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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생존자의 절규 “한국, 베트남전 피해자 고통은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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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생존자의 절규 “한국, 베트남전 피해자 고통은 외면”

admin | 월, 2021/08/09- 01:02

김남주 민변 베트남전TF 팀장 인터뷰① “문재인 정부, 사안 해결의지가 없어 보인다”

“저는 8살 한국군에 의해 (가족이) 학살당했고, 그 학살로 많은 가족을 잃고 혼자 오랜시간 고통속에 살아왔다. 오늘 이자리에 있기까지는 광장히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내며 오게 됐다. 한국에 이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위해 한국 방문을 세차례나 했지만, 한국 정부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 사실에 대해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한국 국회가 특별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소식 듣고 너무 반가웠다.”

▲ 한국사회에 진실규명을 다시 한번 호소하는 응우옌 티 탄씨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인 응우옌 티 탄씨는 간담회에 참가해 “한국정부는 우리가 겪은 고통에 대해 그동안 철저히 외면해왔다”고 비판하며 “특별법이 속히 제정되어 한국정부가 피해사실만이라도 제대로 조사하길 간절히 부탁드린다”라고 한국사회에 진실규명을 호소했다. ⓒ 이재정 TV 유튜브 갈무리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인 응우옌 티 탄(Nguyễn Thị Thanh, 61세)씨는 한국 국회의 특별법 제정 노력에 대해 반가운 자신의 심경을 전했다. 그는 지난 두달간에 걸쳐(6.30~7.22) 세차례 열렸던 ‘베트남 전쟁 시기 대한민국 군대에 의한 민간인 피해사건 조사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위한 연속간담회’에서 베트남 현지에서 화상으로 참가해 아픈 과거와 현재 심정을 토로했다.

이어 응우옌 티 탄씨는 한국정부가 민간인학살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고 사과하기를 바라냐는 질문에는 “(1968년) 퐁니퐁넛 학살, 우리 마을에서 죽은 사람들은 대다수가 저와 같은 어린 아이였거나 여성들이었다. 수많은 목숨들이 굉장히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것이 이 퐁니퐁넛 학살이다. 저 뿐만이 아니라 이 학살의 생존자들, 가족들,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이 학살을 기억하고 있고, 이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한번도 우리를 찾아온 적 없고, 이 사건에 대해 단 한번도 관심을 갖거나 이 사건의 실제에 대해 저희에게 물어보거나 조사한 적이 여지껏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정부는 우리가 겪은 고통에 대해 그동안 철저히 외면해왔다”면서 “저를 포함해 103명의 베트남 피해자들이 한국정부에 청원서를 전달했다. 그러면서 저희는 이제 한국정부가 이 사실을 알게되고 이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굉장히 기뻐했다. 저는 이 청원서가 오히려 저희를 더 슬프게 할 것이라거나, 이 청원서를 받아든 한국정부의 지금 태도를 상상해 본 적이 없다. 특별법이 속히 제정돼 피해사실만이라도 제대로 조사하길 바란다. 역사적 진실이 밝혀져야 이런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므로 제발 간절한 마음을 다해서 부탁드린다”고 말하며 한국사회에 진실규명을 호소했다.

한-베 수교 30주년 앞뒀지만… 해결 못한 숙제

내년 한국과 베트남은 수교 30주년을 맞는다. 1955년부터 20년간 이어졌던 베트남전쟁에 한국군은 약 35만명의 군인을 파병했다. 1964년에서 1973년까지 8년 6개월간 한국군 피해는 사망 5099명, 부상 1만 962명으로 추정된다. 반면 구수정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민간인 학살 피해자는 약 9000명으로 추정된다(관련 기사: “살아남은 내가 진실 말해야”… 그분이 돌아가셨다).

▲ 베트남전 관련 빈안학살(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최대 민간인학살로 알려짐) 생존자 응우옌떤런씨는 지난해 11월 숨졌다. 그는 생전 빈안학살 당시의 비극적 상황을 20년간 증언해왔다. 지난 2015년에는 베트남 피해자 최초로 한국을 방문하여 국회에서 한국 정부에 진실 규명과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사진 이재갑 작가) ⓒ 한베평화재단, 이재갑

1999년 구수정 당시 베트남 특파원이 한겨레21을 통해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보도한 이래 학살피해 마을의 의료지원을 비롯해, 작가단체및 다양한 민간부문의 교류가 ‘미안해요 베트남’운동의 일환으로 이어졌다. 한겨레사는 46주간 캠페인을 통해 앞지면을 할애하며 이 사건들을 대중에게 널리 알렸고, 긴 펀딩캠페인을 통해 10만달러를 모금해 2003년 베트남 푸옌성에 한베평화공원을 설립하는 결실을 맺기도 했지만, 참전군인들의 한겨레신문사 난입으로 한때 윤전기가 멈추는 등 이 문제로 사회적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도 했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활동과 지원은 ‘미안해요 베트남’운동을 계승하고 베트남전쟁에 대한 성찰을 통해 평화로 나아가고자 2016년 설립된 한베평화재단을 주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는 몇 종의 교과서에서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에 대한 언급이 있고, 제주 강정마을에는 피해자를 추모하는 ‘베트남 피에타’ 조각 (김서경 김운성 작가 제작)도 세워졌다.

‘미안해요 베트남’운동의 1기에 해당하는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대책위원회가 결성되며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운동이 가장 활발히 전개되었고, 2018년에는 시민평화법정이 열려 대한민국에 진상조사, 손해배상, 공식인정, 민간인 학살 관련 사실 전시의 책임 모두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지만 현재까지 정확한 역사적 피해사실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조사된 바가 없다.

▲ 베트남 평화의료연대 (평연)의 베트남 현지 진료 모습 치과 한의과 의료인및 일반 후원회원 320여명으로 구성된 베트남 평화의료연대(평연)은 1999년 이래 지속적으로 현지에서 구강보건교육사업및 수술등 의료지원 활동을 해왔다. ⓒ 베트남평화의료연대 페북

이에 민변을 비롯한 한국 시민사회가 사실관계를 밝히기 위한 ‘베트남 전쟁 시기 대한민국 군대에 의한 민간인 피해사건 조사에 관한 특별법’ (이하 특별법) 제정을 위해 노력중이다. 이외에도 2019년 4월 민간인학살 피해자 103명은 청와대 청원을 통해 진상조사및 사실인정, 공식 사과 및 공식 선언, 피해회복을 위한 조치를 요구했고, 응우엔 티 탄씨는 현재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가배상소송청구도 진행중이다.

필자는 연속간담회에서 사회를 맡았고 민변에서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TF 팀장인 김남주 변호사와 특별법 제정및 그간의 진상규명 노력에 대한 여러 쟁점들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 이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게된 취지와 배경은 무엇인가.

“민간인 학살 피해자 응우엔 티 탄씨를 대리해 개별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책임을 인정하라고 가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을 해야되는 제도다. 사실 가해자가 반성한다면 먼저 스스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다가서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베트남전쟁 당시에 민간인에 대해 여러가지 법적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위를 했을 것이라고는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 사실에 대한 공적확인이 필요하다. 그것을 법률을 만들어서 제도로서 추진하고 한 개의 사건이 아닌 여러가지 사건들을 총체적으로 규명하자는 게 이번 법 제정의 취지다. 8월 25일 입법법안공청회를 하고 8월말 또는 9월초에 법안 발의를 할 예정이다.”

– 특별법의 주요 내용은 대한민국에 진상조사, 공식인정, 손해배상, 민간인 학살 관련 사실 전시의 책임을 인정한 시민평화법정의 판결 내용과 유사한가?

