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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백제 오천 결사대 묻힌 ‘황산’ 두 동강, 이게 말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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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백제 오천 결사대 묻힌 ‘황산’ 두 동강, 이게 말이 되나”

admin | 금, 2021/08/06- 22:53

[현장] 논산 연산면 송정리 주민들의 오래된 분노… 국토부 “미래의 교통량 증가에 대비”

▲ 백제 오천결사대가 나당연합군과 최후까지 싸운 전적지로 알려진 황산벌 유적지가 있는 마을 명산(천호산, 논산 연산면 송정리)을 가로지르는 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붉은 색 네모안 산 중턱이 공사로 산 허리가 드러나 있다. ⓒ 심규상

백제 오천 결사대가 나당연합군과 최후까지 싸운 황산벌. 황산벌의 정확한 위치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통상적으로 충남 논산시 연산면 인근으로 본다. 연산면 작은 마을인 송정리에는 천호산이라는 뒷산이 있다. 천호산의 옛 이름은 다름 아닌 ‘황산’이다.

옛 황산 앞에 자리잡은 송정리는 지난 2015년부터 도로 공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3일 충남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 마을 앞. ‘결사반대’ 글귀가 선명한 수십여 장의 현수막이 도로변에 빽빽이 붙어 있다.

‘천년 성산(천호산) 파괴하는 국토부 해체하라.’
‘자연훼손, 주민들만 죽어난다.’

곧바로 권희용 마을 이장을 만났다. 권 이장은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장과 충남교육청 일제잔재청산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지역 역사문화에 대한 관심과 식견도 남달랐다.

7년째 논란 중인 ‘연산~두마 간 국도 우회도로’ 공사 1구간

▲ 권희용 마을 이장이 마을 뒷산(천호산)을 가로 지르는 도로공사와 산의 심장부인 주령에 터널을 뚫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 심규상

국토부는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와 대전시 유성구 방동을 연결하는 연산~두마 간 국도 우회도로 개설공사를 벌이고 있다. 인근 국방대 이전과 계룡대 3군 본부로 인한 유동인구 증가로 시가지 교통체증에 따른 우회도로를 만드는 공사다. 총연장 8.5km에 공사비는 약 2500억 원이다. 송정리 주민들이 반대하는 구간은 1공구(1구간)의 3.4Km다.

공사 반대 이유를 묻자 권 이장은 대답 대신 마을 앞 도로(대전~논산 간 4차선 국도, 계백로) 건너편으로 안내했다. 마을 전경과 병풍처럼 펼쳐진 마을 뒷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권 이장이 마을 뒷산 중턱을 가리켰다.

“산 중간 한가운데 가로로 움푹 팬 곳이 보이나요?”

자세히 보니 산허리가 군데군데 가로로 잘린 흔적이 뚜렷하다.

“도로가 뚫리는 구간이 저기예요. 지금 한참 공사를 벌이고 있어요.”

마을 앞으로 뻥 뚫린 4차선 국도가 있는데 마을 뒷산 산허리를 싹둑 잘라 우회도로를 만든다고? 기자 또한 도로 공사에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마을 왼쪽 뒷산 봉우리를 가리키며) 우회도로를 연결한다며 마을 수호산 심장부인 주령에 지금 터널을 뚫고 있어요. 산이 엉망입니다. 속이 상하고 안타까워 잠도 제대로 못 자요.”

▲ 마을 뒷산 5부 능선께가 누런 속살이 드러난 채 깊이 파여 있다. 양옆으로는 아름드리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뒹굴고 있다. ⓒ 심규상
▲ 마을 뒷산 5부 능선께가 누런 속살이 드러난 채 깊이 파여 있다. 양옆으로는 아름드리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뒹굴고 있다. ⓒ 심규상

곧바로 도로 공사 현장으로 향했다. 마을 뒷산 5부 능선께가 누런 속살이 드러난 채 깊이 파여 있다. 양옆으로는 아름드리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뒹굴고 있다. 골짜기마다 임시 설치한 우수관으로 빗물에 씻긴 황토가 쌓여 있다.

공사 현장에서 내려다보니 산 아래가 까마득하다. 서북쪽으로는 계룡산 정상이 한눈에 들어왔다. 남서쪽으로는 먼발치로 여러 개의 산봉우리가 겹쳐 펼쳐져 있다. 이런 산 중으로 도로를 내야만 하는지 의문이 더 깊어졌다.

