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아프가니스탄의 미군 철수를 앞두고 아프간 사람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전 세계 회원과 지지자와 함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안전과 인권 보장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모으고자 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용감한 아프간 사람들을 위해 연대의 메시지를 올려주세요.
Q. 무엇을 하면 되나요?
8월 31일까지 본인의 소셜미디어에 해시태그 #UniteForAfghanistan#TogetherForAfghanistan와 함께 연대 메시지 혹은 짧은 연대 영상을 올려주세요!
* 트위터, 인스타그램에 연대의 메시지를 올릴 때는 @amnestysasia를 태그해주세요.
샘플 메세지
메시지 1)
아프가니스탄의 인권옹호자, 여성 리더와 학자, 활동가 등 많은 사람들이 탈레반 보복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한 목소리로 이들의 안전한 이동을 보장해야 합니다. #UniteForAfghanistan#TogetherForAfghanistan
메시지 2)
아프가니스탄은 지난 20년간 지켜온 인권의 진전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탈레반의 통제 아래 여성과 소녀들은 더 큰 위험 안에 있습니다. 용감한 아프간의 사람들과 연대합니다.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UniteForAfghanistan#TogetherForAfghanistan
메시지 3)
“전세계가 아프가니스탄의 사람들과 함께 합니다”
“용기 있는 아프간 인권옹호자와 연대합니다” #UniteForAfghanistan#TogetherForAfghanistan
아프칸의 군사 및 행정 조직의 급속한 붕괴는 미국주도의 노력만으로 아프칸의 정부가 자립할 수 없을 것이라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회의적 판단을 단적으로 입증한 것입니다.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지원했지만, 미국은 자립할 수 있는 아프칸 독자정부를 수립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워싱턴 DC –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장악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아프칸 국민과 국제사회가 품위있고? 안전하며 제대로 작동하는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20년 동안 노력한 것이 불과 몇 달 만에 무산되었습니다. 탈레반은 지난 일요일(2021-08-15) 놀랄만큼 빠른 속도로 국토 전역을 장악하고 카불로 이동하여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을 도피하도록 부추겼습니다.
탈레반이 아프칸을 짧은 시간에 사실상 무혈진입으로 장악한 상황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칸에서 미군과 연합군을 철수하도록 결정한 판단에 대해 명백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탈레반의 빠르고 용이한 카불의 입성은 바이든이 올바른 결정을 내렸음을 재확인할 뿐이며 이를 번복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프칸 정부군과 행정조직이 형편없이 붕괴된 사실은 카불 정부가 제 발로 자립할 수 있도록 미국이 주도하여 지원해야 한다는 전략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회의적 판단이 전적으로 옳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국제사회는 20년 가까이 수천 명의 인명피해와 더불어 수조 달러를 지출하면서, 알-카이다를 굴복시키고 탈레반을 격퇴하도록 아프칸 정부를 지원하고 조언하고 훈련을 시키면서 아프칸 정부군을 무장시켜 왔습니다. 또한 통치조직들을 받쳐 주면서 민간의 시민사회에도 투자를 하여 왔습니다.
그런 중에 상당한 진전도 있었지만, 이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탈레반의 빠른 진격에서 드러났듯이, 20년 간의 꾸준한 지원에도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아프칸의 통치조직을 만드는 데 실패했습니다.
실패한 배경에는 그러한 목표의 설정이 처음부터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프칸을 중앙집중식 단일국가로 만들려는 것은 애당초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이 나라가 지닌 산악지형, 인종의 복잡성, 부족 및 지역의 충성도는 지속적인 정치적 분열을 낳습니다. 서로에게 문제가 많은 이웃들과 외부의 간섭에 대한 적대감으로 인해, 제3국의 개입이 매우 위험했습니다.
이렇듯 피할 수 없는 상황은 아프칸을 서구적인 현대국가로 만들려는 모든 노력을 실패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달성할 수 없는 목표에 헛된 노력을 지속하는 일을 철회시키고 끝내려는 정치적으로 매우 힘들고 올바른 선택을 했습니다.
철수에 대한 결정은 한편에서는, 비록 미국이 추구한 국가의 건설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주요 전략적 목표인 아프간 영토에서 미국이나 동맹국에 대한 향후의 테러공격을 방지하는 일을 달성했다는 현실적 판단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알-카에다를 대대적으로 제거했으며, 아프칸에 있는 이슬람국가 IS의 조직이 아프칸을 넘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 공격을 수행할 능력이 없음을 확인한 것도 배경의 하나입니다.