“진상규명에 초점을 맞춰놨다. 진상규명을 신청하고,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고, 진상규명위원회가 대한민국에 있는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다양한 곳에 정보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관련자를 출석시켜서 진술을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조사절차 규정및 조사결과에 따라 진상규명 결정과 불능 결정등 공적인 결정들을 위원회가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조사가 마무리된 후 백서형태로 보고서를 만들어서 국회와 대통령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그 보고서에는 시민평화법정에서 주문으로 담았던 피해보상, 사과, 재발방지를 위한 장치, 민간인 학살 관련 사실 전시등 이런 내용들을 담아서 권고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의 목적은 사실규명에 있고, 그 이후에 피해보상등은 법적 구속력을 갖지않고 권고만 할 수 있어 이후의 과제로 남겨두며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반대가 심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진상규명부터 단계적으로 가려고 한다.”

▲ 베트남전 민간인학살TF 팀장 김남주 변호사 민변에서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TF 팀장을 맡고 있는 김남주 변호사(가운데)는 연속간담회중에 “베트남 피해 생존자들에게 더 이상 희망고문을 그만 했으면 한다”며 제대로된 진상규명과 고령의 피해자들에 대한 의료지원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이재정 TV 유튜브 갈무리

– 베트남은 진상규명과 사과를 원하지 않는데 왜 한국인들이 나서서 이런 일을 하느냐는 오해가 많은 것 같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사과를 원하지 않는다는 건 사실관계를 잘 모르는 잘못된 인식이다. 베트남의 피해자들은 이전에도 진상규명을 명확히 원하고 있는데 초기에 우리가 그분들과 소통하는 네트워크가 없었기 때문에 명확히 전달이 안되었을 뿐이다. 응우옌 티 탄씨 등 생존자들은 2015년부터 한국에 와서 국회에서 명확히 요구했다. 심지어 작년 103명의 피해자들이 청와대 청원을 통해 진상규명하고 사과하라는 명시적 요구를 했다. 베트남 정부가 명시적으로 요구를 하지 않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초기에 베트남 방문을 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사과를 하려고 했었는데, 사과를 하지 않고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아픈 역사가 있다’라는 유감표명으로 발언했다. 언론에는 대통령이 사과를 하려는 강한 의지가 있었지만, 베트남정부에서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명시적 사과를 하지 않고 넘어갔다는 보도는 있었다. 위안부 문제처럼 국가가 피해자를 대신할 순 없다. 국가보다는 피해자를 더 중심적으로 봐야하고, 피해자는 명시적으로 원하고 있다. 더 이상 논란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예전에 일제시대 일본은 소록도에 있는 한센인들에 대해서 강제낙태 등 인권침해 행위를 했었다. 그때 이 문제가 우리사회에는 잘 전해지지 않았지만, 일본시민사회에서 먼저 소록도를 찾아가 이분들을 면담하고 이분들 피해를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했었다. 피해자가 요구하지 않는다고 해도 가해국가의 시민단체가 나서는 게 유례가 없고 이상한 일이 아니다. 민간차원에서 일본도 먼저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듯 이것을 배워서 우리도 베트남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 민주주의와 인권 등의 주제를 다루는 싱크탱크 ‘프리덤 하우스’에 의하면, 베트남은 수십년간의 베트남공산당 (CPV) 일당체제로 표현과 종교의 자유및 인권활동이 완전히 보장된 성숙한 민주주의사회가 아닌 것으로 알고있다. 피해마을 유족이 문제해결에 목소리 내는 것에 대해 베트남 국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궁금하다.

“베트남 정부의 입장이 명시적으로 외부에 드러난 적이 없기에 입장표명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베트남 정부는 사실상 이 문제를 막지 않고 있다. 베트남은 모두 관영언론인데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다던가 응우옌 티 탄씨가 한국을 방문해서 어떤 일을 했다던가 이런 보도를 막지 않고 있다. 이 분이 소송하는 것도 막으려면 막을 수 있지만 그러지 않고 있다. 그것은 사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다, 또는 해결되는 것을 굳이 나서서 막진 않겠다는 그런 입장이 아닌가 추정해본다.”

– 한국 정부가 2019년 103명의 피해자 청원을 받고서도 ‘국방부 공식기록에 확인되지 않는다’, ‘베트남의 협조가 없어서 조사할 수 없다’는 무성의한 답변을 했다고 들었다. 주월미군 감찰보고서, 한국 베트남 퇴역군인 증언, 피해자 증언 등 증거가 많은데도 베트남 청원인들에게 한번도 연락해보지 않고 자료가 없다는 결론을 내려서 피해자들에게 많은 실망을 안겼다. 정권교체 후 피해자들은 많은 개선과 변화를 예상했을텐데 현 정부는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가.

“저는 현 정부가 해결의지가 없다고 본다. 어느 나라가 학살기록을 하겠나. 당연히 국방부의 공식 교전기록인 ‘파월한국군전사’ ‘전투상보’엔 기록이 없다. 사실 해결하려고 하면 우선 자료만 볼 게 아니고 참전한 분들의 말씀도 들어봐야한다. 한겨레 21에서 해당 중대 소대장들이 ‘우리 중대가 퐁니퐁넛마을에 들어갔고, 우리 소대는 아니지만, 우리 뒤에 따라오던 소대에서 총소리가 났고, 학살했다고 하더라’라며 다 증언하셨다. 아직 생존한 분들이 계시는데 이분들에 대한 조사도 하나도 하지 않았다.

박정희 정부 당시에 중앙정보부에서 그 사건이 외교문제로 비화되니까 조사를 했다. 국가정보원에 있는 기록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 베트남측 협조를 구하기 어렵다고 베트남 탓만 하는데 한국이나 미국 자료도 있고, 아직 생존자도 있다. 의지만 있으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충실한 조사를 하지 않고서 확인되지 않는다고 하는 건 의지가 너무 없는 거다.

대통령이 의지가 있다고 저희는 전해들었는데 그게 관철이 안되는 건지, 즉 대통령의 뜻을 아래 기관들이 거스르는 건지, 대통령의 뜻이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소극적인 태도인건지 잘 모르겠다. 많이 아쉬운 점이다. 이미 50년이 넘은 일이다. 사실관계는 명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그 바탕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입장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진실은 가둘 수 없는 것 아닌가.”

▲ 한국시민사회의 국방부앞 기자회견 모습 2019년 4월 4일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 103명은 진상조사,사실인정, 공식 사과등을 요구하며 청와대에 직접 청원하였으나 2019년 9월 국방부는 보유하고 있는 한국군 전투 사료에 민간인 학살 기록이 없고 베트남당국의 협조가 없어서 조사할 수 없다는 답변을 했다. ⓒ 한베평화재단

(2편 “베트남전 생존자들에게 희망고문 그만했으면”로 이어집니다)
김남주 민변 베트남전TF 팀장 인터뷰② “피해자도 참전군인도 고령,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해야”

▲ 이길보라 감독의 다큐 <기억의 전쟁>중 2018년 베트남 시민평화법정 모습 민변에서 이 시민법정의 틀을 만들었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베트남전쟁의 의미를 따져보고 법률적 다툼을 진행했다. 피해 생존자가 원고로 참여했고 참전군인의 증언도 있었다. 재판부로 위촉된 김영란 전 대법관, 이석태 변호사 (현 헌법재판관), 양현아 서울대법학전문대 교수 3인은 대한민국의 책임 내용 (공식인정, 진상조사, 손해배상)등을 인정했다. ⓒ 배급사 시네마달

– 퐁니퐁넛마을 민간인학살 피해자인 응우엔 티 탄씨가 현재 국가배상소송을 하고 있다. 소장이 제기된 지 1년 2개월 경과되었고 쌍방에서 쟁점 정리중이라고 들었다. 내년쯤 재판이 끝나고 1심선고가 예상되는데 승소할 가능성은 어떤가.