옛 이름은 황산, 말 무덤, 궁장골, 시장골, 궁상골, 사실고개…
‘오천결사대’ 관련 지명 수두룩

▲ 1971년 4월 10일 자 “황산벌 백제 오천결사대 합장 무덤 발견” 제목의 동아일보 기사. “논산군 연산면 송정리 시장골로부터 동북쪽으로 직선거리 약 150m 떨어진 천호산 중턱에서 나당연합군과 최후까지 싸우다 전멸한 백제군 오천결사대 병사의 합동 무덤으로 보이는 백제의총이 발견됐다”고 전하고 있다. ⓒ 동아일보 신문 갈무리

권 이장이 기자에게 옛 신문 기사를 내밀었다. 1971년 4월 10일 자 <동아일보> 기사다. ‘황산벌 백제 오천결사대 합장 무덤 발견’ 제목의 기사에는 “나당연합군과 최후까지 싸우다 전멸한 백제군 오천결사대 병사의 합동 무덤으로 보이는 백제의총이 발견됐다, 논산군 연산면 송정리 시장골(병사들의 시체를 묻은 곳)로부터 동북쪽으로 직선거리 약 150m 떨어진 천호산 중턱이다”고 전하고 있다.

기사는 이어 “천호산 중턱 궁장골(군사들의 활을 묻은 곳) 언덕바지에 있는 무덤 일부가 도굴 흔적을 보인 채 보존돼 있는데 주민들로부터 말 무덤 또는 큰 무덤으로 불려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홍사준 백제문화연구회장은 무덤 주위에 시장골과 중상골이 있고 인근에 백제 산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천결사대 병사시체의 일부를 묻은 백제의총이 틀림없다”라는 고증을 덧붙였다.

<동아일보>에 등장한 논산 천호산이 우회도로 공사가 한창인 송정리 마을 뒷산이고, 천호산 중턱은 우회도로가 지나는 노선이다. 또 기사와 논산시지에 등장하는 시장골과 중상골, 궁상골이 모두 천호산에 있다. 하지만 말 무덤은 이후 충남도경찰청 의무경찰대가 들어서면서 진입로 공사로 송두리째 사라졌다. 관련 유적지들도 법적인 보호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

황산벌 전투와 관련된 송정리의 지명은 이게 끝이 아니다. 사실고개(백제군이 활을 쏘는 훈련장), 중상(衆傷)골(오천결사대가 신라군과 싸우다 상처를 입고 쓰러진 곳), 대목골(사장골 위에 있는 골짜기), 황산(천호산의 옛 이름) 등 관련 지명과 유래가 이어진다.

천호산 벼랑에 자리한 월은사(마곡사 말사)에서는 지금도 황산벌 오천결사대를 추모하고 있다. 월은사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주민들은 백제 말기 계백장군과 오천결사대의 유혼을 달래기 위해 절을 지었다는 유래를 들려준다.

“오천결사대 뿐만이 아닙니다. 천호산은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정복하고 신검의 항복을 받은 산이고, 산기슭에는 개태사는 고려 태조가 왕명으로 창건한 호국사찰이 있어요. 또 마을에는 한학을 익히며 살아가는 한학마을도 있고요. 이런 마을의 성산에 터널을 뚫고, 마구 파헤쳐 두 동강을 내는 게 말이 되냐고요.”

천호산은 고려태조 왕건이 길몽을 꾼 후에 이곳에서 나타난 군사들의 도움으로 후삼국 통일을 이루었다는 전설이 담긴 산이다. 본래 지명은 ‘황산’이었으나 후삼국을 통일한 후 하늘의 보호가 있었다고 해 천호산(天護山)으로 불렸다 유래한다.

▲ 천호산 중턱에서 한창인 연산-두만간 우회도로 공사현장 ⓒ 심규상

국토부 “주민들이 내놓은 대안은 사업 타당성 부족”

권 이장이 더욱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은 공사 이유다.

“현재 있는 마을 앞 4차선 도로(국도 4호선, 계백로)도 별로 막히지 않아요. 이후 교통체증이 걱정된다면 이 도로를 확장하면 되거든요. 백번 양보해서 꼭 우회도로를 내야 한다면 천호산 주령을 피해 대전 방향으로 1.5km 이동해 터널을 뚫으면 되니 천호산 주령과 산허리는 손대지 말라고 사정도 했어요. 그렇잖아요. 고작 3~4km 내달리려고 역사 현장이자 마을의 주산을 파괴해서는 안 되잖아요.”

