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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올림픽이라는 황금의 기회를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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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올림픽이라는 황금의 기회를 놓쳤다

admin | 월, 2021/08/23- 19:41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올림픽휴전을 선언한 이래로 올림픽은 인류사회에 주요한 외교의 기회였습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남한은 북한의 참가를 독려하여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외교적으로 성공시켰고, 이로써 잠재적 전쟁 가능성을 억제하고 남북한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과 당시 트럼프 미국대통령 간의 일련의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도쿄올림픽 기간 동안 이와 유사한 외교적 돌파구는 없을 것입니다. 문 대통령은 도쿄방문의 가능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돌출한 일본 고위외교관의 저속한 모욕으로 인하여 올림픽 참관을 거부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말실수의 사고는 단지 지난 몇 년 간 얼어붙은 한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기회를 낭비한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는 일본정부가 가장 가까운 이웃과 민주주의와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외교를 펼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현재의 한일간 대치상태가 시작된 지 2년 반이 조금 넘었습니다.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은 한국이 일본제국의 식민지였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예로 징집된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일본기업이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에 일본은 첨단산업의 핵심소재들에 대한 수출통제를 시행함으로써 보복을 가해 외교적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일본이 수출통제의 해제를 거부하자, 한국은 일본과 군사정보공유협정을 취소하겠다고 위협했으나, 미국이 개입하면서 정보협정이 공식적으로는 취소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유예되었습니다. 2년이 지난 현재에도 상황은 개선의 기미가 없습니다. 일본의 수출통제는 여전히 유효하고 한국은 일본과 군사정보공유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총리는 2020년 9월 총리가 된 이후 문대통령과 한번도 정상회담을 한 적이 없습니다. 지난 6월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한일간 정상의 짧은 만남으로 정상회담을 잠정 합의하였으나, 일본정부가 이를 취소된 뒤 문-스가 정상회담은 결렬됐습니다. 문대통령이 개막식에 참석하고 스가 수상과 만남을 갖는 등 두 나라가 다시 도쿄올림픽을 기회로 활용하는 것에 도전했지만 이의 실패로 양국관계는 빠르게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한국은 수출통제해제와 같은 실질적인 결과를 원했지만 일본은 배상을 명령한 한국대법원의 결정에 대한 해결책을 테이블에 가져올 것을 요구했습니다. 정상회담의 형식도 문제였습니다. 한국은 심도 있는 논의를 위해 1시간 동안의 회담을 원했고, 일본은 올림픽을 위해 방문하는 다른 고위인사들과 마찬가지로 15분간의 짧은 사간만을 고집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방의 사건이 터졌습니다. 소마 히로히사 주한 일본대사관 고위외교관(총괄공사)은 7월 16일 한국언론인과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회담제안에서 “자위행위를 하고 있다”면서 일본은 한국만큼 한일관계에 대해 주요하게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일본 대사는 “매우 부적절하고 유감스럽다”며 사과했지만 상황을 돌이킬 수는 없었습니다. 발언사건 이전에는 한국대통령의 자문단 내에서 도쿄를 방문할지 여부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게 갈려져 있었으나, 발언이후 신속하게 결론을 내리면서, 결국 개회식을 나흘 앞둔 7월 19일 청와대는 문대통령이 도쿄를 방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소마의 저속한 발언은 보다 커다란 문제를 암시합니다. 일본외교는 한국과 지저분한 불만에 휘말려 있습니다. 냉담하고 이익에 기반한 분석을 하였다면 번영하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서 가장 가까운 이웃과 보다 개선된 관계를 선호했을 것입니다. 2년 전, 도쿄당국의 한국과 무역전쟁이 나쁜 생각이었다면, 현시점에서는 반도체 공급망의 보호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및 국가안보문제 중 하나로 부상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거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반도체 수급문제로 인하여 자동차 및 전자제품의 글로벌 공급부족이 발생하면서 가격이 치솟고 있습니다. 현재시점에서 세계에 자동차와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가장 정교한 유형의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국가는 한국과 대만 두 곳뿐이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은, 특히 차세대 반도체 공급국가로 중국이 부상함에 따라, 이들 국가의 공급망을 보호하는데 노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만약 일본정부가 의도한대로 작동하여, 일본의 무역전쟁으로 한국의 반도체생산이 중단되었다면 글로벌 공급망이 훨씬 어려움을 겪으면서 매우 취약해 졌을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무역전쟁은 일본의 힘을 과대평가했기 때문에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정부는 첨단소재의 수출을 제한하면 한국기업들이 무릎을 꿇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만, 이는 틀렸습니다. 일본의 무역전쟁이 실패한 것은, 일본의 소재생산기업들이 다른 국가들보다 기술적으로 앞서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긴밀하고 효율적인 제조 프로세스를 지닌 한국회사들이 국제적인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과 신뢰가 사라지자, 한국의 하이테크 기업들은 신속하게 일본의 공급업체들을 미국, 대만, 중국의 국내 생산업체와 기타 공급업체들로 대체했습니다. 2020년 말까지 한국의 일본산 불화수소 수입(수출통제대상 3대 소재 중 하나)은 한국의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야기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무역전쟁 이전의 수준보다 86% 감소했습니다. 도쿄당국은 한국기업들이 일본의 자비를 구걸하게 만드는 기술적인 우위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의 결과로 나타난 것은 무역전쟁으로 인하여 일본의 재료산업계가 피해를 입었을 뿐이었습니다. 최근판 특집에서 아사히 신문은  일본이 지불해야 하는 노예노동배상금보다 훨씬 큰 경제적 손실을 일본기업들에 가한 “극단적인 어리석음”으로 수출통제를 비판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본당국의 자폐적 장애는 일본의 경제적 이익을 손상시키는 것 이상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과 중국에 대응해 한·미·일 3국의 협력에 집착하고 있으나, 그동안 미국은 일본의 방해주의적 자세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사례로 4월 2일 메릴랜드 주 아나폴리스에서 한미일3국 국가안보보좌관 회의가 열렸고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대북정책을 검토하였습니다. 서훈 국가안보보좌관은 바이든 행정부의 “조정되고 실용적인 접근 “에 동의를 표명한 반면에, 일본의 키타무라 시게루(Shigeru Kitamura)국정원장은 미국국가안보 보좌관인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이 짜증을 낼 정도로 북한에 대하여 매우 융통성없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스가 수상이 문대통령과의 회담을 거부할 때마다 일본이 3국 협력의 장애물이라는 강한 인상을 미국에게 심어주었습니다.

일본당국은 올림픽의 성공에 모든 노력을 경주한 최선의 계획을 무산시킨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에 대한 책임이 없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올림픽을 활용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값비싼 기회를 놓쳤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가혹한 평가가 아닙니다. 아마도 10월로 예정된 총선으로 스가 총리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일 정상회담을 거부하는 것은 일본의 입장을 개선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무역전쟁은 한국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고, 어쨌든 한국대통령의 입장은 대법원에 판결내용을 스스로 뒤집으라고 명령할 수 없습니다.

한편, 미국이 3국협력을 더욱 강조하면 할수록, 전쟁범죄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의 강박관념은 부조리하게 보일 뿐입니다. 도덕적으로나 외교전략적으로나 일본당국이 취해야 할 바른 길은 항상 분명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유산(결과)을 인정하고, 배상금을 지불하고, 가장 가까운 민주주의 이웃국가와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출처 : Foreign Policy(포린폴리시) on 2021-07-29.

S. Nathan Park

워싱턴에 거주하는 한국계 이민출신의 변호사이자 세종연구원의 객원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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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국내 대부분 쓰레기 언론들이 구미의 시각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중국과 호주 간 갈등의 원인이 중국의 강압정책에 있는 듯 다루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미국의 요구에 휘둘린 ‘호주의 트럼프’라 불리는 모리슨 현직 수상의 맹목적이고 무개념적 외교정책에 있다. 반면에 미국의 고객국가라고 불리는 일본은 매우 섬세하고 치밀한 양동작전으로 미중 간의 실리외교를 펼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초기부터 한국에 대하여 QUAD 등 대중국 압박에 참여를 한층 강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호주 모리슨의 어리석음은 비슷한 조건에 처하여 있는 한국에 반면교사의 가르침을 제공한다.


켄버러 시의 연방의사당에서 발언하고 있는 호주 수상 Scott Morrison

현재의 중국과 호주 간 관계는 지난 수십 년이래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호주는 중국과 통상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미합중국과 동맹관계를 강화하고자 시도해 왔다. 그러나 현재는 상기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지난至難한 일이 되어 버렸다.

지역 내의 다른 국가들은 중국과 호주 간 상황의 진척을 예의주시하고 있는데, 이를 교훈삼아 향후 중국과 관계를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전직 호주의 주중대사이었던 Geoff Raby는 최근의 저술에서 ‘강대국들은 자신의 뜻대로 하려 하지만, 주변국가들은 자신의 이해를 지켜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종속이라고 좁게 해석해서는 안된다’라고 조언하고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외교는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도 주권의 존엄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균형적 외교라는 적용은, 해당 지역에 동등한 세력을 가진 강대국들이 합법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경우,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호주가 주권적인 독립성을 주장하는 역량의 성공여부는 중국과 교역(무역액의 30% 수준)에 의해 자국의 경제적 번영이 달려 있는 상황과 연계되어 있다.

