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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뉴스] 군함도가 왜 세계문화유산인가! 잘못된 것은 시정돼야 마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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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뉴스] 군함도가 왜 세계문화유산인가! 잘못된 것은 시정돼야 마땅

admin | 일, 2021/08/15- 08:41

KBS [뉴스해설] 시간에 김환주 해설위원은 다시 확인된 군함도 ‘역사 왜곡’과 일본 정부가 국제기구의 시정 요구 조치에도 외면한다는 내용을 방영했다. 또 다른 매체는 일본 입장에서 반박하는 내용을 보도했다. 군함도 관련 유네스코 지적은 트집이라며 오히려 일본의 이미지를 떨어뜨리려는 한국의 정치공작이라는 것이다. 광복 76주년이다. 아직 식민통치의 고통을 고스란히 겪고 있는 피해자와 유족들이 많다. 일본군 위안부 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강제동원의 역사가 바로 ‘군함도’이다.

▲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 서울시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는 주제의 전시관련 브리핑을 하고있다.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증언영상 공개전시에 몰린 취재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일본 근대 산업시설 등재 결정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은 철강·조선·석탄산업

세계유산은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으며 10가지 등재기준에 따라 인류가 공유할 만한 현저한 보편적 가치를 평가한다. 1~6까지는 문화유산, 7~10까지는 자연유산에 관한 기준인데 그 가운데 1가지 이상 부합하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 다만, 모든 문화유산은 재질이나 기법 등에서 유산이 원래의 가치를 보유해야 하는 ‘진정성’, 유산의 가지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충분한 제반요소를 보유한 ‘완전성’, 법적·행정적 보호제도와 완충지역 설정 등의 ‘보호 및 관리체계’를 갖추어야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이런 기준 가운데 인간 가치의 중요한 전환점 기준 2, 문화적 전통 및 문명의 독보적 유산 기준 3, 역사의 중요한 단계 예증 기준 4를 들어 등재 신청을 했다. 그러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이코모스(ICOMOS)는 기준 3을 기각하고 기준 2와 기준 4만 유산 가치를 평가했다.

일본의 근대 산업시설들이 명백히 군사적 필요 때문에 만들어졌음에도 일본 정부의 신청서에는 이런 사실들을 강조하지 않았다. 세계유산위원회는 결정문에 각 시설의 역사 전체를 알 수 있도록 하라는 이코모스의 권고 사항을 각주에 부기하는 형식으로 명시했다. 일본은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노역을 했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정부도 징용 정책을 시행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 또한 일본은 정보센터 설립 등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이코모스가 권고한 해석전략에 포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일본정부가 후속 조치와 관련해 2017년 12월 1일까지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경과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일본은 문화유산 등재 이후 2년마다 제출하는 이행 경과 보고서에서도 약속을 저버려 경고를 받았다 유네스코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공동조사단이 지난달 7~9일 도쿄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시찰한 결과를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1940년대 해당 시설에서 한국인 등이 강제노역을 했다는 등의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조치 또한 미흡했다고 밝혔다.

군함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군함도’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강제동원되어 강제노동을 했던 슬픈 역사가 간직된 섬, 군함도의 공식 이름은 ‘하시마’다. 1974년 1월 탄광이 문을 닫아 아무도 살지 않는 섬이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TV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소개되고 영화 <군함도>를 통해 이 섬에 관한 관심도 커졌다. 위치는 나가사키 항에서 약 18킬로미터 떨어졌으며 동서 160미터, 남북 480미터, 둘레 1.2킬로미터, 면적 0,063제곱킬로미터로 야구장 두 개 정도 크기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그런데 1960년에는 이 작은 섬에 5,267명이 살았다고 한다. 인구밀도가 도쿄보다 9배 높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구밀도를 기록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유는 석탄 때문이었다. 1810년 근처에 살던 어부가 우연히 석탄을 발견한 뒤 1890년대부터 일본 기업 미쓰비시가 본격적으로 바다 밑에 묻혀 있던 석탄을 캐내기 시작했다. 석탄 생산량이 가장 많았던 1941년에는 41만 1,100톤에 이르렀다고 한다. 미쓰비시는 1916년 일본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인 7층 아파트를 세웠다. 그 후 10층 아파트를 비롯하여 고층 건물들을 계속 지었고 좁은 섬에 근대식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선 모습이 마치 군함처럼 보여 그때부터 ‘군함도’라고 불렀다. “도쿄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사람은 모두 하시마로 모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쓰비시는 해저탄광을 개발하기 위해 최신 기술을 개발했다. 일본의 입장에서 하시마는 일본 근대화를 상징하는 자랑스러운 유산이다.

