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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박상진의사 순국100주년 기념특강 : 2강 – 1910년대 국내최대 비밀단체 ‘광복회와 총사령 박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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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박상진의사 순국100주년 기념특강 : 2강 – 1910년대 국내최대 비밀단체 ‘광복회와 총사령 박상진’

admin | 화, 2021/08/17- 04:41

#박상진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 특강 
2강 – 1910년대 국내최대 비밀단체 ‘광복회와 총사령 박상진’
강사 : 충남대 #이성우 교수

주최 : #근현대사기념관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후원 : #강북구

#박상진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 특강
1강 – 이루지 못한 혁명의 꿈, 의열투쟁의 선구자,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의 삶과 사상
강사 : #박중훈 (박상진 의사 증손)

주최 : #근현대사기념관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후원 : #강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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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의회 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특별위원회(위원장 최훈 의원)는 2일 행정문화위원회 회의실에서 4차 회의를 갖고 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올해 업무계획을 청취했다.

이날 위원들은 역대 도지사의 친일행적 표기와 친일상징물 심의위원회 구성 추진상황을 듣고 향후 운영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이어 친일화가가 그린 표준영정 지정 해제·교체와 지정문화재 친일잔재 정리 계획과 조례 추진, 일본식 지명 정비사업 계획, 학교 내 일제잔재 청산사업 2기 추진계획 등을 듣고 개선방안을 모색했다.

최훈 위원장(공주2·더불어민주당)은 “‘친일잔재 조사 및 연구활동 지원에 관한 조례’가 지난 연말 제정됨에 따라 문화체육관광국은 가시적인 친일잔재 조사·연구활동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추경 예산을 확보하고 연구용역을 추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선영 부위원장(비례·정의당)은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임종국 선생의 기념사업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부족한 부분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달라”고 주문했다.

김영권 위원(아산1·더불어민주당)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제3차 일본 침략이 있을 수 있다”면서 “교육기관에서는 교가 교체 등 여러 분야에서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영수 위원(서산2·더불어민주당)은 “친일 행위로 부와 명예를 얻어 아직도 기득권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도와 도교육청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친일 행위에 대해 적극 기록하고 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방한일 위원(예산1·국민의힘)은 “친일잔재 청산 특위를 구성해 그동안 많은 정리사업을 지원했다”면서 “앞으로 유관기관과 연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영우 위원(보령2·더불어민주당)은 “친일잔재 문화재 중 보령에 있는 김좌진 묘역의 비문을 친일 작가가 작성했다”고 지적하고 “김좌진 묘역 주변 주차장은 보령시 소유로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와 협의 없이 작가의 친일 행적 안내판을 설치해도 된다”고 제언했다.

조철기 위원(아산3·더불어민주당)은 “아직까지 끈질기게 친일 행적을 옹호하는 단체가 있어 친일잔재 청산에 어려움이 많다”며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본식 지명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와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9년 6월 구성된 친일잔재 청산 특위는 도내 산재한 일제강점기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고 순국선열의 고귀한 뜻을 되새기며 민족정기 확립을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특히 지난해 11월 공주시 일원을 방문하여 친일 죄상비 설치 관련 강의를 청취하고 공산성 인근 친일인사 공덕비 옆 죄상비 설치 현장을 방문해 친일잔재 청산 의지를 되새겼다.

아울러 지난 12월 말 아산 근대문화마을 정비사업 중 해평윤씨 일가 가옥에 이들의 친일행적을 관광객에게 정확히 알릴 수 있도록 요청하는 건의안을 아산시에 전달한 바 있다.

//장은하 기자([email protected])

<2021-02-03> 경인투데이뉴스 

☞기사원문: 충남도의회, 친일잔재 청산 활동 ‘속도’

목, 2021/02/04-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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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8명 대거 대전현충원 경찰묘역에… 보훈처 “법률에 의거” 해명했지만

▲ 대전국립현충원 경찰묘역에 안장된 김영준 묘. “애국단원”으로 표기돼 있다. 김영준은 일제감점기 친일행위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고, 여순사건 과정에서 친일전력과 우익활동을 이유로 적대세력에 의해 1948년 10월 살해됐다. ⓒ 심규상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인물뿐만 아니라 눈에 띄는 공적이 없는 민간인도 우익·반공단체 회원이라는 이유로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아 국립묘지에 안장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처럼 해방 이후 애국청년당 등의 활동을 명분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된 사람만 현재까지 658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순사건과 근현대를 연구하는 ‘역사 공간 벗’의 주철희 대표연구원은 최근 여순사건 과정에서 좌익세력에 의해 숨진 김영준(1898~1948)을 연구하다 깜짝 놀랐다. 김영준이 국립대전현충원 경찰묘역에 안장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김영준은 일제강점기 국방 금품헌납과 촉탁보호사 활동 등 친일활동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경남 진주 출신인 그는 젊은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고무공업소 직원으로 근무하다 귀국 후 부산에 와타나베 고무공장을 설립했다. 이후 여수에서 천일고무주식회사를 설립했고, 여수상공회의소 회장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사상범의 보호관찰 업무를 담당한 광주보호관찰소 촉탁보호사, 조선인보전보국단 발기인, 군용기 구입비 헌납 등 친일 활동에 앞장섰다.

해방 후에는 전남상공회의소 회장,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여수군지부장 등을 역임하다 여순사건 과정에서 친일전력과 우익활동을 이유로 적대 세력에 의해 1948년 10월 23일 살해됐다.

이러한 친일 이력이 있는 김영준이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된 것으로 모자라, 사망 당시 민간인 신분이었음에도 경찰묘역에 있는 것이다. 안장된 때는 2007년 8월이다.

유영채(1906~1948)는 전남 순천 출신으로 마을 면장을 하다 1948년 여순사건 과정에서 적대 세력에 의해 11월 4일 숨졌다. 유영채도 대전국립현충원 경찰묘역에 안장됐다. 안장 시기는 2015년 6월이다.

주 연구원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김영준과 유영채처럼 해방 이후 우익단체에서 활동하다 대전과 서울의 국립현충원 경찰묘역에 안장된 사람은 모두 658명(애국청년단원 318명, 대한청년단원 172명, 한청대원 126명, 향방 대원 39명)에 이른다. 안장 시기는 모두 2000년부터 현재까지다.

▲ 대전국립현충원 경찰묘역에 안장된 유영채의 묘. 유영채는 마을면장출신으로 여순사건 과정에서 적대세력에 의해 숨졌다. 하지만 그의 묘비에는 “여순반란사건 전투”라고 새겨 전투 중 사망한 것으로 돼 있다. ⓒ 심규상

보훈처 “국가유공자법 의거해 안장”, 그러나…

민간인 신분이었던 이들이 어떻게 국립묘지 경찰묘역에 안장된 것일까.

국가보훈처는 이들이 “국가유공자법에 의거해 국가유공자(전몰군경)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국가유공자법 제74조는 ‘전시근로동원법’에 따라 동원된 청년단원・향토방위대원・소방관・의용소방관・학도병, 그 밖의 애국단체원 등이 전투 또는 교육 훈련 중 사망하거나 상이를 입은 경우 국가유공자(전몰・순직군경, 전상・공상군경)로 보상하도록 규정한다. 김영준과 유영채의 경우 대한청년단원 등처럼 애국단체원으로 분류돼 국가유공자(전몰 경찰)로 인정됐다는 설명이다.

국가보훈처는 이들이 2000년 이후 국립묘지에 안장된 이유에 대해 “1998년 국립묘지령이 개정돼 국가유공자로 결정된 경우 애국단원 등도 국립현충원 안장 대상으로 확대됐다”고 해명했다.

▲ 우익단체원의 국가유공자 인정의 근거가 된 1953년 7월 제정된 “전시근로동원법”. 1953년 제정당시 목적을 보면 “전쟁완수 또는 재해복구에 필요한 중요업무에 종사케 하기 위하여”라고 돼 있다. 또 동원연령은 “만17세 이상 만40세 미만의 남자”다. 김영준과 유영채의 경우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2년전인 1948년 사망했고, 당시 나이도 이 법이 정한 만 40세 이상으로 동원연령과도 맞지 않는다. 이법은 1999년 폐지됐다. ⓒ 심규상

하지만 의문은 여전하다. 국가유공자 인정의 근거로서 1953년 7월 만들어진 ‘전시근로동원법’ 제정 목적을 보면 “전쟁 완수 또는 재해복구에 필요한 중요업무에 종사케 하기 위하여”라고 돼있다. 또 동원 연령은 ‘만 17세 이상 만 40세 미만의 남자’다. 김영준과 유영채의 경우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2년 전인 1948년 사망했고, 당시 나이는 김영준 50세, 유영채 42세로 이 법이 정한 목적과 동원 연령(만 40세 미만)과도 맞지 않는다.

