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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생존자의 절규 “한국, 베트남전 피해자 고통은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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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생존자의 절규 “한국, 베트남전 피해자 고통은 외면”

admin | 월, 2021/08/09- 01:02

김남주 민변 베트남전TF 팀장 인터뷰① “문재인 정부, 사안 해결의지가 없어 보인다”

“저는 8살 한국군에 의해 (가족이) 학살당했고, 그 학살로 많은 가족을 잃고 혼자 오랜시간 고통속에 살아왔다. 오늘 이자리에 있기까지는 광장히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내며 오게 됐다. 한국에 이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위해 한국 방문을 세차례나 했지만, 한국 정부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 사실에 대해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한국 국회가 특별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소식 듣고 너무 반가웠다.”

▲ 한국사회에 진실규명을 다시 한번 호소하는 응우옌 티 탄씨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인 응우옌 티 탄씨는 간담회에 참가해 “한국정부는 우리가 겪은 고통에 대해 그동안 철저히 외면해왔다”고 비판하며 “특별법이 속히 제정되어 한국정부가 피해사실만이라도 제대로 조사하길 간절히 부탁드린다”라고 한국사회에 진실규명을 호소했다. ⓒ 이재정 TV 유튜브 갈무리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인 응우옌 티 탄(Nguyễn Thị Thanh, 61세)씨는 한국 국회의 특별법 제정 노력에 대해 반가운 자신의 심경을 전했다. 그는 지난 두달간에 걸쳐(6.30~7.22) 세차례 열렸던 ‘베트남 전쟁 시기 대한민국 군대에 의한 민간인 피해사건 조사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위한 연속간담회’에서 베트남 현지에서 화상으로 참가해 아픈 과거와 현재 심정을 토로했다.

이어 응우옌 티 탄씨는 한국정부가 민간인학살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고 사과하기를 바라냐는 질문에는 “(1968년) 퐁니퐁넛 학살, 우리 마을에서 죽은 사람들은 대다수가 저와 같은 어린 아이였거나 여성들이었다. 수많은 목숨들이 굉장히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것이 이 퐁니퐁넛 학살이다. 저 뿐만이 아니라 이 학살의 생존자들, 가족들,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이 학살을 기억하고 있고, 이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한번도 우리를 찾아온 적 없고, 이 사건에 대해 단 한번도 관심을 갖거나 이 사건의 실제에 대해 저희에게 물어보거나 조사한 적이 여지껏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정부는 우리가 겪은 고통에 대해 그동안 철저히 외면해왔다”면서 “저를 포함해 103명의 베트남 피해자들이 한국정부에 청원서를 전달했다. 그러면서 저희는 이제 한국정부가 이 사실을 알게되고 이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굉장히 기뻐했다. 저는 이 청원서가 오히려 저희를 더 슬프게 할 것이라거나, 이 청원서를 받아든 한국정부의 지금 태도를 상상해 본 적이 없다. 특별법이 속히 제정돼 피해사실만이라도 제대로 조사하길 바란다. 역사적 진실이 밝혀져야 이런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므로 제발 간절한 마음을 다해서 부탁드린다”고 말하며 한국사회에 진실규명을 호소했다.

한-베 수교 30주년 앞뒀지만… 해결 못한 숙제

내년 한국과 베트남은 수교 30주년을 맞는다. 1955년부터 20년간 이어졌던 베트남전쟁에 한국군은 약 35만명의 군인을 파병했다. 1964년에서 1973년까지 8년 6개월간 한국군 피해는 사망 5099명, 부상 1만 962명으로 추정된다. 반면 구수정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민간인 학살 피해자는 약 9000명으로 추정된다(관련 기사: “살아남은 내가 진실 말해야”… 그분이 돌아가셨다).

▲ 베트남전 관련 빈안학살(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최대 민간인학살로 알려짐) 생존자 응우옌떤런씨는 지난해 11월 숨졌다. 그는 생전 빈안학살 당시의 비극적 상황을 20년간 증언해왔다. 지난 2015년에는 베트남 피해자 최초로 한국을 방문하여 국회에서 한국 정부에 진실 규명과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사진 이재갑 작가) ⓒ 한베평화재단, 이재갑

1999년 구수정 당시 베트남 특파원이 한겨레21을 통해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보도한 이래 학살피해 마을의 의료지원을 비롯해, 작가단체및 다양한 민간부문의 교류가 ‘미안해요 베트남’운동의 일환으로 이어졌다. 한겨레사는 46주간 캠페인을 통해 앞지면을 할애하며 이 사건들을 대중에게 널리 알렸고, 긴 펀딩캠페인을 통해 10만달러를 모금해 2003년 베트남 푸옌성에 한베평화공원을 설립하는 결실을 맺기도 했지만, 참전군인들의 한겨레신문사 난입으로 한때 윤전기가 멈추는 등 이 문제로 사회적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도 했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활동과 지원은 ‘미안해요 베트남’운동을 계승하고 베트남전쟁에 대한 성찰을 통해 평화로 나아가고자 2016년 설립된 한베평화재단을 주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는 몇 종의 교과서에서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에 대한 언급이 있고, 제주 강정마을에는 피해자를 추모하는 ‘베트남 피에타’ 조각 (김서경 김운성 작가 제작)도 세워졌다.

‘미안해요 베트남’운동의 1기에 해당하는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대책위원회가 결성되며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운동이 가장 활발히 전개되었고, 2018년에는 시민평화법정이 열려 대한민국에 진상조사, 손해배상, 공식인정, 민간인 학살 관련 사실 전시의 책임 모두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지만 현재까지 정확한 역사적 피해사실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조사된 바가 없다.

▲ 베트남 평화의료연대 (평연)의 베트남 현지 진료 모습 치과 한의과 의료인및 일반 후원회원 320여명으로 구성된 베트남 평화의료연대(평연)은 1999년 이래 지속적으로 현지에서 구강보건교육사업및 수술등 의료지원 활동을 해왔다. ⓒ 베트남평화의료연대 페북

이에 민변을 비롯한 한국 시민사회가 사실관계를 밝히기 위한 ‘베트남 전쟁 시기 대한민국 군대에 의한 민간인 피해사건 조사에 관한 특별법’ (이하 특별법) 제정을 위해 노력중이다. 이외에도 2019년 4월 민간인학살 피해자 103명은 청와대 청원을 통해 진상조사및 사실인정, 공식 사과 및 공식 선언, 피해회복을 위한 조치를 요구했고, 응우엔 티 탄씨는 현재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가배상소송청구도 진행중이다.

필자는 연속간담회에서 사회를 맡았고 민변에서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TF 팀장인 김남주 변호사와 특별법 제정및 그간의 진상규명 노력에 대한 여러 쟁점들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 이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게된 취지와 배경은 무엇인가.

“민간인 학살 피해자 응우엔 티 탄씨를 대리해 개별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책임을 인정하라고 가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을 해야되는 제도다. 사실 가해자가 반성한다면 먼저 스스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다가서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베트남전쟁 당시에 민간인에 대해 여러가지 법적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위를 했을 것이라고는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 사실에 대한 공적확인이 필요하다. 그것을 법률을 만들어서 제도로서 추진하고 한 개의 사건이 아닌 여러가지 사건들을 총체적으로 규명하자는 게 이번 법 제정의 취지다. 8월 25일 입법법안공청회를 하고 8월말 또는 9월초에 법안 발의를 할 예정이다.”

– 특별법의 주요 내용은 대한민국에 진상조사, 공식인정, 손해배상, 민간인 학살 관련 사실 전시의 책임을 인정한 시민평화법정의 판결 내용과 유사한가?

“진상규명에 초점을 맞춰놨다. 진상규명을 신청하고,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고, 진상규명위원회가 대한민국에 있는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다양한 곳에 정보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관련자를 출석시켜서 진술을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조사절차 규정및 조사결과에 따라 진상규명 결정과 불능 결정등 공적인 결정들을 위원회가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조사가 마무리된 후 백서형태로 보고서를 만들어서 국회와 대통령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그 보고서에는 시민평화법정에서 주문으로 담았던 피해보상, 사과, 재발방지를 위한 장치, 민간인 학살 관련 사실 전시등 이런 내용들을 담아서 권고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의 목적은 사실규명에 있고, 그 이후에 피해보상등은 법적 구속력을 갖지않고 권고만 할 수 있어 이후의 과제로 남겨두며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반대가 심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진상규명부터 단계적으로 가려고 한다.”

▲ 베트남전 민간인학살TF 팀장 김남주 변호사 민변에서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TF 팀장을 맡고 있는 김남주 변호사(가운데)는 연속간담회중에 “베트남 피해 생존자들에게 더 이상 희망고문을 그만 했으면 한다”며 제대로된 진상규명과 고령의 피해자들에 대한 의료지원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이재정 TV 유튜브 갈무리

– 베트남은 진상규명과 사과를 원하지 않는데 왜 한국인들이 나서서 이런 일을 하느냐는 오해가 많은 것 같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사과를 원하지 않는다는 건 사실관계를 잘 모르는 잘못된 인식이다. 베트남의 피해자들은 이전에도 진상규명을 명확히 원하고 있는데 초기에 우리가 그분들과 소통하는 네트워크가 없었기 때문에 명확히 전달이 안되었을 뿐이다. 응우옌 티 탄씨 등 생존자들은 2015년부터 한국에 와서 국회에서 명확히 요구했다. 심지어 작년 103명의 피해자들이 청와대 청원을 통해 진상규명하고 사과하라는 명시적 요구를 했다. 베트남 정부가 명시적으로 요구를 하지 않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초기에 베트남 방문을 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사과를 하려고 했었는데, 사과를 하지 않고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아픈 역사가 있다’라는 유감표명으로 발언했다. 언론에는 대통령이 사과를 하려는 강한 의지가 있었지만, 베트남정부에서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명시적 사과를 하지 않고 넘어갔다는 보도는 있었다. 위안부 문제처럼 국가가 피해자를 대신할 순 없다. 국가보다는 피해자를 더 중심적으로 봐야하고, 피해자는 명시적으로 원하고 있다. 더 이상 논란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예전에 일제시대 일본은 소록도에 있는 한센인들에 대해서 강제낙태 등 인권침해 행위를 했었다. 그때 이 문제가 우리사회에는 잘 전해지지 않았지만, 일본시민사회에서 먼저 소록도를 찾아가 이분들을 면담하고 이분들 피해를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했었다. 피해자가 요구하지 않는다고 해도 가해국가의 시민단체가 나서는 게 유례가 없고 이상한 일이 아니다. 민간차원에서 일본도 먼저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듯 이것을 배워서 우리도 베트남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 민주주의와 인권 등의 주제를 다루는 싱크탱크 ‘프리덤 하우스’에 의하면, 베트남은 수십년간의 베트남공산당 (CPV) 일당체제로 표현과 종교의 자유및 인권활동이 완전히 보장된 성숙한 민주주의사회가 아닌 것으로 알고있다. 피해마을 유족이 문제해결에 목소리 내는 것에 대해 베트남 국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궁금하다.

“베트남 정부의 입장이 명시적으로 외부에 드러난 적이 없기에 입장표명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베트남 정부는 사실상 이 문제를 막지 않고 있다. 베트남은 모두 관영언론인데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다던가 응우옌 티 탄씨가 한국을 방문해서 어떤 일을 했다던가 이런 보도를 막지 않고 있다. 이 분이 소송하는 것도 막으려면 막을 수 있지만 그러지 않고 있다. 그것은 사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다, 또는 해결되는 것을 굳이 나서서 막진 않겠다는 그런 입장이 아닌가 추정해본다.”

– 한국 정부가 2019년 103명의 피해자 청원을 받고서도 ‘국방부 공식기록에 확인되지 않는다’, ‘베트남의 협조가 없어서 조사할 수 없다’는 무성의한 답변을 했다고 들었다. 주월미군 감찰보고서, 한국 베트남 퇴역군인 증언, 피해자 증언 등 증거가 많은데도 베트남 청원인들에게 한번도 연락해보지 않고 자료가 없다는 결론을 내려서 피해자들에게 많은 실망을 안겼다. 정권교체 후 피해자들은 많은 개선과 변화를 예상했을텐데 현 정부는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가.

“저는 현 정부가 해결의지가 없다고 본다. 어느 나라가 학살기록을 하겠나. 당연히 국방부의 공식 교전기록인 ‘파월한국군전사’ ‘전투상보’엔 기록이 없다. 사실 해결하려고 하면 우선 자료만 볼 게 아니고 참전한 분들의 말씀도 들어봐야한다. 한겨레 21에서 해당 중대 소대장들이 ‘우리 중대가 퐁니퐁넛마을에 들어갔고, 우리 소대는 아니지만, 우리 뒤에 따라오던 소대에서 총소리가 났고, 학살했다고 하더라’라며 다 증언하셨다. 아직 생존한 분들이 계시는데 이분들에 대한 조사도 하나도 하지 않았다.

