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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2] 기본자산, 정말로 그게 최선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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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2] 기본자산, 정말로 그게 최선입니까

admin | 일, 2021/08/01- 22:40

기본자산, 정말로 그게 최선입니까

김공회 경상국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기본자산제의 매력

‘성년이 된 모든 시민에게 일정액의 자산을 지급하자!’ 매력적인 주장이다. 일단, 느낌이 확 온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운 중에도 부동산 가격만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요즘, 상대적 박탈감과 취업난에 허덕이는 우리 청년들에게는 특히 더 소구력이 높을 것도 같다.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 사업을 벌일까? 여행을 갈까? ‘간’이 작은 이들은 그 돈을 금융기관에 넣어두고 곶감처럼 조금씩 빼 먹으며 훗날을 도모할지도 모르겠다.

 

국가가 모든 시민에게 ‘기본자산’을 지급하자는 주장이 최근 인기를 얻고 있다. 일정 연령, 이를테면 만 20세에 도달한 모든 청년을 대상으로 하니, 기본자산제는 순차적으로 모든 국민이 혜택을 볼 수 있는 제도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정의당이 ‘청년 기초자산제’를 제1공약으로 내놓을 때만 해도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불평등 연구로 유명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보편적 자본지원’이 라는 제안을 내놓았고, 올해의 4ᆞ7 보궐선거에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기본자산제를 본격적으로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의 ‘청년출발자산’, 변성완 부산시장 예비후보의 ‘부산형 청년기초자산제’가 그것이다. 기본자산제는 내년 3월 대통령선거에서도 주요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미 김두관 의원과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각각 ‘국민 기본자산제’와 ‘기초자산제’를 내놓고 서로 ‘원조’ 경쟁을 펼치고 있을 정도다.

 

이렇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기본자산제, 과연 무엇이고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기본자 산은 우리에게 조금 더 익숙한 기본소득과 어떻게 다른가? 기본자산이 오늘날 자산불평등을 해소 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기본자산의 이상 - 기본자산 제안이 제기하는 문제들

왜 기본자산인가? 기본자산제가 제기하고, 또 해결하고자 하는 고유의 문제는 무엇인가? 이 질문 은 크게 두 측면에서 살필 수 있다.

 

무엇보다 기본자산은 그것의 수혜자에게 삶의 가능성 영역을 넓혀주리라 기대된다. 이런 성격 때문 에 기본자산의 직접 수혜자는 보통 청년으로 상정된다. 상당액의 목돈을 받고 그 처분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수 있으려면 나이가 너무 적어선 안되고, 동시에 그런 결정이 해당 개인의 삶에서 가급적 큰의미를 갖게 하려면 나이가 너무 많아도 안 된다. 기본자산은 본격적인 사회생활에 돌입하는 청년에게 지급되는게 제격일 것이다.

 

청년기의 실패 때문에 평생을 낙오자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실패’라고 불릴만한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채 청춘을 흘려보내는 이들도 많다. 누군가에게 이것은 자발적 선택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돈이 없어 그런 선택을 강요받는 경우도 많다. 그런 청년에게 기본자산을 준다면 어떨까? 이를테면 만 스무살이 되는 모든 청년에게 5천만원을 준다면? 이제 그는 거액의 등록금이 드는 대학에 갈 수도 있고, 장기간 해외여행을 떠날 수도 있으며, 직접 사업체를 꾸릴 수도 있다. 미국의 법학자 브루스 애커먼은 기본자산제의 대표적인 현대적 주창자 가운데 한 명이다. 1990년대 말 그는 만 21세 청년에게 8만 달러의 ‘사회적 지분 급여’를 주자고 제안했는데, 그 배경엔 미국의 살인적인 대학등록금이 있었다.