또 관련법에는 국가유공자 보상 기준으로 ‘전투 또는 교육 훈련 중 사망하거나 상이를 입은 경우’로 돼있다. 적대 세력에 의해 숨진 김영준과 유영채 또한 ‘전투 또는 교육 훈련’과는 무관해 보인다. 그런데도 유영채의 묘비에는 ‘여순반란사건참전’으로 전투 중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주 연구원은 “이런 방식이라면 제주 4.3항쟁은 물론 여순항쟁, 6.25전쟁 과정에서 적대 세력에 의해 숨진 우익반공청년단원 모두가 국가유공자로 국립묘지 경찰묘역에 안장되는 길이 열린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김영준을 비롯해 나머지 우익청년단원들의 공적 내용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 중에는 두 사람처럼 활동 시기와 활동내용이 전쟁 시기 또는 참전과 무관한 인물이 포함됐을 수 있다는 의구심 때문이다. 또 우익 청년단체 회원의 경우 당시 민간인살해 등 부정한 일에 연루된 경우도 많아 공적심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도 의심되고 있다.

“우익단체 회원 대거 안장 이해 안돼”

▲ 대전국립햔충원 경찰묘역. 경찰묘역에는 묘비에 청년단원, 애국단원, 한청단원 등으로 기재된 인물이 많다. 이처럼 우익단체 활동을 이유로 국립묘지에 안장된 사람만 2000년 이후 현재까지 658명이다. ⓒ 심규상

서북청년단 등 우익단체들은 제주 4.3항쟁의 발발과 전개 과정에서 제주도민을 무참히 살해했다. 또 민간인을 마구 처형하고 재산을 빼앗아 착복하는 만행도 많았다. 서북청년단 등 다수의 우익 청년단은 대한청년단으로 재편돼 이승만의 정치 외곽조직으로 활동하며 전국 각지에서 군경과 함께 민간인학살에 가담했다.

주 연구원은 “우익청년단원들이 어떤 공적으로 국가유공자가 됐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해방정국에서 제주 4.3항쟁, 여순항쟁, 6.25전쟁 등 과정에서 우익청년단이 저지른 죄악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잔학했다”며 “개개인에 대한 꼼꼼한 공적심사가 이루어졌는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적대세력에 희생됐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며 “관계기관은 우익인사들이 어떤 사유로 국립묘지에 안장됐는지 공적 내용과 안장 사유를 모두 밝히고, 잘못이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1-02-04>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우익단체 회원이면 유공자? 국립묘지 안장 논란

금, 2021/02/05-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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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연합뉴스) 노승혁 기자 = 경기도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 5년을 맞아 남북관계 개선과 개성공단 재개를 염원하는 ‘개성 잇는 토크콘서트’를 9일 오후 7시 온라인을 통해 생중계한다고 4일 밝혔다.

개성공단 재개 토크콘서트 [경기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파주 운정행복센터에서 진행되는 콘서트에는 이재강 평화부지사, 최종환 파주시장,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 명진 스님, 공단 주재원 등이 패널로 참여할 예정이다.

이들은 ‘개성공단의 의미와 가치’, ‘개성공단 재개는 남북선언 이행의 지름길’, ‘개성 잇는 희망의 약속’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토크쇼 중간 노래패 우리나라, 노래극단 희망새, G브라스앙상블이 출연, 개성공단 주재원들이 북측 노동자들과 함께 즐겨 부르던 노래들을 연주한다.

콘서트에 앞서 개성공단 재개 선언 촉구를 위한 범국민 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개성공단 재개 선언 범국민 연대회의 출범식’이 오후 4시 파주 DMZ생태관광지원센터에서 열린다.

개성공단 재개 선언을 촉구하기 위한 이재강 평화부지사의 현장 집무실 설치,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윤후덕·이규민 국회의원, 심규순 도의회 기재위원장, 최종환 파주시장 등의 개성공단 재개 선언 촉구 공동선언문 낭독, 범국민 연대회의 향후 활동 계획 논의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콘서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됨에 따라 유튜브(오마이TV, 파주시청 파주N, 해피코리아 고양파주방송, 풍이진이TV), 아프리카TV(진향라떼), 페이스북(오마이TV)으로 생중계한다.

‘범국민 연대회의 출범식은’ 소셜라이브(LIVE) 경기, 줌(ZOOM)을 통해 시청할 수 있다.

노승혁 기자[email protected]

<2021-02-04> 연합뉴스

☞기사원문: 경기도 ‘개성공단 재개 염원’ 토크콘서트 9일 온라인 중계 

※관련기사 

쿠키뉴스: “개성공단 재개, 우리 손으로” 경기도 토크콘서트 9일 온라인 생중계 

한겨레: “개성공단 재개 염원” 9일 파주서 토크콘서트 

뉴스1: 파주시, 9일 ‘개성공단 재개·한반도 평화’ 토크콘서트 개최

토, 2021/02/06-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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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회원 등 항의… 현충원 측 “곧 철거”

▲ 장군 2묘역 주변에 설치된 ‘故 백선엽장군 묘소’ 안내 표지판 ⓒ 정성일

국립대전현충원에 반민족행위자 백선엽 장군의 묘소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설치돼 관련 단체들이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현충원 측은 “찾는 사람이 많아 표지판을 설치했다”며 “조속히 철거하겠다”고 답했다.

대전현충원에서 개인 묘소 표지판이 설치되는 일은 매우 드물며 서울 동작현충원의 경우 전직 대통령 등에 한해 안내하고 있다. 백선엽 장군은 일제강점기 간도특설대에서 장교로 복무하는 등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는 데 앞장섰다. 때문에 지난해 현충원 안장 때도 적절성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 “반민족행위자 백선엽 이장”과 “국립묘지법 개정”을 촉구하는 참가자들 ⓒ 정성일

5일 오전 고 조문기 애국지사 13주기 추도식을 위해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지부장 박해룡) 회원 등이 대전현충원을 찾았다. 추도식을 끝낸 참석자들은 백선엽 이장을 요구하기 위해 장군 2묘역으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故 백선엽장군 묘소’ 안내 표지판을 발견, “개인 특혜 소지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국립묘지법 개정을 논의한다고 하는데 대전현충원 원장은 백선엽 묘지 안내판을 세우는 게 적절한가”라고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들은 “반민족행위자 백선엽 이장”과 “국립묘지법 개정”을 촉구한 뒤 대전현충원 원장에게 항의하기 위해 본관으로 이동했다. 이에 대전현충원 관리 책임자는 “오늘 중으로 표지판을 철거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참가자들은 “내일 와서 확인하겠다”며 약속 이행을 당부했다.

정성일(jsichj) 기자

<2021-02-05>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백선엽 장군 묘소’ 안내판 설치한 대전현충원 ‘뭇매’

토, 2021/02/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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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 “방문객 감소로 철거” 방문자수도 공개… 민족문제연구소 “핵심은 친일파 안장”

▲ 장군 2묘역 주변에 설치된 ‘故 백선엽장군 묘소’ 안내 표지판 ⓒ 정성일

‘국립대전현충원 경내에 있던 고(故) 백선엽(1920~2020) 장군 묘소 안내판이 일부 친여단체 항의로 철거됐다.’

<조선일보>가 ‘친여단체 입김 한번에 뽑혀버린 백선엽 안내판’이라는 제목을 붙여 8일자 조간 1면에 보도한 내용 중 일부다.

<조선>은 해당 기사에서 “지난 5일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회원 20여 명은 대전현충원 장군 제2묘역에 안장된 백 장군 묘소 바로 앞에서 집회를 열고 백 장군을 이장(移葬)하라고 주장했다”면서 “현충원은 당일 바로 안내판을 뽑아냈다”라고 적었다. <조선>은 “현 정부 들어 백 장군 폄훼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7월 백 장군이 현충원에 안장된 후 더불어민주당과 친문·좌파 일부는 백 장군 파묘(破墓)를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백 장군 안장 1개월 뒤부터 ‘친일 파묘법’을 본격 추진했다. 보훈처는 홈페이지의 백 장군 정보란에 ‘친일 반민족 행위자’라는 문구를 명시했다.”