▲ 하시마 탄광으로 강제동원된 고 서정우씨의 영상이 최초로 공개되고있다.

강제동원된 조선인들

군함도에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많았다. 1943년부터 1945년 사이에 500~800명의 조선인들이 하시마 탄광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소설 『군함도』 의 한수산 작가가 실제로 만난 고 서정우 할아버지는 1944년에 16세였다고 한다. 그의 증언에 의하면, 해저탄광은 말 그대로 생지옥이었다. 탄광 바닥에 찬 물 때문에 습하고 후끈후끈한 공기를 마시며, 낮은 막장에서 거의 눕다시피 한 자세로 하루 10시간 이상씩 석탄을 캐냈다. 강제로 끌려와 강제노동을 하다가 병이 들어서야 그는 육지로 나갈 수 있었다. 탈출을 시도하다 잡혀서 죽기 직전까지 구타를 당하기도 하고, 바다에 몸을 던진 사람들이 시체로 발견되기도 했다. 희생된 조선인들이 40~50명에 이르렀다는 증언도 있다.

인류의 보편적 차원에서 군함도는 세계유산일 수 없다

오늘날 군함도는 연간 1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유산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세계유산의 공식 명칭은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철강·조선·석탄산업’이다. 군함도를 홍보하는 메시지 속에는 침략전쟁을 바탕으로 한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정당화하고 식민지의 희생을 감추고자 하는 일본정부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 .일본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아파트 등 그들이 환호하는 군함도 건축물의 대부분은 메이지시대 이후에 지어진 것이다. 더구나 일본정부는 세계유산의 범위를 1910년으로 한정하였으므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섬을 둘러싼 호안의 일부와 조금밖에 보이지 않는 갱도 입구뿐이다. 일본정부는 강제노동의 어두운 역사를 가리기 위해 1910년으로 그 시기를 한정하는 꼼수를 부리고는 군함도 전체가 세계유산인 양 선전하고 있다. 이것이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의 모습이다. 또한 역사를 왜곡하는 현장이 세계문화유산으로 기억될 수는 없다.

유네스코는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UNESCO(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는 1945년 설립되었으며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다. 유엔의 전문기구로서 전 세계의 교육과 과학, 문화의 보급을 통해 빈곤국에서 문맹 퇴치 및 인류의 보편적인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고 국제 교류 증진을 통한 국제간의 이해와 세계 평화를 추구한다. 무엇보다 인류가 창조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다양한 유형의 문화적 아이템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알리고 있다. 프랑스의 에펠탑과 같은 건축물, 앙코르와트 같은 신전, 이집트 피라미드와 같은 고대 유적, 오만의 관개수로와 같은 구조물까지 실로 방대한 영역의 인류유산이 포함되어 있다.

유네스코는 문화유산을 지정하는 일뿐만 아니라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의 관리, 보호와 보존 등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위험에 처한 곳이나 위협을 받고 있는 곳도 알리고 있다. 그래서 일부 세계유산 중에는 관리나 보존이 제대로 되지 않아 리스트에서 제외되는 곳도 여럿 있다.