그 동안 미국은 세계적으로 테러리즘과 싸우고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테러리스트 공격에 대한 미국토의 방어를 공동으로 강화하기 위하여 글로벌 파트너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오늘날 미국과 동맹국은 2001년 9월 11일보다 훨씬 강력한 테러의 목표물이 되었습니다만, 알-카에다는 2005년 런던폭탄 테러 이후 주목받을 해외공격을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탈레반이 다시는 알-카에다 혹은 이와 유사한 단체에 은신처를 전혀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탈레반의 조직은 스스로 규율을 제대로 지켜 왔으며 알-카에다와 같은 극렬한 단체들과의 파트너십을 다시 맺을 이유가 거의 없습니다. 탈레반은 또한 국제사회에서 정당성과 지지를 어느 정도 유지하기를 원할 것이며, 아마도 외국세력에 대한 테러공격을 기획하는 조직을 수용하려는 모든 유혹을 거부할 것입니다. 더욱이 이러한 그룹은 다른 지역(국가)에서 매우 쉽게 조직을 재편성할 수 있을 경우에, 구태여 아프칸에서 조직의 편성을 추구할 동기가 거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바이든이 아프칸에서 군사임무를 종료하기로 한 자신의 결정을 지킨 것이 옳았습니다. 그런 결정은 미국 유권자의 뜻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민주당 지지자이든 공화당 지지자이든 대부분의 미국 시민들은 중동의 “영원한 전쟁”에 대하여 인내심을 잃었습니다. 트럼프의 선거(재선될뻔한) 당시 방종적인 포퓰리즘으로 중동의 넓은 지역에서 미국이 과도하게 개입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것이 유권자들의 부정적인 반응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미국 노동자들 사이에서 경제상황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고 팬데믹의 엄청난 영향으로 악화된 현실상황에서, 미국의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세금이 아프칸의 칸다하르가 아닌 미국의 캔자스에 투입되기를 원합니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복원하려는 Biden 노력의 성공여부는 사실상 국내에 자원을 투입하는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 의회를 통과한 기반시설 및 사회정책의 예산안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중요한 단계입니다. 그러나 외교정책도 역시 중요합니다. 바이든이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을 추구하겠다고 약속할 때, 그는 이를 미국대중의 지지를 받는 국가외교정책의 브랜드로서 수행해야 합니다.
아프칸은 가까운 시일 안에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다행히 미국주도의 군사임무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안타깝지만 국제사회가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은 인도주의적으로 현재의 고통을 완화하고 아프칸인들이 평화롭고 안정적인 정치적 균형을 추구하면서 외교에서 타협과 자제를 모색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입니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on 21-08-16.
CHARLES A. KUPCHAN
연방의회 외교위원회의 선임연구원으로 역할을 하고 있으며 Georgetown University의 국제문제 교수이자 Isolationism: A History of America’s Efforts to Shield Self from the World 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지 시간 기준) 8월 24일, 유엔 인권이사회UN Human Rights Council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상황에 대한 특별 회의가 진행되었다. 이번 회의에서 유엔 인권 이사회는 아프가니스탄의 인권 보호 및 옹호를 강화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결의안의 내용은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격화되는 인권 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날 유엔 인권이사회가 국제법상 범죄와 인권 침해 행위의 감시를 위한 독립 메커니즘 구축 문제를 무시하며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을 저버렸다고 밝혔다
유엔 인권이사회 특별회의 개회식 당시 아프가니스탄 독립인권위원회, 유엔 인권최고대표, 유엔 특별절차 및 국제앰네스티를 포함한 시민사회 연설자들은 강력한 독립 조사 메커니즘 구축을 분명하게 요청했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있다면 국제법상 중대 범죄를 비롯한 인권침해를 감시, 보고하고 형사책임 용의자를 공정한 재판에 회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유엔인권이사회 회원국들은 이러한 목소리를 무시했다. 회원국들은 2022년 3월 유엔 인권최고대표의 추가 보고 및 갱신을 단순히 요청하는 정도의 약한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는 기존 감시 절차에서 달라진 것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회원국들은 강력한 감시 메커니즘을 구축하라는 시민사회와 유엔 기구들의 분명하고 지속적인 요청을 무시했다
아녜스 칼라마르Agnès Callamard,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
아녜스 칼라마르Agnès Callamard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은 “유엔 인권이사회 특별회의에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격화되는 인권 위기에 명확하게 대응하는 데 실패했다. 회원국들은 강력한 감시 메커니즘을 구축하라는 시민사회와 유엔 기구들의 분명하고 지속적인 요청을 무시했다”며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보복 공격을 당할 중대한 위험에 처해 있다. 국제사회는 이들을 배신해서는 안 되며, 국외로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도록 더욱 시급히 노력해야 한다. 각국은 이제 그저 절망에만 빠져 있지 말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의미 있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
가즈니 지역에서 하자라 남성들이 학살되었다는 국제앰네스티의 최근 현지 조사 결과는 살인과 고문까지 할 수 있는 탈레반의 능력이 조금도 약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유엔 회원국들은 몇 주 후 다시 개최되는 인권이사회 회담을 통해 오늘의 과오를 바로잡아야 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현재 진행 중인 범죄와 인권침해에 대해 기록, 수집할 수 있는 강력한 조사 메커니즘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배경 정보
탈레반은 최근 몇 주 사이 아프가니스탄 전 정부가 붕괴함에 따라 아프간을 장악하게 되었다. 국제앰네스티는 학계 전문가, 기자에서부터 시민사회 활동가, 여성인권옹호자까지 탈레반에게 보복을 당할 중대한 위기에 놓인 아프간 국민 수천 명을 보호할 것을 촉구했다.