 

옹호자들은 기본자산제가 자산불평등 완화에도 특효약이라고 주장한다. 소득불평등이 문제라곤 하지만, 소득보다 훨씬 더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있는 게 자산이다. 더욱이, 자산불평등은 소득불 평등을 낳는 주요한 원인이다. 그러니 후자에 대한 문제제기는 ‘결과’를 시정하자는 것이지만 전자 에 대한 문제제기는 ‘원인’을 제거하는 의미가 있다. 끝으로, 자산은 세대를 거듭해 이전되기도 한 다는 점에서 자산불평등은 단순한 소득재분배보다 심원한 차원의 조치로써만 시정이 가능하다. 아마도 이상의 이유로 많은 이들에게 자산불평등을 문제 삼는 기본자산제가 소득불평등을 시정을 꾀하는 다른 제안들-특히 기본소득제-에 비해 ‘화끈하게’ 다가가는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자산불평등이 소득불평등의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이고 그러한 자산불평등은 상당 정도 자산 세습의 결과라는 점에서, 기본자산제는 거의 언제나 상속에 대한 문제제기를 동반한다. 실제로 김두관 의원과 정세균 전 총리 모두 상속ᆞ증여세 를 목적세로 전환해 기본자산 재원으로 삼겠다고 밝히고 있다. 피케티 또한 보편적 자본지원을 위해 자산보유세와 상속세를 강화하자고 제안한다.

 

기본자산의 현실 - 꼭 기본자산이어야 하는가?

기본자산 제안의 의의를 이상과 같이 청년의 삶의 가능성 확장 및 불평등 완화에서 찾는다면, 그것을 마다할 이유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앞의 절에서 구별한 기본자산의 두 가지 의의를 조금 더 전개해보자.

 

아참, 논의가 더 진행되기 전에 밝혀둘게 있다. 지금 ‘자산’이라고 하는 것은 실은 그냥 ‘목돈’이다. 경제학적으로 자산과 소득의 구별은 지극히 형식적인데, 개인에게 들어오는 모든 현금의 흐름은 소득이고 그러한 소득이 곧장 지출되지 않고 축장되거나 금융기관에 예치되면 자산이 된다. 따라서 엄밀히는 ‘기본자산’도 그냥 ‘소득’이다. 어쨌든 통상 적인 소득보다는 액수가 큰 돈이 기본자산이겠다.

 

기본자산이 청년의 가능성을 넓혀준다고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산, 곧 목돈이 갖는 독특한 기능 때문이다. 등록금이 비싼 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예기치 않은 질병에 걸렸을 때, 우리는 목돈을 필요로한다. 집을 살 때, 아니, 월세방 이라도 얻으려면 거액의 보증금이 필요하다. 외국으로 배낭 여행을 가기 위해 돈을 모아본 이들도 많으리라. 사업을 하려고 해도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다.

 

과거엔 목돈을 직접 손에 쥐지 않으면 위와 같은 일들은 아예 할 수 없었다. 1976년에 도입된 ‘근로 자재산형성저축’ (일명 ‘재형저축’) 제도가 엄청난 호응 속에서 성공할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다. 지금은 다르다. 목돈을 사전에 마련해두지 않아도 위 일들을 할 수있다. 대체로 금융제도와 복지제도의 발달 덕택이다. 요즘엔 대학 졸업 뒤에 학자금대출 원리금을 갚느라 고생한다는 말은 있어도 단 돈 몇만원이 모자라 등록금을 내지 못해 휴학했다는 얘기는 거의 들을수 없게 되었다. 돈이 없어도 사업아이템이 확실하고 계획서만 잘 쓰면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상당액의 초기자금을 지원받을 수도 있다. 자동차나 기타 고가의 내구재도 판 매기업이나 금융기관의 할부금융제도 덕분에 당장은 큰 돈 들이지 않고 손에 넣을 수 있다. 목돈이 점차 불필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자산보다는 소득