<조선>의 보도대로라면, ‘친여단체’로 분류된 민족문제연구소의 항의 때문에 대전현충원을 관리하는 국가보훈처가 고 백선엽 장군의 안내판을 철거했다고 추론된다.

<조선>의 보도는 사실일까? <오마이뉴스> 확인 결과, 보훈처와 민족문제연구소의 입장은 크게 달랐다.

보훈처 “백선엽 장군 안내판, 2월에 철거하려 했다”

▲ 백선엽씨가 2003년 3월 1일 서울시청앞에서 열린 “반핵반김 자유통일 3.1절 국민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보훈처는 9일 저녁 <오마이뉴스>에 “백선엽 장군 묘는 작년(2020년) 12월부터 방문객이 현저히 감소하고 있어, 올해 2월 중 철거 예정이었다”면서 “지난 2월 5일에 민족문제연구소의 항의도 있었지만, 최근 방문객 감소로 철거가 예정되어 철거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보훈처는 백선엽 장군 묘소 월별 방문통계를 첨부했다. 보훈처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2020년) 7월 15일 백 장군 안장 후 일평균 148.2명이 방문했다. 8월에는 49명, 9월 46.4명, 10월 48.8명, 11월 43.4명, 12월 16.9명, 지난 1월에는 13.6명이 방문했다.

돌아보면 고 백선엽 장군은 지난해 7월 사망 후 현충원 안장 당시부터 큰 논란이 됐다. 백 장군은 국가에서 공인한 친일파이기 때문이다.

2009년 정부 기구인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1941년부터 1945년 일본 패전 시까지 일제의 실질적 식민지였던 만주국군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협력했고, 특히 1943년부터 1945년까지 항일세력을 무력 탄압하는 조선인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 장교로서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했다”면서 백 장군의 친일행적과 관련해 A4용지 16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공식기록으로 남겼다. 현충원 홈페이지에도 백선엽 장군 관련 안장 정보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된 자’라는 사실이 적시됐다.

2009년 정부는 백 장군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고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이름이 등재됐다.

하지만 지난해 7월 백수의 나이로 사망한 백선엽 장군은 명백한 친일행위에도 불구하고 ‘장성급 장교 또는 20년 이상 군에 복무한 사람 중 전역·퇴역 또는 면역된 후 사망한 사람’ 및 ‘무공훈장을 수여받은 사람으로서 사망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대전현충원 장군2묘역 555번 무덤에 안장됐다.

민족문제연구소 “백선엽 같은 인물이 현충원에 안장된 것 자체가 문제”

▲ 6.25전쟁 당시 백선엽 소장 ⓒ NARA / 박도

<조선일보>에 의해 ‘친여단체’로 분류된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은 9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조선일보>는 지금의 여당이 정권을 잡기 전부터 우리를 ‘친야 재야단체’라고 불렀다”면서 “자기들(조선)이 그렇게 의도적으로 부르겠다는데 어떻게 하겠냐.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 실장은 “<조선일보> 보도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백선엽 안내판 철거가 아니라 현충원이라는 공간에 친일반민족행위자인 백선엽 같은 인물이 안장됐다는 사실”이라면서 “이러한 소모적인 논란은 제거돼야 한다. 그 방법은 국립묘지법 개정”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여름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권칠승, 전용기 의원 등은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사람으로 결정된 사람 중 안장대상 심의위원회에서 국립묘지 영예성을 훼손한다고 결정된 자는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도록 규정함으로써 국립묘지의 영예성을 제고해야 한다”면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관련 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 등에 특별한 논의 없이 계류된 상태다.

현재 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 두 곳에는 백선엽 장군 이외에 국가에서 공인한 친일반민족행위자 김백일,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김홍준, 신현준, 김석범, 송석하, 백홍석 등 총 12명이 안장돼 있다.

한편, <오마이뉴스>는 <조선일보> 보도와 관련해 반론을 듣기 위해 여러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해당 기자가 부재중”이라는 이유로 답을 듣지 못했다.

▲ 해리 해리스 주한미대사가 2020년 7월 15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고 백선엽 장군 안장식”에 참석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김종훈 기자

<2021-02-09>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조선 ‘백선엽 안내판’ 보도에… 보훈처·민족문제연구소 ‘반박’ 

※관련기사 

☞오마이뉴스: 국립대전현충원, ‘백선엽 장군 묘소’ 안내판 철거 

☞오마이뉴스: ‘백선엽 장군 묘소’ 안내판 설치한 대전현충원 ‘뭇매’

수, 2021/02/10-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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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법원선 ‘나치 부역자’ 연구자에 “유족에 사과” 판결

나치 전쟁범죄의 책임은 어디까지 물을 수 있을까. 가해자였던 독일의 검찰은 나치 수용소의 하급자로 일한 100세 남성까지 찾아 기소했다. 반면 점령지였던 폴란드의 법원은 폴란드인의 홀로코스트 가담을 지적한 교수들에 대해 유족에게 사과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가디언은 9일(현지시간) 독일 노이루핀시 검찰이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작센하우젠 수용소에서 나치 친위대의 경비원으로 일했던 100세 남성을 기소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수용소에서 일하면서 3518명의 살인을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그가 고령이지만 재판을 받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보고 있다.

독일은 이전에도 전쟁범죄에 가담한 혐의가 있는 90세 이상 고령자를 여러 차례 재판에 세웠다. 이달 초에는 성인이 되기 전에 나치 수용소에서 비서로 일했다는 혐의로 94세 여성을 1만건의 살인에 대한 종범으로 기소했다.

독일은 수용소에서 일했던 낮은 직급의 관리자, 경비원, 비서 등도 처벌할 수 있도록 지난 10년간 나치 전쟁범죄에 대한 형사 책임 범위를 넓혀왔다.

악셀 드레콜 브란덴부르크 기념재단 이사는 뉴욕타임스에 고령이 된 전범들의 잇단 기소에 대해 “그간의 맥락에서 살펴볼 때 중요할 뿐 아니라 상징적으로도 중요하다”며 “독일 사법제도가 전쟁범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반면 폴란드 바르샤바 법원은 이날 폴란드인이 홀로코스트에 가담했다는 내용의 책을 출간했다가 피소된 역사학자 2명에게 유족에게 사과하라고 판결했다. 이들은 나치 강점기를 다룬 책에서 폴란드인 에드워드 말리노프스키가 “유대인 수십명의 죽음에 공동 책임이 있다”고 서술했다.

이에 말리노프스키의 유족은 이미 전범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10만즈워티(약 3000만원)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금전 배상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고를 받은 역사학자 얀 그라보스키 오타와대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인문학을 연구하는 독립 연구자에 대한 광범위한 해고”라고 비판했다.

최근 몇 년간 폴란드에서는 폴란드인의 나치 부역에 대한 학술 연구가 진행되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폴란드인 상당수가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의 생명을 구했다는 기존 사관과 배치되는 사례들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 민족주의 정당이 집권하면서 이런 연구에 대한 반발은 더욱 커졌다. 이달 초에는 폴란드인의 홀로코스트 가담을 기사에 언급한 언론인이 경찰 심문을 받기도 했다.

화, 2021/02/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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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 FM 94.5 (18:00~19:30)
■ 방송일 : 2021년 2월 17일 (수요일)
■ 대담 : 함세웅 신부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정면승부] 함세웅 “개성공단 재개 강력히 주장하면 미국도 이끌려올 것”
– 백기완 선생, 무종교인이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종교적 가치를 지닌 분
– 개성공단, 겨레가 뜻을 모아 실천한다면 미국도 이끌려 올 것
– 사회 혐오 갈등, 언론이 편가르기 자제하고 각성해야

◇ 이동형 앵커(이하 이동형)> 매주 수요일, 원로의 혜안을 통해 정치사회 이슈를 바라봅니다. 오늘은 항일독립선양단체연합회장과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계신 함세웅 신부 전화로 연결합니다. 신부님, 나와계십니까?

◆ 함세웅 신부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이하 함세웅)> 네. 안녕하세요?