국제앰네스티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21년 7월, 탈레반이 가즈니 지역을 점령한 이후, 이곳에서 소수민족인 하자라 남성 9명을 학살한 것이 확인되었다. 탈레반은 점령한 다수의 지역에서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해당 지역의 휴대폰 서비스를 차단했고, 지금까지 장악한 영토를 고려했을 때 이처럼 잔혹한 살인은 탈레반에 의해 발생한 총 사망자 수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일출처럼 예측가능한 막무가내의 강경파, 기회주의적인 외국혐오파, 심지어 일부 합리적인 평론가들도 아프가니스탄의 참패로 인해 미국의 신뢰가 손상되거나 파괴되었다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New York Times 의 Uber-hawk Bret Stephens 는 이제 “대만, 우크라이나, 발트해 연안국가, 이스라엘, 일본 등 모든 동맹국이 스스로 아프칸 상황에서 교훈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대만의 사기를 떨어뜨리려는 의도적인 시도로 중국정부 대변지인 Global Times 는 상기의 Stephens의 의견에 동의하고 대만 지도자들에게 중국이 공격한다면 미군은 그들을 도와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카불의 함락은 “대만 미래운명의 징조”임을 암시합니다. 일반적으로 냉철한 정신을 지닌 Financial Times 의 Gideon Rachman조차도 Biden에 대한 신뢰성이 “파괴”되었으며 아프가니스탄의 재난이 “서구사회가 미국의 안보보장에 의존할 수 없다”는 주장과 “완벽하게 들어맞는다”고 믿습니다.
뉴욕타임즈의 Stephens 발언은 아마도 현재의 시점에서 지나치게 상황을 과장을 하고 있고 Global Times는 내용은 무시해도 좋은 선전용이지만, 일반사람들은 심호흡을 하고 긴장을 풀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적인 결과가 미국의 신뢰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여럿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단순한 논리입니다. 중요하지 않은 이익을 위해 헛된 전쟁을 계속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은 ‘보다 심각한 이익이 위협을 받을 때 상대국과 싸울 것인지’에 대한 결정과는 무관합니다.
20년이 지난 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2,500명의 미국인이 사망하고 1조 달러 이상을 지출한 것이 미국이 알래스카, 하와이 또는 플로리다를 방어하기 위해 맹렬히 싸우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고 결론지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한 진지한 사람이라면 미국이 중국이 아시아에서 패권을 확립하는 것(거의 없을 것 이지만)을 방치하거나, 러시아의 NATO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러한 경우에 우리는 미국안보에 매우 중요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이해관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미국 안보자원의 장기적인 고갈을 제거함으로써(아프가니스탄에 최소한의 미군 주둔에도 연간 400억 달러 이상 비용이 소요됨) 아프칸에서 철수하면 미국이 보다 중요한 우선순위에 시간, 재정 및 관심을 집중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보다 중요한 이해관계를 방어할 수 있는 능력과 이러한 문제에 집중할 정치적 관심을 높일 수 있으며, 따라서 제시한 여러 공약을 불신하기 보다는 보다 신뢰할 수 있게 만들 것입니다.
