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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지구적 재앙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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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지구적 재앙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admin | 목, 2021/08/19- 19:20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 농업생산성 저하 및 미래의 전염병과 같은 잠재적인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시스템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황이 느리게 악화된다고 잘못 인식하면서 위협에 함께 대처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CAMBRIDGE – 자신의 애상적(경고적) 회고록인 ‘어제의 세계’에서 나치로부터 망명한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에 심각한 변화의 가능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관찰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오랫동안 서서히 악화되면서 이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에 쉽게 반응하지 않습니다만, 곧바로 재앙이 닥치면 행동하기에는 너무 늦습니다.

우리시대에도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을 해결하기에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랍니다. 불행히도, 천천히 끓는 개구리처럼 우리 대부분이 변화를 점진적으로 인식하면서, 시급하게 조정되고 결정적인 조치를 충분하게 취하기 어렵게 합니다. 따라서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는 전제에서, 우리가 직면할 수 있는 재앙들을 살펴볼 가치가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은 한 가지 분명한 유형의 재앙입니다. 이것들은 지구라는 행성에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 면적을 확대하고, 결국 거주가 가능한 지역의 인구밀도를 높여갈 것이며 이를 피하기 위한 대규모 인구이동을 방지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사람들 대부분은 기후피해자들이 일단 자신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문명권과 멀리 떨어져 있는 태평양의 작은 투발루 섬이 종종 최초의 희생지역 중 하나로 묘사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최근 기상이변으로 플로리다 , 중국 황하계곡 의 도시, 시애틀 및 뉴델리와 같이 전세계적으로 문화의 중심지에 가까운 지역에서 홍수를 일으키거나 인간이 살기에 너무 뜨거워지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각국정부와 국제기구는 수백만 명의 미래기후난민의 전망에 대비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유엔에 따르면 2019년 말 전세계적으로 7,950만 명의 실향이주민이 발생하였으며 이는 기후조건으로 인한 역사상 가장 많은 이주민의 수치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대규모 강제이주가 일어난 이후 어느 때보다도 많은 수치입니다. 계속되는 지구온난화는 상기의 수치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더욱 위험한 것은, 생물다양성의 손실 및 토양황폐화 와 결합된 기후이변이 농업생산성의 하락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구가 79억 인구를 부양할 수 있게 한 녹색혁명 의 많은 이점을 감퇴시킬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농지개혁, 식단변경,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과 같은 사회경제적 변화를 포괄하는 작물의 유전자변형을 넘어 새로운 녹색혁명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집약적이고 산업화된 농업관행을 신속하고 대규모로 바꾸지 못하면 농작물의 실패와 굶주림이 증가할 것입니다. 영국과 같은 순수 식품 수입국의 경우, 전후에 우리가 익숙해져 왔던 풍요로움이 과거의 일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슈퍼마켓 진열대가 여전히 가득 차 있을 때, 사람들은 시스템 변화의 필요성에 대하여 심각하게 받아들일까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거대한 침입과 관련된 또다른 유형의 재난은 동물숙주에서 인간으로 전이되는 인수공통 전염병의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최근 COVID-19 대유행은 이러한 메시지를 전세계에 심각하게 알렸습니다. 에볼라, SARS 및 MERS는 사전적인 경고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러한 보건건강의 위기가 자주 반복될 것입니다. 전염병이 제대로 통제되었던 것처럼 보였던 인류역사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유사하게, 항균제 내성의 확산은 일부 오래된 감염전쟁이 다시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훨씬 더 치명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등장한다면 과연 인류는 지난 18개월 동안 우리 모두가 경험한 것과 같은 또다른 격변에 대비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종류의 사건은 민주주의든 권위주의적 정권이든 기존 정치시스템에 엄청난 압력을 가할 것입니다. 오늘날, 팡글로스주의적(지극히 낙관적인) 관찰자만이 20세기후반을 특징짓는 자유민주주의 경향으로의 손쉬운 복귀를 예견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더욱 많은 비상사태에 대처해야 하는 필요성으로 인하여 서구사회를 더욱 권위주의적(국가중심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협력적 다자주의에서 지정학적 충돌로 후퇴가 가속화되면서 글로벌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을 촉발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 중에는 이러한 우울한 생각은 단순히 여름휴가가 필요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언급한 작가 츠바이크의 경고를 염두에 두고 ‘만약에’ 를 고려하는 것은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것 입니다. 지금 당장 사소한 행동이 아닌 거대한 변화의 행동이 필요한 때라면?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9월의 유엔 식품시스템 정상회담과 11월 글래스고의 유엔기후회의(COP26)는 점진적 개혁에서 상당한 진전으로 나아갈 수 있는 분명한 기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잠재적인 재앙을 모두 피하려면 시스템의 변경이 시급히 필요합니다. 잠재적 재앙들은 명백한 이유로 ” 사악한(심각한) 문제 “로 알려진 것 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황이 느리게 악화된다고 잘못 인식하면서 위협에 함께 대처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도전과제의 대응은 실제로 리더십의 주요사항입니다. 글로벌 정치지도자들은 모두의 공통 이익을 위해 이러한 사악한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데 동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대학과 연구기관은 협소함과 지신들만의 점진적 발견을 보상하는 학문적 사일로와 경력구조를 해체해야 합니다. 기후과학자는 자신의 작업을 정치학자의 작업과 통합해야 하며, 전염병학자는 경제학자와 동일한 작업을 수행해야 합니다. 재앙의 위험을 제대로 분석하면 지금 바로 행동해야 할 소명을 느낄 것입니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on 2021-08-05 .