현대인에게 필수적인 것은 자산보다는 소득, 안정적이고 정기적인 소득의 흐름이다. 정부나 지자체, 각종 공적ᆞ시민적 기구들로부터의 무상 지원은 논외로 하더라도, 금융제도의 발달 덕택에 거의 모든 일시적 목돈 지출은 장기간에 걸친 원리금 상환 프로그램으로 변환될 수 있다. 국가장학제도와 같이 정부가 이를 도모하기도 한다. 자, 생각해보자. 누구나 인생의 어떤 국면에서 크게 한 번은‘도박’을 할 수 있다. 꼭 젊은시절에 하란 법도 없다. 그러니 기본자산이 필요하다면, 그 시기가 반드시 청년기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그러한 도박을 포함해, 한 사람이 평생 쓰게되는 지출액의 평균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그 액수가 계산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지출액을 저평균적인 개인의 일생에 걸쳐 그의 소득흐름을 고려해 아주 안정적으로 펼쳐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이젠 소득만이 중요할 뿐이다. 인생의 도박을 언제 감행하든 거기에 드는 거액의 비용은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지불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기본자산은 언제나 정기적인 정액의 소득 흐름으로 변환이 가능하다. 예컨대, 기본자산으로 받은 1억원을 다양하게 지출하는 대신 금융기관에 맡겨두고 앞으로 60년(=720개월) 동안 매월 정액의 현금을 받는 계약을 금융기관과 체결할수 있겠다. 이때 월 수령액에는 1억원에 붙은 이자도 포함될 것이므로, 월 수령액은 1억 원을 720으로 나눈 값(약 13만 9천 원)보다는 클 것이다. 이자율을 연 3%로 가정하면, 월 수령액은 30만 원이 된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60년 동안 매월 30만원의 정기적인 소득 흐름은 연3%의 이자율 아래서 1억원의 현재 가치를 갖는다. 이 상의 추론은 기본자산제와 기본소득제는 이론적으로 동일하게 설계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1)

 

물론 현실은 이론과 다르다. 무엇보다 기본소득과 기본자산을 소비자 입장에서 만족스럽게 변환해줄 금융기관은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위 예에서, 1억원을 수탁한 금융기관은 3% 대신 2%로 적용이자율을 낮추고자 할 것이다. 이 경우 월수령액은 24만원에도 못미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건 금융제도가 발달함에 따라 양자의 상호전환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제도 및 그것을 뒷받침하는 기술적 여건이 발달함에 따라 전환 과정에서 기관과 개인 간의 시차도 좁혀지고 있다. 과거엔 그런 전환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했고, 그 때문에 개인이 스스로 자산을 확보하고 있어야만 가능한 일들이 많았던 것이다.

 

자산불평등은 어찌할 것인가?

자산(=돈)이 그 고유의 기능을 잃고 있다. 대체로 1990년대 이후 우리 경제의 발달 추이로부터 이를 알아채지 못하기란 쉽지 않다. 근로 대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재형저축 제도가 1995년에 폐지된 것도 그런 흐름의 일부라고 이해할 수있다. 이젠 전세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미리 허리띠를 졸라맬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자산은 중요하지 않은가? 어쨌든 자산불평등은 심각하고, 또 그것은 소득불평등을 낳는 핵심 원인 가운데 하나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자산불평등 완화를 위해 기본자산제의 필요성도 인정될 수 있지 않을까?

 

이 대목에서 자산이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게 유용할 것 같다. 보통 자산은 토지나 건물, 원재료ᆞ제품, 현금이나 각종 금융상품 등 다채로운 형태를 취한다. 꼭 소유를 해야하는 것도 아니어서, ‘삼천리 금수강산’은 우리 한국인의 소중한 자산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쓰시던 만년필’과 같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추상적인 의미를 갖는 자산도 있다. 이렇게 자산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고, 또 의미가 있다.

 

그러나 ‘자산불평등’이라는 맥락에서 자산이란 그저 화폐적 가치로써만 고려된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화폐를 포함한 금융자산은 상관이 없다. 문제는 비금융 자산이다. 저 만년필이나 토지를 어떻게 화폐로 변환할 것인가? 결국 의미 있는 것은, 해당 자산이 발생시킬 수 있는 일시적 또는 장기적 현금흐름의 현재가치(=가격)일 터이다. 이에 따르면 만년필이나 시골 야산 등은 거의 가치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자산불평등에서 아버지의 유품이나 가치가 낮은 시골 야산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자산의 물적 양이 아니라 자산이 발생시 키는 소득의 크기가 중요하다. 시골 야산 1만평보단 서울 강남의 1평이 중요하다. 결국 여기서도 또다시 문제는 ‘소득’이다. 자산이 소득을 낳고, 그러한 소득이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따라서 자산불평등 완화란, 자산에서 유래하는 소득을 줄이는것, 그 편중성을 낮추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는 무엇보다 그러한 소득에 높은 세율을 누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다. 이것이 피케티의 방식이다.