“내년에 선고될 것이라는 것은 추정이고, 재판 진행경과에 따라 다르다. 국내 군사재판에서는 민간인 살해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례들이 꽤 있다. 전시 강간죄로 판결받은 판결문도 남아있다. ‘민간인을 살해한 적이 없다’는 건 맞지 않고, 이미 법원에서 공적확인을 받은 사례가 있다. 그 이외에도 많은 일이 묻혀있다. 소송관련해서 증거는 꽤 많다. 당시 미군과 마을출신이 포함된 남베트남민병대가 약 400미터 거리에서 같이 망루에서 지켜봤다. 이 사건 직후에 이들이 마을에 들어가 생존자를 구조, 시신을 수습하고 사진도 찍었다. 미군 제3해군상륙군 사령부에서 조사를 시작해서 미군, 남베트남민병대, 생존자들의 생생한 진술을 받았다.

그게 미국 문서보관서에 있었고 저희가 확보해서 법원에 제출했다. 이외에도 그 마을에서 작전했던 해병2여단 1중대 병사와 소대장들 증언을 모두 봤을때 한국군이 아니라는 증거가 없다. 이밖에 다양한 법적 쟁점도 있다. 국가배상청구를 할때 외국인이 청구할 경우에는 한국인도 베트남정부를 상대로 소송할 수 있는 ‘상호보증’ 제도가 있어야 하는데 이게 존재하냐 여부,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았느냐는 쟁점도 있다. 사안의 입증 뿐만이 아니라 이런 법리적 쟁점을 넘어서야 하는 사건이라서 결과는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한국 법원이 시효를 내세워 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하기에는 인도주의에 반하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국정원에게 퐁니퐁넛 사건의 조사기록을 요청하자 정보공개 소송절차통해 답을 받아가라해서 4년 소송으로 15글자만 받았다. 국정원의 사실관계 조사협조를 위해 관할인 국회정보위에 노력해달라고 간담회에서 발언하셨다. 국정원 개혁도 베트남전쟁 진상규명에 필수요건일까.

“저희가 퐁니퐁넛 사건에서 ‘국정원의 사실조회를 통해 자료를 제공하라고 명령해주십시오’라고 법원에 신청하자 법원이 저희 신청을 받아들여서 국정원에게 사실조회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국정원은 사실조회에 응하지 않고 정보공개절차를 통해 받아가라고 답을 했다. 15자를 소송을 통해 받아낸 것처럼, 이는 기나긴 소송을 통해 뺏어가라고 하는 비겁한 결정이고, 가해자가 피해자를 조롱하는 꼴밖에 안 된다. 인권 국가를 지향한다는 대한민국이 할 행동은 아닌 것이다. 특별법이 제정되면 과거사진상규명법처럼 국정원에 자료를 요청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특별법이 제정되면 그를 통해서 국정원으로부터 자료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 한겨레가 46주간에 걸쳐 펀딩 캠페인도 하고, 앞지면을 할애해 대중적으로 사안을 널리 알려 마치 NGO 역할을 했다. 반면 참전군인들의 한겨레 신문사 습격사건은 한국사회내에서 베트남전을 ‘반공과 발전’의 가치로 신봉하는 냉전의 시각과 인권및 생명권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이다. 쌍방간 기억방식에 간극이 큰데 이런 시각차이를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이제는 서로 대화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전에는 한겨레 신문사에서의 충돌처럼 서로 힘겨루기, ‘듣든 말든 나는 내 의견을 큰소리로 외치겠다’는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서로 상대방의 입장도 들어보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참전군인들도 어떤 점에서 불편한지 자세하게 알아보는 계기가 필요할 것 같다. ‘나는 민간인을 살해하거나 학대한 사실이 없는데 왜 참전군인 전체를 매도하느냐’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고, 베트남전이 게릴라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내가 민간인을 살해하긴 했지만 민간인과 게릴라가 구분되지 않는 특수한 상황이어서 내 행위를 비난할 수 없다’라고 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또 ‘민간인을 살해한 것은 잘못됐지만 상관 명령에 따라서 한 행위라서 나도 어쩔 수 없었다’라고 하시는 분 등 여러 층위가 있을 것 같다. 또 ‘차제에 진상을 규명해서 문제되는 부대와 시기만 확인을 해달라’며 반대하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고, 대화를 통해 특정행위가 국제인도법규범을 위반한 것인지, 자료부족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인건지 등 고민을 해봐야 되는 문제같다. 이에 더해 참전군인들이 연세가 무척 많으신데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사회가 같이 고민해보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

– 2001년 5월 하미 위령비 비문 사건에 대해서는 이번에 간담회를 통해 알게 되었다. 1968년 청룡부대에 의해 주민 135명이 희생된 꽝남성의 하미학살 희생자를 추모하기위해 월남참전전우복지회가 2만5천 달러를 지원해 2001년 위령비를 준공했다. 이는 양국간의 과거청산을 위한 민간단체 최초의 지원사업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한국 대사관 이용준 참사관 (<잊혀진 상흔을 찾아서>의 저자)및 참전군인단체의 개입으로 준공식전 비문을 덮은것은 독일에서 일본정부의 외압으로 있었던 베를린 소녀상 철거압박및 레겐스부르크 소녀상 비문 철거문제와 너무 닮았다. 이 비문을 다시 새기는 것도 진상규명과 아울러 필수 과제라고 본다.

▲ 한국정부의 외압으로인해 대리석으로 가려진 하미위령비 비문 권현우 (한베평화재단 팀장)은 하미학살 피해자 유족들은 한베평화재단에게 한국정부의 압박으로인해 대리석으로 가려진 하미위령비 비문 내용의 액자를 지속적으로 전달받고 있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해결을 촉구했다. ⓒ 이재정 TV 유튜브 갈무리

“저는 위령비 건립에 대해 전우회에서 재정지원을 했기 때문에 의견을 낼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사실관계나 이분들이 느꼈던 공포나 분노를 표현한 부분에 대해서 의견을 내거나 수정요청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더더욱 한국 대사관측에서 알고서 이 문제를 전우회측에 알리고 그 비문을 덮게끔 현장에서 관여했던 점은 매우 문제가 있다고 본다.

다시 비문을 열어야하는데 한국정부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하미마을 유족회나 지역인민위원회는 한국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고해서 비문을 덮고 있는 상태이기때문에 한국정부가 막고 있는 것인지, 다시 열어도 문제가 없는 것인지 한국정부의 의사확인이 필요하다. 현재 전우회가 없어져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기때문에 대사관측과 소통해보는 게 적절하지 않나 싶다.”

– 간담회중에 “베트남 피해 생존자들에게 더 이상 희망고문을 그만 했으면 한다. 생존자가 ‘더 이상 오지말라, 아니면 약이라도 달라’고 아주 간절한 말씀 하시는데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셨다. 지원측면에서 어떤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할까.

“대통령이 진정성있는 사과를 하겠다고 알려졌는데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아서, 베트남정부가 원하지 않아서 안 했다고 한다면 그 절절한 마음을 실질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이 인도적 지원이다. 고령에다가 총 칼 등 많은 상처가 있으니까 치료가 제일 급하다. 고통 완화등 치료를 꾸준히 해야하는데 노무현정부 당시 종합병원이 지어진 이후에 지원이 없었다. 이동식병원 시스템으로 학살마을을 방문해 치료지원을 하면 좋겠다. 고령 피해자들에 대한 의료지원이 제일 시급한 문제다.”

▲ 베트남평화의료연대 한의사들의 베트남 현지 학교 방문 모습 베트남평화의료연대 소속 한의사들이 직접 베트남 현지의 학교를 방문해 성장교육을 진행했고 500여명의 베트남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 ⓒ 베트남평화의료연대 페북

– 19차례 의료지원사업을 해온 베트남평화의료연대를 비롯해 작가및 예술단체들이 민간에서 그간 꾸준히 교류가 있었다는 그 자체로 상당히 고무적인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본다. 무려 20년을 이어온 운동이 이렇듯 꺼지지 않는 불씨로 장기간 지속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일까.