George F. Kennan이 베트남 상황에 대하여 말했듯이, “사치스럽거나 전망이 없는 목표를 완고하게 추구하는 것보다 잘못된 입장을 단호하고 용감하게 청산함으로써 세계로부터 인정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경험의 역사는 철수에 대한 확신의 두 번째 원천을 제공합니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50,000명 이상의 군대를 잃은 후 똑같이 굴욕적인 패배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철수와 뒤이은 사이공의 함락은 NATO의 붕괴를 일으키지 않았고, 아시아의 미국 동맹국들이 소련이나 중국과 연합하도록 이끌지 않았으며, 미국의 다양한 중동 클라이언트 국가들이 미국과 관계를 단절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케넌의 말이 맞았습니다. 전쟁을 끝내고 미군은 특히 베트남의 시대에 무시되었던 재래식 전력의 재건에 착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4년 후, 오히려 소련이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버려졌고 염려했던 도미노 현상은 동유럽에서 발생했습니다.
1979년 이란 샤(황제)의 몰락, 1984년 레바논에서 미국의 철수, 1994년 소말리아에서 철수, 또는 실패한 미국의 이라크 점령과 같은 자질한 여러 차질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심각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지만 그 어느 것도 다른 국가들에게 미국이 더 이상 도움을 구하고 소중한 자산과 가치를 지닌 막강한 강대국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유일한 예는 아닙니다. 영국은 유럽의 정치가들에게 오랫동안 “배신적인 알비온(영국인에 대한 비속어)”으로 조롱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영국이 필요에 따라 동맹을 맺고 끊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국가들의 정부는 공동의 이익을 반영할 때 강력한 동맹을 신뢰할 수 있으며, 맹목적인 충성만으로 강대국이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할지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셋째, 미국의 신뢰에 대한 외국의 비판을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미국의 보호에 의존하게 된 국가들의 엘리트들은 워싱턴이 자신의 국가를 위하여 보다 많은 일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하여 일부러 미국의 신뢰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엉클 샘(미국)이 외교적 정책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상황에 보다 많은 자원을 쏟아 붓지 않기로 결정할 때마다, 어딘가에 동맹국이 나타나 더 이상 미국을 신뢰할 수 없다고 선언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워싱턴은 많은 무기를 보내거나 고위관리가 손을 잡고 추가지원의 서약을 제공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상대국에게 날아가는 방식으로 대응합니다.
아프칸 개입에서 배워야 할 핵심적 교훈은 미국이 지닌 자기과신의 위험입니다. 과연 미국의 지도자 중에 누군가 이점을 인식하고 있을까요?
공정하게 말해서,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전쟁과 비극적인 결말은 모두 미국의 평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약속의 신뢰성을 부정할 만큼 실제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은 2006년, 2009년, 2011년, 심지어 2017년에도 철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많은 미국 파트너들이 아프칸에서 떠나갈 때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전에 주장한 바와 같이, 미국이 지닌 세계영향력의 핵심 요소는 상황을 읽고, 어려운 선택을 하고, 현실적인 목표를 선택하고, 잘 설계된 전략을 수행하는 성실함을 포함하여 능력과 훌륭한 판단력에 대한 평판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방금 일어난 일은 미국의 외교정책기관이 여전히 이러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지만, 그러한 문제제기는 20년 동안 계속되어 왔던 일입니다. 적절한 교훈은 미국이 소위 내용없는 신뢰를 위해 어리석은 전쟁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반복적인 오류를 결정한 인사들에게 책임을 묻고 그들이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저지르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기 모든 것이 일부 국가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걱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가장 염려해야 할까요? 오랫동안 자신의 방어를 소홀히 하고 미국의 보호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부유한 미국의 동맹국이라면 이제 그러한 접근방식의 판단을 재고하고 싶을 것입니다. 당신이 무능하고 불법적인 지도자이고 정부가 부패로 가득 차 있다면 Ashraf Ghani(아프칸 대통령)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빠르게 굴기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에 비하여 약한 강대국(중국)은, 미국이 아프칸이라는 수렁에 빠진 20년 동안 막대한 이익을 받았다면, 이제 미국이 점차 정신을 차리고 미래에는 자신의 발등에 총을 쏘는 어리석음의 가능성이 줄어드는 점에 대하여 걱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방어에 정당한 몫을 지니고 아시아 지역에 대한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충실한 합리적인 파트너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출처 : Foreign Policy(포린폴리시) on 2021-08-21.
Stephen M. Walt
하버드 국제관계학 분야의 석좌교수로 해당분야에 구루로 평가받고 있으며, 포린-폴리시에 정기적인 칼럼을 제공하고 있다
메흘랍 자밀은 연구자이자 지역사회 교육자로, 파키스탄의 역사적인 트랜스젠더법(2018) 초안 마련을 도운 인물입니다. 이 법은 관련법 중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것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힘겨운 상황 속에서 연대가 가져오는 막대한 위안과 힘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여러분의 성장 환경은 어땠는지 알려주세요.