DIANE COYLE

캠브리지 대학교의 공공정책 분야 교수이며 최근에 출간된 ‘Markets, State, and People: Economics for Public Policy’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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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출범할 바이든 행정부는 당선된 즉시, 미국과 인도-태평양 동맹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미국과 안보동맹을 맺고 있는 국가들과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정부에게 매우 치명적인 동북아 국가군에는 미국이 작명한 ‘수정주의 국가’인 중국과 ‘불량국가’인 북한 그리고 동맹인 한국이 있다.

미국이 동맹국들과 관계의 재정립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특별히 대한민국에게 미합중국과 동아시아 이웃 국가들과 외교관계에 있어 다양한 복선을 암시하고 있다. 이는 한미 동맹의 강화에 대한 희망을 포용하는 동시에, 그간 북한에 대한 양국 간의 심각한 견해차이에 대한 염려를 반영하기도 한다.

조 바이든이 상원의 외교위원으로 오랜 경력을 쌓아오면서 한국보다는 일본을 선호해 왔다는 기류가 서울에 형성되어 있는데, 깊게 분석하여 보면 그가 딱히 일본을 선호했던 것은 아닌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상기 배경과는 별도로, 새로운 미국 행정부는 한국이라는 동맹과 전략적 맞수인 중국 사이에 전개되는 복선적인 외교와 친선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어야만 한다. 지난 몇 년간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심화되면서, 서울당국이 미국의 대중 봉쇄라는 전략적 구도에 흔쾌히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한미일 삼국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워싱턴의 노력 역시 실현되기 쉽지 않은 구도이다.

2017년 한국 내에 설치된 사드배치에 대하여, 한중 간에 ‘3가지 거부- Three No’s’ 조치가 취해진 것은 한중 간의 관계를 재정립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지난 11월말 왕이 외교부장이 방한하면서, 북경당국이 한국과의 긴밀한 관계개선을 우선적 의제로 삼고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전달하였다.

현재의 팬데믹 상황에서 정상들이 다른 국가의 방문을 기피하는 와중에도, 시진핑 주석은 상황이 허락한다면 2020년 올해 안에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희망을 강력하게 피력하였다. 왕이 외교부장의 방문은 시주석의 공식적인 방한을 예비하는 성격으로, 문제는 한국 내에 여전히 팬데믹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는 장애가 남아 있다.

북경당국은, 미국의 정권이양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시진핑 주석이 한국 지도자와 직접 상면하는 것을 매우 중요한 사항으로 다루고 있다. 미국이 대선을 치르면서 다른 대응을 못하는 시점에, 한국과 중국의 외교 책임자들이 북경에서 회합을 가졌고 양국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격상시키는 것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중국은, 동맹을 새로이 강화하려는 차기 정권이 백악관에 안착하기 이전에, 한국과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반면에 워싱턴은 중국과 한국의 친선이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어려움을 가져올 것으로 염려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동북아 동맹에 대한 핵심과제는 한국과 일본 간의 손상된 관계를 회복시키려는 것이지만, 한일 간의 화해를 외교적으로 추진하는 미국의 입장은 중국의 외교적 이해와 배치된다.

미국이 주도하는 다자적인 안보협의체QUAD에 한국 측이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배경에는 일본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의 자유개방 촉진구상에 한국의 참여를 반기지 않는 일본의 입장이 있다.

이런 정황에서 중국이 한일 간의 관계개선을 방해하기 위하여 서울당국과 관계를 강화하려 시도할 개연성이 크다. 중국과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게 되면, 서울당국은 설령 한일 관계가 전향적으로 개선된다 하더라도 중국을 봉쇄하려는 공식적인 조치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주일 한국대사인 남관표 씨가 중국과 합의한 ‘3가지 거부사항- Three No’s’는 구속력이 없는 약속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서울당국이 여전히 일본과 안보협력을 강화하길 원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언급을 가볍게 볼 일은 아니지만, 또한 최근에 있었던 주미한국 대사의 논쟁적인 발언에 대한 한국외교 당국의 대응방식으로 비추어 보아, 파견된 대사들의 발언들이 본국 정부의 확정된 정책을 자동적으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서울당국이 짐짓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바이든 새 행정부가 한미 동맹을 강화하기 위하여 여러 조치들을 취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장래에 점차 매우 강해질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북경당국과 관계개선 그리고 워싱턴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지원보류에 대한 염려에 대하여 이는 한미동맹에 결코 해로운 것은 아니라고 완화의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은 한중의 관계발전과 강화가, 북한에 대한 공동억지력이라는 저간의 좁은 의무사항Mandate을 넘어, 한미동맹에 대한 한국의 입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현실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바이든 새 행정부의 한국에 대한 조치가 향후 미국과 중국에 대한 한국정부의 성격을 결정하게 될 공산이 크다. 최소한 중국을 봉쇄하려는 의도에서 한국과 안보동맹을 강화하려고 한다면, 장점도 있겠지만 동시에 리스크를 맞이할 수 도 있다. 반면에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국과 중국 간에 균형을 유지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이를 감당하기가 점차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출처 : EastAsiaForum on 2020-12-03.

