 중점적으로 활동해야 할 영역에 대해서도 권력 감시 분야를 첫손에 꼽았다. 인권과 환경 등 6개 분야 중 우선순위를 뽑아 달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26.1%는 권력 감시 기능을 우선 응답했다. 이어 경제(20.9%), 인권(16.8%), 환경·에너지(16.0%), 여성·청소년·아동(10.6%), 평화·통일(5.2%) 순으로 지목됐다. 연령별로는 20대부터 40대까지 권력 감시 분야를 1위로 꼽았으며, 50대와 60대 이상은 권력 감시보다 경제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보수 성향 응답자들은 인권 분야를 1위(24.8%)로 꼽았다.

시민단체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는 공익성이 최우선 가치로 꼽혔다. 응답자의 33.8%가 공익성이 중요하다고 답했으며, 도덕성(27.2%)과 비정치성(21.0%)이 뒤를 이었다. 전문성(9.9%)과 대표성(4.8%)은 상대적으로 낮은 선택을 받았다. 공익성의 경우에는 전 세대와 지역에서 고르게 1위로 꼽혔다. 다만 보수 성향의 응답자들로 한정할 경우 도덕성(32.7%), 비정치성(26.9%) 순으로 선택됐으며, 공익성은 3위(23.7%)에 머물렀다.

 

“정부 진출에 부정적 54.1%”

여론조사 응답자들은 시민단체의 이념적 편향성과 시민단체 인사의 정부 진출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강하게 내비쳤다. 시민단체의 이념적 편향성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42.1%는 ‘매우 치우쳐 있다’고 답했다. ‘대체로 치우져 있다’(37.0%)는 답변과 함께 보면 응답자의 79.1%가 시민단체가 이념적으로 한쪽에 쏠려 있다고 답했다. 시민단체가 이념적으로 치우쳐 있지 않다는 답변은 17.5%에 불과했다.

특히 보수 성향 응답자의 62.8%는 시민단체가 이념적으로 매우 쏠려 있다는 응답을 내놨다. 중도 성향 응답자의 43.7%도 ‘매우 치우쳐 있다’고 응답했으며, 진보 성향 응답자에서만 ‘대체적으로 치우쳐 있다’는 응답이 42.8%로 ‘매우 치우쳐 있다’(25.0%)보다 많았다. 이는 시민단체가 이념적으로 보수진영보다 진보진영에 쏠려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시민단체 인사들의 정부 진출에도 부정적인 시각이 더 많았다. 응답자의 28.2%는 ‘시민단체 인사의 정부 진출에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이라고 답했다. ‘매우 부적절하다’는 답변이 25.9%로 뒤를 이었다. 시민단체 인사들의 정부 진출에 부정적인 입장은 총 54.1%로, 긍정적으로 바라본 응답자(40.9%)보다 13.2%포인트 많았다. 부정적인 견해는 보수 성향 응답자(71.0%)가 가장 많았으며, 중도 성향 응답자의 60.5%도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반면 진보 성향 응답자들은 긍정적이란 견해가 60.3%로 부정적(33.0%)보다 2배가량 많았다.

윤순철 경실련 사무총장은 “시민단체가 각자 맡은 임무를 충실히 하는 데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난 길로 가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윤 사무총장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 경제정의 문제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경실련의 경우 30년 동안 부동산과 재벌 개혁 문제에 집중했다. 아쉬운 점은 있지만 역시 가야 할 길은 경제정의다. 창립 당시 세운 목표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목, 2019/10/31-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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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이 걸어온 30년의 시간 어딘가에 여러분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으신가요?
지금 경실련이 여러분과 함께 했던 지나간 시간들을 찾고 있습니다.

경실련과 여러분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사연, 출처와 함께 써서 보내주세요.

사진을 보내주신 분들께 소정의 기념품을 보내드립니다.

*보내실 곳 : [email protected]
*기간 : 10월 21일(월) ~ 11월 1일(금)

*문의: 회원미디어국 02-766-5628

화, 2019/10/22-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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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9년 11월 4일 (월) 오후 6시 30분

장소 : 세종문화회관 세종홀

행사문의: 02-766-5626 / 후원문의 : 02-766-5627~8

목, 2019/10/1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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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9,10월호 우리들이야기4]

이제는 우리가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 그리고 <김복동>

이성윤 회원미디어국 간사

 2017년 개봉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아마 영화의 예고만 봤다면 이 영화를 늦은 나이에 영어를 배우려는 할머니가 나오는 평범한 코미디 영화로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내용은 조금 특별하다. <아이 캔 스피크>는 이제껏 우리가 단 한 번도 접하지 못한 방식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루고 있다. 끝까지 유쾌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루는데 무거운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실화에 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주인공 나옥분의 미국 의회에서의 증언 장면도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나옥분이라는 캐릭터에는 수많은 피해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지난달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은 그 실화의 일부이다. 많은 사람에게 ‘김복동’은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그 앞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말이 더해진다면 ‘김복동’은 우리에게 낯선 이름이 아닌 기억해야 할 이름으로 바뀔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그저 ‘김복동’ 한 사람만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영화에 자세히 나오진 않지만, 하나둘 나열할 수 없는 많은 분의 사연이 그 안에 담겨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영화 <김복동>은 올해 초 세상을 떠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삶을 보여준다. 김복동은 1940년 우리 나이로 15살의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8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얘기할 수 없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 1992년, 피해 사실을 증언하겠다고 하자 가족들조차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그 당시 우리 사회가 피해자들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우리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아이 캔 스피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주인공 옥분이 어머니의 산소에서 눈물 흘리는 장면이 단순히 극적 효과를 더하기 위한 장면은 아니다.
 가족들의 반대와 외면에도 불구하고 김복동은 피해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나섰다. 아흔을 넘긴 나이에도 전 세계를 다니며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해 증언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자신에게 너무나 큰 상처였을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그곳이 어디든 일본이 사과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로 만들어진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요구하며 수술 후, 입원 중인 상황에서도 거리로 나와 목소리 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사과를 받기 전까지는 죽을 수도 쓰러질 수도 없는 한 그루의 거대한 나무와도 같았다.

인권운동가, 평화운동가 김복동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김복동’은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는 피해자로서의 활동을 넘어 평화와 인권을 위한 활동가로서의 모습도 보여준다. 그중 하나가 2012년 만들어진 ‘나비기금’이다. 나비기금은 전 세계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동안 우간다, 나이지리아, 콩고 등 여러 나라에 이 기금이 전달되었다. 이를 통해 그들과 연대하며 자신과 같이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전쟁으로 피해받는 이들이 없길 바라며 그들을 보듬고 위로했다. 그리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도 우리는 일본 시민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며 모금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또 일본에 있는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김복동은 앞으로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없기를 바랐고, 지진피해가 있다면 그들을 걱정했고,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한 학생들을 생각했다. 김복동은 자신도 모르게 이미 평화와 인권을 위해 앞장서는 위대한 활동가였다. 그러한 모습들은 오랜 시간 ‘위안부’ 피해자의 상처를 보듬어주지 못한 우리, 그리고 우리 정부를 더욱 부끄럽게 만든다.

20명… 이제는 우리가 증인이 되어야 한다

 지금도 매주 수요일 12시면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는 집회라는 아픈 기록을 가진 이 집회는 얼마 전 1,400번째 집회를 열었다. 27년이 넘는 시간 동안 외쳤지만, 아직 일본은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 외침은 일본의 사과가 있기 전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에 생존해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이제 20명뿐이다. 그분들의 나이도 이제 8~90대이고, 앞으로 10~20년이 지나면 실제 피해자들은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 만약 그때가 되어도 일본이 사과하지 않고, 피해자들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결될 수 없고, 아프다고 감출 수도 없으며, 없었던 일처럼 부정할 수도 없는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남아있는 우리가 증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외쳐야 한다.