나이로비저는 정말 끔찍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제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가족들은 절대 인정하지 않았어요. 결국 제가 열세 살이 되던 해 가족들은 제 성적 지향을 이유로 저를 내쫓았습니다. 저는 산토 도밍고 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향정신성 물질을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트랜스여성이 되기까지의 전환 과정은 매우 힘겨웠습니다.
메흘랍저는 펀자브 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삶을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다 생활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러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 도심 지역으로 이주했습니다. 지금은 지역사회에서 운영하고 파키스탄의 젠더 및 성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HOPE(‘긍정적인 기대만 가져라’)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젠더 이분법에 반대하고, 가부장제를 거부하고, 자본주의 전복을 모의하며 차이chai를 아주 많이 마시는 것이 제 일상입니다. 그냥 평범해요.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나이로비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여자 옷을 입는다며 “게이 자식faggot”이라고 불렀습니다.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선택지가 없어 생계를 위해 성노동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제도권에서는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포주 없이 혼자서 일을 시작했지만 다들 그렇듯이 많은 위험에 직면했습니다. 매일같이 경찰의 검문을 받았습니다. 경찰은 저를 폭행하고, 제 돈을 빼앗고, 그들과의 구강 섹스를 강요했습니다. 옷을 벗으면 그동안 당해온 부당대우로 인해 생긴 흉터가 모두 드러납니다. 각 흉터가 생긴 날짜와 시간까지도 정확히 말할 수 있어요.
배제와 낙인, 차별을 끝내기 위해 계속해서 싸워야 합니다. 사회적 배제는 우리의 인권 침해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나이로비 카스티요, 도미니카 트랜스젠더 및 트랜즈베스타이트 성노동자 커뮤니티COTRAVETD 이사장
메흘랍트랜스젠더, 그 중에서도 특히 저희 지역 출신 사람들은 언제나 불운한 희생자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억압당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그렇게나 알고 싶어하면서도, 정작 우리를 억압하는 제도에 맞서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폭력을 매일 마주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조차 우리의 방식대로 발언할 기회를 전혀 얻지 못합니다.
현재의 상황에 저항하기로 마음먹은 순간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나이로비활동가가 된 때 저는 29세였습니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연합여성운동Movement of United Women이라는 단체가 폭력이나 체포, HIV로 고통받는 여성 성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이런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저희 지역에는 트랜스젠더 문제를 다루는 단체가 없었습니다. 성노동자의 요구는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노동자 단체를 결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죠. 그렇게 2004년 COTRAVETD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메흘랍하루에도 그런 순간들을 몇 번이나 겪는 것 같아요. 변화를 위해 싸우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우리의 조직적인 활동은 동떨어지고 개인주의적인 인권 프레임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같은 사람들을 위한 정의를 요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안젤라 데이비스Angela Davis의 말처럼, 집단 속에서 우리는 희망과 낙관이 잠든 저수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룬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요?
나이로비COTRAVETD을 이끈 것입니다. 저희는 어린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에 대해 잘 알 수 있도록 교육 활동을 진행하고 군과 경찰의 트랜스젠더 인권침해 중단을 위한 인식 제고 및 교육 워크샵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약을 복용하는 트랜스젠더 성노동자였던 제가 이 단체의 대표가 되고 약물 남용을 극복하기도 했다는 것이 큰 성과입니다.
저는 퀴어의 미래를 꿈꿉니다. 트랜스젠더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억압의 제도적 근원을 해결하는 강력한 정치적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메흘랍 자밀, 조사관 겸 지역사회 교육자
메흘랍저는 제가 이룬 것보다 제가 하지 못한 일들에 더 호기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부장적인 가족 안에서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 트랜스젠더 의제를 우익 정부에 이해시키지 못한 것처럼 말이죠. 제 존재 자체와 인간성을 끊임없이 말살하는 사회에 안주하지 못한 것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저는 제 실패를 통해, 제가 살아남고자 노력하고 있는 이 사회의 폭력성과 제가 저항하려는 폭력을 지지하는 구조에 대해 매일 새롭게 배워가고 있습니다.
나이로비도미니카공화국 공문서에 우리의 이름과 성 정체성을 반영할 수 있는 성 정체성 법이 필요합니다. 정부의 보호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도 시급합니다. 메흘랍씨, 당신은 이 멋진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었나요?