반면에 호주의 안보구도는 미합중국과 동맹에 의해서 제공받고 있다. 호주는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여러 갈등 현안들에 대하여 미국의 입장을 자발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누가 미국의 도움을 요청해야 할 만큼 호주에게 위협을 가한단 말인가?

지난 수십 년 동안 호주는 안보와 관련하여 주변의 상황을 애매모호한 불안정 상태로 정의하고 있었으며, 상황에 따라 제한된 개입의 조치를 설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최근의 안보백서를 통하여 중국을 일차적이며 현존하는 위협으로 규정하면서, 국방관련 부처들의 강경한 발언과 이에 호응하는 정치적 행위가 이어졌다.

이에 따라 중국은 친구로 간주하였던 호주를 견제하기 시작하였다. 호주가 중국 국내의 문제들에 대하여 외부의 적대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것은, 자신들의 현안에 중국이 개입한다고 소리높여 비난하는 것처럼, 중국을 경멸하는 행위이다.

더구나 이러한 적대적 행위는 중국과 정면으로 대결할 수준의 군사력을 진행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상황이 발생하면 제한적인 물리적 개입을 하겠다는 신호로 인지되고 있다.

최근 미중 갈등 구도 속에서 보여준 호주의 행보는 지역 내의 다른 국가들에게 모범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호주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모습을 보이면서 중국의 분노를 야기시키고 있다. 호주는 미국에게 종속적인 정책의 모습을 취하는 것에 더하여 미국에게 군사적 근거지를 확대 제공하면서 마중의 갈등에 대리전을 치르는 양상이다.

당연하게 중국은 이러한 사태에 여러 조치로 대응하였으며, 더욱 놀라운 사실은 호주가 중국의 조치들에 대하여 화들짝 반응을 보인 점이다.

미국의 점증하는 압력이 배경으로 작동하면서 호주가 독자적인 주권적 정책을 추구하기 어렵게 만든 측면이 있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미국의 정책을 따라 하듯이 이루어진 결정은 사실 호주가 독자적으로 시행한 것이라고 Scott Morrison 수상은 영국의 싱크-탱크에게 확인하여 주었다.

확인할 수는 없는 내용이지만, Morrison 수상은 국제적인 기구(미국?)가 현재의 중호 대립구도에 개입하여 해결해줄 결정적인 역할을 기대하면서 현안 타결(재구성)의 가능성을 기대한 듯 하다.

지역내의 다른 국가들은 중국과 포용적 관계를 유지하며 때로는 갈등의 조정을 기대하면서 과거의 호주가 취했던 일본식 접근을 지켜보고 있다. 일본은 지역 내에서 분명히 호주보다 강력한 세력이며 미중의 갈등 상황에서 국가주권이라는 현안에 대하여 훨씬 구체적인(예민한) 현안을 지니고 있지만, 호주처럼 중국에 대하여 과장된 적대정책을 취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중국과 관계를 성공적으로 관리하면서 신뢰할만한 정책적 형식을 제공하고 있다. 일본은 시진핑 주석과 아베 총리 그리고 후임인 요시다 스가 총리와 정기적인 회합을 갖도록 환경과 조건을 조성해 왔다. 호주처럼 먼저 치고 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중일 양국간에는 여러 현안과 갈등을 장관급 수준에서 잦은 회합을 통하여 조정하고 해결하는 유의미한 접촉을 유지하고 있다.

호주가 아시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아시아 국가들도 호주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현재 어려움에 처한 호주 스스로 외교라는 수단을 잘못 사용하면서 자초한 측면에 크다. 이 지점이 지역 내 다른 국가들이 호주를 바라보면서 배워야 할 사항이다.

 

출처 : 중국국제방송 CGTN on 2020-11-29.

Daryl Guppy

호주인으로 국제금융의 기술분석 전문가로 활약하면서 지난 십 수년간 중국 주요 매체에 상해주식에 대한 주간분석을 제공하고 있으며, 미국의 CNBC에도 Chart-Man이라는 애칭으로 자주 출연한다. 현재 중국-호주 경제협의체 이사를 겸하고 있다

금, 2020/12/2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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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한국정치학계의 큰 기둥역할을 하고 계신 임혁백 교수님이 코로나 사태에 대하여 문명사적 시각으로 매우 소중한 글을 남겨 주셨다. 아래의 글은 첫 번째로 현재의 팬데믹 이전에 있었던 유럽중세의 흑사병에 대한 회상적 성찰이고, 이후 두 번째 글은 현재 진행중인 사태에 대한 분석, 그리고 마지막에는 향후 전개될 인류사회의 미래 모습에 관한 전망으로 향후 격 주간 세 번에 걸쳐 연재하고자 한다.


이 그림은 부뤼겔이 그린 Triumph of Death입니다. 패스트 창궐로 엄청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해골이 되어 춤추는 그림에서 부뤼겔은 패스트의 비극과 참상을 너무도 리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기본은 “칭기스칸과 그 후손들이 지구를 흔들자 카리프들은 넘어졌고 카이사르들은 왕좌위에서 떨었다”고 하면서 칭기스칸과 후손들의 유럽침공으로 일어난 황화(yellow peril)를 두렵게 바라보았다. 몽골과 타타르인들의 유럽침공은 중동과 유럽의 중세군주들의 권자를 무너뜨렸고, 유럽인구의 1/3을 몰살시킨 흑사병으로 중세의 봉건적 생산양식을 종언시켰고, 중세 소작농과 농노를 임금노동자로 전환시킴으로써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지배적으로 만들었고, 구빈법이라는 국가복지제도를 출현시켰다.

몽골군대에 의한 황화는 역설적으로 중세를 끝장내고 근대의 도래를 앞당기는 “의도하지 않은” (unintended consequences) 진보적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몽골군은 1346년에서 1348년 사이에 크리미아반도의 카파Kaffa시를 포위, 공격하였고 카파의 슬라브 군주가 결사항전하자 몽골군은 페스트 시체를 투석기로 성안으로 던져놓았고 카파성은 페스트가 퍼져 모든 사람들이 죽었고, 이웃 성과 도시로 번졌고, 카파를 탈출한 사람들은 콘스탄티노플, 시실리, 제노아, 베니스로 1347년에서 1348년에 도망하자 페스트는 이태리 반도로 확산되었고 베니스와 제노아의 상선에 탄 페스트 환자들이 프랑스, 스페인, 노르웨이의 번화한 항구에서 내리자 페스트는 유럽대륙으로 확산되었고, 1348년 5월 8일 영국에 상륙하자 흑사병은 유럽전역을 전염시킨 판데믹이 되었다. 흑사병으로 불리는 뷰보닉 플레이그 (bubonic plague)로 유럽인구의 1/3이 사망하는 대재앙이 발생하였다.

지오반니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에서 “교회 뒤뜰에 거대한 참호가 파졌고, 수백구의 시체가 배의 수하물칸처럼 차곡차곡 계속 쌓여져 갔다” 증언하였고, 이븐 할둔은 “파괴적 전염병은 나라를 황폐화시키고 수많은 인구를 소멸시켰다, 모든 인간이 거주하는 땅을 변화시켰다.”

뷰보닉 플레이그는 유럽전역을 휩쓸면서 유럽 전체 인구의 1/3의 생명을 앗아갔다. 페스트는 신분과 계급을 가리지 않았다. 고귀한 분들이 빈민들과 함께 속수무책으로 병마에 쓰러졌다. 엄청난 인구 감소는 봉건제적 생산양식을 파괴하고 중세를 종언시켰다.

인구감소는 엄청난 노동력 부족사태를 불러왔고, 임금을 폭등시켰다. 토지의 가치가 폭락하자 영주와 토지귀족들은 기존의 현물지급에서 현금지급으로, 물납제에서 금납제로 바꾸는데 동의하면서까지 농민들을 자신의 땅에 묶어 놓으려했으나,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지주들은 농민들이 자신의 장원을 탈출해서 자유 노동자로 변신하여 높은 임금을 주는 농장으로 이동하는 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봉건제적 생산양식이 변화하면서 봉건적 계급관계도 변화하였다. 농민들은 지주의 땅에 묶여 현물급여를 받는 농노와 소작인에서 화폐임금을 받는 농촌임금노동자로 변신하여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의 이행의 주체가 되었다. 페스트로 인한 엄청난 인구감소는 살아남은 농촌노동자의 협상능력을 강화시켰다. 지주들은 기존 임금의 3배를 주고라도 노동자를 고용하려 했다.

대토지귀족과 영국 왕은 노동조례(Statute of Laborers, 1351)를 통해 노동자들의 이동을 제한하고 임금을 흑사병 이전 수준으로 고정시키려 했으나, 노동시장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두 배 이상 상승시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임금상승과 지대하락으로 영주와 기사들의 재정은 압박을 받은 반면 노동자들은 귀족들이 입던 옷과 먹던 음식을 소비할 수 있었다. 기득권 영주와 지주들과는 달리 새로운 젠트리라는 신중산계급이 등장하였다.