지금 당신은 증인이 될 준비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외쳐보자. 아이 캔 스피크!

화, 2019/10/01-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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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9,10월호 우리들이야기3]

다시 온 가을에 만난 책

조진석 책방이음 대표

[당신과 나를 이어줄 ㅊㅊㅊ]은 책방이음의 조진석 대표가 추천하는 ‘책 소개 코너’입니다. 책방이음은 시민단체 ‘나와우리’에서 비영리 공익을 목적으로 운영하는 서점입니다. 2009년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문을 열었으며, 우리 사회를 밝게 만드는데 수익금을 써왔습니다.

8월 초 국제 행사가 취소되었다. 지자체에서 후원하고, 인권과 평화와 관련한 재단에서 주관하는 국내·외 대학생이 함께 인권과 평화를 배우는 아카데미였다. 좋은 취지로 마련한 행사였기에, 국내· 외 대학생에게 소개했다. 그런데 불과 2주를 앞둔 시점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취소 통보를 받았다. 한일 관계가 악화된 시점에서, 강사진에 일본 국적자가 있고, 참가 학생 중에 일본인이 참가하는 행사를 지자체에서 지원할 수 없다는 사유였다.
반일 또는 반 아베를 방방곡곡에서 외치는 형국에서, 지자체에서 이런 행사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구설에 오르고 싶지 않은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인권과 평화를 주제로 아카데미를 여는데도, 단지 일본인이 참가한다는 이유만으로 행사를 취소한 것은 한국인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수십 년 동안 인권과 평화를 위해서 활동하고 연구해온 일본인 교수와 이제 막 한국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일본인 대학생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눈앞이 캄캄 했다.

이런 때일수록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이유를 밝혀서 말해야 한다. 식민지를 지배했고 제국주의를 청산하지 못한 일본, 제국주의 청산을 스스로 이루지 못한 일본 민주주의의 허약성이 현재 한일 관계 해결을 어렵게 하고, 미디어를 통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필요성이 있다. 재일조선인 서경식 교수와 참여지식인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대담을 엮은 <책임에 대하여 責任について 日本を問う20年>가 2018년 일본에 출판되었을 때 무척 반가웠다. 이 책은 한일 관계의 핵심에 ‘식민지 책임’ 문제와 ‘일본 민주주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말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1945년 이후 도금(鍍金)으로 숨겨졌던 일본 사회의 본성(地金)이 지금 드러났다는 점을 이 책은 주목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으로 성립했다. 1869년 홋카이도와 1879년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복속된 것’은 조선 식민지화의 예고편이었다. 일본 사회의 성립은 곧 홋카이도와 오키나와, 대만과 조선으로 이어지는 식민지 강점과 세트로 구성된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일본이 근대 국가로 탈바꿈한 메이지유신의 150주년 해가 바로 2018년이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것을 얼마나 기억할까. 한국에게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위협인 일본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책임에 대하여>를 읽어야 한다.

한일 관계가 악화된 요인 중에 ‘북한 문제’가 있다. 한국에게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적국이고, 공존하고 평화로운 통일을 더불어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파트너이며, 이산과 전쟁의 상처를 함께 치유할 동포들이 사는 땅이다. 그러나 일본에게 북한이 파트너라는 인식은 강하지 않고, 화해해야 할 동포가 있을 리 만무하니, 오직 남은 것은 적국이라는 인식밖에 없다. 역설적으로 북한이 적국이라는 인식을 공유할 때, 한일 정부 간 관계는 긴밀했다. 그렇지만, 북한을 파트너이자 동포로 중시 여기는 한국의 정권이 들어설 때 한일 관계는 삐걱거리고 이해를 달리한다.
한국과 일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맺고 외교적으로 승인하지 않으면 결코 풀릴 수 없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은 전쟁의 기억이 북한에 어떤 트라우마를 남겼는지, 전쟁 결과 미국은 북한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전쟁 없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한국전쟁의 종결과 새로운 미래를 여는 북미 간 평화협정과 외교적 승인이 반드시 왜 필요한지 역사에 근거해서 설명한다. 한국에게 ‘북한 문제’는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영역에서 중요하고, 북한과 관계 재설정에 한국전쟁은 너무도 중요한 주제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은 이 문제를 이해하는 필독서다.

지난 4월 그레타 툰베리가 EU의회에서 연설했다. “우리의 아름다운 숲은 사라지고 있고, 대기는 오염되고 곤충과 야생 동물들은 사라져 가며, 우리의 바다는 산성화되고 있습니다. 부자 나라에 사는 우리가 이대로 살아도 되는 것을 여기는 삶의 방식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는 재앙들입니다.” 이런 현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우려를 표명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내용을 알리기 위해 열심히 강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매주 금요일 등교하지 않으면서 악화일로의 현실을 막고자 시위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16세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이를 실천에 옮겼다.
그레타 툰베리와 같은 이들의 목소리를 두 달에 한 번씩 모아서 내는 잡지가 바로 <녹색평론>이다. 많은 사람이 <녹색평론>을 ‘환경 잡지’로 알고 있지만, 단순한 환경 잡지가 아니다. 현재 인류가 처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폭주기관차와 같이 질주하는 인간의 욕망 때문에 자연이 파괴되는 것이고,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경쟁으로 점철된 사회이며, 무한정의 개발이 무한정의 풍요를 가져올 것이라는 사상이라는 점을 1991년 창간 이후 쉼 없이 주장하고 있다.
단순하지 않다는 말속에는 환경이라는 분야만을 떼어 내어서 말할 수 없고, 어디까지나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태생된 문제라는 점, 인간의 사고방식과 어쩌면 마음과 태도 때문에 현재 인류가 직면한 기후변화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복잡하고 착잡한 심정을 담은 표현일지도 모른다. 다시금 창간사의 첫 문장을 찾아 읽는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지금부터 이십 년이나 삼십 년쯤 후에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월, 2019/09/30-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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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9,10월호 우리들이야기2]

시민의 힘을 믿고 운동하고 있는 거죠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올해는 참여연대가 창립 2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얼마 전 9월 4일에는 창립기념식도 열렸는데요. 이번 호에서는 경실련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 참여연대의 박정은 사무처장을 만나서 참여연대와 시민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Q. 독자분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저는 참여연대에 2000년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고요. 참여연대에 대해 알지도 못한 채로 우연히 선배 손에 이끌려서 3개월만 있다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왔다가 지금까지 있게 됐죠. 평화운동 쪽에 오래 있었고요. 지금은 정치개혁, 사법개혁 활동에 많이 집중하고 있어요.

Q. 참여연대가 올해로 창립 25주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25년간 참 많은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간의 활동이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하시나요?

A. 우선, 가시적으로 보이는 성과들이 있겠죠. 요즘 토요일마다 집회도 많이 하고, 행진도 많이 하는데 집회, 시위의 자유를 확장하는 데 참여연대의 공헌이 굉장히 컸어요. 청와대 행진도 그렇고, 지금 법원이나 국회 앞에서 집회가 가능해진 것도 참여연대의 헌법소원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죠. 또 부패방지법, 기초생활보장법 같이 한국 사회에서 공직윤리와 삶의 토대가 되는 법들을 만드는데 기여한 것처럼 가시적인 것들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 권력의 입장에서 불편한 존재로 참여연대가 역할을 수행해요. 권력을 늘 감시하고 주목함으로써 그들의 불법행위를 막는 존재로서의 의미가 있어요. 시민들이 모여 자신들의 의사를 펼 수 있는 공론장을 마련하고, 안전장치 역할을 해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봐요.

또 한편으로는 연대에요. 실제 당사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고, 그들과 함께하는 것도 중요해요. 많은 시민사회단체에 같이 하자고 제안하고 함께하는 게 때로는 참여연대만 부각되어서 욕도 먹지만, 그게 참여연대의 활동원칙이기도 하고, 기본활동방식이기도 합니다. 참여연대가 잘 고수하고 유지하고 있는 전통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Q.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거나 의미 있는 활동은 무엇이었나요?