 

자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을 줄이는게 핵심이라고 했다. 자산소득에 높은 세율을 적용해 자산의 소득발생 능력을 제한하는 것만으로도 자산불평등의 문제는 상당 정도 해소된다. 이러한 세제가 영구적 이라면 그것은 자산의 수익률, 즉 그것이 낳는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가치를 낮춤으로써 자산의 가치(=가격)를 즉각적으로 떨어뜨릴 것이다. 요컨대 자산소득에 높은 세율을 적용하기만 해도 자산가치 하락을 통해 소유권의 변동이 전혀 없이도 자산불평등이 완화되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그런데 피케티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개인이나 법인이 보유한 자산의 가치에 의거해 별도의 보유세제까지 제안하고 있다. 이쯤 되면, 개인이든 법인이든 자산을 소유하고자 할 경제적 유인 (incentive) 자체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이상의 논의는 기본자산제를 보는 색다른 시점을 제공한다. 기본자산이 (자산)불평등 완화에 기여 하는 것을, 개인에게 지급될 저 기본자산액의 기능 이라고 여기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본자산을 시민들에게 나누어주기 이전에, 즉 위의 자산소득이나 자산소유에 대한 세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자산불평등은 결정적으로 누그러지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현재의 상속ᆞ증여세제 강화 또는 자산소득ᆞ자산소유에 대한 세제의 신설ᆞ강화를 통해 걷힌 재원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남는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기본자산제가 내포하는 문제들

물론 그 돈을 기본자산이 됐든 기본소득이 됐든, 아니면 그 어떤 형태로든 개개인에게 나눠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최선일까?

 

논의를 자산 영역에만 한정하자. 저 돈을 이를테면 만 25세가 되는 모든 청년에게 1억원씩 나눠 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긴 어렵다. 우리 청년은 저 돈을 어떻게 써야할까? 여행? 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일인가? 창업? 그걸 모두가 해야하나? 신규창업 기업의 평균 존속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아나? 주거? 그 돈으로 집을 어떻게 사나? 전월세 보증금 정도라면 지금도 저리대출이 되는데? 아, 청년인데 꿈도 안꾸냐고? 대체 왜? 그건 고정관념이다. 청년이든 노년이든 그냥 잠만 잘 자도 된다.

 

둘째, 사람들이 기본자산제에 대해 거의 공통적으로 걱정하는게 하나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그걸 들고 도박장에 가거나 주식시장이나 코인에 투자(?)하면 어쩌겠냐는 거다. 그런데 그것이 이상한 가?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자산(=목돈=여윳돈)의 궁극적이고도 거의 유일한 의미 아니겠는가? 다시 강조하건대, 과거 자산이 가졌던 고유한 의의들은 이제 거의 사라졌고, 자산의 거의 유일한 의미는 투자를 통한 소득창출이라는 것으로 수렴되고 있다. 그러니 우리의 청년이 기본자산 1억원을 가지고 주식이나 코인을 하는 것에는 조금도 이상할 게 없으며, 그것을 금지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그리고 평균적ᆞ장기적으로 시장의 평균수익률 이상을 거두는 것이 개인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라면, 저 기본자산은 증권사나 은행에 맡겨두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이렇게, 오늘날 자산 보유를 통해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소득이라면, 국가는 그들에게 그냥 적정한 소득을 보장해 주면 되지 않을까? 왜 굳이 자산을 준다는 것인가?