◇ 이동형> 먼저 지난 월요일 비보가 전해졌습니다. 통일운동가와 사회운동가로 평생을 헌신하셨던 백기완 선생이 향년 89세의 나이로 별세했는데요. 오늘 문재인 대통령이 빈소를 찾아 조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고인과 신부님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습니까?

◆ 함세웅> 네. 1974년 긴급조치 1호, 2호, 3호서 박정희 유신독재 때. 백기완 선생님하고 장준하 선생님이 처음에 구속되셨잖아요. 100만인 서명운동 하시느라고. 그러면서 그해 4월에 민주항쟁 사건 나고. 또 7월에 지학순 주교님이 구속돼셨어요. 저희들 우리 정의구현사제단을 결성하면서 이분들의 석방운동을 위해서 저희들이 명동과 각 성당에 모여서 기도를 하고. 또 가족들과 함께 구명운동을 했었는데. 그걸 계기로 백선생님을 옥중에 계실 때 저희들이 만나보게 된거죠. 그 다음에 석방되셨잖아요? 그래서 석방되신 다음에 먼 발치에서 뵀다가 저희들 사제들 모임에도 함께 오시고. 또 격려해주시고. 또 감사의 뜻도 표현해주시고 그러시면서 함께 저희들이 백선생님 모시면서 민주화와 인권. 남북의 평화공정을 위해서 노력했었어요. 대단하신 분이죠. 저희들 많은 격려도 받고 가르침도 받고. 선생님은 종교를 갖고계시지 않으셨는데. 가톨릭을 많이 비판하셨어요. 그래도 저희들이 민족과 함께 하는 인권운동에 대해서 늘 격려해주셨던 마음 한결같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 이동형> 그때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 만들어진겁니까?

◆ 함세웅> 네.

◇ 이동형> 안타깝게도 오늘 또 정경모 선생 별세 소식이 들려가지고.

◆ 함세웅> 네. 저도 아침에 보고 하루종일 기도했어요. 백선생님과 정경모 선생님 두분을 기억하면서 정경모 선생님은 제가 또 동경에 갔을 때. 직접 가서 찾아 뵙고. 저희들이 또 모시면서 감사의 뜻도 표현해드렸어요. 97년에서 2000년 사이에. 꼭 한번 조국에 오시기를 바라셨는데 여의치 않아서 늘 저희들이 정경모 선생님과 부인과 아드님. 또 자녀들게 역사적 빚을 진 것이 되겠죠. 그러나 하늘나라에서 저희들 모두를 위한. 민족을 위한 전달자되시리라 확신하면서 기도 올립니다.

◇ 이동형> 말씀하신 것처럼 정경모 선생도 끝내는 고국땅을 밟지 못하고 이국땅에서 눈을 감으셨는데. 이렇게 민주화 운동 하셨던 분들. 또 통일운동의 별들이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 둘 사라져가는 모습 보면 신부님 같은 동지로서. 또 존경하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굉장히 아프시겠어요?

◆ 함세웅> 네. 후배로서 마음이 아픈데. 우리 선배 세대들의 아름다운 삶과 노력. 저희들이 본받으면서 더 열심히 해야되겠다. 생각이 되고. 저도 언젠가 세상을 떠날텐데. 동지들과 후배들이 그 뜻을 이어서 간다면. 물론 선배들 가시고 저희들이 가지만, 그 뜻은 아름답게 후손들에게 전달되야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고 살아갑니다.

◇ 이동형> 백기완 선생이 이야기했던 노나메기 세상이란게 무엇인가요?

◆ 함세웅> 아주 아름다운 삶인데. 함께 일하고. 함께 잘살고. 또 올바로 잘사는 세상을 이룩하자. 라는 말씀인데. 저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성경 말씀과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사실 백기완 선생님은 무종교인이라고 본인이 말씀하셨는데. 이런 기성종교에 속하지 않으셨지만, 백선생님의 마음속에, 양심 안에 아름다운 인간성이 있어요. 그 인간성이 종교의 뿌리와 씨앗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백선생님이 주창하셨던 이러한 내용이나. 사셨던 삶이 가장 아름다운 종교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가르침. 노나메기는 바로 성서의 핵심입니다. 이런 내용을 가지고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 우리 겨레가 같이 나누는 삶을 살면 좋겠어요.

◇ 이동형> 네. 알겠습니다. 백기완, 정경모 선생의 그런 뜻을 계속해서 기리도록 하고요. 다른 주제 여쭤보겠습니다. 지난 9일 개성공단 재개선언 범국민연대회의 출범식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함신부님도 상임대표로 참석을 하셨습니다. 개성공단이 재개해야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 함세웅> 개성공단은 남북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나라. 미국, UN등에서 동의하고 지지한 결과였어요. 따라서 어느 한 정치인, 한 정치집단의 판단으로 문을 닫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하고 큰 내용을 한사람에 의해서. 또는 한 정치집단에 의해서 문 닫아진게 매우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죠. 어떤 방법으로든지 우리가 즉시 재개해야된다고 생각하면서 이 일을 함께 추진했습니다.

◇ 이동형>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컸었는데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거든요.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세요?

◆ 함세웅> 그게 참 안타까운데. 문재인 대통령 개인의 뜻은 아무리 고귀하다 하더라도. 또 주변분들과 함께. 또 가장 문제는 미국이 동의해줘야 되는데. 미국의 동의받기가 쉽지 않았던거 같아요. 미국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저희 겨레가 힘을 모아서. 뜻을 모아서 강력하게 주장하고 실천한다면. 미국도 국제적인 힘에 의해서 또 우리 염원에 의해서 동의하지 않을까. 이끌려 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입니다. 사실 개성공단은 우리들의 권리이자 의무이거든요. 이미 문 닫은건 한 정치인에 의해서 결정이 된건데. 우리가 지금 열면 되는데.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 이게 개인적으로는 아쉽습니다. 그냥 열면 되는 거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기도하고 뜻을 모으고 있습니다.

◇ 이동형>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개성공단에 있는 우리측 자산이 훼손되거나 고장날 가능성도 있고. 또 우리 입주한 기업들의 손해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자꾸 쌓이는거 아니겠습니까?

◆ 함세웅> 그렇죠.

◇ 이동형> 알겠습니다.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하고요. 여야로 정치권은 나뉘어서 계속해서 대립하고 있고. 서로 혐오와 갈등과 분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회분열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어떤게 있겠습니까?

◆ 함세웅> 오늘이 그리스도교에서는 재의 수요일이라고. 이마에 죄를 받으면서 회개를 다짐하면서 부활을 향한 첫날이거든요. 그래서 우리 각자 부모님께로부터 받은 가르침. 내가 잘할 때 나에게 뿐 아니라 우리 가정과 부모님께 연관이 되잖아요. 내가 잘못하면 결국 부모님께 욕이 되는 건데. 정치인들 각자 이 부분을 생각해주시면서 내가 정치를 잘하고. 또 좋은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바로 아름다운 효도고. 또 나라를 위한 공동선을 위한 봉사다. 이렇게 생각하셔야 되는데. 조금 말씀이나 행동이 너무 어떤 때는 험해요. 이런 것들은 결국 자신의 인격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부모의 인격도 훼손하고. 가정의 인격도 훼손한다는 점을 생각해주시면서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책임있는 정치인의 언행을 하셨으면 좋겠다. 정치인으로서 첫발을 시작하셨을 때 각자의 꿈이 있었을 거예요. 그 꿈을 아름답게 잘 실천해주기 바라면서. 정말 우리 겨레 모두에게. 또 인민 모두에게 큰 희망을 주는 언행을 하셨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호소합니다.

◇ 이동형> 네.

◆ 함세웅> 그리고 이 기회에 언론도 서로 싸우면서. 독자들을 편을 갈라서 자극하는 기사를 싣고있는데. 언론이면서 자제해야될뿐만 아니라. 기사내용이나 정치인들이 말씀하신 내용을 보면 한국사회 미래가 참 암담해보이는데. 우리 각자에게 언론인 개개인은 물론, 각자에게 희망을 주는. 또 아름다운 삶을 주는 그러한 식의 기사를 만들어내고 이끌었으면 좋겠다는 말씀. 언론의 각성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 이동형> 정치권과 언론의 각성을 요구하셨고. 70년대 신부님이 민주화운동 하셨을때는 독재정권 하에 있었으니까. 당시에 재야인사들. 야당인사들 시민단체, 종교인사들이 합심해서 독재정권과 싸웠단 말입니다? 근데 그때와 지금과 과연 뭐가 달라졌을까?