박정희 정부 당시에 중앙정보부에서 그 사건이 외교문제로 비화되니까 조사를 했다. 국가정보원에 있는 기록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 베트남측 협조를 구하기 어렵다고 베트남 탓만 하는데 한국이나 미국 자료도 있고, 아직 생존자도 있다. 의지만 있으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충실한 조사를 하지 않고서 확인되지 않는다고 하는 건 의지가 너무 없는 거다.

대통령이 의지가 있다고 저희는 전해들었는데 그게 관철이 안되는 건지, 즉 대통령의 뜻을 아래 기관들이 거스르는 건지, 대통령의 뜻이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소극적인 태도인건지 잘 모르겠다. 많이 아쉬운 점이다. 이미 50년이 넘은 일이다. 사실관계는 명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그 바탕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입장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진실은 가둘 수 없는 것 아닌가.”

▲ 한국시민사회의 국방부앞 기자회견 모습 2019년 4월 4일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 103명은 진상조사,사실인정, 공식 사과등을 요구하며 청와대에 직접 청원하였으나 2019년 9월 국방부는 보유하고 있는 한국군 전투 사료에 민간인 학살 기록이 없고 베트남당국의 협조가 없어서 조사할 수 없다는 답변을 했다. ⓒ 한베평화재단

(2편 “베트남전 생존자들에게 희망고문 그만했으면”로 이어집니다)
김남주 민변 베트남전TF 팀장 인터뷰② “피해자도 참전군인도 고령,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해야”

▲ 이길보라 감독의 다큐 <기억의 전쟁>중 2018년 베트남 시민평화법정 모습 민변에서 이 시민법정의 틀을 만들었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베트남전쟁의 의미를 따져보고 법률적 다툼을 진행했다. 피해 생존자가 원고로 참여했고 참전군인의 증언도 있었다. 재판부로 위촉된 김영란 전 대법관, 이석태 변호사 (현 헌법재판관), 양현아 서울대법학전문대 교수 3인은 대한민국의 책임 내용 (공식인정, 진상조사, 손해배상)등을 인정했다. ⓒ 배급사 시네마달

– 퐁니퐁넛마을 민간인학살 피해자인 응우엔 티 탄씨가 현재 국가배상소송을 하고 있다. 소장이 제기된 지 1년 2개월 경과되었고 쌍방에서 쟁점 정리중이라고 들었다. 내년쯤 재판이 끝나고 1심선고가 예상되는데 승소할 가능성은 어떤가.

“내년에 선고될 것이라는 것은 추정이고, 재판 진행경과에 따라 다르다. 국내 군사재판에서는 민간인 살해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례들이 꽤 있다. 전시 강간죄로 판결받은 판결문도 남아있다. ‘민간인을 살해한 적이 없다’는 건 맞지 않고, 이미 법원에서 공적확인을 받은 사례가 있다. 그 이외에도 많은 일이 묻혀있다. 소송관련해서 증거는 꽤 많다. 당시 미군과 마을출신이 포함된 남베트남민병대가 약 400미터 거리에서 같이 망루에서 지켜봤다. 이 사건 직후에 이들이 마을에 들어가 생존자를 구조, 시신을 수습하고 사진도 찍었다. 미군 제3해군상륙군 사령부에서 조사를 시작해서 미군, 남베트남민병대, 생존자들의 생생한 진술을 받았다.

그게 미국 문서보관서에 있었고 저희가 확보해서 법원에 제출했다. 이외에도 그 마을에서 작전했던 해병2여단 1중대 병사와 소대장들 증언을 모두 봤을때 한국군이 아니라는 증거가 없다. 이밖에 다양한 법적 쟁점도 있다. 국가배상청구를 할때 외국인이 청구할 경우에는 한국인도 베트남정부를 상대로 소송할 수 있는 ‘상호보증’ 제도가 있어야 하는데 이게 존재하냐 여부,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았느냐는 쟁점도 있다. 사안의 입증 뿐만이 아니라 이런 법리적 쟁점을 넘어서야 하는 사건이라서 결과는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한국 법원이 시효를 내세워 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하기에는 인도주의에 반하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국정원에게 퐁니퐁넛 사건의 조사기록을 요청하자 정보공개 소송절차통해 답을 받아가라해서 4년 소송으로 15글자만 받았다. 국정원의 사실관계 조사협조를 위해 관할인 국회정보위에 노력해달라고 간담회에서 발언하셨다. 국정원 개혁도 베트남전쟁 진상규명에 필수요건일까.

“저희가 퐁니퐁넛 사건에서 ‘국정원의 사실조회를 통해 자료를 제공하라고 명령해주십시오’라고 법원에 신청하자 법원이 저희 신청을 받아들여서 국정원에게 사실조회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국정원은 사실조회에 응하지 않고 정보공개절차를 통해 받아가라고 답을 했다. 15자를 소송을 통해 받아낸 것처럼, 이는 기나긴 소송을 통해 뺏어가라고 하는 비겁한 결정이고, 가해자가 피해자를 조롱하는 꼴밖에 안 된다. 인권 국가를 지향한다는 대한민국이 할 행동은 아닌 것이다. 특별법이 제정되면 과거사진상규명법처럼 국정원에 자료를 요청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특별법이 제정되면 그를 통해서 국정원으로부터 자료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 한겨레가 46주간에 걸쳐 펀딩 캠페인도 하고, 앞지면을 할애해 대중적으로 사안을 널리 알려 마치 NGO 역할을 했다. 반면 참전군인들의 한겨레 신문사 습격사건은 한국사회내에서 베트남전을 ‘반공과 발전’의 가치로 신봉하는 냉전의 시각과 인권및 생명권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이다. 쌍방간 기억방식에 간극이 큰데 이런 시각차이를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이제는 서로 대화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전에는 한겨레 신문사에서의 충돌처럼 서로 힘겨루기, ‘듣든 말든 나는 내 의견을 큰소리로 외치겠다’는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서로 상대방의 입장도 들어보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참전군인들도 어떤 점에서 불편한지 자세하게 알아보는 계기가 필요할 것 같다. ‘나는 민간인을 살해하거나 학대한 사실이 없는데 왜 참전군인 전체를 매도하느냐’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고, 베트남전이 게릴라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내가 민간인을 살해하긴 했지만 민간인과 게릴라가 구분되지 않는 특수한 상황이어서 내 행위를 비난할 수 없다’라고 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또 ‘민간인을 살해한 것은 잘못됐지만 상관 명령에 따라서 한 행위라서 나도 어쩔 수 없었다’라고 하시는 분 등 여러 층위가 있을 것 같다. 또 ‘차제에 진상을 규명해서 문제되는 부대와 시기만 확인을 해달라’며 반대하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고, 대화를 통해 특정행위가 국제인도법규범을 위반한 것인지, 자료부족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인건지 등 고민을 해봐야 되는 문제같다. 이에 더해 참전군인들이 연세가 무척 많으신데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사회가 같이 고민해보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

– 2001년 5월 하미 위령비 비문 사건에 대해서는 이번에 간담회를 통해 알게 되었다. 1968년 청룡부대에 의해 주민 135명이 희생된 꽝남성의 하미학살 희생자를 추모하기위해 월남참전전우복지회가 2만5천 달러를 지원해 2001년 위령비를 준공했다. 이는 양국간의 과거청산을 위한 민간단체 최초의 지원사업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한국 대사관 이용준 참사관 (<잊혀진 상흔을 찾아서>의 저자)및 참전군인단체의 개입으로 준공식전 비문을 덮은것은 독일에서 일본정부의 외압으로 있었던 베를린 소녀상 철거압박및 레겐스부르크 소녀상 비문 철거문제와 너무 닮았다. 이 비문을 다시 새기는 것도 진상규명과 아울러 필수 과제라고 본다.

▲ 한국정부의 외압으로인해 대리석으로 가려진 하미위령비 비문 권현우 (한베평화재단 팀장)은 하미학살 피해자 유족들은 한베평화재단에게 한국정부의 압박으로인해 대리석으로 가려진 하미위령비 비문 내용의 액자를 지속적으로 전달받고 있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해결을 촉구했다. ⓒ 이재정 TV 유튜브 갈무리

“저는 위령비 건립에 대해 전우회에서 재정지원을 했기 때문에 의견을 낼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사실관계나 이분들이 느꼈던 공포나 분노를 표현한 부분에 대해서 의견을 내거나 수정요청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더더욱 한국 대사관측에서 알고서 이 문제를 전우회측에 알리고 그 비문을 덮게끔 현장에서 관여했던 점은 매우 문제가 있다고 본다.

다시 비문을 열어야하는데 한국정부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하미마을 유족회나 지역인민위원회는 한국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고해서 비문을 덮고 있는 상태이기때문에 한국정부가 막고 있는 것인지, 다시 열어도 문제가 없는 것인지 한국정부의 의사확인이 필요하다. 현재 전우회가 없어져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기때문에 대사관측과 소통해보는 게 적절하지 않나 싶다.”

– 간담회중에 “베트남 피해 생존자들에게 더 이상 희망고문을 그만 했으면 한다. 생존자가 ‘더 이상 오지말라, 아니면 약이라도 달라’고 아주 간절한 말씀 하시는데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셨다. 지원측면에서 어떤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할까.

“대통령이 진정성있는 사과를 하겠다고 알려졌는데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아서, 베트남정부가 원하지 않아서 안 했다고 한다면 그 절절한 마음을 실질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이 인도적 지원이다. 고령에다가 총 칼 등 많은 상처가 있으니까 치료가 제일 급하다. 고통 완화등 치료를 꾸준히 해야하는데 노무현정부 당시 종합병원이 지어진 이후에 지원이 없었다. 이동식병원 시스템으로 학살마을을 방문해 치료지원을 하면 좋겠다. 고령 피해자들에 대한 의료지원이 제일 시급한 문제다.”

▲ 베트남평화의료연대 한의사들의 베트남 현지 학교 방문 모습 베트남평화의료연대 소속 한의사들이 직접 베트남 현지의 학교를 방문해 성장교육을 진행했고 500여명의 베트남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 ⓒ 베트남평화의료연대 페북

– 19차례 의료지원사업을 해온 베트남평화의료연대를 비롯해 작가및 예술단체들이 민간에서 그간 꾸준히 교류가 있었다는 그 자체로 상당히 고무적인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본다. 무려 20년을 이어온 운동이 이렇듯 꺼지지 않는 불씨로 장기간 지속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일까.

“이 운동을 해온 세대가 민주화운동과 그 이후의 세대들이라서 인권의 가치에 감수성이 높은 세대라는 생각이 든다. 80년 광주학살의 기억도 있어서 그분들에게 손을 내밀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고통을 우리도 겪었기에 동류의식이 있어서 동화가 잘 되는 것 같다.

아울러 멀리까지가서 많은 비용을 들이고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활동했다는 것은 그만큼 탄탄한 조직력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특히 베트남평화의료연대는 건치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조직이 주도하신 것 같은데 사회참여를 하고 싶어하는 치과의사들의 열망과 의료전문성을 잘 접목하고 조직화해 풀어낸 것 같다. 오랫동안 지속된 것은 정말 대단하다.”

– 관련 특별법제정을 위해 시민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특별법이 특별한 법은 아니고, 과거 사실을 확인하자는 것이다. 그간 수많은 의혹과 사회적 고발이 있었고 너무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것을 다 덮고 가기에는 우리 공동체의 가치지향, 또는 품격과 맞지 않는다. 이제는 우리가 아시아에서 인권을 선도하는 국가로서 이 문제를 해결할 때가 됐다. 해결의 방법으로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진실을 밝히자는 것이다. 그 진실속에서 평가가 나올 것이고 한걸음씩 내딛으면 된다. ‘당장 사과하고 당장 배상하자’라기보다는 차근차근 사실확인하고 그 단계에서의 재발방지, 여러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류는 과거의 잘못을 성찰하면서 한걸음씩 전진해왔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도 그렇게 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평화의 소중함을 재인식하게 되고, 전쟁에도 인권의 가치와 인권규범이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으리라 본다. 험악해지는 미중패권 갈등 속에서 동아시아 지역에서 전쟁은 가까운 미래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베트남학살 진상규명은 과거의 문제만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문제에 닿아 있다. 한국 시민들도 진실을 밝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같이 동참해주셨으면 좋겠다.”