 

셋째, 기본자산은 불평등 해소에 기여하더라도 그 정도는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어차피 나눠줘 봐야 이런저런 경로를 거쳐─주요하게는 금융시장 을 거쳐─기본자산으로 풀린 돈은 결국 시장에서 힘이 센 이들에게 흡수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산불평등 해소는 자산의 보유 및 그로부터 유 래하는 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함으로써 주로 이루어질 수있다. 피케티 등의 연구가 보여준대로 자산소득이 불평등에 기여하는 것은 소득 최상위층, 아무리 넓게 잡아도 인구의 5% 안쪽에서의 일이다. 이 범위를 벗어나 있는 사람들의 소득은 대부분 노동소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을 모두 ‘고만고만한’ 자산소득자로 만들어주는게 자산불평등 완화인가? 우리 정치권에서는 이 점을 보다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기본자산제는 국가균형 발전에 역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위기 와중에도 수도권 집중은 극에 달하고 있고, 그것이 우리 경제와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목돈을 손에 쥔 지방의 청년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개인차를 고려하더라도, 청년 인구의 수도권으로의 유출이 가속화되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맺음말 - ‘기본’이 되는 사회를 향하여

이상의 논의에 따르면, 기본자산제는 단순히 최선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정책이다. 그런데도 그것이 이토록 정치권 안팎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그 직관성과 단순성이 큰 매력 포인트일 것이나, 급속한 경제와 사회의 발전과 변화의 결과 개인에게 자산의 의의가 이미 크게 축소되었는데도 여전히 과거의 관념에 많은 이들이 사로잡혀 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한다. 오늘의 경제 현실에 맞는 접근이 필요하다.

           

다른 한편, 기본자산제의 인기는, ‘기본’ 시리즈의 유행이라는 최근 우리나라 정책 영역의 트렌드의 일부이기도 하다. 직접적으로 이는 우리 사회가 ‘기본’이 안되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리라. 아무리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삼성이 업계를 호령해도, 우리 경제 전체가 선진적이라고 하긴 어렵다. 아니, 삼성조차도 반도체는 잘 만들지만 자사의 노동자를 대하는 방식에선 여전히 후진적인 면모도 보이고 있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최근 ‘K-방역’의 성공이 보여주듯 어떤 면에선 세계 최고 수준을 달성했지만, 여전히 많은 영역에서 발전의 여지가 크다. 사회정책은 그런 부분 가운데 하나다.

 

결국 오늘의 글로벌 경제환경,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의 위상에 맞는 ‘기본’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첫 번째 과제가 아닐까? 사람들이 ‘기본’ 시리즈에 호응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일 것이다. 이에 비해 기본소득이나 기본자산은 이름에 ‘기본’이 들어갔지만, ‘기본 갖추기’의 한 방편일 뿐이다.2) 지금 우리에게 맞는 ‘기본’은 무엇일까? 다.


1) 계산에는 금융감독원에서 제공하는 ‘현재가치 계산기’를 이용했다. 다음 사이트에서 변수들을 바꿔가며 미래 기본소득의 현재가치를 계 산해볼 수 있다. http://fine.fss.or.kr/main/fin_tip/cal/cal03_03.jsp.

2) 기본소득 및 기본자산의 성격에 대한 보다 본격적인 논의는 김공회 (2020), 「긴급재난지원금은 기본소득의 마중물인가? 기본소득(론)의 과거, 현재, 미래」, 『마르크스주의 연구』 제17권 제3호, 106-131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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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개혁을 방해하는 요인들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혁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민중이므로 개혁을 지체시키고 있는 기본 원인은 외적인 객관적 조건보다는 민중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 개혁을 성과적으로 추진하려면 그 무엇보다 민중이 어떤 이유 때문에 개혁에 소극적인가 혹은 개혁에 반대하는가를 알아야 하고 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민중이 개혁의 주체가 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걸림돌이 무엇인지 밝히고 기본소득이 그것을 없애는데 기여함으로써 개혁을 뒷받침한다는 점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정치적 무관심과 기본소득

민중을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고통이다. <풍요중독사회>를 비롯한 저서들을 통해서 줄기차게 강조해왔듯이 한국인들은 심각한 수준의 생존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쉽게 말해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생존 불안은 돈과 관련된 근심걱정을 끊임없이 유발하고 그 결과 돈에 대한 병적인 욕망을 강제한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삶을 위협하는 생존 불안은 그 자체로서 끔찍한 고통이다. 고통스러운 사람은 자신의 고통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배고픔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은 아름다운 풍경에 눈길을 주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생존 불안이라는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은 사회개혁, 더 나은 미래 등에 관심을 갖기 힘들다.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요즈음의 한국 젊은이들은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다.”고 절규하며 취직준비에만 골몰하고 자그마한 돈이라도 손에 쥐게 되면 소위 영끌투자를 하는 반면 정치에는 무관심하다. 이들에게 ‘사회 개혁’이란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다.