처음 공사계획이 알려진 2015년부터 마을 주민들은 공사 반대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혔다. 500여 명의 주민이 연서명을 해 국토부에 의견도 전달했다. 정부 기관 곳곳에도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모든 민원이 대전지방국토관리청으로 이첩됐다.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의 대답은 판박이였다.

우리 청의 계획노선은 기술적 검토, 전문가 자문 등을 종합해 선정한 최적 노선으로, 마을 주민들이 요구하는 노선은 우리 청이 선정한 노선에 비해 우회 효과 등 타당성이 불리한 것으로 검토돼 반영이 곤란한 실정임을 알려드립니다. – 2017년 6월 대전지방국토관리청장 회신

2017년 주민 설명회 자료를 보면 마을주민들의 우려가 쏟아졌다. 주로 ‘천호산 절경을 보호해도 모자란 판에 산자락을 끊어 길을 내는 건 절대 반대’, ‘도로공사 편의만을 위한 공사가 누구를 위한 공사냐’는 의견과 항의였다. 그때마다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은 “교통시스템 효율성 극대화를 위한 공사로 환경 훼손은 불가피하고 환경피해가 최소화하도록 친환경적으로 계획을 수립했다”고 강변했다.

당시에도 여러 주민이 “전국 도시 중 인근 계룡시 도로가 가장 한산하다, 4번 국도 도로 중 일부 신호등 지점에서 정체가 있으나 이는 전국 어느 도로와 별반 다르지 않다, 4번 도로 확장만으로도 교통체증은 충분히 해소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은 “미래 교통량 증가에 대비해 우회도로 건설이 필요한 것으로 검토됐다”며 “우회도로 종점 교차로는 4차선을 6차선으로 확장하도록 협조 요청했다”고 동문서답했다.

주민들은 올해 들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문을 두드렸지만, 이마저도 호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일제히 도로변에 현수막을 내걸고 도로를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마지막 호소를 하고 있다.

“3~4km 단축보다 수만 배 가치 있는 역사 현장 파괴 말라”

취재를 마치고 대전으로 되짚어가는 기자에게 권 이장이 혼잣말처럼 되뇌이며 반문했다.

“2~3분 빨리 가자고 멀쩡한 도로를 두고 수천억 원을 들여 마을의 천년 성산을 파헤치고 주령에 터널을 뚫어야 할까요? 조금 더디 가더라도 황산벌 유적지와 마을의 역사문화를 보전해 달라는 주민들의 요구가 무리한 요구인가요? 선진국이라는 한국 땅에 주민들이 내놓은 대안과 요구를 성의있게 검토하고 답하는 정부 기관, 정치인은 정말 없는 건가요?”

퇴근 시간과 겹쳤지만, 대전 가는 4차선 국도는 한산했다. 도로변에 붙은 송정2리 청년위원회 명의의 현수막 글귀가 도드라져 눈에 띄었다.

“3~4km 단축보다 수만 배 가치 있는 역사 현장 파괴하지 말라.”

▲ 최근에는 일제히 도로변에 현수막을 내걸고 도로를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마지막 호소를 하고 있다. ⓒ 심규상

심규상(djsim)

<2021-08-04>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백제 오천 결사대 묻힌 ‘황산’ 두 동강, 이게 말이 되나”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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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작가는 인도 델리를 여행하다 그곳에서 한국광복군이 영국군과 훈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도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독립운동의 흔적이 있었다. 그곳의 사람과 터를 찍었다.

멕시코에서 고국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보냈던 김익주 선생의 후손 다빗 킴 씨. ⓒ김동우 제공

대부분 사람들은 ‘국외 독립운동’이란 말에서 만주 벌판을 연상한다.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대첩이나 김원봉의 의열단이 떠오를 것이다. 지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한반도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예컨대 인도나 멕시코 같은 곳에 우리 독립운동의 발자취가 남아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김동우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기자 출신인 그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017년 사진 작업을 위해 장기 여행을 계획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독립운동을 주제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인도 델리를 여행하던 중 우연히 레드포트(Red Fort)에 방문하게 된 그는 “번개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파견한 한국광복군이 이곳에서 영국군과 함께 훈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구한말 한반도와 아무 연관도 없다고 여겼던 장소에서 들은, 뜻밖의 이야기였다.