그들은 토지귀족 출신은 아니나 도시에서 투기를 통해 번 돈으로 파산한 지주의 토지를 사들였고 상업적 농업의 선두에 섬으로써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의 전환을 주도하는 부르주아지를 형성하였다. 노동력부족은 국가와 토지귀족으로 하여금 농촌빈민들을 땅에 묶어놓는 조치를 강구하게 하였다. 그들은 농촌빈민들의 이동과 유랑을 금지시키고, 그 대신 그들에게 최소한의 구빈을 제공하는 잔여적 복지를 제공하였다.

그 결과 영국에서 최초로 빈민을 위한 구빈법이 출현하였다.(Poor Law Act and Statue of Artificiers, 1388) 뷰보닉 플레이그의 “의도되지 않은 결과”로 서구의 농민들은 봉건적 예속에서 해방되었고 해방된 자유노동자들과 몰락한 토지귀족의 땅을 사들인 젠트리 중산층에 의한 농업의 상업화로 봉건제 생산양식과 그에 기반한 중세의 복합시스템은 종언을 고하고, 유럽의 도시화와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앞당겨졌다. 동구의 국가와 토지귀족들의 대응은 달랐다. 동구의 국가와 토지귀족은 장원에 예속된 농민들이 자유노동자로 해방시켜줄 것을 요구하자, 강압력을 동원하여 그들을 다시 장원의 노예로 가두어놓는 재농노화(reserfdom)를 강요함으로써 봉건제의 종식이라는 시대정신에 역행하였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 지스트 석좌교수

금, 2020/05/01-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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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에 북 붕괴론은 심심찮게 터져 나온다. 많은 진원지들이 있겠지만, 그 1차적 진원지는 아무래도 체제이탈자(본 글에서는 탈북자 대신, 체제이탈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유는 이 용어가 보다 개념설명에 더 부합한다고 보기 때문이다)집단이 아닐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체제이탈을 합리화해야 하니, 북 비난에 대한 욕망을 쉽게 뿌리칠 수 없다. 2020년 현재 약 3만 명 정도의 체제이탈자들이 국내에 거주하면서 생기는 곱잖은 부작용이다.

박근혜 정부 때는 정말 심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북 붕괴론을 공개적으로 언급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2016년 8월 22일 당시 박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북한 엘리트층조차 무너지고 있고, 주요 인사들까지 탈북과 외국으로의 망명이 이어지는 등 심각한 균열 조짐을 보이는 등 체제 동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망명을 계기로 내부 균열을 언급한 것이다. 그 이전(2011년 6월) 이미 이명박 대통령은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이다. 한밤중에 그렇게 올 수 있다”고도 했다.

2차 진원지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의 농락 때문이다. 미국의 딥스테이트 세력 및 국내의 보수·수구세력들의 정치적 집합체들이라 할 수 있는 미래통합당 등 정당 및 보수·수구계열의 국민운동체와 같은 부류의 시민사회가 한 통속이 되어 끊임없이 ‘가짜뉴스’를 생산해낸 부작용이다.

한 예로 1996년 게리 럭(Garry Ruck)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미하원 안전보장위원회 세출위원회에서 북의 봉괴에 대해 “붕괴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인가라는 시기의 문제이다”라고 진술했다. 1년뒤 2010년에는 커트 캠벨(Kurt Campbell) 당시 국방부 부차관보는 미국을 방문한 일본 의원단에게 “북은 6~7개월 버틸까 말까 하는 상황”이라고 장담했다.

3차 진원지는 조·중·동으로 대표되어지는 보수·수구 언론매체 및 그들에 기생해 있는 보수·수구계열의 전문가(학자, 지식인 등)집단들이고, 여기에 ‘국방의 의무’보다 직업 군인화된 군인집단도 예외이지 않다.

아래와 같은 상황을 상정해 그 대응책으로 한·미 당국이 수립한 ‘작전계획 5029’ 의 일부내용을 보면 ‘①식량난으로 굶주린 주민들의 불만이 증폭되고, 다수가 국경을 넘는다. ②민심을 의식한 지도층 다수가 불만을 표출하며 북한을 탈출한다. ③급기야 민중봉기가 일어나고 군부가 호응해 정변을 일으킨다. ④김정은을 제거하고 정권을 교체 내지 전복시킨다.’ 등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함의해주는 바를 잘 생각해볼 일이다.

‘3-3-3 붕괴설’은 그 정점이다. 전형적인 묻지마식 붕괴설이었고, 그 시작은 19994년 김일성 주석이 서거하자 빠르면 3일 혹은 3개월, 그것도 아니라면 3년 내에는 반드시 붕괴할 것이라는 뉴스와 확증편향이 우리사회를 유령처럼 떠돌게 했다. 그렇지만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김정일 체제로의 안착이었다.

끝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심심찮게 정체불명의 북 붕괴설은 계속 터져 나온다. 고난의 행군시기(94-97)에도, 김정일 서거 이후에도, 장성택 숙청을 전후한 시기에도, 그리고 가장 최근은 김정은 건강 위중설과 맞물려 또 터져 나왔다. 이 결과 역시 모두가 없었던 일로 되었다.

그런데도 왜 이 ‘양치기 소년’현상은 없어지지 않을까?

참으로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는 거짓말이 그렇게 지속되면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주장이 용납되지 않거나, 설 땅이 없어져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어찌됀 판인지 계속하여 어떤 필요에 따라 부활하고 있으니 이 어찌 이상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중심에 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과는 하등 상관없이‘북은 반드시 붕괴되어져야 할’그들의 맹신적 사유체계가 조·중·동이라는 매체를 타고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일 께다.

결과, 우리 국민들은 단 한 번도 북에 대한 실체적 진실과 직면해보지 못했다. 오히려 북 지도자가 죽으면, 내분이 일어나 자멸하는 북 시나리오만 정답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는 그렇게‘붕괴 확증편향’으로 그들의 공범이 되었고, 그 공범의식은 또다시 그들에게 정치적 사냥감으로 작용하여 북 붕괴를 거의 맹신에 가까운 믿음으로 작용하게 했다.

그렇게‘양치기 소년’현상이 왜 발생하지 않은지는 설명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껏 우리 모두가 이렇게 목도한 이 모든 확증편향이 단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고, 향후에도 실현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해서 이 글은 바로 그런 실체도 없는 북 붕괴설, 어떻게 하면 허위가 밝혀지고, 그들이 있는 그대로의 북을 이해하는데 도움 될까를 고민한 끝에 앞선 글들과 마찬가지로 대신해 묻고, 대신해 그들에게 답 준다.

 

1. 과연 그들은 북 붕괴론에 대한 개념적 정의가 있는가?

 알다시피 북 붕괴론이 대한민국과 서구사회에 하나의 인식적 흐름으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1980년대 말에서 1990년 초까지 봇물처럼 터진 현실사회주의권 몰락 및 붕괴가 그 직접적 원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근거도 충분하다. “오늘날 제아무리 북한이 부인하더라도 전 세계 사람들은 공산주의 진영 대부분이 붕괴된 것처럼 결국에는 북한도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믿고 있다.” (<북한의 협상전략>, 366쪽 참조.)

다시 말하면 후쿠야마(Francis Hukuyama)의 역사인식, 즉 그가 <역사의 종말>에서 ‘자유민주주의체제로 역사는 이미 끝났다’는 그 우월적 인식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 지독한 열병은 참으로 고치기 어려운 악성종양으로 남아 우리를 내내-분단극복과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괴롭히는 주범노릇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우리가 진작 주목해야 되는 것은 그 반전이다. 후쿠야마는 이후 그 정의적 명제가 틀렸음을 뒤늦게 인정하고, 트럼프의 정치행태를 보며 “민주국가도 퇴행(현지시각, 2017.2.9.)”가능하다는 수정인식을 선보인다. 해서 사회주의체제만 몰락(혹은,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체제도 충분히 몰락할 수 있다는 그 상상력이 필요한데, 그런데도 우린 여전히 몰락한 사회주의체제만 눈에 들어오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이념으로 인해 엉망진창 되어버린 자본주의체제의 위기와 몰락은 못 보고 있다.

더해서 우리가 북 붕괴론과 관련하여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북 붕괴론의 실체가 불명확하거나 없다는데 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말하는 북 붕괴론이 명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어느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으니 실체가 없다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겠다.

복잡하지도 않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소멸(몰락)하는 것인지, 아니면 동구권에서와 같이 사회주의체제에서 자본주의체제로 전환된다는 의미에서의 체제전환을 뜻하는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의 지배 체제(좁히면 김정은 체제)가 쿠데타나 시민봉기 등에 의해 붕괴되어 권력층의 교체가 일어난다는 의미에서의 지배체제 변동을 의미하는지… 그 어떤 것인지에 대해 그들 자신도 모른다.