심각한 생존 불안은 한국인들에게 정치적 무관심을 강요한다. 생존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 고통스러운 사람은 정치가 어찌 되든, 나라가 어찌 되든, 지구촌이 어찌 되든 간에 일단은 자기부터 살려고 발버둥치기 마련이다. 생존 불안과 민중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비례관계에 있다. 민중은 기본소득 – 최소한 최저생계비를 상회하는 수준의 기본소득 – 을 통해 심각한 생존 불안에서 해방되면 자연히 사회개혁, 더 나은 미래에 대해 눈길을 돌리게 될 것이다. 즉 생존 불안을 크게 줄여주는 기본소득은 민중이 정치적 무관심에서 벗어나 정치의 주체로 나설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고립과 무저항

“억압과 착취가 있는 곳에는 저항이 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은 이 명제를 의심하게 만든다. 1대 99의 사회라는 말이 웅변하듯,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심각한 불평등 사회 속에서 여전히 억압과 착취를 당하고 있지만 민중의 저항은 과거에 비해 약화되었다. 왜 민중은 저항하지 않는 것일까?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거의 개인 단위로 고립되어 살아가고 있어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는 학교 공동체, 직장 공동체, 마을 공동체 등 각종 공동체가 존재했다.

민중이 공동체, 집단으로 묶여서 살아가는 경우에는 억압과 착취를 받으면 반드시 저항을 한다 – 그 시점이 언제일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 고 말할 수 있다. 어떤 농촌마을 사람들이 공동체로 묶여서 살아간다고 가정해보자. 만일 지주가 마을 사람들 중에서 일부를 폭행하거나 가혹하게 착취한다면 모든 마을 사람들이 그것을 자기 문제로 받아들여 분노할 것이다. 그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마을 사람들은 농민봉기에 떨쳐나설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 마을 사람들이 개인 단위로 고립되어 살아가고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면 어떨까? 지주가 마을 사람들 중에서 일부를 폭행하거나 가혹하게 착취하더라도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그 장면을 보면서 더 겁을 먹고 더 무력해질 수도 있다. 물론 폭행과 착취를 당한 당사자들은 분노할 것이다. 그러나 그 분노는 개인적 분노에 그칠 뿐 마을 사람들 모두의 분노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분노감정이 건강하게 해소되거나 치유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노감정이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되면 마을 사람들은 우울증을 앓게 될 것이고 그것이 외부로 향하게 되면 타인을 학대하거나 범죄를 저지르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억압과 착취가 있는 곳에는 저항이 있다’는 명제에는 전제조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전제조건은 민중이 흩어져서가 아니라 공동체로 묶여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온갖 학대, 갑질, 성희롱 등에 시달리는 데도 저항을 잘 하지 못하고 개혁에 미온적인 것은 한국 사회에서 공동체가 전멸했다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인 단위로 고립되어 살아가는 민중은 억압과 착취를 당하면 정신병에 걸리거나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게 될 뿐 저항을 하지 못하며 개혁의 주체가 될 수도 없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개혁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민중이 하나로 단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체와 기본소득