메흘랍모두가 노력한 결과입니다. 트랜스젠더 법은 무엇보다도 성 정체성과 표현에 관한 자기결정권과, 차별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권리를 인정합니다. 변호사, 활동가, 연구자들로 구성된 저희 팀은 이 법안이 의회에 제출될 때 경제적으로 가장 소외되고 폭력에 취약한 성소수자 사회의 요구를 특히 대표할 수 있도록 쉬지 않고 노력했습니다. 파키스탄의 입법 절차는 아시다시피 매우 배타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이기 때문에 장벽을 허물고 진입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경찰의 만행과 범죄조직의 폭력에 맞서 목숨 걸고 싸웠던 용감한 트랜스젠더 전사들이 있었기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전세계의 트랜스젠더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이로비배제와 낙인, 차별을 끝내기 위해 계속해서 싸워야 합니다. 사회적 배제는 우리의 인권 침해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더 크게 목소리를 내고 의사 결정자들에게 영향을 미쳐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우리가 직접 선택한 이름으로 부를 수 있도록 스스로 힘을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메흘랍우리는 온몸 구석구석에 사회의 수치를 품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몸으로 태어나 우리의 신체에 대해 직접 결정할 권리를 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받습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폭력과 삭제, 증오로 얼룩져 있습니다. 이미 우리의 삶은 충분히 고통스러우니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지는 맙시다. 자신과 주변 사람에게 친절해지고 서로 보살피는 문화를 만들어나갑시다. 그리고 변화를 위해 다 같이 행동합시다.
미래에 대한 가장 큰 꿈은 무엇인가요?
나이로비제 꿈은 우리나라에서 젠더 정체성 법이 통과되고, 고령이거나 갈 곳이 없는 트랜스젠더들과 HIV에 감염돼 가족들에게 거부당한 트랜스젠더들을 위한 쉼터를 만드는 것입니다. 트랜스젠더들이 더 이상 성 노동자가 될 필요가 없도록 다른 고용 기회들이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제 꿈입니다.
메흘랍저는 퀴어의 미래를 꿈꿉니다. 트랜스젠더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억압의 제도적 근원을 해결하는 강력한 정치적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트랜스젠더 자매가 지구 반대편에서 비슷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아주 소중한 경험입니다. 서로의 투쟁을 통해 더 많이 배울 수 있도록 다국적 연대를 만드는 것에 대해 더 많이 대화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국경을 넘어선 자매애를 통해 저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얻고 있습니다. 당신의 활동 이야기를 듣고 매우 큰 영감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정말 훌륭해요. 당신은 지역사회의 희망의 빛입니다. 소망이 모두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더욱 큰 힘이 되기를!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지금, 북한은 ‘확진자 0명’이라는 발표를 통해 국제사회의 놀라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북한의 발표를 접한 사람들은 그 신빙성에 의문을 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북한의 보건의료 환경에 궁금증을 가지기도 합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지금, 북한은 ‘확진자 0명’이라는 발표를 통해 국제사회의 놀라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북한의 발표를 접한 사람들은 그 신빙성에 의문을 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북한의 보건의료 환경에 궁금증을 가지기도 합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북한 보건의료 전문가 2명을 직접 만나 북한의 보건의료 상황에 대해 함께 짚어 보기로 했습니다.
북한의 보건의료 실태와 변화, 그 속에서 북한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건강권을 살펴보면서 북한 보건의료 환경을 효율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남북한 1호 한의사 김지은
– 북한 청진의학대학 동의학부 졸업
– 북한에서 9년간 내과, 소아과, 임상의학연구소를 거치며 의사/한의사로 근무
– 2000년대 초반 한국 입국
– 한의사 국가시험 합격
– 現한의사
남북한 1호 약사 이혜경
– 북한 함흥약학대학 졸업
– 북한에서 12년간 약사로 근무
– 2000년대 초반 한국 입국
– 약사 국가시험 합격
– 통일학 박사
– 現약사
김지은 씨와 이혜경 씨를 언급할 때마다 항상 따라오는 수식어는 ‘남북한 한의사 1호’, 그리고 ‘남북한 약사 1호’ 입니다. 두 사람은 북한에서 각각 한의사와 약사로 일했습니다. 탈북 후 한국에 정착한 두 사람은 각각 한의사, 약사 국가고시에 합격해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활발히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북한과 한국 양쪽의 보건의료 환경을 직접 경험한 전문 보건의료인과의 대화를 통해 북한의 보건의료 실태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1보건의료인의 삶을 통해 본보건의료 실태
한때, 눈 앞의 현실을 마주할수록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지부, 김지은 한의사김, 이혜경 약사이
북한에서 보건의료인으로 일하는 것은 어땠나요?