김 작가는 인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독립운동의 흔적이 흩어져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게 사실이었다.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는” 독립운동사가 미국·멕시코·쿠바 등지에 있었다. 아프리카와 남미 외에는 전 세계에 퍼져 있다고 할 정도였다.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현지에 정착하게 된 이주자들은 후손을 남겼다. 김동우 작가는 2017년부터 2년간 세계를 돌며 사람과 터를 찍었다. 5월18일부터 8월18일까지 서울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열리는 〈기억, 잃어버린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에 전시된 사진들이 그 결과물이다.

이번 전시의 직접적 계기는 ‘쿠바 한인 이주 100주년’이다. 1921년 3월 한인 300여 명이 쿠바로 향했다. 이들이 출발한 곳은 한반도가 아니라 멕시코다. 김동우 작가는 그래서 “쿠바 이민을 이야기하려면 멕시코 이민을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1905년 4월 제물포에서 영국 상선을 타고 멕시코로 간 1033명이 북중미 이민의 시초 격이다. 이역만리로 향한 이들 전부가 독립운동가는 아니었다. 갑자기 찾아온 기근을 피하고 돈을 벌려는 목적이 강했다. 1905년 〈황성신문〉에는 이런 이민 광고가 실렸다. “묵서가(墨西哥·멕시코)는 미합중국과 이웃한 문명 부강국이니 수토가 아주 좋고 기후도 따뜻하며 (…) 부자가 많고 가난한 사람이 적어 노동자를 구하기가 극히 어려우므로 한국인도 그곳에 가면 반드시 큰 이득을 볼 것이다.” 이민자 대부분은 에네켄(Henequen·용설란의 일종, 일명 애니깽) 농장으로 분산배치돼 노예와 같은 노동조건으로 혹사당했다. 멕시코 이민자 일부가 사탕수수밭에서 일하기 위해 향한 곳이 쿠바이다.

‘경제적 이유로 건너간 이민자’와 ‘국외 독립운동가’가 늘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둘 다에 해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혹독한 농장 생활을 견딘 이들이 차츰 돈을 모아 독립운동에 쓴 것이다. 독립군 훈련을 위해 군사학교를 설립하기도 했고, 번 돈 대부분을 독립자금으로 부치는 이도 있었다.

2017년부터 2년간 세계를 돌며 해외 독립운동가의 흔적을 찾아 촬영한 김동우 작가. ⓒ시사IN 조남진

아흔 넘은 안창호 선생의 아들 랄프 안

이민자들의 후손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김동우 작가는 과거에 나온 언론 인터뷰나 학술자료를 바탕으로 현지 한인회 선교사 등과 접촉했다. 오래된 자료가 대부분이라 허탕 치기 일쑤였다. 국가보훈처에도 문의했으나 ‘개인정보’를 건네는 데에 난색을 표했다. 소재지를 찾아도 문제였다. 한국을 기억하는 이들은 고령이거나 세상을 떠났고, 살아 있는 후손들은 한국과 유대감이 옅었다. “이민 3세대 이후로는 외양이 변한다. 한식을 먹고 한인끼리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 보니 점점 현지인과 동화된다. ‘우리 조상이 코리아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먼 곳에서 왔다고 하니 취재에 반갑게 응하기는 하는데,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약하다.” 후손들을 촬영한 뒤 김 작가는 인물만 반투명 처리를 했다. 시간이 갈수록 이들의 존재가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의미를 담았다.