Anthony Rinna

동아시아포럼 내의 Sino-NK 연구편집 책임자

수, 2020/12/16-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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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2001-2002년 간에 유엔안보리(UNSC) 의장을 맡았고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외교인으로 국제사회에 잘 알려진 인물인 Kishore Mahbubani가 아래 사진의 신작을 발표하면서 코로나 이후 세계질서를 미국이 아닌 중국이 주도할 것이라고 주장하자, 서구사회가 깜작 놀랐다. 이에 대해 FT의 아시아판 책임자를 역임했고 현재 미래혁신분야의 편집을 지고 있는 John Thornhill이 아래와 같은 서평을 게재하였다.


국제사회의 회의 자리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구인들이 싫어하는 아시아인의 선호 발언을 직선적으로 해 왔던 Kishore Mahbubani가 자신의 소신을 책으로 출간했다. 제목으로 뽑은 “중국이 결국 승리했나?”라는 책자는 분명히 미국인 독자들을 당황하게 하고 화까지 돋우겠지만, 이는 한편정당한 일이다.

우선적으로 이 책은 세계의 패권국으로 굴림해온 미국을 중국이 이번 세기에 강자에 자리에서 쫓아낸다는 애메한 가정을 미국 독자에 강요한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 쓴 서적에서 Mahbubani는 미국의 지배계층들이 중국을 안이하게 냉전시대의 소비에트의 재판(결말은 모두가 아는)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시간의 문제이고 정치적 중심의 주제이지만 자유를 사랑하고 시장의 전능한 힘이 주제넘게 살아남은 공산주의 지도력을 날려버릴 것으로 확신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냉전의 비유를 들어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역할이 뒤바꾸었다고 주장하는 그는 미국을 유연성을 상실하고 이념에 갇혀있으며 체제적으로 도전을 받고 있는 수퍼-파워 국가로 묘사하는 반면에, 중국을 매우 유연하며 실제적이고 전략적으로 스마트한 경쟁자라고 비유한다. “미국이 예전의 소비에트와 같고, 중국이 예전의 미국과 같이 행동한다”는 것이다.

원론적으로 단순화시켰지만, 저자는 미국의 가장 예민한 부문들을 규명해 간다. 워싱턴에서 터져 나오는 많은 적대적 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굴기하는 중국을 제대로 다룰 일관된 전략을 개발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냉전시기의 초기였던 1946년 미외교관이었던 George Kennan에 의해 적용되었던 봉쇄전략이라는 특허와 분명하게 대비시킨다.

저자는 미국의 현재 외교관들이 궁지에 몰려 있다고 지적한다: 전직 국방부 장관인 Robert Gates가 잘 지적하였듯이 미국의 전문적 외교관들보다 훨씬 많은 군부의 인물들이 국제외교 분야에서 설쳐 된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외교관이었던 그는 미국의 국내정치는 단시안적 금력(plutocracy)의 탐욕에 사로 잡혀 왔으며, 해외에 근무하는 공직자의 뇌물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해외부패실행법안(Foreign Corrupt Practices Act)를 국내에 적용하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전략적 사고의 부재로 인해 미국은 군부의 근육질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중동에서 ‘끝낼 수 없는 전쟁(perpetual war)’에 휘말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전세계 방위비에 절반을 사용하고 있지만 소프트웨어의 시대에 군사적 물리력이 과연 얼마나 소용이 있을 것인가? 130억불을 들여서 건조한 미국의 항공모함은 수십만 불에 만들 수 있는 중국의 DF-26 미사일 한방에 쉽게 침몰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는 많은 지면을 할당하면서 미국의 사회경제적 모델은 운용의 성과를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지난 30여 년 동안 소득순위 50%이하의 시민들 소득이 감소되어온 유일한 국가이다. 같은 기간에 중국인민들은 중국 역사상 가장 괄목하게 생활의 수준을 향상시킨 경험을 체험했다”고 적고 있다.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증거하는 모든 사례를 최대로 활용하고 이에 반하는 사실들을 가능한 축소하는 것이 논객의 특징이듯이 저자 Mahbubani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미국의 실패에 대해서 난타를 가하는 반면에, 중국의 명백한 실책에 대해서 옹호하려고 한다.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으로 수천 만 명이 희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 줄로 언급한다. 홍콩에서 진행되고 있는 소요사태를 무주택자들과 부동산거부 간의 투쟁으로 간단히 치부한다.

저자는 중국의 지도자들을 칭찬하는 데는 열정이 넘쳐나면서도 미국의 지도자들에게는 저주를 던진다. 시진핑 주석이 임기제한(隔代指定)을 폐지한 것은 분파주의와 부패와 싸움을 위해 불가피한 조처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통치는 세계에 다음 세 가지의 공공선을 선사한다고 한다: 1) 중화민족주의를 적정하게 통제하고, 2) 기후위기에 신속히 대응하며, 3) 대국굴기의 중국은 혁명의 수출기지가 현상유지를 보장한다.

현자인 통치자에 의한 지배라는 자혜로운 정치(德治)를 시진핑 주석이 중국에 실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평한다.