◆ 함세웅> 제 생각에는 그 시대에는 조금 단순화된 사회같아요. 박정희의 독재정권은 불의하다는 것을 온 겨레가 전부 다 아셨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민주주의. 인권을 실현하자는데 모두 다 공감하셨어요. 그리고 우리가 지적하는 대척점이 아주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87년. 이른바 부분적이긴 합니다만 6월 항쟁 이후에 민주화가 실현되면서 사회가 다원화가 됐어요. 그래서 시민단체들도 많이 파생되었고. 주장도 여러갈래가 있고. 또 우리들의 의견이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는데. 이 다양하게 표출되는 의견을 공동선. 나만 좋지 말고 함께 좋아하는 공동선의 가치를 확인해야되는데. 시민단체나 주장하는 각 영역에서 공동선의 가치. 공유의 가치를 조금은 놓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아쉬움이 있는데. 저는 함께 이익이 되는. 함께 보탬이 되는. 함께 좋은 그러한 공동선. 커먼굿. 이것의 가치를 우리가 늘 놓치면 안되겠다. 특별히 일제때 나라를 빼앗겼을 때 목숨 바치면서 헌신하셨던 순국선열들의 마음. 또 민주화를 위해서 헌신하셨던 그분들의 마음. 또 평화공존을 위해서 애쓰셨던 마음. 이런 내용들을 함께 늘 되새겨서 상생의 아름다운 문화를 일으키면 참 좋을거 같아요.

◇ 이동형> 알겠습니다. 신부님. 오늘 시간이 없어서 여기까지만 마무리하겠습니다.

◆ 함세웅> 네. 고맙습니다.

◇ 이동형>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함세웅 신부였습니다.

<2021-02-17> YTN 

☞기사원문: [정면승부]함세웅 “개성공단 재개 강력히 주장하면 미국도 이끌려올 것”

목, 2021/02/18-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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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민주화 운동가 백기완 선생 별세…향년 89세 (CG)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문다영 기자 = 백기완(향년 89세)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노제와 영결식이 19일 엄수된다.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에 따르면 백 소장의 발인은 이날 오전 8시께 서울대병원에서 진행된다.

오전 8시 30분부터는 백 소장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를 거쳐 대학로 소나무길을 돌며 노제가 열린다.

상임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와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를 비롯해 이형숙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등 5명이 백 소장을 기리며 조사를 낭독한다.

운구 행렬은 대학로에서 노제를 마치고 오전 9시 30분께 이화사거리, 종로 5가, 종각역 사거리, 세종로 사거리를 거쳐 서울광장으로 향한다. 종각역 사거리에서는 거리굿도 연다.

오전 11시께 서울광장에 도착하면 장례위원회 관계자들이 초를 밝히며 영결식을 시작한다.

백 소장의 약력 보고를 마친 뒤 문정현 신부가 조사하고 서정숙 한국민족춤협회 이사장이 진혼무를 한다. 송경동 시인은 조시를 읽고, 가수 정태춘은 조가를 부른다.

이어 백 소장의 동생인 백인순씨가 유족 대표로 인사하고 양규헌 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위원장이 호상 인사한다.

이후 운구행렬은 경기 마석 모란공원으로 향하고 오후 2시께 하관식에 이어 평토제가 진행된다.

이날 장례 절차가 끝나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비롯한 국내·외 40여 개 시민분향소들은 조문을 멈추고 해산할 예정이다.

장례위 관계자는 “일본과 미국에 설치된 시민분향소의 경우 시차가 있겠지만 영결식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시민분향은 대부분 끝날 것 같다”고 말했다.

<2021-02-18> 연합뉴스 

☞기사원문: 내일 백기완 선생 마지막 배웅…서울광장서 영결식

금, 2021/02/19-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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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와 개성공단 재개를 염원하는 국제대화 열려

▲ 전 세계와 함께 개성공단 재개를 선언한다! 왼쪽부터 김진향 개성공업지구 지원재단 이사장,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오른쪽 정기섭 개성기업협회 위원장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민승준

개성공단 재개와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개성공단 중단 5년 온라인 국제대화’가 18일 오전 10시 국내외 전문가의 마음을 모아 개최됐다.

이는 개성공업지구 지원재단(www.kidmac.or.kr)이 마련한 행사로, 코로나 상황을 고려해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인 줌(Zoom), 유튜브 주권방송 등 온라인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기조발언을 통해 “개성공단이 재개되면 전 세계와 함께 국제화함으로써 한반도 경제 공동체의 중심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통일부 장관을 맡았던 2002~2004년 개성공단에서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어록비를 약무개성 시무국가(若無開城, 是無國家) 바꾸어 개성공단 준비 사무실에 액자로 둔 것을 이야기 하였다.

이는 국보 제76호 이순신장군 서간첩에 있는 이순신 장군 어록비 중 호남을 개성으로 바꾸어 해석하면 ‘개성이 없으면 그대로 나라가 없어지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정 전 장관은 “개성공단 재개’ 남북평화의 복원’을 위해 이순신 장군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다”며 “개성에서 남과 북이 함께 땀 흘려 마음을 모았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기억할 만한 사실이고, 앞으로 개성공단 재개를 못하면 나라가 없어지는 것이며, 북측과 가까운 동남아 국가들은 물론 전 세계의 경제공동체 개성을 국제적으로 연결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기조발언을 하고 있다. 전 세계와 함께 개성공단 재개를 선언한다! ⓒ 민승준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은 “이제는 다 죽어가는 개성기업들이 개성공단 재개의 희망을 포기하기 전에 정부의 개성공단재개 의지를 확인해달라고 호소한다”라며 “국민들의 다수 여론뿐 아니라 전 세계가 개성공단 재개로 마음이 모아지면 우리 정부도 보다 적극적으로 미국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고 호소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이자 개성공단재개선언 범국민연대회의 상임대표인 함세웅 신부는 연대사를 통해 “개성공단은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평화와 공존, 번영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남북8천만 겨레에게 심어줄 것”이라면서 “민족의 미래와 이익을 위해, 개성 도라산을 넘나드는 동포들의 선의와 사랑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땅 우리 손으로 개성공단을 열 수 있도록 기도한다”고 밝혔다.

▲ 개성공단 재개를 선언한다! 오른쪽 민승준 개성관광 재개운동본부 위원장, 왼쪽 함세웅 신부 개성공단재개선언 범국민연대회의 상임대표가 개성공단 재개선언장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간 로비에서 개성공단 재개선언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1.2.18 ⓒ 민승준

2부에서는 40여개국 해외전문가와 시민이 온라인 줌으로 연결되었다. 개성공단 재개를 바라는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남측 북측 해외동포들이 “비록 북측코리아는 미국과 전쟁 중이지만 남북간은 판문점 군사합의를 통해 전쟁을 멈추었다”라며 “관계의 특수성, 개성공단의 의미, 개성에서 남북의 결정에 대한 존중을 이끌어 내기 위해 민간 외교적 노력을 기꺼이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남북 동포가 거주국에서 서로 소통하고 화합하는 긍정적인 코리안 커뮤니티를 만들어 국제사회에서 평화를 위한 개성공단 재개 목소리를 끝까지 지치지 않고 외친다면 개성의 문은 활짝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개성공단 재개를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개성공단에는 봄이 오는 듯했다. 나아가 정부는 종전선언과 다름없는 판문점 4.27 선언과 9.19 평양 선언을 통해 개성공단 재개를 약속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제1조 제3항은 “남과 북은 당국 간 협의를 긴밀히 하고 민간교류와 협력을 원만히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지역에 설치하기로 하였다”이다. 2018년 4.27판문점선언이 실행되면서 개성공단 내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2018년 9월 14일 문을 열고,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신년사에서 ‘조건 없는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 의지를 밝혔다.

대사관에 준하는 개성연락사무소를 개성공단내에 세우고 남북은 한반도 전쟁을 멈추고 경제, 문화, 사회, 교류 재개를 위해 회담을 열었다. 그러나 결국 문재인 정부에서도 개성공단은 열리지 않았다. 북미관계가 걸림돌이었다. 트럼프행정부는 최초로 판문점을 통해 걸어서 북측에 방문하며 여러 퍼포먼스를 펼치며 우발적인 평화 분위기가 조성 되었으나 싱가포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회담이 합의서도 채택하지 못한 채 무산되자 개성공단 재개도 희망 고문으로 끝이 났다.