김 작가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막내아들 랄프 안(안필영) 씨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안창호의 ‘아들’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부터 놀라웠다. 아흔을 넘긴 랄프 안 씨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다. 김 작가를 만난 랄프 안 씨는 코리아타운에서 갈비탕을 사주었다고 한다. ‘아버지(안창호)가 독립운동에 앞장서 가족들은 엄청난 고통에 시달렸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다’는 게 김동우 작가가 전한 랄프 안 씨의 말이다. 의병장 민긍호의 직계자손은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만났다. 이들의 존재가 알려진 건 한국과 옛 소련이 수교를 맺은 이후의 일이다. 그전까지는 먼 친척들이 자손으로 인정받아 훈장을 받고, 연금을 수령했다. 직계자손들은 훈장만이라도 받기 위해 한국 정부에 훈장 재교부를 신청했지만, 어렵게 재교부된 훈장은 전달식도 없이 비닐봉지에 담긴 채 전달됐다. 김동우 작가는 “해외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집집마다 울먹이며 이런 사정을 호소했다. 제대로 모시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람 사진은 눈길을 끄는 반면, 이번 전시의 풍경 사진은 상대적으로 맥이 빠진다. 거리나 건물을 찍은 사진은 주의 깊게 들여다보더라도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앙상하게 골격만 남은 구조물, 나무와 풀뿐인 벌판도 마찬가지다. 관람객이 느끼는 헛헛함은 김동우 작가 스스로 느낀 것이며, 작업 과정에서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조상들이 토론하고 서성였던 자리, 건물이 있었던 곳에 막상 가보면 멸실된 게 많았다. 나무로 된 집이 다 헐려서 옥수수밭만 남았다면 옥수수밭을 찍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군사학교가 있던 곳에는 시장이 생겼고, 독립운동가들이 사형당한 곳은 소문에 의지해 추정만 할 따름이다. 그래서 김 작가는 “수많은 현장을 찾아다니며 가장 많이 마주한 풍경은 공(空)이었다”라고 했다. 시간의 흐름 때문이지만 적극적으로 보존하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멕시코 에네켄 농장의 새벽. 100년 전 한인 이민자들이 하루를 시작하며 보았을 광경이다. ⓒ김동우 제공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100년 전과 다르지 않은 것도 있었다. 썩고 헐리는 인공물과 달리 자연 풍광은 그대로였다. 김 작가는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서 새벽 5시에 맞춰 셔터를 눌렀다. 한인 이민자들이 하루를 시작하며 보았을 광경이다. 쿠바 이민자들이 도착한 마나티 항구의 저녁노을, 연해주 한인들이 강제로 이주된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의 초원도 찍었다. 조상들이 본 광경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

김동우 작가는 당분간 국외 독립운동과 관련된 사진 작업에 집중할 예정이다. ‘쿠바 이주 100주년’이라는 전시 주제에 맞지 않아 내놓지 못한 사진도 많다고 했다. 특히 중국 지역 독립운동이 그렇다. 김 작가는 ‘아무도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동우 작가는 이 일이 “우연처럼 시작된 운명” 같다고 했다. 그는 씁쓸한 독립운동의 후일담을, 거의 냉정할 정도로 정직하게 기록하는 작업을 당분간 이어갈 예정이다.

이상원 기자

<2021-06-18> 시사인 호수 717

☞기사원문: 미국·멕시코·쿠바에서 독립운동의 흔적을 찍다

수, 2021/07/07-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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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민단체가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군과 미군이 격전을 벌인 오키나와(沖繩)현 본섬 남부 지역에서 새 미군 기지 매립지에 쓸 토사를 채취하는 것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평화를 기원하며 전쟁에 반대하는 전몰자 유족 모임’은 오늘(7일) 일본 방위성과 후생노동성을 찾아 “헤노코(邊野古) 연안 매립 공사에 쓸 토사를 희생자 유해가 묻힌 곳에서 채취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의 서명 용지를 전달했습니다.

서명에는 일본 전역에서 1만 1천여 명이 동참했습니다.

이들은 “희생자의 피가 스며든 토사를 미군 기지를 만드는 매립에 사용하는 것은 유골이라도 돌아와 달라는 유족의 염원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오키나와 전투는 태평양전쟁 막바지이던 1945년 일본군이 본토를 지키기 위해 오키나와 본섬 남부 등에서 미군을 상대로 벌인 싸움입니다.

당시 일본군이 방패막이로 내세운 오키나와 주민과 미군 병사 등을 포함해 약 2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키모토 후키코(沖本富貴子) 오키나와대 지역연구소 특별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오키나와 전투에는 조선인도 3천461명이 군인이나 군속으로 동원돼 701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는 노무 동원된 이들이나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된 이들을 제외한 숫자입니다.

기록으로 파악되지 않은 사람을 포함하면 실제 동원되거나 사망한 조선인은 더 많을 수 있고, 이들 대부분은 희생된 주변 지역에 묻힌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그동안 희생자 유해 수습이 미흡해 이토만(絲滿)을 비롯한 격전지에서 발굴이 계속 진행 중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본섬 남부의 미군 후텐마(普天間) 비행장을 이전할 곳인 중부 헤노코 연안의 매립에 쓸 토사 일부를 당시 격전지였던 이토만 등에서 채취하려 하고 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유골이 섞인 토사가 매립용으로 투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입니다.