결론부에서 저자는 책의 제목에서 던진 질문에 직접적으로 답변하길 회피한다. 미국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많은 강점을 나열한다: 개인주의적 문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대학들 세계의 영재들을 흡인하는 매력( 35만 명의 중국인을 포함하여): 비록 트럼프가 엉망으로 만들고 있지만 잘 정비된 제도들 등. 그는 “국제정치라는 무대에서 미국과 중국과 경합은 불가피하기도 하지만 서로 피할 수도 있다”며 글의 매듭을 짓는다.

그의 저서를 읽으면서 동의하지 못하면 자극이라도 받으시길 바란다 – John Thornhill, FT innovation editor.

# by Kishore Mahbubani, Public Affairs, RRP$28, 320 pages

 

John Thornhill

FT의 아시아판 책임자를 역임했고 현재 미래혁신분야 편집인

일, 2020/05/03-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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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주요한 축의 하나가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이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되어온 미재무부 발행 채권의 지위가 흔들리면서 이와 연동된 달러의 가치가 위협받고 있다. 아래의 글은 파이낸스타임지(FT)의 두 경제평론가 (Ms. R. ForooFar & Mr. E. Luce) 간에, 미국의 경제 위축 및 코로나 충격에 따른,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가 흔들리는 시나리오에 대해 서신 형식의 대화를 번역한 것이다. 다만 두 사람 모두 자산의 수익성 실현을 일차적 목표로 삼는 자본제에 익숙한 경제학자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금 또는 토지에 투자하라고? 금과 토지의 사적 소유는 해당국가와 동시대적 인류의 미래를 절대로 보장할 수 없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 대한 해법으로 다른백년은 규범으로서 공동체의 품격을 높이고 제도로서 국가의 역할을 새로이 하는 것만이 유일하다고 믿는다.


독자 여러분 중에 혹은 내가 작년에 언급한 ‘달러의 우울한 미래’ 시나리오를 기억해 낼지 모르겠다. 여기서 나는 화폐로서의 달러와 주식가치가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을 예측했다. 동시에 미국의 신용위기에 연동된 달러가치의 하락과 정부예산을 지원하기 위한 연방은행의 무제한적 화폐의 발행으로 부채의 위기를 동반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금에 대한 가수요를 분석하기도 했다.

2020년을 맞이하여 미국의 부채가 국내총생산액의 세자리(%) 수가 예상되는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은 상황이 종료되는 시점에 400%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한다), 증권시장에서 주식가치가 1929년 이래 처음으로 급격히 하락하고 있고 연방준비위는 모든 이와 모든 분야를 구제 지원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미국이 긴축정책을 채택하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 결과로 달러가치는 떨어지고 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것을 보고 있다(지난 며칠간 금값이 떨어진 것은 투자자들이 시장의 추락에 대응하기 위해 좋은 자산이던 나쁜 자산이던 일단 현금화해야 했던 사정 때문이다).

동시에 중국당국이 위안화의 안정책을 취하고 있으며 금의 공급량을 늘리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경우에는, 결국 코로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공동의 부채라는 채권을 발행하는 것에 합의를 이룰 것이고,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유럽 내 재정적 연합을 이루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한가지 더 주목할 것은, 비록 COVID-19가 현재 대체로 창업자본의 형성을 가로막고 축소시키고 있다 하더라도, 가상화폐에 대한 기대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체재가 없는 상황에서 기축통화로서 달러가 지위를 곧바로 상실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고, 실제로 현재의 달러가 가지고 있는 유동성을 지닌 대체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투자자들은 미국이 시행하는 헬리콥터-모니(비정상적 통화발행)가 미래의 성장을 보장하지 못할 것이고(COVID-19의 대응으로서 통화의 비정상적 발행은 케인즈의 생산적인 정책이라기 보다는 긴급한 상황에 대한 변통이다), 이로 인한 비생산적 부채는 성장속도를 낮추면서 미래의 미국이 누적된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

이는 이제껏 일어나리라고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최근 만난 고위직 인사의 전언에 의하면 아시아의 큰손 투자자들이 1935년 대공황 시기에 미 연방대법원이 미국행정부가 발행한 채권의 지불조건을 변경하는 것을 동의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 미재부무가 발행하는 미국채의 투자자들은 헬리콥터-모니의 정책이 점차 현대화폐이론(MMT, 필요에 따라 무제한적 화폐발행)의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미국달러이후(post-dollar world, 기축통화지위의 상실’)의 세계로 진입할 것으로 염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은 자산의 안전을 위해 유로채권, 금, 가상화폐 등 다른 가치로 위험을 분산하리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발생하려면 십 년 이상의 시간에 걸쳐 걸릴 것이고, 우리의 자식세대가 다루어야 할 부채이다. 그러나 이미 여기저기서 우리는 부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희년과 같은 부채탕감(로마제국의 시절, 시저는 당시 로마시민의 저당부채를 40% 탕감해 주었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으며, ‘달러이후’의 세계에서 미국패권의 모습에 대해서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나의 동료인 E. Luce에게 묻는다.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거주지 조지타운(미국에서 투자가치가 가장 높은 지역의 하나)과 달러라는 자산의 미래가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지난 과거 국제적 가치의 보존수단으로 달러가 파운드의 지위를 대체하는데 15년이 걸렸듯이 비슷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지? 이 모든 것이 그저 말잔치로 끝나버릴 것인지? 아니면 마법의 대체 수단(magic money tree)이라도 있는 것인 것인지?