▲ 한국시민사회로부터 자전거를 전달받는 푸옌성 베한우호친선협회 베트남나비평화기행 푸옌성 자전거 전달식 (2020년 11월 10일) 한베평화재단, 정의기억연대, 세브란스노사공익기금은 공동으로 푸옌성 베한우호친선협회를 통해 3개 학교 150명의 학생들에게 150대의 자전거를 전달했다. ⓒ 정의연 공식 블로그

관련 연속간담회 링크는 다음과 같다.

-1차 연속 간담회: <퐁니퐁넛 마을 민간인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 초청 간담회>
-2차 연속 간담회: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
-3차 연속 간담회: <베트남전쟁 한국군 피해마을 지원 현황과 과제>

한편 간담회는 국회의원 우원식, 우상호, 기동민, 이재정, 이규민, 이소영, 강민정, 최강욱, 윤미향을 비롯해, 한베평화재단과 더불어 경계를넘어, 다산인권센터, 대안문화연대, 마감마녀, 마을과아이들,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베트남평화의료연대, 사람과공감, 성미산학교, 소박한자유인, 수요평화모임, 식민지역사박물관, 아시아평화인권연대, 연세대학교동아시아수용소연구모임,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인권과평화를위한국제민주연대, 인권교육센터들, 전쟁없는세상, 제주43범국민위원회, 천주교인권위원회, 피스모모, 피스모모평화페미니즘연구소, 화성외국인보소호면회활동마중, 향린교회가 공동주최로 참여하고 있으며, 재단법인 동천이 후원했다.

<2021-08-07>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생존자의 절규 “한국, 베트남전 피해자 고통은 외면”

☞기사원문: “한국정부, 베트남전 생존자들 희망고문 그만했으면”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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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신문은 지난 6월 9일 게재한 <한국의 친일파, 토착왜구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김세형 칼럼에서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사실과 다른 내용을 기술했습니다.

이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은 국민성금으로 학계를 망라한 180여명의 교수 연구자들이 8년간의 지난한 작업 끝에 이뤄낸 소중한 성과입니다. 친일인명사전의 객관성 공정성은 학계가 공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법부의 판결에서도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습니다. 나아가 보수 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정부기관에서도 공적인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는 데서 그 엄밀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본 칼럼에서는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 선생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고 허위의 사실을 서술하고, ‘민주당 고위층 할아버지는 을사오적에 버금가는 고위급 관료 출신이었는데도 빠졌다’는 등 근거 없는 내용을 기재하여 친일인명사전과 민족문제연구소의 신뢰도를 크게 손상하였습니다.”라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2020-07-20> 매일경제

☞기사원문: [반론보도] 김세형 칼럼 <한국의 친일파, 토착왜구는 누구인가?> 관련


반론보도 전(前) 기사

 3종 카드란 일본을 WTO에 제소 재개, 강제징용 기업(일본제철) 재산 강제 매각, 지소미아 파기가 그것이다.

코로나19로 경제가 엉망진창인데 한일 간 싸움이 커지면 그 정치적 파장은 대선 때까지 연장될지도 모른다.

우연인지 각본인지 문재인 정부 들어 강제징용에 관한 대법원 판결로 폭발된 반일(反日)은 그 어떤 것도 이기는 마법의 열쇠다.

반일 프레임은 거짓도 말짱하게 숨겨주는 기게스의 반지다.

윤미향은 정대협·정의연 활동을 하면서 거액의 기부금을 받아 횡령한 게 아니냐는 비판론자를 `친일파`로 몰아 귀신같이 빠져나갔다.

심지어 윤미향을 공격한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 “30년 반일 활동을 죽쑤게 만들어 아베에게 갖다 바치는 적폐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걸 보면 기함할 정도다.

이용수 할머니마저 친일이라니….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를 꾸짖기는커녕 여당 내에서는 그녀에 대한 공격에 함구령을 내리고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우리 편이므로 확고하게 실드를 쳐준 것이다.

조국은 작년 7월 일제 불매 운동이 일어나자 동학란 때 죽창가를 SNS에 올려 찬성하는 사람은 애국자, 비판자에겐 이적행위라고 국민을 갈라쳤다.

양정철은 재빨리 “내년 총선 때 반일 프레임으로 가는 게 유리하다”는 분위기를 띄웠다.

실제 4·15 총선에서 나경원은 토착왜구 프레임에 걸려 낙마했고 동작구에서 이긴 판사 출신 이수진은 “현충원에서 친일파 무덤을 파내야 한다”고 했다.

DJ 아들 김홍걸은 6·25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이 현충원에 묻혀서는 안 된다고 공명하고 나섰다.

반일=선, 친일=악이란 등식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처럼 하나의 유령이 돼 한국 사회를 배회한다.

이것은 과거의 망령인가 현재 진행형인가.

과연 무엇이 친일이고 토착왜구는 어디서 튀어나온 괴물인가. 정색을 하고 한번쯤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일제 36년 식민 지배가 말끔히 정리되지 않는 한 친일 논쟁은 한국 사회에 하나의 숙명이긴 하다.

식민지 시절 일제에 빌붙어 동족을 괴롭힌 행위는 분명히 악이었다. `동족을 괴롭힌` 범위를 어디까지 봐야 하느냐를 놓고 광복 후 지금까지 3차례 정리작업이 있었다.

첫 번째가 1948년 이승만 정부가 `반민족행위처벌법`을 만들어 그해 10월 반민특위를 가동해 조사와 처벌을 한 것이다. 그냥 일본과 친하게 지내며 단순 협조한 자는 제외하고 `악랄하게 민족에 해를 끼친 자`로 정의했다. 한마디로 `악질 친일파`다. 반민특위는 여기에 해당하는 698명을 골라내 조사했는데, 그 당시 제주도 남로당 무장봉기, 여순반란사건 등으로 온통 나라가 뒤숭숭하자 급하게 마무리하느라 79명만 기소했고 그나마 실형은 10명에 그쳤다.

일제 36년사에 악질 친일이 10명이라니, 이승만 정부의 반민특위는 좀 웃긴다.

그 후 재야의 임종국이란 자가 1989년 1만2000명에 달하는 친일 인명카드를 작성하고 타계했다. 이어 1990년대 초반 반민족문제연구소라는 민간단체가 친일 청산에 나섰다. 나중에 이름을 민족문제연구소로 바꿔서 2001년 국민모금으로 친일인명사전 편찬 작업에 착수했다.

두 번째는 노무현 정부 들어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를 발족해 선정 작업을 거쳐 2009년 완료했다. 그 결과 반민특위 689명보다 훨씬 많은 1005명을 추려냈다.

기준은 `일정 계급 이상 관리, 헌병 경찰로서 민족 구성원을 감금·고문하는 데 앞장선 행위자`였다.

세 번째로 앞서 시작한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마쳤는데 총 4389명 이름을 올린 사건이다.

노무현 정부가 선정한 것보다 4배 이상 많은 숫자다.

그런데 그 기준은 `식민통치기구 일원으로 식민지배 하수인이 된 인물`로 하면서 단순히 일본군 지원, 전시국채 모집, 일본군 전승 축하까지 몽땅 집어넣었다.

일개 시민단체가 정치권의 보수·진보 간 합의도 없이 입맛대로 정하다 보니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졸업하여 일본 육사 3학년에 편입한 박정희 전 대통령까지 망라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수진은 그 무덤을 파내자는 식이다. 우리에게 반일 문학 정서의 대명사였던 만해 한용운, 춘원 이광수까지 모조리 친일 명단에 들어가고 말았다. 군인·경찰 출신은 친일인명사전에 들어가고 민주당 고위층 할아버지는 을사오적에 버금가는 고위급 관료 출신이었는데도 빠졌다.

21세기 개명천지에 친일, 친미, 친중, 친북 그리고 친영, 친독, 친불이란 무엇인가.

친(親)을 국가 앞에 붙이는 것은 그 국가에 매력을 느끼고 문화 경제 사회 등에 호감을 갖는다는 뜻이다.

작년 7월 일제 상품 불매 운동 즈음 일본에 대한 호감을 가진 응답률은 12%로 사상 최저였다.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한국이 가서 도와주고 구호품도 보냈을 적에는 41%로 오른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친일 세력이 있었을지언정 현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 상황에서 일본과 친해서 무슨 득이 얼마나 있겠는가. 문 대통령 딸이 일본으로 대학 진학을 했다고 하여 친일파라 부르는가.

여당 의원 가운데 할아버지들이 일제강점기에 고관대작을 한 족보가 많고 유시민의 부친도 뭔가 한자리 한 것으로 돼 있다. 북한 지배계층 패밀리의 일제 행적은 더 심했다고 한다.

우리 헌법 13조 3항은 친족의 행위를 이유로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고 돼 있다. 즉 연좌제는 위헌이다.

따라서 할아버지, 아버지가 일제강점기 때 지배계층에 있었다 하여, 즉 넓게 봐서 친일파였다 해서 지금 아들·손자를 친일파로 분류해선 안 된다.

그러므로 현재 한국에 친일파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이 만든 휴대폰, 현대차는 일본에서 거의 팔리지 않아 대리점도 철수했고 일본 제품도 잘 안 팔린다.

한때 한일의원연맹, 한일경제회의 같은 것도 문재인 정부 들어 모조리 씨가 말랐다. 지금 독일과 프랑스가 한일처럼 살벌하게 지낸다면 그것이 프랑스의 자랑일까?

한일 간 싸움의 격화는 결국 과거의 망령을 불러내는 역사전쟁일 뿐이다.

역사의 꼬임을 풀어내서 화해하고 공동 발전을 도모하는 게 정치 리더의 몫이다. 나치 독일이 프랑스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과 화해하고 협력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들은 한일 과거사 청산에서 “돈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월드컵을 한일이 공동 주최하고 위안부들에게 일괄 3800만원을 나눠준 적이 있다. 위안부 미해결은 위헌이란 헌재 판결 때문에 박근혜 정부 때는 아베에게 “위안부 해결 없이는 정상회담도 없다”고 압박해 간신히 타결을 본 게 2015년 12월이었다.

문 대통령은 그것을 2017년 12월 돌연 파기했고 정의연은 그런 무드 조성에 앞장섰다. 할머니들의 동의를 얻지 않았다는 흠결을 지적했는데, 그렇다면 그 후 아베와 재합의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했어야 옳다.

작년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강제징용자 배상금을 한일 정부, 양국 기업인, 기타 자금을 합쳐 갈등을 해결하려 했으나 윤미향의 정의연이 반대해 청와대가 `문희상안(案)`을 폐기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일본은 징용공 판결이나 위안부 합의 파기를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조국·윤미향 사태를 겪으면서 “이념파들이 결속을 위해 뻔한 거짓말로 버팀으로써 한국 사회가 양심과 부끄러움을 모르게 된 게 가장 뼈아픈 손실”로 평가하는 사람도 많다.

한일이 싸우면 중국·북한만 큰소리친다. 친북·친중은 곧 반일과 등식이 되는 이치다.

주호영 통합당 대표가 문 대통령에게 “왜 (위안부 타결 방치로) 위헌 상태로 가면서 새로운 타결 노력을 않느냐”고 묻자 즉답을 피하고 황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친일은 친문 네티즌의 댓글처럼 아베 정권을 돕는 행위라고 친다면 일본에 이롭게 하는 세력으로 간주할 수 있겠다.

토착왜구 세력이란 용어는 반일 진영이 과거 한국당 정치세력을 공격하기 위해 `신(新)친일` `21세기 친일`로 불러 재미를 못 보다가 `토착왜구`로 표기한 게 대히트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국 내에서 일본을 돕는 자생적 세력이 생겨났다는 뜻이다. 정말 그런 세력이 있을까.

결론을 내보자. 지금 대한민국에서 누가 일본에 `이롭게 하고` 있는가?

한국이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찌그러든다면 일본에 이로운 행위가 될 수 있겠다.

한일 간 무한정 싸움을 도모하여 결국 한국 경제가 어렵게 되도록한다면 그는 광의의 친일파가 될 수 있다.

과거와 싸움으로써 선거에서 재미보려고 미래를 희생하는 그 세력이 지금 누구인가? 바로 그 집단이 친일파고, 토착왜구 아니겠는가.

당초 2020.6.9자 기사는 위와 같으며, 현재 기사는 일부수정 및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조치를 하단에 첨부하여 게시를 유지하고 있다.

☞기사원문: [김세형 칼럼] 한국의 친일파, 토착왜구는 누구인가?