지난 3월부터 오키나와 현청 앞에 단식 투쟁 등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 ‘가마후야’(ガマフヤ-)의 구시켄 다카마쓰(具志堅隆松·67) 대표는 최근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그간 수습된 희생자 7백여 명의 유골을 가족에게 돌려주기 위한 후생노동성 주도의 DNA 감정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한국의 유족들도 DNA 감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가마후야’는 한국 단체인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02-2139-0462)와 민족문제연구소(☎ 02-969-0226)를 통해 오키나와 유골 발굴 및 DNA 감정에 참여할 한국인 유족의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황현택 기자 [email protected]

<2021-07-07> KBS NEWS

☞기사원문: “조선인 등 묻힌 토사 채취 반대”…日시민단체, 1만여 명 서명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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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1/07/08-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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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세계유산위, ‘일본에 유감 표명’ 결정문 채택해야”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는 주제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해당 전시에서는 일제강점기 하시마 탄광(군함도), 다카시마 탄광, 나가사키 조선소, 야하타 제철소, 미이케 탄광·제련소 등으로 동원된 피해자 19명의 증언을 공개했다. 하시마 탄광으로 강제동원된 고(故) 서정우씨 등의 영상은 최초로 공개됐다. 2021.7.16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왜 여기에 와서 이런 일을 당하는가’ 혼잣말을 하면서 매일 죽을 생각만 했습니다. 바다를 내려다보면 너무 무서워서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군함도(하시마·端島) 강제동원 피해자 서정우 씨)

일본 정부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군함도 산업시설에서 벌어진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최근 국제사회에서 제기된 가운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육성 증언을 다루는 자리가 마련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과 공동 주최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 전시회를 11월 7일까지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연다고 16일 밝혔다.

전시 영상들은 강제동원 피해자 19명의 증언을 담고 있다. 열네 살에 하시마 탄광에 동원됐다가 이후 나가사키에서 원폭 피해를 겪은 고(故) 서정우(1928∼2001) 씨의 영상이 국내에서 공개되는 건 이번 전시가 처음이다. 사복형사에게 연행돼 다카시마 탄광으로 끌려갔던 손용암(78)씨, 후쿠오카 미이케 탄광·제련소로 강제동원된 류기동(79)·손성춘(76)·이영주(77)씨 영상은 올봄 촬영돼 이번에 최초로 공개된다.

징용 경험을 감추고 살아야 했던 피해자들은 자신만의 언어로 과거를 이야기한다. 군수시설에서 탈출하려던 기억을 떠올리며 천천히 말을 잇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 모습에선 그들이 겪었을 고통의 깊이가 가늠될 정도다.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은 “보통 강제동원을 떠올리면 ‘배고프다’ ‘아프다’ ‘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처럼 단편적으로만 안다”며 “이번 전시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누구였는지, 어떤 과정으로 가게 됐는지, 현장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느낌은 어땠는지, 언어 소통은 어떻게 했는지 등을 느낄 수 있게 증언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시민단체가 제공한 영상도 이번 전시에 포함됐다. ‘나가사키 중국인 강제연행 진상을 조사하는 모임’이 제공한 중국인 포로, POW연구회가 제공한 연합군 포로의 증언 영상을 함께 전시해 강제노동이 한국과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오른쪽 두 번째)이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는 주제의 전시 관련 브리핑을 마친 뒤 연구소 관계자들과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해당 전시에서는 일제강점기 하시마 탄광(군함도), 다카시마 탄광, 나가사키 조선소, 야하타 제철소, 미이케 탄광·제련소 등으로 동원된 피해자 19명의 증언을 공개했다. 2021.7.16 [email protected]

한편 유네스코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공동조사단은 일본 도쿄에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시찰한 결과 센터가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사실상 부정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지난 12일 공개했다. 지난해 6월 개관한 산업유산정보센터에는 군함도 등의 자료가 전시돼 있다.