 

April 20, 2020

Rana Foroohar

파이낸스타임지(FT)의 경제평론가

 

Edward Luce 의 짧은 답변

라라양,

내가 사는 조지타운은 미국에서 가장 멋진 이웃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지역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봄마다 꽃들이 화사하게 핀 공원을 지나노라면, 나는 이곳에 산다는 것이 축복이라고 느끼곤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방역봉쇄가 나로 하여금 답답하게 밀집된 도시에서 이토록 멋지고 푸른 공간을 빼앗아 간 좌절감을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질문에 대해 나는 자신있게 답변할 충분한 자료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다만 일생을 경제평론가로 활동하면서 받은 수입의 대부분을 나의 주택에 투자하였다.

분명한 것은 나의 주택은 달러에 기반한 것이고, 이제 달러와 함께 나의 주택의 가치도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결국 나의 투자 역시 같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성급하게 판단한다. 조지타운이 슬럼화되는 것을 결코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믿지만, 그렇다고 그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

거시적 측면에서 당신이 제기하는 달러에 대한 인상적인 시나리오에 두 가지의 미숙한 의견을 보태고자 한다.

첫 째는 코로나 사태는 뜻밖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달러화는 지난 세월에도 그러했듯이 당분간 지배적인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미래에도 그러할 것인지, 두 가지 점에서 세심하게 지켜보고자 한다, 우리는 두 달 전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초현실적 새로운 세계에 살고 있다. 마치 초신성의 별이 사라지기 전에 가장 빛나듯이, 달러 역시 그러한 과정을 밟아갈 것인가?

현재 많은 경제학자들은 중국이 미국의 경합자로서 취하는 조용한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수익성이 매우 유동적인 채권시장에서 움직임, 앞서 나가는 온라인 지불방식의 거대기업들의 존재와 신용상태. 중국이 공개자본시장에 취약하다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는 곧 변해 나갈 것이다.

두 번째는 자산가로서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hedging), 나는 토지에 주목할 것이다. 현재 경제의 위축상황이 얼마나 심각할지 얼마나 오래갈지 와는 상관없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공간은 확장되지 않을 것이며, 많은 자산가들이 이를 차지하려는 경쟁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dward Luce

파이낸스타임지(FT)의 경제평론가

화, 2020/05/05-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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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의 대통령 당선자 바이든과 대외정책팀에 대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매우 제한되어 있지만 한가지만은 분명하다. 그들은 “미국의 세계지도력 회복”을 주장하고 있다.

바이든이 국무장관으로 지명한 안토니 블링켄은 2015년에 행한 연설에서 위의 문구를 21차례나 되풀이하였다. 금년 봄, 바이든은 ‘Foreign Affairs’에 기고문을 보내면서 미국이 다시 “세계의 지도국가가 되어야 하는 이유 – Why America Must Lead Again” 라는 표제를 사용하였다. 11월말 그가 지명한 안보보좌관을 소개하는 자리에서도 “미국이 돌아 왔고, 이제 세계를 지도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공언하였다.

제발 ‘아니길’ 희망해 본다. 트럼프 시대에는 ‘세계의 지도력’ 이라는 단어가 전세계 국가들과 관계 속에서 잘못 사용되어 왔고 위험하기조차 했었다. 지난 4년 동안, 대외정책의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잘못된 ‘미국우선주의’를 비난하면서 ‘미국의 지도력’을 내세우며 안전보장과 합의에 따르는 합리적인 대안을 대대적으로 제시하여 왔다.

그런데 지도력이라는 말의 사전적 용어를 살펴보면 이는 ‘일등 또는 선두의 자리 first or foremost place’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다시 말하자면 일군의 집단을 통제하고 앞장선다는 뜻이다. 지도력은 어머니와 같은 자애와 사과파이처럼 달콤함을 의미하지 않으며 책임을 진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바이든은 미합중국이 지도국가라는 특별한 지위를 지녀야 할 이유로써 아래의 두 가지를 제시하였다. 그는 ‘Foreign Affiars’의 기고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첫째는 이는 미국의 역사적 전통이라는 것이다. 지난 70년 동안 미국은 민주당 정권이든 공화당 정권이든 공히 세계의 규칙과 질서를 만드는데 지도적 역할을 맡아 왔으며, 집단적인 안보와 번영을 제공하였다. 이는 다른 말로 과거에 미국이 잘해 왔듯이, 지금과 미래에도 잘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의 개입- meddling in the ballot box’를 저술한 도브 래빈은 미국이 1945-1989 동안 외국의 선거에 63차례나 불법적으로 개입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바이든이 생각하는 것처럼 냉전기간 동안 미국의 세계지도력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전후 시절의 미국의 역할을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싶겠지만, 이는 이미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70년 전에는 미합중국의 산업생산력이 전세계의 절반에 해당하였으나, 지금은 1/7(15%)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구매력지수로 평가해 보면, 현재의 유럽연합 GDP가 미국과 거의 동일한 규모이며, 중국은 이미 미국을 추월하였으며 올해 들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격차가 더욱 벌어졌을 것이다.