화, 2020/07/21-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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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전쟁 영웅의 학살 기록… 한국전쟁 때 백선엽의 1사단,
부역자 색출 명목으로 ‘민간인 학살’ 자행

학살 당시 기억을 회상하는 김석우씨. 한겨레TV <내 손안의 Q> 화면 갈무리

“전부 아무 죄 없다고, 그짝도 아무 죄 없는데 고만 오던 길로 데리고 나가서 총으로 쏴서 묻어놨어.”

김석우(82)씨가 열두 살 때를 기억하며 반복해서 내뱉는 한마디가 있다. “아무 죄 없다.”

1950년 9월28일 경북 상주 일대를 점령한 인민군과 그 동조자들은 국군이 들어오자 북쪽으로, 산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김석우씨 가족은 그대로 마을에 남았다. “인민군에 가담한 사람은 다 내뺐고 우린 아무 죄 없잖아! 그래서 여기 남아 있었다고.” 죄가 없으니 괜찮을 거라는 당연한 믿음은 곧바로 부서졌다. 마을을 점령한 국군은 무작위로 마을 청년들을 색출했다. 김석우씨의 6촌 형님 김철원씨와 그의 친구 이태하씨는 그길로 잡혀가 화를 당했다. “저기 저 철로 밑에서 쏴서 바로 묻어놨어. 지나가는 개가 보고 난리를 피우는 통에 발견됐지.”

진실화해위원회에서도 증언

주검이라도 찾아서 다행이었다. 다른 날 끌려간 7촌 형님 김형문씨와 5촌 형님 김형우씨는 주검도 찾지 못했다. 김석우씨가 증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6~2010년 조사 활동 뒤 해산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에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에 대해 증언했다. 하지만 그런 외침에도 국가와 가해자에게 어떠한 사과의 말도 듣지 못했다. “인민군에 가담했다고 해서 죽였잖아. 그러니 국가가 사과하겠어.” 김석우씨는 사과받지 못하는 이유를 억울한 죄에서 찾고 있다. 도대체 누가 김석우씨 가족을 죽인 걸까?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이 벌어지자 백선엽의 1사단은 서울로 진격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전쟁 최대 치적 중 하나로 불리는 ‘다부동 전투’를 시작으로 상주를 거쳐 속리산 인근 충북 괴산·보은·청주 일대에서 토벌 작전을 벌였다. 이때 백선엽 부대는 부역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조사팀장을 맡았던 신기철 인권평화연구소장은 상주 민간인 학살 사건을 조사했고, 그 학살이 백선엽의 1사단이 저지른 것임을 밝혔다. 신 소장의 말이다. “9월24일 백선엽이 이끄는 1사단의 11·12·15연대가 상주와 괴산·보은·청주 이렇게 나눠 주둔하면서 열흘 동안 토벌 작전을 벌였다. 이 토벌 작전은 인민군에 점령된 지역에서 인민군에 가담한 부역자를 색출하는 작전이었다. 하지만 그 토벌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이 학살됐다. 그렇게 주둔한 곳에서 백선엽 부대는 마을 사람들에게 강간과 학살을 범했다.”

<한겨레> 취재 과정에서 입수한 ‘양민피살자신고서’ 78건에는 백선엽 부대에 의해 희생된 상주 유족들의 억울한 사연이 담겨 있었다. 이 신고서들은 1960년 4·19 이후 유족들이 4대 국회에 제출한 것이다. 이 신고서에는 백선엽의 1사단 소속 15연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증언이 자주 나온다.

“1950년 10월5일 상주군 청리면 수상리: 아군이 복귀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좋아 음주를 하였는데 만취한 상태에서 억울함을 호소조차 못하고 총살을 당하고 말았다.”

“1950년 9월25일 상주군 공성면 장도리: 피난 못 간 탓에 인민군들에게 잡혀 약 20일간 여성동맹이라는 곳에 가입되어 형식적으로 지내오던 중 아군이 북진하자 바로 잡혀가 3~4일간 가진(갖은) 욕(윤간)을 당하고 백사장에서 총살당하였다.”

1960년 4대 국회에 제출된 뒤 국회에 전산화돼 보관된 ‘양민피살자신고서’. 한겨레TV <내 손안의 Q> 화면 갈무리

백선엽 “이 안에 있는 것은 다 적이다”

신기철 소장은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4·19 혁명 때야 비로소 진실규명을 촉구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4대 국회에서 특별조사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지금 남아 있는 자료는 그때 피해자 유족들이 신청한 기록이다. 하지만 5·16 쿠데타가 일어나는 바람에 진상규명은 좌절됐다”고 설명했다.

백선엽은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지만 그가 저지른 학살의 기록은 외면받아왔다. 그러나 기록보다 선명한 기억은 당시 죽음을 잊지 못한다. “많이 죽었지. 어느 동네 할 거 없이 몇 명씩은 다 죽었어.”(김선우씨) 그 기억에서 다 설명되지 못하는 더 많은 억울한 죽음을 짐작할 뿐이다.

상주 학살 1년3개월 만인 1951년 12월, 백선엽 부대는 사단에서 군단으로 규모가 커졌다. 그만큼 학살 규모도 커졌다. 12월부터 두 달 동안 백선엽이 이끄는 ‘백선엽 야전 사령부’, 일명 ‘백야사’의 2개 사단은 지리산 일대에서 빨치산 토벌 작전을 실시했다. 지리산을 포위해 점점 포위망을 좁히는 작전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민간인이 희생됐다. <한겨레>에서 2011년 입수한 백야사의 작전 참모(공국진 전 준장)의 증언록을 보면 당시 이들이 주민을 바라본 인식이 드러난다. “지리산이 4개 도 9개 군이다. 9개 군 주민이 20만이다. 이 양반(백선엽)은 이 안에 있는 것은 다 적이다. (중략) 그래서 공격을 개시하고 아이들 부녀자들을 다 적으로 만들고 포로로 오는데….” 백선엽은 민간인 사살 가능성을 스스로도 인정했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백야사의 전과가 (사살 5800명, 포로 5700명) 당초 예상했던 빨치산 숫자 4천 명의 무려 3배가 넘었다. 공비들에 포섭된 비무장 입산자도 많았다”고 밝혔다.(<군과 나>)

이때 경남 산청의 조재현(79·당시 8살)씨는 할아버지와 숙모 그리고 젖먹이 사촌동생을 잃었다. “우리 숙모와 젖먹이 사촌동생도 총살당했어요. 그렇게 잘생긴 애가 없는데… 참 아깝죠.” 조씨는 지리산 인근에 묻혀 있던 할아버지와 숙모 그리고 사촌동생의 유해를 수습해 고향 마을 뒷산에 묻었다. 그리고 평생을 민간인 학살 피해 유족으로서 배상받기 위해 싸웠다. 2016년 마침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도 받아냈다. 하지만 국가 배상도 조재현씨의 억울한 마음을 풀지는 못했다. “국가에서 배상을 받았지요. 일평생을 부역자의 유족이라는 오명을 쓰고 살아왔는데 성인 1명당 4천만원….”

일평생을 부역자 오명 썼는데

주민들을 적으로 바라보는 토벌 방식은 한국전쟁에서 낯선 군사전략이 아니다. 신기철 소장은 “백야사는 1951년 말~1952년에 활동했지만 이전에 이미 수많은 토벌 작전이 같은 방식으로 이뤄졌다“며 “이런 일을 (백선엽) 사령관이 몰랐다고 얘기할 수 없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휘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인민군에 가담도 안 했는데 이리 죽은 기라. 그러니까 억울한 거지.”(김석우씨) 민간인 학살의 책임자로 지목된 ‘전쟁 영웅’ 백선엽은 사망했지만, 피해자 유족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한을 가슴 깊이 품은 채 살아가고 있다.

조성욱 <한겨레> PD [email protected]

*이 기사는 유튜브 채널, 한겨레TV에서 방영한 <내 손안의 Q: 백선엽 부대가 우리 가족을 죽였다>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관련 동영상은 하단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hanitv/hanitv_general/950778.html

<2020-07-17>한겨레21 

☞기사원문: “백선엽 부대가 우리 가족 학살했다”

※관련기사 

☞한겨레: “백선엽은 조작된 영웅” 참전군인이 말한다 

시사IN: “일제 앞잡이가 영웅 되면 대한민국이 뭐가 되겠나” 

☞미디어오늘: 경향신문 고정필진 백선엽 비판 칼럼 실리지 않은 이유는

화, 2020/07/21-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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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영상] [바로보기]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5 – 15화

“평화로 가는 한국, 제국으로 가는 일본” 서승 우석대 석좌교수와 함께 – 1부

한일관계가 역사상 최악의 상태에 이르러 동아시아의 평화가 위태로운 오늘날, 『평화로 가는 한국, 제국으로 가는 일본』(경향신문사)은 전쟁과 평화의 양극단을 오가는 남북관계 속에서 변덕스런 트럼프 대통령과 노골적으로 야욕을 드러내는 아베 정권을 넘어 어떻게 동아시아의 평화를 구축할 수 있을 지 얘기한다.

서승

1945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났다. 도쿄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유학하던 중 1971년 4월 보안사에 끌려가서, ‘재일교포학생 학원침투간첩단사건’으로 동생 준식과 함께 기소되었다.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90년 2월 28일 가석방될 때까지 19년간 옥살이를 했다.

출소 후 넓은 세상을 만나려고 미국, 유럽, 남미 등을 돌아다니고, 1994년에 교토로 돌아와서 대학 강사를 하면서, 동아시아의 분단, 냉전과 국가폭력의 진상규명과 피해의 회복, 역사청산, 평화를 지향하고, 한국, 타이완, 오키나와, 일본의 동지들과 함께 ‘동아시아의 냉전과 국가 테러리즘’ 국제심포지엄운동을 설립

2005년부터 야스쿠니신사의 반인권,반평화적인 본질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 신사참배를저지하고 무단합사된 한국인과 대만인의 영혼을 고향으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 한국,대만,일본,오키나와 4개 지역이 함께 하는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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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4) ‘내역사’ 시즌 5: 15화: “평화로 가는 한국, 제국으로 가는 일본” 서승교수와 함께

☞ (7.14) ‘내역사’ 시즌 5: 14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좌초위기_그 원인과 해법은? 2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함께

☞ (7.07) ‘내역사’ 시즌 5: 14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좌초위기_그 원인과 해법은? 1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함께

☞ (6.30) ‘내역사’ 시즌 5: 13화: “일제 침략전쟁에 동원된 유행가 군국가요, 대표적인 7곡을 소개합니다”

☞ (6.25)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5편 조정래 2부

☞ (6.23) ‘내역사’ 시즌 5: 12화: 한국전쟁 70주년 특집 “옹진의 민간인 학살과 동키부대”

☞ (6.19) ‘내역사’ 시즌 5: 긴급편성 최근 개관한 일본의 산업유산정보센터 ” 강제동원을 부정하고 왜곡하다”

☞ (6.18)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5편 조정래 1부

☞ (6.16) ‘내역사’ 시즌 5: 11화: 조선 정판사 위조 지폐사건의 진실 “정판사 위폐”사건은 조작되었다

☞ (6.09) ‘내역사’ 시즌 5: 10화: 제국대학의 조센징 “대한민국 엘리트의 기원, 그들은 돌아와서 무엇을 하였나?”

☞ (6.04)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4편 남정현

☞ (6.02) ‘내역사’ 시즌 5: 9화: 김원웅 광복회장 “친일찬양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

☞ (5.26) ‘내역사’ 시즌 5: 8화: 만화로 보는 민주화 운동(유승하, 마영신 작가)

☞ (5.22)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3편 이병주 2부

☞ (5.21)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3편 이병주 1부

☞ (5.20)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3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광주항쟁의 정신은?”

☞ (5.19)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2부 “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나?”

☞ (5.18)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1부 “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나?”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베트남전 당시 퐁니퐁넛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작품들_영화 “기억의 전쟁”과 만화 “붉은돌단풍”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 베트남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_4월 21일 베트남 피해자 최초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소송을 제기하다”

☞ (5.08)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2부

☞ (5.0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1부

☞ (5.05) ‘내역사’ 시즌 5: 5화: 소설 『명시』작가 안재성이 쓴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명시의 삶

☞ (4.28) ‘내역사’ 시즌 5: 4화: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가수 이지상과 함께

☞ (4.2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1편_이호철

☞ (4.21) ‘내역사’ 시즌 5: 3화: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강주원 박사와 함께

☞ (4.14) ‘내역사’ 시즌 5: 2화: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푸순의 기적’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와 함께

☞ (4.07) ‘내역사’ 시즌 5: 1화: 『한국 첩보 현대사』”고지훈 연구원과 함께”

☞ (3.31) ‘내역사’ 시즌 5: 프롤로그: 민족문제연구소 상근활동가들과 함께

금, 2020/07/24-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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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 안장된 친일반민족행위자 무덤 이장과 서훈 취소 법 개정 촉구 결의안” 채택

경남도의회가 만장일치로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반민족행위자 무덤을 이장하고 서훈을 취소해야 한다고 했다.