A. 2003년 이라크파병 반대 운동을 할 때, 김선일 씨가 죽은 사건이 있었어요. 이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온 국민이 인질로 잡혀 있는 김선일 씨의 구조요청을 보게 되었는데, 이 사람이 참수당했어요. 굉장히 큰 충격이었어요. 이 사건은 단순하게 침략 전쟁에 한국군대를 보내지 말라는 것이기도 했지만,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참전해야만 하는 한미동맹에 대한 문제의식,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런 비극을 마주하며 평화운동에 매진했던 게 이라크파병 반대 운동이었던 거 같아요.

또 다른 하나는, 벌써 9월인데 첫발 떼는 것도 어려운 정치개혁 운동입니다. 작년 이맘때부터 <정치개혁 공동행동> 활동을 시작했어요. 당시 몇몇 단체 실무 간사들만 모여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조직체계를 정비했어요. 선거법 개정을 위해 국회를 압박하는 활동을 작년 연말부터 많이 해왔는데 참 지치네요. 국회 스스로 안 바뀐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확인했던 한해여서 다른 의미로 기억에 많이 남는 거 같아요. 얼마 전 대법원에서 박근혜, 최순실, 이재용 관련 판결이 있었습니다. 파기환송되었지만 이들 간 정경유착이 확인됐고, 삼성의 승계 작업이 있었다는 것도 확인됐어요. 참여연대가 집중하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불법행위와도 직결되기에 되게 반가웠는데 그것보다 정개특위에서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이 더 기분 좋더라고요. 겨우 문턱 하나 넘었을 뿐이었는데. 세상이 안 바뀐다고 해도 이만큼씩은 바뀌는데. 국회의원 스스로에 관계된 것들은 정말 너무 안 바꿔요. 전적으로 그들에게 달려 있다 보니까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시각도 많은데 이걸 넘어서서 계속해보자고 하는 게 쉽지가 않은 한 해입니다. 그래도 남아있는 기간과 총선까지 국회 바꾸는 운동을 하자고 계속 얘기하고 있어요.

Q. 오랜 시간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은 시민의 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 참여연대에서는 더 많은 시민과 함께하기 위해서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A. 제가 가끔 얘기하는데 참여연대는 기적 같은 단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회원이 확 늘지는 않지만 그래도 꾸준히 가입하고 응원해주는 회원들이 있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였을 때에는 많은 시민이 시민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조직된 운동단체를 통한 문제해결을 훨씬 덜 기대하거든요. 참여연대가 더해야 되는 데 그렇지 못해 죄송할 때가 있어요. 그래도 회원을 유지해주시고 새로 가입해주시니 늘 감사할 뿐입니다.

저희가 몇 년 전에는 모든 부서에서 무조건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진행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억지로 하라고 하진 않아요. 예를 들어서 시민들이 직접 세금 문제를 말하게 하는 ‘맥주 파티’ 이런 것도 했어요. 사법농단과 관련해서 ‘부릅단’을 모집해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방청하고 소감을 나누기도 해요. 시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티를 내는 거지요. 공론화하기 위한 방식으로 다양한 시민참여 방식을 시도할 수 있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처럼 어떤 사안은 전문성으로 승부를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모든 부서가 다 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선거 개혁이나 국회 개혁은 무조건 시민과 같이해야 돼요. 이런 시민참여 사업도 참여연대 활동 기조 중 하나에요.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지역별 회원 모임이 왕성해졌어요. 회원들이 이런 자리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같이하기를 기대하는지 얘기도 듣고, 저희도 적극적으로 제안하죠. 할 게 참 많잖아요. 서명부터 스토리펀딩까지 많이 하잖아요. 우리가 다 정하고 난 다음에 회원들에게 같이 하자고 하는 것보다는 기본방향을 잡아두고 의견을 구하면서 가는 과정이 좋은 것 같아요. 참여연대가 그런 시도를 꾸준히 해서 잘 정착되면 좋겠습니다.

Q. 참여연대는 명실상부하게 한국의 대표적인 시민단체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만큼 지지하는 분들도 많고,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분들도 많은데요. 다양한 목소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A. 문재인 정부 들어서 참여연대가 이러저러한 음해와 비방의 대상이 되고 있어요. 겸허히 받아들일 비판도 있고 따끔한 조언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지나치게 악의적이에요. 보수언론, 경제지들이 특히 그렇죠. 경실련이든 우리든 정부 비판을 엄청 많이 하는데 그런 소리는 다 묻히고, 어떨 때는 ‘참여연대마저’ 이런 식으로 악의적으로 활용하죠.

가장 안타까운 건 참여연대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모른 채 언론과 우익 매체들이 악의적으로 만들어낸 콘텐츠로 참여연대를 인식하는 분이 많다는 거예요. 낙인을 찍고 거기서 끝이에요. 태극기를 들고 청와대로 행진하는 분들이 입에 ‘빨갱이’를 달고 삽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자신들이 청와대까지 행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던 단체에, 광장을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로 바꿔서 시민의 광장으로 돌려놓은 단체에 그런 비난을 퍼붓는다는 걸 모르세요.

많은 분이 참여연대는 먹고 살만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안타까운 것 같아요. 엄밀히 말하면 저희는 한 달 살이거든요. 상근자가 57명 정도 되는데, 기본 유지비용이 상당하죠. 회원 회비로 운영하다 보니, 한 달 유지비용으로 간당간당해요. 그런데 많은 분이 참여연대는 먹고 살만하니 작은 단체를 후원하자고 하시죠, 으레 참여연대는 후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견?이 저희에게는 어려움인 것 같아요. 해외에서 참여연대를 찾아오는 단체들이나 연구자들이 많거든요. 회원 수십만 명 되는 엄청 큰 단체라고 생각했는데, 겨우 15,000명이 조금 넘는 회원이 있다고 하면 깜짝 놀라요. 더 많은 분이 한국 사회를 바꾸려 애쓰는 시민단체를 조금이라도 후원하는 데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Q.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개개인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시민단체가 나서는 것이 오히려 문제해결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시민단체들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이런 얘기는 2008년 광우병 집회 때부터 나왔어요. 그 당시에 사람들은 누군가로부터 지휘받는 걸 거부했어요. 수많은 조직되지 않는 시민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죠. 박근혜 퇴진 행동에서의 경험도 그랬어요. ‘시민의회’라는 걸 만들려다가 누가 함부로 대표를 자임하냐고 큰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죠. 맞는 말이에요. 단체들은 대표성을 자임하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줘야 해요. 사람들이 의견을 얘기할 수 있고,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장을. 사람들이 잘 모를 수도 있어요. 단체들이 그런 장을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공간으로 마련한다는 것을요.

2008년 광우병 촛불 당시 조직화된 운동은 끝났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단체 활동은 고유해요.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예요. 많은 시민이 청와대 청원도 하지만, 단체들은 실제 부지런히 국회를 찾아가면서 입법운동을 한단 말이에요. 개개인이 찾아가서 하기는 어려운 부분이죠. 단체는 자신의 역할이 있어요. 물론 환경이 변하는데 부응하지 못하고 구닥다리 방식이라면 도태되겠죠. 단체가 시민과 호흡하면서 온전히 자신의 역할을 하는 건 아주 필수적이라고 생각해요.