그러니 그들 자신들도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과 필요에 따라 북 붕괴론을 남발시킬 수밖에 없고, 진작 북 붕괴론 실체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며 주구장창 그냥 북 붕괴설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들 자신도 북 붕괴론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그냥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내뱉는 술수언어일 뿐이고, 비례적으로 우리 국민 모두는 그들이 말하고 있는 북 붕괴론이 무얼 의미하는지, 또 어떤 실체를 갖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정말 북 붕괴론을 그들이 현실 가능한 상황으로 믿고 있다면, 그들의 섭리 상 아주 철저하게 붕괴의 의미를 정확하게 정립해 효과적으로 대국민 설득과 홍보에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보다 더 정확할 것이다. 왜냐하면 북 붕괴론의 실체가 없으니 그럴 수밖에.

마치 이는 마르크스가 1848년에 발표한 <공산당 선언>,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고 했듯이 북 급변사태도 시도 때도 없이 필요에 따라 온 대한민국을 휘젓게 한다. 혹세무민(惑世誣民)도 이런 혹세무민이 없다.

 

2. 북 붕괴론은 현실화될 수 있는가?

백번 양보해 그들의 문제의식을 선의적으로 해석해줘 만약 북 붕괴론 실체가 있다고 한다면, 그건 아래 3가지로 요약정리 가능할 것이고, 그것에 대해-그 3가지에 대해 그 불가능성을 하나하나 짚어댄다면, 그들이 얼마나 허왕된 꿈을 꾸고 있으며, 국민들을 혹세무민시키려 하는지 알게 할 수 있을 것이다.

 

① 과연 국가 자체가 소멸할 수 있는가?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다. 천재지변 등에 의한 자연적 소멸의 경우가 충분히 있을 수 있으니 전혀 억지라고만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과 이 글에서 논하려는 논지의 핵심으로서의 국가 자체의 소멸은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래에 열거된 2가지 가능성 다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는 외세의 침입을 받아 그 국가가 외세의 국가에 병합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국가 내에서 쿠데타나 국가적 변란 등이 일어나 다른 국가에게 자신들의 국가를 헌납하는 방식이다.

반론 첫째, 북은 스스로 자주국방의 기치하에 핵무력을 완성한 명실상부한 전략국가이다. 그런 국가를 상대로 그 어떤 국가가 공멸을 자초할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으며 또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단 말인가? 불가능하다.

반론 둘째, 쿠데타나 국가적 변란 등에 의한 타국에 헌납하는 방식도 도저히 가능하지 않는 상상력의 범위이다. 왜냐하면 북에서는 원천적으로 쿠데타나 국가적 변란 등이 불가능하다. 수령중심의 유일체제 특성이 반체제 단체나 개인을 허용할리 만무하며, 연동해 시민봉기나 시위가 불가능하다. 실제도 이제까지 반체제 시위나 데모가 있었다고 보도된 적이 없다. 고로 역시 불가능한 기대이다.

 

② 레짐 체인지는 일어날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이 또한 불가능하다. 근거는 만약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고자 했다면 이는 80년대 말 동구권이 체제전환의 길을 걸어가고자 했을 때 그때 일어난 것이 이치적으로 맞아서 그렇다. 하지만, 그때 북은 동구권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어떻게? 그건 <통일뉴스>에 실린 “북은 집단지도체제가 과연 가능한가?”(5.15) 중 ‘4. 현실사회주의 몰락에서 찾아낸 그들의 교훈’에서 확인받듯이 오히려 수령중심의 사회주의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그 항로를 잡았다.

이 외에도 2011년 아랍권의 오렌지 혁명이라 불린 ‘중동의 봄’이라는 민주화 물결 때도 북은 많은 사람들(혹은, 많은 국가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즉 그 영향을 미쳐 북이 곧 체제전환을 할 수밖에 없을 거라며 국제사회가 주목한 적이 있었지만, 북은 한 치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과 같이 북 스스로는 동구권의 체제전환에서 얻은 반면교사를 더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가운영원리를 확정했다. 불가능한 상상력이다.

 

③ 그럼 지배체제의 변동은 수반될 수 있는가?

기억을 되살려 보자. 위키리크스(Wikileaks)는 2010년 2월 17일 당시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와 천영우 당시 외교부 2차관의 오찬 때 천영우는 중국이 김정일 사망 뒤 북 정권의 붕괴를 막지 못할 것이라고 예견했고, 더 나아가서 “북한은 경제적으로 이미 무너졌고, 김정일 사망 뒤 ‘2~3년 안에’ 정치적으로도 붕괴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천영우가 무슨 근거와 정보로 그런 인식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그런 인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필요충분조건이 성립해야 함은 분명하다. 이름하여 북 체제를 지탱하는 내구력에 어떤 변화가 수반되고,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흐름을 타고 있는지 정도는 충분히 검증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국가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이 부정되고 있는지, 둘째는, 그 주체사상에서 출발한 유일사상체계에 어떤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지, 셋째는, 역사적 정통성-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사-에서 김일성민족의 시원이 부정당하고 있는지, 넷째는 당과 인민의 관계에서 믿음과 신뢰적 관계보다는 그 반대의 관계가 형성되고 있는지, 다섯째는, 수령과 당의 군대로 되어 있는 군대가 어떤 변화가 있는지 등은 반드시 확인되어져야만 한다.

그런데, 그 어떤 변화가 없다는 이는 분명 허구이다.

그래놓고 또 우리가 유념해야 될 것은 그 허구를 증명하는데 있어 다음과 같은 시각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름 아닌, ‘북처럼 폐쇄적인 독재국가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날 수 없다. 정보가 통제되고 자유가 제한되어 불만 표출이 어렵고, 데모를 하더라도 그에 대한 탄압과 처벌이 너무 가혹할 것이기 때문에’와 같이 그런 인식을 갖는 진보적 자유주의 시각이다.

왜 이 시각이 북을 들여다보는데 있어 문제가 심각하게 되는 것 인가하면 북에 대한 인식 그 대전제가 북을 ‘폐쇄적인 독재국가’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오류에 빠진다. 지금 당장은 폐쇄적 독재가 인민의 저항을 다소 늦출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는 ‘아랍의 봄’이나 우리 대한민국의 경험처럼 독재체제는 반드시 민중의 저항을 받게 되어 붕괴될 것이라는 실체적 경험이 반영하게 되어 ‘그렇다면 북도 언젠가는 무너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자신의 인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즉, 북 체제변동은 잠시 유보될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변동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는 말이다.

이렇듯 북 체제를 수령중심 인민대중 사회주의체제로 인식하지 않고, 위와 같은-보수·수구세력들이 인식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적 자유주의시각의 ‘폐쇄적 독재체제’로의 인식은 북의 조그마한 변화에도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듯’이 언제나 북 붕괴론에 시달리게 된다.

예하면 이런 것이다. 노동자를 포함하는 기층민중, 유학생 및 작가나 교원 등 지식층뿐만 아니라, 외교관이나 당 비서를 포함한 지배층의 망명까지 다양한 계급·계층에서 체제이탈자가 발생하면 이를 인식함에 있어 ‘기층 민중들의 체제염증’, ‘지식층의 이반’, ‘지배층의 동요’로 확대해석해내 정권이나 체제에 불만을 품고 북을 탈출한다고 연계시켜 버리는 것이 바로 그것들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들이-진보적 자유의자들이 인식하지 못한 치명적 약점 둘이 있다.

하나는 체제이탈자 들 중에는 상당수가 자신들의 잘못에 따른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나, 혹은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소외감으로 탈출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절대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체제이탈자 수가 곧 체제붕괴와의 상관관계로 넘어가는 그 직접성이 매우 적다는 측면에서의 간과이다. 황장엽, 태영호 등 고위층의 체제이탈자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북은 ‘비겁한 자여 갈 테면 가라’로 정리해낼 수 있는 충분한 체제 내구성이 있고, 또 북 체제이탈자 수보다 약 66배가 더 많은 쿠바도 체제 붕괴설에 시달리지 않음은 그 함의를 잘 생각해내어야만 한다.

해서 결론은 북 체제는 항시 체제 붕괴라는 위험을 갖고는 있으나 ‘지금은 아니다’라는 인식보다는, 오히려 북 체제의 특성상 ‘체제 붕괴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보다 더 본질적임을 선행해 인식해야 한다.

 

3. ‘북 붕괴론이 붕괴되어져야 북이 보인다

북 붕괴론은 실체가 없다. 굳이 있다면 ‘북은 반드시 망할 것’이라는 믿음을 우리 국민들이 믿어줬으면 하는 그들의 사유체계만 있을 뿐이다. 결과, 그들은 북이 왜 핵을 개발하려 하는지, 또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대책 없이 ‘비핵화’만 외치고, 나아간다면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 제시하나 없이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도둑 찾아오듯 ‘통일은 대박’이라며 속 빈 구호를 내건다.

그래놓고 다시 그들의 북 인식 사유체계를 한번 들여다보자.

‘최고지도자 사망 → 권력투쟁 → 급변사태 → 체제붕괴 → 흡수통일’이 그들이 갖고 싶어 하는 최고의 프레임이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현실 사회주의권 붕괴 때와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때, 그리고 1990년대 중후반의 식량난 소동 때, 그리고 작금의 김정은 건강 위중설까지 그들은 단 한 번도 이 인식방법을 변경시킨 적 없다.