박혜숙 기자 [email protected]

<2021-08-14> 대한뉴스

☞기사원문: 군함도가 왜 세계문화유산인가! 잘못된 것은 시정돼야 마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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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직후 친일파 처벌 특별법 제정 착수, 경기도 등 일제 잔재 청산 작업 이어져
군사·산업시설 관련도 상당 부분 존재해…‘철거 방법’ 가장 언급되지만 역사 잊혀져, 문화콘텐츠 등
활용 주민참여형 개발 필요

걷어내지 못한 친일파·기업… 기념·조형물도 곳곳 산재

1944년께 동원된 어린 소녀들이 미쓰비시 중공업기숙사 사감으로부터 지시사항을듣고 있다. 경기일보DB

걷어내지 못한 친일파·기업… 기념·조형물도 곳곳 산재

■친일 인물 청산을 위한 노력

친일 잔재는 ‘일제강점기 남겨진 유산 중 부정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지만, 개념적으로 볼 때 상당한 의미와 기준 등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유형들이 부정적으로 남아있다. 가장 많이 언급하고 청산하고자 하는 것이 이른바 친일 인물이다. 우리에게는 ‘친일파’로 많이 알려졌다. 그동안 친일 인물에 대해서는 상당한 노력을 하였다.

이를 위해 해방 직후 친일파를 처벌할 특별법 제정에 착수하여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 설치한 바 있으며, 2004년에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으로 국가가 직접 친일 인물을 선정하였다. 민간단체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여 친일 인물 청산을 주도하였다.

특히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계기로 일제 잔재 청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이를 계기로 경기도 등 광역 지자체에서 구체적인 일제 잔재 청산이 진행됐을 뿐 아니라 크고 작은 지자체에서도 일제 잔재 청산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친일 잔재의 유형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동안 친일 잔재 청산은 ‘친일 인물’이 주요 대상이었다. 이는 친일 인물이 사회적으로 영향을 많이 미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친일 잔재의 유형은 친일 인물 외에 상당한 잔재들이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

친일 잔재는 우선 인적 잔재와 물적 잔재로 구분할 수 있다. 인적 잔재는 구한말 일제의 침략과 강점기 식민 지배통치에 부역한 반민족 행위를 한 자라 할 수 있으며, 물적 잔재는 반민족 행위로 인해 얻은 재산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를 흔히 ‘친일 인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를 옹호하는 세력을 ‘친일파’라고 부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친일파는 가장 먼저 청산되어야 할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인적, 물적 친일 잔재 외에도 유형 잔재와 무형의 친일 잔재로도 구분할 수 있다. 유형 친일 잔재는 일제가 침략전쟁과 식민 지배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조성한 시설물 등 선전 조형물이다. 여기에는 식민 지배와 관련된 건물, 상업과 산업시설, 군사시설, 기념탑 및 기념비, 종교시설, 전쟁 기념물, 찬양조형물, 일본식 가옥 등이 포함된다.

무형 친일 잔재는 일제의 침략과 식민 지배 시기에 역사와 문화 등 주로 정신적으로 왜곡된 잔재들이다. 여기에는 언어 등 생활문화를 비롯하여 법과 행정제도, 관습과 의식, 교육, 문화예술, 역사 등이 포함된다. 그렇다면 친일 인물과 건축물을 제외한 유형의 친일 잔재가 어느 정도 남아 있고, 청산되었는가 살펴보자. 그리고 이를 위한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가.

■군사 관련 친일 잔재의 현황

친일 잔재 시설물 중 가장 상징적인 것은 조선총독부 건물이다. 조선 왕궁의 맥을 끊고 식민지배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조선총독부 건물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한편에서는 해방 후 이른바 ‘중앙청’이라 불리며 정부 건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보존하자는 여론도 있었지만 결국 해체돼 지금은 독립기념관에 일부 흔적만 남아 있다. 이처럼 식민 지배와 관련된 건축물은 대부분 철거되거나 일부에서는 리모델링하여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에 비해 일제의 침략전쟁을 위한 군사시설은 아직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것이 상당 부분에 이르고 있다. 군사시설은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시체제기에 주로 형성됐다. 일제는 침략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인적, 물적 자원을 강제 동원하여 군사시설을 설치했다. 이를 전쟁유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비행장, 격납고, 연병장, 대피호, 동굴 진지, 방공호, 지하호 등이 있다. 국내에서 조사된 바로는 군사 관련 잔재는 전국적으로 1천300여곳이 산재한다. 경기도의 경우 비행장 건설이 적지 않았는데 수원, 오산, 시흥, 평택, 고양 등이 해당된다. 군사시설물 구축과 관련된 곳으로는 시흥, 양주, 평택, 포천 등이 있다. 이외에도 평택 함정리의 방공호, 평택 안정리의 해군시설대 보급기지, 의정부와 수원, 김포 등지에는 군부대가 있었다.