Q. 경실련과 참여연대의 관계는 어떻게 보면 동반자고, 또 다르게 보면 경쟁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참여연대의 입장에서 경실련 활동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 제가 작년에 경실련 후원 행사에 갔다가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어머나 우리 활동이랑 똑같잖아’싶어서요. 우리 활동과 경실련 활동이 굉장히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죠. 근데 실제로 제가 만나는 경실련 활동가는 2, 3명뿐이에요.
과거에 경실련은 연대 활동을 거의 안 한다고 들었는데, 실제 최근 빼고는 연대 활동의 기억이 거의 없어요. 제가 경실련 내부 논의는 잘 모르지만, 조금 더 적극적으로 연대 활동을 제안하고 함께해주신다면 시민사회 운동 전체로도 든든한 일이 될 겁니다. 체육대회 같은 것도 하고, 자주 만났으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올해 경실련이 30주년을 맞이했는데요. 이 내용을 읽고 있을 경실련 회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참여연대와 경실련 모두 회원으로부터 나오는 시민의 힘은 다르지 않을 겁니다. 회원이나 시민의 응원과 지원을 정말 중히 여기고, 서로 북돋아 가며 활동한다는 점도 같을 것이고요. 경실련과 참여연대 모두 시민의 힘을 믿고 운동하고 있는 거죠. 한 단체가 30년 운영되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걸 버티게 한 힘, 회원이 있기에 가능했을 거예요. 경실련과 함께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30년 축하 인사 드립니다!

월, 2019/09/30-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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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 경실련 아카데미

❝현장에서 회원과 함께 정의를 세우자❞

경실련이 초심으로 돌아가 “회원과 함께 사회개혁을 하면서 필요한 사항들을 실사구시 정신에 입각하여 정책화(회원+정책)”하는 시민운동단체로 전환하는 기반을 점검하고 역량 강화를 위한 방안을 전국 경실련의 회원과 임원, 상근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아카데미를 개최하였습니다.

❑ 주제 : 2018년도 제1차 경실련아카데미(교육대회)
❑ 기간 : 2018년 8월 20(월) ~ 22(수)
❑ 장소 : 효문화마을(대전 중구)
❑ 대상 : 전국 경실련 회원, 임원, 상근활동가
❑ 주관 : 경실련아카데미

– 단체사진 –

– 사회인권 감수성 향상을 위한 강연(난민인권센터 김성인 사무국장) –

– 사회인권 감수성 향상을 위한 강연(다산인권센터 박진 상임활동가) –

– 년차별 상근활동가 자유 토론 –

– ‘권력감시운동’ 어떻게 할 것인가(공익재정연구소 이상석 소장) –

전국에서 모인 경실련 가족들은 열띤 토론을 통해 앞으로 경실련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한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시민사회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명사들과 함께 운동 노하우를 주고받았습니다. 아울러 이를 바탕으로 창립 할 때의 마음 그대로 늘 한결같이 시민과 함께하는 운동단체로 거듭나고자 다짐했습니다.

목, 2018/08/2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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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9,10월호 30주년 특집]

“시민들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경실련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미영, 정원철 前 경실련 활동가

지난 30년, 경실련과 함께했던 수많은 활동가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경실련을 떠나 새로운 길을 찾아간 그들에게 경실련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경실련에서 청춘을 보냈고, 열정을 쏟았던 활동가들을 만나 지난날의 경실련과 앞으로의 경실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Q. 독자분들에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미영: 1999년 경실련에 들어와 정치입법팀의 간사로 일했습니다. 주로 정치, 사법, 지방자치 쪽을 맡아 활동했었다. 월간 경실련과 온라인을 담당하는 커뮤니케이션팀에서도 잠깐 일하기도 했고요, 2012년 정치입법팀 국장을 끝으로 경실련을 떠났습니다.

정원철: 반갑습니다. 국회 정성호 의원실 정원철 보좌관입니다. 1998년 정책실 간사로 들어와서 경제사회 분야의 모든 분과위원회를 담당했었고, 기획실 회원팀장, 사무처 부장, 통일협회 사무국장 대행, 정치입법팀장, 시민권익팀장(구 부추본) 등 대부분의 사업 부문을 경험했습니다. 당시 경실련 내부가 여러 내홍을 겪던 시기라 업무 공백을 메워야 했고, 저도 사무총장이 포부라 다양한 업무를 맡고 싶은 생각이 컸습니다.

Q. 경실련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그 당시, 경실련의 모습은 어땠나요?

김미영: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선거나 정당 쪽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 시민들과 함께 하는 정치개혁에 관심을 갖게 되며 자연스럽게 경실련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경실련의 내부 갈등이 외부로 드러나는 시기라 매우 어수선했습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다양한 사업을 쏟아내며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상근자들이 떠오릅니다.

정원철: 저는 좀 독특한 게 일찍부터 사회변혁에 관심을 가지고 고2 때인 1987년 ‘서고련’을 결성하고 노동운동, 학생운동 판을 기웃거렸습니다. 1992년 동구권 사회주의가 몰락한 뒤, 걸출한 운동권 선배들이 하나둘씩 현장을 떠나 대학 도서관으로 들어오는 걸 보며 좌절했습니다.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사회개혁 운동으로 진로를 잡았는데, 가장 먼저 올라온 경실련 채용공고를 보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가을의 토요일 오후, 그때 면접관이 하승창 정책실장님이셨는데, ‘사회주의 물이 덜 빠졌다’면서 면접이 아니라 한판 논쟁을 벌이고 퇴근해야겠다고 하여 같이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 내려왔습니다. 단테의 [신곡]을 읽어봤냐고 물으셔서 다소 건방지게 “남들이 뭐라 하던 네 갈 길을 가라는 말씀이시죠?”라고 말하고 각자 반대 방향으로 헤어졌던 기억이 납니다. 당연히 떨어진 줄 알고 참여연대나 가야지 하고 시름에 빠졌있는데 삐삐가 오더군요. 월요일부터 출근하라고.

첫 출근길, 앞에서 주머니 속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걸어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유종성 총장이셨습니다. 총장실에 들어갔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겁주는 말을 한 보따리 하시더니 사무국 조례에 들어가서는 반갑게 소개해주시더군요. 사무실은 마치 신문사처럼 책상 몇 개 모아놓고 위 천정에 부서 푯말이 흔들흔들 매달려있었고, 신입의 임무는 1층의 생수통을 5층까지 계단으로 눈치껏 나르는 것과, 정책실 막내로서 신문철과 천리안 기사 갈무리를 솔선하고, 기획실과 친분을 쌓아 A4용지를 확보하며, 성명서를 팩스로 동시·동보하는 일 등이 기본이었습니다.

Q.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하나만 말씀해주세요.

김미영: 2000년 총선 정보공개운동이 기억에 남습니다. 총선에 출마할 정치인들에 대한 정보공개 운동이었는데 낙천낙선운동으로 일반 시민들의 기억에는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며칠 밤을 새워가면서 보도자료를 만들고 하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에는 논란도 많고 비판도 많이 받았는데 가장 관심을 많이 받고, 가장 열심히 일했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정원철: 워낙 격동기라 무궁무진해서 하나만 꼽기가 어렵네요. 일단 평간사협의회의 출범입니다. 잇따른 내홍으로 붕괴된 상근역량의 재생과 사무국 의사결정구조의 민주성 제고가 목표였던 것 같습니다. 사업 단위별로 흩어져 배치된 평간사들의 소통에 도움이 됐고, 전체 경실련운동에 대한 이해와 참여도, 통합력을 높이는 데 의미가 있었다고 자평합니다. 그래서인지 간부들도 활동 초기에는 많이 배려해주었고, 환경련과 참여연대 등도 평간협을 만들겠다며 우리 사례를 묻곤 했습니다. 다음은 사무총장 경선이 생각납니다. 발런티어 그룹과 상근자 그룹이 각각 지지하는 사무총장 후보를 놓고 최초로 경선을 치렀는데, 지역 경실련과 함께 간접적, 비공식적으로 선거운동을 지원했습니다. 끝나고 조직정치가 이런 거구나 하는 체험, 권력의 맛과 두려움을 교훈으로 얻었습니다.