또한, 그들은 그들 자신들의 (정치적)목적 달성을 위해 남북관계나 북 상황에 대해서는 최대한 본질을 숨기고, 반면 드러난 상황에 대해서는 최대한 부풀려 곧 북 체제에 균열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소문을 적극 퍼트린다. ‘악마국가 북한’과 마침내 ‘승리하게 될 대한민국’이 그렇게 대비된다. 아주 전형적인 프로파간다이고, 프레임 씌우기이다. 최고 꼭지점은 ‘이대로만 간다면 북은 멸망할 것’이라는 국가적 최면도 마다하지 않는다. 북 붕괴론이 그렇게 계속 영속되길 바라며 비례해 계속 웃길 바란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먼저는 당신들이 그렇게 기대하는 북의 ‘위기’ ‘급변사태’, 혹은 ‘붕괴’가 온다하더라도 이를 당신들이 그렇게 기를 쓰고 원하는 ‘흡수통일’과는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다시말하면 당신네들의 생각, 혹은 셈법에는 ‘북의 위기는 필연적으로 급변사태로 이어지고, 급변사태는 붕괴로 이어지고, 붕괴는 통일로 이어진다’는 연관성을 가져가고는 싶겠으나, 실제로는 그 논법이 단언컨대 1도° 성립시키지 못한다.

이유는 북이 실제적 붕괴를 맞이한다고 하더라도, 그 국면하에서는 국제법상 정전협정 당사자국들이 제 1순위의 해결권을 가지고, 다음이 UN이 개입하게 되어 있다. 그렇게 미국·중국 등 강대국을 제치고 한국이 끼어들 틈은 단 1도° 없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는 위기에 빠진 북을 결코 한·미·일 세력에 포섭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을 것이며, 미국 또한 중국과 러시아를 깡그리 무시한 채 북을 온전히 집어삼키려만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더한다면 현상유지적 안정만을 꾀하는 국제사회의 특성상 남북통일을 도와줄 이유도 전혀 없다.

다음으로는 세계적인 평화학자 요한 갈퉁이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을 상기하면 당신네들의 생각이 얼마나 틀렸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북한붕괴론이 북한보다 먼저 붕괴할 것”이라고. 대입하면 ‘북 붕괴론을 철석같이 믿는 당신네들의 사유체계가 북 붕괴보다 먼저 붕괴될 것이다’이다.

이는 북이 당신들이 생각하고 싶은 것과는 달리, 위 ‘2와 3’에서와 같이 지금의 북 정권은 폭압정권도 아니며 북의 인민들이 북 정권을 반대하지도 않으며, 또 북에는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그 어떤 제재에도 충분히 견뎌낼 만한 힘이 있음이다. 때문에 북 붕괴보다 당신들의 그 믿음적 사유체계가 먼저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근거도 확실하다.

첫째, 그들은(북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일제를 반대하면서 형성된 항일무장투쟁경험과 이를 ‘자주’로 국채화한 국가정통성이 매우 강한 나라이다. 즉, 그 어떤 외세의 부당한 간섭과 제재에도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

둘째, 비록 여러 측면에서 살펴봐야 할 점은 분명 있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또한 분명한 것은 무상교육·무상의료·무상주택으로 대변되는 사회주의체제가 갖는 장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셋째, 수령중심의 유일사상체계가 갖는 체제의 힘을 결코 무시해서도 안 된다. 그 표징에는 권력투쟁이 일반화되어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체제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최고 국가수반을 3년간이나 비워놓고도 ‘유훈통치’가 가능한 국가를 이 지구상에서 본 적이 있었던가? 없다면 이상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가능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체제가 갖는 견고성, 내구력은 대단하다는 것이 인정되어져야만 한다.

넷째, 군과 조선로동당이 갖는 힘을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제2차 고난의 행군 시기는 선군의 힘으로, 공개처형(장성택의 예) 등에서 확인받듯이 부정부패와 특권에는 한 치의 타협 없는 일벌백계의 기풍이 당을 특권집단이 아니라 인민의 이익에 복무하는 최전선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결과, 가장 많은 사망자 집단이 우리 대한민국과 서방세계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당원, 당 간부들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다섯째, 국가와 인민이 하나의 사상체계, 즉 주체사상으로 대변되어지는 지도이념으로 무장되어 있다는 점도 절대 간과되어져서는 안 된다. 상징으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것 중에 북 인민들은 고집이 세고, 줏대가 높다는 말을 종종 하는데, 이 표현을 철학적으로 표현해내면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자 모든 것을 결정 한다’가 된다. 이렇게 인민 한 사람 한 사람모두가 철학으로 무장되어 있고, 정치적으로는 수령-당-대중이 하나의 유기체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국가적으로는 ’대가정‘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북은 국가-인민이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명확해진다. 당신네들이 꿈꾸는 북 붕괴도, 그 붕괴를 통한 흡수통일도 모두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제는 그 긴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다름아닌, 북이 붕괴된다는 것도, 북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것도 비현실적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다른데 있지 않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과 페리의 보고서를 주목하면 된다.

비트겐슈타인은 “어떤 세계를 이해하는 길은 그 세계의 밖에 놓여있다”고 했는데, 바로 이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명제가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맞는 말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북을 이해하는 길은 북 밖에 있으며’로의 적용은 틀려서 그렇다.

단 한번만이라도 우리가 북을 북의 시각에서 제대로 바라보고자한 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 그들의 시각으로 봤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직 체제이탈자(탈북자)의 시각만으로 그들 내부를 들여다본 것뿐이다.

첫 출발부터 잘못되어졌음은 그렇게 생겼고, 또 공화당 출신의 페리가 어떻게 그런 ‘페리보고서’를 써낼 수 있었겠는가라고 반문했을 때 대한민국의 보수도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북 보고서’를 써낼 수 있을 만큼의 너무나도 긴 ‘잘못된’ 북 시간여행이 있었음을 고백하자.

그러면 보수와 민족은 다시 제자리를 찾고, 한반도는 통일조국의 청사진이 그려진다.

 

통일뉴스, 2020년 5월 29일에 게재된 글입니다 (필자와 협의하여 수정 후 본지에 실린 것임).

화, 2020/06/16-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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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체제론의 양국체제론 비판

필자가 ‘양국체제’라는 개념을 명시해 처음 발표했던 것은 2016년 5월, 정동 프란체스코 회관에서의 대중 강연이었다. 양국체제란 대한민국(ROK)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 두 나라가 주권국가로서 서로 인정하여 공식 수교하고 평화롭게 공존, 교류, 협력하는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공존체제를 말한다. 1987년 이후 30년 그 거대했던 민주적 에너지가 어디로 어떻게 사라져버렸나를 반성해보자는 취지의 강연이었다. 4·19를 삼켜버렸던 ‘남북 적대의 분단체제’가 87년 6월 역시 삼키고 말았다 했다. 이렇듯 한국 현대사에서 30년 주기로 작동했던 ‘독재가 민주를 회수하는 마의 순환고리’를 끊기 위해 ‘남북공존의 양국체제’가 필요하다 했다. 그러다 그해 겨울 마술처럼 촛불혁명이 돌아왔다. 87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필자에게는 바로 그 시간이 되돌아온 것으로 보였다. 이번에는 결코 다시 실패해서는 안 되겠다, 다시금 이 에너지가 독재의 힘에 의해 회수당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더욱 분명해졌다. 대선이 순탄하게 마무리된 이후, 대중매체를 통해 칼럼 형식으로 양국체제를 다시 강조하여 알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발상이었지만 아주 흔쾌히 받아들이고 쉽게 이해해주는 이들이 많았다. 젊은 층으로 갈수록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새로운 발상에는 늘 오해와 반대가 따르기 마련이다. 2016년의 강연에서부터 예상되는 반대 논리와 그 기반을 이루는 세대와 세력에 대해 ‘돌다리 두드리듯’ 검토해본 바 있고, 이 강연 내용을 정리해서 최초로 발표한 「촛불혁명과 코리아 양국체제」라는 제목의 2017년 8월 22일 자 칼럼에서도 이를 분명히 밝혀두었다.

양국체제론에 대해 예상되는 반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반통일론, 분단고착화론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는 앞서 살펴본 분단체제 비판론 중에서도 강경한 입장에서 제기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반대편에서의 비판인데 ‘북한’을 절대로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또 다른 강경론이다. 이 입장은 북한 정권 타도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을 주장한다. 이 두 입장은 극과 극의 반대로 보이지만 한반도 두 국가 상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뒤집어져 있을 뿐 구조적 동형이다. 양국체제가 평화통일의 전망을 실제적으로 열어준다는 점이 잘 설득된다면 이러한 반대들이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겠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두 번째 입장은 이번 촛불 정국에서 등장한 ‘태극기 – 성조기 집회’와 중첩되는 것으로 이후 양국체제론에 대한 적극적 반대 집단으로 나설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촛불 정국에서 보았듯 이 집단의 여론 확장력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아울러 이러한 두 입장을 강경하게 견지하는 층은 양적으로 그다지 크지 않고 세대적으로 점차 축소되어가는 추세다. 젊은 층일수록 이러한 입장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래는 양국체제의 편에 있다.(이 책 2부 1장, 155~156쪽)

예상이 꼭 들어맞았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반대의 한 축이 될 것이라 본 “분단체제 비판론 중에서도 강경한 입장”을 꼭 맞췄던 것은 아닌 듯해서다. 이때 염두에 두었던 쪽은 북의 체제를 옹호하면서 통일운동의 우선성, 선차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적 통일론의 입장이었다. 물론 이 편에서의 비판을 읽어보기는 했다. 그러나 대체로 내 주장의 개요를 충실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제기한 나름대로 진지한 비판이었다. 지금까지 가장 강한 반대를 표명한 쪽은 내 예상과 달랐다.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 방향에서는 공유하는 바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쪽에서 왔다. 계간 《창작과비평》과 백낙청 선생을 중심으로 한 분단체제론 그룹이었다.