경남도의회는 23일 오후 제377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를 열어 “국립묘지 안장된 친일반민족행위자 무덤 이장과 서훈 취소를 위한 국립묘지법, 상훈법 개정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김영진 의원이 대표발의한 결의안은 상임위원회를 거쳐 이날 본회의에서 반대 없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결의안에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은 올해도 국립현충원에 어김없이 많은 성묘객들이 찾아왔지만, 현충원의 권위는 실추된 지 이미 오래다. 국립현충원에 누워 있어서는 안 될 자들이 버젓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다.

대통령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밝힌 국가공인 친일반민족자는 11명(서울 7명, 대전 4명)이고,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 기준으로는 총 68명(서울 35명, 대전 33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고 결의안에 담겨 있다.

또 결의안에는 “친일반민족자가 주로 묻힌 장군묘역은 더 높고 널따란 최고의 명당자리로, 대한 독립유공자들 묘역을 그들의 발 아래에 두고, 내려다보는 형상이기에 더 더욱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되어 있다.

결의안에는 “그런데 이들의 묘비 어느 곳에도 그들의 친일매국 행위 이력이 한 개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같이 ‘애국애족’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면, 친일반민족자를 아주 훌륭한 애국자로 착각할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여 놓았다.

경남도의회는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는 친일반민족자들의 무덤을 이장하고, 국립묘지의 영예성을 되찾아야만 한다”며 “그렇게 해야 ‘현충’이라는 귀중한 이름의 영예가 바로 서고, ‘국립’의 위엄도 바로 세울 수가 있다”고 했다.

경남도의회는 “국회와 정부는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무덤을 강제 이장하거나, 그들의 친일매국 행적이 명시된 ‘단죄비’를 설치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친일매국 행적이 있는 사람은 원천적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도록, 국립묘지의설치및운영에관한법률을 즉각 개정하라”고 덧붙였다.

또 경남도의회는 “친일반민족행위자에게 수여된 각종 훈‧포장과 그에 따른 예우를 취소할 수 있도록, 서훈 수여 기준을 특정 행위가 아니라, 사람으로 바꿔져야 한다”며 “친일반민족행위자는 원천적으로 국가의 훈‧포장 수여를 받을 수 없도록 상훈법을 즉각 개정하라”고 했다.

▲ [현충원 안장 친일파] 김홍준 묘지 친일파 김홍준의 위패는 국립서울현충원의 상징인 현충탑 뒤쪽 부부위패묘에 있다. 부부위패묘는 현충원 정문에서 도보로 7분 거리로, 국립서울현충원에 잠든 국가공인 친일파 묘역 중 정문에서 가장 가깝다. ⓒ 김종훈

<2020-07-2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경남도의회 “친일인사, 국립묘지 이장-서훈 취소” 결의

금, 2020/07/24-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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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 해방을 노래한 이육사 시인을 기리는 상, 친일문인기념 문학상 수상자 연루 논란
–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학연구회,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함께해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올해로 17년을 맞이한 이육사 시문학상이 때아닌 ‘친일’ 논란에 휩싸였다. ‘광야’로 알려진 이육사 시인은 일제강점기 17번이나 투옥되며 조국 해방을 위해 애써온 시인이지만, 반대로 심사자나 수상자는 친일문인기념상에 이름을 올린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2020년 이육사 시문학상 심사위원 중 하나(구모룡 평론가)는 친일문인을 기리는 팔봉비평문학상을 받았으며 당해 이육사 문학상 수상자(이재무 시인)는 친일문인 서정주를 기리는 미당문학상 후보를 두 차례나 수락한 이력이 있다. 미당문학상 후보의 경우 사전에 작가의 동의를 얻고 발표된다.

심사위원을 맡은 구모룡 평론가는 뉴스페이퍼와의 통화에서 “국내 비평문학상은 몇 되지 않으며 그중 팔봉비평문학상은 단단한 입지를 보유한 상이다.”라는 말과 함께 “일방적인 집회나 성명이 아닌 학문적인 논의의 장에서 이야기한다면 언제든 응할 용의가 있다. 문제를 제기한 단체에서 정말 시인이나 평론가인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라는 말을 전했다. 올해 이육사 시문학상 수상자인 이재무 시인은 “관련해 할 말이 없다.”고 일축했다.

문제가 된 팔봉비평문학상, 미당문학상은 동인문학상과 함께 대표적인 친일문인기념상이다. 팔봉 김기진과 미당 서정주의 경우 친일반민족인명사전에도 이름이 올라있을 만큼 노골적인 친일 행보를 이어왔다.

이에 문학계에서는 “이육사의 시 정신을 기리는 ‘이육사 시문학상’에 적합하지 않은 심사위원 위촉과 수상자 선정”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옥고를 치르며 일제에 저항한 이육사 시인의 민족정신과 부합하는 운영 방향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학연구회와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매해 이육사 시문학상 수상자 및 심사위원 중 친일문인기념상과 관련한 인물이 상당수 존재해 이같은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실태다. 상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는 이육사 문학축전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두 자료의 친일문학상 심사 및 수상 관련 자료는 이육사문학관 인터넷 홈페이지 및 신문 기사를 근거로 했으며 미당상은 친일문인 서정주를 기리는 미당문학상(중앙일보 주최), 팔봉상은 친일문인 김기진을 기리는 팔봉비평문학상(한국일보 주최)을 줄여서 표현한 것이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학연구회와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의 자료에 의하면 전두환의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며 찬양시를 쓴 조병화 시인을 기리는 <편운문학상>, 민정당 창당 발기인이자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냈을 뿐만 아니라 전두환 퇴임 때 찬양시를 쓴 김춘수 시인을 기리는 <김춘수문학상>, 여순사건 시찰단에 합류해 「새벽의 처형장」(『동아일보』1948.11.14)과 「절망」(『동아일보』1948.11.16.)을 발표하는 등 이승만 정권의 이데올로기 생산에 앞장선 김영랑 시인을 기리는 <영랑시문학상> 수상자 및 심사자도 상당하다.

성명서를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학연구회와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관련한 내용을 지적하며 이육사문학관 측의 운영에 문제를 제기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나아가 “그동안 이육사 시문학상 수상자나 심사자들의 상당수가 미당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등 친일문인을 기리는 문학상을 수상하였거나 심사했다.”며 “그 이름을 일일이 거명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알렸다.

아래는 성명서 전문이다.


【성명서】

민족시인 이육사의 고귀한 혼을 더 이상 더럽히지 마라!
이육사문학관 관계자들은 국민 앞에 사죄하고 물러나라!

2020년 제17회 <이육사 시문학상> 발표를 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참담함과 부끄러움을 갖는다. 친일문인을 기리는 문학상인 팔봉비평문학상을 수상한 문학평론가가 심사위원이었고, 대표적인 친일문학상인 미당문학상 후보를 두 차례나 수락했을 뿐만 아니라 전두환 취임 때 찬양시를 쓴 시인을 기리는 편운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 수상자였다.

<이육사 시문학상>을 운영하는 관계자들에게 묻는다. 이와 같은 결과가 과연 이육사 시인의 민족정신과 문학정신에 부합하는가.

그동안 일부 <이육사 시문학상> 수상자나 심사자들의 면면을 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들의 상당수가 미당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등 친일문인을 기리는 문학상을 수상하였거나 심사자였다. 친일문학상 후보자도 상당했고, 박정희를 찬양한 시인도 있었다. 그 이름을 일일이 거명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매우 심각하기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친일문학상 수상자나 심사자가 <이육사 시문학상>뿐만 아니라 이육사문학관에서 시행하는 각종 행사에도 대거 초대되었다. 학술토론회, 낭독회, 문학학교, 문학강연회 등의 행사에 초대되어 어린 학생을 비롯해 수많은 독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와 같은 문학관의 운영 실태를 보며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육사문학관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이육사문학관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육사 시인이 어떤 분인지 새삼스럽게 소개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조국 독립을 위해 분투하다가 열일곱 차례나 옥고를 치르고 끝내 일제의 감옥에서 온갖 고문을 당해 순국한 이육사 시인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자랑일 뿐이다. 이육사문학관의 반역사적이고 몰상식한 행동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 이육사 시인의 민족정신을 왜곡시키고 오염시키는 이육사문학관의 행위를 철저히 규명해 올바른 대한민국의 역사를 이루는 데 거울로 삼을 것이다.

민족시인 이육사의 고귀한 혼을 더 이상 더럽히지 마라!
이육사문학관 관계자들은 국민 앞에 사죄하고 물러나라!

2020년 7월 20일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학연구회 /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2020-07-23> 뉴스페이퍼 

☞기사원문: 이육사 시문학상, “친일문인기념상 수상자가 심사 부적절” 문학계 성명서 발표 

※관련기사 

☞뉴스저널리즘: 이육사 시문학상, “친일문인기념상 수상자가 심사 부적절” 문학계 성명서 발표

금, 2020/07/24-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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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7월 24일 조선인으로는 유일하게 일본 중의원까지 지낸 친일거두 박춘금이 조직한 대의당 주최로 ‘아세아민족분격대회’가 열렸습니다. 이 대회는 내선일체와 황민화를 앞세워 태평양전쟁에 조선 젊은이들의 참여를 선동하기 위한 것으로 조선총독, 조선군사령관을 비롯한 일제의 수괴들과 거물급 친일파들이 대거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대회 소식을 사전에 입수한 ‘대한애국청년당’ 소속 조문기(1927~2008), 유만수(1924~1975), 강윤국(1926~2009) 등은 대담하게 대회장에 다이너마이트 2개를 설치, 폭파시킴으로써 대회를 무산시킴은 물론 패망 전 최후의 발악을 하던 일제와 친일파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습니다.

‘부민관 폭파 의거’는 일본 패망 직전 경성 한복판에서 조선독립의 의지를 널리 알린 일제강점기 의열투쟁의 대미를 장식한 쾌거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매년 의거일에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특히 의거 70주년이었던 2015년 7월 24일에는 의거 현장인 서울특별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재연극 ‘정의의 폭탄’을 진행한 후 영상과 교육자료로 제작하여 서울 시내 중·고등학교 210여 곳에 배포한 바 있습니다.

서울특별시의회 역시 3.1운동 100주년이었던 2019년 서울특별시의회가 항일투쟁의 현장임을 알리는 홍보 영상을 제작해 독립정신 고취에 나서고 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기 위해 의거 기념식은 생략하고 재연극 ‘정의의 폭탄’을 공유하며 부민관 폭파 의거를 기억하고자 합니다.

토, 2020/07/2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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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20/07/25-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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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등단 50돌 맞은 조정래 작가
조정래 작가,
30여년만에 다시 다듬어 내기로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순으로 출간 예정

작가 조정래가 지난 25일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자연명상마을의 집핍실에서 ‘문학, 길 없는 길’이라는 친필이 새겨진 독서대를 가리키며 등단 50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조정래의 대하소설 3부작 개정판이 나온다. 작가 조정래(77)는 지난해 10월부터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자연명상마을 집필실에 머무르며 이 소설들의 개정판 작업을 진행해 최근 마무리지었다. 새달 말 <태백산맥> 전10권 개정판이 나오는 것을 시작으로 9월 <아리랑> 전12권 개정판이, 10월에는 <한강> 전10권 개정판이 차례로 나올 예정이다. <태백산맥>은 1986년에 제1부 3권이 나오고 1989년에 완간된 이래 800만부 정도 판매되었고, <아리랑>과 <한강>까지 합쳐서 3부작 전체의 판매량은 1600만부에 이른다. 대하소설 3부작 개정판은 1970년 등단한 조 작가의 등단 50돌을 기념한 것으로, 그가 이 작품들의 개정판을 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첫 개정판
1986년 출간 이래 총 1600만부 판매
“쑥스럽지만 지금 읽어도 잘 썼더라”

지난해 오대산자연명상마을로 이주
“형틀같지만 집필 의자 앉으면 행복”
명예촌장 맡아 ‘인문학 강연’ 등 예정

지난해 10월 평창 오대산 자연명상마을로 이주한 조정래 작가가 지난 24일 조정래문학관인 ‘세심헌’의 대문 앞에서 방문객을 마중하고 있다. 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태백산맥>은 1989년 완간 이후 30여년 만에 처음 다시 읽었습니다. 다른 작품들도 이번에 처음으로 다시 읽었죠. 그동안은 그럴 틈이 없었습니다. 그 시간에 새 작품을 써야 했으니까요. 다시 읽으면서 문장도 다듬고 묘사도 일부 보충했습니다. 스토리를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쑥스러운 얘기지만, 다시 읽어 봐도 잘 썼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다시 읽고 개정판을 내기로 한 건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이란 늘 완벽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니까요.”