■산업 관련 친일 잔재 현황

일제강점기 산업시설과 관련한 친일 잔재도 상당 부분 존재한다. 산업 관련 친일 잔재는 공장을 비롯하여 탄광이나 광산, 철도, 도로, 토건, 하역 수송 등이 해당된다. 이 가운데 철도와 항만은 산업 관련 잔재이기도 하지만 넓은 의미에 식민통치 잔재이기도 하다. 산업 관련 잔재는 탄광과 광산이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한다.

일제는 전시체제기에 들어서면서 전쟁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석탄 외에 금, 은, 구리 등 일반 광물과 텅스텐, 석면, 몰디브덴 등 특수 광물까지 채광하였다. 광산과 탄광은 지하자원이 풍부한 북한지역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경기도는 320여개가 있었다. 철도와 도로는 교통의 편리함이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한반도에서 물적 자원을 수탈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산업 관련 잔재는 대부분 일제 지배를 지원하거나 적극 후원하는 일본 기업들이었다. 현재도 널리 알려진 미쓰비시(三菱), 미쓰이(三井), 아소(麻生), 스미모토(住友), 일본제철(日本製鐵) 등 대기업 등이 있다. 이들 대기업 외에도 가네보(鐘紡), 다이니치보(大日紡), 도요보(東洋紡) 등 방적공장도 있었다.

경기도의 산업 관련 친일 잔재는 앞서 언급했듯이, 광산과 탄광이 가장 많았다. 해당 지역을 살펴보면 가평 12곳, 고양 3곳, 광주 6곳, 김포 1곳, 부천 26곳, 수원 9곳, 시흥 9곳, 평택 1곳, 안성 35곳 등 각지에 산재하고 있었다.

인천시 부평구 부평2동에 위치한 일제 강점기 한국인 노동자들의 집단 거주지였던 ‘미쓰비시 줄사택’. 경기일보DB

■친일 인물 관련 기념물과 조형물

유형의 친일 잔재 중 가장 우리 일상생활과 밀접한 것은 친일 인물 관련 기념물과 조형물이다. 기념물과 송덕비, 찬양비 등 비석류가 해당된다. 어느 지역에 답사를 간 적이 있는데, 일제 말기 지역에서 면장을 한 분의 기념비가 있었다. 면장은 친일 인명에는 빠져 있지만, 전시체제기 최말단에서 식민 지배에 협력한 직책으로 지역에서는 부일협력과 관련하여 가장 영향력을 미쳤다. 그런 점에서 지역과 관련된 부일협력을 한 면장을 비롯하여 반민족 행위를 한 인물과 관련된 기념시설은 친일 잔재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한 조사에 의하면 경기도에 산재한 친일 인물 관련기념 시설은 160여개다. 이중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120여개, 확인 불가능한 것이 26개, 망실되거나 매몰된 것이 2개 정도였다. 지역별로 보면 안성 57개, 화성 18개, 평택 13개, 용인 10개, 이천 9개, 광주와 양주 8개, 여주 7개, 포천 4개, 의정부 3개, 파주 3개, 연천 2개, 남양주 2개 등으로 대부분의 지역에 분포돼 있다. 이들 기념시설은 대부분 강점기 군수나 읍장, 면장 등 공직을 맡았던 인물과 부일협력을 한 인물의 송덕비 또는 기념비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안성의 경우 읍내면장, 공도면장, 금광면장, 소초면장, 미양면장, 보개면장, 원곡면장 등 면장으로 활동한 인물들의 송덕비이다. 평택은 서면장(진위), 현덕면장 등의 송덕비가 있다.

이외에 친일 인물과 관련된 기념시설로 기념탑과 동상 등이 아직도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수원 서둔동의 옛 농촌진흥청 구내에는 ‘혼다 코스케(本田幸介) 권업모범장장 흉상 좌대’, 안성농업학교 교정에 세워졌다가 금속물 회수에 헌납 제공된 ‘박필병(松井英治) 중추원 참의 동상’, 현재 현재 용인문화원에서 보관 중인 ‘팔굉일우비(八紘一宇碑)’ 등이 있다.