Q. 현재 자리에서 경실련의 활동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미영: 예전보다 뉴스에서 경실련 이름을 자주 듣지는 못하지만 SNS 등을 통해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최근 부동산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은 경실련 30년 역사의 가장 대표 활동으로 자리매김 해온 만큼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시민들의 관심 분야인 교육, 복지,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실련의 목소리를 예전보다 잘 들을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정원철: 지금의 경실련을 보면 예전 반짝했던 전동 타자기와 씨티폰이 생각납니다.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조직인데, 사회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조직 같다는 느낌입니다. 민주화 이행기와 주기적 정권교체,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지나는 동안 ‘레드 퀸’ 신세가 되었습니다. 주인 의식이 없어서 주인 없는 단체 신세인지 그 반대인지 그렇게 보입니다. 너무 매정한가요? 회비도 꼬박꼬박 내고 있고, OB로서 기대와 애정이 크기 때문이라고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오늘의 경실련운동이 조직 유지를 위한 타성에 젖은 활동인지, 시민 삶에 도움을 주는 이로운 활동인지를 잣대로 살펴봤으면 합니다. 거창한 공익은 못 되어도 최소한 회원들 이익 대변에 성실히 귀 기울이고, 민원 해결로 성과를 축적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도 방법일 것입니다(회원은 경실련운동의 아이템 촉수이자 홍보 첨병이며,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사회여론 그 자체입니다). 덧붙이자면, 머릿속 선진국의 정책과 사업 아이템을 찾아 주장을 내릴 게 아니라, 생활현장에서 부지런히 찾아 밀어 올려야 시민들이 경실련운동의 ‘효능감’을 느낄 것입니다. 새롭고 다르게, 모두 상근운동가의 몫입니다.

Q. 올해로 경실련이 창립 30주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경실련에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김미영: 경실련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계셔서 든든한 마음입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은 운동과 소통으로 시민들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경실련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원철: 축하합니다. 경실련 한 세대의 딱 중간에 있던 상근자로서 감회가 남다르다 보니 말도 길어졌습니다. 사무국 역량 강화가 핵심입니다. 경실련 초기 10년이 성장기, 다음 10년이 정체기, 최근 10년이 침체기였다면, 앞으로의 10년은 부흥기가 될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경실련이 맏형답게 새로운 시민운동의 전범과 표준을 만드는 퍼스트 무버가 되고, 10년 후 ‘초격차’를 이루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Q. ‘나에게 경실련은 OOO이다.’

김미영: 나에게 경실련은 ‘청춘’이다. 인생에서 가장 빛이 난다고 하는 20~30대를 경실련에서 보냈으니, 경실련을 생각하면 마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정원철: 나에게 경실련은 ‘군대’다. 운동권 선배들이 무슨 군 도망이 혁명가의 기본인양 읊어댔지만, 막상 제게는 유익하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책상물림에서 벗어나 팔도의 다양한 배경과 직업의 인간 군상들과 접하며 넓게 세상을 알게 되었고, 휴식 같은 사색과 위계조직의 원리를 학습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습니다. 또한, 경실련 생활은 제게 새로운 세계와 사람들과 실전 같은 훈련 경험을 강렬하고 짜릿하게 안겨 준 곳입니다.

지금의 경실련 활동가들에게 많은 숙제를 던져준 인터뷰였습니다. 경실련이 시민의 곁에서 더 많은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더욱 분발해야겠습니다.

월, 2019/09/3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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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9/04/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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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3,4월호 – 지역이야기]

꼼짝 마! 삼성!!

– 구미경실련과 Channel NewsAsia와의 인터뷰 –

 

정호철 재벌개혁본부 간사 [email protected]

감수: 조근래 구미경실련 사무국장 [email protected]

 

“삼성 스마트폰 공장도 이전한다는 소문이 사실이에요”? Channel NewsAsia의 특파원으로부터 국제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최근 삼성전자가 5G 네트워크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가운데 스마트폰 전체 생산량을 줄이고, 스마트폰 공장이 있는 구미지역의 공장 일부를 수원본사 등 다른 지역으로 투자·이전 시키면서, 아마도 “삼성 스마트폰 배트남 이전” 소문까지도 해외시장에 퍼진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중국의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가 자사의 네트워크장비 보안문제로 다소 휘청거리는 가운데, 그 틈을 타 삼성전자가 5G 네트워크 공급사업에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쏟아 붓고 있다”고 통신원은 우리에게 전했다. 더군다나, 올해 1월경 이낙연 국무총리가 삼성네트워크 사업장을 방문했을 때에도 이재용 부회장과의 비공개대담에서 5G네트워크 등 혁신성장 동력사업에 기술인력 투자를 요청한 적도 있었다.

 

 

Q) 혹시삼성이나 LG 등 대기구미 공장들의 구조조정 계이라도 있는 걸까요? 현재 구지역 고용현황은 어떤가요?

삼성의 해외시장에 대한 설비투자와 노동이동을 견제한 다소 노련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우리의 대답은 단호했다.

A) ... 적어도 삼성 스마트폰 공장만큼은 어디 못 갑니다!!!

이 같은 공장 철수/이전 논란은, 사실 지난 10년 동안 구미공단 일대에 대기업들의 생산비용 절감문제와 하청기업들의 지역경제 침체문제를 둘러싸고 갈등과 불안이 계속 반복돼 왔었다. 대표적인 제조업 도시인 구미는 1969년 조성된 구미국가산단 제1단지를 시작으로 지난 2012년에 제5단지를 착공하였지만, 이 후 기대와 달리 대기업들의 설비투자와 생산물량 축소로 인해 지역 하청기업들의 입주율과 공장가동률이 다소 저조한 실정이다 [도표1]. 특히 2017년부터 대기업 하청 제조업체의 고용인원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추세를 보였다 [도표2]. 일례로, 같은 해 LG는 소형 디스플레이 생산을 제외한, 대형 디스플레이 제조공장과 함께 직원 8천여 명을 파주로 이전시키기로 결정했다.

 

 

LG디스플레이 생산 공장 6곳 중 2개의 라인이 정지됐고, 직원들은 떠났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계속 더해졌다. 삼성전자는 2018년 6월경 구미 제1공장 네트워크사업부 생산인력 4백여명 중 50%를 수원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미 삼성그룹은 지난 2015년경에 제1공장부지 일부를 환화그룹에 매각했고, 현재 잔여부지 매각 협상이 진행 중이다. 뒤이어 삼성은 그룹 차원의 180조원 투자 5대 전략사업에서 구미제2공장 스마트폰 사업에 대한 투자를 제외시켰다. 공장직원들도, 개발자들도, 삼성임직원들도, 구미시민들도, 우리들 모두는 불안했고, 시민들은 수원이전을 반대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찬성했다. 정부와 대기업의 혁신-주도-성장 이면에는 하청-고용-축소와 같은 불안의 그림자가 구미지역에 차츰 드리워지고 있었다.

 

Q) 공장가동률이 꾀 낮은 편이네요. 그렇게 된 배경이 무엇때문인가요?