기본소득은 뿔뿔이 흩어져 있는 한국인들을 단합시키고 공동체를 복원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기본소득은 한국인들을 공동의 이해관계로 묶음으로써 민중적 단결과 공동체 복원을 촉진할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고 단결하려면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공동의 이해관계를 발견하기가 어렵고 많은 경우에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민주노총이 개혁적인 부동산정책을 주장하기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 중에 주택보유자도 있고 무주택자도 있어서다. 집값이 오르기를 바라는 주택보유자와 집값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무주택자를 하나로 묶기는 힘들다. 물론 한국인들은 근본적인 사회대개혁이라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인들의 의식 수준은 그것을 당면한 자기 문제로 받아들일 정도가 아니므로 근본적인 사회대개혁은 현실에서 사람들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역할을 하기 힘들다. 반면에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제공할 수 있는 기본소득은 절대다수의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내고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이웃과 사회 나아가 기본소득을 추진하거나 실시하는 정부에 대한 한국인들의 우호적 태도와 친사회적 심리를 강화할 것이다.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이웃과 사회가 자기한테 피해를 주면 주지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웃을 경쟁대상으로 간주하여 경계하고 적대적으로 대하며 사회에 등을 돌린 채 살아간다. 한국인들은 정부에게 뜯기기만 할뿐 받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금저항 심리가 강할 뿐만 아니라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의심부터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장차 어떤 정부가 집권하더라도 한국은 미래로 나아가기 힘들다. 지금까지 이웃, 사회, 국가는 생존 불안으로 신음하는 절대다수의 국민들을 외면해왔다. 즉 한국인들은 이웃, 사회, 국가가 자신을 사랑해주고 보호해주는 경험, 위기에 빠진 자신을 도와주는 경험을 거의 해보지 못했다. 이런 조건에서 기본소득은 이웃, 사회, 국가가 자신을 위해 존재하며 활동한다는 믿음을 갖게 해줌으로써 이웃, 사회, 국가에 대한 신뢰를 가능하게 해주고 친사회적인 심리를 강화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민중적 단결과 공동체 복원으로 이어질 것이다.

 

의식개혁과 기본소득

반복적으로 강조하건대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개혁의 성패는 민중적 단결과 공동체의 복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립된 개인의 처지에서 벗어나 공동체로 묶여야만 개인들은 비로소 개인중심적 사고가 아닌 집단중심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되고, ‘우리는 모두가 하나의 운명공동체’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다. 한국인들이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면 나의 고통이 곧 이웃의 고통이자 세상의 고통임을 깨닫게 되고 나의 행복만이 아니라 모두의 행복을 바라게 될 것이다.

기본소득이 촉진하는 민중적 공동체의 복원은 우선 의식개혁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까지 절대다수의 한국인들은 개인으로 고립되어 살아왔기에 생존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자도생의 생존전략에 기초해 각개약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각자도생이 아닌 다른 방법, 집단적 힘으로 사회를 개혁함으로써 생존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즉 기본소득은 한국인들에게 ‘이웃과 미친 듯이 경쟁하고 싸워야만 이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서로 단결하고 협력하는 방식으로도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겠구나’라는 통찰과 자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각개약진이 아닌 모두가 힘을 합쳐 세상을 바꾸는 방식이 있으며 그것만이 살길임을 깨닫게 해주는 의식혁명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다. 기본소득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 기본소득의 실시는 한국인들의 의식개혁을 촉진함으로써 개혁의 분위기를 크게 강화할 것이다.

기본소득이 촉진하는 민중적 공동체의 복원은 또한 개혁에 대한 민중의 자신감을 강화할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한국 사회가 부정의하고 불평등한 사회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려고 하기보다는 각자도생에 매몰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믿어서다. 단결된 집단의 힘은 무한대이지만 고립된 개인은 무력하다. 개인의 힘이 제아무리 크다 한들 개인의 힘만으로는 사회를 개혁할 수 없다. 개인이 최대의 능력을 발휘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경쟁에서 승리해 떼돈을 벌거나 출세하는 것뿐이다. 고립되어 살아가는 개인은 무력감으로 인해 사회 개혁에 대해서는 꿈조차 꾸기 힘들다. 따라서 고립된 개인은 개혁의 청사진이 아무리 멋져도 그것을 냉소적으로 대한다. 이런 조건에서 기본소득은 개개인의 생존 불안을 없애고 공동체 복원을 촉진하여 한국인들을 무력감의 깊은 늪에서 구출해냄으로써 개혁을 힘차게 떠밀어나갈 수 있다. 고립된 개인들이 공동체로 묶이면 묶일수록 민중의 자신감은 백배해질 것이고 개혁에는 가속도가 붙기 마련이다.