“이 운동을 해온 세대가 민주화운동과 그 이후의 세대들이라서 인권의 가치에 감수성이 높은 세대라는 생각이 든다. 80년 광주학살의 기억도 있어서 그분들에게 손을 내밀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고통을 우리도 겪었기에 동류의식이 있어서 동화가 잘 되는 것 같다.

아울러 멀리까지가서 많은 비용을 들이고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활동했다는 것은 그만큼 탄탄한 조직력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특히 베트남평화의료연대는 건치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조직이 주도하신 것 같은데 사회참여를 하고 싶어하는 치과의사들의 열망과 의료전문성을 잘 접목하고 조직화해 풀어낸 것 같다. 오랫동안 지속된 것은 정말 대단하다.”

– 관련 특별법제정을 위해 시민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특별법이 특별한 법은 아니고, 과거 사실을 확인하자는 것이다. 그간 수많은 의혹과 사회적 고발이 있었고 너무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것을 다 덮고 가기에는 우리 공동체의 가치지향, 또는 품격과 맞지 않는다. 이제는 우리가 아시아에서 인권을 선도하는 국가로서 이 문제를 해결할 때가 됐다. 해결의 방법으로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진실을 밝히자는 것이다. 그 진실속에서 평가가 나올 것이고 한걸음씩 내딛으면 된다. ‘당장 사과하고 당장 배상하자’라기보다는 차근차근 사실확인하고 그 단계에서의 재발방지, 여러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류는 과거의 잘못을 성찰하면서 한걸음씩 전진해왔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도 그렇게 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평화의 소중함을 재인식하게 되고, 전쟁에도 인권의 가치와 인권규범이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으리라 본다. 험악해지는 미중패권 갈등 속에서 동아시아 지역에서 전쟁은 가까운 미래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베트남학살 진상규명은 과거의 문제만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문제에 닿아 있다. 한국 시민들도 진실을 밝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같이 동참해주셨으면 좋겠다.”

▲ 한국시민사회로부터 자전거를 전달받는 푸옌성 베한우호친선협회 베트남나비평화기행 푸옌성 자전거 전달식 (2020년 11월 10일) 한베평화재단, 정의기억연대, 세브란스노사공익기금은 공동으로 푸옌성 베한우호친선협회를 통해 3개 학교 150명의 학생들에게 150대의 자전거를 전달했다. ⓒ 정의연 공식 블로그

관련 연속간담회 링크는 다음과 같다.

-1차 연속 간담회: <퐁니퐁넛 마을 민간인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 초청 간담회>
-2차 연속 간담회: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
-3차 연속 간담회: <베트남전쟁 한국군 피해마을 지원 현황과 과제>

한편 간담회는 국회의원 우원식, 우상호, 기동민, 이재정, 이규민, 이소영, 강민정, 최강욱, 윤미향을 비롯해, 한베평화재단과 더불어 경계를넘어, 다산인권센터, 대안문화연대, 마감마녀, 마을과아이들,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베트남평화의료연대, 사람과공감, 성미산학교, 소박한자유인, 수요평화모임, 식민지역사박물관, 아시아평화인권연대, 연세대학교동아시아수용소연구모임,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인권과평화를위한국제민주연대, 인권교육센터들, 전쟁없는세상, 제주43범국민위원회, 천주교인권위원회, 피스모모, 피스모모평화페미니즘연구소, 화성외국인보소호면회활동마중, 향린교회가 공동주최로 참여하고 있으며, 재단법인 동천이 후원했다.

<2021-08-07>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생존자의 절규 “한국, 베트남전 피해자 고통은 외면”

☞기사원문: “한국정부, 베트남전 생존자들 희망고문 그만했으면”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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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징용됐다 소련 붙잡힌 한인 청년들, 1948년 12월 귀국
1991년 결성된 생존 피해자 모임 회원들 대부분 고령으로 숨져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김형우 특파원 = 일제강점기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갔다가 만주와 사할린 등지에서 소련군의 포로가 됐던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들의 모임 시베리아 삭풍회(朔風會)는 1991년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올해로 구성된 지 30년이 되는 셈이다. 피해자들은 모임의 이름을 시베리아의 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라는 뜻의 ‘삭풍’에 빗대어 만들었다.

‘시베리아 한의 노래’의 표지.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재배포 및 DB화 금지]

일제는 전쟁 막바지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수많은 식민지 청년들을 끌어모아 전쟁터로 내보냈다.

1945년 8월 8일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했고 이후 속수무책으로 패배를 거듭하던 일본군은 결국 연합군에 항복했다.

이 상황에서 무려 1만여 명의 한인 청년들이 소련군의 포로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작년 1월 홈페이지를 통해 고(故) 이규철 씨가 작성한 육필원고 가운데 일부를 소개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1941년 울산 공립학교를 졸업한 그는 만주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중 1945년 8월 징집돼 일본 관동군에게 편입됐다가 결국 소련군에 붙잡혔다.

그는 원고에서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내 몸을, 내 목숨을 바치고 이런 싸움을 해야 하는가. 적함 굴뚝에 돌진한 ‘신풍(가미카제) 특공대’와 같은 무모한 짓은 하고 싶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러시아 극동 연해주(州) 나홋카 항의 하늘. [연합뉴스 김형우 촬영]

소련군에 붙잡힌 한인 포로들을 괴롭혔던 것은 시베리아의 혹독한 자연환경과 배고픔이었다.

시베리아의 포로 수송 화물열차에서 물이나 빵과 같은 음식물을 먹지 못하고 혹한에 시달려야만 했던 한인 청년들은 굶주림과 각종 배고픔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씨는 수용소에서 지냈던 첫해 겨울의 추위로 인한 고통에 대해 혹한 속에 체온을 유지하면서 살려는 눈물겨운 사투가 계속됐다고 강조하면서 “지칠 대로 지친 몸에 매달리고 있는 목숨이 정말 질기고 모질더라”고 밝혔다.

심지어 몇몇 한인 포로들은 현지에서 숨지기도 했다.

시베리아 곳곳의 수용소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한인 청년들은 미국과 소련이 전쟁 포로와 관련한 협의를 이뤄내며 1948년 12월 대거 귀향길에 올랐다. 당시 2천명이 넘는 한인 청년들은 연해주(州)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차로 3∼4시간 거리에 있는 나홋카 항에서 1948년 12월 함경남도 흥남으로 귀환했다.

1948년 12월 한인 포로 2천여 명이 귀환한 나홋카 항. [구글지도 캡처. 재배포 및 DB화 금지]

소련에서 건너왔다는 이유로 침묵을 강요받았던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들은 한국과 소련이 국교를 맺은 1990년 이후가 돼서야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활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후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삭풍회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해보상을 청구했었지만 결국 외면받았다.

일본의 전후 보상 대상에서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들은 철저히 배제됐다.

한국 정부 차원의 위로금과 의료지원이 전부였다. 현재 삭풍회 회원들 대부분은 고령으로 숨진 상태다.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삭풍회 분들이 다들 연로하셔서 대외 활동을 하셨던 분들이 돌아가신 상황”이라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20-01-02> 연합뉴스 

☞기사원문: [특파원 시선]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들…’삭풍회’를 아시나요

월, 2021/01/04-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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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 1억원 들여 친일 잔재 전수조사
도내 친일파 명단, 유족 개인정보 등 이유로 보고서 비공개
전문가 “세금 투입한 용역 취지 벗어나”

전라북도청사 전경. 전라북도 제공

전라북도가 약 1억원의 예산을 들여 도내 친일 인사와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수행했지만 용역 최종보고서는 비공개에 부쳐 논란이 되고 있다.