거기다 문재인 정부의 남북 합의 불이행과 전쟁을 부추기는 남측의 극우, 탈북단체 들의 전단 살포 등에 불만을 품은 북측은 2020년 6월 16일 14시 49분, 6.15선언과 4.27판문점선언과 비슷한 숫자를 맞추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말았다.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은 개회사를 통해 “남북의 평화와 번영 국민행복으로 가는 한반도 평화 길의 상징, 개성공단이 중단 5년을 맞아 다시 재개가 되길 바란다”며 개성공단에서 남북의 노동자들이 매일 매일 기적을 만들어 낸 과정들을 소개하며 “그 평화의 감동을 남북 동포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고 밝혔다.

▲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의 시금석 개성공단의 가치 김진향 개성공업지구 지원재단 이사장이 전 세계와 개성공단 재개를 선언한다! 온라인 국제대화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민승준

현재 한반도의 큰 과제라고 한다면 아마도 한반도 평화정착과 경제, 문화 교류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도 개성공단 재개부터 선언하고 문화, 관광 분야에서 교류가 재개되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개성공단이 그동안 굴곡은 있었지만, 한반도 평화의 시금석으로 여러 가지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앞으로는 중단 없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길 간절히 기원해본다.

덧붙이는 글 | 8천만 겨레의 경제공동체 평화의 시금석 개성공단 재개를 응원합니다!

민승준 기자

<2021-02-19>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전 세계와 함께 개성공단 재개를 선언한다”

금, 2021/02/19-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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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5일은 애국지사 조문기 선생님 제13주기 추모식이 있었습니다. 해방 전에는 독립을 위해 싸우셨고, 해방 후에는 친일 청산과 통일을 위해 살아가셨던, 조문기 선생님의 삶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관련자료

☞민족문제연구소: [영상] ‘부민관 폭파 의거’ 75주년 재연극 ‘정의의 폭탄’

 

토, 2021/02/20-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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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마석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옆 안장

▲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운구차가 떠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자신이 직접 지은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처럼 떠났다. 그러나 ‘불쌈꾼(혁명가)’ 백기완을 추모하는 시민들은 그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보내지 못했다.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백 소장의 영결식에는 1천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가슴 한편에 ‘남김없이’라고 적힌 리본을 가슴에 걸고 ‘노나메기 세상(너도 나도 일하고 올바르게 잘 사는 세상)’ 여섯 글자가 새겨진 흰색 마스크를 쓴 채 함께했다.

그를 따르는 산자들

▲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노제가 엄수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 고 백기완 선생 영결식이 열린 19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노제를 지내며 영정이 연구소를 돌아보자 유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이 엄수된 19일 오전 고인이 생전에 매일 찾아 커피를 마시며 사색했던 서울 종로구 학림다방에서 유가족이 영정 앞에 커피를 올리고 있다. ⓒ 유성호

앞서 이날 오전 8시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이하 위원회)’ 주관으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는 백 소장 발인식이 엄수됐다. 위원회는 이어 유족과 함께 백 소장이 생전에 매일 찾아 커피를 마셨던 서울 종로구 ‘학림다방’을 찾아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충렬 학림다방 대표는 고인의 넋을 기리며 직접 내린 커피를 백 소장 영정 앞에 마지막으로 올렸다.

학림다방을 나온 위원회와 유족들은 백 소장의 통일문제연구소를 거쳐 대학로 소나무길에서 노제를 진행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40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함께해 고인을 추모했다.

▲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소나무길에서 열린 고(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노제에서 운구행렬이 들어서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출발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운구행렬이 노제가 열리는 대학로로 이동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날 노제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특히 많이 참석했다. 비정규직을 대표해 조사를 맡은 김수억 전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지회장은 2013년 사망한 기아차 윤주형 해고노동자의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백 소장과의 일화를 전했다.

“(2013년) 윤주형의 영정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축 늘어진 어깨로 영장 앞에 앉아 있던 날, 백발의 선생님이 빈소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수억아, 어깨를 펴! 고개 들어!’ 선생님은 말 그대로 ‘빛’이 돼 주셨다. 선생님이 오신 날 동지들이 다시 달려왔다. 이로 인해 윤주형은 해고자가 아닌 노동자로 저세상에 갈 수 있게 됐다.”

김 전 지회장은 “선생님이 마지막 일주일 온힘을 짜내서 쓴 ‘노동해방’, 오늘 이 자리에 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 길을 따르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사 말미 김 전 지회장이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라고 외치자 수백 시민들도 “산자여 따르라”라고 따라 외쳤다.

김 전 지회장이 언급한 고 윤주형씨는 2007년 기아차 화성공장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뒤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하다 2010년 해고된 노동자다. 2012년 임단협 투쟁을 거쳤지만 복직되지 못했다. 2013년 1월 부당한 해고로 인한 고통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쌈꾼’ 백기완 마지막 길, 1천여 명 시민 동참

▲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출발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운구행렬이 노제가 열리는 대학로로 이동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날 오전 9시 45분께 노제를 끝낸 위원회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는 영결식을 위해 발길을 돌렸다. 이화사거리와 종로, 세종로를 거쳐 서울시청까지 이어진 추모행진은 백 소장의 뜻을 기려 전통 장례 형태로 재현됐다.

운구 행렬에는 백 소장의 위패와 영정, 운구차, 검은 두루마기 차림의 백 소장을 형상화한 대형 한지 인형이 섰다. 그 뒤를 수십 개 만장과 꽃상여, 풍물패가 함께했다. 행진에는 60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함께했다.

오전 11시 30분께 서울광장에서 시작된 백기완 소장의 영결식은 눈물 바다였다. 가장 먼저 조사를 읽은 노구의 문정현 신부는 눈물을 훔치며 “백기완 선생님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제가 백기완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하면 백기완 선생님은 제게 ‘신부님, 우리말 고맙습니다 하시지요’라고 하셨다. 이렇게 우리말을 제대로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문 신부는 “이제 뜨거운 가슴에서 터지는 불호령을 더 들을 수 없게 되었다”면서 “앞서서 나아가셨으니 산 저희들이 따르겠다. 안녕히 가시라. 뒤따라가 곧 만나 뵙겠다. 백 선생님 계시던 바로 그 자리에 가서 앉겠다”라고 목놓아 외쳤다.

영결식에 참석한 다른 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노나메기’ 세상을 꿈꾼 백기완의 뜻을 이어 받아 말을 보탰다. 그중에는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도 있었다.

김씨는 “아들 용균이 장례식장에서 백기완 선생이 손자뻘 되는 용균이에게 큰절로 두 번 절하는 모습을 보고 느낀 감정은 원통함과 복받치는 설움뿐이었다”면서 “장례식장에서 열린 원로기자회견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호통을 치셨던 백 선생님은 저에게 천군만마였고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라고 말했다.

“‘김진숙 김미숙 힘내라’라는 말씀을 유언으로 남기셨다 들었다. 저도 힘내서 선생님께서 평생 낮은 곳을 향해 힘을 주셨던 것처럼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발맞추며 따르겠다. 그동안 참으로 고마웠다. 저세상에서 용균이 만나면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꼭 한 번 안아주셨으면 좋겠다.”

“노동해방 쟁취 위해 싸워라”

▲ 19일 고 백기완 선생의 영결식장이 마련된 서울광장에 서울대 장례식장을 출발해 노제를 마친 행렬이 입장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이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려 이재명 경기지사와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가 `님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부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 19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엄수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에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헌화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날 서울광장에서 영결식 현장도 대학로에서 열린 노제와 마찬가지로 수백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함께했다. 백기완 소장은 생전에 “말을 하고 구호를 외칠 때가 아니다. 정확하게 판단을 내리고 올바르게 대책을 세워서 노동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을 할 때”라고 수없이 강조했다.

조사를 맡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백 소장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김진숙 복직’이었다”면서 “간절함을 실행에 옮기겠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노동자 민중의 삶을 걱정해주신 선생님의 격려에 부끄럽지 않은 민주노총이 되겠다”라고 의지를 밝혔다.