■식민 잔재 청산 방안과 앞으로의 과제

친일 잔재의 청산 중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이 철거이다. 그렇다고 철거가 청산의 진정한 방법은 아니다. 철거를 하면 이후 잊힌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킨다. 역사를 언급할 때 흔히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한다. 자랑스럽고 기억할만한 것은 기록하지만, 역사에 부정적인 것은 대부분 없애거나 지우려고 한다. 그러면 잊힌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것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것도 남겨야 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앞에서 언급한 유형의 친일 잔재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들 잔재의 아카이브 구축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이후 망실된다 하여도 역사적 기록이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자료집을 편찬하여 연구와 교육 자료로 활용돼야 한다.

또한 기존의 친일 잔재를 알리기 위해서는 현재 남아 있는 친일 잔재가 어떠한 연유로 만들어졌으며, 관련된 인물의 친일 행적에 대해 최소한의 기록을 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친일 잔재 기념시설물은 송독이나 찬양으로 일관하고 있다. 기존의 기념시설물과 함께 부일협력을 기록함으로써 인물에 대해 올바른 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록은 관련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안내판을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문화콘텐츠는 ▲교육프로그램 운영 ▲웹 또는 모바일 콘텐츠 개발 및 활용 ▲교육형 테마파크 활용 ▲기억의 공간 활용 ▲다크 투어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 이러한 방식은 관이 주도할 것이 아니라 주민참여형으로 개발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성주현 1923 제노사이드연구소 부소장

<2021-06-06> 경기일보

☞기사원문: [광복 76주년, 우리가 몰랐던 친일 잔재 알리기] 유형 친일 잔재와 청산… 현황·과제

화, 2021/06/08-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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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시민노래] [다운로드]

안양시민의 노래/ⓒ안양시

[경기=뉴스프리존] 김현무 기자=경기 안양시가 신곡 ‘안양시민의 노래’ 음원을 시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고 10일 밝혔다.

개정된‘안양시민의 노래’는 안양출신 고 김대규 시인의 노랫말은 그대로 사용하고,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안예림 작곡가의 멜로디와 안양시립합창단의 합창이 곁들여지면서 새 음원으로 재탄생했다.

안양시청 홈페이지‘안양소개’메뉴에서 개정된 안양시민의 노래를 감상할 수 있다. 시민의 노래 – 안양시청 (anyang.go.kr)(클릭)

재탄생한‘안양시민의 노래’는 잔잔하면서도 우렁차고 희망에 찬 선율로 와 닿는 느낌이다. 다소 진군가적 분위기가 느껴졌던 기존 곡과 차이를 보인다.

예전‘안양시민의 노래’를 작곡한‘김동진’은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 음악 부문에 수록돼 친일작가임이 드러났다.

시는 이에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되는 해였던 2019년부터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사용을 중지하고, 지난해 작곡을 공모해 안예림 작곡가의 멜로디를 선정한 바 있다.

최대호 안양시장은 새롭게 만들어진 안양시민의 노래를 각종 행사 시 선보여 안양시민의 자긍심과 위상을 드높이겠다고 전했다.

<2021-06-10> 뉴스 프리존

☞기사원문: 안양시, 신곡 ‘안양시민의 노래’ 시 홈페이지 음원 공개

※관련기사 

☞여성종합뉴스: 안양시, 새롭게 작곡한 ‘안양시민의 노래’ 음원 공개

☞아투시티뉴스: 안양시, 새롭게 만들어진 ‘안양시민의 노래’홈페이지에 공개

금, 2021/06/11-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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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다운로드]

[강제동원 소송 각하 판결 규탄 기자회견]

강제동원 피해자 외면한
반역사적, 반헌법적 법원 판결 규탄한다!

– 일시 : 2021년 6월 10일(목) 10시
– 장소 : 서울중앙지법 앞(교대역 법원 삼거리)
– 주최 :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 취지

  1.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양호)가 지난 7일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등 85명이 일본 전범기업 16곳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하였습니다. 재판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 배상 문제가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되었기 때문에 일본 기업을 상대로 청구권을 행사 할 수 없으며,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권을 인정하면 일본과의 관계가 훼손되고 한미동맹으로 안보와 직결된 미국과의 관계 훼손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근거를 들어 판결하였습니다.