조사단은 일본이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을 일본의 관점뿐 아니라 한국인 강제징용 노동자 등 피해자의 시각까지 균형 있게 다루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이번 조사를 토대로 일본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는 내용의 결정문을 이르면 이달 21일 열리는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공식 채택할 예정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강제노동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 온 우리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은 세계유산위원회가 공개한 권고를 지지하며 환영의 뜻을 표한다”면서 “세계유산위원회가 이 권고를 채택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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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6> 연합뉴스

☞ 기사원문: 피해자 육성 담은 ‘일제 강제동원’ 전시회 서울서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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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민족문제연구소, 군함도 등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19인 증언 공개

☞이투데이: ‘군함도 강제노동의 역사’,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19인의 증언

금, 2021/07/16-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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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사키 하시마(군함도) 전경. 김영민 기자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위원회가 일본이 ‘군함도’(하시마·端島) 등에서 벌어진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담긴 결정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일본 정부를 향해 ‘강한 유감(strongly regret)’ 등의 강도높은 표현이 담긴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22일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세계유산위원회는 결의문에서 군함도에 관해 설명하는 도쿄의 산업유산정보센터를 개선하라고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인 등이 강제노역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조치 역시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군함도 등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이 다수 포함된 일련의 근대 산업시설을 세계 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정에서 한국 등의 반대를 극복하기 위해 징용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알리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하지만 군함도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도쿄에 설치한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물은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나 인권침해가 없었던 것과 같은 이미지를 부각하고 있다.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운영하는 일반재단법인 산업유산국민회의(이하 국민회의)는 인권 침해의 역사를 부정하는 내용의 옛 군함도 주민 동영상 등을 홈페이지에 게시하기도 하는 등 역사 왜곡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 정부와 뜻있는 한일 시민단체는 일본 정부에 징용 등 강제 노역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도록 전시관을 개선할 것을 거듭 촉구했으나 일본 정부는 “약속한 조치를 성실하게 이행해 왔다”며 주장해왔다.

앞서 일본은 유네스코의 지적에 반발해왔다. 지난 12일 결정문이 최초 공개되자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은 이튿날인 13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은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의·권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자국 정부가 약속한 조치를 포함해 성실히 이행해왔다”고 주장했다. 교도통신도 지난 17일 “일본 정부가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반론을 펼치기로 방침을 세우고, 일본은 (산업유산정보센터 관련 설명을) 성실하게 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하지만 결정문은 토의 없이 채택됐으며, 일본 측도 이에 대해 추가 발언을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2021-07-22> 경향신문

☞기사원문: 유네스코, ‘일본 군함도 왜곡’ 결정문 만장일치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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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유네스코, ‘日군함도 역사왜곡’ 비판결의…”징용설명 부족”

☞한국일보: 유네스코, 군함도 역사왜곡 비판결의 채택… “강한 유감”

☞아시아경제: 유네스코, 日군함도 역사왜곡 비판 결의문 채택

☞뉴시스: 유네스코, 日 군함도 역사왜곡 비판 결정문 채택…”강한 유감”

☞MBC: 유네스코, ‘日 군함도 역사왜곡 비판’ 결의 채택

☞SBS: 유네스코, 군함도 역사 왜곡 비판결의 채택…”개선하라” 요구

금, 2021/07/23-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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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지진 희생 조선인 추도 비문

1923년 9월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인의 폭동으로 희생된 조선인 6천여 명을 추도하는 도쿄도 위령당 내의 비문.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등 시민사회 원로들은 26일 성명을 내고 1923년 일본 간토(關東)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건의 진상규명과 추모사업 진행을 촉구했다.

이들은 “2023년은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가 되는 해로 이제라도 일본 정부는 진상을 공개하고 공식 사과해야 한다”며 “한국 정부와 국회도 나서 자료 보존과 공개를 일본 정부에 요구하고, 9월 1일을 국가 추모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명에는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 박만규 흥사단 이사장, 송인동 한국YMCA전국연맹 이사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 이만열 시민모임 독립 이사장, 이종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위원장, 지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 원로 17명이 참여했다.

<2021-07-26> 연합뉴스

☞기사원문: 시민사회 원로들 “日간토학살 진상규명·추모사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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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최소 6600여명의 학살… 일본 의원도 나섰는데 우리 의원은 왜 말이 없나

☞오마이뉴스: “일본을 벌하라, 나는 죄가 없다” 예순 두군데나 찔린 조선인이 남긴 유언

화, 2021/07/27-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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