지난 25일 오대산자연명상마을 집필실에서 만난 조 작가는 “엄혹한 시절에 <태백산맥>으로 반공 이데올로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바람에 국가보안법에 걸려 고초도 겪었지만, 민족의 분단으로 인한 갈등과 비극을 완화하고 해결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작품이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흔히 개정판은 문장을 일부 손보고 묘사를 보완하는 수준이지만, 그는 <태백산맥> 10권 말미에서 지식인 출신 빨치산 손승호가 개울물을 마시다가 토벌대의 총에 맞아 숨지는 장면에서는 비극적인 느낌을 한층 강화했다. 기존 판본에서는 “쪼그려앉은 그는 손등으로 입을 닦았다./ 탕!/ 그의 몸이 솟구치듯이 벌떡 일어났다./ 탕! 탕! 탕!/ 그의 몸이 빙글 돌면서 휘청 꺾였다. 그리고 개울물로 첨벙 곤두박혔다./ 가슴이고 배에서 솟구치는 피가 금방 개울물을 붉게 물들이며 풀려나가고 있었다”로 끝났던 것을, 개정판엔 한 문장을 추가했다. “물에 둥둥 뜬 채 시체는 물결을 따라 느리게 맴돌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손승호의 죽음이 작가로서도 너무 비참해서 그냥 물에 빠져 죽는 걸로만 처리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소설 속에서 영원히 개울물 속에 휘돌며 남아 있어야 독자에게도 그런 비참한 느낌이 오래 갈 것 같았다”고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작가 조정래가 지난 25일 집필실에서 등단 50돌 기념으로 출간하고자 독자들이 보내온 질문에 답하는 원고를 쓰고 있다. 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개정판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작가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작업에 돌입했다. 독자들이 보내온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역시 10월에 출간 예정인 책의 원고를 쓰는 일이다. 2009년 젊은 독자 250여명의 질문에 답하는 글을 모아 낸 책 <황홀한 글감옥>의 속편인 셈인데, 아직 제목은 정하지 않았지만 ‘등단 50주년 기념 독자와의 대화’를 부제로 삼았다.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소설 속 인물은 누구인지, 작가로서 슬럼프는 없었는지, 우리 사회의 영어 범람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지 등 80여개의 질문에 답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친일파 문제에 대한 해법을 묻는 질문에는 “반민특위를 부활시키고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이들을 재판에 넘겨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민족의 미래가 없다”는 취지로 답변을 썼다고 작가는 소개했다.

오대산 자연명상마을의 조정래문학관 ‘세심헌’은 전통 한옥으로 지어졌다. 조정래 작가가 지난 25일 한복 차림으로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 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오대산자연명상마을에서 그는 하루 여덟 시간 넘게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스스로 ‘형틀’이라 부르는 의자에 앉아 있을 때 그는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대하소설 3부작을 마무리하느라 20년 간 사회생활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그다. “나는 에피소드가 없다는 게 에피소드인 작가”라고 그는 자신을 설명한다.

그는 앞으로 특정되지 않은 시대를 배경 삼아 실존의 문제를 다룬 철학적인 소설 한 편 그리고 영혼과 내세의 문제를 다룬 3권짜리 소설을 쓸 예정이다. 이 작품들의 무대는 오대산 일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작가 생활을 마무리하는 작품이 될 이 소설들을 위해 그는 2017년 말 <한겨레> 독자들과 함께 북인도 불교 성지 순례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경기도 분당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그는 서재의 장서 4천권을 명상마을에서 멀지 않은 한국자생식물원에 기증했다. “가까운 곳에 책들을 놓아 두고 식물원 이용객들이 보도록 하고 나도 필요할 때 와서 보면 좋을 것 같아서 기증했다”고 덧붙였다. 식물원의 사무동 2층에 널찍하게 자리잡은 ‘조정래 서가’에 마련된 책상에서 그는 이따금씩 글을 쓰고 독자들을 만나기로 했다. 명상마을 명예촌장이기도 한 그는 다음달 말 인문학 강연을 하는 등 한 달에 한 번 정도 마을에서 독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솔숲길 명소인 오대산 월정사 입구에 자리한 ‘세심헌’의 뒷뜰에도 소나무숲이 장관이다. 조정래 작가는 하루 8시간씩 집필하는 짬짬이 솔숲을 거닐며 명상을 하고 있다. 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제가 순천 선암사에서 태어나 네 살까지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대처승인 아버지가 고 3 때 저를 출가시키려고 법명까지 받았지만 제가 거부했죠. 선암사에서부터 치자면 70여년 만에 다시 부처님 품으로 돌아온 셈이네요. 이곳에서 붓글씨도 연습하고 있는데, 앞으로 10년에 걸쳐 반야심경을 3천번 정도 베껴 쓰려 합니다. 그러고 나면 죽음을 웃으면서 맞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평창(강원도)/최재봉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2020-07-27> 한겨레 

☞기사원문: “쑥스럽지만 지금 읽어도 잘 써” 태백산맥 첫 개정판 나온다 

※관련기사 

☞UPI뉴스: [조용호의 문학공간] 조정래 “창작이란, 자신의 심장에 총을 쏘는 일”

목, 2020/07/30-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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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2인으로 구성된 투캉 프로젝트 팀이 개발한 한국사 RPG ‘난세의 영웅’이 지난 2일 구글 플레이를 통해 정식 출시됐다.

게임인재단은 대학생 2인으로 구성된 투캉 프로젝트 팀이 개발한 한국사 역할수행게임(RPG) ‘난세의 영웅’이 지난 2일 구글 플레이를 통해 정식 출시됐다고 28일 밝혔다.

난세의 영웅은 게임인재단에서 운영하는 ‘게임×히스토리 게임인 역사 나눔 프로그램’에 첫번째로 합류한 게임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역사적 스토리의 완성도를 한층 강화한 ‘난세의 영웅’은 대한민국 구석기 시대부터 광복 이후까지의 광범위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유저는 게임 플레이를 통해 다양한 역사적 인물과 사건들을 경험하며 일상에서 멀고 어렵게 느낄 수 있는 한국사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기회를 접할 수 있다.

게임 내 역사적 스토리는 현실의 공대생 3명이 우연히 타임머신을 개발하고 실수로 과거에 도착하는 지점부터 시작된다. 흥미로운 내용과 더불어 아기자기한 캐릭터를 조작하며 진행되는 턴제 방식의 전투 시스템은 레트로 RPG 게임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안병도 게임인재단 사무국장은 “스토리, 영상, 음악, 프로그래밍 등의 창작 활동이 종합된 게임 영역에서 우리의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이 재조명 된다면 한국사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새롭게 재탄생할 것”이라며 “앞으로 ‘난세의 영웅’ 게임의 완성도 강화와 안정적 운영을 지원하고 게임과 한국사의 낯선 장벽을 허무는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게임인 역사 나눔 프로그램은 2018년 게임인재단과 민족문제연구소,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의 협약을 통해 마련됐다. 게임 개발자들에게 역사 관련 연구 지원 및 자문을 제공하고 있으며 게임 개발자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2020-07-28> 전기신문 

☞기사원문: 게임인재단, 한국사 RPG ‘난세의 영웅’ 출시 

※관련기사 

☞아이뉴스24: 한국사 RPG ‘난세의 영웅’, 구글플레이 출시 

☞한경닷컴게임톡: 게임인재단 역사 나눔 프로그램 결실…‘난세의 영웅’ 출시 

☞매경게임진: 한국사 모바일게임 ‘난세의 영웅’, 구글 플레이 서비스

목, 2020/07/30-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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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명의 부동산은 국고 귀속, 일본식 지명은 우리 지명으로 바로잡을 것

▲ 1932년 5월 3일자 조선총독부 관보 내용, 7월 1일부로 동성동 중성동 내성동 중안동 일부를 본정(本町)으로, 내성동 중안동 일부를 남산정(南山町), 평안동 비봉동 대안동 지역 일부를 금정(錦町)으로 변경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단디뉴스=김순종 기자] 광복 75주년을 맞이한 올해, 아직 남은 일제잔재 청산을 위해 경상남도가 팔을 걷어붙인다. 경남도는 일본인 명의 부동산을 국고로 귀속하고, 일본식 지명을 조사해 우리 지명으로 바로 잡을 예정이다. 경남도는 일제강점기 우리 역사와 전통이 비하되고, 왜곡됐다며 올해 말까지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명의자가 일본식 이름으로 돼 있는 부동산 공적장부는 총 1만 6882건, 이 가운데 토지는 1만 4755건이고 건축물은 2067건이다. 도는 한자로 기재된 옛 대장과 등기부상 소유권 연혁을 조사해 일본인 명의 부동산으로 확인되면 조달청에 통지해 이 부동산을 국가에 귀속 조치할 예정이다.

다만 땅 소유자가 일본인이 아닌 창씨개명한 우리나라 사람으로 파악되면 8월 5일부터 2년간 한시적으로 시행되는 ‘부동산 소유권 이전등기 특별조치법’을 활용해 후손들이 상속 등기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이번 조사는 공간정보, 지리정보시스템(GIS)을 이용해 빠르게 진행될 예정이다.

▲ 사천시 용현면 서택저수지. 저수지 이름은 일제의 침략전쟁에 동조한 일본인 서택호삼랑의 이름에서 따왔다.

일제강점기 만들어졌거나 변경된 ‘일본식 지명’은 국토지리정보원이 실시한 경상권역 지명조사사업 결과 지금까지 총 14건으로 드러났다. 진주시 영천강, 창원시 무학산·정병산, 거제시 옥녀봉 등이다. 이 가운데 사천시 봉대산은 지난해 안점산으로 변경 완료했고, 나머지 13건은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가 지적한 사천시 용현면 소재 ‘서택저수지’의 명칭도 올해 말까지 변경 고시할 가능성이 높다. 서택저수지는 일본인 서택효삼랑의 이름을 따 붙여진 지명이라 문제가 됐다. 도는 이들 일본식 지명 변경을 위해 ‘문헌조사, 전문가 자문, 주민의견 청취’를 거쳐 각 시군, 경남도, 국가지명위원회의 심의를 받는다.

또한 보다 폭넓은 조사를 위해 시군 접수창구도 설치 운영한다. 시민단체, 향토전문가, 지역주민은 일본식 지명에 대한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윤인국 경남도 도시교통국장은 “일본인 재산은 반드시 국가로 귀속하고, 일본식 지명은 일제히 정비하겠다.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순종 기자 [email protected]

<2020-07-29> 단디뉴스 

☞기사원문: 경남 지역 ‘일본인 명의 재산’ 정비, ‘일본식 지명’ 교체 추진 

※관련기사 

노컷뉴스 日 재산 귀속·지명 바로잡기…경남서 일제 잔재 뿌리뽑는다 

세계일보: ‘일제 잔재’ 청산 나선 경남도, 무학산 등 일본식 지명 정비 

CNB뉴스: “일제잔재 청산” 경남도, 연말까지 일본식 명의재산 정비 

쿠키뉴스: 경상남도, 일본식 명의재산 정비해 일제잔재 청산

목, 2020/07/30-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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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영상] [바로보기]

한일관계가 역사상 최악의 상태에 이르러 동아시아의 평화가 위태로운 오늘날, 『평화로 가는 한국, 제국으로 가는 일본』(경향신문사)은 전쟁과 평화의 양극단을 오가는 남북관계 속에서 변덕스런 트럼프 대통령과 노골적으로 야욕을 드러내는 아베 정권을 넘어 어떻게 동아시아의 평화를 구축할 수 있을 지 얘기한다.