비판의 내용과 방법이 모두 특이했다. 올(2018년) 7월 중순경 한 지인의 귀띔을 받고 읽게 된 책이었다. 표지를 보면 『변화의 시대를 공부하다: 분단체제론과 변혁적 중도주의』가 제목이고 저자는 ‘백낙청 외’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 ‘창비담론 아카데미’라 부기(付記)해놓았다. 책 서두를 보면 2017년 11월부터 2018년 1월까지 매월 2회씩 총 7회에 걸쳐 백낙청 선생 외 ‘다양한 세대의 교사, 교수, 문인, 연구자, 시민운동가, 편집자 등 총 30명’이 참석하여 1990년대 이래 백 선생이 발표해온 분단체제론을 중심으로 학습·토론했던 결과를 책으로 묶은 것이라 한다. 300쪽이 안 되는 크지 않은 책에 필자를 거명한 양국체제론 비판이 4회 모임부터 7회 모임까지 10여 차례 이상 길게 언급된다. 후반부 논의의 거의 절반이 양국체제론 비판에 할애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진지한 비판은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아쉬움이 있다. 다른 견해를 일단 이해는 제대로 해놓고 비판하겠다는 모습이 별로 안 보인다. “그 양국체제론이 분단체제를 사유하지 않을 좋은 핑계가 되기 때문에 많이 유통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어서(웃음) 어떻게 효과적으로 반박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라고 물으면, “양국체제 얘기를 해보면, 체제를 갑자기 어느 날 만들자는 것 같아요. 현실이 어렵고 불편하니까 그냥 갈라서서 서로 독립하자 이런 거죠”라고 답하는 식이다. 미리 ‘틀린 이야기’라 전제해놓고, 돌아가며 비판해보자는 식이다. 이 책에는 가볍고 무책임한 ‘비판’들이 너무 많다. 이렇게 해서는 제대로 된 ‘비판’이라 보기 어렵지 않을까. 백낙청 선생과 매회 모임 사회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발언자’들이 익명으로 되어 있다는 것도 특이했다.

총정리인 마지막 모임에서는 발제에서부터 (역시 익명이다) 양국체제론 비판을 하고 있는데, 그나마 내가 쓴 글의 일부나마 인용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분단체제에 대한 불감증”의 사례라고 이야기하면서 막상 내 글과 그 글 속의 ‘분단체제’를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풀이하고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분단체제 불감증의 또 하나의 예는) 지난 모임 때도 얘기했던 김상준 교수의 ‘양국체제론’입니다. 마침 어제 《경향신문》에 「코리아 양국체제와 평창 올림픽」(2018. 1. 29)이라는 칼럼이 게재됐는데, 이건 내용이 좀 심각한 것 같습니다. 조금 읽어볼까요? 글의 뒷부분입니다. “분단체제 신봉자들은 이 모든 사실(남과 북이 한반도에서 두 국가 간의 특수한 관계로 지내왔던 사실 — 창비 편집자가 부가한 설명)들을 없었던 일로 부정하고 싶어한다. 이들은 19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 이전, 더 나아가 1987 민주화 이전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역사의 퇴행 세력이다. 영화 <1987>에 등장했던 남영동의 그 가공할 실존 인물, 박처원과 꼭 같은 사고를 여전히 품고 있는 자들이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분단체제라는 말을 자기 마음대로 쓸 수는 있겠지만, 분단체제 신봉자들이라고 한다면 이건 백낙청 선생이나 그 입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 같은데 아주 정반대로 맥락을 틀어버린 것 같아요. 분단체제 신봉자라는 용어로 분단체제론자를 비판하는 건가요?

“분단체제 신봉자들이라고 한다면 이건 백낙청 선생이나 그 입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라니? ‘분단체제 신봉자들’ 즉 박종철을 고문 살해한 박처원과 같은 인물들과 그러한 세력에 맞서는 주장을 펼쳐왔던 “백낙청 선생이나 그 입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정반대가 아닌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고, 누구도 이 두 부류를 혼동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이렇듯 누구도 상상조차하기 어려운 말을 하게 되는 이유가 뭘까.

너무나 엉뚱했지만 이해해보기 위해 그 책을 다시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나온 원인을 짐작은 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분단체제’라는 말이었다. 나에게는 분단체제와 분단체제론이 다르다는 게 흑과 백이 다른 것처럼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었다. 백낙청 선생의 분단체제론은 분단체제를 비판하고 분단체제를 극복하자고 주장해온 분단체제 비판론 아닌가? 분단체제라는 말은 일반에서도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렇듯 일반화된 의미에서의 분단체제라는 말의 뜻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도 분단체제가 좋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분단체제는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말이다.

백 선생 자신이 분단체제에 대해 내린 여러 정의 중 하나만 골라보면, 분단체제란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사회를 만들어서 대립하고 있지만 사실 남과 북의 기득권 세력은 다 같이 분단을 유지함으로써 이득을 보는 …… 남과 북의 기득권 세력이 한편에 있고 그 기득권 세력이 유지하는 분단구조에서 손해를 보는 대다수 남쪽의 국민과 북쪽의 인민들이 다른 한편에 있는, 이런 이해관계의 상충이 더 기본적인 사회구조”다. 내가 칼럼에서 말한 ‘분단체제 신봉자’란 바로 백 선생이 말한 ‘분단체제에서 이득을 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말이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입으로 ‘나는 분단체제가 좋다, 나는 분단체제 지지자다’라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분단체제 지지자’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정반대다. 타조가 머리를 모래에 묻는 것은 (그래서 자신이 숨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타조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정말 타조이기 때문이다. 분단체제 신봉자들이 분단체제라는 말을 쓰지 않는 이유는 그 말이 부정적인 말, 비판적 용어임을 그들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야말로 분단체제가 누구에게나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는 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거꾸로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발제자와 그 해당 대목에 동조했던 여러 참석자들에게는 그렇지가 않는 듯하다. ‘분단체제’란 말과 ‘분단체제론’이란 말이 그다지 구분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5회차 토론에서 한 토론자는 “보통 우리 지식인 사회에서 ‘분단체제’라는 말을 쓰는 경우와 우리가 공부하는 ‘분단체제’는 거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 분단체제극복은 …… 통일을 넘어선 평화를 장기적인 기획으로 말하게도 된다”라고 말한다. 분단체제극복은 통일 이후에도 장기 기획으로 남는다 하니 이 발언자가 생각하는 분단체제는 통일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무엇이다. 이렇듯 분단체제론자 내부에서는 ‘분단체제’라는 말 자체가 그 바깥의 사람들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모종의 특별한 말, ‘분단체제론’ 자체와 뒤엉켜 하나로 융합되어버린 아주 심오한 개념이 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분단체제 신봉자’를 ‘분단체제론 신봉자’로 읽는 기상천외한 독법도 나올 수 있는 것이고, ‘분단체제’를 자신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나와 같은 사람은 “분단체제 불감증”의 사례라고 스스럼없이 거론하게 되는 것이다. ‘분단체제’라는 말 자체가 신성화되고 있지 않는가라는 느낌을 저버릴 수 없었다.