영결식 현장에는 노란색 옷을 입은 세월호 유가족들도 함께 했다. 단원고 희생학생 이창현군의 어머니 최순화씨는 “백기완 선생님은 세월호 유족에게 버팀목이었다”면서 “집회 때마다 맨 앞에 자리하고 계셨다. 시대의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외치고 또 외치고 또 외쳤던 선생님의 외침은 우리 귓전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라고 백 소장을 추억했다.

실제로 백기완 소장은 생전에 세월호 참사 후 진상규명을 위해 온 힘을 쏟았다. 2017년에는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싸우며 추모 연작시 ‘쫓빛의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17일 문재인 대통령이 백 소장의 빈소를 찾았을 때 백 소장 유족은 “아버님이 세월호 구조 실패에 대한 해경 지도부의 책임이 없다며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 많이 안타까워하셨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백기완 소장의 딸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는 영결식 말미에 진행된 유족 인사에서 “어머니(김정숙씨)가 오셨어야 했는데 오지 못하셨다”면서 어머니 김정숙씨가 아버지 백기완 소장을 향해 18일 저녁에 쓴 마지막 편지를 대독했다.

“백기완 선생님, 봄이 지나가기 전 ‘불러보세, 우리의 봄노래’ 하는 노래 가사를 함께 부르려 했는데 이제는 부를 수 없으니 다음에 다시 만나면 꼭 같이 불러요. 언제나 기억할 거 같은 우리 남편 만나 나는 행복했어요. 멋진 목도리 휘날리며 바위고개 그 언덕에서 기다리세요. 잘잘(백기완 선생이 생전에 만든 말, 잘있어요 잘가요 줄임말), 우리 신랑 백기완씨. 아내 김정숙”

이날 영결식에서 가수 정태춘씨가 백기완 선생을 추모하는 노래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불렀다. 영결식에 함께한 시민들은 백기완 소장이 생전에 좋아했던 ‘민중의 노래’를 함께 합창했다. 지난 15일 89세의 일기로 영면한 백기완 소장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마석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무덤 옆에 안장됐다.

백 소장은 1933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1950년대부터 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했다. 1964년에는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가했고, 1967년에 고 장준하 선생과 함께 통일문제연구소의 모태인 ‘백범사상연구소’ 설립을 시도했다. 1974년에는 유신헌법 철폐 10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으로 고문을 당한 뒤 구속됐다. 이후 1986년에 ‘권인숙 성고문 사건 진상 폭로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다시 옥고를 치렀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고, 1992년에도 다시 대선에 출마했다. 이후에는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노동문제와 통일문제 등에 힘써오며 언제나 투쟁 현장의 최전선에서 ‘불쌈꾼’으로 살다 갔다.

▲ 19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고(故)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영결식에서 참석자들이 <민중의 노래>를 합창하고 있다. ⓒ 유성호
▲ 서울광장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이 열린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백선생님을 추모하는” 민중가수들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 고(故)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 고(故)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 유성호

<2021-02-19>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불쌈꾼’ 백기완 마지막 길… 1천여 명 시민들, 눈물로 배웅했다

※관련기사 

한겨레: ‘노동자의 벗’ 백기완, 전태일 곁에 잠들다 

☞경향신문: 임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않겠습니다 

☞노컷뉴스: [노컷한컷]앞서서 가나니…백기완 ‘장산곶매’로 훨훨

☞머니투데이: “민중권리 외치던 호민관 잃었다”…故 백기완 선생 영결식 

☞신아일보: 故 백기완 선생 영결식… 마석 모란공원에 영면

☞뉴스1: “장산곶매 날갯짓으로 날아오르라”…’민주화·통일운동 한평생’ 백기완 영결식

토, 2021/02/20-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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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작곡가나 작사가가 만든 교가가 여전히 학교 현장에서 불리고 있는 현실이 매우 개탄스럽다. 이태 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음악 교사들로 구성된 전북중등음악연구회에서 친일 작가가 만든 전북지역 초·중·고교 교가를 찾아낸 결과, 모두 25개 학교에서 친일 교가를 사용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 시·도별로는 세 번째로 많았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김성태와 이홍렬이 작곡한 교가를 사용 중인 학교가 각각 8곳으로 가장 많았고 김동진 6곳, 현제명 2곳, 김기수 1곳 등이다. 이들이 작곡한 교가 외에도 일제 군국주의식 음악이나 일본 엔카 풍의 교가도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전북도교육청에서 친일 교가 교체작업 지원에 나섰지만 3년째 터덕거리고 있다. 지난 2019년 교체 대상 학교 25곳 중 10개 학교만 교가를 바꾼 이후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처럼 친일 교가 교체가 더딘 이유는 동문 등 학교 구성원이 반대하는 곳이 많았다. 특히 학교 역사가 깊은 곳일수록 동창회의 반대가 거센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중·고교가 같은 사학재단의 경우 동일 교가를 사용함에 따라 교체가 어려운 곳도 있었다. 여기에 지난해에는 친일 교가 교체 지원을 위한 전북도교육청 예산이 도의회 예산 심의과정에서 전액 삭감되면서 진행되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의 다음 세대를 키우는 학교 현장에서 아직도 친일 잔재가 청산되지 못하는 현실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친일 교가 하나 바꾸지 못하고 어떻게 대한민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희생하신 선열들을 대할 수 있을까. 민족정기를 바로잡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는 일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나서야 한다. 특히 다음 세대들에게 올바른 민족의식과 역사관을 심어주는 학교 현장에서는 학교 구성원들이 먼저 앞장서야 한다.

친일 작곡가와 작사가가 만든 전북도민의 노래와 전주 시민의 노래는 이미 바꾸었다. 앞서 대학에서도 친일 작가가 제작한 교가를 바꾼 곳도 있다. 전라북도는 지난해 광복 75주년을 맞아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해 친일파와 친일 잔재물 전수조사 용역을 실시했고 후속작업에 들어간다. 학교 현장에서도 친일 부역자의 교가 교체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2021-02-22> 전북일보 

☞기사원문: 친일 잔재 학교 교가 교체작업 서둘러라

관련기사 

☞전북일보: 전북지역 친일교가 교체 사업 올해 3년째 사업 ‘터덕’ 

☞연합뉴스TV: “친일파 교가 바꾼다”..곳곳서 친일 잔재 지우기 (2019.3.1)

화, 2021/02/23-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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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출범30년을 돌아본다

상임이사 조세열

친일문제 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선생의 유지와 반민특위의 정신을 이어받은 민족문제연구소가 2월 27일(일제침략이 시작된 강화도조약 체결일)로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그간 연구소는 숱한 고난과 역경을 뚫고 역동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짧지 않은 세월인 만큼 괄목할만한 성과도 거두었지만 역량이 따라주지 않아 미처 주목하지 못한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았다.
  