☞(도서) 관련기사: [신간] 평화로 가는 한국, 제국으로 가는 일본


서승
1945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났다. 도쿄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유학하던 중 1971년 4월 보안사에 끌려가서, ‘재일교포학생 학원침투간첩단사건’으로 동생 준식과 함께 기소되었다.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90년 2월 28일 가석방될 때까지 19년간 옥살이를 했다.
출소 후 미국, 유럽, 남미 등을 탐방하고, 1994년에 교토로 돌아와서 대학 강사를 하면서, 동아시아의 분단, 냉전과 국가폭력의 진상규명과 피해의 회복, 역사청산, 평화를 지향하고, 한국, 타이완, 오키나와, 일본의 동지들과 함께 ‘동아시아의 냉전과 국가 테러리즘’ 국제심포지엄운동을 설립하였다.
2005년에는 야스쿠니신사의 반인권, 반평화적인 본질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신사참배 저지 및 무단 합사 취소 등을 위해 한국, 대만, 일본, 오키나와 4개 지역 등이 참여하는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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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빵-바로듣기] [다운로드] 


☞ (7.28) ‘내역사’ 시즌 5: 15화: “평화로 가는 한국, 제국으로 가는 일본” 서승교수와 함께 2부

☞ (7.21) ‘내역사’ 시즌 5: 15화: “평화로 가는 한국, 제국으로 가는 일본” 서승교수와 함께 1부

☞ (7.14) ‘내역사’ 시즌 5: 14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좌초위기_그 원인과 해법은? 2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함께

☞ (7.07) ‘내역사’ 시즌 5: 14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좌초위기_그 원인과 해법은? 1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함께

☞ (6.30) ‘내역사’ 시즌 5: 13화: “일제 침략전쟁에 동원된 유행가 군국가요, 대표적인 7곡을 소개합니다”

☞ (6.25)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5편 조정래 2부

☞ (6.23) ‘내역사’ 시즌 5: 12화: 한국전쟁 70주년 특집 “옹진의 민간인 학살과 동키부대”

☞ (6.19) ‘내역사’ 시즌 5: 긴급편성 최근 개관한 일본의 산업유산정보센터 ” 강제동원을 부정하고 왜곡하다”

☞ (6.18)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5편 조정래 1부

☞ (6.16) ‘내역사’ 시즌 5: 11화: 조선 정판사 위조 지폐사건의 진실 “정판사 위폐”사건은 조작되었다

☞ (6.09) ‘내역사’ 시즌 5: 10화: 제국대학의 조센징 “대한민국 엘리트의 기원, 그들은 돌아와서 무엇을 하였나?”

☞ (6.04)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4편 남정현

☞ (6.02) ‘내역사’ 시즌 5: 9화: 김원웅 광복회장 “친일찬양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

☞ (5.26) ‘내역사’ 시즌 5: 8화: 만화로 보는 민주화 운동(유승하, 마영신 작가)

☞ (5.22)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3편 이병주 2부

☞ (5.21)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3편 이병주 1부

☞ (5.20)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3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광주항쟁의 정신은?”

☞ (5.19)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2부 “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나?”

☞ (5.18)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1부 “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나?”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베트남전 당시 퐁니퐁넛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작품들_영화 “기억의 전쟁”과 만화 “붉은돌단풍”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 베트남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_4월 21일 베트남 피해자 최초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소송을 제기하다”

☞ (5.08)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2부

☞ (5.0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1부

☞ (5.05) ‘내역사’ 시즌 5: 5화: 소설 『명시』작가 안재성이 쓴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명시의 삶

☞ (4.28) ‘내역사’ 시즌 5: 4화: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가수 이지상과 함께

☞ (4.2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1편_이호철

☞ (4.21) ‘내역사’ 시즌 5: 3화: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강주원 박사와 함께

☞ (4.14) ‘내역사’ 시즌 5: 2화: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푸순의 기적’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와 함께

☞ (4.07) ‘내역사’ 시즌 5: 1화: 『한국 첩보 현대사』”고지훈 연구원과 함께”

☞ (3.31) ‘내역사’ 시즌 5: 프롤로그: 민족문제연구소 상근활동가들과 함께

목, 2020/07/30-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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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식민지 노동 착취로 성장한 일본 재벌들

1인 기업이 아니라면, 월급날처럼 기업인에게 신경 쓰이는 날도 없을 것이다. 월세를 떼먹은 기업인의 이야기는 별로 들리지 않은 데 반해, 월급을 떼먹은 기업인의 이야기는 상당히 많이 들릴 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월세보다 월급이 더 큰 부담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발생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월급 부담에서 해방되어 사람들을 마음대로 고용하는 일이 가능해진다면, 기업의 고속 성장은 따 놓은 당상이나 마찬가지다. 노동자를 자기 가족처럼 대하며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다면,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기업의 규모는 신속히 커질 수밖에 없다.

요즘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예전에는 ‘가족 같이 일하실 분을 구합니다’라는 구인광고가 꽤 있었다. 시킬 것 시키고 줄 것 주는 사장이라면, 가족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 가족처럼 지내보자’고 말하는 사장들 중에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악덕업자들이 종종 있었다.

그런 악덕업자의 모습이,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맞서는 일본 전범기업과 일본 정부의 태도에서 자꾸만 비치고 있다. 2018년 10월 30일의 대법원 판결에 따라 임금체불 피해자 4명에게 각각 1억 원을 지급하면 될 일을, 전범기업과 일본 정부는 판결을 거부하는 것도 모자라 재산 압류 및 압류재산 현금화에 대한 보복 조치까지 강구하고 있다.

악덕업자

▲ 아베 일본 총리 ⓒ 연합/EPA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를 작년 7월과 8월에 단행했다. 그랬던 일본 정부가 이번에는 압류재산 매각을 통한 현금화에 대해서도 보복조치를 준비 중이라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을 까다롭게 하는 방안, 주한일본대사를 일시적으로 귀국시키는 방안, 한국 상품에 추가 관세를 매기는 방안, 한국에 대한 송금을 규제하는 방안들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 치하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은 임금 체불만 당한 게 아니었다. 원치 않는 작업장에 강제로 동원되고 노예처럼 혹사를 당했다. 이런 역사를 감안하면, 7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총 4억 원을 지급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피해자들이 돈 때문에 소송을 건 것은 아니지만, 4억 원은 너무 적은 금액이다. 일본 같은 대국이 그 4억 원을 주지 않으려고 이 같은 소동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한없이 낯설지 않을 수 없다.

세계를 상대로 침략과 착취를 자행할 당시, 군국주의 일본을 지배한 논리 중 하나는 팔굉일우(八紘一宇)였다. 여덟 방위로 상징되는 전 세계를 하나의 집으로 만든다는 이념이다. 전 세계를 ‘일우’로 만든다는 이 이념 하에서 일본제국주의는 식민지 민중을 강제징용 피해자로 전락시켰다. 그로 인한 ‘가족 같이 일하실 분’들의 희생이 오늘날 일본이 누리는 경제적 번영의 기초가 돼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일본 경제학자 이시이 간지(石井寛治, 1938년~ )가 1976년과 1990년의 도쿄대학 경제학부 강의노트를 토대로 집필한 책이 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를 망라하는 <일본 경제사>가 그것이다.

그가 이 책을 집필하는 데 도움을 준 학자가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다. 책 서문에서 이시이 간지는 “필자의 시야를 넓혀준 것은 운노 후크쥬와 안병직 선생을 중심으로 하는 식민지시대 한국의 역사조사 참가를 허가받은 일”이라고 말한다. <반일종족주의> 대표저자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스승이 이시이 간지의 관점 형성에 도움을 줬으므로, <일본 경제사>에 나오는 일본에 관한 불리한 서술이 실제 사실에 부합한다는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책 제6장에서 이시이 간지는 “군수생산을 크게 담당하면서 급팽창을 이루었던 것은 재벌계 자본이었다”면서 “14개 재벌의 자본집중도(국내)는 1937년 당시 22.6%에서 재벌 해체 지정시에는 42.6%로 급상승”했다고 서술한다. 일본 전체의 기업자본 중에서 14개 재벌의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1937년과 1946년 사이에 그처럼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군수 생산 참여로 인해 재벌들의 자본 집중도가 9년 만에 현저히 높아졌던 것이다.

이 시기에 일본 대기업들은 팔굉일우 이념에 힘입어 노동자들을 일우(一宇)처럼 대했다. 공권력의 지원에 힘입어 식민지 한국인들을 임의로 동원하고 임금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물론 장부 상으로는 얼마를 줘야 한다고 돼 있지만, 그런 장부가 실질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 같은 착취가 일본 경제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영화 <군함도>의 배경이 된 미쓰비시 그룹도 그에 힘입어 성장했다. 이 기업의 성장에도 ‘일우’ 같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밑바탕이 됐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에 이런 대목이 있다.

미쓰비시는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전범기업이다. 나가사키에 있는 미쓰비시 조선소와 군함도의 하시마 탄광이 속해 있는 다카시마 탄광이 미쓰비시를 발전시킨 핵심적인 시설이다. 일본이 침략전쟁을 벌이는 동안, 군함 82척과 어뢰 1만 7000개가 이곳에서 생산되었다. 일본의 해상 전투력을 상징하는 전함 무사시(武蔵)을 비롯하여 진주만 기습 공격에 사용된 어뢰가 바로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대법원 강제징용 재판의 피고인인 신일철주금도 마찬가지다. 이 기업은 1934년 설립된 일본제철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31년 만주사변 뒤로 일본의 침략 기운이 팽창하던 시기에 세워진 일본제철 역시 강제징용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이를 기반으로 크게 성장했다.

2004년에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41권에 실린 정혜경 한일민족문제학회 강제연행문제연구분과장의 논문 ‘일제 말기 일본제철에 끌려간 조선인 노동자’는 “1945년 8월 해방을 맞을 때까지, 일본제철에는 1만여 명의 조선인이 노역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징용 피해자들을 보수도 제대로 주지 않고 노예처럼 부렸으니, 이 기업의 이윤이 크게 증대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상당수의 일본 기업들이 이처럼 식민지에 대한 노동 착취에 힘입어 성장했기 때문에, 그런 전범기업을 계승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전범기업들과 제휴한 일본 정부 역시 죄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2019년 7월 이후의 경제보복에 이어 추가적인 조치까지 검토하고 있으니, 일본이 상식적인 사회인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과거부터 책임져야 

▲ 승소 판결에 눈물 흘리는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 생존자 이춘식 씨와 고 김규수 씨 부인이 지난 2018년 10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강제징용 피해자 원고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기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1945년 패망 뒤에 일본 재벌들이 맥아더 장군에 의해 해체됐으므로, 재벌급 전범기업들이 강제징용 덕분에 얻은 이익을 근거로 오늘날의 일본 경제를 비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맥아더의 일본 재벌 개혁은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재벌에 집중된 경제력을 배제하고 분산시키는 계획은 피상적인 결과를 얻는 데 그쳤다. 위의 <일본 경제사>는 “집중배제 정책이 용두사미로 끝나고 독점금지법의 개정(완화)이 계속 이어진 결과, 구 재벌계 기업이 기업집단으로 재조직되는 것도 자주 지적되는 바이다”라고 말한다.

앤드루 고든 하버드대 교수가 쓴 <현대 일본의 역사> 역시 “재벌 해체 프로그램은 더디게 진행되었다”면서 “미국의 주안점이 (일본) 개혁에서 부흥으로 바뀌었을 때, 재벌에 대한 압력은 사라졌다”고 말한다.

이랬기 때문에 일본의 전범 기업들은 패망 뒤에도 모습을 바꿔 오늘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일본제철이 패망 뒤 4개 회사로 분열되고 그중 2개가 신일본제철로 합쳐진 뒤 이것이 스미토모금속과 합병해 지금의 신일철주금이 된 데서도 나타나듯이, 전범기업들은 맥아더의 재벌 개혁 이후에도 외형을 바꾼 채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했다.

이는 오늘날의 일본 경제가 식민지에 대한 노동력 착취라는 토대 위에 서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 일본이 누리는 경제적 번영의 상당부분이 식민지 주민들의 공짜 노동력 제공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징용 피해자 4인에게 총 4억 원을 주기 싫어서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팔굉일우 사상을 앞세워 노동자들을 가족처럼 다루며 가혹하게 착취해놓고는 이제 와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국가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다.

‘피해자 4명에게 1억 원씩 지급하면 전 세계 피해자들이 다 같이 들고 일어나 일본 경제가 휘청거릴 수 있으므로 일본으로서는 그렇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변호해줘서는 안 된다. 설령 일본열도가 기우뚱하는 한이 있더라도, 70여 년 전의 노동 착취와 임금 체불은 어떻게든 처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일본이 세계를 이끄는 지도적 국가가 되고자 한다면, 자신들이 벌인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연습부터 하지 않으면 안된다.