전라북도는 지난 4일 도청 홈페이지를 통해 ‘전라북도 친일 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 방안 연구용역’ 최종보고서를 비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전라북도는 ‘친일 인물에 대한 조사 내용이 포함돼 유족과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정보는 유족 개인정보에 해당될 수 있다’, ‘사생활 침해 또는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보는 정보통신망 유통이 금지된다’를 비공개 사유로 적었다.

전북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수행한 이번 용역은 전북 출신 친일파 명단을 추리고, 지역에 산재한 친일 잔재를 조사했다.

친일 인사 명단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을 기초로 작성됐다.

용역에서 전북 출신 친일파는 118명, 친일 잔재는 131건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전라북도는 유족 개인정보 등을 이유로 1년 가까이 약 1억원을 들여 진행한 용역 결과를 비공개했다.

이 때문에 용역보고서에 담긴 도내 친일 잔재도 도민들은 알 수 없게 됐다.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박우성 투명사회국장은 “세금을 들인 연구용역을 비공개한다는 것은 부실 용역이란 의혹을 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정보나 명예훼손이 우려된다면 일부라도 공개해야 한다. 전면 비공개는 친일 잔재를 청산하고 알리겠다는 이번 용역의 취지에서 벗어난다”고 덧붙였다.

전라북도 관계자는 “정보공개위원회 자문을 구한 결과, 친일 인사가 담긴 명단을 공개할 경우 유족 개인정보 침해와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친일 인사 명단을 제외한 용역보고서 일부 공개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2021-01-05> 노컷뉴스 

☞기사원문: 전북도, 친일 청산 용역 ‘공개 속앓이’

목, 2021/01/07-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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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당 1억씩 지급”… 5년 만에 결론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한국일보 자료사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정식 재판이 시작된 지 5년 만의 결론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 김정곤)는 8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1심 선고기일을 열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일본의) 불법행위는 인정되고, 원고들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인용한다”고 밝혔다.

배 할머니 등은 2013년 8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사람당 1억원의 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조정을 한국 법원에 신청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에 폭력을 사용하거나 속이는 방식으로 위안부로 차출한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조정 절차에 응하지 않으면서, 사건은 2015년 12월 정식재판으로 넘어갔다. 정식 재판이 시작된 후에도 일본의 거듭된 소장 송달 거부로 인해, 공시송달 절차를 거쳐 소가 제기된 지 약 4년 만인 지난해 4월에야 첫 재판이 열렸다.

이번 재판의 최대 쟁점은 ‘주권면제’ 원칙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었다. 일본 정부는 그간 ‘한 국가의 행위 대해 다른 나라가 자국 법원에서 국내법을 적용해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법상 원칙인 주권면제론을 들어 재판이 응하지 않았다.

이에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김강원 변호사는 “(식민지 시절) 일본 행위는 반인권적 불법행위이자 국제범죄에 해당해 주권면제(국가면제)가 적용될 수 없다”며 예외를 주장했다.

이날 재판부도 “반인도적 행위로서 국제강행 규범을 위반한 부분까지 국가면제를 인정할 수는 없다”면서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일본 상대 손해배상 일지

<2021-01-08> 한국일보 

☞기사원문:위안부 할머니들, 日정부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이겼다 

관련기사 

☞뉴시스: ‘日위안부 소송’ 할머니들이 이겼다…법원 “1억씩 지급”

☞여성신문: 일본군’위안부’ 피해 여성들, 일본 정부 상대 승소 “역사적인 판결”

☞프레시안: 법원 “일본,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

☞한겨레: 법원 “반인도적 행위…‘위안부’ 피해자에게 1억원씩 배상”

토, 2021/01/09-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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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을 위한
사법부의 역사적인 판결을 환영한다.

오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첫 판결이 있었다. 사법부는 일본의 범죄행위를 모두 인정하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을 위한 사법부의 역사적인 판결을 환영한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1991년 故 김학순 님의 증언 이후 오늘날까지 그 피해를 온몸으로 증언하며 일본에게 사죄와 배상을 요구해왔다. 이번 판결은 30년 동안 인권과 존엄의 회복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투쟁해 온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준 판결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소송에서 일본은 ‘한국 법원이 일본국을 상대로 재판할 권리가 없다’며 재판을 거부해왔다. 일본의 주장은 전범국가로서의 책임을 면해보자는 한낱 궤변에 불과하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일본국이 저지른 계획적이고, 조직적이며 반인도적인 범죄행위이다.

사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나 2015년 이른바 ‘위안부’합의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다. 일본은 전범국가로서 마땅히 법적 책임을 다하고 피해자들의 요구대로 사죄, 배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사죄는커녕 자신들의 전쟁범죄를 은폐하고 왜곡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오늘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여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을 위해 즉시 법적 책임을 이행해야 할 것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8년 10월 30일에 내려진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의 이행을 가로막고 한국 정부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우리는 일본 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여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과 오늘 ‘위안부’ 소송의 판결을 즉시 이행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비롯한 모든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끝까지 연대할 것임을 밝힌다.

2021년 1월 8일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겨레하나·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민족문제연구소·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조선학교와함께하는사람들 몽당연필·청년시대여행·평택원폭피해자2세회·평화디딤돌·포럼 진실과 정의·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한국YMCA전국연맹·합천 평화의집·흥사단·1923한일재일시민연대·KIN

토, 2021/01/09-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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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서울뉴스통신】 최인영 기자 = 구리시는 구리 출신 독립운동가 ‘노은 김규식 선생’이 새겨진 구리사랑카드를 10,000매 제작하여 오는 2월부터 배부한다.

구리시는 해마다 선생께서 나라와 겨레를 사랑했던 숭고한 정신을 이어가고 후손들에게는 그의 업적과 정신을 알리기 위한 추모제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가보훈처에서 현충시설로 지정된 사노동 생가터(동구릉로389번길 55-11)를 작은 기념공간으로 조성하고 ‘노은 김규식길’ 이라는 명예 도로명도 부여하는 등 시민들에게 잊혀져 가는 역사를 알리는 사업을 추진했다.

이번에 제작 배부될 예정인 ‘노은 김규식 선생’과 태극기가 그려진 구리사랑카드도 이러한 역사 계승 발전 사업의 하나로 독립운동 유공자 및 후손에게는 명예와 자긍심을, 시민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환기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안승남 구리시장은 “노은 김규식 선생은 20세 젊은 나이에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한제국무관학교에 입학한 이후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수많은 독립운동 단체를 이끌었던 구리시를 대표하는 역사 인물이자 독립투사이다. 2021년에도 그 분의 숭고한 정신을 널리 알리는 다양한 선양운동을 펼쳐 나갈 예정으로 이번에 제작되는 ‘노은 김규식 선생’이 새겨진 구리사랑카드는 역사를 알리는 것 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관내 소상공인들을 위해 시민들이 함께 위기를 극복하자는 의지도 담겨 있다며 위기에 처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앞으로도 더 많이 구리사랑카드를 사용해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 2019년부터 발행하고 있는 구리사랑카드는 2020년 12월 말 현재 약 361억원이 발행 및 유통됨으로써 코로나19라는 재난상황에서 소상공인 매출증대 등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월 최대 1백만원 충전 시 10%에 해당하는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다.

경기동부 취재본부 최인영 기자 [email protected]

<2021-01-13> 서울뉴스통신

☞기사원문: 구리시, ‘노은 김규식 선생’ 새겨진 ‘구리사랑카드’ 발행

수, 2021/01/13-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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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연, 선고 직후 기자회견 열고 “재판부, 일본 적반하장에 힘 실어주는 것”

▲ 참가자들이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하인철

14일 오후 2시 30분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이 ‘전범기업’ 미쓰비시 사죄 및 배상 면담요청에 대한 재판 결과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대진연은 2019년 미쓰비시의 전범행위에 대한 사죄와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면담요청을 진행했다. 이에 대해 지난달 검찰은 5100만 원에 달하는 과도한 벌금을 구형했고 14일 선고가 진행됐다.