자화자찬이 될까 조심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지난 30년간 연구소가 이루어낸 주요성과들을 정리해본다.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업적은 물론 2009년 11월 8일 『친일인명사전』 발간이다. 연구소 창립부터 치면 18년, 편찬위원회가 발족한 뒤로도 8년의 시간과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전3권 2,882쪽 4,389명의 친일파를 수록한 대사전이 빛을 보게 되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성원과 헌신이 있었다. 대학교수 1만2천여 명의 편찬 지지선언, 단 11일만에 5억의 성금을 모아주고 후원회원으로 가입한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시민들, 진보언론의 대대적인 보도, 아무런 대가 없이 작업에 참여한 편찬위원들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정을 바친 상근자들. 그야말로 전 국민적 여망과 시대정신이 만들어 낸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기적의 산물이었다. 오랜 기간 소송과 협박에 시달렸으나 『친일인명사전』은 이제 정부기관과 사법부까지 잣대로 삼는 역사의 이정표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많은 어려움을 딛고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발간, 그해 11월8일 국민보고대회를 열었다. 강윤중 기자 @ 경향신문 2020.11.24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정권은 실용주의를 택할 것이라는 일반적 예상과 달리 철저하게 퇴행의 길을 걸으며 극우세력과 손을 잡았다. 정권인수위원회의 일성이 과거사청산 중단이었던 데서 드러나듯, 뉴라이트의 역사인식을 고스란히 수용해 정책에 반영하였다. 뉴라이트가 활개치고 공영방송까지 나팔수가 되어 역사왜곡을 본격화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학계와 교육계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를 조직하고 사무국을 맡아 이에 대응하였다. ‘근현대사 진실 찾기’ 역사다큐 시리즈 제작도 관제언론의 이승만 박정희 미화 등 역사변조에 대한 대응이었다. 700만 여명이 관람한 〈백년전쟁〉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를 둘러싸고 최근까지도 소송이 진행되었으나 모두 연구소의 승소로 끝이 났다. 뒤이은 박근혜 정권 아래서는 아예 역사말살이 벌어졌다. 수준이하의 교학사 판 한국사 교과서 검정 통과와 국정제 기도가 그것이다. 연구소는 역사정의실천연대를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로 확대 개편하고 다시 사무국을 맡아 ‘역사쿠데타’를 저지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으며 완승을 거두었다. 이 과정에서 연구소의 지부들은 지역의 저지운동에서 선봉 역할을 기꺼이 떠맡았다. 박근혜의 아버지에 대한 빗나간 ‘효도’는 결국 촛불혁명을 일으키고 정권의 종말을 앞당기는 단서의 하나가 되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이어 연구소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한 과제는 시민역사관 건립이었다. 사전만으로는 올바른 역사인식을 널리 확산시킬 수 없다는 문제의식의 발로였다. 연구소는 오랜 기간 축적된 10만 여점의 문헌과 실물 등 희귀자료를 소장하고 있었다. 구입한 것도 많지만 다수는 강제동원피해자들과 연구소 회원들이 흔쾌히 기증해 준 소중한 자료들이었다. 2011년 건립위원회가 발족하였고 8년의 노력 끝에 2018년 8월 29일 국치기념일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이라는 명칭으로 개관을 보게 되었다.

이번에도 시민과 회원들이 17억 원의 성금으로 역사정의 실현의 길에 힘을 보탰다. 일본의 시민사회와 진보 학계는 ‘일본과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잇는 모임’을 결성하고 1억여 원의 성금과 방대한 자료를 기증하였으며, 개관 이후에도 연대와 후원을 지속하고 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차별성 있는 상설전시와 참신한 기획전시, 알찬 시민강좌로 단기간에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으로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2015년부터는 서울시 강북구의 위탁으로 독립정신과 민주주의의 성지 수유리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근현대사기념관도 개관 운영 중이다. 동학농민혁명에서 3·1혁명, 사월혁명으로 이어지는 100년간에 걸친 연면한 투쟁의 역사를 담은 기념관은 이제 강북구를 넘어 전국적인 명소로 성가를 드높이고 있다.

친일문제, 일제하강제동원,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 등 과거사진상규명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데는 연구소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진상규명이 학문적 전문적 영역이었다면 이에 기초한 입법과 청산 운동은 실천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박정희기념관반대운동, 친일문인기념문학상 등 친일파 기념사업 철폐운동, 강제동원 소송지원, 야스쿠니신사 조선인 합사 철폐운동, 전범기업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반대운동, 민간인학살희생자 유해발굴 등 지속적인 시민운동의 전개는 전 국민적 관심과 여론의 지지를 받았으며 이는 일부 분야의 특별법 제정이라는 최종의 성과로 이어졌다.

민간과 별개로 국가의 과거청산은 당연한 책무의 이행이라는 점에서 ‘나라다운 나라’의 선결 과제임에 틀림없다. 너무도 늦은 감이 있고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여러 과거사 관련 특별법의 제정과 정부 위원회의 발족은 거대한 역사의 진전이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최근에는 과거사 청산이 전문분야와 지방자치단체, 교육현장 등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어 미래세대를 생각하면 더더욱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독립운동의 위상 복원에도 앞장섰다. 신흥무관학교는 일제강점기 최대의 독립군 양성 기지로 그 교관과 생도들이 봉오동·청산리 전투 등 초기 독립전쟁의 주력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 의열단 등 여러 독립운동단체의 지도자를 배출한 무장항일투쟁의 금자탑이었다. 그럼에도 사실상 잊혀진 독립운동이었던 신흥무관학교의 활약을 되살리기 위해 설립 100주년을 맞은 2011년 기념사업회 발족을 주도하였으며 사무국을 맡아 신흥무관학교가 남긴 불멸의 공적을 알리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3·1운동은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역사적 함의는 훨씬 크다. 우리 민족사에 비로소 민주공화정을 대세로 확립시켰으며, 여성과 천민들이 대거 변혁운동의 주역으로 현실참여에 나섰다. 나아가 전면적인 항일무장투쟁의 기폭제가 되었고, 지역과 종교, 신분과 계급, 좌우의 이념을 뛰어넘어 민족협동전선의 시원을 이루었다. 연구소는 3·1운동 95주년이던 2014년 3·1혁명기념사업회를 조직하고 사무국을 맡았으며 〈제국에서 민국으로〉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정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학술연구와 실천운동을 병행하는 특유의 도전을 계속해 왔다. 민주화운동 시기 많은 연구단체들이 같은 지향을 가지고 활동했지만 오늘날 성공적으로 이를 체화시킨 단체는 드문 형편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사회참여에 못지않게 학술부문에서도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전시 교육 등 무수한 일상적인 사업부문은 논외로 하더라도, 『일제하전시체제기정책자료총서』 전 98권과 『일제협력단체사전』 『식민통치기구사전』 『재일조선인단체사전(근간)』 등 사전류, 『친일파 99인』 『청산하지 못한 역사』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거리에서 국정교과서를 묻다』 등 대중서 발간 등 의미 있는 결실들을 거둬왔다. 논문집 등 연구서 발간이 저조하지만 이는 남들이 회피하는 ‘공장’을 돌리고 있는 연구소의 불가피한 현실에서 기인하는 바, 실정을 헤아려 주길 바랄 뿐이다.

지난 30년간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일을 해왔다. 그래서 어떤 분은 ‘모든 문제 연구소’라고 애정 어린 지적까지 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연구소는 반드시 해야 하지만 다른 단체에서 주목하지 않은 일들을 주로 감당하는 편이었다. 앞으로도 역사와 현실이 우리를 불러내면 기꺼이 궂은일도 떠맡을 작정이다.

1991년 2월 27일, 소장 사무국장 연구원 둘 총원 네명으로 11평 좁은 방에서 첫발을 내디뎠던 민족문제연구소가 이제 상근자만 40명(근현대사기념관 파견 6명 포함)인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갖가지 탄압과 협박, 각종의 음해와 비방에 시달려 온 것도 사실이다. 이 모든 어려움을 견뎌내고 오늘에 이른 데에는 무엇보다 회원들(현재 1만2천여 명)의 한결같은 지지가 큰 힘이 되었다. 학계와 시민사회에도 갚을 수 없는 많은 빚을 졌다. 성심을 담아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역사와 사회 정의 실현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이에 보답하고자 한다.

* 향후의 과제와 전망에 대해서는 하반기 학술회의를 거쳐 별도의 글을 싣도록 하겠습니다.


화, 2021/02/23-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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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소재 산업유산정보센터에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탄광에서 일한 노동자와 가족 등의 사진이 걸려있다. [산업유산정보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동북아역사재단은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의 강제동원 왜곡 전시와 문제점,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세미나를 오는 24일 오후 2시 비대면 화상회의 방식으로 개최한다고 23일 밝혔다.

‘세계유산과 강제동원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세미나는 지난해 3월 도쿄에 설립된 산업유산정보센터의 강제동원 왜곡 문제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문제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기획됐다.

제1부에서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근거로 강제 노동의 실태를 알리고,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정책실장은 최근 재단이 개설한 웹페이지 ‘일본의 산업유산, 왜곡의 현장과 은폐된 진실’의 취지와 내용에 대해 발표한다.

재단은 일본 근대산업시설이 침략전쟁에서 수행한 역할과 강제동원·강제노동 실태, 피해자 증언, 다른 나라의 세계유산이 강제동원을 기억하는 방식 등을 소개하는 웹페이지를 재단이 운영하는 누리집 동북아역사넷에 최근 개설한 바 있다.

제2부에서는 일본 시민단체인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의 참가자들이 메이지 산업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아베 정부의 의도 및 개입 등에 대해 말한다.

아울러 노기 가오리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일본 정부가 산업유산정보센터 운영을 통해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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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3> 연합뉴스 

☞기사원문: 동북아역사재단,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 대응방안 세미나

 

수, 2021/02/2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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