<2020-07-28>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고작 4억 안 주려고, 또… 일본 부끄럽지도 않나

목, 2020/07/3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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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일본기업에 강제동원 배상판결
4일 0시 일본 강제징용 기업 국내 자산 압류 절차 개시
日정부 관세인상·송금중단·비자제한 등 검토
시민단체 “강제동원 근본적 책임있는 가해자 일본정부가 피해자 행세”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김수완 기자] 일본 강제징용 기업의 국내 자산 압류를 위한 우리 법원의 절차가 내일(4일)부터 시작되는 가운데, 일본 정부가 이번 매각으로 자국 기업에 피해가 발생할 경우 추가 보복에 나설 것을 시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 대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고 주장하는 만큼 이를 둘러싼 갈등은 격화하고 있다. 특히 이같은 일본 정부의 대응에 시민들은 보복 조치는 말도 안 된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한국 대법원은 지난 2018년 10월 이춘식 씨 등 강제동원 피해자 4명이 일본 신일본제철(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일본 기업이 피해자에게 1인당 1억 원씩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이들은 1941~1943년 신일본제철 전신인 일본제철에 강제 징용돼 노역에 시달리고 임금을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신일본제철 측은 청구권이 남아있다고 하더라고 이미 소멸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고 측은 같은 해 12월 손해배상 채권 확보를 위해 일본제철과 포스코의 한국 내 합작법인인 PNR 주식 압류를 법원에 신청했다.

관할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지난해 1월 손해배상 채권액에 해당하는 8만1천75주(액면가 5천 원 환산으로 약 4억 원)의 압류를 결정했고, 원고 측은 작년 5월 해당 자산의 매각도 신청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한국 법원의 자산 압류 결정문을 피고인 일본제철에 송달하는 것을 거부했다. 결국, 포항지원은 지난 6월1일 관련 서류의 공시송달 절차를 개시해 그 효력이 오는 4일 발생한다.

이에 따라 4일 오전 0시로 이 기간이 지나면 서류가 보내진 것으로 간주돼 압류돼있는 신일철주금의 국내 자산에 현금화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됐다.

지난해 8월15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광복74주년 강제동원 문제 해결 위한 시민대회’에 참가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및 유가족들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사진=강진형 기자 aymsdream@

이런 가운데 현재 일본 정부는 자국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이 현금화될 가능성에 대비한 보복 조치를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요미우리신문 등 외신은 전날(2일)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의 자산 현금화가 이뤄지면 일본 정부는 대항 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이며 “다양한 내용이 논의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지난 1일(현지시간) 요미우리TV에 출연해 일본제철의 자산이 강제 매각됐을 경우에 대해 “정부는 모든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다. 방향성은 확실히 나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관련해 교도통신은 “비자 발급 요건을 엄격하게 하거나, 주한 일본대사의 일시 소환 등이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현재 일본에서는 △비자 발급 제한 △금융제재 △수출규제 등 다양한 대응책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도 일본 정부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수출규제 조치로 보복에 나선 바 있어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당시 일본정부의 조치에 74주년 광복절을 맞은 지난해 8월15일 서울 도심에서는 ‘일본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시위에 집결한 시민들을 “강제동원 사과하라”, “아베는 사죄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일본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조치를 촉구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민들은 “도무지 반성이라는 게 없다”, “보복 조치가 말이 되냐. 언제까지 일본 눈치를 봐야 하냐”,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진정한 사과도 없었으면서 자산 압류에 보복이라니 이제 참을 수 없다. 불매운동도 끝까지 할 예정이다” 등 일본 정부의 조치에 반발하고 나섰다. 사과나 반성 없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또다시 고통을 주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직장인 A(27) 씨는 “일본 정부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은 이제 말도 안 된다고 본다”며 “오랜 시간 고통받았을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보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작 일본 정부는 보복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너무 화가 난다. 우리 정부에서도 강력한 조치를 취했으면 좋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직장인 B(31) 씨도 “일본 정부에서 보복 카드를 들었는데 이 때문에 타협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번에 굽히면 피해자들만 고통받는 일이 될 것”이라면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끝까지 압류해서 (피해자들에) 보상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불매운동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덧붙였다.

사진=아시아경제DB

한편 시민단체는 일제 강제동원에 근본적 책임이 있는 일본 정부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 청산 등을 조사·연구하는 민족문제연구소는 아시아경제와 통화에서 “4일 0시에 공시송달절차에서 효력이 발생하는 것일 뿐 지금 당장 매각을 해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등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 정부가 보복 조치를 검토하는 것은 국제법상으로도 위법이고 명분상으로도 말이 안 된다. 비상식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국 법원의 판결을 이행하지 않을 것이면 일본제철은 왜 한국에 와서 긴 시간 재판을 받는 것이냐”라면서 “우리 단체가 일본에 직접 방문했을 당시에도 재판 중이기 때문에 판결 결과에 따르겠다고 답변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판결이 나오니 배상을 안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역시 성명서를 통해 “지난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해방 70여 년이 지나도록 실현되지 못한 인권회복과 정의 실현을 고대해 온 피해자들의 기대는 처참히 짓밟히고 있다”며 “우리는 강제동원의 근본적 책임이 있는 가해자 일본 정부가 피해자 행세를 하는 것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고 일본 기업 일본제철, 미쓰비시, 후지코시는 판결에 따라 가해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을 위해 먼저 나서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대화마저 거부한 채 정부 뒤에 숨어 어떠한 노력도 하고 있지 않다”라면서 “글로벌 기업을 자처하는 기업들의 비겁한 행태를 강력히 규탄하며 가해 기업의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임을 밝힌다”고 강조했다.

김수완 기자 [email protected]

<2020-08-03> 아시아경제

☞기사원문: ‘강제동원 기업’ 자산압류 명령에 日 보복 예고…시민들 ‘분통’

화, 2020/08/04-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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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교 일장기 등 닮은 도표 사용… 89개교는 친일파가 만든 교가 불러
친일인사 기념물 등은 161개 달해… 道-도의회, 예산 확보 후 청산 착수

경기도내 초·중·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교육기관 곳곳이 일제 친일 인사가 작사, 작곡한 교가를 사용하거나 전범기 등 일제의 잔재가 남겨진 교표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도가 민족문제연구소에 의뢰해 발간한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 보고서를 통해서다.

특히 친일 인사의 공적을 기린 기념비 내지 송덕비도 별다른 안내 없이 교내 정문, 운동장 등에 버젓이 설치돼 있어 조치가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중부일보는 보고서를 통해 드러난 학교내 친일잔재 현황과 앞으로 개선방향을 2회에 걸쳐 짚어본다.

사진=연합자료(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중부일보가 입수한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도내 학교 중 친일 인물이 제작한 교가를 사용하고 있는 학교는 89개교로 나타났다.

이들 학교의 교가는 지난해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제창 보류를 지시한 ‘경기도 노래’(중부일보 2019년 연속 보도)를 작곡한 이흥렬, 친일 작가 춘원 이광수를 비롯해 다양한 친일 인물들이 작사, 작곡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수원이 18개교로 가장 많았고 이어 평택, 의정부, 안양, 용인(이상 7개교), 고양(6개교), 안성(5개교), 파주(4개교) 등 순으로 집계됐다.

전범기, 일장기, 일제 기업 상표의 모양을 따온 듯한 형상의 교표를 사용하는 학교는 12개로 확인됐다.

시각 디자인 관련 전문가들이 교표의 형태, 색상, 질감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일제 상징물 내지 일제 기업 상표 간 유사성을 파악한 결과라는 게 도의 설명이다.

일제 강점기 친일 인사의 기념비, 동상 등 기념물은 도내 161개가 설치된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중 18개가 수원,남양주, 안성, 포천 등 도내 10개 지역 학교에 위치한 것으로 집계됐다.

나머지 기념물은 공공기관, 복지기관, 주민센터, 등산로 등 도내 곳곳에 산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와 도의회는 이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본격적인 청산 사업에 착수, 이르면 9월 본회의부터 관련 예산 확보에 나설 계획이다.

김경호 도의회 친일잔재청산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집행부와의 협의를 통해 청산 사업에 필요한 예산을 산출하는 한편, 11월 종료되는 친일잔재청산 특위의 활동기간을 6개월 연장해 예산 의결, 확보에 무리가 없도록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도 관계자도 “일제 친일 인사 기념물은 조사, 정리 대상이면서도 기록, 보존돼야 할 역사이기 때문에 아카이브(기록) 작업을 추진 중”이라며 “교가와 교표 역시 도교육청과의 협의로 조속히 교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황호영기자

<2020-08-03> 중부일보 

☞기사원문: [학교 뿌리박힌 일제잔재] 교육기관 상징물에 전범기가 웬말

수, 2020/08/0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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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경 앵커>

산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아마도 백두대간을 모두 올라봤으면 하실 분들, 많을겁니다.

외국 산악인이 남북한 백두대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특별한 사진 전시가 열려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보기힘든 사진들이 많은데요.

임수빈 국민기자가 다녀왔습니다.

임수빈 국민기자>

푸른빛을 띤 천지와 주변을 둘러싼 봉우리들, 민족의 영산으로 불리는 백두산의 장엄한 모습입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산봉우리가 어우러진 이국적인 풍경, 함경남도에 위치한 차일봉입니다.

안개에 덮여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한 지리산 반야봉,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한 설악산 대청봉도 보입니다.

남북한 백두대간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인터뷰> 안성진 / 경남 김해시 “한반도 백두대간의 모습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서 너무 좋고 못 가본 북한의 백두대간의 모습을 통일이 되면 꼭 한번 직접 가보고 싶은…”

(‘일맥상통 백두대간’ 사진전 / 경남 창원시)

경남교육청이 일맥상통 백두대간이라는 주제로 마련한 특별한 사진전, 뉴질랜드 산악인 로저 엘런 셰퍼드 씨가 지난 2011년부터 2018년까지 남북한 백두대간을 올라 그 모습을 직접 카메라에 담은 것인데요.

외국인 가운데 유일하게 남북한 백두대간을 종주한 로저 씨, 산을 오르는 사이 한국을 좋아하게 됐고 의미 있는 사진 기록까지 남긴 겁니다.

인터뷰> 로저 앨런 셰퍼드 / 뉴질랜드 산악인

“처음에는 모험을 위해 한국에 와서 백두대간을 올랐습니다. 가이드북을 쓰며 백두대간에 대해 중요한 것들을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풍수지리, 국가적 상징, 지역적 문화…”

눈길을 끄는 것은 로저 씨가 찍은 다양한 북한의 백두대간 모습, 높이 솟아오른 봉우리들 사이로 보이는 독특한 모양의 암벽이 피아노 건반을 보는 듯한데요.

함경북도 칠보산의 피아노 바위입니다.

능선에 용암이 흐르다 굳은 자국들 사이로 하얀 부석이 덮여있어 눈이 쌓인 듯한 모습, 양강도 삼지연시 소연지봉입니다.

여덟 선녀가 와서 목욕을 즐겼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풍광이 뛰어난 곳, 금강산 상팔담입니다.

로저 씨는 산에 오르고 사진도 찍으며 어려움도 있었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로저 앨런 셰퍼드 / 뉴질랜드 산악인

“한국의 산은 굉장히 깊고 고저차가 심해 다들 힘들었고 북한의 산을 오르는 것 역시 신체적으로 힘들었으며 다들 아시는 것처럼 (북한에) 가는 것을 계획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외국인의 눈을 통해 본 한반도의 상징적인 자연 모습이 새롭게 다가오는데요.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에게 모처럼 좋은 볼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유아름 / 경남교육청 학예연구사 “이번 전시를 통해 코로나19로 지친 도민들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고 평화를 염원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현재 지리산 주변인 전남 구례의 한 농촌 마을에 머물고 있는 로저 씨.

한국의 산을 보러 오는 외국인들에게 등산 안내를 해주고, 그동안 찍은 사진으로 영어로 쓴 안내 책자도 만들어 백두대간을 외국에 널리 알리고 있는데요.

단순히 한국의 자연을 소개하는 게 아니라 하나 된 한반도가 되는 발판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인터뷰> 로저 앨런 셰퍼드 / 뉴질랜드 산악인

“언젠간 제가 했던 것처럼 모든 한국인이 자유롭게 한반도를 여행하고 백두대간을 여행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쉽게 보기 힘든 남북한 백두대간 사진 전시는 오는 19일까지 계속됩니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백두대간 모습이 더없이 눈부시고 아름다운데요.

이번 전시는 남북한에 걸쳐 있는 백두대간이 하나의 국토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국민리포트 임수빈입니다.

<2020-08-05> KTV국민방송 

☞기사원문: 외국 산악인, 남북 백두대간 사진에 담아

수, 2020/08/0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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