선고가 진행되기 전 대진연은 무죄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재판부에 양형 사유를 제출한 상태라고 밝혔다. 하지만 오후 2시 재판부는 검찰이 구형한 5100만 원을 그대로 선고했다. 이에 대해 재판에 출석한 회원들이 규탄 기자회견을 곧바로 진행했다.

양희원 강원대진연 회원은 “오늘 사법부의 유죄 판결에 대해 정말이지 절망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사법부의 국적이 대체 어디인가, 사법부의 정의는 살아있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배상판결이 나온 지 어느덧 3년이란 시간이 지났는데, 미쓰비시는 그 동안 어떤 사죄와 배상, 반성도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장미란 대구경북대진연 회원은 “전범기업이 아직도 이 나라에서 아무일 없었다는 듯 장사를 하고 있다. 전 국민적인 반일, 불매 열풍에도 눈 깜짝하지 않았다. 피해자분들과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대학생들에게 5100만 원이라는 벌금이 떨어지는 동안 미쓰비시는 무얼 하고 있었느냐”라며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배상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몇억 원을 내지 못하겠다며 반발하고 들고 일어났다”라고 미쓰비시를 규탄했다.

박찬우 광주전남대진연 대표는 “얼마 전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에게 일본정부가 배상하라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하지만 스가 총리는 이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뻔뻔스럽게 대하고 있다”라며 “아직 전범국이 제대로 반성도 안 한 이 상황에서 국민을 대변해야 할 검찰과 사법부가 정의로운 목소리를 낸 대학생들을 어떻게 탄압할 것인지 혈안이 돼 있다”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규탄 성명 전문을 낭독하고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한편, 대진연(소속 회원 포함)에게 현재까지 선고 및 구형된 벌금의 총액은 1억2350만 원이다. 대진연은 후원금을 모으고 있다.

[규탄성명] 전범기업 미쓰비시 규탄한 대학생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사법부를 규탄한다

▲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하인철

정의로운 목소리를 낸 대학생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사법부를 규탄한다. 사법부의 판결은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정당한 목소리를 틀어막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미쓰비시와 일본의 적반하장격인 태도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2018년 11월, 미쓰비시는 강제노동 피해자 분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법원의 판결은 단순히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의미를 넘어, 법적배상이라는 측면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미쓰비시의 분명한 잘못을 꼬집고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미쓰비시는 아직까지도 피해자 분들께 사죄 한 번 한 적 없고, 심지어 법적배상 역시 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는 중이다.

강제징용 문제는 단순히 과거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 피해자 분들의 현재진행형인 문제이다. 그렇기에 25명의 대학생들은 미쓰비시에게 사죄할 것을 요구하며 면담요청을 진행했다. 이는 전쟁범죄의 주범인 미쓰비시에 대한 대학생들의 분노였고, 또 국민들의 염원이었다.

그렇기에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그리고 피해자 분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목소리를 낸 대학생들은 무죄이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미쓰비시 면담요청 대학생들은 유죄를 선고한 사법부를 강력하게 규탄하며 앞으로도 적폐 사법부, 검찰과 맞서 올바른 역사를 만드는 길에 당당히 나설 것이다.

2021. 01. 14
민생경제연구소 진보대학생넷 안진걸(민생경제연구소 소장)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 소장)

<2021-01-14>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미쓰비시 면담요청한 대진연 회원들에 벌금 5100만원 선고

금, 2021/01/1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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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주의 전문학술지 『기억과 전망』 제43호 발간
4·19혁명 60주년, 전태일 50주기,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이었던 2020년을 돌아본 논문들 수록
문인간첩단사건 피해자 임헌영 선생의 회고, 한국전쟁기 전염병 관련 저작 분석한 신동원 전북대 교수의 주제서평 등 수

기억과전망 43호 표지

(서울=국제뉴스) 김서중 기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민주주의 전문학술지 『기억과 전망』 43호를 발간했다.

매년 두 차례 발간되는 『기억과 전망』은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로, 국내외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논문들을 싣는다.

이번에는 2020년 겨울호답게 4·19혁명 60주년, 전태일 분신 50주년,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고루 돌아볼 수 있는 논문들이 수록되었다.

첫 번째 논문은 4·19혁명을 주제로 다룬다. 김일환은 「사립대학으로 간 민주화운동: 4·19~5·16 시기 ‘학원분규’와 사립대학 법인 문제의 전개」를 통해, 4·19를 겪으며 개혁의 주체로 떠오른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공간인 대학 내부에서 ‘학원의 독재자’ 사학재단에 대항하는 과정을 분석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군사정권과 사립대학 간 ‘갈등적 담합’ 체제가 구축되었고, 이 골격이 사학법 개정을 시도했던 노무현 정부를 거쳐 대학의 위기라 불리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동원은 전태일의 노동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인공지능과 연계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게재했다. 「“나의 전체인 일부”인 인공지능: 1960년대 말 비인간 노동과 전태일의 후기인간주의」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저자는 전태일이 내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는 세 가지 테제를 중심으로 후기인간주의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이를 각각 ‘(비)인간 선언’, ‘노동(자) 거부’, ‘지(의)식’으로 해석했다.

이어 수록된 논문 「5·18, 광주 일원에서의 연행·구금 양상과 효과: 계엄군의 연행·구금이 지역민 및 일선 행정기관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에서 김형주는 당시 계엄군의 폭력과 그 효과를 지역적 맥락에서 분석했다. 그는 광주 일원에서 발생한 계엄군의 연행과 구금으로 당시 방관자이자 협조자였던 지역 경찰과 공무원이 어떤 시선을 갖게 되었는지 서술하고, 이것이 일선 행정기관에 미친 영향은 신군부의 권력 장악이라는 거시적 시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위에서 언급한 세 편의 민주화운동 관련 논문 외에 정진영의 「존재로서의 사회운동: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자립생활 과정을 사례로」도 주목할 만하다. 이 논문은 시설을 벗어나는 자립과정에서 발달장애인들이 사회운동의 주체로 어떻게 자리하는가를 탐구했다.

이번 호의 회고록은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이번 글에서 1974년 ‘문인간첩단 사건’으로 투옥된 경험을 풀어냈다. 문학평론가인 임 소장은 박정희 정권하에서 여러 고초를 겪었는데, 1979년에는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글에는 문인간첩단 사건 당시 ‘빙고호텔’(국군보안사 서빙고분실)에서의 끔찍한 고문의 과정, 서대문 귀소에서의 생활, 재판 진행과정, 석방 후 요시찰 인물로 살아야 했던 이야기 등이 담겼다.

이밖에도 신동원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소장은 한국전쟁기의 전염병 관련 저작들을 분석한 주제서평을 선보였는데, 이임하의 <전염병 전쟁: 한국전쟁과 전염병 그리고 동아시아 냉전 위생 지도>를 중심으로 2020년 코로나와 한국전쟁기의 전염병을 대조시키고 있다. 이 글은 감염병에 대해 국내에서 출간된 거의 모든 서적의 일람을 제시하고, 한국전쟁기에 전염병을 다룬 저작을 개괄하고 비교한다.

<2021-01-15> 국제뉴스

☞기사원문: 학술지 ‘기억과 전망’ 43호, ‘민주화운동사의 역사적 장면들’

금, 2021/01/15-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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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시 12억원 확보…”동학농민군 시대정신 담을 것”

황토현전적지 전봉준 장군 동상 [정읍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정읍=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 친일 작가 작품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전북 정읍시 황토현전적지의 전봉준 장군 동상이 철거되고 재건립된다.