이를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된 또 하나의 계기가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인 9월 13일,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기념 토론회가 있었는데 여기서 최원식 교수의 「남북연합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라는 발표문에 대한 토론을 부탁받았다. 이 분 역시 창비에서 오래 활동하셨던 분이다. 분단체체 입장에서 양국체제론을 비판하는 그 발표문의 대목은 앞 장에서 인용한 바 있다.(이 책, 222~223쪽)

그래도 최 교수는 최소한 양국체제론을 잘 알지 못한다고 솔직히 밝혔다. 그러면서도 ‘양국론=반통일론’이라는 등식을 당연하다는 듯 쓰고 있다. 가까운 주변에서 그렇게들 이야기하기 때문일 것이다. 양국체제가 현 상황에서 통일로 갈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판단에 대한 인식이 여기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또 양국체제가 최 교수가 강조하는 남북연합과 그렇듯 무관한 것인가는 다음 장에서 검토해볼 것이다. 다만 그 대목이 흥미로웠던 것은 ‘분단체제’라는 말이 단순히 긍정적인 정도가 아니라 매우 심오하면서도 고상한 어떤 높은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분단으로 두 쪽이 난듯이 보여도 남과 북은 분단체제의 드러남으로 연계된 바”라고 하여 “분단체제의 드러남”이 분단된 남북을 이어주고 있는 생명줄과 같은 것으로 표현된다. 이런 상태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불일불이(不一不二)’라 하였는데, ‘불일불이’란 불교의 진리관을 집약하는 높고 찬란한 용어다(‘不 一不異’라고도 한다). 이렇듯 매우 높은 종교적 진리관을 뜻하는 언어로 ‘분단체제’를 해석하고 있다는 데 놀랐다.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론”이란 말, 그리고 이것이 “통일의 최종형태”가 될 수 있다는 말도 이어진다. 좀 혼란스런 문장이지만, 통일로 가는 데 필수적이라고 보는 ‘남북연합’은 오직 ‘불일불이의 분단체제’를 상정해야 가능하다는 뜻이겠다. 쉽게 말하면, 분단체제여야 남북연합이 가능하고 남북연합을 통해서만 통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로써 창비그룹 내에서 분단체제 자체를 적극적, 긍정적으로 보는 흐름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분단체제와 분단체제론이 별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분단체제에 대한 비판을 분단체제론에 대한 비판과 혼동하는 데 이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분단체제와 분단체제론이 혼동되고 있는 이 상태는 분명 문제적이다. 어떻게 분단체제 비판론이 분단체제를 긍정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자기모순, 자기부정 아닌가. 그럼에도 분단체제론 내부에서 그런 흐름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퍼즐을 풀어야 함을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내 나름대로 백 선생의 분단체제론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다. 너무 쉽게, 너무 빠르게 읽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글을 빠뜨렸을 수도 있다. 30년 동안 아주 많은 글을 통해 주장해온 내용이기 때문에 내 머릿속에 무질서하게 흩어져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있을 수도 있다. 내 자신 여러 글을 통해 분단체제에 대해 여러 차례 논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분단체제 불감증”이라고 자신있게 딱지 붙일 정도라면, 그 ‘분단체제론의 분단체제’는 ‘내가 생각해온 분단체제’와는 전혀 다른 무엇일 수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분단체제론 자체가 ‘내가 생각해온 분단체제론’과는 전혀 다른 무엇일 수 있음도 인정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백 선생의 분단체제론을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되었다. 과연 새롭게 다시 읽히는 부분들이 있었다. 분단체제론이 나오게 된 전후 맥락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분단체제론을 더욱 깊게 이해하고, 내 나름의 의문점들도 그런 대로 해소할 수 있었다. 이제 그 결과를 보고 형식으로 제시해보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의 핵심적인 차이 역시 더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창비 분단체제론과는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 방향에서는 공유하는 바 많을 것”이라 보았던 근거 역시 새로운 이해 위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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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0/04/30-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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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에 따른 생태교육의 시급성

최근 수년간 급격한 기후변화와 전지구적 생태계 파괴를 경험하고 있는 이 시대의 인류는 불안한 마음으로 디스토피아가 다가옴을 지켜보거나 애써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과학기술 낙관주의에 빠져있다. 현 인류가 처한 이러한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극적인 처방은 과연 있는 것인가? 지구 환경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국제적 노력과 크고 작은 규모의 사회조직체들의 활동으로만 충분한 것인가?

지금까지 우리가 옳다고 믿었던 세계관을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인류 문명을 개조하지 않는다면 디스토피아는 예상보다 빠르게 도래할 수도 있다. 기존 과학기술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중심적 환경주의 운동과 교육은 임시방편적이고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반면 인간과 생태계와의 화합을 주창하는 탈인간중심적 종교와 신비주의 철학은 현 인류문명의 토대가 된 과학기술의 견고함에 쉽게 무너져 버릴 수 있다. 현 인류에 닥친 지구 생태계의 문제는 매우 복잡하지만 동시에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이다.

우선 인류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곳에는 생태철학의 담론이 있어야 하는데, 현대 과학기술의 토대가 된 근대적 세계관을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의 파급력을 가져야 한다. 또한 새로운 생태문명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생태교육이 학교교육 현장에 커리큘럼으로 구체화되어야 하는데, 과학적 자연관과 인본주의적 능력배양 중심의 근대 교육의 한계를 설득력 있게 지적하고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 결과적으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지구의 문화는 과학기술, 생태계, 문명이 공진화하는 선순환 관계를 전제로 하는데, 현재의 환원론적이며 기계론적 과학기술에 대한 탁월한 대안으로서 생태과학의 패러다임이 과학계에서도 인정받아야 한다.

생태철학의 담론은 오랜 역사를 통해 발전하였고 현재에도 유효하지만 생태과학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가장 구체적이며 작은 실천부터 가능한 생태교육의 발걸음은 이미 시작되었고 이를 통해 철학과 과학연구의 새로운 세계관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적 세계관의 한계

17세기에 이르러 중세의 세계관이 종말을 고하면서 시작된 근대에는 인간, 신, 자연 간에 새로운 관계가 설정되었다. 르네상스로 대표되는 인본주의는 교권과 스콜라 철학의 권위로부터 해방된 인격체로서의 개인에 관심을 갖게 하였고, 이로써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이 가능해졌다. 자연사물과 정신의 공통된 존재론적 기원으로서 그 자체가 탐구의 목적이었던 신의 위상은 중세를 벗어나면서 기껏해야 과학적 인식의 객관적 타당성과 보편성을 정당화하는 하나의 지표로 전락하게 되었다. 종교개혁을 가능하게 한 복음주의 신학은 각 개인이 신과의 접촉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개인주의적 구원의 체계를 교리화한 것이다.

근대철학의 합리론과 경험론을 대표하는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론과 베이컨의 우상론은 자연세계의 진리에 접근하고 개인의 지적 능력을 확장할 수 있는 철학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이를 통해 과학혁명이란 이름 하에 자연세계의 여러 단면들을 탐구하는 여러 개별 과학분야가 이 시기에 태동하였다.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된 자연현상은 관찰할 수 있고 양적으로 측정 가능한 것으로 제한됐으며, 수학적 언어만이 이를 설명하고 해석하는 수단이 되었다.

한편 개인의 자유, 평등, 인권, 복지, 자본, 부의 개념이 근대 이후의 세계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었다. 자연세계는 인간과 분리된 객관적 탐구의 대상이 되었고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자원의 의미로 전락하였다. 일부 환경주의자들에게는 지속 가능한 지구환경이란 인류가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지구자원을 잘 사용할 수 있는 경제적 관점에서 규정될 수 있다. 이는 근대의 사유체계가 지식확장의 주체인 인간과 탐구의 대상인 자연세계가 철저히 분리된 이원론적 실체론을 기반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자연현상에 대한 과학적 탐구는 기계론적 인과론을 기반으로 이루어졌고 더 명확한 지식을 얻기 위해 자연세계를 더 작은 단위의 현상으로 환원하여 설명하게 되었다. 예컨대 복잡한 생명현상은 더 작은 단위의 분자수준에서 설명하고, 이를 더 잘 설명하기 위해 화학과 물리학적 지식을 동원하였다. 하지만 생명현상, 기후변화, 국제정치상황 등은 단순히 환원적이고 기계론적인 방식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매우 복잡한 현상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인류문명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여러 기이한 부작용들을 현재의 자연주의적 세계관으로는 설명할 수도, 해결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생태철학의 역사

지구환경 위기의 근본적 원인인 인간중심적 세계관을 극복할 수 있는 생태적 패러다임은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것인가? 제도화된 종교에 예속된 중세의 세계관과 권위에서 해방되어 인간중심적으로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근대의 세계관은 인류의 전 문명에서 볼 때 매우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자연세계를 바라보는 다양한 종류의 세계관이 이미 동서양에 더 넓고 깊이 퍼져 있었다. 따라서 이런 세계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오래 전 동양의 도가사상은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지도, 자연세계를 개별화된 개체와 부분으로 나누지도 않았다. 자연에 존재하는 각 개체들의 개별적 차이를 인정하지만 배타적으로 대하지 않고 자연 개체들의 내재가치가 존재함을 믿었다. 생태학(ecology)의 어원인 그리스어 ‘oikos’(eco)는 가족, 집, 가정을 이루는 가족 구성원, 사회를 이루는 작은 단위 공동체를 의미한다. 자연은 모든 구성원들이 상호작용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함께 지어가는 가정과 같은 것이고 생태지혜(ecosophy)는 노자가 말한 ‘유무상생(有無相生, 있고 없음은 서로 상대하기 때문에 생겨남)’, 즉 타자를 향한 관계적 진상을 깨닫는 직관적 통찰을 의미한다. 불교의 근본인 연기사상과 생명존중 사상에 따르면 법계와 생태계는 모든 존재가 상호 연결된 세계라는 점에서 같고 모든 생명체에 내재된 가치가 바로 불성이라고 가르친다.

기독교에서도 인간의 타락 이전에는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에 분리가 존재하지 않았고, 인식의 주체와 대상이 구분되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은 죄로 분리된 관계성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이고, 사랑으로 연합되는 전 우주적인 공동체가 교회라고 여겼다. 도교, 불교,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심층생태학을 주창한 아른 네스는 자연보존운동을 지향하는 표층생태주의가 여전히 인간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소아(self)에 국한되었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지구 안의 모든 것이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심층생태학은 생물권 전체와의 일체 의식을 경험하면서 최대의 대아(Self)를 실현할 수 있는 세계관이라고 주장하였다.