리더십이라는 용어는 다양한 파워의 구성을 의미하는데, 최소한 경제력에 있어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바이든의 두 번째 정의는 규범(도덕)적인 것이다. 그가 2017년에 언급하였듯이, 다른 국가들이 미국의 지도력을 받아들이는 것은 미국이 그들의 이익을 지켜 줄뿐만 아니라, 모두의 번영을 구가하도록 함께 도모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의 지난 수십 년 간 행동에서 국제적 안보에 특별히 기여한 바를 찾아 내기가 매우 어렵다. 브라운 대학교 국제공공 분야의 왓슨 연구서에 따르면, 9/11사태 이후 미국은 오히려 전세계에서 37백만 명의 난민을 양산하였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하기 이전에, 이미 미국은 지뢰매설 및 대량살상무기와 핵실험을 금지하는 국제조약의 인준을 거부하였고, 무기의 해외판매와 해양보호 그리고 대규모 학살과 전쟁범죄에 대한 통제,, 여성과 아동의 권리 그리고 장애아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조약 역시 거절하였다. 지구 상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상기의 조약들을 모두 비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만은 예외이었다.

물론 트럼프는 상기의 리스트에 추가하여, 파리기후협약, 이란핵협정JCPOA, 세계보건기구 WHO, 환태평양-파트너 협상TPP, 유엔인권이사회, 유네스코, 항공자유화 협정, 중거리-핵무기 협정INF 등을 탈퇴하였다.

상기에 언급한 협약의 이름들은 세계의 지도력을 주장하는 국가의 자격 여부를 따지는 명부가 아니라, 차라리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자격 여부를 검토하는 확인 리스트에 어울린다.

불행하게도 바이든 주변의 참모들은 미국의 시각으로 다자주의를 주장하지만, 지도를 배제한 협력에 대해서는 상상할 능력조차 갖추질 못했다. 블링켄은 이런 식으로 말한다 “우리가 원하든 말든, 세계는 스스로 조직할 줄 모른다. 다른 강대국이 미국을 대신하면 사태는 어려워 질 것이며, 또는 아무도 미국을 대신하지 못하여 공백상태를 초래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사태라고 부르는 국제적 협력의 붕괴가 발생한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미국이 파리기후 협약을 탈퇴한 이후에 단 하나의 국가도 미국과 동행하여 출구를 찾아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유럽연합과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 등이 더욱 적극적으로 결집하면서 최종적으로 2060년까지 탄소중립의 경제를 실현하겠다고 공약하고 나섰다. 이번 여름에 미국이 세계보건기구WHO를 탈퇴하겠다고 협박을 가하자, 곧바로 독일과 프랑스는 분담금을 올려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오해하지 마시길, 국제적 공조의 노력에 미국의 참여가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실제는 정반대이며, 미국의 참여가 매우 긴요하다. 대부분의 경우, 미국은 이제껏 일방적 지시가 아니라 함께 합의를 이루는 과정을 통해 핵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왔다.

‘지도국가’가 아니라 ‘동반자’라는 협력방식이 누구에게는 미국적이지 않게 느껴질지는 모르겠으나, 이는 실제 미국시민들이 가장 원하는 모델이다. 지난 20여 년간 갤럽은 미국시민들에게 국제현안에 대한 미합중국의 지위에 대하여 지도적leading 역할, 주요한major 역할, 보조적minor 역할, 역할의 배제no role at all 등으로 나누어 여론조사를 실시해 왔으며, 결과는 큰 차이로 언제나’ 주요한major 역할’이 첫 순위였다.

금년 9월에도 국제현안에 대하여 시키고 협회가 시민들에게 미국의 지위에 대한 선호를 “지배적이냐” 아니면 “공유적(합의적)이냐” 두가지 항목으로 설문한 결과, 3:1 수준으로 “합의적 지위”를 선택하였다.

바이든 당선자가 주장하듯이, 미합중국이 반드시 주빈의 자리를 치지해야 한다고 믿는 미국인들은 실제 많지 않다. 오히려 미국우월주의는 고립을 자초한다는 일반시민들의 반대를 왜곡시키는 것은 대외정책 전문가들 집단이다. 대외정책에 대하여 논쟁이 발생할 때마다 이를 제대로 주도하는 그룹은 대체로 국내정치에서 정의를 요구하며 앞장서 행동하는 시민들이다. 1967년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연설을 하면서, 루터 킹 목사는 미국정부에 대해 ”현존의 세상에서 폭력을 조장하는 악질 장사꾼”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주저함이 없이 다음과 주장하였다 “이런 정부는 남에게 일체 배우려 하지 않고 오로지 남을 가르치려고만 한다. 그저 세상을 지배하려고만 든다. 미국은 이제 이웃 국가들과 연대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첫째로 국제적인 비참함(전쟁)을 조장하는 일에서 손을 떼어야 하며, 둘째로 가난과 불안과 불의와 싸우는 일에 이웃 국가들과 더불어 협력해야 한다.”