북한에서는 의사라 하더라도 한국처럼 여유로운 삶을 누리진 못해요. 북한의 의사는 일반 노동자와 같이 국가로부터 급여와 배급을 받고 살아요. 그래서 국가의 경제가 어려우면 의사의 생계도 어렵고… 때문에 제 생활도 정말 힘들었죠.
1990년대 중, 후반, 잘 알고 계시다시피 북한에서는 대기근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던 ‘고난의 행군’ 시기가 한창이었어요. 당시 저는 병원 소아과 의사였죠. 의사로서 어린아이들이 끊임없이 죽어 나가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지켜 보고만 있자니 그걸 견디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병원 근무 후 퇴근할 때 집에 가면서 ‘내일 아침에는 어느 침대가 비어 있을까?’와 같은 생각에 괴로웠어요. 아침에는 ‘그 아이일까, 아니면 다른 아이일까?’하는 생각을 하며 출근했죠.
병원 근무 후 퇴근할 때 집에 가면서 ‘내일 아침에는 어느 침대가 비어 있을까?’와 같은 생각에 괴로웠어요. 아침에는 ‘그 아이일까, 아니면 다른 아이일까?’하는 생각을 하며 출근했죠.
약사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겠군요?
국가에서 나오던 배급이 사실상 없어졌지만, 병원에 있던 약국에 나가 계속해야 했죠. 물론, 먹고 살기 위해 약사 일이 끝나면 다른 일을 찾아 나서야 했어요.
약사라고 하면 뭔가 잘 살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생계유지조차 힘들었어요. 한국식으로 말하면 투잡, 쓰리잡을 뛰어야 했죠. 저는 이런 상황을 표현할 때마다 ‘낮에는 사회주의 일(병원 약사)을 하고, 밤에는 자본주의 일(장마당 장사)을 했다’고 말해요.
비교적 최근에는 상황이 바뀐 것 같아요. 새로 생겨나기 시작한 시중 약국에서 일하는 약사는 그럭저럭 괜찮게 산다고 볼 수 있어요.
장마당의 활성화는 의약품 수급 구조를 바꿨다
배급제가 사라졌다고 했는데 병원에 들어가는 의약품도 중단되거나 줄어들었나요?
‘자급자족하라’는 당국의 지시가 내려와 산에 올라가서 약초를 캐 그것으로 약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병원에서는 건초말린 약초를 이용해 고려약한약을 만들어 필요한 약제를 어느 정도 수급할 수 있었어요. 경제난으로 ‘무상치료제’와 같은 의료 제도를 유지하기 버거워지다 보니 국가에서는 원래 병원 안에만 있던 약국을 병원 밖에도 만들어 사람들이 돈 주고 약을 살 수 있도록 했어요.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모든 약국은 국영이었어요. 대략 2005년부터 평양을 시작으로 시중에 약국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이때부터 개인이 운영권을 가진 약국이 곳곳으로 퍼져 나갔죠.
결국 국가에서 필요한 약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니 민간에 의약품 수급을 맡기기 시작한 거군요?
시중의 개인 약국을 통해 약을 팔 때는 보통 ‘7·3제’를 기본으로 해요. 7·3제란 개인 약국에서 약을 팔면 수입의 70%는 국가에 바치고 나머지 30%는 약사가 가져가는 거예요 즉, 국가가 주도하는 장사이자 임대 개념으로 볼 수 있어요. 개인이 운영하는 약국이라고는 하나 한국처럼 온전히 개인이 약국의 모든 권리를 가지는 것이 아닌, 기본적으로 국가 소유의, 운영권만 개인이 가지는 약국이라고 보시면 돼요.
그러면 지금은 일반 사람들이 약을 구하거나 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는 말인가요?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중국에서 많은 약이 들어왔어요. 이렇게 되자 나라에서 공급하는 약이나 자급자족한 약에만 의존하던 모습에서 장마당에서 약을 구하는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어요.
최근 들어서는 장마당에서 일반 사람들이 약을 구하기 더 쉬워졌어요.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중국에서 많은 약이 들어왔어요. 이렇게 되자 나라에서 공급하는 약이나 자급자족한 약에만 의존하던 모습에서 장마당에서 약을 구하는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어요.
여전히 의약품을 구입하는 것은 비용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북한에는 민간요법이 성행한다는데 어떤 약이 어떤 식으로 사용되는지요?