 

국민통합과 기본소득

오늘날 한국인들 사이의 관계는 유사 이래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악화되어 있다. 이것은 사회적 관계 영역에서 한국이 OECD 회원국 중에서 꼴찌를 차지한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최악이라는 것은 특정한 사회집단에게 이익이 되는 개혁과제에 나머지 사회집단이 박수를 쳐주기보다는 배 아파하거나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타깝지만 한국인들은 서로에게 그다지 너그럽지 않다.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처럼 시기와 질투가 심하다. 이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는 특정한 집단에게만 이익이 되는 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찬성률이 낮은 편이다. 예를 들면 노동자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은 사실 자영업자들에게도 이익 – 노동자들의 수입이 올라가면 소비를 많이 할 테니까 – 임에도 그들은 그 제도를 반대한다. 청년들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은 사실 그들의 아버지뻘인 중장년층에게도 이익임에도 그들은 그 제도를 반대한다. 이런 식으로 악화된 인간관계는 택시 기사들에게 도움이 되는 개혁과제를 버스 기사들은 싫어하고 노인세대에게 도움이 되는 개혁과제를 청년세대는 반대하게 만들 수 있다.

민중이 다종다양한 집단으로 분열되어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대립하고 갈등하는 현상을 극복하지 못하면 성공적인 개혁의 추진은 불가능하다. 사회가 분열되면 국가적 개혁과제를 제기하기도 힘들고 추진하기는 더더욱 힘들어진다. 특히 어떤 개혁과제가 특정한 사회집단의 생존 불안을 자극할 경우 그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그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과감한 부동산 개혁, 토지개혁이 일부 집단의 생존 불안을 건드린다면 그들은 결사반대할 것이다. 최소한 생존 불안에서는 해방되어야 사람들은 마음의 안정과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고 설사 개인적으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그것이 전체 사회에 이익이 된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찬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고질적인 사회 분열과 갈등을 완화하고 국민통합에 기여하며 개혁 추진에 유리한 사회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사회 개혁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기본소득은 개혁의 마중물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생존 불안을 해결하는데 그치지 않고 평등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평등 수준이 높아져야 ‘너와 나는 다르다’가 아니라 ‘우리는 하나’라는 동질감이나 일체감이 형성될 수 있다. 또한 위계 간 학대 현상이 근절됨으로써 연대의식이나 공동체 의식이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개혁을 위해서도, 즉 격차를 줄이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도 기본소득부터 실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앞에서 계속 강조했듯이 기본소득으로 생존 불안이 약화되어야 민중의 의식이 깨어나고 정치참여가 가속화되며 민중적 단합이 실현됨으로써 한국 사회가 경제적 격차를 줄이는 쪽으로 거대한 방향전환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기본소득과 인권>이라는 글에서 강조했듯이, 기본소득은 민중의 저항 의지와 권리를 든든히 뒷받침해주고 강화할 것이다. 위계 관계나 조직 내에서 사람들이 저항을 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해고나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즉 생존 불안이다. 직장상사가 갑질을 하거나 성희롱을 해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참는 것은 해고를 당해 생존이 위태로워질 것을 두려워해서다. 기본소득은 사람들을 생존 불안에서 해방시킴으로써 불의에 저항할 용기를 내도록 고무하고 격려해줄 것이다. 생존 불안에서 해방된 민중이 조직이나 직장에서 불의에 저항하기 시작하면 한국의 조직 문화, 직장 문화, 사회 문화는 민주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즉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문화가 권위주의적이고 수직적인 문화에서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문화로 바뀌어나가고 각종 조직이나 직장은 조직 구성원들을 더 우대하고 존중해주는 쪽으로 변화해나갈 것이고 그 결과 민주화, 개혁이 촉진될 것이다.

기본소득이 개혁의 마중물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려면 최소한 최저생계비 이상의 기본소득이 지급되어야 한다. 현재 여당의 대권 주자인 이재명 도지사는 기본소득의 최종목표를 1인당 월 50만 원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정도만 해도 상당한 정도로 개혁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본소득이 되기 위해서는 또 기본소득의 거대한 의의가 충분히 발휘되기 위해서는 월 지급액의 목표치를 더 높이 잡아야 할 것이다. 만일 이재명 지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민중은 그의 기본소득 정책을 지지하면서 그것의 목표치를 더 상향조정하도록 요구해야 할 것이다.

 

김태형

토, 2021/09/18-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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