 

그들의 정책적 배경에 대한 우리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이 같은 철수/이전 문제의 원인으로,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로 인한 대기업 공장의 이전 및 타 지역을 잇는 내륙교통의 발달로 인한 상대적인 입지 경쟁력 감소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전자의 경우 글로벌 대기업이 구미와 같은 산업도시를 떠나게 되면 지역경제는 직격탄을 맞는다. 후자의 경우 삼성과 같은 글로벌 대기업들의 스마트폰 수출생산 공장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지에 따라 물류비와 인건비를 효율적으로 절감함으로써 사회전체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측면도 적지 않다고 할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 따르자면, 결국 지역경제와의 상생발전을 간과한 이재용 재벌총수와 문재인 정권의 “자유방임적” 재벌중심 정책, 즉 포용적 규제완화를 통한 끝이 보이지 않는 혁신-낙수-성장과 같은 구태정책에 대한 그들의 집착이 현재의 그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섬성과 정부는 구미 제2공장 스마트폰 단지를 향후 추가‧이전시켜서는 결코 아니 될 말이다. 삼성의 “인건비 혁신”은 산업전통과 지역 상생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뿐이다. 또 정부의 “자구적 혁신”은 포용적성장과 지역 균형발전에 땜질식의 처방으로서만 작용할 뿐이다. “구미공단 스마트폰 생산인력을 1만명에서 8천명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삼성의 비공식 구조조정계획 문건이 유출된 바 있다. 삼성은 정부의 눈치를 보며 이 문제에 대해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또한, GM군산공장의 철수와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중단 이후 지역 일자리정책의 “실패”를 두려워한 나머지, 이들 지역 간 전통산업경제의 공유와 양보의 미덕마저 이제는 정권에 의해 희생되고 있다. 정부 역시 삼성의 눈치만 보며 GM군산공장 부지에 투자할 것을 적극 요구, “개입” 해 왔다. 삼성과 정부에게 과연 구미란 무엇이었나? 그들이 해야 할 일이란 무엇일까?

 

A) 글세요, 보이지 않는 혁신에 손을 대려 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요즘 우리사회의 정책방향 대해 이 같은 말을 빌려서 정부의 강변(強辯)을 대체하고 싶네요.”

“제도적 인간”은 반대로 자신만의 상상에서나 꾀 현명할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은 종종 이상적인 정부계획의 제 멋에만 빠져, 그 어떤 정부계획의 일부에 대해 그 어떤 “타협”의 작은 진통조차도 겪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모든 부분에 걸쳐서, 대중의 큰 관심사나 또는 이에 반하는 강한 편견 속에서 아무런 숙고도 하지 않은 채, 정부계획을 독단하게 된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체스판 위에 다양한 말들을 배열하는 것처럼, 그들은 사회 내 다양한 구성원들을 손쉽게 배치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가 체스판 위에 있는 단일한(single) 각각의 모든 말들의 개별적 움직임의 원리를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즉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에 의해 사회구성원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인간사회의 거대한 체스판 위에 모든 단일한 말들에게 입법부(“정부”)가 원하는 “자유”를 줄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각 개체의 움직임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두 가지 움직임의 원리가 일치하고 같은 방향으로 작동 한다면, 인간사회의 게임은 순조롭고 조화롭게, 그리고 적절하게 성공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차이와 반목은 그 게임을 비참하게 만들 것이므로 우리사회를 언제나 병폐의 정점에 다다르게 할 것이다.―Adam Smith, The Wealth Of Nations, Vol. I, Chap. II, Pp. 26-7, para. 12.

수, 2019/03/2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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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3,4월호 – 우리들 이야기4]

< 문화산책 >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조성훈 정책실 간사
[email protected]

 

 

제주도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섬으로 인식되어 있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제주 벚꽃, 유채꽃 그리고 아름다운 바다 등… 하지만 우리는 아름다운 제주도에 켜켜이 쌓인 슬픔과 분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바로 제주 4.3항쟁에 대해서이다. 제주도에 남겨진 아픔과 상처를 보지 못했다면 제주도를 온전히 봤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몇 년 전 제주4.3평화공원에 다녀오기 전까지는 이름만 들었을 뿐 사건의 실체에 몰랐기에 제주도를 온전히 알지 못했다. 제주 4.3항쟁이 가진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제주 4.3항쟁은 한반도 전쟁의 축소판이라고 볼 수 있다. 1948년 좌익·우익의 개념조차 몰랐던 제주도민들이 토벌대와 무장대에 의해 무고하게 고통 받았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군인과 경찰이 집단 주민 학살이 벌어진 것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이는 한반도 전쟁 이후 발생할 집단 학살의 전주곡이기도 했다. 때문에 어느 학살보다 슬프고, 가슴 미어질 수밖에 없다.

제주 4.3항쟁은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도 희생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2000년이 넘어 55년이나 지나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대통령의 공식 사과가 있었다. 또한 4.3항쟁 66주년을 맞는 2014년 국가 기념일로 지정 되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는 이러한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깊은 참회가 필요하다.

당시 제주민들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할 요량이면 빨갱이라는 사슬에 묶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그 가슴 아픈 역사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제주4.3특별법이 통과된 직후 “이제는 마음 놓고 울 수 있느냐”며 울먹이던 희생자 유족들의 눈물이 이를 말해준다. 명백히 국가권력이 잘못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허나 제주 4.3항쟁에 대한 진실 캐기 작업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근현대사 전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글을 쓰기에 앞서 도움을 얻기 위해 읽었던 책이 있다. 바로 제목에 나와 있는 허영선 시인의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라는 책이다. 이 책은 쉬우면서도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게 제주 4.3항쟁을 다루고 있다. 책의 묘사는 굉장히 사실적이며, 구체적이다. 또한 구술과 증언을 바탕으로 작성해 매우 생동감이 넘친다. 그렇기에 당시 제주민들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책의 한 구절을 소개하고자 한다. ‘4.3은 말한다. 역사의 진실은 가둔다고 가둬지는 것이 아님을, 역사는 미래를 위해 있는 것임을. 인간의 역사는 계속되고 삶은 계속된다. 그러기를 나는 믿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했던 상처는 분명 드러내야 하고, 그 드러난 상처는 햇볕에 바짝 말려야 깨끗이 소독이 된다. 그래야 다시 새살이 돋는다.

최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망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여전히 이러한 행태들이 반복되는 것에는 앞에서 소개한 내용과 무관하지 않다. 광복 직후 반민특위가 해체 되면서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그 원죄가 수많은 양민 학살이 있었고, 군부독재를 탄생시켰으며, 반역사적 세력의 망언이 서슴지 않고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계속되고 반복되기에 이제라도 우리의 아픈 역사를 드러내고, 소독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제주 4.3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제주 4.3항쟁의 진실은 소중하며, 어려움에도 당시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아름다운 제주 벚꽃 이면에 놓인 그 슬픔 말이다.

수, 2019/03/2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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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3,4월호 – 우리들 이야기3]

“우리 엄마, 아빠들이 포기 안 하면 끝나지 않는 거니까
진실은 꼭 밝혀질 거예요!”

– 유경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前집행위원장(예은 아버님) 인터뷰 –

 

회원미디어국 윤은주 간사
[email protected]

 

 

▲ 지난 3월 11일 416연대 회의실에서 유경근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前집행위원장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5년이 됩니다. 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합니다. 많은 시민이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고 함께 아픔을 나누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마치 세월호의 끝인 것처럼 생각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때문에 탄핵당한 것이 아니고, 세월호의 진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그동안 이전 정권의 방해로 시작도 하지 못했던 진상규명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유경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前집행위원장(예은 아버님)과 만나 그간의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보았습니다.

 

Q. 세월호 2기 특조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A. 2기 특조위 정식명칭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요. 1기 특조위가 2016년 6월 30일자로 강제해산 당하고, 두 번째 특조위를 만들려는 것도 당시 새누리당이 이 집요하게 계속 방해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 환경노동위원회에서 2기 특조위를 위한 특별법을 준비하면서 가습기를 같이 다룰 수 있는 특별법을 만드는 거였죠. 가습기 사건도 진상규명이 필요하고 대책을 수립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문제는 최대 120명이라는 한정적 인원, 한정적 예산, 최대 2년밖에 안 되는 이런 조건 속에서 대규모 대형 참사 2개를 같이 다룬다는 게 현실적으로 힘든 문제라는 거죠.

그렇게 본회의 통과하고 준비 기간 거쳐 2018년 12월 11일 조사 개시선언을 했고, 이제 조사 시작한 지는 만 4개월 정도 넘어가는 시점입니다. 실질적으로 1기 특조위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거나 대폭 조사가 진전되거나 한 게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내용상으로 보면 거의 처음 시작을 하는 거라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에요.