정읍시는 19일 ‘녹두장군’ 전봉준 장군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과 위엄을 담은 작품으로 교체하기 위해 ‘전봉준 장군 동상 건립추진위원회’를 개최했다.

추진위는 동학농민혁명 연구자, 시의원, 건축·조경·미술·조각 분야 전문가, 동학 단체 회원 등 20여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동상·부조물 철거 후 처리 방안, 새 동상 건립 위치, 주변 경관 조성, 국민 성금 모금 방법 등을 논의했다.

위원들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와 자주 국가 보전이 중심인 동학농민군의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교체키로 의견을 모았다.

시는 예산 12억원을 확보했다.

1987년 10월 정읍시 덕천면 황토현전적지에 건립된 전봉준 장군 동상은 친일 조각가 김경승(1915∼1992)이 제작했다.

동상과 배경 부조 시설물은 화강암 받침대 위에 높이 6.4m, 좌대 3.7m, 형상 3.7m 규모로 건립됐다.

김경승이 친일 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인 까닭에 동학 단체와 민족문제연구소 등은 줄곧 철거를 요구해왔다.

유진섭 시장은 “시는 철저한 역사적 고증으로 동학농민혁명 정신 선양에 어긋나는 기념사업을 바로잡을 것”이라며 “동상 재건립으로 동학농민혁명과 더불어 전봉준 장군이 정읍을 대표하는 인물로 기억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20-01-19> 연합뉴스 

☞기사원문: ‘친일작가 제작’ 전봉준 장군 동상, 철거 뒤 재건립한다

수, 2021/01/20-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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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BAR_길윤형의 알고 싶어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가장 처음 공개 고백한 김학순 할머니.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8일 한국 법원이 국제 관습법상의 주권면제(국가면제) 원칙을 깨고,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놓은 뒤 한-일 양국에서 이 판결의 후폭풍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찬찬히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묻습니다. 이 판결이 정말 한-일 관계를 지난 2019년 가을과 같은 격한 충돌로 몰고 갈까요?

먼저, 일본의 움직임을 살펴 보겠습니다. 아키바 다케오 외무성 사무차관은 판결 당일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해 “매우 유감이다. 일본 정부는 결코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한 항의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어 오후엔 스가 요히시데 총리가 기자들과 만나 “우리나라로선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합니다. 이튿날인 9일 일본 언론들은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일본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를 쏟아냈고, 자민당 외교부회는 15일 회의에서 정부에 대항 조처를 취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습니다.

이 판결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 역시 판결 당일인 8일 ‘외교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 공식화됩니다. 첫 문장에서 정부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 나갈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전한 뒤, 두 번째 문장에선 “2015년 12월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이하 12·28 합의)가 양국 정부의 공식 합의라는 점을 상기함”이라는 표현을 집어넣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2월28일 12·28 합의를 재검토하는 조사 보고서가 공개된 뒤,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합의가 정부 간 공식 합의임을 부정할 순 없다”고 언급하긴 했지만, 이후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는 등 합의를 무력화하는 작업을 이어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정부 담화에 12·28 합의에 대한 언급이 재등장했다는 것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 입장이 강경한 ‘원칙론’에서 ‘현실론’으로 선회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를 증명하듯 정부는 셋째 문장에서 “이 판결이 외교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여 한일 양국 간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이 계속될 수 있도록 제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결론 내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9월 스가 정권이 출범한 뒤 올 7월로 예정된 도쿄 올림픽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하는 ‘평화 올림픽’으로 활용하기 위해 한-일 관계 개선을 시도해 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강창일 신임 주일 한국대사에게 전한 “때때로 문제가 생겨나더라도 그 문제로 인해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야 할 양국관계 전체가 발목 잡혀선 안 된다”는 말이나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이 판결이 “솔직히 조금 곤혹스러운 것이 사실”이란 언급은 이 같은 기조를 재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그럼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위안부 판결은 2018년 10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처럼 한-일 관계를 파탄으로 몰아넣게 될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진 않을 것이라 예측할 수 있습니다. 국내 여러 전문가들이 한-일 간 마찰을 피할 수 있도록 국제사법재판소의 분쟁 해결 절차를 따르자거나, “만만한 일본을 상대로 갈 데까지 간 한국 법원의 모험주의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 진입하고 있다”(선우정 <조선일보> 부국장)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판결을 지지하는 ‘정의의 관점’이 아닌 ‘현실 외교적 관점’에 선다 해도 이 판결에 대해 우리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지나치게 오버하며 자세를 낮출 필요는 없다고 판단합니다.

강제징용 손해배상소송 원고 쪽 대리인들과 한·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2018년 11월12일 피해자들 사진을 들고 도쿄 신일철주금 본사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야노 히데키 ‘강제연행·기업책임추궁재판 전국네트워크’ 사무국장, 김민철 ‘강제동원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운영위원장, 김진영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임재성·김세은 변호사. 원고 4명 중 이춘식(94)씨를 제외한 3명은 대법원 확정판결을 보지 못하고 고인이 됐다. <한겨레> 자료 사진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요?

한-일 관계를 격랑으로 몰고 간 대법원 판결 이후 상황을 돌이켜 봅시다. 한국 대법원은 2018년 10월 일본제철 등 일본 기업이 과거 식민지 시기 강제노동을 시켰던 한국인 피해자들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놓습니다. 그때도 일본 정부는 판결을 강하게 비난하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담화를 내놓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이에 대해 구체적인 보복 조처를 내놓은 것은 그로부터 무려 8개월이 지난 2019년 7월이었습니다. 지금도 모두의 기억 속에 생생한, 반도체 생산에 꼭 필요한 불화수소 등 3개 물질에 대한 수출 규제 등의 조처였습니다.

일본 정부는 왜 바로 보복에 나서지 않고 8개월을 기다린 걸까요? 이 판결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자신들이 젊은 시절 감당해야 했던 혹독한 노동에 대해 구체적인 배상과 보상을 요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때 중요했던 것은 피해자인 원고들이 ‘실제 배보상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원고인단은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압류하고, 이렇게 압류된 자산을 매각하려는 이른바 ‘강제집행 절차’에 나섭니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한 재판 결과로 인해 일본 기업에 ‘실제적 피해’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 한-일 청구권 협정 3조 1항에 근거해 2019년 1월9일 ‘외교 협의’를 요청하고, 이어 5월20일 이번엔 3조 2항에 근거해 ‘중재’ 요청을 합니다. 그렇지만 당시 북-미 핵 협상에 온갖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던 문재인 정부는 일본 정부의 요청을 무시합니다. 그 결과 발생한 것이 2019년 7월의 보복 사태입니다. 즉, 일본 정부가 보복 조처를 취한 것은 판결 그 자체 때문이 아닌, 원고들이 진행한 강제집행과 한국 정부의 ‘의도적 무시’ 때문이었습니다.

정말이냐고요? 일본 정부가 중재 요청을 한 다음날인 2019년 5월21일 고노 다로 외상의 기자회견 내용을 살펴봅니다.

“한국에 대해 1월9일 청구권 협정에 관한 협의를 요청했다. 한국에선 이낙연 총리가 이 문제에 대응하는 역할을 맡는다 해서 일본도 이낙연 총리의 대응을 어떤 의미에선 지지한다는 의미로 조금 억제적으로 대응했다.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는 각오하고 있었지만, 이제 곧 4개월 이상을 기다리게 된다. 그런데 얼마 전 이낙연 총리가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발언이 있었다. 이 얘기를 듣고는 우리 쪽에서도 이 이상 기다리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중재 절차를 통보하기에 이른 것이다. (중략) 만에 하나 일본 기업에게 실질적 피해가 이르게 된다면 일본 정부로서는 필요한 조처를 취할 것이라 생각한다.”