  2. 이번 판결은 2018년 대법원전원합의체가 내린 강제동원 배상 판결과 전면 배치되며, 침략국의 불법성을 부정하는 가해자(일본) 중심 국제정치 논리와 외교 편향의 자의적 잣대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원통한 세월을 두 번 짓밟는 것으로 매우 충격적인 판결입니다.

  3. 한일협정에 따라 개인청구권이 소멸되었다는 입장은 가해가 일본의 입장이며, 외교관계를 문제로 강제징용피해자들의 인권을 희생하는 사법부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법부인지 의심마저 들고 있습니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부정하고 피해자들의 인권과 원통함을 해결하지 않는 한일관계는 정의로울 수도 없으며, 미래지향적이지 않다는 것은 지난 100년 한일관계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4. 이에 이번 강제동원 소송 판결의 문제점을 강력히 규탄하며, 판결의 원천 무효를 주장하기 위해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하고자 합니다. 귀사의 적극적인 취재와 보도를 바랍니다.

◎ 개요
사회자 : 정은주 겨레하나 국제평화부장
– 소개 및 취지 (사회자)
– 발언1 (김영환 강제동원 공동행동 정책위원장)
– 발언2 (김은형 민주노총 통일위원장)
– 발언3 (허권 한국노총 통일위원장)
– 기자회견문 낭독(장애린 흥사단 정책기획국 차장)

◎ 기자회견문

지난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4민사부(재판장 김양호)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85명이 일본기업 16곳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각하했다. 우리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인권회복을 철저히 외면하고, 반역사적이며 반헌법적인 판결을 선고한 재판부를 강력히 규탄한다.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의 판결을 의도적으로 폄훼한 재판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인권을 짓밟았으며 기나긴 소송투쟁 끝에 대법원 판결을 쟁취한 피해자들의 투쟁의 역사를 유린했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외면한 채 일본 극우세력의 논리만을 그대로 답습한 재판부는 인권최후의 보루라는 사법부의 사명을 내팽개쳤다.

재판부는 일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확히 선언하고,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장벽을 뛰어 넘어 피해자 개인의 인권 보호에 대해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2018년 대법원 판결을 ‘국내법적 해석에 불과하다’고 폄훼했다. 재판부는 ‘국제사회에서 식민지배의 불법성이 인정되지 않았다.’고 강변하지만, ‘더반선언’ 2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국제사회는 지난 세기에 강대국들이 저지른 식민지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역사청산을 요구하며 식민지주의의 극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한일 시민사회가 수십 년 동안 끈질긴 투쟁으로 일궈낸 소중한 성과이다. 법관은 헌법정신을 지키며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야만 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법의 정신이 아니라 법관 개인의 왜곡되고 퇴행적인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판결하여 주권자인 피해자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모욕했다. 이 판결은 사법농단의 가해자들이 단죄되지 않고 있는 오늘의 참담한 현실과 지금 왜 사법개혁이 필요한가 그 이유를 스스로 입증했다.

우리는 식민지배와 전쟁범죄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와 극우의 논리를 따르는 역사부정론의 그림자가 법원에까지 드리운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다. 그러나 피해자의 인권회복과 역사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시민들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와 가해기업의 사죄와 배상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는 그날까지 연대하여 투쟁할 것이다.

2021년 6월 10일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관련기사

☞ KBS NEWS : 시민단체 “강제동원 피해자 외면한 법원 판결 규탄”

☞ 뉴스1 : “대법원 판결 폄훼·피해자 인권 짓밟아”…’강제징용 패소’ 비판 이어져

목, 2021/06/10-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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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21편 : 독립군행진곡 _ 김완태(전 육군사관학교장)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들)

☞ 4편 : 압록강행진곡 _ 광복군 김영관 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증손자)

☞ 2편 : 안중근옥중가 _ 함세웅 신부

☞ 1편 : 국치추념가 _ 이준식 독립기념관장(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외손)

☞[출처] YTN Radio: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100년의 소리

금, 2021/06/11-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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