 

Q. 1기 특조위는 강제해산 당해서 성과를 낼 수 없었다고 하셨는데, 그럼 선체조사위원회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A. 10개월 동안 활동을 했는데, 성과를 뚜렷하게 남기진 못 했어요. 본격적으로 선체 들어가서 조사할 수 있었던 것도 후반부 한두 달밖에 없기도 했고요.

보고서를 냈는데 ‘내인설’과 ‘열린안’ 두 가지를 내놓았어요. 세월호 침몰의 원인이 세월호 자체의 문제 때문이라고 보는 ‘내인설’로 결론 내린 파트가 하나 있고, ‘열린안’은 세월호 자체의 문제만으로 침몰을 설명하기는 매우 어렵고 또 다른 침몰의 원인이 있는지도 열어 놓고 봐야 된다는 건데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채택했어요. 결론이 없는 거죠.

선체조사위원회는 실패한 조사위원회라고 규정을 내릴 수밖에 없지만 매우 의미있는 실패를 했다고 저는 평가해요. 왜냐면 이전까지는 ‘열린안’에서 주장하는 또 다른 제 3의 힘이 세월호에 가해졌다는 것을 이전 정권에서는 모두 음모론으로 치부했어요.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탄압했고 검찰은 내인설, 기계고장, 과적, 선원실수로만 세월호 침몰을 설명하고 기소했었어요. 그런데 선체조사위원회가 공식적으로 그게 무엇이라고 단정 짓지는 않았지만 어떤 힘이나 조건이 세월호에 가해졌을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죠.

 

▲ 유 집행위원장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핵심은 왜 당연히 살아야 할 사람들이 죽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는 아직 밝혀진 게 없다고 말했다.

 

Q. 지금까지 밝혀진 의혹은 무엇이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의혹은 무엇입니까?

A. 어떤 시각에서 보면 다 밝혀졌고, 어떤 시각에서 보면 하나도 안 밝혀졌습니다. 구조와 관련해서는 해경이 탈출 방송 안 했고, 탈출시키기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는 게 이미 증명됐어요. 해경은 정확하게 선원들이 있는 곳에 정확하게 가서 그 사람들만 데리고 나왔고 일반 승객들을 적극적으로 구조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어요. 그저 한 것이라고는 스스로 탈출해서 물 위에 떠 있거나 배 위에 기어오른 사람을 옮겨 태우는 것만 했어요. 해경 대원들이나 비행기 타고 왔던 항공대원들이 배 안으로 단 한명도 진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미 다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침몰 원인도 모두가 저 배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고 예상했었어요. 기울어진 상태에서 계속 방송을 봤잖아요. 저 상태로 열 몇 시간 스무 몇 시간 떠 있을 거라고 했어요. 근데 그게 불과 한 시간 반 만에 완전 침몰 됐어요. 모두 이해할 수 없다고 했어요. 근데 왜 그랬나 조사해보니 선체조사위원회에서 드러난 거지만 배 안에 수많은 문이 있잖아요. 특히 배 하부에 기관실이라든가 사람들이 드나들기 위한 수많은 문이 있어요. 이 문들은 항상 닫아놔야 하거든요. 근데 그 수밀문의 대부분이 열려 있었어요. 왜 이렇게 빨리 침몰했냐도 밝혀진 거죠.

그런데 안 밝혀진 것은 뭐냐? 해경이 구조 안 한 거는 다 드러났는데, 그럼 왜 그랬냐? 충분히 구조할 수 있는 상황에서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는 안 밝혀진 거죠.

배가 급변침하고 침몰을 시작한 이후에도 살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이 됐었어요. 바다로 나오기면 해도 건져 올릴 배들이 참고 넘쳤었구요. 기울어진 그 상태에서 최소 1시간 이상의 시간이 있었어요. 사람들에게 갑판으로 나가라고 탈출하라고 바다로 뛰어내리라고 방송하고 명령하고 나서 모든 사람이 빠져나오는 시간을 시뮬레이션으로 돌려보니까 공통적 의견이 짧으면 6분, 길어야 8분, 6-7분이면 모든 승객이 바다로 탈출 가능한 조건이었다고 드러났어요. 최소 1시간이 있었어요. 여유있게 잡으면 1시간 20분까지 탈출할 수 있는 조건이었어요. 그 시간동안 해경이 한 일은 선수에 가서 조타실 선원들 빼오고 배 중앙에 가서 기관실 선원들 빼 온 거밖에 한 게 없었어요.

세월호 참사가 세월호 사고가 아니고 참사인 이유는 살 수 있는 304명, 당연히 살아야 하는 304명이 죽었기 때문이에요. 대부분이 살아 돌아왔더라면 세월호 사고라고 부르겠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핵심은 왜 당연히 살아야 할 사람들이 죽었냐? 그 과정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이걸 밝히는 거예요. 이 측면에서는 전혀 밝혀진 게 없죠.

 

Q.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새 정권 이후 달라진 게 있는지, 지금 정부에 바라는 점은 어떤 것들이 있으신가요?

A. 박근혜 정권 시절 진상규명이 안 된 것은 99%가 정권에서 방해했기 때문이에요. 강제해산 시키고 온갖 패악질을 다 했습니다. 새 정권은 많이 다르죠.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도 다르고, 기대부터 다르긴 합니다.

문재인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검찰이 수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꾸 해상교통사고, 안전사고로 보려고 하는데, 이건 사람을 죽인 살인 범죄에요. 특조위가 범죄 수사를 할 수는 없거든요. 특조위가 무엇을 밝혀야 하는지 과제와 방향을 제시하고 검찰이 수사해야 할 것들을 수사해서 조사와 수사가 어우러져서 진상규명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검찰 특별수사단을 설치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 유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박근혜 탄핵하려고 광화문 나가서 단식 한 게 아니고,

세월호 참사의 이유와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Q. 5주기를 맞아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A. 박근혜 탄핵이 우리한테는 플러스이기도 하지만 마이너스도 됐어요. 많은 사람이 박근혜를 탄핵하고 감옥에 보낸 것이 세월호 아이들 때문에, 엄마아빠들 때문에 시작이 될 수 있었다, 광화문에서 버텨주셔서 촛불 들 수 있었다고 얘기해주셨어요.

근데 정작 박근혜는 세월호 때문에 탄핵당한 게 아니에요. 정권이 바뀌고 나서 소위 함께했던 분들이 박근혜 감옥 갔으니까 됐잖아요, 벌줬으니까 된 거 아니에요? 라고 하는 데 힘이 쫙 빠지더라고요.

우리는 박근혜 탄핵하려고 광화문 나가서 단식한 거 아니에요. 세월호 참사의 이유와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싸우고 있는 거예요. 이제 진짜 진상규명해야 하는데 그 정도면 되지 않냐며 동력이 빠지고 진상규명 명분을 갉아먹는 전혀 예상치 않은 상황이 된 거죠.

5주기 맞아 추모문화제, 시민행사도 중요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제대로 교정해야 하는 것이 5주기 앞둔 피해자들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에요. 박근혜 감옥 보냈다고 해결된 문제가 아니고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세월호는 안전사고가 아니다. 범죄로 규정하고 범죄 수사를 제대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시민들과 다시 힘을 모아야 합니다.

놀러 가서 우연히 일어난 안전사고 프레임으로 끊임없이 몰고 가지만 우리 엄마, 아빠들이 포기 안 하면 끝나지 않는 거니까 진실은 밝혀질 겁니다.

 

하루라도 빨리 진상규명이 돼야
생명안전공원에서 나눌 교훈을 찾을 수 있다

 

Q. 4.16 생명안전공원 설립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생명안전공원은 기본계획 부지 결정 났고 실제로 건립을 위한 단계에 돌입했습니다. 용역 실시 중인데, 올 6-7월쯤 용역 결과 나오면 설계 공모가 들어갈 거예요.