즉, 일본 정부가 움직이게 된 것은 판결 자체가 아닌 한국 정부의 무대응과 일본 기업에 실제 피해가 이를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위안부 판결은 어떨까요? 지난 강제동원 소송과 달리 이번 위안부 소송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돈을 받아내기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할머니들은 기나긴 수요집회 기간 자신들이 긴 투쟁에 나선 것은 “돈 때문이 아니다”라고 강조해 왔습니다. 일본 정부가 8일 판결의 취지를 받아들여 위안부 제도가 “일본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운영한 국가범죄”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그 시점에서 모든 갈등이 해소될 수 있습니다. 즉, 할머니들과 그 유족들에겐 일본 정부의 재산을 실제로 찾아내 압류·매각 등의 강제집행 절차를 시작할 의지가 없습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닌 역사적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말로만 그런 것 아니냐고요? 현재 진행 중인 위안부 재판은 모두 2건입니다. 8일 판결이 나온 첫 재판의 원고(유족 포함)는 12명, 3월24일로 변론 기일이 연기된 두번째 재판의 원고는 20명입니다. 이 32명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12·28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화해치유재단으로부터 1억원을 수령했습니다. 평소 역사적 정의를 강조해 온 할머니들이 재단에서도 돈을 받고, 이 판결로도 돈을 받기 위해 ‘타국 정부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이란 무모한 일을 벌일 것이라 생각하긴 어렵습니다. 실제, 이용수 할머니는 16일치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일본 총리가 공개된 장소에 나와 세계가 다 듣도록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해야죠. 그렇게만 한다면 저는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돈 얘기한 적도 없어요. 지금이라도 사과한다면 재판(손해배상 소송)도 취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재판의 원고 대리인인 이상희 변호사 역시 “일본 정부가 판결의 취지를 받아들이면 된다.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닌 역사의 정의”라고 말합니다.

수원평화나비 소속 회원 등 시민들이 2020년 6월24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 수요시위’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그렇다면, 일본 정부의 입장은 어떨까요. 원고들이 강제집행에 나서지 않는데도 무턱대고 한국에 보복 조처를 취할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지난 15일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의 기자회견 내용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재판에 대해서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국제법상으로도, 양국관계를 보더라도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이상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매우 유감이라 생각한다. 9일 내가 강경화 한국 외교부 장관에게 직접 전화해 강하게 항의했다. 그리고 항의뿐 아니라 정부로서 한국이 국가적으로 국제법 위반을 시정하기 위해 적절한 조처를 속히 강구할 것을 강하게 요구한다. ‘여러 선택지’를 시야에 넣고 의연히 대응해 가겠다.

(질문: 여러 선택지라 함은 이른바 보복 조처도 포함된 것으로 이해해도 되는가?)

아마도 보복 조처라 하면 일본이 무엇인가 당했을 경우 대항조처를 취한다는 것이지만, (지금 말하는 것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한국이 국제법 위반 상태를 일으키고 있다’, 이것에 대해 시정을 촉구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보복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모테기 외무상은 보복 조처는 일본이 ‘당했을 경우’ 즉 직접적 피해를 입을 경우 취하는 것으로, 그렇지 않은 이상 이런 조처를 취할 의사가 없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원고단이 강제집행 절차에 나서지 않는 한 일본이 먼저 움직이진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원고들에겐 강제집행을 할 의사가 없습니다.

결국, 지난 8일 판결로 인한 한-일 갈등은 ‘소리 없는 대치’로 장기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 원고들은 이 판결을 통해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 이후 30년에 걸친 길고 긴 투쟁 끝에 한국 법원으로부터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게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판결을 오랜 위안부 투쟁의 대미를 장식하는 ‘상징적 판결’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일본 정부 역시 본인들이 “최종적 불가역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해 온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는 무리수를 두진 않을 것입니다.

길윤형 기자 [email protected]

<2020-01-19> 한겨레 

☞기사원문: ‘위안부’ 판결로 한일관계 파국이라고? 오버하지 맙시다

수, 2021/01/20-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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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21/01/2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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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만화가 10명 참여 ‘한 시대 다른 삶’…항일·친일인사 삶 비교

‘한 시대 다른 삶’소개하는 관계자들
(서울=연합뉴스) 황윤기 수습기자 =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하재욱 작가, 성모 작가, 박종선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장, 최민 전국시사만화협회장이 만화 ‘한 시대 다른 삶’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1.1.31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최근 만화가 윤서인의 망언으로 많은 국민이 분노했는데, 이 만화는 그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의 대답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민문연) 부천지부에서 출간한 ‘한 시대 다른 삶’은 독립운동가의 삶을 조명한 그간 교육만화와 다른 점이 많다. 제목 그대로, 같은 일제강점기를 살았지만 친일과 항일이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간 인물들의 삶을 나란히 놓고 대비시킨다.

31일 민문연에 따르면 ‘한 시대 다른 삶’은 지난해 경기도 문화예술 일제 잔재 청산 공모사업에 선정돼 권당 470쪽, 2권짜리 만화책으로 만들어졌다.

경기지역 초·중·고등학교 2천400곳에 보급됐으며 민문연 부천지부 누리집에서 웹툰으로 볼 수 있다. 신문과 잡지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시사만화가 10명이 항일·친일 인사 10쌍의 삶을 만화로 풀어냈다.

방학진 민문연 기획실장은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관련 만화와 웹툰이 많이 나왔지만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다”며 “한 측면만 다루면 역사가 제대로 보이지 않고, 독립운동가와 친일파를 같이 보여줘야 그 시대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민 전국시사만화협회장은 결과물을 보여주고 싶은 인물로 최근 망언 논란이 불거진 시사만화가 윤서인씨를 꼽았다. 윤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게시물이 독립운동가와 후손들을 조롱한다며 많은 비판을 받았고, 광복회 측과 고소전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최 협회장은 “시사만화는 일제를 풍자하며 시작했다”며 그 기원을 1909년 6월2일 ‘대한민보’에 실린 이도영 화백의 만평에서 찾았다.

그는 “작가의 펜촉이 어딜 향하느냐에 따라 독이 되기도 하고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며 “윤씨 같은 작가들의 비뚤어진 역사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게 이런 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같은 작가로서 부끄러움도 있고, 그래서 이 작업이 더욱 중요했다”고 말했다.

만화 ‘한 시대 다른 삶’ [촬영 황윤기 수습기자]

교육용 만화이자 시대극인 만큼 고증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건물 외관이나 복식 등은 구체적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그렸고, 내용은 역사 전문가들의 감수를 받았다. 실제 작업 기간은 한두 달 정도로 짧았지만 최 협회장은 “협회 소속 ‘베스트’ 작가들이 참여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인 한용운과 ‘친일 불교인’ 평가를 받는 강대련 편에 참여한 하재욱 작가는 “지금 우리가 ‘그때 그들이 독립운동을 해야 했던 것 아니냐’고 말하긴 쉽지만 사실은 정말 힘든 일”이라면서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아득한 절망감을 느낀다”고 했다.

최 협회장은 “그래서 올바른 역사 인식이 필요한 것”이라며 “그 시대에 독립운동을 하기가 쉽지 않았겠지만 올바른 생각이 있어야 그나마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학진 실장도 “친일파의 오랜 변명 중 하나가 ‘그때는 다 그랬다’이지만 이 책을 통해 ‘다 그렇게 살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email protected]

<2020-01-31> 연합뉴스 

☞기사원문: “친일, 어쩔 수 없었다? 다 그러진 않았다 보여주고 싶었죠” 

※관련기사 

☞민족사랑: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 『한 시대 다른 삶』 만화와 웹툰으로 제작 

☞부천타임즈: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엇갈린 삶 

☞IBS뉴스: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엇갈린 삶 웹툰 ‘한 시대, 다른 삶’ 제작

일, 2021/01/3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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