근대철학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정신과 철저히 분리된 물질의 개념을 공고하게 만들었지만 정신과 육체 사이의 인과적 관계에 대한 그의 기계론적 설명은 모순이 많았다. 또한 과학적 탐구의 대상인 자연은 인류의 발전과 진보의 수단으로만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영향을 받아 기하학적으로 데카르트의 철학을 발전시키려고 한 스피노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데카르트의 이원론과 정반대의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는 『윤리학)』에서 초월적 인격신을 거부하면서 모든 것의 내재적 원인이 되면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신’의 개념을 이끌어냈다.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 안에 있고 신 없이는 아무 것도 존재하거나 파악될 수 없으며 모든 개체들은 시공간 안에서 신의 속성을 특정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양태 혹은 변형태라고 설명했다.

스피노자의 일원론적 자연관에 따르면 신은 자연에 내재할 수 밖에 없으며 신과 분리된 자연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의 전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 사건, 경험들은 상호의존 관계에 있고 이 모든 것들은 체계적으로 통합된 전체를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란 무에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스스로의 변화 생성을 의미한다. 스피노자의 생태론은 인과적으로 연결된 유기체로서의 생명에 대한 직관적 인식을 통해 자연전체와 자연법칙을 통찰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은 니체도 초인의 정신은 바로 어린아이와 같이 자연적 삶을 누리고 스스로 자유롭게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19세기 말 이후 생태적 세계관 형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철학자는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이다. 그의 유기체철학 혹은 과정철학은 절대 시공간 속에 외부의 어떤 것과도 관계를 갖지 않고 동일하게 정지해 있는 것으로 존재하고 파악되는 ‘실체’라는 개념의 과학적 유물론을 거부한다. 그에 따르면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로 여겨지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경험을 통해 새롭게 생성되는 현실적 계기(actual occasion)에 의해 구성되어 이름 붙여진 것이다. 각각의 현실적 계기는 그에 선행하는 (과거의 세계 전체인) 경험의 계기들을 통해 자신을 구성해가는 과정으로서의 존재이다. 이런 현실적 존재가 자기를 구성하는 생성의 과정을 파악(prehension)이라고 명명하였다.

화이트헤드는 자연의 모든 생명체도 인간이 가지는 경험의 정도는 아니라 해도 파악의 과정과 경험을 가지며 내재적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또한 시공간적으로 상호 연결된 자연 내의 모든 유기체들은 내재적 가치와 도구적 가치를 동시에 가지고 생태계 내에서 생기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간다고 했다. 이렇게 볼 때 자기(Self)의 존재를 세계와 분리시키지 않고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 생태교육의 핵심인 것이다.

 

생태과학의 등장

현대 물리학에서는 기존의 환원주의와 기계론적 인과율로 설명될 수 없는 자연의 복잡한 현상을 유기체적 자연관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의 생물학과 임상의학 분야에서는 복잡한 생명현상을 기계론적이고 미시적 관점에서 다루는 것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오믹스(omics, ‘체학’이라 번역되며 생명과학에서 분자들이나 세포 등의 집합체 전체를 뜻함)라는 분야가 등장해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유전체학(Genomics), 단백질체학(Proteomics), 후성유전학(Epigenomics), 대사체학(Metabolomics), 연결체학(Connectomics) 등이 그 예인데 단백질, 신경세포 등 몸 속의 여러 단위들 간의 상호작용과 연결에 대한 패턴을 분석하여 생명현상을 설명하려는 세부 학문분야들이다. 기존의 기계론적이고 선형적인 방식으로는 복잡한 생명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실험실 연구를 넘어선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 방법론이 복잡한 인과성을 설명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20세기 인공지능과 로봇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이버네틱스란 분야는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들 간의 상호관련성을 밝혀 시스템 스스로가 어떻게 자기를 조직하고 환경에 적응하는지를 개념화하였다. 오늘날 정보기술 분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월드와이드웹 기술도 정보와 데이터들의 연결을 통해 엄청난 양과 종류의 정보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초연결사회를 만들어가는 4차 산업혁명의 개념 역시 사람, 기계, 데이터, 환경이 서로 연결되어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혁명적 변화를 의미한다.

이미 과학기술의 페러다임은 환원주의와 기계론을 넘어서 전체적 관점에서 관계와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구현하려고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교육에도 이런 패러다임을 적용할 수 있을까?

 

화이트헤드의 교수학습 원리

화이트헤드는 생태적 교육에 있어서 생태적 자기(Ecological Self)라는 개념을 제안하였다. 즉 생태교육은 한 개인이 세계의 한 부분임을 인식하게 도와주는 도덕교육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실천적 요소라고 하였다. ‘생태적 자기’는 개인을 넘어 이웃, 사회, 인류, 생태계, 우주와의 일체감을 형성하는 기본 개념이며 자기 초월성과 연결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학습자는 세계 속에서 다른 존재들과 상호 의존하면서 상호보완적 관계를 맺고 이 관계성을 통해 생명이 유기적으로 끝없이 탄생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로서의 개별 학습자는 고립된 에고(ego)가 아닌 사회적 관계를통해 다른 존재들과 연결된 자기(Self)의 존재를 경험하는 현실적 계기(actual occasion)이며, 지식이 아니라 지혜의 눈으로 세상의 당면한 문제들을 바라보고 해결하는 것을 학습해야 한다. 학습자 자신과 연결된 다른 존재들의 경험을 함께할 수 있는 마음을 공감이라 하며, 생태적 교육은 자연의 모든 존재들과 공감할 수 있는 내적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다. 화이트헤드가 주장하였듯이 교육은 교실 내에서 생기 없는 관념(inert ideas)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경험과 체험을 통해 창조성을 배양할 수 있는 환경을 학습자와 교사가 함께 가꾸어가는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도덕과 교수학습의 네 가지 방법적 원리를 제시하였다.

(1) 상호성의 원리는 교사와 학생이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라는 관점에 기초한다. 교사와 학생은 양방향으로 경험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상호 파악(prehension)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파악의 주체가 된다. 이렇게 교육은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세계에 대해 배우고 공통의 세계를 창조하는 과정인 것이다.

(2) 관계성의 원리는 도덕이 기본적으로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는 입장에서 관계가 확대되어감에 따라 발생하는 도적적 개념을 이해하고 그에 따른 도덕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원리이다. 즉, 교육은 ‘관계적 자아’에 바탕을 두고 생태환경이나 주변 이웃과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책임감을 발전시키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도덕교육은 다양한 타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를 통해 관계적 자아와 가치관계를 확장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3) 리듬의 원리는 학습자의 정신발달의 리듬적 특성을 고려한 교수학습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리로서, 인간의 삶과 교육이 주기적으로 순환되는 리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화이트헤드의 리듬의 원리는 그의 합생의 원리(다자가 모여 또 다른 하나의 존재가 되는 원리)와 일맥상통하는데 교육은 지속적인 파악의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과정인 것이다.

(4) 조화의 원리는 추상적 사상을 현실에 응용할 수 있는 능력과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지혜를 강조한다. 교양교육은 조화의 원리를 토대로 추상적 이론을 현실에 응용할 수 있는 조화의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자율과 훈육을 학습자의 정신발달의 특성과 전체 학습의 과정을 고려하여 학습 단계별로 조화롭게 커리큘럼에 적용함으로써 지혜롭고 창의적이며 책임감 있는 사회의 구성원을 길러내는 것이 화이트헤드 교육철학의 핵심이다.

 

생태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

생태교육은 근대의 기계론적 패러다임 안에서 생태적 내용만 교육하는 것이 아니다. 인본주의, 과학주의를 넘어 관계, 과정, 연결이라는 사고가 교육의 핵심원리가 될 때 진정한 생태적 교육이 실현될 수 있다. 생태철학과 생태과학에서 도입된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태교육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과 교수학습의 방법론이 재구성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근대적 세계관의 전환과 생태적 자기의 형성이 이뤄져야 한다.

아직 제도권 교육에는 도입되고 있지 않으나 여러 대안학교들과 지역공동체들에서 생태교육을 실천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다양한 생태교육 커리큘럼과 경험적이고 실천적인 학습을 통해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로운 유기적 관계를 깨달을 수 있는 생태적 감수성을 높이고, 타인 및 자연과의 유대감을 통해 정서적으로 안정된 건강한 자아 발달에 도움을 주려는 노력들이다.

생태교육은 과학기술, 생태계, 문명이 공진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하고 구체적인 시도이다. 진화는 한 개체가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환경을 구성하고 관계의 연결망으로 서로 이어져 있는 모든 개체들이 서로에 대해 적응해가는 과정이다. 지구 환경도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그 안에 있는 모든 구성원들과 함께 스스로 적응하고 자기조직화 하는 창조적 활동을 하고 있다. 생태교육은 인류가 지구와 함께 건강하게 진화할 수 있는 실천적 발걸음이다.

 

김홍기

서울대 치의과대학 교수, 의료정보학

월, 2020/01/1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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