생명안전공원은 세월호 참사의 의미와 교훈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라 대부분의 희생자가 청소년들이었잖아요. 대한민국 청소년, 젊은이들 또는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 데리고 부담 없이 찾아와서 도시락 먹고 잔디에서 뛰어놀며 이미 오래전에 그곳에서 뛰어놀았던 250명 언니 오빠들의 숨결을 함께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그 교훈을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장소여야 해요.

문제는 무슨 교훈을 나눌 것이냐 했을 때도 진상규명이 빨리 되는 게 중요한 거예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말자고 자꾸 얘기하는데 거꾸로 되묻는 거죠?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이 뭔데요? 어떤 사람들은 단순 교통사고라고 생각해요. 그럼 교훈운 구명조끼를 빨리 입어야 하고, 생존 수영을 가르쳐야 하고 해경 구조훈련을 강화해야 한다고 가는 거예요. 근데 해경이 구조훈련 못 받아서 구조 못 한 게 아니잖아요. 전혀 상관없는 얘기거든요. 진상규명이 안 된 채 자꾸 교훈을 얘기하면 이렇게 가는 거예요. 하루라도 빨리 진상규명이 돼야 생명안전공원에서 나눌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추모공원 떼어 버리고 생명안전공원이라고 굳이 부르는 이유도 추모공원 만들고 봉안시설 만들고 추모비 만들면 이제 그 일은 끝났구나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정부에서도 돈으로 배상해주고 추모비 하나 세워주고 가족들이 받아들이면 모든 게 끝나는 식으로 추모사업이 악용돼 왔단 말이에요. 우리는 그것을 거부하는 거예요.

 

Q.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생명안전공원은 세월호 참사의 끝이 아니고 진상규명의 시작이고 이유이고 동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이 생명안전공원 설계 공모에 참여해주시면 좋겠어요. 이 일은 유명한 건축가나 디자이너 같은 전문가들만의 일이 아니고 5년 동안 저희와 함께 공감하고 눈물 흘렸던 시민들이 그들보다 세월호 참사의 의미를 더 잘 아실 거 아니에요. 외국의 유명한 전문가들이 와서 한다고 해도 5년 동안 거리에서 싸우고 진상규명 외쳤던 시민들이랑 누가 더 많이 알겠어요? 누가 더 마음이 진심이겠어요? 시민들이 직접 팀을 만들고 대학생들 관련 공부하는 학생들 교수님이나 조교들 같이 모아서 하든지 동네마다 세월호 때문에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온 엄마 아빠들도 많거든요. 같이 모여서 논의하고 토론해서 아이디어 내주시고, 그걸 모아서 함께 설계할 수 있는 분들은 설계도 해서 실제 공모도 참여해주시고 이런 게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그것 자체가 진상규명을 위한 또 하나의 큰 동력이 되잖아요.

 

인터뷰를 마치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 걸 느꼈습니다.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이합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지도 진상규명이 돼야 찾을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2기 특조위에서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주셨는데, 하루빨리 진상규명이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수, 2019/03/2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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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3,4월호 – 우리들 이야기2]

제15기 2차 중앙위원회 현장스케치

“언제나 반갑고 고마운 전국경실련 동지들!”

 

윤은주 회원미디어국 간사
[email protected]

 

 

전국 팔도를 돌며 경실련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큰 행사가 있습니다. 바로 중앙위원회입니다. 이번에는 지난 2월 22일~23일 1박 2일로 서울 도봉숲속마을에서 모였습니다. 각 지역의 한해 사업보고 및 사업계획을 나누며 중요한 의결사항도 논의하고 승인하지만 무엇보다 반가운 얼굴들 만나 서로의 안부도 묻고 전국경실련이 함께 힘을 모으며 격려하는 자리입니다.

활동가의 삶이란 게 현실적으로 녹록치 않다는 것을 알지만 이전 중앙위원회 행사들 통해 밤을 새워 이야기 나누며 친해진 활동가들이 안 보일 때는 많이 아쉽습니다. 때로는 마치 서로의 생존을 확인하듯 남아있는 활동가들을 보면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안도하고, 안 보이는 이들을 떠올리면서는 경실련은 아니더라도 어디선가 좋은 동지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움을 달랩니다.

중앙위원회 행사는 크게 오후에는 정책협의회, 저녁에는 중앙위원회로 진행됩니다. 전국의 경실련 활동가, 임원들이 먼 길 달려와 모이자 박상인 정책위원장의 사회로 정책협의회가 시작됐습니다. 각 지역의 2018년 사업보고와 2019년 사업계획 발표와 경실련이 올해 30주년을 맞아 집중하기로 한 재벌개혁과 부동산 개혁에 대한 발제가 이어졌습니다.

 

 

발제 후에는 재벌개혁, 부동산개혁, 지방정부 공약이행평가 3가지 주제로 분임토의를 했습니다. 같은 시간 공동대표단도 모여서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인근 식당으로 이동해 함께 저녁 밥상을 나누고, 제15기 2차 중앙위원회를 시작했습니다. 권역별로 모인 참가자들 서로 인사하고, 이의영 의장이 개회 선언을 했습니다. 예산안과 사업보고•계획안, 군포경실련 재창립 승인의 건에 대해 의결하고, 권순남 외 16명을 중앙위원회 선출직 상임집행위원으로 선출했습니다. 끝으로 중앙경실련 김건희 간사와 양평경실련 김은미 간사의 선창에 따라 ‘경실련 우리의 다짐’을 함께 낭독하고 중앙위원회를 마쳤습니다.

올해는 팔도음식 나누기 대신 도봉산 아래 음식점에서 소박하지만 맛있는 음식과 깊은 대화로 길고 아름다운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산을 오르건 아니지만 1박 2일 도봉산 정기와 전국 동지들의 기운을 주고 받으며 올 한해도 전국 경실련 모두가 시민의 힘으로 희망을 현실로 만들 것을 다짐하며 중앙위원회를 마쳤습니다.

수, 2019/03/2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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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3,4월호 – 우리들 이야기1]

반갑습니다! 신입회원 인사드립니다!!

 

정준영 회원
[email protected]

 

 

안녕하세요!! 신입회원 정준영입니다. 저는 올해 32살 된 청년입니다.

제가 경실련을 알게 된 건 대학시절 동아리 지도 교수님이 지역경실련 지부장으로 활동하신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입니다. 평소에 인격적으로 존경하고 있던 교수님이 몸담고 계신 단체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경실련 페이스북 페이지를 2년 동안 구독하게 되었고, 다른 시민단체와는 다르게 외압이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지도 않으면서도 소신껏 공익의 목소리를 말한다는 걸 깊게 느껴 후원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저는 영등포에서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였습니다. 그곳에 단골로 오시는 폐지 줍는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다 그분 사연을 듣게 됐습니다. 할머니는 주택가에서 작은 슈퍼마켓을 하시다 대형 쇼핑몰과 편의점의 난립으로 가게 문을 닫게 되셨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망하게 한 편의점에서 폐기 도시락을 얻어가고 950원짜리 라면으로 매 끼니를 해결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꼈고, 현대사회가 아무리 경쟁이 필연적인 사회라고는 하나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난 사람들을 구제하는 방법이 없는 건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고대 중국의 유학자이자 성악설의 제창자인 순자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 ‘법의 뜻은 생각 안 하고 법조문을 알기만 하는 자는 모든 일에 있어서 혼란을 일으킨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글을 보며 약자와 정의를 위해 존재하는 법의 참 뜻을 망각하고 사법농단을 일으키거나 법조문을 이용해서 자기들의 이익만 꾀하고 법망을 피해가는 사람들이 떠오르며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기해년 새해에 당장 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이제 막 생각이 깨어 사회를 배우고 있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경실련을 통해 저희 세대들과 선배 세대님들이 합심해서 조금씩 바꾸어 나가길 기대합니다.

수, 2019/03/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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