바이든의 대외정책팀은 세계의 현안들을 접근함에 있어서 ‘지시leadeship’가 아니라 ‘연대solidarity’라는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연대를 통하여 다른 국가들을 지원하는 것을 우선적 임무로 삼아야 하며, 특별히 무지했던 트럼프의 시대를 마감하면서, 이웃 국가들을 협박하는 짓은 중단하여야 한다.

 

출처 : 뉴욕타임즈NYT on 2020-12-02.

Peter Beinart

뉴욕시립대학교 저널리즘 스쿨의 여론학 및 정치학 교수

월, 2020/12/21-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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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에 등을 돌린 2030세대

민주당이 4월에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참패를 한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로 2030세대, 즉 청년세대의 변심이 지목되고 있다. 청년세대는 지난 총선까지만 해도 다수가 민주당을 지지했고 민주당은 그에 힘입어 180여 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1년 여의 시간이 흐른 이번 선거에서 다수의 청년세대는 민주당에 완전히 등을 돌렸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청년세대가 1년 사이에 정치적 입장을 바꾸었다거나 진보에서 보수로 전향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당에 대한 태도를 포함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짧은 시간 동안 이리저리 뒤바뀔 수 없다. 인간심리는 상당한 기간에 걸쳐서 형성·발전되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심리는 현실이나 환경이 바뀌더라도 한동안은 잘 바뀌지 않는 특징 – 상대적 불변성 – 을 가진다. 따라서 오늘날의 청년세대의 심리를 그들이 어려서부터 청년이 되는 과정에서 경험했던 것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상대적으로 불변하는 집단심리 – 1년 사이에 갑자기 뒤바뀔 수 없는 – 로 보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이다.

 

생존 불안에 짓눌리고 있는 청년세대

나는 『풍요중독사회』에서 한국인들이 생존 불안과 존중 불안을 기본으로 하는 심각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로 인해 불안에서 벗어나는 것이 한국인들의 기본적인 삶의 목표이자 동기가 되어버렸다고 지적한바 있다.

생존 불안이란 단지 육체적 생존에 대한 위협만이 아니라 최소한의 사회적 삶조차 누릴 수 없다는 것과 관련된 불안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러다가 굶어죽을지도 모르겠다’, ‘이래서야 어디 밥이나 제대로 먹고 살겠나?’, ‘노후를 생각하기만 하면 막막해진다’와 같은 말을 하는데, 이런 것들이 생존 불안의 구체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존중 불안이란 타인들과 사회로부터 존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과 관련된 불안이다. 통속적인 말로 표현하면 차별당하거나 무시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경우 어느 세대이든 간에 생존 불안과 존중 불안에서 자유로운 세대는 없다. 그러나 청년세대의 경우에는 생존 불안이 상대적으로 더 심각하다고 말할 수 있다. 과거의 청년세대는 ‘사람은 다 자기 밥그릇은 꿰차고 태어난다’, ‘어떤 일이든 열심히만 하면 밥은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성장했다. 더욱이 이들은 경제가 고도성장하고 있던 시기에 청년기를 보냈기에 취직 걱정, 일자리 걱정 등에도 그다지 시달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오늘날에 비해 생존 불안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청년세대는 어려서부터 사회와 어른들로부터 ‘공부 열심히 해서 명문대에 가지 못하면 사람대접 못 받는다’, ‘경쟁에서 패배하고 낙오하면 굶어 죽는다’와 같은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면서 성장했다. 한마디로 생존 불안을 부추기고 자극하는 끊임없는 공갈협박에 시달리면서 성장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들은 만성적인 경기침제로 인한 취업난, 일자리 부족이 심각할 때 청년기에 진입했기에 생존 불안이 대단히 심각하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다’는 청년들의 절규는 청년세대의 생존 불안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개인 단위로 고립되어 있는 청년세대

청년세대는 홀로 살아가는 것이 생활화, 습관화된 세대이다. 오늘날의 청년세대는 아주 어려서부터 공동체 문화가 아닌 개인주의 문화가 지배하는 환경 속에서 성장한 진정한 개인주의 세대이다.

과거의 청년세대는 어렸을 때에는 동네친구들과 하루종일 뛰어놀았고, 공동체 문화가 강했던 시절에 학교생활과 사회생활을 했다. 한마디로 이들은 최소한 청년기 이전까지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문화,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성장했다. 개인주의가 온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면서도 오늘날의 성인세대, 노년세대가 집단주의 성향을 어느 정도까지는 간직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청년세대는 어렸을 때에는 또래들과의 놀이공동체를 경험해보지 못했고, 개인주의적인 경쟁 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시기에 학교생활을 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의 청년세대는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공동체 문화, 집단주의 문화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는 진정한 개인주의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청년세대는 어려서부터 청년이 될 때까지 피를 말리는 개인주의적 경쟁 속에서 홀로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에 이웃들과 더불어 같이 살아간다는 말을 머리로는 이해하더라도 가슴으로는 잘 느끼지 못한다. 홀로 살아가는 삶에 너무나도 익숙한 오늘날의 청년세대는 한편으로는 매우 개인주의적이고 자유분방하지만 다른 편으로는 매우 고독하고 무력하다.

 

불안은 개인주의를 강화한다

불안과 고립(개인주의)은 서로를 강화하는 관계에 있다.