‘아편’과 ‘빙두’를 쉽게 구할 수 있어요. 아편의 경우 우리 선조들이 민간요법에서 사용한 것과 같이 지사제나 통증 완화의 용도로 많이 사용돼요. 빙두는 흔히 우리가 영어로 메스암페타민, 일본어로 히로뽕이라고 부르는 향정신성의약품이에요. 사람의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것인데 이를 투약할 경우 자극에 무감각하게 되죠. 아픈 사람이 이것을 복용하면 일단 통증이 다 사라지고 기분도 좋게 만들어주다 보니 사람들이 차츰 접하게 되었던 거죠.
아무리 치료 목적이라지만 마약에까지 손을 댄다고요? 그게 가능한가요?
북한은 동네 곳곳마다 역삼대마이나 양귀비아편의 재료가 심겨 있어요. 북한에서는 해당 작물을 재배하는 게 위법행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마약 사용에 대해 윤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해요. 쉽게 접할 수 있고 저렴하다 보니 사람들은 이런 마약에 자연스럽게 손을 대게 되는 거죠.
오늘내일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상황에 처해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아편이나 빙두를 사용하는 것에 부작용이나 윤리적 문제를 고민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사치와 같아요. 이들에게는 순간적인 고통을 당장 면하기 위해 사용되는 하나의 약일 뿐인 거죠.
한 단면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기는 힘들다
무상치료제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병원에 약이 없어 환자가 필요한 약을 직접 구해와야 한다… 얼핏 보기에도 모순적인 것 같아요. 의사와 약사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일해야 했나요?
제가 일하던 병원 과에 6명의 의사가 있다고 하면 3명은 오전에 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나머지 3명은 나가서 먹을 것을 구하고 그랬어요. 가끔 며칠씩 교대로 다른 지역으로 가서 물건을 사고팔거나 동네에서 순두부 등 음식을 만들어 팔기도 했죠. 그러다가 상황이 더욱 안 좋아지면서 감당할 수 없게 되니까 병원에 있던, 환자에게 써야 할 약을 돈 받고 팔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환자들이라고 해서 모두 다 아주 없거나 그러진 않았기 때문에 가끔 치료가 급한 환자가 의사를 보러 올 때는 뇌물을 가지고 오기도 했어요. 뇌물이라고 하지만 보통 두부, 통강냉이 같은 먹을 것 위주였죠. 어쨌든 그런 환경에서는 먹고 사는 게 최우선이다 보니 그런 식으로라도 생계를 유지해야 했어요.
의료인들은 나라에서 나오던 월급과 배급이 끊기자 당장 자기가 먹고살 방법이 없어졌어요. 환자 진료 이전에 자신의 생계부터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죠.
그렇다 보니 돈이나 먹을 것과 같은 뇌물을 건네줘야 환자에게 좋은 처방을 내려주는 식으로 바뀌고 있어요.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외부 지원이 전보다 늘어나면서 외국 약이 많이 들어갔어요. 하지만 이렇게 들어가는 약 중 상당량이 뒤로 빼돌려져 장마당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알려졌죠. 결과적으로 보면 장마당으로 약이 흘러 들어가서 사람들이 필요할 때마다 돈을 주고 약을 구할 수 있게 되긴 했어요.
의료인들은 나라에서 나오던 월급과 배급이 끊기자 당장 자기가 먹고살 방법이 없어졌어요. 환자 진료 이전에 자신의 생계부터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죠.
생계를 위해 의료인들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마주하는군요. 윤리적인 측면에서 이와 같은 모습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세요?
북한의 경제난이 심각하다 보니 여러 ‘비정상적인’ 행위들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모습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기는 해요. 하지만 한 단면만 가지고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다고 봐요.
북한의 의료인들이 부패하거나 인간성이 없다고 비난하기에는 그 사람들이 처한, 국가에서 나와야 할 월급과 배급이 끊긴 상태에서 맡은 일을 수행해야 하는 동시에 생계를 이어갈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그런 열악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쉽게 평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의료라는 것은 마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특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의학 자체는 학문이에요. 하지만 의료 행위를 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그 행위가 얼마만큼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가가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북한 의료인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환자에 대한 마음가짐, 그것은 제가 볼 때 국제적으로도 높은 수준이 아닐까 해요.
보건의료인들의 삶을 통해 북한 의료 실태를 살펴보면서 환자뿐 아니라 의료인 역시 열악한 보건의료 시스템의 피해자일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음 화에서 다룰 북한 보건의료 제도 속 변화의 모습에 대해서도 더욱 궁금해집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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