불안이 심하면 심할수록 개인주의가 더 심각해진다. 불안은 곧 고통이다. 고통스러우면 다른 것에 신경을 쓰기 힘들어진다. 예를 들어 아주 재미있는 책을 읽고 있다 하더라도 머리가 너무 아프면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고통이 심하면 모든 심리적 에너지가 자신의 고통, 통증에 쏠리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불안하면 사람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고통에만 집중하게 되고 이웃, 사회 등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 이렇게 불안은 사람들의 시야를 ‘나’라는 테두리에 묶어놓음으로써 개인주의를 강화한다.

개인적 고립이 심할수록 불안은 더 심각해진다. 똑같이 가난한 집이라 할지라도 불화 가정보다는 화목한 가정의 불안 수준이 훨씬 낮다. 아주 친한 친구들과 함께 고난을 겪을 때가 홀로 고난을 겪을 때보다 불안 수준이 훨씬 낮다. 고립이 불안을 강화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고립이 사람들을 필연적으로 무력하게 만든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가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므로 개인은 기본적으로 무력하다. 개인이 타인들과 연대하고 단결하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사회를 개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고립(개인주의)은 고독, 외로움, 무력감 등을 초래함으로써 불안을 강화한다.

불안과 고립 사이의 악순환에서 청년세대가 탈출하려면 연대와 단결을 통해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그러나 불안에 짓눌려 개인으로 파편화된 오늘날의 청년세대는 연대와 단결을 중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가능하다고도 믿지 않는다. 이로부터 청년들은 연대와 단결을 배제한 채 홀로 분투하여 불안에서 탈출하려고 하는데, 그 유일한 방법은 돈을 더 많이 벌어 더 높은 위계로 올라가는 것이다.

 

공정과 관련된 청년세대의 분노

개인으로 고립되어 있는 무력한 청년들은 불평등한 사회, 다층적 위계 사회【1】를 뒤집어엎으려고 하지 않으며 그럴 수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각자가 더 많이 노력해서 더 많은 돈을 벌어 위계 상승을 하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믿는다. 한마디로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어떻게든 자신이 살아남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생존 경쟁의 규칙이 공정해야 한다는 요구는 사회개혁이라는 꿈을 포기한 청년들에게는 최후의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공정한 경쟁조차 보장해주지 않는 세상이란 청년들의 눈에는 불안에서 탈출할 수 있는 실낱같은 마지막 희망까지도 짓밟아버리는 절망적인 사회로 비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청년세대는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사회에 대해서는 잘 분노하지 않는다. 자기보다 상위 위계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잘 분노하지 않는다. 그래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청년세대는 불평등한 사회, 다층적 위계 사회를 바꿀 수 없다고 믿기에 그 속에서의 위계 상승에만 목을 건다. 유일한 개인주의적 불안 탈출구로 간주되는 생존 게임의 공정성을 해치는 것, 반칙에 대해서 청년세대가 격렬하게 분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들은 차별을 용인하고 나아가 찬성하면서 위계 상승 욕망의 실현에 방해가 되는 불공정성에 대해서는 폭발적인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 참고로 지면관계상 여기에서 자세히 논할 수는 없지만, 청년세대 내에서의 페미니즘 문제를 둘러싼 남녀간 갈등도 공정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

 

두 가지 길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청년세대의 심리를 관통하는 핵심은 불안이다. 청년들은 당연히 불안 탈출을 간절히 원한다. 이로부터 청년세대는 특정한 이념을 지속적으로 지지하기보다는 불안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은 정당이나 정책을 가변적으로 지지한다.

박근혜 정권이 촛불국민의 힘으로 탄핵되고 민주당이 집권하자 청년들은 연대와 단결을 통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 연장선에서 집단적으로 불안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여당을 지지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집권한 이후에도 개혁은 지지부진했고 불안은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 기대를 무참히 배신당한 청년세대는 집단적으로 불안에서 탈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다시 개인주의적인 불안 탈출의 길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고 이번 선거에서 여당에게 참패를 안겼다.

청년세대는 앞으로 어떤 길로 걸어가게 될까? 만일 진보세력이 청년세대에게 연대와 단결에 기초해 사회를 개혁하는 집단주의적인 불안 탈출의 길을 제시해줄 수 있다면 청년들은 당연히 진보세력을 지지할 것이다. 그 길만이 불안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세력이 희망을 주지 못한다면 청년들은 극우세력을 지지할 것이다. 개인주의적 불안 탈출의 길을 제시하는 것 – 이명박의 부자 만들어주겠다는 공약을 떠올려보라 – 은 극우세력의 전매특허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번의 선거참패로 인해 민주당까지도 청년들을 개인주의적 불안 탈출의 길로 끌어당기려고 한다면 한국 사회는 파멸로 치닫게 될 것이다. 개인주의적 불안 탈출의 길, 즉 사회개혁을 배제한 공정한 개인적 경쟁으로는 청년세대가 절대로 불안과 고통에서 탈출할 수 없으므로 그들은 계속해서 더 불안해지고 더 고독해지며 더 분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보세력은 불안, 특히 청년들의 생존 불안 문제를 해결할 수 청사진을 제시함으로써 청년들을 고립이 아닌 연대와 단결의 길로, 개인주의적 경쟁이 아닌 사회개혁의 길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1】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풍요중독사회』를 참고하라

 

김태형

화, 2021/04/2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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